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집을 사다 _ 첫 번째 이야기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드디어 집을 샀다. 시골 농가를 사게 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창피하지만 우리 집 가계형편도 공개해야 이야기가 풀리겠다.
지난 봄, 주인아주머니가 전세금을 2천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니, 무려 40%인상이다. 이렇게 높은 인상률이 합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주인댁의 여러 문제에 시달려온 후라 우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인댁과의 감정적 말다툼 끝에 서로 석 달 안에 우리는 새 집을, 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기로 하였다. 홧김에 질러놓고 돌아서니 걱정이 앞섰다. 전세가 많이 올랐다는데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예상대로 주변의 전세가 너무 많이 올라있었다. 전세 7천만 원은 기본이었다. 특히 전철역 가까운 곳은 아예 집이 없었다. (여기서 ‘가깝다’의 기준은 도시와는 좀 다른데, 차로 10분 거리 이내는 역세권이다. 차로 10분 거리는 사람이 걸어서 30분 이내를 뜻하는데 이 거리가 걸어 다니기의 한계인 듯하다) 불과 2년 만에 전세 값이 2,3천만 원이 오르다니. 서울의 전세대란은 약 6개월 후 양평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시장통의 전단지-역에서 차로 15분거리의 외곽지역 전세집]
게다가 우리가 집을 고를 때 가장 문제는 개와 고양이 6마리를 키울 것을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전세금 5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읍내의 다세대, 혹은 낡은 연립 등 공동주택들인데 여기서는 6마리의 동물을 키울 수가 없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전세 8천,9천을 육박하고 있었다.
보름 정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던 우리는 어느 날 저녁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나날이 뛰는 전세 값도 문제지만, 집을 매입하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또 시골에 살면서도 동물을 마당에 내놓지 못하게 하는 집주인들에게 질리기도 했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지만,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경기불황의 여파에 상관없이 투자의 가치가 있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5천만 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치고, 1억~1억3천만 원 선에서 집을 알아봐야 한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 전철역 인근이어야 한다. 작아도 동물을 맘껏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의 대출심사를 위해 토지대장, 건축물대장등의 서류가 구비되어 있고, 토지에 불법건축물이 없어야 한다. 결론은 이런 집은 없다는 것.
우선 양평의 단독 주택의 시세는 보통 2억부터 시작한다. 2억 미만의 주택은 거의 없다.
1억3천 선에서 매매를 알아보고 싶은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부동산엔 그런 매물은 없어요.
소파에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부동산 사무실 입구에서 퇴짜 맞기 일쑤였다. 10곳 중에 1곳 정도만 “일단 앉아보세요” 라며 대꾸를 해주었다. 이런 푸대접을 하루 종일 받다보면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둘째, 전철역 인근은 아예 매물로 나온 집 자체가 별로 없고 있어도 가격대가 너무 높았다. 셋째, 도대체 서류가 깔끔한 집이 별로 없었다. 원주민들의 오래된 집은 과거부터 토지대장 등이 투미한 채로 자손에게 상속된 것이 많았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도 알 수 없는 많은 이유로 서류가 허위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집은 23평으로 짓고 준공허가를 우선 받은 후, 임의로 증축하여 30평을 만들었다. 등기에 없는 7평은 무허가건축물인 셈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인데 이런 집이 태반이다. 우리처럼 은행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허가 증축은 안 될 말이었다.
집을 못 구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많이 돌아다녀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의 주택밀집과 달리 시골은 집이 뜨문뜨문 있을 뿐이다.
[포병부대 옆 집-대지 160평. 집 자체만 봤을 땐 여기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한 달을 돌아다닌 결과, 몇 군데 집을 보았다. 우선 1억2천 짜리 양동면의 농가주택. 이 집은 50년 된 집으로 벽이 흙벽으로 되었는데 너무 낡아 수리가 불가능하고 새로 지어야 하는 집이었다. 건축비 최소 3천만 원.
개군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바로 뒤가 포병부대여서 장갑차등의 각종 중장비의 소음과 매연이 심각하다는 뒷집 아주머니의 귀띔이 있었다.
지평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대지도 240평이고 집도 쓸 만한 콘크리트 집이어서 맘에 들었는데 뒤편이 헬기부대착륙장이어서 훈련기간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개군면의 1억2천 짜리 집은 아담한 한옥을 개조한 집으로 한옥마을이 생각나는 곳이었는데 2층이 무허가 증축이라는 문제가 있고 바로 앞이 대규모 축사가 버티고 있어 벌레와 냄새가 심각했다.
청운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전철역에서도 차로 30분이라 거리도 멀고, 건축물 등기도 없는 집이었다. 읍내에서 가까운 1억3천 짜리 농가는 땅도 넓고 집도 깔끔했지만 토지가 절대농지로 묶여있는 곳이어서 앞으로도 거래가능성이 낮은 곳이었다.
그리고 여주경계를 넘어 천서리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 1억5천 짜리 집은 다른 조건은 훌륭하나 진입로가 없어 앞집 마당을 거쳐서 다녀야 하고 일 년에 50만원씩 진입로 사용료를 줘야 하는 곳이었다. 진입로 없는 집은 땅의 가치가 불확실하므로 탈락.
지평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 산이 남한최대의 탄약저장고였다. 산기슭을 따라 탄약 창고의 입구가 줄지어 늘어져있고 산 전체가 삼엄한 경비로 둘러 싸여 있었다. 이 탄약고가 터지면 양평일대가 절단난다는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탈락.
[개군면의 한옥집-대지 80평. 뒤로보이는 2층이 무허가 건축물이라 은행대출이 안된다]
대략 이런 집들을 보았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가격에 맞는 집들은 다 이런 상태였다.
부동산을 찾아다닌 한 달,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돈이 없어 맘 상하고 퇴짜 맞아 속상하고, 그나마 본 집이 이 꼴이어서 황당하고, 이사 들어올 사람은 이삿날 잡아달라고 독촉하고.
개, 고양이 6마리에 세간을 이고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시련은 계속된다. 어렵사리 마땅한 집을 구해서 계약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안 팔겠단다. 가을에 원주 행 전철이 개통되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했다.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또 한 집을 찾아내서 계약을 하려니 집주인이 유산문제로 송사중이어서 기다려야 한단다. 2순위로 생각한 집이 있어 연락했더니 그사이 다른 사람이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식욕도 없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짜가 한 달도 안 남았다. 불안하기 그지없다.
[2순위로 생각했던 집-대지 170평. 하루이틀 머뭇거리는 틈에 다른 사람이 계약해버렸다]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려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한 곳에서 집을 보여주었다.
청운면의 이 집은 1억3천 이고 고속도로 바로 옆이었다. 70년대 지어진 새마을주택으로 지붕은 나무 널판지, 마당엔 무허가 창고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지붕올리고 창고 철거하는데 만 1천만 원가량 들것 같았다. 석면슬레트건물이라 특수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마당 한 쪽에 시커멓게 서있는 한 칸 건물을 가리키자 ‘화장실’이란다.
‘수세식 화장실은 없나요?’ ‘네, 없어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화장실 없는 집까지 보게 되었구나. 수세식으로 바꾸려면 정화조부터 묻어야 하는데 그것만 600만원이라고 한다. 집을 개조하는 공사비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너무 하는군.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야’
[고속도로 옆집- 대지 200평. 푸세식 화장실. 70년대에 지은 새마을 주택이다]
차를 끌고 달렸다. 집 같지도 않은 집을 비싸게 내놓은 사람들에게도 화나고, 일이 틀어지는 상황에도 화나고, 보증금 500만원 월세방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지나갔다. 양쪽 부모로부터 돈 10만 원도 안 받고 지금에 이른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과연 바보 같은 짓이었나. 자괴감도 들었다.
강을 건너 여주로 넘어갔다. 30분 정도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아, 여주는 얼마나 평화롭고 좋은 집도 많이 보이는지.
마침내 우리는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계약에 이르렀다. 양평에서도 서울 쪽으로 가까운 옥천면이고 전철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며 축사도 없고 군부대도 없는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이고 외지인이 별로 없어 원주민들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이었다. 집도 지은 지 16년 된(16년 밖에 안 된!) 빨간 벽돌집에 마당도 100평으로 살 만 했다. 바로 앞에는 개천이 있고 하루 두 번 이지만 버스도 들어오는, 경주 정씨 집성촌이란다.
우리가 살 집은 이 정씨 집안의 한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 2년 전 돌아가신 곳으로 최근에 집을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집을 구했다는 말을 하자, 민준이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아니, 그 동네에 집이 나왔어? 그 동네에 집이 나올 리가 없는데, 새댁이 운 좋게 잘 잡았네’ 라며 신기해했다. 옥천면은 다른 면에 비해 공시지가가 3배가량 높아 은행대출도 문제없는 이점이 있었다.
[어렵게 구한 옥천면 집-대지 100평. 건물은 8평]
문제는 한가지, 집이 8평이라는 것이다. 방 하나,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한 칸. 그러나 일단 수세식 화장실이어서 정화조도 땅 밑에 있고, 창문도 다 달려있고, 벽도 제대로 서 있었다. 벽이 없는 집도 본적이 있다. 집을 허물어 버리려고 했는지 변기, 세면대, 싱크대도 철거되고 없었다. 그건 작은 문제일 뿐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나니 부엌 한 칸을 따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펜스를 설치해 동물들을 풀어놓을 준비도 해야겠다. 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보인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끝날 것 같던 ‘내집마련’,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8평짜리 집이 어떻게 11평이 되었는지, 이사를 왜 두 번하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이 집을 판 주인은 왜 집을 내놓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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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3강 홍삼먹고 야근하는 사회에 날리는 똥침 ( 김명희 / 시민건강증인연구소 연구원)
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좌를 통해서 시민, 노동자의 관심이 높다는 것은 확인하였지만 현장에 더욱 밀착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새로운 관점과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강좌를 자주 만들도록 힘쓰겠다. 오늘은 3강의 가운데 마지막 강사였던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위원의 강의를 지상중계한다. 나머지 두 강의도 다음 <노동과 건강>에서 들려드릴 예정이다.
노동건강연대 특강 : 당신의 건강과 정의
홍삼 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보라
/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위원, 노동건강연대 회원
전원생활의 이면, 자연과 인간관계 사이 /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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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전에 의왕시에 살 당시 나의 장보기는 다음과 같았다.
매주 한 번 정도 생활협동조합에 가서 유기농 먹을거리와 과일을 샀다. (도보10분)
또 한 달에 두세 번은 대형마트에 가서 유제품류와 생활용품, 잡화를 구입했다. (자동차로 10분). 급하게 필요한 것은 집 앞 슈퍼에서 사 올 수 있었다. (도보 30초)
의류는 필요할 때마다 30여개의 상설할인매장이 모여 있는 아울렛 거리에 가서 구입했다. (도보10분)
휴일 아침에는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과 오므라이스 등을 사다 먹었고 (도보5분), 통닭과 피자,중국 음식 등의 배달음식도 쉽게 이용했다.
출퇴근하면서 출출할 때엔 전철역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토스트와 오뎅, 꼬치 등을 자주 사 먹었다.
시골로 이사 온 동네는 읍내로부터 차로 20분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슈퍼가 없다. 당연히 정육점도, 쌀집도, 김밥집도 없다.
여기서의 장보기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인 먹거리와 생필품, 의류, 잡화 등은 읍내의 5일장을 이용한다. (전철로 30분)
생협은 양수리에 있는데 전철역에서 멀고, 사람이 보행할 수 있는 길이 없고 도로 갓길로 걸어야 해서 위험하다. 자동차로도 25분 정도 걸리므로 점점 이용을 하지 않게 되었다. 유기농산물을 먹고자 하는 개인 의지는 강하지만 실현이 힘들다.
슈퍼가 없으므로 간식거리는 읍내에서 한꺼번에 사서 부엌에 쟁여놓아야 한다.
아울러 빵집도 없으므로 읍내에 다녀올 때마다 사온다. 그때그때 먹고 싶을 때마다 읍내에 갈 수 없으므로 장보는 날은 당장은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더라도 사놓아야 나중에 먹을 수 있다.
배달음식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자장면집이 한군데 있으나 너무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데 그 외에는 배달음식점이 없다. 동네에 배달음식점이 없으니 오랜 기간 자장면 집이 독점하면서 음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같다. 치킨집도 없어 읍내에서 통닭을 시켜먹으려면 기본 3마리를 주문해야 배달해 준다고 한다.
약국도 읍내까지 가야 하므로 기본적인 약품, 즉 소화제, 해열제, 감기약, 소독약 등은 집에 구비해 두어야 한다.
이전과 달라진 점을 정리해 보면,
가까운 곳에서 쉽게 장보기가 어려우므로 읍내 나갈 때 일주일 혹은 열흘치의 반찬거리와 간식거리를 사서 한보따리씩 마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부엌은 요리의 공간 외에 식료품의 저장 공간의 의미가 커졌다. 싱크대의 곳곳에 사서 채워둬야 한다. 다 먹어서 선반이 비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현상이 생겼다.
배달음식과 분식집 등이 없기 때문에 라면과 빵이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제 주말의 점심 한 끼는 외식 대신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장 보는 비용은 좀 더 많이 들고 있다. 예로 아이스크림을 들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50%할인가에 판매하지만, 동네의 구멍가게에서는 할인 없이 제값을 받고 있다. 싸게 사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되는데 집에 오는 사이에 녹아버리니 어쩔 수 없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뭘 사려면 멀리 가서, 제값주고, 다량으로 사와야 한다. 다량으로 사와야 하니 미처 못다 먹고 버리는 식재료도 많다. 그렇다고 조금만 사오면 마음이 불안하다. 작년 노건연 송년회에서 선물교환 할 때 장보는 구루마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곳 양평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은 점도 있다. 사방이 밭이라서 푸성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점이다. 특히 전철역 앞은 동네 할머니들이 나물거리와 엽채소류를 들고 나와서 보자기 깔고 팔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도 싫으면 앞집 뒷집 할머니들에게 소쿠리 들고 가면 바로 밭에서 뽑아주므로 생생한 직거래가 된다. 그러나 품목이 한정적이어서 상추, 깻잎, 고추만 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장보러 읍내에 또 나가야 한다.
오늘은 장날이라 옆집 민준이네 아주머니와 같이 읍내에 갔다.
둘이 전철을 기다려 타고 가는데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양평에서 나고 살았기 때문에 장에 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바쁘다.
오늘 소비만 하는 나와 생산을 주로 하는 아주머니는 장에 가는 목적이 다르다. 내가 살 품목은 명태 코다리와 대파, 양파, 김자반, 왜간장, 겨울용 덧버선 등이고 겨울내복의 가격이 어떤지 살짝 알아볼 예정이다. 반면 농사를 많이 짓는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특별히 살 것은 없고 약콩과 백태의 시세를 알아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지난주에 아주머니네 집은 가을걷이로 콩을 몇 말 털었는데 양수리의 도매상에 내다팔까 어쩔까 고민 중이라고 하니 콩 시세를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장에 도착한 우리는 이것저것을 사고 시세도 알아보았다.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시장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과도 친구가 많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올해는 대파가 풍년이라 파 값이 형편없어”, “메주콩은 중국산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 “내년에는 고추농사 얼마나 지을거야?” 등등의 대화를 나누시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서로 내년에 밭에 뭘 심을까 고심하는 눈치들이시다.
얼추 점심때가 되어 장날에만 나오는 국수좌판 집으로 갔다. 여기는 국수와 보리밥을 2,500원에 파는데 모르는 사람은 싸다고 좋아하지만, 처음에 2,000원에 먹다가 500원이 오르니 무척 비싸다는 생각을 먹을 때마다 하게 된다. 국수 한 그릇씩을 말아 먹는데 옆에서는 SBS에서 양평장 탐방을 나와서 국수 먹는 사람들을 찍으면서 리포터가 열심히 떠들어댄다. 국수를 먹은 후 우리는 핫도그 할머니한테 가서 후식으로 핫도그를 먹었다. 서울 등의 핫도그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튀겨온 것이라 맛이 쓰고 딱딱한데 양평에는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반죽해서 튀겨주는 옛날 핫도그들이 많다. 금방튀긴 핫도그에 설탕과 케첩을 뿌려 먹으니 배가 부르다.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양평역에 들어서니 같이 장에 나왔던 동네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30분에 한대씩 있는 전철이라, 나오는 시간도 들어가는 시간도 얼추 비슷하기 때문이다. 민준네 아주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내년 농사계획을 마저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은 장에 뭘 사오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도 다음 장날에는 저걸 사봐야지’ 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제 겨울이다. 또다시 혹독한 계절이다. 장보기가 가을에는 재미도 있고 날씨도 좋아서 다닐 만하지만 일 년에 그런 날은 한 두 달이 고작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장 보는 게 고통이다. 눈 오면 또 고생이고 비가 오면 장은 아예 서지를 않는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이사를 앞두고 새집을 얻을 때 시장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를 온몸으로 절감하며 사는 중이다. 마트 대신 재래시장과 소규모 슈퍼를 이용하는 것을 지향하며 노력하던 나는 양평으로 이사 와서 대형 마트의 편리함을 눈물겹게 기억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퇴근하면서 방배동에서 채소 등의 반찬거리를 사서 멀리까지 전철 탈 때 마다 ‘이게 뭔 짓이지?’ 했지만, 사무실을 휴직한 지금은 그마저도 그리울 뿐이다. 나도 생협에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물건을 집 앞 현관으로 배달 받고 싶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편리하고 행복할까. 편리한 소비를 향해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흐름에서 비껴나 있으니, 상당히 느리고 또한 불편하여 마음속으로 꾀가 나고 있는 중이다.
(끝)
1. 남한강의 얼음강바람2. 현관문에 박힌 얼음3. 눈 치우는 군인들4. -18°c 수은주5. 얼어터진 보일러
6시 30분 기상.
창문은 아직 어둡다. 해가 떠서 밝아오려면 30분 더 있어야 한다.온기가 남은 이불속에서 겨우 일어났다.조끼와 두툼한 덧버선을 신고, 바지도 한 겹 더 입었다. 며칠째 고장 난 채 버려진 보일러, 마룻바닥은 냉골이다. 파이프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목화 솜이불을 잔뜩 깔아놓은 마루를 지나 미닫이문을 열고 부엌으로 간다. 부엌 뒷문을 열자 새벽바람이 훅~들어온다. 순간 콧속에 얼음이 언다. 숨을 내쉬고 들이 쉴 때마다 콧속의 수분은 얼었다 녹았다 를 반복한다.아침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는데 짝꿍이 도시락 들고 출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깡깡깡’ 망치로 얼음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현관이 얼어붙었나보다. 얼음 깨는 데는 망치가 제격이다. 남한강에서 불어온 강바람은 우리 집 현관문을 통째로 얼음으로 얼려버렸다. 1월 들어 매일 아침 현관의 얼음을 깨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 사진1: “현관문을 열고 나온 흔적”
* 사진2: “얼어버린 문고리” 오늘은 보일러를 고치는 날이다.아래 마을 설비업체 아저씨들이 들이닥쳤다. 이미 1월 초부터 수도관이 두 번이나 얼어버리는 통에 이집을 들락날락 하신 분들이라 행보에 거침이 없다. 오늘로 세 번째 공사인데 이번엔 보일러가 문제다. 농촌지역의 난방은 심야전기 혹은 기름보일러이다. 치솟는 기름 값을 생각하면 우리 집이 심야전기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지만, 이 거대한 보일러 기계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놈이다. 이놈의 작동원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집 채만한 물탱크 두 개와 각각의 물탱크에 붙어있는 수 십 개의 전기차단기와 버튼, 전선다발들, 탱크로 연결되는 몇 개의 파이프는 마치 우주선 같다. 이 기계와 친해져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18°c의 자연환경 하에서는 보일러가 생명유지의 기본조건이 된다.
보일러가 고장 나면서부터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 추운데서 자느라 어깨와 허리근육이 뭉치는 것은 기본이고, 부엌에서 서서 설거지 하는 동안 올라온 냉기로 발목이 시큰거린다. 과거에 다쳤던 발목이 유난히 더 시큰거린다. 집을 탈출해 사무실에 출근해 있어도 머릿속은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거대 보일러가 머리 속으로 들어와 정신을 못 차리겠다. ‘뭐가 문제일까. 주인집에 말할까. 괜히 말했다가 욕먹고 집세 올리면 어쩌나. 그냥 내가 알아서 설비업자를 부를까.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수리비를 주인집에 청구하면 줄까, 며칠 더 참아볼까, 그러다 바닥파이프까지 얼어 터지면 감당 못할 텐데…’
보름 넘게 고장 난 채 방치된 보일러와, 이런저런 걱정과, 얼음냉기가 서린 방바닥 때문에 마침내 나는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분노의 대상은 딱히 없었다. 울고 싶어졌다. 오늘도 냉골 방에서 잘 생각을 하면 퇴근길이 괴로울 뿐.
더 끔찍한 건? 그 와중에 새벽밥을 해먹어야 한다는 것. 밤새 추위에 시달리다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면 거기는 얼음의 나라. 물 떠놓은 그릇도, 설거지거리도, 행주도 다 얼어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주거 공간은 이러면 안 되잖아! 사람이 쉴 수 있어야지, 이건 무슨 개고생이냐구!’
난방과 함께 나를 괴롭히는 것은 또 하나는 수도.혹독한 한파에 사람만 고생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집의 이곳저곳이 얼어터지고 있다. 결국 마당아래 땅 밑의 상수도관마저 얼어버렸다. 이건 우리가 손 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임시대용으로 우물(시골집이라 우물이 있다)의 모터를 작동시켜 땅 밑 지하수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방치한 시설이라 온통 녹물이다. 몇 시간을 틀어도 녹물 뿐 이다. 이 물로 세수하고 이 닦고 빨래를 했다. 말 할 때 입안에서 녹물냄새가 났다. 빨래한 새 옷인데 녹물 냄새가 난다. 머리를 움직일 때 마다 머리카락에 배어있는 녹물냄새가 진동을 한다.녹물은 벌건 빛깔도 그렇고, 냄새도 비릿한 것이 꼭 핏물 같다. 핏물? 구제역 매몰지가 생각났다. 혹시… 이 지역에 매몰지가 있다는데 핏물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다. 녹물은 보름동안 계속되었다.
집이 살아있는 생물 같다. 추운 날씨에 집도 울부짖는다. 어디선가 얼음 박힌 수도관이 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다. 날씨가 풀리면 상처에서 고름진 물이 흐르듯 집 곳곳 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앞집 은영이 네와 옆집 민준이 네는 별 탈 없는 것을 보면 집을 관리하는데도 관심과 노하우(혹은 경험)가 필요한 것 같다. 마치 엄마가 관심과 정보를 가지고 돌보는 아이가 잘 아프지 않듯이. 우리처럼 초짜를 만나면 집도 고생하는 법. 도시의 이로움을 버리고 시골에서 살려면 그만큼의 노력과 공부가 필요한가 보다. 특히나 남한강의 강바람과 양평의 눈 덮인 산의 겨울바람 앞에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사진3: “눈의 여왕이 다녀간 듯한 마을 풍경”
자연의 혹독함을 배우는 것이 시골의 겨울이다. 문 하나만 열고 나서면 바로 강과 산과 벌판의 한가운데다. 자연과 기후환경에 온 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무장 해제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더더욱 난방시설과 수도시설의 소중함을 눈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살려면 이 줄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겨울, 혹한 속에서. 남한강의 겨울은 잔인하다.
아침 8시.
마당에 나서는데 봄의 시골 아침 공기는 차갑고 상쾌하고 충만하다.
옆집 민준이 네 앞을 지나면서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눈다.
“출근하는 거야?”
“네, 근데 오리들이 안보이네요? 어디 갔대요?”
“응, 뒤편 닭장에 있지”
“왜요?”
남의 집 오리얘기와 수세미 씨를 뿌렸는데 싹도 안 나온다는 둥, 오늘의 수다를 잠깐 떨다가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나는 인사성 밝은 동네 새댁.
전철역에 들어가며 전광판을 보니 열차가 전전역에 도착해 있다고 나온다. 서울과 달리 역 사이가 멀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케이. 여유롭게 정기권을 충전해도 되겠군.
역사의 한쪽에 있는 기계 앞에 섰다. 정기권 충전을 위해 6만 4천원 지폐를 정신없이 밀어 넣고 나서 돌아보니 내 주위에 할머니들이 모여 서있다.
“새댁아~ 나 차표 한 장만 끊어주게”
주위의 할머니들이 “나도 나도”를 중얼거리신다. 아무래도 ‘누구 하나 걸리길’ 한참 기다리신 듯 하고 때마침 내가 나타났나 보다. 구부러진 허리에 짐 배낭을 짊어지고 주름이 조글조글 한 얼굴로 애교웃음을 날리시다니, 한두 번 부탁해본 솜씨가 아니다.
할머니들의 표를 다 뽑아드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서울 가는 열차는 그새 가버렸다. 30분에 한 대 있는 열차인데... 오늘도 또 놓쳤구나.
* 그림 1. 표 파는 곳은 폐쇄되고 기계들만 즐비하다.
다음 차를 기다리며 대합실 나무의자에 앉는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있는 일. 원망스런 눈으로 창구를 쳐다보지만, 요즘 전철역이 다 그렇듯, 자동기계만 놓여있고 창구는 굳게 닫혀있다. 시골역이라 이용객이 노인들인 덕분에 자주 내가 ‘직원’처럼 표를 뽑아주는 일을 대행하고 있다. 나는 노인들에게 친절한 젊은이.
넓고 한산한 역 대합실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동참한다. 일단 서로 묻는다. 어느 마을에 살고 있고 뭐 하러 서울(혹은 양평 읍내) 나가는지. 마침 양평 장날이라 할머니들이 많다. 표를 끊어줘서 고맙다고 한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옆의 할머니도 내 등을 토닥여 주신다. 잠자코 앉아 “네~”하고 웃는다. 나는 붙임성 좋은 막내딸 같은 새댁.
* 그림 2. 한산한 대합실 풍경, 주민들이 열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철이 도착한다. 할머니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 할머니가 나와 나란히 앉으신다. 양수리에 볼일 있어 나가신다고 한다. 양수리 말 나온 김에 양수리엔 들어온 도시가스가 우리 동네엔 언제쯤 들어올지 한참 수다 떨다가 할머니가 내리고 나는 혼자 남았다.
앞으로도 한 시간 반 이상을 더 가야 하니, 책과 스마트폰은 나의 무기다. 길고 지루한 전철 안에서의 시간과의 싸움이 나를 기다린다.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것 없나...하며 두리번거리니 전철 안의 몇 안 되는 승객들 모두 서로를 관찰하고 있다. 내 맞은 편 할머니가 나를 한참 살피더니 “서울 가셔?”하고 묻는다. 같은 차를 타고 가는 이유로 우리는 이웃처럼 군다.
* 그림 3. 시골마을을 누비는 전철 객차는 승객이 드물다.
한참을 달리니 창밖에 아파트가 한두 개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심역이다. ‘도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골의 끝자락에 있는 역이다. 그래도 아파트가 좀 있는 동네라 사람들이 좀 탄다. 이때까지 객차에 열 명도 안 되던 승객 수가 늘어난다. 동시에 나도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한가롭게 늘어져 있던 등을 곧추세우고 두세 자리에 걸쳐 있던 다리도 곱게 접어 똑바로 앉는다.
여기서부터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셈이다. 사람들도 더 이상 서로를 살피지 않고 각자의 도구에 집중한다. 핸드폰이나 책에.
점점 아파트 숲이 많아지더니 구리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한 도시구역이다. 더 이상 산과 숲은 보이지 않고 온통 고층아파트의 장벽뿐이다. 승객들도 반짝거리는 도시인들이다.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이어폰과 스마트폰은 ‘말 시키지 말아주세요’는 심경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제 노인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젊은 사람들은 눈을 내리 깐다. 나 역시 책에 얼굴을 묻고 옆 사람이 들고 나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창밖은 온통 회색. 동시에 나의 근육과 신경도 회색의 콘크리트에 주파수를 맞춰둔다. 눈길은 책에 고정하고 표정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입가는 야물게 닫는다.
이제는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소용없다. ‘어디 가셔요?’라고 물어봤자 ‘별걸 다 묻네’라며 뚱한 표정을 지을게 뻔하다. 다들 그렇게 서로 묻지 않기로 하고 전철 안의 밀폐된 공기는 그 암묵적 합의를 옆 칸으로 옆 칸으로 확대시켜간다. 그래서 나도 ‘말 걸지 말아주세요’의 뜻을 밝히며 책과 이어폰으로 무장한다.
우연히 앞사람과 눈길이 마주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을 피한다. 궁금하지도, 친근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전철이 거대한 도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고층건물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타고 객차 안의 구두굽 소리가 많아질수록, 아이폰과 이어폰의 수가 많아질수록 공기 중의 깔끔함과 까칠함의 밀도도 높아진다. 전철이 주행하면서의 진동은 나의 몸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댔고 두 시간 가량 진동 속에 흔들리던 나의 체세포들은 한계상황에 도달하였다.
어느덧 나는 도시여자로 변화했다.
7호선을 타고 내방역에 내리자 온통 모르는 사람, 바쁜 사람, 북적이고 있다. 나 역시 한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걷는다. 한손에 6만 4천 원짜리 전철정기권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업무통화를 하며.
길가에 야쿠르트 아줌마도 앉아 있고 유모차 끄는 애기엄마도 있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나는 바쁜 도시의 직장인이다. 오늘 저녁 퇴근하기 전까지, 여기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나의 감정은 도시에 걸맞게 팽팽히 긴장되어 있을 것이다.
<끝>
2012, 간절히 간절히 / 임준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2011년 노동과건강 연중기획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업주 책임이 불분명하여, 안전과 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관련하여 지난 가을호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용역 노동자 등 이른바 간접고용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겨울호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본다.
사실 이들은 과거에는 노동자 신분이었지만 사업주의 방침에 따라 개인 사업주로 내몰린 이들이다. 한편,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직업군인데, 이에 대한 사회적 관계나 제도가 이를 따라가 주지 못해 제도권 밖에 존재하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이런 특수고용 노동자의 형태와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많다. 그리고 그 조건과 양상이 직종별로 달라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제도를 만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에 최근 산재보험 적용과 관련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세 직종의 예를 중심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보았다.
일반론이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어찌 보면 단순한 측면도 있다.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도 다른 노동자와 같이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전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면,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쉽게 해결될 일을 '특수'하게 해결하려다 보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들의 안전보건 문제도 '특수'하게 해결할 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간병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방안과 건강문제 / 정해명, 공인노무사,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산재보험 적용 방안 / 임형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대리운전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 강희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한 해가 가면 10대 사건, 올해의 인물, 올해의 가수, 올해의 고사성어 등 한해를 톱아볼 수 있는 '이벤트'를 벌인다. 이러한 결산 이벤트는 결산 주체의 시선과 선호를 그대로 들어낸다. 방송국의 각종 대중음악 시상식은 힘 있는 연예 기획사와 프로그램 시청률를 고려하여 미소년소녀 떼창 가수들을 시상대에 세운다. 각종 일간지들마다 선정하는 히트상품은 광고주를 위한 배려가 듬뿍 묻어난다. 미국의 '타임'지가 시위자들을 2011년의 인물로 선정한 것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여기에도 '시민'이 존재할 뿐 '노동자'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아랍 민주화투쟁이나 유럽의 투쟁에서, 또 미국의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말이다.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회는 우리의 방식대로, 노동의 눈으로 2011년을 돌아보고자 한다. 노동, 환경, 정치, 국제에서 지난 한 해 어떤 일이 있었고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위원회 공동 집필>
슬픈 21세기 노동의 자화상 -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회, 공인노무사
그 날 이후 세계가 변했다 - 후쿠시마의 노동자들 - 스즈키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 해 내가 들은 가장 정치적인 말 -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동자들은 싸운다 - 고통과 혼돈의 국제사회
레드카펫 없는 극장, 1895일의 주인공들에게 바쳐진 영화를 보다
기륭비정규직 투쟁을 이끈 유흥희 -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한미 FTA는 노동자 권리를 침해한다 / 박노준, 공인노무사
지연 게임 : 화학산업의 규제 회피 전략 / 임형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정책팀
"월급도 적은 데 일하러 오는 의사라면 의식있는 의사입니다."
- 텐묘 오시오미 선생
노동자 산재 사망, 이득을 얻는 자가 책임지는 것이 정의다
2011년 11월 11일 (금) 대전에서 개최된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전자산업의 건강문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편 다음 날인 12일(토)에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반도체,전자산업 노동건강권과 환경정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들 행사는 반도체, 전자산업 관련한 건강 및 환경 문제에 대한 국내 첫 공식학술행사이자 국제심포지엄이었다. <노동건강연대>와 <프레시안>은 이들 행사에 참석 차 내한한 테드 스미스(Ted Smith)와 웬링 투(Wenling tu)를 만나 전자산업 노동환경정의 문제의 핵심 이슈와 국제 동향을 들어보았다.
테드 스미스는 현재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 (ICRT, 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의 코디네이터이며, <실리콘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 Silicon Vallye Toxic Coalition)>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웬링 투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공공행정학과 부교수로서 현재 <지구공민기금회(CET, Citizen of the Earth in Taiwan)>의 이사로 활동중이며 <대만환경행동네트워크(TEAN, Taiwan Environmental Action Network)>의 설립자 중 한명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Challenging the Chip(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메이데이 2009)]의 공동 저자들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인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이 진행했다. 글은 2부로 구성되며, 1부는 테드 스미스, 2부는 웬링 투와의 인터뷰를 각각 담고있다.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산 증인, 테드 스미스를 만나다
대만의 전자산업 환경문제 연구자이자 활동가, 웬링 투를 만나다
업무관련성, 애정남이 필요해 / 이화평,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중국 신세대 농민공들의 투쟁 / 박진욱,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소비의 패턴을 바꾸는 것은 꽤 불편한 일 /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강독 후기 / 최승현, 공인노무사
<국경없는 마을>에 놀러오세요 / 박혜영, 공인노무사
후원회원에 가입하실 분들은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의 '후원' 버튼을 누르시면,
퇴근길의 전철에는 자리가 없다. 서서 자리가 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에어컨 바람에 시원하지만 그래도 한 시간 이상을 서서 가는 것은 고단하다. 전철을 타자마자 재빨리 객차 안을 스캔해보지만 역시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내릴지 눈치 봐서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것이 좋다. 서울 벗어나기 전에 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수리를 지나 양평까지도 가는 장거리 승객도 섞여있으므로 이들을 구별해내는 것은 편안한 퇴근길의 핵심이다. 어떻게 구별해낼까? 옷차림으로는 알 수 없다. 소지품과 핸드폰 사용행태로도 구별이 힘들다. 이럴 때엔 종아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종아리에 모기 물린 자국이 많은 사람. 이들을 피해야 한다. 내 다리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시골에 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파트와 도시 내에 사는 사람들은 희고 깨끗한 종아리를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 그 앞에 서있으면 얼마안가 자리가 날 확률이 높다. 두 번째 여름을 나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여름의 시골은 곤충의 천국이다. 이놈들은 가리는 곳도 없고 크기와 힘에 있어 도시의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집의 여름 군식구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방충망을 치고 모기향을 피워도 늠름히 집안을 장악한다. 시골의 모기는 검은 얼룩 띠와 무시무시한 침을 갖고 있는 산모기라 서너 군데를 한꺼번에 물릴 경우 오한과 발열, 두통을 선물한다. 물린지 사나흘 지나면서부터 고름이 차기 시작해 한 달 가량 가려움증과 진물로 고생하게 한다. 일주일쯤 지나면서부터 물린 부위가 검게 변하여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종아리와 팔뚝은 얼룩덜룩해진다. 간혹 축사로부터 날아온 쇠파리도 집안에 들어오는데 작년에 TV보다 발바닥을 쏘였을 때엔 기절할 만큼 아프고 가려웠다. 뇌가 멈춰버려, 일주일가량은 무언가에 대해 차분히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름을 모르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대략 십 여종의 날벌레가 대략 3,4백마리 부엌에 산다. 저녁에 형광등을 켜놓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벽과 천장의 흰 벽지 위에 까맣게 붙어있다. 처음엔 약도 뿌려보고 향도 피워보고 했으나, 이젠 그냥 내버려둔다. 수명이 짧아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대부분 죽어 바닥에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며칠 동안은 잠잠하다. 음식을 하는 동안 아주 가끔은 종아리 피부에 붙어있는데 그러고 나면 아주 작은 모기자국 같은 것이 생기는 것으로 봐서, 사람의 피부를 무는 것은 모기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날아다니는 것이 많아서인지, 거미도 많다. 콩알만 한 거미부터 손바닥만 한 대형거미까지 벽 모서리마다 잔뜩 거미줄을 쳐 놓는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길은 밤새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의 정글을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신기한 것은 새로 지은 거미줄일수록 탱탱하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아침햇살에 은색으로 반짝이며 손으로 만져도 끈적이지 않을 만큼 매끈하다. 손끝으로 살짝 튕기면 ‘덩~’하는 소리가 날 것 같다. 힘 좋은 큰 거미는 마당과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르는 집을 지어놓기도 하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이층의 주인아주머니는 거미줄을 보는 족족 빗자루로 뜯어버리지만, 나는 절대 뜯지 않는다. 거미줄에 잔뜩 걸린 모기와 날벌레를 보면 거미가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집안의 거미줄도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편인데 보기는 좋지 않다. 집안에도 거미가 많아 TV를 보고 있으면 꽤 큰 놈이 천정에서부터 내려와 눈앞에서 흔들흔들 할 때도 있다.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집안에서 우리와 같이 기거하는 거미의 숫자는 대략 30여 마리로 추정된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집안은 일순간 소란스러워진다. 형광등이 꺼지면 깜짝 놀란 풍뎅이와 나방이 불빛을 찾아 요란을 떨며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놈들의 특징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안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들의 뜀박질이 시작된다. 벌레를 잡기위해 푸다닥거리며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마룻바닥에는 여지없이 나방을 비롯한 무엇인지 알기 힘든 벌레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다. 제일 보기 싫은 것은 귀뚜라미의 잔해이다. 여러 번 산채로 잡아 창밖으로 내보내 주지만, 고양이들에게 잡히는 것들이 더 많다.
청개구리신기한 일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부엌에 꾸준히 들어오는 청개구리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들어와서 싱크대 위의 양푼이에 떡~하니 올라앉아있거나 쌀독 항아리 뚜껑에 앉아있다. 아침마다 부엌에서의 첫 번째 하는 일은 개구리를 잡아서 창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동화에 나온 개구리 왕자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지. 말이 통한다면 꼭 묻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청개구리 대신 맹꽁이(?)처럼 생긴 커다란 떡두꺼비가 부엌뒷문 방충망 밖에 앉아 부엌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있다. 우리 집 부엌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지. 그래도 청개구리는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들 중에 가장 점잖고 의젓하여 좋아하는 편이다.
밤에 산책 나가면 집 앞 길가에서 볼 수 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작년보다는 보기 힘들다. 길 옆 으로 개울이 나 있는데 그 개울가 뽕나무 근처나 피마자 나무 덤불주변에서 볼 수 있다. 시골의 날아다니는 곤충 중에서 가장 귀하고 신기한 벌레들이다. 작고 수줍은 푸른 불빛을 보면 매번 감탄을 하게 된다.
집안 보다는 마당의 풀밭에 바글바글 거리며 살고 있다.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2,30마리의 방아깨비를 볼 수 있는데 사람 발자국소리에 놀라서 이리저리 풀쩍거리며 뛰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발밑이 어지러워 걸음을 떼기가 힘들다.
마당에 빨랫대를 놓고 빨래를 널고 있노라면 방아깨비와 여치 등이 빨래 위에 앉아 있기도 하다. 처음엔 속옷 등에 벌레가 앉아 있으니 꺼림칙하였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대신 빨래를 갤 때 조심해야 한다. 소맷단 같은 곳에 이러저러한 벌레가 붙어 옷장 서랍 안으로 같이 들어가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마귀는 주로 신발장의 우산에 붙어산다. 우산 손잡이에 앉아 있다가 비 오는 날 우산을 꺼내려고 하면 무척 귀찮은 듯 천천히 비켜나준다. 마당의 다른 벌레들이 녹색인 것에 반해 사마귀는 색도 검붉고 크기도 커서 좀 징그러운 구석도 있으나 움직임이 느려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옆집이 꿀벌을 친다. 그 집 마당과 뒷산까지 해서 벌통이 서른 개 가량 되는 모양인데, 그렇다 보니, 자연히 집 주위에 벌이 많다. 원래 벌을 별로 안 무서워해서 상관없지만, 집안으로 들어오거나 하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하다. 지난겨울에 먹다버린 몇 가지 채소의 씨가 땅에서 싹을 틔워 지금 부엌 뒷문밖에는 참외와 수세미, 호박 등이 넝쿨로 자라고 있다. 여름 내내 노란색 꽃을 피워대니 당연히 꿀벌도 모여들었다. 그래서 부엌 뒷문 밖은 항상 꿀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로 요란하였다. 노란 수세미 꽃에 동골동골 꿀벌이 앉아서 부지런떠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름 내내 재미였다.반면 말벌은 귀엽지도, 재미있지도 않는 존재이다. 건물 벽과 지붕 처마 밑, 마당의 싸리나무 사이 등등에 수시로 벌집을 지어놓고 떼로 모여 산다. 꿀벌에 비해 크기도 크고 발도 흉측하게 길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음흉한 느낌이 드는데 말벌에 대한 편견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추석을 앞두고 마당의 나무와 화초들을 대거 가지치기 하면서 나무에 붙어있던 말벌 집을 빗자루로 떼어 버렸다. 벌집의 크기도 작고 말벌도 몇 마리 안 되 길래 그냥 툭 쳐서 떼어 버렸다. 그러고 내쳐 주변 가지를 정리하는데 말벌에 두 번이나 쏘인 것이다. 처음 쏘인 것이라 병원을 갈까말까 했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오히려 그날 모기에 물린 곳이 더 붓고 곪아버렸다. 말벌보다 모기의 침이 더 독할 수도 있나보다.
그 외 나비와 잠자리, 매미 그리고 기타 등등, 이런저런 벌레들과 한동네서 살고 있다. 원래 이름도 모르는 벌레라서 봐도 눈에 딱히 들어오지는 않는 많은 곤충들과 함께. 그리고 아파트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름을 말하기도 싫은 해충들까지. 처음에 이사 와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벌레가 많아요?’하고 물었더니 많다고 답해주셨다. ‘어쩔 수 없어, 시골은.’이라는 설명과 함께. 작년에 워낙 벌레 때문에 고생한지라, 올해 여름을 맞아 새롭게 조치를 취했다. 우선 방충망을 스텐레스 방충망으로 바꿨다. 값이 일반방충망에 비해 두 배로 비싸지만 큰맘 먹고 투자하였다. 그리고 모기퇴치 액을 사서 고무장갑 끼고 방충망에 덕지덕지 발랐다. 술에 약한 나는 그날 밤에 약 냄새에 취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것도 모자라 건물 외벽에도 퇴치 액을 뿌려두었고 창 아래 화단에도 잔뜩 뿌려주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올해 비가 많이 와서 곤충번식에 애로점이 있었는지 아무튼 올해 여름을 무탈히 나고 있다. 여전히 벌레는 왕성하지만 그래도 노래가사처럼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긴 시골이고, 여름엔 곤충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참아내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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