<이야기의 힘>
“월급도 적은 데 일하러 오는 의사라면 의식 있는 의사입니다”
- 텐묘 요시오미 선생 -
지난 10월 28일 백발의 신사가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여든의 나이가 무색하게 단정한 용모의 신사는 일본에서 50여 년 간 농촌노동자, 이주노동자 진료활동을 해온 상징적 인물인 텐묘 요시오미 선생입니다. 텐묘 선생은 노동건강연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셔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일본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만나 한국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투쟁과 정신건강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겨레> 신문, 여성주의 인터넷 언론 <일다>와 인터뷰까지 진행한 텐묘 선생은 노동건강연대 회원들과의 만남을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통역은 일본에서 텐묘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맡아 주었습니다. 스즈키 씨는 감개무량하다고 말하였습니다.
§ 텐묘 선생의 이야기
이렇게 후배들에게 말씀드리는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몇 번 한국을 방문했었지만 스즈키 씨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좋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사무실도 처음 왔습니다. 가나가와 직업병센터보다 여기가 조금 넓군요. 가나가와 직업병센터는 여성 2명, 남성 3명이 일하고 있는데 11월 남성 1명을 새로 채용했습니다.
제가 의사가 된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의사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 경제학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사회 하부구조를 파괴하지 않으면 상부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고민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전하고 구제도 중학교가 신제도 고등학교로 변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어제까지 군국주의를 가르친 선생들이 계속 가르치고 있었죠. 교과서 자체도 검열로 군데군데 까맣게 된 교과서밖에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교육이 180도 뒤집어지게 되고 그때까지 선생님 말은 다 옳다는 교육만 받았지만 선생님 말도 틀린 점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히면서 올바르게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적 유물론이나 마르크스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하부구조가 중요하다고 한 친구는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선생님과 논쟁하고 이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도 유물론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제게 아주 중요한 친구였어요.
저는 중산계급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대학 진학은 당연시되었어요. 대학에서 경제학 하겠다고 진학했는데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제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부구조, 상부구조 공부하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가 1954년이었습니다. 일본 천황이 살고 있는 지역 광장에서 학생과 경찰이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망자가 나오고 친구가 다리에 총을 맞아서 쓰러졌습니다. 그 때가 대학 3년 때였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온몸으로 학생 운동을 해야 하는 내가 회사 입사시험을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미군정 상황에서 의대에 들어가려면, 대학에서 교양 2년 하면 의대 입시자격이 생겨요. 3학년 때 주변에서 의대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의사하면 입사 안 해도 되니까… 직업혁명가를 하려고 해도 나하고는 안 어울려서. 의대 가려면 부모양해를 받아야 하는데, 국립대는 어렵고 사립대 가야 하는데 돈이 드는데 괜찮은가 물었어요. 부모님은 너무 기뻐하셨죠. 한번 나가면 일주일씩 안 들어오던 아들이 의사 한다고 하니까 좋아하시죠. 자식이 뭘 공부하는 지도 모르셨는데.
결국 치바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하다가 물리학 시험 계산을 안 해도 되는 동방대에 입시를 보고 들어갔어요. 물리학 시험은 정의만 쓰고 계산은 백지로 내고 들어갔죠. 의대 4년, 인턴 1년하고 진로를 고민했어요.
교수를 정상에 두고 피라미드 식으로 한 단계라도 계급이 다르면 차별을 하는 의국제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야시 준이치 라는 농촌의학소설을 쓴 작가가 있었는데 공산주의자였고 훌륭한 의사였어요. 그분이 아키다 동북 농촌지방에서 일하면서 쓴 농촌의학소설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소비에트 의사의 현실>이라는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지만. 하야시 선생이 도쿄에 들어와서 의료생협 원장을 한다는 말을 듣고 진로 상담을 하러 찾아 갔어요. 전화해서 선생님 책도 읽었고 상담하고 싶다고 했더니 오라고 해요. 1955년 이야기입니다.
병원 문 열자마자 석탄난로가 있고 슬리퍼가 싸여 있어요. 당시 기준으로도 지저분한 병원이었어요. 하야시 선생은 의료공부는 못하지만 현장의료에 대해서는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대학교 의국에 들어가면 급여도 안 나오는데 의료생협은 초급이 2만 5천 엔이라고 하니, 마침 내과의사 비어있다고 해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당시 아내는 치바 대학교 연구소에 있었는데 내가 돈을 벌면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
의료생협에는 선배외과의가 2명이 있었는데 의학적 조수로서 모든 수술에 관여하게 되었어요. 외과라면 제대로 수술이 되어야 객관적으로 의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내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독일말로 ‘문트 테라피’ (입으로만 하는 치료)만 하는 의사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노동자 동네이고 오는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 많았어요. 아주 가난한 할아버지가 식욕이 없다고 왔는데 포도주에 물 섞어서 주었더니 아주 좋아해서 약을 더 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어요. 당시 상당히 충격 받은 사건이, 고등학교 친구가 도쿄대 법대를 갔는데 결핵 때문에 1년도 못가서 전문 병동에 입원을 했어요.
가끔 문병을 가서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어려운 암이 있어도 알려주지도 못하는 환자하고 나날이 만나는 게 힘들다고 하였더니, 그 친구가 조용히 말하길 ‘의사는 좋다, 일단 병원일이 끝나고 나가면 일상생활을 하니까. 환자는 사망시기가 다가오는 환자하고 (병원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어떤 호흡이 오면 간호사 방 가까이 이동하고, 그리로 이동하면 7~10일 안에 사망한다는 걸 알고 있다’ 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그 친구 말을 생각하고 그 친구가 간호사실 옆방에 어떤 심정으로 갔는지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저는 예방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의료생협에 7년 정도 있다가 예방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교를 옮겼어요. 의료생협이 있던 노동자동네에 겨울이 되면 농사일이 없는 농민들이 일하러 도시로 나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런 분들 문제를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 노동기준법에서는 1년 이하 단기노동자는 검진을 안 해도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검진을 안했어요.
당시 나는 병을 조기발견하고 조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기발견은 2차문제고, 1차 예방을 알게 되면서 그런 주장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국내 이주노동자 문제를 생각할 때, 시골에서 도시로 나올 때 고향에서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쿄에서도 선거권에 관심이 없어요. 진보지사가 정치하고 있었는데도 노동자들이 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들의 고향에서 먼저 무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자안전보건에 대해서 공부하고 의사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요.
법을 지키고 있으면 노동자 건강이 지켜지나요? 그렇지 않아요. 기술혁신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요.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노동자 건강을 지킬 수 없죠. 정보통신 사회, 컴퓨터사회가 되면서 컴퓨터와 어떻게 어울려 나가야 할지도 문제예요. 컴퓨터는 24시간 일해도 피곤함이 없어요. 인간이 컴퓨터 기준으로 일하면 안 되는데 이 훌륭한 발명품을 잘 이용하는지가 과제입니다.
§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다
활동하시면서 영향을 받은 조직, 애정이 많은 조직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가나가와 근로자 의료생협이 작년에 30주년을 맞았어요. 애착이 많은 조직이죠. 가나가와 직업병센터도 아주 애착이 많아요. 노동과학연구소도 설립 90주년이 되었어요. 제가 거기 객원연구원인데 외국 논문 공짜로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연구소에 일주일 한 번씩 다녔는데 아니었다면 세계적인 흐름을 놓쳤을 거예요.
지금이야 검색해서 논문 다운로드 받으면 되지만 옛날에는 연구소 가서 WHO 논문 보고, 필사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했어요.
가나가와 의료생협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1979년이면 일본 노동운동이 하향세였을 시기인데 이 때문에 지역운동, 노동자 의료생협을 고민하신 건가요.
친구들하고 항만노동자 건강검진 시작한 게 계기가 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옷차림도 더럽고 말도 거칠고 병원도 안 가요. 항만노동조합하고 의사 그룹이 얘기하면서 항만노동자를 위한 병원, 거점을 만들자고 유인물을 냈어요. 과격하다고 소문이 났죠. 그러나 노동조합 사무처장 하는 사람이 강력하게 ‘제가 다 준비하겠다’고 하면서 진료소를 만들고 검진 의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았던 제가 진료소장이 되었어요.
의료생협이 지역별로 특성이 있는지요?
지역특성이 있습니다. 요코하마 항만노동자지역에 <미나토마치 진료소>가 있고, 조선소가 있는 요코스카에 중앙진료소를 만들었습니다. 석면 관련 질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요코하마에서 가는데 전철타고 한 시간 거리라서 요코스카에도 따로 진료소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노동자진료 해 오신) 사이토 류타 선생이 하는 진료소가 개인병원이었지만 노동자 의료생협 이념에 동참해서 의료생협 산하로 들어오기도 했고요. 사이토 선생이 진료하는 지역에는 석면공장도 있었고 미군비행기장 있는 야마토 행정구역에 있었어요. 비행장 반대운동을 해서 소송해서 야간 비행을 중지시킨 싸움을 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미군기지는 야간비행을 금지했지만 결국 오키나와로 갔어요. 미군기지는 일본전체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본 노동조합이 기업별노조를 벗어나서 지역, 연합 단체 활동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어떤 흐름이 있습니까?
노조는 주로 자치단체노조, 공무원노조와 나머지는 기업노조예요. 최근 지역일반노조와 커뮤니티유니온이 만들어지고, 외국인 지부도 있어요. 기업노조에서 이탈한 사람이 들어오는 형태가 일본도 있고, 미국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형태가 기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컴퍼니유니온 상근자가 아스베스토 (석면) 유니온을 만들었어요. 아스베스토 유니온 위원장은 재일교포인데 교섭하면 기업이 교섭에 나오는 힘 있는 사람입니다.
일본이 과로사가 많았는데 노동시간 줄었는지 궁금합니다. 산재보험으로 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중소영세 기업은 산재은폐가 많습니다. 대기업은 은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빨리 의료보험으로 가라고 하죠. 과로사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동료가 심하게 일하다가 쓰러져서 동료가 산재인정 투쟁을 하고 노조가 활성화된 사례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동자 의료생협을 하는 의사들이 공산주의 운동도 하고 의식 있는 의사들이었는데 지금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의식 있는 젊은 의사들이 있는지, 전망은 밝은지 궁금합니다.
특징 있는 생협을 하면 젊은 의사들이 옵니다. 저도 언론에 나오고, 이주노동자 의료, 석면 등 특징 있는 생협에 의사가 오니까 의사모집에 어려움은 없어요. 월급은 공공의료기관 수준의 월급을 기준으로 합니다. 다른 공립 병원 의사와 같은 수준으로 하기 위해서 특별수당도 줍니다.
전망은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의사가 운동 마인드가 없는 게 아니에요. 의식 있는 의사라면 월급도 적은데 오는 게 의식 있는 의사입니다. 기초생활수준으로 월급을 받아도 산재직업병을 하겠다고 옵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서울에 와서 페미니즘 언론도 만나고, 노동조합도 만나고, 서울대 강의, 한겨레 기자 등 여러분을 만났어요. 몸은 좀 피곤하지만 보람 있었어요. 서로 정보를 제공하면서 앞으로 나가면 좋겠습니다.
(끝)
<눈여겨볼 연구>
지연 게임: 화학 산업의 규제 회피 전략
임형준 / 노동건강연대․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저자 : 제니퍼 사스 (Jennifer Sass), 다니엘 로젠버그 (Daniel Rosenberg)
보고서 제목 : 화학 산업이 규제를 피하는 방법. (The Delay Game: How the chemical industry ducks regulation of the most toxic substances).
출처 : 자연자원보호위원회 보고서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2011년 10월
이번 호에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자연자원보호위원회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가 발간한 화학산업에 대한 보고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연자원보호위원회는 2011년 10월에 화학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독성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가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단체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자연자원보호위원회는 공중보건, 환경 보호를 위한 단체로 1970년에 설립되었다. 다음은 이 보고서의 요약 내용이다.
미국 환경보호청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은 독성물질규제법 (Toxic Substances Control Act, TSCA)을 근거로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일반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독성물질규제법에 따르면, 환경보호청은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독성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근거하여 유해화학물질 생산과 사용에 규제를 시행한다. 미국환경보호청의 통합위험정보시스템 (Integrated Risk Information System, IRIS)은 상용으로 판매 및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에 대해 최신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대기ㆍ수질ㆍ음식ㆍ토양 중에서 해당 화학물질의 노출기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 통합위험정보시스템에서 제시하는 노출기준은 그 자체로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미국 내 50개 주와 전 세계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건강 관련 표준을 정하는데 사용되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법률 규정에 영향을 미친다.
화학산업연합회와 화학산업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업무나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 컨설턴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미국 환경보호청이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독성 평가결과에 대해 최종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노골적인 반박이 아니라) 지연 전술을 통해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화학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므로 이윤을 늘리기 위하여 가능하면 미국환경보호청의 기준이 정해지거나 개정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산업은 규제회피 목적 달성을 위해 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 초기 건강 평가 결과에 대한 방법 상의 문제제기
○ 지금까지 진행된 평가과정을 무시하고 평가 과정을 다시 하도록 압력 행사
○ 평가과정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화학산업 자체적인 자금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연구를 시작하여 건강평가에 대한 결론을 연기시키기
○ 더 많은 평가를 하도록 압력 행사
○ 정치적 영향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후원
○ 새로운 건강평가결과 초안에 대한 방법상의 문제제기 등
특히 통합위험정보시스템의 해당 화학물질에 대한 건강영향평가결과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연구하는 최초의 보고인 경우이거나, 과거에 이미 평가를 수행했으나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개정한 보고서가 이전에 비해 유해성이 더 크다는 내용을 담고 있을 때 이러한 회피 수단을 더욱 심하게 사용한다고 기술했다. 이처럼 다양한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화학산업은 환경보호청이 유해화학물질 인체독성평가제도를 통하여 인체 건강을 보호하려는 원래의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하거나 이루어지더라도 가능한 그 시점을 연기시킨다. 그 결과 화학물질 사용 금지, 판매 금지 등의 규제조치를 회피하고, 궁극적으로는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현재의 법률 규정에 따르면 미국환경보호청의 통합위험정보시스템이 개별 화학물질 평가 수행 완료 기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평가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화학물질은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이 그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기업에 있지 않고, 미국환경보호청이라는 정부기관에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화학산업이 규제를 피하거나 연기시키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을 애완견에 빗대어 설명했다.
○ “내 애완견은 사람을 물지 않아요” : 아직 독성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화학산업은 해당 화학물질이 유해하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과학연구의 방법론과 연구자의 전문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자체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 “내 애완견이 물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을 물지는 않아요” :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환경이나 인체에 대한 노출정보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경우, 화학산업은 건강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로 실제 노출되는 사람이 실제로는 아무도 없다고 주장한다. 화학산업은 화학물질의 사용양상과 노출정도에 대한 연구는 잘 수행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사용양상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경우 문제될 만한 노출은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 “내 애완견이 주변 사람을 물었지만, 피해를 주지는 않았어요” : 화학물질의 환경과 인체 노출 수준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경우, 노출이 인체에 건강영향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화학물질이 매우 높은 수준의 노출에서는 건강영향이 있지만 저농도 노출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인체와 실험동물 사이의 노출 경로와 농도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실험동물에서의 발암성이 인체의 발암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 “내 애완견이 주변 사람을 물었지만, 제 잘못은 아니에요” : 화학물질이 인체에 건강영향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있더라도, 그 원인을 사용자의 부주의로 돌려 비난을 모면하려고 한다.
보고서에는 이러한 원칙과 더불어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트리클로로에틸렌 (trichloroethylene, TCE)은 주로 금속의 세척제로 쓰이는 염화 유기용제인데, 군사 기지와 산업 시설 주변의 식수에 오염물질 형태로 존재하여 인근 주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암 발생과 중추신경계, 신장, 간, 면역체계, 남성 생식계, 태아 기형 등의 여러 가지 건강 문제와의 관련성이 보고되고 있으나 미국환경보호청은 22년 동안이나 건강영향 최종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는 합판, 수지, 접착제 제조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주로 실내와 실외 공기오염의 주된 원인 물질이다. 발암성과 함께, 눈, 코, 목의 점막에 강한 자극제로 따끔거리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천식환자에서 호흡곤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미국환경보호청은 1998년부터 이 물질에 대한 건강영향평가를 개정하려고 하였으나, 아직 초안만 있을 뿐 최종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스타이렌(styrene)은 플라스틱, 라텍스 페인트, 합성고무, 폴리에스테르와 코팅제의 제조에 사용되는 물질이며, 아이스크림과 캔디 등의 식품에 향을 첨가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는 식품첨가물이다. 미국환경보호청은 유해한 대기오염물질로 분류하고 1998년부터 건강영향평가를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언제 끝날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독성물질규제법의 법률상 한계점을 이용하여 화학산업이 규제를 장기간 회피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해결책은 독성물질규제법이 보다 효과적인 규제 수단이 되도록 의회의 법률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법률 개정의 주된 방향은 화학산업이 규제 결정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환경보호청이 일정하게 정해진 기한 내에 현재 시점에서 입수 가능한 과학적 정보들에 기반하여 건강영향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쪽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 보고서의 원문을 읽기 위해서는 검색엔진인 구글 웹사이트에서 보고서 제목 “The delay game: How the chemical industry ducks regulation of the most toxic substances”로 검색하면 PDF 파일 형태의 영문 보고서 원본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법의 이면
박노준 / 공인노무사
2011년 10월 12일 미국 상·하원 본회의 한미 FTA 이행법안 통과 → 10월 2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 한미 FTA 이행법안 서명 →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 국회 통과 → 1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 14개 이행법안 서명. 이로써 한미 양국에서 한미 FTA 발효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모두 완료되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에서는 한미 FTA 그 자체가 ‘법률’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제1항이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의 적용순서를 정하는 일반원칙인 ‘상위법 우선의 원칙’과 ‘신법 우선의 원칙’ 및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한미 FTA와 저촉되는 한국의 기존 법률, 명령, 규칙,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 법의 지위를 갖는 것은 한미 FTA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제정한 한미 FTA 이행법이다. 그런데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에는 ‘이행법에서 특별히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미국 연방법도 개정되지 않으며, 한미 FTA가 미국 연방법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고, 각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 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 연방법 > 주법 ≧ 한미 FTA 이행법 (≒ 한미 FTA) > 국내법’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한다. 따라서 미국기업은 한미 FTA에 기초하여 한국에서 소송을 통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한국 기업으로서는 미국에서 소송을 통한 법률적 문제 해결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미 FTA는 내용 상의 불평등과 더불어 한미 양국에서 가지는 법적 효력 측면에서도 심히 불평등하여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래 FTA (free trade agreement)란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무역장벽(관세)을 제거하는 협정이다. 그러나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조건만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직접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포괄적인 협정으로서 일반적인 통상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아가 협정문에 규정된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 (Investor-State Disputes, ISD)에 의해 한국 정부의 정당한 노동정책 자율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하여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제소국은 패소한 상대국의 불이행에 대해 관세보복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수용하여 현재 OECD 최저수준인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다든지, 선진국 수준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과 휴가를 늘린다든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정규직화 한다든지,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 지급을 허용하는 등의 정책을 입안하려 하더라도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국인 투자자나 합작 투자로 들어온 국내 대기업 자본들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ISD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스스로 포기하거나 국제중재기관의 결정에 따라 적법한 정책의 실행이 좌절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담은 한국의 노동계, 특히 노동정책의 형성, 변경과 관련하여 경영계 및 정부와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에 고스란히 전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노동조합은 정부의 친기업적 관행과 노동관련 대법원 판례의 보수적인 시각 및 조직의 압력에 억눌린 낮은 노동권리 의식 등 비우호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보강한 기업 자본을 상대로 13대 330의 명량해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미 FTA는 한국 노동계에 득보다는 훨씬 큰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미 FTA에는 노동의 장을 따로 두어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노력, 공중의견제출제도의 도입·운영, 분쟁해결절차의 도입·운영, 노동분야의 협력사업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보호를 위한 현행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에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진 한국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보다 나은 조건에서 경쟁하자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권의 확대와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한미 FTA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된 이후 멕시코에서는 공공부문 민영화로 인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약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FTA가 수출증가로 인한 고용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용불안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과이다. 이를 한국 상황에 비추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정화 및 노동권의 축소를 떠올릴 수 있다. 수출이 증가하는 데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한미 FTA 발효 이후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 노동계로서는 재협상으로 한미 FTA를 폐기하는 것이 최상책이고, ISD 조항의 폐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상책이며, 여의치 않으면 초국적기업의 자본이 노동정책에 관여할 수 없도록 ISD 제소범위를 최소화하는 것을 양보할 수 없는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9°, 그녀들이 견뎠을 어느 밤은 이 글을 쓰는 오늘 밤처럼 추운 밤이었을 것이다.
“11시 영화니까 늦지 않게 와야 돼” 그녀들을 만나러 극장나들이를 한 아침은 -6°.
겨울추위가 많이 무뎌졌다고 하지만 갑자기 낮아진 대기의 온도에 몸이 굳는다.
극장으로 가는 길은 불친절했다. 건물 초입은 여기 저기 파헤쳐놓은 흙더미와 팻말, 진입을 막는 노란 경고판들로 어지러웠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코앞에 있다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는 좀 친절하면 안 되나.
출입문도 제대로 못 찾아 이 문 저 문 밀어보는데 안쪽에서 손을 흔드는 이가 있다.
음, 이 극장이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쉬운 길도 어렵게 찾는 도시 부적응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기륭의 조합원 다섯 분은 벌써 와 계시다. 연신 전화기가 울리는 모양을 보니 길을 못 찾는 이가 더 있다. 지하철 기준으로 그리 찾기 어려운 곳은 아닌데 영화 시작할 때가 다 되어도 전화기 너머의 조합원은 나타나시질 않는다. 결국 유흥희 분회장을 남겨두고 극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꽤 넓은 극장인데 관객은 기륭조합원들과 커플 한 쌍, 여성 한 명. 3백석은 돼 보이는 상영관에 열 명 관객이라. 휑한 극장에 들어가서도 기륭 식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앗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영화를 소개해드리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제목의 의미가 뭐냐고? 음 그건 영화 얘기를 좀 더 하다가 밝혀드리고 싶지만 우리도 알아내지 못했다.
아, 두 여성이 꿈꾸었던 꿈과 현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이 제목과 연관이 될 수 있겠다. 제목만 들어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 독립영화를 기륭조합원들이 보러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를 찍을 때 기륭조합원들의 피켓과 농성텐트를 통째로 빌려갔기 때문이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이 영화를 기륭노동자들에게 바친다’ 고 하였다. 그렇다. 이 영화는 기륭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헌사의 주인공들이 극장에 입장할 때 레드카펫은 없었다. 주인공들은 6천 원을 내고 표를 샀다. 난방이 되지 않는 로비에서 지각하는 동료주인공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다 되어 표를 내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노동조합의 농성장을 이탈한 주인공이 중학교 때 단짝 친구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의 톤을 잡고 갈등과 화해를 모색하는데, 진지한 시각이 좋았다. 몇몇 장면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몇몇 조합원들은 박수를 치신다.
기륭조합원들은 “야 OO야 니랑 주인공이랑 닮았다” “단식하는 위원장 얼굴 너무 늙었다” “말싸움하는 남자들 OOO줄 알았다” 며 웃기 바쁘다.
우리는 극장을 나와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돈가스가 나오던 80년대 레스토랑 같은 식당 을 발견한 조합원들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망설인다. 런치 특선이 7,500원, 8,500원 이다.
“제가 사무실에서 돈 타왔어요. 오늘 점심 쏠게요” 아 얼마나 다행인가. 수중에 현금에 꽤 있다. 식당의 주 메뉴는 돈가스가 아닌 스파게티. 좋아하신다. 넓은 창, 나무색 인테리어, 갈색탁자와 의자. 모두 좋다고 하신다. “이런데 온 거 정말 오랜만이다” “먹어본지도 오래됐어” “와인 먹자”
우훗, 우리는 정말 와인 한 병을 시켰다. 3만원이다. 한잔씩 받아 마시니 병이 비었다. 마늘빵도 한 바구니를 금방 비우고 한 바구니씩 추가하였다.
스파게티 대신 시킨 해물볶음밥은 매웠다. 포크를 들고 깨작거리고 있자니 한 말씀들 하신다.
“처음 기륭 갔을 때 점심시간만 되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거야” “얼른 먹고 쉬려고 하는 거지” “점심시간이 40분이잖아” “줄 서다간 밥도 못 먹어” “밖에서 라면 먹고 오는 애들도 있잖아” “줄 서는 거 싫어서 밥 굶은 적도 있어”
와인을 홀짝이는데 벌써 “후식 주세요”
“커피 콜라 사이다 녹차 됩니다”
음 와인을 마저 마시고 다시 헤이즐넛 커피를 급히 들이켠다. 가방들 챙기고 계신다. 계산서를 보니 꽤 나왔다. “와인 값은 기륭에서 내세요”.
스파게티 먹으면서 알게 된 고급 정보 하나. 기륭투쟁 중에 90일 넘게 단식을 하면서 유명인사가 된 김소연 전 분회장은 고기 좋아하고 밀가루 음식, 느끼한 음식 좋아한다. 삭정이처럼 마른 팔다리를 모으고 천막에 앉아있던 투쟁의 지도자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음 오늘 스파케티 드신 모든 기륭 조합원들, 허락해주신다면 다음에 비싼 스파게티 집 찾아서 한 번 모시고 싶다. 와인? 당연히 쏩니다. 사무실 돈으로.
유흥희 분회장이 조합원들의 해산을 허락했지만 헤어지는 인사가 길어진다.
길 건너에 카페가 있다. 고민한다. 커피랑 같이, 머핀 먹을까? 와플 먹을까? 커피 번 먹었다.
싸움 끝난 지 1년 넘었죠? 어떻게 지내세요.
_ 1년 동안 같이 움직였어요. 작년 11월 국회에서 조인식 하고 나서 연대투쟁 할 때가 너무 너무 많아요. 현대차, 동희오토, 재능… 쉴 수가 없어. 내년 5월 현장 복귀 때까지는 기륭투쟁에 도움 준 곳들을 계속 도와야죠.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가 잘 알려야 하고, 우리가 당사자니까 잘 알리자 하면서 계속 하는 거예요.
우리가 사무실도 구했고, 놀러 오면 좋은데. 몸이 망가져서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해요. 의료생협에서 하는 요가. 그리고는 사람들이 “기륭은 다 좋은데 공부를 안 해”(웃음) 하길래 일주일에 두 번은 사이버노동대학에서 공부를 하고요, 나머지는 집회, 문화제, FTA, 희망버스 … 아 그리고 컴퓨터 배워보자 조합원들 요구가 많은데 바빠서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좀 쉬실 만도 한데 스케줄이 장난 아닌데요. 아니 분회장은 언제 되신 거예요? 취임식 날 초대 좀 하시지. 분회장 공약은 뭔가요?
- 희망버스 타고 부산 갔다 왔더니 분회장이 돼 있더라고요. 11월 2일날.
우리가 기륭 배포 크다, 잘 웃는다, 칭찬도 듣고 스스로도 우리 멋지지 하면서 해 왔는데 요새 조합원들이 힘들어해서 나도 힘들어요. 화요일도 밤에 재능노조 문화제가 있었는데 힘들지? 쉬어. 하고… 낮에 집회 있어도 힘들지 쉬어 하고. 자기 시간 없는 것도 힘들어요.
공약은 기륭이 잊혀져가는 투쟁이 되는구나. 내년에 복귀해야 되는데 우리가 정리하고 우리가 평가한 자료집이든 백서든 만들어야 한다고. 사업계획에 있어. 사진집은 있지만 자료집이 없어.
기억으로 남겨야 해요. 같이 싸우던 한 분은 암 투병으로 돌아가시고, 영상으로 우리를 기록해주던 분도 스스로 저 세상으로 가고, 마음의 빚이 생겼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가 카메라 하는 분들에게 힘을 주자, 무일푼으로 묵묵히 일하는 분들에게 힘을 주자 해서 “현장 카메라에게 힘을” 이라고 모임을 만들었어요. 카메라, 장비, 제작지원 같은 거 해볼까 해요.
힘들어하는 거 보니 조합원들 평균 나이가 높은 거 아니에요? 쉬어야죠. 아이 키우는 분들도 있고.
_ 조합원들이 나이 얘기 싫어하는데 (웃음) 개띠가 좀 많고…. 아이 있는 조합원이 4명이예요. 우리가 단식 할 때 임신한 걸 말 안하고 같이 단식하다가 우리가 알고 놀라서 단식 그만두게 한 조합원이 있어요. 그 애가 태어나서 4살이 됐어요. 얘가 지금 “엄마, 촛불 들면 집회 아니지?” “오늘은 문화제 가는 거지? 집회 아니지?” 물어본다니까. 얼마나 이쁜지.
나이 얘기 싫어한다고 하시면서 슬쩍 다 가르쳐주다니 (웃음). 1895일이라… 이렇게 길게 할 줄 알았나요?
_ 알았으면 죽어도 안했지. 뭐가 제일 힘들 줄 알아? 출근 투쟁. 그게 제일 힘들어. 하루도 거르지 말아야지 표정관리 해야지 어떤 구호 할까 어떤 발언을 할까. 회사 관리자가 다 나와서 적어 가는데 구차한 거야. 내가 아파도 티내기 싫어 자존심 상하고. 일상 지키는 게 아침마다 1시간이 너무 힘들었어.
출근 투쟁하는 데… 발목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어떻게 알았나 의사가 ‘기륭 사람이죠’ 하더라. 뼈에 이상 없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삭발, 단식, 고공농성이 아니라 보일 때도 보이지 않을 때도 똑같이 지켜야 하는 자리,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지켜주는 게’ 진짜 힘들었어. 감사한 거는, 어디 올라가든 집회든 혼신을 다해서 했어. 정열, 분노, 오기가 대단했어.
우리는 정규직으로 들어갈 거니까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게 이기는 거군요. 길게 힘들게 했는데 이렇게 다시 노동조합으로 모여서 움직이는 게 어렵지 않나요?
- 우리가 낮에는 개인시간 안 갖고 같이 다니기로 했어. 투쟁 끝나고 심리프로그램을 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석 달이나 했어. 받으니까 어떠냐고? 받을 때는 좋았어. 받고 나서는 약효는 한 달? 우리가 다시 공장에 돌아가야 하는데, 현장 분위기를 공부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공장이 어떻게 변했을지. 어떻게 일 속도를 올려갈지 알 수가 없어요. 6년 사이 공장이 진짜 변했다고. 더 변할까봐 안 들어가고 싶다니까. 그래서 공장 알바든 뭐든 미리 공장 일을 해봐야 하는 거야. 내년 5월에는 기륭으로 복귀하는 준비를 해야 하는데 대방동에 신사옥이 있는데 거기는 정규직만 있대요 (웃음). 우리는 정규직으로 들어갈 거니까 청소부든 뭐든. 지금 생산라인이 없잖아. 본사가 생산라인을 없앴어. 우리 싸우고 나서 생산시설을 없앴는데 회사는 하도급도 없도 다 없다는 거야. 생산라인은 없대. 모여서 한자 배우기라도 하지 뭐. 어차피 우리끼리 놀아야 되잖아.
기륭노동조합이 있어서 사람들이 든든해할 거 같아요. 기대가 많아서 부담되죠?
- 현대차 비정규직 싸움이 고전하고 있잖아요. 열심히 했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때잖아요. 희망버스도 있고. 총선 대선도 있고 어수선 하지만 정세는 유리하잖아요. 싸움을 못해서 활용을 못한다고. FTA도 그렇고. 노동조합 안에도 보면 비정규투쟁본부가 있는데도 기자회견을 한번 하려고 해도 공조직이 아니라고 체계에 안 맞는다고 대응을 못한다고.
‘비정규 없는 세상 네트워크’(비없세)를 기륭 투쟁말미에 만들었어요. 비정규 투쟁이 많았는데 함께 모여서 하자고. 네트워크로 느슨하지만.
희망버스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으셨나 봐요.
- 희망버스를 보니 자발적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싶어. 요새 노동조합 보면 지침 안 내리고 교통비 안 주면 안 움직인다고. 싸우러 갈수가 없어. 본말이 전도된 거지. 배워야 된다고. 희망버스 한 사람들을 보니 열정이 살아있어.
어린이 책 작가, 성소수자, 예술하는 사람들, 장애인… 다양한 마음을 모아서 재주를 모아서 하잖아. 희망버스 다섯 번 다 탔는데 또 가자면 못 가지만. 그 열정이 대단하더라고.
노동조합은 만성피로야. “되는 싸움이야?” “될 것 같애?” 계산해보고 이런다고. 이긴다, 이길 순 없지만 마음은 통한다고 말해도 되잖아. 2008년 단식 접을 때 “기륭 고생했다” “그만 쉬어”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소영웅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단식할 때 단식을 전술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너무 분노했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당신은 목숨 걸고 전술을 하냐. 단식은 결단일 뿐이다, 이렇게 말해줬지.
기륭투쟁을 보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노동자시민들이 많잖아요. 노동운동이 그 관심에 부응해서 잘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이 드나요?
- 기아차 광주에서 고등학생이 실습하다가 쓰러졌다는 거 듣고 가슴이 무너져요. 왜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몰랐을까. 정말 몰랐을까. 우리가 고치자고 하면 “법이나 알고 얘기하는 거예요?” 절차부터 얘기하니 말도 못하고. 무슨 희망이 있어. 사회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이 줄 세우기부터 하고, 무슨 권력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습관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비정규직이 반이 넘는데도 ‘늘 있는 거 아냐?’ 생각하는 건지.
계약직을 무기 계약직으로 바꾼다고 하니까 좋은 일 한 거 마냥 ‘환영’한다니 말이 돼? 세상을 바꾸자면서. 하향평준화잖아.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 욕하고,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귀족이라 욕하고. 깨뜨리자고 모여서 우리 입으로 똑같이 얘기하고.
비정규직 안에서도 사내하청 다르고 특수고용 다르고. 차이를 느껴. 차별이 심각해.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야. 진짜 뼛속까지 무섭구나 생각한다고.
우리 이후 수많은 비정규직싸움이 힘을 모았고, GM대우, 현대차비정규직이 우리 보고 힘난데 승리하는구나. 장기투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니까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좋대.
(2010.12~2011.2 64일간 고공농성을 한) GM대우 비정규노동자 둘이 아치에 올라가서 안 내려올 때 우리가 매일 가서 울었어. 미치는 줄 알았어. 그거 보고 사람들이 “당신네들은 더했거든” 하더라 (웃음).
언론에 보니 현재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시나 봐요. 성명서에서 이름을 봤는데요.
- 이번에 당을 탈당했다고. 싸워본 사람이 말하니까 정당성이 있는 거 아닌가요. 욕먹어도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대로 한 건지 평가해봐야 돼. 자기 꺼 다 버리고 가겠다고 하다니. 내년 선거에서 국회의원 더 내겠지. 그래도 무슨 희망이 있나, 다 내주는데. 죽 쒀서 개주는 꼴 그거 하지 말자고 했던 건데. 이제는 비주류 싫다, 중심이 되고 싶다는 거잖아. 알고 하는 것과 대세니까 설레설레 따라가는 건 큰 차이잖아. 평가를 해야지. 평가 없이 가는 건 말도 안 돼. 눈 귀 멀어서인지 안 들리나봐. 못 알아들으면 지금이 8~90년대인 줄 아냐고 하데.
끝까지 한 사람과 같이 하지 못한 사람들, 끝까지 한 사람들은 무엇이 달라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죠?
- 억울해서 열 받아서. 아니꼬우면 힘 가져라 하는데, 기륭사장이 타워팰리스 살았는데 밥그릇 치면서 아파트를 돌아. 못하게 하면 ‘아 여기가 정말 중요한 데구나’ 하고 더 돌아.
우린 정규직이 됐잖아. 비정규직, 파견직, 노예처럼 공단이라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정규직 취업이 불가능해. 파견만 뽑으니까. 취업 자체를 못한다고. 기륭 싸움 시작할 때 기륭이 불법파견 판정받아서 500만원 벌금 물테니까 죄 값 묻지 마라, 하는데 니네 불법이잖아. 기업 책임 다해라. 1년, 2년, 3년 싸움하다 보니까 노동부 집회 할 때 그 앞에서 사람들 만나. 고용보험 타러 온 거야. 공단을 못 떠나고 뺑뺑이를 도는 거지. 3개월 일하고 3개월 고용보험 타고 불안한 삶이야.
농성장을 회사 앞에 차렸는데 깡패들 보내서 막아. ‘아 여기다, 여기서 끝까지 남아야 된다’ 하는 거지. 회사가 부지 매각 했다고 포크레인 들어왔을 때 포크레인에 올라가니까 회사가 망할 것 같으니까 손든 거야. 정규직 복직이면 어디든 상관없어. 즐기면서 해야 돼.
공장 깔아야 하니까 1년 6개월 있다가 들어간다고 합의한 건데. 다들 우리 따라서 1년 6개월 후 복직이라고 따라한다나. 그건 아니지 (웃음).
대법원에서 지고도 이겼잖아. 아쉽지만 최선이었어. 이보다 더한 승리가 있을까.
좋아 보여요. 힘 나 보이고.
- 엄마는 내가 하도 바빠서 집에 못 가니까 “출세했구나” 이러신다 (웃음).
우리 싸움이 타결되고 바로 다음날 우리 후원 CMS 계좌를 끊었지. 사람들이 너무하다고 하는데도. 그리고는 저기 벽에 메뉴판만한 액자를 들고 전국을 돌았어, 연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투쟁 끝나고 인사 다닌 건 우리가 처음일거야. 제주도만 아직 못 갔네. 강정마을에 가야 하는데. 아, 법조계 종교계도 못 돌아서 연말에 돌아야 돼.
내가 지회장이 돼보니 조합원들이 못 하겠다 하면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양한마리 양두마리> 보고 우리가 저런 모습 가끔 나타나지, 감정이입 되더라고. 저 모습은 내 모습 같고, 저럴 때는 누구 같고. 민폐 끼치는 모습 나올 때는 아, 내가 저랬던 거 아닐까. 그렇구나 저렇게 비치는구나. 우리가 가족보다 더 친한 관계다 보니 웬만한 아픔은 참을 수 있다고 재단할 때도 있거든.
그래도 지금 좋아.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조합원들이 말을 안 들으면 속으로 열불이 나고 머리가 아픈데 옆에서 이제 시작이야 하더라 (웃음). 농성장에서 온몸을 두드려 맞고도 추석이라고 송편을 만들고, 농성프로그램이라고 십자수를 했어. 참 뭐가 좋다고 (웃음). 그래도 생각하지. ‘투쟁 잘 한 것 같다, 해볼 만하다’.
[참고 1 ] 기륭투쟁 1895일, 비정규직 투쟁의 새 이정표 세우다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가 1895일의 투쟁 끝에 ‘기륭전자의 정규직’으로 복직하기로 회사와 합의하며 기나긴 거리의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8월 24일 전면파업에 돌입한 후 6년은 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의 시간이었다.
기륭의 투쟁은 회사의 비정규직 무차별해고와 노조탄압에 맞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목표를 이루고, ‘비정규직 문제는 전 국민의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립한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 처음 노동조합이 결성될 때만 해도 300명의 생산직 중 200여명이 가입했고,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이 함께 참여한 견실한 노동조합이었다.
그해 7월 28일 비정규직인 이현주 조합원을 계약해지하면서 노사갈등이 시작됐다. 8월 3일 노동부로부터 제조업에서는 금지된 사내하청을 통한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이유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나 회사는 비정규직 무차별해고로 답하였다. 노조는 이에 맞서 8월 24일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가 내건 요구는 대표이사의 성실교섭, 해고중단,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조가 통상적으로 제시하는 최소한의 것이었다. 10월 11일 기륭전자가 직장폐쇄를 공고하며 본격적인 ‘거리투쟁’이 시작됐다. 이후 기륭노동자들은 대주주, 원청, 경영진의 회사와 집, 모교까지 찾아다니며 투쟁을 했고, 미국 시리우스 사까지 원정투쟁을 했다. 사회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집회와 시위, 농성, 삼보일배, 철탑 고공농성을 전개했고, 94일의 극한 단식투쟁을 비롯해 세 차례나 장기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회사는 불법파견에 대해 벌금 50만원을 내는 것으로 법적 책임을 덜고 정규직 남성 사원을 구사대로 동원하는가 하면 용역깡패를 고용해 여성조합원으로 구성된 노조에 수차례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기륭전자 투쟁은 비정규직을 매개로 전사회적 연대가 이뤄진 의미있는 투쟁이다. 민주노총 각 연맹의 조합원은 물론 종교계, 문화예술인, 여성계, 농민과 학생, 진보적 지식인이 기륭전자의 투쟁에 연대했다. 특히 2008년 촛불시위 이후 다수의 네티즌과 시민들이 기륭노동자의 아픔을 함께 하는 물결을 이루기도 했다.
2010년 들어 투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번졌다. 회사가 2008년 경찰과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신대방동으로 사옥을 이전하고, 기륭전자 구사옥부지(가산동)에는 코츠디엔디 라는 개발시행사가 대규모아파트형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륭노동자들은 구사옥 부지 입구의 경비실을 최후의 보루 삼아 공사를 저지하며 기륭과 최동열 회장을 압박했다.
2010년 8월 마지막 교섭이 시작됐다. 이전에도 몇차례 합의 직전에 무산된 경험이 있어 어느 때보다 철저한 보안 속에 신중하게 교섭이 진행됐다. 금속노조의 물밑 접촉이 수차례 난항을 겪고 결렬과 재접촉을 오갔다. 10월초 ‘의견접근’ 소식이 전해졌으나 12일 최동열 회장의 일방적인 합의파기로 교섭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12일부터 윤종희, 오석순 조합원이 경비실 위 텐트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18에는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이 회사측이 부지정리를 한다며 앞세운 굴삭기 위해서 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다시 합의와 무산을 오간 끝에 11월 1일 노사의 최종합의안 조인식이 열렸다. 합의의 요지는 ‘기륭전자는 생산설비를 갖춰 조합원 10명을 1년6개월 안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되, 회사의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을 경우 1년 6개월을 추가 유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륭전자 조합원 10여명은 6년의 투쟁 끝에 앞으로 최장 3년안에는 기륭전자의 정규직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년의 투쟁 동안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함께 싸우던 권명희 조합원이 2008년 암으로 사망했고, 200여명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다. 김소연 분회장 등 조합원 2명과 시민 1명이 수감생활을 했고, 네티즌이 실명하는 등 많은 이들이 연행과 부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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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2010. 11. 2, 고희철 기자
[참고 2 ]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준비위원회
"노동자, 농민, 빈민, 철거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인권, 지역과 주변. 파업과 집회, 문화제. 투쟁의 현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인 민중들의 삶의 현장을 지켜온 카메라들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우리들의 싸움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한 대라도 덜 맞을 수 있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몸짓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카메라들은 누가 지켜야 할까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준비위원회 제안서 中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은 그 이름 그대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로 아직 준비단계에 있다. 2009년 4월에는 기륭 투쟁 현장을 카메라로 지켜온 김천석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고, 올해 2011년 6월에는 이상현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투쟁의 현장을, 민중의 삶은 카메라에 담는 다는 건 정말 녹녹치 않은 일이다. 피를 말리는 급박함과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의 현장에서, 이 모두를 기록하고 다시 영상물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물리적/심리적인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라 한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은 이런 활동의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고 지원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제작을 지원하고 배급, 상영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카메라들의 노고와 헌신에 답하고, 그들의 헌신과 노고가 정당하게 평가 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 그들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으면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현존하는 정치적․경제적 질서의 위기: 세계를 휩쓴 민중운동
타임(Time) 지가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 (protesters)’를 꼽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재스민 혁명” 혹은 “아랍의 봄”으로 명명된 아랍 세계의 민중운동은 전 세계에 ‘혁명의 실시간’을 보여주었다. 튀니지에서 한 젊은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된 투쟁의 불길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망명했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은 군부에 권력을 이양하고 법정에 섰으며, 치열한 내전으로까지 격화된 리비아에서는 40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살해되었다. 알제리, 모로코, 예멘 등에서도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시리아에서는 유례없는 규모의 대중 시위와 정부의 폭력적인 유혈 진압으로 국제사회가 들끓었다. 이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 율법주의와 세속주의, 다양한 부족/세력들 간의 갈등을 헤쳐 나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와 개입은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민중 투쟁은 지중해 너머 유럽,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졌다.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유럽 정부들의 재정 긴축과 사회보장의 축소,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경제상황은 많은 유럽인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때로는 영국 런던에서처럼 격렬한 ‘폭동’의 형태로 일어나기도 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태양의 문’ 광장 점거처럼 새로운 방식의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도 연일 파업투쟁과 대중 시위가 이어졌고, 칠레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는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제 자본주의 핵심부 미국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전대미문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투쟁들이 시작된 순간은 우발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저항 그 자체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 군사력과 달러에 기초한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지구촌 곳곳에서 평범한 많은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투쟁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아무리 좋은 촉매가 있다고 해도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원 물질들이 없다면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드디어 구체제, 자본주의의 위기가 임박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과도하지만, ‘현존’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른 방식의 위기 대응: 극우의 준동과 전쟁
하지만, 민중들의 위태로운 삶이 긍정적인 투쟁으로 이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테러에 그야말로 전 세계가 놀랐다. 그 아름답고 호젓한 섬에서, 그것도 청소년들에게 자행된 총기난사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성급한 이들은 알카에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이민자들에게서 혐의를 찾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범인은 ‘멀쩡한’ 노르웨이 시민이었다. 이는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준동하고 있는 우익 폭력의 극적인 단면일 뿐이었다. 러시아와 독일의 스킨헤드 문제는 수 년 전부터 지적된 바 있고, 최근에는 한국인이 이들 인종주의 폭력의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강력한 사회적 민주주의적 전통을 가진 노르딕 국가들에서 극우정당이 유의미한 의석을 차지하고,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전선 르펜의 딸이 2012년 유력한 대선후보로 나섰다. 점증하는 위기와 생계 불안 속에서 대안적인 사회적․정치적 세력과 전망이 부재할 때, 파시즘과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이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가 뼈아프게 깨달은 교훈이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은 그리도 오매불망하던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완수’했고, 드디어 이라크 전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정말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계의 깡패 이스라엘은 여전히 막무가내로 팔레스타인 지구를 봉쇄하고 이제는 이란 핵 때문에 불안해 못살겠다며 공격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기점화의 가능성이 높은 곳은 어쩌면 한국 사회일지 모른다. 노르웨이 테러범은 순혈주의와 인종주의, 가부장제가 공고한 한국이 자신이 꿈꾸는 사회라고 했다. 지하철광고판에, 텔레비전 광고에, 모든 곳에서 ‘다문화’를 이야기하지만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 편향은 매우 심각하다. 이주민들, 특히 비(非) 백인들은 일상적인 차별은 물론이거니와, 백주 대낮에 혐오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비단 인종/민족적 차이 뿐 아니라,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가히 정신병리 수준이다. 최근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 제정과정에서 보여준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는 나치스와 노르웨이 테러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무감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세계에서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는 곳이 바로 이곳 한반도이다. 현 정부 집권 이후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를 더욱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우발적인 자연재해와 필연적인 결과들
정치경제적 상황만 어지러운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엄청난 자연의 힘은 올해도 그 파괴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3월 봄날에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는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5월에 발생한 미국 미시시피 강의 범람, 7월말부터 4개월이나 지속된 호우와 그로 인한 태국의 대홍수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타일랜드의 물난리가 60년 만의 대홍수였다면,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이 위치한 북동 아프리카는 60년 만이라는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다. 에이즈 환자들이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식량을 구하지 못해 약 복용을 중단하는 일마저 발생하고 있다. 그 밖의 ‘소소한’ 지진과 자연재해들은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벽두의 혹한과 폭설, 수도권을 강타한 가을의 폭우는 많은 이들에게 새삼 자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모든 재해들은 우연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았다. 같은 비를 맞고 같은 가뭄을 경험했다지만 그 피해마저 똑같이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자연재해는 자연재해로 끝나지 않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일본 지진 이후에 벌어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누출은 인류가 만일 지속된다면 두고두고 기억될 최악의 사건이었다. 노동자들은 위험한 방사능 유출 현장에서 목숨을 건 ‘영웅적’ 작업을 해야 했다.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세력 뿐 아니라 전체 일본인들, 전 세계인들, 무고한 해양생물들마저도 방사능 피해를 입고 있다 (<노동과 건강> 2011년 여름호 참조).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듯, 지구온난화와 함께 이러한 자연재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지나간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얻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개발 중단을 결정했고, 독일 메르켈 총리도 핵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폐기했다. 일본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반핵의 열기가 높다. 이 상황에서 세계 ‘원전 수출국’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주장이 독창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노동자는 싸운다
이 모든 혼돈과 고통 속에서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집트의 민주화 투쟁에서 가장 강력하게, 가장 끈질기게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노동자들이었다 (<노동과 건강< 2011년 여름호). 방글라데시의 수출산업단지에서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쟁취와 불공정한 노동관행에 저항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노동과 건강> 2011년 봄/여름호). 유럽에서, 미국에서, 남미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였다.
주류 언론들이 광범위한 ‘시민’ 운동으로서 아랍의 봄과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이야기하지만, 노동자들이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위스콘신에서 벌어졌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총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위스콘신 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박탈을 핵심으로 하는 주지사의 법안에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다양한 주체들의 대투쟁은 근래 미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노동과 건강> 2011년 봄/여름호). 이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8월에 의회 소환투표를 통해 공화당 의원 2명을 민주당으로 바꾸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주지사 소환투표가 조직 중이다. 두 달 동안 지난 주지사 선거 때 투표수의 25% 이상의 주민 서명을 받는 것이 투표 시행 요건인데, 운동진영은 진행 과정의 손실을 감안하여 33%, 72만 명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 서명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고, 12월 중순 현재 약 50만 명의 주민 서명을 모았다. 만일 이 투표가 성사만 된다면 주지사 퇴출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내 뉴스에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1월 미국의 총선거에서 위스콘신 주와 마찬가지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약권을 제한하려는 공화당 주지사의 법안이 총투표로 부결된 바 있다. 만일 이번에 위스콘신에서 노동악법을 도입한 주지사를 주민소환 투표로 퇴출시킨다면 이는 노동권과 관련하여 세계적으로도 의미있는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정말로 귀추가 주목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응원해야 할 투쟁이다.
만일 내년 이 즈음에, 2012년의 세계를 돌아본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보게 될까? 현재의 정치경제적 질서가 가진 모순과 위기는 더욱 심화되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변혁이나 긍정의 에너지로 전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852)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그것을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계승된, 이미 존재하는 환경에서 그것을 만든다. 죽은 모든 세대들의 전통이 살아 있는 자의 머리 속에서 악몽처럼 짓누른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보니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가 정치라 한다. 정치는 나누는 것, 분배의 문제라는 위키피디아의 정의대로라면 정치얘기가 아무리 재미있고 술자리 안주거리가 많아져도, 이 나라 정치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2011년의 키워드와도 같았던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청년실업, 경제위기, 99% 대 1% 시위, 한미FTA 까지 떠올려보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와 관련이 없는 이슈가 없다. 그런 면에서 2011년의 대중은 어느 때보다 정치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비추어보면 2011년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언어를 갖지 못하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 아치에 올라갔을 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고 눈물 흘릴 때, 불법이라는 법관의 판결을 조롱하며 비정규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현대자동차 자본에 대하여 정치적 언어로 말하지 못하였다.
공장 울타리 안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문제이다, 나에게 일어났듯이 너에게 일어날 일이다. 너의 고통을 내가 알듯이 나의 고통에 공감해 달라. 그러나 노동운동은 못하였다. 배타적 지지 관계에 있는 진보정당이 이를 하였는가. 농성이 일어나면 뛰어가서 앞줄에 앉아있고, 기자들 앞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진보정당의 노동운동 지원방식인가.
노동을 모르는 자들, 관심 없는 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정치라면 플래카드 앞에 서는 일보다 나를 모르는 곳, 진보정당을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정치일 것이다.
노동으로 향하는 정치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연대이고 공감일지라도 타인에 대한 연대와 공감이 정치의식의 시작일 테니 2011년의 SNS 야말로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막다른 삶의 고비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정서적 지원을 하자는 운동이 결실을 맺어 치유센터를 세웠다 한다.
이 지원활동이 있기 전에 노동운동 내부의 조직으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심리치유활동을 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지친 바 있다. 성공과 실패는 어디서 갈리는가, 노동운동의 조직과 언어, SNS의 언어와 네트워크 사이에 무엇이 놓여있어 결실의 차이를 보였는가 짚어볼 일이다.
현대자동차 자본이 2011년 차를 *0000대 팔아치우고 연말 성과급 잔치를 벌일 때, 같이 차를 만들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하청비정규노동자들의 존재를 누가 떠들어줄까. 현대 자본을 괴롭게 하고 망신 주는 것은 주가 해주는가. 아무도 못하였다. 당사자들이 꿈틀거리고 부르짖고 있지만 울림으로 연대로 되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 조직은 조직내부 정치와 의식을 치르느라 바쁘고, SNS에서도 너무 급진적으로 나가면 흥미도 재미도 잃고 찬바람만 날릴 것인가.
연합을 해도 좋다. 통합을 해도 좋다. 홀로 남겠다 하여도 좋다. 그러나 계급의 정치라야 사회경제적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이 아닌가. 계급 간 연합이고 계급 간 타협이고 계급의 쟁투이다. 어정쩡하게 섞어 놓으면 내편도 잃고 네 편도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진보정당이 누구의 편인지 대중들은 지켜본다. 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봐도 실패하여 반역이 되었건, 성공하여 정권을 잡았건 바닥에서 부글거리고 끓고 있는 민중의 원한, 민중의 꿈을 잡아채어 자기 것으로 하는 자가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가.
복지. 2011년 복지담론은 부상하는 단계를 넘어 대세가 되었고, 흐름이 되었다. 복지 자체를 궁극의 사회체제로 격상하는 세력이든, 생산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폄훼하는 세력이든 복지가 대세가 되었고,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회제도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때이다. 개인이 생존하고자 몸부림쳐도 국가가 나서서 벼랑으로 몰고 자본이 나서서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공포체험이 뉴스거리도 안 되는 체제이기 때문인 걸까. 지친 대중들이 자기개발과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내려놓고자 하는가.
분명한 것은 복지제도의 작은 변화조차 그것이 결핍되었던 이들에게는 보호막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태껏 본 복지담론, 복지논쟁은 선거 출마자들, 담론생산자들이 주로 제기해온 것이다. 허전한 이유는 노동운동의 복지담론, 복지논쟁이 없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고용을 승계해주고 싶어서 자본과 협약을 맺는 아버지의 마음으로는 노동운동의 복지담론을 만들 수 없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줄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 한 부모로 아이를 키우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비정규직노동자의 처지에서라야 복지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기지 않겠는가. 일하는 사람 안에서도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위하려면 노동운동 밑돌을 바닥부터 다시 깔아야 함을 알아야지만 우리가 얕보는 복지가 다수의 노동자에게 중요한 문제임도 깨닫게 되겠다. 노조 가입한 노동자가 백명 중 열이 안 되는 지금은 어려운 주문일 수 있겠다.
나 노조원이요, 나 노동자요 하는 이들이 숫적으로 우세해야 계급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아니면 대표성을 갖기 위해 가장 정치적인 의제를 내야 하는데.
비정규, 아르바이트, 하청, 백수, 실업자, 실업계고교생, 다수 여성노동자가 조합원이 된다면 복지문제를 아니 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인가 2011년에 들은 가장 정치적인 말 가운데 하나, “모든 사업 다 중단하고 조직, 오로지 조직 하나만 살려서 해야 승부를 볼 수 있다” 는 전직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고개를 돌려 여기 좁디 좁은 내부를 본다. 산재보험을 개혁하자고 외쳐왔지만 변변한 성과가 없다. 이유를 채 모르는 것인가. 개혁이라고 떠벌려놓고 직업병 인정기준 매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 아닌가.
정치는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걸고 바꾸고자 함인데, 노동조합 안의 구성원에게 걸린 문제와 전체 노동자에게 시급한 문제를 구별하지 못함이 이유이다. 산재보험이 무언지도 모르는 이가 일 닥치자 여기저기 읍소하러 다녀야 하는 게 지금의 썩은 보험제도다.
산재보험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험이 찾아올 수 있도록 관료주의적, 기계적 장벽 일체를 없애는 일과 직업병 기준. 이 가운데 무엇이 우선한 정치적 과제이겠는가.
2011년의 정치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노동자의 소리가 없었다는 것. 지난 대선에서 여당의 대통령후보였던 이가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을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할 때 많은 이들이 심드렁, 팔짱기고 냉소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게 정치가의 모양 아닌가. 변할 수 있다. 시절이 변하면 정치하는 사람도 변화를 받아들이면 된다. 더 가난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기획은 실패하였다고 봐야 할까. 노동운동이 특정정당에 배타적지지를 고수하는 것이 죽은 명분을 붙잡고 살려보겠다고 하는 자기위안은 아닌가.
90%의 노동자. 노동조합이 없고, 노동조합을 모르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진보정당에 관심이 없어도 진보정당은 그들에게 가야 하는데.
낮에 공장지역을 돌다 보면 철문에 기대어 담배를 문 젊은 노동자, 불 꺼진 공장에 앉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젊은 노동자가 있다. 노동 상담 찌라시 한 장에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본다. 글 모르는 사람, 안 배운 사람도 그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이 정치의 힘이요, 정치의 필요일 것이다. 많이 만나야 한다. 더 가난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생계의 최전선에서 흔들려도 지키는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당신이 밀려나지 않기에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이라 말 해주어야 한다. 정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또는 정치이야기로부터는. 세상 더 나아져야 한다. 더 나누어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커다란 쓰나미를 동반하면서 그 지역에 위치하는 후쿠시마 다이이치 핵발전소에 타격을 가했다. 결과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국제원자력사상평가척도(INES) 레벨 7에 해당하는 사고로 첼르노빌 사고와 같은 '심각한 사고'가 되었다.
핵발전소 건물이 수소 폭발로 파괴돼 대량으로 방사성물질이 대기 중에 방출되었다. 3월 15일에는 시간 당 2000조 벡렐(Bq)*의 방사성물질이 날아갔다.
바람을 탄 방사선물질은 정부가 대피시킨 변경 20Km 지역은 넘어 250Km 지점까지 날아갔다. 방사성물질은 정부가 대피계획을 낸 동심원상으로 확산하지 않고 지형과 풍향에 따라 확산하면서 국소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을 만들었다. 핵발전소에서 북서방향에 24Km 지점에서는 2012년 3월 11일까지 추정하는 적산선량이 313.9mSv를 기록하는 Hot spot이 출현했다.(사진1,2 참조)
일본국립환경연구소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핵발전소에서 방출된 요오드131의 13%, 세슘137의 22%가 일본 육지에 침착하고 나머지는 바다로 가든지 모델 계산 영역 외에 수송된 것으로 추계했다. 바다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바다 생물을 오염시킨다. 4월 18일 핵발전소 앞바다 30Km 지점에서 잡은 까나리에서 일본 정부가 기준으로 하고 있는 1Kg당 500Bq의 29배가 되는 세슘을 검출했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먹이사슬을 통해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것은 이미 미나마타병이 가르친 교훈이다.
해양생물 체내에서 농축된 방사성물질이 그 생물을 먹는 인간을 내부 피폭하는 것이다.
대지진에도 큰 쓰나미에도 안전하다고 주장해 온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와 핵산업에 의거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안전 신화'가 무너지는 사건이 3.11이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사능오염은 일본 땅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켰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태아, 유아동, 청소년의 10년 후, 20년 후를 어찌할 지 걱정하고 있다.
* 벡렐(Bq) : 상사성물질의 방사능량. 1초에 원자 하나가 분괴하면 1Bq. 담뱃재 1g=5.9Bq.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식품위생법에 의한 잠정적 규제치로 방사성 세슘은 식수 200Bq/Kg(10Bq/Kg), 우유 200Bq/Kg(50Bq/Kg), (신설 유아용식품 50Bq/Kg), 채소, 곡류, 고기, 계란 등 500Bq/Kg(100Bq/Kg)[()내는 2011.12.26 신기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시버트(Sv)로 표기한다.
2. 핵발전소 사고 수습 작업 노동자 피폭과 어린이 피폭
일본 정부는 사고 4일 후인 3월 15일 법령 개정을 하고 긴급 작업 때 피폭 한도를 100mSv에서 250mSv에 인상했다.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2007년 권고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ICRP 권고는 일년 선량 한도를 넘는 긴급 작업에 종사하는 자는 지원자로 해야 하고 발생하는 가능성이 있는 건강 위험성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긴급 업무에 종사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는 다르다. 지진 피해 지역의 “붕괴 건물 처리 일자리” 라는 구인에 응모한 덤프 운전기사가 알고 보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5,6호기 앞 물 탱크 급수 작업에 종사하는 일자리였다는 것은 한 사례이다. 전력업체를 정상으로 원자로제작업체, 건설전문업체가 관여하면서 5차, 6차, 7차까지의 하도급 구조가 있는 것이 핵발전소다. 하청노동자에게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안 가면 평생 일을 안 준다’ 하는 식으로 협박하여 노동자를 모집하는 상태이며 안전교육이나 본인의 의사 확인은 없는 상황에서 피폭노동이 이루어졌다. 3월에 투입된 인력 3,700명 가운데 개인 피폭량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려고 하다가 30명의 노동자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사고 때문에 발생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핵발전소에 관련하는 정기점검, 사고 대응 때 항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 왔다. 전국 핵발전소를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하도급구조 말단에 위치하는 영세업체에는 폭력조직이 개입하면서 청소년을 포함해 시회적 약자가 핵발전소에 투입된 사실을, 깨끗하고 안전한 핵발전소의 얼굴로 포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동안 몇 개의 르포 이외는 언론보도가 되지 않았다. 전력업체가 막대한 광고비로 언론을 매수한 결과이기도 한다.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투입된 노동자에 대한 국가적인 추적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 긴급 작업에서 노동자 피폭선량이 상향 조정되면서 일반인의 한도선량도 올라갔다. 일본 정부는 연간선량이 20mSv에 이르는 지역 주민에 대해 강제 대피를 시켰다. 원래 1mSv가 일반인이 제한되는 피폭량이었는데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피폭되는 한도인 20mSv가 적용되었다. 이 조건은 방사선 영향을 미치기 쉬운 어린이에게도 적용하게 되며, 후쿠시마 학부모들의 강한 항의를 불렀다.
학교 운동장 등 선량이 높은 장소에 대해서도 제염(방사선물질 제거) 등 대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부과학성의 대응이었다. 이 결정에 원자력위원회 위원이 항의해서 사임하는 일화까지 생겨 결국 하교 등 어린이 관련 시설에서는 선량을 1mSv로 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이러한 외부 피폭뿐만 아니라 내부 피폭 문제가 있다. 음식물을 통해 몸 속에 들어온 방사선물질에 의한 피폭은 그 방사능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지방자치단체가 학교 급식에 대한 방사능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3월 11일을 경계로 세계가 변했다” 오래 전부터 반핵운동을 해 온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 조교의 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연간 선량 20mSv까지는 적국적인 대책 없이 시민들의 피폭을 방치하고 있다. 이 선량 수준은 방사선 관리구역에 해당한다. 이 관리구역 내에서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곳이다. 후쿠시마 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빗물을 타고 하천에 흘러가고 오염을 확산한다. 유통된 음식물에 대한 안전성은 불확실하다.
3. 다시 노동자 피폭에 대하여
지진으로 의한 붕괴된 건물 등 제거작업을 통해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방사선물질에 오염이 된 쓰레기들이다. 또 빗물로 흘러나간 방사선물질이 하수도에 들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물 재생센터에서는 하수도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흙을 소각하고 시멘트나 비료로 재이용해 왔다. 사고 이후 이 정화시설에서 나온 소각된 잿더미에서 53,200Bq/Kg의 세슘이 검출되었다. 원자력대책본부는 방사성 세슘이 8,000Bq/Kg 이하라면 매립 처분을 할 수 있고, 10만Bq 이하는 주택지와 거리를 두고 관리식 처분을 하고, 10만Bq 초과하는 쓰레기는 콘크리트 등 차폐 시설에 엄중 보관하는 방침을 세우었다.
지금까지 상상도 안 했던 노동 영역이 피폭 노동이 되고 있다. 하수도, 쓰레기 소각장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운반 노동자! 청소노동자가 피폭하는 경우도 예측된다. 건물에서 빗물이 집중하는 곳에 있는 진흙, 도랑 속 진흙에서 고농도 방사선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서쪽 200Km 지점에 있는 주유소 세차장 도랑에서 9만Bq/Kg 세슘이 검출된 바 있다.
농림업 종사자의 건강 피해도 우려된다. 후쿠시마현 북부지역의 논은 대부분 방사선 관리구역이다. 올해 수확된 쌀에서 500Bq/Kg을 초과하는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2012년은 100Bq/Kg을 새로운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대상 농가는 후쿠시마현의 18%, 11,800세대가 된다.
앞으로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곳에 대한 제거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건강 관리와 제거 물질에 대한 보관 관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월계동 방사선 도로 포장이 문제가 되었다. 무방비로 제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제거 된 아스팔트 처리도 어렵다.
우리는 지금 핵 오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환기하면서 글을 마친다.
사진1,2는 2011.4.13-17 필자도 참여한 한일 공동 후쿠시마 조사단이 실시한 현장 조사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1 : 핵발전소에서 북서 33Km.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 나가 도로로 가는 고개.
지상 1m 공강선량 22.08μSv. 1년간 누적 추정 적산선량 91.1mSv.
사진2 : hot spot. 핵발전소까지 20Km 직전 지점 도로 옆에 “후쿠시마현‘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땅에 가까운 지점이고 풀들이 많아 떨어진 방사성물질에서 나온 방사선량이 많은 지점이다. 간이선량계는 92.05μSv를 나타냈다.
포드 기원 632년의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담당할 역할이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다. 델타 계급이나 입실론 계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단순 노동을 반복하다 죽게 된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적 능력 따위는 필요 없다. 생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뇌 교육이 강조된다. 각 계급이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다른 계급의 역할이나 지위를 넘보지 않도록. 이 사회에서는 '소마'라는 환각제가 배급된다.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스트레스를 소마 하나로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신이다. 시민들이 모여서 소마에 취해 포드를 찬양한다. 포드력이라는 새로운 달력이 사용된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그린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학창시절에는 이 책을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느꼈던 것 같다. 내 눈에 세상과 미래는 모든 가능성이 열린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으니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지금 이 책이 무서운 예언을 담고 있는 공포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쓴 시기는 1930년대지만 2011년 대한민국과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미래를 의지와 능력만으로 그려갈 수 있을까. ‘간판’과 ‘스펙’으로 직업과 연봉, 배우자까지도 결정되는 대한민국에서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가. 2011년 대한민국에도 어떤 이들은 발가락 하나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그들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600만 비정규 노동자와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그야말로 ‘생존’하고 있는 160만 기초생활수급자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부유하고 있는 110만 청년 실업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럼에도 이 사회는 돌아간다. 알파 플러스 계급1)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덕분이다. 올 한해 알파 플러스는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였다.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교리에 충실하기 위해. 멋진 신세계에서 포드가 만물 위에 서 있는 초월적 존재인 것처럼 대한민국은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진리가 되어, 노동조합은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요인이고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2011년 시장을 굳건히 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빼들었다. 2010년 타임오프제 시행에 뒤이은 복수노조의 허용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복수노조라는 예쁜 포장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칼날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0년 이후 타임오프제에 휘청거리던 노동조합 운동은 2011년 교섭창구 단일화에 치명상을 입고 있다. 어떤 노동조합은 어용노조에 밀려 교섭권을 상실하고 어떤 노동조합은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조합을 짓밟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합원 뺏기 싸움이 벌어지거나 노조 사이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이이제이(以夷制夷)2)라 했던가. 알파 플러스가 날린 칼날이 정확히 델타와 입실론의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2011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도 힘을 기울였다. 한진 중공업 투쟁, 유성기업 파업,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에서 보여준 정부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노동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물대포를 쏟아 부었고,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철탑을 올랐다. 덕분에 파업, 농성일수에 있어서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모습이다. 2010년 12월 시작된 전북고속 파업은 1년을 넘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2011년 1월 시작된 대우자동차 판매지회의 점거 농성이 뒤를 따르고 있다. 309일간 크레인 위에서 버텼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희망버스 덕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재능교육노동자들의 투쟁은 1,500일을 앞두고 있다. 2012년 새해에도 전국 52곳의 사업장에서는 농성과 파업이 현재 진행형이다.
억울한 죽음도 잇따랐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19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이마트 사망 사고부터 12월의 인천공항철도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밀려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언론도 국회도 검찰도 침묵했다. 언론은 노동자의 불법행위를 단죄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국회는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검찰도 진보정당에 가입한 공무원, 교사 색출하느라 바빴으니 시간이 부족했을 터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보면서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술을 권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성인들이 1년간 소주 70병, 맥주 100병을 마셨다고 한다. 소주 한잔만 마셔도 술기운이 오르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이를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델타나 입실론이 소마에 취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듯 우리는 술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일 듯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행복이 넘쳐날 것만 같던 21세기였는데 이 꼴이라니.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한진중공업의 문을 희망버스로 열어 젖혔고, 반올림 투쟁을 통해 거대 자본을 상대로 산재 인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지지율 5%의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켰으며, SNS를 통해 알파 플러스의 강력한 무기인 기성 언론을 무력화시키기도 하였다. 봉도사(정봉주)의 구속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나는 꼼수다’ 열풍, 놀랍지 아니한가. 청년들이 청년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희망이다.
이 같은 성과와 의미에 대해서 설왕설래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굳건할 것만 같았던 알파 플러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희망버스를 움직였던 시인, 영화배우, 자영업자, 학생, 주부, 노동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능케 할 주역이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람시의 ‘서발턴(Subaltern)’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 노동자 계급이 일관되고 통일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진실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1)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다양한 계급들이 존재하는데, 알파, 감마, 델타, 입실론 등으로 나뉜다. 알파 계급은 그야말로 최상의 엘리트 계급으로서, 이는 다시 플러스, 마이너스 등으로 나뉜다.
2)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한다는 의미의 4자 성어
1. 대리운전 노동자의 현황과 업무형태
대리운전업은 1998년경부터 등장하여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초창기에는 매우 영세한 규모의 대리운전회사 위주였으나 2003년 이후 시장규모가 확대되어 현재는 수천 명의 기사를 둔 대리운전회사가 등장하였다. 2008년 현재 대리운전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8만-10만 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대리운전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리운전회사는 사업자 등록만으로 영업을 할 수 있어 시장 진입이 수월하였고, 대리운전자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자들이 양산되면서 자동차면허증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일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규제 없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의 근로조건 악화, 대리운전 사업주간 경쟁으로 인한 가격 덤핑으로 업종의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대개 오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여 새벽 4시에서 6시 정도까지 근무를 한다. 대리운전업체와는 ‘도급계약’ 또는 ‘정보이용계약’ 등을 체결하고 PDA를 통해 제공된 콜을 먼저 잡는 사람이 오더를 수주하는 형식으로 일을 한다. 대리운전노동자는 회사와 계약한대로 수입금액의 20-30%를 정률제로 지불하며(일부에서는 정액제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음), 그 밖에 콜 프로그램 사용료, 자동차보험료, PDA 요금료, 전화통화료, 이동 시 교통비 등도 지출해야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평균 4-8건의 대리운전을 소화하면서 월평균 100-1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현재 근로자로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가 본인 의지에 따라 다양한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고 근무를 할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이나 장소도 자유로운 등 통상적인 노동자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리운전회사가 프로그램에서 오더보기 금지(락)를 걸면 일을 할 수 없는 등 근로종속성도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자영업자들과도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다.
2. 대리운전 노동자의 건강문제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수행 중에 재해를 경험한 사람은 21.6%로 나타났고 재해의 형태는 교통사고(45.2%), 타박상/삐임(39.8%), 기타(14.5%), 골절(14.0%) 순으로 사고와 관련된 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고 및 질병에 대한 치료비 처리 방법은 건강보험처리 27.1%, 가입된 민간 상해보험처리 25.8%, 자동차보험 처리 25.3% 순으로 나타났다.
위의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리운전 노동자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강문제는 교통사고이다. 따라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보험사들이 대리운전보험의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의 보험가입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영세 대리운전회사에 소속된 대리운전 노동자는 보험가입이 사실상 어려워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현실이다. 또한 대리운전보험 가입 관리는 회사가 대행을 통해 일괄적으로 하고 있는데 일부 업체의 경우 보험료 대행 및 수납 과정에서 이행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리운전보험은 그 구성에 따라 대인, 대물 등 피해자에 대해서 보상하는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리운전 노동자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서 보상하는 자손은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있어 대리운전 중 다쳐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3. 대리운전 노동자의 보호방안
현재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상당 부분 근본적으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덤핑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대리운전업체들은 대리운전 기사들을 다량 모집하면서 수수료를 여러 명에게 받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받을 수 있는 콜 수가 적어지면서 수입이 악화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리운전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며, 가격 덤핑을 막을 수 있는 표준요금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들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가는 업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게 되면 아예 대리운전 노동자로도 진입을 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리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을 유도하자는 논의가 일부 있었고, 여기에는 몇 가지 논쟁점이 존재한다. 우선 산재보험 가입 적용 방안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그 방식에 따라 대리운전 종사자를 강제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당연적용 방안과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임의가입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보장 측면에서는 당연적용 방안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상당수가 신용불량 상태로 자신들의 소득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제가입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노동자 중 55.3%가 임의가입을 원하고 있었고, 특히 대리운전을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는 경우 임의가입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다음으로 보험료 산출 및 보상기준에 대한 논란이다. 대리운전자는 일정한 임금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콜 획득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소득을 추계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대리운전업체 및 프로그램사가 콜 획득수를 축소해서 보고하는 (사업주 측의)도덕적 해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리운전 제공시간에 대한 구간별 고시임금을 적용하거나 대리운전 노동자 평균임금을 산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보험료부담 주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기존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업주가 1/2씩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만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업주와 노동자가 1/2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적용제외 신청을 적용하는 경우 회사가 PDA를 통해 업무 통제를 하고 금지(락)를 걸어 업무를 못 하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른 업종보다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많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하나의 회사가 아닌 중복된 업체에 등록되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보험료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 하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 간병노동자의 고용현황
간병노동 종사자의 고용형태는 직접고용, 간접고용, 특수고용 형태로 구분된다. 일부 ‘노인전문요양원’의 경우는 간병노동 종사자가 직접 고용되어 있어서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직접고용이 아닌 경우는 파견업체 또는 소개업소를 통하여 간병노동이 이루어진다. 일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은 파견업체를 통해 간병근로자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 다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의 경우는 간병인소개소를 통해 간병인력을 공급받고 있다. 또한 간병인 소개소(센터)의 폐해를 경험한 간병노동자들이 자생적인 자조회를 만들어 환자들과 간병인들과 직접 연결하기도 한다.
2. 간병노동의 현황 및 계약관계
가. 병원/시설과의 계약관계
간병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 등에서 일부 직접고용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 역시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고용이 아닌 경우는 파견업체 또는 소개업소를 통하여 간병인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은 파견업체를 통해 간병인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 대부분의 병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의 경우에는 간병인 소개소를 통해 간병인력을 공급받고 있다.
간병인은 의료기관 또는 간병인 협회와 구두 혹은 특별한 계약없이 일을 시작하며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갱신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간병인협회와 병원 사이에는 협약을 통해 간병인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근로내용(복무규정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간병인의 의사 및 동의 절차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간병인의 급여(간병료)에 대해서도 1일 일반환자 5만5천원, 중환자 6만5천원으로 병원과 협회 간의 협약에서 정하고 있다.
간병인 노동시장에서의 계약관행은 간병인협회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며, 계약시점은 대체적으로 협회가 병원으로부터 요청 받은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을 시작할 때, 특별히 병원과 간병인 사이에 협의하는 사항은 없으며 환자에 대한 정보는 병원에 가서야 알 수 있고, 휴일·휴가, 계약해지 및 갱신 등 주요한 계약조건에 대한 협의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나. 간병인 협회와의 계약 관계
간병인협회(소개소)가 간병인에게 간병업무를 알선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개별 간병인협회(소개소)가 간병인들을 회원제로 운영 및 관리하고 있으며 일정액의 가입비와 월 30,000원~70,000원의 회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 환자와의 계약 관계
간병인은 환자 또는 환자보호자와 구두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특별한 계약체결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간병료 및 간병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복무에 관한 사항은 대체로 협회와 병원(시설)간에 체결된 협약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간병인은 동 협약에서 정한 간병료를 초과하여 요구할 수 없으므로 간병인과 환자 또는 환자보호자간에 간병료 및 기타 계약조건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으며, 다만 간병의 지속여부에 대해서는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 안전과 건강
간병인은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과정, 누워있는 환자를 체위변환 시키는 과정에서의 척추질환 등의 허리통증, 디스크, 손목 삐임, 안과계통 질환(안구건조증 등),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위장병, 24시간 간병으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인한 질병, 환자로부터의 감염(결핵, 피부병 등), 환자 또는 보호자로부터의 비인격적인 대우(폭언, 폭행 등)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4. 간병인의 산재보험 적용 및 산재 예방관리 체계 방안
가. 의료시설에서 직접 고용하는 형태 - 근로자성 부여
- 의료시설에서 직접 고용하고 있는 형태로 근로기준법 및 산재법, 산업안전보건 법 등 노동관계법이 전면 적용되고 있다.
- 간병노동자 보호에 있어 가장 효과적이며, 심지어 노동조합 가입도 가능하므로 단체협약 체결도 가능하나, 의료시설에서 4대보험료 및 퇴직금, 관리비용등의 이유로 직고용을 꺼리고 있어 소수에 불과하다.
- 노동관계법이 전면 적용되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에 편입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나. 근로자파견제도로 통합하는 방안
- 간병노동은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이 가능한 ‘개인보호 업무’에 해당되어 합법 파견이 가능한 사업에 속한다.
- 의료기관과 간병인 파견회사와의 ‘근로자 파견계약’에 의해 간병인을 의료기관에 파견하고, 파견 간병인은 의료기관의 업무지시(주로 간호사)에 따라 간병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 주로 1:1 개인간병보다는 다인간병 또는 병실별 간병의 형태로 파견이 가능할 것을 보인다.
- 파견법이 적용되므로 간병인의 안전보건체계는 사용사업주인 의료기관의 안전보건 체계에 편입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 그러나 의료기관에서 2년 이상 근로할 경우 직접 고용의무가 발생하므로 파견 간병인의 고용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호하는 방안
- 산재법상 특례조항으로 간병노동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간주하여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할 수 있다.
- 다만 우려할 수 있는 문제점은
1) 근로기준법상 간병인은 근로자에 해당되나 ‘가사사용인’에 해당되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근로자’인 간병인을 근로자성인 인정되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의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가사사용인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으나, 현실적인 개정가능성은 낮은 수준이다.
2) 보험료 부담의 문제 - 산재보험료는 원칙적으로 사업주가 부담해야하는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아 보험료를 간병인과 사업주(의료기관 or 소개업체)가 각 50%를 부담할지의 문제가 발생하며, 실질적으로 사업주 부담분 50%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3) 보험료 산정 기준의 문제 - 간병노동자 개인별 소득을 근거로 보험료를 산정할지, 고시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할지의 문제가 있다.
-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안전보건의 문제 - 산재보험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조항을 두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및 고려가 없다. 산안법은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것인데,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사업주의 안전보건체계 내로 포괄할 경우 사업주의 반발이 예상된다.
- 그러나 장소적(시설) 종속성이 강한 간병인이나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하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하더라도 산안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택배기사의 고용 형태
이호근 등(2008, 235~273쪽) 등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업무는 '배송'과 '집하'로 나뉜다. '배송'은 택배기사가 택배회사에서 담당 구역의 고객에게 택배물품을 배달하는 업무이고, '집하'는 이와 반대로 택배기사가 담당 구역의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택배물품을 배달을 위하여 택배회사로 운송하는 업무를 말한다.
택배기사의 근로 계약 또는 사용 계약 관계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택배기사의 업무계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택배회사의 구조와 택배차량의 소유주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먼저, 택배회사는 본사와 영업소로 구성되어 있다. 본사는 택배회사가 직접 직영하지만, 영업소는 특정 지역의 영업소를 담당하도록 개인사업장인 영업소장과 계약을 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택배회사의 마크를 달고 있더라도, 택배기사는 본사 직영 소속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본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영업소 소속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영업소장이 택배기사 업무를 겸임하는 경우도 있다.
택배차량은 택배기사 개인이 직접 소유한 차량인 경우도 있고, 택배본사나 영업소장이 소유한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도 있으나, 화물운송용역업체(또는 차량지입전문업자)가 "차량위수탁관리계약"에 따라 택배회사에 공급하는 지입차량을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택배기사는 택배차량을 택배회사에 공급하는 화물운송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때 택배기사는 근로자로서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고, 신분상 개인사업자로서 "용역계약"을 맺게 된다. 이에 따라 택배기사는 실제로는 택배 본사나 영업소장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지만, 위와 같은 계약 과정으로 인하여 택배 본사나 영업소장은 택배기사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또한, 화물운송용역업체도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또한 근로기준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화물운송용역업체는 용역계약에 따라 정해진 용역료를 매월 택배기사에게 지급하고, 택배기사는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 (차량 유류비, 전화비, 식사비 등) 과 택배업무 중 발생하는 손해 (화물의 분실, 손상 등) 를 모두 부담한다.
택배기사가 근로자인지에 대한 판단에 대하여서는 회사 직영 차량을 운전하거나 영업소가 소유하고 있는 차량을 운전하는 택배기사는 근로자로 판단된다. 자신이 소유한 차량으로 영업소 소장과 계약에 의하여 택배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라도 택배박스당 수수료에서 급여부가세(10%)나 소득세(3.3%)를 차감하는 경우는 사실상 근로소득세를 영업소에서 차감하고 있으므로 근로자로 판단된다. 그러나 영업소에 소속된 택배기사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기사의 근무실태와 안전보건문제
이호근(2008, 235~273쪽) 등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일반적으로 오전 7시에 택배회사 지역센터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며, 일을 마감하는 시간은 오후 9시~11시 정도이며, 법정 공휴일은 쉰다고 하였다. 이승욱 등(2006, 143~153쪽)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64.1시간, 연평균 근로소득은 56.5%가 2,400만원~3,599만원이라고 하였다. 이호근 등(2008, 235~273쪽)이 수행한 택배기사 면담조사에 따르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업무수행에 드는 비용과 손해 발생시 보상 비용을 소득에서 제하기 때문에 택배기사의 실제 소득은 한 달 평균 180만원 정도라고 하였다. 산재 발생시 처리방법은 본인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한다고 하였다.
이호근(2008) 등에 따르면, 택배업무는 1일 평균 화물 100박스를 취급하고 있는데, 이중 15% 정도는 30~40kg의 중량물이라고 한다. 이들 중량물을 상, 하차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주택이나 빌라의 경우 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므로, 허리나 무릎 등의 통증 등 불편한 증상과 근골격계질환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또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 중에 밑으로 추락하여 다치는 사례, 본사에 화물을 집하하는 경우 컨베이어 벨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분이 협착하여 다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업무의 기본 특성인 택배차량 운전에 따른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슨 이유로든 아파서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경우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여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여 대신 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외부에서 구하게 된다. 이 때 하루에 비용이 20만원에서 25만원이 소요되며, 실제 소득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손해라고 한다. 영업소 소속으로 근로자로 인정될 여지가 있는 사례에서도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에 전혀 가입되어 있지 않아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택배기사의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가능한 해결책
이호근 등(2008, 478쪽)은 택배기사들에 대한 보호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시하였다.
택배기사들은 현재 택배수수료가 낮은 것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건 당 수수료가 낮으므로 일정한 규모의 수입을 위해서는 1인이 배송해야 하는 물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근무시간의 증가와 피로도의 증가는 근골격계질환, 추락, 협착사고, 교통사고 등의 산재발생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택배수수료가 낮은 이유는 최초화주로부터 최종택배회사 선정까지 여러 단계의 중간알선업체를 거치면서 단가가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어, 이에 대한 문제점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택배기사 직업안전보건 개선을 위한 제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택배기사의 업무는 거의 동일하지만 택배회사본사, 영업소, 화물용역업체 등 어디와 계약을 맺는지 여부에 따라 또한 택배차량의 소유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한다. 택배기사의 경우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거나, 인정받을 여지가 있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화물용역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다수의 택배기사는 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택배기사의 이해관계를 정부와 사용자 측에 요구할 수 있는 대표 협의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점도 불리하다.
또한 택배기사의 고용관계와 근무형태에 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도 부족한 현실이다. 택배기사의 직업안전보건 개선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실태조사의 필요성이 크다. 향후 실태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택배기사의 전체 규모 추정, 근로계약관계의 종류와 비율, 사회보험 가입률, 안전보건교육 이수율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더불어 주로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선진국들에서는 이러한 특수고용직의 직업안전보건개선을 위한 대책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조사가 직업안전보건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택배기사의 직업안전보건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안전교육 등 예방조치의 강화만으로는 택배기사들의 호응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선, 4대사회보험 가입율 향상 등의 택배기사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먼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하여 업무가 힘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우선순위도 높고, 필요성도 높기 때문이다.
산재보험 가입율의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 본사 직영이나 영업소에 소속된 택배기사와 같이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택배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산재보험가입율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덧붙여 화물용역회사와 용역계약을 맺는 택배기사의 경우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의 특수고용직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처럼, 산재보험료를 택배기사가 일부 부담해야 하겠으나, 계약의 당사자인 용역회사와 더불어 실질적인 사용자인 택배회사도 동일한 비율로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의 특성을 감안하여 택배기사는 가능한 임의 가입방식이 아닌 의무 가입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직의 임금 수준이 매우 열악함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국가에서 산재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제도와 관련하여서는 택배기사의 안전보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실질적인 사용자인 택배회사에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택배기사가 영업소장과 계약을 하는 경우일지라도, 택배회사가 일차적인 안전보건교육과 적절한 근무시간 준수 등의 안전보건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영업소는 계약상으로는 자영업의 형태이나, 영세한 경우가 많고, 안전보건에 투여할 자원이 부족하여 영업소에서 시행하는 안전보건교육은 유명무실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영업소장은 택배회사가 책임지는 안전보건교육에 택배기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성심껏 조력할 의무가 있음을 택배회사와 영업소 사이에 의무적인 계약조건으로 넣어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의 안전보건대책은 이호근 등(2008)이 지적한 것처럼 표준임금제 등 운송단가 현실화방안 마련과
하도급관계 공정거래법 적용 등 실질적인 보호대책과 함께 진행되어야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므로, 사회복지, 안전, 직업보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대책을 협의하여야 한다. 또한, 정책의 당사자인 택배기사들의 참여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겠다.
참고문헌
윤조덕, 김영문, 이호근 등. 비정규직 근로자 산재보험 적용실태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에 대한 적용확대. 2004. 한국노동연구원
이승욱, 김영두, 김승호, 김종진. 특수고용직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보고서. 2006. (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가인권위원회.
이호근, 김영문, 윤조덕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실태 및 다단계구조 집단갈등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 2008. 노동부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어김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부끄러운 내 얼굴에 인사를 한다. 열광했던 그래서 그만큼 미움이 많았던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김근태 선생님, 그 분도 또 그렇게 떠나갔다.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은 호위호식하면서 살고 있는데, 인간의 권리를 온몸을 던져 구현하고자 했던 분들은 그 토록 아프고 서럽게 염원했던 그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속절없는 죽음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노동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불러보아도 가슴 한 복판에 뜨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동자, 평등한 인간이기를 간절하게 염원한 그 노동자도 오늘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잔인하고 탐욕으로 눈이 먼 이마트의 지하실에서 숨조차 쉴 수 없어 죽어간다. 자본을 위한 자본의 속도전에서 한 많은 육신이 땅에 떨어져 흩어진다. 육신의 한자락 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한 노동자가 사라진다. 철로에서 병실에서 그렇게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삼성. 어제도 오늘도 그 탐욕의 공간에서 노동자가 죽어간다. 이유도 모른 채.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역사가 반동으로 점철되고 노동의 권리, 인간의 권리가 짓밟히는 속절없는 세상을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나. 사람이 죽어가고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이 세상을 왜 우리는 참고만 있어야 하나.
분노하자. 손을 잡고 길을 나서자. 함께 가자. 냉소와 무관심, 의심과 불안감을 뚫고 전진하자.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길,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길, 노동자가 정치의 중심에 서는 길,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실현하는 길에 함께 가자.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냉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수와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한다. 혁신을 이야기한다. 또 다시 거짓 사탕발림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비정규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듯이 복지와 인권을 입에 올린다. 모두들 과거를 반성하고 마치 모든 잘못이 몇 몇 탐욕스러운 국제금융자본과 몇 몇 정치인에게만 있는 듯 비판한다. 하물며 그 공격에 신자유주의의 돌격대를 자임했던 여당조차 비판 대열에 합류한다.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정치도 비껴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노회한 술수인 것일까? 신자유주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주당의 변신은 더욱 놀랍다. 거침이 없다. 특정 세력은 진보정당에 합류하기조차 한다. 또 다시 진보세력이 흔들린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거대 자본에 맞선 전 세계 민중이 스스로 절대 다수임을 자각하고 연대를 선언한 시대, 그 시대를 위해 노동자의 죽음 앞에 절망 대신 희망을 품에 안고 목숨을 걸었던 진보세력은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의 역동적인 정치 공세에 또 다시 흔들린다.
오늘도 죽어가는 노동자, 그 곁에서 눈물을 머금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내딛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정치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정치가 희망을 향한 절체절명의 큰 도전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시대, 민주주의를 훼손해도 결코 알갱이를 없앨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알갱이는 정치를 넘어 경제민주화와 삶의 민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촛불로 희망버스로 확인한 시대, 우리는 그 시대가 노동자에게 절호의 기회이자 도전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어떻게 가능할까? 한 번도 정의가 정의의 순수한 모습으로 드러내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한 번도 진리가 진리의 결정체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를 분간하고 정의와 진리를 향해 연대운동을 진보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정치가 보수와 자유주의세력의 전유물이 되어 버리고 진보세력은 그 길을 찾지 못한 채 타협과 비타협, 자유주의와 혁명주의의 갈등구조에서 머뭇거리고 스스로를 닫힌 존재로 역사에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2012년 새해 벽두에 난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 조장하는 탐욕의 생산 장치와 구조가 멈추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건강권,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 더 나아가 생산과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치, 진보정당의 정치가 구현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힘찬 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