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회 지상중계 >
노동자 산재사망, 이득을 얻는 자가 책임지는 것이 정의다
토론회 : 원청 ․ 발주업체 책임강화 방안
토론회 기획의 변
지난 12월 13일 민주노총 중회의실이 붐볐다. 넓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이어지는 하청․비정규노동자들의 산재사망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토론회 나흘 전 공항철도 인천 계양역에서 선로보수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엄동설한의 겨울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작업에 투입되어 예고 없이 죽어간 5명의 노동자들. 열차가 온다는 것을 알기만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이 사고는 충격을 주었다.
죽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죽는가. 산재사망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타의 죽음과는 좀 다른 것이다. 건강이 악화하여 사망하거나, 교통사고,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죽음은 모두 ‘막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측 가능성이나 시스템의 직접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산재사망은 특별히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 안에서 기업의 경제활동은 효율적 관리시스템 하에서 계획, 실행, 평가된다. 따라서 일터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사망은 통제할 수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용과 시간 부담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부차적인 고려대상인 경우에 사망과 사고가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사한 사망과 사고가 몇 년, 몇 개월을 주기로 계속 일어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시스템이 사고를 부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큰 시스템을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가 바뀔 날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작은 변화라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변화를 만들어서 죽음을 줄이거나 멈추게 하고 싶다. 게다가 자본주의를 경제원리로 하는 모든 국가가 여기, 이 나라 만큼 노동자를 죽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 하지 않는가.
권력을 갖지 못한 계급의 딜레마일 것이다. 경제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건강과 생명조차 착취 대상이 되고, 다시 이를 경제손실액으로 계산하는 체제를 혐오하면서도, 작은 변화라도 쟁취하기 위해 체제의 핵심인 법에 호소해야 하는.
모순과 갈등 속에서 결국 우리는 몇 가지 법조항의 수정을 검토하게 된다. 그 결과가 이 날의 토론회이고, 토론회를 시발로 법을 개정하여 노동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작은 운동에 나서기로 하였다. 선의가 있다고 법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정리 : 전수경 편집위원).
§ 원청 ․ 발주처 책임 외국 법안 비교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12월 9일의 열차사고를 보면서, 옛날에는 시설수리가 정규직노동자의 업무였기에 시설노동자 사망사고는 큰 이슈가 되었다. 현재 아웃소싱이 많이 돼서 하청노동자가 많이 하고 있지만. 제가 올해 했던 연구가 있는데 화학설비 공장의 안전에 대한 것이다. 화학산업은 넓고 수많은 파이프가 지나가는데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수리를 하게 될 때, 작업하는 사람은 파이프에 어떤 물질이 지나가는지 전혀 모른다. 수리작업을 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유해물질 노출이 높다고 나온다. 철도사고 만이 아니라 병원에서 간병하는 노동자가 주사침 바늘에 찔렸는데 전염성환자인지 모르는 경우처럼 원청의 보호를 못 받는 사례는 무수하다. 어떤 위험물질, 위험행위에 대해 경고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여러 사용자에게 속한 노동자가 적절한 조치를 받고 있는지를 도급사업주에게도 공동책임을 지운다. 수급사업주가 적절한 지시를 하도록 위험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위험정보를 서면으로 작성해서 보고하도록 하면서 서면 작성 시 이주노동자가 그 나라 언어로 이해하게 작성하라는 표현이 있다. 위험평가를 공동으로 실시하고, 일하기 전에 위험성평가를 보고하고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원청이든 도급이든 사업주가 안전을 보장하게 되어 있다. 건설업에서 도급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위험성평가에서 확인된 안전과 건강위험사항을 평가하고 전달할 의무가 있다. 도급사업주가 노동자, 사업영역이 다른 사람들, 작업 영향 다른 사람들, 잠시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 포함하여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
§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 정해명 / 노무법인 삶 공인노무사
대기업의 산재사망 재판에 대형로펌이 들어가서 사법부 판단이 흐려지고 사망사고에 대해서 범죄라고 인식을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40명의 노동자가 죽은 사고가 1심에서 2년 6개월, 2심에서 벌금 2천만 원을 받았다. 회사대표는 무죄다. 7월의 이마트 사고역시 현생법상 발주업체가 고발대상이 아니다. 이마트는 전혀 책임을 안 진다. 3차 산업이 확산되는 구조에서 2차 산업 중심의 법조항으로는 책임을 물을 법이 없는 것이다. 도로교통위반도 벌금이 200만원인데 노동자사망에 벌금이 3백만 원이다. 합리적 핵심은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빈발하는데 왜 줄어들지 않는가이다. 현재 사업주 개념을 근로기준법의 사업주 개념을 넘어서 확장해야 한다.
§ 원청 ․ 발주업체 책임강화 방안 - 강문대 / 변호사
사고가 일어나면 형사민사책임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묻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고 난 후 처벌을 정한 법이 아니지만 사고가 나면 보게 된다. 평소 처벌할 수 있는데 사망이 일어난 후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민사책임인 경우에도 하청업체는 돈이 없다. 도급이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지휘감독권한이 있는 수급업체 사용자에게 배상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이번 공항철도 사고를 보면 안전과 직결된 도급은 금지하도록 범위를 넓혀야 한다. 지금 도급금지는 수은처럼 아주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는데 철도, 궤도안전, 건설 등으로 범위를 넓혀 도급을 제한하는 것이 예방책이 될 것이다.
형사처벌 강화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의 장단점이 있는데 책임을 정확히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발주처 책임을 물을지, 무슨 책임을 지울지 구분해서, 이득을 얻은 자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관여했던 안했던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량실태를 추적해서 연구 작업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사업주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별법 형태를 고민할 있다. 환경범죄, 보건범죄도 처벌에 대한 특별법이 있다.
§ 토론 1 - 최명선 /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
위험한 작업에 대해서 도급금지하는 조항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사례를 보면 조선업에서 비파괴검사가 다단계로 내려가서 안전조치 없이 위험작업을 하고 사망에 이른 사례가 있다. 몇 가지 위험작업에 대해서 도급을 금지할 근거가 있다. 유해작업 도급 금지를 어떤 범위로 어떤 업종까지 확대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 사망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은 책임범위 갖고 있어야 처벌근거가 된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것은 현재 법에서 서비스업이 빠져있는데 서비스업을 넣어야 한다. 이는 보건복지서비스, 병원, 교육 등 전체적으로 서비스업 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 토론 2 - 조기홍 / 한국노총 노동안전국장
40명 노동자가 사망해도 벌금 2천만 원, 4명이 사망해도 200만원 벌금이 현실이다. 도급금지 관련해서 하청, 도급, 위탁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 본다. 자본이 더 확대하려고 할 것은 당연하다. 사망사고가 일어난 도급업무, 중대사고가 일어난 업무는 도급을 금지하는 실질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규직노동조합의 요구도 정규직노동자가 하청노동자를 같이 보고 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보호방안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
§ 토론 3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건설업을 보면 1년에 700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이 사고를 당한다. 심각하다고 느끼지만 일용직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건설노동자에게는 산재보다 고용, 임금 체불이 문제이다. 건설현장 산재는 시민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지난 12월 일어난 신길동 천공기 전복 사고가 그러하고, 2008년, 2009년 버스정류장에서, 민자 역사 건설현장에서 시민들이 사망했다.
신길동 천공기 사고를 보면 4단계의 하청구조를 거쳐 사고가 났다. 신호수, 안전관리자를 배치하지 않았고, 3인 1조 근무를 해야 하는 일을 혼자 다했다. 아웃소싱하고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재처리도 안 된다. 발주처 역할이 중요하다. 제철소는 현대나 포스코가 발주처다. 대기업정유사, 정부, 공기업인 한전, LH공사 같은 공룡과의 싸움이다. 건물이 고층화되면서 사고도 대형화한다. 5명이 사망한 여의도 국제금융센터는 서울시가 발주처였다. 건설현장의 장비는 시공회사가 대기업이어도 하청, 외주, 임대하기 때문에 원청 책임이 적용되지 않고, 사고가 나면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4대강 공사할 때 굴삭기가 전복됐는데 근로복지공단은 굴삭기 기사에게 산재치료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구상권을 청구했다.
건설현장 노사협의체에 발주처가 참여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2009년 의정부 경전철 사고에서 원청인 GS건설은 무죄를 받았다. 노동자 사망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온건한 태도, 일하다 보면 죽을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대해서 문제제기 되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사망만 봤을 때 10년간 7천여 명 죽었지만 처벌받은 건수는 7건이었다.
§ 토론 4 - 박두용 / 한성대 교수
왜 발주처, 원청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과거에는 발주자, 원청기업이 관리하던 영역이 분사, 도급이 늘어나면서 위험관리를 하도급에 넘기고 위험은 취약계층에 떨어진다. 위험 전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발주업체, 원청이 개입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발주, 원청기업의 책임에 대해 현행법을 생각하지 않고 짚어보면 두 가지 고민이 있다.
하나는 사회정의에 맞느냐 하는 것이고, 하나는 사고예방효과 측면에서 책임과 권한에 대한 것이다. 원청기업의 안전 책임범위에 대해서 말하자면, 타인과 근로계약을 맺을 때 천부인권을 침해하는 계약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고 계약을 맺는다 해도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통제권을 갖는 사람이 건강과 생명을 침해하는 계약을 할 수는 없다. 임금지급의 책임과 안전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논리만이 아니라 타사업장을 사용하는 사업주에도 확장이 가능하다. 시간과 장소에 통제권을 갖는 원청 사업주나 발주자가 그가 사용하는 하도급사업장에 대해서도 안전책임이 발생한다. 사회에서 누군가는 위험한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 이득을 보고 있다면 이득을 보는 자가 위험을 관리해야 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경제이득을 취하는 자가 위험관리하는 것이 맞다. 환경 오염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처럼. 우유팩의 수거 책임은 우유회사에 있는 것이다.
이번 공항철도 코레일 사고를 보면 코레일을 원청이든 발주자로 보고 지배 관할하는 모든 사업장에 대한 안전책임을 명시해야 한다. 법제화가 되든 안 되든 검토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책임을 중요하게 볼까가 중요하다. 안전에서 가장 쉬운 근원적인 첫 단추에 대해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사업주가 위험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인지는 알려주는 것을 포함한다.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가 핵심이다. 이번 사고에서 코레일은 몰랐다고 하는데 모르면 더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다. 몰랐다는 변명은 죽어도 좋다는 법리와 같다. 지금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 빠져나가는데 사업주는 알고 있어야 한다. 원청과 발주자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 자유토론 - 임준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위기이고, 노동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급격한 정책 변화에 맞물려서 2012년 이후 전략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운동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자리에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왔는데 사고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 이후 별도 작업을 제안하면서, 노동자 사망에 대해서 시민사회에 노동단체가 문제를 던질 준비를 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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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OO은 제주시내에 신축 중이던 빌라 공사를 하던 도중 고압선에 감전되어 화상을 입었다. 위 빌라 공사는 △△건설이라는 업체가 수주를 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건설은 그 공사 과정 중 골조 작업 부분을 최OO에게 하도급하였고, 박OO은 하도급을 받은 최OO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최OO이 위 작업을 할 때 △△건설의 직원들이 위 공사 현장에 상주해 있으면서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점검하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최OO은 위 골조 공사를 거의 다 마친 후 각 층에 널러져 있던 자재를 크레인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리려고 하였다. 크레인 작업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이루어졌는데 그 때는 모두 위 건물 뒤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위 날은 유독 위 건물 앞쪽에서 크레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편 거기에는 고압전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설의 직원은 최OO이 위와 같은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방치하였다. 박OO이 건물 아래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자재를 받아 내리던 중 크레인 선이 전선에 닿아 박OO은 고압선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박OO은 위 사고로 오른쪽 어깨와 오른 손에 부상을 입어 오른 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박OO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았다. 최OO을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지는 않았지만, 원수급자인 △△건설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박OO이 요양승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산재보상보험의 적용에 있어서는 사업이 수차의 도급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경우에도 그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기 때문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조), 박OO이 당연히 요양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OO은 치료를 종결하면서 장해 등급 4급(“한 팔을 팔꿈치 관절 이상에서 잃은 사람”)을 받았고, 연금을 선택하였다(4급의 1년치 연금 액수는 평균임금×224일분이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든 관계로 2년치는 선급으로 받았다. 연금을 선택한 경우에도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는 4년분까지, 그렇지 않은 자는 2년분까지 선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위 법 제42조 제5항).
박OO이 이처럼 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았으나 당장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박OO은 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박OO은 최OO과 △△건설 모두를 대상으로,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최OO이 영세업자로서 가진 재산이 없었으므로 △△건설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박OO은 그와 동시에 △△건설의 재산(부동산과 은행 계좌)을 파악하여 가압류를 하였다.
△△건설은 골조공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OO에게 완전히 하도급을 주었으므로 골조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위 사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건설의 주장대로 하도급을 준 원청업체는 하도급 업체가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민법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되어 있다(제757조). 이 규정에 의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책임이 없고, 다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면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위 규정은 완벽한 형태의 도급, 즉 일의 진행 및 완성에 대해 수급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그런 형태의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수급인이 영세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배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에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법원은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두 가지 상황을 인정하였는데, 그 첫째는 하수급인이 공사에 관여한 정도 및 도급인이 사전에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도급인이 직접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이고(1992. 10. 27. 선고 91다30866), 그 둘째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이다.
대법원은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 또는 그 피용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하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급인이 단순히 공사의 운영 및 시공의 정도가 설계도 또는 시방서 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여 공정을 감독하는 데에 불과한 이른바 감리만을 행한 경우에는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았다(1992. 6. 23. 선고 92다2615).
결국 도급인이 감독을 했느냐 감리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법원은 도급인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OO은 위와 같은 판례를 근거로 원청업자인 △△건설에게 기본적인 안전 시설 설치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건설이 감독자로서 사용자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OO은 재판과정에서 △△걸설의 직원이 실제로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 및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건설의 직원이었던 정OO와 크레인기사 구OO 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고 사고 발생 장소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고압선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 시공업자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사실조회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법원은 고압선에 대한 안전조치는 원청업체가 해야 한다는 사실 및 위 공사현장에 병이 파견한 직원 정OO이 현장대리인으로서 공사를 지휘․감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은 그런 사실을 토대로 “피고(△△건설)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로서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정OO)와 동일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던 피고의 수급인(최OO)이 고용한 근로자인 원고(박OO)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 즉 크레인의 작업 위치 및 유로폼의 적재 위치의 적절한 선정을 위한 지휘, 감독과 고압선에 대한 절연조치 등의 안전조치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므로 위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04. 2. 3. 선고 2003가단8083).
법원은 대법원이 인정한 위 두 가지 상황 중 첫 번째 경우를 이 사건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현재 법원은 위험의 공평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청업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향유한 자가 그 위험도 부담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법원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4월, 일부국회의원에 의해 수차 도급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책임을 현행 원도급업체(이하 ‘원청’)에서 하수급업체(이하 ‘하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의원입법형식으로 발의된 개정안이 아직 통과된 것은 아니나, 차후 정부발의입법형식을 빌어 ’통합징수법‘이란 새로운 법명으로 제정될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합리성이란 명목 하에 법 제정에 대한 찬성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산재은폐가 만연되어 있는 건설현장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이며,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증가, 산재은폐 증가를 필연적으로 부르고 건설노동자를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이 분명한 졸속적인 법안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있어 수 차례 도급으로 행해지는 사업의 경우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아 가입과 보험료 납부책임을 부과시키는 현행제도를 삭제하고, 각자의 고용관계에 따라서 그 책임을 귀속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즉 건설노동자를 고용한 가장 최하 단위의 하청업체에게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을 지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대부분 ‘오야지’로 지칭되는 자가 고용관계의 사실상 사용자가 될 것이다.
정부는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로 2005년 1월에 개정 시행될 산재보험법 개정 내용 중 건설공사의 경우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의 산재보험 확대적용을 - 무면허업자에 의한 2000만원 미만 공사 및 100평 미만 공사는 여전히 산재보험에서 제외 - 들고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개정안은 건설자본, 특히 원청인 대기업건설자본의 편의와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에 지나지 않으며, 건설노동자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2002년 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노동자는 19,925명으로 전체 산재노동자 81,000여 명 중 약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의 숫자이다. 실제로 산재로 다치고도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자기부담으로 치료받은 노동자는 제외된 수이다.
건설업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서 다단계 식으로 수차에 걸친 하도급 구조 하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5만여 개에 육박하는 건설업체의 부도가 비일비재하여 건설노동자의 노동법상의 권리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건설업체의 경우 건설수주 입․낙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소위 사무실은 없고 전화번호만 있는 유령회사가 횡행하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부도는 사실상 미리 예견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여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노임을 받지 못해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연한 임금체불은 열악한 건설노동자의 생활을 더더욱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일어났을 때 하청업체의 부도나 행방불명 등 사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산업재해 책임이 원수급인에게 있다는 산재보험법 9조에 근거하여 재해노동자가 원청을 사업주로 하여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공사기간이 한시적이라서 전체 공사기간 중 각각의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공사 기간이나 공정 또한 한 달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건설공사의 경우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의 총합으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하청업체가 맡은 공사를 독립적으로 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법에서 원청업체의 책임 귀속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건설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설현장에서의 산재발생율은 전체 산업재해 중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산재보험에 처리된 결과를 집계한 수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전체 재해 중 어느 정도가 산재로 처리되고 있는가? 건설산업연맹의 자체 통계조사에 따르면 그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꿔 말해 건설현장의 재해 중 약60%가 사실상 산재은폐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수급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될 경우 건설현장에 만연되어 있는 산재은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불확실한 소득의 흐름 구조상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산재처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청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되면 근거리에 있으면서 건설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하청업체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건설노동자 스스로 알아서 산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건설노동자들은 일용직이란 이유로, 전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고 있는 고용보험에서조차 배제되어 왔다. 특히 건설노동자의 경우 공사가 한시적으로 지속되고 일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빈번히 실업상태에 직면함으로써 누적된 실업기간이 다른 타 업종의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고 소득흐름의 불확실성이 큰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나마 고용보험에서 소외되었던 건설일용노동자가 2004년 1월부터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산재보험도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일 경우 공사금액과 무관하게 전면 확대 적용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 그간 배제되어 왔던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건설노동자도 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주체가 하청업체로 바뀌게 되면 매일 부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하청건설업체의 현실에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확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실업과 재해로 인한 고통의 몫은 그대로 건설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건설업의 경우 다양한 공정이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사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한가지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업체의 독립적인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ILO 또한 원수급인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산업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으로 변경되는 문제가 현실화된다면 원청은 건설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보건관리나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재해가 발생한다 해도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재해발생 억제 유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상 굳이 그 책임과 의무를 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이윤은 그대로 챙기게 되니 원청으로선 이익이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원청의 도덕적 해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앞서 지적한 문제점과 같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업체로 변경될 경우 현재 업종별 산재발생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업의 산업재해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며,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짓밟는 결과를 야기하고, 원청의 횡포에 대한 면죄부를 결과적으로 부여하는 형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하청업체로 책임 주체를 변경하는 개악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소외 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실현되고 구체화되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동현실에 기초한 정책, 그 노동현실 위에 소외계급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