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노동건강연대 특강 : 당신의 건강과 정의
반쪽의 과학,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노동건강연대는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일을 맞아 지난 4월 3강의 연속강좌를 열었다. 사회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의 문제도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지난 봄호에 이어 강좌를 지상으로 만나보고자 한다.
여성노동을 이야기하자
『반쪽의 과학』 은 책의 제목입니다. 노동과 건강에 있어서 젠더차이를 가장 잘 분석하고 현장과 잘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책입니다. 오늘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여성, 젠더 차이라고 하는 것, 사회 안에서 역할이나 가치가 달라지면서 여성의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이러한 차이가 잘 밝혀지고 있는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신문사기자를 하다가 88년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저의 연구나 관점은 사회학에서 시작해서 보건학과 만나는 과정입니다. 석사논문은 자동차산업 부품공장에 들어가서 노동과정을 연구하는 주제였는데 남자들은 기계, 성형, 금형 같은 일을 하고 4,50대 동네아주머니랑 저랑 패킹작업을 했는데요.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여름이었는데 머리를 감으면 시커먼 먼지가 나와요. 사람들은 막걸리에 돼지고기 먹으면 먼지가 다 쓸려 내려간다고 했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박사논문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를 만나서 우리사회 발전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했죠.
토론토에서 공부할 때는 의학, 간호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연계하여 배웠어요. 현장하고 항상 연결된 곳이었죠. 연구결과가 나오면 기업용, 노동조합용, 전문가용으로 자료를 만들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성, 여성의 노동과 건강은 왜 이슈가 되지 않을까요. 여성이라는 기준점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건강에 취약한 쪽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예요.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얘기는 왜 최근에서야 알려졌을까요.
여성의 노동, 노동력의 여성화는 새로운 건강 위해 요인이 있어요. 감정노동은 주요하게 부각될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입니다.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도 높고요. 감정노동의 요구가 높아지는 데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많아지면서 폭력, 성희롱 등이 늘어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요. 일과 삶의 조화가 어려워요. 신체적 위험요인,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이 결합하고 있죠. 이제까지는 분리되어 있었어요.
여성의 노동과 관련하여 요즘 떠오르고 있는 개념을 말씀드릴게요.
친밀노동과 돌봄노동
친밀노동은 최근에 나온 이야기인데 노동을 하면서 만지거나 감정이 개입되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는 노동을 말하죠. 가정에서 행해지건 밖에서 행해지건 여성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네일아트, 간병, 가사노동 등입니다. 주관적이면서 밀착되는 형태로 노동이 이루어져요.
돌봄노동은 구분이 좀 어려운데 간병,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원 등 남을 돌보는 직업이죠. 돌봄노동은 제3세계 여성들이 제1세계로 가서 하녀나, 유모 등으로 많이 일하고 있어서 이주 여성노동자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 친밀노동과 감정노동은 건강문제가 많이 겹칩니다.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일자리는 부족하고 임금은 낮고, 고용관계가 3자간의 관계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보험 적용이 잘 안 되고 있죠. 가정이 노동현장이 되고 업무시간이 불규칙하고 장시간 노동인 경우가 많아요. 돌봄 대상자와의 관계에서 폭언, 폭력, 성희롱 문제도 심각합니다. 감정적 소진도 심각하죠.
『감정노동』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책의 원제는 ‘관리된 심장’이예요. 심장을 관리해서 노동을 수행하고 그를 통해서 회사가 이윤을 얻는 거죠. 저자가 미국사회를 잘 분석해놓았어요. 감정노동도 종류가 다양한데 판매직은 웃으면서 일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노동도 있습니다. 길에 ‘돈 받아드립니다’ 붙여놓은 플래카드나 종이들 가끔 보잖아요. 이분들은 부정적인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고, 심판원, 판사 등은 중립적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죠.
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긍정적 감정노동을 하는 여성들입니다.
연구자의 처지에서는 아직도 감정노동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TV프로그램에 자료를 만들어준 적이 있는데 판매직 여성이 우울증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감정노동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얼마나 깊게 하는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에 따라서 부조화가 많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르다
서비스직 안에서도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릅니다. 남성은 시말서, 경고, 정직 같은 통제방식이 많고, 여성들은 시말서가 많긴 하지만 공개사과 형식도 많아요. 개인적인 모독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연구결과에 나옵니다.
여성의 직종을 보면 상담, 승무원, 백화점판매직, 콜센터 등인데 여성들은 감정노동도 힘들지만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고객의 편에 서서 나무라거나 조치를 취할 때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고객의 감정적 요구와, 관리자의 감정적 요구를 얼마나 받는가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남성노동자들은 실제 신체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노동자들은 폭언과 물리적 폭력 모두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은 비교는 안 해 봤지만 외국보다 훨씬 하대받는 문화입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하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죠.
외국에 좋은 사례가 많아요.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당신이 한 말이 녹음되며 폭언, 폭행, 성희롱 등이 있으면 제재를 가한다’ 는 말이 나와요.
4,50대 여성노동자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특히 많아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죠. 병원 간병노동자를 면접해보면 하루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병원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가사노동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현실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어요. 현재 법제도는 출산, 육아, 보육 정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대상에 한정되어 있죠. 휴가나 휴직도 대기업, 공무원 정도만 적용을 받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예요. 노동시간이 줄어야 집에 가서 무얼 해도 체력이 남아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근골격계질환도 요즘 많이 얘기하는데 사무직도 많지만 공장도 많아요. 법을 보면 무게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커다란 물건을 옮기는데 중심을 둔 것이죠. 무게는 덜 나가지만 횟수가 많은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직업병은 인정받기 어렵게 되어 있어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남성노동자의 경우
같은 직업명을 갖고 있어도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가.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건강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직업에서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릅니다. 청소라는 직업에서도 남성은 기계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창틀을 닦는 작업을 하죠.
최근 요양보호사 면접을 할 때 여성노동자만 만나다가 남성이 한명 왔어요. 이일을 왜 하시냐 물었더니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왔대요, 그러면서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이 든대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4대 보험도 되고 하는 일도 별로 없더라… 하는 거예요. 가시면 뭐 하시냐 물어보니까 목욕한번 시키고 얘기하다가 집에 온다고 해요.
여성 요양보호사들은 온통 가사노동에 잔심부름을 다하는데 말이죠. 남성들에게는 요리, 빨래를 시키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을 안 시킨 거겠죠.
그 남성은 요양보호사 하다가 경영을 배워서 자기가 차리겠다, 남성만 쓰겠다고 하더군요. 남성이 힘은 좋을지 몰라도 좀 부족한 게 있지 않겠나 물어보니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같은 남성이 있다, 그들을 시키면 목욕도 시키고 일도 잘할 거다’ 하더군요.
한국은 산재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일 때문에 병에 걸렸습니다’ 하고 산재신청한 비율을 봤더니 신청에도 남녀차이가 있습니다. 승인에도 차이가 있고요, 근골격계직업병을 보면 여성은 5%, 남성은 16%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에 대한 처리방식도 여성은 71.7%가 개인이 해결한다고 답했어요. 남녀모두 산재신청을 안 하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방식은 여성이 훨씬 높아요.
남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과 어린이집 여성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을 판단할 때 어떻게 볼 것이냐 어렵습니다. 여성들이 불평불만이 많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래서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거라고 말을 하죠.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질환 비율을 보면 남녀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산재승인을 받으려고 할 때 여성노동자가 아프다고 하면 부부문제나 가정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노동 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반쪽의과학』 저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첫째 과학적 연구라고 하는데, 과학이라고 하면서 평균치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데 주로 여성이나 취약계층입니다.
둘째 과학적 엄밀성을 따지는데 통제가 잘 안 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을 과학적 엄밀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죠. 다양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셋째 사회적 환경요인과 노동환경이 건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이 같다, 연령이 같다, 소득이 같다 는 전제 아래 보기 때문에 잘 안 보입니다.
넷째 연구비 심사를 어떻게 하느냐도 달려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에는 연구비가 많이 가 있어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죠. 유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석을 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주지 않아요.
현장에서 요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왜 대학생들이 대학 선생 말을 안 듣고 유명한 멘토들 찾아다닐까요.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어서 현장을 잘 모르고, 새내기들의 고민을 모르죠.
캐나다에서 연구할 때 보면 사회학, 생물학, 보건학, 환경학 연구를 같이 합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이 어디에 배치돼서 노동과 건강을 연구해야 하나 고민하죠. 교수의 논문을 평가할 때 지역사회가 참여해서 평가하고 지역사회에서 대학이 무슨 연구를 하고, 예산을 줄까를 주민이 참여해서 결정합니다. 한국도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생겼는데 정치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하는 돌봄노동이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보이면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어요. 존중, 임금, 지위 전부 낮아요. 내가 필요해서 돌봄노동자를 불렀는데 저 사람이 없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물어야죠. 젠더차이라고 하는 것도 여성이라는 공통의 요구가 많은가 봐야 하죠. 젠더가 하나의 기준이 돼서 남녀를 가르는 게 아니라 주요하게 사회집단을 그룹핑하는 기준이 돈이 있나, 나이가 어떤가, 지역적 차이 등이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고 할 때 공통점이 있어요. 요구가 상당히 비슷하겠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연구자들이 연구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3강 : 홍삼 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보라
여성의 취업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전체 취업자의 과반수를 하회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일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노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이요 건강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건강은 개인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는데 또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며 일을 가진 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일자리 유지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기본 수단이 된다. 즉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 내 업무와 관련한 예방의 의무가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할 경우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저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산업보건분야에서 건강의 논의는 대체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고 사고나 부상 등에 제한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건강을 작업장내의 환경에만 초점을 바라봄으로서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요인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별로 많지 않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정책도 주로 여성의 재생산기능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모성보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의 결과로 모성보호의 법개정과 향상이 있었으나 여성이 사회와 노동환경에서 처한 불평등과 건강을 연계한 연구와 정책제언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었다. 특히 여성의 건강을 신체적인 현상으로만 국한하거나 임신, 출산 등 재생산 기능에만 국한하여 바라보는 것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이나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원인, 예컨대 성 분절적인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의 요인이 건강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여성의 불건강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의 결과로서 이해하고, 이러한 불평등의 개선을 통한 건강정책은 부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을 위해서 성별 건강 불평등성을 낳는 기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여성노동자의 건강의 성별차이를 보기 위한 시론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여성의 건강수준의 저하는 사회적 불평등성과 성(gender)이라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여성이 사회에서,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건강은 인간 생리, 보건관리의 조직,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물리적인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규정된다(Health Canada, 2002). 또한 건강은 ‘삶의 질’의 기본적인 차원으로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삶의 질’이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한 기회를 의미한다면, 건강은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자원으로서 볼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교육도 받고, 일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건강은 삶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한 사회 내에서 구성원의 건강수준은 매우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단, 교육을 높게 받은 집단,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보다 많이 향유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건강할 수밖에 없다(UN, 2003; WHO, Rhoades, 1998).
즉, 건강수준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구성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건강불평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사회적 계층과 성(gender) 성(gender)은 성(sex)과는 다른 개념으로 성(sex)이 주로 신체적, 유전적 측면에 강조점을 둔 반면 성(gender)은 여성, 남성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 역할과 사회적인 규범, 인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강과 성(gender)의 연계는 건강이 단지 신체적인 차이가 아닌 사회내의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건강수준이 달라지고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건강상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이다. 한 예로 캐나다의 국가적 차원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불건강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인 수명에서 상위소득계층에 속하는 남성은 하위소득계층 남성에 비해 6년 이상을 살고 여성은 소득계층간 차이가 남성보다는 작게 나타난다. 질병의 경우 그 차이는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상위계층의 남성은 하위계층의 남성에 비해 질병이 없는 상태가 14년이 더 길고 여성의 경우는 그 차이는 8년으로 나타나 경제적 지위가 건강에 미치는 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지표가 건강불평등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성에 의한 중요한 차이가 여전히 각각의 계급수준 안에서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한편 기존의 연구(Ostlin, 2001)에 의하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사회적 지위나 건강결과를 어떻게 측정하던지 관계없이 모든 사회의 남성과 여성에서 보다 나은 건강과 지속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간 총사망률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크기에 대한 분석이 시행된 나라를 보면, 여성에서 보다 적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보고되었다. 또한 총 사망률 수준에서 남성들 사이에서 보이는 커다란 불평등은 여성들에게 흔하지 않거나 반대인 경우가 있다. 반면, 심혈관 질환, 허혈성 심질환의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큰 상대적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계층과 성이 건강수준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여성내부의 차이이다. 여성건강의 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 레슬리 도얄(Doyal, 1995)은 여성과 남성을 단순히 대비하는 것은 한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인종과 계급으로 인한 뚜렷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여성/남성의 비교라는 매우 조야한 방식보다 사회내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서로 연계되고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건강수준이 발생하게 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간의 차이를 극대화하여 여성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 여성내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위치가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은 비슷한 신체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성은 여전히 하위계층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의 건강을 바라볼 때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거나 여성내 집단의 파편화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치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성이라는 요인과 어떻게 작용하여 건강의 불평등을 낳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Status of Canada, 1996; WHO, 1997). 이러한 분석은 고전적인 건강에 대한 책임성 - 의료이용이나 서비스 등에 국한한 - 의 경계를 더욱 확장시켜 제반 사회적 요인과 건강을 연계하여 살펴보고 건강권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Krieger, 1993).
건강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성(gender)이라면 성 인지적인 건강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사회내의 다차원적인 영역에서 성(gender)이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건강의 성별 불평등성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체로 1)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책임, 2) 사회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지위, 3) 여성과 남성의 자원 사용과 자원에 대한 접근, 4)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적 코드, 5) 여성 신체의 독특한 기제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 인지적인 건강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Walters et al, 1995).
일하는 여성의 건강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하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일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특징으로 첫째,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일을 하지 않는가를 먼저 밝혀보아야 한다. 여기에 경제적 필요도, 건강수준, 일에 부여하는 의미, 원하는 일자리 존재여부, 가족 내 여성취업에 대한 태도, 가족-직장양립 가능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여성 즉 실망실업자의 건강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Moss, 2002).
둘째,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불평등한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의 편입으로 인해 여성이 종사하는 산업, 직종, 직무가 남성과 상이하고, 최근 보다 급속하게 다양화되고 있는 유연한 노동으로 인한 비정규직의 여성화 등은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Ferrie 2001, Quinlan et al, 2000).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고용주와 맺는 고용관계의 특성, 직장에서의 제반 규범과 규율의 내용 역시 달라지며 이는 여성의 건강수준과 관련을 맺는다(Benach etl al, 2000; Fuhrer, 1999). 여성은 대체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으며, 조직의 위계 질서에서 볼 때 하층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소규모사업장이나 비정규직으로 종사한다는 점에서 건강 위해요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는 기제가 부족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Duxbury, 1997; Hall, 1989).
셋째, 건강의 위험요인(risk factor)이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각 직업별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은 다양하며 같은 직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하는 직무가 상이하여 건강 위해요인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Messing, 1998; Mergler et al, 1987).
일반적으로 남성에서 건강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기여하는 대부분의 요소(물질적 불리함, 고용상태, 결혼 상태, 직업환경요인, 건강관련행태)가 여성에게도 기여하지만 이러한 건강결정인자의 사회적 패턴에 대한 중요한 성별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는 성 분류적 노동에 기인한 것으로 성에 의해 매우 다양해지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산업화된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소음, 진동, 부적정한 온도, 유기용제,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유기용제 관련 질환, 난청, 진동에 의한 상해, 직업관련사고는 남성에서 훨씬 많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과 연관된 질환은 낮은 사회경제적 그룹에서 보다 많이 나타나게 된다.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 단조로운 작업, 폭력과 부정적 스트레스의 위험, ‘작업의 정신적 긴장과 낮은 결정범위의 복합’ 등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피로감, 반복성 긴장, 직업관련 근골격계질환, 사회심리적 건강문제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하게 나타난다(Griffin et al, 2002; Kilbom et al, 1998). 이럴 경우 남성은 작업장에서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을 제거하는 개입이 근골격계질환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 일수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이 주로 직장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재해나 직업병은 남성노동자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여성도 점차 산업현장에 뛰어 들어감에 따라 일과 관련한 질환도 증가하게 되었다. 여성은 직장에서 남성보다 단순 반복적이고, 일에 대한 통제가 낮으며,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가 만연하고, 직장과 가정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상이하다(정진주, 2002). 이렇게 여성과 남성이 종사하는 일의 내용이나 직무가 남성과 다르기 때문에 여성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는 남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성노동자 위주의 시각과 조사결과를 가지고 여성노동자에게 ‘작은 남성’으로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성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다(Mergler et al, 1987).
넷째, 여성노동자에 대한 건강관리와 불건강한 상태에서 제공되는 보건의료서비스나 보상의 영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건강관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닌 직장에서 건강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를 말하는데, 여성을 위한, 여성의 요구에 기반한 산업보건관리가 시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관리의 정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과 노동환경의 위해요인으로부터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에 대한 치료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환경개선이 얼마나 수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불건강한 상태로 인하여 더 이상 일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자리를 떠난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정진주, 2002).
다섯째, 건강에 관한 인식과 건강증진의 요구가 여성의 불평등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증상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와 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현대의 직업병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근골격계질환 - 목, 어깨, 허리, 손, 팔 등의 통증으로 일컬어짐 -의 경우 같은 중증도의 질환에 걸리더라도 남성이 여성보다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진주, 2002). 이는 흔히 남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강함’에 대비하는 ‘약함’ 이라는 신체적 증상이 근골격계질환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고나 부상은 남성에게 수용하기에 보다 용이하지만 근육과 뼈의 무기력함은 ‘약한 여성’라는 이미지에 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코드 외에 직장에서 여성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고용의 불안정성 등의 불이익이 오면 요구도는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앞 절에서 지적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그림 1과 같다. 향후 일련의 노동시장 과정에서 성인지적인 관점을 가지고 건강의 불평등성을 연구해 볼 필요가 존재한다.
일하는 여성의 업무와 관련한 건강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력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용한 노동력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건강이 보장되어야 하고, 가족 내 성별 분업과 취업에 대한 가족적 지원, 일에 대해 가지는 의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자리가 존재하는 한 노동력으로 유입되어야 한다.
일단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은 고용형태, 산업, 직종, 기업규모 등으로 분리된 시장에 위치하게 되어 건강상의 위해요인의 노출요인과 노출 정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노동과정 내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 건강상 부정적 위험요인도 상이하게 된다. 이러한 면은 거시적인 성 차별적인 노동정책 하에서 구체화된다. 여성은 대체적으로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서비스산업 등에 집중적으로 종사하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남성과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요인이 달라지게 된다. 직장에서 건강관리는 예방대책, 질병발생 이후 보상, 건강문제를 건강문제라고 인식하고 요구하는(empowerment)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여성은 종사상 지위, 소규모 사업장 집중 등으로 인해 예방, 보상, 요구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성별 불평등과 배제에 따라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심각한 경우는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게 된다. 물론 같은 여성집단이라고 할 지라도 더욱 취약한 집단이 존재한다.
건강이 취약한 여성집단은 경제활동기간이 짧게 되므로 노후의 연금수혜도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적 빈곤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와 영위, 사회관계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도 빈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노동력으로 활용되지 못할 경우 기초생활보장이나 자활사업의 대상자가 되어 공식적인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빈곤과 불건강의 상태가 영속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향후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연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내의 다양한 영역 즉, 가족, 노동시장, 노동조건, 사회복지의 다차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은 단순히 작업장내의 위해요인 분석을 넘어서 확대되어야 하고 기술적, 물리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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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노동자는 다양한 음식업종에서 인간의 노동력 재생산 뿐만 아니라 삶의 유지 자체에 필요한 최종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조리’라는 일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존엄한 ‘노동’으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여자나 하는’ 부엌의 허드렛일로 여겨져 평가절하되고, 조리노동자는 ‘식당 아줌마’라는 호칭 아래 이미 냉엄한 노동시장에 편입되어 자본의 이익에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잊혀져 왔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 작업환경 및 그 유해성에 대한 평가 또한 미미하며, 이에 대한 연구 및 관심도 매우 드문 실정이다. 한 조리노동자의 노동사례를 들어보자.
...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하고 서둘러 출근합니다. 출근해서 작업복에 위생모 쓰고 장화신고 긴 앞치마를 두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물에 손톱은 세포가 죽어 물이 차 빠지고, 화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환경에서 무거운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발톱이 검게 죽어 새로 가는 고통도 느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 조리실 내부의 온기와 습도는 살인적인 사우나가 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때문에 시력이 저하되고, 화상의 위험에 늘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들면서, 출근해서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어가면서 한달 꼬박 일해 받은 월급은 약 60만원정도, 유치원생 원비 내고 큰아이 학원비 내고 나면 내 손에는 빈 월급봉투와 허탈만 남게 됩니다...(하영숙,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집에서)
...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하고 서둘러 출근합니다. 출근해서 작업복에 위생모 쓰고 장화신고 긴 앞치마를 두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 뜨거운 물에 손톱은 세포가 죽어 물이 차 빠지고, 화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환경에서 무거운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발톱이 검게 죽어 새로 가는 고통도 느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 조리실 내부의 온기와 습도는 살인적인 사우나가 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때문에 시력이 저하되고, 화상의 위험에 늘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들면서, 출근해서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어가면서 한달 꼬박 일해 받은 월급은 약 60만원정도, 유치원생 원비 내고 큰아이 학원비 내고 나면 내 손에는 빈 월급봉투와 허탈만 남게 됩니다...(하영숙,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집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관심이 증대하는 가운데,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영양사, 급식조리노동자, 사서, 과학실험보조원)의 차별철폐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조리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작업환경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판단하여 노동건강연대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조사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간 학교급식의 문제점 및 대안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시도들은 많았으나, 정작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조리노동자들의 노동과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조사는 크게 설문조사와 인간공학적 평가로 구성되었다. 2003년 7월 중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8명과의 예비면접조사를 통해 설문지 초안을 만들고, 8월 중 예비조사와 노조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설문지를 수정․보완하였다. 초등학교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와 비노출군인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2003년 가을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또 근골격계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2003년 11월 경기도 지역의 일개 초등학교 조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인간공학적 평가도 실시하였다. 다음은 그 조사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급식은 1990년대 들어 급격한 증가를 보이기 시작해 2002년 9월 현재 급식률은 전체학교의 94.6%에 이르고 있다. 학생수로는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초, 중, 고, 특수학교) 전체의 83.1%인 약 650만명이 학교급식을 이용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육체적 노동을 통해 식사를 실질적으로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로서 조리사와 조리보조원이 이에 해당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수는 2002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56,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하루일과를 간단히 살펴보자. 아침 8시-8시30분 사이에 출근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그날의 음식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은 뒤 음식 전처리, 조리에 들어간다. 11시-11시 30분 가량 되면 각 학급에 점심식사를 배식할 준비에 들어가고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12시 20분까지 배식을 끝낸다. 그러고 나면 20-40분 가량 조리노동자들에게도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나마 여건이 좀 나은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서서 점심을 먹고 먹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점심식사 후 식판, 밥판, 국통, 반찬통 등을 수거하고 설거지, 뒷정리를 한다. 오후 4시-4시 30분사이 간단한 위생교육 등을 하고 일과를 마치게 된다.
초등학교 단독조리 급식학교의 규모별 필요인력을 조사한 강명희(1995)의 연구에 의하면 400식 이하의 경우 4.1-4.8명, 401-700식에서는 6.8-8.2명, 701-1000식에서는 9.7-13.5명, 1001-1500식에서는 11.1-14.9명, 1501식이상에서는 10.9-13.3명의 조리노동자가 적정한 인력인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실제 규모별 평균 조리노동자수를 보면, 전체 급식의 80%이상을 차지하는 701식 이상의 규모를 가지는 학교들에서 필요 인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조리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그림1).
한편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위 연구의 필요인력보다 적은, 학생 200명당 1명의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를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리노동자 일인당 평균 급식인원수가 200식을 초과하는 학교도 37.5%에 달해 인력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력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필요한 휴식시간도 보장받을 수 없고 노동강도는 자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학교급식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에게 사고 및 질환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일당임금은 약 28,500원, 급여일수는 일년의 2/3에도 못 미치는 약 233일이었다. 일일 노동시간은 평균 7.6시간이었고, 휴식시간이 있다는 응답이 80.6%에 이르렀으나, 휴식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점심시간이라고 응답해, 점심시간 이외의 휴식시간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학교의 조리환경에 대한 질문에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75%이상이 소음, 고열, 다습한 환경이 심각하다고 응답하였다. 본 조사기간 중 일개 학교를 대상으로 측정한 소음수준도 평균 77dB-90dB 수준으로 소음에 대한 적절한 조치 및 감시가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면접조사 과정 에서 ‘일 몇 년 하다보면 귀가 먹먹한 게 잘 안 들린다’ 라고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실제 소음성 난청이 발생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스팀작업시 배출되는 수증기와 음식 조리시 발생하는 수증기로 인하여 식당은 매우 다습한 환경이다. 이러한 환경은 조리시 발생하는 고열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땀띠 등의 피부질환을 유발시킬 수 있다. 또한 조리시에는 기계 및 기구의 사용이 많기 때문에 화상, 절상 등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게 되며, 항상 물기가 있는 식당의 바닥도 미끄러지는 사고의 한 원인이 된다. 일부 시설이 낙후되고 오래된 작업장의 경우 조명이 어두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누적시켜 사고를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Karasek 모형을 이용한 직무스트레스의 측정에서 조리노동자의 직무재량도 값은 50.0점으로 조사되었다. 이 값은 한 연구를 통해 조사된 우리나라 노동자 직무재량도 평균값에 비해 약 8점 가량 낮은 수치로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경우 업무에 있어 재량도가 매우 낮음을 시사한다. 정신적 직무요구도는 38.4점으로 참고치 평균값에 비해 5점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을 주영수 등(2003)의 연구에서 조사된 국내의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서비스 관련 단순노무자, 고객서비스 사무 종사자, 운전원 및 관련 종사자보다 직무재량도는 낮으면서, 컴퓨터 관련 준전문가 등에 비해 직무요구도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는 직무재량도는 낮고 직무요구도는 높은 전형적인 ‘직무긴장도가 높은 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림2).
직무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 사회적 지지는 20.4점으로 조사되었다. 사회적 지지는 상사에 의한 것과 동료에 의한 것으로 구성되는데, 상사에 의한 지지는 참고치에 비해 낮게 조사된 반면, 동료에 의한 지지는 높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특히 직무불안정성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직무불안정성 점수인 5.7점보다 2.5점 이상 높은 점수를 보여주어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직무불안정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낮은 사회적 지지와 높은 직무불안정성은 직무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림2. 직업군에 따른 직무요구도와 직무재량도의 분포
(02 행정 및 경영관리자, 03 일반관리자, 12 컴퓨터관련 전문가, 13 공학 전문가, 15 교육 전문가, 21 과학관련 기술종사자, 22 컴퓨터관련 준전문가, 23 공학관련 기술종사자, 25 교육 준전문가, 26 경영 및 재정 준전문가, 31 일반사무 관련 종사자, 32 고객서비스 사무 종사자, 44 보안 서비스 종사자, 51 도소매 판매 종사자, 71 추출 및 건설 기능 종사자, 72 금속, 기계 및 관련 기능 종사자, 73 기계설치 및 정비 기능 종사자, 74 정밀기구, 세공 및 수공예 기능 종사자, 81 고정기계장치 및 시스템 조작 종사자, 82 기계 조작원 및 관련 종사자, 83 조립 종사자, 84 운전원 및 관련 종사자, 91 서비스 관련 단순노무 종사자)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서 지난 1년간 사고의 발생율은 34.2%였으며, 전업주부에 비해 위험성이 7.86배나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수치는 조선업 등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비해서도 높은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고열, 다습, 소음, 위험한 기계 및 기구, 미끄러운 바닥 등 작업환경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 일찍 관심을 갖고 현재 많은 연구들과 대책들이 진행 중인 일본의 경우, 사고가 다발하는 원인으로 일하는 사람의 주의력 저하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의력 저하’가 결코 ‘주의력이 원래 부족한’ 어떤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리 주의력을 열심히 유지하자고 해도 피곤해지면 점점 저하되고, 결국 주의부족 상태가 된다. 인간은 그러한 동물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므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의력이 저하되는 원인이 되는 피로가 급격히 쌓이는 것을 방지하도록 적절한 노동강도를 유지하고, 피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휴식시간을 적절하게 설정하고, 기계는 주의력이 떨어질 때에도 충분히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또 만일의 경우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기계에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강도가 높은 국내의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에게도 반드시 환기되고 적용되어야 할 대안이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가 겪는 사고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선 사고내용으로는 화상이 45.4%로 가장 많았다. 화상을 당하는 부위는 팔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손, 다리 순이었다. 화상 다음으로는 등/허리 등이 삐끗하는 것으로 16.8%를 차지하였으며, 바닥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12.6%로 뒤를 이었다. 그 외에 자상 또는 절단, 끼임 등의 사고가 있었다.
1인당 사고빈도는 지난 1년간 1-2회가 69%로 가장 많았으나, 3회 이상도 31%로 나타났다. 사고가 난 경우 중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는 48.9%였으며, 치료비는 75%가 본인이 부담한다고 응답하였으며, 학교부담은 13.6%, 산재보험처리는 9.1%로 조사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처리실태에 대한 한 조사(한국산업안전공단, 2001)에서 산재보험 적용이 18%인 것에 비하면 이것은 매우 낮은 수치이다. 더군다나 사고성 재해에서의 산재보험 처리가 9.1%이므로, 상대적으로 산재처리가 더 까다로운 질병까지 감안하면 전체 사고와 질병에서는 산재처리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현재까지 근무하는 동안 작업 중 다친 경우에도 산재보험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에서는 가벼운 사고여서라는 대답 다음으로 32.3%가 산재신청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라고 응답하였다. 이는 현행 산재인정체계가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고, 재해당사자인 노동자에게 입증 책임이 부과되며, 인정기준 또한 협소하여, 산재보험의 이용에 있어 노동자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은 불편한 자세, 반복작업, 중량물 취급 등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성이 높은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공학적 평가에 따르면 전체 17개의 작업 중 7개의 작업이 매우 위험정도가 높은 작업이고, 9개의 작업이 상당한 정도의 위험작업, 1개의 작업이 비교적 안전한 작업으로 평가되었다.
인간공학적 요인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 또한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학교급식 노동자처럼 부족한 인력으로 일정한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게 되면, 시간당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동일한 시간에 근골격계에 더 많은 부담을 주게 되므로 근골격계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또 근골격계의 긴장을 적절하게 풀어줄 수 있는 휴식시간이 보장이 되지 않는 것, 근무긴장도가 높은 점 등이 근골격계 질환 유발을 가중시키는 셈이다.
실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서 근골격계 장애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근골격계 자각증상 호소자는 54.3%, 근골격계질환 의심자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람은 26.2%로 조사되어 근골격계 장애의 위험이 매우 높은 직종으로 조사되었다. 전업주부에 비해서도 근골격계질환은 4.89배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은 손/손목. 어깨, 등/허리, 팔, 팔꿈치 순으로 주로 상지와 허리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근골격계 증상 때문에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약 58%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치료에 효과가 있었는냐는 질문에는 약 37%가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작업에 기인한 근골격계 증상의 경우 의학적인 치료만으로는 그리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약 10%는 근골격계 증상으로 인해 조퇴, 결근, 휴직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피부증상은 47.2%가 호소하였으며, 이는 전업주부에 비해 3.22배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질병명을 알고 있는 경우 가장 많은 것은 자극성접촉성피부염(28.9%)이었고, 땀띠(22.2%), 알레르기성접촉성피부염(17.8%) 순이었다. 이는 업무 내내 물과 접촉할 가능성이 크고, 그밖에 각종 세척제 등에 노출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국외의 연구에 의하면, 조리노동자의 피부질환의 경우 40-46%가 자극성접촉성피부염, 약 25%가량이 알레르기성접촉성피부염으로 보고되고 있다. 반면 본 조사 결과 땀띠가 22.2%로 피부질환 중 두 번째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위생작업복을 입은 채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결과로서,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얼마나 미비한지 확인할 수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이 호소하는 피부질환의 부위는 손/손목, 팔, 등/허리, 다리 순이었다. 증상으로 많은 것은 아프다(39%), 가렵다(22.1%), 얼얼하다(17.2%) 등이었으며, 징후로는 피부가 벗겨지고 두꺼워지는 태선화(30%), 발적(18.8%), 두드러기(18.8%) 등이었다. 피부질환 때문에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약 55.1%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치료에 효과가 있었는냐는 질문에는 근골격계질환과 유사하게 약 39%가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하였다. 이 역시 직업관련성 피부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작업환경 및 노동조건과 관련된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2004년 2월 진행된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에서 노동건강연대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 필요인력 수준으로 인력을 충원하여 노동강도를 낮추고,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 정규직화 및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보장하여 직무불안정성을 해소하고 병가의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이 현실화 되어야 한다.
- 사고나 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 향후 초등학교 외에 위탁급식운영이 많은 중,고등학교에 대해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이 마련되어아 한다.
- 조리노동자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책마련이 되어야 한다.
모쪼록 이 조사결과를 통해 학교급식의 문제 일면에 조리노동자의 가려진 고통이 있음이 드러나고, 나아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하루 쉬지 않고 밥을 짓는 ‘식당 아줌마’들이 ‘조리노동자’로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최근에 필자는 ‘여성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강의’를 매주 진행하고 있는데, 강의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 질문은 2001년, 정부가 체류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강제추방방침을 세웠을 때도, 2002년 또 한번 체류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강제추방방침을 세웠을 때도 계속 접했던 질문이다. 이처럼 똑같은 질문을 매년 접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하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운영에 관한 것이다. 지난 8월 고용허가제 관련 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40만을 넘어서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도, 우리나라에는 이주노동자 관련 법안이나 정책이 전무하였다. 정부는 오로지 허울뿐인 ‘산업기술연수생제도’만을 붙들고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는 ‘눈가리고 아옹’식으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대응하다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면 ‘강제추방방침’만을 천명하였고 그 때마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던져졌던 것이 바로 ‘체류기한연장’이다. 정부는 체류연장기한이 끝나면 몇몇 공단을 본보기로 단속하고는 다시 ‘눈가리고 아옹’ 식의 자세로 돌아갔으며, 이주노동자들은 단속기간동안 몸을 숨겼다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런 식의 숨바꼭질이 몇 차례 거듭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으며, 이주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이번 ‘강제추방’도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번에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진 출국을 하지는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자진출국기한인 오는 11월 15일을 기해 강력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다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부의 입장과 내년 8월 시행 예정인 고용허가제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아마도 사실일 듯 하며 분명 이전과는 다를 듯 하다.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방침을 믿지 않고 버티고 정부는 강력한 단속을 시작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양치기 소년(정부)의 계속되는 거짓말 때문에, 동화와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이주노동자)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에 있어서 ‘기준’의 문제점이다. 정부는 지난 8월 고용허가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한시적 경과조치로서 2003년 3월 말 현재 기준으로 국내에 4년 미만 체류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 고용허가를 인정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결국 정부안에 따르면, 국내에 4년 이상 거주한 자의 경우에는 자진 출국하거나 강제 추방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4년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이다. 국내에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오히려 한국어도 능숙하고 기술도 뛰어나서 국내 경제에도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정부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한 바 없으며, 4년 이상 체류해서는 안 된다는 앙상한 원칙만을 내세우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당신은 4년이 넘었으니 출국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과거에 정부가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해서 주장했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데, ‘정주화 방지’와 ‘저임금 고수’가 그 숨겨진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한 우려 지점으로 ‘합법 체류 자격 부여에 따른 임금 인상’을 몇 차례나 언급한 바 있으며, 고용허가제 도입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지점으로 ‘정주화 방지’를 몇 차례나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은 국내에 정주화할 가능성이 크고 4년 미만의 저숙련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에, 출국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국가간 교류가 활성화 되고 전세계의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정부 스스로도 ‘Globalization’ 을 외치고 있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의 ‘정주화 방지’라...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이들이 장기 체류하게 된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정부 책임이라는 것이 자명한데도 말이다.
이처럼, 정부는 아직도 ‘눈 가리고 아옹’식의 정책 기조를 버리지 못하고 현실성 없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 비껴가려는 듯 하다. 결국, 이와 같은 정부 정책은 근본적 문제 해결은 하지 못한 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갈 것이며, 그에 따르는 부담은 모두 이주노동자들이 떠안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이주노동자들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을 이방인이 아닌 노동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며,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우리 법의 정신을 정부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다.
근 10여년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켰던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드디어 산업기술연수제와 고용허가제 병행실시라는 형태로 7월 20일 현재 국회 본회의 표결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였고 경제 5단체가 동의하였으니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니, 그 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진영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실시라는 최선의 해결방안은 결국 물 건너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해도 될 듯하다. 여야는 마치 거래하듯이 병행이 어려운 두 제도의 병행실시를 결정함으로써 ‘동일 영역내에서 차별의 제도화’에 합의하였다. 이는 향후 이주노동자 문제에 또 다른 문제점을 배태하게 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비록 차차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도라고는 해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현재보다는 분명히 향상된 측면을 가진다는 점은 짚어야 할 것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이 이주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큰 의미는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78.9%에 달하는 불법체류 신분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총체적인 측면에서 불편함과 불이익을 안고 있다. 장시간노동, 저임금, 무방비로 노출되는 산업재해, 질병....
이 중에서 산업재해와 질병은 ‘노동’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꼽힌다. 특히 산업재해는 이들이 주로 3D업종에 취업함으로 해서 사고성 재해, 직업성 질환 등 언제라도 이들을 급습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위험한 사업장에 취업하지 않음으로써 산재피해의 확률을 낮추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재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서 이들의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익숙지 않은 풍토에서 부족한 영양,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많은 건강상의 배려가 필요함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이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이 땅을 떠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법체류자로서 생존해야 하는데 따르는 강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이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호전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편법이긴 하지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고 취업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생이나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의 경우를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동안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면서 소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몇몇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원리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첫 걸음이 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들의 상황을 이전보다는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자.
첫째,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던 한국의 노동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으므로 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및 휴일에 관한 조항 등 노동자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노동법상의 ‘모성보호 조항’은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다.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 제한조항, 생리휴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보호조항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면 현재의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 지금보다는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방비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를 줄이고 피해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산재피해를 입었던 이주노동자 5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안전장치 혹은 안전장비의 미비가 산재발생의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질수록, 1일 근로시간이 길수록, 작업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을수록 빨리 산재를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서툰 한국어로 노동을 제공함에 필요한 사전 적응교육이 적절한 정도로 제공되지 못함으로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사업주도 불법체류자를 채용하면서 충분한 한국어교육과 안전교육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에 불법체류라는 약점과 이를 악용하여 산재로 처리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는 사업주들의 협박으로 인해 산재보상보험법 절차 포기에 치료비 자비부담, 산재사고 후 해고(절대적 해고금지기간에도 해고는 쉽사리 이루어진다.) 등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장에서 불법체류자 채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회사가 입게 될 불이익을 염려하여 이들의 취업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겨놓지 않아 막상 산재보상보험법의 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에도 평균임금 하락 등 이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았다.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취업하는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의 소기업이 부도라도 난다면 취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을 찾지 못해 상황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자신이 근로조건에 대해 대등하게 계약을 맺을 수 없었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잦은 사업장 이동, 의료서비스의 미흡으로 조기발견이 어려워 그 실태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합법적인 노동자로서 취업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도의 한국어교육실시, 충분한 안전교육 실시, 정기적 건강검진, 산재보상보험법의 정상적 적용 등이 보장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는 훨씬 경감할 것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됨으로 해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일부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질병 예방과 치료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특히 그 동안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각종 사고로 인한 후유증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경우는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부 해소시킬 수 있고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고용허가제 도입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노동자’로서 도입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보장을 요구함에 있어 법적 제약이 상당히 해소된 상태에서 고용허가제 실시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권리의식의 고양과 함께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적극적인 관심과 견인이 요구된다.
차차선의 제도로 평가받는 고용허가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투쟁, 고용허가제의 운용체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이끌어내는 투쟁, 그리고 고용허가제보다 더 나은 외국인력도입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이 향후 노동운동권에 요구되는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