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주택용품 전문 매장인 로우스(Lowe’s), 셔윈 윌리암스(Sherwin-Williams), 홈디포(Home Depot)가 염화메틸렌(methylene chloride 또는 dichloromethane)과 N-메틸피롤리돈(N-Methyl-2-Pyrrolidone, NMP)이 함유된 페인트 제거제를 내년부터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시민단체 ‘안전한 화학제품, 건강한 가족(Safer Chemicals, Healthy Families, SCHF)’가 진행해 온 ‘매장 책임(Mind the Store) 캠페인’의 영향 덕분이다. 이는 소비자 건강 보호 운동의 중요한 성공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캠페인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번 해외이슈에서 현재까지의 경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휘발성 화학물질인 염화메틸렌, 용매(솔벤트)인 NMP는 페인트 제거제나 코팅 제거제 등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이다.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에 따르면, 해마다 6만 명의 노동자와 200만 명의 소비자가 이들 물질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들 물질에 노출되면 암을 비롯한 만성적 건강 영향뿐 아니라 급성 독성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면 질식 위험이 있다. 염화메틸렌의 경우, 고농도에서 마취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의식을 잃고 호흡이 멈추게 된다. 또한 염화메틸렌은 체내에서 일산화탄소를 발생시켜 흡연자에게 심장 마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60명 이상이 페인트 제거제를 이용한 작업 중 질식사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사망자에는 노동자뿐 아니라 10대 청소년을 포함한 소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EPA는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2017년 1월 12일에 염화메틸렌과 NMP에 대한 사용 제한 규정안을 발표했다. EPA는 이들 물질들이 페인트나 코팅 제거제로 사용될 경우 예기치 않은 위험(unreasonable risks)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염화메틸렌은 중추 신경계, 간, 신장 독성, 암 등을 유발하여 노동자와 소비자의 건강에 해를 끼치고 사망을 유발할 수 있으며, NMP가 함유된 제품으로 페인트/코팅을 제거할 경우 신경, 면역, 생식 독성 피해를 입을 수 있고 특히 임산부와 태아 발달에 유해할 수 있다는 위해성 평가 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EPA는 소비자용 또는 상업용 페인트/코팅 제거제로 염화메틸렌과 NMP를 제조하거나 가공, 유통하는 것을 등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안하면서 2017년 4월 12일까지 의견 수렴 후 최종안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가 정책 기조로 자리잡게 되었다. EPA는 염화메틸렌과 NMP 규제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가졌다. 페인트 제거제 제조업체와 수출입 업체들은 일자리 감소, 대체 물품의 인화성 위험 등을 이유로 새로운 규제에 반대했고, 제품에 경고 문구를 강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정대로라면 새로운 규제에 대한 결론이 났어야 할 시기를 훌쩍 넘긴 이후에도, EPA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발표를 미루었다. 페인트 제거제에 대한 EPA의 규제 계획은 구체적 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현재까지도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이다.
EPA가 사용 제한 규정안을 제안했던 2017년 1월 이후 이와 관련하여 4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소비자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EPA의 무책임한 행태에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었다. 이들은 염화메틸렌과 NMP가 함유된 페인트 제거제 판매 금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페인트 제거제에 함유된 유독성 화학물질들의 건강 영향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제품 금지를 위한 청원 운동을 전개했다. 이와 더불어 이들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체들에게 제품 판매 금지를 요구했다. 그러던 중 2017년 10월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31세 남성 드류 윈이 소매점 로우스(Lowe’s)에서 페인트 제거제를 구입하여 바닥 제거 작업 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로우스에 염화메틸렌 함유 페인트 제거제를 금지하라는 청원 운동이 벌어졌고 2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8년 2월, 펜실베이니아의 31세 남성 죠슈아 엣킨스가 염화메틸렌이 함유된 페인트 제거제를 이용하여 BMX 자전거를 손질하던 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금지 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5월 초, 옹호단체들은 로우스 매장 앞에서 전국적인 "행동 주간 (week of action)"을 진행했다. 소매업체를 겨냥한 판매 금지운동은 최근 들어 결실을 보이고 있다. 2018년 5월, 로우스는 염화메틸렌과 NMP가 함유된 페인트 제거제를 올해 안에 매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발표를 했다. 6월에는 미국 최대의 페인트 관련 제품 소매업체인 셔윈 윌리암스와 세계 최대 주택용품 소매점 체인 홈 디포가 잇따라 같은 약속을 발표했다. SCHF는 월마트, 머나즈, 에이스 하드웨어 등 다른 대형 소매업체들도 이러한 금지에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소매업체들의 금지 약속을 이끌어낸 “매장 책임(Mind the Store)” 캠페인은 포괄적인 화학물질 정책 수립을 위해 미국의 주요 소매업체들과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비영리 단체인 SCHF가 주도하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대형 소매업체들이 유독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들의 판매를 금지하고, 안전한 대체 물질들을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SCHF는 450여 개 조직의 연합 단체로서, 환경운동가, 보건전문가, 기업 등 다양한 영역의 개인과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소매업체들에게서 염화메틸렌과 NMP가 함유된 페인트 제거제 판매 금지 약속을 받아 낸 것은, 정부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마냥 기다리기보다 직접 행동을 통해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EPA의 규제 정책 도입에 긍정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2018년 5월 29일, 한국산업보건학회 주최로 <위험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와 보장방안>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삼성전자가 노동자들의 산재 소송과 관련한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전문가 토론의 자리였다. 이날 발표 중에서 건강권에 대한 국제 규범과 정부의 책무성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김명희 회원의 발제를 공유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건강권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노동건강연대 회원
저는 예방의학을 전공했습니다. 건강불평등, 건강권과 관련된 이슈를 주로 연구해왔기 때문에 학회 측에서 조금 포괄적인 내용의 건강권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얘기해 달라고 하셔서 준비를 하게 되었고요. 뒤에 발표하시는 선생님들은 구체적인 법안이나 제도를 말씀하는데 비해서 제가 이야기 드리는 내용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자료집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를 하면서 읽어나가겠습니다.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안에 영업기밀이 담겨 있는가 아닌가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다 아시는 것처럼 삼성, 산자부, 경제신문이 한 팀이 되어서 만약에 보고서가 공개되면 후발주자 중국에 우리 핵심기술 모두가 유출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업기밀인가 아닌가를 떠나, 최대한 양보해서 실제로 영업기밀이 담겨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노동자의 건강권보다 우선 순위에 놓일 수 있는 것이냐 궁금합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비인격체이고 비인격체의 이윤 보호가 인간의 존엄성이나 권리보다 앞설 수 있는 문제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는 것이죠. 제 발표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소위 CSR이라고 하는 사회적 책임에 노동자 건강권보호가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어야 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기업의 관점 전환이 필요하고 작업장 내 민주주의 플러스 정부의 책무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판매를 하고 또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금도 내서 지역이나 국가재정의 보탬이 되기도 하고. 혁신이라는 것도 기업들이 많이 만들어내죠. 그래서 기술과 사회발전에 기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업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다른 이름으로 지속가능경영 혹은 사회적 책임 CSR이라고 하는데요, 이거는 기업이 활동하는 지역사회와 생태적,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어떤 행위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처음에 CSR 개념이 등장했을 때는 기업들이 ‘하면 좋은’ 자율 규제 활동이었다면 현재는 지역 수준에서나 초 국가수준에서 상당한 수준의 의무이행을 강조하는 규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업이 하면 좋고 아니면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 특히 책임 있는 대기업들은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국제적인 규준이 된 상황이구요.
초기의 CSR이라는 것이 대개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저개발 국가 노동착취 문제 혹은 환경파괴 문제 이런 것들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강력하게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서 기업이 대응하거나 반응하는 수세적 활동이었다면 지금은 CSR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위험관리도구로서 서서히 자리를 잡고 제도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여전히 CSR이라고 하면 기업이 공여한 기금이나 기부금, 임직원의 봉사활동 참여를 통한 자선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는 취약계층이나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주거/의료 지원 사업, 문화예술 진흥사업, 기부금 이런 것이 대표적이죠. 민간 기업을 다니는 제 친구들을 보면 자기 집 김장은 안 해도 매해 겨울만 되면 김장하고 연탄 나르고, 이런 것이 한국에서는 CSR의 일반적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성도 사실은 마찬가지로. 자료집에 실어놓은 것은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사회공헌 사업의 내용입니다. 보시면 본인들이 잘하는 것, 기술과 관련해서 청년들이나 학생의 역량을 키우는 사업이 있고 나머지는 대개 자선활동에 가까운 것들이죠. 이 사업들이 어떤 공통점이 있냐 하면 작업장 안이 아니라 작업장 바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죠. 삼성이 획득한 초과이윤,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내부의 인적자원, 노동력을 동원해서 사실 기업 평판을 높이는데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최근의 국제적 트렌드는 사실 이런 것과 다릅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다고 하는 경제전문지 ‘포브스’를 보면, 올해 2018 CSR 글로벌 트렌드가 어떠냐 했을 때 국내 기업들이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들이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는 게 뭐냐면, 한국에서 갑질로 알려져 있는데, 작업장 내 괴롭힘과 불평등을 척결하는 것이 CSR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중에 하나로 언급하고 있어요. 그 외에 젠더와 인종, 그 다음에 브랜드 행동주의, 기후 변화문제, 아니면 최고위급에서 CSR의 내용을 강화하는 것, 공급업체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는 것, 소비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 이런 것들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즉 얘기를 하자면 기업 바깥에서 어떤 자선활동을 하는 것이 CSR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조직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근로환경, 외부 환경 보호에 대한 강조라 할 수 있는 거죠.
최근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비위사실이 폭로되고 있는 대한항공 같은 경우에만 봐도 굉장히 많은 CSR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학사업, 헤비타트 운동 지원, 연탄도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죠. 문화예술 후원, 국제 재난구호 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여기 계신 분들이 잘 아는 것처럼 작업장 바깥에서 이렇게 좋은 활동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작업장 안에서는 전근대적인 권력형 괴롭힘으로 자사 그리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게 현실인 거죠. 이런 대한항공의 모습이 한국사회에서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 CSR의 세 가지 축이라고 하면 3P를 의미합니다. people, planet, profit 이라고 해서 첫 번째 people 이라는 것은 외부의, 작업장 바깥의 사람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노동관행을 통한 노동자 보호와 지역사회 주민 보호를 가리킵니다. 이런 기본적인 P에 해당하는 것을 지키지 않으면서 작업장 바깥에서 사회공헌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CSR 영역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기업이 CSR 경영을 통해서 노동자 권리를 보호한다고 해도 이게 다는 아니다, 다른 두 가지가 같이 가야된다는 겁니다. 뭐냐 하면 첫 번째로는 정부 당국에 의해서 강력하게 집행되는 법규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노동자들이 자기 조직화, 단체교섭을 통해서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강력한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있어야 이것들이 실현가능해지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유엔 글로벌콤팩트의 10대 원칙에도 기업이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인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는 차치하더라도 삼성전자에 없는 게 바로 이거죠.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두 가지 축이 모두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아까 CSR 활동 내역에서 본 것처럼 CSR 활동에서 내부의 노동권 존중에 대한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또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민주적 노동조합이 삼성에 없는 것이죠. 사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그룹 전체가 여러 가지 기업 활동을 통해서 국내 경제성장에 기여도 많이 했고, 사람들에게 질 좋은 상품과 괜찮은 보수의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여기 계신 분들이 인정하는 부분일 겁니다. 예전에 자료를 분석해보면, 특히 여성 노동자의 경우 같은 연령대 다른 어느 집단의 노동자보다도 임금수준이 높았는데, 반도체 생산업종이 보수가 괜찮은 좋은 일자리라는 것은 다들 인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지난 10년간 소속 노동자나 시민들에게 끼친 해악도 굉장히 큽니다. 오늘 반도체 이야기이지만 반도체를 빼더라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기억을 하실 텐데 과거에 삼성1호-허베이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가 굉장히 큰 해양오염으로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피해, 건강 피해를 일으켰지만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013년 설립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 대한 폭력적 탄압은 지금 막 진상 규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보건 분야에 되게 큰 이슈였던 2015년 메르스 유행 때에도 삼성의료원을 통해 메르스가 급격하게 전파되어 공분을 사기도 했었죠. 전체 감염자의 절반이 삼성의료원을 통해서 전파됐고, 당시 병원 측의 부실한 대응이 문제가 되어 노동단체들이 해마다 수여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었습니다. 작년 2017년 노동절에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붕괴해서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했고 그것 때문에 올해 삼성중공업이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되었죠. 뿐만 아니라 여기서 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손실을 초래하고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건 다들 많이 아시는 거고.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소송비 대납, 최근에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배당사건. 하여튼 이런 부정부패 사건에도 삼성이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민주주의와 투명성, 건강권, 노동권, 환경권 측면에서 골고루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콤팩트 10대 원칙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기업은 국제적으로 선언된 인권보호를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 ‘기업은 인권 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당취득 뇌물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부패에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있는데 앞서의 행동들은 이것들을 모두 가볍게 져버린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영업기밀 보호를 이유로 작업환경 측정기록 공개를 거부한 것은 이런 긴 목록 중에 한 가지를 더 보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 삼성에서 오신 분들도 있을 텐데 억울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없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잖아요.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진정한 CSR이나 사회공헌을 지향한다면 그 첫 단계를 외부에서 연탄을 나르고 할 것이 아니라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 째로 말씀드릴 부분은 정부와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산업계가 CSR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얻는 거죠. 그동안 기업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기도 하고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기도 하고 때론 시민이나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기도 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라는 것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고, 야수 같은 기업들을 길들여온 규제 발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멀리 보면 아동노동의 금지나 8시간 노동제도의 시작부터 해서 산재보험의 도입,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여러 가지 법규의 제정이 잘 보여주고 있죠. 사실 기업이 스스로 윤리적 행동을 하고 자율적 실천을 하고, 이런 것만으로 작동했던 자본주의는 역사상 실재한 적이 없었고, 소위 ‘보이지 않는 손’도 저절로 움직인 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민이나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정부의 개입, 정부의 책무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권 규약’이라고 통상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입니다. 여기 12조에서는 건강권을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라고 정의하고, 건강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안전한 식수나 위생 이런 것들이 들어있고, 환경과 산업위생의 모든 측면 개선이라는 용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강권은 단순히 보건의료서비스를 많이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기저의 결정요인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도 일반논평 제14조를 통해서 특별히 ‘건강한 자연환경과 근로환경‘이라는 명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건강권을 보장하려면 보건의료만이 아니라 식량, 주거, 노동, 인간 존엄, 생명권 이런 여러 가지와 정보접근권, 결사·집회·이동의 자유 등 여타 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건강권 보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와 노동권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라는 점을 국제 인권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크게 세 가지 의무를 가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가 ‘존중(respect)’으로, 법이나 정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건강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조치를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보호(protect)’의 의무가 있는데 정부가 아닌 기업 같은 비정부기구의 행위나 부작위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개인과 지역사회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장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말하자면 정부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보호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간 고용주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노동기준을 준수하도록 보증하고 민간 기업이 환경오염을 시키거나 지역공동체에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역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정부는 법과 규제를 통해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민간 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건강권 침해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본다면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서 영업기밀과 노동자 건강권이 마치 저울질할 수 있는 동등한 가치의 사안인 것처럼 다루는 것 자체가 국가의 건강권 보호 책무에서 벗어난 행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건강권이라든지 사회권은 노동부나 복지부 같은 데서만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안은 정부가 건강권 보호라는 국가의 책무성을 충분히 다 하지 못한 사례였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40년 전에 발표된 논문의 한 도막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81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것인데. 나중에 토론자 분께서 말씀하시겠지만 노동자 알권리 운동이 확산되고 제도화가 진전되던 시기였죠. 당시에 논문을 발표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업장 건강위험을 확인하고 노동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데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가 노동자의 자율성 존중, 그 다음에 현재 작동하는 위험 분포의 정당화, 다음에 세 번째가 위험 감소를 위한 노력의 효율성 증진. 이 세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노동자가 유해물질 노출로부터 발생한 건강 위험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면, 해당 노동자가 그 위험을 자발적으로 수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작업장 건강위험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면 직업성 질환에 대한 산재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심지어 노동자들이 아예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재보상을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거죠.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되면 건강문제에 대한 부담이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 혹은 공적 재원으로 충당되게 되고 고용주의 부담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게 되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작업장 건강을 증진시킬 인센티브가 없는 게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작업장 내에서 알 권리의 충족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라고 지적했어요. 알 권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지금 소개한 논문이 40년 전 미국에서 나온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 학술지나 신문 사설에 발표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업장 위험요인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이거 공개한다고 바로 그 다음날 산재 인정 되고 보상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최소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겠죠. 유해하다는 것을 알아도 이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없거나 저감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력이 없다면 알 권리만으로는 건강권이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알 권리는 그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에 불과한데 이것조차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실 그 다음 단계로의 이행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CSR의 기본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인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제3자의 인권침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성찰해서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하고, 정부는 이 사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하면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정리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 1993년 시작된 산업연수생제도와 2004년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크게 늘어났고, 결혼, 유학, 재외동포 등 비(非)노동 이주민의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제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의 신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이주민의 장기체류하면서 의료서비스 이용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등 이주민의 복지 혜택에 대한 날선 공격이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 글에서는 건강보험 제도, 감염병 관리, 취약계층 의료지원 등 이주민의 건강보장과 관련한 실태를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1. 후퇴하는 외국인 건강보험정책
지난 6월7일 보건복지부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내-외국인 간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작성한 ‘외국인 건강보험정책 개정방안’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개선안의 요지는 외국인의 지역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현행 국내 체류기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임의가입을 의무가입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체류기간 연장신청이나 재입국 시 체류에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을 통해 체납을 방지하겠다고 했다. 지역보험료는 소득과 재산 기준에 따라 부과하되, 소득 파악이 어려운 경우에는 내국인 지역가입자의 평균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또한 피부양자 등록 서류 중 본국 발행 서류는 자국 외교부 확인 문서만 인정하겠다고 했다.
표1. 2017 건강보험 가입자 현황(2017년 12월 말)
(단위: 명)
건강보험
전체
외국인
재외국민
직장가입자
36,898,912
625,891
16,843
지역가입자
14,041,973
264,000
6,416
합 계
50,940,885
889,891
23,259
건강보험 가입률
95.6%1)
59.4%2)
N/A3)
출처: 국민건강보험. 「2017 건강보험 주요통계」
비고: 1) 주민등록인구와 외국인등록(거소신고 포함)을 한 합법체류 외국인인구 중 건강보험가입자의 비율
2) 외국인등록(거소신고 포함)을 한 합법체류 외국인인구 중 건강보험가입자의 비율
3) 재외국민 중 귀국해 주민등록을 한 자는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나 국내 체류 재외국민의 수가 별도로 집계되지 않아 건강보험 가입률 계산이 불가능함
2017년 건강보험 통계를 살펴보면(표1)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889,891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59.4%만 가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7년 기준 전체 외국인취업자 868,000명 중 72.6%(613.400명)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어 사회보험을 통한 의료보장이 취약한 상황이다. 특히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은 건강보험 당연적용 제외 사업장이 많다. 이러한 사업장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직장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고, 그러다보니 직장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지역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이번에 발표된 개정안에 의하면, 소득과 재산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은 ‘전년도 내국인 평균보험료’인 103,080원(2018년)을 매달 납부해야 한다. 직장 단위로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생겨나는 마당에, 체류에 불이익을 줌으로써 보험료 체납 문제를 예방하겠다는 방침은 이주노동자에게 심각한 건강권 침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서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적용제외 사업장을 최소화하며, 정부의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일 이번 개정의 주요 표적은 재외동포와 결혼이민자, 유학생들이다. 외국인의 지역보험 가입률은 직장건강보험보다 더 낮다. 방문취업제로 입국하는 재외동포들은 입국 후 취업교육을 받고 구직활동을 할 수 있어 구직기간이 다양하고, 주로 건설업, 서비스업,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소득 불안정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가입률이 낮고, 정기적인 보험료 납부도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을 임의가입에서 의무가입으로 전환한 것은 의료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바람직하지만, 대다수 재외동포를 포함한 비노동 이주민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장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체류 불이익으로 인한 미등록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피부양자 등록 서류 중 해외에서 발행된 서류는 문서 발행국 외교부의 확인을 받은 경우에만 효력을 인정하겠다고 한 부분도 우려스럽다. 재외공관 접근이 어려운 난민, 국내에 재외공관이 없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구비서류를 발급받지 못하거나 발급에 상당한 시일이 걸려서 건강보험 적용의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미숙아로 태어나거나 심각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이주 아동은 의료사각지대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종합해보자면, 이번 외국인건강보험정책 개정안은 내세우는 것과 달리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이주민의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직장건강보험료 납부와 지출에서 연간 2천억 원의 흑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빼놓은 채,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는 적게 내고 의료이용을 많이 하는 ‘먹튀‘라는 오명을 씌워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을 이주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건강보험정책 개정안 시행에 앞서, 현행 제도의 작동을 살펴보고 보완 작업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2. 감염병 관리와 이주민 차별
감염병은 국적과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병 관리는 국가 또는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펼쳐져야 한다. 결핵관리정책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결핵 발생율이 제일 높은 ‘결핵 고위험’ 국가에 속한다. 외국인 체류자들의 결핵 발생률도 높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 결핵관리정책을 세워 내-외국인 차별 없이 결핵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2016년 질병관리본부는 <외국인결핵환자 중점관리방안>을 만들어 치료과정에서 비순응하는 경우, 완치까지 기다리지 않고 전염성이 소실되면 바로 강제 출국시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주민들은 결핵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해고될 가능성이 높고, 또 성폭력 피해나 미등록 체류 등으로 신분이 불안정해지면서 꾸준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치 않은 채 치료비순응자로 분류하여 치료받을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인권침해는 물론 질병확산이라는 역효과를 가져올 올 수 있다. 올해 초 “한국 결핵치료 공짜, 외국환자 우르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언론 보도 때문에 국민들의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은 오해를 키우고 정부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핵을 포함한 대다수 외국인 감염병 환자는 이미 입국 단계에서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이들이다. 이들이 국내에서 감염병에 걸렸다면, 우리사회가 책임을 갖고 차별 없이 치료지원과 건강한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
3. 의료사각지대 이주민 의료지원 현황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희망의 친구들’에는 매일같이 이주민 의료상담 문의가 들어온다. 근무 중 소변을 참다가 정말로 방광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 간 이주노동자, 임신 사실을 모른 채 병원을 방문했다가 뱃속에서 태아가 이미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이주 여성, 독한 화학약품을 쓰는 공장에서 일하다 호흡곤란으로 대학병원에 실려 간 난민,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와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이른둥이 이주 아동. 이들 모두는 건강보험이 없어 평소 병원을 가지 못하다가 응급상황에 처해서야 도움을 요청했다. 2018년 5월 기준 국내 미등록 이주민수가 312,346명으로 전년대비 39.7% 증가하였고, 전체 체류외국인의 13.6%를 차지하며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하여 초과 체류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고용허가제 하에서 부당노동행위나 인권침해 때문에 사업장을 이탈하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최근 난민 신청자가 증가하면서 기나긴 심사 절차를 기다리며 불안정하게 체류하는 난민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모두 의료사각지대에 위치한 이들이다.
1) 정부 지원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 이주민들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조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 조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민족,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진료거부를 사전에 방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응급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응급의료비 대불제도를 통해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응급치료가 필요한 이주민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②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
2005년부터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 각종 의료보장제도에 의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 난민, 국적 취득 전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전국 국공립병원과 적십자병원, 지정병원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017년부터는 본인부담금 10%를 부과하고 있다.
2) 민간단체의 의료지원 활동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주민, 난민, 동포, 다문화가정 등 의료취약계층 이주민을 대상으로 민간에서는 다양한 무료 진료와 의료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이 운영하는 WeFriends Aid(이주민 의료공제회)는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여 상호 부조하는 의료지원 시스템이다. 가입비 1만 원과 월 회비 1만 원을 납부하면 협력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수가 100% 적용 감면되고 사무처에서 총 진료비의 50%에 해당하는 의료비(외래비, 약값, 입원수술비)를 지원해준다.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는 다문화가족과 이주 노동자, 난민 등을 돕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과 대한적십자사,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손을 잡고 개설한 의료센터이다. 서울적십자병원 3층에 있으며 외래진료와 입원수술비를 지원한다.
이주는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고 한국도 이미 30년 전부터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왜? 우리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라는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해외판례자료
‘과로자살’과 회사책임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
정해명 /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공인노무사
최근 경기 침체와 성장 둔화가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는 대신 기존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노동,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IT기술 발전에 힘입은 스마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하여, 기업은 언제, 어디서든, 아무런 제약 없이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 고강도 노동은 노동자에게 육체적 문제(과로)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스트레스)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과로 자체는 또 다른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의 문제는 자살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주제이다.
일본의 법률잡지사인 쥬리스트(JURIST)는 그 동안 각 법률 분야의 판례 100선(判例百選)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가 일본의 산재보험제도를 모태로 시작된 만큼, 일본의 산재 판례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 같다. 아래 판례 발췌 내용은 쥬리스트가 2002년 11월에 발간한 노동판례백선(勞動判例百選) (제7판)에 실린 판례 해설중 일부이다.1)
이 사건은 ‘장시간 심야근로’가 일상적인 일본의 회사에서 벌어졌다. 사망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도한 심신의 피로상태로 인한 우울증이 발병하였고, 끝내 자살에 이르렀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우울증과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였는데, 이는 과로자살에 대하여 회사(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한 중요한 판결이다. 이 판결은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이 일상화된 한국의 사용자와 노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고재판소는 사용자는「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하였고, 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이 같은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다. 이에, 최고재판소는 사용자인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불이행의 과실이 있어 유족에 대하여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1. 사건명
電通(덴쯔)사건
最高裁(최고재판소) 平成(평성) 12년(2000년) 3월 24일 제2소법정판결
(平成 10년(オ)제217호 손해배상청구사건)
2. 사실의 개요5)
Y사에서는 잔업에 관하여 자기신고제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장시간의 심야근무가 일상적이었고 심야잔업을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였으며, Y사는 이 상태를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Y사에는 다음날 출근유예제도 등도 있지만, 주지를 철저히 하지 않아서 그다지 이용되고 있지 않았다.
A는 1990년 4월에 입사하여, 같은 해 6월부터 sales(판매)ㆍevent(행사) 등의 기획입안 등 다양하고 바쁜 업무와 잡무를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A의 건강상태는, 과중한 업무에 의한 철야와 다음날 아침에 이르는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 하에서 차츰 악화되고 있었다. 한편 A의 근무에 대한 상사의 평가는 호의적이고 양호하였지만, 동시에 상사는 A의 근무태도나 이상행동을 알고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도록 지도하였지만, 인원을 보충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지는 않았다. X 등이 A의 과로를 걱정하고 있던 중 1991년 8월, A는 근무 중에 상사도 알아차릴 정도로 이상한 언동을 보였지만, 무사히 업무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다음 날 아침 자택에서 자살했다.
3. 판결 취지6)
「노동일에 장시간에 걸쳐 업무에 종사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등으로 피로와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규제나 노동안전위생법의 건강배려ㆍ적절관리규정(65조의 3)은 해당 위험발생의 방지도 목적으로 한다.「사용자는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에게 종사하게 할 업무를 정해 이것을 관리할 때, 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하고,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당해 주의의무의 내용에 따라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A의 업무수행과 우울증 이환에 의한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해당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였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2. 사실의 개요
본건은 전 회사원 소외 A의 과로자살에 대해서, A의 부모인 X등(원고, 피항소인ㆍ부대항소인, 피상고인ㆍ상고인)이 Y회사(피고, 항소인ㆍ부대피항소인, 상고인ㆍ피상고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던 사안이다.
제1심(東京地判 平成 8. 3. 28)은 A의「常規를 벗어난 장시간 노동」에 의한 과도한 심신의 피로상태와 우울증 및 우울증과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하고, Y의 이행보조자인 상사가 A의 상태를 인식하면서도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에 안전배려의무불이행의 과실이 있다고 해서 Y의 사용자책임(민법 715조)을 인정하여, 약 1억 2600만엔의 지급을 명했다.
제2심(東京高判 平成 9. 9. 26)은 Y의 배상책임에 관해 제1심 판결을 지지했지만, 손해액의 산정에서는 A의 우울증 친화적 성격, 합리적 행동(병원에 가는 등)을 취하지 않은 점, A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X 등의 잘못 등을 고려하여 A측의 과실을 인정하고, 과실상계(민법 722조 2항)를 유추 적용하여 그 3할을 감액했다.
3. 판결 취지
X의 패소부분을 파기환송.
(ⅰ) Y의 책임 「노동일에 장시간에 걸쳐 업무에 종사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등으로 피로와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규제나 노동안전위생법의 건강배려ㆍ적절관리규정(65조의 3)은 해당 위험발생의 방지도 목적으로 한다.「사용자는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에게 종사하게 할 업무를 정해 이것을 관리할 때, 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하고, 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당해 주의의무의 내용에 따라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A의 업무수행과 우울증 이환에 의한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해당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였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ⅱ) 과실상계의 범위 과중한 업무 부담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에서도 손해의 공평한 분담의 이념에 비추어 과실상계를 유추 적용하여, 손해의 발생ㆍ확대에 기여한 피해자의 성격 등 心因的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最一小判 昭和 63. 4. 21). 그러나 노동자의 성격은 다양하기 때문에「(어떤)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개성의 다양함으로 통상 상정되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한, 그 성격 및 이것을 기초로 한 업무수행 양태 등이 업무의 과중 부담에 기인하여 당해 노동자에게 생긴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하였다고 해도」그 사태는 사용자로서 예상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용자나 업무상의 지휘감독권한을 갖는 상사는 노동자의 적성을 판단하여 배치나 업무 내용의 결정을 하는 것이며, 그 때에 노동자의 성격도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성격 등이 전술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 법원은 당해 노동자의 성격 등을 심인적 요인으로 참작할 수 없다.
본건의 경우 A의 성격은 사회인 일반에게 종종 보이는 바이며, 상사는 업무와 관계에서 A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으므로 전술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A의 성격 등을 참작할 수 없다. A는「독립된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의사와 판단을 기초로 Y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던」것이며, X 등에게 과실 책임을 묻을 수 없다.
(파기환송심에서 화해성립, 1억 6800엔의 지급).
4. 해설
(1) 서문
과로자살은 bubble(거품) 붕괴 후 장기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급격히 증가하여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과로자살은 최저인원으로 회사에 대한 성과(공헌)를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의욕ㆍ노력ㆍ자기관리로서 요구하고, 마이너스 부분도 포함하여 개인에게 귀착시키는 노무관리ㆍ노동환경 하에서 노동하는 것에 대한 인간 정신의 고독한 저항이다.
과로자살은 과중한 업무가 심신에 과중한 부담을 준 결과로 나타나는 산업재해이지만, 사망원인인 자살이 심인적(心因的) 측면을 강하게 의식하게 하는 점에서 과로사(뇌졸증 등 신체적 질환의 죽음)와 구별된다. 과로자살은 직업병이나 사고를 전형적으로 하는 산재보상에서 멀어서 산재인정을 곤란하게 하며, 대신에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이 노동자 구제에 길을 열어 왔다.
산재 민사소송에서 사용자책임을 추궁하는 이론 구성은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이 있지만, 산업재해나 질병에서 계약상의 안전배려의무가 정해져 있는 점도 있어 채무불이행의 구성이 많다. 본건은 과로자살에 사용자책임을 긍정한 최초의 사례이다.
(2) 사용자의 책임
사고나 질병의 경우, 사용자의 무과실책임을 달리하면 주로 업무에 내재하는 위험의 회피조치를 둘러싸고 사용자의 책임을 물어왔다. 과로자살의 경우는, 과중한 업무를 과하여 정신을 해치는 위험을 만들어 내는 노무지휘 책임을, 따라서 위험이나 자살을 회피하는 조치의 부작위 책임을 묻는다. 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등을 들어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정신을 해치는 위험을 지적하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이러한 위험을 만들어 내는 책임을 묻는다. 다만 사용자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다하면 좋을지는 불명확하다.
위법한 장시간 잔업이나 애매한 노동시간 관리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고 정신을 해칠 정도의 업무「양」을 해내지 않을 수 없는 노동환경에서 노무지휘 책임의 문제이다. 따라서 부과된 업무의 수행에 노동자의 재량이 있는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부당한 노무지휘에 대하여 노동자는 당해 명령을 거부하고 그 무효를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고 그 밖의 불이익에 노출되게 되고, 부당한 노무지휘에 대항할 수 있는 근무청구권ㆍ노무급부거절권은 일반론으로서 긍정되고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이 법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위험회피나 손해발생ㆍ확대에 노동자 측의 기여를 논하여 노동자 측의 책임을 논의하는 것은 공정성을 결여한다(후술 4 참조). 나아가 전술한 왜곡된 노무관리ㆍ노동환경의 현실에 유의해야 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불법행위 구성을 채택하고 있다(같은 취지, 浦和地判 平成 13. 2. 2 三洋電氣서비스사건). 본건 하급심이 계약상의 안전배려의무로 검토하면서 어떠한 이유로 불법행위상의 주의의무로 구성하였는지는 불명확하다. 채무불이행구성과 차이에 관하여 양자의 차이는 없고, 채무불이행구성의 의의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과중 노동에 대한 손해배상에 한정되지 않는 법적 구제, 노동관계와 다른 분야와의 정합성, 상사ㆍ노무담당자책임(이행보조자)에 관한 이론구성 등 검토해야 할 과제는 남겨져 있다. 더욱이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사용자책임(민법 715조) 구성을 채택하지만, 민법 709조 구성도 가능하다.
(3) 과중노동과 자살의「인과관계」
자살은 일반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에서도 자살은 급여를 제한하는, 고의에 의한 사망(12조 2의 2)에 해당하게 된다. 산재 민사소송에서도 자살이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하게 되면 사용자는 예견할 수 없고, 자살과 인과관계가 중단된다고 해석된다.
법원은 이 문제를 ①과중한 노동이 노동자에게 정신적 질환을 초래하고, ②그 질환의 증상에 의한 자살이라고 파악하여 이 문제를 극복했다. 의학적 식견에 의존한 이 인과관계는 경험칙으로 정식화되었다. 다만 이 정식은 첫째로는 사실적 인과관계이다. 법적 인과관계(상당인과관계)로서는 사용자의 예견가능성, 회피조치(인원을 보충하는 등)의 유무ㆍ정도나 회피 가능성ㆍ정도 등이 검토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법적 인과관계로서 파악하고 있다. 東加古川幼稚園사건(最三小決 平成 12. 6. 27)에서는 퇴직 1개월 후의 우울증 상태에서의 자살과 과중노동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한 전술한 三洋電氣서비스사건에서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라 상당한 주의를 다하면 정신적 질환에 이환된 것을 파악할 수 있고, 이환된 자가 자살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사용자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여, 자살을 야기하는 정신적 질환에 이환되어 있던 것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지만, 승진 후의 노동이 과잉이라고 할 수 없고 자살이 본인의 素因에 의한 任意的이라는 요소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하여, 자살에 대한 기여도에 관해 본인 고유의 것이 7할이라고 하였다.
사안에서 사실의 취사선택ㆍ평가가 그 성부ㆍ정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어떠한(가치) 판단이 이루어져서 법적 인과관계가 인정된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특히 노동자 측의 사정이 기여도에서 고려된다고 하면, 사용자 책임의 구조와 관계에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 점은 민사소송법 248조에 의한 배상액의 비율적 인정문제에도 미칠 수 있다.
(4) 과실상계와 심인적(心因的) 문제
법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불법행위책임 성립 후의 손해액 결정함에 있어, 피해자 측의 과실을 묻는 과실상계의 유추적용에 의해서 조정하는 방법이 교통사고나 과로사 등의 사안에서 파악되고 있다. 피해자 구제의 요소가 가해자 책임의 범위나 법적 인과관계 성부 판단에 불명확함을 남긴 채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한 결과, 적절한 균형(balance)을 취할 필요를 느껴 그 장을 과실상계에서 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교통사고 판례를 선례로서 이러한 경험칙에 따라, 심인적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고 일반론으로 인정한 뒤, 노동자의 적성을 판단해서 배치나 업무 내용의 결정을 실행하는 사용자 측의 지휘감독권한을 바탕으로 과실상계법리를 과로자살에 적용하는 경우의 범위를 한정했다(판시(ⅱ)). 이 한정에 관해서는「항상적인『 과중부하』라는 현실적 사태를 직시한 뛰어난 정책적 경고」등, 다수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의 법리에는 의문이 제시되고 있다. 애초에 심인적 요인을 포함하여 피해자 측의 사정을 인과관계나 과실상계에 반영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이다. 민법학에서는 불법행위책임 자체가「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가해자책임이라는 형태로 피해자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분담시키는 것이며, 과실상계 자체가 한정적이라고 하여 피해자의 책임을 과실상계에 끌어 들이는 것에 소극적인 견해가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2에서 서술한 바이지만, 과로자살은 노동환경을 형성ㆍ관리하고, 그 아래에서 적성을 포함하여 노동자를「적정」히 배치하여 업무를 명하는 관계에서 생긴 사건이며, 교통사고 등과 같이 볼 수 없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노동관계의 이러한 특수성을 인정하여 과로자살에 대해서 노동자의 심인적 요인을 감액요소에 포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최고재판소는 과실상계법리의 통일성 요청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나아가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렇게 이해한 경우 법적 인과관계의 기여도에 노동자의 심인적 요인을 포함하는 것도 제한된다고 이해되고, 그 설명도 필요하게 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에도 최고재판소의 제한에 따라 과실상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오타후쿠소스사건(廣島地判 平成 12. 5. 18) 이외에, 앞에서 든 東加古川幼稚園사건에서는 노동자의 성격이나 심인적 요소에 비추어 8할을 감액한 원판결을 최고재판소 자신이 지지하고, 나아가 앞에서 든 三洋電氣서비스사건에서는 본인 등이 주치의에게 자살미수의 보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나, 근무계속을 원했던 원고의 언동 등에 대해서 과실상계 유사의 신의칙상 상계해야 한다고 했다(5할). 이러한 판결례에서 보면 과로자살에 관한 과실상계법리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에 의해서 확정되었다는 할 수 없고, 거꾸로 위 설명이 없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가족의 대응을 사용자의 책임감경대상에서 제외한 본건 최고재판소의 견해는 지지되어야 한다.
1) 아래에 실린 일본 쥬리스트(JURIST)사의 노동판례백선(제7판)의 번역은 노동건강연대 대표를 맡고 계시는 김진국 변호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연중기획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안전보건1)
번역․요약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은 기업이 기업 경영을 할 때 자발적으로 관련 이해당사자와 상호소통을 하면서 사회적, 환경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단순히 법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인적 자본, 환경, 이해당사자와의 관계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전하고 적절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영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 포함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음과 같은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 내부 영역 : 인적 자원 관리, 노동자 안전과 건강, 기업 윤리, 변화에 대한 적응, 조직 교육 -노동자의 참여 및 발언권 보장 • 외부 국내 영역 : 지역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경영 파트너, 지역 정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적절한 협력 • 외부 국제 영역 : 인권, 국제 환경 이슈,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건강과 안전,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소비자, 투자자, 국제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소통
• 내부 영역 : 인적 자원 관리, 노동자 안전과 건강, 기업 윤리, 변화에 대한 적응, 조직 교육 -노동자의 참여 및 발언권 보장
• 외부 국내 영역 : 지역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경영 파트너, 지역 정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적절한 협력
• 외부 국제 영역 : 인권, 국제 환경 이슈,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건강과 안전,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소비자, 투자자, 국제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소통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이끄는 주된 동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에 대한 관심(시장 확대, 보다 나은 평판 등), 조직의 연속성을 위해 기업 위험을 보다 잘 관리하는 것 등이다.
이는 또한 최근 기업의 재정 비리 등으로 인한 사회적 책임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기업의 투명성과 청렴성 요구가 증가된 것에 따른 반응 성격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광범한 이해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 혁신적 방법의 채택 등의 새로운 경영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자 안전과 건강 맥락의 변화를 추동하고 향후 방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이루어진 몇 가지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정착은 기업 내 최고 경영진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 내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행하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혁신적인 이미지를 형성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는 학습의 과정이었고, 처음부터 정해진 청사진이나 마스터플랜은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활동은 긍정적 비전과 개념에 의해 작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속가능성, 사회적 승인, 노동자 리더쉽, 새로운 경영 방침 개발, 새로운 시장 확보, 호감가는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 행복한 기업, 건강 증진, 이해당사자 만족, 사용자의 선택 등이 그러한 것들의 예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안전과 건강 영역에서는 그러한 긍정적 비전과 개념이 일반적이지는 않고, 주로 위험 감소와 관리라는 개념이 주된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성공적인 기업은 대부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 경영의 핵심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다. 윤리적 동기도 중요했다. 일부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위험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때때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영향과 생산 과정에 대한 영향 사이의 차이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하여, 이해당사자 모두에 대한 영향을 숙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 이슈는 전통적으로 생산과정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러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채택되는 기업도 있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그들의 노동의 의미에도 영향을 끼친다. 노동자들은 그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물도 자랑스러워하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자신을 기업과 동일시하게 되고, 노동자와 기업이 중장기적 관계를 갖게 된다.
광범한 이해당사자와 소통하고 투명성과 자료 공개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요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외부와 내부의 이해당사자와 균형잡힌 소통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자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된 내외부 소통 및 참여 경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기업들은 기업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있는 기업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도 중요하게 여긴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 영역에서 좋지 않은 결과는 기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있다. 이는 국내 및 국제 하청 관계에 있는 하청기업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전략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증진을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 기업 수준에서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상을 주고, 윤리적 규범을 제시한다
2. 지식 공유 : 성공 사례, 네트워킹, 시범사업, 가이드라인 등
3. 표준화 및 인증
4. 정보 공개 및 소통
5. 시민사회단체, 공공 및 민간과의 혁신적 파트너쉽
6. 윤리적 교역 및 무역
7. 재정 부문 투자, 재정적 인센티브
위의 영역 중 몇 가지들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을 활용하여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영역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 안전 및 건강 영역에 다른 점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대부분 기업의 자발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 및 건강 영역은 법적 제도적 강제사항이 많다.
실제로 아직까지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 및 건강 관련 파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그들은 환경 및 경제 영역, 경영 과정, 이해당사자 관계 형성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보건 파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발에 제한적인 관련성만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안전보건 영역에서 주요한 행위자는 사회적 파트너와 정부인데 반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보다 광범한 그룹과 관련이 있다. 시민사회, 미디어,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중요한 행위자이다. 노동자 안전보건 영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이를 활용해야 한다.
1) 이 글은 “European Agency for Safety and Health at Work,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and safety and health at work, 2004” 보고서를 요약 번역한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밖에 존재하는가
조기홍 /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 사용자 단체, 투자 회사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에서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중시 되는 분야가 환경 과 노동 분야인데, 환경에 대한 관심은 환경 단체나 기업에게서 모두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노동 분야 특히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들은 환경 분야에서의 책임 실적은 자랑스럽게 홍보하지만, 노동 분야의 실적은 되도록 감추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이슈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노동부는 2011년 산재율이 0.7%미만(0.65%)으로 떨어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산재 노동자의 수는 10만 여명에 이르렀고,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죽고, 24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한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매일 산재와 사투를 치루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최근 한국의 기업들은 너도나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고,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윤리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고 다치는 현실은 뒤로 하고, 사회 공헌 프로그램 몇 개 진행했다고 사회적 책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기업들이 발간하고 홍보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산재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삼성의 예를 들어보자. 삼성은 경영 원칙을 통해 환경, 안전, 건강을 중시하고(원칙4)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원칙5) 홍보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은 경영 원칙(4.2에)서
“인류의 안전과 건강을 중시한다. 안전과 관련된 국제기준, 관계법령, 내부규정 등을 준수한다.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쾌적한 근무환경을 조성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이러한 원칙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사망하였음이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삼성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영국 CR Reporting Awards 본상을 수상하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과연 이 같은 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대 건설은 지난 2007년, 2012년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이다.
필자가 속한 한국노총은 현대건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에 산재사망 노동자에 대한 기록과 산재 예방을 위한 대책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전문기관인 Corporate Register는 현대건설의 본상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도 있다.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간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들은 사회적 책임 평가 기관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G3 guideline, SA8000, SRI 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최재욱 교수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안전보건정책 및 계획, 활동 목적을 기술한 보고서는 전체의 60%에 불과했고, 산업재해 발생률을 다루고 있는 보고서는 36%, 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보고서는 22%에 불과하였다.
한국노총은 2008년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보고서에 대한 산업안전보건활동 평가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위 실태조사는 기업들이 2007년과 2008년에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중 국내 보고서 22개, 국외 보고서 46개를 분석한 결과이다. GRI guideline1)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 그 공개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산업안전보건지표(OSHL)2)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에서도 공개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책임(CSR) 측정 지표의 발굴
기업이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책임 측정 지표의 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측정 지표는 국제적 기준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하청기업의 산재율과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지원 사항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급증하고 있는 직업성 질환,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등의 항목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주도의 활동이지만, 노동안전보건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그 측정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노사가 공동으로 TFT를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면 이를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도 현재보다 확대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 통로,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풀어갈 수만 있다면, 기업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견인하고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GRI guideline LA6 - LA9
2) OSHL1 - OSHL2
저는 지금 수습 노무사들의 모임인 “노동자의 벗”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벗 기획 프로그램 중에 “반올림”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반올림은 반도체 산업 전반의 노동문제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데, 우리 모임에서는 반올림의 활동을 지원하고 삼성 백혈병 관련 소송, 해외의 관련 투쟁 등에 대해 함께 세미나 하고 기회가 되면 재판 참관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하기 전에는 첨단산업의 이면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 몰랐습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첨단 산업은 기존의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 건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나 봅니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교대제 근무 등 엄청난 노동 강도의 일을 하면서 백혈병 뿐 아니라 각종 희귀 질환에 걸려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재청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 역시 심각했습니다.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을 보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와 법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은 유해한 물질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유해 가스 등이 배출 되었다 하더라도 배기장치가 완벽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이를 흡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반도체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심지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암과 기형 발생, 사망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행법과 근로복지공단은 유독 물질을 사용하였는지, 환기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노동자에게 입증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사용 물질, 배기장치 등은 얼마든지 은폐, 개선할 수 있는데 이걸 노동자한테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입증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사용물질을 제출하라는 요구에도 삼성은 기업비밀이라며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불승인한 근거라고 하는 역학조사도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삼성 반도체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이 조사 의뢰를 한 산업안전공단의 조사는 낡은 시설에서 근무한 작업자들과 2000년대 이후 강화된 안전보건기준 아래에서 새로운 시설과 원료를 사용하는 작업자를 한꺼번에 조사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한 노동자의 차이를 반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 결과의 해석에도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계가 있는 조사결과를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 등 일부 반도체 업체들이 직접 조사를 의뢰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작업환경 조사결과에서는 감광제에서 벤젠이 검출되었는데도 이것이 공개되지 않다가, 이후 국정감사에서야 밝혀졌습니다. 이후 삼성은 다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는데 이 조사에서는 벤젠 등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작업환경은 평상시의 작업환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보다 유해물질 사용량과 발생량이 줄어들어 노출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한 피해 노동자들이 작업한 공정이 아예 없어지거나 시설이 교체되어서 유해요인 노출 정도를 제대로 추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백혈병 피해자들이 법정소송을 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는 더욱 공정성을 잃어갑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내부공문을 통해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가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고,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을 감안하여 소송 진행 중 특이사항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행정소송에서는 이해당사자인 제3자도 보조참가인으로서 소송에 참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우려한 사회적 파장이 무엇인지, 매년 1조가 넘는 산재보험의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삼성과 긴밀한 협조를 하는 것인지, 국가경제 차원에서 긴밀한 협조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을 취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장시간 야간근로를 하였고, 젊은 노동자 수십 명이 암과 희귀 질환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원인을 피해자가 스스로 밝혀내지 못하였다고 직업병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옳을까요?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은 어떻게 실현하려는 걸까요.
반올림과 함께 공부하면서 느낀 산재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을 기업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공단의 태도입니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산업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활동을 묵묵히 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끝>
4월 28일은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일하다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10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열린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는 열린다. 하지만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추모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 잡힌 것만으로 2010년 한 해 동안 2천 2백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였다. 하루에 6명꼴이고 4시간마다 한 명꼴이다. 산재 사망의 특성상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음을 고려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정부도 이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안심일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오랜 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것일까? 기업이나 정부 말처럼 우리 노동자들이 ‘안전불감증’에 빠져서인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구조 자체가 이러한 상황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노동 구조, 고용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돌파구는 없다.
가장 문제는 점차 심화되어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안정한 고용 형태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도급이 사슬을 이루고, 용역과 파견 노동으로 노동 인력이 대체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수준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2007년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이 시행한 연구에 의하면, 상용직에 비해 일용직, 파견직, 임시직, 시간제 등 비상용직의 산재 사고 발생 비율이 높았다. 특히 일용직의 경우 상용직에 비해 6배 이상 산재 사고 발생 비율이 높았다. 이를 원하청 고용 구조별로 비교하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원청 노동자에 비해 하청 노동자는 2.5배, 파견 노동자는 1.8배나 사고 위험이 높았다. 산재 위험이 비정규직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하청 노동자, 용역 노동자, 파견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더 산재를 많이 당하는 까닭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직업을 얻기 위한 계약 경쟁 속에서의 경제적 압박, 일단 직업을 얻은 후에는 계약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압박, 최저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많은 수가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는데 이러한 상황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사업주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힘들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등은 큰 사업장이나 정규직 노동자가 거부한 일을 하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산재 예방 시스템 자체를 허물어뜨린다는 면에서 더욱 문제다.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등의 존재 자체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해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도 동원된다. 그래서 한 작업장에 그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가 존재함으로써 전체적인 안전보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 임시노동자나 하청노동자는 해당 작업에 경험이 부족할 때가 있고, 직업안전보건 관련 규칙이나 법규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와 관련된 정보의 교육 기회가 박탈되기도 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그들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체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제도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도 문제다. 1980년대에 틀을 갖춘 관련 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그 제도에 따른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하거나, 권리 주장을 하였을 경우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권리와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뿐 아니라, 산재에 대한 보상 제도인 산재보험 제도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안전망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특수 고용 노동자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적용대상이더라도 정보 부족이나 고용 유지에 따른 불안 때문에 이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 구조 개편, 유연화 된 생산방식의 도입 등, 최근 들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제 및 산업 구조도 이전의 건강 문제와는 다른 형태의 건강 문제를 광범위하게 야기하고 있다.
생산방식의 변화로 생산과정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생산기일도 여유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노동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한 시간도 불충분해지고 있다. 무리한 생산량을 정해 놓고 이를 자동화된 공정에서 수행해야 하기에 빠른 생산 속도에서 지속적으로 노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한편 노동을 효율화한다는 명목 아래 생산기일을 매우 짧게 잡아서 노동을 쥐어짜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빠른 생산과정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력과 시장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감소하기는커녕 더욱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역시 OECD 국가 중 1위임은 잘 알려져 있다. 법률에서 정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다양한 형태로 초과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생활을 온전히 직접 임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법정 노동시간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않는다면 생활의 어려움에 봉착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초과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절대적 노동시간의 증가와 별도로 비정상적인 노동시각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교대근무가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고, 야간 근무,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 역시 비정규직과 서비스직에 두드러진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작업장에서의 노동을 감시, 통제하는 방법도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 CCTV를 설치하여 노동자 개개인의 활동을 감시함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메일까지도 검사하는 등, 노동의 질 관리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동의 자리가 점점 더 병영 혹은 감옥을 닮아가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유연화 된 생산방식은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등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형태로 경영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에 따른 건강 영향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짊어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기업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요즘 한국의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 혹은 ‘국제 기준’을 많이 떠들고 있다. 이것이 한낱 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항목에 고용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얼마나 잘 보장하는가와 관련된 지표가 적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업에 막대한 벌칙을 주는 제도도 강구되어야 한다.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사업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업주에게 징역형을 처하고, 징벌적 배상에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법안이 있다.
작업장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여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안전보건 선진국의 경우 예외 없이 작업장에 노동자들이 선출한 노동자 안전보건 대표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사업주가 보장한 시간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그 지식으로 사업장을 순회하며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 도입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일상적 산재 예방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도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전시 행정 위주의 지도, 감독으로는 현실을 바꾸어내기 힘들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에 대한 감시, 감독, 제재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자율’과 ‘규제 완화’가 아니라, ‘감독과 제재’, ‘규제 강화’가 노동안전보건 정책의 모토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역사가가 어떻게 기록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는 한 시대를 가르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현대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내놓은 이래 숨가쁘게 달려온, 원자핵을 쪼개거나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군사적으로 또는 ‘평화적’으로 이용해 왔던 100여년의 시대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핵폭탄이 사용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 핵발전소가 폭발해버린 체르노빌의 비극도 있지만, 후쿠시마는 두 가지 점에서 차원을 달리 한다.
첫째, 후쿠시마 사고는 단기적으로 안정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단지의 운영자인 도쿄전력이 밝혔듯, 후쿠시마 제1원전에 위치한 1호기부터 4호기 원자로(심지어는 5, 6호기에 저장된 사용 후 핵연료까지)의 압력용기 내 핵연료가 냉각되기까지 6개월에서 9개월까지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우에 그렇다. 지금까지 대기, 바다, 지하수 등으로 배출된 방사능 물질량은 최악의 사고라고 했던 체르노빌 때의 배출량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도 상당히 긴 기간 동안(최소 6개월 이상) 방사능 물질이 계속 방출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한 달 안에 방사능 물질의 방출을 중단시켰던 체르노빌과 다른 것이다. 이제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는 ‘방사능 물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핵에너지 이용의 정당성에 대해서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 것이다.
둘째, 지구화된 시대의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말 그대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으며 우려와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충격과 우려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 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는 점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이 직접 시청자들의 눈에 각인되었고, 거의 매시간, 매일 단위로 핵사고 피해의 참상, 핵사고 수습의 어려움을 접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수십 년 혹은 수 년 이후에야 단편적으로만 알 수 있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체르노빌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장담하는 국내 전문가의 인터뷰 도중, 그를 조롱하듯 갑작스럽게 보도된 폭발 장면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일이다.
이미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자주 언급되는 책이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1986년에 출판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새물결, 2006년)가 그것이다. 『위험사회』는 근대적 위험의 인식과 관리가 과학기술 전문가(기관)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점점 더 논란에 휩싸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주목할 만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통찰은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중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 대목을 강조하고 싶다.
“위험 분배의 역사는 부(副)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다. 즉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그런 만큼 위험은 계급사회를 폐지하고 않고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위험사회』75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직후, 최악의 상황 속에 사고를 수습하도록 남겨진 ‘50인의 결사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남았는지, 아니면 그들의 의사에 반해서 남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언론은 그들이 하루 일당 10만원 수준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보도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한줄도 읽지 않은 사람도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는 점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민영화된 공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어떻게 일이 돌아갔을 것인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핵심인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웃소싱’되었을 것이고, 대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물론 핵발전소가 폭발한 상황에서 그 ‘핵심인력’이란 폭발 현장에서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작업해야 할 인력이겠지만.
잠깐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최근 <시사인>(2011년 4월 23일자)에서 한국의 핵발전소의 비정규직 고용 현황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핵발전소 운영자는 (주)한국원자력수력으로 공기업이기는 하지만 소위 ‘공기업 선진화’ 등 정부 정책으로 인해서 점차 인력이 줄고 있다. 핵발전소 20기가 가동되던 2010년에 한수원 현장 인력은 3,247명이었지만, 21기가 가동되는 2011년에는 오히려 3,141명으로 줄어들었다. 줄어든 인력(과 추가로 필요한 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과 외주 하청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이런 일은 주로 정비와 지원 업무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발전소 내 방사능 오염 구역의 배관을 점검하고 교체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2006년 건설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당시 포스코 협력업체의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임금이 정규직의 36%에 불과하며 3천 명이 일하는 곳에 화장실이 10개도 안 되는 사실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포스코 본사 점거도 불사했다. 한 인터넷 신문은 파업에 참여 중인 쉰 초반 배관공의 삶을 전했다. 그는 핵발전소 내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씨가 말랐어요. 고리 원전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평생 동안 쬘 수 있는 방사능이 정해져 있다데요. 검사 해보니까 난 이미 다 찬 거야. 그래서 이제 원전일은 하고 싶어도 못 해요.”(김하영, 『프레시안』 2011. 3. 22).
핵발전소 내 방사능작업 종사자의 방사선량 허용 한도는 연간 50mSv로 일반인 기준 1mSv에 비해 50배나 높다. 이 쉰 초반의 배관공은 그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먹고 살기에 바쁜 그는, 허락만 되면 50mSv이든 뭐든 언제라도 핵발전소 안으로 일하러 갈 듯한 태도다. 그나마 안전관리 지침이 작동해서 그의 방사능 노출량이 기록되었고, 한도치를 넘어선 그가 더 이상 방사능 노출 작업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국에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핵발전소 내에서 일하면서 방사능에 노출되었는지, 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방사능 노출에 의한 그들의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체계적으로 모니터하고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피폭 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작업 참여는 중단되었지만, 그 이후로 팽개쳐 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핵발전소 일자리는 대단히 위험한 일자리다. 일상적인 방사능 노출을 감수해야 하며, 또한 후쿠시마 같은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고액의 연봉과 국가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으로 그 위험을 기꺼히 감수하겠지만 (아마도 한수원의 고액 연봉자들일게다),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위험은 노동시장의 하층을 점하는 이들(위의 쉰 초반의 배관공과 같은 이들이다)에게 노골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들은 몇 푼의 지원금으로 위험 감수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 이런 일들은 비단 핵발전소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항과 광양의 대규모 제철소, 여수와 울산의 화학단지 등에서 위험의 불평등한 배분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위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들은 쾌적한 사무실에 앉아 화면에 떠오르는 증권 시세를 관찰하는 자본가들이겠지만.
* 그림 5. 캐나다 노총이 2000년 4월에 발간한 보고서 “환경 변화 시기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우리는 계속 이런 위험한 일자리에 매달려 있어야 하나? 보다 안전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없는 것일까?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녹색일자리’ 운동이 이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준다. 1970년대 초반, 전세계적 차원에서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 축소를 걱정하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환경운동과의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로 변하자 ‘녹색일자리’ 운동이 제안되었다. 환경도 보호하고 일자리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고,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운영하는데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내자는 주장과 실천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1991년의 리우 환경 정상회의를 전후로 유럽과 호주 등에서 노동조합과 환경단체가 연대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노총과 UNEP, 그린피스 등이 다시 ‘녹색 뉴딜’ 등을 주장하며 녹색일자리 창출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환경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어 낸다는 ‘녹색일자리 창출’ 담론은 거의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녹색일자리 전환’은 그렇지 못하다. 녹색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누군가는 ‘승자’가 되겠지만 누군가는 ‘패자’가 될 수 있기에, 누구도 꺼내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다룰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북미 노동조합이 1980-90년대에 주창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의 탄생은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원로 노동운동가 토미 마조찌(Tony Mazzochi)에 힘입은 바가 크다. 레이첼 카슨의 명저『침묵의 봄』을 읽은 후 마조찌는 의문을 가졌다. 저농도 농약에 의해서도 생태계가 파괴되고 더 이상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온다면 고농도의 농약을 직접 다루는 노동자들은 과연 안전한 것일까? 그래서 그는 ‘독성경제 (즉, 화학산업)’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이 비독성경제에서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고민했다. 즉, 환경친화적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것이다. 이를 1990년대 캐나다의 노동조합이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명명하고 체계화했다.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현재의 생산체계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속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동시에 그러한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손실을 입게 된 노동자들에게 공평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고용 전환에 필요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 시기 동안 수입이 보전되어야 한다. 한편 새로운 산업은 녹색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이를 위한 공공투자 자금의 조성 등이 요구된다.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국제 노동계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기후변화 국제회의에도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의 기후변화 관련된 법률에는 정의로운 전환 원칙을 반영한 조항들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미국 의회에서 발의된 리버만-워너 법안에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여기에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양질의 직업 교육, 임시 임금 보조, 훈련 프로그램 참여 기간 동안의 의료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호주의 노동당 정부는 2008년에 ‘탄소오염감축계획(CPRS)’을 수립했는데, 그 일환으로 마련된 기후변화행동기금(Climate Change Action Fund: CCAF)에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고 배출권을 경매하여 얻어진 수익의 일부로 21억5천만 달러 규모의 기후변화행동기금을 설립하고, 그 일부를 ‘노동자와 공동체의 구조적 조정 사업’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한국의 녹색일자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침(浮沈)은 있지만 환경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삶의 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한 것이 소위 ‘녹색 경제’ 영역을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조사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 현황을 보더라도 녹색일자리는 분명 확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제조업체 고용 규모는 2004년 689명에서 2009년 9,151명으로 13.3배 증가했으며, 연평균 증가율은 62%에 달했다. 2010년 고용 규모는 전년대비 28% 증가한 11,715명으로 전망되었다. 또한 사회적 경제 안에서 창출되는 녹색일자리도 아직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5개 회원사들이 참여하는 재활용 대안기업연합회의 일자리는 2006년 248명에서 2009년 65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창출되는 녹색일자리들이 과연 ‘괜찮은 일자리’인지, ‘정의로운 전환’ 전략에 들어맞는지 의구심이 크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 내의 대표적인 녹색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의 경우, 노동시장 내 취약계층의 일자리로 고정되면서 낮은 임금이 지속되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라고 하기 힘들다. 한편 현대중공업 사례를 보면 ‘정의로운 전환’ 전략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의 조선 사업본부를 중심으로 500여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최근 들어 시작된 태양광 에너지 부문에는 800개의 일자리가 생겼으며, 군산의 풍력발전기 생산 공장에서도 1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군산의 풍력발전기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 후쿠시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 노동운동가는 다음과 같이 반성했다. “이미 사용기간이 지난 원자력발전소를 연장해서 사용하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조운동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 줄 뿐이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무기력한 노동운동과 다르게 ‘반핵과 생태’라는 가치 지향을 명확히 하는 독일운동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독일노총(DGB)은 지난 3월 26일, 독일의 4대 대도시인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에서 약 25만 명이 참석한 대중 집회를 열면서 원전폐지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 노동운동 내에서도 핵을 둘러싼 갈등이나 ‘회색경제’와 ‘녹색경제’ 사이의 대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운동은 새롭게 성장하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비롯하여 녹색산업의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시민사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회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노동운동이 풍력산업의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녹색산업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환경운동과 연대하자. 21세기 노동운동이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참고 자료>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성)을 위하여』새물결 1986
한재각. 기후변화․고용위기의 시대, 녹색일자리 전환의 필요성『환경과 생명』2010년 2월호
한재각 등.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녹색뉴딜 정책 평가: 녹색일자리 분야를 중심으로』국회의원 이미경․이찬열․홍영표 의원실 2010
한재각 등.『시민사회 내 분야별 녹색일자리 현황 조사 및 개선과제 연구』함께 일하는 재단 2011
김미영. ‘질 좋은 녹색일자리로 전환하자’. 『민중의소리』2010. 11. 26.
http://www.vop.co.kr/A00000340790.html
이종래. ‘노조의 원전 대응…독일, 일본 & 한국’. 『레디앙』2011. 5. 6.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321
1) 이 소절의 상당부분은 2010년에 작성한 필자의 다른 원고에서 일부 옮겨온 것임을 밝혀둔다.
미국엔 좋은 차를 탄 사람 순서대로 출근한다는 말이 있듯, 성공한 사람들의 아침은 부지런하다. 새벽 3시에 기상하는 빌게이츠, 아침 7시30분이면 업무를 시작한 잭 웰치 전 GE 회장 등 세계를 움직이는 CEO들은 하나같이 "아침형 인간" 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해 뜨기를 재촉했다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을 비롯해 우리나라 1백 대기업 CEO들의 평균 기상시간은 5시54분,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새벽 5시에 기상한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의 숱한 조찬 모임 역시 아침형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다... - ‘성공을 부르는 아침형 인간의 조건’ (중앙일보. 2003.12.28.)
이 본원적 축적에 대해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자연법 철학자들이 국가의 출현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과 똑같이, 자본의 출현에 관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노동자가 존재했는데, 그는 아주 정열적으로, 지능적이고 경제적으로 노동하여 저축하고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노동을 시키고 음식을 먹여주는 식으로 도왔습니다. 이 관용의 대가로 그는 자신의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었으며 증대된 재화를 갖고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불쌍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노동, 절약, 관용에 의한 자본의 축적이 유래합니다. - ‘마키아벨리의 고독’ 루이 알튀세르
유행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남들 다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왠지 뒤쳐지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특히 이러한 유행은 언론이나 방송매체를 통해서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어떤 패션, 어떤 말, 어떤 직업,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학문 등등
이 중에서 최근 유행하는 말 중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평생을 사는 동안 1/3 이상을 잠으로 보내게 되는데, 이렇게 허송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덜 자고 열심히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정도로 이해가 된다. 즉 이 유행어의 함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잡는다’는 속담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왜 주목을 받게 된 걸까? 요즘 사람들이 늦잠을 많이 잔다거나 회사나 학교에 지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는 통계조사결과가 나온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아침형 인간’을 얘기할 때는 빼놓지 않고 나오는 예가 배로 재벌 총수들인데, 다시 말해서 통상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 CEO는 몇 시부터 일어나서 일을 시작한다든지, 또 어떤 정치인은 몇 시부터 일어난다든지 등등. 예컨대 사회에서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한 사람들의 생활을 분석해보니 평범한 사람들과 어떤어떤 점이 다르더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 사람들처럼 ‘아침형 인간’으로 살면 경제적으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얘긴데... 말처럼만 된다면야 이건 보물지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없을 지도 모를 보물지도를 찾는 것보다야 힘들지만 부지런히 살면 누구나 다 재벌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눈이 번쩍 뜨일 일인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의 등교시간은 오전7시30분이었던 것 같다. 더 빨리 등교를 해야 하는 일류학교(?)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새벽3시에 일어나는 빌 게이츠에 비한다면 늦잠을 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고등학생들의 평균 취침시간을 생각한다면 결코 늦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이미 ‘아침형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일류대학 입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침형 인간’으로 3년을 꼬박 살아도 말이다.
‘아침형 인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에 대한 일종의 신화이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어떻게 부자는 탄생하는가에 대한 자본주의적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신화는 진실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진실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아침형 인간’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게으른 사람들보다야 경제적으로 잘 살게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점에서 진실의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지런한 사람들이 재벌만큼 잘 살게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가 「자본」에서 본원적 축적을 설명하면서 ‘자본의 출현’에 대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의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도덕적인 설교에 대해서, 소위 본원적 축적 과정에서 이루어진 약탈, 도둑질, 가혹한 세금에 관한 이야기, 토지로부터 쫓겨나고 농지가 파괴되어 거리로 내몰린 영국 농민층의 폭력적인 토지수탈에 관한 이야기 등의 예를 통해서 비판하고자 했던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에 비해서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게을렀기 때문에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어쩌면 이미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일찍 일어나야 진정한(?)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럼 결국 잠도 포기하라는 말인데... 이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더라도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처음에 했던 질문, 그러니까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필자는 수많은 우리나라 노동자를 숨가쁘게 몰아세우고 있는 이 ‘아침형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연원이 진지함과 성실함이라는 윤리적 의무감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지함과 성실함’ 자체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동자들로 하여금 현재도 충분히 진지하고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강조되는 ‘윤리적 의무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을 인류학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라는 학명으로 부르며, ‘호모 파베르’(제작하는 인간)라 부르기도 한다. 전자는 고전적․계몽적 이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후자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경제 우위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호모 루덴스’(노는 인간)는 인간이 그리고 노동자가 ‘생각하고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님을 얘기하고 있다. ‘아침형 인간’을 이야기는 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한번이라도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빨리 잡혀먹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