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8년 6월 22일
장소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2층 회의실
진행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대담 우다야 라이 /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박진우 /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
녹취 한지훈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는 2015년 8월 20일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2005년 4월, 1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노동부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신고증을 내주지 않았다. 그 사이 초대위원장부터 여러 위원장이 강제추방을 당했다. 대법원의 최장기 계류사건으로 8년을 보내고, 2015년 6월 대법원이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하고도 노동부는 두 달이 지나서야 신고증을 발급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25일 농성을 하고 나서였다. 이주노조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을 꾀한다’ 고 노조 규약에서 밝히고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네팔에서 한국으로 왔다. 인터뷰에 함께 나온 박진우 사무차장은 이주노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7년차 활동가다. 두 활동가는 5월 한달 간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버스’를 이끌고 전국의 이주노동자를 만나러 다녔다.
심각한 인권침해 실태가 있을 때 언론에 가끔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 속상해하기만 했지, 이주노동자의 노동현장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마음으로만 연대하는 것은 그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인터뷰였다.
전수경] 집회에서 멀리서 뵙긴 했는데 직접 뵈니 반갑습니다. 투투버스는 5월 한 달 하고 오신 것인가요? 언론 인터뷰나 기사에 많이 나오셨죠?
박진우] 네.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했습니다.
전수경] 이주노동자 투쟁투어 버스라고, TV뉴스에도 나오셨네요. 투투버스 후 제도 개선에 대해서 정부에서 연락 온 것이 좀 있나요?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는 3대악을 사업장 이동의 제한, 근로기준법 63조,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 등으로 꼽으셨는데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연락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박진우] 5월 31일 세종시에 도착해서 노동부장관 면담을 요청했는데, 장관면담이 성사가 안 되고 과장을 만났어요. 투투버스 시작할 때 한 달 해서 지침이 바뀌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보았고, 당사자들 목소리를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향후에 교섭테이블 만드는 것까지 고민을 하고 31일 세종시 가서 이야기했어요. 매달은 힘들어도 세종에서 보는 교섭테이블을 정기적으로 갖추어 가자는 것이죠. 지난 주에 확인한 결과는 <고용허가제 업무편람> 이라고 업무 매뉴얼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주노동자들 사업장변경, 계약 이런 것들이 포함된 400쪽 정도의 책자인데 모든 업무처리를 이 매뉴얼을 통해서 하고 있거든요.
저희가 변경할 것을 뽑고 요구나 대안을 정리해서 보냈고, 자기들도 8~90프로는 동의하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 고치고 있다고 해서 7월 초에 올해 업무편람 개정안이 가안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 때 다시 만나서 구체적인 질의를 같이 나누기로 했구요.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당장 폐기하는 어렵지만. 정부도 당사자조직과 이주노동자를 만날 수 있는 테이블이 없어서 변호사, 전문가,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과 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조합이 합법화 되었고 당사자 조직인 만큼 꼭 논의테이블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에 공감대를 만들었어요.
전수경] 노동부 안에 이주노동자를 담당하는 파트가 외국인력정책과, 국제협력과가 있네요. 법무부나 외교부 이런 곳과는 관계없이 노동부가 독자적으로 지금 다 하고 있는 것인가요? 국내에 이주노동 부분을?
박진우] 이주노동자 제도가 진짜 많은데 비자로 따지면 A1부터 G1까지에서 40~50개가 될 텐데요. 저희가 이야기 하는 건 E9 ‘고용허가제’에 대한 부분이구요 ‘고용허가제’는 노동부가 주관하고, E6 ‘예술흥행’비자는 법무부, E10 ‘선원’비자는 해양수산부 소속이에요. 노동부 ‘고용허가제’로 제일 많이 들어오는 것이죠.
전수경] 얼마 전에 뉴스타파에서 ‘어업노동자 르포’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 분들은 E10 비자로 들어오신 건가요?
박진우] E10도 있고, E9에도 ‘선원’비자가 있습니다. 선박이 20톤 이하는 E9이구요. 20톤 초과하는 경우는 E10입니다. 배의 크기에 따라, E9은 고용노동부가 관리하고 E10은 수협에서 관리합니다. 해양수산부가 수협에 위탁을 준 것입니다. E9 안에서는 1~4까지 업종이 일단 다르거든요, E9안에서 1은 제조업, 2는 건설업 종류, 3은 농업, 4가 어업이고 20톤 이하입니다.
전수경] 노동부는 이주노조 합법화되고 나서 만남이 박근혜 정부 때는 없다가 정부가 바뀌고 나서 생긴 것인가요? 이주노동자 당사자 조직과 정부의 만남이 없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네요.
박진우] 투투버스 전부터 일시적으로 항의면담, 집회를 하거나 했죠. 노동부도 한두 번 만나서 해결할 수 없고, 이주노동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숙식비 지침 같은 부분에 있어서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각하겠죠. 형식적으로는 대화의 테이블을 만들었지만, 실행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의견수렴만 하는 것인지. 오히려 만나서 면피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지, 저희도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다야 라이] 그렇게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밀어붙이니까 안 들어줄 수는 없고, 그랬다고 생각하고 아직까지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어떤 것을 (인정할 지는 모르겠어요)...
전수경] ‘고용허가제’가 15년 됐다고 하고, 고용허가제에 대해 아주 대표적인 문제를 꼽으라면 사업장을 못 옮기는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는 거죠?
박진우] 그렇죠. 특히 최근에 미투 운동이 일어나서 농촌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심각하다는 것도 언론에 많이 나왔는데,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긴급하게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검토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수경] 이주노동자 운동이 지역의 센터들이나,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같은 지원조직(?)도 이주노동자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 건지요? 지역마다 교회에서 하는 곳도 있고 관에서 하는 곳도 있고 다양한데요, 센터에 오는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조의 관계나 흐름이 궁금해서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박진우] 굉장히 어려운데요.
우다야 라이] 센터들은 서비스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고요, 노동조합은 현안이 있고, 당사자들이 직접적으로 보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노동 3권을 요구하고 있어요.
박진우] 이주노조 운동이 워낙 작고, 센터든 어디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기본적으로 많지가 않고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요. 어디가 우선이냐 보다는. 너무 조직화도 안 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우다야 위원장님 말씀처럼 당사자들이 만든 조직이고 노조는 유일하게 교섭을 할 수 있잖아요? 정부교섭, 회사교섭, 노조법상 노조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요. 센터들은 대리적인 상담이나 투쟁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한국인 활동가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영향력이 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맞다 틀리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이주노조는 노조로서 노동자들 이야기를 하고 ‘고용허가제’ 폐기를 주장하고 노동자들이 당장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투투버스 같은 경우에도 동의하는 수원이주민센터나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같은 단체와 함께 했어요. 앞으로 당사자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연대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전수경]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고 지원하는 네트워크도 풍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제가. 이주노조가 힘든 상황에서 싸워 왔는데 최근에 조합원도 늘고 운동이 커지고 있다고 착각해나 봅니다.
박진우] 2~3년에 불과하고요, 십몇 년을 싸워서 노조 합법화를 만들어낸 거고, 조합원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사실 저희도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장벽들이 아직 많이 있죠.
우다야 라이] 지금 9개 나라 정도에서 조합원들이 가입해 있고 지부는 8개의 지부가 있습니다. 우리 노조는 전국노조이고 조합원은 500명 정도가 있고요.
전수경] 500명이면 적은 숫자는 아닌 걸로 보여요...
우다야 라이] 전체노동자들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죠.
박진우] 1퍼센트도 안 되죠. 한국에 일을 하러온 노동자들을 합법, 비합법 가리지 않고 봤을 때 10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수경] 조합원 500명은 주로 서울, 경기, 인천 같은 도시 지역인가요?
박진우] 그렇죠, 주로 제조업과 농축산에 남성이고요. 남성이 80퍼센트 이상이에요. 여성조합원이 없는 건 아닌데 농축산과 같은 경우 접근이 쉽지 않아요. 어디에 있는지 알기도 쉽지 않고, 계속 되는 곳만 되고, 안산도 많은데, 일요일에 쉴 수 있는 일을 하는 남성들이 노조가입이 쉬운 것 같아요.
전수경] 언론에 깻잎 따는 여성노동자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인권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나오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접근이 어렵고, 조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네요.
우다야 라이] 상당한 문제인 거죠. 어차피 쉬는 날도 없고 해서 접촉이 어려워요. 거리상 문제도 있고 어려워요.
전수경] 농촌여성 이주노동자 문제가 계속 나오는 거는 그 분들이 제일 열악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고...
박진우] 사각지대 같은 것이죠. 이주노동자 안에서도 더 을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 저희가 고민하는 것 중에 실제로 하고 있는 하나는 지역 돌아다니면서도 말했는데요, 비슷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서, 제가 처음 들어올 때 ‘노조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무슨 일이 생겨도 명함이라도, 전화번호라도 있으면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
원래는 산업인력공단이 3일 동안 입국 후 교육을 하는데, 그 교육이 사업주한테 인사 잘하는 법... 산재를 당했을 때, 월급 못 받을 때, 회사에서 맞았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권리구제 방식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안 하는 거죠. 투투버스 때도 노동권 교육시간을 배치하라, 강사도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사람을 하라, 이것도 하반기에 논의할 것 같아요.
작년부터는 인천공항에 가서 입국하는 노동자들에게 새벽에 공항 선전전을 하고 있어요. 각 나라 말로 된 선전물, 명함, 물 등을 준비해서 4월 달에도 70명 정도 만나서 알리고 문제가 생기면 연락 달라고 알리고 있어요. 100명 중 1명이 오더라도 일단 연락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말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죠. 오지에서 정말 극단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전혀 없을 때,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전수경] 산업인력공단에서 교육을 하는데, 고용허가제 15년인데 아직도 기본 노동권 교육이 없었다는 건가요?
박진우] 강사들이 중소기업협회, 농협중앙회, 사용자 측에서만 강사를 배치하고 있고요. 노동부도 거짓말 같긴 하지만 ‘그 정도 인지 몰랐다’ 고 하는 거예요. 산업인력공단이 산하기관이고 위탁을 준 것인데 모니터링이나 커리큘럼을 전혀 파악하지 않고 있어요.
전수경] 계속 정부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은 정부가 가장 돈이 많고 사람이 제일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하면 빨리 할 수 있어서예요.
박진우] 하려면 정부가 해야죠.
전수경] 정부가 그 정도였다는 것이 노동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놀랍기는 한데,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있었는지 들을 때마다 놀랍네요. 지금 인천공항에 나가는 것처럼 이주노조가 자체적으로 아주 수공업적으로 하는 것 이상 정부가 다른 활동이 없었다는 것인가요? 사장들이 지켜야 할 것이라든지.
박진우] 하반기 교육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노동권 교육을 배치한다는 것은 반대를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변경될 것 같아요.
전수경]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이 있던 걸로 아는데.
박진우] 권고안 같은 것이 나오기는 했지만 국가인권위가 거의 ‘식물’처럼 운영됐으니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죠. 그래서 저희가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위원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전수경] 몇 해 전에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에 갔을 때 전라도 익산 비닐하우스에서 도망 나온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안산까지 찾아오신 걸 봤어요. 정부가 바뀌면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 신경을 쓸까 했는데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건데, 제 생각이 잘못된 것 같아요.
전수경] 사실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도 심각하고, 이주노동자 가운데 사망자가 많다고 언론에 나오는데 그게 맞나요? 자살이나 사인불명 죽음에 대한 기사도 나오고요. 몇 해 전에는 ‘한 해 이주노동자 100명 정도가 교통사고 우울증 산재 등으로 사망한다고 국정감사 결과 나오기도 했죠.
우다야 라이] 제가 네팔공동체 소식을 매일 보는데 죽는 사람이 많아요. 과로사도 있고, 산재도 있고, 교통사고도 있어요. 자살하는 것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다른 나라들도, 태국 이런 나라의 경우 사망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죽는 원인도 산재로 죽을 때도 일단 인정을 잘 안하고 있는 상황이죠. 의사들도 산재보다 다른 판정을 하려고 해요. 보통 공동체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오면 그런 분위기가 퍼지는 것 같아요. 더 우울해 하고. SNS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바로 올라오니까요.
박진우] 저희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네팔은 위원장님 중심으로 파악을 할 수가 있는데, 대사관, SNS를 통해 제보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 나라 전체통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산재로 사망해도 지역신문이든 기사로 사망사고가 나와야 하는데, 사망을 해도 최근 김해에서 난 사망이 있는데 기사화가 안 되었어요. 산재로 안 하면 보상금을 산재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식으로, 돈으로 무마시키는 일이 많이 일어나죠. 산재로 죽어도 은폐될 수밖에 없고, 전체 산재를 포함한 교통사고, 사망자통계는 법무부, 노동부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에요.
기자들도 취재하는 사람이 없고, 정부 어느 부서도 이주노동자 사망통계를 남성, 여성, 국적별로 통계를 내는 곳이 없어요..
전수경] 과로사가 내국인도 산재인정을 받기가 어려운데, 운이 없어서 죽거나 우울해서 죽었다,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죠. 조합원 수가 적은 나라 실정을 더 모르는 상황이네요?
박진우] 개별적인 케이스는 알아도 전체가 얼마나 되는지 저희도 알지 못하죠. 이주농자는 죽지는 않아도 다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본국에서 아파서 온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여기 와서 얻은 것인데 한두 달 만에 디스크가 생겨도, 산재가 2년 동안 계속 같은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워요. 한 번도 안 해 본 일을 하다가 몇 달 만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고, 통증으로 일을 못하는 상황인데 ‘그 나라에서 아파서 오지 않았느냐’ 고 하는 거죠. 건강검진 받고 합격해서 들어오는 건데요.
전수경] 사망자 통계가 없고 책임지고 집계하는 기관도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요, 산재에 국한해서 보면 어떤가요? 산재는 한국인도 받기가 어려우니까, 비율이 낮을 것 같기는 한데요,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 사고 나는 경우가 많고, 초기에 사고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박 : 산업인력공단에서 산재를 막으려고 매뉴얼을 만들기는 했는데, 16개 나라 별로 만들어 놨지만 배포하지는 않았대요. 공단에는 꽂아 놨는데 현장에는 전혀 없어요. 현장을 찾아가서 교육하고, 사업주 불러서 주기적으로 교육해라. 일단은 알겠다고 했는데, 교육이나 법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규정에는 있지만 위험물질에 마스크 하나만 쓰고 일하는데, 통역이나 번역도 잘 안 되어 있어요.
우다야 라이] 교육 내용이 ‘사업주에게 잘 보여라. 사업장 변경하면 안 된다’ 이런 거예요.
전수경] 교육이 ‘사업주에게 잘하는 거. 인사하는 거. 말 잘 듣는 거’ 이런 식으로만.
박진우] 노동자를 위한 거라기보다는 잘 써먹기 위한 것이죠. 개인이 간혹 산재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변에 한국말 잘하는 분, 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등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죠. 대부분은 공상 처리가 압도적으로 많고, 장애가 생길 경우에 산재로 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법적으로는 어느 비자든 상관없이 산재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끝까지 밀어붙여서 인정받을 수 있기는 해요. 그런데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소송하고 이러다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법과 현실은 다르다고 밖에 말 할 수 없죠.
산재를 하면 사업주 보험료가 상승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고용허가제 배정에서 점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록을 안 남기고 덮으려고 하죠. 고용 ‘허가제’잖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용센터를 통해 허락 받아서 운영하는 것이니까, 공적인 시스템에 걸리는 걸 굉장히 싫어하죠. 임금체불도 그렇구요.
전수경] 정부가 안전이나 임금문제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말이 되는 거네요?
박진우]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로감독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나갈 때 같이 나가는 거예요.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데는 특별감독이 들어가야죠.
전수경] 고용허가제가 5인 미만 사업장도 다 해당되는 것인가요?
박진우] 네. 그런 경우도 있어요. 5인 미만 사업장이 아닌데 5인 미만 사업장인 것처럼 한 공장에 라인 세 개가 있다면 라인마다 페이퍼 회사를 만들어서 5인 미만이라고 해 놓고 연장근로수당 같은 거 제외하는 거죠. 농장은 더 심하고요. 같은 농장에서 어머니 따로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신고해 놓고, 같은 논에서 일 시키고, 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려는 방식이죠. 불법파견이죠. 부당해고 구제신청 안 되고 전에는 퇴직금도 그랬고, 편법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데, 고용주 개인들이 하는 것보다는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죠, 특히 농장은 더 그래요. 그러니까, 산재가 쉽지 않죠.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놓고 눈에 보이는 다친 것은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우울, 두통, 심리적인 문제, 이런 건 ‘원래 그 나라에서 아팠던 거 아냐’ 이런 식이죠.
우다야 라이] 건강은 안 좋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힘들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이 서로 빠르게 상태가 옮아가요, 건설업도 규모가 작은 데는 산재를 못 받고, 제때 치료 받지 못하는 것, 산재를 못 받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네팔 노동자들 보면 내가 보기에는 거의 70프로가 우울증, 심각해요, 근로조건이 안 좋아요, 네팔 노동자들이 사우디 쪽에선 머리 아프다고 하면 쉬게 해 주는데, 여기는 죽기 직전인데도 안 보내줘요. 한국이 근로조건이 가장 안 좋아요. 건강은 다 다르고 돈을 적게 주고 많이 주고가 다르겠지만, 월급을 적게 받아도 이런 것을 해주는 게 더 필요해요. 그래서 네팔 사람들이 실망하고, 돌아갈 수도 없고,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아요.
박진우] 마음대로 사업장을 바꾸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 어마어마합니다.
저희가 개별적인 심리상담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통역이 어렵고, 대사관에서 교육을 한다고 해도, 정보를 알고 일요일에 쉴 수 있는 사람이 오고, 한 달에 한 번도 쉬기 어렵고 정보도 알기 어려운 사람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어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사망이나 자살이 낮아질 수 있는데, 미시적인 처방, ‘그 정도면 바꿔줄게’ 하는, 이 죽음이 구조적인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봐요.
한두 명이면 이렇게 말 못하는데 한 해에 몇 십 명씩 자살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수잖아요, 계속 늘어나고요, 죽음은 전염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SNS에 ‘밀양에서 xx가 자살했대, 어디서 떨어져 죽었대’ 실시간으로 보는 상황인데, 분노도 하지만 불안, 우울이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충주에서 네팔 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지 못해서 죽었다고 JTBC 뉴스에 나왔는데 네팔 노동자들이 집단 우울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저희가 집회를 했는데요,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런 말이 나왔어요. ‘죽음이 아니면 해결하지 못한다’는 단계까지, 고용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오는 것 같아요. 최소한 이런 죽음은 막을 수 있죠. 여지는 만들어 줘야죠. 숨통은 트이게, 출구전략은 있어야죠. 회사를 바꾸지 못해서 죽는 것이 말이 되? 고용허가제는 도망가거나 그게 안 된다는 거죠. 어마어마한 기대를 하고 오고, 실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누구는 큰 돈을 벌고 자기도 그럴 줄 알고 왔는데, ‘도망칠 수도 없고 계속 하기도 힘든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투투버스도 서울에서 집회하고 청와대 앞도 중요하지만, 직접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논산, 여주, 충주... 직접 찾아간 거예요. ‘당장 돈을 받아줄 수는 없어, 대신 당신 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할께, 함께 외치자’고, 그 노동자들하고 미리 이야기하고 갔어요. 도착해서 집회하면서 갈 때 손 흔들어주고 페이스북으로 ‘사장이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는, 희망을 현장에서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했죠, 그래서 순회 집회를 한 것이거든요. 파장이 컸다고 보구요. ‘이주노동자도 집회를 할 수 있구나. 사장이 아무 말 못하는구나. 기자들이 오는구나. 노동부 가서 면담했대’ 이주노동자들이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주노조가 있고, 같이 해서 바꿀 거야 함께 가 보자, 숨통을 조금 트이게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수경] 몇 백, 몇 천 명 집회를 해야 하는데 버스가 동네에 와서 당사자가 있는 곳에서 데모를 해줬다, 데모하러 왔다. 친구들이 왔다...
박진우] 누가 온대, 기자들하고 온대, 인권단체도 오고, 사람들이 연대해서 오고. 의미를 붙여보는 거죠. KBS, MBC 뉴스에 다 나갔어요. 논산 찾아간 이후로 개별 후원이 확 늘어났고요. 언론의 힘을 보고 이런 것이 필요하구나 생각도 했죠.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이 가는 곳마다 투쟁후원금도 모아주셨어요. 좋았던 것은 조합원들이 10년 넘게 자기가 노동조합 생활하면서 이주노동자 집회를 처음 보고 이주노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거죠. 계속 이야기가 되어 왔지만 많은 분들이 모르던 거죠. 지역에서 ‘한국의 노동자 문제와 이주노동자 문제가 다른 것이 아니구나, 같이 해야겠다’는 연대의 고리를 만든 것이 성과라고 보구요. 오늘도 작은 앰프랑 발전기를 싣고 파주에 집회를 가려고 하고 있어요.
우다야 라이] 사업주가 기숙사도 안 주고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자는 시간도 안 주고. 기숙사가가 서류에 나와 있다고 해서 (정부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에요. 5인 미만도 있고 10인 이상도 있고 다양한데 사장이 어떤 마음을 가졌냐가 중요해요. 법보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해요.
박진우] ‘좋은 사장 나쁜 사장’이 아니라 제가 사장이면 얼마든지, 처음에는 기숙사도 그렇고 잘 해줘야겠다고 하겠지만 쓰다 보면 계속, 무한리필 할 수 있는 제도거든요. 쫓아내고 다른 사람 받고, 사업장 자체가 영업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이름만 바꿔서 재신고하고.
2013년 화성에서, 양초 만드는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5명이 사망한 적이 있어요, 큰 사고였는데, 2003~4년부터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2~3년에 한 번씩 같은 자리에서 이름만 바꾼 상태로, 2013년에 사람이 엄청 죽고 나서야 영업취소가 되었는데, 다른 사업장 같은 경우에도 사람이 죽고 다쳐도 점수제로 운영 되거든요. 점수가 깎이면 후순위로 밀려나는 거지 못 받는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전수경] 노동자가 사망하면 고용허가제 사업장이 취소되거나 그런 것이 아니네요?
박진우] 직권으로 안 돼요. 죽으면 1년 동안 정지 이런 것이 아니라, 영업정지가 돼도 어떻게든 1년 동안 일 시키고 바꾸는 거죠. 임금체불, 산재, 사망,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이런 사업장은 노동자를 못 받도록 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는 회사를 바꾸려면 3달 안에 무조건 바꿔야 해요. 남은 1달 동안 대부분 이런 사업장에 가게 돼요. 남들이 안 가려는 사업장. 비자 연장을 하려면 어떻게든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장 누군가는 안 죽더라도 계속 반복, 시한폭탄을 돌리는 것 같아요. 힘들게 사업장을 바꿀 이유가 없는 거죠. 그래서 고용허가제가 무서운 거죠.
전수경] 처음에 이야기한 매뉴얼, 매뉴얼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이 되는 건가요? 정부 차원에서 노동허가제 이야기는 없나요?
박진우]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어요. 고용허가제를 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정부도, 기숙사문제도 그렇고 자살 문제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은데, 저희가 개별 조항에 독소 조항이 있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야기를 했더니 ‘지금 수준에서는 답을 하기 어렵다’ 이야기하더라고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전수경] 투표권이 사장들에게 있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없어서 그런가...
박진우] 모든 부분에서, 이주 안에서도 결혼이주여성에 비해서 이주노동자들은 훨씬 후순위에 놓여 있긴 하죠. 법에서 배제되어 있거나. 물론 나누기도 그런 게, 예산이 워낙 작아서 거의 의미가 없다고 봐야죠.
우다야 라이] 국가에 손해가 안 나잖아요. 고용시장에서, 하나도 손해가 없어요. 인권은 뒷전이에요. 같은 공무원, 같은 사업주, 위반하는 쪽 처벌 안 하는 거예요. 공무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렵고 힘든 일 시키려고 데려가는 건데 왜 변경하려 하는가?‘
전수경] 힘든 일 시키려고 하는 건데 왜 변경하려 하는가?
박진우] 고용허가제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에요. 이주노동자 문제에선 민주당, 자유한국당에서도, 한국 사회운동 전체에서도 소수. 인권이나 종교 쪽에 맡겨 왔어요. 이주노조가 이제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고요, 오랫동안 외주처럼 다루어져 왔어요. 이주노동자 문제에 한해서는 통제 관리 일변도이고 해결책은 없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수경] 민주노총, 한국노총 같은 조직은 어떤가요?
우다야 라이] 퇴직금 제도가 있었어요. 저희가 이제는 받아요. 퇴직금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그 사람이 한국노총 사무총장 할 때, 그 사람이 사업장에서 일하고 퇴직 후에 14일 이내에 받아야 한다, 이것을 만들었는데 이주노동자는 출국을 해야 준다, 이렇게 제도를 만들었어요.
이 사람이 발의해서 만들어졌어요, 이런 것을 보면 알아요. 한국노총이 이주노동자에 대해 연대, 배려를 하는가 알 수 있구요. 민주노총도 절반은, 지도부는 긍정적이지만, 건설은 현장 조합원들이 갈등이 엄청나요.
전수경] 이주민이든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최근 제주도 예맨 난민에 대해 보이는 것처럼 다른 흐름이 있어 보여요. 연대하자, 난민을 막자, 한국에 오래계셨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우다야 라이] 한국인들이 약한 것에는 강하고 강한 것에는 약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동남아시아나 이런 쪽은 무시하고. 오래 있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전수경]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세요?
우다야 라이] 제도는 몇 개 바뀌었지만 그마저도 과거와 다른 바 없음을 느끼고 한국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안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진우] 한국 사람으로서 이주노조에서 6년 넘게 일했는데 이런 말들 많이 들었거든요, ‘한국 사람 맞냐 너, 이주노동자 좋냐?’ 최근 예맨 난민 사태를 보면 더욱 국가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생산인구가 줄고, 1차 경제를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우리가 먹는 미나리, 고추, 그리고 입는 옷, 자동차, 아파트, 이주노동자가 일해서 한국이 지탱되고, 더 늘어날 것인데.
다행히 이주노동자 안에서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생겨나고, 반대로 늘어난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도 일어나요. 난민 사태가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고 작년 시리아 난민들이 인천공항에 있었던 일도 있었고요. 예맨 난민사태가 터진 이유는 사회에 잠복해 있던 혐오가 드러난 것이죠. 한국 사회가 2~30년 뒤에 유럽이나 미국이 겪은 이민위기를 겪게 될 것인데 500만 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더라고요. 현재 207만 명, 2010년도에 100만 명이었는데, 10년도 안 되서 200만 명을 돌파한 거예요. 300만 명, 400만 명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노조 합법화가 된 것은 중요한 일이죠.
노동자들이 자살하고 죽고 있는데 최소한 사회적 통로로서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노동조합이 있다, 조직화를 확대해 가는 것, 이주민 정당, 정치세력화가 이주민 안에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될 것인가.
제주 예맨 난민 사태는, 이미 200만 명이 들어와 있는데 난민을 쫓아내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잖아요. 정부는 방관하고 있고, 있는데도 부정하고 있는 거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이런 상황이 촉발된 마당에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도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한 거예요.
예맨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난민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사회가 제도가 안 되어 있어서, 일상적으로 20년 넘게 살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요. 지금 재대로 바꿔나가지 않으면 30년 후에 훨씬 더 헬조선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전수경]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우리 사회네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우다야 위원장님 다음 일정이 있어서 아쉽게 마치게 되었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필자는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상근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지원, 제도 개선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결혼이주민, 이주노동자, 이주 아동 등 한국에 체류하는 다양한 이주민과 난민들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찾아온다. 필자는 주로 이들의 개별 법률 상담과 무료 변론을 지원한다.
그동안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접했지만, 유독 이주노동자의 노동 사건들은 항상 똑같은 의문으로 귀결되고는 했다. “똑같은 일이 어쩌면 이렇게 계속 반복될까?” 사람만 바뀔 뿐 신기하게도 문제가 되는 사실관계는 다 비슷하다. 게다가 아무리 억울해도 소송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렇게 같은 사안이 반복되고 소송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제도의 흠결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이 흠결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이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이 바로 그렇다. 최근 언론을 통해서, 베트남 출신의 이주민 어업 노동자 한 명이 선장으로부터 가혹한 구타와 흉기 협박, 성추행 등을 당하고도 모자라 한밤중 바다에 빠트려져 죽음의 공포를 겪은 사건이 알려졌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고용허가제’의 흠결을 극명히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언론보도를 접하고 선장의 인면수심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쯤에서 고용허가제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국내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1년 ‘해외투자업체연수제도’를 통해서인데, 본격적으로는 1993년 11월 ‘외국인 산업연수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제도는 이를 통해 입국한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 신분으로 규정함으로써 노동관련 법규의 적용에서 거의 배제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저임금, 고강도 노동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목적으로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었다. 고용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한 한국 기업에게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 고용법’이라 한다)’에 의해 운용되는데, 이 법률에는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이주노동자의 범위, 고용 절차, 취업활동 가능 기간, 사업장 변경 제한 등이 규정되어 있다. 컨설턴트나 엔지니어, 교수로 일하는 외국인들도 ‘이주민’ 신분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고용허가제는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주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입국하여 제조업· 농업· 축산업· 어업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할 때에는 대부분 이들을 가리킨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소위 3D 업종 분야의 노동력을 충원하고,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송출 비리를 차단하게 되었으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 이루어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전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이 일부 보완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의 매일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을 접하는 필자로서는 고용허가 제도로 해결되지 못하는 (또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오히려 생겨나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느낀다. 이러한 문제들이 사람만 바뀐 채 계속 반복된다면, 그리고 소송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이는 정부의 판단과 달리 개인을 넘어선 제도의 잘못이 있는 것이다.
사실 고용허가제는 그 명칭만 놓고 보아도 제도의 설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을 허가하는 것이 아닌,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이다. 즉,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를 주체로 삼는 제도인 것이다. 출발점이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는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부족한 일손을 대체할 수단, 통제해야 할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 등을 적발해야 할 고용지원센터의 근로감독관, 이주노동자의 체류 문제를 다루는 출입국·외국인청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직원들에게도 만연해 있다. 이주노동자를 한 명의 ‘노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돈 벌러 온 사람’, ‘미등록 체류의 위험성이 있는 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피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일들도 종종 생긴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 재고용허가, 근로 계약 기간 연장 등은 모두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결정이 대부분 사업주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대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업주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사업장 변경과 관련된 억울한 사연들이 많다.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기회는 단 3회 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가 없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옮기려면 고용노동부장관 고시 상의 사업장 변경 사유(폭행 등 부당한 대우, 일정 비율 이상의 임금 체불 등)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고시는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눈감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불합리하다. 임금 체불이나 근로조건 위반이 있더라도, 그 위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애초에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려면
① 채용 시 제시된 근로조건 또는 채용 후 일반적으로 적용받던 임금·근로시간이 20퍼센트 이상 저하되고,
② 그 저하된 기간이 사업장 변경 신청일 전 1년 동안 2개월 이상이어야만 하고,
③ 그 경우에도 근로조건이 저하된 기간 중이거나 근로조건이 저하된 기간의 종료 후 4개월이 경과하기 전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경우여야 한다.
이 까다로운 요건들을 충족하기 전까지는 계약과 다른 무보수 추가 노동, 임금 체불 등이 있더라도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옮길 수가 없다. 따라서 인권 침해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게다가 고시 상의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전부 충족하더라도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매일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한국어도 유창하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녹음, 녹취 등으로 증거를 모으기란 쉽지 않다. 목격자가 있다 해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이주노동인 경우가 많다 보니, 사업주의 보복이 두려워 선뜻 도와주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어떻게 될까? 사업주가 관할 고용센터와 출입국·외국인청 (구, 출입국관리사무소) 또는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무단이탈신고를 하는 순간, 해당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이 취소되고 강제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을 볼모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밀린 임금을 달라’, ‘계약서 상의 휴식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너 불법 체류자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이주노동자를 협박하기 일쑤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 달 휴가를 다녀오라’며 선심 쓰듯 이주노동자를 본국에 돌려보내고, 그 사이에 허위로 무단이탈 신고를 하거나 퇴사 처리를 하여 이주노동자의 멀쩡한 체류자격이 취소되게 만드는 악덕 사업주도 있다. 개인 짐도 모두 사업장에 그대로 있고 못 받은 임금도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휴가를 다녀왔더니 입국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악덕 사업주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체불한 임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뽑고 싶어서,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 다양하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도 고용허가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2년부터 2017년 5월 까지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율은 국내 노동자의 6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일하다가 다쳤다는 사실을 고용주에게 말하면 ‘산재 신청하면 불법 체류자 만들어버린다’고 협박을 하거나, 산재 신청 후 사업주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산재 사업장으로 기록되면 산재 보험료 인상, 고용 가능 인력 제한 등의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필사적으로 막는 것이다.
일단 해고를 해버리면, 부당해고 구제 문제는 차치하고 원칙적으로 외국인고용법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 적용된다. 1개월 내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고 3개월 내에 새로운 사업장을 알선 받아 근로계약을 하지 못하면 해당 이주노동자는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힘겹게 산재 신청을 하고 요양 승인을 받아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사업주가 치료비 일부를 피해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해 가거나, ‘꾀병 부리지 말고 일하라’며 치료 중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각 관할 고용지원센터에서도 통역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요양 신청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건설업 종사 외국인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이주노동자의 67.9%가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했고, 전체 응답자 중 17.1%는 산재보험 제도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상태에 따른 건강권·노동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도심에서 떨어진 농축산업 현장이나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외국인고용법의 고용허가 요건에는 기숙사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고, 기숙사 환경 관련법도 미비하다. 이 때문에 비닐하우스에 성별도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남녀 이주노동자 여러 명이 교대로 살거나, 화장실과 냉난방 설비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위생 상태와 영양 부족으로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에서 지내다가 사업주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특히 가해자가 사업주인 경우에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사건을 목격했더라도 진술을 꺼리기 때문에 대부분 꾹 참고 버티는 방법을 택한다.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를 방지하기 위한 차별 금지 조항과 벌칙 조항이 있지만, 노동 환경에 대한 실질적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벌칙 조항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작년 말, 필자가 속한 <이주민 주거권 개선 네트워크>에서 주거권과 관련하여 외국인고용법과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도록 하는 성과를 냈지만, 그 뒤 후속 조치는 아직 미미하다. 이 와중에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숙박비 명목으로 임금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씩 사전 공제를 하기도 한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숙박비 공제 실태를 파악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올해 초부터 사전 공제 가능한 상한액을 정하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주거시설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임금을 기준으로 숙박비의 상한액을 정했기 때문에 주거 환경의 열악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침으로 인해 사업주가 근로기준법 상 임금 전액 지급의 원칙을 위반하도록 정부가 조장하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밖에도 명목상으로는 사업주의 퇴직금 체불 방지를 위한 것이라지만 실상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하는 ‘출국만기보험’ 제도 또한 고용허가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 제도는 퇴직 후 바로 퇴직금을 수령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사업주가 임금을 허위로 신고하는 등으로 인해 실제 받아야 하는 퇴직금보다 훨씬 덜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자격이 볼모로 잡혀 있는데다 부당한 처우를 피해 사업장을 옮겨보려 해도 그 요건을 입증하기가 워낙 어렵고 편견· 차별· 무시와 싸워야 한다.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여간 녹록치 않다. 이 모든 상황은 ‘노동’이 아닌 ‘고용’을 허가하는, 시작부터 발을 잘못 내딛은 고용허가제에서 비롯된다.
물론 좋은 사업주나 근로감독관도 많다. 자신이 고용한 이주노동자가 이전 직장에서 임금을 다 못 받은 것 같다며 직접 센터로 찾아와 도와주려는 사업주도 있고,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진정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 주는 근로감독관도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매번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내가 아무리 개별 사건을 조력한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겠지’라는 좌절감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미안함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국내 체류 이주민이 200만 명을 넘어서고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지도 15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제도를 고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부터 바꾸어서,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체류자격을 부당하게 취소 당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부당한 처우 등의 사실이 있을 때에는 지체 없이 인권 침해가 중단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장관 고시 에서 사업장 변경 사유와 이주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
특정 사업주에게 외국 인력 고용허가를 내주기 전에 실질적인 사업장 검증을 시행해야 하며, 기숙사 환경에 관한 부분도 허가 기준에 추가되어야 한다.
‘고용’ 허가제가 아니라 ‘노동’ 허가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수단’보다는 ‘존재’로, ‘노동력’보다는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환대 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어, 이제는 그 문제를 하소연하시는 분들이 없네” 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특집 2013 실태조사에 비친 노동자의 오늘
농촌으로 간 이주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_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를 중심으로
정해명 / 노동건강연대 회원·공인노무사
벌써 다섯 번 째 노동청 조사다.
그사이 두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농장이 바뀌어 이천과 아산에서 일하고 있다. 2주전에 조사 때문에 하루를 쉬었고, 오늘도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이들은 이번 달에 쉬는 날이 없다.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오늘이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조사 끝나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다.
농한기인 겨울인데도 사장은 지난번엔 오지도 않고 오늘도 늦는다. 마지막달 월급도, 퇴직금도 아직까지 안 주고 있는데도 사장은 당당하다. 일하다 다쳐 손톱이 나간 노동자가 일하지 못한 동안의 휴업보상을 요구했는데 사장의 머릿속엔 건강보험이 아닌 일반수가로 처리되어 꽤나 나온 병원비만 뱅뱅 돈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농업의 경우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인 농장주에게 보상책임이 있다는 말을 사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농업, 임업(벌목업은 제외),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사업으로서 근로자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 규정이 적용된다)
근로감독관은 시간외근로를 했다는 입증자료가 없으니 시간외근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본인이 직접 작성한 수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농장이 바뀌어 본인이 가고 싶어하던 돼지농장이랑 미나리농장에 간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두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좀더 들여다보자. 지난 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이 발간한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에서 발췌, 축약하였다.
1.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 현황
농축산업에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서였다. 1990년 666만명이던 농업인구가 2004년 342만명으로 줄어들고, 전체 농가중 60세 이상의 농장주는 전체의 60%를 넘었다. 이러한 농축산업의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부분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하여 2003년 7월 923명의 외국인이 외국인농업연수생의 신분으로 들어왔다.
산업연수제의 여러 폐해로 인해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농축산업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다.
농축산업 분야의 외국인노동자 수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여 2006년 892명에서 2012년 12월 현재 16,484명으로 늘어났다. 2013년 도입쿼터는 전년도 4천5백명에서 6천명으로 늘어났고, 농축산업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
사업장 변경 제한 등으로 인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실태는 매우 열악하다. 농축산업의 경우 농장주를 제외한 노동자 2~3명이 안팎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단이나 도시에 위치한 제조업과는 달리 농촌에 위치하여 다른 농장과 거리가 있고 농장주와 함께 고립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폭언 및 폭행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만연해 있다.
가. 신분증 압류
한국에 도착해서 3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사업장에 도착하면, 농장주들이 여권과 신분증을 압수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등록증이나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여권을 압류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농장주들은 사업장의 이탈이나 도주를 막기 위한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는 실정법 위반이다.
(출입국관리법 제33조의2(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 확보수단 제공 등의 금지)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외국인의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을 취업에 따른 계약 또는 채무이행의 확보수단으로 제공받거나 그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
가혹한 노동조건이나 사업주의 폭력에 반항하는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권을 강탈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 폭력이 동반되기도 한다. 신분증 압류는 외국인노동자가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신분증없이 외출했다가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걸릴 경우 불법체류자로 오인되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 제27조(여권 등의 휴대 및 제시) 1.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항상 여권, 선원신분 증명서, 외국인 입국 허가서, 외국인 등록증 또는 상ㄺ허가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만, 17세 미만인 외국인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제1항 본문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공무원이나 권한 있는 공무원이 그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여권 등의 제시를 요구하면 여권 등을 제시하여야 한다)
농축산업의 경우 외부와 고립된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하여 사업장을 이탈하는 비율이 제조업에 비해 높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농장주들의 신분증 압류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나. 폭력과 폭언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노동관계법 위반 등의 문제를 겪은 외국인노동자가 농장주에게 반항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경우, 농장주는 욕설을 하거나 폭행, 농기구로 위협하는 경우도 드러난다. 고립된 농장에서 외부단체나 기관에 도움을 청할 경우 농장주가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수의 농장주들이 외국인노동자에게 갖고 있는 불만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사일을 접해본 적이 없고 일이 손에 익지 않다보니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농장주에겐 자신의 이익과 연결된 부분이다 보니 외국인노동자들을 다루는 게 가혹해 지고, 음주가 더해져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폭력이 발생할 경우 경찰이나 노동부 고용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일방적인 농장주의 진술만을 듣거나 한국인 편들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역을 지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다. 성폭력 노출
농장주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여성 외국인노동자들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농축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여성 외국인노동자 비율이 3배 가까이 높아 전체 외국인노동자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의 법제도에 어둡고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농장주와 장시간 함께 지내기 때문에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많다.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도 여성노동자가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농장주와 같은 집의 빈방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더욱 높은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라. 열악한 주거환경
많은 농축산업의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장 안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낡은 컨테이너, 농장주의 빈방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문이 잠기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 노동자의 사례도 있다.
이러한 기숙사들은 냉난방이 잘되지 않고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농장주에 따라 별도의 기숙사비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하는 경우도 있다.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로 제공하며 1인당 월 20만원이 넘는 비용을 공제한 경우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기숙사의 경우 온수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물을 끊여서 씻어야 하며,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과 욕실 등의 시설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 불법 파견노동과 계절적 해고
외국인노동자는 반드시 근로계약을 체결한 농장주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외국인력중개업자(브로커)가 개입하여 마을마다 유휴 외국인노동자를 다른 마을이나 지역으로 보내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외국인노동자는 누구의 농장에서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면 인력이 부족하여 농촌에서는 외국인노동자를 서로 보내달라고 고용센터에 아우성을 치지만, 농한기가 되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의 대량해고가 이어진다. 시설농가나 축산업의 경우 겨울철에도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농장의 경우 할일이 없어 다른 농장으로 불법 파견이 되기도 하며 일거리 없이 방치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금이 체불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농장주가 근로계약을 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봄에 오라며 버스터미널로 내보내기도 한다.
바. 장시간 노동 및 노동권 침해
고용허가제 자체가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금지를 원칙(고용허가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최초 3년간 3번에 한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으며, 체류기간이 갱신된 1년 10개월 동안 2회를 다시 변경할 수 있다.)으로 함에 따라 노동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용허가제 아래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엄연히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농축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63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벱 제63조(적용제외) 이 장과 제 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 토지의 경작, 개간, 식물의 재식, 재배, 채취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2. 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포, 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
농축산 및 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시간, 휴게․휴가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연장근로를 1주 12시간으로 제한받지 않으며, 1주일 평균 1회의 유급휴일도, 연장․휴일근로에 대한 50% 가산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다수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한 달에 2회 정도의 휴일밖에 쉬지 못하며,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농장주들이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나 질병 등이 발생할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비싼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는 업종을 변경할 수 없어, 출국 때까지 오로지 농축산업에서 일해야 하며, 다른 사업체의 이동도 농장주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농장주들이 사업장 변경의 대가로 외국인노동자에게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3.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의 구조적 원인
- 왜 농민들은 ‘악덕 사업주’가 되었는가?
살펴본 바와 같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신분증 압류를 통한 강제노동, 폭언과 폭행, 강제파견노동 등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농장주에 매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농노’처럼 살아가고 있다.
고용주에 의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악덕 고용주’ 개개인의 잘못이 큰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영세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없이, FTA와 산업구조변화 등으로 피폐해진 농축산업의 취약한 부분을 외국인노동자로 메우려는 정부정책과 이를 위해 마련된 고용허가제의 태생적 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
지적한 바와 같이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한국의 말과 제도를 거의 모르는 외국인노동자와 사업주간의 힘의 불균형이 더해져 외국인노동자를 자신의 귀속물로 여기게 되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법이 합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준 측면이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할 행정관청인 고용센터는 고용허가제와 관련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담당인력과 업무역량 부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의사소통이 어렵고, 선입견이 더해져 권리구제를 요청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관할 고용센터는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데도 1년에 1회 점검도 인력이 부족하여 어려운 실정이다. 법위반 사실이 발견되어도 시정요구만 할 뿐, 강력한 재제를 하고 있지 않아 반복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농장주가 월 300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에, 월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보고도 고용센터는 아무런 문제없이 전산에 등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취업교육을 담당하는 농협은 교육뿐 아니라 고용변동신고, 고용허가 기간 연장 신청 등 각종 신청을 대행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게 되어 있으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보호보다는 농장주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실정이다. 경찰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정부기관도 외국인노동자가 권리침해를 호소해도 외국인노동자의 의견에 대한 통번역도 없이 사업주의 진술만을 듣고 일방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위의 글은 첨부된 PDF 파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1박 2일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주노동자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한국까지 일하러 오게 된 사연,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방송을 통하여 생생히 소개되었고, 그들과 가족이 상봉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방송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새롭기도 했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무겁지 않게 다룬 연출진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TV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뒤엉켜 맴도는 생각이 나를 TV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 그림 1. KBS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특집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싫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눈빛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인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깔보는 것 같은 눈빛, 불쌍하고 가엽다는 듯한 눈빛, 경계하고 피하려는 눈빛. 그 눈빛들 중에서 가장 불쾌한 눈빛은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으로 보는 눈빛이라고 한다.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한국에 와서 떳떳하게 노동을 하고 있는데, 불쌍한 눈빛을 보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이 지적한 시선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와 같은 시선은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타자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TV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혹시 1박 2일의 결과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눈빛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는 단일 민족 사회를 오랜 기간 유지한 한국의 특징에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이 과연 한국인의 눈빛에서 앞서 말한 느낌을 받고 있을까? 필자는 미국과 서유럽 출신의 외국인들이 이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국적을 미국이라고 밝혔지만 한국 사람인 내가 보기에도 매우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숨기고 미국인 행세를 하고 싶은 까닭을 한국 사회가 배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수 없다. 여기에는 인종과 피부색에 대하여 한국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열등감 또는 트라우마가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1박 2일에 등장한 이주노동자들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방송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려면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 주말이 되어도 마음 놓고 시내 구경 한 번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사람들, 불법 체류라는 낙인이 찍힌 탓에 재입국 거부가 두려워 10년이 넘도록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바로 체류 자격과 취업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10년 12월 현재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정부 정책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점점 잊혀지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앞에서 말한,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쾌한 눈빛조차 그리워할지 모르겠다.
현재 정부의 외국 인력 정책은 모두 1박 2일에 출연하였던 이들과 같은 합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맞추어져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강제 추방’이라는 정책만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삶은 언론조차 외면하고 있다. 간혹 단속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하거나, 지친 삶의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이들의 슬픈 이야기만이 간간히 흘러나올 뿐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강제로 추방된 외국인의 수가 8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단속을 위해 범죄자들에게나 사용되는 수갑, 포승, 경찰봉, 가스총, 전기 충격기 등의 사용을 허가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0년 12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26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인구 50명당 1명이 외국인인 다문화, 다민족 사회에 살고 있다. 이들 중 70만 명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 아래서 한국인이 손을 놓아버린 더럽고,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낯설고 다른’ 이방인들이 아니며, 국민 경제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다.
낮은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앞으로 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할 것이고, 어쩌면 국민 경제의 유지를 위하여 정책적인 이민 유치까지도 고려해야할지 모른다.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그 출발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것,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끝>
근 10여년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켰던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드디어 산업기술연수제와 고용허가제 병행실시라는 형태로 7월 20일 현재 국회 본회의 표결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였고 경제 5단체가 동의하였으니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니, 그 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진영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실시라는 최선의 해결방안은 결국 물 건너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해도 될 듯하다. 여야는 마치 거래하듯이 병행이 어려운 두 제도의 병행실시를 결정함으로써 ‘동일 영역내에서 차별의 제도화’에 합의하였다. 이는 향후 이주노동자 문제에 또 다른 문제점을 배태하게 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비록 차차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도라고는 해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현재보다는 분명히 향상된 측면을 가진다는 점은 짚어야 할 것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이 이주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큰 의미는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78.9%에 달하는 불법체류 신분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총체적인 측면에서 불편함과 불이익을 안고 있다. 장시간노동, 저임금, 무방비로 노출되는 산업재해, 질병....
이 중에서 산업재해와 질병은 ‘노동’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꼽힌다. 특히 산업재해는 이들이 주로 3D업종에 취업함으로 해서 사고성 재해, 직업성 질환 등 언제라도 이들을 급습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위험한 사업장에 취업하지 않음으로써 산재피해의 확률을 낮추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재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서 이들의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익숙지 않은 풍토에서 부족한 영양,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많은 건강상의 배려가 필요함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이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이 땅을 떠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법체류자로서 생존해야 하는데 따르는 강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이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호전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편법이긴 하지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고 취업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생이나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의 경우를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동안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면서 소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몇몇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원리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첫 걸음이 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들의 상황을 이전보다는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자.
첫째,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던 한국의 노동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으므로 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및 휴일에 관한 조항 등 노동자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노동법상의 ‘모성보호 조항’은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다.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 제한조항, 생리휴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보호조항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면 현재의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 지금보다는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방비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를 줄이고 피해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산재피해를 입었던 이주노동자 5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안전장치 혹은 안전장비의 미비가 산재발생의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질수록, 1일 근로시간이 길수록, 작업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을수록 빨리 산재를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서툰 한국어로 노동을 제공함에 필요한 사전 적응교육이 적절한 정도로 제공되지 못함으로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사업주도 불법체류자를 채용하면서 충분한 한국어교육과 안전교육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에 불법체류라는 약점과 이를 악용하여 산재로 처리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는 사업주들의 협박으로 인해 산재보상보험법 절차 포기에 치료비 자비부담, 산재사고 후 해고(절대적 해고금지기간에도 해고는 쉽사리 이루어진다.) 등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장에서 불법체류자 채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회사가 입게 될 불이익을 염려하여 이들의 취업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겨놓지 않아 막상 산재보상보험법의 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에도 평균임금 하락 등 이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았다.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취업하는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의 소기업이 부도라도 난다면 취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을 찾지 못해 상황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자신이 근로조건에 대해 대등하게 계약을 맺을 수 없었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잦은 사업장 이동, 의료서비스의 미흡으로 조기발견이 어려워 그 실태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합법적인 노동자로서 취업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도의 한국어교육실시, 충분한 안전교육 실시, 정기적 건강검진, 산재보상보험법의 정상적 적용 등이 보장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는 훨씬 경감할 것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됨으로 해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일부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질병 예방과 치료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특히 그 동안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각종 사고로 인한 후유증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경우는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부 해소시킬 수 있고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고용허가제 도입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노동자’로서 도입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보장을 요구함에 있어 법적 제약이 상당히 해소된 상태에서 고용허가제 실시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권리의식의 고양과 함께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적극적인 관심과 견인이 요구된다.
차차선의 제도로 평가받는 고용허가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투쟁, 고용허가제의 운용체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이끌어내는 투쟁, 그리고 고용허가제보다 더 나은 외국인력도입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이 향후 노동운동권에 요구되는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