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언론과 건강캠페인에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대개 금연과 절주, 규칙적 식사와 운동, 수면 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과연 노동자들이 이 권고사항들을 지키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일찍 사망하는 이유를 개개인들의 행동에서 찾는 시각들이 있다. 매일 아침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이나 건강캠페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어떤 건강식품이 좋더라. 등등.
이러한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연구들 중에 이른바 ‘장수마을 연구’라는 것이 있다. 한국 노화학회, 백세인연구단 등에서 ‘연구’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장수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오래 까지 직업활동을 해왔다는 것. 남성은 75세, 여성은 72세까지 농사일 등 생업에 종사했다. 1백세 이상 장수자의 38%는 지금도 집안일과 마을 나들이, 밭일 등 육체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가장 즐기는 여가활동은 TV 시청으로 67%를 차지했다.... 1백세 이상 장수자가 인구 10만명당 21인을 초과하는 이른바 장수촌이 전국적으로 14개 시.군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주변의 중산간 지역에 몰려있으며 전남 및 제주 해안이 일부 포함된다1).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 8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 “담양-곡성-구례-순창”이고 이곳이 한국의 장수벨트라는 연구도 있다2).
직접 만나본 이들의 두드러진 공통점 중 하나는 몸을 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토란줄기나 고추를 다듬고, 텃밭을 일구며 잡초를 뽑는 것은 운동 삼아 하는 적절한 노동인 셈이다.....식사 습관은 어떠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삶은 돼지고기, 국수, 나물 등 개인차를 보였으나 평상시 메뉴는 대체로 쌀밥과 무공해 또는 저공해 채소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다3).
이러한 ‘연구’의 치명적 약점은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농현상으로 젊은 층이 농촌을 떠나 노인인구가 농촌에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여 노인인구비율이 농촌에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도 고려되지 않는 연구가 무슨 연구인가? 이들이 들고 있는 장수의 특징을 보자. 노동을 한다고? 농촌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육류섭취가 적다고? 소득수준이 낮다보니 음식물 섭취는 당연히 육류섭취가 적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이러한 ‘연구’가 주류의학계와 매스컴이 연구하고 선전해대는 것들이다.
건강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건강이나 수명이 사회적 요인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최근 진보적 소장학자 8명이 펴낸 ‘빈곤과 건강’이라는 연구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에서의 건강수준은 소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흡연, 음주, 혈압 등의 이른바 주류언론과 주류학자들이 선전하는 위험요인이 똑같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일찍 죽고 질병에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소득등급을 다섯 단계 또는 네 단계로 나눌 경우,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군보다 가장 낮은 군은 사망률이 2배 높은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의료 서비스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하여 훨씬 적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빈곤층은 고소득층에 비하여 건강수준은 낮으면서도 의료이용은 적게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격차는 국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2년 UNDP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미화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는 인구가 12억 명에 이르며, 매년 1,100만 명의 5세 이하 어린이가 사망하고 있다. 1998년 현재 영아사망률은 OECD 국가가 1,000명 출생당 6명인데 비하여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무려 92명에 이른다4).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고 흡연을 안하고 절주를 하고 고혈압을 치료해도 부유층이나 기업주보다 두배 이상 많이 죽고 이를 수명으로 계산하면 10년 이상 못산다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심지어 노숙자들의 평균수명은 50살에도 못 미친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부자들이나 기업주보다 최소 30년 이상 일찍 죽는다.
개인의 건강이나 수명이 개인의 노력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물론 그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과 수명의 가장 큰 규정요인이다. 노동자 개인이 아무리 건강관리를 해도 건강의 불평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원인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노동자는 건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건강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노동자들을 일찍 죽게 하고 병들게 하는 사회적 원인들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것이 낮은 우리사회 의료보장의 매우 낮은 보장률이다. 간단히 말해 건강보험이 보험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보험은 사고에 대비하여 평소에 이를 대비하자고 만든 제도이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인 사회보장제도는 전국민이 병자나 노인들을 위해 조금씩 십시일반하여 돈을 모아 중병이나 노후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고가 터지면 , 즉 가족 중 한 명이 중병에 걸리면 건강보험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건강보험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보험증은 의료할인쿠폰에 지나지 않는다.
표 1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공적보험(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보장률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병원비가 1000만원이 나오면 자기 주머니에서 55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중 한사람이 암에라도 걸리면 진료비가 2-3000만원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암치료나 난치병 치료는 한 두 해에 끝나는 일도 아니다. 단돈 몇 백 만원 구하기도 힘든 노동자가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처음에는 집을 팔아 월세로 또는 월세에서 사글세 방으로 옮긴다. 그래도 병원비를 마련할 수가 없어 퇴직금을 얻기 위해 사표를 쓴다. 친척들에게 몇 백만 원씩 빌린다. 그래도 병원비가 더 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머지 가족들의 앞날을 위해서 환자를 죽이거나 죽기까지 치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중증질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를 대다가 결국은 자신의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던 어느 노동자 애비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불쌍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가? 아니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환자의 생명인가 아니면 나머지 가족들의 앞날인가 라는 ‘야만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다.
부자들은 그리고 기업주들은 평소의 저축이 있으니 중병이 생겨도 걱정이 없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사회보장뿐이다. 다른 나라들을 보자. 대개 80% 이상의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한다. 그리고 그 의료비도 일정액수 이상이 되면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어 얼마이상의 돈이 들면 정부가 그 돈을 부담한다. OECD 국가라고 자랑을 하는 한국 정부, 걸핏하면 글로벌 스탠다드를 운운하는 한국정부, 세계 무역대국 12위라고 자랑하는 한국정부가 정작 따라가야 할 글로벌 스탠다드는 2만불 국민소득의 장미빛 미래를 떠들 일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의료보장의 스탠다드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에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진료비의 80%를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가 하는 일은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예산액의 90%를 삭감한 일이다. 참여복지? 일인당 200만원 이상의 진료비가 들 경우 정부가 그 이상의 돈을 대신 내주는(물론 국민세금으로 내주는 것이다)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려면 1년에 약 8000억원 가량의 돈이 든다. 이렇게만 하면 중병에 걸린 딸네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예산에 1조 5천억원의 국방비를 증액시켰고 여기에 더해 이라크 파병에만 1조원을 쓰겠다고 한다. 이게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참여복지이다.
그런데 왜 노동자가 기업주나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질병에 많이 걸리고 건강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일까? 그 원인은 바로 공장과 사무실에서, 즉 그들의 노동에서 찾을 수 있다. 한해에 3천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재와 직업병으로 죽어나간다.
노동자들의 실수인가? 기업주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산재에 관한 기업주가 후원하는 연구나 주류학계의 연구들을 보면 “산재다발 노동자들의 특성연구”와 같은 산재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연구들이 수없이 많다. 산재조차도 노동자 개인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시설의 부족, 노동환경의 열악함, 노동강도의 강화 등으로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고 직업병으로 과로사로 장애인이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98년 경제위기 이후 안전기준의 규제완화와 급격히 늘어난 노동자 사망률만 보아도 이는 명확하다5). 산재와 직업병 같은 직접적인 질병만이 아니다.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한 장기적 피로와 스트레스는 이른바 성인병이라는 고혈압, 당뇨, 암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이 부분은 다른 글들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으리라 짐작되어 여기서는 줄인다. 다만 노동자가 불건강한 원인은 바로 노동자가 기업주의 이윤을 위해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명확해져야 한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기업주의 이윤을 위해 뼈빠지게 일을 하다 산재에 걸리고 직업병에 걸리고 성인병에 걸려 병원에 가면 그 병원에서조차 노동자는 또 한번 그 병든 몸뚱아리마저 다시 한번 기업의 이윤을 위한 도구로 바쳐질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이다. 표 2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사적의료기관비율은 90%가 넘는다. OECD 평균 공적의료기관비율이 75%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공적의료기관의 비율은 10%이다.(표 2참조)
그런데 그 사적의료기관이 어떤 곳인가? 대표적인 병원을 생각해보자. 삼성병원과 현대병원이 대표적인 재벌병원이고 사적의료기관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본은 그것이 병원자본이건 산업자본이건 이윤을 위해 존재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노동자의 병든 몸은 적정진료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돈이 되는 진료와 과잉진료의 대상이 된다. 단적으로 보아 한국의 CT와 MRI와 같은 고가의료장비의 인구당 비율이 전세계에서 미, 일에 이어 3위이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병이 많아 이런 고가장비들이 필요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도 고가장비를 이렇게 많이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평균수명은 우리보다도 훨씬 높으며 의료비부담도 적다. 이러한 이유는 오직 하나 즉 사적 자본이 의료부문에서도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불필요한 고가장비를 수입해왔기 때문이다. 고가장비를 도입했으니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불필요한 검사가 남발된다. 두통만 있다하면 엠알아이를 찍고 배가 아프다면 CT를 찍는다. 이른바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진료비는 똑같은 병으로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대 드는 비용의 2-3배가 든다. 가뜩이나 부족한 국민의 보험료로 걷은 보험료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병원부문에 투자된 자본의 돈벌이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그 많은 돈이 나가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높은 질의 치료라도 받는 것인가? 병원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지적하고 투쟁하고 있듯이 사적의료기관은 다른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을 통해 의료인력과 의료보조인력을 최대한 줄이고 병원에서 맡아야할 간병을 환자보호자에게 맡긴다. 격무에 시달리는 병원노동자들이 환자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아니 제대로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챙길 수나 있겠는가?
병원에서 환자가 이윤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펴야 할 대상이 되려면 병원이 이윤추구와 무관한 공공의 소유와 운영이 되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국가의료체계의 근간이 공공의료기관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 낭비 없는 의료행위, 적정한 진료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고 재정절감을 통해 의료보장의 확대가 쉬워진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매스컴이나 수많은 건강캠페인에서 말하는 건강수칙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노동현장에서 기계취급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환경과 노동강도를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료보장과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의 모자람을 이야기하면 정부당국자와 주요언론들은 ‘그거야 그나라들이 잘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답을 한다. 그러나 잘살아도 의료보장이 엉망인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평균 국민소득은 훨씬 높지만 전국민의 15%인 4500만명이 아예 의료보험증이 없다. 한마디로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복지후진국이다. 바로 공공보험과 공공의료기관이 적어서 그렇다. 거꾸로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공공의료를 대폭확충하고 의료보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영국이 그 체계를 도입하였던 것은 1945년이었다. 그 당시 영국이 지금 우리나라보다 잘살았던가? 아니다. 결국 한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보장과는 별 연관이 없다.
오히려 사회보장수준과 연관이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각과 투쟁이다. 유럽의 사회보장이 잘된 나라들은 어떻게 그런 상태에 도달했을까? 기업주들과 정치인들이 알아서 복지혜택을 주었을까?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잘 알다시피 투쟁 없이 얻어지는 노동자들의 몫은 하나도 없다. 이른바 사회보장 선진국들의 노동자들은 수십년 동안 아니 거의 백년 이상 사회보장을 위해 싸워왔다. 나라마다 그들의 사회보장을 얻어낸, 의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늘린 과정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투쟁의 역사였다.
기업주들과 부자들에게 사회보장은 별 필요가 없다. 자신들은 병에 별로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에 걸려도 쌓아 놓은 돈이 있고 노후보장도 걱정이 없다. 또 사업주는 의료보험이 확대되면 보험료를 50% 부담해야 하고 연금도 그만큼 부담해야 한다. 공공의료가 늘어나면 당장삼성병원과 현대병원은 과잉진료하기가 어려워진다. 또 의료보장이 확대되면 삼성생명이나 엘지보험같은 곳에서 암보험이나 생명보험을 팔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재벌들은 의료보장 강화와 공공의료기관 강화에 죽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르다. 의료보장이 되어야만, 사회보장이 강화되어야만 기댈 곳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되고 최소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사회보장이 잘될수록 노동자들은 개별 기업주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의료보험이 되고 노후보장이 되며 실업보장이 있고 교육이 공공적으로 보장되면 개별 기업주가 보장해주는 것보다 사회가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간단히 말해 기업에서 해고위협을 해도 충분히 강력하게 싸울 수 있는 든든한 빽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줄여보도록 하자.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건강수칙을 지키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노동자는 기업주와 부유층보다 두 배는 많이 죽고 10년이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하직해야만 한다. 이것이 숨김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한가지이다. 노동자의 몸이, 건강과 생명이 자본의 이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노동자가 기계나 소모품 취급받지 않게 하는 투쟁, 그리고 의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그 방법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 그것은 건강수칙의 준수이전에 노동자의 건강을 저해하는 사회적 원인과 제도에 맞서는 투쟁이다.
각주
1) 중앙일보, 2002.7.23 “한국 장수자들 대부분 산간지역 거주, 데치거나 찐 음식 먹고…70세 넘게 농사일 즐겨”
2)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 2003.11.8 ‘장수 벨트(Belt)지역 특성에 대한 심포지엄’
3) 문화일보 2003, 10, 06 “놀면 뭐해 많이 움직여야제”
4) 빈곤과 건강, 김창엽외, 2003.9 한울
5)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루는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줄인다.
"청구성심병원? 투쟁 잘 끝냈잖아? 산재도 다 받았고."
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만난 한 선배는 이렇게 묻는다. 청구성심병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성공한 투쟁으로 정리되고 있는 중이었다. 병원측의 탄압상을 예전부터 알고있던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노동조합이 산재투쟁을 계기로 활발하게 살아났다는 점에서, 청구성심병원의 실상을 처음 접한 이들은 그 끔찍한 실상에 놀라 청구성심병원 집단정신질환투쟁에 관심을 가졌고, 산재인정 승리를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청구성심병원 투쟁은 항상 그렇듯이 뒤이어 오는 많은 사안들에 묻히고 있었다.
하지만, 청구성심병원 산재환자들은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주점을 열고 노동자 동지들에게 여전히 연대를 호소해야 했다. 청구성심병원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신까지 훼손당한 이들의 건강과 삶은 회복되지 않았고, 이들 앞에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병원은 커녕 손배․가압류로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이 상황에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영진이 아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병원에 있기 때문이다.
-1차 포스터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노조탄압으로 조합원의 50%가 넘는 10명이 정신질환’
충격이었다. 몇 명의 조합원을 만나면서 건강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으로 전 조합원에 대해 건강실태 설문조사와 MMPI검사(다면적 인성검사라고 하며, 566개의 문항으로 된 정신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공신력있는 설문조사)를 시행한 노동건강연대 회원들도 결과가 이 정도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후 시행한 정신과 전문의의 검사결과도 같았다. 보건의료노조, 노동건강연대, 민주노동당, 인권운동사랑방 등은 즉시 ‘청구성심병원 집단산재인정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전원 산재인정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7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을 안 사람들의 첫 반응은 “어떤 대우를 받았길래 한명도 아니고 10여명이 집단적으로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답은 조합원들이 병원에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7년이라는 시간 속에 있었다. 공대위 소속 법률전문가들이 조합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면, 조합원들이 7년 동안 병원에서 당한 폭행, 폭언, 조직적 차별, 왕따, 감시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표1> “우리 병원에서 조합원은 사람이 아니예요“
- 청구성심병원내 비인간적인 탄압의 유형들
○ 병원주최 수련회 중 조합원에 대한 집단 폭행 : 수련회참가자 중 유일한 조합원에 대해서 비조합원 직원들 사지를 붙잡고 20여분간 집단 폭행
○ 출근시 병원에서 행하는 친절조회시 욕설 , 폭행 : 아무 이유없이 친절조회중인 조합원자에게 병원관리자들 다가와 귀속말로 “개새끼 죽인다” “씨발놈아 까불면 죽인다” “싸가지 없는 새끼” 등 욕설
○ 밤10시경 퇴근중인 조합원을 집단으로 에워싸고 폭행 : 퇴근을 위해 지하에 인사하러 갔다가 관리자등 4명에 들어싸여 “너 여기 뭐 훔치러 왔지”등의 폭언을 하고, 나중에는 주먹으로 안면부를 때리고, 멱살을 잡고 끌고가면서 “너 같은 새끼는 이런 꼴을 당해 봐야 해”라며 바닥에 내동댕이 침
○ 폭행으로 인한 직장내 두려움 심각하여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태
○ 조합원의 경우 혼자 근무하게 하거나 필요인원보다 턱없이 부족하게 근무배치하여 의도적으로 업무 과중 부하
○ 조합원이 있는 부서에서 결원 발생해도 인력 충원 하지 않음
○ 원우회 가입거부 : 원우회(병원전직원으로 구성, 직원에게 각종의 혜택부여) 가입을 조합원의 경우에만 거부
○ 회식배제 : 같은 부서내 회식에 조합원 근로자의 경우 의도적으로 제외시킴.
○ 병원관리자와 비조합원 직원들이 조합원들에겐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아예 하지 않음.
○ CCTV 설치하여 조합원 감시를 용이하게 함
○ 부서내 비조합원 직원들이 시간대별로 조합원들의 행적을 일일이 기록하여 일거수일투족을 병원관리자에게 보고함.
○ 조합원이 근무하는 병동이나 물리치료실등에 설치된 커튼 뒤에 숨어서 감시
○ 조합원의 근무중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 과도한 경고장 남발 및 경위서 제출 지시등 비조합원과 차별적으로 처우함
○ 조합원의 조퇴나 외출에 대해서 엄격히 제한
○ 조합원에게 병가 불허, 최단기 병가 허용하며 출근 강압
○ 승진탈락 : 조합원임을 이유로 하여 승진대상임에도 비조합원 후임자를 승진시키는 불이익 취급
○ 조합원의 잦은 부서이동 : 비조합원에 비해서 조합원의 경우에만 부서이동 명령이 매우 잦아서 일이 익숙해질만 하면 일방적으로 부서이동 명령을 내려서 조합원들에게 불이익 줌
8월25일부터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에서도 총 38건의 법률 위반사항이 적발되면서 집단정신질환을 발생시킨 병원측의 노조탄압, 부당노동행위는 입증이 되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노동부나 법원은 뭘 한 거야?” 다시 한번 정부의 편파성과 태평무사가 우릴 분노케 했다. 청구성심병원은 법원, 지방노동위원회로 부터 13 차례나 위법사항이 지적될 정도로 악명 높은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이었다. 노동부나 법원은 병원측의 극악한 노조탄압을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집단정신질환을 발생시킨 공범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성격, 특히 반노동자적 태도가 명확해진 지금 이런 책임추궁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해 보인다. 법을 수없이 어기면서 노동자를 탄압하고, 법에 정해진 정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조차 부인하면서, 교섭도 거부하는 사업장이 어디 청구성심병원 한 곳 뿐인가? 그리고 이들 사업장이 법과 정부에 호소하지 않아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가? 노동부나 법은 형식적 답변만 늘어놓거나, 도리어 정상적 노조활동에 대해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남발하면서 노조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그렇다. 문제는 입으로는 참여정부를 말하면서도 노동배제적, 노동억압적 성격은 한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정부와 그보다 한 술 더 뜨는 법원에 있다. 현재 30여곳이 넘는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있다.
대부분이 심각한 부당노동행위 사업장들이고, 해를 넘겨 가면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교섭, 파업, 노동위원회 제소, 지역 여론화 등-을 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는 사업장들이다. 이들 장기투쟁 부당노동행위 사업장들은 버티기만 하면 노조를 없앨 수 있다는 악덕 사업주와 이를 수수방관 도와주는 정부와 법원의 합작품이다. 그러는 사이 노동자는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가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
청구성심병원의 집단정신질환이 알려진 후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의뢰가 많았다. 대부분은 잘 알려진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에서 온 의뢰였다. 노동자가 노동자라고 선언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흑색선전과 이간질로 동료들로부터 왕따시키고, 손배․가압류로 목을 죄고, 교섭 요구에는 대꾸도 하지 않으니 그 속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을 만드는 나라, 업무상 정신질환의 아주 특수한 사례인 ‘노조탄압에 의한 정신질환’이 일반적인 것이 되는 나라. 이것이 개혁정부, 참여정부에 사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청구성심병원의 투쟁이 근래 6개월 뿐 이었겠는가? 노동조합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때로는 다른 노동조합과 함께 민주노조사수를 외쳤고, 때로는 지역단체들과 함께 지역주민건강권을 외쳤고, 함께 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없을 때는 혼자서라도 한걸음씩 힘겹게 내딛으려 해왔다. 노동조합 인정과 지역주민 건강권 보장에 대한 굳은 의지로 지금까지 노조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7년 투쟁의 연장선에서 산재투쟁은 시작되었고, 현재 이 투쟁은 6개월을 넘기고 있다.
-2차 포스터
7월7일 8명이 산재신청을 한 후, 8월 초 5명, 9월 초 3명으로 전원 산재승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정된 집단정신질환이며, 노조탄압에 의한 최초의 정신질환 인정이었다. 조합원들이 전원 산재승인 되는 과정은 김학중 이사장을 비롯한 청구성심병원의 부당노동행위가 광범위하게 여론화되면서 공분을 형성하는 과정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MBC2580을 비롯한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청구성심병원의 반인권사건이 알려졌고 인권차원에서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청구성심병원 집단직업병투쟁은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끝없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당하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충격적으로 증언했다. 또한 이것이 청구성심병원이라는 한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업장에서 같이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최근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통해 더욱 명확해졌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정신질환에 대한 의뢰가 활발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청구성심병원 투쟁은 직업병의 범위를 정신건강으로 까지 넓히는데 기여했다. 이런 점에서 청구성심병원 집단산재투쟁은 노동자건강권운동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선진국의 경우 노동자 건강문제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정신적 건강문제가 근골격계와 함께 심각하게 부각된 지 오래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력감축, 노동유연화 중심의 구조조정을 겪은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침체를 겪어온 독일의 경우 조기퇴직자의 7% 가량이 우울증 환자이며 정신질환자가 다른 질환자의 2.5배 수준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영국의 경우는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정신건강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20명 중 1명이 심각한 우울증 상태이다. 우리와 경제구조가 유사한 일본에서도 얼마전 30대 직장인 2명의 우울증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화장실 앞 독서' 발령사원'우울증' 산재판정 (한겨레 2003.11.20)
<표2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들>
이렇듯 심각한 노동자 정신건강문제의 원인은 명확하다.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높아지는 노동강도와 해고에 대한 불안, 이로 인한 동료들간의 경쟁과 단절,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노동억압적 사회분위기를 고려할 때, 노동자들이 느끼는 정신적 압박감은 외국보다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할 것이다. 최근 서울도시철도에서 근무하는 기관사들의 사례는 이런 점에서 충격적이다 올 초 노동조합이 실시한 노동조건 실태조사에서 45.2%의 조합원이 정신질환(만성피로, 두통, 불안, 의욕상실) 증상을 보였고, 48.2%의 조합원이 수면장애(불면증, 수면박탈) 증상을 나타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두 명의 기관사가 지난 9월 열차에 치여,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입사 건강진단에서 건강했던 이들이 입사 후 5년을 지나면서 환청, 우울증 등의 증세가 나타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그 증세가 악화돼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사건 발생 후 일부 언론에서는 '정신병력자가 열차운전을 한다'며 열차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노동환경에 대한 분석과 향후 같은 유형의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한 제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 5~6시간을 컴컴한 지하터널 안에서 혼자 운전해야 하는 '1명 승무'의 부담과 빈발하는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교대근무로 인한 생체리듬의 파괴 등이 바로 이들 건강문제의 원인이다. 서울도시철도 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의 발생원인을 고려할 때 이의 예방은 당연히 노동강도, 노동조직, 노사관계, 노동의 자율성 등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문제가 본격화 되는 이때에 이것을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구조와 노동환경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고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그 예방대책을 고민해야할 것이다.
집단산재인정투쟁 단계를 지나 책임자처벌투쟁 단계로 넘어오면서 싸움의 대상은 커지고, 싸움은 점점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김학중 이사장 구속처벌’은 청구성심병원 노사관계 정상화와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의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공대위는 ‘김학중 이사장 구속처벌’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와 법이 일방적으로 사업주 편들기만 하면서 노동조합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곧바로 현 정부와의 투쟁이 될 수 밖에 없다. 대다수 사업장에서 무수한 부당노동행위가 저질러지고 있고, 현재도 해를 넘기며 싸우고 있는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이 30개가 넘는데도 지난 5년 동안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업주는 -상습적 임금 체불자 50명을 제외하고는- 단 9명이라는 사실은 구속된 노동자 수와 비교되면서 현 체제의 심각한 자본 편향성을 보여준다. 정부의 이런 일방적 사업주 편들기, 노동자 배제 전략이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극한으로 치닫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청구성심병원도 언론을 통해 생생히 보도된 ‘식칼테러’, ‘똥물투척’ 사건을 사실이 아니라며, 병원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해 병원수입을 급감시켰다며, 업무방해라는 거짓 주장을 펼치며 노동조합에 총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손배․가압류제도가 얼마나 부당하고 반인륜적인지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 상황에서.
배달호, 김주익 열사가 온몸으로 외친 노동탄압분쇄, 손배가압류 금지를 내걸고 오늘도 서울역 앞에서는 부당노동행위 사업장들이 무기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면서 죽음으로 항거한 노동자까지 모독하는 망발을 해대는 현 정부와 목숨을 바치고 건강을 잃어가면서 투쟁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노동자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과 싸워야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청구성심병원노동자들의 건강회복과 안전한 직장복귀도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지금껏 싸워온 시간보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싸워야 할지 모르지만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을 믿고, 함께 연대하는 이들을 믿는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한꺼번에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다가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에 실망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요즘처럼 힘 든 시대가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 - 학교 동창생들이나 일가친척, 교회의 교인들 앞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는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일에 직․간접으로 몸 담아온 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대통령 정부를 겪었지만 요즘처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로부터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말은 그동안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있다"거나 "일부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세련된 말씨로 하루가 멀다고 노동조합을 비난한 적은 없다.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대기업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양심에 손을 얹고 고민해 보라"고 엄숙하게 충고하는 대통령의 말을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전교조 위원장이 처음 구속된 것도 '감히 교사들이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눈을 치뜨며 꾸짖는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를 길들이려고 하는 노동자의 요구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사연하는 말은 그 표현만으로는 한 치의 오점도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그 말은 결국 “국민들에 의해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는 정부”라는 뜻이니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불법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건설교통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분에 대한 민사상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실제로 정부가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구속, 수배, 경찰병력 투입, 강제 해산, 해고, 손해배상 청구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수단들이 한꺼번에 동원되는 상황을 보면서 노동조합이 과연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할만큼 예년보다 특별히 많이 법을 어겼는지, 특별히 과격하게 투쟁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이 과거보다 더욱 과격하거나 빈발해진 것은 아니다. 노동쟁의 건수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수는 예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노동자들이 예년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무분별한 파업을 벌였다"고 느끼고 있다.
언론이 "현대자동차 파업이 한 달을 넘겼다"고 한결같이 보도하면 사람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한 달 동안 손을 놓고 일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올해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예년과 달리 부분파업과 순환파업을 되풀이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와 국민정서를 고려한 노동조합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을 것이다. 잔업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파업 방식을 놓고 "이게 파업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을 듣는 언론조차 노동문제를 특집기사로 다루면서 "노동조합이 민심 얻기에 실패했다",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을 곱씹어봐야 한다",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대중 정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예전보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한국 사회 전체 소득분포에서 그들의 경제적 지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노동자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어느 정권 아래에서도 불평등구조가 완화되는 쪽으로 그래프 방향이 바뀐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임금이 인상돼도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삶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각종 지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반면, 소수 재벌에게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사회 불평등구조의 심화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의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해롭다.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으면서도 IMF로부터 구제금융이라는 긴급수혈을 받고서야 겨우 살아날 수밖에 없었던 치욕적인 사태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건전한 내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 부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창출되는 내수는 그 나라 경제체제의 지속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토론의 달인'이라는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련된 표현으로 대기업 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정부는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국가변란에 준한 사태에서나 사용되는 '긴급조정'을 검토하고, 노동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더욱 보수화되어 예전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거듭하고, 야당은 주5일노동제 도입을 빌미로 "노동현장의 파업을 중지하거나 자제토록 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그야말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하더니 급기야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 나아가 정부는, 기업이 근로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고, 정리해고 사전예고기간을 단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현재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아니라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완화하겠다는, 시대에 역행하는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과거 군사독재라고 불리던 시대에도 없었던 현상들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이 지나치게 앞서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개혁 지향 소수파의 상징으로 여겼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출범만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는 이미 완성됐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 대통령이 당선되는 바람에 보수세력이 잠시 움츠러들어 있는 동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커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과 정부의 관료들은 물론 언론 종사자와 국민들까지 모두 그런 착시현상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노동조합을 공연히 불온시하고, 자신의 불편을 참으면서 노동자의 파업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민의식 수준은 흔히 말하듯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돼있는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아직도 소수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기현상이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의 천박한 수준을 말해준다. 국민들이 노동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는 평균적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번도 정상화되지 못한 채 다시 중대한 시련을 맞고 있다.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