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꽃보다아름다워
우리 곁의 타자 돌봄 여성노동자, 지역에서 주인공이 되다
-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
전수경 / <노동과건강> 편집위원
최경숙이라는 이름 뒤에는 따라다니는 조직 이름이 많다.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초기 멤버서 병원노동자 조직화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병원이나 환자의 가정을 일터로 삼는 간병, 요양노동자의 교육, 조직을 지원하는 사업을 펴고 있다. 이 결과로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라는 당사자 조직이 결성되고 구성원의 권익과 공익이 합치하는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또는 조직화사업이라는 것이 이름은 딱딱하고 거창해도 막상 부닥치면 사람을 만나고, 만나고, 회의하고, 회의하고…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고 그 결과물로 모임도 만들어지고 활동력도 확장되는 법이다. 최경숙 상임이사는 지치지 않고 사람을 찾고, 도움을 청하고 실제로 일을 성사시키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들 말한다.
활동을 오래 한 분들일수록 에너지가 소진된다고 하는데 최경숙 이사는 어디서 이토록 빛나는 에너지가 솟을까. 4월의 화창한 어느 날, 홍제천이 흐르는 은평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이라는 이름이,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 궁금합니다.
_ 간병요양 일을 하는 분들은 영세비정규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예요. 불안한 고용 상태가 이분들에게 가장 큰 문제죠. 그래서 취업알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동시장 길목을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업장 단위로 조직이 어려우니까 연구원이라는 형태를 만들었어요.
영세비정규노동자들인 돌봄 노동자를 위한 조직으로 비영리법인을 만든 건데요, 현장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 여성비정규노동자 지원활동을 연구하는 조직이 거의 없어서 이분들께 필요한 지원을 하려고 해요. 정책지원, 교육, 연구, 환자권리, 이용자권리 등을 지원하죠.
아, 여기 사무실 들어오다 보니 현판에 <전국요양보호사협회>라고 있는데요.
_ 4년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보건복지부가 요양보호사 24만 명을 교육해서 배출했어요. 그 중에 2만 명은 특수고용 형태로 유료소개소에 돈을 내고 일을 소개받아요.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요양보험제도에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요양보호사 교육을 하면서 조직화의 통로가 생겼어요. 교육하면서 토론도 하고 노동자의식이 생기면서 요양보호사들의 당사자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죠. <전국요양보호사협회>라는 조직은 이 때 만들어졌어요. 조직을 만드는 여성노동자들은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해서 일부러 이름도 평범하게, 운동단체같이 안 만들었죠. 지금은 회원이 2000명 정도 되고요.
간병 노동자의 실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의 투쟁이 계기가 되었죠?
_ 그렇죠.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 하는 분들이 세상에 나서게 된 것이 2004년 4월인데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병원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폐지한다고 하니까 간병인이 노조에 가입하고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간병인이 법적 권리도 없고, 근로기준법도 안 되고, 부당해고를 해도 안 걸리고, 노조 활동 하면서 제일 힘든 싸움을 그 때 한 것 같아요. 그 분들은 끝까지 생계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마지막에는 유서를 써놓고 싸우셨어요. 보건의료단체, 인권단체, 비정규노동센터, 민주노총비정규실 등에서 지원을 많이 했어요. 그 힘으로 이겼지요.
간병노동자 조직은 어떤가요? 간병노동자들은 병원에 입원한 분들과 그 가족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존재인데요.
_ 큰 병원들은 조사해보면 특수고용 형태의 간병노동자가 대부분이에요. 산재보험도 안되고, 이분들이 중요해요. 자기 조직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대형병원 노동조합이 제안하여 병원에 간병인 무료소개소인 <희망간병>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어요. 2007년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경북대, 충북대, 강원대, 제주대병원 등에서 <희망간병>을 운영하고 있죠.
요양보호사는 간병인과 또 다른 제도로 운영되고 다른 문제를 안고 있죠?
_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의 제도권 진입을 기대했어요.. 공식노동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어요. 당시 정부는 요양보호사 월급이 초등교사 임금은 된다고 선전하면서 요양보호사들을 배출했는데 실제로는 임금이 너무 낮아서 다시 간병인으로 가서 24시간 일하는 분들이 생겨났어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은 분들이 60만명이 넘었다고 해요. 대부분 빈곤여성들일텐데… 실패한 정책이죠. 99% 비정규직 일자리인데, 중고령 여성이 이 일만 해서는 생계가 안 돼요. 청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도 생계형인데 여기도 나이가 많으면 하기 힘들죠. 정부는 요양보호사 일을 봉사라고 하지만 ‘난 치러 온 줄 알았더니 똥 치러 왔다’ 고들 말하죠.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이 생계가 어려운 나이 많은 여성들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여성들의 문화적 특성이 있어서 다른 노동운동과 다른 점도 있을 것 같아요.
_ 남성이 중심이 되는 경직된 노동운동과는 문화적 차이가 있죠. 나이가 많은 여성이면서 돌봄노동을 하는 분들이니까… 이들의 운동이 나도 너무 궁금해요. 이 분들이 직업의식이 높고, 사명감이 높은데 일자리가 안 좋아서 망설여요. 임금이 너무 낮으니까. 이 분들 현실은 너무 너무 저임금인데 돌봄 노동의 이중성같은 걸 느껴요.
엄마들이라 그런가, 없는 살림에 반찬해가지고 가고, 자기가 봐주는 어르신의 가족까지도 돌보고. 정에 이해 움직이는 관계가 많고 조직사업도 그렇게 되죠. 힘들어도 밤늦게 놀고. 돌봄노동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최경숙 이사님을 병원노동자 조직화 활동가로 많이 기억을 하시던데요.
_ 병원노동자 희망터라고 2005년에 동네병의원에서 일하는 분들을 조직하자고 시작했어요. 동네병원은 보통 의사 한명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2~3명이 일하는데,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들이 일하는 조건이 열악하니까, 2005년 서울대병원노동조합이 결의해서 중소병원 노동자들 조직을 만드는데 지원하자고 하여 시작되었어요. 은평구에서 청구성심병원이라고 노동조합이 탄압을 심하게 받으면서 중소병의원에서 노동조합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알려졌잖아요.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의 경험을 보니 중소병원은 상담도 어렵고 교육도 안 되고 임금차이는 많이 나고 이직률도 높아요. 서울대병원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해서 규약개정을 하고 조합원들이 월 2000원씩 중소영세병원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 돈을 모았죠.
큰 병원은 거의 노동조합이 있는데, 2~3명 일하는 병의원의 노동자는 보호를 잘 못 받으니까. 산별노조로 전환하면 많이 해결되겠지만 일단 산별노조로 가는 길이 어렵다고 보고 중소병원과 대형병원의 격차를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고 해서 <병원노동자희망터> 라는 지원조직을 공공노조 안에 의료연대노조가 먼저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법적 보호를 못받는 비정규직 병원 노동자들에 대한 운동을 시작하신 거군요. 작은 병의원 노동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었네요. 은평구를 거점으로 삼고 조직화 방안을 모색하고 계신 건데요, 쉽지 않을 사업일 것 같습니다.
_ 은평구에만 280여개의 병의원이 있다고 해요. 은평의 지역단체, 시민조직이 모여서 2007년부터 선전전을 시작했어요. 동네마다 매핑작업을 하면서 병의원 실태를 파악하고 원장이 출근하기 전에 병원에 찾아가는 거죠.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20대 여성노동자는 결혼하면서 직장을 떠났다가 40대 초반에 아이들 키워놓고 밤 근무가 없는 동네병원으로 다시 일하러 옵니다.
작은 병의원 노동자 만나는 사업을 6년째 하고 계시다는 건데요, 성과를 알리면 좋겠네요.
_ 이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는 낮고, 미조직 사업이란 게 지속적 끈기가 필요하잖아요. 처음부터 소리 내면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서… 교육의뢰가 오기도 하고 가끔 노동교육 받는 분들이 탐방을 오기도 해요. 이 사업을 아는 사람은 중요하다, 산별노조 운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객관화하고 알려야 하지 않냐고 하죠.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 …
_ 최근의 고민이 노동운동을 어떻게 할 거냐, 객관화도 필요한데 지금은 몇 명이 노동조합 가입했냐 숫자로 판단하니까… 꼭 노동조합이 아니어도 비공식적인, 다양한 형태를 가진 조직이 있을 수 있다,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어떻게 돌파구를 열 것인지, 유목민 같은 빈곤노동자에게 갑자기 장밋빛 희망을 제시해서도 안 되고, 노동자의식이 필요한데 직장이나 일자리에서 안 되니까 지역차원 으로 노동기구를 만들자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직장의 경계도 보호도 없는 유목민… 여성 돌봄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난 것인가, 고민이 와 닿습니다.
_ 필요하다고 느끼고 오게 해야 하는데, 쫒아 다니는 건 지역사업이라 하기 어려워요. 이번에 근골격계 병을 무료검진해주는 캠페인을 했는데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거리에 플래카드 걸린 것만 보고 온 거예요. 은평구 이름을 걸고 했는데 구청이 돈 낸 건 없지만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가 한 번 무료검진할 때마다 7,8명 활동가들이 붙어서 찾아오는 분들을 만났어요. 만난 분들은 거의 다 요양보호사협회에도 가입을 했고요. 정말 필요한 사업을 하면 사람이 온다는 걸 확인했죠. 앉아서 상담을 기다리는 수공업적 사업만으로는 힘들다는 거죠.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일하면서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죠.
그동안 노동운동이 해온 조직 방식에 대해서 돌아봐야 겠습니다…
_ 중요한 건 협회냐 노동조합이냐가 아니라 성장하고 교육하느냐 인 것이죠. 몇 명을 노조로 조직했냐가 아니라 공공성의 관점을 갖고 직종이기주의가 아닌 당사자운동으로 자리 잡느냐 가 중요한 것이죠.
지금 노동운동 안에서 돌봄, 여성, 건강의 문제가 저평가되어 있어요. 총연맹도 열의가 있는지 모르겠고. 여성, 감정노동, 열악한 환경…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밀려나있는 건 아닌지.
요양 ․ 간병 노동자들이 몸 지도를 그리고 아픈 데를 색칠하라고 하면 가슴을 까맣게 그려요. 머리를 까맣게 그리는 분들도 있고. 하인취급, 성희롱…. 아프다고 하시는 거죠.
지역에서 지자체와 함께 사업을 모색하면서 방향을 찾으신 것 같네요.
_ 여기 은평구가 여성노동자 건강사업을 같이 할 준비가 돼 있는 편이죠. 지역의 돌봄 여성노동자들,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보육교사 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센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근골격계 병 검진도 해주고 물리치료사도 두고… 지역차원에서 여성 돌봄 활동가들 교육도 하고. 2~30 명이 교육을 받아서 상담하고 교육할 역량을 갖는 활동가로 성장하면 더 많은 노동자를 교육하고 사용자단체와 지역 가이드라인을 체결하고….
이렇게 대중적 운동을 통해서 지역기준을 만드는 게 산별노조의 지역조직 역할과 같은 거 아닐까 해요.
멋집니다. 노동자 개개인이 성장하고 다시 공동체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면,
_ 성장프로그램을 만들어야죠. 지역에 우리노동인권찾기 모임이란 곳도 생겨서 연대하고 있고, 텃밭가꾸기, 컴퓨터 배우기, 건강소모임도 있어요. 이번 총선 때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모임을 만들어서 총선후보들까지 만나고 다녔어요. 지역에 돌봄노동자 쉴 수 있는 곳 만들고, 정책지원 하라고 말이죠. 처음에 총선 후보들 만나서 약속을 받아내겠다고 할 때는 설마했는데 정말 만나고 약속도 받아오시더라구요. 여성노동자들 정말 대단하죠.
음, 노동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_ 노동운동 지원을 하는 상급조직들은 노동조합이 현장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말 생각해 봐야 해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불투명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의 미래가. 상급조직의 역할이 낮아서가 아니라 운동의 발전을 고민하다 보면 노동자, 민중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장을 개발해야 하는데, 영세비정규노동자는 지역으로 할 수 밖에 없어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무얼 얻어 내는 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활동이 있어야 풀리는 거죠. 저희가 지역에서 모습을 갖춰 가니까 다른 지역에서도 해 보겠다, 돌봄 노동자 쉼터 만들고 건강 상담도 해 보겠다 준비를 하는 곳도 있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조직, 조직화 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통상 떠오르는, 대상을 정하고 조직으로 끌어들이는 조직화가 아니다. 당사자가 조직이 되고 당사자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공동체로서 조직이다.
하나 더, 오늘의 만남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어휘, ‘미조직’ ‘미조직노동자’ 라는 말. 아직 조직되지 않았다는 말,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니라는 말, 이게 참 항상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꺼림직한 단어였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10%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 10%가 안 되는 노동조합의 구성원들이 90%의 노동자를 미조직노동자라 부르는 것이 온당한가.
대상화하지 않으면서도 조직을 만드는 활동가들을 보았고, 조직을 공동체로 성장하도록 도우면서도 공공성을 확장하는 힘을 보았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보건의료자원의 생산과 제공에 있어서 전적으로 시장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원조달 방식에서 공적 보험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이해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사적 의료체계에 기초하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는 보건의료서비스의 무정부성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국민의료비의 급격한 상승, 의사의 도시 집중 현상, 진료강도의 지속적 상승, 고가의료장비의 무분별한 확산과 도입 등이 단적인 예이다.
또한 극소수의 국립병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소유주체가 민간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설립 주체인 상당수의 공공병원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시장의 무정부성이 보건의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정부의 조정 및 기획 기능은 일부 건강보험의 수가 통제를 제외하면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는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고 재원조달 측면에서도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건강과 의료이용을 시장의 질서에 묶어두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는 보건의료비에서 개인부담의 증가는 재원조달의 공공성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보건의료서비스에 지출한 비용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한 몫이 41.6-53.0%에 이르러 다른 OECD 국가의 2-10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운용되고 있지만, 재정위기의 해결책으로 본인부담을 더 높이려는 방향을 설정하고 더 나아가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 제기되는 등 시장적 질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WTO 시장개방의 움직임이 가속화하면서 영리법인의 인정, 민간보험의 도입 등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 이래저래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가 더 커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2004년까지 마무리되어야 하는 DDA 협상 일정 때문에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직까지 보건의료 분야에서 명시적으로 개방을 요구한 국가는 중국 등 몇 개 국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형병원자본의 국내 진출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장을 희망하는 미국 등의 시장개방 압력은 특정 분야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 규범을 관철하여 시장개방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2001년 기준으로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간 57개소, 일반 병원급 의료기관 28개소, 요양 및 특수 병원이 24개소, 군병원 21개소,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 보건기관 3,400개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기관을 제외한 실제 진료가 주요하게 이루어지는 공공의료기관은 130개소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보면 2001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8.1%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하는 미국조차도 공공병상 점유율이 1996년 현재 33.2%에 이른다는 점을 볼 때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가 매우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DJ 정부 출범 이후 공공병상의 절대적 규모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전체 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여 5년 만에 1/5 이상 비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 1) OECD Health Data, 2002
또한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상당수가 그 기능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고 공공성 확보를 위한 체계나 기전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민간의료기관과 기능의 차이를 찾기 어렵다. 일부 국립병원을 제외한 국립대학병원이나 지방공사의료원 등은 공공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성과를 주요한 평가의 근거로 설정하고 경영수지 개선을 가장 핵심적인 병원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DJ 정부 이후 더욱 심해졌는데, 지방공사의료원의 경우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지역 내 의료급여 대상자의 의료수요 중 상당 부분을 담당하였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저소득층 의료이용 보장의 마지막 보루 역할마저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경영 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공공병원을 매각하거나 민간에 위탁 운영하면서 유사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평균진료비가 유사해지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공공의료의 취약성은 예산 규모에서 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OECD 국가의 경우 평균적으로 보건의료예산만 중앙정부 예산의 14%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인 반면, 한국은 보건복지예산에서 따지더라도 2001년 현재 3%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사회 전체에 유래 없는 실직과 고용불안을 가져왔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각종 사고, 심장질환, 자살 등이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암 발생의 증가까지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실업 당사자 및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런데 불안정 노동의 증가가 가져온 건강의 위험은 실직자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강도의 강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누적된 스트레스와 물리적 부하의 증가를 해소하지 못한 채 과다한 노동강도에 의한 반복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미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작업조직의 개편과 무한 경쟁기전의 도입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자본은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로 노동조직을 재편하고 성과급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무한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노동자의 자기 통제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서 작업조직을 완전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IMF 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적 연대 또는 지원체계를 약화시키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 수준의 약화를 가져온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건강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점차 누적되고 있는 건강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며, 보건의료의 특성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장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선차적으로 요구되는 과제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체 진료비의 50% 이상을 비급여 또는 본인부담으로 해결하면서 은밀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의 재원 마련의 사적 구조를 통제하지 않는 한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따라잡기 어렵다. 공공의료기관이 일정한 예산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비급여 구조가 확대 재생산되는 한 원천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총자본의 부담을 높이고 의료보장 수준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적의료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재원구조를 사회적 통제 하에 두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민간보험 및 영리법인의 도입을 저지하는 것이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달성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간다면 민간보험의 도입의 근거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그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민간보험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확실하게 저지하지 못한다면 보건의료의 사적 성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공공의료의 자리는 더욱 왜소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의 이용 및 건강에 있어서 빈부격차의 심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중소병원의 몰락을 포함한 대형병원자본 중심의 재편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공공보건의료가 확대 강화해야 할 근거 및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명해내는 작업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해야만 가난한 사람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이윤창출 행태를 폭로하고 그러한 행태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대다수 민간병원의 의료행태가 왜곡되어 있고 불필요한 곳에 과다한 의료자원이 집중되어 있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의 확대는 결코 저질의 의료를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필요에 따라 양질의 적정 의료를 제공하자는 것이고 국민 전체로 보아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의제를 선점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정세적 조건에서 공공의료의 확대를 구체적인 일정으로 올려놓는 작업이 쉽지 않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내년 총선을 계기로 일정한 사회적 의제화가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향후 10개월 동안 보건의료운동 진영이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흐트러진 조직을 정비하고 내부 이견을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작업에서부터 가능한 한 전문가 풀을 확대 강화하고 각종 매체 및 교육선전 도구를 활용하여 사회적 의제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준비된 활동만이 실제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주장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