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노동자 건강의 법과 현실> 이라는 강좌의 내용이다. 산재와 직업병에 대해서 법적인 인정기준을 알고, 보상받는 방법론에 대해서 아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 번 강좌는 그 이면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1강 에서 의학적 의료적 건강담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2강에서는 노동운동과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관계
법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굴뚝청소부와 미친 모자장수
제가 재야연구소에서도 일하고, 정부에서도 일해 보고 이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되었다. 법에 대해서는 법학개론만 들은 사람인데 법조인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웃음). 근래의 동향부터 얘기해보겠다. 세월호 사건 이후 세 개의 법안이 통과되었다. 안전을 다시 보려고는 하는데 좌충우돌 하는 상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안 내놓고 있다, 사실 실정법 속에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표적으로 좋은 법이다. 법의 철학과 원칙을 외국 에서 베낀 거라 내용이 좋다(웃음). 세월호 사건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일련의 큰 사고들이 있어 왔다. 그리고 뻥 터진 거다. 저는 그 시작을 2012년 8월 LG화학 공장 폭발사고로 본다. 주목받지 않은 사고인데, 다이옥산 이라는 인화성 물질, 이것을 OLED 만들 때 추출 회수하는 것인데, 다이옥산 증기가 인화성 물질이라 폭발할 수 있다. 대기업인 LG 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폭발이 일어나고 11명이 돌아가셨다. 후속보도는 그 기업에 지역도서관에 책을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으로 나오더라. 2012년 9월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3년 1월 27 삼성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났다. 여론도 악화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큰 사고가 일어나서 앞의 사고를 잊게 한다, 앞의 기업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사람들은 이걸 노동안전의 문제로 받아들이나? LG 사건은 망각했고, 구미는 환경문제로 받아들였다. 삼성도 환경안전의 문제로 봤다. 삼성과 대중 모두 노동안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경안전의 문제가 없진 않지만 기업, 노동안전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안전논의, 정상인가. 최근 많이 나오는 이름, 하인리히 법칙은 사고의 법칙이다. 사고가 발생하는 매커니즘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이야기이다, MAJOR INJURY 1이 있을 때 MINOR INJURY 29, NO INJURY ACCIDENT가 300 이라고 정리했다. 이건 75,000건의 산재를 분석한 거다. 1931년에 출판했는데, 미국 산재보험이 민영보험인데 책 쓴 사람이 보험사직원이었다. 이 사람은 (학자가 아리라) 돈을 벌려고 쓴거다. 사고를 바라보는 과학적 법칙이 최초로 산업재해로부터 나왔다. 안전은 어느 부처에서 해야 할까. 국민안전처? 거기서 뭘 하겠나, 국민이 들어갔으니 국가보단 나은 것 같지만, 구조를 중심으로 하겠다는 거다. 비전문가들은 안전으로 퉁치지만 예방은 전혀 다른 거다. 잘못된 조직이다.
이렇게 모을 것 같으면 여기에 예방하는 조직들도 가져다 붙여야 한다. 실제 예방 업무는 20개 부처에서 다 한다. 안전을 나눠보자. 해상안전 교통안전 환경안전 식품안전 노동안전 제품안전 시설안전 이것들이 다 독립적으로 있나. 겹쳐 있다. 법은 적용범위가 서로 있는데 상충 안 되게 하려고 하지만 모든 곳에 들어가는 감초 “안전”이 있다. 노동안전이다. 생산의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들, 그 겹치는 지점, 자본주의는 생산을 하기 때문에 모든 위험은 생산에서 나온다. 노동안전은 하인리히가 드러내주기도 했지만 제1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비율도 높고, 모든 불안전 상태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동향은 이 노동안전을 쏙 빼놓고 한다. 일부러 빼는데 한 몫 하는 곳이 정부, 그 중에서도 바로 노동부다. 심지어 판교 환풍구사태도 노동부는 관계당국이 된다. 피해자들이 야근을 했기 때문에. 산재 여부도 논란이 된다. 노동부가 거기 갔다. 감독관이 갔다. 노동부가 관계당국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경제부처인양 행동한다. 문제가 터지면 책임져야 하니까 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노동자안전 관련 정부기구가 독립해야 움직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 그게 핵심적 문제다. 노동안전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안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작부터, 사회법의 시작이다. 노동법 중에서도 실은 노동안전이다. 노동법 역사를 말하면 안전의 원칙이 도출된다. 유럽의 안전법들이 그렇게 입안이 되었고 철저한 원칙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노동법의 역사는 다들 아실텐데, 최초의 노동법은 공장법이다. 1833년 공장법을 말하는데, 이 때 근로감독관을 최초로 임명했다. 앞서서 최초의 노동법은 1799년 단결법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단결금지법이었다. 사실 노동법이 아니다. 1824년에 단결금지법을 금지하는 법안이 나온다. 1802년의 법이 하나 있다. 구빈원이 거리에 있는 부랑아들을 강제 수용해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교도소였다. 어린 아이들은 일을 더 시켰다. 아이들을 대공장에서 가혹하게, 16-17시간 일을 시켰다. 헬스(환기-주로 면공장이라) 모럴(교회 갈 시간이라도 주고 일을 시켜라)는 법이다. 사실 노동안전보건법이다. 아이들이 죽거나 병든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1776년 국부론이 나오는데 국부론이 나오기 1년 전에 최초의 직업성 암이 밝혀진다. 굴뚝청소부. 왜 굴뚝 청소가 갑자기 필요해졌을까. 산업혁명 영향으로 이 때부터 가정에서 석탄을 때야만 했다. 석탄 질이 나빴다. 부산물도 유독하고. 당시 기차가 달리고 철강, 엄청난 고열을 필요로 하는데, 나무가 좋은 연료였지만 다 써버렸다. 석탄도 많고 하니, 코크스 오븐 방법을 개발해서 석탄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 굴뚝의 지름 평균 46센치. 굴뚝 청소부가 드나들었고, 어린 아이 여야만 했다. 이 아이들에게 질병이 생겼는데, 무슨 암이었을까. 고환암. 피부암에 속하고, 숯검댕의 피부노출이 극심하게 되면서 고환 밑이 변색되고 사마귀가 나면서 암이 되고, 전이가 일어나서 매우 고통스럽게 죽는 병이다. 1775년 퍼시벌 포트 라는 외과의사가 밝혀내는데, 당시 굴뚝 청소부에게는 폐암이 더 많았을 건데, 그 때 고환함을 진단했고, 국회의원으로써 국정감사를 했다. 1788년에 가서 굴뚝청소부 법이 만들어진다. 몇 살 이하 어린이는 굴뚝에 올리지 말자고 했다, 8살이다. 고환암은 양반이었다. 청소하는데 불을 때서 불에 타죽거나 질식으로 죽는 게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독일은 같은 시스템에서 안 걸렸다는데, 갑옷을 입혀서 피부노출이 안 되었다고 한다. 이게 최초의 노동안전보건법이다. 1788-1802년 이 때 만들어진 노동법이 다 노동안전보건법이다.
<사진. 좌측 그림, 영국의 굴뚝청소부 (http://fyeah-history.tumblr.com) /
우측 그림, 굴뚝청소부의 작업 모식도 (wikipedia)>
산재보상법을 보자. 그 사이 노동시간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고, 1884년에 보상법이 최초로 나온다, 독일 비스마르크가 어떤 사람인가. 빨갱이 사냥꾼이다. 극렬 우파가 보상법을 왜 만들었을까. 유럽의 공산주의 유령에 노동자들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산재법을 만든 거다, 공산주의에 감염되지 않도록, 산재는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팔 잘리고 목숨을 잃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다. 노동자들은 공제회를 만들었는데, 비스마르크는 이걸 자기 걸로 한 거다. 산재는 체제를 위협했다. 여담을 하자면 <레미제라블>도 산업재해 때문에 일어났다. 왜 빵을 훔쳤나. 누나를 도와야했다, 누나는 엄마 같은 존재였는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의 직업은 가지치기 노동자였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보상을 못 받았다. 배경은 1800년대 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이 성립이 된다
여기 보면 산재 얘기 많이 나온다.1847년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나. 섣달 그믐날 성냥 팔던 소녀가 얼어 죽는 얘기. 안데르센 평전을 보면, 성냥팔이 소녀가 그려진 판화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풍속화에 굴뚝 청소부도, 성냥팔이 소녀도 등장한다. 그림을 보면 턱이 무너져 있다. 성냥 공장에서 쫓겨난 아이들이다. 쫓겨날 때 먹고 살라고 성냥을 준거다. 당시 성냥이 엄청난 유해물질, 인이다. 노란 인을 썼는데, 이걸 먼지처럼 마셨다. 뼈가 제일 약한 곳부터 녹아내린다. 그게 바로 인턱. 대표적 직업병이다. 이 소녀들은 이 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다. 과도한가? 안데르센이 받은 판화에 인턱 인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 일본의 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해석 책에도 이 말이 나온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를 보면 다 상상 속의 인물, 그 중 실존인물이 하나 있다. 실제로 당대 영국에 많았던 사람, 직업병의 당사자, 매드 해터, 미친 모자장수라고 번역이 되는데, 모자 장수는 모자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쫓겨난다. 왜 미쳤을까. 모자를 만들 때 양가죽에서 털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어떤 물질에다가 담그고 양털을 끓여야 한다. 무두질이라고 하고, 태닝이라고 한다. 그 물질은 신경독성이 있는 중금속, 수은이다. 수은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백효과도 있다. 앨리스에 나오는 매드 해터는 실존인물이다. 그 동네에 모자공장이 많았다. 사고는 얘기꺼리도 안 된다.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고전을 읽어라.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는 보고이다. 그런 예가 허다하다.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성냥팔이 소녀들이 죽어가고 1908년 황인이 금지되고, 빨간 인이 대체물질로 개발됐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37조에 금지물질, 맨 위에 있다. 역사가 묻어있다. 1919년 ILO가 탄생한 해인데, 이 때 8시간 노동이 기준이 되는데, 저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이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다. 노동은 인격과 분리할 수 없다. 인격의 기초는 생명이다. 자유권도 건강 생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원칙을 천명한 사건이다.
1974년 영국 안전보건 관련 법들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안전보건법의 원칙이 있다. 첫째,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분명하게 한다, 특히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보건에선 더 그렇다. 둘째, 사전예방의 원칙이다. 보호구를 먼저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하거나 위험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셋째,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98%의 사고가 막을 수 있는 재해라고 한다, 2%만이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라는 것이다. 공식문서에도 inccident라고 쓴다. 넷째, 양립불가의 원칙이다. 안전규제가 여기저기 다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원칙이 법에 담겨있다. 이 법은 1989년 EU가 산업안전의 원칙으로 선언하면서 유럽전역에 퍼지고 여기서 위험성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유럽의 스탠다드를 따르면서 한국 법에도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보겠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에 제정되고, 90년 전면 개정되었는데 그사이엔 법실효성이 없었다. 1953년 안전보건이 근로기준법에 들어가고, 1961년에 대통령령으로 안전보건규칙이 만들어졌다. 90년 개정에는 문송면, 원진 사건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장은 총칙, 2장에 안전보건관리체제가 나오는데 이게 조직이다. 아까 말했듯이 권한 책임이 일치되어야 한다, 2장에 13조 안전보건관리책임자 14조 관리감독자 순서로 책임이 큰 순서로 나오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국민의식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것이다. 의식은 개인의 문제로 보는 거 아니냐. 법은 조직으로 되어 있다. 총칙에도 책임소재라는 말이 명확히 들어가 있다. 책임소재라는 말이 들어가는 데가 두 개의 법, 산업안전보건법과 식품법이 있다. 책임의 소재는 누구에게 있냐, 법률 주어가 85% 이상 사업주다, 왜 사업주인가, 사용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더 넓은 개념인데, 사업주는 법인이 되는 거다. 조직이 움직여야 하는 법이라고 저는 해석한다.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 된다.
사법처리와 행정처분, 행정처분은 과태료이고 사법처리가 많은데 이걸 사업주가 받는 거다. 피의자가 법인이 되는 거다, 그럼 행위한 사업주 사람은 어떻게 되나 양벌규정이 들어간다. 이번에 검찰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기업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법인이다. 대부분 형법이 개인으로 되어있는데 자본주의 시대에는 조직이 일을 저지른다. 책임을 분산시키고, 법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법인은 감옥을 갈수가 없다, 벌금을 낼 수 있는데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에 1억 이하로 되어 있다. 66조2가 최고 형량인데 삼성도 1억, 5인사업장도 1억이다. 그래서 삼성은 사내하도급을 쓰고 거기서 사람이 죽으면 최고형량이 1천만원이 된다. 영국, 미국은 고의성이 농후하고 반복적이면 1000만 달러 이상으로 되어 있다. 삼성이 1998년 괌공항 리모델링 공사 하다가 한국노동자 1명이 사망했을 때 860만 달러 벌금을 받았다(현재 환율 기준 93억 정도). 그렇게 혼이 나고 나서 삼성건설은 좀 달라지긴 했다. 하여튼 법인이 책임자다. 이런 위계를 산업안전보건법은 명확히 하고 있다. 그 아래조항들은 기술법이다. 법령집이 두껍다, 행정규칙이 72개인 법이 있나. 지침까지 합치면 캐비넷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다.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영양가가 없다. 노무사도 포기하고 시험 본다. 변호사는 이 법 이름을 듣지도 못했을 거다. 법조인이 없으니 법이 개발되겠나. 개악이 이루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기술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 1,2장이 제일 중요하다. 책임소재가 다 나와 있다. 시시콜콜한 3,4장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큰일을 그르친다. 감독관을 보자면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따로 300명 정도 되고 일반 근로감독관이 1200명 정도 있다. 300명의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113개 조항을 다 활용하고 있고, 근로감독 15년을 한 감독관도 늘 새롭다고 말한다.(웃음) 내용이 많아서 어렵다. 감독관은 늘 300명이다. 이중 행정직이 50%다. 이분들은 대부분 5년 미만이다. 암담하다. 제가 1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도 사업장에 가면 암담한데 여긴 늘 새로운 업종을 봐야 하고 내가 못 보던 라인을 봐야 하는데, 서류만 보고 하는 실정이다. 조직과 인력 문제가 있다.
감독관이 하는 일은 예방업무와 조사업무인데 예방업무는 감독, 조사업무는 재해조사. 감독은 정기 수시 특별감독이 있다. 행정대상은 계획을 짜서 감독한다. 사법조치, 행정조치 있는데 2012년부터 즉시 과태료 행정을 시작하니 구글에 산업안전보건법 검색도 폭주하더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상당부분 과태료다. 90년 이전에는 사법조치였는데 사법조치가 너무 어렵다, 일도 10배 더 많다, 증거채증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작업이다. 실효성이 없다. 과태료는 죄도 아니고 일도 적다, 과태료가 많아졌다.
감독을 하려면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는데 산재보험 가입하면 시스템에 올라간다, 영국은 사업자등록 내고 동시에 안전보건청에 등록을 한다. 우리는 산재보험 가입을 안 하면 통계추계가 안 된다. 원칙이 없다, 생각이 없다. 법은 잘 되어 있는데 행정을 잘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행정의 문제가 또 뭐냐면 감독대상을 선정할 때 전년도 재해율을 갖고 한다. 얼핏 생각할 때는 재해가 높으면 감독을 받아야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보험을 타먹은 죄로 ‘너 때문에 감독이 왔잖아’ 이렇게 된다. 산재보험이 무과실이고 사회보험인데 이게 두려운 대상이 되어 버린다. 미국은 산재가 민영보험이라 개별사업장이 산재 얼마나 타 먹는지 알수 없다. 통계는 표본사업장을 통해 수집한다. 사고가 있는데 누락하면 패널티를 세게 간다. 개별 사업장을 타겟팅 안 하고 위험업종을 추려서 무작위 감독을 나간다. 산재보험 타 먹었다는 낙인이 없고 보고를 소홀히 하는 문제는 덜 발생한다. 안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하지 않는 문제는 한국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 사고율이 만인율 1.23명 정도 된다. OECD 1~2위다. 재해율은 0.57%. 독일이 3%다. 우리가 재해율이 12%가 되어야 한다. 더 심한 곳이 건설이 다. 왜 더 심화되냐 하면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밀착되고 자료도 공유되면서 감독 문제가 일어난다. 건설산업에 환산재해율이 있고, 국토부 법에는 재해율 갖고 시공감액기준이 있다. 이게 분명이 대규모 업체의 재해, 중대사고를 줄이기는 했으나 언더리포트를 많이 발생시켰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어마어마하게 관심을 갖는다. 사망사고가 나면 곱하기 10으로 환산되는데 대법원 가서 무죄가 되면 없는 일이 된다. 대기업이 변호사 사서 끝까지 가는 이유다. 대기업이 이걸 따라하는데 하도급사 신임도 평가를 이걸로 한다. 하도급사
가 절대로 보고를 안 한다. 이게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거다, 나쁜 관행을 국가가 그만두지 못하니까, 원칙적으로 잘못되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보험이랑 너무 밀착되어 있다, 보상은 자유롭게 돼야 하는데 이게 막히고, 안전을 한다는 명목 아래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재를 산재로 얘기해야, 실제 우리 규모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지금 1년 산재가 10만명 수준으로 나오는데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근로환경조사 해 보면 연간 250만명이 산재라고 나온다, 문제의 규모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다.
산재보험법 이름도 업무상재해보상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재는 훨씬 폭이 넓다, 그 중 인정 받는 게 적을 수도 있고, 산업재해는 격의 없이 리포팅 될 수 있어야 한다. 감독도 그렇게 맞추어 가야 한다. 이렇게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재가 많은 건 알지만 Not In My Desk, 나 나가고 나서 하라는 거다. 언제 해야 할까. 청와대에서 결심해야 한다, 문제를 드러내고 출발하자 해야 한다.
* 참고
[유럽방문기]베를린 런던 헬싱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가다
http://old.laborhealth.or.kr/38115
특집 2013 실태조사에 비친 노동자의 오늘
재활? 다시 일어서기? 산재노동자를 찾아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노동건강연대는 2013년, 산재노동자의 재활현황과 요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산재를 입고 현재 치료 중인 노동자에게는 산재보험운영기관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재활에 대한 정보와 요구가 소통되고 있는지를 물었고, 산재치료가 끝난 노동자에게는 생활실태와 경제적 어려움 등을 물었습니다. 양쪽의 노동자 모두에게 심리적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질문하였습니다.
산재노동자들은 흩어져 있고 드러나있지 않아서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설문부수가 아주 작은 숫자입니다. 통계학적인 의미가 있냐고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산재노동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산재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설문에 응해주셨고 정부의 재활정책이 껍데기만 있는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주셨다고 봅니다. / 편집자
1. 요양 중인 산재노동자의 재활요구도
1) 개인특성
2013년 7월 ~ 9월, 산재노동자의 재활요구도 설문조사에 응답한 산재요양 중인 노동자는 총 61명이다. 설문지의 내용으로는 개인적인 정보, 본인이 경험한 산재보험 서비스, 정신·심리상태평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평가 등이 포함되어있다. 설문 참여자는 남성이 대부분이었고, 산재를 입은지 3년 정도 되었으며, 나이는 50대, 기혼자가 많았다.
2) 경제적 상황과 걱정되는 문제에 대한 질문
산재를 입은지 3년 정도 되며 산재 전·후 월평균 소득은 각각 235.8만원과 184.9만원으로 산재 이후 월평균 소득이 감소하였다. 산재 전·후 가계부채는 각각 2,388만원과 2,604만원으로 산재 이후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를 입은 후 가장 걱정되는 문제로 28명(45.9%)이 ‘가족의 생계와 경제적 문제’를 꼽았고, ‘가족관계, 사회적 인간관계가 해체될까 두렵다’는 응답자가 16명(26.2%)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산재를 입고 현재까지 치료받은 기간은 평균 19.3개월이었다.
산재를 입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 현재로 소속되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그만두었다’고 응답자가 33명(57.9%)으로 가장 많았다. 현재 ‘소속되어 있다’는 응답자는 13명(22.8%)이었으며, ‘해고당했다’는 응답자도 4명(7.0%)있었다.
3) 본인부담 의료비에 대한 질문
산재치료 중 개인이 따로 지불하는 의료비가 있는지 묻는 설문에 ‘산재 요양비 이외의 본인부담이 있어서 내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38명(76.0%)으로 가장 많았다. 본인부담 의료비가 있는 산재노동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지 묻는 설문에 ‘많다’고 답한 산재노동자는 18명(43.9%)이었고, ‘적다’고 답변한 수는 8명(19.5%) 이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중에도 의료비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재활에 대한 질문
치료과정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설문에 35명(63.6%)가 ‘있다’고 응답하였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으로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하는 재활서비스에 대해 안내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설문에 31명(56.4%)이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다’고 응답하였고, ‘듣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14명(25.4%)이 있었다.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고 답변한 산재노동자는 10명(18.2%)에 불과하였다.
현재 가장 필요하다 생각하는 재활서비스에 대한 설문에 ‘통증관리와 심리 상담 등 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위한 의료재활’을 꼽은 응답자가 23명(41.1%)으로 가장 많았으며, ‘화장실 사용, 이동 등 사회적응을 위한 사회재활’을 꼽은 응답자가 12명(21.4%)으로 다음으로 많았다.
재활치료를 선택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묻는 설문에 ‘내게 맞는 재활프로그램이 없다’는 응답자가 17명(32.1%)으로 가장 많았으며, ‘재활시설이 너무 멀어 가기가 어렵다’는 응답자가 14명(26.4%)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3) 간이정신심리진단검사(SCL-90-R)
간이정신심리진단검사 결과 산재요양중인 산재노동자에서 정신심리검사의 전체 영역별 평균은 일반인 평균보다 모든 영역에서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요양중인 산재노동자들의 간이정신심리검사 위험군은 16명(27.6%)으로 나타나 일반인(2.5%)과 비교하여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위험군을 찾는 참고할 만한 기준으로 세부영역 중 2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비정상에 해당하는 군을 찾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에도 총 응답자 중 16명(27.6%)가 여기에 해당되어 높은 비정상군 비율을 보이고 있다.
세부영역별로 ‘공포불안’ 영역에서 위험군의 빈도는 27명(46.6%)으로 가장 높으며, ‘신체화’ 영역에서 위험군의 빈도가 17명(29.3%)으로 그 다음으로 높다. 전체 영역에서 위험군은 15% 이상으로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2. 요양 종결된 산재노동자 생활실태 조사결과
2013년 7월 ~ 9월, 산재요양 종결자 대상 생활조사 설문에 응답한 산재노동자는 총 24명이다. 설문조사는 개인적인 정보, 본인이 경험한 산재보험 서비스, 원직 복귀와 취업, 정신·심리상태평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평가, 직무스트레스 평가와 같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설문참여자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 3~40대, 기혼자가 대부분이었다. 산재를 입은 시기는 평균 7년 전, 산재 요양이 종결되고 경과한 시간은 평균 6.1년 전이었다.
2) 경제상황에 대한 질문
산재 전·후 월평균 소득은 각각 179.6만원과 209.7만원으로 산재 이후 월평균 소득이 증가하였다. 가족 총소득은 평균 290만원이었다. 산재 전·후 가계부채는 각각 1,271.7만원과 3,246.2만원으로 산재 이후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받고 있는 산재보험급여가 가족들이 생활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에서 충분하다는 답변은 없었다. 대부분 본인이 받고 있는 산재보험급여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재활에 대한 질문
산재보험에서 현재 제공하는 재활서비스 각 항목에 대한 이용도와 만족도 현황을 물었다. 의료재활서비스에서 ‘후유증상 진료’와 ‘재활보조기구 추가지급’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극소수였으며, 이용자들은 모두 서비스에 대해 ‘불만족’(‘매우 불만족’ 포함)스러웠다고 답하였다. ‘직업재활’ 서비스 전체와 사회재활 중 ‘사회적응프로그램’ 서비스를 이용했던 산재노동자는 없었다. 사회재활 중에 ‘심리재활’, ‘재활스포츠 지원’, ‘취미활동반 지원’, ‘생활안정지원사업’, ‘사회보호시설운영’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산재노동자는 각각 1명, 2명, 2명, 2명, 1명이었으며, 이용자들 모두 서비스 내용에 대해 ‘불만족’스러웠다고 답하였다. 응답자 수가 적지만, 재활서비스 이용도가 낮았으며, 서비스 내용에 대한 만족도도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산재보험에서 제공하는 재활서비스에 대한 불만족 이유 중 ‘산재보험에 적용되는 치료범위가 좁아서’를 이유로 꼽은 사람이 13명(54.2%)으로 가장 많았으며, ‘개별적 관심과 상담이 부족하여’를 이유로 선택한 사람이 7명(29.2%)으로 다음으로 많았다.
산재보험에서 제공하는 재활서비스를 받지 않은 이유로 ‘서비스 내용을 잘 알지 못해서’라 응답한 사람이 11명(45.8%)으로 가장 많았으며, ‘직업재활서비스의 대상이 아니라서’라 답한 사람이 4명(16.7%)으로 다음으로 많았다. 산재 장애인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중요하다 생각하는 순서대로 3가지를 선택하라는 문항에서 ‘보상제도의 개선’이 우선순위 점수가 53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 ‘재활서비스의 확대’, ‘질병치료의 전문성확대’ 순으로 점수가 높았다.
4) 정신심리상태에 대한 질문
산재 전과 비교하여 생활양태(패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표 54>와 같은 항목에 대해 물었다. ‘나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었다’는 항목에 대해 ‘그렇다’(매우 그렇다 + 약간 그렇다)는 응답자가 12명(50.0%)으로 ‘그렇지 않다’(매우 그렇지 않다 + 약간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 6명(25.0%) 보다 많았다. ‘가족 내에서 나의 역할이 약화되었다’는 항목은 ‘그렇다’는 답변과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비슷하였으며, ‘사회활동(친구, 종교활동, 여가활동 등)에의 참여가 줄어들었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응답자가 12명(50.0%)으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 5명(20.9%) 보다 많았다.
산재 전과 비교하여 삶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에서 모든 항목에서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만족’한다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
*바소콘티누오
5) 원직복귀와 구직에 대한 질문
산재를 입을 당시 종사하였던 직업은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조종사’가 11명(47.8%)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능원 및 관련기능종사자’가 5명(21.7%)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산재를 입을 당시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12명(70.6%)으로 가장 많았으며, 나머지는 ‘일용직’이라 응답하였다.
일터에서 산재 때문에 차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설문에 4명(19.0%)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현재 종사하는 직업이 있는 사람이 18명(75.0%)으로 직업이 없는 사람보다 많았다.
현재 종사하는 직업은 ‘관리자’가 5명(27.8%)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기능원 및 관련기능종사자’ 순이다. 현재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12명(66.7%)으로 나머지보다 많았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은 ‘원직복귀해서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8명(50.0%)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원직복귀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3명(18.8%)으로서, 결국 ‘원직장으로 복귀’한 사람은 총 11명(68.8%)이었다.
원직복귀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원직복귀가 어떠한 절차로 결정되었는지 물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회사에 원직복귀하였다’는 응답자가 6명(60.0%)으로 가장 많았으며, 나머지(기타 응답 제외)는 ‘요양기간이 짧아 원직복귀할 수 있었다’는 등의 응답을 하였다.
원직복귀하지 않은 산재노동자를 대상으로 원직복귀하지 않고 다른 직장으로 취업한 가장 큰 이유를 물었다. ‘본인의 장애부위가 원래의 직장 혹은 직무에 적합하지 않아서’와 ‘원래 직장에서의 산재경험에 대한 기억이 두려워서’라는 답변이 있었다.
현재 종사하는 직업이 없는 산재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 1개월 동안 구직활동을 한 경험을 물었을 때 ‘있다’고 답한 산재노동자는 1명(25.0%)으로 ‘없다’고 답한 산재노동자보다 많았다. 산재를 입은 후 현재까지 일자리가 없었던 기간은 ‘4년’, ‘10년’이라는 응답자가 각각 1명씩 있었다.
산재를 입은 후 재취업하지 못하는 이유로 ‘장애정도가 심하여 일하기 어려워서’와 ‘임금수준이 너무 낮아서’라는 응답자가 2명씩(33.3%) 있었으며, ‘일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서’, ‘나에게 적합한 직종이나 직무를 찾지 못해서’, ‘창업을 위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서’라는 응답자가 1명씩(16.7%) 있었다. 기타 답변으로 ‘산재와 관련이 없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현재 종사하는 직업이 없는 산재노동자들은 모두 생계유지를 ‘산재로 인해 받게 되는 급여에 의존한다’고 답하였다.
6) 간이정신심리진단검사(SCL-90-R)
산재요양 종결된 산재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평가하기 위해 간이정신심리 증상체크리스트(SCL-90-R, Symptom Checklist 90 Revision)를 이용한 9개 증상차원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였다. 이 평가는 신체화(Somatization), 강박증(Obsessive-Compulsive), 대인예민성 (Interpersonal Sensitivity), 우울(Depression), 불안 (Anxiety), 적대감 (Hostility), 공포불안 (Phobic Anxiety), 편집증 (Paranoid Ideation), 정신증 (Psychoticism)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이정신심리진단검사 결과 산재요양 종결된 산재노동자에서 정신심리검사의 전체 영역별 평균은 일반인 평균보다 모든 영역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GSI 점수는 설문당시, 보통 1주일 이내의 정신·심리적 장애의 수준을 나타내며, T-점수는 표준점수의 한 종류로서 개인 간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평균 50, 표준편차 10으로 변환한 점수이다. 대략 95%의 전체 인구가 30~70점 사이에 포함되며 70점 이상이 위험군에 해당되는데 일반인의 위험군 비율은 2.5%이다. 산재요양 종결된 산재노동자들의 간이정신심리검사 위험군은 4명(17.4%)으로 나타나 일반인과 비교하여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위험군을 찾는 참고할 만한 기준으로 세부영역 중 2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비정상에 해당하는 군을 찾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총 응답자 중 4명(17.4%)이 여기에 해당되어 높은 비정상군 비율을 보이고 있다.
세부영역별로 T-점수 70점 이상의 위험군의 빈도를 살펴보면, ‘신체화’ 영역에서 위험군의 빈도는 5명(21.7%)으로 가장 높으며, ‘우울’ 영역에서 위험군의 빈도가 4명(17.4%)으로 그 다음으로 높다.
3. 산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정책 모색
1) 독일·미국의 재활관련 제도
독일 장애인재활법은 상해를 입어 장애를 안고 살고 있거나, 혹은 그러한 위험에 놓인 이들을 위한 법이다. 2004년 유럽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여 제정된 ‘우리의 일에는 우리가 참여한다!’ 는 표어는 재활법에 대한 독일의 의지를 잘 표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의지는 사회법전 제9권의 내용에서 ‘재활’보다 ‘참여’ 개념이 우위에 놓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법전 제9권(장애인재활법) 제1조(자기결정 및 사회생활 참여)에는 ‘장애인 또는 장애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은 그들의 자기결정과 동등한 사회생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법에 의한 보험급여 및 재활사업자로부터의 정당한 보험급여를 받는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8조(참여급여 우선권)에는 참여급여는 연금급여에 우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목표는 장애인이 온전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더 이상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참여급여우선권은 사회법전 제6권(SGB VI, 연금보험법) 제9조 제1항 제2문단에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 사회법전 제9권(장애인재활법)은 재활사업자에게 피상해자에 대한 의료재활, 그리고 직업적·사회적 참여를 최우선으로 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산재장애인 직업재활에 따른 비용으로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10,000달러 정도의 금액이 최대 52주 동안 제공되며, 필요에 따라 의료비용이 추가로 5,000달러까지 제공된다. 요양기간을 줄이고 노동으로 유인하기 위해 산재장애인들이 직업재활에 참여하지 않으면 임금대체급여(wage replacement benefits)는 감액된다. 워싱톤 주는 사업주가 산재장애인을 고용할 경우에 훈련비용과 산재보험료의 할인혜택을 부여한다. 이 외에도 소득력 상실(loss of earning power: LEP) 급여, 위험관리 서비스, 인간공학적 자문, 직업도우미(vocational assistance), 직무수정급여, 선호근로자 프로그램(Preferred Worker Program: PWP) 등이 있다. 또한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의 고용주는 산재장애인과 상의하여 직장복귀가능성을 서면으로 진술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서비스공급자나 정부관리 주도형이 아니라 산재장애인 중심의 원스톱 서비스전달 체계를 확립하는 동시에 고용주와 산재장애인에게 실질적 고용유인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각종 서비스와 제도들을 대폭 확충해 나가고 있는 것들이 시사점이다.
2)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재활 : 보험지출의 0.047%
우리나라 산재보험 2009년도 총 지출액은 4조 2,096억원에 이르지만 이중 직업재활급여는 19.76억 원으로 전체의 0.047%에 지나지 않으며, 직업재활급여 수급자 수도 802명이었다.
해마다 약 3만 명 이상이 산재장애인이 되고, 지난 40여 년 동안 산재로 장애를 입은 노동자가 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인구통계자료 등이 매우 불충분한 상황이어서 전략 수립이나 프로그램 개발이 매우 미흡하다.
산재로 인하여 장애를 갖게 된 산재장애인은 장애 이전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경험하다 갑작스럽게 장애를 입은 후 달라진 신체적, 사회적 변화에 다시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은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중도장애인들은 심리적으로 장애를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 가정 내에서의 어려움, 사회적응의 어려움 등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이들은 비교적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후 사회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 많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지식과 기술,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이 있어서 선천적인 장애인보다는 재활을 비롯한 사회적응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장애의 수용’과 ‘장애의 적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재장애인의 재활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장애의 수용이다. 중도장애인은 장애 초기 충격, 부정, 분노, 우울, 적응 또는 수용 이라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며 이들의 기간과 정도는 적응에 영향을 준다. 특히 우리사회는 신체적 측면에서의 완전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외관상 변이에 대해 차별하고, 조소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도장애인의 가치체계에도 유입되어 스스로 낮은 자아개념을 형성하고, 자신의 장애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등 부정적인 관념을 만들어서 사회 관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장애에 대한 심리적인 수용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장애로 인해 상실한 기능을 보완하기 위하여 재활치료를 통해서, 최대한의 일상생활동작과 직업적·사회적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주어야 한다.
산재장애인의 가족에게서 흔히 역할간의 긴장을 볼 수 있다. 부부 중 배우자 한 명이 장애를 겪게 되면 사회적 역할만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의 역할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를 입은 구성원을 위하여 나머지 가족들이 장애를 일상적인 사실로 수용해야 한다. 가족 내 역할 분담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역할 과부담이나 역할 긴장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산재장애인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이 과정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노동자가 신청할 때 까지 기다리는 보험은 그만 : 조기개입과 통합성이 핵심
공적 산재보험에서 ‘재활’은 응급치료, 급성기 치료, 의료재활, 직업복귀 및 사회복귀 모두를 아우르는 상위개념이다. 독일을 보면 산재보험 재활은 산재보험법에 규정된 사항 이외에도 사회법전 제9권(장애인재활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료재활급여, 직업재활급여, 사회재활급여, 생활안정․기타 부가적급여, 개호급여 및 현금급여를 모두 포함한다. 또한 개인예산급여 사용의 청구도 할 수 있다(사회법전 제7권 제26조). 이와 같은 산재보험의 업무 영역은 독일의 다른 사회보험들 간의 업무분담적(분업적) 관할 업무범위와 비교해 보아도 매우 폭넓은 것이다.
적극적으로 재활정책을 펴는 방법은 노동자가 재활급여를 신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의사(병원) 및 사업장이 산업재해나 직업병을 확인하였을 때 신고의무를 지키게 하는 것과, 노동자가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맞춤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경제활동력을 잃지 않도록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업수행능력을 손상한 후 6주가 경과해 버리면, 재활을 통한 복귀확률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응급치료와 급성기치료 등의 요양, 재활, 직업복귀·사회복귀 참여를 모두 통합된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요양과 재활을 구분하면 재활의 개입 시점이 늦어지며, 적절한 재활서비스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 요양과 재활이 원활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산재의료기관이 특화되거나 요양기관을 관리할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산재전문병원은 중증환자의 급성기 요양과 만성기 사회재활, 직업재활서비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공단직영병원은 산재환자에게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활동보고1 유럽방문기
베를린 런던 헬싱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가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 2013년 6월, 노동건강연대 주영수 대표와 회원 등 5명의 직업환경의와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는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베를린, 런던, 헬싱키 이 세도시를 경유하며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베를린의 산재병원, 런던의 무상의료와 그 안에서의 직업재활 프로그램, 도시하나가 커다란 공공기관과 같은 헬싱키의 산재예방정책, 그리고 이 세 나라를 관통하는 공공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새벽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새벽 올림픽대로에서 공사를 하던 중 사망을 했고 유가족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누구든 일하다가 사고로 혹은 질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의 가족은 그런 일을 처음 겪는다.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을 했다면 그 불안한 심정 중에 최소한 치료나 보상의 문제는 안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산재사망을 접해왔던 내게 왜 이제야 이런 의문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잠을 못 이룬 채 유럽에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1. 건설로 분주한 베를린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택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찾아간 식당 옆 건물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진 1. 도착한 첫날 찍은 베를린의 비계사진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비계, 고무판까지 달려있다. 떨어질 수도 없구나!>
비계를 저렇게 튼튼하게도 지을 수 있나 싶다. 서울의 너덜너덜한 비계들이 떠올랐다.
일행이 한마디 덧붙인다. 한국의 추락사는 보통 비계를 설치할 때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비계를 빨리 만들어야 공사를 시작하니 그 때 재촉을 많이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락사 1등이다. 그날 밤 한국 포털사이트에 뜬 추락사 기사를 보았다. 출장 내내 한국의 산재사망사고 소식을 계속 보았다.
<사진 2 베를린 산재병원 가는 길의 한 공사장. 한 사람이 서는 높이가 주황색 발판이다.
맨 위 칸 가운데에 검정색이 사람이다. 그 중간에 2개의 봉을 덧댐으로써 추락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독일 산재보험의 중심, 베를린 산재병원
동베를린 시내외과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병원, 입구부터 압도되고 말았다. 산책로가 보이고 많은 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3. 베를린 산재병원의 첫 인상. 위로는 헬기가 보인다.
뒷쪽으로 들어가면 아주 넓은 정원과 각종재활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
∎ 독일의 ‘산재전문의사’제도
- 산재환자는 모두 맨 처음에 한해서는, 어떠한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후 산재전문의사(DA)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 독일 전체에는 609명의 DA가 있으며, 병원마다 1명씩 정해져 있다.
- 베를린 지역의 경우 9,500여명의 의사가 있고, 이 가운데 DA가 150여명 있다.
∎ 동베를린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UKB (Unfallkrankenhaus Berlin)
- 1997년에 설립된 베를린의 산재병원은 연인원 22,300명 입원환자와, 65,00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20개의 진료과를 가진 병원이다.
- UKB의 경우는 ‘기본과’ 외에 ‘일반내과, 심장내과(심장질환진료),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두경부외과, 신경과(stroke진료)’ 등이 있음.
- 일반병상(한곳의 regular ward를 방문)의 경우, 1인실 4개, 2인실 12개, 4인실 2개가 있었고, 병실마다 독립적인 목욕,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 1년간 병원의 총 수입은 1억7천만 유로(=2,550억원). 일반보험에서 1억1천만 유로(=1,650억원), 노동자보험에서 6천만 유로(=900억원)를 받고 있음.
<사진4. 병원은 숲으로 둘러쌓여있고, 노동자들은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 5. 재활치료공간 - 산업재해 노동자의 재활이 특화되다보니, 그 명성으로 맨체스터 소속 등 유명 스포츠선수들도 재활치료를 받으러 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
<사진 6. 산재병원 실내체육관 - 다양한 장애를 입게 된 노동자들이 어울어져 스포츠재활을 할 수 있게 한 쪽에는 스포츠용 휠체어 등이 준비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전체 병원들 중에서 55%가 ‘적자’인데 반하여, 보통의 산재병원들은 흑자를 보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남게 되는 수입액은 직원드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거나, 시설과장비를 구입, 건물을 신증축함으로써 재투자하고 있다. 이 병원 역시 '비영리병원'으로써 수익을 어떻게 내냐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자보험에서 치료비를 지불하고, 일반 건강보험에서도 치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데 역량을 집중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진 7. 베를린 산재병원의 헬기장. 노동자가 다치면 헬기가 뜬다. 하루 평균 4회 운행한다.
모든 산재병원의 기본 모형이 헬기 1대와 이착륙시설이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곧장 응급실로 간다. >
산재 사고시 노동자를 이송하는 전용 헬기가 있다. 추락이나 급성심근경색 같은 급한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헬기가 뜬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헬기가 이륙한다. 최고급시설이 갖춰진 중환자실과 재활치료 공간, 일반 대학병원보다 훨씬 수준 높은 병원을 보았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생각났다. 산재를 감추려고 하청업체의 트럭에 실려 공장을 나간 노동자는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2. 무상의료의 나라 영국, 새로운 고민조차 매혹스러워
런던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했다. 일행 중 한명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교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너무도 손쉽게 입국이 되었다. 다른 심사도 없었다. ‘무상의료시스템 NHS(National Health Service)과 블랙교수’ 를 언급했을 뿐이었다. 공항 입국심사 노동자의 호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나중에 알았지만 블랙교수는 현재 영국의 NHS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떠나기 전 한 모임에서 영국 굴뚝 노동자의 고환암 이야기를 들었다. 지름 46cm정도의 영국의 좁은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은 어린이. 어린 굴뚝청소부들은 굴뚝에 잔뜩 묻은 검댕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는데, 물이 귀했던 당시 옷을 빨기 어려워 작업할 때는 맨몸이었다. 물로 대충 검댕을 씻어냈던 아이들의 고환주름에는 검댕이 늘 묻어있어 이들이 나중에 고환암에 걸리게 되었다. 최초로 밝혀진 직업병이었다. 굴뚝청소부들은 굴뚝 밑으로 떨어지거나 주인이 피운 연기에 질식해서 죽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르는 내내 오래된 건물로 눈이 갔고, 굴뚝들을 보며 비참한 직업병의 역사를 떠올렸다.
<사진8. 좌측 그림, 영국의 굴뚝청소부 (http://fyeah-history.tumblr.com) /
<사진9. 런던의 오래된 건축물, 어김없이 아주 작은 굴뚝이 있다>
과로는 금물입니다
일정에 제약회사 방문이 포함돼 있다. 기업복지 시스템과 국가 무상의료시스템이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자리. 다양한 건강프로그램 설명을 듣다가 멈칫했다.
나의 질문은 이랬다. “이 회사에서도 상사와 하급자의 관계에 따라 일의 양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실제 어떤가요?”
“하급자가 일을 열심히 하면 상급자가 그를 불러다가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일을 하면 당연히 건강에 영향을 주니까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하고, 확인할 수 없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잠시 멍해진다.
런던 거리 풍경
<사진 10. 네 개 사진의 공통점, 형광조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형광조끼를 입고 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 본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입고 있던 형광조끼를 보면서 한 회사에 다니는가보다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차관리인도, 무언가 점검하는 노동자도, 자전거로 이동 중인 노동자도 여기저기 형광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 네장의 사진은 한 자리에 서서 뱅뱅 돌면서 찍은 사진이다- >
Welcome to the Education Centre!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그 안에서 직업재해와 재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아보는 자리에 7, 8명 되는 담당자가 동석을 하였다. 무상의료 시스템 내에서 노동자는 일을 하다가 다치면 산재신청 따위 없이 당연히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사진 11 . 가이앤 세인트토마스 병원 교육센터와 그곳에서 만난 영국의 유명인사 블랙( Dame Carol Black, Principal of Newnham College Cambridge 교수. 무상의료 시스템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영국의 모든 일정은 이분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보자. 영국 국민 혹은 영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자는 일반의사(GP, Geneal Practitioner)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차로 진료를 한 후 필요하면 2차로 필요한 의료기관으로 가게 된다.
<사진12 .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
내 병을 알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 헤매고, 병원비로 가족 생계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 무상의료 시스템 역사를 보면, 도입 당시 노동당 총리는 의사들의 반발에 대하여 ‘의사들의 입을 금으로 채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대타협을 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는 재정부담으로 새로운 정권이 서비스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면서 60년 동안 제도의 부정적인 면을 계속 수정해 왔다. 집도 사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의료라도 나라가 해주니 좋다는 영국 국민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이제 직업 관련된 부분을 보자. 이번 방문을 통해 현재 무상의료시스템이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핵심은 ‘직업재활’ 이다. 일반 직업보건 시스템은 크게 4가지로 나눠지는데, 병원, 일반의, 공중보건시스템,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 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가이 앤 세인트 토마스 병원(GSTT, Guy's&St.Thomas' Hospital)’에서 4번째의 시스템인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직업보건서비스(Core Occupational Health Services)의 내용을 보면,
① 피고용자 건강보호 (Employee Health Protection)
② 고용 중 건강 유지 (Health Maintenance in Employment)
③ 노동 생활의 개선 (Improving Working Lives)
④ 위탁사업체에 대한 조언 (Advice to the Trust)
⑤ 수련과 교육 (Training and Education)
⑥ 연구와 개발 (Research and Development)
같은 프로그램들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구매(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고, 영세 기업들의 경우는 이 중에서 일부만 구매하여 직업보건관리를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나 재정이 충분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예방적 직업보건서비스 인력 및 조직’을 구성하여 관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국가나 정부의 각종 법적인 요구사항이나 권고사항 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다양한 내용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볼 지점이 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이다. 산재를 막기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은 제정 당시에도 영국 내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중요한 건 산재사망이 급감했다고 사실이라고 한다. 그 법을 공표하는 자체로 예방의 효과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고예방 시스템을 강화했다. 처벌건수가 몇 건인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NHS의 새로운 실험, ‘Fit-For-Work’
<사진13. NHS의 새로운 실험, ‘Fit-For-Work’>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고, 다양한 담당자들이 오고가며 긴 프레젠테이션을 해 주었다. 많은 이들을 위한 꼭 필요한 시스템이 NHS 내로 편입되고 그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자들의 긍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 그런데 Fit For Work란?
영국 사람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그냥 병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예산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산재보험 자체가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질병 등은 직업과 관련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된 최근 통계로는 ‘노동시장에서 질병으로 인한 결근에 대한 통계(Sickness Absence in the UK Labour Market 2012)’가 있는데, 위와 같은 통계 등을 통해 직업과 NHS를 연결시켜 현재 영국은 NHS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직업적 치료와 재활을 통해 국민들이 일터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모형이 ‘Fit-For-Work’다. 핵심은 ‘조기개입(early intervention)’을 통하여 건강하고 활발한 ‘직업으로의 복귀(Return to Work)’를 꾀하는 것인데, 이를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 2010년부터 11개 지역에 ‘Fit-For-Work’ Team을 구성하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우리가 방문한 팀 역시 11개 팀 중 하나로 Leicester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14. 긴 시간동안 Fit-For-Work 모형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개해준 팀의 활동가들>
환자가 아파서 일반의(GP)를 찾아 갔을 때, 소견상 일에 대한 적합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GP는 해당 환자를 Fit-For-Work팀으로 보낼 수있다. 15명이 한 팀으로 특히 Leicester 지역의 경우 중소영세 사업장(SMEs(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연계된 환자는 ‘Fit-For-Work’ Service (FFWS)를 받게 된다. 이 서비스를 수행하는 팀은 특별히 코어팀(Core team)이라 불리우는데,
① 4명의 사례관리자(4 Case Managers, 대상자를 매주 만나고, 동기를 부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시 사업주를 면담하는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지원함)
② 1명의 직업보건간호사(1명의 Full-Time-Equivalent OH Nurse)
③ 1명의 일반의(General Practioner, 1주일에 2일 근무함)로 구성되며,
코어팀의 주요 역할로는,
① 피의뢰자(clients)에 대한 요구도 평가(Health Needs Assessment, HNA)
② 일반의(GP)와의 의사소통(communication)
③ 각종 자원들(Education Retraining, Musculoskeletal, Multi access centres-home and personal interventions, Workplace interventions, Psychological therapies)과의 네트워킹 등이 있다.
특히, 사례관리자(case manager)가 연계해주는 주요개입(main intervention) 내용으로는, 근골격계 증상치료(Musculoskeletal treatment), 정신건강치료(Mental health therapy), 중개/협상(Mediation/negotiation), 학습(Learning/new skills), 부채문제/법적문제/주거문제/개인문제(Debt/legal/housing/personal), 지지/신뢰형성(Support/confidence building), 이직/구직지원(Help to leave job/new work), 통증관리(Better treatment/understanding of my pain) 등이 있다.
발표를 맡았던 한 사례관리자는 담당 환자에게 밀착하여 상담을 하고 생활을 파악하는 활동이 감정노동이 많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의 모든 어려움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한국으로 치면 사회복지사 역할인데, 특별히 자격증 등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고,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무상의료 제도 아래서 받게 되는 영국 노동자들이 부럽다.
이 프로그램을 위하여 NHS에서는 전산 ‘Fit Note'를 개발하고, 일반의들(GPs)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과, 11개 지역에서 조정자(Co-ordinators) 시범사업을 시행하였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국가센터(National centre)를 구축하였다.
<사진 15. 영국의 현재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비하여 본 새로운 모형>
* 출처 : Black. Working for a healthier tomorrow. 2008. p78
‘Fit Note’는 일반의들(GPs)이나 다른 의사들이 ‘해당 환자의 일에 대한 적합성(fitness for work)’에 관하여 정보나 조언을 제공하는 도구이다.1) 참고로, 이 도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역할 또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다음의 조언에 따를 경우에 환자들이 일에 적합할 수 있다”거나,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② 환자의 작업 복귀를 도와주기 위한 ‘통상적인 접근방식을 표시하는 체크박스’를 이용하여, 환자의 기능적 상태들에 관하여 코멘트를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③ 의사에 의해서만 작성될 수 있으며, 내용에 대하여 전화를 이용한 자문도 가능하다.
④ 환자들은 이 ‘Fit Note’를 자신의 ‘일에 대한 적합성’, ‘상병수당’ 그리고 ‘기타 수당’ 등의 근거로서 사용할 수 있다.
⑤ 이 ‘Fit Note’는 질병에 이환된 첫 6개월 중에서, 일단 3개월의 기간만을 책임져 준다.
NHS의 새로운 시범사업을 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영국 무상의료 60년의 역사를 떠올린다. 자본주의국가 영국의 사회주의적 복지시스템. NHS를 지켜낸 영국 국민들이 존경스럽다.
#3. 우연히 밤을 샜다, 해가 안 졌다. 핀란드
비가 왔다. 찬 공기를 맞으며 도착한 헬싱키. 생각보다 도시는 알록달록하지 않다. 2012년 년 <세계 디자인 수도> 라던데…. 트램을 타고 저녁을 먹으러가는 길, 백야라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제서야 눈에 유모차가 자꾸 들어온다.
<사진16 헬싱키 트램, 유모차가 많다>
접이식 의자는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면 바로 벽에 붙는다. 유모차가 오면 누구든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애 키우면서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걸 보니 자꾸만 보게 된다. 헬싱키에 있는 내내 나는 그렇게 탑승하는 유모차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침략의 고통을 겪은 나라. 해방을 선언하고 어디보다 혼란스러웠던 작은 핀란드는 노사정의 끈질긴 대화와 사민당의 집권으로 급속히 복지국가의 선두에 선다.
핀란드 노동자들 좋겠다 무상의료에 예방시스템까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핀란드의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을 찾아 나섰다. 핀란드 역시 무상의료의 나라이다. 건강문제(산업재해나 직업병 포함)가 생겼을 경우, ‘치료서비스’는 1차적으로 일반의사(GP)가 제공하며, 필요시 상급기관(병원)으로 의뢰하거나 병원을 옮겨 집중적인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직업과 관련된 치료와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큰 틀에서 보자면, 핀란드는 직업성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치료는 누구에게나 무상의료이다. 다만 직업에 대한 건강서비스 등에 대해서는 형평성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있는 회사일수록 자체적으로 직업보건서비스를 노동자에게 시행하고 있으나, 영세규모 사업체나 자영업자처럼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건소를 찾아간다. 회사에서 투자를 하며 직업보건서비스를 키워가는 곳과 보건소의 서비스 수준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이 문제는 핀란드에서도 고민으로 남겨져 있다.
자세히 보도록 하자.
① 지방자치단체(municipalities) 수준으로, 지역보건소(Municipal health centre)가 중심에 있으며 해당 보건소가 자영업자, 농부, 영세한 사업장들에게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61%, 피고용자의 32%,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9%가 이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최소한의 필수적인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는 기초직업보건서비스(BOHS, Basic Occupational Health Service) 전략에 근거하고 있다.
② 사업장내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로서, 보통 큰 기업들이 스스로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여 자신의 직업보건관리를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1%, 피고용자의 1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③ 기업들이 바깥의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SH units)와 협약(Joint)을 맺어 사업장 보건관리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전체 사업장의 3%, 피고용자의 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④ 기업체가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와 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모형이다. 이 경우에는 기업체가 서비스 내용을 선택·구매할 수 있으며, 기업체의 재정적 능력에 따라서 서비스 수준이 결정될 수 있다. 이 모형으로 인하여 핀란드의 직업보건서비스 제공수준과 내용의 불균등성이 커지고 있다. 전체 사업장의 36%, 피고용자의 48%,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39%가 이런 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 모형 쪽으로 전환된 사업장, 피고용자, 직업보건서비스 단위들이 많아졌고(특히, 큰 기업들이 자체관리 모형에서 많이 전환하였음), 그 경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공적인 지원체계의 강화를 통한 직업보건서비스 형평성 제고가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헬싱키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 방문 중에 우리 일행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한국 사람이다. WHO에서 일하는 김록호 선생이다. 한국의 직업병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가인 김록호 선생을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의사들은 흥분했다.
핀란드 복지를 견학하러 왔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그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덕적 해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핀란드 공무원들
<사진17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원. 예상보다 더 멋진 보험제도>
출퇴근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하루에 정한 시간을 일한다는 핀란드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으로 갔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청사 건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디자인과 역사가 깃든 기념물이 공존했다. 사회보험청이 갖는 자부심이 전해졌다. 바로 시작된 프레젠테이션. 직업재활의 세계는 한국에서 보던 것 그 이상이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 국민들이 그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할까?
<사진 18. 사회보험청(KELA) 내부 멋진 건물이다>
핀란드의 직업재활과 관련된 시스템은 다양한 주체가 운영한다. 사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자가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산재보험회사(Insurance company : 우리나라의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사업주에게 보험료를 징수하여 운영하는 비영리기관, 모두 7개가 있다)’가, 건강상 문제가 있는 실업인구(unemployment with illness)의 경우에는 ‘노동부(Ministry of Labour)’가, 그 외에 나머지 상황에 있는 사람들(앞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구집단-노인인구- 등)의 경우에는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이 재원을 지원한다. ‘교육훈련 조직(Education and training organizations)’과 ‘재활서비스 제공자들(Rehabilitation service providers)’이 ‘재활요구(client & health care)’를 관리한다.
특히 직업재활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개념적 접근 프로세스’는 매우 인상적인데
① 접근단계(Access phase)에서는 ‘어떻게 서비스로 유입시키는가?’
② 초기단계(Initial phase)에서는 ‘이 서비스가 이 대상자에게 바로 지금 필요한가?’
③ 목표와 계획 수립단계(Establishing the goal and the plan)에서는 ‘이 대상자에게 어떠한 직업이 필요한가?’
④ 실행단계(Implementing phase)에서는 ‘이 계획이 실제생활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⑤ 업무단계(In the job phase)에서는 ‘이 일이 이 대상자에게 적당한 일인가?’
⑥ 결정단계(Decision phase)에서는 ‘어떻게 그 직업으로 들어가게 할까?’
를 결정하는 체계적인 접근전략을 갖고 있다.
<사진 19. 프로세스 네트워크 관점에서 본 재활 (Rehabilitation as a processual network)>
이를 위하여, 사례관리시스템(‘Job coach’ 사례관리자 배치)을 운영하고 있는데, ‘Job coach’는 위 여러 단계들 중에서 재활 대상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① 사회복지사와 함께 초기 인터뷰(Initial interview)를 하면서, 대상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job coaching의 유용성을 평가하고, 초기 목표를 설정,
② 어떻게 직업을 얻나 계획하는 단계(Planning how to get to work)에서는, 직업재활과정의 목표, 여러 직업에 대한 정보, 직업실험을 해 볼 곳을 물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③ 추후관리 단계(Follow-up)에서는, 대상자의 직업실험을 지원해 준다.
④ 필요할 경우 심리전문가의 도움(Psychologists research)을 받아서 대상자의 인지기술, 학습기술, 개인적 자원 평가를 통해 도움을 준다.
한 사람의 직업 재활을 위해 배치되는 잡 코치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새로운 삶을 함께 고민해준다. 이쯤에서 한국에선 당연히 나왔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처는 어떠한가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더 자세히 묻는다. “일부러 재활을 받기 위해 아프다고 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돌아온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함께 해결해야겠지요? 복지는 불쌍하거나 도와주고 싶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에 속한 동등한 국민으로써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받는 서비스는 국민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밤 아홉시가 넘으면 술을 안 팔아?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문화 충격은 곧 수다로 이어진다. 우린 궁금한 것도 많고 싶은 말도 많았다.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여전히 모자랐고, 맥주 몇 병 사들고 숙소에 돌아가 오늘의 일을 마저 정리하기로 한다. 편의점에 들른 우리는 황당한 소리를 듣는다.
“맥주는 안 팔아요. 법 위반이에요.”
다시 한번 들은 말을 확인한다.
“법이요?”
“네 법으로 9시 넘으면 마켓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있어요.”
그 때 우린,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정책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느라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술집에서는 마실 수 있지만, 편의점 등에서 따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은 핀란드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염분섭취를 제한했던 정책이 있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대단하다는 말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광장에서 병맥주를 들고 술을 마시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젊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헬싱키 벼룩시장 단언컨대 벼룩시장 중 최고봉!
한국으로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은 점심.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한 창고를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벼룩시장을 물으니 자신도 벼룩시장으로 간단다. 팔뚝에 커다란 문신이 새겨진 남성이었는데, 함께 한 일행은 무작정 따라가도 되냐고 묻는다. 어쩔 수 있나? 결국 그를 따라나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고 트램을 타고 30여분동안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 걷는 코스였다. 매주 다른 곳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자신은 매주 그 곳을 찾아간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으나, 왜 우리 숙소 근처로 가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따라가 보니 숙소 옆. 커다란 컨벤션 센터가 통째로 벼룩시장이 되어 있었다.
<사진 20. 매주 일요일 열린다는 헬싱키 벼룩시장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주어진 1시간 반 동안 절반도 못 돌았다. 아기자기한 온갖 그릇과 백야를 견디게 해주는 커튼이 유난히 많았다.>
1유로에 작은 가방하나를 사고, 1유로에 꼭 맞는 운동화를 하나 샀다. 국화꽃그림 액자도 1유로에 하나. 3유로를 가지고 대단한 쇼핑을 하니 기분이 좋다. 북유럽 특유의 도자기 접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뇌의 시간도 보냈다. 유난히 많던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식기류와 커튼, 상상하는 모든 것이 있는 그 곳에서 오래도록 핀란드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 싶었으나, 비행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짧은 여정이 꿈이라도 꾼 듯 얽혀 있다.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들린다,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 이런 건가.
페이스북에 여정 중간 중간 글을 올릴 때, 지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 이 세 나라를 자세히 모른다. 역사를 더 알고 싶고 제도의 맥락이 궁금했다. 한정된 시간에 다 알긴 어렵지만, 그 사회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진 않는다는 것.
부러웠다. 우리는 더 대화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일터와 사회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진 20. 함께 걷는 길 베를린 산재병원 가는 길>
1) Fit Note allows GPs and other doctors to provide more information and advice on a patient’s fitness for work - Advise that patients are "may be fit for work taking account of the following advice" or "not fit for work" / - Has space for comments on the functional effects of a patient's condition with tick boxes to indicate common approaches to aid a patient's return to work / - Can only be completed by a doctor, and allows telephone consultations / - Patients can use as evidence of their fitness for work, for sick pay and for benefit purposes. / Only cover a period of three months during the first 6 months of illness.
1. 대리운전 노동자의 현황과 업무형태
대리운전업은 1998년경부터 등장하여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초창기에는 매우 영세한 규모의 대리운전회사 위주였으나 2003년 이후 시장규모가 확대되어 현재는 수천 명의 기사를 둔 대리운전회사가 등장하였다. 2008년 현재 대리운전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8만-10만 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대리운전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리운전회사는 사업자 등록만으로 영업을 할 수 있어 시장 진입이 수월하였고, 대리운전자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자들이 양산되면서 자동차면허증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일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규제 없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의 근로조건 악화, 대리운전 사업주간 경쟁으로 인한 가격 덤핑으로 업종의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대개 오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여 새벽 4시에서 6시 정도까지 근무를 한다. 대리운전업체와는 ‘도급계약’ 또는 ‘정보이용계약’ 등을 체결하고 PDA를 통해 제공된 콜을 먼저 잡는 사람이 오더를 수주하는 형식으로 일을 한다. 대리운전노동자는 회사와 계약한대로 수입금액의 20-30%를 정률제로 지불하며(일부에서는 정액제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음), 그 밖에 콜 프로그램 사용료, 자동차보험료, PDA 요금료, 전화통화료, 이동 시 교통비 등도 지출해야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평균 4-8건의 대리운전을 소화하면서 월평균 100-1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현재 근로자로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가 본인 의지에 따라 다양한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고 근무를 할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이나 장소도 자유로운 등 통상적인 노동자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리운전회사가 프로그램에서 오더보기 금지(락)를 걸면 일을 할 수 없는 등 근로종속성도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자영업자들과도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다.
2. 대리운전 노동자의 건강문제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수행 중에 재해를 경험한 사람은 21.6%로 나타났고 재해의 형태는 교통사고(45.2%), 타박상/삐임(39.8%), 기타(14.5%), 골절(14.0%) 순으로 사고와 관련된 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고 및 질병에 대한 치료비 처리 방법은 건강보험처리 27.1%, 가입된 민간 상해보험처리 25.8%, 자동차보험 처리 25.3% 순으로 나타났다.
위의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리운전 노동자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강문제는 교통사고이다. 따라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보험사들이 대리운전보험의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의 보험가입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영세 대리운전회사에 소속된 대리운전 노동자는 보험가입이 사실상 어려워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현실이다. 또한 대리운전보험 가입 관리는 회사가 대행을 통해 일괄적으로 하고 있는데 일부 업체의 경우 보험료 대행 및 수납 과정에서 이행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리운전보험은 그 구성에 따라 대인, 대물 등 피해자에 대해서 보상하는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리운전 노동자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서 보상하는 자손은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있어 대리운전 중 다쳐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3. 대리운전 노동자의 보호방안
현재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상당 부분 근본적으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덤핑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대리운전업체들은 대리운전 기사들을 다량 모집하면서 수수료를 여러 명에게 받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받을 수 있는 콜 수가 적어지면서 수입이 악화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리운전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며, 가격 덤핑을 막을 수 있는 표준요금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들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가는 업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게 되면 아예 대리운전 노동자로도 진입을 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리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을 유도하자는 논의가 일부 있었고, 여기에는 몇 가지 논쟁점이 존재한다. 우선 산재보험 가입 적용 방안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그 방식에 따라 대리운전 종사자를 강제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당연적용 방안과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임의가입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보장 측면에서는 당연적용 방안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상당수가 신용불량 상태로 자신들의 소득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제가입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노동자 중 55.3%가 임의가입을 원하고 있었고, 특히 대리운전을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는 경우 임의가입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다음으로 보험료 산출 및 보상기준에 대한 논란이다. 대리운전자는 일정한 임금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콜 획득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소득을 추계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대리운전업체 및 프로그램사가 콜 획득수를 축소해서 보고하는 (사업주 측의)도덕적 해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리운전 제공시간에 대한 구간별 고시임금을 적용하거나 대리운전 노동자 평균임금을 산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보험료부담 주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기존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업주가 1/2씩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만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업주와 노동자가 1/2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적용제외 신청을 적용하는 경우 회사가 PDA를 통해 업무 통제를 하고 금지(락)를 걸어 업무를 못 하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른 업종보다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많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하나의 회사가 아닌 중복된 업체에 등록되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보험료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 하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1월 28일 대전에서 전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자 건강권단체들이 모여 산재보험개혁 전략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보험을 진정한 의미의 사회보장제도로 바꾸기 위해 새 틀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운동이 산재보험의 한계를 명확히 보고 노동자계급 전체와 통할 수 있는 사회보험제도로서 산재보험의 개혁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30여명의 활동가들은 공감을 표했고, 노동건강연대의 제안을 실천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발표내용을 정리하였다.
기존의 산재보험 개혁투쟁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사회적 쟁점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산재보험 개혁의 핵심이었던) ‘선보장 후평가’는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비정규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산재보험 전면 확대를 위해 싸웠는데 현실 속에서 대중적 동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자기과제로 가져갔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요. 근본적으로는 산재보험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나 전체 국민들의 사회보장 틀 속에서 접근된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에 들어온 사람들의 판정과 재활문제에 초점을 두다보니 산재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다친 노동자들인데도 백만 명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고 심지어 질병은 더 심할 것입니다.
기존 방식으로 산재보험 운동을 하기보다 범위를 넓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보장 확대 투쟁이라는 정세적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건강보험개혁, 무상의료 투쟁에 이를 결합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몇 가지 문제의식을 말씀드리자면,
첫째, 현재 5대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 이슈 속에서 노동자의 관점이 빠져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보장 체계 안에 빠져 있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쏟지 못했습니다. 둘째 기존 산재보험 개혁투쟁에 대한 평가입니다. 산재보험 투쟁과 안전보건 운동의 두 축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2005년 ‘선보장 후평가’를 슬로건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제도권 내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산재보험을 제대로 된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사용자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이 강합니다. 구조화된 산재은폐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초점인데 기존 대공장, 정규직 중심 운동으로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가 부각되지 못하고 현재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 측면이 있습니다. 기존의 사회보장 운동이 상당히 개량주의 혹은 전문가주의로 폄훼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로 인해 전체 운동, 특히 노동운동 내에서 (복지 담론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재보험을 노동조합의 현장투쟁으로 활용하는데 상당한 강점이 있으나 이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현장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전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러한 투쟁들이 산재보험 개혁투쟁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됩니다. 산재보험 틀을 놔둔 채 개혁해보자는 일부 흐름도 있습니다. 대개 전문가들의 주장인데 일부의 개선에 불과하고 노동부에 포섭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사회보장 강화 투쟁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산재보험 개혁을 대중적 투쟁동력으로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산재 문제의 핵심 집단은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인데 문제의 초점이 여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첫째, 보편적 사회보장으로 나아가다보면 산재보험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프면 무상으로 치료와 재활, 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너무 취약해서 오히려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고, 휴업/상병 급여 문제가 대두됩니다. 기존의 노동자 복지를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그동안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나, 현재 상황이 좀 달라진 것 아닌가 합니다. 과거 일부 진보세력들이 제기하던 무상의료 전략이 훨씬 대중화되어 심지어 민주당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정세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동력을 활용하여 무상의료를 패키지화하여 제기하는 전략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의 동력으로 전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상병급여와 유족급여 등은 유지되어야 하며, ‘선보장 후평가’ 전술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대중적 파급력이 약하기 때문에 무상의료 운동과 함께 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이야기하면 보험료 부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기업부담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노동자 몰가치적인 현재의 복지 담론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둘째, 현재 산재보험의 질병판정위원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전략에 대해서입니다. 이 싸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첫 번째 전략 속에서 배치되어야 합니다.셋째, 산재보험 적용대상 확대 투쟁도 역시 첫 번째 맥락 속에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직업병, 산재인지를 무슨 근거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나요? 과학적 잣대를 가지고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요양급여는 산재와 건강보험을 통합하고 휴업급여와 상병수당을 산재보험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한 판단을 의료기관이 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에 청구할지 산재에 청구할지 판단해서 신청하도록 하면 됩니다. 기인성이 아닌 수행성으로, 관련되었다고 알려진 직업에 종사하기만 하면 그쪽에 신청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질병이 다요인설이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는 이를 ‘후정산’이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영향력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판단하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노동자들이 신청하는 게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이를 신청하게 되면 산재 신청했다고 노동자들이 불이익 당하는 문제도 없어집니다. 이러한 투쟁이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강화시키고 요양과 휴업급여를 확대하는 데로 나아가고, 근로복지공단은 재활과 일자리 복귀를 강화하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민주당은 대중적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총자본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병급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같은 운동은 총자본이라기보다 민간보험 문제를 건드린 것으로 보면 됩니다. 민간보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건강보험 보장성,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총자본에 대한 투쟁이 가려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각각 입장이 다른데, 그 속에서 총자본의 부담을 늘려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차별성도 부각시키며 총자본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해요.
당면 문제뿐 아니라, 산재보험의 질병판정위원회 해체투쟁을 넘어선 그 다음에 대한 논의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 국민의 이슈로 만들기 위한 도발적 의제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입니다. 과거 실패한 경험이 있고 중앙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어떻게 하면 전국적, 사회적 의제로 만들 것이냐 장기적 대안을 고민해봅시다.
산재보험의 중장기 전망에서는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대상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구조적 투쟁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의 주체문제에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시민사회영역 제 정당 과 연대의 문제, 외연을 확대하자는 데도 공감대가 있습니다.중장기를 보고, 총선, 대선 시기 계획을 세우기 위한 정책기획팀을 구성하여 논의를 깊이 있게 합시다. 지역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어느 시기에 전국적 모임에서 장기 계획을 풀어가 봅시다.
참조링크 : 2014년 산재보험 50년, 스웨덴처럼 바꾸고 빡 끝!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정책 방안 http://old.laborhealth.or.kr/38936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그리고 국민연금이라는 한국의 4대 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제도가 일본에도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과 연금이 전국민 대상의 통합 프로그램인데 비해, 일본은 대기업, 업종조합 등 직장 내지 업종을 기반으로 개별화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산재보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국 통합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산재들이 은폐되는 상황에서 요양비를 의료보험이 대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산재 은폐 사례들을 일부 살펴보고 소위 일본적 고용형태가 만들어 낸 의료보험, 연금 구조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2008년 산재보험 급여 자료를 살펴보면, 연간 총 사망자 수 1,268명, 휴업 4일 이상인 사상재해발생 건 수가 119,291건이다. 해마다 사망자 수와 재해발생 건 수 모두 감소하고 있다. 한편 정기건강검진 유소견률은 51.3%로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특수건강검진 유소견률도 6.5%로 과거 5년 동안 6%대에서 상승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서 산재 은폐가 발각되어 검찰에 송치된 건수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산재 은폐란 ‘고의로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 내지 ‘허위 내용을 기재한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관할 노동기준감독소장에 제출하는 것’으로, 노동안전위생법의 위반에 해당한다.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는 사업주가 노동부지청의 해당 노동기준 감독서에 내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서, 노동자가 사업장 내, 부속 건설물 내, 부속 기숙사 내에서 부상, 질식 또는 급성 중독에 의해 사망 내지 휴업한 경우 바로 제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행정감독기관 입장에서는 재해 발생의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자 사상병보고서 제출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노동성은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가 적정하게 제출되도록 사업주 지도를 철저히 하는 것과 동시에 산재 은폐를 파악해 조치를 강구하는 내부 행정지침문서(기발 제687호)를 1991년에 낸 바 있다. 문서에는 산재 은폐 조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① 사상병 보고서와 산재신청서류 등 서류들을 통해 재해 발생 상황 등 기재 내용 파악
② 산재 노동자에게 제보가 있는 경우 관계 서류 확인과 내용 파악
③ 감독 지도할 때 출근부, 작업일지 등 기재 내용 점검 파악.
①에서 ③까지 서류 기재가 자연스럽지 않는 부분을 파악하고, ④로서 현장 조사 실시 지시.
그리고 산재 은폐 사실을 발견한 경우에는 사업장에 대한 사법 처분, 경고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건설사업 무재해 표창 사업장에 대해서는 무재해표창 반납을 지시한다. 산재보험 ‘메리트 제도’ 적용 사업장에는 환부금 회수 등 보험료 징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노동성에서 후생노동성으로 부서 명칭이 변경된 후인 2001년, 산재 은폐를 없애겠다고 사업자단체와 건설사업자단체에 통지했다. 이 때 통계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산재 은폐 사례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2002년 새로 낸 지침에서는 산재 은폐가 범죄라고 하면서 계발에 중점을 둔 내용을 지시했다. ① 포스터와 소책자, ② 지자체 홍보물, ③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④ 산재방지 지도원, ⑤ 건설원정단체, ⑥ 의료기관, ⑦사업자단체와 노무사단체, ⑧ 공공공사 발주기관을 통해 산재 은폐 방지를 지도하도록 지시했다. 또 2008년에는 산재인데도 건강보험을 사용한 사람에 대해 산재보험을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산재보험에 청구하는 것을 권장하고 사업주를 지도하는 것을 지시했다.
후생노동성이 파악하고 검찰에 송치한 몇 가지 산재 은폐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례1 : 아파트 신축 현장. 2차 하청 A사 대표와 3차 하청 도장업 B사 대표를 검찰 송치함. B사 노동자가 도장 작업 준비 중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는데, A와 B가 공모해서 “수주를 확보하기 위해 원청에게 산재보험으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산재 사고를 은폐함.
사례2 : 운송업체 C사와 회사 사장을 검찰 송치함. C사는 물건을 다루는 중에 발생한 자사 직원의 골절 등 1년 1개월 동안에 발생한 5개 산업재해에 대해 ‘노동자사상병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음. 사장은 “화주가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진술함.
사례3 : 건설회사 D사와 회사 전무를 검찰 송치함. 건물 건설공사 2차 하청인 D사 노동자가 현장에서 화상을 입었는데, “D사 건축자재 창고에서 발생”이라는 허위 보고를 노동기준감독서에 제출. 공사현장의 산업재해는 원청회사의 산재보험으로 보상되는데, D사 전무는 “원청의 산재보험을 쓰면 폐를 끼치고 일을 못 받게 된다”고 진술함.
사례4 :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 원청 건설업체 담당자 2명과 1차 하청업체 사장, 전기공사업체 E사 사장을 검찰 송치함. E사 노동자가 리모델링 공사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 골절하는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공사현장 노동기준감독서에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E사가 직접 도급한 다른 공사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위장해 다른 감독서에 보고서를 제출. 원청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공상처리하려다가 부담이 커서 다른 현장 산업재해로 위장했음. 원청회사 담당자와 1차 하청 사장도 묵인해서 공범으로 송치됨.
사례5 : 제철소 1차 하청 철강가공 F사와 회사 부장대리 등 2명을 검찰에 송치함. 제철소 내에서 발생한 3건의 산업재해에 대해 건강보험을 쓰거나 통근재해(출퇴근 중의 재해)로 취급함.
이상의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청업체들이 앞으로의 계약을 걱정해서 원청업체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무재해 사업장에 대해 보험료 삭감 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재해 예방”을 진행해 온 것의 문제점이 이런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고용보험
31일 이상 고용 예정이거나 1주 노동시간이 20시간 이상이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
의료보험
1961년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 피보험자가 되었다. 그러나 보험의 구체적 특징들은 민간기업의 노동자, 공무원, 자영업자, 선원 등 직역에 따라 다른 조합제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보험은 산업재해, 직업병 등 업무상 재해를 제외한 의료행위에 대해 보상하며, 이러한 질병/부상에 따른 휴업 기간에는 상병수당이 지급된다. 평균 임금의 약 60%로, 최대 1년 반 동안 지급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는 상병수당제도가 없다.
보험료는 사업주와 절반씩 부담하며 (국민건강보험인 경우 한국의 지역가입자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부담), 월수입에 대해 47개 등급으로 보험료를 정한다.
연금제도
일본의 공적 연금제도는 전체 국민에게 해당하는 ‘국민연금’과 임금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후생연금보험’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① 노령기초연금 (65세부터 지급), ② 장애기초연금 (중증 장애 상태가 된 경우 지급), ③ 유족기초연금 (생계주가 사망한 경우 유족에 지급)의 세 종류가 있으며 다음과 같은특징을 갖는다.
한편 후생연금보험은 근무 시작부터 69세에 이를 때까지 회사원이 가입해야 하는 공적 연금으로, 앞에서 살펴본 국민연금 제2호 피보험자가 그 대상이며, 보험료는 회사에서 징수한다.
지급되는 후생연금의 종류에는 ① 노령후생연금 (65세부터 지급), ② 장애후생연금 (중증 장애 상태가 된 경우 지급), ③ 유족후생연금 (생계주가 가망한 경우 유족에 지급)이 있다. 한편 후생연금과 구조가 같지만 공무원이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공제조합’이 있다.
이렇게 보험자를 정부로 하는 공적 연금제도 뿐 아니라 기업연금제도도 있다. 이 경우, 후생연금보험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가 의무화되어 있다. 기업 퇴직금의 일부를 기금에 내는 것으로 독자적인 기업연금을 설정할 수 있다. 설립 형태는 1개 기업의 단독설립, 동일 자본계열인 기업그룹의 연합설립, 같은 업종이나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함께 하는 종합설립이 있다.
산재보험제도는 국가에 의한 강제적 사회보험제도로서 보험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하여 노동자에게 업무상 사고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국가 행정기구를 통해 소정의 급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이 가진 사회보험의 일반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요양 급여 신청을 했을 때, 행정 당국이 직업과의 인과관계를 따져 승인 또는 불승인 조치를 내린 후 승인된 경우에 한정해 보상을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보험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보상은 몇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첫째, 이는 잘못된 질병 모형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질병의 원인을 직업 때문이라고 입증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쉽지 않다. 질병의 원인을 단일한 인자로 설명하는 ‘질병의 단일 병인론설’은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비과학적 설명 방식이다. 질병 발생에는 숙주 요인, 환경 요인, 매개 요인 등 다양한 요인 등이 관계된다. 즉, 어떤 요인이 주요한, 혹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험요인은 될 수 있어도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적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요인이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라고 추론은 가능하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폐암에서 담배의 영향이 크다고 해도, 특정한 개별 사례에서 폐암 발생의 원인이 반드시 담배였다고 단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많은 담배를 피운 사람이 폐암에 걸리지 않은 사례만 있어도 이러한 인과관계 가설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재보험은 질병의 원인이 직업에 기인하고 있냐를 따지는 업무기인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매우 잘못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고혈압, 당뇨병 등 전통적 직업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일반 질환들도 직업 관련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쳐야 기인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잣대는 매우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작업 때문이든 아니든, 어떤 원인으로 발병했든 노동자가 불건강 상태를 벗어나 건강하게 직장 또는 사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필요나 욕구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건강할 권리에 차이를 구조화하는 현행 보상 방식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으로서 건강권이 등장한 이래 건강권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재냐 아니냐에 따라 보상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사업주의 책임을 산재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점은 잘못이다.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로 승인된 재해 또는 질병에 대해서만 사업주 책임을 특정화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보상에 국한되고 있지만, 현행 산재보험체계가 안전보건에서의 사업주 책임 범위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산재로 승인된 질병만 사업주의 책임인가? 일반 질병은 사업주의 책임이 아닌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직업성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던 일반 질환들도 사업주 책임 영역인 근무 환경 및 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저체중 출생아의 출산은 여성노동자의 장시간노동 및 교대근무와 관련이 있으며, 고혈압 및 고혈압성 합병증의 발병도 직업스트레스 요인과 관련되었다는 연구보고들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산재가 반드시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잦은 사망사고와 중대재해는 건설업의 뿌리 깊은 하청-재하청 관계에 기인한 바가 큰데, 정부 정책이 그러한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부 정책이 산재발생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이처럼, 산재를 직업에 기인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
사전승인제도와 구조적 배제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의하면, 2006년 우리나라의 총 직업성 손상 규모가 2,853,7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진료를 받은 손상환자 자료를 근거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 해 건강보험 손상 환자 중 22.5%가 직업 및 경제활동에 의해 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 인구가 모두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농민 등 자영업을 제외하고 운전 등의 경계 영역을 제외하여 보수적으로 추계하더라도, 산재보험 적용 직업성 손상 규모는 1,091,1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산재보험으로 일 년간 승인된 사고성 재해 건수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표 1. 2006년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은 직업성 손상 추정건수
조건
(A) 건강보험 이용
직업성손상 추정건수
(B) 산재보험 이용
직업성 손상자수3)
계
(A+B)
비
(A/B)
전체 직업성 손상
2,774,086
79,675
2,853,761
34.8
산재보험 적용 근로자로 제한1)
(보정계수 0.518)
1,436,977
1,516,652
18.0
산재보험 적용 근로자중 사고원인이 교통사고인 경우 제외2)
(보정계수 0.361)
1,001,445
1,081,120
12.6
1) 사고 당시 직업이 농림어업, 자영업, 공무원, 군인인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임금근로자만 포함한 경우는 2,094명으로 전체 응답자 4,045명의 51.8%에 해당되므로 보정계수 0.518을 곱하여 추정함.
2) 임금근로자 2,094명 중 사고원인이 교통사고인 경우를 제외하면 1,460명으로 전체 응답자 4,045명의 36.1%에 해당하므로 보정계수 0.361을 곱하여 추정함..
3) 2006년 산재보험을 이용한 근로자는 89,910명이나 이 중 업무상 질환자 10,235명을 제외한 직업성 손상자 수는 79,675명이었음.
뿐만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로 신상도 등(2010)이 수행한 손상감시연구에 따르면, 산재 때문에 응급실을 방문하여 사망한 환자 중 일부가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처리된 경우도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직업관련성 질환에 비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알려진 손상의 경우에도 많은 수가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이전된다고 하면, 직업성질환의 경우는 물어보나 마나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직업 때문에 발생한 재해인데도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못 받는 이유는 산재보험의 사전승인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 제도 하에서 사고성 재해와 직업성질환으로 치료를 받게 된 노동자가 산재 보상을 받으려면 본인 또는 보호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해서 사전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재해가 업무 때문에 발생했는지, 업무 수행 중에 발생했는지 따져서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산재로 인정된다. 이처럼 사전승인 절차가 있다는 사실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을 재해노동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산재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직업성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보상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고성 재해나 직업병이 발생하여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경우, 재해노동자는 본인과 회사의 날인, 병원의사의 소견서 등이 포함된 요양신청서 3부를 작성하고, 재해경위서와 목격자 진술서 등 증빙서류를 함께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지사는 요양신청서가 접수되면 회사의 담당자를 불러 작업관련성에 대해 조사 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자문의사에게 작업관련성에 대한 자문을 받은 후 최종적인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때 사고성 재해처럼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경우에는 1-2주 안에 승인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직업병의 경우는 작업관련성 여부에 대한 다툼이 커서 승인과정이 한정 없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요양이 인정되기 전까지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본인부담 비율이 50%에 달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만일 산재 신청이 불승인될 경우, 행정심판절차를 밟든지 아니면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 재해노동자 본인과 가계에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업무상 재해와 질병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제한적이고 엄격하다는 점도 문제점이다. 작업관련성이 확실한데도 산재보험에서 인정되는 업무상 질병의 범위가 좁고 기준이 엄격하여 실제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할 재해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요양급여를 제공받거나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건강보험의 급여수준이 매우 낮고 산재발생 후 재취업을 하거나 온전한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정기준마저 까다롭다는 것은 재해노동자에게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은 산재은폐를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은 그 정도에 따라 영업정지나 벌금 같은 행정처분을 받기도 하고, 미납 산재보험료에 대한 추징은 물론 요율의 인상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건설업의 경우 관급 공사 배제 같은 패널티를 부과받기도 한다. 따라서 개별 사업장은 산재가 발생하면 공상으로 처리할망정, 산재사실을 은폐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 사각지대와 차별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법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되지만, 아직까지 농업 등 업종별로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소규모 음식점처럼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1인 사업장 또는 자영업자들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으로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사업주에 고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적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해 적용 대상이 정해지고 산재 보험료를 전액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에서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재해노동자가 신청을 하면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밀린 산재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하거나, 행정 처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산재 적용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가 재해나 직업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린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기 매한가지다.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촉구 기자회견 (출처: 민중의 소리 2010.10.28)”
보장성 측면에서도 산재보험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2005년 10월 10일자 한겨레신문을 보면, 가스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재해노동자가 피부 이식 등에 들어가는 치료비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서 3년 동안 수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과정에서 결국 빚을 얻게 된 노동자의 집이 가압류되고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극소수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재해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재보험에서 제공해 주는 치료비, 즉 요양급여의 범위는 건강보험에 준한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다른 점은 건강보험의 경우 요양급여 범위 내에서도 치료비 중 본인부담이 있지만 산재보험은 본인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치료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고가의 시술이나 검사 등은 재해 노동자가 직접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고 그 비용이 상당한 수준이다. 물론 특진료 같은 일부 항목은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에서 보장을 받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치료비의 약 20% 정도는 본인부담이 존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보험에서 소득보전 차원으로 제공하는 휴업급여는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이기 때문에, 재해를 당한 이후 실질소득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 결과 빈곤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구인데, 배우자의 간병 때문에 가계의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폭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산재에 따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후퇴를 막지 못하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은 치료가 완전히 종결된 후에도 남는 장애에 의한 소득 손실에 대해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해급여로 보상하고 있다. 그러나 장해등급 판정 기준 또한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의 보상 수준조차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렇게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재해노동자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및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며, 산재보험의 배제와 차별을 구조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
단일한 노동자 건강보장제도의 필요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관련성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렵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재해노동자이 배제되며, 발병 원인에 따라 차등적 권리를 부여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노동자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이든 치료는 받아야 하고, 일을 못해 소득이 줄어든다면 소득 손실에 대해 보전을 받아야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의적인 잣대로 평가하여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행정 절차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비용 문제 뿐 아니라 건강할 권리의 평등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불건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산재보험에도 적용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을 한 두 개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는 상황에서 엄격하게 업무의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건강할 권리가 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이의 보편적 권리라고 한다면, 불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최대한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인의 종류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한국에서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제도를 통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의 전제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모두 부담을 하는데, 건강보험과 통합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산재 보험료를 모두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해서 사업주가 자신이나 주주 몫으로 돌아가는 이윤 중 일부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가시켜 왔다면, 사업주와 노동자의 부담 비율 문제는 결정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사회임금에 대한 보편적 동의가 확보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노동자 부담 비율을 줄이고 사업주 부담 비율을 늘리는 작업, 즉 사회임금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제도적 통합을 부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왜 노동자는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혹은 임금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왜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근본적 의구심을 가지고, 이를 바꾸기 위해 각각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거리서명운동 선포식 (출처: 매일노동뉴스 2010.11.01)”
통합 노동자 건강보장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과 전제조건들을 살펴보자. 우선,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보험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편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란다. 또한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치료 상황에서 발생하는 임금의 손실, 혹은 간병을 하는 가족의 임금손실에 대해서는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들이 건강보험에서도 산재보험과 같이 소득보장을 해주는 것과 비견된다. 그래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소득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질환에 대해서도 의료이용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별도의 소득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하더라도, 치료비 부담과 소득손실 때문에 중도에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예 직장에 돌아가기 어려운 심각한 상태이거나 임금노동자가 아닌 이들은 적극적인 재활 요양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일반 병원에서 장기간 요양하는 상황에 빠진다. 더욱이 직업 관련성 질환임에도 산재로 승인받지 못한 경우에는 충분한 치료와 재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상황은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노동자의 건강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직업성 질환이라는 좁은 범위에서만 보더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통합 또는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를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산재보험은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어려운 낡은 틀일 뿐 아니라, 고용 불안정성 문제와의 관련성을 극복해나갈 틀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기존의 산재보험은 불건강 상태에 처한 노동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이전 생활로 복귀하도록 돕는다는, 혹은 노동자 건강권을 실현하겠다는 철학과 목표에 기반해서 성립되거나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재해에서 사업주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개별 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과정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 자본주의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적 권리 의식이 커지면서, 그러한 산재보험의 틀로는 변화된 권리 의식을 담아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이 모두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엄격한 원인주의에 기초한 과거의 틀을 벗고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평등하게 향상시킬지에 초점을 둔 제도 개혁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독립적인 산재보험제도 운영의 전통이 강한 국가들에서도 자영업자 등 기존에 포괄하지 않던 집단을 산재보험의 틀에 포함시켜 나가고 있고, 북유럽 등 국가주의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은 통합적인 건강보장제도를 정착시켜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재보험은 사업주배상 책임보험적 성격을 한결같이 유지해오고 있다. 웃지 못 할 일은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일부 임직원들이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한 채, 자신들이 사업주의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보험은 엄격한 인정기준과 사전승인제도를 완고하게 유지하면서 노동자 건강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터 밖에서 모든 노동자의 건강이 평등하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대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프고 다쳤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어떻게 다쳤든 간에 노동자가 일을 못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산재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보상을 받고 건강보험이기 때문에 덜 보상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린 후 중장기적으로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첫 발은 어디에 디뎌야 할까? 산재보험의 보장성 강화, 재활체계 구축 등 많은 과제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 산재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병과 작업관련성 질환의 원인을 여타의 일반적인 질병원인들로부터 분리해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원인주의에 기초하여 산재보험의 수급 자격을 규정하는 경우, 재해 인정은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원인주의 접근방식의 장점은 재해노동자에게 특별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기 산재보험에서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원인이 명확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 질환처럼 원인이 복합적인 재해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위 선진국형 산재의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원인주의적 접근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해의 원인이 일과 관련이 있든 없든 동일하게 보호하는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다른 사회보장프로그램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불필요해진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아직 크기는 하지만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 질환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회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산재보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당장 결과주의 접근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건강보험과 타 사회보장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재보험을 결과주의적 방식으로 선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선보장 후평가’ 제도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만나는 최초의 시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만나면,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산재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를 산업재해분류기준표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체계로 급여 인정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단 산재보험 적용대상으로 분류되면 산재보험 급여를 통해 보장하고, 담당 의사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산업의학전문의에게 평가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면 부작용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제도 개선에 따른 산재보험 및 건강보험의 급여 제공 체계
이러한 제도가 정책되려면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의 당연지정 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울대병원 등 대형 3차병원의 일부가 산재요양기관 지정에서 제외됨으로써 발생했던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반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도입될 경우 산재노동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요양기관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산재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저하 문제는 병원급 이상의 요양기관이 아니라 주로 의원급의 입원서비스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시행규칙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급 요양기관은 외래서비스만 인정하고 입원서비스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는 것으로 질 저하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이 재활요양원 설치를 포함하여 재활사업을 강화한다면 재해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더욱 향상될 수 있다.
현재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보편적 건강보장제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특성을 상실하고 있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산재보험에 대한 노동자의 불신과 불만, 더 나아가 냉소가 팽배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담론과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활발한 논의와 실천을 조직할 때다.
* 참고문헌
․신상도. 응급실 기반 직업성 손상 감시체계 구축방안 연구. 국가손상통합감시체계 운영사업단 제 8차 손상정책포럼. 2010
․이인재 등. 사회보장론, 나남. 2010
․임준 등.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08
[1] 보편적 복지 담론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 전략1)
무상 급식 논쟁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진보 교육감과 한나라당 단체장은 연일 날을 세우며 무상 급식 시행 여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박근혜 씨도 복지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고, 이에 뒤질세라 민주당은 연일 ‘무상’ 정책 시리즈를 발표하며 복지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안간힘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복지 포퓰리즘’ 담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하며, 무상 정책 시리즈의 비현실성을 폭로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 블로그에 쓰인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비판글”
격세지감을 느낄 노릇이다. 특히 그간 복지 논의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왔던 진보 정당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 역시 한국 정세의 변화무쌍함을 증명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현 상황의 시대정신과 화두가 ‘복지’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는 급격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사회적 부의 재분배 구조가 파괴된 한국 현실에서 복지가 시급한 시대적 요청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한동안은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불황기가 아닌가?
이에 아이들 먹거리 문제로 시작한 복지 논쟁은 의료, 보육 등으로 그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연금이나 교육, 그 밖의 사회서비스 등에 대한 논의도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이 존재한다. 보편적 복지를 논함에 있어 핵심적 논의사항일 수밖에 없는 한 영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 안 보이는 것이다. 바로 노동시장 영역에 대한 분석과 보편적 노동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이다.
현재 보편적 복지 제도의 근간은 5대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현재 이 5대 사회보험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임금 노동자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늘 얘기되는 문제점이 사각지대의 존재다. 그런데 고용의 불안정성이 점차 심해지고 있고 현재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구조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이러한 복지 제도가 형평한 혹은 보편적인 제도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복지제도가 건강 보장 제도를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현금 급여 중심, 노년 연금 중심으로 제도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래서 향후 보편적 복지 제도 발전을 위해서는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의 공공화, 현물 급여 확장, 노동자를 비롯한 경제 활동 인구에 대한 복지 서비스 확충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논의는 무상의료 논의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도 노동자들 비롯한 경제활동인구를 위한 보편적 복지 제도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적다.
이러한 기이한 사회적 현상의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주객관적 요인이 모두 존재할 것이다. 오랜 동안 형성되어온 노동 배제적 사회 인식, 담론 사회에서 노동 담론의 허약함, 노동자/자본가 역관계 속에서 노동계급 힘의 압도적 열세 등이 모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요인에 못지않게 주체적 요인 탓도 크다. 그러한 주체적 요인의 문제는 이미 10여 년 간 ‘노동 운동의 위기’ 논쟁 속에서 평가되고 제기된 바 있다.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역량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논의를 이른바 산재보험 개혁 운동을 표방했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논의로 집중하고자 한다.2)
주지하다시피 산재보험 개혁에 대한 논의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태동기부터 노동안전보건 운동 진영의 핵심적 논의였다. 문송면 투쟁부터 원진 레이온 투쟁까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1990년대 말 근골격계질환을 둘러싼 노동조합의 대중 투쟁을 경과하면서 논의의 폭이 확장되었고, 2000년대 초 산재보험 개혁 공동대책위가 결성되면서 정책 내용이 깊어졌다. 그 결과 2005년 정부 주도로 확장된 산재보험 발전위 논의에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은 통일된 요구된 요구안을 내걸 수 있었고, 그것의 구체적 형태로 민주노동당과 협력하여 국회에 개혁 법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후 산재보험 개혁 논의는 민주노총과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배제된 채 급격히 노사정위원회 합의 구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려면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의 요구가 사회적 발언권을 얻는데 한계를 가지게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선보장 후판정’을 주된 슬로건으로 한 산재보험 개혁운동 진영의 요구가 일정한 사회적 반향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3)
그런데, 당시에 산재보험 개혁 공대위(이후 공투위) 활동으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단일한 단일한 정책 요구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 지점의 차이에 따라 일정한 경향성을 띤 몇 가지 운동 흐름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4)
첫째는 산재보험을 제대로 된 사회보장(사회보험) 제도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최대의 중점을 둔 요구와 실천 경향이다. 현재 한국의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으로 보기에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이 사용자 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산재보험 체계가 법제도 체계상 사회보장기본법의 하위법령이기보다는 근로기준법의 하위법령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운동 진영은 산재보험을 우리 사회의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로 만들려 노력해왔다. 이러한 경향의 운동은 무엇보다 산재보험 사각지대, 산재보험 급여의 불형평성, 산재보험 급여 신청 시 존재하는 제도적, 실질적 장벽 문제 등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이러한 문제 해결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해 왔다. 특히 산재보험이 보편주의적 제도로 발전하려면 현재 산재 신청 자체가 아예 막혀있는 대다수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산재 신청 장벽을 없애는 게 가장 큰 이슈라고 주장해왔다. 다른 표현으론 ‘산재 은폐’ 철폐다.
이러한 운동 흐름의 가장 큰 장점은 산재보험의 향후 개혁 경로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산재보험 제도가 사용자 책임 배상보험의 영역이 아닌,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사회보장 제도로 자리매김되어 노동자들의 질병, 장애, 생활, 노동을 책임지는 제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지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곧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주의 혹은 조합적 경제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신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 임금 노동자로 제한되지 않는 모든 일하는 계층의 요구를 정식화하였고, 그것에 기반하여 보편적 사회보장 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 경향의 크나큰 약점은 이를 대변하고 움직이는 운동의 주체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주장과 정책은 있었지만, 그러한 주장과 정책을 현실화할 세력을 확보하는데 늘 실패했다. 주장과 정책은 있었으되 전략이 없었고,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객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비타협적, 전투적, 기업별 노조주의를 특징으로 하던 그간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사회보장 운동을 개량주의로 폄하해온 전력이 있다. 민주노총 창립 시기 이러한 운동 경향은 혁명적 노동운동에 대비되는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으로 치부되고, 심지어 특정한 정파의 노동운동 경향이라고 치부된 적도 있었다. 이는 이러한 주장을 펴던 세력이 민주노총 내 특정한 정파를 대변하던 그룹이었던 탓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파적 색채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보장’을 외치는 세력은 개량주의자 혹은 특정한 정파를 대변한 세력으로 오인되었다. 사회보장 제도 개혁을 외치는 세력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착취와 억압에 눈감은 채 재분배 구조에만 신경 쓰는 개량주의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민주노조 운동 세력 중에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그룹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혁명을 꿈꾸는 노동운동도 사회보장 요구를 할 수 있고, 사회보장 요구가 개량적이지만은 않은 요구라는 것에 대해 노동운동 내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러한 오해와 몰이해는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보장 요구를 전면적으로 내거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판은 이러한 경향의 운동 세력을 ‘법제도 개혁주의자’나 ‘전문가 운동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법제도 개혁운동에만 몰두하는 운동 세력이나, 계급적 역관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전문주의’에만 빠져 그것을 최고의 진리로 신뢰하는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운동과 그러한 전문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제도 개혁 운동은 보다 큰 운동의 전술로만 유효하고, ‘전문가’는 보다 큰 민주주의적 틀 내에서 그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보장운동의 중요성, 산재보험 개혁운동의 사회보장 운동 성격을 말한다고 해서 이 흐름을 무조건 법제도 개혁운동 혹은 전문가 운동으로 치부하여 비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현실에 근거한 비판이기 보다는 정치적 마타도어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이러한 성향의 운동 세력이 성장하는데 객관적 장애물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오해와 몰이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책임지는 주체들의 순진함과 정치적 미숙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주장과 정책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연대와 연합의 전략전술을 구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펴는 주체들은 그러한 것을 하다가 포기하거나 아예 실천하지도 못했다.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 (출처: 오마이뉴스 2009.09.12)”
두 번째 경향은 산재보험을 구체적인 노사관계의 투쟁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다. 생산의 지점, 생산의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노자 관계의 대립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착취와 억압은 생산의 지점에서 발생하고 그것을 인식한 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에 나선다. 그래서 다양한 수준의 현장 투쟁이 발생한다. 이는 임금, 고용, 노동기준 등을 둘러싸고 이루어지지만, 때때로 산재보험을 둘러싼 투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재를 은폐하고자 하는 사업주와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노동자 간의 갈등,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업주 간의 싸움 등이 산재보험을 매개로 현장에서 발생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업장의 다양한 측면의 문제들을 드러내고자 산재보험이 활용되기도 한다. 가령 사업주의 비인간적, 비인권적 경영 문제를 드러내고자 노동자 건강 문제를 고발하고 이를 산재 승인까지 연결하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의 장점은 구체성, 현장성에 있으며 대중 투쟁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노동자의 현장 권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구체적 현장과 구체적 쟁점을 가지고 투쟁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은 일정 정도의 투쟁 동력과 주체를 확보하기에 이로운 장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모순과 대립을 구도로 투쟁이 형성되기에 그 폭발력도 상당히 크다. 이러한 운동은 그 투쟁의 헌신성과 끈질김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노동운동의 귀감이 된다. 이러한 투쟁이 승리할 경우 특정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현장 권력 확장 효과가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투쟁 의제를 확장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투쟁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그 폭발력에 비해 성과가 특정 현장에 한정되거나, 제도 개선이 되더라도 부분적인 경향이 있다. 산재보험 문제의 보다 근본적 치부를 드러내고 그것에 칼을 대게 하기까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이러한 성격의 운동 자체가 의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러한 운동 자체가 산재보험 제도 개선이나 개혁 자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업주의 착취와 억압 관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투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현장 권력의 확대를 의도하는 것이니만큼 이 운동이 산재보험 개혁에 도움이 되냐 안 되느냐로 평가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도 모두 그간 산재보험 개혁 투쟁으로 간주되었던 현실을 고려하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 성향 자체가 중앙의 집중적 정치 투쟁을 방기하고 현장의 중심성만을 강조하는 아나코-생디칼리즘의 한 변형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 번째 경향은 현실에서의 산재보험 구조를 인정하고 여기서 현실 가능한 대안을 찾자는 흐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 ‘운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과거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는 운동세력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적 성격과 사업주 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만큼,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개혁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산재보험 구조의 변혁을 꾀하기 보다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일부 제도 개선을 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의 노동운동과 산재보험 개혁 운동의 힘을 패배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변화하지 않는 상수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러한 일부 개선과 개혁으로는 오히려 제도 자체의 불형평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간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지만, 그간의 운동이 오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옳은 방향임에도 힘이 부족했거나, 힘을 모으지 못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산재보험 개혁을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사실 2005-6년 산재보험 개혁 논의 당시 노동안전보건 운동 진영은 최대로 힘을 모아 부딪쳐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법안을 만들었고, 현장에 이슈를 교육했고, 그것을 발판으로 몇 번의 대중집회도 진행했다.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민주노총의 3대 핵심 요구 사항으로 산재보험 개혁 요구가 들어가기도 했다. 말하자면 할 만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힘이 부족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재보험을 자신의 사안이라고 느끼고 나서는 이들을 조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단위 노조는 개혁안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했지만, 당위만으로 운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당시 산재보험 개혁안의 핵심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도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산재보험을 자유롭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이를 자신의 운동으로 만들어 갈 조직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조직된 노동조합이 이를 주요한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라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에도 산재 신청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업장 의 노조들은 이 운동으로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산재 진입 장벽이 철폐된들 기존의 대공장 노조는 얻을 게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운동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지만 산재보험 개혁 운동 주체들은 그러지 못했다. 잘 나서지 않는 노조들을 욕이나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명확히 걸려있지 않은 사안에 나서지 않는 것을 뭐라 하기 힘들다. 물론 이렇게 중요한데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당위적으로 윽박지를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대공장 노동자도 산재보험을 자신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나설 수 있도록 요구와 운동을 만드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단위 노조를 넘어 더 많은 운동 동력을 확보하는 게 정답이다. 우리의 산재보험 개혁안으로 실질적 이익을 얻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를 핵심 세력으로 삼을 도리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운동 세력으로 세우기 힘들다. 하지만 조직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사안이 단지 조직된 노동자를 위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에게 이 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사안의 중요성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과 전술이 문제인 것이다.
바람직한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경로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로 가는 것이다. 그 궁극적 길은 산재보험 해체가 될지도 모른다.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결과에 대해 그 원인과 계층을 불문하고 사회적 보장을 해 주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상해와 질병, 질병으로 인한 임금손실, 장해, 사망 등의 원인이 무엇이건, 다시 말해 그것이 산재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가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로 가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다른 사회보장제도가 산재보험 제도만큼의 보장성과 적용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상태에서 보편성만을 강조해 모든 사회보장제도가 통합된다면, 이는 하향평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산재보험 수준이라는 전제 하에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을 고려할 수 있고, 국민연금 장해연금, 유족연금 등의 수준이 산재보험 장해급여, 유족급여 수준이 되었을 때 이들 급여의 통합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고용보험의 훈련지원 급여, 고용촉진금 등이 산재보험의 재활급여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각 사회보험에 비해 산재보험의 보장성이 크고 적용범위가 넓어 통합 논의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무상의료 논의의 진전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이제는 민주당마저 입원 환자의 보장성 90%라는 ‘무상의료’를 공약하고 있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 제도 형성을 위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산재보험 개혁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통합 논의를 제기하자는 게 한 가지 경로가 될 수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이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이라는 요구로 한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통합하여 병원 치료비는 산재건 아니건 간에 상관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후 조사와 평가를 통해 산재보험은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 다른 현금급여 및 부가급여를 담당하자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첫째,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기업 부담 강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에서 기업 기여율이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경총은 산재보험요율 산정 시 한국의 산재보험요율이 1.7-1.9% 정도로 다른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생색을 낸다. 하지만 이를 사회보험 전체에 대한 기업부담율로 따지면,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사회보험료를 훨씬 적게 내는 축에 속한다. 사회보험에 대한 기업과 노동자 부담률이 OECD 평균 5.4:3.1인데 비해, 한국은 2.4:3.2로 오히려 노동자가 기업보다 많이 내고 있다. OECD 평균적으로 기업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에서 노동자들보다 1.7배를 더 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의 4분의 3정도밖에 안내고 있다. 그런데도 산재보험료를 많이 낸다고 생색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재보험료, 혹은 고용보험료,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이든 기업이 내는 사회보장 분담 비용을 더 높이라는 주장을 해야 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에 맞는 설득력 있는 근거라는 것이 외국의 사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 통합 논의를 하면서 자연스레 이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통합 시 기업이 건강보험에 더 내야할 비용에 대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현재 기업이 건강보험으로 떠넘기고 있는 산재 환자의 규모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도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건수는 총 9만 3천 건으로, 180억 원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여 환수 조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이 2007년에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 일하다 다친 ‘업무 중 사고’ 사례는 108만 건으로, 2006년에 산재보험 적용 사례인 8만 9천여 건에 비해 12배나 더 많았다. 실제 산재 처리해야 할 건수의 12분의 1만이 산재 처리가 되고, 나머지는 다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 규모가 어림잡아 한 해에 2,000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건강보험 재정 손실분은 아니지만, 산재보험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까지 따지면 기업이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보험료를 떼먹는 돈의 규모는 더욱 크다.
한편, 현재 시스템과 의학 연구의 한계 때문에 산재보험 인정이 어려워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있지만, 그 원인을 작업에 돌릴 수 있는 질환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한 질환들은 직업성 암, 직업성 호흡기계질환, 직업성 정신질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질환 등 수없이 많다. 이러한 질환에 대한 기업부담금 명목으로 기업의 건강보험료를 올리자는 요구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건강보험료의 기업 : 노동자 비율은 6:4로 높이자는 주장을 하면서, 이 재원으로 무상의료를 실현한다는 전제 아래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을 주장할 수 있다.
둘째, 산재보험에서 요양급여 수급의 장벽이 사라질 수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통합하면, 일단 다치거나 병들어 병원에 갔을 때 병원비는 무조건 건강보험으로, 개인의 부담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치고 병든 사람이 산재건 아니건 간에 병원에서 치료받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다. 상해와 질병 치료에 대해서는 보편적 급여가 실현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어도 산재보험 상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을 수급하기 위한 평가와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병원 요양 과정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산재 및 직업관련성 질환 여부를 병원이 판단하여 급여 청구를 하도록 하면, 이에 대한 장벽도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5)
셋째. 이러한 주장과 요구로 보편적 복지 논의에 더해 노동자 복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 논의를 전면화하게 되면, 자연스레 산재보험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이전보다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간 산재보험을 이용하던 연 9만 여명 외에 무상의료에 관심 있는 많은 세력이 산재보험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무상의료 논의에도 도움이 되고, 보편적 노동자 복지 논의에도 도움이 된다. 무상의료 주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 부담 측면을 강조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현재 산재보험에서 더 제공되는 급여의 포괄 여부를 사회적 의제로 올릴 수 있다. 휴업급여 및 간병급여 등이 그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서 제공되지 않는 상병급여, 간병급여 등이 보다 포괄적인 급여를 보장하는 건강보험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더불어 건강보험에 떼어주고 산재보험에만 남게 될 휴업급여, 장해급여, 재활급여 등을 진정으로 보편적인 노동 복지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급여의 수준과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한 논의와 개별화된 기업별 노동 복지를 보편적 노동 복지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논의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로는 현재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 중심의 직업성 질환 인정 구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조직된 노동조합을 견인하는 전략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은 현재 진입장벽 철폐에 별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해관계가 결부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싸워달라고 하기보다는, 현재 그나마 투쟁의 집중점을 가지고 있는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 변화를 고리로 투쟁에 동참하도록 호소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를 해체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 투쟁이 산재보험에 대한 진입장벽 철폐 투쟁임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길게 논의하지 않겠다. 기존에 이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제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경로는 현재 산재보험 적용이 제외되어 있으나 보험이 필요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이 그 대상이 되겠다. 이들을 운동의 동력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산재보험!’ 정도가 메인 슬로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상술하지 않는다. 역시 기존 논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변화해가는 정세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과 관련된 논의를 어떻게 촉발하고 어떻게 질적 발전을 도모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맨 앞의 각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은 논쟁을 촉발시키고 고민을 모으기 위해 쓰여졌기에 많은 부분의 논리가 엉성하고 추상적이며 성글다. 향후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에서 이러한 논의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 정책을 가다듬고 필요한 조사와 연구가 있다면 이를 수행하여 자료를 보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많은 사회운동 세력과 이러한 전망에 대해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무상의료 운동 세력 및 보편적 복지를 주요한 운동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운동 그룹과는 문제의식 확장을 위해서든 문제의식 교정을 위해서든 적극적인 토론과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향후 그 과정에서 희망적인 ‘그 무엇’이 배태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는 2011년부터 본격화되는 정치의 계절에 우리 목소리를 가지고 투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산재보험 정책에 대한 글이 아니다. 산재보험을 진정한 사회보장제도로 만들기 위해 어떠한 주장과 전략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전략 페이퍼의 성격이 강하다. 논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논의를 추상화하고, 주장을 간결하고 선명하게 전달한 측면이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구체성과 복잡성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것이니만큼 양해를 바라며, 이 글이 목적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집중하여 생산적 논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내용은 노동건강연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산재보험 개혁운동 전략에 대한 노동건강연대의 입장은 보다 많은 토론을 통해 마련될 것이다.
2)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영역은 그간 크게 산재보험 개혁 운동과 산재예방 운동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왔다. 물론 주체는 많이 겹쳤고, 그래서 이 모든 영역의 운동이 노동안전보건 운동으로 불리어져 왔다. 여기서 서술하고 논의할 영역은 주로 산재보험 개혁 운동임을 밝혀둔다. 산재예방 운동 영역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따로 상술이 필요하지만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2005년 정부 주도의 산재보험 개혁 정국에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어떤 포지션과 요구를 가지고 어떤 운동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또다른 평가가 필요하다. 당시 일부는 정부 주도의 노사정위원회에 희망 섞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대다수는 민주노동당 입법안을 중심으로 장외 투쟁을 벌였다. 또다른 소수는 민주노동당 입법안도 탐탁치 않아했지만 다른 대안을 내지는 못했다.
4)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술하자면, 향후 서술할 특정 운동 흐름은 특정한 운동 주체가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조합, 단체, 개인들은 향후 서술할 세 가지 경향을 때에 따라 다르게 가지면서 활동하여 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서술하고 있는 일정한 운동 진영 혹은 경향이라 함은 추상화된 개념으로 파악해 주기를 바란다.
5) 세부적인 정책은 보다 정교화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 논의는 생략한다.
일시 : 2011. 2. 8 오전 11시
지난 3월 19일에 (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단체연합 주최 [보건의료진보포럼]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사내하청노동자, 요양보호사, 병원노동자와 함께 하는 “무상의료와 노동 - 한국노동자의 삶과 복지” 좌담회를 열어, 노동 현장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임금, 안전,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퀵서비스 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사회보험에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 생활임금을 벌기 위해 밤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의 이야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퀵서비스를 이용하실 때 ‘빨리 가주세요’ 라고 하는 말은 그 노동자에게 위험하게 일하라는 말과 같다는 호소가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좌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이야기의 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정책국은 최근 복지담론에서 빠져있는 산재보험 개혁방안을 연중 토론하기로 하고, 3월 25일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첫 정책 토론회를 열어 “산재보험개혁과제와 개혁의 우선순위”를 검토하였습니다.
* 그림 1. 정책토론회 모습
이상윤 정책국장은 산재보험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자영업자에 대한 보호를 산재보험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산재보험 이용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신청절차를 폐지하고, 의료기관이 분류하는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산재보험에 대한 토론은 계속됩니다.
4월 19일(화) 저녁 8시,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4월13일~18일 <후쿠시마원전사고 한일조사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의 방문보고와 주영수 대표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건강피해를 발표한 주영수 대표는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건강영향을 주지 않는다거나 안전하다는 주장에 대해, 기준치는 무의미하며 방사선량이 낮아도 인체에 대한 피해는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기준치가 계속 낮아져왔는데, 한국정부는 건강피해를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안전하다는 홍보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날 특강에는 노동건강연대 신입회원과 노동조합에서 참석하여 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 그림 2. 특강 참석자들의 모습
4월19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준), 진보정당을 비롯하여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2011 따끈따끈 캠페인”이 선포식을 갖고 캠페인단을 발족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도 ‘노동자의 건강권 수호’라는 주제를 가지고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캠페인단은 100만에 이르는 간병요양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은 물론, 필수적인 의료기본권의 일부로 자리매김한 간병요양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 그림 3. 캠페인에 참가한 간병노동자들
4월 25일 광화문 소라광장에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민주노총, 진보신당, 한국노총)이 최악의 살인기업 시상식을 진행했습니다.
* 그림 4. 살인기업 시상식에서 회견문을 읽는 강문대 공동대표
노동건강연대 이서치경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은 양대 노총의 발언과 “최악의 살인기업 및 특별상 선정 결과 발표”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강문대 노동건강연대 대표가 회견문을 낭독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건설업
제조업
1위 대우 건설 13명2위 현대 건설(주)11명3위 GS 건설 9명4위 포스코 건설 8명5위 대림 건설 7명
1위 대우조선해양 5명1위 현대제철 5명 2위 삼호조선 4명 2위 동국제강 4명
* 특별상 : 이명박 대통령 - 4대강 공사 사망 책임 2009년 8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총20명의 노동자가 사망
* 그림 5. 작업화 위에 놓인 추모의 국화꽃
* 그림 6. KBS 1라디오 [열린 토론]
산업재해로 현재 하루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데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신종 직업 관련성 질병도 크게 늘어, 산재예방과 보험제도 개선을 위해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보호를 위해 보험적용 대상과 기준을 완화해야 하고, 질환이나 사고의 업무 기인성에 초점을 맞춘 보상지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따라 [KBS 열린 토론]은 산재예방과 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과제에 대해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이같은 토론주제가 선정된 것에는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조합과 단체들의 활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토론회에는 박두용 (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한성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우기영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장), 임성호 (한국노총 산재보험국장),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팀장),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가천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참여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토론회 전문을 다음 주소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kbs.co.kr/radio/1radio/kbsopen/interview/index.html
[성명]
한나라당 방안으로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실질적 적용 확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 정책위 산하 빈곤퇴치 태스크포스팀은 지난 3월 20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산재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었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추진한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방안대로 추진된다면 실질적으로 제도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뿐더러 오히려 재정 부담의 불평등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현행 제도 내에서도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50:50 부담하고 있어 실제 적용률은 10%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다른 노동자들은 보험료를 100% 사업주가 내고 있는데, 이들은 보험료의 반을 자신이 부담해야 하니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예 본인들이 적용 제외 신청을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이 제도가 먼저 고쳐져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다른 노동자와 같이 보험료 납부 부담 없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100% 부담한다는 전제 아래 현재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화물트럭 운전사, 덤프트럭 운전사, 퀵서비스 노동자, 대리운전 노동자, 병원 간병 노동자 등의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산재보험 적용 확대가 이루어져야한다. 위와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대상 확대만 이루어진다면 그 효과를 내기 힘들다. 당연히 이들도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적용 제외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한나라당 태스크포스팀은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유도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사업주가 100% 책임져야 할 산재보험료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업주를 보조하겠다는 발상으로 어불성설이다. 해당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사업주가 져야 할 책임을 왜 국민들이 져야 하는가?산재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적용이 배제되어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에는 한나라당도 동의하는 듯하다. 하지만 차별 없이 실질적으로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방안으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노동자와 같이 특수고용 노동자도 사업주가 100%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체계로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2011. 3. 21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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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방사능낙진예보, 한국정부는 비를 맞지 말 것과 불가피하지 않은
야외활동 자제권고를 내려야 한다
- 교육당국은 초등학교 휴교령 고려 및 야외활동 자제 권고해야
오스트리아 기상지구역학 중앙연구소(ZAMG)는 7일 한국 중부지역 상공에서 시간당 3마이크로 시버트의 방사능낙진이 있을 것으로 예보했다. ZAMG는 유엔의 위임을 받아 미국과 일본, 러시아 등 전 세계 관측망을 동원해 방사성 물질 누출량과 이동경로를 분석하는 기관으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CTBT)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기관이다.그런데 정부기관과 대한의사협회 등은 현재 방사선 수준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준은 이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 보건성은 (U.S. DHHS, Public Health Service Agency for Toxic Substances and Disease Registry) 전리방사선의 예방에 대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면 해롭다고 가정해야 한다"고 분명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전리방사선량에 대한 연구들에 의하면, 전리방사선은 무역치선형(NTL)모델(아무리 적은양이라도 위험하며 노출되는 양에 비례하여 위험성이 커지는 질병모델)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는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면 그만큼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미연구평의회에 의하면 연간 100 mSv의 전리방사선에 노출되면 100명당 1명이 평생 암에 더 걸린다는 것이고 이는 연간 1 mSv에 노출되면 인구 10000명당 1명이 암에 더 걸린다는 결론이다.(전미연구평의회 2006, National Reserach Council. Health Risks from Exposure to Low Levels of Ionizing Radiation: BEIR VII -. Phase 2 Committee to Assess Health Risks from Exposure to Low Levels of Ionizing Radiation). 한국 전체 인구가 연간 1 mSv의 전리방사선에 노출되면 평생 5,000명이 암에 더 걸린다는 것이다. 매우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와 규제당국의 의무인 까닭이 이것이다.지금 한국정부는 낙진이 '무시할만한 양'이리고 말한다. 그러나 ZAMG에 의하면 내일 한국의 중부지방에서는 시간당 0.3마이크로시버트의 낙진이 예상된다. 이를 연간 노출량으로 계산하면 2.628 mSv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러한 낙진이 연간 지속되면 한국인구 중 평생 12,600명 이상이 암에 걸릴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이를 1/100로 줄여 잡는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126명의 암환자 발생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만한 양이 아니다. ZAMG가 0.3마이크로 시버트까지 예보를 하는 까닭이 이것이다.또한 만일 내일 비가 내린다면 그 비는 대기 중 방사선 물질을 한꺼번에 몰고 지상에 떨어지질 수 있어 그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 임산부들의 경우 전리방사선은 위험하다. 어린이들은 커가는 상태이므로 세포분화상태가 활발하고 이는 전리방사선이 분화되는 세포를 주로 공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린이들의 경우 방사선에 노출되면 훗날 수십 년 동안 암에 걸릴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우리는 이에 따라 한국정부가 전국민에게 내일 비를 맞지 말고 불가피하지 않은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릴 것을 촉구하며 특히 교육당국은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하여 최소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휴교령 고려를 포함하여 야와 활동에 대한 자게권고를 즉시 내릴 것을 촉구한다.우리는 또한 한국정부가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하여 방사능 낙진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이에 따른 국민행동지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도 1 mSv이하의 노출환경에서도 노출경로에 대해 주기적으로 검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ICRP 2007 권고) 국민의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그에 따른 대비책 제시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2011.4.6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기자회견문]
노동자 죽이는 4대강 사업 중단하고,
건설기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하라
-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며
2011년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인 법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난 1981년 12월 31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노동자들의 지속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법은 법대로 현실은 현실대로인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10년 한 해에만 노동부 공식 통계상 2,2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 이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다.4월 28일은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220만 명, 하루에 5,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 행위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식적으로 한국은 '산재 왕국'이다. 노동부의 공식 통계상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죽어갔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법 어기기를 예사로 하고 있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있는 사업주를 제대로 지도, 감독하고 있지 않고, 불법 사업장을 엄하게 처벌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이번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대우 건설은 죄질이 좋지 않다. 대우건설은 현재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총13명의 노동자를 죽게 만들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대우 건설은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대우건설 사례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생각지 않는 기업은 비윤리적 기업이라는 사실을 웅변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산업은행이 하루 빨리 대우건설 지분을 매각하려 서두르는 동안 죄 없는 건설 노동자들은 예방 가능했던 사고로 죽어가야만 했다. 실적만을 생각하는 과도한 기업 운영이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것이다.2011년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4대강 공사와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빠른 시일 내에 실적을 내려는 조급증은 너무 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2011년 4개월 동안에만 총12명, 공사 개시 이후 총20명의 노동자가 이 사업 현장에서 죽어갔다. 이는 산재 사망률이 최고로 높다고 하는 건설업 평균 사망률보다도 3.7배나 높은 것이다. 그야말로 4대강 공사가 ‘死대강’ 공사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이 일자, 공사의 책임자라는 장관은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설기업 임원이 이러한 행태를 보여도 이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그런데 건설기업의 무책임을 감독하고 시정해야 하는 정부 장관의 입에서 ‘노동자 실수로 인한 사고’ 운운하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참 한심한 정부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정부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건설기업을 감시하고 감독하여 산재를 줄일 수 있겠는가?원칙적으로 모든 산재는 예방가능하다.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산재 예방의 기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 놓고 노동자 실수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면, 왜 유럽 주요 나라 건설 현장에서는 사고가 적은 것인가? 문제는 한국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한국 기업과 정부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 회피, 속도 경쟁, 실적 위주의 관리와 운영이 문제인 것이다.이대로는 안 된다. 부실 경영과 실적 위주의 경쟁으로 온갖 비리와 국토 훼손의 온상이 되어버린 건설기업에 대한 감시와 개선이 필요하다. 어느 기업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죽게 만들고 있는 건설기업의 비윤리성과 무책임이 시정되어야 한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건설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것일 뿐, 국토를 훼손하고 노동자를 죽이고 있는 4대강 공사 강행을 재고해야 한다. 얼마나 더 죽고 다쳐야 이를 그만둘 것인가? 4대강 공사는 물과 땅과 동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죽이고 있다.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건설기업이 체질을 바꾸고, 정부가 의식과 관행을 바꾸지 않는 이상, OECE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씻기 어렵다. 국제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건설기업과 정부는 건설기업 이윤에 덧칠된 피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2011. 4. 25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신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야간노동 없애자는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정당하다- 정당한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이명박 정부 규탄한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5월 24일 오후 4시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기어이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하였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리하기는커녕 정당한 것이었고, 교섭 상황 역시 예년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 사업주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였고 정부는 이들을 공격하였다.유성기업 사업주와 노동자는 지난 2009년 수십 년 간 지속된 주야 12시간 교대제를 폐지하고 심야노동이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실시를 합의하고 2011년 시행을 약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갑자기 합의 이행에 난색을 표명했다. 이는 곧 현대자동차 사측의 압력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현대차/기아차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전 유성기업 노사 합의 이행 불가”라는 현대자동차의 지배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현재 한국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야간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야간 노동은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고, 노동자 삶의 질과 가족 관계를 악화시킨다. 교대 근무와 야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그 질병으로 사망할 위험도 높아진다. 피로 누적, 수면 장애, 위장 장애, 일과 관련된 사고의 증가 등도 교대 근무와 야간 노동의 결과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심리적 병리 증상과 질병이 증가하는 것도 큰 문제다. 야간 노동이 증가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족 관계가 어려워져서 노동자의 삶의 질이 하락하고 가족 관계가 파괴된다. 오죽하면 고용노동부조차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2011년 한 해 동안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하고 있겠는가?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이와 같이 정당한 요구로 합법적 집단 행위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해산한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경찰은 유성기업에 배치된 경찰을 철수하여야 한다. 더불어 명분없는 공권력 투입을 결정한 경찰청장을 파면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완료된 후, 유성기업 사업주는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다시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
2011. 5. 25 노동건강연대
고용노동부(장관 박재완)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사장 노민기)에 따르면 지난 4월 12일 남동산업단지(인천 소재)를 시작으로 시화산업단지(시흥 소재), 하남산업단지(광주 소재) 등 3개 영세사업장 밀집공단에 「근로자 건강센터」가 본격 운영된다. 이들 「근로자 건강센터」는 이 지역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지역 내 기반을 둔 대학병원의 전문의와 간호사, 작업환경 전문가 등이 상주해 노동자 건강관리에 관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건강․질병에 관한 상담, 직무스트레스 및 근무환경에 대한 상담, 건강진단 결과 사후관리, 업무적합성 평가, 근골격계 질환 및 뇌심혈관질환의 예방 등 각종 업무상질병 예방과 관련된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근로자건강센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업종의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자가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되며, 주말에도 필요 시 문을 여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바쁜 노동자들이 퇴근 이후에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사업장에서 상담이나 교육을 신청할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을 받아 방문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개소를 시범 운영한 후 2015년까지 23개소를 추가로 설치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에 ‘노동자건강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자는 제안은 운동 진영이 꾸준히 제기해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센터가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모형은 그러한 필수 요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듯하다. 향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와 견인이 필요하다.
고용노둥부가 지난 5월 6일 2011년 1/4분기 산재 통계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4분기 산업재해자수는 21,260명으로 전년 동기(23,426명) 대비 2,166명(9.2%) 감소했다고 밝히며 정부의 산재 예방 노력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와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은 전년 동기에 비해 늘었다. 이는 실제로 산업재해가 작년 동기에 비해 더 은폐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다. 최근 고용노동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 및 지도, 감독은 산재를 예방하기는커녕 산업재해 은폐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한 대목이다.
구 분
2011. 3월말
전년 동기
증 감
증감율(%)
ㅇ 사업장 수 (개소)
1,598,378
1,505,238
93,140
6.19
ㅇ 노동자 수 (명)
14,258,532
13,816,509
442,023
3.20
ㅇ 재해자 (명)
21,260
23,426
-2,166
-9.25
․사고성 재해자 수
19,557
21,434
-1,877
-8.76
․사망자 수
524
521
3
0.58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
350
307
43
14.01
ㅇ 재해율 (%)
0.15
0.17
-0.02
-11.76
ㅇ 사망 만인율
0.37
0.38
-0.01
-2.63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
0.25
0.22
0.03
13.64
사용자가 산업재해를 내고도 보고를 하지 않거나 노동자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면 즉각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5월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업주와 노동자의 안전보건 의식을 함양하고 법 준수 풍토를 정착시키려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시정기회를 한차례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해왔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산업재해를 보고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즉각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2차 적발 시에는 600만원, 3차 이상 적발 시에는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재를 거짓으로 보고하다가 적발되면 1000만원, 안전 및 보건 관리자를 선임하지 않다가 들키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즉각 매겨진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풍토를 만들기 위해 과태료 부과 제도를 개선했다. 그간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해도 되는 법으로 인식해 온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법 이행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처벌을 효율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작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란 측면에서 과태료 개선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낼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산재장해노동자가 사회복귀를 위해 직업훈련을 받지만, 3명중 2명은 훈련과 무관한 직종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훈련 중 별도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법에 보장된 교육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윤조덕 박사는 <노동리뷰> 2011년 5월호를 통해 발표한 “산재근로자 직업훈련 실태”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처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훈련을 마친 산재노동자의 취업직종과 훈련직종 사이의 연관성은 40% 미만에 불과했다. 산재판정일 1년부터 3년 이내 장해자를 대상으로 한 '예산사업'의 경우 훈련후 직업복귀자 1182명중 35.9%(424명)만 연관성 있는 직종에 취업했고, 나머지 64.1%(758명)는 아무 관련성 없는 직종에 취업했다. 2008년부터 도입된 직업재활급여사업의 경우도 직업복귀자 343명중 62.4%(214명)은 관련 없는 분야의 직업을 구했다. 이는 장해노동자가 직업복귀를 위해 훈련을 시작하지만, 도중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직업훈련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윤조덕 박사는 “독일의 경우 법적으로 훈련기간을 2년 보장하고 있고, 노동자들도 이 기간 기숙생활 등을 하면서 충분히 훈련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훈련분야에 취업한다”며 “우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직업훈련수당을 지급받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예산사업으로 직업훈련을 받은 산재노동자 1인당 평균훈련기간은 월 2.4개월로, 2009년에 비해 0.4개월 줄었다. 직업재활급여에 의한 직업훈련도 평균훈련기간이 2.6개월로 2009년(3.1개월)보다 0.5개월 감소했다. 산재노동자의 직업훈련 중단자 비율도 증가세다. 예산사업 직업훈련 중단자 비율은 2008년 5.5%에서 2009년 24.8%, 2010년엔 20.6%를 나타냈다. 직업재활급여의 경우 2009년 1.4%에서 2010년 9.5%로 증가했다. 직업훈련을 중단한 이유로는 △ 출석미달 (31.9%) △ 취업 및 자영업 (27.2%) △ 건강악화 (9.7%) 등이었다.
현행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재활 시스템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이고 운동 사회내 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문제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재 예방과 산재 노동자의 원직장복귀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자리 정책 중 하나다.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