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자리를 거의 놓친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산재 사망자는 2,209명에 달한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는 절대 안 된다,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안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1월 10일에는 정부신년사를 통해 국민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산재는 줄고 있을까. 감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정부가 강조한 원하청 구조에서의 사망, 위험의 외주화 현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에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글에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 해 동안 주로 원하청 관계 안에서 일어난 사망사례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원·하청 관계로 인한 사망사고 범주는 아니더라도 불안정 고용형태인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망, 언론보도만으로는 산업재해를 분명하게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들(과로사, 원인불명),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노동자의 자살 사례들도 함께 제시했다.
1. 원·하청 구조에서의 사망 사건
원청 기업
사상자
사고 일자
사고 경위
사망
부상
(원청 기업 미상)
1
-
1월 8일
오전 11:30
광주 북구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작업 중인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0)씨의 머리에 1.9t 무게의 공사자재가 굴러와 충격하여 사망.
※ 산재은폐 의혹, 업무내용 외 작업으로 인한 사망
LG Display
1월 9일
오후 11:15
경기도 파주시 공장에서 협력업체 직원 김모(51)씨가 화물승강기 점검 수리 중 승강기 모터에 빨려 들어가 사망.
※ 2015~2016년 산업재해 미보고 사업장(고용노동부) : 11건 미보고
포스코건설
1월 10일
오후 21:30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거푸집을 철거하던 중 일용직 노동자 이모(46)씨가 45층(135m)에서 추락해 사망.
한화건설
1월 16일
오후 13:30
부산대학교 제2기숙사 신축공사현장 시멘트 작업을 하던 이모(55)씨가 6층 창문 밖으로 추락해 사망.
영광군 발주
2
1월 17일
오전 14:41
전남 영광군 군남면 교량 건설현장에서 철근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근더미가 무너져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6)씨와 주모(66)씨가 철근더미에 매몰되어 사망.
※ 다단계 하도급 : 발주(영광군) ⇒ 도급 ⇒ 건설업체 2개
대림산업
오전 16:15
여수시 중흥동 대림산업 용성공장 출하장에서 25톤 화물차 적재함에 천막을 씌우던 중 노동자 정모(58)씨 사망.
※ 사고차량기사는 출하업무를 맡은 대림 코퍼레이션이 아닌 일반차량 기사
동국제강
1월 19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고가 사다리차를 타고 천장 조명 공사를 하던 중 하청업체 노동자 2명이 추락(1명 사망, 1명 중상)
현대자동차
1월 24일
오후 20:22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1)씨가 프레스기에 몸을 넣어 이상 여부를 확인하던 중 몸이 끼어 사망.
포스코
4
1월 25일
오후 16:00
포스코 포항제철소 산소공장에서 냉각탑 칠러 설비 내 ‘폴리’교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질소가스가 누출돼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사망.
대우
조선해양
2월 20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김모(49)씨가 건조 중이던 선박의 도장용 발판을 추가 설치하기 위해 자재 이동 중 약 25m아래로 추락하여 사망.
(원청기업 미상)
2월 25일
오전 10:18
전남 진도군 군내면의 조립식 저온 창고 건물에서 보수작업 중이던 일용직 노동자 이모(57)씨가 7.8m 높이에서 추락해서 사망.
현대중공업
3월 1일
오전 07:10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안벽에 정박된 16톤급 소형작업선 갑판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8, 선장)씨가 배와 안벽에 연결된 밧줄을 풀던 작업을 하던 중 다른 선박의 밧줄이 강타하여 얼굴 앞면이 배 갑판 모서리에 부딪쳐 현장에서 사망.
※1년 단기계약을 하고 세미리그선(시추선)을 관리·감독하는 하청업체
3월 2일
오후 14:00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 주거타운인 A동 55층에서 작업 중 안전 작업구조물 1개가 추락하여, 구조물 안에 있던 이모(50)씨 등 노동자 3명이 사망하고, 지상에 있던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6)씨도 이 때 추락한 안전 구조물에 맞아 사망.
3월 7일
오전 11:10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지반 붕괴로 39t 콘크리트 펌프 차량이 전복되어 펌프카 타설 파이프에 맞아 하청업체 노동자 유모(47)씨 사망, 이모(52)씨 중상.
롯데 베르살리스
엘라스토머스(주)
3월 14일
오전 12:35
여수산단 내 합성고무제조 관련 포장공정에서 작업장 청소를 하던 중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2)씨가 로봇형 기계에 맞아 사망.
※ 원청업체: 롯데 계열사
(주)부영건설
3월 16일
오후 14:38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부영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최상층 옥상 방수작업 중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41)씨가 30m 아래로 추락해 사망.
삼성물산
3월 19일
오후 14:10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여암리 소재 삼성전자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15미터 높이의 천장 작업용 작업발판에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탑승해 작업발판을 이동시키던 중 작업발판과 함께 추락하여 노동자 김모(23세, 대학생)씨 1명이 사망, 4명은 부상.
※ 3개 헙력업체 함께 공동 작업
3월 21일
오전 10:46
부산 북구 화명동 산성터널 공사현장 진입로의 금정구 방면 3.5㎞ 지점에서 터널 천장에 가로 10m, 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 중 콘크리트 구조물 일부에 맞아 노동자 이모(55)씨 사망.
(주)영풍
3월 26일
영풍 석포제련소 침전조에서 침전물 유화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노동자 장모(69세)씨가 미끄러져 비소를 흡입하여 사망.
※ 산재은폐 의혹
부산시 발주
(재하청)
3월 27일
오후 15:39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수정터널 상부 공원화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김모(66)씨가 9.5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3월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부영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갱폼 작업발판이 탈락하여 협력업체 직원 한모(67)씨가 13m 아래로 추락해 사망.
※ 적발사항(211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주요위반 사항
: 사법처리 78건, 과태료 3억 6천여만 원, 사용중지 44대, 시정조치 115건
- 현장 출입자에 대한 관리시스템 부재로 인한 각종 안전보건교육과 건강진단이 누락
노사협의체 협력업체 사업주와 노동자, 안전·보건관리자 등의 참여 누락
이마트
이마트 다산점 무빙워크 점검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21)씨 기기에 몸이 끼여 사망.
아주대 발주,
풍림산업
3월 29일
수원 영통구의 아주대학교 간호대학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8)씨가 물탱크에 깔려 사망.
어반
종합건설(주)
3
3월 30일
인천시 부평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장에서 용접작업 중 불티가 천장 단열재에 튀면서 화재발생. 지하 1층에서 작업하던 이모(56)씨 등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명 사망, 4명 부상
3월 31일
오후 14:30
광주시 남구 임암동 대형아파트 지하 공사현장에서 외벽 보강을 위한 미장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장모(56)씨가 3.8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
4월 6일
강서구 명지동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20층에서 외벽공사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8)씨가 콘크리트 타설 장비인 호퍼에 맞아 사망.
(주)코엔텍
4월 9일
울산 남구 산업폐기물 처리업체 코엔텍의 협력업체 노동자 정모씨(61세)가 소각로 안에서 발판 설치작업을 하던 중 낙하물에 머리를 맞아 그 충격으로 비계에서 떨어져 사망.
부산시 발주,
대우건설 외 3개사
4월 15일
오전 10:35
부산 사하구 감천동 천마산 터널지하차도 건설현장에서 옹벽지지 H빔 철거 작업 중 아래에 있던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65)씨를 발견하지 못하고 해체·낙하시켜 H빔에 깔려 사망.
4월 24일
오후 17:30
부산 사하구 구평동에 위치한 선박 부품 제조업체의 협력업체 노동자 주모(29)씨가 홀로 배관 파이프를 연결하는 용접작업을 하던 중 아르곤 가스에 중독되어 사망.
SK
브로드밴드
4월 26일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홈앤서비스) 대전지역 고객센터 소속 설치·수리기사 유모(38)씨가 아파트 계단 중간단자(IDF)함에서 포트 연결 작업을 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사흘 후 사망.
※ 산업재해 의혹
안산시 위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4월 29일
오전 10:50
안산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펌프 수리업체가 유입펌프의 고장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펌프 인양 작업을 하던 중 현장에 있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9)씨가 5m 가량 높이의 하수처리장 관로로 추락하여 사망.
5월 8일
오전 10:07
청주시 흥덕구의 대형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24층 외벽작업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 지모(56, 중국)씨가 추락하여 사망.
H건설
5월 11일
오전 11:40
경기도 안양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1층 공사현장 축대가 무너지면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4)씨가 대형 돌에 깔려 사망
한진중공업
5월 12일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비계가 무너지면서 하청업체 노동자 1명 사망, 3명 부상.
A금속
5월 14일
진해 마천공단 A금속 공장에서 노후 지붕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최모(55)씨가 추락하여 사망
KT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북부 관악 소속 수리기사 이모(36)씨가 작업 중 재래시장 지붕에서 추락해 사고 발생 8일 후인 22일 사망.
한화
종합화학(주)
5월 17일
오전 09:37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한화종합화학(주) 냉각탑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진모(27)씨가 케미칼 투입 작업을 진행하던 중 실종되었다가 저수조 내 설비에 숨진 체 발견.
한국전력공사
오전 10:00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 내 345kV 송전탑에서 세척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49)씨가 35m 아래 지상으로 추락하여 사망.
한국
도로공사
5월 19일
오전 08:47
충남 예산군 신양면 대전∼당진 고속도로 당진 방향 40㎞ 지점(당진 기점) 차동 2교 난간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52)씨 등 4명이 철제난간이 부러지면서 추락하여 모두 사망.
5월 23일
오전 07:40
7월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4세)씨가 27층에서 떨어져 사망.
5월 25일
오전 09:20
부산 사하구 구평동 제조업체 공장에서 지붕 교체작업을 하기 위해 하청업체가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 주모(44)씨가 20m높이에서 추락하여 사망.
울산시 발주
5월 27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옹벽 설치 작업현장에서 토사붕괴로 협력업체 노동자 1명 사망, 2명 부상.
5월 28일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E1 공장 증설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직원 김모(45)씨가 저장탱크 위에서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5월 28일, 인천 남동공단 소재 도금업체 소속 하청 노동자 김모(23세)씨가 시안화수소 작업 중 중독되어 뇌사. 6월 18일 사망
※ 다단계 하도급 : 5~6차
6월 7일
오후 13:40
울산 현대중공업 사업장 내 제7안벽 화물선(VLOC) 워터발라스트 탱크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4)씨가 탱크 안 통로 아랫부분의 먼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몸이 핸드레일 밖으로 빠져 5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주)부원건설
6월 26일
오후 13:16
세종시 새롬동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에폭시 작업과 내부 페인트 작업을 병행하던 중 폭발. 이 화재로 하청업체 노동자 2명 사망, 3명 부상.
6월 30일
오전 07:50
전남 광양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2제강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정모(38)씨가 철강 제품의 일종인 슬라브의 이물질 제거 작업 중 3톤 크레인 장비에 몸이 끼어 사망.
7월 5일
오전 08:15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남부 제주지사 소속 노동자 김모(54)씨가 전신주에 걸린 나뭇가지를 제거하는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
7월 13일
오전 08:00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 백운밸리 아파트건축공사현장 C3 블록 지하층에서 배관 누수공사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유모씨(58)가 천장과 리프트 사이에 목이 끼여 병원 후송했으나 이틀 후(15일) 사망.
세종시 발주
7월 16일
오후 16:21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보도블록 작업을 하던 이모(39)씨가 열사병 증세로 쓰려져 병원 입원 후 사망.
※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 체온 43도
7월 17일
오후 14:17
전주 완산구 효천지구의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박모(66)씨가 무더위로 정신을 잃고 5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
※ 원청업체에게 폭염으로 휴식을 건의했으나 묵살
전력공사
7월 18일
오후 16:30
군위군 의흥면 수북3리 60번지 주변에서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 노동자 이모(54)씨가 고소작업 차량을 이용해 농사용 전기의 고압 증설공사 작업 중 전기에 감전되어 사망.
세원셀론텍
7월 25일
세원셀론텍 창원공장에서 제품이 넘어지면서 작업 중이었던 협력업체 노동자 진모(60대)씨를 쳐 1.7m 높이에서 추락하여 사망
GS E&R
8월 8일
오전 08:48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장자산업단지 석탄화력발전소 점검 작업 중 분진 폭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45)씨가 사망, 4명 부상.
국방부 발주,
8월 12일
청주 공군 17전투비행단 군전용 활주로 개선공사 중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모(51)씨 굴삭기 운전석에서 사망.
※ 특수고용노동자, 폭염 속 25일 연속근무, 주 63시간 장시간 노동(근무 총154일 중 휴일 13일)
8월 15일
오전 11:35
경남 양산 아파트신축공사 현장에서 전선을 건물 안으로 옮기는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유모(40대)씨 사망.
8월 16일
오전 09:10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상업시설(지하2층, 지상5층) 지하 1층에서 승강기 교체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41)씨가 머리가 끼여 사망.
동문건설
8월 17일
경기 평택시 칠원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일용직 노동자 김모(54)씨 사망, 1명 부상
세일전자
9
8월 21일
오후 15:43
인천 남동공단의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세일전자 공장 화재로 협력업체 노동자 양모(53)씨 등 9명이 사망, 4명 부상
현대제철
8월 27일
오전 09:35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냉각수 집수조의 전단계인 지하수로를 고압 세척기로 청소하던 중 하청업체 노동자 강모씨(61)가 심정지로 사망
삼성반도체
9월 4일
오후 13:55
경기도 용인시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6-3라인 지하 1층 화재진화설비 밀집시설에서 이산화탄소 유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24)씨 사망.
에쓰 오일
9월 5일
오전 11:20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소재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 탈황공정의 반응기 촉매 교체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박모(45)씨가 반응기 내부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중흥건설
오후 17:27
중흥건설이 짓고 있는 진주혁신도시 C-3블럭 주상복합시설 신축현장에서 방수작업을 하던 근로자 4명이 유기용제 증기에 중독되어 박모(62)씨 1명 사망, 3명이 부상.
한국남동발전
영흥
화력발전소
오후 15:23
옹진군 영흥면 영흥화력발전소 제2연료 하역부두에서 접안시설 보수 작업을 하다 해상으로 추락해 실종된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이모(49)씨와 주모(42)씨 사망한 채로 발견.
9월 6일
김제시 옥산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용직노동자 유모(51)씨가 사다리 위에서 추락하여 사망.
LG 유플러스
9월 8일
오전 10:20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의 도로 맨홀 아래서 광케이블 정비작업을 하던 LG 유플러스 협력업체 노동자 2명 중 김모씨(59)가 저산소증으로 사망, 1명 중태.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발주
SK건설 외 14개사 (SK건설, 삼성물산, 한화건설 등)
9월 13일
오후 15:40
부산 강서구 대저동 부전·마산 복선 전철 지하 공사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D씨(32, 캄보디아)가 콘크리트 분쇄 작업을 하던 굴착기 체인 타이어에 치여 사망.
9월 27일
오후 13:20
경기 화성시 봉담읍의 복합건물 공사현장에 설치된 2m 높이의 이동식 비계 위에서 작업을 하던 중 A씨(58, 우즈베키스탄)가 추락하여 사망.
9월 28일
오전 11:50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의 아파트에서 외벽 페인트 칠을 보조하던 일용직 노동자 A(25. 러시아)씨가 18층 높이의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
여수화력발전소
10월 4일
오전 11:16
전남 여수시 중흥동 여수산업단지 한국남동발전 여수화력발전소에서 먼지 집진 주머니 필터 교체 작업 중 폭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7)씨 사망, 동료 4명 부상
※ 무재해 달성 : 2382일(2012년 03월 28일~2018년 10월 04일)
삼성
디스플레이
10월 11일
오후 17:50
충남 천안시 성성동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에서 기계 설비를 옮기던 협력업체 노동자 이모(39)씨가 건물 5층에서 떨어져 사망.
SPP조선
10월 18일
오후 15:00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있는 SPP 조선소에서 크레인을 사용하여 공장 철골 구조물을 해체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최모(62)씨가 30m 높이의 크레인에서 추락해 사망.
예천군
10월 19일
오후 14:13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산 일원에서 전기톱 작업 중 김모(남, 60대)씨가 쓰러지는 나무에 맞아 15m 아래로 추락해 사망.
10월 23일
오후 13:00
악천후 속 건물옥상에서 AS작업을 하던 KT 협력업체 KTS북부 소속의 20대 수리기사 장모(24)씨가 추락하여 사망
※ KT 퓨처스타 프로그램 참여 1년차 노동자 사망 : 청년교육 및 취업지원 연계프로그램) :
한국GM
10월 25일
한국 GM 소속 신차 출고센터에서 차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협력업체 화물운전 기사 송모(60대)씨가 센터 내에서 차에 치여 사망.
CJ대한통운
10월 29일
오후 22:10
대전시 문평동의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유모(33)씨가 물류 트레일러에 치여 사망.
현대
미포조선
11월 1일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강모(53)씨가 외판사상(글라인더) 작업을 하던 고소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에 옮겼지만 사망.
11월 5일
오후 15:26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산호동 소재 마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58)씨가 12.8미터 높이 H빔 구조물에 앉아서 작업하다 이동하던 중 추락하여 사망.
11월 10일
오전 09:46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탱크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탱크 안에서 본드 작업을 하던 중 폭발하여 외국인 국적(베트남) 노동자 2명 사망, 2명 부상
포스코건설 컨소시엄
(포스코·SK·대우·현대건설)
11월 15일
경기 안양시 ‘평촌 어바인 퍼스트’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최모(54)씨가 레미콘 차량에 깔려 사망.
※ 현장신호수 미배치
11월 20일
오전 10:28
의정부 동의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주차타워 9층에서 기둥에 볼트를 박는 작업 중 추룩하여 하청업체 직원 윤모(26)씨 사망.
11월 21일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이모(51,여)씨가 흙을 나르는 25t 트럭에 치여 사망.
포스코 기술연구원
11월 28일
오후 13:08
부산 사상구 학장동 폐수처리업체에서 황화수소로 추정되는 유독가스에 질식돼 협력업체 노동자 3명 사망 – 이모(52), 조모(48), 임모(38)씨
12월 7일
송악 부곡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엔진부품 생산 하청업체에서 LPG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김모(55)씨 사망, 1명 부상.
KDB
산업은행
12월 10일
오후 18:30
KDB산업은행 별관 화장실에서 하청업체 IT노동자 김모(39)씨 사망(과로사 추정)
※ 다단계 하도급 : 산업은행(갑) ⇒ SK C&C(을) ⇒ 하청업체(병)
서부발전
12월 11일
새벽 03:22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타워 4c 5층에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24, 현장설비운용팀)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
※ 산재은폐의혹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주)반도건설, (주)대우건설
12월 14일
오전 11:00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공공주택지구 공사현장에서 빗물관 공사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박모(55)씨가 토사 붕괴로 사망.
12월 30일
제주 서귀포시 동홍동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일용직노동자
김모(42)씨가 추락해 사망.
2. 아르바이트
구분
8월 6일
대전의 택배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 김모(23)씨가 컨베이어벨트 청소작업 중 감전되어 10일 후(8월 16일) 사망.
※ 산재은폐 의혹 : 사고 하루 후(7일), 관리자가 물류센터 노동자를 모아 놓고 사고은폐 종용 및 거짓진술 강요
강원도
개발공사
(알펜시아 리조트)
9월 1일
'알파인 코스터'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심모(24)씨는 일을 마치고 해당 기구를 타고 내려오다 좌석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9일 뒤 사망.
김천시
오후 13:24
경북 김천시 삼락동 김천시문화예술회관 공연장 무대 위에서 소품에 색칠을 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정모(여·24)씨가 지하 6~7m 아래까지 내려가 있던 승강무대로 추락하여 사망.
3. 돌연사, 원인 미상
현대중공업 자회사 모스의 하청업체 소속 크레인 기사 곽모(63)씨가 크레인 상부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 후 사망(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미)
※ 산업재해 의혹 과로사 추정(최근 3개월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5시간 이상)
세아특수강
1월 29일
오후 13:25
포항철강공단 내 세아특수강 협력업체 노동자 유모(37)씨가 선재제품 보관장 3문 입구에 쓰러져 사망(돌연사).
※ 불법파견 의혹
: 세아창원특수강 사내하청 노동자 1인 시위 및 1,500여 장의 불법파견 증거를 제출 → 처리결과(고용노동부 불법파견 아니라고 판단)
홈플러스(주)
4월 3일
홈플러스 김포 풍무점 시설유지 관련 업무 총책임자인 하청업체 (주)맥서브 소속 노동자 이모(47)씨가 기계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 가슴통증 호소 후 사망.
※ 산재 은폐의혹 : 시위, 영업방해, 언론보도 등을 금지한다는 합의서 제시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북부 소속 유씨 사망 (심장마비 추정).
삼성중공업
11월 13일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차모(47)씨 사망 (원인 조사 중).
4. 자살
아시아나
항공
7월 2일
오전 09:34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을 공급하는 협력업체 사장 김모(57)씨가 타협력업체 공장화재로 기내식 공급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서해
종합건설
7월 24일
서울동부지법원 시공을 맡았던 서해종합건설을 상대로 비리의혹을 제기하고 하도급 갑질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여온 하청업체 직원 김모(52)씨 자살.
계절에 한 번씩,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의미로 <노동과 건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책 발간이 늦어지고 매번 ‘반성문’을 쓰면서 책을 시작하게 됩니다. 4계절이 아니라, 여름/겨울만 있는 곳이라면 부담이 좀 줄어들 텐데 하는 헛된 상상도 해봅니다.
계절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노동건강연대가 줄곧 이야기했던 ‘기업 살인’. 이번 호에도 다시 한 번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올 한 해 안타까운 산재 사망 소식이 들릴 때마다, 노동건강연대 기업살인대응팀에서는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회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지훈 활동가가 ‘2018년 기업살인 – 원하청 관계에서의 사망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우리 회원인 강원대 법대 전형배 교수의 초청 특강을 지상 중계한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해 본다’에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업살인 특집 원고는 사실 여기서 끝나야 했지만, 현실에서 ‘기업살인의 마감’이란 없었습니다. 12월 청년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라는 글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은 미투 운동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직장갑질119, 시민건강연구소의 활동가, 연구원이 모여 노동의 관점에서 미투 운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내용을 ‘미투의 시대, 일하는 여성의 세상에서 본 미투’라는 제목으로 지상 중계합니다.
<노동과건강>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 문제를 다룬 해외 연구나 법제도, 사회운동을 꾸준히 소개해왔습니다. 이번 해외연구 동향 코너에서는 이주연 회원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소개해주었고, 박진욱 회원은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투쟁 사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한편 2018년 하반기에는 보건의료운동과 관련한 여러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찾은 페미니스트 노동보건과학자 캐런 메싱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이나단 활동가, 미국의 의료영리화를 비판한 책 ‘코드 그린’의 북토크 행사에 참여한 한지훈 활동가가 각각 후기를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민건강연구소의 김정우 연구원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원고 편집을 마무리하는 동안,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보 전진이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건강과 안전을 지킬 권리를 담고 있는 건조한 법 조항, 문구 하나하나마다 한 사람의 생명과 가족들의 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다른 김용균이 생겨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노동건강연대가 나아갈 길이고 우리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노동과건강 2019 첫 호
편집국에서
특집 기업살인
2018년 기업살인 – 원하청 관계에서의 사망을 중심으로 / 한지훈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해 본다 / 전형배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 전수경
기획좌담
미투의 시대, 일하는 여성의 세상에서 본 미투
김명희 / 편집위원장
이 을 / 한국여성노동자회
전수경 / 직장갑질119
김성이 / 시민건강연구소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효과가 있었나 / 이주연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끝나지 않는 투쟁 / 박진욱
노동자와 대화하지 않거나, 노동 현장을 관찰하지 않을 때 연구자에게 일어나는 일
: 공감 격차 줄이기 / 이나단
국가부도의 날: 누구의 위기였고 누구의 기회였나 / 김정우
의료영리화가 지워버린 간호사의 목소리 - 『코드 그린』 북토크 참관기 / 한지훈
김용균의 죽음이 남긴 질문, ‘안전’이 아닌 ‘정치’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 이상윤
기관지 전체를 pdf 파일로 다운받아 보실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하기 - 노동과건강_2018_봄_94호.pdf )
편집위원회로부터 김명희
대담 문재인 정부의 노동행정, 느낌과 진단
누구 편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나 -노동행정과 근로감독을 보는 눈
강태선 김명희 정해명 전수경
기획 I 기업살인, 기업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김명희
기업살인법연구모임
정우준
박진욱
전수경
기회II 환경 지역 건강이 만나는 현장을 찾아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이 생각하는 환경과 건강
임지애
문제가 일어난 지점에서 문제와 씨름하며 태어난 석탄화력반대운동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전수경
지상중계 직장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 - <직장갑질119> 의 카톡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직장갑질119 스탭
해외소식
오바마는 매년 성명을 발표했고, 트럼프는 하지 않았다 -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Workers' Memorial Day)
서평
이주연
대표의 편지
감추어진 현실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운동
이상윤
(다운로드 하기 - 노동과건강 - 2015 봄호.pdf )
생각나누기 ㅣ 장그래에게 쓰는 편지 (노동과건강_91_01 장그래에게 쓰는 편지.pdf)
기획 ㅣ국제 심포지엄 "침몰한 생명과 안전 무엇이 필요한가"
정상 사고와 페리여객선 참사 ; 국제적 관점에서 본 산업재해의 원인과 결과
현대중공업의 해외투자자 노르웨이, 네덜란드 연기금에 대한 대응활동
노동과건강_91_04_현대중공업의 해외 투자자 노르웨이 네덜란드 연기금에 대한 대응활동.pdf
일하다가 사망한 하청 노동자, 왜 자살이라 하나
(바로가기 : http://old.laborhealth.or.kr/40313 )
일본의 석면피해자 국가배상 판결, 한국을 돌아보다\
노동과건강_91_06_일본의 석면피해자 국가배상 판결, 한국을 돌아보다.pdf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것은 3강 ‘법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과 4강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알바,하청노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학문적 운동적 연구와 노동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영역을 두루 경험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안전과 환경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이어서 지금 이 시간 노동현장의 최전선에서 부조 리와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는 두 노동자와의 대화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법을 공부하든 그렇지 않든 노동과 건강의 현실 너머 정치사회적 맥락을 이 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편집자)
법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 굴뚝 청소부와 미친 모자장수
활동보고1 유럽방문기
베를린 런던 헬싱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가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 2013년 6월, 노동건강연대 주영수 대표와 회원 등 5명의 직업환경의와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는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베를린, 런던, 헬싱키 이 세도시를 경유하며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베를린의 산재병원, 런던의 무상의료와 그 안에서의 직업재활 프로그램, 도시하나가 커다란 공공기관과 같은 헬싱키의 산재예방정책, 그리고 이 세 나라를 관통하는 공공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새벽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새벽 올림픽대로에서 공사를 하던 중 사망을 했고 유가족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누구든 일하다가 사고로 혹은 질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의 가족은 그런 일을 처음 겪는다.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을 했다면 그 불안한 심정 중에 최소한 치료나 보상의 문제는 안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산재사망을 접해왔던 내게 왜 이제야 이런 의문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잠을 못 이룬 채 유럽에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1. 건설로 분주한 베를린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택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찾아간 식당 옆 건물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진 1. 도착한 첫날 찍은 베를린의 비계사진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비계, 고무판까지 달려있다. 떨어질 수도 없구나!>
비계를 저렇게 튼튼하게도 지을 수 있나 싶다. 서울의 너덜너덜한 비계들이 떠올랐다.
일행이 한마디 덧붙인다. 한국의 추락사는 보통 비계를 설치할 때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비계를 빨리 만들어야 공사를 시작하니 그 때 재촉을 많이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락사 1등이다. 그날 밤 한국 포털사이트에 뜬 추락사 기사를 보았다. 출장 내내 한국의 산재사망사고 소식을 계속 보았다.
<사진 2 베를린 산재병원 가는 길의 한 공사장. 한 사람이 서는 높이가 주황색 발판이다.
맨 위 칸 가운데에 검정색이 사람이다. 그 중간에 2개의 봉을 덧댐으로써 추락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독일 산재보험의 중심, 베를린 산재병원
동베를린 시내외과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병원, 입구부터 압도되고 말았다. 산책로가 보이고 많은 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3. 베를린 산재병원의 첫 인상. 위로는 헬기가 보인다.
뒷쪽으로 들어가면 아주 넓은 정원과 각종재활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
∎ 독일의 ‘산재전문의사’제도
- 산재환자는 모두 맨 처음에 한해서는, 어떠한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후 산재전문의사(DA)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 독일 전체에는 609명의 DA가 있으며, 병원마다 1명씩 정해져 있다.
- 베를린 지역의 경우 9,500여명의 의사가 있고, 이 가운데 DA가 150여명 있다.
∎ 동베를린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UKB (Unfallkrankenhaus Berlin)
- 1997년에 설립된 베를린의 산재병원은 연인원 22,300명 입원환자와, 65,00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20개의 진료과를 가진 병원이다.
- UKB의 경우는 ‘기본과’ 외에 ‘일반내과, 심장내과(심장질환진료),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두경부외과, 신경과(stroke진료)’ 등이 있음.
- 일반병상(한곳의 regular ward를 방문)의 경우, 1인실 4개, 2인실 12개, 4인실 2개가 있었고, 병실마다 독립적인 목욕,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 1년간 병원의 총 수입은 1억7천만 유로(=2,550억원). 일반보험에서 1억1천만 유로(=1,650억원), 노동자보험에서 6천만 유로(=900억원)를 받고 있음.
<사진4. 병원은 숲으로 둘러쌓여있고, 노동자들은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 5. 재활치료공간 - 산업재해 노동자의 재활이 특화되다보니, 그 명성으로 맨체스터 소속 등 유명 스포츠선수들도 재활치료를 받으러 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
<사진 6. 산재병원 실내체육관 - 다양한 장애를 입게 된 노동자들이 어울어져 스포츠재활을 할 수 있게 한 쪽에는 스포츠용 휠체어 등이 준비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전체 병원들 중에서 55%가 ‘적자’인데 반하여, 보통의 산재병원들은 흑자를 보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남게 되는 수입액은 직원드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거나, 시설과장비를 구입, 건물을 신증축함으로써 재투자하고 있다. 이 병원 역시 '비영리병원'으로써 수익을 어떻게 내냐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자보험에서 치료비를 지불하고, 일반 건강보험에서도 치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데 역량을 집중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진 7. 베를린 산재병원의 헬기장. 노동자가 다치면 헬기가 뜬다. 하루 평균 4회 운행한다.
모든 산재병원의 기본 모형이 헬기 1대와 이착륙시설이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곧장 응급실로 간다. >
산재 사고시 노동자를 이송하는 전용 헬기가 있다. 추락이나 급성심근경색 같은 급한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헬기가 뜬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헬기가 이륙한다. 최고급시설이 갖춰진 중환자실과 재활치료 공간, 일반 대학병원보다 훨씬 수준 높은 병원을 보았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생각났다. 산재를 감추려고 하청업체의 트럭에 실려 공장을 나간 노동자는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2. 무상의료의 나라 영국, 새로운 고민조차 매혹스러워
런던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했다. 일행 중 한명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교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너무도 손쉽게 입국이 되었다. 다른 심사도 없었다. ‘무상의료시스템 NHS(National Health Service)과 블랙교수’ 를 언급했을 뿐이었다. 공항 입국심사 노동자의 호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나중에 알았지만 블랙교수는 현재 영국의 NHS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떠나기 전 한 모임에서 영국 굴뚝 노동자의 고환암 이야기를 들었다. 지름 46cm정도의 영국의 좁은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은 어린이. 어린 굴뚝청소부들은 굴뚝에 잔뜩 묻은 검댕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는데, 물이 귀했던 당시 옷을 빨기 어려워 작업할 때는 맨몸이었다. 물로 대충 검댕을 씻어냈던 아이들의 고환주름에는 검댕이 늘 묻어있어 이들이 나중에 고환암에 걸리게 되었다. 최초로 밝혀진 직업병이었다. 굴뚝청소부들은 굴뚝 밑으로 떨어지거나 주인이 피운 연기에 질식해서 죽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르는 내내 오래된 건물로 눈이 갔고, 굴뚝들을 보며 비참한 직업병의 역사를 떠올렸다.
<사진8. 좌측 그림, 영국의 굴뚝청소부 (http://fyeah-history.tumblr.com) /
우측 그림, 굴뚝청소부의 작업 모식도 (wikipedia)>
<사진9. 런던의 오래된 건축물, 어김없이 아주 작은 굴뚝이 있다>
과로는 금물입니다
일정에 제약회사 방문이 포함돼 있다. 기업복지 시스템과 국가 무상의료시스템이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자리. 다양한 건강프로그램 설명을 듣다가 멈칫했다.
나의 질문은 이랬다. “이 회사에서도 상사와 하급자의 관계에 따라 일의 양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실제 어떤가요?”
“하급자가 일을 열심히 하면 상급자가 그를 불러다가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일을 하면 당연히 건강에 영향을 주니까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하고, 확인할 수 없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잠시 멍해진다.
런던 거리 풍경
<사진 10. 네 개 사진의 공통점, 형광조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형광조끼를 입고 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 본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입고 있던 형광조끼를 보면서 한 회사에 다니는가보다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차관리인도, 무언가 점검하는 노동자도, 자전거로 이동 중인 노동자도 여기저기 형광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 네장의 사진은 한 자리에 서서 뱅뱅 돌면서 찍은 사진이다- >
Welcome to the Education Centre!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그 안에서 직업재해와 재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아보는 자리에 7, 8명 되는 담당자가 동석을 하였다. 무상의료 시스템 내에서 노동자는 일을 하다가 다치면 산재신청 따위 없이 당연히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사진 11 . 가이앤 세인트토마스 병원 교육센터와 그곳에서 만난 영국의 유명인사 블랙( Dame Carol Black, Principal of Newnham College Cambridge 교수. 무상의료 시스템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영국의 모든 일정은 이분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보자. 영국 국민 혹은 영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자는 일반의사(GP, Geneal Practitioner)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차로 진료를 한 후 필요하면 2차로 필요한 의료기관으로 가게 된다.
<사진12 .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
내 병을 알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 헤매고, 병원비로 가족 생계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 무상의료 시스템 역사를 보면, 도입 당시 노동당 총리는 의사들의 반발에 대하여 ‘의사들의 입을 금으로 채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대타협을 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는 재정부담으로 새로운 정권이 서비스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면서 60년 동안 제도의 부정적인 면을 계속 수정해 왔다. 집도 사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의료라도 나라가 해주니 좋다는 영국 국민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이제 직업 관련된 부분을 보자. 이번 방문을 통해 현재 무상의료시스템이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핵심은 ‘직업재활’ 이다. 일반 직업보건 시스템은 크게 4가지로 나눠지는데, 병원, 일반의, 공중보건시스템,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 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가이 앤 세인트 토마스 병원(GSTT, Guy's&St.Thomas' Hospital)’에서 4번째의 시스템인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직업보건서비스(Core Occupational Health Services)의 내용을 보면,
① 피고용자 건강보호 (Employee Health Protection)
② 고용 중 건강 유지 (Health Maintenance in Employment)
③ 노동 생활의 개선 (Improving Working Lives)
④ 위탁사업체에 대한 조언 (Advice to the Trust)
⑤ 수련과 교육 (Training and Education)
⑥ 연구와 개발 (Research and Development)
같은 프로그램들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구매(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고, 영세 기업들의 경우는 이 중에서 일부만 구매하여 직업보건관리를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나 재정이 충분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예방적 직업보건서비스 인력 및 조직’을 구성하여 관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국가나 정부의 각종 법적인 요구사항이나 권고사항 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다양한 내용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볼 지점이 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이다. 산재를 막기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은 제정 당시에도 영국 내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중요한 건 산재사망이 급감했다고 사실이라고 한다. 그 법을 공표하는 자체로 예방의 효과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고예방 시스템을 강화했다. 처벌건수가 몇 건인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NHS의 새로운 실험, ‘Fit-For-Work’
<사진13. NHS의 새로운 실험, ‘Fit-For-Work’>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고, 다양한 담당자들이 오고가며 긴 프레젠테이션을 해 주었다. 많은 이들을 위한 꼭 필요한 시스템이 NHS 내로 편입되고 그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자들의 긍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 그런데 Fit For Work란?
영국 사람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그냥 병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예산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산재보험 자체가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질병 등은 직업과 관련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된 최근 통계로는 ‘노동시장에서 질병으로 인한 결근에 대한 통계(Sickness Absence in the UK Labour Market 2012)’가 있는데, 위와 같은 통계 등을 통해 직업과 NHS를 연결시켜 현재 영국은 NHS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직업적 치료와 재활을 통해 국민들이 일터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모형이 ‘Fit-For-Work’다. 핵심은 ‘조기개입(early intervention)’을 통하여 건강하고 활발한 ‘직업으로의 복귀(Return to Work)’를 꾀하는 것인데, 이를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 2010년부터 11개 지역에 ‘Fit-For-Work’ Team을 구성하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우리가 방문한 팀 역시 11개 팀 중 하나로 Leicester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14. 긴 시간동안 Fit-For-Work 모형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개해준 팀의 활동가들>
환자가 아파서 일반의(GP)를 찾아 갔을 때, 소견상 일에 대한 적합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GP는 해당 환자를 Fit-For-Work팀으로 보낼 수있다. 15명이 한 팀으로 특히 Leicester 지역의 경우 중소영세 사업장(SMEs(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연계된 환자는 ‘Fit-For-Work’ Service (FFWS)를 받게 된다. 이 서비스를 수행하는 팀은 특별히 코어팀(Core team)이라 불리우는데,
① 4명의 사례관리자(4 Case Managers, 대상자를 매주 만나고, 동기를 부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시 사업주를 면담하는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지원함)
② 1명의 직업보건간호사(1명의 Full-Time-Equivalent OH Nurse)
③ 1명의 일반의(General Practioner, 1주일에 2일 근무함)로 구성되며,
코어팀의 주요 역할로는,
① 피의뢰자(clients)에 대한 요구도 평가(Health Needs Assessment, HNA)
② 일반의(GP)와의 의사소통(communication)
③ 각종 자원들(Education Retraining, Musculoskeletal, Multi access centres-home and personal interventions, Workplace interventions, Psychological therapies)과의 네트워킹 등이 있다.
특히, 사례관리자(case manager)가 연계해주는 주요개입(main intervention) 내용으로는, 근골격계 증상치료(Musculoskeletal treatment), 정신건강치료(Mental health therapy), 중개/협상(Mediation/negotiation), 학습(Learning/new skills), 부채문제/법적문제/주거문제/개인문제(Debt/legal/housing/personal), 지지/신뢰형성(Support/confidence building), 이직/구직지원(Help to leave job/new work), 통증관리(Better treatment/understanding of my pain) 등이 있다.
발표를 맡았던 한 사례관리자는 담당 환자에게 밀착하여 상담을 하고 생활을 파악하는 활동이 감정노동이 많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의 모든 어려움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한국으로 치면 사회복지사 역할인데, 특별히 자격증 등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고,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무상의료 제도 아래서 받게 되는 영국 노동자들이 부럽다.
이 프로그램을 위하여 NHS에서는 전산 ‘Fit Note'를 개발하고, 일반의들(GPs)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과, 11개 지역에서 조정자(Co-ordinators) 시범사업을 시행하였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국가센터(National centre)를 구축하였다.
<사진 15. 영국의 현재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비하여 본 새로운 모형>
* 출처 : Black. Working for a healthier tomorrow. 2008. p78
‘Fit Note’는 일반의들(GPs)이나 다른 의사들이 ‘해당 환자의 일에 대한 적합성(fitness for work)’에 관하여 정보나 조언을 제공하는 도구이다.1) 참고로, 이 도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역할 또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다음의 조언에 따를 경우에 환자들이 일에 적합할 수 있다”거나,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② 환자의 작업 복귀를 도와주기 위한 ‘통상적인 접근방식을 표시하는 체크박스’를 이용하여, 환자의 기능적 상태들에 관하여 코멘트를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③ 의사에 의해서만 작성될 수 있으며, 내용에 대하여 전화를 이용한 자문도 가능하다.
④ 환자들은 이 ‘Fit Note’를 자신의 ‘일에 대한 적합성’, ‘상병수당’ 그리고 ‘기타 수당’ 등의 근거로서 사용할 수 있다.
⑤ 이 ‘Fit Note’는 질병에 이환된 첫 6개월 중에서, 일단 3개월의 기간만을 책임져 준다.
NHS의 새로운 시범사업을 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영국 무상의료 60년의 역사를 떠올린다. 자본주의국가 영국의 사회주의적 복지시스템. NHS를 지켜낸 영국 국민들이 존경스럽다.
#3. 우연히 밤을 샜다, 해가 안 졌다. 핀란드
비가 왔다. 찬 공기를 맞으며 도착한 헬싱키. 생각보다 도시는 알록달록하지 않다. 2012년 년 <세계 디자인 수도> 라던데…. 트램을 타고 저녁을 먹으러가는 길, 백야라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제서야 눈에 유모차가 자꾸 들어온다.
<사진16 헬싱키 트램, 유모차가 많다>
접이식 의자는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면 바로 벽에 붙는다. 유모차가 오면 누구든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애 키우면서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걸 보니 자꾸만 보게 된다. 헬싱키에 있는 내내 나는 그렇게 탑승하는 유모차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침략의 고통을 겪은 나라. 해방을 선언하고 어디보다 혼란스러웠던 작은 핀란드는 노사정의 끈질긴 대화와 사민당의 집권으로 급속히 복지국가의 선두에 선다.
핀란드 노동자들 좋겠다 무상의료에 예방시스템까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핀란드의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을 찾아 나섰다. 핀란드 역시 무상의료의 나라이다. 건강문제(산업재해나 직업병 포함)가 생겼을 경우, ‘치료서비스’는 1차적으로 일반의사(GP)가 제공하며, 필요시 상급기관(병원)으로 의뢰하거나 병원을 옮겨 집중적인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직업과 관련된 치료와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큰 틀에서 보자면, 핀란드는 직업성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치료는 누구에게나 무상의료이다. 다만 직업에 대한 건강서비스 등에 대해서는 형평성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있는 회사일수록 자체적으로 직업보건서비스를 노동자에게 시행하고 있으나, 영세규모 사업체나 자영업자처럼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건소를 찾아간다. 회사에서 투자를 하며 직업보건서비스를 키워가는 곳과 보건소의 서비스 수준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이 문제는 핀란드에서도 고민으로 남겨져 있다.
자세히 보도록 하자.
① 지방자치단체(municipalities) 수준으로, 지역보건소(Municipal health centre)가 중심에 있으며 해당 보건소가 자영업자, 농부, 영세한 사업장들에게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61%, 피고용자의 32%,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9%가 이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최소한의 필수적인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는 기초직업보건서비스(BOHS, Basic Occupational Health Service) 전략에 근거하고 있다.
② 사업장내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로서, 보통 큰 기업들이 스스로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여 자신의 직업보건관리를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1%, 피고용자의 1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③ 기업들이 바깥의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SH units)와 협약(Joint)을 맺어 사업장 보건관리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전체 사업장의 3%, 피고용자의 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④ 기업체가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와 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모형이다. 이 경우에는 기업체가 서비스 내용을 선택·구매할 수 있으며, 기업체의 재정적 능력에 따라서 서비스 수준이 결정될 수 있다. 이 모형으로 인하여 핀란드의 직업보건서비스 제공수준과 내용의 불균등성이 커지고 있다. 전체 사업장의 36%, 피고용자의 48%,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39%가 이런 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 모형 쪽으로 전환된 사업장, 피고용자, 직업보건서비스 단위들이 많아졌고(특히, 큰 기업들이 자체관리 모형에서 많이 전환하였음), 그 경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공적인 지원체계의 강화를 통한 직업보건서비스 형평성 제고가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헬싱키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 방문 중에 우리 일행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한국 사람이다. WHO에서 일하는 김록호 선생이다. 한국의 직업병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가인 김록호 선생을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의사들은 흥분했다.
핀란드 복지를 견학하러 왔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그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덕적 해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핀란드 공무원들
<사진17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원. 예상보다 더 멋진 보험제도>
출퇴근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하루에 정한 시간을 일한다는 핀란드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으로 갔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청사 건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디자인과 역사가 깃든 기념물이 공존했다. 사회보험청이 갖는 자부심이 전해졌다. 바로 시작된 프레젠테이션. 직업재활의 세계는 한국에서 보던 것 그 이상이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 국민들이 그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할까?
<사진 18. 사회보험청(KELA) 내부 멋진 건물이다>
핀란드의 직업재활과 관련된 시스템은 다양한 주체가 운영한다. 사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자가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산재보험회사(Insurance company : 우리나라의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사업주에게 보험료를 징수하여 운영하는 비영리기관, 모두 7개가 있다)’가, 건강상 문제가 있는 실업인구(unemployment with illness)의 경우에는 ‘노동부(Ministry of Labour)’가, 그 외에 나머지 상황에 있는 사람들(앞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구집단-노인인구- 등)의 경우에는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이 재원을 지원한다. ‘교육훈련 조직(Education and training organizations)’과 ‘재활서비스 제공자들(Rehabilitation service providers)’이 ‘재활요구(client & health care)’를 관리한다.
특히 직업재활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개념적 접근 프로세스’는 매우 인상적인데
① 접근단계(Access phase)에서는 ‘어떻게 서비스로 유입시키는가?’
② 초기단계(Initial phase)에서는 ‘이 서비스가 이 대상자에게 바로 지금 필요한가?’
③ 목표와 계획 수립단계(Establishing the goal and the plan)에서는 ‘이 대상자에게 어떠한 직업이 필요한가?’
④ 실행단계(Implementing phase)에서는 ‘이 계획이 실제생활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⑤ 업무단계(In the job phase)에서는 ‘이 일이 이 대상자에게 적당한 일인가?’
⑥ 결정단계(Decision phase)에서는 ‘어떻게 그 직업으로 들어가게 할까?’
를 결정하는 체계적인 접근전략을 갖고 있다.
<사진 19. 프로세스 네트워크 관점에서 본 재활 (Rehabilitation as a processual network)>
이를 위하여, 사례관리시스템(‘Job coach’ 사례관리자 배치)을 운영하고 있는데, ‘Job coach’는 위 여러 단계들 중에서 재활 대상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① 사회복지사와 함께 초기 인터뷰(Initial interview)를 하면서, 대상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job coaching의 유용성을 평가하고, 초기 목표를 설정,
② 어떻게 직업을 얻나 계획하는 단계(Planning how to get to work)에서는, 직업재활과정의 목표, 여러 직업에 대한 정보, 직업실험을 해 볼 곳을 물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③ 추후관리 단계(Follow-up)에서는, 대상자의 직업실험을 지원해 준다.
④ 필요할 경우 심리전문가의 도움(Psychologists research)을 받아서 대상자의 인지기술, 학습기술, 개인적 자원 평가를 통해 도움을 준다.
한 사람의 직업 재활을 위해 배치되는 잡 코치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새로운 삶을 함께 고민해준다. 이쯤에서 한국에선 당연히 나왔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처는 어떠한가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더 자세히 묻는다. “일부러 재활을 받기 위해 아프다고 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돌아온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함께 해결해야겠지요? 복지는 불쌍하거나 도와주고 싶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에 속한 동등한 국민으로써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받는 서비스는 국민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밤 아홉시가 넘으면 술을 안 팔아?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문화 충격은 곧 수다로 이어진다. 우린 궁금한 것도 많고 싶은 말도 많았다.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여전히 모자랐고, 맥주 몇 병 사들고 숙소에 돌아가 오늘의 일을 마저 정리하기로 한다. 편의점에 들른 우리는 황당한 소리를 듣는다.
“맥주는 안 팔아요. 법 위반이에요.”
다시 한번 들은 말을 확인한다.
“법이요?”
“네 법으로 9시 넘으면 마켓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있어요.”
그 때 우린,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정책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느라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술집에서는 마실 수 있지만, 편의점 등에서 따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은 핀란드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염분섭취를 제한했던 정책이 있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대단하다는 말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광장에서 병맥주를 들고 술을 마시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젊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헬싱키 벼룩시장 단언컨대 벼룩시장 중 최고봉!
한국으로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은 점심.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한 창고를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벼룩시장을 물으니 자신도 벼룩시장으로 간단다. 팔뚝에 커다란 문신이 새겨진 남성이었는데, 함께 한 일행은 무작정 따라가도 되냐고 묻는다. 어쩔 수 있나? 결국 그를 따라나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고 트램을 타고 30여분동안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 걷는 코스였다. 매주 다른 곳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자신은 매주 그 곳을 찾아간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으나, 왜 우리 숙소 근처로 가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따라가 보니 숙소 옆. 커다란 컨벤션 센터가 통째로 벼룩시장이 되어 있었다.
<사진 20. 매주 일요일 열린다는 헬싱키 벼룩시장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주어진 1시간 반 동안 절반도 못 돌았다. 아기자기한 온갖 그릇과 백야를 견디게 해주는 커튼이 유난히 많았다.>
1유로에 작은 가방하나를 사고, 1유로에 꼭 맞는 운동화를 하나 샀다. 국화꽃그림 액자도 1유로에 하나. 3유로를 가지고 대단한 쇼핑을 하니 기분이 좋다. 북유럽 특유의 도자기 접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뇌의 시간도 보냈다. 유난히 많던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식기류와 커튼, 상상하는 모든 것이 있는 그 곳에서 오래도록 핀란드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 싶었으나, 비행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짧은 여정이 꿈이라도 꾼 듯 얽혀 있다.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들린다,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 이런 건가.
페이스북에 여정 중간 중간 글을 올릴 때, 지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 이 세 나라를 자세히 모른다. 역사를 더 알고 싶고 제도의 맥락이 궁금했다. 한정된 시간에 다 알긴 어렵지만, 그 사회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진 않는다는 것.
부러웠다. 우리는 더 대화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일터와 사회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진 20. 함께 걷는 길 베를린 산재병원 가는 길>
1) Fit Note allows GPs and other doctors to provide more information and advice on a patient’s fitness for work - Advise that patients are "may be fit for work taking account of the following advice" or "not fit for work" / - Has space for comments on the functional effects of a patient's condition with tick boxes to indicate common approaches to aid a patient's return to work / - Can only be completed by a doctor, and allows telephone consultations / - Patients can use as evidence of their fitness for work, for sick pay and for benefit purposes. / Only cover a period of three months during the first 6 months of illness.
특집 기업살인운동 시즌2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1)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1. 들어가며
노동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만 93,29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였고, 2,1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2) 256명의 노동자가 매일 산업재해를 당하고, 6명의 노동자가 매일 사망한 꼴이다.3) 위 공식 통계는 근로복지공단 등에 산업재해로 보고된 수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자동차 사고로 처리되거나 공상 처리된 산업재해의 수치가 이에 포함될 경우, 실제 산업재해 및 사망자수는 훨씬 커질 것이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고, 전국의 각 고용노동지청에 산업안전감독관들이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에서는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과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 법제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또한 그 대안으로서 ‘(가칭)기업살인처벌법’의 입법 필요성을 검토해 보고, 그 제정 운동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지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 2011년 산업재해 사망과 처벌 실태
노동부가 2012년 2월에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1년 산업재해 사망만인률은 1.47(업무상 사고 사망만인률 9.6)이었다. 2010년 OECD 주요 국가의 사망만인률(업무상 사고)은 미국 3.8,일본 2.3,독일 2.0,영국 0.7이었다. 이 처럼, 우리나라의 사망만인율은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으며, 영국에 비해서는 무려 14배 높았다.4) (표1 참조)
<표1>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그렇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하에서 중대재해와 사망을 야기한 사업체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의 대부분이 시정 및 경고에 그쳤고, 과태료나 사법 처리되는 비율도 극히 미미하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안전 보건 지도 감독’의 사업체 수가 매년 감소하였다는 점이다. 2007년 5만 여건에 이르던 지도감독은 2009년에 이르러 17,000여건으로 급감하였다.
사망사건의 경우에도 그 처벌 수위는 매우 미약하였다. 2011년 법원에서 판결된 사망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도 실형이나 집행 유예가 아닌 벌금형이 선고되었다.(표3 참조) 우리나라에서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2008년 1월 노동자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이다. 수원지법은 당시에 시공사 대표에게 벌금형을 내렸고, 현장소장, 방화관리자 등 관리자들에게도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5) 노동자 40명이 불에 타 죽은 사건에 있어서조차, 법원은 단 한명에게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이다.
<표3> 2011년 주요 사망사건 판결 현황
3.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규정의 적용상 문제점
그렇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이 어떠하기에,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예상과는 달리,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준수해야할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업주의 제반 의무 및 조치 사항들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살펴보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다. 또한 사업주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규정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현실에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제도적 측면, 법리적 측면, 절차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가. 제도적 측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입법 취지상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적 예방 조치에 대한 계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반한 경우나 그 결과로 발생된 산재사고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사고나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에 대한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법리적 측면
현재 산재사고 및 사망사건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동시에 적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소권을 지닌 검찰은 그 처벌에 있어서 형사상 ‘행위자 책임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할 때,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체의 대표나 임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아닌 ‘간접적인 책임’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한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할 때, 사업체 또는 법인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에 있어서 그 행위의 주체로 규정되기도 어렵다.
다. 절차적 측면
현재 산재사고 및 사망사고에 대한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 사고 경위에 대한 수사와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의견만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검찰이 노동사건에 대한 전담 수사 인력과 전문적인 수사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산재사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경험은 노동부와 비교하더라도 훨씬 떨어진다. 결국, 현재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한계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4. 외국의 입법 사례 검토6)
과거 영국에서도 산재사망사고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인식하에, 그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사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산재사망사고를 단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살인죄를 적용하여 사업주 및 경영층을 처벌함으로써, 사업주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그 결과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 제정되어 2008년 4월 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영국에서 위법 행위의 대상이 되는 법률의 적용 대상은 기업과 정부기관이다. 그 직접적인 적용의 대상은 그 기관들의 해당 조직이며,(법 제1조 제4항 c) 해당 조직의 중대위반행위가 발생한 경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법 제1조 제4항 b) 해당 조직의 직접적인 법률적용 대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직의 최고경영층7)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자가 직접적인 법률 적용의 대상자가 된다.(법 제1조 제4항 c)
이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였을 경우 벌금의 상한선은 없다. 의회 지침에 의하면, 벌금의 금액은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5%에서 시작하고 대략 2.5% ~ 10% 범위에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 악의적인 경우에는 10% 이상이 부과될 수도 있다. 벌금 이외에, 법원이 범죄 사실을 지역 또는 국가의 언론에 광고하게 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공표제도”도 활용되고 있다.
영국의 사례를 검토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별개로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제하기 위한 ‘기업살인처벌법’의 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영미법계에 속하는 영국과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법 제도가 상이함을 고려할 때, 그 입법 과정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영미법계의 국가에서의 산업안전보건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에 따라 처벌이 가능한 구조이므로 강력한 벌금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륙법계의 국가에서는 고의나 과실의 판단을 법 규정에서 규정하고, 그 위반의 정도에 따라 벌금형이 결정된다.
5.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방향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매우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처벌 수준은 벌금형에 그치는 등 매우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하에서는 강력한 처벌을 강제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산재사망사고를 단속하기 위한 ‘기업살인처벌법’의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 입법화 과정에서 고민되어야 할 지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내용적 측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규정이 약하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즉 법률상 처벌 규정이 강화된다고 하여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실제로 강제될 수 있는 방안, 실질적으로 기업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처벌의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사업주가 준수해야할 의무 사항을 구체화하고 산재사망사고 발생시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방안,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하한선을 정하고 영국처럼 그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 산재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의 정보를 언론에 공시함으로써 기업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나. 입법 방식의 측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목적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을 끌어내고 이를 통하여 산재사망을 줄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의 방식에는 특별법의 제정뿐만 아니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까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보강하여 실효성 있는 처벌이 강제될 수 있다면 그 입법적 필요성은 충족되는 것이다. 만약 특별법으로 제정된다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과 같은 유형의 법률이 고려될 수 있다. 이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특별법의 제정 과정에서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보다 가중 처벌해야 하는 행위 유형이 세분화, 구체화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사망사고의 예방 법제가 되지 못하는 원인에는 노동사건의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기업살인처벌법이 제정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법 제정에 따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6. 결론을 대신하여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라”고 외치면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을 벌인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은 2003년 시작된 이래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적지 않은 제도적 성과들도 이루어 냈다.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에 마련된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강화’ 등도 이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수적 성과 이외에, 아직까지 법 제정과 관련한 구체적 흐름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산재사망에 대한 이슈화가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를 노동운동 진영의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질적 관점의 문제점과 반노동자적 정권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들은 언제나 우리 운동과 함께해온 것들이기에 이를 재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노동운동 진영 내에 이 운동에 대한 일정한 오해가 있고, 이 같은 오해가 이 운동을 더 이상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오해는 바로 이 운동을 단순히 “법 제정 운동”으로만 국한시키거나 폄하하려는 경향이다.
물론,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의 목적에는 입법화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이 더 큰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산재사망의 예방과 산재사망의 실질적 감소이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요구는 산재사망의 예방과 산재사망의 실질적 감소를 달성하기 위한 ‘슬로건’이자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 무작정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선전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구체적 요구안을 내걸고 싸움을 벌일 때 보다 효과적인 이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부터 오해를 걷어낸다면,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운동을 통해 산재사망의 심각성과 그 책임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공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2012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 제도와 처벌 사례 연구, 2009
강문대, 형사처벌의 이론적 검토와 효과에 대한 검토,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자료집, 2004
강문대,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 및 호주 ‘기업살인법’의 도입 가능성 모색, 계간 노동과 건강, 2003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1
1) 본고는 2012.2.29. 목포시의회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발제문을 요약한 것으로, 일터 3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힌다.
2) 2011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고용노동부, 2012)
3) 2011.12.22.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관내 전체 재해자 수는 3,01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117명보다 3.3%(104명) 줄었다. 그러나 질병을 포함한 재해 사망자 수는 8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명보다 32.8%(21명) 증가했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6명으로 지난해(24명)보다 64.7% 늘었다. (서울경제신문 2011.12.22.자 기사)
4) 한국경제신문 2011.7.3.자 기사
5) 연합뉴스 2008.7.26.자 기사문
6)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와 처벌사례연구, 2009 참조
7) 최고경영층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의 의미는 조직의 경영 활동을 하며, 중요 부분의 총괄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를 말하고, 조직경영 및 활동을 실제적으로 총괄하는 자를 말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세계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와 처벌사례연구, 2009 참조.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이태경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1. 영국 최초 기업살인법 처벌 사례
2011년 2월 영국의 Alexander Wright라는 한 젊은 지질학자의 죽음에 대하여 영국 법원은 Cotswold Geotechnical이라는 회사에 대하여 기업과실치사의 책임을 물어 38만5천 파운드(한화 약 6억9천6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기업과실치사1)및 기업살인법; ‘기업살인법’으로 통칭하기로 한다)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사례이다.
노동자 사망과 사업주의 책임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2008년 9월 27세의 젊은 지질학자인 Alexander Wright는 작업중 3.8미터 아래 구덩이에서 지반침하로 질식사했다. 이 젊은 청년이 2년 반 동안 일했던 Cotswold Geotechnical(주)은 1992년 건강 및 안전에 관한 자체 문서에서 1.2미터 보다 더 깊은 구덩이의 경우 말뚝 또는 지지대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규칙을 사망한 젊은 학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굴속에서 작업을 한다면 한 사람은 지상에서 감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사고 후에도 구조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적용 경영상의 실패(management failure) 책임을 물어 사업주에게 고액의 벌금형을 선고하게 되었다. 물론 이 회사는 사업주 1인지배 구조의 단순한 형태로 경영상의 책임 소재가 분명한 조그마한 기업이라 책임자가 누군지에 관해 논쟁이 되지는 않았다. 영국의 언론들도 각계의 반응을 전하면서 이 사건의 해당 회사보다 더 복잡한 경영구조로 이루어진 큰 회사의 사례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시험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업의 안전의무를 해태로 발생한 여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기소는 하였지만 처벌에는 번번이 실패한 사례가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영국이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고 적용하기까지
영국 사회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심각한 부주의로 사람을 사상케 한 기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 제정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업의 과실에 의한 끔찍한 일련의 사건이 배경이 되었다.(아래 표) 이를 단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공공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관하여 ‘살인죄’를 적용하여 사업주 및 경영층을 처벌함으로써, 사업주 또는 이사 기타 관리자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이 제정되어 2008년 4월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기업살인과 관련하여 2007년 이전 기업이 재판에 회부된 사건들(영국)>
Lyme Bay tragedy
1933년 Lyme Bay에서 카약 사고로 10대 4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책임이 있는 회사의 주인이 3년간 투옥되고, 6만 파운드의 벌금에 처해졌다.
Herald of Free Enterprise
1987년 벨기에 연안 도버 해협에서 ‘Herald of Free Enterprise’라는 페리호는 출항하고 1시간 만에 선원들의 중과실로 침몰하고 만다. 이로 인해 193명의 목숨이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되었다. 항해사 등 선원은 처벌을 받았으나 기업주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못했다.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 제정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Clapham rail disaster
세 열차가 1988년 12월 12일에 서로 충돌한 영국 최악의 철도재해로 35명이 사망했다. 철도 신호엔지니어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대리책임' 원칙하에 과실 치사 혐의에 대하여 이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Transco
2003년 에든버러 항소법원은 Larkhall에서 4명의 가족 사망에 대해 가스파이프라인회사인 Transco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기각한 사례. 단지 직장보건 및 안전법령 위반으로 회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Hatfield disaster
2000년 영국 Hatfield 지역에서 열차 충돌사고고 4명이 사망했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네트워크 유지 및 보수회사인 Balfour Beatty의 경영진에게 기업과실치사에 관한 혐의로 기소가 되었으나 임원 모두가 무죄가 되고 다fms 법령 위반으로 회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기업살인과 관련하여 기업이 재판에 회부된 사건들 (영국 외)>
그 외 1979 년 뉴질랜드의 마운트 에레 보스 사고, 1992년 캐나다 Westray 광산 폭발, 호주의 1998년 에소 롱퍼드 가스 공장 폭발 사건 모두 기업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재앙’사례이다.
3. 자본주의 기업과 기업살인법
지난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 번의 사고로 여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사망과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주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거나 일선 담당자에게만 일반 형사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묻고 넘어간 것은 한국과 선진 외국이 비슷하다. 앞선 영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영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기업이 야기한 중대 사망 사고에 대하여 기업주가 기소되어 형사처벌된것은 소수에 불과하고 처벌되더라도 실제로 벌금형을 받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업의 과실로 발생한 ‘공공재해’를 예방이라는 목표면에서는 기존 법률의 명백한 실패를 보여 주었다.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의 공통점이고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이 일어난 원인이기도 하다.
뉴질랜드는 2006년 "Corporate manslaughter: a proposed corporate killing offence for New Zealand" [2006]을 제정 논의 했고, 호주에서도 몇 개 주(빅토리아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퀸스랜드주) 의회에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Act)안이 상정되어 논의된 바 있다. 캐나다 역시 기업살인에 관한 정부입법안이 제안되었었다. 이들 법안의 주요내용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거나 다치게 한 기업주를 범죄자로 봐서 구속처벌'하는 것이다.
각국의 이런 흐름은 전 세계 100여 개국이 참가하는 '4월28일, 국제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에 까지 이어져, 국제자유노련(ICFTU)은 2003년 주제를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기업의 실질적 책임'으로 정하고 각국 정부와 기업에 이를 촉구했다. 2)
4. 한국 현실과 기업의 책임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는 바로 한국이다. 노동부 통계 2011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114명. 매일 6명의 노동자자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노동부의 2007년~2010년 6월 10대 건설회사 현장 사망자 발생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10대 건설업체(대한건설협회 기준)의 현장에서 141건의 산업재해가 생겨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해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2 살인기업 선정식 온라인 투표 화면_
http://old.laborhealth.or.kr/vote/ 페이지에 들어가시면 각 기업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1년 주요 사망사건의 판결 결과도 벌금형이 대부분이고 실형을 선고한 예는 거의 없고 그나마도 집행유예를 선고 하는 수준3)이었다. 산안법상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4)이 있고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법위반 행위를 한 경우에는 행위자와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양벌 규정을 두고 있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규정도 있다. 그러나 사업주등 법인 대표자나 관리자 등에 대한 실제 처벌수준이 벌금형 수준에 그친다면 그 법률이 가질 수 있는 예방효과는 물론이고 법규 자체의 취지도 무색하게 된다.
'기업살인법' 의 입법 핵심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안전·보건의 의무가 있는 기업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외국보다 높은 사망률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에서 기업의 중대한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기업살인법' 같은 강력한 제재가 절실히 요구 되는 것은 당연하며 다시 새로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1) manslaughter : 고살(故殺) homicide without malice aforethought (브리태니커)
영미법에서는 사람을 죽인 범죄를 통틀어 homicide(살인죄)라고 하며 이를 murder와 manslaughter로 구분한다. murder 모살죄(謀殺罪)는 사람을 죽일 의사를 사전에 품고 살해한 경우이며 manslaughter는 이러한 고의 없이 살해가 이루어진 경우다. manslaughter는 다시 voluntary와 involuntary로 나누어지며 전자의 경우 싸우는 과정에서 욱하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우발적 살인을 말하고 후자는 행위자가 제대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행동하다가 사람의 죽음을 야기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과실치사의 경우 involuntary manslaughter와 같은 개념이며 다른 입법례(뉴질랜드)에서도 corporate manslaughter의 의미는 involuntary manslaughter로 제한한다. ‘살인’이라고 변역하기도 하나 우리의 법체계상 고의가 없는 ‘과실치사’에 가깝게 해석하기도 한다.
2) 2003년 노건연 기업살인법팀 논의 자료 중
3)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2011
4)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안전조치 의무 위반 처벌규정:
67조(벌칙)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다.
66조의2(벌칙)사업주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더보기 :
1)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2)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 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 이태경,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3)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 /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심각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을 ‘살인 기업’으로 명명하고 살인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운동이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온지 길게 보면 10여년이 흘렀다.
우리는 기업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고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업주가 산재예방을 위한 행동을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지만, 그 중 한 가지로 중요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외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고위 임원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라고 밝혀져 있다. 산재예방을 잘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보다, 법을 어긴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산재예방에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산재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산재사망예방 정책이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산재 예방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포함한 고위 임원이 강력히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거나, 기업 자체에 크나큰 사회적 패널티를 부여하여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체계가 무너져 있다. 기업이 산재 예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도 전혀 문제가 없도록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면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동시에 조사를 수행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와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법원에서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죄 둘 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만이 가해져 턱도 없이 낮은 벌칙을 부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둘 이상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 앞선 범죄로 인하여 처벌을 받았을 경우 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둘째,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의하여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영세사업장 사업주만이 처벌받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직접적'으로 사인을 제공한 이에게만이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중간 규모의 기업은 대부분 작업장 안전관리자나 중간관리자가 처벌을 받게 되고, 위계 구조가 단순한 영세사업장만이 때때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물음으로써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이 아니라 형사상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사업주에게 예방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에, 산재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형사법 위반에 따른 벌칙보다 가벼우며, 사업주들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에 대해서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 사망에 대한 책임을 현재 존재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보다 더 엄중히 묻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같이 대기업 고위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는 구조는 산재예방에 전혀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없다. 무책임한 경영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살인'에 버금가는 형태로 고위관리자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산안법의 벌칙을 무겁게 하는 것은 법논리상 한계가 있고,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때문에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캐나다, 호주의 일부 주와 영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법을 제정한 나라들은 각국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법안 형태를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의 형태는 다양해도 목적은 모두 같다. 사업주의 태만 혹은 과실에 의해 발생한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서는 사업주나 고위 임원을 형사적으로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법 도입 상황을 보면 법 개정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법 체계에 ‘기업의 산업안전보건 범죄’라는 특별한 범죄를 도입하는 것. 이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예는 호주의 일부 주에 해당된다. 두 번째 산업안전보건법의 개혁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 이 역시 다양한 가능성들이 있는데 산업안전보건법에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신설하거나 개정하는 것이다. 기업 살인과 중대한 신체적 상해에 대한 벌칙 조항 신설, 사망이나 중대한 신체적 상해를 유발한 배임죄를 신설, 벌금형의 최고액을 높임. 고위관리자의 책임을 명확히 함 등. 이 역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개혁의 내용이다. 세 번째는 존재하고 있는 형법에 ‘기업의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법을 가진 나라는 캐나다, 영국 등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도 태만이나 부주의로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과 사업주를 형사적으로 강력히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얘기하면 적지 않은 법률가들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한 법률의 목적은 현재 존재하는 다른 법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기업이 그릇되게 사망이나 상해를 유발했을 때 형법과 구별되는 다른 영역의 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형법이 저평가될 수는 없다. 형법이 국가에 의해서 집행된다는 사실은 국가의 전문성과 자원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형법 제도 내에서 피고에게 적용되는 절차상의 보호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이나 기업의 고위 임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처벌의 효과이다. 그것은 행위자를 고발하고,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고, 피해자와 사회 전체에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느끼도록 하고, 추가적인 범법 행위를 제지하고, 위반자를 갱생시키도록 할 수 있다. 이는 법학자들이 말하는 형법의 존재 이유이다. 이러한 존재 이유가 그대로 기업의 살인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회 변화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반영하여 새로운 범죄를 규정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특별법의 형태로 형사 처벌하는 법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노동건강연대는 몇몇 법률가들과 함께 부주의나 태만에 의해 산재사망을 일으킨 사업주와 기업을 동시에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자는 싸움을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다. 최근 산재 사망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산재사망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우리의 운동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의 목표와 과정에 대해 아직도 운동사회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이 승리로 마감되어지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이 차근차근히 준비되며 운동이 벌어져야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오해와 비판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이 운동을 단순히 특별법 제정 운동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운동이 사업주 처벌 강화 방안만을 목표로 한다는 오해이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오해와 비판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되었는데 이는 우리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축소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제1의 목적은 산재사망 문제 해결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이 운동의 하나의 유효한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운동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협소화될 수 없음을 얘기했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는 특별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은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업주의 행태와 의식, 노동자의 힘,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등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도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기업살인법이 제정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제정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효과를 내기는 힘들다.
그러면 왜 우리는 기업살인법 제정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는 이러한 요구가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 온 바와 같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고 규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기업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나마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살인법과 관련된 또 다른 편향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또 다른 편향은 기업살인법을 보다 구체화하여 실제 법 제정안을 국회에 내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힘을 빼느니 당분간은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법조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경우 의미 없는 법조문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 초기에 이러한 법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두고 운동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운동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뿐 아니라, 다른 처벌 방식의 강화, 노동부의 사업주 지도감독 강화, 노동자 참여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해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우리는 구체적으로도 노동안전보건청의 설립,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의 도입 등을 주장해 왔다.
2000년대 초부터 이러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정부도 산재사망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운동 때문에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 몇 가지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향상 등이 우리 운동의 성과로 이루어졌다. 2005년 한 일간지에서는 우리 운동을 주요 주제로 9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운동이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 정책 부재의 현실 속에서 산재사망 문제로 운동을 만들어가기 힘들었던 객관적 조건 탓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운동을 만들어 가지 못한 주체의 문제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 실태를 구체적으로 충분하게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역량 투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구체적 양상과 이후 처리 실태가 충분히 조사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재사망은 어떠한 산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자주 벌어지고 있는지,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때 사업주는 어떠한 행태를 취하는지, 신고 이후 경찰과 정부의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보고서 작성 후 검찰 송치 과정의 문제는 없는지,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나는지 등등에 대한 세세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더불어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례가 많이 모아져야 한다. 산재사망의 특성상 당사자가 사망하고 없기에 사례를 수집하기 힘들고 유족을 조직하기도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노력을 통해 사례 수집과 유족 조직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주 세세한 요구부터 이데올로기적 요구까지 체계적으로 요구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도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법안을 만들어 제출되었을 때, 쓸 데 없는 법률 논쟁에 휘말릴 위험을 경고했지만, 필요하다면 그러한 논쟁을 일부러 촉발시키기 위해 법률을 던질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전술적 고려가 운동 사회 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산재사망으로 기업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여 년이 흐른 후에야 법안이 사회적 논의의 장에 올랐다. 그리고 사회적 운동이 있는 경우에 그러한 법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한국의 경우 이제 겨우 10여년 정도 흘렀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힘도 실제 법안이 제정되었던 나라보다 작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게 보고 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다듬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