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가 이주노동자 건강과 안전 관련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여 활동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인력과 예산은 적은데 할 일은 넘쳐나기에 노동건강연대에게 ‘선택과 집중’은 늘 중요한 과제다. 중요하면서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가 다 저마다 심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크기, 심각성, 해결가능성, 활동가들의 관심 등을 종합하여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는데 이주노동자 관련 사업은 2006년 정도 이후부터 노동건강연대의 주요 사업에서 빠졌다. 2001년 창립 이후 2005년 정도까지는 이런저런 이주노동자 관련 사업이 있었는데, 2006년부터는 거의 없어졌다.
당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이주노동자 안전과 건강 관련 사업을 해보려 이런저런 시도를 했고, 그에 따라 관련 사업을 하는 단체 혹은 기관이 늘어났다. 꼭 노동건강연대가 하지 않아도 정부가, 다른 단체들이 관련 사업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노동건강연대는 새로운 사업을 기획했다. 이 때가 ‘기업살인’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 때와 겹친다.
노동건강연대 독자적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국적, 민족 등으로 나뉘어 있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에 한계가 있었고, 언어가 장벽으로 작용하여 사업을 벌여나가기 어려운 때가 많았다. 요구되는 사업의 성격도 주로 교육, 정보 전달, 의료 지원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노동건강연대 사업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후 10년이 지났다.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안타깝게도 이주노동자 건강과 안전 관련 환경과 구조는 10년 전에 견줘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진 듯하다. 이주노동자 건강과 안전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 접근 수준, 일반적인 노동권 보장 수준, 체류자격의 안정성 및 시민권 획득의 용이성,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대한 포용성 등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및 구조는 지난 10년간 거의 나아진 게 없다.
사회구조나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위험은 더 증가하는 양상이다. 10년 전에는 매우 소수에 불과했던 농업, 어업, 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세계적으로 농업, 어업, 축산업은 안전과 건강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업종이다. 한국의 농업, 어업, 축산 관련 사업장은 그 규모가 매우 영세하여 특히 더 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50인 미만 농업, 어업, 축산업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정부의 관리 감독 사각지대인 것이다.
위험하고 어렵고 지저분한 작업은 이주노동자 몫이 되는 제조업 작업장의 경향도 더 심화되었다. 이들의 죽음이나 건강 피해는 소리 소문 없이 묻히는 경우가 많아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과 관련한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주민에 대한 막연하고 비합리적인 두려움, 멸시, 차별, 혐오 등의 부정적 정서 역시 10년 동안 별로 나아진 게 없는 듯하다. 그간 한국 경제는 더 안 좋아졌고, 지난 10년간 극우보수 정부의 집권은 악영향을 끼쳐 오히려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더 커진 듯하다.
이에 노동건강연대도 이주노동자 건강과 안전 관련 사업을 다시 기획해보려 한다. 아직은 그간 따라잡지 못한 환경 변화와 주체의 변화를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단계이다.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관련 주체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후 노동건강연대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다시 사업으로 만들어 시작해 볼 요량이 있다. 문제가 크고 심각한 것에 견줘 문제가 너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무기력증도 한몫 하고 있는 듯하다.
회원들과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와 토론이 필요하다.
진행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이야기 손님
정다운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이율도 / 이주노조 활동가
허환주 / 프레시안 기자
녹취 한지훈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는 열다섯 살 청소년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달앱이 시키는 대로 치킨을 배달하고, 햄버거를 배달하는 청소년은 있다. 학교에 가면 교복 입은 학생인데 공장으로 보내져서 어른들 대신 기계를 돌리는 청소년은 있다. 일을 해야 할 때는 노동자의 마음을 강요당하고, 사고가 나면 노동자로서 권리가 없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 자리에 이주노동자를 갖다 놓아도 그렇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생산성을 갖지 못했는데, 일을 하고 싶은 중증 장애인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청도의 소년은 야간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서울의 온도계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온몸에 수은을 두르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30년이 흘러도 소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기억만으로는 모자라다.
그 소년과 같은 이들이 21세기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많다.
[전수경] 오늘은 우리 사회의 경계 사이에서 노동하고 있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마련했습니다. 이야기손님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 소개 부탁드립니다.
[허환주] 안녕하세요.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율도] 안녕하세요. 이주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율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가 좌담이나 강연을 가끔 기획하는데 관객 수는 적지만 기획이나 초대 손님은 항상 훌륭한 분들만 모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관객들도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를 해주셨는데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님은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현대조선잔혹사』라는 아주 유명한 책도 큰 출판사에서 발간한 작가이거든요.
책은 잘 안 팔렸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저희가 북토크라도 진행했어야 하는데 죄송한 마음이 있구요. 정다운 활동가와 이율도 활동가 역시 이야기를 재밌게 잘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못된 존재, 또는 어떻게 불리고 싶은데 불리어지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것인데요. 일과 일 사이, 이런 존재와 저런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혼란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초대 손님 자신의 경험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요?
[허환주]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기자 생활이 10년 정도 됐는데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취재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 책도 나오긴 했는데. 이 질문을 듣고 고민해 봤는데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조선소 취재는 2010년에 시작해서 2016년까지 6~7년 정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사가 정체된 느낌이 들어요. 반복되는 구조에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죽고. 제가 처음 기자생활 했을 때 ‘어떻게 이런 세상이 있지?’이랬어요. 며칠 전에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사장이 단가 후려치기하는 상황이 힘들다는 기사를 썼거든요. 과거에 썼던 기사와 똑같거든요. 산재기사도 그렇고.
7년 전에 썼던 기사를 아직도 쓰고 있고 똑같이 반복되는 구조적인 한계를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기자로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사를 쓰고는 있는데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율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지가 1년도 안되었는데요.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기회가 돼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하면 강경하고 막 빨간 띠 매잖아요? 저는 노조에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해요. 개인주의적이고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조직적인 결정이나 움직임에 저항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노조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노조에 와서 어떻게 하면 조직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생각해요. 하지만 개인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정다운] 예전에 동동프로젝트라고 있었어요. ‘노동 그리고 활동’의 중간에서 고심하고 있는 청년활동가들의 인터뷰였거든요. 한정된 예산구조가 있고, 사장이 없고, 내가 힘든데 힘들 때 배운 대로 문제제기 할 대상을 찾다보면 나더라. 인상 깊었던 것이, 다른 구조를 상상하면서도 기업 안에서 하는 것처럼 문제제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책임과 권한을 나누려고 하고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그 5~6명 일하는 곳에서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하는 게 나인데? 나로 수렴되는 문제를 겪으면서 누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나 하면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전수경] 각자 활동공간으로 삼고 있는 곳에서 이주노동자, 장애노동자 그리고 허환주 기자는 고등학교 실습생을 심층 취재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서 모셨는데요. 이 노동자들이 어느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고 굉장히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언론에서 다루고 하는데요, 이 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율도] 이주노동자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하니 많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주노동자가 되려고 결심하는 것부터가 문제적 상황이거든요. 일단 이들은 자국에서 대부분 경제 활동이 자체 해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청년들, 가장들이 이주노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난민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제가 네팔에서 2005년에 1년 정도 지내면서 본 모습은 일단 청년들이 많은 시간을 놀아요. 할 일이 없고 직장이 없고 그들이 자국에서, 내가 성인으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은 그들에게 어쩌면 할 수만 있으면 꼭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선택입니다. 오고 나서 상황이 어마어마한 것이죠. 존재 자체에 대해 드러낼 수 없고 숨죽여 지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정서적으로는 그렇고요. 시스템 문제가 많아요. 차차 이야기 하겠지만 이 시스템 자체가 이주노동자를 옥죄고 스스로 인간으로 느끼기 힘든 구조에 있습니다. 오늘 대담 제목을 보고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랑 딱 걸맞구나 생각을 했어요. ‘노동자가 되지 못한 노동자’ 앞에 ‘이주’만 붙이면 딱 이주노동자의 현실이에요. 스스로 노동을 하러 왔지만 노동자로, 노동자의 권리도 챙김 받지 못하고 스스로 챙길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정다운]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은 노동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 핵심이죠. 정부에서 고용률, 비경제활동인구를 측정하잖아요. 실업률의 분모가 구직을 원하지만 실직상태인 자이고, 분자는 그 중에 현재 직업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중증장애인은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중증장애인은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보는 거죠. 물어봤는지는 잘 모르지만 워낙 실업률이 낮게 나오니까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계산방법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노동자라고 하고 나서야 다양한 노동자정책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장애인이 정책대상으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허환주] 저는 현장실습생을 취재한지 2~3년 정도밖에 안 되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취재하면서 학생들 만나며 느꼈던 것을, 특성화고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준비를 잘하는 친구들은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방향성을 잘 잡은 친구들은 최대한 많은 것을 습득하고, 자기 길을 고민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가더라고요. 문제는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학생 상당수는 집안 환경이 열악한 게 통계에서도 나오거든요. 중식 제공 지원을 보면 저소득층만 가능한데 그 비율이 30퍼센트 정도 되요. 일반 고등학교는 10퍼센트 정도인데, 그 친구들이 집안이 어려우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등 떠밀려 가요. 중3때 고민을 하지 못하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고, 고3 되면 취업을 하라고 하니까 현장실습을 하라고 하니까 아무데나 들어가는 거죠. 학교에서 추천해 주는 곳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하는지도 모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주지 않고서 등 떠밀려서 가는 구조가 되어 있는 거죠. 주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계획 없이 들어가면 힘들어 하죠.
10인, 20인 영세기업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거든요. 그런 기업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케어할 수 있겠어요. 사회인의 눈으로 학생을 바라보죠. 선생님께 대들고 게임하고 장난치며 놀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저녁 늦게 퇴근하고 점심시간 딱 맞춰서 지켜야하고, 상사라고 하는 사람이 지시내리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데 하루 만에 그런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굉장히 괴로워하고 아파하죠. 현장실습을 고쳐야 하고 사회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전수경] 오늘 당사자 분들,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 현장실습 학생을 부르면 더 좋았을 텐데 부르기가 여의치 않아서 어떻게 보면 대변인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활동하는 분들을 모신 건데요. 세 주인공들이 각 영역 안에서 어떤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지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다운] 장애인의 노동권을 주제로 대응한 게 저희 단체 10년 역사에서 짧아요. 작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상대로 농성을 하면서 고용노동부와 협상을 계속했죠. 그때 저희가 한 세 가지 요구가 최저임금법,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을 예외로 해도 된다는 조항을 없애라는 것, 공공일자리라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81만 개의 공공일자리를 만든다고 했는데 그런 것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도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요구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개혁하라 이런 요구였어요. 지금 중증장애인 노동과 장애인을 고용하는 정책은 공단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데 조직이 경직되어 있고 중증장애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팽배해 있어요. 제가 아는 분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갔는데 당신과 같은 중증이 일할 곳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장애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분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공단인데 중증장애인들은 문턱도 못가보고 있구요. 공단 평가를 취업률로 하다 보니 취업이 쉬운 경증 장애인 위주로 취업을 매칭하고, 고용을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않고 매칭만 해요. 돌려막기 식으로, 취업했던 경증장애인이 훈련받고 다른 곳 취업하고 그만 두고 다시 취업하고. 정말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 지원은 거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예요. 저희는 ‘돈 먹는 하마’ 기관 이라고 불러요.
[허환주] 작년 11월 제주도 이민호 군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교육부에서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올해 2월에 바꿔서 선도 기업을 선정해서 현장실습을 실시하겠다고 방향을 돌렸죠. 학생 학부모 기업 모두가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했어요.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순간 여러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죠. 기업은 최소한 3~4개월 동안 싸게 쓸 수 있는데 못쓰니까 반대하고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데 실습제도를 없애면 2월 이후 취업을 해야 하는데 전문대 애들이랑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전문대 애들을 데리고 가겠죠. 학부모 입장도 학생이 3학년 2학기에 놀 바에는 뭐라도 배우고 최저임금에 못미처도 8~90만원 받는 게 어디냐 하는 생각인 것이죠. 교육부가 결국에는 조건부로 현장실습을 하기로 한 거죠. 올해 다시 시작할 텐데 선도 기업을 누가 선정하는지 실습을 누가 관리감독할 것인지 걸리면 처벌을 누가 할 것인지 준비 없이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부에서 올해 5월 3500개 기업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그것도 상당한 문제들이 있어요. 학생들이 죽어나가니까 발맞추어 해보려 하지만 ‘생색내기’ 식이 아닌가, 변화가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이율도] 현장실습생 상황을 들으며 이주노동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학생들도 낯선 환경에서 낯선 지위로 바뀌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있는 거잖아요?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이주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겪는 갈등과 적응하지 못했을 때 상황이 있어요. 그 중에서 제도적인 것에 대해 많이 투쟁하고 있어요. 노조니까요. 2000년 초반에 이주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투쟁할 때는 우리사회에 자신들이 존재를 던지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있다’ 존재를 던지는 투쟁을 했던 것 같구요. 요즘은 좀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요. 이주노동자가 가장 고통 받는 제도는 ‘고용허가제’. 이름 보고 알 수 있다시피 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되어 있는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는 제도에요. 고용주를 위한, 고용주가 편하게 고용할 수 있는 제도거든요. 목적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어요.
‘한국 경제에 원활히 인력을 수급하기 위한 수단이고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여기서 균형은 영세사업주, 중소사업주, 대기업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죠. 사람은 수단이 되는 거예요. 사람을 수단으로 쓰려면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겠죠,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사업장 이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든요. 자유가 없는 거예요. 어떤 상사를 만나고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든 노동자는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어요. 사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죽고 싶은 곳으로 계속 가서 일해야 하고, 보고 싶지 않은 동료를 만나야 하는 것이죠.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달라, 우리에게 자유가 필요하다는 투쟁을 하고 있고요.
또 최근 이슈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수적으로 기숙사가 제공이 되겠죠. 다른 나라에서 오는데 오자마자 일을 하게 되고 숙식을 해야 하는데 주거공간을 선택할 수가 없다보니까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기숙사가 아주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여성노동자 방에 문고리를 아예 떼서 문고리에 구멍이 나 있어요. 사용자가 아무 때나 그 여성들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야 너 나와서 일하라 했잖아’ 그냥 밀고 들어와요. 쌍소리하고, 나와서 일하라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상황도 있구요.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들이 있어요. 화장실이 없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삽을 들고 나갑니다. 땅을 파고 용변을 보고 둘씩 셋씩 짝을 지어서, 요즘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다. 컨테이너 이런 것을 주거 공간으로 주는데요. 그런 임시가건물 같은 경우에도 농수로가 있는 곳에 1~2미터 정도 파 놓고 그 사이에 걸쳐서 컨테이너를 놓습니다. 가옥이라고 하기 미안한 상황인데, 그런 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기숙사가 작년부터 돈을 받기 시작했어요. 기숙사 숙식비를 받아도 된다고 노동부가 말해서, 작년 2월부터 그 지침을 활용해서 공짜로 제공하던 기숙사들도 한 달에 5~60만원 공제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그 지침을 폐기하라고 하고 있구요.
하나 더 하면 근로기준법 63조를 보면 너무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쉬운 거예요.
농업 축산업 이런 노동자들은 근로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농번기 이런 때에 시키는 대로 시키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6시간 일하면 1시간은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사업주가 ‘지금은 딸기 농번기니까 너는 쉬면 안 돼, 해 뜨면 나오고 해 지면 들어가, 쉬는 시간 없어’ 해도 저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근기법 63조거든요.
올해는 숙식비 문제가 곪아서 최저임금에 숙식비까지 뜯기면서 일해야 하나,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이주노동자 탄압하는 거 아니냐, 투쟁을 해야겠는데 이주노동자들과 투쟁을 하려니까 깜깜한 거예요. 한 달에 두 번, 아예 못 쉬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서울에 불러가지고 청와대 앞을 가고 노동부를 갈까, 이 사람들이랑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라고 하면 올까? 직접 못 오는 노동자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지난 5월에 버스를 타고 문제되는 곳을 투어를 했거든요. 투쟁투어라고 해서 투투버스라고 하고 다녔어요. 가장 최근에 한 투쟁입니다.
[전수경]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상황이라 관객 분들에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돈 먹는 하마’ ‘생색내기’ ‘돌려막기’ ‘취업률’ 처음 만났는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시네요.
청와대로 향하는 오체투지를 했다고 들었어요.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이 제외된다는 것을 저도 이거 준비하면서야 알았어요. 이주노동자들 숙식비 문제는 저는 정부가 바뀌면 해결될 줄 알았어요. 설마 비닐하우스 내주고 하숙비를 계속 받게 할까 생각했는데 대화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구요. 현장실습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저도 토론회 가서 화도 내고 했는데 당사자들이 그거 아니거든, 답이 없거든 이런 상황이네요.
[허환주] 시민단체는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학생들, 특성화고 권리위원회, 특성화고 졸업생노조 같은 데서는 하면서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요. 잘 모르겠어요. 폐지하는 것이 맞는지 존치해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맞는지. 학생들이 현장실습 과정에서 산재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실습제도 때문에 그런 것일까? 교육부, 노동부가 감독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일까, 감독을 제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조선소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관리감독을 해도 사람들은 죽고 하루에 노동자들이 5명씩은 죽고 있잖아요, 관리감독을 안 해서 그럴까?
현장실습 학생들은, 학생인지 노동자인지 모르겠어요. 사건이 터지면 제주 이민호 학생 같은 경우 노동부가 특별감독을 했는데 교육부는 산업현장을 근로 감독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3이잖아요? 2015, 16년 즈음에 교육부, 학생, 학교, 기업이 표준협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는데요. 학생에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협약서대로 하기로 되어 있어요. 이민호 학생이 하루 15시간 일해서 250만 원을 받았어요. 어마어마하게 일을 한 거죠.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 이하로 일을 하도록 돼 있어요. 근로계약서는 일을 더 해도 되고요. 사업주나 학교가 처벌받으려면 표준협약서로 처벌을 해야 하는데 노동부가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근로감독을 하니까 처벌 수위가 낮아져요. 이민호 학생 아버지는 내 아들은 학생인데 왜 노동법으로 처벌하냐, 표준협약서로 해야 하는데. 그런데 교육부는 현장 조사 권한이 없는 거예요.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인 거죠. 이민호는 학생으로 죽었는지 노동자로 죽었는지 모르는 거죠. 교육부에서 3500여 업체를 전수조사 한다고 해요. 무슨 권한이 있어 조사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노동부가 특별감독 권한이 있어서 그나마 들어가는 것이지 교육부가 무슨 명분과 권한으로 하겠냐는 거죠. 알아보니 현장을 가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 체크리스트를 줘서 우리는 노동조건을 준수합니다, 시간외근무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설문지를 줘서 체크하는 것을 전수조사 한다고 한 것이죠. 정말 답답하죠. 눈 가리고 아웅 인데. 학교를 움직여야 하는데 학교도 기업눈치를 보죠.
학교의 고충은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죠. 교사들이 다니면서 ‘우리학교와 제휴를 맺어 주십쇼’ 하는 식이죠. 잘 나가는 중견기업은 실습생을 받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전문대생, 실력 있는 친구들을 모집하지, 소위 말하는 질 낮은 노동력을 뽑으려고 하지 않죠. 학교도 눈치를 보다보니 감독을 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조사는 아니고 체크리스트인데 한번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읍소하게 되고, 현장은 그대로인 식이 되는 것이죠.
답답하더라고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모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해가 가거든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면서 열이 받는 거죠.
[이율도] 현장실습생, 이주노동자를 관통하는 흐름이 그것인 것 같아요. 노동자를 싸게 쓰려고 한다. 이 관성이 이주노동자와 현장실습생을 고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이 말씀하시는 동안 계속 들었어요. 이들을 어엿한 노동자로 보지 않고 그냥 싼 인력으로 보기 때문에 제도를 허술하게 만들었고, 교묘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전수경] 5월에 다녀오신 현장순회버스, 투투버스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겠어요.
[이율도]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 데요. 사업장도 문제가 많지만 고용센터라고,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고용센터에 기대게 되거든요, 처음 와서 정보를 받는 것이 이곳이고 문제가 있을 때 먼저 고용센터를 가게 되는데, 이주노동자를 관리하는 의무가 있는 공무원인데도 이들에 대한 차별, 하대, 반말, 민원 자체를 거부하는 게 좀 있어요. 그걸 따지러 갔어요.
이주노동자 민원을 잘 받지도 않고 처리하지 않느냐, 진정을 넣은 곳이 있는데요. 이 민원에 어떻게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검토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달이 지났는데. 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주노동자가 한국말을 서툴게 하면 증언 자체를 믿지 않는다거나 ‘너 한국말 못하면 통역할 사람 데리고 와’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딸기 농장인데 아예 근로계약서가 00시에서 00시, 사업주가 일하라는 시간에 무조건 하는 거예요. ‘사장님 제가 이만큼 일했어요’ 수기로 적어서 내요. 이번 달에 180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왜 120이에요? 하면 ‘너 여기서 먹고 자고 했잖아 그거 뺀 거야’ 70만원 떼는 것도 봤어요. 투투버스 하면서 이런 거 문제제기하고 그랬습니다.
[정다운] 연결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생산성과 효율성. 중증장애인들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노동자? 노동을 할 마음이 있다고 아예 보지를 않고, 취업 대상으로 보지 않아요. 고용과 연결되어 있는데, 중증장애는 노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로 낙인 받는 상황이죠. 탈시설 운동이, 학교도 못 가고, 버스도 못타는 존재 이렇게 여기는데 이런 것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죠. 옛날에 영국의 산업혁명 중에도 일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다 공장으로 잡아들였는데 광인, 아동, 노인, 절름발이 이런 사람들이 공장으로 가지 못하고 구빈원에 격리되는 것이 시설의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최저임금 제외라는 것이, 비장애인이 하는 일이 100프로다 하면 그보다 얼마나 생산력이 떨어지느냐 측정하는 것이고, 이 사람은 중증장애인이니까 안 줘도 돼, 하는 것이 아니고 중증장애인이 있으면 평가를 받아요. 노동부가 인가를 해주는 거죠. 이 사람은 생산선이 떨어지니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제도이거든요. 비장애인의 생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손실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전수경] 최저임금 아래로 주려면 인가를 받아야 하잖아요?
[정다운] 공단에서 평가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전수경] 받는 비율이 얼마나 있는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정다운] 전체 장애노동자 중에서 많지는 않고요. 만 명 정도 되는데 늘어나고 있는 추세구요. 만 명 중에 대부분은 직업재활시설로 중증장애인시설, ‘보호작업장’ 이렇게 말하는 곳인데 장애인이 만드는 빵 같은 것이 보호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인데요.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복지시설인데 근로감독관이 와서 최저임금을 감독하면, 인가를 받아야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복지부에서 원래 훈련 수당을 주던 것을 노동자로 신고하도록 바꾼 거에요. 그래서 최저임금 제외로 가고, 고용장려금이 있는 거예요. 훈련생일 때는 노동자가 아니에요 훈련수당을 주면 되요. 노동자로 신고를 하면 직업재활시설이 사업주로 바뀌어요. 고용장려금이, 한 사람당 돈이 나오는 그 돈을 사업주가 가져가는 거죠. 이주노동자도 그렇고 고용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고용에 의무가 있는 것은 사업주이고 고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고 고용을 잘하면 착한 사업주니까 지원을 해주는 것이 장애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이에요.
[전수경] 장애인노동자들이 노동과 재활 사이에서 일인지 일이 아닌지 사업주인지 시설장인지에 대해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잖아요? 현장실습생도 학생인데 실습 나가면 사장이 있고, 복잡하게 되어 있는데 허환주 기자님, 취재할 때 사업주의 입장을 들어 보셨나요?
[허환주] 악독한 사장도 많을 거예요. 제주 이민호 학생 회사도, 2년 전 자살한 학생도, 작년 엘지유플러스 자살도, 안 좋은 업체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한 사업주가 다시는 실습생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최저임금 이상으로 주고 7시간을 지켰고, 일을 할 때도 견습으로 지켜보면서 했는데, 학생이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배려해주고 했는데 사수가 화가 나서 몇 마디 안 좋은 소리를 했는데 그것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거죠. 더 취재를 해보니 이 학생이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 소위 ‘복귀’를 당한 적이 있는 거예요. 학교로 돌려보내져서 ‘빨간 명찰’을 대기하고 있던 학생이래요. 업체는 괜찮은 학생인 줄 알고 뽑았는데 학교에게 ‘속았다’고 표현을 했어요. 업체 입장도 이해가 가요. 극과 극으로 갈려 있고 그 간극이 커질수록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든요. 각자가 억울하고 피해자라고 하는 구조가 난감하더라고요.
[전수경]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도 노동의 능력에 대해 평가하는 잣대가 있죠,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미등록노동자도 있고요,
[이율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있을 텐데, 요즘 이주노동자의 트렌드는 불법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예요. 고용허가제가 그것을 막아놨어요. 처음에 3년을 계약하고 들어와요. 3년 후 마지막 사업장에서 사장이 1년 10개월 더해보지 않을래? 하면 총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고, 잘 하고 돌아가면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져요. CBT(computer-based test)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해놨어요. 불법체류를 하지 않고 경쟁을 뚫고 와서 다시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가, 이런 제도를 마련해 놓은 거죠.
이주노동자들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가고 싶어 해요. 한국사회에 잘 보이고 사장에게 잘 보여야, 낮은 자세로 있어야 다음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방식으로 제도를 벗어나려 해요. 자살 사건이 많아요. 고용허가제 안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거든요. 벽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제도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자유를, 나에게 매일같이 욕을 하고 삿대질 하고 나를 사람으로 안보는 저 사람이 나의 목숨 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고용허가제가 허락하고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은 저항심을 가지고 투쟁하기보다는 그냥 죽어야 겠다는 판단을 하는 거죠. 내가 정말 무력하다 하는 생각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만 해도 네팔 이주노동자가 13명이 돌아가셨어요. 그 중에 4명이 자살이었어요.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다운] 중증장애인은 노동자가 되기 어려우니까 본인이 아예 노동을 해야겠다는 정체성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박경석 대표님은 기생적 소비계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웃음). 나는 중증이라서 일할 것이 없다고, 직업재활시설에서 얼마를 받든, 얼마를 뜯겨도 말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일할 곳이 직업재활시설밖에 없는 것이 낮은 자존감, 복지혜택을 받더라도 받는 사람들이 무력감. 패배의식, 노동을 해도 이 정도 취급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고 이 정도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전수경]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문제와 연결해서 여쭈어 보려고 하는데요. 안전이나 건강, 조직의 문화가 일반 기업과 달라서 더 열약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건강상의 어려움도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 감추어져 있는 부분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허환주] 현장실습 학생들은 있는 곳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일하는 친구부터, 농고, 상고, 공고 나누고 다시 별의별 게 다 나누어져 있고요. 노동환경과 건강권을 특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실습생도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실습이 끝나면 정식계약을 맺어요. 노동자로 인정받고 계약을 하기 위해서 온갖 일을 해요. 열심히 일하고 좀 더 성과를 내면 계약이 되는 거죠. 아니면 복귀조치를 당해서 학교에 돌아가 온갖 갈굼을 당하는 거죠. 빨간 명찰을 달고 교무실로 불려가서 하루 종일 서있는 경우도 있고, 담임이 공식적으로 교실 앞에서 패배자, 루저, 이런 욕을 하면서 너희는 얘처럼 되면 안 된다, 자존심을 구기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어요.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돌아가면 루저가 되고. 노동환경이 좋고 안 좋고는 영향을 받지 않아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엘지유플러스 홍수현 학생 사건을 취재할 때도 보니까 굉장히 일을 잘 했어요. 디펜스 부서에는 아무나 보내지 않는대요. 정말 잘하는 친구만 보낸다는 거예요. 응대를 정말 잘해야 하고 한 명이라도 해지를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보내겠냐고 하더라고요. 현장실습생 친구들이 고3이라는 것을 고려 안 하는 거죠. 그 친구들은 제가 지금 사회생활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힘든 것을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죠. 노동환경이 복합적으로 열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다운] 중증장애인 15세 이상 인구가 77만 명인데 그중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20퍼센트라고 하거든요. 60만 명의 비경제활동인구가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살고 있나 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거나, 가족의 부양책임으로 떠넘겨져 있는 것인데요. 이들 중에 노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죠. 그런데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의료급여 문제가 있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면 의료급여 자격자가 되요.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을 자격이 되는데 일정 소득 이상이 되면 의료급여에서 탈락되거든요. 소득이 없고 생계가 어렵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의료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급여를 포기하기 어려워서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율도] 이주노동자는 막 심각한 환경을 생각하실 것 같은데, 사소한데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것이에요. 엄청 더운 나라에 살던 이주노동자들이 냉동 창고에서 일을 하면 한 번도 영하 날씨를 경험 못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 보니 비염 같은 게 생기는 것에요. 이 사람은 ‘비염’이라는 말도 없는 곳에서 온 사람인데 그런 환경에 놓이면 직장을 옮길 수도 없고 사장님한테 ‘콧물이 계속 나요. 기침이 나요. 머리가 아파요’하면 사소한 병이라고 생각하니까. 산재도 어렵고 사장님이 들어주지도 않고. 바다에 있는 나라에서 왔지만, 이 사람은 배를 타본 적도 낚시를 해 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어업으로 와서 곤란한 일들을 겪는 거죠. 한국의 어업 현장은 굉장히 거칠거든요. 국가와 국가가 양해협약을 통해 고용허가제로 온 것이거든요. 우리나라 노동자가 부족하니까 그쪽 나라 노동자를 1년에 얼마만큼 보내주면 좋겠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오는 것인데 노동환경에 대한 양해는 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죠. 현장실습생처럼 이주노동자들도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열아홉, 열여덟, 이런 친구들. 그 나라에서는 잘 커서 온 친구들일 거잖아요, 없는 돈에 한국어도 배우고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는데, 그 국가 기준에는 굉장히 많이 드는 거예요. 생활비 수준을 투자하면서 집안에서 키운 아인데 아까 현장실습생처럼 상황이 비슷하죠.
몸빼 바지 입고 호미를 차고, 괭이질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하면서 감정적인 병이 있고, 느긋한 나라에서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말을 하면 통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한국에서는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까, 기술적으로 언어가 안 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프다고 하면 의심을 갖지 않는 나라에서 아프면 쉬는 식으로, 복지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아요. 아픈데 어떻게 일을 해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한국은 아프긴 뭐가 아파 이런.
요즘 과로사가 참 많아요. 자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고.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을 하니까 사업주가 시키기도 하지만, 하게 되는 거예요. 철야하고 야근하고 휴일도 반납하고 일을 하는 거죠. 여성노동자는 성폭행, 성희롱 문제가 많은데, 사장님이 갈비 사 준다, 피자 사 준다, 모텔 갈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농업에는 너무 많아요. 계속 그래요. 여성노동자들이 금방 알아들어요. 일상적으로 사업주, 이웃, 계속 그런 거죠.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며칠 전 제주 선원 사건도 있었는데 선장이 바다에 밀어 버렸거든요. 형사소송을 하고 있어요. 남성노동자 성희롱도 자주 일어나요. 산재라고 생각해요. 국가에서는 산재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이번에 성폭행 당한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해 3일 안에 사업장 이동을 하게 조항을 만든다는데 폭력은 뺀다는 거예요. 폭력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노동자에 대한 산재는 이런 것부터 포함해야 해요. 이주노동자에게 이런 상황이 있으면 그 사업주에게는 이주노동자를 보내지 말아야 하잖아요? 문제가 생겨서 나가면 다른 노동자로 바꿔주고 이게 고용허가제거든요. ‘원활한 인력수급, 균형적 경제발전’ 이런 상황입니다.
[전수경] 뉴스타파에서 봤는데요, 불교신자인 노동자가 장어 양식장에 배치가 됐는데 장어를 잡아야 해서 고통스러워 하더군요. 사업주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요.
관객 중에서 질문하실 분 있으신지요?
[청중] 정다운 활동가한테 질문하고자 합니다. 장애인 고용 관련해서 예술작업에서도 고용을 인정해 달라 등을 생각 중인데 투쟁의 성과나 변화의 지점이 있나요?
[정다운] 중증장애인 고용이나 노동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직업재활시설이 보호고용 개념인데 중증장애인이 작업현장에서 일하기 힘드니까 시설을 갖추고 모아놓고 노동을 하는 것이거든요. 사회 통합적이지 않고,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구조가 아니잖아요. 이런 격리구조가 문제다, 보호고용은 훈련을 통해서 비장애인만큼 일할 수 있게 훈련을 받는 거죠. 훈련을 받아서 일반 노동시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죠. 요즘은 지원고용이라고 해서, 현장 중심형 일자리라고 하는데 실제 직장에 배치하고 여러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죠. 각 필요는 다를 수 있죠. 발달장애인은 앉아서 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면 일어나도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거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내년부터는 확대될 것 같아요. 그런 요구들이 많았거든요. 현장 중심형 일자리로 갈 수 있게 접근 자체가 바뀌어가는 것이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훈련 반복이 아니라, 이 사람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효율성 자체가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아니잖아요?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중증장애인이 맞출 수는 없어요. 이런 것을 추구할 때도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바뀌어 가는 과정이에요.
[전수경]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 요즘에는 ‘가심비’라는 말이 있대요. 가격대비 심리적인 만족이라더군요.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다가 오늘 이 자리를 생각하면 착각 같다는 생각이 들고 헷갈리네요. 정말 세상이 좋아지고 있나 알고 싶고요. 법적으로 주 52시간 노동으로 난리가 났는데, 상황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두 가지 물어볼게요. 정부는,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오늘 함께 한 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동을 하게 될까요?
[허환주] 누가 봐도 어렵지만 어찌 보면 간단한 것 같아요. 주체들이 만나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각자 첨예하게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될 것도 아니라서, 모여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논의하면서 전수조사든 법이든 논의하는, 한 번도 그런 자리가 없었으니까요. 박정희 때 이후 현장실습제도는 변한 것이 없어요. 4차 산업을 말하는데 현장실습은 변하지 않는. 공고, 상고가 아니라 명칭도 엄청 다양하게 변했어요. 4차 산업 맞춘다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바뀌는데, 어떻게 바꿀지 공론의 장을 만든 적이 없어요. 첫 스타트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부도 시민사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정다운] 공감이 되는데 중증장애인도 특수학교 가서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서 정부가 나서서 전공과도 만들고 바리스타도 배우고 복지부 따로 노동부 따로 운영은 하는데 정말 범정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율도]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정부 정책과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정부는 책임을 졌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에요. 그 나라와 협약을 맺었잖아요. 16개 나라나 되는데, 4년 10개월 노동자로 쓰고 다음에도 받아서 한국경제 발전시키려고 데리고 온 것인데 책임을 지지 않아요. 사업주에게 권한을 준 것 같지만 사실을 책임을 떠넘긴 것이죠. 이주노동자를 쓰는 사업주들은 내국인들이 잘 하고 싶지 않은 사업을 하는 것이거든요. 이주노동자를 먼저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내국인을 쓰려고 구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요. ‘내국인이 안 옵니다’ 인정이 되어야 이주노동자를 모실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받을 때는 정말로 좋지 않은 기숙사에서, 여성노동자들 희롱하고 월급 뜯어 가면서 시키는 거예요. 정부가 관리 감독은 해야죠. 실태조사도 하고. 기숙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나갈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도 묻고, 분쟁이 생기면 뒤로 빠지는 게 아니라 개입도 하고. 영세한 사업자와 힘없는 노동자를 싸움 붙이고 그 분쟁에서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것이겠죠, 정부가.
사회적인 부분은요, 이번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여름캠프를 갔다 왔는데요. 전에 사회복지시설에서 일 했었는데, 사회복지시설이랑 노조랑 너무 달라요. 사회복지시설은 철저하게 짜고 방 배정 다 하고. 노동조합은 너무 식은 죽 먹기인 게 바다에만 데려다 주면 된다는 거예요. 밥도 고민할 필요 없고 술도 고민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정말요? 정말요? 했는데 진짜 그랬어요. 그만큼 소박한 기대감. ‘바다를 보고 싶다’ 하나였어요. 작년에는 노조에서 ‘템플스테이’를 데리고 갔다고 해요. 너무 불만이었다는 거예요. ‘어쩜 템플스테이에 데리고 갈 수 있느냐? 우리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 보고 모임하고 옷 트렌드도 보고. 한국을 선택하는 이유가 TV나 DVD를 보면 한국도시의 화려함, 한국 남자들의 스윗함, 다정함, 여성들의 발전된 화장 문화 이런 건데요. 자기작업 현장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고, 그래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볼 때 좀 더 친근하게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노동자도 좀 워라밸을 생각할 수 있도록.
[전수경] 워라밸을 말하는 시대에서 세 현장의 노동자는, 그렇게 되지 못한 노동자가 많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오늘 당사자가 오신 것이 아니라 고민을 했지만, 이야기해 보니 깊은 이야기도 있고, 할 말도 많은데요. 더 하지 못해서 아쉽고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들을게요. 제주에 온 예맨 난민들이 섬을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읽히잖아요. 오늘 이 자리의 우리도 이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다운] 제가 처음에 장애인 야학에서 컴퓨터를 가르쳤거든요.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했어요. 저의 학생들은 중증장애를 가진 분들이고 마우스도 떨리는 손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서 보조공학기기가 필요하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아무리해도 안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의지를 가지고 잘 가르치면 취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의지를 가지고 했지만 수차례 좌절감을 맛보고 든 생각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노동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좋은 제도가 필요하다, 진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생각하면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도 폐지, 기초보장 제도를 잘 만드는 것, 이런 생각조차도 깨지고 있는 중이에요. 어느 교수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노동을 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냥 복지제도를 선택하라는 거냐? 노동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면 안전한 사회제도 하에서 살라는 것이냐? 그 사람 선택은 없는 거죠. 노동을 하고 싶으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서 지원하는 제도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오늘 이야기하면서 정말 좋은 사회가 올까 하는 생각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이라면 그렇게 바꿔 가자고, 다르게 이야기하자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율도] 우리는 다들 노동자잖아요. 들으시면서 무거울 수도 있고, 각자의 고통이 다를 뿐,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같으니까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사례가 좀 세다 보니까 아 진짜, 이렇게 느끼실 것 같은데 사실은 이주노동자가 헤쳐 나가야 할 문제에요. 사업주도 의식이 바뀌어야 하겠지만. 이주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장르적 어려움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이주노동자 사례를 듣고 우리나라가 이따위 인권감수성 밖에 없다는 열패감을 갖지 않기를 바라고요,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을 저는 많이 하거든요. 어떤 노동자라도 모두 하나, 내가 노동자이듯이 이주노동자도 권리투쟁을 하고 있구나, 받아들여 주시고 저희는 그래서 누구누구씨 라고 안하고 동지라고 해요. 노동자가 무엇을 위해 싸워가야 하는지 알아가는 것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환주] 부끄러운 게 제가 2012년에 조선소에 위장취업을 한 적이 있어요. 한 달을 계획하고 가서 2주 만에 나왔거든요.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다치는 것이 바보 취급받는 현장이었어요. 일하는 노동자들은 다치는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렇다, 어리숙해서 그렇다, 자기는 다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야기를 해요.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는지 몰라서 무섭고,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현장실습을 취재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학교도, 교육부도, 학생도, 공부 잘 하는 친구들도 만나고 못하는 친구들도 만나 봤어요. 나는 다치지 않을 거다, 학부모들도 그렇게 생각 하더라고요. 학교도요. 우리는 잘 가르쳐놨는데 실습생이 잘못한 것이다, 사업주도 우리는 잘못 없다, 실습생이 문제다.
조선소에서 사고는 무조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100분에 1이든 얼마든 분명히 사고가 나는데 모른 척하는 것인지, 반복하는 것이죠. 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닐 것이다. 내 사업장은 아닐 것이다. 주문처럼 외우면서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사과가 백 개 들어있는 상자 안에 독사과가 들어 있으면 그것은 독이 든 상자다’ 사과가 천개 만개 있어도, 그 안에 하나라도 있으면 독사과가 든 상자예요. 우리사회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사회가 아닌가, 처음에 말할 것처럼 나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수경] 네 오늘 세 분 이야기 감사합니다. 신청해 주시고 와 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기획 대담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 1993년 시작된 산업연수생제도와 2004년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크게 늘어났고, 결혼, 유학, 재외동포 등 비(非)노동 이주민의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제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의 신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이주민의 장기체류하면서 의료서비스 이용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등 이주민의 복지 혜택에 대한 날선 공격이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 글에서는 건강보험 제도, 감염병 관리, 취약계층 의료지원 등 이주민의 건강보장과 관련한 실태를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1. 후퇴하는 외국인 건강보험정책
지난 6월7일 보건복지부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내-외국인 간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작성한 ‘외국인 건강보험정책 개정방안’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개선안의 요지는 외국인의 지역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현행 국내 체류기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임의가입을 의무가입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체류기간 연장신청이나 재입국 시 체류에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을 통해 체납을 방지하겠다고 했다. 지역보험료는 소득과 재산 기준에 따라 부과하되, 소득 파악이 어려운 경우에는 내국인 지역가입자의 평균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또한 피부양자 등록 서류 중 본국 발행 서류는 자국 외교부 확인 문서만 인정하겠다고 했다.
표1. 2017 건강보험 가입자 현황(2017년 12월 말)
(단위: 명)
건강보험
전체
외국인
재외국민
직장가입자
36,898,912
625,891
16,843
지역가입자
14,041,973
264,000
6,416
합 계
50,940,885
889,891
23,259
건강보험 가입률
95.6%1)
59.4%2)
N/A3)
출처: 국민건강보험. 「2017 건강보험 주요통계」
비고: 1) 주민등록인구와 외국인등록(거소신고 포함)을 한 합법체류 외국인인구 중 건강보험가입자의 비율
2) 외국인등록(거소신고 포함)을 한 합법체류 외국인인구 중 건강보험가입자의 비율
3) 재외국민 중 귀국해 주민등록을 한 자는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나 국내 체류 재외국민의 수가 별도로 집계되지 않아 건강보험 가입률 계산이 불가능함
2017년 건강보험 통계를 살펴보면(표1)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889,891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59.4%만 가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7년 기준 전체 외국인취업자 868,000명 중 72.6%(613.400명)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어 사회보험을 통한 의료보장이 취약한 상황이다. 특히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은 건강보험 당연적용 제외 사업장이 많다. 이러한 사업장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직장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고, 그러다보니 직장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지역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이번에 발표된 개정안에 의하면, 소득과 재산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은 ‘전년도 내국인 평균보험료’인 103,080원(2018년)을 매달 납부해야 한다. 직장 단위로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생겨나는 마당에, 체류에 불이익을 줌으로써 보험료 체납 문제를 예방하겠다는 방침은 이주노동자에게 심각한 건강권 침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서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적용제외 사업장을 최소화하며, 정부의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일 이번 개정의 주요 표적은 재외동포와 결혼이민자, 유학생들이다. 외국인의 지역보험 가입률은 직장건강보험보다 더 낮다. 방문취업제로 입국하는 재외동포들은 입국 후 취업교육을 받고 구직활동을 할 수 있어 구직기간이 다양하고, 주로 건설업, 서비스업,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소득 불안정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가입률이 낮고, 정기적인 보험료 납부도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을 임의가입에서 의무가입으로 전환한 것은 의료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바람직하지만, 대다수 재외동포를 포함한 비노동 이주민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장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체류 불이익으로 인한 미등록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피부양자 등록 서류 중 해외에서 발행된 서류는 문서 발행국 외교부의 확인을 받은 경우에만 효력을 인정하겠다고 한 부분도 우려스럽다. 재외공관 접근이 어려운 난민, 국내에 재외공관이 없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구비서류를 발급받지 못하거나 발급에 상당한 시일이 걸려서 건강보험 적용의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미숙아로 태어나거나 심각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이주 아동은 의료사각지대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종합해보자면, 이번 외국인건강보험정책 개정안은 내세우는 것과 달리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이주민의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직장건강보험료 납부와 지출에서 연간 2천억 원의 흑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빼놓은 채,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는 적게 내고 의료이용을 많이 하는 ‘먹튀‘라는 오명을 씌워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을 이주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건강보험정책 개정안 시행에 앞서, 현행 제도의 작동을 살펴보고 보완 작업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2. 감염병 관리와 이주민 차별
감염병은 국적과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병 관리는 국가 또는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펼쳐져야 한다. 결핵관리정책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결핵 발생율이 제일 높은 ‘결핵 고위험’ 국가에 속한다. 외국인 체류자들의 결핵 발생률도 높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 결핵관리정책을 세워 내-외국인 차별 없이 결핵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2016년 질병관리본부는 <외국인결핵환자 중점관리방안>을 만들어 치료과정에서 비순응하는 경우, 완치까지 기다리지 않고 전염성이 소실되면 바로 강제 출국시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주민들은 결핵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해고될 가능성이 높고, 또 성폭력 피해나 미등록 체류 등으로 신분이 불안정해지면서 꾸준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치 않은 채 치료비순응자로 분류하여 치료받을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인권침해는 물론 질병확산이라는 역효과를 가져올 올 수 있다. 올해 초 “한국 결핵치료 공짜, 외국환자 우르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언론 보도 때문에 국민들의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은 오해를 키우고 정부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핵을 포함한 대다수 외국인 감염병 환자는 이미 입국 단계에서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이들이다. 이들이 국내에서 감염병에 걸렸다면, 우리사회가 책임을 갖고 차별 없이 치료지원과 건강한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
3. 의료사각지대 이주민 의료지원 현황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희망의 친구들’에는 매일같이 이주민 의료상담 문의가 들어온다. 근무 중 소변을 참다가 정말로 방광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 간 이주노동자, 임신 사실을 모른 채 병원을 방문했다가 뱃속에서 태아가 이미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이주 여성, 독한 화학약품을 쓰는 공장에서 일하다 호흡곤란으로 대학병원에 실려 간 난민,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와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이른둥이 이주 아동. 이들 모두는 건강보험이 없어 평소 병원을 가지 못하다가 응급상황에 처해서야 도움을 요청했다. 2018년 5월 기준 국내 미등록 이주민수가 312,346명으로 전년대비 39.7% 증가하였고, 전체 체류외국인의 13.6%를 차지하며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하여 초과 체류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고용허가제 하에서 부당노동행위나 인권침해 때문에 사업장을 이탈하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최근 난민 신청자가 증가하면서 기나긴 심사 절차를 기다리며 불안정하게 체류하는 난민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모두 의료사각지대에 위치한 이들이다.
1) 정부 지원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 이주민들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조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 조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민족,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진료거부를 사전에 방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응급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응급의료비 대불제도를 통해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응급치료가 필요한 이주민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②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
2005년부터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 각종 의료보장제도에 의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 난민, 국적 취득 전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전국 국공립병원과 적십자병원, 지정병원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017년부터는 본인부담금 10%를 부과하고 있다.
2) 민간단체의 의료지원 활동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주민, 난민, 동포, 다문화가정 등 의료취약계층 이주민을 대상으로 민간에서는 다양한 무료 진료와 의료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이 운영하는 WeFriends Aid(이주민 의료공제회)는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여 상호 부조하는 의료지원 시스템이다. 가입비 1만 원과 월 회비 1만 원을 납부하면 협력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수가 100% 적용 감면되고 사무처에서 총 진료비의 50%에 해당하는 의료비(외래비, 약값, 입원수술비)를 지원해준다. “온드림 희망진료센터”는 다문화가족과 이주 노동자, 난민 등을 돕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과 대한적십자사,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손을 잡고 개설한 의료센터이다. 서울적십자병원 3층에 있으며 외래진료와 입원수술비를 지원한다.
이주는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고 한국도 이미 30년 전부터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왜? 우리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라는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미얀마 출신인 크로낭 씨의 남편 아웅리 씨가 얼마 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공장에서 휴게시간에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본국에 있을 때 축구를 잘해 마을대표로 출전하기도 했을 만큼 건강했다. 미얀마에서 소수종교인 무슬림이었던 그는 술과 담배도 멀리 했다.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던 그는 납품회사가 파업을 마치자, 밀렸던 주문량이 폭주하면서 주말에도 15시간씩 야간특근을 했다. 건강한 30대였던 남편은 어린 딸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남편이 특수건강진단 대상자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그녀의 남편도 특수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
캄보디아에서 온 나비 씨는 충남의 양계농장에서 일을 하다 다쳤다. 양계장에서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사다리 다리가 풀리면서 그녀는 7미터 아래로 떨어져 발뒤꿈치 뼈가 분쇄 골절되었다. 다행히 나비 씨가 일하던 농장은 직원이 5명 이상이라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골절된 뼈를 맞추고 핀을 박고 수술을 했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치료기간 동안 산재보험에서 월급(휴업급여)도 거의 이전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다. 농장에 직원이 한두 명만 부족했어도 그녀는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고, 농장주를 통해서 치료와 보상을 받아야 했다.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이 아니면 농장주에게 병원비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주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에서 올라오는 찌릿찌릿한 통증은 농장주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일하던 농장이 산재 치료를 받는 도중에 폐업했고, 직원들은 다른 농장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회사가 폐업한 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다가 10만원 가까운 돈을 병원비로 내야했다. 회사가 폐업하면서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된 것이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 건강보험이 다시 적용되기 전까지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을 참이다.
▪ 법은 있으나 산업안전보건법의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매년 약 100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 종사자가 대다수이다.
표 1. 이주노동자 산재사망자 현황
구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총계
사망자수
106
88
85
103
470
재해건수
6,390
5,556
6,014
6,419
6,703
31,082
제조업
54
45
39
41
38
217
건설업
37
31
35
53
40
196
출처: 고용노동부 · 안전보건공단
국내의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험법에는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거나 불리하게 적용하는 조항이 없다. 노동관계법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일부 사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간에 최저임금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외국인에 대한 별도규정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외국어로 된 안전·보건표지와 안전수칙을 부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는 12조 규정뿐이다. 나머지 규정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 대우는 법문서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주노동자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유해․위험작업을 수행하고,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특수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등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하여 시행해야 할 제도들이 영세사업장에서는 사업주의 무지와 비용 문제 등의 이유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로 이러한 영세사업장, 즉 인력난이 심한 제조업, 건설업, 농업 분야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두 명의 네팔 출신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2017년 5월 군위군 양돈농장사건의 경우에도, 사업주가 기본적인 안전보건교육을 시행하고, 송기마스크 등 보호구만 제대로 제공했어도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는 산재보험의 보호조차 못 받아
소규모 농축산업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주거환경과 성폭력 같은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산재보험의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정부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산재보험의 적용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상당수 노동자는 여전히 제외 대상이다. 정부는 7월 1일부터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면서
① 상시근로자 1인 미만의 사업,
② 건설면허업자가 실시하는 건설공사가 아닌 소규모 공사를 의무가입대상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5인 미만의 농축산어업은 여전히 산재보험 적용 제외 사업장이다. 농어촌 지역에는 고령화와 인력난이 겹치면서 약 2만 3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농축산업에 고용되어 있다. 올해에만 약 7천 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상당수는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어 합법적으로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근로기준법 상의 재해보상(치료 및 재활, 휴업보상, 장해보상 등)을 사업주 개인(농업인)에게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산재보험이 없던 시절, 병원비와 보상을 영세한 사업주에게만 의존하던 당시의 대립과 혼란이 오늘날 한국의 농어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보험 방식의 산재보험이 없다보니 사업주의 치료방해, 업무복귀종용, 휴업보상 미지급, 보상지연, 보상거부가 비일비재하다. 사업장을 무단이탈하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법적 기준에 못 미치는 보상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주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해서 제일 자주 언급되는 대책은 산업안전교육의 강화다. 자국어로 된 교육교재를 보급하고 안전표지판을 설치하자는 말이다. 이는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황화수소와 시안화수소를 막을 수 있는 개인 보호장구, 사업주 눈치 안 보고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산재보험의 적용, 열악한 노동환경에 문제 제기하는 것을 가로막는 고용허가제의 철폐이다.
필자는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상근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지원, 제도 개선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결혼이주민, 이주노동자, 이주 아동 등 한국에 체류하는 다양한 이주민과 난민들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찾아온다. 필자는 주로 이들의 개별 법률 상담과 무료 변론을 지원한다.
그동안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접했지만, 유독 이주노동자의 노동 사건들은 항상 똑같은 의문으로 귀결되고는 했다. “똑같은 일이 어쩌면 이렇게 계속 반복될까?” 사람만 바뀔 뿐 신기하게도 문제가 되는 사실관계는 다 비슷하다. 게다가 아무리 억울해도 소송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렇게 같은 사안이 반복되고 소송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제도의 흠결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이 흠결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이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이 바로 그렇다. 최근 언론을 통해서, 베트남 출신의 이주민 어업 노동자 한 명이 선장으로부터 가혹한 구타와 흉기 협박, 성추행 등을 당하고도 모자라 한밤중 바다에 빠트려져 죽음의 공포를 겪은 사건이 알려졌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고용허가제’의 흠결을 극명히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언론보도를 접하고 선장의 인면수심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쯤에서 고용허가제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국내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1년 ‘해외투자업체연수제도’를 통해서인데, 본격적으로는 1993년 11월 ‘외국인 산업연수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제도는 이를 통해 입국한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 신분으로 규정함으로써 노동관련 법규의 적용에서 거의 배제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저임금, 고강도 노동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목적으로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었다. 고용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한 한국 기업에게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 고용법’이라 한다)’에 의해 운용되는데, 이 법률에는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이주노동자의 범위, 고용 절차, 취업활동 가능 기간, 사업장 변경 제한 등이 규정되어 있다. 컨설턴트나 엔지니어, 교수로 일하는 외국인들도 ‘이주민’ 신분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고용허가제는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주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입국하여 제조업· 농업· 축산업· 어업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할 때에는 대부분 이들을 가리킨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소위 3D 업종 분야의 노동력을 충원하고,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송출 비리를 차단하게 되었으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 이루어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전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이 일부 보완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의 매일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을 접하는 필자로서는 고용허가 제도로 해결되지 못하는 (또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오히려 생겨나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느낀다. 이러한 문제들이 사람만 바뀐 채 계속 반복된다면, 그리고 소송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이는 정부의 판단과 달리 개인을 넘어선 제도의 잘못이 있는 것이다.
사실 고용허가제는 그 명칭만 놓고 보아도 제도의 설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을 허가하는 것이 아닌,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이다. 즉,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를 주체로 삼는 제도인 것이다. 출발점이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는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부족한 일손을 대체할 수단, 통제해야 할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 등을 적발해야 할 고용지원센터의 근로감독관, 이주노동자의 체류 문제를 다루는 출입국·외국인청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직원들에게도 만연해 있다. 이주노동자를 한 명의 ‘노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돈 벌러 온 사람’, ‘미등록 체류의 위험성이 있는 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피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일들도 종종 생긴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 재고용허가, 근로 계약 기간 연장 등은 모두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결정이 대부분 사업주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대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업주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사업장 변경과 관련된 억울한 사연들이 많다.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기회는 단 3회 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가 없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옮기려면 고용노동부장관 고시 상의 사업장 변경 사유(폭행 등 부당한 대우, 일정 비율 이상의 임금 체불 등)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고시는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눈감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불합리하다. 임금 체불이나 근로조건 위반이 있더라도, 그 위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애초에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려면
① 채용 시 제시된 근로조건 또는 채용 후 일반적으로 적용받던 임금·근로시간이 20퍼센트 이상 저하되고,
② 그 저하된 기간이 사업장 변경 신청일 전 1년 동안 2개월 이상이어야만 하고,
③ 그 경우에도 근로조건이 저하된 기간 중이거나 근로조건이 저하된 기간의 종료 후 4개월이 경과하기 전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경우여야 한다.
이 까다로운 요건들을 충족하기 전까지는 계약과 다른 무보수 추가 노동, 임금 체불 등이 있더라도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옮길 수가 없다. 따라서 인권 침해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게다가 고시 상의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전부 충족하더라도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매일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한국어도 유창하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녹음, 녹취 등으로 증거를 모으기란 쉽지 않다. 목격자가 있다 해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이주노동인 경우가 많다 보니, 사업주의 보복이 두려워 선뜻 도와주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어떻게 될까? 사업주가 관할 고용센터와 출입국·외국인청 (구, 출입국관리사무소) 또는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무단이탈신고를 하는 순간, 해당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이 취소되고 강제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을 볼모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밀린 임금을 달라’, ‘계약서 상의 휴식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너 불법 체류자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이주노동자를 협박하기 일쑤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 달 휴가를 다녀오라’며 선심 쓰듯 이주노동자를 본국에 돌려보내고, 그 사이에 허위로 무단이탈 신고를 하거나 퇴사 처리를 하여 이주노동자의 멀쩡한 체류자격이 취소되게 만드는 악덕 사업주도 있다. 개인 짐도 모두 사업장에 그대로 있고 못 받은 임금도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휴가를 다녀왔더니 입국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악덕 사업주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체불한 임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뽑고 싶어서,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 다양하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도 고용허가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2년부터 2017년 5월 까지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율은 국내 노동자의 6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일하다가 다쳤다는 사실을 고용주에게 말하면 ‘산재 신청하면 불법 체류자 만들어버린다’고 협박을 하거나, 산재 신청 후 사업주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산재 사업장으로 기록되면 산재 보험료 인상, 고용 가능 인력 제한 등의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필사적으로 막는 것이다.
일단 해고를 해버리면, 부당해고 구제 문제는 차치하고 원칙적으로 외국인고용법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 적용된다. 1개월 내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고 3개월 내에 새로운 사업장을 알선 받아 근로계약을 하지 못하면 해당 이주노동자는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힘겹게 산재 신청을 하고 요양 승인을 받아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사업주가 치료비 일부를 피해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해 가거나, ‘꾀병 부리지 말고 일하라’며 치료 중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각 관할 고용지원센터에서도 통역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요양 신청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건설업 종사 외국인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이주노동자의 67.9%가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했고, 전체 응답자 중 17.1%는 산재보험 제도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상태에 따른 건강권·노동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도심에서 떨어진 농축산업 현장이나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외국인고용법의 고용허가 요건에는 기숙사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고, 기숙사 환경 관련법도 미비하다. 이 때문에 비닐하우스에 성별도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남녀 이주노동자 여러 명이 교대로 살거나, 화장실과 냉난방 설비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위생 상태와 영양 부족으로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에서 지내다가 사업주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특히 가해자가 사업주인 경우에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사건을 목격했더라도 진술을 꺼리기 때문에 대부분 꾹 참고 버티는 방법을 택한다.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를 방지하기 위한 차별 금지 조항과 벌칙 조항이 있지만, 노동 환경에 대한 실질적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벌칙 조항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작년 말, 필자가 속한 <이주민 주거권 개선 네트워크>에서 주거권과 관련하여 외국인고용법과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도록 하는 성과를 냈지만, 그 뒤 후속 조치는 아직 미미하다. 이 와중에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숙박비 명목으로 임금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씩 사전 공제를 하기도 한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숙박비 공제 실태를 파악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올해 초부터 사전 공제 가능한 상한액을 정하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주거시설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임금을 기준으로 숙박비의 상한액을 정했기 때문에 주거 환경의 열악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침으로 인해 사업주가 근로기준법 상 임금 전액 지급의 원칙을 위반하도록 정부가 조장하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밖에도 명목상으로는 사업주의 퇴직금 체불 방지를 위한 것이라지만 실상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하는 ‘출국만기보험’ 제도 또한 고용허가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 제도는 퇴직 후 바로 퇴직금을 수령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사업주가 임금을 허위로 신고하는 등으로 인해 실제 받아야 하는 퇴직금보다 훨씬 덜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자격이 볼모로 잡혀 있는데다 부당한 처우를 피해 사업장을 옮겨보려 해도 그 요건을 입증하기가 워낙 어렵고 편견· 차별· 무시와 싸워야 한다.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여간 녹록치 않다. 이 모든 상황은 ‘노동’이 아닌 ‘고용’을 허가하는, 시작부터 발을 잘못 내딛은 고용허가제에서 비롯된다.
물론 좋은 사업주나 근로감독관도 많다. 자신이 고용한 이주노동자가 이전 직장에서 임금을 다 못 받은 것 같다며 직접 센터로 찾아와 도와주려는 사업주도 있고,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진정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 주는 근로감독관도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매번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내가 아무리 개별 사건을 조력한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겠지’라는 좌절감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미안함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국내 체류 이주민이 200만 명을 넘어서고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지도 15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제도를 고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부터 바꾸어서,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체류자격을 부당하게 취소 당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부당한 처우 등의 사실이 있을 때에는 지체 없이 인권 침해가 중단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장관 고시 에서 사업장 변경 사유와 이주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
특정 사업주에게 외국 인력 고용허가를 내주기 전에 실질적인 사업장 검증을 시행해야 하며, 기숙사 환경에 관한 부분도 허가 기준에 추가되어야 한다.
‘고용’ 허가제가 아니라 ‘노동’ 허가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수단’보다는 ‘존재’로, ‘노동력’보다는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환대 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어, 이제는 그 문제를 하소연하시는 분들이 없네” 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국내 거주 외국인 2백만 명 시대라고 하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 그 중에서도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E-9)나 선원취업자(E-10)처럼 법/제도로 인해 구조적 취약함에 노출된 이들의 노동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1. 이주노동자, 얼마나 많은가?
2017년 말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총 2백 18만 명으로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4.21%를 차지했다. 2016년 대비 6.4% 포인트 증가했고, 최근 5년간 매년 평균 8.5% 포인트의 증가율을 보이며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취업 목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는 총 58만 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27%를 차지한다. 취업 목적으로 입국한 것은 아니지만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F-2, 4, 5, 6)까지 포함하면 129만여 명이 한국 사회의 잠재적 이주 노동자인 셈이다.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외국인 유학생(D-2)과 어학연수생(일반연수, D-4)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143만 명에 이른다.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
단기취업(C-4), 교수(E-1), 회화지도(E-2), 연구(E-3), 기술지도(E-4), 전문직업(E-5), 예술흥행(E-6), 특정활동(E-7), 비전문취업(E-9), 선원취업(E-10), 관광취업(H-1), 방문취업(H-2), 거주(F-2), 재외동포(F-4), 영주(F-5), 결혼이민(F-6)
출처: 대한민국 비자포털 (https://goo.gl/76abbP)
취업활동을 하는 외국인 중 재외동포(F-4)를 제외하면,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이 각각 279,127명(12.8%), 238,880명(11.0%)으로 가장 많다. 이들은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 완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도입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온 단순 기능 인력이다. 제도 취지에 따라 고용 업종도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농축산업, 어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고, 고용허가제로 인해 일터에서 당하는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에 맞서기도 어려운 이들이다.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선원취업자(E-10)는 총 16,069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0.7%) 노동환경은 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톤 이상의 연근해 어선과 원양 어선 선원취업자들(E-10)은 고용노동부의 관리를 받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두 집단은 노동조건이 열악한 만큼 ‘미등록 이주노동자’ 비율도 높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E-9)의 16.7%, 선원취업자(E-10)의 37.3%가 현재 미등록 신분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표 1> 2017년 체류외국인 자격별 현황
체류자격
체류외국인 명(%*)
미등록 체류자 명(%**)
외교(A-1)
3,330(0.2)
3(0.1)
연구(E-3)
3,214(0.1)
5(0.2)
공무(A-2)
2,533(0.1)
2(0.1)
기술지도(E-4)
185(0)
2(1.1)
사증면제(B-1)
177,629(8.1)
85,196(48)
전문직업(E-5)
597(0)
9(1.5)
관광통과(B-2)
121,725(5.6)
20,662(17)
예술흥행(E-6)
3,704(0.2)
1,821(49.2)
일시취재(C-1)
28(0)
16(57.1)
특정활동(E-7)
21,206(1)
3,146(14.8)
단기방문(C-3)
199,518(9.2)
56,631(28.4)
비전문취업(E-9)
279,127(12.8)
46,618(16.7)
단기취업(C-4)
1,719(0.1)
175(10.2)
선원취업(E-10)
16,069(0.7)
5,993(37.3)
문화예술(D-1)
83(0)
2(2.4)
방문동거(F-1)
111,449(5.1)
2,774(2.5)
유학(D-2)
86,875(4)
1,112(1.3)
거주(F-2)
40,594(1.9)
3,063(7.5)
기술연수(D-3)
2,705(0.1)
1,448(53.5)
동반(F-3)
22,457(1)
486(2.2)
일반연수(D-4)
49,939(2.3)
7,209(14.4)
재외동포(F-4)
415,121(19)
1,117(0.3)
취재(D-5)
87(0)
0(0)
영주(F-5)
136,334(6.3)
종교(D-6)
1,723(0.1)
51(3)
결혼이민(F-6)
122,523(5.6)
3,439(2.8)
상사주재(D-7)
1,340(0.1)
20(1.5)
관광취업(H-1)
2,346(0.1)
기업투자(D-8)
5,939(0.3)
190(3.2)
방문취업(H-2)
238,880(11)
2,415(1)
무역경영(D-9)
2,982(0.1)
58(1.9)
기타(G-1)
21,197(1)
6,916(32.6)
구직(D-10)
6,129(0.3)
401(6.5)
관광상륙(T-1)
10,298(0.5)
교수(E-1)
2,427(0.1)
6(0.2)
기타
54,134(2.5)
5(0)
회화지도(E-2)
14,352(0.7)
47(0.3)
합계
2,180,498(100)
251041(11.5)
출처: 2017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 (p.43)
* 체류외국인 비율(%)은 전체 체류외국인 중 체류자격별 체류외국인의 비율
* 미등록률(%)은 체류자격별 체류외국인 중 미등록 체류자의 비율
2. 이주노동자, 어디로부터 와서 어떤 곳에서 일하는가?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취업한 이주노동자(E-9)의 국적은 2017년 현재 베트남 38,851명(14%), 캄보디아 38,798명(14%), 네팔 31,509명(11%), 인도네시아 29,681명(11%), 필리핀 26,233명(9%), 태국 24,838명(9%), 스리랑카 24,330명(9%), 미얀마 22,158명(8%) 등의 순으로 많았다 (그림 1). 선원취업자(E-10)의 경우, 베트남 국적 노동자가 6,874명(43%)으로 가장 많았고, 인도네시아 4,590명(29%), 중국 3,868명(24%), 미얀마 669명(4%), 필리핀 34명, 스리랑카 30명, 한국계 중국인 3명, 키르기스 1명 등이었다 (그림 2).
그림 .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E-9)의 출신 국가별 구성비
(출처: 2017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
그림 . 선원취업자(E-10)의 출신 국가별 구성비
2017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E-9)와 선원취업자(E-10)의 사증발급현황을 보면, 제조업(E-9-1)이 43,541명(69%)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어업(E-9-4, E-10-1, E-10-2, E-10-3) 10,936명(17%), 농업 7,170명 (11%), 건설업 2,060명 (3%), 서비스업 100명 순으로 많았다 (그림3).
그림 . 2017년 고용허가제(E-9)와 선원취업자(E-10)의 사증발급현황
3.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현황
2017년 정기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문진국 의원(자유한국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표2), 최근 4년간 (2012~2016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총 470명으로, 연평균 94명의 이주노동자가 작업과 관련하여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5월 기준으로, 산재보험에 가입된 이주노동자 총 215,532명 중 2,497명이 일하다 다쳤고(10만 명당 1,159명), 41명이 사망했다(10만 명당 19명). 같은 기간 산재보험에 가입된 국내 노동자는 총 18,196,149명이고, 이 중 재해자는 34,931명(10만 명당 192명), 사망자는 800명(10만 명당 4명)이었다. 다시 말해,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내국인 노동자의 6배, 산재사망률은 4배 높은 것이다.
<표 2> 2012~2017년 5월 기준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현황
2017년 5월
재해발생건수
2,491
재해자수
6,404
5,586
6,044
6,449
6,728
2,497
사고부상자수
6,165
5,373
5,839
6,227
6,524
2,410
출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의원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전체 이주노동자의 11%를 차지하고, 산재가 발생해도 ‘공상 처리’를 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터에서 다치고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까지 포함하면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 침해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사망 건 수는 훨씬 증가한다. 경남이주민센터에서 2017년 8월 23일에 발표한 고용허가제 규탄성명에 따르면 (표3), 지난 10년간 (2007년~2017년 8월) 주한 네팔 이주노동자 중 총 36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자살은 주한 네팔인 사망의 가장 흔한 원인이었다.
<표 3> 주한 네팔인 사망통계
년도
총사망
남
여
원인
불명
자살
사고
질병
살인
상해
산재
교통
2007
2
0
1
2008
7
6
4
2009
2010
3
2011
10
2012
9
5
2013
18
16
8
2014
2015
23
2016
20
2017(~8)
19
계
130
125
36
21
출처: 네팔인 이주노동자 자살 관련 고용허가제 규탄성명 (주한네팔대사관 자료 발췌)
이주노동자는 업무상 질병 판정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있다. 2018년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이주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38.6%로 국내 노동자 44.12%보다 낮다.
2016년 국내 노동자
2016년 이주노동자
판정
인정
인정률
9,479
4,182
44.12
176
68
38.6
뇌심혈관질병
1,911
421
22
82
25
30.5
근골격계질병
5,345
2,885
76
47.4
기타질병
2,223
876
39.4
38.9
출처: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박선희의 2018년 노동자 건강권 포럼 발표문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실태> 재구성 (근로복지공단)
4. 이주노동자 체류자격에 따른 노동환경과 인권 침해 실태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인권실태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수 차례의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 중 몇 가지 중요한 결과들을 요약한다.
선원 이주노동자
2012년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어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이 조사에서는 부산, 경남, 여수, 제주 지역의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이주노동자(E-10-2) 1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가 이루어졌다. 노동조건, 산업재해, 의료이용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근무시간과 휴일 및 휴식시간을 몰랐다‘ 또는 ’알고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80% 이상
‘임금조차 몰랐거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율이 32.5%
선원 이주노동자의 16.1%만이 선주와 직접 모국어로 된 근로계약서 체결
선원 이주노동자의 58.3%가 선원해상재해보상보험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
임금체불, 산재, 폭행 등으로 관리업체에게 연락하거나 찾아갔을 때 해결 비율 29.2%
선원 이주노동자의 평균 임금 약 110만원. 은행 통장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72.2%의 선원 이주노동자 중 본인이 급여 통장을 갖고 있는 경우는 33.1%
‘하루 12시간 작업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6.5%
휴식시간이 아예 없거나 1시간 미만이라는 비율이 35.5%
육상에 머무를 때 숙소가 아닌 ‘선실에서 잔다’고 응답한 비율이 46.4%
선원 이주노동자 중 36.1%가 산업재해를 경험했지만, 이들 중 선원재해보상보험으로 치료 받은 비율은 21.1%에 불과했고, 52.6%는 산재로 처리하지 않고 선주가 치료비 부담.
선원 이주노동자의 93.5%가 욕설이나 폭언을 듣는 경험을 하였고, 42.6%가 폭행당한 경험이 있으며, 10.1%는 감금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
업체를 변경한 경험이 있는 26.6%의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업체 변경 이유는 임금체불(42.2%)과 장시간 노동(40.0%)이 가장 많았음
선원 비자로 입국했으나 현재 미등록 신분인 14명의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이 적어서’, ‘일이 힘들어서’, ‘폭행 때문에’, ‘숙식이 나빠서’, ‘임금체불 때문에’ 등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 침해를 이탈의 이유로 꼽았음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2013년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이 조사는 전국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E-9) 161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참여 노동자들의 국적은 베트남(51.6%), 캄보디아(38.5%), 네팔(9.9%) 등이었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연구에 참여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91.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입국 후 사업장을 변경한 노동자의 경우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계약서를 제공’한 경우가 35.8%로 매우 낮았고, 계약서를 교부 받지 못한 경우도 76.1%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서 상 임금을 아는 노동자 128명 중 (기타 업종에 종사하는 2명 제외) 26.2%가 최저임금 미만의 월급으로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었다. 근무시간을 고려하여 이들이 받아야할 최저임금을 계산해보면, 71.1%의 노동자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근무 수당을 지급 받은 노동자의 비율은 38.4%밖에 되지 않았고, 임금체불을 경험한 비율은 68.6%로 매우 높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서상 휴일을 있는 노동자 125명 중 (기타 업종에 종사하는 2명 제외) 월 평균 4회 미만 휴일 수로 계약을 맺은 경우가 84%였다. 실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월 평균 휴일은 2.1일로 나타났고, 휴일이 하루도 없는 경우도 8.2%나 되었다.
‘다른 사업장에 보내져서 일한 경험’을 한 농축산업 노동자의 비율은 60.9%로 ‘노동력 불법 공급’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들 중 네 번 이상 다른 사업장에 보내진 경우가 71.4% 였으며, 대부분은 본인의 동의 없이 보내진 것이었다(74.5%).
농한기에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3.1%, ‘해고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2.4%였다.
66.5%의 응답자가 안전장비를 지급받지 못했고,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아팠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 중 58.7%가 ‘본인이 돈을 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3%에 그쳤다. 총 응답자의 43.5%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고 답했다.
건설업 종사 이주노동자
2015년 IOM 이민정책연구원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건설업 종사 외국인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여기에는 건설업 종사 일반 외국인노동자 220명과 중국동포 119명을 포함하여 총 339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외국인노동자는 건설업 종사자의 국적 비율이 가장 높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 출신으로 한정했다. 노동조건, 산업안전과 작업장 환경에 관해 주목할 만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국어 수준이 ‘매우 또는 약간 서툴다’고 응답한 사람이 중국동포는 10.6%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37.1%로 높게 나타났다.
체류기간 초과 등으로 미등록 신분이 된 건설업 종사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 중 근로계약서 미작성자는 각각 27.1%, 30.0%로, 합법 취업자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근로계약서 미소지자 비율은 국적과 합법/미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높았다. 근로계약서 교부는 위반 시 벌금형이 부과되는 법적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중국 동포의 경우 외국인노동자에 비해 숙련기능공 비율이 높았지만, 체류자격(합법/미등록)에 따라 건설현장에서 맡는 업무의 숙련 수준에 큰 차이를 보였다. 합법 체류자의 65.9%가 숙련기능공인 반면, 미등록 신분은 숙련기능공 비율이 31.3%로 낮고 조공(27.1%)과 잡부(22.9%) 비율이 높았다.
건설업 종사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체류자격(합법/미등록)에 관계없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일 근로시간이 10시간 이상인 경우가 외국인노동자 83.9%, 중국동포 89.6%로 장시간 노동이 심각했다. 한 달 근로일수가 28일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 모두에서 합법 취업자가 각각 44.4%, 16.7%로, 미등록 신분 노동자보다 더 높았다.
건설업은 특히 ‘1주일 이상 연속으로 쉰’ 경우가 58.6%로 매우 흔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외국인 노동자는 평균 3.5주, 중국동포는 평균 5주를 쉬었다고 응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일이 없어서’ 쉬었고 (40.0%), ‘그냥 쉬고 싶어서’ 쉬는 경우는 21.7%로 훨씬 적었다. 급여를 일당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불안정 고용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작업장 내 인권침해도 심각했다. 49.7%가 건설현장에서 조롱이나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이들 중 대다수(92.1%)가 한국인으로부터 그러한 모욕을 당했다.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 모두 미등록 상태인 경우 합법 취업자보다 조롱 또는 욕설을 들은 경험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의 21.4%는 건설현장에서 ‘폭행’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건설현장에서 동료 중 신분상의 이유로 협박이나 차별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도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32.6%에 달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31.3%, 중국동포의 13.4%가 건설 현장에서 부상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부상 시 산재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각각 67.9%. 76.5%로 매우 높았다. 산재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외국인 노동자의 41.2%, 중국동포의 21.4%가 본인이 돈을 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연구소는 국가인권위에서 발주한 <제조업 분야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총 385명의 여성 이주노동자가 설문조사에 참여했으며,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결혼이민자도 포함하어 있었다. 노동환경, 산업안전에 관해 주목할 만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조사에 참여한 제조업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48.6%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저학력, 비혼, 한국어 능력이 낮고,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 종사할수록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이 낮아졌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95.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체불 경험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서 30.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주 평균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을 훨씬 넘는 47.0시간으로 조사되었다. 1주 평균 5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한 경우도 40.3%나 되었다. 지난 3개월간 월 평균 휴일은 평균 5.8일로 나타났지만, ‘3~5일’이 45.2%로 가장 많았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81.4%가 지난 3개월 동안 월 평균 ‘5일 미만’ 쉬었다고 응답했다.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43.2%나 되었고, 이 안전교육 조차 ‘모국어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한 경우는 55.8%에 그쳤다. 사업장 규모가 작고 한국어 능력수준이 낮을수록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산업재해 발생 시 산재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47.2%로 매우 높았다. 특히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에 대한 인지도는 거주(F-2), 영주(F-5), 결혼이민(F-6) 비자를 소지한 노동자보다 낮게 나타났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경험을 한 비율은 11.9%이었으며, 이들 중 43.5%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다치거나 아프지 않아서’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47.8%), 신청절차나 방법을 모르거나 회사(사업주)가 원하지 않아서도 각각 23.9%, 13,0%로 높게 나타났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 치료비는 노동자 스스로 부담하는 경우가 34.8%로 가장 많았다.
제조업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미충족 의료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2.9%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다’고 응답했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서 가장 높게 (34.9%) 나타났다. 이러한 미충족 의료가 발생하는 것은 병원에 갈 시간 부족, 병원에서의 언어 장벽, 병원비에 대한 우려, 건강보험 미가입 등으로 나타났다.
예술흥행비자 소지 이주노동자
2014년 한중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예술흥행비자 소지 이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예술흥행비자(예술·연예 E-6-1, 호텔·유흥 E-6-2)를 소지한 이주민 총 156명이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참여자의 국적은 필리핀 (77.5%), 러시아·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12.6%), 몽골(9.9%) 순으로 많았다. 이들의 노동환경, 산업안전에 관해 주목할 만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예술흥행분야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96.7%). 하지만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68.7%가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했고, 계약서 상 임금과 노동 시간, 휴일, 업무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프로모션(중개자)이 임금에서 50% 이상을 공제해 가기 때문에 계약서 상 임금과 실제 받는 임금의 격차가 상당히 컸다. 근무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49.6%, 휴일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45.0%로 높았다.
예술흥행비자 노동자의 많은 수가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본인이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 프로모터, 업소 매니저 등이 이러한 신분증을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흥행비자 노동자 중 53%가 언어폭력, 46.4%가 물리적 폭력, 55%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일터에서의 폭력에 상시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업무시간이 아닌 시간이나 휴일에 강제 노동을 했던 경우가 49.7%, 외출이 금지된 경우 44.4%, 개인 활동을 감시받은 경우 51.7%,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게 제지당한 경우도 46.4%나 되었다. 감금을 당한 경우도 10.6%나 되었다. 이들 예술흥행비자 노동자에 대한 노동 강요와 개인 활동 감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흥행비자 노동자의 54.4%가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쳤던 경험이 있었지만, 22.3%는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병원 장소와 이용 방법을 모른다는 점, 비용, 시간, 의사소통, 강제 출국에 대한 염려 등이 지적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36%로 가장 많았다.
기록적인 더위입니다.
1994년 여름, 서울의 소문난 부촌 평창동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부자 동네라고 골목길에 에어컨이 나오거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건 아니더군요. 간간이 창문을 굳게 닫은 승용차만 지나갈 뿐, 인적을 찾을 수 없는 높다란 언덕길을 하염없이 걸어 올라가면서, 사람이 더워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습니다. 그나마 저는 명함을 내밀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후배는 그야말로 매일이 탈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더위 속에서 일하는 게 ‘직업’이었던 이들이 그 시기를 어찌 보냈는지, 당시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더위는 그 때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물건을 배달하고, 건설 현장에서 조선소에서 야외 작업을 하고, 또 비닐하우스에서 양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디 큰 피해 없이 이번 여름을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이번호 기획 특집은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 서울의 성수동이 지금처럼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 전, 당시 노동건강연대 사무실 근처에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단체들과 함께 건강실태조사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노건연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은 줄어들었는데요. 그동안 산업연수생 제도를 거쳐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었고,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지역이나 분야도 대폭 넓어졌습니다. 이주노조도 합법화가 되었구요. 그런데 작년 국정감사에서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이 내국인의 6배라는 통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노건연이 이주노동자들과 한 발짝 떨어져 있었는데,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간의 ‘발전(?)’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주노동자의 현황을 정리하고 고용허가제도의 문제점, 이주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실태와 의료보장 문제를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이주노조 활동가들과의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의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이 ‘투투버스’에 보여준 연대에 그나마 고개를 들 수는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자 이야기는 ‘문송면 30주기 특별대담 - 노동자가 되지 못한 노동자’에서도 이어집니다.
수은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열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문송면처럼, 아직 노동자가 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현장실습 학생들이 오늘날 처한 현실을 들어보고, 이 문제의 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문송면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태어난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가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기도 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독성계란, 발암물질 생리대, 이제는 라돈침대에 이르기까지 환경보건 이슈가 매우 뜨겁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지 노동보건과 환경보건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노동환경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주제의 연장선 상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 논란에 즈음하여 열린 산업보건학회 특별세미나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의 알권리’ 발제 부분을 지상중계석에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유독화학물질이 들어간 페인트 제거제를 판매장에서 내보낸 미국의 시민운동 성공 사례를 소개합니다. 노동, 환경, 기업의 책임, 노동자와 시민의 알 권리, 건강권, 정부의 책무성에 대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글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노건연에 새로 합류한 한지훈 활동가의 영화감상기를 실었습니다. 공학도의 눈으로 바라본 SF 영화는 어떠할지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7월 중순에 발행하려던 ‘노동과 건강’ 여름호가 한 달 넘게 지연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신없이 가을호 준비를 서둘러야 할 상황입니다. 이렇게 발행이 늦어지는 동안,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노건연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요구해왔던 기업살인법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발의한 의원이 바로 그였습니다. 지면을 통해서, 그리고 이미 늦었지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평생 노동자와 인간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노회찬 의원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김명희 / 노동과건강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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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3 실태조사에 비친 노동자의 오늘
농촌으로 간 이주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_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를 중심으로
정해명 / 노동건강연대 회원·공인노무사
벌써 다섯 번 째 노동청 조사다.
그사이 두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농장이 바뀌어 이천과 아산에서 일하고 있다. 2주전에 조사 때문에 하루를 쉬었고, 오늘도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이들은 이번 달에 쉬는 날이 없다.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오늘이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조사 끝나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다.
농한기인 겨울인데도 사장은 지난번엔 오지도 않고 오늘도 늦는다. 마지막달 월급도, 퇴직금도 아직까지 안 주고 있는데도 사장은 당당하다. 일하다 다쳐 손톱이 나간 노동자가 일하지 못한 동안의 휴업보상을 요구했는데 사장의 머릿속엔 건강보험이 아닌 일반수가로 처리되어 꽤나 나온 병원비만 뱅뱅 돈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농업의 경우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인 농장주에게 보상책임이 있다는 말을 사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농업, 임업(벌목업은 제외),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사업으로서 근로자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 규정이 적용된다)
근로감독관은 시간외근로를 했다는 입증자료가 없으니 시간외근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본인이 직접 작성한 수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농장이 바뀌어 본인이 가고 싶어하던 돼지농장이랑 미나리농장에 간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두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좀더 들여다보자. 지난 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이 발간한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에서 발췌, 축약하였다.
1.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 현황
농축산업에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서였다. 1990년 666만명이던 농업인구가 2004년 342만명으로 줄어들고, 전체 농가중 60세 이상의 농장주는 전체의 60%를 넘었다. 이러한 농축산업의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부분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하여 2003년 7월 923명의 외국인이 외국인농업연수생의 신분으로 들어왔다.
산업연수제의 여러 폐해로 인해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농축산업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다.
농축산업 분야의 외국인노동자 수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여 2006년 892명에서 2012년 12월 현재 16,484명으로 늘어났다. 2013년 도입쿼터는 전년도 4천5백명에서 6천명으로 늘어났고, 농축산업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
사업장 변경 제한 등으로 인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실태는 매우 열악하다. 농축산업의 경우 농장주를 제외한 노동자 2~3명이 안팎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단이나 도시에 위치한 제조업과는 달리 농촌에 위치하여 다른 농장과 거리가 있고 농장주와 함께 고립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폭언 및 폭행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만연해 있다.
가. 신분증 압류
한국에 도착해서 3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사업장에 도착하면, 농장주들이 여권과 신분증을 압수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등록증이나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여권을 압류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농장주들은 사업장의 이탈이나 도주를 막기 위한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는 실정법 위반이다.
(출입국관리법 제33조의2(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 확보수단 제공 등의 금지)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외국인의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을 취업에 따른 계약 또는 채무이행의 확보수단으로 제공받거나 그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
가혹한 노동조건이나 사업주의 폭력에 반항하는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권을 강탈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 폭력이 동반되기도 한다. 신분증 압류는 외국인노동자가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신분증없이 외출했다가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걸릴 경우 불법체류자로 오인되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 제27조(여권 등의 휴대 및 제시) 1.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항상 여권, 선원신분 증명서, 외국인 입국 허가서, 외국인 등록증 또는 상ㄺ허가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만, 17세 미만인 외국인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제1항 본문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공무원이나 권한 있는 공무원이 그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여권 등의 제시를 요구하면 여권 등을 제시하여야 한다)
농축산업의 경우 외부와 고립된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하여 사업장을 이탈하는 비율이 제조업에 비해 높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농장주들의 신분증 압류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나. 폭력과 폭언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노동관계법 위반 등의 문제를 겪은 외국인노동자가 농장주에게 반항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경우, 농장주는 욕설을 하거나 폭행, 농기구로 위협하는 경우도 드러난다. 고립된 농장에서 외부단체나 기관에 도움을 청할 경우 농장주가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수의 농장주들이 외국인노동자에게 갖고 있는 불만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사일을 접해본 적이 없고 일이 손에 익지 않다보니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농장주에겐 자신의 이익과 연결된 부분이다 보니 외국인노동자들을 다루는 게 가혹해 지고, 음주가 더해져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폭력이 발생할 경우 경찰이나 노동부 고용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일방적인 농장주의 진술만을 듣거나 한국인 편들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역을 지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다. 성폭력 노출
농장주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여성 외국인노동자들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농축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여성 외국인노동자 비율이 3배 가까이 높아 전체 외국인노동자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의 법제도에 어둡고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농장주와 장시간 함께 지내기 때문에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많다.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도 여성노동자가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농장주와 같은 집의 빈방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더욱 높은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라. 열악한 주거환경
많은 농축산업의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장 안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낡은 컨테이너, 농장주의 빈방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문이 잠기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 노동자의 사례도 있다.
이러한 기숙사들은 냉난방이 잘되지 않고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농장주에 따라 별도의 기숙사비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하는 경우도 있다.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로 제공하며 1인당 월 20만원이 넘는 비용을 공제한 경우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기숙사의 경우 온수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물을 끊여서 씻어야 하며,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과 욕실 등의 시설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 불법 파견노동과 계절적 해고
외국인노동자는 반드시 근로계약을 체결한 농장주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외국인력중개업자(브로커)가 개입하여 마을마다 유휴 외국인노동자를 다른 마을이나 지역으로 보내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외국인노동자는 누구의 농장에서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면 인력이 부족하여 농촌에서는 외국인노동자를 서로 보내달라고 고용센터에 아우성을 치지만, 농한기가 되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의 대량해고가 이어진다. 시설농가나 축산업의 경우 겨울철에도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농장의 경우 할일이 없어 다른 농장으로 불법 파견이 되기도 하며 일거리 없이 방치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금이 체불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농장주가 근로계약을 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봄에 오라며 버스터미널로 내보내기도 한다.
바. 장시간 노동 및 노동권 침해
고용허가제 자체가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금지를 원칙(고용허가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최초 3년간 3번에 한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으며, 체류기간이 갱신된 1년 10개월 동안 2회를 다시 변경할 수 있다.)으로 함에 따라 노동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용허가제 아래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엄연히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농축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63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벱 제63조(적용제외) 이 장과 제 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 토지의 경작, 개간, 식물의 재식, 재배, 채취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2. 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포, 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
농축산 및 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시간, 휴게․휴가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연장근로를 1주 12시간으로 제한받지 않으며, 1주일 평균 1회의 유급휴일도, 연장․휴일근로에 대한 50% 가산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다수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한 달에 2회 정도의 휴일밖에 쉬지 못하며,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농장주들이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나 질병 등이 발생할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비싼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는 업종을 변경할 수 없어, 출국 때까지 오로지 농축산업에서 일해야 하며, 다른 사업체의 이동도 농장주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농장주들이 사업장 변경의 대가로 외국인노동자에게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3.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의 구조적 원인
- 왜 농민들은 ‘악덕 사업주’가 되었는가?
살펴본 바와 같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신분증 압류를 통한 강제노동, 폭언과 폭행, 강제파견노동 등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농장주에 매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농노’처럼 살아가고 있다.
고용주에 의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악덕 고용주’ 개개인의 잘못이 큰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영세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없이, FTA와 산업구조변화 등으로 피폐해진 농축산업의 취약한 부분을 외국인노동자로 메우려는 정부정책과 이를 위해 마련된 고용허가제의 태생적 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
지적한 바와 같이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한국의 말과 제도를 거의 모르는 외국인노동자와 사업주간의 힘의 불균형이 더해져 외국인노동자를 자신의 귀속물로 여기게 되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법이 합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준 측면이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할 행정관청인 고용센터는 고용허가제와 관련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담당인력과 업무역량 부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의사소통이 어렵고, 선입견이 더해져 권리구제를 요청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관할 고용센터는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데도 1년에 1회 점검도 인력이 부족하여 어려운 실정이다. 법위반 사실이 발견되어도 시정요구만 할 뿐, 강력한 재제를 하고 있지 않아 반복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농장주가 월 300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에, 월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보고도 고용센터는 아무런 문제없이 전산에 등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취업교육을 담당하는 농협은 교육뿐 아니라 고용변동신고, 고용허가 기간 연장 신청 등 각종 신청을 대행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게 되어 있으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보호보다는 농장주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실정이다. 경찰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정부기관도 외국인노동자가 권리침해를 호소해도 외국인노동자의 의견에 대한 통번역도 없이 사업주의 진술만을 듣고 일방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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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니 고향이 중심이야, 변방은 없어"
-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감독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숨이 멎을 것 같은 폭염이 조금은 수그러든 8월 중순의 안산역. 평일 한 낮 인데도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제법 많다. 역지하도에는 노점들이 유달리 많고, 상가마다 서너개 나라 언어가 기본으로 붙어있다. 안산역 맞은 편 ‘국경없는 마을‘ 에 도착하기 전이지만 안산역 자체가 국경없는 마을의 정거장이었다.
‘국경없는 마을’에서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감독을 만나 쌀국수집으로 간다.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가끔 사먹던 쌀국수와는 다르다. 베트남 사람이 만들어 준 베트남 쌀국수다. 오리지날 쌀국수와 비빔쌀국수, 볶음밥까지 베트남식으로 배불리 먹었다. 맞은 편 파키스탄 찾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짜이와 라씨를 주문했다. 베트남식 식사에 파키스탄식 디저트.
<지구인의 정류장> 으로 가는 길. ‘국경없는 마을’의 끄트머리에 2층짜리 다세대 건물에 <지구인의 정류장> 이 있다. 좁은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작은 방들이 여러 개 보인다. 1층은 한국인 주민들이 산다. 2층 계단을 돌아 올라가니 제법 큰 집이다. 넓은 마루 한 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쇼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 안쪽 방에 누워 낮잠에 빠져있는 사람… 이주노동자다. 모두.
주방에는 설거지된 그릇이 한 소쿠리 쌓여있고, 화구 두 개짜리 구형 가스레인지가 있다. 냉장고 옆에 쌀포대가 쌓여있다.
먼저 이주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_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10여년 전 버마민주화 운동에 대한 다큐를 찍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은 월급의 1/3을 내놓으면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죠. 2000년에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베트남전의 상처를 접하면서 국경의 안과 밖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2007년 안산에 정부가 지원하는 이주노동자센터가 만들어졌어요. 센터 안에 미디어팀을 만들어서 영상교육을 하면서 안산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미디어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활동비도 없이 일했지만 2008년에 이주노동자들과 30여편의 영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대통령이 바뀌면서 센터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왜 카메라교육이 필요하냐, 나가달라 고 하더군요.결국 압력으로 센터를 나오게 됐는데 이 때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연작 다큐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결국 ‘이 별에서 살다’ 라는 다큐 한편을 찍고 연작은 중단되었죠.
흠 다큐제목이 단체이름이 된 건가요, 이주노동자에게 카메라가 왜 필요한가 라는 압력으로 활동도 중단되었다니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군요.
_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다큐를 구상할 때는 문화, 습성, 사고방식 등 노동자정체성을 담는 걸 생각했어요. 이주노동자 쉼터를 관찰하면서 구상한 것인데요. 요새 다문화를 많이들 말하는데 다문화는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과 그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고요, 한국문화를 강요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죠. 우리가 평소에 한복을 입나요? 태권도 공연하면 다문화인가요. ‘오늘 여기 현재의 삶’이 없는 다문화는 국가정체성을 주입하는 이미테이션 장사죠.
저는 2009년 안산역 앞 다른 단체 사무실에 방 한칸을 얻어 다시 다큐작업을 시작했어요. 센터에서 나가라고 할 때는 장비를 갖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장롱에 있던 옛날카메라까지 모아서 작업을 했죠.
아 듣기만 해도 그 열악한 상황이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를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_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라기보다 이주노동자에게 미디어교육을 제공하고 그들이 직접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죠. 당사자의 자기표현이 중요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정체성도 생기는 것이고요.
그 때부터 안산에 계속 있어야겠다, 왜 있고 싶은가? 할 얘기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자의 시선으로는, ‘하더라’ 는 이야기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죠. 이주노동자들이 일만 하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말 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생각, 다른 기획을 할 수 있는.
그런데 어쩌다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숙식을 할 수 있는 공동체까지 오게 된 것인가요?
_ 처음부터 생활공간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쉼터를 유지한다는 게 날마다 새로운 경험이고 날마다 처음 일어나는 일들인 상황인데요, 그 전까지는 다큐를 어떻게 할까 구상하고 있던 상태였어요. 이주노동자들과 문화컨텐츠 교육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제일 많이 만나게 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한국 사람들에게 교육도 하고 국가정체성으로가 아니라 정말 다양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더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를 두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고 대학교 때 보던 노동법 책을 20년만에 다시 펴보게 되었네요. 제가 법학과를 나왔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지구인의 정류장>은 애초에 미디어교육과 영상작품을 이주노동자가 주도하여 창작하는 공동체를 꿈꾸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단체처럼 되고 있다는 말씀 아닌가.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산재, 등록노동자와 미등록 노동자의 처지에 따라서 다른 도움요청들. 이런 문제들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나 정부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왜 이주노동자가 카메라 잡는 것을 싫어할까요.
_ 이주노동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한국에 일하러 왔는데 왜 돈 안 벌어?’ 이렇게 말하죠.
어떤 사장이 말하길 자기 공장에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숙소에 남자친구를 자주 데려와서 노는데 풍기문란이라면서 ‘짤라야겠다’ 고 하더라고요. 제가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주말에, 일 끝난 시간에 남자친구 데려오는 게 뭐가 문제냐, 다른 노동자들도 그러지 않냐 물었더니 ‘자주 와’ 이래요. 사장이 계속 베트남 여성노동자에게 남자친구 데려오지 말라고 협박하길래 제가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했더니 “사장이 때린 것도 아니고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 이럽니다.
이주노동자가 많이 찾아올수록 저도 노동부와 말싸움할 일이 늘어나죠.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도망온 노동자가 있는데 사장은 노동부에 ‘걔가 자해하고 도망갔다’ 이럽니다.
카메라를 잡아본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_ 미디어는 일차적 수요는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내가 카메라에 잘 찍히나 예쁘게 나오나’ 관심을 갖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사회적 발언의 주체로 자기 표현하는 경험을 하기는 어렵죠. 이게 중요한데요. 프레임의 문제인데요, 내 문제를 내가 표현하면 누구라도 함부로 하지 않죠. 인권개선에 도움이 돼요.
저희 공간에 오는 노동자들 중에도 자기 얘기를 야무지게 표현하는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카메라로 자기 숙소를 찍어와서는 ‘여기가 돼지 키우는 데냐’ 멘트도 하고요.
저 역시 이주노동자를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온 사람들, 돈 많이 벌어서 돌아가야 할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자기 발언권 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_ 여기서 처음에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알음알음으로 계속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모이고 있어요. 캄보디아에는 최저임금제가 없어서 한국에 와서도 근로기준법 개념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이 힘들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죠. 충분히 항변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럴 때 통신의 권리가 중요해요. 통신을 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죠. 통신, SNS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얼마 전에 김포 쪽에서 일하던 베트남노동자가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망했어요. 발병하고 나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병원에 간 모양이에요. 미열이 나기 시작할 때 바로 병원에 가 봤어야 하는데 정보가 없었죠.
전북 익산에서 22만원 주고 택시타고 찾아온 여성노동자가 있어요. ‘안산역에 있어요’ 라는 말만 듣고 찾아온 거예요.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양계장에 취업한 여성노동자인데 돈을 덜 받았어요. 한 달에 90만원 받고 매일 열 시간도 넘게 일을 했어요.
요새는 농촌에 취업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나요. 도시, 공장지역보다 감시감독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는 지원단체가 안 되려고, 센터가 안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센터가 얼마나 많아요? 만원 받고 서류 한 장 써주는 센터가 안산에 넘쳐나요. 인력소개소도 간판에는 ‘센터’라고 붙여놔요. 센터, 중심이라는 소리인데 왜 여기가 센터냐,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가 그래요. ‘니 고향이 중심이야’ 변방과 중심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고 싶어요.
도와주는 자와 받는 자의 지위를 거부하고 다른 관계를 만들어야죠. ‘너의 문제를 도와줄 사람은 너 뿐이야 네가 스스로 도와줄 방법을 모르면 누가 하냐’ 제가 자주 하는 말이에요.
많은 이주노동단체들이 도와주는 자의 지위에 있는 편이지요?
_ 그래요. 이제는 많은 조직들이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에 왔어요. 지원 조직의 90%가 교회인데 평등, 인권 등 다른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본인의 삶을 극복할 기획을 해야죠. 목사의 시선, 자선의 시선으로 상담하는 게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경험을 만들어야 해요. 개인의 경험과 집단의 경험을 사례로 남기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에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_ 제가 참 우아하고 교양 있는 미디어, 문화 교육을 꿈꿨는데, 문화의 이질성을 서로 알고 가르쳐주고, 문화역량이 있는 다큐후배들을 발굴하고 문제제기 하는…. 지금은 급한 사건들 상담하랴 문제 해결하랴 본래 하고 싶었던 건 당분간 보류한 상태예요.
활동가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구인의 정류장>은 하반기를 어떻게 날 것인지 오늘 밤 회의가 있는데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할 것인지… 상반기 단체등록이 목표였거든요. 수입을 확보해서 전체 예산의 20%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쓸 곳을 정하고 했으면 좋겠네요. 지금 은 냉장고가 고장 났고, 밥 먹는 상다리가 부러졌어요(웃음).
음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요?
_ 즐겁게 해야죠, 내 마음이 후회할 수도 있는데. 돈을 내면 마음도 가잖아요. 옛날 친구들 만나면 후원하라고 명함을 내밀죠. 처음에는 못했는데. 그러면 대학교 때 친구들은 ‘정부 지원이이나 제도’ 이런 얘기 하면서 말이 많아져요. 오히려 중학교 때 친구들, 시골 친구들은 ‘반갑다 얼굴 그대로구나’ 하면서 별 말없이 후원을 하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집단이 커지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규율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정비할 게 많아지네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카메라는 못 하고 돈 모을 궁리를 하고 있네요. ‘종교를 만들어라’ 그러면 돈이 모인다고 농담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지구인의 정류장 후원을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구인의 정류장 상임역무원 김이찬입니다.
2009년 ‘이주노동자들의 영상공부방’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 ‘노동인권상담, 긴급피난자의 임시체류, 생활일기비디오 만들기, 기획영화 제작교실, 라디오교실, 그림이 있는 한국어교실, 북새통(인근 연극단)과 함께 하는 연극교실 등으로 확장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활동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노동현장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인권침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소극적이고 때론 비우호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고 사회관계에 보다 깊이 성찰할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의 한계가 있지만 노동자에게 효과적인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를 느낍니다.
요즘엔 2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정류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식사도 많이 합니다. 한 달에 쌀 두가마를 소모합니다. 쌀 보내주세요.
상시적으로 노동자들은 고용지원센터, 노동부감독관, 고용주 등과 때론 협의하며 항의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지 위해 할 일을 경험 속에서 배웁니다. 가능하다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넘어서도록 유도합니다.
매주 2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노동상담을 하기위해, 다른 2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그냥 들르러’ 다른 2~5명의 노동자가 동료를 도우러, 체류하거나 방문하거나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정류장 블로그 : http://ichan.tistory.com/
얼마 전 1박 2일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주노동자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한국까지 일하러 오게 된 사연,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방송을 통하여 생생히 소개되었고, 그들과 가족이 상봉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방송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새롭기도 했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무겁지 않게 다룬 연출진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TV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뒤엉켜 맴도는 생각이 나를 TV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 그림 1. KBS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특집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싫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눈빛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인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깔보는 것 같은 눈빛, 불쌍하고 가엽다는 듯한 눈빛, 경계하고 피하려는 눈빛. 그 눈빛들 중에서 가장 불쾌한 눈빛은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으로 보는 눈빛이라고 한다.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한국에 와서 떳떳하게 노동을 하고 있는데, 불쌍한 눈빛을 보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이 지적한 시선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와 같은 시선은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타자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TV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혹시 1박 2일의 결과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눈빛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는 단일 민족 사회를 오랜 기간 유지한 한국의 특징에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이 과연 한국인의 눈빛에서 앞서 말한 느낌을 받고 있을까? 필자는 미국과 서유럽 출신의 외국인들이 이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국적을 미국이라고 밝혔지만 한국 사람인 내가 보기에도 매우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숨기고 미국인 행세를 하고 싶은 까닭을 한국 사회가 배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수 없다. 여기에는 인종과 피부색에 대하여 한국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열등감 또는 트라우마가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1박 2일에 등장한 이주노동자들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방송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려면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 주말이 되어도 마음 놓고 시내 구경 한 번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사람들, 불법 체류라는 낙인이 찍힌 탓에 재입국 거부가 두려워 10년이 넘도록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바로 체류 자격과 취업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10년 12월 현재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정부 정책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점점 잊혀지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앞에서 말한,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쾌한 눈빛조차 그리워할지 모르겠다.
현재 정부의 외국 인력 정책은 모두 1박 2일에 출연하였던 이들과 같은 합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맞추어져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강제 추방’이라는 정책만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삶은 언론조차 외면하고 있다. 간혹 단속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하거나, 지친 삶의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이들의 슬픈 이야기만이 간간히 흘러나올 뿐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강제로 추방된 외국인의 수가 8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단속을 위해 범죄자들에게나 사용되는 수갑, 포승, 경찰봉, 가스총, 전기 충격기 등의 사용을 허가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0년 12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26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인구 50명당 1명이 외국인인 다문화, 다민족 사회에 살고 있다. 이들 중 70만 명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 아래서 한국인이 손을 놓아버린 더럽고,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낯설고 다른’ 이방인들이 아니며, 국민 경제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다.
낮은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앞으로 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할 것이고, 어쩌면 국민 경제의 유지를 위하여 정책적인 이민 유치까지도 고려해야할지 모른다.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그 출발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것,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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