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이야기
노동법, 자본의 협력자로 탄생하다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산업혁명기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인류사회는 잔혹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인간 존엄성의 무게가 달라지는 사회. 동물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동족간 포식 구조가 횡행하는 사회. 무한대로 확대된 계약 자유와 경쟁의 원칙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삶의 질서를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변화된 현실 앞에 인류는 무력하였다. 어린 아이들과 임산부가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들이마시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다른 한켠에서는 풍족에 겨워 돈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노동자들에게 삶은 생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그 끝은 처참하였다.
많은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겼더라도 미처 어른이 되기도 전에 공장과 탄광에서 죽어갔다. 상황이 이에 이르니, 자본주의 사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동력 재생산이 위기에 봉착했다.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니, 자본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절실해졌다.
이렇게 노동법은 탄생되었다. 노동법은 자본과 노동의 적절한 타협책이었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과 안정적 상품 소비처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고안되었다.
영국에서는 최초의 공장법이라 할 수 있는 ‘도제의 보건 및 도덕에 관한 법률(The Health and Morals of Apprentices Act)이 1802년 제정되었다. 이 법은 면사 및 양모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뒤,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장노동법(The Act to Amend the Law Relating to Labor in Factories)이 제정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사실은 성인 남성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노동법은 훨씬 뒤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영국 노사관계의 특징인 ‘노사자치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국가가 임금, 근로조건 등 노사간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사자치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1799년과 1800년 노동자단결법(Combination of Workmen Act)은 노동조합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의 법인격과 활동이 제대로 보장된 것은 1871년 노동조합법(Trade Union Act)이 제정된 이후의 일이다.
독일은 영국보다 산업 발전이 늦었다. 이 때문에 노동법도 늦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재의 독일 노동법은 노동자경영참여와 단결권 보장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독일 노동법의 시작은 비스마르크가 제정한 질병보험법(1883년), 공업재해보험법(1884년) 등 사회보험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노동법이 국가의 권위와 기업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입법을 반대하였으나, 사회보험법제의 입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다. 비스마르크가 제정한 사회보험법들은 1911년 제정된 제국보험법(Reichsversicherungsordnung)으로 통합되어, 독일 현대 사회보험법제의 기초가 되었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법률의 제정은 1891년 공업조례령 제7편이 만들어진 이후 본격화되었다. 그 이후 1902년 선원령, 1903년 아동보험법, 1911년 가내노동법, 1914년 상업에 있어서의 경쟁제한법 등이 계속적으로 제정되었다. 독일에서도 애초에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1918년 바이마르(Weimar) 헌법에 의해 노동자와 사용자의 단결권, 단체협약이 헌법으로 보장되었고, 근로자위원회와 경제위원회의 제도적 기초가 만들어졌다. 독일 노동법의 중요한 특징은 노동자의 경영참여이다. 이와 관련하여, 1920년 경영협의회법은 노동자대표 및 대표기관의 설치, 경영 사안에 대한 협의권을 인정하였다.
자본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했다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은 서구에서 노동자들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었고, 경제 위기 시에는 일자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었다. 때로는 노동자의 정치 참여를 위한 행보에서 견실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법은 노동자의 정치 참여와 결합되어 진화를 거듭하며 발전하였고, 복지국가의 근간이 되었다.
혹자는 이 같은 역사를 근거로 노동법의 강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중대한 판단 착오이다. 노동법은 애초부터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적 유지, 운영을 위해 고안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지, 노동자들을 겨냥한 창날이 될지는 자본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이 중요한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자본이 위기에 봉착하자 시장과 경쟁의 원리가 또 다시 세상을 잠식해가고 있다. 당연히, 노동법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 방패가 아닌 창날의 모습으로 노동자들 앞에 나타나고 있다. 가까이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만들어 버린 파견제도 노동법의 작품이고, 하루하루 연명하다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해고되어야 하는 현실도 노동법의 작품이다. 노동자들을 대한문 앞으로, 철탑 위로 내몬 정리해고 역시 노동법의 작품이다.
전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야생 사자가 동물원에 갇혀 사냥의 본능을 잃어버리듯, 그 동안 노동자들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단결’과 ‘조직’의 본능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이 깃발과 머리띠를 찾기도 전에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했고, 어느 순간 노동자들은 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노동법의 두 얼굴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자본이 노동법을 이해하듯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먼 옛날 선배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단일한 깃발을 세우고 하나의 목소리를 외치는 날. 법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되는 날.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대선 정국을 맞이하여 여야 대선 주자들 모두 노동법 개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는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경영상 해고1)를 일삼는 대기업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문 앞으로 달려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훌륭한 광경이다. 그러나 이 북적되는 광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법의 보호에서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공식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지만 현실에서는 배제된 사람들.
대선 주자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노동운동 진영의 요구안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먹고 꼼꼼히 찾아야 보인다. 저 구석 한 귀퉁이에,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문구 안에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이들은 노동법의 모법(母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5명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극히 일부 조항들만이 예외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따라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하루 24시간 밤새워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연차휴가를 단 하루도 주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고,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단 한 푼 주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배제된 이들 스스로도 이 사실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선 주자들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이들을 모두 잊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1,000만명이 넘는다.2)
그렇다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상황이 나을까? 출퇴근길 지나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상점들, 식당들, 소규모 공장들. 어디에나 노동자들이 있고, 이 사업장들 중 많은 수는 5인 이상 사업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도 앞의 1,000만명과 다를 바 없다. 법적으로만 보면, 이들은 정규직이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정규직이다. 대부분의 영세 업체에서는 근로계약서 자체가 작성되지 않으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인 셈이다.
이들에게 언론과 정치권이 연일 쏟아내는 비정규직법, 경영상 해고,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는 어떻게 비춰질까? 어쩌면, 이들에게는 ‘고용 의제’니 ‘불법 파견’이니 법적 다툼을 벌이는 광경도 부러울 수 있겠다. 적어도, 그 다툼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는 쓰고 일하는 노동자일 테니 말이다. 근로계약서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 한마디가 곧 노동법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부러워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기에, 이들에게 경영상 해고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들에게는 경영상 해고를 당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대선 주자들이 분주히 노동조합들 사이를 오가며 ‘노동’을 이야기 한다. 간만에 세간의 이목이 ‘노동’에 집중되니, 기분이 좋아야 당연한 것인데. 이 꿀꿀한 기분은 왜일까? 복잡한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노동법인가. 누구를 위한 노동운동인가.
1) 기업이 경영상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행하는 해고를 통상 ‘정리해고’ 라고 칭한다. 그러나 노동자도 사람이고, 사람을 정리한다는 표현은 왠지 꺼림칙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리해고’라는 단어 대신 ‘경영상 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2) 통계청 2012년 7월 고용동향 조사결과 참조
연중기획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함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
지난 9월, 두 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에 용광로 쇳물을 뒤집어쓰고 사망했다. 한명은 백일짜리 딸의 아빠였고, 다른 한명은 노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용광로는 그들의 뼈와 살을 녹였고, 유가족은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일하던 공장은 2007년 이후 매년 산업재해가 발생하던 사업장이었다. 노동부도 산재 다발 사업장으로 선정하여 재해예방 추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곳이었다. 결국, 참사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회사의 관리 소홀과 부주의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은 들끓었다. 노동부와 검찰은 이례적으로 회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산재사망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던 과거 노동부와 검찰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이었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간단히 기각해 버렸다. 물론, 피의자의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측면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법원이 산재사망을 대하였던 소극적 태도들을 돌이켜볼 때, 이번 기각 결정이 과연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 실로 의문이다.
그렇다. 무수히 많은 산재사망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노동부나 검찰보다 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너무도 관대한 법원 덕택에, 산재사망을 야기한 무수히 많은 사업주들이 벌금 몇 푼만 내면 모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노동자가 불에 타죽고, 떨어져 죽고, 팔 다리가 잘려 나가도, 정작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업주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몇 만원짜리 상품권을 훔치거나 맨홀 뚜껑을 훔친 생계형 범죄자들에 대해 그토록 엄격했던 법원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2011년 산재사망 사건 1심 판결에서 쉽게 확인된다. 법원은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미약한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심지어 노동자 3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도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아래 표 참조) 산업안전보건법의 중요한 기능은 산재를 야기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통하여 그 재발을 방지하고 다른 사용자들에게 자발적인 예방 조치를 강구하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솜방망이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최소한의 기능조차 다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건번호
피해규모
판결결과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건설현장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
창원지법
2011노756
1명사망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
하청회사 벌금 300만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회사 무죄
울산지법
2011고단2571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
인천지법
2011고단2202
하청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회사 각 벌금 1000만
2011고정578
하청 현장소장, 하청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
수원지법
2011노4417
중대재해
하청 사업주 벌금 500만
하청회사 벌금 700만
창원지법 통영지원
2011고단391
3명 사망, 1명부상
원청 대표 벌금 700만
원청 벌금 500만
원청 공무부장 벌금300만
원청 안전관리팀장 벌금300만
하청 대표 벌금700만
하청 벌금500만
출처: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
이 같은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2008년 - 2011년 대법원에서 판결된 주요 산재사망 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심지어, 원심에서 어렵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업주들에 대해서,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아래 표 참조)
피해 규모
대법원 판결 결과
무죄취지 파기환송 사례
대법원 2009도12515
하청 대표자 벌금200만
원청 OO건설 무죄취지 파기환송
OO건설 현장소장 무죄취지
파기환송
수급인 OOOO 직접 무죄판결
대법원 2009도13252
OO건설 무죄
OO건설 현장소장 벌금300만
컨소시엄 현장소장 벌금200만
대법원
2008도101
원청 및 원청 현장소장 무죄
하청 현장책임자 벌금 300만
2008도7834
원청 현장소장 벌금 200만
원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하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2008도5707
회사 대표 무죄
운전기사 징역1년 집행유예 2년
출처: 전형배,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워크샵, 2012
왜 법원은 산재사망에 대해 경미한 처벌을 반복하는 것일까?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법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통해서 쉽게 확인된다. 판결문 어디에서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들에 대한 엄중한 응징의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마치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이 같은 경향이 더 노골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법원과 검찰이 산재사망 사건에서 형사상 ‘행위자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하면,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이 산재가 유발된 작업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산재사고에 대한 사업주 책임과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문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문구이다. 판결문의 논리에 따르면, 사업주가 처벌되기 위해서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직접 지시하였거나,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사업주가 처벌될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될까?
사업주에 대한 구 법 제66조의2, 제23조제3항 위반죄는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구 법 제23조제3항에 규정된 안전상의 위험성이 있는 작업을 규칙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등 그 위반행위가 사업주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지, 단지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위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7.3.29. 선고 2006도8874판결, 대법원 2008.8.11. 선고 2007도7987 판결, 대법원 2011.09.29. 선고 2009도12515 등 참조)
셋째, 도급 사업주 책임에 대한 입법 미비의 문제점이다. 반복되는 산재사망 사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이 있다. 도급 사업에 있어서, 도급인, 발주자, 원청 등 실질적 권한을 지닌 도급 업체의 대표자들은 처벌을 피해 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급인은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및 제24조에서 정한 사업주의 의무를 지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산재사망이 발생하더라도, 도급인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제23조(안전조치) 및 제24조(보건조치) 위반 책임을 묻기가 어렵고, 협의, 지도, 지원 등 도급인의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산재사망 사건에 대한 총 6건의 대법원 판례를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급업체 대표자가 형사 처벌된 경우는 없었다.1)
넷째, 노동부와 검찰의 능력상 한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수사권을 지닌 노동부와 기소권을 지닌 검찰 모두 산재사망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노동부와 검찰은 그 동안 경찰이나 소방 당국의 조사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산재사망이 발생한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점 내지 업무 시스템 상 문제점 등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 사업주의 처벌 가능성은 당연히 낮아진다. 계도적 법규로만 산업안전보건법을 바라보는 법원에, 사업주들의 범죄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하는 노동부와 검찰이 더해져서, 지금의 솜방망이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첫째, ‘형식적인 사용자 책임’을 넘어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도급업체의 대표자 내지 실질적 권한(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향유하는 지위에 있는 자)을 보유한 자가 처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벌 강화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실례로, 현재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파견사업주가 아닌 사용사업주가 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이에 대한 법률적 보완은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행위자 처벌 원칙’을 넘어설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고민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그리고 상상적 경합 관계에 놓이게 될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직접 행위자가 아닌 대표자나 고위 임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개 노동자에 불과한 하급 실무자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사업장에서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행위자 처벌 원칙을 유보하는 조항을 명문화하는 방안, 형법상 죄가 되지 않더라도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과정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정의하는 방안 등2)이 고려될 수 있다.3)
셋째,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원인에는 노동사건의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입법적 문제점이 해결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입법적 시도들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사망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가칭)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법원도 작금의 현실에 대해 항변할 수 있다. 현재의 법 구조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법원 고유의 권한인 구속영장조차 쉽사리 기각해 버리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논리는 변명이고, 거짓일 수밖에 없다. 결국, 법원은 기업의 산재사망을 방조하고 있는 또 다른 공범자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이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이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돈과 맞바꾸는 비도덕적 사업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것이다.
1) 전형배,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포럼자료, 2012.
2) 예를 들어, 화염병을 제조한 자도(그것을 사용하여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3) 강문대, 형사 처벌의 이론적 검토와 효과에 대한 검토, 노동건강연대 토론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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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_조기홍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안전보건 _ 이상윤
경쟁력의 언어에 휩싸인 휴가 _ 김영선
더 많은 휴가가 필요하다 _ 이상윤
7일의 휴가에 감추어진 진실 _ 유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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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제는 아담 스미스의 의견처럼 산업재해 가능성을 높이는가 _ 정책국
할머니와 열사병 _ 이화평
노동건강연대는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일을 맞아 지난 4월 3강의 연속강좌를 열었다. 사회 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의 문제도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지난 봄호에 이어 강좌를 지상으로 만나보고자 한다.
3개의 강좌는
1강 건강에도 있다, 1:99의 양극화 ( 임준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2강 반쪽의 과학,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3강 홍삼먹고 야근하는 사회에 날리는 똥침 ( 김명희 / 시민건강증인연구소 연구원)
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노동건강연대 특강 : 당신의 건강과 정의
반쪽의 과학,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_ 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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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다_첫번째 이야기 _ 이서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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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업살인운동 시즌2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1)
1. 들어가며
노동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만 93,29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였고, 2,1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2) 256명의 노동자가 매일 산업재해를 당하고, 6명의 노동자가 매일 사망한 꼴이다.3) 위 공식 통계는 근로복지공단 등에 산업재해로 보고된 수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자동차 사고로 처리되거나 공상 처리된 산업재해의 수치가 이에 포함될 경우, 실제 산업재해 및 사망자수는 훨씬 커질 것이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고, 전국의 각 고용노동지청에 산업안전감독관들이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에서는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과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 법제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또한 그 대안으로서 ‘(가칭)기업살인처벌법’의 입법 필요성을 검토해 보고, 그 제정 운동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지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 2011년 산업재해 사망과 처벌 실태
노동부가 2012년 2월에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1년 산업재해 사망만인률은 1.47(업무상 사고 사망만인률 9.6)이었다. 2010년 OECD 주요 국가의 사망만인률(업무상 사고)은 미국 3.8,일본 2.3,독일 2.0,영국 0.7이었다. 이 처럼, 우리나라의 사망만인율은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으며, 영국에 비해서는 무려 14배 높았다.4) (표1 참조)
<표1>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그렇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하에서 중대재해와 사망을 야기한 사업체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의 대부분이 시정 및 경고에 그쳤고, 과태료나 사법 처리되는 비율도 극히 미미하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안전 보건 지도 감독’의 사업체 수가 매년 감소하였다는 점이다. 2007년 5만 여건에 이르던 지도감독은 2009년에 이르러 17,000여건으로 급감하였다.
사망사건의 경우에도 그 처벌 수위는 매우 미약하였다. 2011년 법원에서 판결된 사망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도 실형이나 집행 유예가 아닌 벌금형이 선고되었다.(표3 참조) 우리나라에서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2008년 1월 노동자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이다. 수원지법은 당시에 시공사 대표에게 벌금형을 내렸고, 현장소장, 방화관리자 등 관리자들에게도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5) 노동자 40명이 불에 타 죽은 사건에 있어서조차, 법원은 단 한명에게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이다.
<표3> 2011년 주요 사망사건 판결 현황
3.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규정의 적용상 문제점
그렇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이 어떠하기에,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예상과는 달리,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준수해야할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업주의 제반 의무 및 조치 사항들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살펴보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다. 또한 사업주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규정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현실에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제도적 측면, 법리적 측면, 절차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가. 제도적 측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입법 취지상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적 예방 조치에 대한 계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반한 경우나 그 결과로 발생된 산재사고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사고나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에 대한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법리적 측면
현재 산재사고 및 사망사건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동시에 적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소권을 지닌 검찰은 그 처벌에 있어서 형사상 ‘행위자 책임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할 때,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체의 대표나 임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아닌 ‘간접적인 책임’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한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할 때, 사업체 또는 법인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에 있어서 그 행위의 주체로 규정되기도 어렵다.
다. 절차적 측면
현재 산재사고 및 사망사고에 대한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 사고 경위에 대한 수사와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의견만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검찰이 노동사건에 대한 전담 수사 인력과 전문적인 수사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산재사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경험은 노동부와 비교하더라도 훨씬 떨어진다. 결국, 현재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한계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4. 외국의 입법 사례 검토6)
과거 영국에서도 산재사망사고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인식하에, 그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사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산재사망사고를 단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살인죄를 적용하여 사업주 및 경영층을 처벌함으로써, 사업주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그 결과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 제정되어 2008년 4월 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영국에서 위법 행위의 대상이 되는 법률의 적용 대상은 기업과 정부기관이다. 그 직접적인 적용의 대상은 그 기관들의 해당 조직이며,(법 제1조 제4항 c) 해당 조직의 중대위반행위가 발생한 경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법 제1조 제4항 b) 해당 조직의 직접적인 법률적용 대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직의 최고경영층7)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자가 직접적인 법률 적용의 대상자가 된다.(법 제1조 제4항 c)
이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였을 경우 벌금의 상한선은 없다. 의회 지침에 의하면, 벌금의 금액은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5%에서 시작하고 대략 2.5% ~ 10% 범위에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 악의적인 경우에는 10% 이상이 부과될 수도 있다. 벌금 이외에, 법원이 범죄 사실을 지역 또는 국가의 언론에 광고하게 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공표제도”도 활용되고 있다.
영국의 사례를 검토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별개로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제하기 위한 ‘기업살인처벌법’의 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영미법계에 속하는 영국과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법 제도가 상이함을 고려할 때, 그 입법 과정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영미법계의 국가에서의 산업안전보건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에 따라 처벌이 가능한 구조이므로 강력한 벌금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륙법계의 국가에서는 고의나 과실의 판단을 법 규정에서 규정하고, 그 위반의 정도에 따라 벌금형이 결정된다.
5.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방향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매우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처벌 수준은 벌금형에 그치는 등 매우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하에서는 강력한 처벌을 강제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산재사망사고를 단속하기 위한 ‘기업살인처벌법’의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 입법화 과정에서 고민되어야 할 지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내용적 측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규정이 약하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즉 법률상 처벌 규정이 강화된다고 하여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실제로 강제될 수 있는 방안, 실질적으로 기업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처벌의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사업주가 준수해야할 의무 사항을 구체화하고 산재사망사고 발생시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방안,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하한선을 정하고 영국처럼 그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의 정보를 언론에 공시함으로써 기업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나. 입법 방식의 측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목적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을 끌어내고 이를 통하여 산재사망을 줄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의 방식에는 특별법의 제정뿐만 아니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까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보강하여 실효성 있는 처벌이 강제될 수 있다면 그 입법적 필요성은 충족되는 것이다. 만약 특별법으로 제정된다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과 같은 유형의 법률이 고려될 수 있다. 이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특별법의 제정 과정에서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보다 가중 처벌해야 하는 행위 유형이 세분화, 구체화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사망사고의 예방 법제가 되지 못하는 원인에는 노동사건의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기업살인처벌법이 제정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법 제정에 따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6. 결론을 대신하여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라”고 외치면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을 벌인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은 2003년 시작된 이래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적지 않은 제도적 성과들도 이루어 냈다.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에 마련된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강화’ 등도 이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수적 성과 이외에, 아직까지 법 제정과 관련한 구체적 흐름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산재사망에 대한 이슈화가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를 노동운동 진영의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질적 관점의 문제점과 반노동자적 정권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들은 언제나 우리 운동과 함께해온 것들이기에 이를 재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노동운동 진영 내에 이 운동에 대한 일정한 오해가 있고, 이 같은 오해가 이 운동을 더 이상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오해는 바로 이 운동을 단순히 “법 제정 운동”으로만 국한시키거나 폄하하려는 경향이다.
물론,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의 목적에는 입법화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이 더 큰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산재사망의 예방과 산재사망의 실질적 감소이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요구는 산재사망의 예방과 산재사망의 실질적 감소를 달성하기 위한 ‘슬로건’이자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 무작정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선전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구체적 요구안을 내걸고 싸움을 벌일 때 보다 효과적인 이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부터 오해를 걷어낸다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을 통해 산재사망의 심각성과 그 책임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공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2012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 제도와 처벌 사례 연구, 2009
강문대, 형사처벌의 이론적 검토와 효과에 대한 검토,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자료집, 2004
강문대,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 및 호주 ‘기업살인법’의 도입 가능성 모색, 계간 노동과 건강, 2003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1
1) 본고는 2012.2.29. 목포시의회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발제문을 요약한 것으로, 일터 3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힌다.
2)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고용노동부, 2012)
3) 2011.12.22.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관내 전체 재해자 수는 3,01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117명보다 3.3%(104명) 줄었다. 그러나 질병을 포함한 재해 사망자 수는 8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명보다 32.8%(21명) 증가했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6명으로 지난해(24명)보다 64.7% 늘었다. (서울경제신문 2011.12.22.자 기사)
4) 한국경제신문 2011.7.3.자 기사
5) 연합뉴스 2008.7.26.자 기사문
6)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와 처벌사례연구, 2009 참조
7) 최고경영층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의 의미는 조직의 경영 활동을 하며, 중요 부분의 총괄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를 말하고, 조직경영 및 활동을 실제적으로 총괄하는 자를 말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와 처벌사례연구, 2009 참조.
생각나누기_연윤정, 매일노동뉴스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 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 이태경,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 /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우리 곁의 타자 돌봄 여성노동자, 그녀를 만나 주인공이 되다
-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 / 전수경,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
노동시간과 삶의 질 / 김경희,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준) 정책실
애플을 둘러싼 미국 시민, 소비자 운동의 대응 / 박진욱,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일본 지진 피해 지역의 석면 대책 / 스즈키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회원
미국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 다섯 가지 규정 / 임형준, 노동건강연대 회원
초짜 의사의 고뇌 / 김정민, 노동건강연대 회원
2강 반쪽의 과학,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이번 강좌를 통해서 시민, 노동자의 관심이 높다는 것은 확인하였지만 현장에 더욱 밀착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새로운 관점과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강좌를 자주 만들도록 힘쓰겠다. 오늘은 3강의 가운데 마지막 강사였던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위원의 강의를 지상중계한다. 나머지 두 강의도 다음 <노동과 건강>에서 들려드릴 예정이다.
홍삼 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보라
/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위원, 노동건강연대 회원
전원생활의 이면, 자연과 인간관계 사이 /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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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기원 632년의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담당할 역할이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다. 델타 계급이나 입실론 계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단순 노동을 반복하다 죽게 된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적 능력 따위는 필요 없다. 생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뇌 교육이 강조된다. 각 계급이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다른 계급의 역할이나 지위를 넘보지 않도록. 이 사회에서는 '소마'라는 환각제가 배급된다.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스트레스를 소마 하나로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신이다. 시민들이 모여서 소마에 취해 포드를 찬양한다. 포드력이라는 새로운 달력이 사용된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그린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학창시절에는 이 책을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느꼈던 것 같다. 내 눈에 세상과 미래는 모든 가능성이 열린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으니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지금 이 책이 무서운 예언을 담고 있는 공포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쓴 시기는 1930년대지만 2011년 대한민국과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미래를 의지와 능력만으로 그려갈 수 있을까. ‘간판’과 ‘스펙’으로 직업과 연봉, 배우자까지도 결정되는 대한민국에서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가. 2011년 대한민국에도 어떤 이들은 발가락 하나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그들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600만 비정규 노동자와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그야말로 ‘생존’하고 있는 160만 기초생활수급자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부유하고 있는 110만 청년 실업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럼에도 이 사회는 돌아간다. 알파 플러스 계급1)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덕분이다. 올 한해 알파 플러스는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였다.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교리에 충실하기 위해. 멋진 신세계에서 포드가 만물 위에 서 있는 초월적 존재인 것처럼 대한민국은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진리가 되어, 노동조합은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요인이고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2011년 시장을 굳건히 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빼들었다. 2010년 타임오프제 시행에 뒤이은 복수노조의 허용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복수노조라는 예쁜 포장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칼날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0년 이후 타임오프제에 휘청거리던 노동조합 운동은 2011년 교섭창구 단일화에 치명상을 입고 있다. 어떤 노동조합은 어용노조에 밀려 교섭권을 상실하고 어떤 노동조합은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조합을 짓밟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합원 뺏기 싸움이 벌어지거나 노조 사이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이이제이(以夷制夷)2)라 했던가. 알파 플러스가 날린 칼날이 정확히 델타와 입실론의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2011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도 힘을 기울였다. 한진 중공업 투쟁, 유성기업 파업,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에서 보여준 정부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노동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물대포를 쏟아 부었고,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철탑을 올랐다. 덕분에 파업, 농성일수에 있어서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모습이다. 2010년 12월 시작된 전북고속 파업은 1년을 넘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2011년 1월 시작된 대우자동차 판매지회의 점거 농성이 뒤를 따르고 있다. 309일간 크레인 위에서 버텼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희망버스 덕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재능교육노동자들의 투쟁은 1,500일을 앞두고 있다. 2012년 새해에도 전국 52곳의 사업장에서는 농성과 파업이 현재 진행형이다.
억울한 죽음도 잇따랐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19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이마트 사망 사고부터 12월의 인천공항철도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밀려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언론도 국회도 검찰도 침묵했다. 언론은 노동자의 불법행위를 단죄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국회는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검찰도 진보정당에 가입한 공무원, 교사 색출하느라 바빴으니 시간이 부족했을 터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보면서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술을 권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성인들이 1년간 소주 70병, 맥주 100병을 마셨다고 한다. 소주 한잔만 마셔도 술기운이 오르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이를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델타나 입실론이 소마에 취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듯 우리는 술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일 듯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행복이 넘쳐날 것만 같던 21세기였는데 이 꼴이라니.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한진중공업의 문을 희망버스로 열어 젖혔고, 반올림 투쟁을 통해 거대 자본을 상대로 산재 인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지지율 5%의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켰으며, SNS를 통해 알파 플러스의 강력한 무기인 기성 언론을 무력화시키기도 하였다. 봉도사(정봉주)의 구속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나는 꼼수다’ 열풍, 놀랍지 아니한가. 청년들이 청년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희망이다.
이 같은 성과와 의미에 대해서 설왕설래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굳건할 것만 같았던 알파 플러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희망버스를 움직였던 시인, 영화배우, 자영업자, 학생, 주부, 노동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능케 할 주역이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람시의 ‘서발턴(Subaltern)’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 노동자 계급이 일관되고 통일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진실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1)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다양한 계급들이 존재하는데, 알파, 감마, 델타, 입실론 등으로 나뉜다. 알파 계급은 그야말로 최상의 엘리트 계급으로서, 이는 다시 플러스, 마이너스 등으로 나뉜다.
2)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한다는 의미의 4자 성어
지난 10월 28일 민주노총 소회의실, 건설노조, 금속노조의 노동안전담당자들과 노동자건강권단체 활동가들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안전장치 없는 용광로에 떨어져 젊은 노동자가 사망하고, 아파트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두 명의 남성노동자가 사망한 뒤였다. 통계상 하루 6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한다니 죽음 그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난간만 있었어도 곧 결혼을 앞둔 청년이 1,000°C의 쇳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또 건설수주 1위의 재벌회사가 서울 한복판 유명 브랜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두 명의 노동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안타까움과 놀라움에 빠졌다.
노동건강연대가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며, 따라서 기업의 최고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1년에 한 차례, ‘살인기업’을 선정하여 언론에 발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회적 활동이 없었고, 내부 논의를 이어가거나 내용을 쌓아가는 작업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다. 용광로와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노동건강연대가 ‘기업살인’ 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요구들이 쇄도했다. 언론의 관심이 높아진,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었을까?
<기업살인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담회는 그렇게 기획되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노동조합과 단체들이 기대한 정책과 실천방안에 대해 분명한 제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산재사망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공동의 대응을 구상하는 모임이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모임을 이어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정리 : 전수경/노동건강연대)
간담회 참가자들의 모습
< 참석자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 박영일, 김재천, 김갑경 / 산재노동자협의회 이현정 /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진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상윤, 유성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발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최근 산재사망 문제가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는 느낌이다. 환영철강 노동자 사망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몇몇 언론에 산재사망과 관련된 기사가 꽤 비중있게 실렸다. 이에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회는 이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좌담회를 마련했다.
노동건강연대를 중심으로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라’고 외치며 (가칭) ‘기업살인법’ 제정 논의를 시작한지 7년이 넘었다. 노동건강연대는 200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해왔다. 당시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산재사망이 너무 가볍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적었고, 그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후속 논의나 대책은 전무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내부에서도 ‘자극적이다’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전면화했다. 더불어 ‘기업 살인’이라는 용어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러한 활동을 7여 년간 이어온 결과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 미진한 점이 많다. 이에 이 운동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하고 향후 계획을 세우고자 이 좌담회를 마련했다.
논의를 이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오해와 비판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 운동을 단순히 특별법 제정 운동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운동이 사업주 처벌 강화 방안만을 목표로 한다는 비판이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오해와 비판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되었는데 이는 우리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아니다. 제1의 목적은 산재사망 문제 해결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이 운동의 하나의 유효한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운동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협소화될 수 없음을 얘기했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는 특별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은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업주의 행태와 의식, 노동자의 힘,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등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이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도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기업살인법이 제정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제정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효과를 내기는 힘들다.
그러면 왜 우리는 기업살인법 제정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는 이러한 요구가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 온 바와 같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고 규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기업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나마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살인법과 관련된 또 다른 편향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또 다른 편향은 기업살인법을 보다 구체화하여 실제 법 제정안을 국회에 내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힘을 빼느니 당분간은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법조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경우 의미 없는 법조문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 초기에 이러한 법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두고 운동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운동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뿐 아니라, 다른 처벌 방식의 강화, 노동부의 사업주 지도감독 강화, 노동자 참여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해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우리는 구체적으로도 노동안전보건청의 설립,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의 도입 등을 주장해 왔다.
2003년 경부터 이러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정부도 산재사망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운동 때문에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 몇 가지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향상 등이 우리 운동의 성과로 이루어졌다. 2005년 한 일간지에서는 우리 운동을 주요 주제로 9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운동이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 정책 부재의 현실 속에서 산재사망 문제로 운동을 만들어가기 힘들었던 객관적 조건 탓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운동을 만들어 가지 못한 주체의 문제도 있다. 이에 이 좌담회를 통해 향후 이 운동을 지속하여 진정으로 산재사망 문제를 해결하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발판이 다시 마련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아직 실태를 구체적으로 충분하게 드러내는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역량 투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구체적 양상과 이후 처리 실태가 충분히 조사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재사망은 어떠한 산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자주 벌어지고 있는지,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때 사업주는 어떠한 행태를 취하는지, 신고 이후 경찰과 정부의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보고서 작성 후 검찰 송치 과정의 문제는 없는지,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나는지 등등에 대한 세세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더불어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례가 많이 모아져야 한다. 산재사망의 특성상 당사자가 사망하고 없기에 사례를 수집하기 힘들고 유족을 조직하기도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노력을 통해 사례 수집과 유족 조직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다음으로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아주 세세한 요구부터 이데올로기적 요구까지 체계적으로 요구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도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상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경과와 현재를 말씀드렸다. 오늘 좌담회에서 이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개진되기를 바란다.
환영철강 용광로 산재규탄 기자회견 모습 (출처: 프레시안 2010/09/15)
§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
기업주를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는 법적 맹점이 있다. 잘못한 놈은 때려잡으면 되지만, 이는 자본주의 얼개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만 작동된다. 지금 논의되는 처벌주장이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나? 실은 복잡한 문제가 놓여있다.
산재사고에 대한 한국의 처벌규정이 결코 약하지는 않다. 호주나 영국의 기업살인법에 비해서도 낮지 않다. 양벌규정도 존재한다. 벌금이긴 하지만 이미 산안법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처벌되는 경우는 없다. 실례로 2008년 코리아냉동 사고로 40명이 사망했을 때, 벌금 2천만 원과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검찰은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기소하지 않는다. 기업주가 처벌받지 않는 이면에는 검사가 있다. 노동사건은 공안부 검사가 담당한다. 사망사고에 대한 상식적 분노만 있었어도 현재와 같은 결과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법조항보다 심각한 문제가 이면에 자리한 것이다.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이 움직이지 않으면 법을 만들어도 공염불일 수 있다. 호주는 과실여부(?), 영국은 매출액 기준으로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노동자 1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도 공표를 한다. 비윤리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을 개정하는 방향도 있다. 처벌규정을 명확히 해서 벌금의 하한선만 두고 벌금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산재사망 기업을 공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호주나 영국과 달리 한국은 기업체를 범죄주체로 규정하는 법적 기반이 없다. 행위자 중심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처벌객체로 끌어오는 것에 국회가 동의할까? ‘고위임원에 대한 간접처벌이 되는데 그것이 가능하냐, 행위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 과실범에 대해서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고의범에 대해서만 살인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기업주를 처벌하라는 것은 형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특별조치법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 산안법을 통해 처벌이 가능하게, 즉 검사가 기소재량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방안을 두는 것이다. 기업 공표제도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기업살인법 운동이 당위로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자본주의 법제도 하에서 이면에 복잡한 문제들이 놓여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사망사고가 나면 어떤 처리과정을 거치는지 알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 ‘내사종결’이라고 쓰인 사고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 ‘내사종결’이 되나 보니, 본인이 안전조치 위반, 또는 현장이탈, 불완전한 행동을 한 경우들이다. 이주노동자 사고도 그렇다.
산재처리하면 직업복귀가 안 되니 공상처리를 많이 한다.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사망사고 가 은폐되는 경우도 있고... 사고의 70%는 은폐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건설업의 직업병은 이슈가 안 되고 있다. 건설현장의 직업병이 심각한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건설노동조합들이 고용관련 집회는 많이 한다. 산안법 위반으로 고발한 현장도 조합원을 채용한다고 하면 고발을 취하해주기도 한다. 최근 진보적 지자체장이 당선된 지역에서는 협의체를 구성해서 공사 현장에서 노조가 역할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산재사고에 대해 기업책임을 알리는 시민캠페인이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시민이 참여하는 사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GS 사고현장 앞에서 노동건강연대가 한 것처럼, 사고가 나면 플래카드를 걸고 국화꽃도 놓고 하면서 시민에게 사고를 알리는 활동을 하자. 우리 기업들이 해외수주를 많이 하고 있는데, 두바이 원전건설 등을 보면 해외에서 안전에 관심이 많다. 여기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를 이용해서 해외에서 떠들면 기업들이 민감해진다. 해외에서 떠들자. 영문 홈페이지에서 사고를 알리고, 불매운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은 수주를 할 수 없도록 지자체를 압박할 수도 있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금속 안에서 보면 조선업종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한 곳에서 사고가 나면 24시간 안에 조선업종노동조합이 집결하고 사고원인을 공유하고 공동대응을 해왔다. 이 방식이 좋다. 사례전파도 되고. 하지만 나머지 업종 노동조합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사망사고가 일어나도 노동조합 안에서조차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금속노조는 산재는 최대한 산안법을 활용하려고 한다. 회사는 빨리 가동하려고 하지만, 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어서 대응하자고 한다. OO자동차에서 관리자가 지게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활용하여 라인을 세웠다. OO차 본사가 움직여서 노조를 업무방해로 고발했지만 노동조합이 이겼다. 노조는 작업중지권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OO조선에서 지난해 12명이 죽었는데 사장 구속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업중지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단협으로 이를 압박하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사망사고가 난다 해도, 예전에는 기계를 세우고 조치를 했다면 지금은 선가동 후조치로 바뀌었다. OO자동차에서 사고 났을 때 노조가 컨베어벨트를 멈췄다. 회사는 업무방해라며 6억 원을 노조에 걸었지만, 최근 무혐의가 나왔다.
서교 GS건설 크레인 전복사고 현장 (출처: 민중의 소리 2010/10/07)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건설산업은 한 회사만 잡는 전술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생각에 건설은 90%가 사고를 은폐한다. 십장을 따라서 일하러 돌아다니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자가 와서 은폐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자들 자체가 무뎌진다. 다리 부러지는 건 우습게 생각한다. 기업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게 노조 쪽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유럽 쪽에서는 건설안전에 규제가 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나? 사망이 많은 건설회사가 수주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노조가 반성을 해야 부분이, 건설이 옥외작업, 사고가 워낙 많으니까 으레 그러려니 할 때가 있다. 외국 건설회사도 우리처럼 사고가 많이 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원래 제조업이나 건설은 사고가 많지 않나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산재가 노동계 쟁점이 안 된다.
작업 중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신규조합원 교육할 때 교섭, 쟁의, 파업 교육은 많이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료가 죽었다면 망치를 놓고 일을 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민주노총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교육매뉴얼이다. 교섭 교육만큼 노동안전 교육도 많이 해야 한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조선공장에서 일요일에 사망사고가 났다. 근로감독관이 월요일에 왔고, 노동부가 특별안전보건진단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이 파업은 안했지만 그 공정 작업을 3일간 중지했다, 그래서 특별안전보건진단을 따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신뢰한다. 당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고였고, 노조에서 특별점검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그 중 하나를 얻은 것이다.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건설은 사고 나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규제완화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노동조합 대응을 주로 얘기했는데, 용광로 사고는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 생각해보자. 네티즌이 시를 올리고, 감성을 울렸던 부분이 무엇일까? 사망사고가 나면 우리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주목을 받지 못하는지 짚어보자. 트위터 열심히 하면 되나?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용광로 사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만의 문제인줄 알았던 것 같다. 우리가 이것을 사회에 알리려고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고, 노동자가 죽으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정식으로 문제제기 하고 활동해아 하는 시기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회운동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 문제를 사회의제로 만들려면 담는 그릇이 치밀해야 한다. 임단협 교육할 때 산재교육을 하지 않는 노조도 있다. 노조는 무엇을 할지 논의하고, 사회적 영향을 갖고 있는 세력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환경, 인권 단체도 만나고, 정치세력도 만나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삼성백혈병 운동이 사회적으로 울림을 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세 박자가 맞은 것 같다. 피해당사자가 있고, 활동가들이 있고, 삼성이라는 점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준 부분도 있고.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삼성도 글로벌회사인데, 국내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콧방귀도 안 뀐다. 해외에서 떠들어야 한다. 선거 때 국회의원 후보, 지자체 후보에게 안전공약 받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삼성백혈병이 어떻게 사회문제가 될 수 있었나. 끈질기게 해서 그렇다.
§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크레인 사고를 추적해 봐야 한다. <한겨레21> 기사를 보면, 작년에 16명의 크레인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사망사고가 났는데 벌금 700만원이라니 말이 되냐. 상식적인 법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피해자 조직화, 유족을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례를 쥐고 있어야 사회에 알릴 수 있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기자들이 사례를 원해서 모아놓는다. ‘4대강 공사하면서 사고 난 거 있냐’ 이렇게 물어오니까. 타워크레인도 이번에 <한겨레21>에서 다루어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게, 10년 동안 모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축적한 것하고 노동조합 자료하고는 차이가 있다. 전봇대 2만 2천 볼트 전류가 흐르는데 활선 만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전에서 인원을 줄여가면서, 예전에는 전력을 죽여 놓고 일을 했는데 지금은 살려놓고 작업을 해서 감전사가 늘어났다. 2년 동안 50명이 죽었다는 자료를 만들었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사람을 줄이니 사고가 난다. 국감에서 사고 자료를 제시했다. 한전 사장이 국감에 나와서 예산절감 안 하겠다고 답변했다.
국회 환노위에서도 처벌이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근로감독관이 처벌하려고 해도 검찰이 기소유예를 해버린다. 국회 법사위에 대해서는 왜 활동하지 않나? 노동단체가 법사위는 안 건드린다. 근로감독관은 말한다. “검찰이 기소를 안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2010년 6월 18일, 한전 본사 앞에서 보유인원 축소 철회를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매일노동뉴스)
노동조합이 사업주 처벌여부를 추적할 수 있을까? 유족의 처벌의사와 상관없이 처벌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부담 없이 기소유예를 할 수 있다. 검사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유일한 조직은 노동조합인데, 조합이 검사에게 압력행사를 안 하고, 노동부에도 압력을 안 넣는다. 관심이 별로 없다. 노동안전 이슈 자체에 관심이 없다. 검찰이든 노동부든 맘대로 하는 구조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보다 구체성 있는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이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를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유족과 사례들을 모으기 위해 콜센터를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24시간 안에 노동부에 보고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달 후 발표되지 않나. 바로 발표하도록, 실시간으로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 이진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처음에 말할 때 기업살인법 운동이 답보상태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납득이 안 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레토릭으로써, ‘기업살인이 뭐야?’ 궁금하게 만드는 탄력은 받았는데, 기업살인법 얘기만 했더니 관심이 떨어졌다. 타당성, 현실가능성, 법체계 등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운동이 아니라 법제정을 위한 복잡한 논의가 되면서 재미가 떨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책자체가 없어졌고, 그전에는 떠들면 반응은 왔었는데 반응이 아예 없으니까 힘이 떨어진다.
§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우리의 이해와 요구가 아닌데, 지속성을 가지고 표출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진다. 이슈파이팅을 이어가는, 작게는 노동조합, 크게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가 중요하긴 한데 밀린다. 넘어간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망사고가 나면 단계별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보자. 24시간 안에 조사하게 되어 있는데 조사하는지, 검찰은 왜 사망사고에 관심이 없는지, 판사는 어떻게 보는지 등등.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해서 파일링을 해 놓자. 노동조합이 구체적인 활동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의 정책요구안에 대해서도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례분석을 하면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사례를 모아야 한다. 설비, 정비의 문제 뿐 아니라 숨어있는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산재가 나면 이슈가 되지 않고 묻힌다. 노동재해에는 관심 없고, 환경성 재해에는 사회적 관심이 많다. 시민과 호흡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공동사업으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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