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2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Dhaka) 인근 치타공 (Chittagong) 지역의 수출 가공 지구 (Export Processing Zone)에서 의류노동자들의 집회가 벌어졌다. 경찰은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려고 고무탄과 실탄, 최루 가스 등을 발포했다. 네 명이 숨지고 250명 이상이 다쳤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언론에서 이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영원무역’이라는 한국 의류회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국내 주요 보수 언론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불러온 물리적 충돌은 무시한 채 시위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방송화면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원무역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기업이 외부세력의 선동에 휩쓸린 노동 쟁의의 피해자인 양 보도했다. 정작 이러한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상된 최저임금의 적용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의류노동자 (출처:EPA)
방글라데시 의류산업과 의류노동자
방글라데시는 중국, 베트남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의 의류수출 국가이다.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업종으로, 연간 수출액은 120억 달러가 넘는다. 방글라데시 전역 약 4천 개의 의류공장에서 약 35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객은 미국과 유럽의 의류 업체들이다. 월마트, 테스코, 까르푸, H&M, 자라, 갭, 막스 앤 스펜서, 리바이스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기성복을 생산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치타공 지역에는 160여 개 공장에서 약 15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치타공 지역에 입주한 70여 개의 외국 기업들 중 하나인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전체 의류 수출의 약 5%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큰 의류수출업체들 중 하나다. 방글라데시 전역에 17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11개의 공장이 치타공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영원무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3만 6천 명으로 노스페이스, 나이키 등의 제품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류산업이 저임금을 좇아 저개발 국가에서 상품을 생산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OEM 방식의 수출 주도형 의류 산업이 호황을 누렸는데, 1980년대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국내 의류업체들의 해외 공장 이전이 시작되었다.
의류업체들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거쳐 방글라데시 같은 좀더 저개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며 여전히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반면, 여기 고용된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대부분(85%)은 여성으로 하루 10~14시간, 적절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문이 잠긴 공장 안에서1) 세계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2010년에 인상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해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표1 참조).
표 1. 26개국 의류노동자의 시간당 임금2)
번호
국가
시간당 임금
(미화)
(원)
1
미국
8.25-14
9,199-15,610
14
니카라과
0.65
725
2
영국
7.58-9.11
8,452-10,158
15
바레인
0.57
636
3
베네수엘라
2.73
3,044
16
태국
0.56
624
4
코스타리카
2.19
2,442
17
인도
0.55-0.68
613-758
5
과테말라
1.21
1,349
18
모리셔스
0.55-0.65
613-725
6
콜럼비아
1.2
1,338
19
베트남
0.52
580
7
온두라스
1.02
1,137
20
이집트
0.5-0.87
558-970
8
필리핀
0.94-1
1,048-1,115
21
멕시코
0.5-0.53
558-591
9
중국
0.93
1,037
22
스리랑카
0.46
513
10
페루
0.92
1,026
23
파키스탄
0.37
413
11
엘살바도르
24
인도네시아
0.35
390
12
요르단
0.74
825
25
캄보디아
0.24
268
13
말레이시아
0.73
814
26
방글라데시
0.21
234
노동자들은 왜 거리로 나왔는가?
2010년 7월과 8월,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들은 두 달여의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월 최저임금을 당시 1,662다카 (약 26,359원)3)에서 3,000 다카 (약 47,580원)로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2006년 이후 약 4년 만의 인상조치였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0년 11월부터 미숙련 노동자들(7등급)에게는 인상된 최저임금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였고,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숙련정도에 따라 등급별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표2 참조).
표 1).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숙련도에 따른 최저 임금 가이드라인, 단위: BDT (KRW)
숙련도
인상 전
인상 후
인상률(%)
5,140 (81,520)
9,300 (147,498)
80.9
3,840 (60,902)
7,200 (114,192)
87.5
2,449 (38,841)
4,120 (65,343)
68.2
2,250 (35,685)
3,763 (59,681)
67.2
2,046 (32,450)
3,455 (54,796)
68.9
1,851 (29,357)
3,210 (50,911)
73.4
1662 (26,359)
3,000 (47,580)
80.5
견습생
1200 (19,032)
2500 (39650)
108.3
하지만 11월분 급여가 지급되는 12월이 되고 보니, 인상된 최저임금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미숙련 노동자들에게는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숙련공들에게는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들은 임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 직무 재분류를 통해 임금을 조정하는 등 편법을 일삼았고, 심한 경우 20년 가까이 일을 하고도 미숙련 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불공정한 임금구조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특히 중간 등급 노동자들의 경우, 숙련노동자들과의 높은 임금 격차, 한편으로 신규노동자들과 비교해 낮은 인상률에 상당한 불만을 갖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영원무역 역시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폭이 미숙련 노동자들에 비해 적은 것에 비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에서, 사측이 임금인상을 기점으로 점심식대로 2006년부터 매월 지급하던 250다카 (3,965원)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노사갈등이 격화되었다. 당연히 영원무역의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식대 삭감에 항의했고, 이를 둘러싼 노사 간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교섭 도중이었던 12월 11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교섭을 결렬시키자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 이후 조업을 중단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노사 간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관리자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영원무역은 2010년 12월 11일 공장을 전면 폐쇄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공장폐쇄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이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리 시위에 대해 경찰은 폭력 진압을 가했고, 그간 내제되어 있던 임금과 관련한 불만들이 더해지면서 치타공 영원무역 노동자들의 시위는 다카와 루프간 (Rupganj), 아슐리아 (Ashulia)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게 된다.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여성 노동자 (출처: 연합뉴스)
12월 14일, 방글라데시 경찰은 노동자 시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단결포럼 (Garment Workers Unity Forum: 기성복 부문 노동조합) 의장인 모쉬레파 미슈(Moshrefa Mishu)를 체포했다. 경찰은 체포 영장도 없이 미슈를 연행했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미슈에게 의료서비스 제공을 거부한 것은 물론 고문까지 자행했다. 현재 미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4)
방글라데시 정부와 의류산업 사용자들은 시위를 배후 조정하는 외부세력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 역시 사건의 배경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외면한 채 한국 기업의 피해 상황과 노동자들의 폭력성만 부각시켜 보도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수출가공지구에서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허용되지 않으며, 채용과 해고, 임금 등에 관한 권한이 모두 사측에게 부여되는 등 기본적인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영원무역과 다른 한국기업들이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또 영원무역의 대표이사가 수출가공지구 투자자 협회 (Bangladesh Export Processing Zone Investors Association)의 의장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에 한국 기업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것을 쟁취해 내야할 이들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1)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작업 중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놓기도 하는데, 화재나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가 커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14일 방글라데시 아슐리아(Ashulia) 지역의 하밈(Ha-Meem) 스포츠 의류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5명이 죽고 10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화재 당시 공장에 남아있던 노동자들은 비상구가 잠겨있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다.
2) The National Labor Committee (http://www.nlcnet.org/alerts?id=0297)
NLC 자료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한국 원화(KRW)로의 환산은 1$=1115원 기준으로 필자가 계산한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2010년 최저임금은 시급 4110원이다.
3) 1 BDT(방글라데시 다카화)=15.86 KRW(한국 원화)로 환산
4) 현재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미슈를 비롯해 체포된 노동자들을 석방하라는 온라인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http://www.gopetition.com/petition/41542/sign.html#se
국제민주연대, 민주노총, 좋은기업센터, 서울공익법센터 APIL,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이 조사단을 꾸려 지난 2월 9일부터 5일간 방글라데시 치타공 현지를 방문했다. 이들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제출한 보고서1)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규모로 확산되고 폭력적으로 진행된 이유는 단순히 임금에 대한 불만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새로 적용된 임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산발적인 조업 중단을 실시하는 등 소극적인 파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영원무역의 관리자가 5명의 노동자를 불러 데리고 나간 뒤 이들 중 3명이 손목과 발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채로 사무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동료들이 다치고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3명을 포함한 5명의 노동자 모두 그 후 실종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데일리스타>의 3월 20일자 기사2)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수출가공지역의 의장인 샤히둘 이슬람, 치타공 수출가공지역 관리청의 압둘 라시드 청장, 치타공 경찰서장인 모하메드 사나울라 등은 인터뷰를 통해 영원그룹의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실종되었다는 것은 루머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조사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실종 및 상해에 대한 어떤 보고도 받은 바 없었고 증인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건너간 진상조사단은 노동자 폭행 현장의 증인을 만났고 5명의 실종을 확인했지만, 현지의 책임자들은 상해와 관련한 증인도 실종자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과연 당국에 의한 조사가 중립적이고 엄격하게 이루어진 것인지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하루 빨리 실종자들의 상태가 확인되고, 폭행과 관련된 영원무역의 책임여부에 관한 진실도 가려져야 할 것이다.
올해 2월, 공화당 소속의 위스콘신 주지사가 재정위기를 이유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약권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81호가 발간된 후인 3월 10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위스콘신 주 상원은 53 대 42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주지사가 여기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자 18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고, 공개회의법 위반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여 일단 판결까지 임시집행정지 명령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5월 26일, 위스콘신 순회 법원은 법안 의결 당시 이를 공공에 충분히 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의회가 주의 공개회의 법을 위반했다며, 의결 절차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위스콘신 대법원은 이 사례를 두고 다음 달에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전열을 가다듬어 재시도를 할 것이다. 이후의 결과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민적 연대에 따라 달린 셈이다. 현재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3명에 대한 주민소환이 확정된 상태고, 추가로 3명이 더 소환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위스콘신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방식의 의회투쟁과 거리시위, 시민적 연대의 모습들은 한국의 노동-사회 진영에도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스콘신과 관련된 최신 소식을 한글로 접하려면 “위스콘신 노동권 수호 투쟁 관련” 트위터 게시판 http://chirpstory.com/li/792 참조하면 된다.
1)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한겨레21 “우리는 피 흘리는 동료를 보았다” (2011.04.01 제854호)에 기사화되어 있으며, 영어로 작성되어 인권단체 등에 배포된 보고서(Report of Fact Finding Mission on Demonstration of workers of Youngone Trading in Chittagong) 내용은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홈페이지 [http://www.humanrights.asia/news/forwarded-news/AHRC-FST-011-2011]에서 볼 수 있다.
2) http://www.thedailystar.net/newDesign/news-details.php?nid=178402 (2011년, 3월 20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