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최고 형량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규제는 기본적으로 예방적 규제이기에, 이것의 위반 사항은 부작위(不作爲)의 범법 사항으로 취급되어, 법적 최고 형량과 관계없이 법원에서 선고하는 양형 수준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즉, 법상의 최고 형량이 높게 책정되어 있어도 선고되는 형량이 낮기 때문에 처벌로 인한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가 처벌되지 않고 유예될 뿐 아니라, 벌금 수준도 낮게 선고된다. 행정벌칙이라고 할 수 있는 과태료 역시 그 수준이 높지 않아, 현실에서 과태료로 인한 산업안전보건 예방 효과는 크지 않다.
한편, 규제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포괄적 책임을 물어 엄정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사업주가 스스로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이를 위해 주로 행정적 인센티브와 포상 및 기업 이미지 고양 등의 방법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일정한 규모와 능력을 가진 사업주의 경우 구체적, 기술적 의무 중심의 명령형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자율 안전보건관리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 제도의 효과가 제대로 평가된 적은 없다.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가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자율 안전보건관리 제도의 도입은 오히려 사업주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호에는 노동안전보건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처벌강화 방안과 효과적 인센티브 구성 방안을 살펴본다. 두 가지를 병렬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역시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벌 강화 방안이다.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센티브는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몇 주 전부터 사무실도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의외로 - 전태일 40주기를 직접 준비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 분주하였다.
일간지에서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오늘의 전태일을 찾겠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가난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제조업(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를 찾아야 한다, 면서 기자가 전화를 했다. 얼마 전까지 공장에서 일했고, 노조의 열성 조합원이었던 청년이 떠올랐지만, 그는 올해 여름 대학생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자는 하소연을 했다. “20대 초반 나이에 공장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만 보더라도 40대 남성노동자들이 젊은 축에 속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신문사가 2010년의 청년 전태일을 찾았는지, 공장이 아닌 다른 현장에서 찾는 것으로 기획을 바꾸었지는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공통점이 많은 이를 찾고 싶은 마음은 알 것 같지만, 40년의 시간차를 무시하는 것은 무모한 것 아닐까?
‘2010년의 전태일’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서비스 산업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10대, 20대 노동자들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회나 정보가 그들에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자우편함에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노동단체 활동가들에게 묻는다며 설문지가 한 통 도착해있다.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비정규노동자대회>와 문화제가, 11월의 첫주 일요일에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전태일 40주기’ 수식어를 달고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린 늦가을의 저녁, 자리를 잡고 보니, 비슷한 파마머리에 같은 조끼를 입은 수십 명의 ‘아줌마’ 노동자들과 한데 앉아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길어서 따라할 수가 없네.”
“진짜 사장이 고용해라 비정규직 철폐 투쟁 라고 하는데요.”
“응 맞어 맞어 진짜 사장이 해야지, 중간에서 남 일한 거 빼먹는 것들, 아주 불쌍한 것들이야” “어디서 일하세요?”
“청소, 지하철. 새벽 5시에 나와서 일하고, 여기 또 나왔더니 힘들어. 더는 못 앉아 있겠네.”
계속되는 집회발언과 사회원로 소개에 지쳐가던 아주머니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내일이면 다시 ‘남 일한 거 빼먹는 불쌍한 것들’에게 잘리지 않기 위해 쓰레기통을 비우러 가시겠구나.
노동자대회에 앉아있다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가 보다. 주먹을 치켜든다고 다 같은 조합원이 아닌가 보다. 구호가 길어서 따라하지 못하는 참가자가 유난히 많았던 집회가 저물고 있었다.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 깃발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있다 (출처: 참세상)
일주일 후 다시 같은 자리에 와 있다. 깃발과 깃발 사이마다 같은 점퍼, 같은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로 광장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깃발이 없고, 소속이 없으니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앉다. 지난 주 비정규직대회 때보다 뻘쭘하다. 헤매다가 빈틈을 찾아 무대가 보이는 곳에 앉았다. 어깨가 닿은 옆자리 여성노동자가 자꾸만 바라본다.
“관심 있어서 보려고 왔는데 앉을 데가 없네요.”
“예, 우리 조합원인가 해서…” 웃는다.
주최 측은 전태일의 이야기를 짧은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전태일이 남긴 일기 한 구절 한 구절은 그대로 노랫말이 되어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품은 세상이 얼마나 넓었는지,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공연은 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들과, 결단을 앞둔 전태일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며칠 후면 시작될 부자나라들의 이벤트, G20 을 공격하려는 이날 집회의 목적이 잊혀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뮤지컬에 이어진 동희오토 노동자의 절규는, 전태일을 찬양하는 일은 쉽지만 비정한 현실의 착취를 직시하고 몸을 던져 깨뜨리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결단을 요구한다는 감상적 후기를 남기고야 말았다.
두 주 연속 꽤나 긴 집회를 쫓아 다니면서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도 피곤했다. 전태일 버튼을 가방에 달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집을 2만 5천원이나 주고 샀지만, 그 마음을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6년을 싸워서 비정규직 이름을 털어버린 기륭노동자들의 그 서러움을 다는 모르고, 용역들에게 듣는 욕이 끔찍하게 싫지만 회사 앞 노숙농성을 포기할 수 없는 재능교육 조합원들의 분노를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이름 뒤에 숨어서 연대를 말하는 것은 깃털만큼 가벼운 일인데, 얼마를 나누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진 것 가운데 무엇을 버릴 수 있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 끝 -
가을호가 늦어졌습니다. 10월 말, 11월 초에 여러 가지 행사들이 이어지면서 기왕이면 이들까지 함께 담아 내보내자는 편집위원회의 욕심이 지각 사태를 낳고 말았습니다. 독자들께서 애타게 기다리셨다고 확신하면서 (^^), 늦어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니 그 기다림에 대한 조금의 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이벤트라는 G20 행사로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외국 손님이 보실 감나무에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고정시키고, 한국의 전통미를 알리기 위해 고등학교의 콘크리트 담벼락에 곱게 돌담 문양을 그려넣는 기상천외함을 보며, 개그맨들은 뭐 먹고 사나 걱정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들만 바빴던 것은 아닙니다. 올해로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됩니다. 전태일 다리가 만들어지고, 성대한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모두들 많이 바빴습니다.
전태일을 기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활동가의 <시론>으로 가을호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태일의 40주기에도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지켜야만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법의 이면>은 ‘5년 동안 안 해본 것 없이’ 싸웠던 기륭 노동자, 수 년 동안의 피 말리는 법정 투쟁 끝에 겨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낸 현대차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전합니다. 또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진폐환자들의 현재 진행형 고통과 역시 절박한 투쟁의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편 ‘건강과 인권’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옮긴 <이야기의 힘>에서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갈등과 투쟁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진실을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용광로에 빠져 숨진 청년노동자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GS 건설 크레인 전복사고로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노동건강연대가 주최한 [기업살인운동 간담회] 지상 중계를 <특집1>에 담았습니다. 이는 연중기획 [한국의 노동안전보건행정] 제 3부와 이어져, 규제의 실질적 집행을 위해 처벌 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특집2>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제 3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제시했습니다.
<특집3>강화와 인센티브 부여라는 두 가지 접근방법을 살펴보게 됩니에서는 진보적인 해외 연구자들의 초청 강연 현장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의 파견법이 가져온 심각한 사회상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미국의 노동-보건의료-환경운동-지역사회 연합 구축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강연을 해주신 일본과 미국의 교수진들의 헌신과 열정을 지면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본에서 오신 연로한 교수들은 다음 날 새벽에 비행기를 타야하는 데도, 저녁식사까지 거른 채 늦게까지 질의응답을 계속하며 우리와 경험을 나누려 애쓰셨습니다. 미국의 슬래틴 교수는 마침 59번째 생일을 맞아 강의 참가자들과 함께 조촐한 생일파티를 벌였고, 강의 전에 성수동 제화노동 현장을 둘러본 레벤스타인과 슬래틴 교수는 보건의료노조에서 받은 강사료를 노동건강연대에 기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지면을 통해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국제연대의 가능성은 <해외동향>에 실린 방콕 안로브 참가기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본 없는 드라마’로 칭송받았던 칠레 광부 고립사건의 숨겨진 진실과 일본의 자살 문제 대응 과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갑니다. 남아있는 2010년,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동과 건강>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저희 발길이 멀리까지, 그리고 깊게 미칠 수 있도록, 독자들께서 저희를 불러내고, 야단쳐 주시길 바랍니다.
2010.11.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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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이름 뒤에서 헤아려본다 /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노동과건강>은 2010년 연중기획으로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바람직한 노동안전보건 행정은 어떠한 것인지 모색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봄 호에서는 지방분권 촉진위원회의 지방이양 결정의 문제점과 현행 노동안전 보건 체계 및 행정의 문제점을 개괄했고, 여름호에서는 현직 역학조사관으로부터 미국의 경험을 들어보고 유럽연합 산업안전보건국이 발간한 현황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을호 에서는 강조점이 다른 두 가지 접근법, 처벌 강화와 인센티브 강화라는 방안을 조망해보고자 합니다. 이 두가지가 배타적으로 작동해서는 안되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놓여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두 가지 다른 접근법의 특징들을 잘 이해해야 현실의 맥락에서 이를 효과적인 실천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처벌 강화와 경제적 인센티브라는 두 가지 접근법을 살펴보기에 앞서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사업주 처벌 강화와 다양화를 통한 법 집행의 실효성 확보 방안
‘유럽에서 직업안전보건 향상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 방안 검토’ 소개
/ 강희태, 산업의학전문의
<기업살인 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담회 지상중계
-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알려야 변화가 온다
지난 2010년 3월,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이하 '산재예방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부가 추진할 예정인 산재예방 정책의 청사진에 해당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제8조는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산재예방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부는 1991년부터 산재예방 계획을 세워왔다. 이 글에서는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부 제3차 산업재해예방계획을 논함 / 임형준
지난 분기에는 해외의 진보적 연구자들의 초청 강연이 두 차례나 열렸습니다. 해외 연구자 초청 행사가 이렇게 연거푸 열린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 강연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보고합니다.
일본의 파견법 문제
미국의 노동안전 보건
“모든 영향을 줬는데 지금 나 몰라라 하는 그것이 잘못됐고”
- 진폐환자 김상전의 이야기 / 전수경
법의 ‘그늘’을 ‘양지’로 만드는 직접고용투쟁 / 공길숙,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의연
말하고, 조직하고, 투쟁하라! - 안로브(ANROAV)를 다녀와서
/ 김인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칠레 산 호세 광산 붕괴 사고, ‘각본 없는 드라마’? / 박진욱,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일본, 노동안전보건 문제로서의 자살 대책 / 스즈키 아키라
G20국가의 건강과 산업안전보건의 수준 / 조성식, 산업의학전문의
이야기의 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지난 11월 3~4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건강과 인권> 국제세미나에서
<노동과건강> 김명희 편집위원장이 '건강불평등과 건강권'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다수의 청중들은 보건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알림 : 노동건강연대에서는 상시적으로 기관지 구독회원과 후원회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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