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을 맞이하여 여야 대선 주자들 모두 노동법 개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는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경영상 해고1)를 일삼는 대기업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문 앞으로 달려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훌륭한 광경이다. 그러나 이 북적되는 광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법의 보호에서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공식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지만 현실에서는 배제된 사람들.
대선 주자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노동운동 진영의 요구안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먹고 꼼꼼히 찾아야 보인다. 저 구석 한 귀퉁이에,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문구 안에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이들은 노동법의 모법(母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5명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극히 일부 조항들만이 예외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따라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하루 24시간 밤새워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연차휴가를 단 하루도 주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고,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단 한 푼 주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배제된 이들 스스로도 이 사실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선 주자들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이들을 모두 잊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1,000만명이 넘는다.2)
그렇다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상황이 나을까? 출퇴근길 지나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상점들, 식당들, 소규모 공장들. 어디에나 노동자들이 있고, 이 사업장들 중 많은 수는 5인 이상 사업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도 앞의 1,000만명과 다를 바 없다. 법적으로만 보면, 이들은 정규직이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정규직이다. 대부분의 영세 업체에서는 근로계약서 자체가 작성되지 않으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인 셈이다.
이들에게 언론과 정치권이 연일 쏟아내는 비정규직법, 경영상 해고,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는 어떻게 비춰질까? 어쩌면, 이들에게는 ‘고용 의제’니 ‘불법 파견’이니 법적 다툼을 벌이는 광경도 부러울 수 있겠다. 적어도, 그 다툼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는 쓰고 일하는 노동자일 테니 말이다. 근로계약서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 한마디가 곧 노동법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부러워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기에, 이들에게 경영상 해고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들에게는 경영상 해고를 당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대선 주자들이 분주히 노동조합들 사이를 오가며 ‘노동’을 이야기 한다. 간만에 세간의 이목이 ‘노동’에 집중되니, 기분이 좋아야 당연한 것인데. 이 꿀꿀한 기분은 왜일까? 복잡한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노동법인가. 누구를 위한 노동운동인가.
1) 기업이 경영상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행하는 해고를 통상 ‘정리해고’ 라고 칭한다. 그러나 노동자도 사람이고, 사람을 정리한다는 표현은 왠지 꺼림칙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리해고’라는 단어 대신 ‘경영상 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2) 통계청 2012년 7월 고용동향 조사결과 참조
법의 이면
전기원 노동자 사망과 산재유발자 한전의 법적 책임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전기가 없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냉동실의 음식들은 모두 녹아버리고, 당장 컴퓨터를 켤 수조차 없다. 캄캄한 방안에서 책이라도 읽으려 하면 촛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핸드폰은?
전기를 공급해 주는 자와 이를 유지하는 자의 관계
전기세만 잘 내면 전기를 쓰는데 지장이 없는 세상, 우리는 한번쯤 높은 전봇대에 올라 전기 줄을 보수하는 헬멧을 쓴 노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이 그 전기를 공급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노동자는 한국전력의 정규직 노동자로 여긴다. 이들이 한 달에 1명 이상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기억하자.
헬멧을 쓰고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은 전기원이라 불린다. 공급될 전기를 각 가정과 각종 건물에 무사히 연결시키기 위한 배전설비의 설치, 보수, 운영에 이들이 없다면 전기사용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전력 소속이 아니다. 전국의 1,200여개(2011년 기준)의 전기공사업체의 소속으로, 상용 또는 일용직의 형태로 근무하는 한마디로 하청 노동자들이다. 한국전력이 배전설비관련 사업을 발주하면 이를 수주한 전기공사 업체들이 전기원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관리하게 된다. 결국 전기를 공급하는 자와 유지시키는 자는 여러 차례의 하도급을 거쳐 만나지만, 이들은 안전관리에 대해 직접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이다.
2만2천9백 볼트 전기선에 흐르는 사연
22,900볼트 전류는 언제나 전기선을 타고 흐른다. 여기서 포인트는 ‘언제나’ 이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전기원들은 전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된다. 왜 이들은 위험천만하게 전류를 흐르게 해놓고 일을 할까?
2012년 3월 전기공사협회 회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전이 지난 1994년부터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배전작업시 시행해 온 직접활선공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직접활선공법은 작업자의 감전과 추락위험성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배전공사 현장에 작업정전 제로화 및 감전 제로화를 위해 시급히 간접활선 및 가송전공법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1)
‘활선’은 전기가 살아있는 선을 말한다. 직접, 간접, 가송전 모두 무정전 상태의 작업이지만, 직접은 말 그대로 배전공이 보호구를 착용하고 직접 전선을 만지는 공법인 반면, 간접은 스틱이나 로봇 등을 조작해 공사를 진행하고 가송전은 전력을 따로 연결해 작업선을 사선으로 만든 뒤 공사를 진행한다. 딱 봐도 직접활선공법은 너무나 위험하다. 일본의 경우 무려 1985년부터 직접활선공법을 버리고 간접활선공법을 사용해 안전사고 ‘제로’를 달성하고 있다. 2)
안전에 관한 의무가 있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 그들마저 공법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니, 안전사고의 위험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알리면 하면 폐업을 감수해야 하는 업체의 현실로 인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기원 노동자에게 남게 된다. 제대로 된 산재 통계하나 갖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24%의 원가절감의 대가는 가혹하다. (직접활선공사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는 24%라고 한다.)
<초고압 송전선로 활선공법 및 관련장비 개발을 위한 조사연구, 한국전기공사협회, 2002
직접활선공법의 장점에 유일하게 ‘작업의 안전성’이 빠져있다.>
그런데 2005년, 한국전력은 ‘직접송전공법(전선이선공법)’ 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한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을 한전에서 사들여 전체 현장에 도입하게 된 것인데, 현실에서는 전선이 좁은 간격으로 설치되어있어 신기술 사용 시 감전사고 등이 더 발생되는 실정이고, 특히 신기술 사용으로 인한 산재 처리가 되면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산재신청이 어려운 실정이다.
산재유발자가 된 한국전력
거기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또 어떠한가? 한전의 ‘무정전 배전공사 시공업체 관리절차서’를 보면, 총 23조까지의 규정 중 10조부터는 전부 안전관리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전기원 업무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함은 한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규정만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면 패널티를 줄 뿐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은 전혀 없어, 이는 업체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전은 그동안 전력업체 선정기준 추정 도급액은 늘리되 상시보유 노동자는 늘리지 않아 소규모 업체의 폐업을 유도하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양산해왔다. 그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일용직으로, 다단계 최하층으로 편입되어 일을 하게 된다. 안전을 넘어 생명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이동이다. 이 과정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무하니 필연적으로 재해율은 늘어만 간다.
<2000년 이후 한국전력 배전현장 연도별 산재처리현황, 이미경의원_ 산재 공식통계(요양승인 일자 기준)를 기준으로 발주자가 한전, 한국전력 등으로 되어 있는 재해현황임>
<재해분석을 통한 배전선로 활선작업 공종별 위험지수 평가, 2011, 한국전기산업연구원-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90일 이상의 재해손실 일수의 노동자들이 전체의 62%로 절반이 넘게 차지하는 사실은, 그만큼 전기공사업의 재해강도가 크고, 위험한 작업임을 나타낸다. >
결국 한전이 전기공사 업체에게 제시한 기술로 인해, 노동자들은 94년부터 1차 안전위협, 05년부터는 가중된 안전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모자라 대량의 구조조정의 위협까지 시달리게 되었다. 한 달에 한명 이상이 죽고, 하루에 한명 이상은 재해를 당한다. 그 재해마저 중상 및 사망자가 다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기원들은 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도급업체 노동자일 뿐이다. 한전은 정말 전기원 노동자의 수많은 재해에 책임이 없는가. 자신들이 발주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경영에 필요 없는 요소인가.
전기원 노동자들이 한국전력과의 사용종속관계에 대한 보다 많은 증거들을 수집하고 사실관계들을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하수급에게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도급인(발주처, 원청)과의 근로관계를 인정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전력의 도급인의 지위를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전력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7항이 2011.7.25. 개정되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 ⑦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 수행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개정 2011.7.25><제6항에서 이동, 종전 제7항은 제9항으로 이동 2011.7.25>
1. 설계도서 등에 따라 산정된 공사기간을 단축하지 아니할 것
2. 공사비를 줄이기 위하여 위험성이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공법을 변경하지 아니할 것
⑧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급인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위생시설에 관한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수급인에게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적절한 협조를 하여야 한다.<신설 2011.7.25>
위 개정 규정에 따르면,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 수행을 위하여 설계도서 등에 따라 산정된 공사기간을 단축하지 않아야 하며, 공사비를 줄이기 위하여 위험성이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공법을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전력이 현재 도입하고 있는 신공법이 안전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음이 확인된다면, 이에 대한 법률적 문제 제기를 통하여 한국전력의 책임을 논하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의 마련을 요구할 수 도 있다.3)
하청이 더 많이 죽는 게 당연해 졌나
언제부턴가 산재사망 기사를 보면 하청노동자인지, 원청은 어디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지난 8월 14일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4명의 노동자 중 3명도 하청노동자였다. 대기업이 무재해로 인해 산재보험료를 오히려 더 적게 내는 현실을 감안하면 위험한 업무들은 거의 하청업체로 넘겨졌음이 확실하다. 그로 인해 기존의 원청, 도급업체가 갖고 있던 안전에 대한 책임이 하도급업체로 넘어갔다. 그 책임을 떠넘긴 결과는 비정규·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한전은 관리지침, 기술지정 등으로 모든 업체들을 관리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한전에 있는 것이다. 한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철로 보수공사를 하다가 사망한 하청노동자,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이마트 하청업체 노동자 등 이제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하청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그리고 이들 노동의 장소적, 물리적 통제권은 여전히 그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에 안전책임을 지워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살핀 바와 같이 실제 주요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실태를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청노동자의 사망은 원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4명이 죽어도 100만원의 벌금을 내면 그만인 이마트가 과연 앞으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겠는가?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로 4명이 죽어도 대국민 사과한다고 언론플레이는 하면서 정작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유족은 거들떠도 안보는 GS건설은 정말 이 일과는 무관한 것인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의 책임있는 안전관리가 세계 1위의 산재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린 산업구조 속에서, 제도적으로 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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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원 노동자를 아시나요? http://old.laborhealth.or.kr/32489
1) 실적 부풀리기 등 허위신고업체 등록취소, 전기에너지 뉴스, 2012-3-24
2) CN뉴스, 한전 원가절감에만 혈안-사고위험은 나몰라라, 2012-04-02
3) 전기원 노동자 노동안전보건 실태와 한국전력의 책임(유성규,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