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커다란 쓰나미를 동반하면서 그 지역에 위치하는 후쿠시마 다이이치 핵발전소에 타격을 가했다. 결과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국제원자력사상평가척도(INES) 레벨 7에 해당하는 사고로 첼르노빌 사고와 같은 '심각한 사고'가 되었다.
핵발전소 건물이 수소 폭발로 파괴돼 대량으로 방사성물질이 대기 중에 방출되었다. 3월 15일에는 시간 당 2000조 벡렐(Bq)*의 방사성물질이 날아갔다.
바람을 탄 방사선물질은 정부가 대피시킨 변경 20Km 지역은 넘어 250Km 지점까지 날아갔다. 방사성물질은 정부가 대피계획을 낸 동심원상으로 확산하지 않고 지형과 풍향에 따라 확산하면서 국소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을 만들었다. 핵발전소에서 북서방향에 24Km 지점에서는 2012년 3월 11일까지 추정하는 적산선량이 313.9mSv를 기록하는 Hot spot이 출현했다.(사진1,2 참조)
일본국립환경연구소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핵발전소에서 방출된 요오드131의 13%, 세슘137의 22%가 일본 육지에 침착하고 나머지는 바다로 가든지 모델 계산 영역 외에 수송된 것으로 추계했다. 바다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바다 생물을 오염시킨다. 4월 18일 핵발전소 앞바다 30Km 지점에서 잡은 까나리에서 일본 정부가 기준으로 하고 있는 1Kg당 500Bq의 29배가 되는 세슘을 검출했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먹이사슬을 통해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것은 이미 미나마타병이 가르친 교훈이다.
해양생물 체내에서 농축된 방사성물질이 그 생물을 먹는 인간을 내부 피폭하는 것이다.
대지진에도 큰 쓰나미에도 안전하다고 주장해 온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와 핵산업에 의거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안전 신화'가 무너지는 사건이 3.11이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사능오염은 일본 땅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켰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태아, 유아동, 청소년의 10년 후, 20년 후를 어찌할 지 걱정하고 있다.
* 벡렐(Bq) : 상사성물질의 방사능량. 1초에 원자 하나가 분괴하면 1Bq. 담뱃재 1g=5.9Bq.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식품위생법에 의한 잠정적 규제치로 방사성 세슘은 식수 200Bq/Kg(10Bq/Kg), 우유 200Bq/Kg(50Bq/Kg), (신설 유아용식품 50Bq/Kg), 채소, 곡류, 고기, 계란 등 500Bq/Kg(100Bq/Kg)[()내는 2011.12.26 신기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시버트(Sv)로 표기한다.
2. 핵발전소 사고 수습 작업 노동자 피폭과 어린이 피폭
일본 정부는 사고 4일 후인 3월 15일 법령 개정을 하고 긴급 작업 때 피폭 한도를 100mSv에서 250mSv에 인상했다.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2007년 권고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ICRP 권고는 일년 선량 한도를 넘는 긴급 작업에 종사하는 자는 지원자로 해야 하고 발생하는 가능성이 있는 건강 위험성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긴급 업무에 종사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는 다르다. 지진 피해 지역의 “붕괴 건물 처리 일자리” 라는 구인에 응모한 덤프 운전기사가 알고 보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5,6호기 앞 물 탱크 급수 작업에 종사하는 일자리였다는 것은 한 사례이다. 전력업체를 정상으로 원자로제작업체, 건설전문업체가 관여하면서 5차, 6차, 7차까지의 하도급 구조가 있는 것이 핵발전소다. 하청노동자에게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안 가면 평생 일을 안 준다’ 하는 식으로 협박하여 노동자를 모집하는 상태이며 안전교육이나 본인의 의사 확인은 없는 상황에서 피폭노동이 이루어졌다. 3월에 투입된 인력 3,700명 가운데 개인 피폭량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려고 하다가 30명의 노동자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사고 때문에 발생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핵발전소에 관련하는 정기점검, 사고 대응 때 항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 왔다. 전국 핵발전소를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하도급구조 말단에 위치하는 영세업체에는 폭력조직이 개입하면서 청소년을 포함해 시회적 약자가 핵발전소에 투입된 사실을, 깨끗하고 안전한 핵발전소의 얼굴로 포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동안 몇 개의 르포 이외는 언론보도가 되지 않았다. 전력업체가 막대한 광고비로 언론을 매수한 결과이기도 한다.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투입된 노동자에 대한 국가적인 추적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 긴급 작업에서 노동자 피폭선량이 상향 조정되면서 일반인의 한도선량도 올라갔다. 일본 정부는 연간선량이 20mSv에 이르는 지역 주민에 대해 강제 대피를 시켰다. 원래 1mSv가 일반인이 제한되는 피폭량이었는데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피폭되는 한도인 20mSv가 적용되었다. 이 조건은 방사선 영향을 미치기 쉬운 어린이에게도 적용하게 되며, 후쿠시마 학부모들의 강한 항의를 불렀다.
학교 운동장 등 선량이 높은 장소에 대해서도 제염(방사선물질 제거) 등 대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부과학성의 대응이었다. 이 결정에 원자력위원회 위원이 항의해서 사임하는 일화까지 생겨 결국 하교 등 어린이 관련 시설에서는 선량을 1mSv로 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이러한 외부 피폭뿐만 아니라 내부 피폭 문제가 있다. 음식물을 통해 몸 속에 들어온 방사선물질에 의한 피폭은 그 방사능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지방자치단체가 학교 급식에 대한 방사능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3월 11일을 경계로 세계가 변했다” 오래 전부터 반핵운동을 해 온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 조교의 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연간 선량 20mSv까지는 적국적인 대책 없이 시민들의 피폭을 방치하고 있다. 이 선량 수준은 방사선 관리구역에 해당한다. 이 관리구역 내에서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곳이다. 후쿠시마 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빗물을 타고 하천에 흘러가고 오염을 확산한다. 유통된 음식물에 대한 안전성은 불확실하다.
3. 다시 노동자 피폭에 대하여
지진으로 의한 붕괴된 건물 등 제거작업을 통해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방사선물질에 오염이 된 쓰레기들이다. 또 빗물로 흘러나간 방사선물질이 하수도에 들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물 재생센터에서는 하수도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흙을 소각하고 시멘트나 비료로 재이용해 왔다. 사고 이후 이 정화시설에서 나온 소각된 잿더미에서 53,200Bq/Kg의 세슘이 검출되었다. 원자력대책본부는 방사성 세슘이 8,000Bq/Kg 이하라면 매립 처분을 할 수 있고, 10만Bq 이하는 주택지와 거리를 두고 관리식 처분을 하고, 10만Bq 초과하는 쓰레기는 콘크리트 등 차폐 시설에 엄중 보관하는 방침을 세우었다.
지금까지 상상도 안 했던 노동 영역이 피폭 노동이 되고 있다. 하수도, 쓰레기 소각장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운반 노동자! 청소노동자가 피폭하는 경우도 예측된다. 건물에서 빗물이 집중하는 곳에 있는 진흙, 도랑 속 진흙에서 고농도 방사선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서쪽 200Km 지점에 있는 주유소 세차장 도랑에서 9만Bq/Kg 세슘이 검출된 바 있다.
농림업 종사자의 건강 피해도 우려된다. 후쿠시마현 북부지역의 논은 대부분 방사선 관리구역이다. 올해 수확된 쌀에서 500Bq/Kg을 초과하는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2012년은 100Bq/Kg을 새로운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대상 농가는 후쿠시마현의 18%, 11,800세대가 된다.
앞으로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곳에 대한 제거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건강 관리와 제거 물질에 대한 보관 관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월계동 방사선 도로 포장이 문제가 되었다. 무방비로 제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제거 된 아스팔트 처리도 어렵다.
우리는 지금 핵 오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환기하면서 글을 마친다.
사진1,2는 2011.4.13-17 필자도 참여한 한일 공동 후쿠시마 조사단이 실시한 현장 조사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1 : 핵발전소에서 북서 33Km.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 나가 도로로 가는 고개.
지상 1m 공강선량 22.08μSv. 1년간 누적 추정 적산선량 91.1mSv.
사진2 : hot spot. 핵발전소까지 20Km 직전 지점 도로 옆에 “후쿠시마현‘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땅에 가까운 지점이고 풀들이 많아 떨어진 방사성물질에서 나온 방사선량이 많은 지점이다. 간이선량계는 92.05μSv를 나타냈다.
핵발전소에서 북서방향 60Km 떨어진 후쿠시마 시 교외에서 방사선 측정량이 1.93μSv를 기록했다. 1년 누적량으로 환산하면 16.9mSv은 일반인 연간 피폭 제한선량의 17배에 해당한다. 매화나무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대조된다.
핵산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결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핵발전을 포함한 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해마다 전력회사에 5천억 엔 (6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지출해왔다. 핵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싸다는 전력회사의 선전에 언론, 어용학자, 저명인사가 동원되었다. 일본의 핵발전소는 모두 바닷가에 건설되어 있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상금이 사용된다. 또한 핵발전소가 위치하는 지자체와 현에는 교부금이 주어진다. 일단 핵발전소 건설이 결정되면, 지역사회에 일자리가 생기고 건설 후에 전력회사는 지역 주민을 하청업무 등에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후쿠시마 시 아즈마 종합체육관에는 1,700명 정도가 피난해 있었다. 발전소에서 20Km 떨어진 가츠라오무라 지역에서 피난 온 60대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츠라오무라는 농촌 지역이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주로 외지로 나간다. 이 남성은 철근공으로 60년대에 일본 최대 댐인 구로베 댐 공사 현장에서 일했고, 뒤이어 시작된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건설 공사에 참여했다. 1호기부터 5호기까지 관여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남녀 모두 핵발전소 공사장에 나갔다고 했다. 남성은 후쿠시마 공사 후 도쿄에 일하러 나갔다가 도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고향인 가츠라오무라로 돌아왔다. 장애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였다. 그는 병약자에게 우선적으로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도 뇌출혈로 반신에 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아들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데 방사능 오염 소문 때문에 거래가 중단돼 회사는 문을 닫았고, 아들은 다른 지역의 관련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성은 더 이상 원망의 말은 하지 않았다.
반핵활동가 이시마루 씨(68세)는 원래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남쪽에 위치하는 토미오카마치에 살고 있었다. 사고 후 손자를 데리고 300Km 떨어진 아키타 현에 피난해 있다가, 조사단을 안내하기 위해 후쿠시마로 온 것이다. 후쿠시마 제1, 제2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을 후타바 지방이라고 하는데, 이시마루 씨는 ‘후타바 지방 원전반대동맹’에서 40년 간 활동해 왔고 지금은 대표를 맡고 있다.
이시마루 씨가 전력회사의 지배구조를 설명해 주었다. 피난소에서 리더 격으로 나서는 사람은 대개 도쿄전력 하청회사 등 핵발전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 나서서, 피난소에서도 핵발전소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도쿄전력이 피난소를 찾아갔을 때도 그 리더 역할 하는 사람이 “오늘은 항의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피난민들의 호소와 항의를 막으려고 했다.
핵발전소가 건설된 지역과 주변 지역에는 교부금이 지급된다. 그래서 핵발전소 가까이에 갈수록 도로도 넓어지고 문화/복지 시설물이 눈에 잘 뜨인다. 우리가 사고 발전소 5Km 권역에서 보았던 체육관은 3월 말 완공 예정으로 도쿄전력이 지어준 것이었다. 폐허가 된 마을 속에서 그 체육관은 마치 지진 피해가 없는 것처럼 서 있었다.
이이타테무라 지역의 시라우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측정한 공간선량이 7.87μSv, 지표에서 12.29μSv를 기록했다.
이시마루 씨가 우리를 피난지역인 반경 20Km 지점까지 차로 안내해 주었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반경 30Km를 넘는 지역이지만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핫스팟 (hotspot)으로 마을 전체가 피난 지역으로 선정된 이이타테무라라는 마을이 있었다. 핵발전소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교부금 같은 것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는 지역이다. 나름대로 농축산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지며 마을 만들기를 실천해 왔던 평화로운 마을이 강제 이주 지역이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도쿄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한 눈물이었다.
전력회사는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돈으로 지역 주민들을 매수했고, 초기에는 경찰력을 동원해 반대운동을 탄압하기도 했다. 언론과 전문가도 조직하면서 반대 의견은 아주 소수파로 전락해버렸다. 도쿄전력을 포함한 전력회사 노동조합인 전력총련은 일본 노총인 렌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내에서도 영향력이 큰 조직이며, 렌고는 핵발전을 지지하고 있다. 전력총련 출신 지방의원과 국회의원들도 지역의회와 국회에서 핵발전 추진 역할을 맡아 왔다.
과거 40년 동안 이렇게 강력한 동맹이 형성되면서 핵발전 추진력은 갈수록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시마루 씨 말처럼 ‘원자력 제국주의’ 사회에서 돈과 어용학자, 매수된 언론에 의해 이성적인 대안 에너지 정책이나 탈핵사회 전망은 확산될 기회를 잃었다. 이렇게 주입된 ‘핵발전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은 핵사고 직후도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 2011.4.4 보도
(전국 조사, 4.1~4.3)
마이니치신문 2011.4.18 보도
(전국 조사, 4.16~4.17)
아사히신문 2011.4.18 보도
핵발전소
․모두 폐지 12%
․삭감 29%
․증설 10%
․현상 유지 46%
전력의 30%를 핵발전으로 조달하는 현재 에너지 정책
․모두 폐지 13%
․삭감 41%
․부득이하다 40%
․중지 11% (7%)
․삭감 30% (21%)
․증설 5% (13%)
․현상 유지 51% (53%)
*( )는 2007년 조사 결과
핵발전소를 폐지 내지 줄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약 40% 정도 되지만, 현상 유지하자는 의견도 절반에 달한다. 아사히신문 보도에서는 2007년 조사결과와 비교할 수 있는데, 증설하자는 의견이 줄어들고 축소하는 의견이 늘어났다. 그러나 현상 유지라고 답한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4월 말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핵발전을 추진해 온 보수적인 인사가 당선되었다. 핵시설이 있는 지역에서도 핵발전소 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일본 전국에서 탈(脫) 핵발전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모임과 집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총평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 사회당의 정치 블록이 반핵 운동을 전개해 왔지만 총평 해산과 함께 힘을 잃었다. 지금 일어난 반핵 운동은 그 운동을 계속해온 사람들과 새롭게 탈핵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과의 연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일본인들이 과연 탈핵 사회로의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지, 현재 일본 사회의 민주주의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핵발전소에서 남향 33Km 지점 국도변에 “원전 어딘가로 가져가” “원자력발전 필요 없다”라는 붓글씨가 쓰인 다다미가 걸려있다.
<끝>
1) 현은 한국의 ‘도’에 해당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열도 동북부 태평양 쪽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큰 해일을 동반하면서 500 Km에 이른 해안부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그 결과, 바닷가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가동 중이던 1호기부터 3호기, 그리고 정기 점검 중이라 운전이 중지 상태였던 4호기까지, 수소폭발에 의한 건물 파괴 내지 격납용기 파괴로 방사능을 핵발전소 밖으로 방출했다. 지진과 해일에 의해 원자로가 안정적으로 냉각되지 않으며 방사성물질을 외부로 유출한 이 사고는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호전되지 않고 있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 3월 26일이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탈 핵발전소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은 올해 3월 26일을 기점으로 40년이 되는 1호기를 “폐로 (閉爐)” 하기 위해 “폐로 액션”이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올해 2월 7일 노후된 1호기를 검사한 후 운전 연장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폐로 캠페인을 전개하려 한 시점에 마침 지진에 의한 사고가 일어나, 운동을 준비한 사람들은 한 때 허탈 상태였다고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 규모와 같은 ‘레벨 7’로 규정되었다. 수소폭발이 잇따라 방사성물질을 방출한 후, 핵연료가 있는 압력용기와 사용 후 연료가 들어있는 풀(pool)을 냉각하기 위한 작업은 뉴스에도 자주 보도 되었다. 항공자위대 헬기에 의한 공중 살수나 육상자위대 특수차량에 의한 방수작업, 도쿄 소방청 소방차량에 의한 물 주입 등 ‘결사적인’ 작업이 강조되기도 했다.
또 지진 발생 시점부터 제동이 안 되는 원자로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후 두 달이 지난 5월 시점에서, 도쿄전력 사원 약 1천 명, 하청/플랜트 관계자 약 4천 명 등 총 5천여 명이 사고 수습에 노력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직접 출자하거나 지분 비중이 수위를 차지하는 기업들 중에는 전기설비, 전력기기, 변압기, 보수유지 관련 회사들이 포함된다. 전기설비 최대 업체인 ‘관전공’이라는 기업은 도쿄전력이 46.15% 주식을 보유한 최대 주주이다. 사고 현장에서 복구 작업 중 방사능 오염수에 피폭된 2명이 이 회사 직원이며, 1명은 이 회사 하청노동자였다 (최고 180 mSv 피폭).
또한 ‘원자로’를 만드는 업체가 있는데, 이들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도시바, 히다치, 미쓰비시 등이다. 여기에 토건공사를 하는 종합건설회사, 플랜트 공사 업체, 원자로, 터빈, 펌프, 연료, 소재, 다양한 관련 부품 업체가 관여하고 있다. 이번 사고 처리에는 이들 관련 업체는 물론 거래가 있는 기업까지 동원되고 있다. 또 일용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모르는 노동계약에 따라 처리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오사카 지역에서 ‘동북 지방 운전사’, ‘화력발전소’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나섰다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노동자도 있다.
일본에서 연간 방사선 피폭의 법적 한도는 50 mSv이며, 방사선 관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① 관리구역 설정
외부 방사선량률, 오염가능성에 따라 관리구역을 설정하고, 관리구역 내에는 허가된 사람 이외에 진입을 금지한다. 출입자는 개인 선량계 장비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방사성물질의 경구 섭취를 방지하기 위해 오염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음식과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② 구역 관리
관리구역의 선량률, 오염 밀도에 따라 구역을 다시 구분하고, 노동자 진입에 합리적인 관리를 꾀하고 있다. 구역 구분은 관리구역에 진입하는 작업자가 보기 쉬운 장소에 게시하고 알려야 한다.
③ 작업 관리
선원 제거, 차단, 시간 단축, 거리를 두는 피폭 저감의 원칙에 따라 핵발전소 노동자 피폭이 저감되도록 작업을 관리한다.
④ 개인 선량 모니터링
개인 선량계에 의해 외부 피폭선량을 평가/기록해야 한다. 관리구역 진입 때마다 선량을 확인할 수 있는 경보기능이 장착된 개인 선량계를 사용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혹은 필요시 whole body counter (체내에 흡수된 핵종/량을 체외에서 직접 측정하는 장치) 측정을 시행하여 내부 피폭선량을 평가/기록해야 한다.
이처럼 관리구역을 정하고 구역별 오염 수준에 따라 피폭을 방호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는 방사선량 측정도 없이 작업자를 투입하여 피폭된 사례가 있다. 방사능 오염수 피폭도 그 중 한 사례이다. 또 개인 선량계가 모자라 그룹에 한 개씩만 지급하고 작업을 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3월 31일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내부 피폭을 측정하는 whole body counter의 경우, 제1발전소에 두 대가 있지만 주변 방사선량이 높아 실제로는 사용을 못 하고 있다.
표 1은 일본 전국 18개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폭선량을 요약한 것이다. 정규직은 각 전력회사의 정규직이고 기타는 관련 업체 노동자를 지칭한다. 전력회사 사원에 비해 관련 업체 노동자들의 피폭선량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후쿠시마 현장은 연간 20 mSv가 넘는 누적 선량으로 ‘피난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2009년에 핵발전소 노동자 가운데 이 정도의 수준에 피폭된 사람은 없었다.
후생노동성은 올해 4월 27일 처음으로 핵발전소 노동자들 중 산재가 인정된 사례 수를 발표했다. 1976년 방사선에 의한 직업병 인정기준이 마련된 후 35년 동안 10명이 산재를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이전에는 백혈병과 급성 방사선증만 산재로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혈병도 모두인정된 것은 아니었으며, 피부염, 재생불량성빈혈 같은 질환도 인정되지 않았다. 2004년에 다발성골수종과 악성림프종이 인정된 후, 2010년 후생노동성은 다발성골수종과 호지킨 림프종을 방사선에 의한 질환으로 열거했다.
표 2의 사례3, 시마하시 씨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중부전력(주)의 2차 하청회사에 취직하여 계측기기 교환작업에 종사했다. 그의 방사선 관리수첩을 보면 핵발전소 정기검사 시기에 선량 상승이 있었고, 입사 5년째부터 5 mSv를 초과 상승하여 87년에 최대 9.8 mSv를 기록했다.
방사선 종사자의 백혈병 산재 인정기준을 보면, ① 상당량의 피폭 (5 mSv×종사 연수), ② 피폭 시작 후 적어도 1년 넘는 기간에 거쳐 발병, ③ 골수성 백혈병 또는 림프성 백혈병으로 되어 있다. 시마하시 씨의 경우 인정기준 ①에 해당하는 누적피폭선량 5 mSv × 8년 10개월= 44 mSv을 넘어서는 50.63 mSv에 피폭되었다. 시마하시 씨는 1991년 11월, 29세 1개월의 삶을 마무리했다. 그해 연말, 시마하시 씨의 부모는 회사와 각서를 맺었다. 산재보상에 해당하는 금액(3천만 엔)을 받고, 일체의 이의 제기와 산재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이 죽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산재 신청을 했다.
시마하시 씨 사례가 산재로 인정된 것에 대해 중부전력은 “법정 연간 피폭한도 50 mSv 이하이며, (산재) 인정이 피폭과 질병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시마하시 씨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일로 병이 걸린 사람을 위해 전력회사는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하는데 어떻게 질병과 일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냐?” 며 지금도 탈핵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표 3은 90년대 후반 핵시설에 종사한 노동자 24만 4천명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피폭노동자 17만 5,939명의 누적선량 분포를 나타낸다. 5년 동안 50 mSv에 피폭된다면 산재 인정기준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수준에 폭로된 노동자 수가 1만 1,551명에 이른다.
지난 3월의 사고에 따라 ‘원자력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었고,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피폭선량 허용한도를 완화했다.
‘전리방사선 장해방지규칙’ 제7조에는 “긴급 작업에 종사하는 동안에 노동자가 받는 방사선량은 실효 선량 100 mSv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1990년 권고를 인용하며 바꾼 것이다. ICRP는 “중대 사고 시 사고 제어와 긴급 구조 작업에서 피폭은 500 mSv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후생노동성은 이에 근거하여 허용가능 피폭선량을 250 mSv까지 높이는 방안을 ‘방사선심의회’에 제출했고, 타당하다는 답신을 받아 3월 14일부터 적용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피폭의 수준 자체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고 후 2주가 지난 3월 24일에서야 노동자들이 개인 선량계도 없이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3월 22일까지 사고 발전소 내 시설 (면진중요동 免震重要棟)에서 작업한 노동자들에게 장비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여성노동자에서도 대량 피폭이 확인되었다. 이 50대 여성은 1월 1일부터 3월 22일까지 누적 피폭선량이 17.55 mSv를 기록했다. 개인 선량계 선량 (외부 피폭) 2.06 mSv, 면진중요동 외부 피폭 1.89 mSv, 내부 피폭 13.6 mSv가 그 내역이다. ‘전리방사선 장해방지규칙’은 여성의 피폭 한도를 3개월 5 mSv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사고 대응 노동자의 피폭은 4월 27일 시점에서 200 mSv 이상이 2명, 100 mSv 이상 200 mSv 미만이 28명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내부 피폭에 대한 검사는 작업 종사자의 10% 정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고 수속까지 앞으로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작업자를 모집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투입해야 개인별 피폭량을 줄일 수 있는데, 과연 그렇게 많은 작업자를 모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자 피폭을 감시하고 향후 건강관리를 지속적으로 하는 체제가 시급하게 요구된다.<끝>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온 나라가 마치 거대한 생산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다시 생산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몸부림 속에 지금의 시대가 있다고 평가하면 지나치게 조급한 판단일 것인가? IMF 경제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도 일본식 표현을 빌리자면 여전히 중후장대형 설비산업과 장치 산업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의 국가공단 및 지역공단을 중심으로 여전히 설비산업을 늘리지 못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고, 전통적인 의미의 제조업에 대한 중요성은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상대적인 생산액 기준만 보면, 금명간 IT를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제조업의 비중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산업부문에 대한 절대 생산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위 3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라고 부르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에서의 국내 설비증설은 거의 마감하다시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위 ‘위험한 노동’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당분간의 전망이다.
인천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경제특구에 관한 전개과정 역시 실제로 상존할 수 있는 위험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현재의 경제특구 추진 추세라면,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현 정부가 파격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의 실체 중 중요한 부분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환경이나 기본적인 인권 등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 사회가 이룬 체계적인 절차들을 파격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인데, 결국은 이러한 변화들이 이 지역의 임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더욱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할 점은 특구에 실제로 외국기업이 정부의 주장대로 유치될 것인가 아니면 국내 기업이 수출이라는 대 명제 하에 이 지역에 진출하여, 그야말로 국내에서 생산지역의 단순 이전만으로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 그리고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특구의 기준이 우리나라 전체의 ‘표준’의 역할을 하게 될 최악의 가능성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상황을 보다 열악하게 만드는 부문은 비단 노동 분야만은 아니다. 새만금 사업과 위도 핵폐장 문제로 크게 상징되는 현재의 환경정책 기조는 2만불 경제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당장 심각한 문제들을 노정시키고 있다. 현안으로 대두된 문제들 외에도 그린벨트의 해체와 관련된 지역 차원의 크고 작은 개발 건들, 그리고 무원칙하며 효과가 불분명한 지역 개발 사업들이 ‘지역불균등’의 해소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당장 수도권 지역만 보더라도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을 통해서 ‘땅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풀기 위한, 전형적인 개발주의적 시각에서 150만호 건설계획 같은 것들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현재의 개발목표대로 추진이 된다면, 전국 인구의 3/4이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적인 사안들이 각각의 논의로 분리되어 접근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체는 신자유주의적 개발 제일주의 경제정책이지만, 드러나는 현상은 분리되어 있다. 한전민영화 과정에서 잘 보여지듯이 특정 산업에 대한 고용의 문제를 풀 것인가, 아니면 화력발전 위주의 독점시장에서 소규모 발전체계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체계로 갈 것인가는 목표달성의 시기와 방법을 전제로 여러 가지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이 가능하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는 농업기반공사의 고용안정과 친환경적 정책을 둘러싸고 방향 설정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장기적 확대 방안이 위도 방폐장 문제의 장기적 해법이라고 할 때, 고용의 문제는 새만금의 경우보다는 조금은 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전체 노동의 입장으로 볼 때는 핵발전 산업의 경우가 고용효과가 클 것인지 아니면 풍력이나 태양광 혹은 연료전지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우가 고용효과가 높을 것인지에 장기적인 관심이 집결되게 된다. 여담이지만, 독일이나 대부분 자체 기술개발을 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전체적으로 보다 높은 고용효과를 가지고 있다.
위도의 경우를 계기로 드러난 몇 가지 충돌점은 정부정책과 지역주민의 갈등, 서로 대체관계에 있는 산업 사이의 잠재적 갈등이지만, 아직까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은 그렇다면 과연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안전할 것인가에 관한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외부적으로 발표되거나 드러난 자료가 거의 없다.
방사능의 효과가 장기적이고 점진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대부분이 80년대 이후에 건설되었으므로 아직은 가시적인 문제점들이 노정될 만한 시기는 아니라는 현실적인 문제점과 함께 핵산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산업 특징상 외부에 공표되거나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체계적으로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거의 관리 공백 상태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여기에 대해서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연 특수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안전한 환경 속에 있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노동과 환경이 소통하고 문제를 공유하는 1차적 접합지는 바로 노동보건 부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보건경제학(health economics) 분야가 미국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다. 그만큼 보건에 관한 것들이 전면적으로 앞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방의학과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접목되면서 기계적인 ‘재해’라는 관점이 아니라 예방보건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산업재해 통계는 ‘4일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사고성 재해’와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성 질환’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그 주요범주는 다음과 같다.
진폐증, 소음성 난청, 금속 및 중금속 중독, 유기용제 중독, 특정화학물질 중독, 신체부담작업, 뇌․심혈관 질환, 요통, 기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의한 업무상질병자 기준)
추세로는 진폐증이 전체의 79.9%에서 23.7%(98년)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소음성 난청이 11.6%에서 18%로 증가하는 추세이고, 유기용제 중독과 특정화학물질중독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뇌․심혈관 질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현재의 노동질환 관리가 직접적으로 증상이 드러나는 작업재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누적외상성 질환과 요통, 그리고 뇌,심혈관계질환과 같은 특수건강진단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재해에 관해서는 거의 관리사각지역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직업병 통계에 의하면 피부관련질환을 포함한 기타 질환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데, 선진국의 추세와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몰라서 그렇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문제들을 드러날 것이 예견되고 있다.
특히 방사능을 포함한 특수화학 공정의 경우는 보건 이론의 발전과 함께 주기적이고 유기적으로 이러한 관리 항목 및 방식이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는데, 이러한 여건은 아직 국내에서는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건상의 문제점은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욱 더 열악하며,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체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포르말린을 직접 취급하는 중소기업 위주의 목재산업이나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배출빈도가 높은 소형 화학업체의 경우에서의 비정규직에 대한 보건관리 문제는 노동재해의 차원을 뛰어넘어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상황은 열악하다.
작업재해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조금 더 확장된 예방보건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환경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적인 추세가 직접적인 오염배출 관리에서 점차적으로 인체의 직간접 유해도를 중심으로 사람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 쪽으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유명세를 탔던 다이옥신이나 환경호르몬 같은 경우가 미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누적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 물질들이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영향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과학적인 연구단계에 있는 것들도 많다. 물론 모른다고 해서, 영향마저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1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조합이며, 동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주체도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보건의학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외부의 전문기관의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작업장에서 다루고 있는 유해물질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복지와 같은 일반적인 접근이 상당 부분 가능한 분야와는 달리 보건의 문제는 상당히 지역접이며 동시에 전문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한 관리능력을 전반적으로 제고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빠른 관리수준 제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어떠한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예방의학과 환경 부문의 전문가, 그리고 노동현장과 지원체계가 결합되어야만 첫 발을 딛을 수 있는 일이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특수화학물질에 의한 장기 질환이나 암발생률 상승과 같은 문제들은 개인이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또한 체계적으로 보호받을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지난한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