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5일,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오후 6시, 퇴근시간 붐비는 사람과 차를 헤치고 서울대 연건캠퍼스에 도착한다. 한적한 교정과 달리 교육관 강당은 사람으로 붐빈다. 행사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 들뜬 얼굴로 지인과 대화하는 이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자료집을 읽는 이들이 시야를 채운다. 그 사이로 캐런 메싱 선생의 백발이 빛나고 있다.
<공감 격차 줄이기 : 한국과 태나다의 경험과 과제> 강연회 장소에 직접 오지 못한 이들을 배려해 강연회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번 강연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주최 단체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메싱 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단상에 올랐다. ‘Thank you very, very, very, very, very much.’ 환영하는 청중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후,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보이지 않는 상처(Invisible that hurts)’라는 그룹의 이름을 강의 슬라이드에 띄운다. 본인이 함께 일해 온 특별한 조직으로, 대학, 노동조합, 여성운동이 함께 만든 공식적 파트너십이라고 소개했다. 법학, 인간공학, 커뮤니케이션, 심지어 춤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있다니 흥미로웠다.
본격적 강의에 앞서 거시적 정치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노동자를 언제든 동원하고 손쉽게 해고하는 현실은 한국이나 캐나다나 매한가지라고 느껴졌다. 메싱 선생은 노동자 한 사람을 생산요소의 한 단위로 여기며 비용최소화를 추구하는 경제학의 논리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며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서 이는 결코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노동자에게 갈수록 가혹해지는 세상에서 특히 여성노동자가 처한 위험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40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는 작업속도가 더 빠르고 면밀히 통제되는 근무환경에서 일하며, 자기 자신과 업무를 부끄러워하고 하찮게 여긴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그 사회의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세계화된 자본 권력이 활개치는 전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 노동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강연의 본론이 시작되었다. ‘관리자나 연구자가 여성의 노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는다.’ 제목 아래에 기술자 두 명, 늑대 이미지와 마주한 식당 점원, 마트 계산원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속 노동자는 모두 서 있고, 대부분 여성이다. 메싱 선생은 여성 노동자가 비가시적인 고통을 받는 경우를 크게 (1) 다른 이와 함께 공동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 (2) 업무와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 (3) 일하는 내내 서있어야 하는 여성노동자 문제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화면의 그림 세 장이 각각 여성노동자의 고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알아챘다.
첫 번째로 공동작업(teamwork)하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메싱 선생은 펜으로 까맣게 지웠다가 다시 고쳐 쓴 근무시간표를 보여줬다. 개별 노동자가 신청한 휴가는 무시되고, 거의 매일 변경되는 복잡한 근무 일정에 여성 노동자가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병원 간호사도 마찬가지, 유연한 노동력 분배랍시고 매번 근무스케줄을 변경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같은 근무조에 속했던 간호사 두 명이 다시 만나 함께 일하게 되는 빈도가 한 달에 겨우 한 번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 사이의 협업은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빈번하게 변경되는 스케줄 때문에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기타 업무를 인수인계 하는데 드는 품과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은행 노동자의 사정도 비슷하다. 매주 새롭게 익혀야 하는 업무 매뉴얼의 양이 방대해서 혼자는 알기 어렵고 여럿이 분담해 공부하고 서로 도와주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근무스케줄을 짜다보니 어떤 날에는 나머지 노동자들이 모두 초보라서 숙련된 선임노동자 홀로 고분군투하는 일도 벌어지게 된다. 이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로 볼 수 있지만, 일을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이런 종류의 ‘보이지 않는 노동’은 연구자에게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두 번째 주제로, 직장 생활과 가족 돌봄을 병행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메싱 선생은 출근 시간이 매일 달라지는 콜센터 노동자 예를 들었다. 콜센터에서는 출근 당일부터 모레까지의 교대근무 일정만 공지된다. 그 이후의 출근 시간은 알 수 없다. 그러다보니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노동자는 갑작스레 동료와 근무 일정을 바꾸거나 베이비시터와 약속시간을 조정하는 일이 많다. 노동자 30명을 조사했더니, 근무 조정 시도 횟수가 일주일 평균 180회가 넘었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이다. 이러한 조정이 잦아질수록 베이비시터의 일정도 복잡하게 바뀌고, 베이비시터는 물론 이들이 돌보는 아동까지 연쇄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콜센터 노동자, 베이비시터, 노동자의 자녀 등이 힘들어하는 상황은 일정 조정에 실패한 노동자 가운데 누군가 지각 또는 결근을 해야 비로소 드러난다. 이 때 관리자는 지각과 결근의 원인을 여성노동자의 고용주를 위한 비가시적 노동에서 찾기보다, 그들의 개인적 자질 혹은 불성실한 태도를 탓한다. 이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는 여성노동자가 많고, 연구 참여자들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다고 했다. 공감격차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메싱 선생은 노동자의 절망적인 상황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운송설비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들으니 위로가 되었다. 청소노동자들 역시 근무 일정 조정을 위해 여러 동료들과 연락하는 노동, 즉 비가시적 노동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독특한 대응 방식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연결망 안에서 활약하는 몇몇 ‘중심’ 노동자였다. 여러 동료들의 변경 요청을 받아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중심 노동자의 모습이 ‘연대의 지도 그리기(mapping solidarity)’를 통해 드러났다. 이들은 공식적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개발해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료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었다. 메싱님은 이들의 노하우를 정리하여 안내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노동조합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돕는 연구자에게 유용한 방법론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다른 사례를 더 들려주었다. 주인공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싱글맘이고, 낮에는 아이의 치료 스케줄이 많아서 야간에 근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나마 함께 사는 여동생이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아이를 돌보아 준다. 하지만 퇴근한 이후에도 좀처럼 잠을 잘 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큰 문제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직장 동료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이 여성노동자가 틈틈이 잘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주었다.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서 근무환경이 조금 나아지고 고용주 또한 이런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사례를 분석하여 논문으로 투고했는데, 학술지 편집자가 언어 수준이 낮다며 노동자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메싱 선생은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를 만날 기회가 적은 연구자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공감격차라 생각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서서 일하기에 관한 것이다. 메싱 선생은 서서 일하는 것의 의미를 먼저 짚었다. 가만히 고정된 자세로 서 있기부터 걷기, 뛰기, 나르기, 기대기 등 서서 일하는 형태는 다양하고, 캐나다 퀘벡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남녀 모두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이 더 높았다. 메싱 선생은 남성보다 여성이 서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식당 서빙, 조리사, 계산원, 판매원, 간호조무사 등이 대표적인 직종이다. 함께 ‘서서’ 노동자의 모습을 관찰하며, 이들이 얼마나 자주 벽에 기대는지 허리나 무릎을 몇 번이나 주무르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들 중에는 자신이 부지런히 일하는 중이고 언제든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힘들어도 서서 일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주류 학계의 관점은 다르다. 학계에서는 ‘앉아서 일하는 것은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 입식 추천, 의자를 주의하라’는 등의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큰 책상 앞에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사진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몸에 꽉 조이는 정장을 입은 이 여성은 환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한 인간공학 학술지에 실린 것으로 서서 일하기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메싱 선생은 저명한 인간공학자와 나눈 대화도 소개해주었다. 그 학자가 서 있는 노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길래 오랜 시간 박물관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면 허리가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공감하면서 개와 동행하는 박물관 걷기(museum walking)의 효과를 연구해보면 좋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연구를 하거나 사무를 보는 이들에게는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제조업이나 서비스 제공 현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 인간공학자에게는 자기에게 요리를 가져다주는 식당 노동자의 서있는 노동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보다 개와 함께 걷는 연구를 먼저 떠올리는 작태는 그 인간공학자가 유난히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와 직접 대화하지 않거나 직접 노동 현장을 관찰하지 않을 때, 연구자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공감격차라 했다.
마지막으로 메싱 선생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송을 통해서 마트, 은행, 서점 등에서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도 하고, 근무 일정을 조정해주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한편 메싱 선생은 최근의 미투 운동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 자신, 그리고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기보다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은 순차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메싱 선생이 두세 문장 발언한 후 곧이어 시민건강연구소 김명희 선생이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메싱 선생이 영어로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통역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웃고는 했지만, 나는 한국어 통역을 듣고서야 농담의 뉘앙스나 강연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여성 노동자가 겪는 문제에 대한 나의 지식과 정체성에서 오는 공감격차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공부와 반성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공부와 반성은 여성 노동자와 소통하며 공감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
이야기의 힘
노동건강연대 특강 : 당신의 건강과 정의
반쪽의 과학,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노동건강연대는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일을 맞아 지난 4월 3강의 연속강좌를 열었다. 사회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의 문제도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지난 봄호에 이어 강좌를 지상으로 만나보고자 한다.
여성노동을 이야기하자
『반쪽의 과학』 은 책의 제목입니다. 노동과 건강에 있어서 젠더차이를 가장 잘 분석하고 현장과 잘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책입니다. 오늘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여성, 젠더 차이라고 하는 것, 사회 안에서 역할이나 가치가 달라지면서 여성의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이러한 차이가 잘 밝혀지고 있는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신문사기자를 하다가 88년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저의 연구나 관점은 사회학에서 시작해서 보건학과 만나는 과정입니다. 석사논문은 자동차산업 부품공장에 들어가서 노동과정을 연구하는 주제였는데 남자들은 기계, 성형, 금형 같은 일을 하고 4,50대 동네아주머니랑 저랑 패킹작업을 했는데요.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여름이었는데 머리를 감으면 시커먼 먼지가 나와요. 사람들은 막걸리에 돼지고기 먹으면 먼지가 다 쓸려 내려간다고 했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박사논문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를 만나서 우리사회 발전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했죠.
토론토에서 공부할 때는 의학, 간호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연계하여 배웠어요. 현장하고 항상 연결된 곳이었죠. 연구결과가 나오면 기업용, 노동조합용, 전문가용으로 자료를 만들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성, 여성의 노동과 건강은 왜 이슈가 되지 않을까요. 여성이라는 기준점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건강에 취약한 쪽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예요.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얘기는 왜 최근에서야 알려졌을까요.
여성의 노동, 노동력의 여성화는 새로운 건강 위해 요인이 있어요. 감정노동은 주요하게 부각될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입니다.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도 높고요. 감정노동의 요구가 높아지는 데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많아지면서 폭력, 성희롱 등이 늘어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요. 일과 삶의 조화가 어려워요. 신체적 위험요인,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이 결합하고 있죠. 이제까지는 분리되어 있었어요.
여성의 노동과 관련하여 요즘 떠오르고 있는 개념을 말씀드릴게요.
친밀노동과 돌봄노동
친밀노동은 최근에 나온 이야기인데 노동을 하면서 만지거나 감정이 개입되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는 노동을 말하죠. 가정에서 행해지건 밖에서 행해지건 여성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네일아트, 간병, 가사노동 등입니다. 주관적이면서 밀착되는 형태로 노동이 이루어져요.
돌봄노동은 구분이 좀 어려운데 간병,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원 등 남을 돌보는 직업이죠. 돌봄노동은 제3세계 여성들이 제1세계로 가서 하녀나, 유모 등으로 많이 일하고 있어서 이주 여성노동자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 친밀노동과 감정노동은 건강문제가 많이 겹칩니다.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일자리는 부족하고 임금은 낮고, 고용관계가 3자간의 관계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보험 적용이 잘 안 되고 있죠. 가정이 노동현장이 되고 업무시간이 불규칙하고 장시간 노동인 경우가 많아요. 돌봄 대상자와의 관계에서 폭언, 폭력, 성희롱 문제도 심각합니다. 감정적 소진도 심각하죠.
『감정노동』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책의 원제는 ‘관리된 심장’이예요. 심장을 관리해서 노동을 수행하고 그를 통해서 회사가 이윤을 얻는 거죠. 저자가 미국사회를 잘 분석해놓았어요. 감정노동도 종류가 다양한데 판매직은 웃으면서 일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노동도 있습니다. 길에 ‘돈 받아드립니다’ 붙여놓은 플래카드나 종이들 가끔 보잖아요. 이분들은 부정적인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고, 심판원, 판사 등은 중립적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죠.
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긍정적 감정노동을 하는 여성들입니다.
연구자의 처지에서는 아직도 감정노동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TV프로그램에 자료를 만들어준 적이 있는데 판매직 여성이 우울증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감정노동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얼마나 깊게 하는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에 따라서 부조화가 많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르다
서비스직 안에서도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릅니다. 남성은 시말서, 경고, 정직 같은 통제방식이 많고, 여성들은 시말서가 많긴 하지만 공개사과 형식도 많아요. 개인적인 모독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연구결과에 나옵니다.
여성의 직종을 보면 상담, 승무원, 백화점판매직, 콜센터 등인데 여성들은 감정노동도 힘들지만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고객의 편에 서서 나무라거나 조치를 취할 때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고객의 감정적 요구와, 관리자의 감정적 요구를 얼마나 받는가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남성노동자들은 실제 신체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노동자들은 폭언과 물리적 폭력 모두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은 비교는 안 해 봤지만 외국보다 훨씬 하대받는 문화입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하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죠.
외국에 좋은 사례가 많아요.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당신이 한 말이 녹음되며 폭언, 폭행, 성희롱 등이 있으면 제재를 가한다’ 는 말이 나와요.
4,50대 여성노동자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특히 많아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죠. 병원 간병노동자를 면접해보면 하루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병원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가사노동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현실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어요. 현재 법제도는 출산, 육아, 보육 정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대상에 한정되어 있죠. 휴가나 휴직도 대기업, 공무원 정도만 적용을 받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예요. 노동시간이 줄어야 집에 가서 무얼 해도 체력이 남아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근골격계질환도 요즘 많이 얘기하는데 사무직도 많지만 공장도 많아요. 법을 보면 무게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커다란 물건을 옮기는데 중심을 둔 것이죠. 무게는 덜 나가지만 횟수가 많은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직업병은 인정받기 어렵게 되어 있어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남성노동자의 경우
같은 직업명을 갖고 있어도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가.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건강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직업에서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릅니다. 청소라는 직업에서도 남성은 기계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창틀을 닦는 작업을 하죠.
최근 요양보호사 면접을 할 때 여성노동자만 만나다가 남성이 한명 왔어요. 이일을 왜 하시냐 물었더니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왔대요, 그러면서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이 든대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4대 보험도 되고 하는 일도 별로 없더라… 하는 거예요. 가시면 뭐 하시냐 물어보니까 목욕한번 시키고 얘기하다가 집에 온다고 해요.
여성 요양보호사들은 온통 가사노동에 잔심부름을 다하는데 말이죠. 남성들에게는 요리, 빨래를 시키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을 안 시킨 거겠죠.
그 남성은 요양보호사 하다가 경영을 배워서 자기가 차리겠다, 남성만 쓰겠다고 하더군요. 남성이 힘은 좋을지 몰라도 좀 부족한 게 있지 않겠나 물어보니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같은 남성이 있다, 그들을 시키면 목욕도 시키고 일도 잘할 거다’ 하더군요.
한국은 산재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일 때문에 병에 걸렸습니다’ 하고 산재신청한 비율을 봤더니 신청에도 남녀차이가 있습니다. 승인에도 차이가 있고요, 근골격계직업병을 보면 여성은 5%, 남성은 16%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에 대한 처리방식도 여성은 71.7%가 개인이 해결한다고 답했어요. 남녀모두 산재신청을 안 하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방식은 여성이 훨씬 높아요.
남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과 어린이집 여성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을 판단할 때 어떻게 볼 것이냐 어렵습니다. 여성들이 불평불만이 많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래서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거라고 말을 하죠.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질환 비율을 보면 남녀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산재승인을 받으려고 할 때 여성노동자가 아프다고 하면 부부문제나 가정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노동 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반쪽의과학』 저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첫째 과학적 연구라고 하는데, 과학이라고 하면서 평균치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데 주로 여성이나 취약계층입니다.
둘째 과학적 엄밀성을 따지는데 통제가 잘 안 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을 과학적 엄밀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죠. 다양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셋째 사회적 환경요인과 노동환경이 건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이 같다, 연령이 같다, 소득이 같다 는 전제 아래 보기 때문에 잘 안 보입니다.
넷째 연구비 심사를 어떻게 하느냐도 달려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에는 연구비가 많이 가 있어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죠. 유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석을 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주지 않아요.
현장에서 요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왜 대학생들이 대학 선생 말을 안 듣고 유명한 멘토들 찾아다닐까요.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어서 현장을 잘 모르고, 새내기들의 고민을 모르죠.
캐나다에서 연구할 때 보면 사회학, 생물학, 보건학, 환경학 연구를 같이 합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이 어디에 배치돼서 노동과 건강을 연구해야 하나 고민하죠. 교수의 논문을 평가할 때 지역사회가 참여해서 평가하고 지역사회에서 대학이 무슨 연구를 하고, 예산을 줄까를 주민이 참여해서 결정합니다. 한국도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생겼는데 정치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하는 돌봄노동이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보이면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어요. 존중, 임금, 지위 전부 낮아요. 내가 필요해서 돌봄노동자를 불렀는데 저 사람이 없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물어야죠. 젠더차이라고 하는 것도 여성이라는 공통의 요구가 많은가 봐야 하죠. 젠더가 하나의 기준이 돼서 남녀를 가르는 게 아니라 주요하게 사회집단을 그룹핑하는 기준이 돈이 있나, 나이가 어떤가, 지역적 차이 등이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고 할 때 공통점이 있어요. 요구가 상당히 비슷하겠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연구자들이 연구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3강 : 홍삼 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