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놀라움, 안타까움, 분노 등 일차적 감정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사건사고와 뉴스거리가 넘쳐난다. 어떤 이슈든 한 달을 넘겨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이른바 ‘김용균 법’으로 불리게 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연말에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이 일정 정도 이루어졌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고 김용균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진지하고 차분하게 생각해볼 때다. 더 많은 토론과 논의를 통해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법을 찾아나갈 때다.
토론과 논의에 있어 문제의 범위와 내용을 잘 구획하여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필자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이 문제를 ‘단순한 안전 문제’ 혹은 ‘산재 사망’ 문제로 제한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필자는 사건 발생 직후 매일노동뉴스에 다음과 같은 짧은 인터뷰를 남겼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안전’ 문제로 봐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안전 문제로 접근할 때, 앞선 많은 사례가 그러했듯 현장의 관행과 문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된다. 진정한 변화는 없이 요란한 구호만 넘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무분별한 외주화 문제와 효율성 잣대로만 접근하는 일자리 대책, 사람을 기계처럼 대체가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현장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사건은 자리만 바꿔 반복될 것이다.”
노동자 안전 뿐 아니라 ‘안전’ 문제를 독립적인 하나의 사회 의제로 여겨 접근하려는 시도 및 경향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생명, ‘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될 때에도 필자는 논의의 흐름이 생명과 안전 문제를 기술적 차원의 문제로, 따라서 공학적, 전문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의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는 문제의 정치적 의미를 거세하는 방향이다.
‘안전’ 문제는 특정한 시스템의 작동 실패 또는 오류가 낳은 병리적 현상의 하나이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환자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의료 시스템 내지 병원 운영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 또는 오류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환자 안전’과 관련된 제도나 프로그램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의료, 병원의 문제가 복합되어 곪아터진 증상 중 하나가 환자 안전 문제인 것이다. 환자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환자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도대체 한국 의료, 병원에 어떤 근본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이러한 시스템 실패를 초래했는지 살펴보고,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그 사업장에 안전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사업장은 사업체 자체의 조직적 문제가 뿌리 깊게 존재하고, 그 문제가 여러 방면으로 곪아터져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산재 사망 사고는 그러한 문제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 비민주적이거나 무능력한 리더십,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 공정하지 않은 보상 및 승진 체계, 조직 내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장에서 결국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는 작업자의 부주의, 기계적 결함, 설비의 부족 등을 조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조직 운영상의 실패를 진단하는 데까지 이르러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 역시 그에 대한 원인 조사, 진상 조사는 좁은 의미의 ‘안전’에 대한 기술적 진단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원청기업인 한국서부발전,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전력 발전 시스템 자체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한 기업뿐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 시스템 자체의 실패와 오류를보여주는 병리적 현상 중 하나이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자 안전과 관련된 제도에 대한 진단과 해법뿐 아니라, 노동 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필요하다.
문제를 제도의 문제, 프로그램의 부족 문제로 인식하면 공학적 해결 방법에 의존하게 되고 전문가를 찾게 된다. 시스템 실패, 조직 운영상의 실패 문제로 인식하면 정치적 해결 방식을 택하게 되고, 민주적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을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지금은 랑시에르적 의미에서 ‘정치적 활동’이 필요한 때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 자끄 랑시에르, <불화 : 정치와 철학>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국제녹지병원’ 설립을 허가함에 따라 노동·시민·정당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물꼬가 트이면서 의료공공성이 무너질 것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6일(목) 저녁 7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코드 그린(데이나 베스 와인버그 지음, 티티 펴냄)』 북 토크가 진행되었다. 북토크에서 오고간 대화는 보건의료의 영리화가 보건의료인과 환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중요한 단서들을 주었다.
문서상의 성공, 현실상의 실패
‘코드 그린’은 긴급하게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미국, 의료분야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효율성을 최우선시 하는 병원들의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코드 그린 상황이 되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좋은 간호의 모범이었던 미국 보스턴의 베스이스라엘 병원과 하버드대 수련병원인 뉴잉글랜드 디코니스 병원의 합병 사례를 통해 시장적 의료개혁이 간호사의 일, 그리고 간호의 질에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합병된 베스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이하 BIDMC)는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전인적 간호를 벗어나 비용절감과 수익증대에 초점을 둔 방식, 업무를 세분화하고 간호인력의 역량 수준에 따라 이를 표준화해서 분장시키는 형태로 변화했다. 이를 통해 간호사들에게는 ‘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전인적인 일차간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간호사들의 역량이 훼손되고 소진되며 환자안전도 위협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이직을 택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고, 아예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나타났다.
BIDMC 간호사들이 겪은 문제는 미국 특정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간호사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답변은 한국사회 병원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쁜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
토론자로 참여한 최원영 간호사(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를 다 처내고 기둥만 남은 것 같은 상황이에요. 입퇴원 수속이나 기본 처치에만 집중해야 하고 환자가 좋아지기 위한 다양한 간호는 할 수가 없어요. 베스이스라엘 병원의 이야기는 1990년대 미국 상황이지만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병원 합병만 빼고는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병상회전율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 써요. 환자들은 ‘아직 퇴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나가라고 하지?’ 생각하죠.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보면 각종 진단검사와 수술 과정에서는 수익이 크게 나지만 그 이후 회복 과정은 병원에 별로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그 시간을 줄이고 있죠.”
“표준이나 기준을 낮추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수술하면 가스 아웃이 된 후 식사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가스가 안 나와도 식사해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중환자실 침대 시트 교체도 마찬가지죠. 원래 매일 갈아주었는데 이제는 더러우면 교체하는 식이구요. 약간이기는 하지만 대변이 묻었는데 그런 시트에 환자를 4일이나 두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MRI가 고장나도 그렇게 했을까요? 아니라는 거죠”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나의 경험도 떠올랐다. 라섹수술을 하기 위해 안과를 방문했는데, 수술 자체는 양쪽 눈을 합쳐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대기 풍경은 마치 제조업공장의 컨베이어벨트와 같았다.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장님이 되어 누어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강남에 7층짜리 건물전체를 사용하는 안과를 운영하려면 수익을 얼마나 내야 하는 것일까? 수술에 이용된 장비 가격을 검색해보니 약 11억 정도였다. 수술실에 나란히 놓여 있던 라섹수술장비 7대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MRI 가격이 10억에서 40억 정도라고 하니, MRI 고장에 대한 조치는 정말 잠시라도 지연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수술실 간호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은 충격을 받잖아요? 그런데 의사나 간호사들은 터질 일이 터졌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수술실에서 의료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배에서 가위가 나오고 거즈가 나오는 것, 오른쪽 무릎 수술해야 하는데 왼쪽 무릎 수술하는 것, 흔한 일이에요. 이런 일이 없으려면 의사가 외래중단하고 환자를 확인하러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잖아요. 다 마취된 상태에서 허겁지겁 뛰어 올라와서 수술하다 보니 확인도 제대로 못하고,. 간호사들이 수술용품 정리를 하는 중에도 의사들은 수술을 빨리 끝내야 해요. 무슨 공중화장실도 아니고 사람들이 빨리 나오라고 나오라고 하는 상황이 정말로 너무 힘들어요.”
“임상 말단에서 일하는 간호사한테는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요. 병원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수술실 간호사들은 환자 이름이나 환자 얼굴을 볼 기회가 없는데 일부러도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수술할 때 몇 번방 환자 이런 식으로 말해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양심 상 일을 할 수가 없는 아주 심각한 지경이고, 이런 것이 수술실 바깥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요”
수술실 간호사로 일을 했던 그녀의 경험은 환자 안전에 대한 고민, 인간으로서 윤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공중화장실’, ‘공장’이라고 표현된 병원의 모습은 의료영리화 현장에서 간호사가 겪는 아픔을 잘 말해준다. 간호사들은 직업적 소명의식과 전문성, 그리고 병원의 돈벌이 강요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동영상이나 고 박선욱 간호사의 자살 사건을 통해 병원의 일터 괴롭힘, 태움 문화를 알게 되었다. 왜 순응하고 동료를 괴롭히는지, 개선을 위해 함께 행동하지 못하는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코드그린』 을 읽다보면, 합병된 BIDMC에서의 조직 갈등은 성급하고 잘못된 인수합병(M&A)의 결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이 갈등에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달려 있다. 비용절감과 수익창출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을 때, 보이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과정들이 생략됨으로써 의료인력들은 고통 받았고, 환자의 안전은 위협받았다.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널리 알려지면서 대통령 직속일자리 위원회는 제 9차 회의에서 대책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간호사를 충원하고 태움 문화 방지를 위한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간호·간병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보조 인력을 충원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간호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도,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보건의료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안전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보장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환자와 대면하는 간호사의 권리가 보장되고 노동환경이 안전해져야 할 것이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에 대한 감상은 조금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이 그 작품 자체를 넘어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당시의 기억, 그리고 현시대에서 그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국가부도의 날>은 개인적으로 남다른 현대사 영화였다. <택시운전사>의 배경인 1980년의 광주나 <1987>의 배경인 1987년 6월은 교과서로만 접했을 뿐, 개인적인 기억이 전혀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경험했던 IMF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나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한국어로 풀어주어도 어려운 IMF라는 국제기구는 정확한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수없이 듣고 말하면서 초등학교 때 이미 익숙해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당시 뉴스들을 보며 캉드쉬라는 이름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아나바다 운동이나 금 모으기 운동도 기억이 났다. 영화를 보면서 ‘저 때 관광버스는 저렇지 않았는데’, 혹은 ‘저 때는 ‘개’라는 접두사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며 굳이 사실과 다른 점을 집어낸 것을 보면 나도 그 시기를 지나왔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온전히 그 시기를 살아냈던 세대와는 그 감상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조금 생겼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깊은 절망에 빠져 고민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아버지 갑수(허준호 배우)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집은 IMF가 오기 1년도 더 전에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으니 IMF 충격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그 시절 참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무심히 흘려보낸, 아버지가 20여년 전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고는 다시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단편적 기억과 IMF에 대한 추상적 지식이 영화 속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은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었다. 이를테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이름의 캉드쉬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다는 뉴스를 본 기억과 IMF를 계기로 한국이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변모했다는 지식은 그동안 별개의 것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영화를 통해 나의 기억들이 설명되는 듯했다.
이러한 즐거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IMF에 대해 좀 더 찾아보게 만든 것은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영화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매체들이 IMF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보들을 쏟아낸 것도 도움이 되었다. IMF 구제금융에 이르게 한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 구조와 맥락은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이후로는 이 문제에 대해 천천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인데도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시기를 잘 알지 못했지만, 오늘날 이 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 또래 세대들이 이 영화를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나면 ‘위기는 곧 기회’라는 영화 속 대사를 곱씹게 된다. 보통은 ‘전화위복’과 같은 맥락으로 사용하지만 ‘(누군가의) 위기는 곧 (다른 누군가의) 기회’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한국의 위기는 미국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서민들의 위기가 곧 기득권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위기와 기회를 말할 때 그것이 ‘누구의’ 위기이고 ‘누구의’ 기회인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고,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영화 속 한시현(김혜수)의 말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11월 5일,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오후 6시, 퇴근시간 붐비는 사람과 차를 헤치고 서울대 연건캠퍼스에 도착한다. 한적한 교정과 달리 교육관 강당은 사람으로 붐빈다. 행사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 들뜬 얼굴로 지인과 대화하는 이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자료집을 읽는 이들이 시야를 채운다. 그 사이로 캐런 메싱 선생의 백발이 빛나고 있다.
<공감 격차 줄이기 : 한국과 태나다의 경험과 과제> 강연회 장소에 직접 오지 못한 이들을 배려해 강연회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번 강연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주최 단체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메싱 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단상에 올랐다. ‘Thank you very, very, very, very, very much.’ 환영하는 청중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후,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보이지 않는 상처(Invisible that hurts)’라는 그룹의 이름을 강의 슬라이드에 띄운다. 본인이 함께 일해 온 특별한 조직으로, 대학, 노동조합, 여성운동이 함께 만든 공식적 파트너십이라고 소개했다. 법학, 인간공학, 커뮤니케이션, 심지어 춤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있다니 흥미로웠다.
본격적 강의에 앞서 거시적 정치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노동자를 언제든 동원하고 손쉽게 해고하는 현실은 한국이나 캐나다나 매한가지라고 느껴졌다. 메싱 선생은 노동자 한 사람을 생산요소의 한 단위로 여기며 비용최소화를 추구하는 경제학의 논리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며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서 이는 결코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노동자에게 갈수록 가혹해지는 세상에서 특히 여성노동자가 처한 위험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40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는 작업속도가 더 빠르고 면밀히 통제되는 근무환경에서 일하며, 자기 자신과 업무를 부끄러워하고 하찮게 여긴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그 사회의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세계화된 자본 권력이 활개치는 전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 노동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강연의 본론이 시작되었다. ‘관리자나 연구자가 여성의 노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는다.’ 제목 아래에 기술자 두 명, 늑대 이미지와 마주한 식당 점원, 마트 계산원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속 노동자는 모두 서 있고, 대부분 여성이다. 메싱 선생은 여성 노동자가 비가시적인 고통을 받는 경우를 크게 (1) 다른 이와 함께 공동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 (2) 업무와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 (3) 일하는 내내 서있어야 하는 여성노동자 문제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화면의 그림 세 장이 각각 여성노동자의 고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알아챘다.
첫 번째로 공동작업(teamwork)하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메싱 선생은 펜으로 까맣게 지웠다가 다시 고쳐 쓴 근무시간표를 보여줬다. 개별 노동자가 신청한 휴가는 무시되고, 거의 매일 변경되는 복잡한 근무 일정에 여성 노동자가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병원 간호사도 마찬가지, 유연한 노동력 분배랍시고 매번 근무스케줄을 변경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같은 근무조에 속했던 간호사 두 명이 다시 만나 함께 일하게 되는 빈도가 한 달에 겨우 한 번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 사이의 협업은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빈번하게 변경되는 스케줄 때문에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기타 업무를 인수인계 하는데 드는 품과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은행 노동자의 사정도 비슷하다. 매주 새롭게 익혀야 하는 업무 매뉴얼의 양이 방대해서 혼자는 알기 어렵고 여럿이 분담해 공부하고 서로 도와주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근무스케줄을 짜다보니 어떤 날에는 나머지 노동자들이 모두 초보라서 숙련된 선임노동자 홀로 고분군투하는 일도 벌어지게 된다. 이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로 볼 수 있지만, 일을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이런 종류의 ‘보이지 않는 노동’은 연구자에게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두 번째 주제로, 직장 생활과 가족 돌봄을 병행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메싱 선생은 출근 시간이 매일 달라지는 콜센터 노동자 예를 들었다. 콜센터에서는 출근 당일부터 모레까지의 교대근무 일정만 공지된다. 그 이후의 출근 시간은 알 수 없다. 그러다보니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노동자는 갑작스레 동료와 근무 일정을 바꾸거나 베이비시터와 약속시간을 조정하는 일이 많다. 노동자 30명을 조사했더니, 근무 조정 시도 횟수가 일주일 평균 180회가 넘었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이다. 이러한 조정이 잦아질수록 베이비시터의 일정도 복잡하게 바뀌고, 베이비시터는 물론 이들이 돌보는 아동까지 연쇄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콜센터 노동자, 베이비시터, 노동자의 자녀 등이 힘들어하는 상황은 일정 조정에 실패한 노동자 가운데 누군가 지각 또는 결근을 해야 비로소 드러난다. 이 때 관리자는 지각과 결근의 원인을 여성노동자의 고용주를 위한 비가시적 노동에서 찾기보다, 그들의 개인적 자질 혹은 불성실한 태도를 탓한다. 이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는 여성노동자가 많고, 연구 참여자들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다고 했다. 공감격차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메싱 선생은 노동자의 절망적인 상황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운송설비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들으니 위로가 되었다. 청소노동자들 역시 근무 일정 조정을 위해 여러 동료들과 연락하는 노동, 즉 비가시적 노동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독특한 대응 방식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연결망 안에서 활약하는 몇몇 ‘중심’ 노동자였다. 여러 동료들의 변경 요청을 받아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중심 노동자의 모습이 ‘연대의 지도 그리기(mapping solidarity)’를 통해 드러났다. 이들은 공식적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개발해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료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었다. 메싱님은 이들의 노하우를 정리하여 안내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노동조합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돕는 연구자에게 유용한 방법론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다른 사례를 더 들려주었다. 주인공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싱글맘이고, 낮에는 아이의 치료 스케줄이 많아서 야간에 근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나마 함께 사는 여동생이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아이를 돌보아 준다. 하지만 퇴근한 이후에도 좀처럼 잠을 잘 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큰 문제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직장 동료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이 여성노동자가 틈틈이 잘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주었다.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서 근무환경이 조금 나아지고 고용주 또한 이런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사례를 분석하여 논문으로 투고했는데, 학술지 편집자가 언어 수준이 낮다며 노동자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메싱 선생은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를 만날 기회가 적은 연구자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공감격차라 생각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서서 일하기에 관한 것이다. 메싱 선생은 서서 일하는 것의 의미를 먼저 짚었다. 가만히 고정된 자세로 서 있기부터 걷기, 뛰기, 나르기, 기대기 등 서서 일하는 형태는 다양하고, 캐나다 퀘벡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남녀 모두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이 더 높았다. 메싱 선생은 남성보다 여성이 서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식당 서빙, 조리사, 계산원, 판매원, 간호조무사 등이 대표적인 직종이다. 함께 ‘서서’ 노동자의 모습을 관찰하며, 이들이 얼마나 자주 벽에 기대는지 허리나 무릎을 몇 번이나 주무르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들 중에는 자신이 부지런히 일하는 중이고 언제든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힘들어도 서서 일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주류 학계의 관점은 다르다. 학계에서는 ‘앉아서 일하는 것은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 입식 추천, 의자를 주의하라’는 등의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큰 책상 앞에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사진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몸에 꽉 조이는 정장을 입은 이 여성은 환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한 인간공학 학술지에 실린 것으로 서서 일하기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메싱 선생은 저명한 인간공학자와 나눈 대화도 소개해주었다. 그 학자가 서 있는 노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길래 오랜 시간 박물관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면 허리가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공감하면서 개와 동행하는 박물관 걷기(museum walking)의 효과를 연구해보면 좋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연구를 하거나 사무를 보는 이들에게는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제조업이나 서비스 제공 현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 인간공학자에게는 자기에게 요리를 가져다주는 식당 노동자의 서있는 노동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보다 개와 함께 걷는 연구를 먼저 떠올리는 작태는 그 인간공학자가 유난히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와 직접 대화하지 않거나 직접 노동 현장을 관찰하지 않을 때, 연구자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공감격차라 했다.
마지막으로 메싱 선생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송을 통해서 마트, 은행, 서점 등에서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도 하고, 근무 일정을 조정해주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한편 메싱 선생은 최근의 미투 운동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 자신, 그리고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기보다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은 순차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메싱 선생이 두세 문장 발언한 후 곧이어 시민건강연구소 김명희 선생이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메싱 선생이 영어로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통역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웃고는 했지만, 나는 한국어 통역을 듣고서야 농담의 뉘앙스나 강연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여성 노동자가 겪는 문제에 대한 나의 지식과 정체성에서 오는 공감격차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공부와 반성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공부와 반성은 여성 노동자와 소통하며 공감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새로운 고용 형태가 출현하면서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노동권 관련 이슈가 가끔 뉴스가 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에 관한 영국의 몇 가지 사례들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플랫폼 기반 노동, 혁신적 일자리 창출인가 비정규직 양산인가
긱 이코노미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지만, 좁은 의미로는 온라인 노동시장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임시적 일자리 또는 초단기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노동시장에서는 일을 하는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지만, 긱 이코노미는 그러한 제한 없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서비스가 제공된다. 차량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Uber)’의 운전자,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딜리버루(Deliveroo)’의 라이더, 아마존의 총알배송서비스인 ‘프라임 나우’의 최종 배송을 담당하는 아마존 플렉스, 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업체인 ‘태스크래빗(TaskRabbit)’ 같은 회사를 통해 부업을 하는 사람들, 퀵서비스 업체 ‘포스트메이트(Postmate)’의 배달부 등이 대표적인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음식 배달, 대리기사, 반려 동물을 돌봐주는 펫도우미, 가사도우미 등이 긱 이코노미 노동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를 독립적인 단기계약 작업 또는 프리랜서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롭고 유연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으로 바라볼 것인가,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호출근로나 특수고용 노동자가 단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한 새로운 착취 형태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긱 이코노미 작업자의 대다수가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국에서는 이들의 고용 상 지위를 노동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공방이 진행 중이고, 더불어 긱 이코노미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상할 수 있듯 긱 이코노미 종사들의 투쟁이 있었다.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파업 투쟁
2016년 8월, 딜리버루의 라이더들은 불공정한 계약 조건 변경에 맞서 약 일주일간 파업을 조직하여 승리를 이끌어냈다. 딜리버루의 첫 파업이었다. 그 후 배달, 청소 등 플랫폼 기반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투쟁들이 이어졌다. 최근인 2018년 10월 4일, 영국의 7개 도시에서 외식업 노동자들과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맥스트라이크(McStrike)라고 이름 붙여진 이 파업에는 맥도날드, TGI 프라이데이, 웨더스푼에서 일하는 외식업 노동자들, 우버 이츠(UberEats)와 딜리버루의 배달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외식업 노동자들과 외식업체의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의 첫 번째 연대 파업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 인상, 노동권 확보, 노동조합 인정 등이었다. 이 파업은 남미와 유럽 등에서 진행된 글로벌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과 연대해 진행되었다. 그리고 10월 8일에는 우버 운전자들이 24시간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요금 인상, 수수료 인하,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불공정한 앱 비활성화 중단 등을 요구했고, 파업기간 동안 우버앱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업에 힘을 보태달라고 대중들에게 호소했다.
엇갈린 판결: 우버 운전자는 노동자, 딜리버루 라이더는 자영업자?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과 더불어 소송을 통한 권리 확보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6년 우버 운전자 두 명은 생활 임금, 휴가, 휴식과 병가에 대한 운전자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우버 측에 제기했다. 법원은 운전자의 손을 들어 주었고, 우버는 항소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영국 항소 법원은 고등법원과 마찬가지로 우버 운전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피고용인으로 인정하며 고용 상 지위를 둘러싼 우버와 우버 운전자 간의 법정 싸움에서 운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결정을 통해 우버 운전자들은 최저 임금과 유급 휴가 등의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판결 직후 우버는 대법원에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항소 법원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한편 2017년 영국의 중앙 중재 위원회는 딜리버루의 라이더들이 노동자가 아닌 독립적인 계약자이므로 단체교섭권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비스 제공에 강제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주된 이유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럽 인권 조약 위반이라고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영국 고등법원은 딜리버루 라이더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교섭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조합은 법원의 결정에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따라서 이 역시 최종 확정 판결은 아니다.
테일러 리뷰와 영국 정부의 노동 개혁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이 독립적인 계약자이니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과 플랫폼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로 인정하고 완전한 노동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도, 종속적인 계약자로 간주하고 자영업자와는 구분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영국 정부는 2017년 ‘테일러 리뷰’라는 현대 경제의 노동 행태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발표했다. 왕립학회장이었던 매튜 테일러가 주도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현대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고용 관행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데 초점을 두었고, 일련의 개선 권고안을 제시했다. 테일러 리뷰는 특히 파트 타임과 유연 노동 같은 긱 이코노미에 집중했다. 보고서는 영국 경제에서 ‘모든 일은 공정하고 괜찮은 것(fair and decent)’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딜리버루나 우버 같은 플랫폼 기반 사업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종속적인 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영국 정부는 테일러 리뷰의 권고를 수용하여, 2018년 12월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춘 개혁안을 발표했다. 법안의 핵심은 근무 첫날 종사자에게 임금과 병가 등의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종사자가 예상 근무 시간을 요청할 권리 등이다. 법안 발표 후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노동조합의 입장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단체 교섭을 할 권리를 얻지 못하는 한, 결국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은 소모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영국에서 유럽으로, 현재 진행형
2016년 영국에서 시작된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영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잇따른 투쟁과 더불어 노동권 확보를 위한 법정 투쟁이 진행 중이고, 정부는 미온적이나마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비전통적인 노동 형태의 출현을 둘러싼 혼란은, 완전한 노동권을 인정받으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부정하는 플랫폼 기업들 간의 싸움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개 연구: Kosny A, Tonima S, Ferron EM, Mustard C, Robson LS, Gignac MA, Chambers A, Hajee Y. Implementing violence prevention legislation in hospitals: final report. Project report. Toronto: Institute for Work &Health; 2018.
2018년의 막바지 국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와 예방, 피해근로자 보호 조치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2013년 9월 한정애 의원이 최초 발의한 후 임기만료로 폐기된 지 5년이 지나서다. 2018년 9월 12일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후에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한차례 진통을 겪었으나 이번에는 다행히도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한 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이런 법률이 통과될 수 있었다. 특히 보건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한림대 성심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간호사들이 병원 관계자, 환자와 신부 앞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사건이 폭로되었고,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사건을 통해 병원의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태움’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하지만 고(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서울아산병원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으며, 재발 방지대책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 사업주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와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행위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보건의료 현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11월 12일, 캐나다 윈저의 한 병원(Hotel-Dieu Grace Hospital)에서 회복실 간호사 로리 뒤퐁 (Lori Dupont)이 같은 병원의 마취과 의사인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형적으로 의사가 “직장 내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간호사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가한 사건이었다. 살해 당하기 전 로리 뒤퐁은 병원 측에 계속해서 구조를 요청했고 병원 측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인까지 이르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를 84차례나 놓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건의료 현장이 폭력과 괴롭힘 예방, 피해자 보호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폭력과 괴롭힘을 ‘업무상 위해 (occupational hazard)’로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Act)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010년 6월 15일부터 발효된 개정안 (Bill 168)은 사업주의 폭력예방정책 수립과 매년 검토,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감독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관리,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발생 시 신고와 대처,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에 관한 실태조사,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예방을 위한 교육 등을 포함한다. 뒤이어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의 범위에 성폭력과 성희롱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한 개정안 (Bill 132)이 2016년 9월부터 발효되었다.
하지만 온타리오 주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로리 사망 직후 노동부는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온타리오간호사노동조합(Ontario Nurse Association)과 로리의 동료,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 끝에 비로소 노동부는 수사에 착수했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한 권고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온타리오간호사노조를 주축으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겪는 폭력이 마치 업무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조직 문화에 균열을 내고, 고용주인 병원과 이사회가 보건의료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법의 적극적인 집행을 촉구하는 운동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2013년 2월과 3월에는 온타리오 노동부가 221개 보건의료기관을 285차례 불시 점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하여 307건의 시정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2015년 10월 1일에는 온타리오병원협회에서 온타리오 주 전체의 급성기 영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온타리오 주 노동부는 일터에서의 폭력을 보건의료 영역의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
그렇다면 개정된 온타리오 주 산업안전보건법이 보건의료 현장을 안전한 일터로 변화시켰을까? 한국보다 앞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일터의 안전보건 문제로 이슈화시킨 캐나다 사례는 우리사회에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일과건강연구소 (Institute for Work & Health)가 2018년 2월에 발간한 보고서는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연구팀은 정책결정자와 온타리오 주에 위치한 대표적인 5개 급성기 병원을 선정하여 병원 경영자, 보건의료 노동자, 비-보건의료 노동자를 대상으로 개별 인터뷰와 초점집단면접을 실시했다. 개별 병원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Bill 168)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을 탐색하고 폭력 예방정책 실행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개선 사항을 분석하고자 했다.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보건의료 현장에서 폭력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제한점들이 도출되었다.
캐나다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개별 병원에서 실시하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유일한 교육 기회였다. 조사에 포함된 네 개 병원 모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에 대한 직원 교육을 실시했고, 응급실 같은 고위험 분과 의료진에게는 필수 교육에 더해 심화 교육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예방교육 자체의 부담이 커지면서 병원들이 온라인 교육에만 의존하고 되었고, 직원들은 업무시간 외에 자율적으로 교육을 이수하도록 방치되고 있었다. 교육 내용에서도 수평적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괴롭힘이 과소 대표되는 등 포괄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교육 대상 또한 충분히 포괄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병원 내 봉사자들이 충분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개별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병원마다 조사 주기와 형식이 상이했다. 실태조사의 목적과 과정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보니 직원들 사이에 혼란이 초래되기도 했다. 안전보건공단(Public Services Health and Safety Association)에서 개발한 실태조사 툴킷이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개별 병원의 개별 부서에서 이를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실태조사가 사전적 조치로 실시되기 보다는 사건 발생 후에 사후적으로 실시되는데 그쳤다.
병원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해 숙련된 응급팀(Code White team)을 상시 대기시키고, 개별 노동자들에게 경보기를 지급하여 폭력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하도록 했다. 병원 노동자들의 경보기 도입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지만, 경보기 자체의 기술적 문제는 차치하고 (예컨대, 주차장에서 작동하지 않음) 경보 발생 시 대응 과정, 예컨대 경보 발생 시 대응의 책임자가 누구이고 개별 노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전히 모호하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소규모 지역사회 병원 한 곳을 제외하고 네 곳의 병원 모두 보안요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안서비스는 병원 예산이 삭감되면 가장 먼저 축소하는 영역인 만큼, 주 단위에서 병원 보안 프로그램의 역할과 구조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필요한데 이것이 미흡했다. 주목할 만한 차이는 보안 요원을 직접 고용한 병원의 노동자들이 외부 업체에 도급을 준 병원의 노동자들보다 보안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병원에 직접 고용된 보안요원은 급여가 높을 뿐 아니라 이직률이 낮기 때문에 병원이 전문화된 폭력 예방교육에 투자할 유인 또한 높게 나타났다.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는 예방 정책과 교육의 중요한 동인이다. 하지만 언어폭력, 괴롭힘, 상해 없는 폭력 등의 특정 범주는 신고율이 특히 낮다. 길고 복잡한 신고 절차, 신고 접수 후 후속 조치와 투명성 부족은 신고를 방해하는 중요한 장애물로 나타났다. 신고를 해도 구체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신고를 꺼리게 만들고 있었다. 폭력과 괴롭힘 사건 발생 후 후속 조치는 전적으로 감독관의 의지에 달려있었고, 신고에 따른 낙인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공격적인 환자 표식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보건의료 현장은 직장 내 괴롭힘이 동료 의료진에 의해서뿐 아니라 환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이력이 있거나 공격적 성향을 지닌 환자를 표식하는 것이 의료진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하는 병원의 의무와 충돌할 뿐 아니라 환자를 낙인찍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병원의 노동자와 경영진 모두 이러한 법률의 충돌과 모호함 때문에 공격적인 환자 표식 제도에 대해 불확실함을 느끼고 있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경험은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예방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실태조사가 표준화되지 않고 사후적으로 실행되는 데 그친다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과 함께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시: 2018년 12월 13일의 오후
장소: 서울 사당동 시민건강연구소 세미나실
좌담 함께한 사람들
이을/한국여성노동자회, 전수경/직장갑질119,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진행 김명희/시민건강연구소, 노동과건강 편집위원장
기록 한지훈/노동건강연대
김명희 : <노동과건강> 이 노동안전 분야나 환경보건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주요 독자들이고, 주류화되지 못한 주변부 노동 이슈를 파악하는데 나름 도움이 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희롱 문제는 이 지면에서 별로 다룬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소속 단체와 각자의 활동 분야를 좀 소개해주세요. 저만 해도 여성노동자회를 노동조합으로 착각했거든요.
이을: 여성노동자회는 노동조합은 아니고요.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에 천착해 활동해 온 조직입니다. 1987년도에 설립되었고 2018년이 31주년이었죠. 노동운동이 한창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에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거기서도 부수적으로 다루어졌다고 해요. 여성 노동자들이 가진 진보적 시각을 운동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거죠. 지금은 11개 지역 지부가 있는 전국 조직이에요. 최근 저희가 가장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것은 ‘성별임금 격차 해소’ 입니다. 최저임금이라는 단어와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여성노동자회가 가장 먼저 제기했다고들 해요. 1997년 IMF 이후 여성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해고되었지만, 여성노동자라는 게 그렇잖아요, 노동하고 있는데 노동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저희가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를 통해서 ‘내 임금이 너무 적다’ 는 상담이 온 거에요. 최저임금을 올려야 여성노동자들의 열약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운동을 계속 해왔고, 이것이 ‘성별임금 격차’ 개념으로 이어진 거죠. 2016년부터는 ‘성별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3시 STOP 조기퇴근’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김명희: 저희 시민건강연구소 노동조합도 참여했습니다.
이을: 그리고 ‘성별임금 격차 해소’ 활동의 하나로 ‘임금차별 타파의 날’이라는 것도 만들었어요. 사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OECD 국가들 중 1등이라는 것은 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전체적으로 남녀 임금 비가 100대 64인데, 여성노동자의 과반수가 비정규직이고, 남성 정규직과 여성비정규직을 비교하면 100대 38 정도가 나오거든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죠. 38로 임금을 계산해보면 여성노동자들은 1년 중 5월 18일까지만 일하면 되요. 나머지 날들은 무급으로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5월 18일을 임금차별 타파의 날로 정해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있어요. 모성, 부성권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요. 이건 사실 유리천장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요. 임신·출산·육아 때문에 여성은 채용부터 차별을 겪고, 모성, 부성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잘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고용 단절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올해 더 열심히 활동했던 것은 채용 성차별인데요. ‘성별임금격차‘라는 큰 틀 안에서 보자면, 이것이 여성노동자가 노동 세계에서 차별받는 첫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돌봄노동 문제도 주요 활동 영역이에요. 가사관리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같은 돌봄 노동을 여성들이 많이 하잖아요. 성별분업에 해당하죠.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수가를 떼고 하면 돌봄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있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요. 가사관리사는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있지 않아요.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지 62년이 지났지만 가사관리는 제외한다는 조항이 아직도 남아 있고,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거든요.
김명희 : 민주노총이 있고 민주노총 안에도 여성분과가 있는데, 활동에서는 어떤 부분이 다른 건가요?
이을 : 저는 민주노총에서 활동을 안 하고 조합원도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노동안전보건 활동 고민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조합원 숫자가 얼마인데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는 달랑 몇 명. 민주노총에도 여성 부서가 있고, 사업장에도 여성 담당자가 있지만 총무국장 플러스 여성, 이런 식으로 겸하는 것 같아요.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노동을 안 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임금노동 시장 안에서 남성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먼저 조직된 사람 중심이니까 후발주자였던 여성의 이야기는 작게 들리는 것 같아요. 민주노총에서 최근에 여성노동자 토크쇼를 하는데, 성별분리가 심한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 철도기관사, 비행기조종사. 이런 분들이 공통적으로 여성이 너무 소수다, 더 많은 여성이 들어오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김명희 : 보건의료 부문처럼 여성노동자가 많다고 해서 이들의 목소리가 다수파인 것도 아니에요.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필요한, 직장갑질119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죠.
전수경 : 저는 노동건강연대 소속이라 월급은 노동건강연대에서 받고요. 노동 영역에서 활동가, 법률가들이 뜻을 모아 직장갑질119를 만들었어요. ‘노동조합’ ‘노동문제’ 이렇게 이야기하면 외부로 확장되기 어려운 것 같아서 처음부터 ‘직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직장갑질119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과 입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노동운동의 경계를 흐리고 싶었어요. 누구라도 말할 수 있게 하는 방식, 노동자 계급 의식을 갖지 않아도 자기 문제를 말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도록 직장갑질119를 만들었죠. 1년 정도 활동했는데 확실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자기문제를 말할 곳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공이라는 것도 사실, 직장갑질119에 대해서 워낙 기자들이 기사도 많이 내주고 우리가 인터뷰도 많이 하고 해서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최근에 제가 한 학회가 주최한 ‘직장 내 괴롭힘의 쟁점과 과제 공동정책세미나’ 라는 곳에 청중으로(웃음)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토론회장이 국회였는데 학회 회장이 사회를 보고 노동부, 경총, 법무법인 김앤장, 태평양, 그리고 서울대 박사가 앉아 있어요. 그런데 경총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오늘 노동계가 안 와서 말 편하게 하겠다”(웃음) 그들이 만든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각국의 입법동향 등, 두꺼운 토론회 자료집을 훑어 봤는데 자료집 어디에도 직장갑질119 이야기가 안 나오더라구요. 직장갑질119 이름이 꼭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발표와 토론 내용을 보니 약간 문화충격, 법학 교수인 좌장이 김앤장 변호사를 토론자로 소개하면서 ‘바쁘신 와중에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 자기 일도 아닌데 와줘서 고맙다 이런 식이더라구요. 김앤장 변호사가 소송 준비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라 기회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미 전담팀이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직장갑질119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고 생각하지만, 주류 집단은 그들만의 리그로 가는 거예요. 노동부도 직장갑질119 자문 한 번 없이 이미 사업주를 위한 갑질예방 매뉴얼을 발주했더군요. 제가 직장갑질119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주류는 그들만의 리그로 간다고 했더니 다들 풀이 죽었어요.
김명희 : 남들 힘 빼 놓는 데 일가견이.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김성이 선생님도 소개 짧게 부탁드릴게요.
김성이 : 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보건의료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적 담론을 모색하는 민간연구단체입니다. 건강불평등, 대안적 보건의료체계, 지역사회와 시민참여 등에 대해 분석하고 대안을 검토하여 논평, 이슈페이퍼,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어요. 진보적인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고, 지식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서리풀학당과 월례세미나 등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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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때문에 그래도 살만해졌다
김명희 : 온라인 상의 성폭력 해시태그나 미투 운동이 활발한데, 이렇게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기 전에도 이미 일터 성폭력이나 성희롱 문제는 많았잖아요. 여성노동자회에서 임금, 고용불평등 문제를 다루었지만 성폭력 문제도 많이 관여했을 것 같거든요. 사례나 활동 경험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을 : 여성노동자회 중앙은 정책, 이슈파이팅을 하고 지역지부는 ‘평등의 전화’를 운영하고 있어요. 평등의 전화는 89년 시작해서, 10개 지역에서 운영해요. 매년 상담통계를 내고 사례집을 발간하고 있어요. 1년에 약 3천 건 정도 상담하는데. 임금체불, 근로조건, 모성, 성희롱, 성차별, 괴롭힘 등이 많죠. 미투 운동 이후 변화라면,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상담이 5년 동안 세 배 정도, 올해 특히 많이 늘어났어요.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상담 1위가 직장 내 성희롱이었구요. 10개 지부 전체를 보면 근로조건 상담이 아직 많지만, 올해 미투 운동이 한창일때 전년도 같은 기간을 비교하니 227건, 1.5배였어요.
직장 내 성희롱은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특별히 많아요. 나이가 젊고 근속연수 3년 미만이 73%, 고용형태도 비정규직, 근데 규모로 보면 2~300인, 규모가 큰 사업장이 많아요.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모성권도 지켜지니까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많아진 거죠. 3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은 성희롱이 없다기보다 문제제기 자체가 어려운 거 아닐까 생각해요. 문제를 공론화하면 생존권이 박탈될 수도 있잖아요. 통계에 안 잡히는 직장 내 성희롱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죠. 생각나는 사례가 있는데, 가전제품 방문관리 해주는 분들 있잖아요. 정수기. 이 분들이 중년여성, 혼자 다녀요. 어느 가정을 방문했는데, 중년 남자 혼자 있고 그 사람이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냐,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오면 안 무섭냐, 그 남자가 성추행을 한 거죠. 심각한. 성추행은 흔하게 벌어지는 것이라 경험자체가 특별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여성노동자의 인식이 기억에 남아요.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김명희 : 추행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을 : 일을 다 마치고 나왔대요, 결국. 왜 그랬을까, 이 분이 특수고용 노동자고, 성희롱에 대한 고충상담을 하거나 구제 받을 방법이 없고. 고용 때문에,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지 못한 것이죠.
김명희 : 본인은 아예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네요.
이을 : 미투 운동이 일어난 3~4월에 있던 일이거든요. 이 사례를 들으면서 작업중지권에 대해 생각했어요. 전국여성노동조합이라고 자매 조직이 있어요, 골프장 경기보조원, 캐디가 많이 조직되어 있어요. 성희롱이 많고, 그 이야기를 회사에 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특수고용이니까. 말하는 순간 너 나가라고 할 수 있죠. 동료나 관리자에게 말하면 “서비스직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런 식이래요. 미투 운동 후에 성희롱이 좀 줄기는 했대요. 골프장 사장이 회식하자는 일도 줄었다고 들었어요. 조합원 간담회에서 이 분들이 미투 운동 때문에 살만해졌다고 이야기해요. 세 번째는 네 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에서 일어났던 일인데요. 사장이 “다리 보이니까 흥분 된다” 이런 성희롱을 계속 하니까 직원들이 아예 대꾸를 안했대요. 사장이 업무를 트집 잡아 소리 지르고 서류 던지고, 결국 해고했어요. 이 사례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여성의 상당수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요. 두 명도 있고, 네 명도 있고, 가해자가 사장인 경우가 많아요. 성희롱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 잘리는 거죠.
김명희 : 상담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노동청에 고발하거나, 함께 해주나요?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지 않나요?
이을 : 그렇게 적극적으로 가는 분들, 공론화까지 가는 분들은 적고, 단순 문의가 많아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냐’ 물어보고 중단되기도 하고, 어떻게 회사에 문제제기 할지 법률자문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굉장히 적어요.
김명희 : 직장갑질119에도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전형적인 패턴이 있나요?
전수경 : 직장갑질119가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전형적이고 엽기적 사례도 있지만, 상담들 중에서 약한 사례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당사자도 보호해야 하고, 법적 대응도 해야 하니까 오히려 공개를 잘 안하죠. 성희롱 사례는 언론에 거의 알린 적이 없는데 상담이 많기는 해요. 미투 이후 심각한 성폭행 상담들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변호사에게 알리고 지원하는 식으로 해요.
직장갑질119는 오픈채팅방에서 기본 상담이 되니까 아무나 들어올 수 있거든요. 물론 심각한 상담을 하는 분들은 이메일로 하니까 일대일 관계이기는 한데, 제보자가 보기에 직장갑질119는 굉장히 큰 네트워크니까 내용이 혹시라도 퍼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심각한 사례가 아주 많지는 않고 성추행에 대한 상담이 굉장히 많은데 유형이 대체로 비슷해요. 남성이 많은 집단에서 여성 직장인이 혼자 있을 때, 큰 기업들에서, 여성 직장인에게 어떤 부장은 어깨를 주무르고, 어떤 부장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허리를 흔들고, 어떤 과장은 은근히 귀여운 데가 있다 그러고 어떤 관리자는 노래방에 가서 어떻게 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희롱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이게 바로 남성들의 카르텔이구나 느낄 수 있어요. 어떤 회사에서는 한 명의 상사가 네 명의 여성노동자에게 각각 키스를 요구한 사례가 있어요.
김명희 : 미친 것 아니에요? 어디서요?
전수경 : 눈치를 안 보는 것이겠죠. 회식장이든 노래방이든.
이을 : 다른 사람들 보는 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전수경 : 각각 충성도를 실험하는 것이래요. 그게
이을 : 아시아나 회장이 그랬잖아요. 불러다 앉혀가지고 허그하고 뽀뽀 시키고.
전수경 : 저희가 언론에 발표할 때는 수위조절을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엽기적인 것들이 많아요. 근데 충성도를 실험한다고 키스를 요구받아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을 ; 인사고과 반영될까봐,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을까요.
전수경 : 남성들의 카르텔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느낀 사례가 또 있는데, 한 여성 노동자가 다른 사람 전부 1년이 지나 호봉이 오르는데 자기 혼자만 급여가 1원도 안 오른 거예요. 이해가 안 돼서 인사평가 내용을 보니, 이름도 이상한 ‘피플 평가’ 이런 게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판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보니까 1-2년 전에 성희롱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대요. 당시 주변 남성 동료들도 도와준다고 해서 문제제기한 건데요, 그 때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다들 처음 듣는 것처럼 말을 하더래요. 남성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은폐하고 덮어주기 때문에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심각한 성폭력 문제는 직장갑질119에서 다루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미투 이후에 직장 내 성폭력을 다루는 별도의 창구를 열까 잠시 고민했는데. 우리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한 명 한 명을 케어할 수 없어서 포기했어요.
김명희 : 김성이 선생님, 최근 젠더 폭력 관련해서 정부가 정책도 내고 그러는데 특별히 일하는 여성, 여성 노동자와 관련된 부분이 있나요?
김성이 : 노동현장의 성차별 및 젠더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관한 대표적인 법제도는 남녀고용평등법이나 양성평등기본계획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신고센터가 고용노동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에 마련되어 있고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처음으로 여성가족부에서 2015년에 성희롱 실태조사를 거의 만 명 가까운 인원에 대해 실시했습니다.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도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하는데 규모가 꽤 커요. 2014년 조사에 5만 명 정도 참여해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경우 성희롱 예방교육도 하고 있고, 실태조사, 보호센터, 신고센터 같은 기본 틀은 일단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김명희 : 근로환경조사에서는 성희롱 비율이 굉장히 낮게 나오던데.
김성이 : 맞아요. 조사결과를 보면 2% 나와요. 여성가족부 실태조사는 성희롱 경험률이 6.3%였거든요. 그런데 최근 형사정책연구원 조사(<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연구>, 2017)에서는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여성의 비율이 52%가 나왔어요.
김명희 : 52%요?
김성이 : 실태조사를 누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성희롱 빈도의 편차가 너무 커서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다고 평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김명희 :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대답도 할 수 있잖아요. 저도 자료를 분석해보면 여성 성별 때문에 차별받았다는 사람은 대개 대학졸업해서 대기업 다니는 이들이에요. 고용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분들은, 그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노동시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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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괴롭힘의 본질은 구조적 성차별
김명희 : 일터 내 성폭력이나 성적 괴롭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을 : 미투 국면에서도 이야기했는데, 본질은 성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일터 내에서 여성을 동료로 보지 않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거죠. 다 연결되어 있어요. 성별분업, 성별분리직무, 이런 것이 너무 심각하고 업무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만 여성에게 주거나, 비정규직으로 외주화해서 빼내는 식의 차별.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이번에 젠더 갑질 실태조사라는 것을 했는데, 한 사례를 보면 교육공무직으로 학교에서 업무 보조 역할을 맡았는데 모든 선생님들 차 심부름, 개인보조, 학교에서 김장을 담그라고.
김명희 : 아휴, 한국에서 김장을 없애야.
이을 : 돌봄과 관련한 모든 일을 다 여성에게,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시키는 거죠. 중요한 것은 직장 성희롱은 특정 개인의 일탈 행위가 아니고 구조, 문화, 조직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데 자꾸 피해자-가해자 구도로 가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 차별의 반대인 평등 관점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명희 : 직장갑질119 활동 경험을 보자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요?
전수경 : 하나는 한국사회 가부장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기업의 조직문화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가령 김장이나 장기자랑 있잖아요.
김명희 : 장기자랑하면 이제 한국의 고유한 문화 아닙니까(웃음)
전수경 : 네네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잖아요. 여성이 직장에 없었으면 김장봉사를 생각해냈을까? 여성이 직장에 없었으면 송년회에 장기자랑이 있을까? 그래서 사회학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젠더나 여성운동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굳이 각을 세워 말하자면, 이것을 노동문제로 볼 때 직장 내 권력이나 위계의 문제인데 이것을 계속 젠더문제로 몰고 가면 직장 내에서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든 폭력, 폭행은 위계나 권력 때문에 일어난다는 관점이 먼저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성 상사나 남성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관계에서 사회적 권력, 조직 내 권력이 작동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남성들에게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이제 치유가 불가능한 것 같아요
김명희 : 못 풀어간다는 것입니까?
전수경 : 치유가 안 돼요. 우리 세대에 해결이 안 됩니다. 상담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성희롱을 일상적으로 하던 상사가 회식 자리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기상캐스터가 나오니까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했대요. 날씨를 보면 되지.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서도 그러는 것이고, TV화면에 대고도 그러는 걸 보면, 남성이 가진 시선의 권력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인가.
김명희 : 슬픕니다. 치유가 불가능하다니.
전수경 : 직장 안에서 임금, 승진 문제 같은 인사권한 누가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직장 내 권력 문제가 결합해서 여성들이 실제 받고 있는 압박은 여전히 우리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또 한국 남성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도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저는 볼 때마다 놀라는데, 오픈 채팅방 상담은 일부이고, 이메일 상담의 경우 글로 상담해야 하는 특성 상 꽤나 논리적이에요. 이 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곱씹고 정리해서 보내기 때문에 감정적이거나 거짓말이 거의 없어요. 아주 고민해서, 마지막까지도 보낼까 말까 판단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거죠. 체계적이고 구조적 문제가 담겨있는 이메일이 많거든요. 그걸 보면 일반적인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우리가 잘 모르고, 남성들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김명희 : 예전에 대학에 근무할 때, 대학 평가를 한다고 외부 기관에서 나오는데 학장이 저한테 ‘여자교수가 꽃다발을 전달하는 것 어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밥 먹다가 제 정신이냐고, 이거 성희롱인지 아냐고 했거든요. 그런데 옆의 남자교수들이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계신 선생님들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왜 아무 말씀을 안 하시냐고 하는데 그냥 ‘갑분싸’ 분위기로 끝이 났어요. 나중에 식사자리 다 끝나고 나서 남자교수들이 저한테 와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잘 했어 잘 했어’ 그러는 거예요. 그게 더 꼴보기 싫더라고요.
전수경 : 남성지식인들의 생존법이라고 생각해요. 앞에서는 말 못하고 눈치보고 여성들에게 ‘내가 니 편인 거 알지?’ 뒤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김명희 : 지식인 특유의 아주 치사한 부분이죠.
김성이 : 이런 성희롱이나 괴롭힘에는 권력이 중요하지만 계급이나 연령 효과도 함께 작용하는 것 같아요. 성희롱 문제가 50대 이상 남성 관리자들에서는 젠더인식 자체가 없이 여성을 차별하고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일어났다면,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어떤 언행들이 젠더 이슈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괴롭히는 것 같아요.
이을 : 여성가족부에서 발행한 성폭력 관련 자료에 보면 다양한 권력관계의 중첩지대에서 성희롱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그림으로 나와 있어요. 권력관계는 나이, 성별, 고용형태, 학력, 근속년수 등이 다 해당하고, 여성노동자는 거의 모든 권력관계에서 가장 하위에 있어요.
김명희 : 서지현 검사 같은 경우 본인이 검사잖아요.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검사가 저 정도면 정말 하위직 여성노동자들은 어떨까. 아까 캐디이야기 들으며 생각난 것이 있는데 예전에 골프장 캐디 건강문제를 노동건강연대에서 처음으로 조사했거든요.
저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선배가 학회에서 그 연구결과를 발표했더니 플로어에서 누가 “아니 우리 산업의학 하는 사람들이 골프장 캐디 건강까지 챙겨야 되면 룸싸롱 아가씨들도 챙겨야 하냐‘ 이랬다는 거예요.
이을 : 말 속에 정확하게 있네요. 캐디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김성이 : 캐디를 손녀처럼 보는 사람도 있었잖아요. 박희태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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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떠나고 노동현장을 떠나야 문제 해결이 시작되는 젠더폭력
김명희 : 성폭력의 가장 흔한 발생 장소가 일터일 텐데, 작업장이나 노동의 구조적 요인보다는 일반적 문제, 이상한 남자들, 전반적인 가부장제, 일반적인 젠더 문제 이렇게만 다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노동 이슈보다는 젠더 이슈로 가야 사회적 파급력이 커서 그런가,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여성노동자회 활동 경험에서 볼 때 어떠세요? 저 같은 아쉬움이 있는지, 아니면 이거라도 다행이다 이런 생각인지.
이을 : 서지현 검사 고발 이후에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연대 단체를 꾸렸어요. 그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 마음이 비슷하더라고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다, 그런데 왜 일터에서 이 문제를 말하지 못할까? 이게 분명히 일터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왜 노동운동에서도 같이 대응하지 못할까. 기존 여성이슈 젠더이슈에서.
김명희 : 노동 문제가 아니라고 봐서.
이을 : 기존 노동운동이 다루지 못하니 따로 여성운동에서 다루고, 여성노동자회를 따로 만들고. 노동현장에서 젠더 이슈를 얼마나 끌어안았는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명희 : 여성 운동에 노동 관점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노동 내부에서 이것을 노동 문제로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 말씀하시는 거죠?
이을 : 네.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가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여성운동 안에서는 운동의 전선이 젠더폭력 중심으로 짜여 있잖아요. 이것도 아쉬워요. 사건 대응 중심으로 가요.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은 하는데 개별 사건에 집중하면 피해자-가해자 구도로 되어 버리죠. 성평등 행정체계에 국가가 민간기업을 규율하는 체계가 없어요. 미투 운동이 1년 내내 지속되었는데도 관련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고.
김명희 : 김성이 선생님은 특별히 노동 관점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젠더폭력 전반을 고민하셨잖아요?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성이 : 여성폭력은 노동 현장이나 가정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대부분은 그곳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고 거기를 떠나야 본격적으로지 싸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때리는 남편을 떠나고자 하지 않으면 그 폭력을 알리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노동도 마찬가지로 노동현장에서 떠날 각오로, 아니면 떠난 이후에야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문제가 노동 문제로 수렴하지 못하고 자꾸 떨어져 나가고. 나중에 보면 노동문제는 없고 여자 혼자만 남는 것이죠. 가정을 떠난 여자, 노동을 떠난 여자. 그래서 여성문제, 젠더이슈로만 보이는 거죠. 그리고 만약 노동내부에서 내재적 접근을 한다면, 관리자 같은 사람이 성차별을 일상적으로 숨 쉬듯 하던 것에 대해 전부 다 관리를 해야 하는 건데, 이러면 노동관리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커질 테고, 그래서 개인을 문제로 삼고 피해자, 가해자가 서로 다투는 프레이밍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이을 : 성 문제라는 게 개인들 간의 문제다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페미니즘 운동의 세컨드 웨이브 이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주장했지만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심지어 노동조합 안에서도. 안희정지사 사건에서도 둘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판을 치잖아요.
전수경 : 노동 관점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공중전, 캠페인, 이런 것이 더 쉬워요. 심각하다고 어디다 글 쓰고, 시선의 권력을 비판하고, 남성중심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노동 혹은 기업 조직 안으로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처리절차를 거치고 책임을 지도록 징계를 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이 문제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 따로 있고, 현장 따로 있고. 그런데 동시에 이것이 노동문제이고 반드시 응징 받는다, 이런 사례가 쌓인다면 줄어들 것 같아요. 일반적인 노동 사안에서 과태료가 늘면 사업주가 눈치를 보고 덜 하려고 애쓰듯이. 근데 이 성폭력과 관련한 문제들은 끝까지 하기 너무 힘들어서 거의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려운데, 가장 결정적인 일자리 문제가 걸려 있으니 누가 운동으로 하라고 떠밀 수가 없잖아요. 그 고리가 문제를 가로막고 있어요.
김명희 : 그래서 딜레마에요. 검사라는 안정된 직장이라고 해도 따돌림과 2차 가해가 있는 것을 보면.
이을 : 피해자 대부분이 직장을 떠나요. 72%가 2차 피해가 너무 심해서. 그래서 예방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죠. 일터를. 저희는 성평등 노동이라는 말을 써요. 젠더에 노동을, 노동에 젠더를 기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이 전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미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김명희 : 회사에서 성희롱, 성폭력이 발생하면 사장들 콩밥도 먹이고 이래야 사장이 앗 뜨거 하면서 덜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이상,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전수경 : 경총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뭐냐면, 같은 직원들끼리 전날 밤 카톡으로 왕따 시키고 공모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 것까지 기업이 어떻게 관리하냐, 무능한 직원들이 꼭 문제제기한다. 그러면서 토론회 같은 공개적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관리의 어려움, 경영자들이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냐 호소하고. 기업들이 이렇게 엄살 피우기에 이 문제는 너무 편하고 좋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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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김명희 : 그런 면에서 이것이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통계나 정책근거가 많아져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저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씨가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라고 선언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김지은 씨가 나선 것에 비해서 노동 쪽, 혹은 노동자 건강 영역에서는 전혀 여기에 대응해 주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이야기 마무리를 해야겠는데요. 노동조합이 강력해서 이 문제에 나서 주면 좋겠지만 조직력이 낮고, 심지어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것이 메인 이슈가 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어떤 것들이 시급하게 다루어져야 할지 의견을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성이 : 직장 내 성희롱은 명백히 범죄행위잖아요. 개인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이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공적 프레임.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 젠더 문제,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층위가 좀 상위로 올라가야 하고.
김명희 : 문제로서 시민권을 갖는 것.
김성이 : 그렇죠. 신문 사회면에 있는 기사가 아니라 정치면이나 경제면에 있는 이슈가 되어야 하죠. 현재 직장 내 성희롱 통계수치가 2~50%로 천차만별이라는 거 자체가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봐요. 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로 인한 고용 상 불이익이 없어져야 하고, 또 성희롱 피해에 대해 산재보험을 적용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성희롱에 의한 건강영향에 대한 근거들이 쌓이고 산재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이 생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안전보건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직업환경의사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 의료진을 찾는 경우가 다섯 배 이상 높아요. 의료진들이 성폭력, 성희롱 피해자를 만날 수 있는 최전선에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치료와 예방정책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선 현실에서 젠더폭력의 위험성을 드러내는데 보건의료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이을 : 저는 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한지 1년 넘었고, 그 전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년 동안 일했어요. 미투 운동을 겪으면서, 위험 환경에서의 작업중지권에 대해 계속 말해왔는데 왜 젠더 관점에서는 작업중지권을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전자제품 방문관리 하는 분 같은 경우,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했어, 바로 위험현장을 피할 수 있어야 해, 하면서 작업중지권이 적용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실제로 작업거부권이 독일에는 있대요.
김명희 : 성희롱 건에 대해서요?
이을 : 네.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작업거부권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지난 4월 토론회에서 알게 된 건데, 일반적 동등대우법 제14조에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작업거부권이 명시되어 있고,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때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임금을 제공받으면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미투 운동하면서 노동부의 고용평등 담당자가 제대로 안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역할을 못하고, 좋게 말하면 법이 포괄적이고 규율에 책임이 없도록 되어 있다고 비판해 왔어요. 처벌기준도 없고 행정체계가 없는 거에요. 성평등을 담당하는 기구인 고용평등과가 이명박 정권에서 사라졌어요. 이걸 다시 복구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기재부에서 잘렸대요. 담당자가 있어야 문제제기도 하고 관리도 할 텐데 없는 상황인 것이죠.
김성이 : 고용평등과가 없어진 것이 이명박이 했던 말과 닿아 있지 않나요? “못생긴 여자가 안마를 잘 한다”는 기상천외한 말과 그의 정신세계가.
김명희 : 보건 쪽에서도 여성건강 담당 부처가 없어졌어요.
이을 : 이런 것 없어도 되잖아 이런 식이었던 거죠. 근로감독관, 노동위원회에서 성희롱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는데 근로감독관이 부족하고, 성평등 감수성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2차 가해도 있죠. 공무원 교육도 필요하고 성평등 전담감독관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명희 : 노동부는 메르스 유행 때문에 병원노동자들이 엄청 위험한 상황인데도 아무 것도 안 하더라구요. 당시 노동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일반 사업장 관련 내용은 있어도 보건의료노동자에게는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김성이 : 현재 전국에 성폭력전담의료기관이 343개, 성폭력피해상담소 168개소, 여성폭력피해자 원스톱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는 38개 있습니다. 이 정도 규모에 비하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지원에 대해서는 인식이 낮아요.
이을 : 여성들은 일상이 전쟁터이고 출근하는 순간 과장, 차장, 대리 다 한 마디씩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상황인데도 고용평등에 대한 대응은 부족한 상황이죠
김명희 : 사고 자체가 임금차별 문제와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완전 별개인 것처럼 프레이밍 해서, 노동부가 내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 같습니다.
김성이 : 가정폭력, 성폭력은 특별법도 있고 예산과 조직이 있잖아요.
김명희 : 여성가족부는 그래도 자신들이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는데
이을 : 노동부는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여성가족부로 돌려요.
김성이 : 일단 성희롱이라는 표현자체가.
김명희 : 제가 선배 여성주의 연구자에게 여쭤본 적이 있어요. 왜 처음부터 성희롱이라는 용어를 썼냐? 성춘향과 이몽룡이 서로 희롱하면서 논다는 데 쓰는 표현인 만큼 유희적 의미가 강한데, 성적 괴롭힘으로 써야 맞는 것 아니냐. 그랬더니 그 정도 용어를 넣기 위해서도 엄청나게 싸웠다 하시더라고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죠.
이을 : 희롱이라고 해서 결코 가벼운 것도 아니고 범위가 엄청 넓은데, 사실 폭력이잖아요.
김명희 : 성적 괴롭힘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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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연대야말로 가장 중요한 생존의 기술
김명희: 총체적인 해결책 이야기해주셨는데 그래도 우선 순위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성이 : 스쿨미투 시대의 세대가 어찌될 지 봐야 해요.
전수경 : 당사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데 우리사회에서 남녀를 떠나 모든 고용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혼자 감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 노동자, 여성 직장인이 각자 자기가 끌어안고 그냥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죠. 아까 이야기한 여성 노동자 네 명에게 키스를 요구했다는 부장 사례를 보면, 크게 법제도로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옆자리 여성에게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아주 많은 경우 저지될 것이라고 봐요. 서로 공론화하고 있다는 신호 만으로도 상당 부분 가해자가 주저하거나 이를 저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옆 사람과 이야기하고 공론화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힘을 가진 사람이 움찔한다는 것이죠. 아주 약해 보이지만 이런 전략들이 중요한데, 각자가 끌어안고 있다가 고충처리위원회로 올라가고 소송하고.
여성들은 연대가 생존의 기술이라는 것을 공유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끊기 어렵다가 생각해요. 언어적 희롱이 시작되었을 때, 물리적 괴롭힘이 시작되었을 때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연대가 시작되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 직장인, 노동자들 상황도 다른 운동과 비슷해요. ‘반올림’ 투쟁을 보면서 슬픈 것은 그 싸움 자체는 훌륭했지만 그 정도 노력으로 10년을 싸우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도 한 것 같아요. 조직이 없이 개인이 해야 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죠.
이을 : 서지현 검사 인터뷰 보니까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당신도 이야기를 하라고 말을 못하겠다.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거죠.
전수경 : 각자 감당하겠다고 하면,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목숨 걸고 얼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일상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투사가 될 수는 없잖아요. 직장이 중요하고 생계가 중요한데, 그 갭을 좁히는 것은, 사회적 문제제기와 직장 생활에서 각자 겪는 어려움 사이에는 굉장히 큰 간극이 있어요.
이을 : 그래서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개인을 개인으로 두지 않고 안전하게. 정확히 말하면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닌데 제대로 되지 않는.
김명희 : 굴뚝에 올라가서 10년은 싸워야 하고.
이을 : 제도에 구멍이 너무 많고, 정부대책은 공공기관 중심으로 나와요.
김명희 : 그게 실행하기 쉽잖아요.
이을 : 국가의 역할이 사회를 견인하는 것이고, 개인이 안전하게, 안전망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너무 못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인데 실망스럽죠.
전수경 : 그래서 저는 옆 사람을 보자는 것이죠. ‘손에 손잡고’ 작은 정치들, 각각의 조직에서 이런 작은 정치를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명희: 오랜 시간 다양한 이야기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권력과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피해자 구도보다 구조와 제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일터와 현장에서 옆에 있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고 함께 연대하야 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처음이라 이야기가 다소 두서없이 전개되었는데 다음에 이런 자리를 또 마련했으면 합니다.
특집 기업살인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진행자 :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에 노동자를 위한 법안, 안전을 위한 법안이 왜 국회에서 계속 통과가 안 됐다고 생각을 하세요?
▶ 우원식(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하나는 재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이런 위험한 사업장,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고 또 위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하자, 이것을 하청이나 도급을 주지 말고 직접 고용하자는 법안을 낸 건데요. 그렇게 고용 형태를 제안한 것은 기업에 부담을 준다고 해서 경영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죠.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국회 안에서는 야당들, 그러니까 그때로 보면 정부 여당이었는데 한나라당이 굉장히 이 부분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죠.
우원식 의원은 이어서 "위험한 업종을 원래는 정규직, 원청의 정규직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업종이니까, 상식적으로.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조가 그 위험한 업종을 외주를 줘요" "그 외주를 받은 업체에는 비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게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 라고 계속해서 설명해 준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르쳐주는 것일까. 국회의원의 할 일은 무엇일까. 정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설명할 수는 있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남 탓만 하고 있으니 문제다. 유체이탈이 계속 되니 책임의 구조 자체를 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당 국회의원이 기업과 야당의 반대로 법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국회 안 복도에 웅크려 두 손을 모은 채,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막고 싶다며, 법안통과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활동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이 과정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법안이 처리된 것입니다"
"마음이 참담하실 텐데, 어머니 공이 크십니다. 아드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집권여당의 대표와 의원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는다. 기사에는 취재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며, 여야 실무 협상을 맡았던 집권당 간사 의원이 "어머니 더 이상 많이 우시면 안 돼요" 라고 노동자의 어머니를 달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이것은 미담인가? 이 기사를 작성한, 촬영한, 뉴스로 송출한 모든 언론사에 묻고 싶다. 슬프지만 훈훈한 현장으로 묘사하고 싶었나?
2018년 12월 27일에서 28일의 아침까지 이른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 과정을 전하는 기사들의 드라마틱한 논조는 이 기사가 팔릴 것이라는,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흥분에 들떠 스펙터클을 전하는 취재진들의 키보드 소리가 잦아진 자리에서 집권여당은 원청인 서부발전에, 노동부에, 산업자원부에, 청와대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나? 정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고, 어머니의 웅크린 등에 응답할 진심이 있는지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만 드러날 것이다.
12월 11일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노동의 관심 밖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경영계만이 움직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요 대기업 11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급작업에서 산재가 일어나는 원인은 '작업자 부주의'(57.0%), '안전보건조치 부족'(25.6%), '위험한 작업 공정'(8.1%), '안전보건교육 부족'(3.5%), '기계·설비 결함'(1.2%) 순이라고 한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수급사업체의 안전보건 전문성 확보방안 강구'(44.2%), '도급인의 안전관리 책임강화에 비례하는 수급인 근로자 관리 권한 부여'(34.9%)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급박한 위험 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안에 대해서는 '산재 발생 우려의 정의가 모호해 현장 혼란 및 노사갈등 우려'(54.4%), '급박한 위험이 아니어도 긴급대피권이 남발될 우려'(27.2%)를 제기했다.
노동자 사망에 사업주 징역형을 높이고, 법인에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10억 원 이하'로 올리는 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부주의·과실에 비해 벌칙이 과도하다'(57.0%), '규정이 너무 많아 모두 준수하는 것이 어렵다'(21.1%), ‘경영상 손실 고려 시 과도하다'(2.6%)’ 등 80%가 넘는 기업이 지나친 조치라고 응답했다.
산재는 하청기업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동자의 잘못으로 일어나며 원청기업의 책임을 묻고 싶으면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더라도 불법파견으로 시비 걸지 말라는 뜻이다. 노동자의 안전의식 수준을 묻고는 안전의식이 낮다는 응답이 56.1%, 높다는 응답이 7.4%였다고 보고를 마무리한 것은 화룡정점이라 하겠다. 조사는 노동자의 부주의로 시작해 낮은 안전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산재는 노동자의 잘못으로 시작해 노동자의 잘못으로 끝난다.
이 조사가 114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 온 ‘기업살인법’, 매년 진행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상’은 응답 없는 공허한 이벤트에 불과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경제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에 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한민국의 기업에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되었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김용균 노동자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한 후 원청 한국서부발전이 보여준 반인권적 사고수습 과정은 한국의 공기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증명한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보도하는 언론들 중에는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들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24)씨의 사고의 쟁점이 시민단체 및 정치권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중략)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관철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중략) 한편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 임직원과 고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협력업체 임직원 등은 사고 다음 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려고 했지만, 유족과 직장동료들에게 저지당해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균의 사망 후 공기업으로서의 기업윤리는커녕 ‘돈이 먼저, 사람(하청노동자)은 돈을 위한 도구’ 라는 한국사회의 지옥을 보여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이 국민의 분노에 놀라 황급히 장례식장을 찾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정황상 언론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 나아가서 이 문제의 관리책임이 있는 산업자원부에 대해서 더 많이 취재하고 발언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같은 위험한 설비를 점검할 때 2인1조로 근무하게 하고, 낙탄 제거처럼 위험한 설비 주변에서 하는 작업은 설비를 정지시킨 뒤 시행하도록 하고, 경력 6개월이 안 된 직원은 단독작업을 금지하고, 개인 안전장구를 완벽히 갖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위험시설 주변 안전장치를 보완하고 비상정지스위치 작동상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답은 암기과목 정답처럼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기술적인 안전 조치를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려면 인력이 두 배가 되어야 하고, 예산이 늘어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은 정부와 언론이 마치 대단한 해법이라도 찾은 것처럼 2인1조를 말할 때 그 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11월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제주도의 이민호 학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제주도 교육감은 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한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의 안전문제를 어디까지 봐야하나 고민된다, 학교는 일상적인 안전,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무슨 고민이 된다는 것일까. 실업계 고등학생이 교육 중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저런 애매한 말솜씨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결 방법은 현장실습제도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실습을 못해서 피해를 보고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교육감이 협박처럼 이야기한다. 반복해서 학생들이 사망해 왔는데도,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
이민호 학생의 사망 이후 적어도 학생이 사망할 수도 있는 현장실습제도 자체는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새로운 직업교육시스템으로 교육당국이 방향을 전환하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아니다.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산업체에 가서까지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교육당국의 대답은 그렇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장실습을 가야 한다.
실습학생의 죽음에 대하여 학교에 묻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진 교육 당국의 책임자.
학생신분으로 공장실습을 하고 다시 노동자로 공장으로 가게 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용기를 냈을 때 어떤 극우정당 국회의원이 던져놓은 말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되고, 아프게 곱씹어 보게 될 까 두렵다.
"어디 싸구려 노동판에서 왔나. 어디서 와서 싸구려 말을 함부로 하고 있어" -지난 해 11월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이 다른 당 의원과 말싸움을 하다 뱉은 말이라고 한다 -
“김용균씨 사건으로 비용절감 이데올로기 아래 구조화된, 존재 파괴적 기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사람의 소모품화를 억제하려는 ‘사람 중심 사회’론이 모처럼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노력에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 ‘대속’이라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적폐처럼 간주되는 교리, 그것의 개념적 뿌리에는 어떤 이(들)의 고통에 직면해서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의 성찰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김용균씨 사건에서 그 원초적 믿음의 현상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김용균씨로 인해 우리는 고통당하는 이들을 공감하는 노력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간 무감각하게 살던 우리가 구원받는 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체험이며, 그 덕에 2018년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받은 하나의 구원체험이다. “
그리고 여기, 진보적(?) 기독교인이 쓴 칼럼을 읽는다. 사회적 고통에 대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고양하려는 종교인의 진심을 믿는다. 그런데 난감하다. 난처하다. 죽은 김용균의 옆 자리에서 여전히 컨베이어 벨트를 돌며 검은 낙탄을 치우고 있는 동료들이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용균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저런 글이 쓰여졌다는 것을 모르셨으면 좋겠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는 말한다.
“어머니가 지금 계속 언론에 하고 싶은 얘기는 제발 TV 카메라로 저를 찍지 말고 당신을 찍지 말고 그 사고 현장을 찍어 달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서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보여 달라. 그러면 이게 사람이 일할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국민들이 알 거라고 이렇게 얘기 하십니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말한다.
“엊그제 사고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어느덧 49재가 되었습니다. 49재는 이승하고 작별하고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놔두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하는 것들을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는 실정입니다. 24살 쳐다 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입니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입니다. 용균이가 일했던 험악한 현장 상태와 너무도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 맺힌 한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 내가 죽는 날까지 자본가를 원망하고 이 나라를 원망할 것입니다.”
김용균을 죽게 한 범인은 누구일까.
김용균의 어머니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이들은 누구일가.
어머니가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이들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에서 누구까지인가.
2018년 10월 25일, 노동건강연대가 한 달에 한번 여는 이야기모임에 전형배 회원(강원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을 모시고 ‘기업살인법’ 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고 열어두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기업을 정말 처벌할 수 있을지, 지금의 검찰과 법원은 왜 기업을 처벌할 수 없는지, 기업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기업살인법을 계속 말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박제처럼 교조처럼 현실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같은 구호만 외우는 것은 운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비관과 낙관, 사실과 전망에 대한 생각이 성글게 오갔습니다.
그런데 가능과 불가능, 중단과 지속에 대하여 열어두고 이야기 할수록 상상력과 희망이 생긴다는,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 공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 거칠지만 함께 나누고 싶어 긴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서 전합니다.
(녹취: 한지훈 정리: 전수경)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면 원청기업, 하청기업이 처벌되는 구조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업살인법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법률 후반부에 벌칙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각종 의무를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이 되죠.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기업이잖아요, 개인이 아니라.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처벌하는 법 이론은 개인을 처벌하는 것과 좀 다릅니다.
양벌규정이라고 해서, 의무규정을 실제로 위반한 사람을 특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로 안전, 보건을 담당하는 관리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조항을 위반했다고 검사가 딱 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1단계입니다.
딱 집었는데 회사가 그 관리자를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했다고 인정이 되면 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그러니까 관리자가 법상의 의무를 다 했거나, 법령상 의무가 없었다면 처벌이 안 됩니다. 그리고 회사가 성실하게 지휘감독을 했다고 증명하면 관리자만 처벌되고 회사는 빠져 나갑니다. 안전보건 관리자도 노동자죠. 법의 세부 조항을 보면 700개 정도가 되는데 이 중에 위반한 것을 뒤지는 거죠.
그 다음 도급이 있습니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하청노동자가 죽습니다. 원청기업 노동자가 죽는 게 아니라 하청기업 노동자가 죽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하청기업 안전관리자가 잘못한 것을 잡아내야 하고, 그 지휘감독을 못한 하청기업을 처벌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1단계와 2단계죠. 그리고 이제 원청기업을 처벌하려면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잘못한 것을 잡아내야 합니다. 3단계죠, 이게 인정이 되면 원청기업이 지휘감독을 잘못한 것을 잡아내서 검사가 증명해야 원청기업이 처벌되는 겁니다, 드디어, 4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원청 기업이 처벌되려면 이 4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검사와 전화변론설
검사 입장에서는 기소했을 때 유죄가 나와야 합니다. 무죄가 나오면 검사는 앞길이 막힙니다. 무죄는 검사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면 기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괘씸해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청기업만 기소하는 겁니다. 게다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하려면 수백 개의 조문 중 해당하는 것을 검사가 정확하게 찾아야 해요. 잘못 찾으면 무죄가 나오잖아요. 검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형법에 있는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해서 중간관리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서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라는 형사법의 원칙이 있으니까요,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판사가 직권으로 처벌을 못합니다. 판사가 기록을 보면서 기업법인이 유죄라고 심증을 가져도 판사가 확대해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전혀 적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검사를 만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시라고, 압력이 들어와도 굴하지 마시고 조문을 꼭 찾아서 기소해 달라고요. 현재로서는 검사가 위험부담을 안고서 기소할 이유가 없거든요. 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그다지 메리트가 없습니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사망사고가 많고 언론들 관심이 높고 중앙정부의 압박도 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하는 일이 전보다는 많아졌어요.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자본력 있는 대기업은 ‘전화변론’을 한다고 합니다. 전관 출신, 고위 검사장 출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해당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전화를 하는 거죠. 해당 사건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서 원청 기업을 처벌하려고 하면 ‘원청 빼라, 하청만 넣는다’ 이러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풍문이 있어요. 검사 개인이 하려고 해도 검찰 안에서, 전관예우라는 법조세계의 구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거죠. 돈 많은 기업은 당연히 사건담당 검사, 검사장과 친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변론을 맡기는데, 이게 바로 전화변론이라는 것입니다.
전화 한통에 10억, 전화 한통에 5억...기소 대상에서 빠지면 10억을 주는 겁니다. 심지어 기록에도 남지 않습니다. 변호사 수임료를 공식적으로 받지 않고 하는 행위, 돈도 혹시 현금 가방으로 받는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입니다.
기업살인을 처벌하기 위한 현재의 요건
법률가들은 도급, 수급 용어를 씁니다. 민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원하청은 일본식 용어이고요, 도급인을 처벌할 때 한 번 더 복잡해지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4단계를 만족한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4단계는 기업이 처벌되는 원리이고요, 실정법으로 처벌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사업 중 일부만 도급을 주었다는 것이 인정돼야 합니다. 전부를 도급 주었다면 도급인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건설업에서 종합건설회사가 책임을 지는 이유는 아파트를 짓는데 비계, 도장, 전기, 콘크리트 등을 따로 도급을 주잖아요, 이것을 일부 도급으로 보고 처벌하는 겁니다. 전에는 처벌을 하지 않았어요. 비계 공사를 전부 도급준 것이라고 대형 로펌에서 변론하여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적도 있습니다. 이 판결 이후에 노동부가 ‘전문건설업에 의한 전부 도급은 처벌한다’고 법조문을 넣어서 이제 처벌할 수 있게 되었죠. 이슈였죠, 무죄판결이 만들어낸.
둘째, 도급인의 사업장 즉 원청기업에서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같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혼재작업’ 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용어를 싫어하는데요, 혼재작업은 이쪽 노동자와 저쪽 노동자가 물리적으로 같이 하는 작업 같잖아요, 그런데 건설현장, 공장에서 원청기업 관리자는 얼굴보기가 어려워요. 나타나질 않아요. 혼재작업이라고 부르면 이 상황에서 처벌하기가 어려워요. 같이 있지 않으니까. 혼재작업은 일본식 해설서에 나오는 용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공동 작업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하는데 지지를 못 받고 있어요.
세 번째, 아무 장소에서나 일어나는 사고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22개 위험장소가 정해져 있어요. 법률에. 그 장소 밖에서 일어난 사고는, 사람이 죽어도 원청기업이 처벌받지 않아요. 이 장소가 많이 확대돼서 거의 커버되고요, 이번에 나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장소적 제한을 다 풀었어요. ‘모든 장소’로 만들었어요. (법안은 2018년 12월 국회 통과)
대법원판례 세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한화건설이 원청이었던 아파트 공사 현장이었어요. 낙하방지망 있잖아요, 사람이나 물건이 떨어질 때 걸리라고 그물을 층층이 넣어요. 그런데 이 낙하방지망을 철거하다가 바람이 불어 충격을 받으면서 하청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했어요. 이 노동자가 떨어진 이유가 뭐냐면, 안전대에 고리를 묶고 일을 해야 하는데, 줄이 몸에 달려있어서 엄청 불편해요. 그 줄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기도 하거든요. 이걸 뺐어요, 망을 빨리 철거해야 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검사는 원청, 하청 다 기소를 했어요. 그런데 2011년 대법원에서 한화건설에 무죄판결이 나왔어요. 안전줄을 묶는 것은 하청기업 수준에서 하라고 했으면 되는 거다, 원청기업도 안전띠, 안전모 하세요 말했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다, 원청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 어렵다, 이거죠. 지금도 이 판례를 받아서 안전모, 안전대, 안전띠를 하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에대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빼고 있습니다. 이건 원청이 책임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해서 하청이 관리하는 것으로 거의 정리가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는 LG디스플레이라는 회사입니다. 파주에 공장이 있는데 휴대폰 화면, TV화면을 만드는데, 안전설비가 잘 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일할 때는 화학물질 노출 등의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시설을 개보수하거나 바꿀 때 사고가 나요. 모든 사고는 이 때 나요.
장비를 개보수 하는데 사람이 들어갔어요, 거기에 질소가스가 있었는데, 하청노동자들은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들어갔어요. 질소가스를 빼지 않고 들어간 겁니다. 두 명이 죽었습니다. 검사가 원청, 하청을 기소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하청은 책임이 없고, LG디스플레이만 처벌을 했어요. 하청노동자를 불러서 일을 시켰으면 전적으로 LG디스플레이가 책임을 져라, 작업장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하청은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했어요.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천의 SK하이닉스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났습니다. 여기는 SK하이닉스와 함께 하청도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이 사건도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원청 현장으로 들어가면 하청기업의 재량이 적어지는 것은 맞지만 하청기업의 책임을 아예 빼는 것은 너무 형식적인 것 아닌가 저는 생각하는데요, 질식사고 같은 것은 하청기업 안전관리자가 산소농도도 재고, 위험한지 봐야죠. 어디에 질소가스가 있다, 어디에 아르곤가스가 있다 업체들은 알거든요.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봐야겠죠.
세 번째는 2016년 판결입니다. 서울도시가스공단에서 서울을 권역으로 나누어 도시가스 배관수리 업무 하청을 주는데 하청업체는 이를 다시 재하청을 줍니다. 영등포에서 맨홀을 열고 배관수리 노동자 2명이 들어갔는데 한명은 사장, 한명은 직원이었어요. 가스가 새서 한명은 사망하고 한명은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런 사건은 전에는 전부도급이라고 해서 무죄판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공동작업, 혼재작업에서 원청 관리자가 반드시 현장에 있을 필요는 없다, 현장에 와서 지켜보라는 뜻이 아니라, 전반적인 관리만 하면 혼재작업이라는 뜻이다, 라고 해서 원청기업이 처벌됩니다. 앞으로는 이 판결 덕분에 건설회사에서 비계, 전기 등 도급을 줄 때 전부도급이라고 해서 원청이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다단계 도급에서 맨 밑에 있는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검사가 하청, 중간하청, 원청기업을 다 기소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대법원에서 중간하청이 무죄를 받았어요.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중간하청 처벌안을 넣었는데, 경영계가 반대하면서 빠졌어요. 엄청 로비를 하고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노동부 규제심사, 국무총리실 규제심사, 법제처 규제심사를 거치면서 처음에 비해 많이 완화됐습니다.
기업살인법? 기업과실치사법?
이제 기업살인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번역을 하면 ‘기업과실치사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에서는 기업중과실, 과실치사 및 살인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꼭 살인을 넣어달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통과시켜야 하니까 제목에 넣고, 내용은 중과실치사죄 라는 겁니다. 기업 등 단체의 중과실치사죄입니다.
이걸 국내 운동 진영에서는 기업살인법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데 법조인들이 볼 때는 난감한 법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처벌하려면 행위자인 관리자가 처벌되어야 하고, 지휘감독한 기업이 잘못이 있으면 기업을 처벌합니다. 영국의 과실치사법을 보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면 일단 기업을 처벌합니다. 기업 처벌을 하고, 임원이 잘못했으면 공범으로 처벌하는 구조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영국은 일단 기업을 처벌합니다. 영미법이라고 해서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그렇습니다.
한국은 영국법이 아니라 독일, 프랑스법을 일본을 통해 수입해서 만들었어요. 독일은 기업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잘못한 개인을 잡고, 법인을 처벌해요.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환경법, 식품위생법, 의료법도 이런 방식입니다. 산업안전보건 영역에서만 영국처럼 뒤집어서 해달라고 하면 국회의원 절반 가까이가 법조인인데, 동의를 해 줄 수가 없는 거죠.
영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하면 기업과실치사법이 있기 전에도 벌금이 100억 이상 나왔습니다. 사람이 여럿 죽으면 회사가 망할 정도로 벌금을 매깁니다. 그렇다면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무슨 기능을 하느냐 논쟁이 있는데, 기업살인법은 세게 처벌하려고 만든 법이 아닙니다. 산업안전법이 행정규제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어서, 사장들에게 그게 아니라 너는 형사범죄자라는 각인을 주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대표이사를 처벌하고 기업을 세게 처벌하기 위해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10년 동안 했지만, 영국은 ‘행정규제법 위반이 아니라 형사법 위반이다’ 라는 각인이 필요해서 법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으면 산업안전보건법 66조의 2를 적용해서 처벌하는데, 하청노동자는 해당이 안 됩니다. 하청노동자가 죽으면 원청기업이 처벌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다른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사망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법원에 양형위원회가 있습니다. 전직대법관, 판사, 판사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교수. 이 사람들이 모든 처벌규정의 양형기준표를 만듭니다.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이 양형기준표를 참고하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람이 죽으면 과실 범죄로 봅니다. 교통사고처럼 실수로 죽인 것으라 보기 때문에 높은 형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양형기준이 바뀌지 않는 이상, 3억 이하의 벌금이라고 되어 있으면 30만원, 300만원 벌금을 물릴 수도 있어요. 경영계는 도급인(원청)에게 사망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로비를 하죠.
건설산업 연구자에게 들으니 ‘건설업에서 직접 시공 비율을 높이면 사람이 덜 죽을 것’이라 하더라구요.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원청기업 안전관리자는 한두 명이고, 이들은 하루 한 번도 현장을 다 돌아보지 못합니다. 직접 시공 비율을 올리면 원청 관리자가 일을 하겠죠. 그런데 직접시공 비율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라 국토부가 규정을 바꿔야 합니다. 건설을 다 쪼개서 도급을 주니까 컨트롤타워인 원청에서는 컨트롤이 안 됩니다. 무전기나 전화 하나로는 안 돼요. 정말 사고를 줄이고 싶으면 원청에서 현장 감독자를 늘려야 해요. 이번 여름 폭염의 건설현장에서 휴게시설 가는데 걸어서 20분 걸려요. 휴식시간이 10분인데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공공 공사는 입찰자격을 심사할 때 산재사고를 점수로 매깁니다. 그런데 원청회사의 사망사고만 세고, 하청에서는 아무리 많이 죽어도 대기업 건설회사는 사망자가 없는 게 돼요. 전에는 이것도 반영하도록 했지만 10년 동안 규제완화 되면서 없어진 거예요. 국토부가 이걸 규제완화 전으로 회복시키면 좋을텐데, 꿈도 안 꾸고 있어요. 자유로운 도급을 가능하게 하는 이런 법을 바꾸지 않으면 노동부 쪽에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그래서 우리가 국토부, 산업자원부 같은 데를 압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잡아내야 하는데, ‘노동, 산재만 하다 보니까 기업의 현황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의 트랜드를 잘 모르니까 안전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의 아킬레스건이 무언지 잡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영 상층부가 고민하는 것, 숨기고 싶어 하는 것, 이걸 잡아내지 못하니까 안 먹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기업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는 그 업종의 특성을 보고, 문제를 찾고, 압박할 수 있는 연구역량이 노동계에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노동법을 하고 연구의 상대가 기업이지만 기업을 잘 몰라요. 사고가 나는 저 기업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생리로 돌아가는지 들여다보질 못하거든요. 기업과 맞설 때 압박할 수 있으려면 우리도 경영을 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토론 주요 내용>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 기업살인법 운동의 핵심은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산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형사 처벌이든 행정 형벌이든 교육이든, 한국적 맥락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법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거나, 대표이사나 최고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누가 죽었으면 내 책임이구나’ 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국 기업살인법이 과실치사법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 산재사망은 과실이 아니라 고의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같은 장소, 같은 회사에서 몇 년 동안 비슷한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면 이건 고의로 봐야 한다. 이게 과실이든 아니든 고의에 준하는 처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하청, 중간하청 만이 아니라 원청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가 저희의 문제인식입니다. 별도의 특별법이나 형법상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어려우니까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쳐서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과징금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제적 타격을 주는 방안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전형배: 큰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표가 노동부, 법원, 검찰에 나와서 조사 받고 재판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형 로펌을 사서 대응하죠, 기업 책임을 물으려면 노동만으로는 어려워요,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으려면 노동을 넘어서, 국민연금에서 대기업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 이런 걸 활용하는 활동을 배워야 하겠죠.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거나, 노동자가 사망하는 기업은 주총에서 대표이사의 소명을 듣도록 하자고 주장했더니, 상법 연구자들이 ‘연금의 중립성에 위배된다’고 해요. 상법 교수들이 연기금 위원회에 많이 들어가 있는데 마인드가, 공공성 개념이 없어요. 주식 오르내리는 거, 기업지배만 생각해요. 국민연금에 벌을 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내년에도 사고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대표이사 옷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정치적인 액션도 해야 한다는 거죠.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보면 환경보건법이 개정되어서 특정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들어왔어요. 국민 여론이 올라오니까 이게 가능해진 거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자리를 거의 놓친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산재 사망자는 2,209명에 달한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는 절대 안 된다,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안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1월 10일에는 정부신년사를 통해 국민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산재는 줄고 있을까. 감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정부가 강조한 원하청 구조에서의 사망, 위험의 외주화 현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에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글에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 해 동안 주로 원하청 관계 안에서 일어난 사망사례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원·하청 관계로 인한 사망사고 범주는 아니더라도 불안정 고용형태인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망, 언론보도만으로는 산업재해를 분명하게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들(과로사, 원인불명),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노동자의 자살 사례들도 함께 제시했다.
1. 원·하청 구조에서의 사망 사건
원청 기업
사상자
사고 일자
사고 경위
사망
부상
(원청 기업 미상)
1
-
1월 8일
오전 11:30
광주 북구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작업 중인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0)씨의 머리에 1.9t 무게의 공사자재가 굴러와 충격하여 사망.
※ 산재은폐 의혹, 업무내용 외 작업으로 인한 사망
LG Display
1월 9일
오후 11:15
경기도 파주시 공장에서 협력업체 직원 김모(51)씨가 화물승강기 점검 수리 중 승강기 모터에 빨려 들어가 사망.
※ 2015~2016년 산업재해 미보고 사업장(고용노동부) : 11건 미보고
포스코건설
1월 10일
오후 21:30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거푸집을 철거하던 중 일용직 노동자 이모(46)씨가 45층(135m)에서 추락해 사망.
한화건설
1월 16일
오후 13:30
부산대학교 제2기숙사 신축공사현장 시멘트 작업을 하던 이모(55)씨가 6층 창문 밖으로 추락해 사망.
영광군 발주
2
1월 17일
오전 14:41
전남 영광군 군남면 교량 건설현장에서 철근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근더미가 무너져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6)씨와 주모(66)씨가 철근더미에 매몰되어 사망.
※ 다단계 하도급 : 발주(영광군) ⇒ 도급 ⇒ 건설업체 2개
대림산업
오전 16:15
여수시 중흥동 대림산업 용성공장 출하장에서 25톤 화물차 적재함에 천막을 씌우던 중 노동자 정모(58)씨 사망.
※ 사고차량기사는 출하업무를 맡은 대림 코퍼레이션이 아닌 일반차량 기사
동국제강
1월 19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고가 사다리차를 타고 천장 조명 공사를 하던 중 하청업체 노동자 2명이 추락(1명 사망, 1명 중상)
현대자동차
1월 24일
오후 20:22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1)씨가 프레스기에 몸을 넣어 이상 여부를 확인하던 중 몸이 끼어 사망.
포스코
4
1월 25일
오후 16:00
포스코 포항제철소 산소공장에서 냉각탑 칠러 설비 내 ‘폴리’교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질소가스가 누출돼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사망.
대우
조선해양
2월 20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김모(49)씨가 건조 중이던 선박의 도장용 발판을 추가 설치하기 위해 자재 이동 중 약 25m아래로 추락하여 사망.
(원청기업 미상)
2월 25일
오전 10:18
전남 진도군 군내면의 조립식 저온 창고 건물에서 보수작업 중이던 일용직 노동자 이모(57)씨가 7.8m 높이에서 추락해서 사망.
현대중공업
3월 1일
오전 07:10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안벽에 정박된 16톤급 소형작업선 갑판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8, 선장)씨가 배와 안벽에 연결된 밧줄을 풀던 작업을 하던 중 다른 선박의 밧줄이 강타하여 얼굴 앞면이 배 갑판 모서리에 부딪쳐 현장에서 사망.
※1년 단기계약을 하고 세미리그선(시추선)을 관리·감독하는 하청업체
3월 2일
오후 14:00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 주거타운인 A동 55층에서 작업 중 안전 작업구조물 1개가 추락하여, 구조물 안에 있던 이모(50)씨 등 노동자 3명이 사망하고, 지상에 있던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6)씨도 이 때 추락한 안전 구조물에 맞아 사망.
3월 7일
오전 11:10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지반 붕괴로 39t 콘크리트 펌프 차량이 전복되어 펌프카 타설 파이프에 맞아 하청업체 노동자 유모(47)씨 사망, 이모(52)씨 중상.
롯데 베르살리스
엘라스토머스(주)
3월 14일
오전 12:35
여수산단 내 합성고무제조 관련 포장공정에서 작업장 청소를 하던 중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2)씨가 로봇형 기계에 맞아 사망.
※ 원청업체: 롯데 계열사
(주)부영건설
3월 16일
오후 14:38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부영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최상층 옥상 방수작업 중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41)씨가 30m 아래로 추락해 사망.
삼성물산
3월 19일
오후 14:10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여암리 소재 삼성전자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15미터 높이의 천장 작업용 작업발판에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탑승해 작업발판을 이동시키던 중 작업발판과 함께 추락하여 노동자 김모(23세, 대학생)씨 1명이 사망, 4명은 부상.
※ 3개 헙력업체 함께 공동 작업
3월 21일
오전 10:46
부산 북구 화명동 산성터널 공사현장 진입로의 금정구 방면 3.5㎞ 지점에서 터널 천장에 가로 10m, 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 중 콘크리트 구조물 일부에 맞아 노동자 이모(55)씨 사망.
(주)영풍
3월 26일
영풍 석포제련소 침전조에서 침전물 유화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노동자 장모(69세)씨가 미끄러져 비소를 흡입하여 사망.
※ 산재은폐 의혹
부산시 발주
(재하청)
3월 27일
오후 15:39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수정터널 상부 공원화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김모(66)씨가 9.5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3월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부영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갱폼 작업발판이 탈락하여 협력업체 직원 한모(67)씨가 13m 아래로 추락해 사망.
※ 적발사항(211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주요위반 사항
: 사법처리 78건, 과태료 3억 6천여만 원, 사용중지 44대, 시정조치 115건
- 현장 출입자에 대한 관리시스템 부재로 인한 각종 안전보건교육과 건강진단이 누락
노사협의체 협력업체 사업주와 노동자, 안전·보건관리자 등의 참여 누락
이마트
이마트 다산점 무빙워크 점검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21)씨 기기에 몸이 끼여 사망.
아주대 발주,
풍림산업
3월 29일
수원 영통구의 아주대학교 간호대학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8)씨가 물탱크에 깔려 사망.
어반
종합건설(주)
3
3월 30일
인천시 부평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장에서 용접작업 중 불티가 천장 단열재에 튀면서 화재발생. 지하 1층에서 작업하던 이모(56)씨 등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명 사망, 4명 부상
3월 31일
오후 14:30
광주시 남구 임암동 대형아파트 지하 공사현장에서 외벽 보강을 위한 미장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장모(56)씨가 3.8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
4월 6일
강서구 명지동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20층에서 외벽공사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8)씨가 콘크리트 타설 장비인 호퍼에 맞아 사망.
(주)코엔텍
4월 9일
울산 남구 산업폐기물 처리업체 코엔텍의 협력업체 노동자 정모씨(61세)가 소각로 안에서 발판 설치작업을 하던 중 낙하물에 머리를 맞아 그 충격으로 비계에서 떨어져 사망.
부산시 발주,
대우건설 외 3개사
4월 15일
오전 10:35
부산 사하구 감천동 천마산 터널지하차도 건설현장에서 옹벽지지 H빔 철거 작업 중 아래에 있던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65)씨를 발견하지 못하고 해체·낙하시켜 H빔에 깔려 사망.
4월 24일
오후 17:30
부산 사하구 구평동에 위치한 선박 부품 제조업체의 협력업체 노동자 주모(29)씨가 홀로 배관 파이프를 연결하는 용접작업을 하던 중 아르곤 가스에 중독되어 사망.
SK
브로드밴드
4월 26일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홈앤서비스) 대전지역 고객센터 소속 설치·수리기사 유모(38)씨가 아파트 계단 중간단자(IDF)함에서 포트 연결 작업을 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사흘 후 사망.
※ 산업재해 의혹
안산시 위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4월 29일
오전 10:50
안산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펌프 수리업체가 유입펌프의 고장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펌프 인양 작업을 하던 중 현장에 있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9)씨가 5m 가량 높이의 하수처리장 관로로 추락하여 사망.
5월 8일
오전 10:07
청주시 흥덕구의 대형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24층 외벽작업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 지모(56, 중국)씨가 추락하여 사망.
H건설
5월 11일
오전 11:40
경기도 안양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1층 공사현장 축대가 무너지면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64)씨가 대형 돌에 깔려 사망
한진중공업
5월 12일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비계가 무너지면서 하청업체 노동자 1명 사망, 3명 부상.
A금속
5월 14일
진해 마천공단 A금속 공장에서 노후 지붕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최모(55)씨가 추락하여 사망
KT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북부 관악 소속 수리기사 이모(36)씨가 작업 중 재래시장 지붕에서 추락해 사고 발생 8일 후인 22일 사망.
한화
종합화학(주)
5월 17일
오전 09:37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한화종합화학(주) 냉각탑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진모(27)씨가 케미칼 투입 작업을 진행하던 중 실종되었다가 저수조 내 설비에 숨진 체 발견.
한국전력공사
오전 10:00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 내 345kV 송전탑에서 세척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49)씨가 35m 아래 지상으로 추락하여 사망.
한국
도로공사
5월 19일
오전 08:47
충남 예산군 신양면 대전∼당진 고속도로 당진 방향 40㎞ 지점(당진 기점) 차동 2교 난간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52)씨 등 4명이 철제난간이 부러지면서 추락하여 모두 사망.
5월 23일
오전 07:40
7월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44세)씨가 27층에서 떨어져 사망.
5월 25일
오전 09:20
부산 사하구 구평동 제조업체 공장에서 지붕 교체작업을 하기 위해 하청업체가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 주모(44)씨가 20m높이에서 추락하여 사망.
울산시 발주
5월 27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옹벽 설치 작업현장에서 토사붕괴로 협력업체 노동자 1명 사망, 2명 부상.
5월 28일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E1 공장 증설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직원 김모(45)씨가 저장탱크 위에서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5월 28일, 인천 남동공단 소재 도금업체 소속 하청 노동자 김모(23세)씨가 시안화수소 작업 중 중독되어 뇌사. 6월 18일 사망
※ 다단계 하도급 : 5~6차
6월 7일
오후 13:40
울산 현대중공업 사업장 내 제7안벽 화물선(VLOC) 워터발라스트 탱크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4)씨가 탱크 안 통로 아랫부분의 먼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몸이 핸드레일 밖으로 빠져 5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주)부원건설
6월 26일
오후 13:16
세종시 새롬동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에폭시 작업과 내부 페인트 작업을 병행하던 중 폭발. 이 화재로 하청업체 노동자 2명 사망, 3명 부상.
6월 30일
오전 07:50
전남 광양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2제강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정모(38)씨가 철강 제품의 일종인 슬라브의 이물질 제거 작업 중 3톤 크레인 장비에 몸이 끼어 사망.
7월 5일
오전 08:15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남부 제주지사 소속 노동자 김모(54)씨가 전신주에 걸린 나뭇가지를 제거하는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
7월 13일
오전 08:00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 백운밸리 아파트건축공사현장 C3 블록 지하층에서 배관 누수공사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유모씨(58)가 천장과 리프트 사이에 목이 끼여 병원 후송했으나 이틀 후(15일) 사망.
세종시 발주
7월 16일
오후 16:21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보도블록 작업을 하던 이모(39)씨가 열사병 증세로 쓰려져 병원 입원 후 사망.
※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 체온 43도
7월 17일
오후 14:17
전주 완산구 효천지구의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박모(66)씨가 무더위로 정신을 잃고 5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
※ 원청업체에게 폭염으로 휴식을 건의했으나 묵살
전력공사
7월 18일
오후 16:30
군위군 의흥면 수북3리 60번지 주변에서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 노동자 이모(54)씨가 고소작업 차량을 이용해 농사용 전기의 고압 증설공사 작업 중 전기에 감전되어 사망.
세원셀론텍
7월 25일
세원셀론텍 창원공장에서 제품이 넘어지면서 작업 중이었던 협력업체 노동자 진모(60대)씨를 쳐 1.7m 높이에서 추락하여 사망
GS E&R
8월 8일
오전 08:48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장자산업단지 석탄화력발전소 점검 작업 중 분진 폭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45)씨가 사망, 4명 부상.
국방부 발주,
8월 12일
청주 공군 17전투비행단 군전용 활주로 개선공사 중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모(51)씨 굴삭기 운전석에서 사망.
※ 특수고용노동자, 폭염 속 25일 연속근무, 주 63시간 장시간 노동(근무 총154일 중 휴일 13일)
8월 15일
오전 11:35
경남 양산 아파트신축공사 현장에서 전선을 건물 안으로 옮기는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유모(40대)씨 사망.
8월 16일
오전 09:10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상업시설(지하2층, 지상5층) 지하 1층에서 승강기 교체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41)씨가 머리가 끼여 사망.
동문건설
8월 17일
경기 평택시 칠원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일용직 노동자 김모(54)씨 사망, 1명 부상
세일전자
9
8월 21일
오후 15:43
인천 남동공단의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세일전자 공장 화재로 협력업체 노동자 양모(53)씨 등 9명이 사망, 4명 부상
현대제철
8월 27일
오전 09:35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냉각수 집수조의 전단계인 지하수로를 고압 세척기로 청소하던 중 하청업체 노동자 강모씨(61)가 심정지로 사망
삼성반도체
9월 4일
오후 13:55
경기도 용인시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6-3라인 지하 1층 화재진화설비 밀집시설에서 이산화탄소 유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24)씨 사망.
에쓰 오일
9월 5일
오전 11:20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소재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 탈황공정의 반응기 촉매 교체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박모(45)씨가 반응기 내부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
중흥건설
오후 17:27
중흥건설이 짓고 있는 진주혁신도시 C-3블럭 주상복합시설 신축현장에서 방수작업을 하던 근로자 4명이 유기용제 증기에 중독되어 박모(62)씨 1명 사망, 3명이 부상.
한국남동발전
영흥
화력발전소
오후 15:23
옹진군 영흥면 영흥화력발전소 제2연료 하역부두에서 접안시설 보수 작업을 하다 해상으로 추락해 실종된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이모(49)씨와 주모(42)씨 사망한 채로 발견.
9월 6일
김제시 옥산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용직노동자 유모(51)씨가 사다리 위에서 추락하여 사망.
LG 유플러스
9월 8일
오전 10:20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의 도로 맨홀 아래서 광케이블 정비작업을 하던 LG 유플러스 협력업체 노동자 2명 중 김모씨(59)가 저산소증으로 사망, 1명 중태.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발주
SK건설 외 14개사 (SK건설, 삼성물산, 한화건설 등)
9월 13일
오후 15:40
부산 강서구 대저동 부전·마산 복선 전철 지하 공사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D씨(32, 캄보디아)가 콘크리트 분쇄 작업을 하던 굴착기 체인 타이어에 치여 사망.
9월 27일
오후 13:20
경기 화성시 봉담읍의 복합건물 공사현장에 설치된 2m 높이의 이동식 비계 위에서 작업을 하던 중 A씨(58, 우즈베키스탄)가 추락하여 사망.
9월 28일
오전 11:50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의 아파트에서 외벽 페인트 칠을 보조하던 일용직 노동자 A(25. 러시아)씨가 18층 높이의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
여수화력발전소
10월 4일
오전 11:16
전남 여수시 중흥동 여수산업단지 한국남동발전 여수화력발전소에서 먼지 집진 주머니 필터 교체 작업 중 폭발로 협력업체 노동자 김모(37)씨 사망, 동료 4명 부상
※ 무재해 달성 : 2382일(2012년 03월 28일~2018년 10월 04일)
삼성
디스플레이
10월 11일
오후 17:50
충남 천안시 성성동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에서 기계 설비를 옮기던 협력업체 노동자 이모(39)씨가 건물 5층에서 떨어져 사망.
SPP조선
10월 18일
오후 15:00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있는 SPP 조선소에서 크레인을 사용하여 공장 철골 구조물을 해체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최모(62)씨가 30m 높이의 크레인에서 추락해 사망.
예천군
10월 19일
오후 14:13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산 일원에서 전기톱 작업 중 김모(남, 60대)씨가 쓰러지는 나무에 맞아 15m 아래로 추락해 사망.
10월 23일
오후 13:00
악천후 속 건물옥상에서 AS작업을 하던 KT 협력업체 KTS북부 소속의 20대 수리기사 장모(24)씨가 추락하여 사망
※ KT 퓨처스타 프로그램 참여 1년차 노동자 사망 : 청년교육 및 취업지원 연계프로그램) :
한국GM
10월 25일
한국 GM 소속 신차 출고센터에서 차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협력업체 화물운전 기사 송모(60대)씨가 센터 내에서 차에 치여 사망.
CJ대한통운
10월 29일
오후 22:10
대전시 문평동의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유모(33)씨가 물류 트레일러에 치여 사망.
현대
미포조선
11월 1일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강모(53)씨가 외판사상(글라인더) 작업을 하던 고소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에 옮겼지만 사망.
11월 5일
오후 15:26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산호동 소재 마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이모(58)씨가 12.8미터 높이 H빔 구조물에 앉아서 작업하다 이동하던 중 추락하여 사망.
11월 10일
오전 09:46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탱크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탱크 안에서 본드 작업을 하던 중 폭발하여 외국인 국적(베트남) 노동자 2명 사망, 2명 부상
포스코건설 컨소시엄
(포스코·SK·대우·현대건설)
11월 15일
경기 안양시 ‘평촌 어바인 퍼스트’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최모(54)씨가 레미콘 차량에 깔려 사망.
※ 현장신호수 미배치
11월 20일
오전 10:28
의정부 동의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주차타워 9층에서 기둥에 볼트를 박는 작업 중 추룩하여 하청업체 직원 윤모(26)씨 사망.
11월 21일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이모(51,여)씨가 흙을 나르는 25t 트럭에 치여 사망.
포스코 기술연구원
11월 28일
오후 13:08
부산 사상구 학장동 폐수처리업체에서 황화수소로 추정되는 유독가스에 질식돼 협력업체 노동자 3명 사망 – 이모(52), 조모(48), 임모(38)씨
12월 7일
송악 부곡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엔진부품 생산 하청업체에서 LPG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김모(55)씨 사망, 1명 부상.
KDB
산업은행
12월 10일
오후 18:30
KDB산업은행 별관 화장실에서 하청업체 IT노동자 김모(39)씨 사망(과로사 추정)
※ 다단계 하도급 : 산업은행(갑) ⇒ SK C&C(을) ⇒ 하청업체(병)
서부발전
12월 11일
새벽 03:22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타워 4c 5층에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24, 현장설비운용팀)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
※ 산재은폐의혹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주)반도건설, (주)대우건설
12월 14일
오전 11:00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공공주택지구 공사현장에서 빗물관 공사 작업 중 일용직 노동자 박모(55)씨가 토사 붕괴로 사망.
12월 30일
제주 서귀포시 동홍동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일용직노동자
김모(42)씨가 추락해 사망.
2. 아르바이트
구분
8월 6일
대전의 택배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 김모(23)씨가 컨베이어벨트 청소작업 중 감전되어 10일 후(8월 16일) 사망.
※ 산재은폐 의혹 : 사고 하루 후(7일), 관리자가 물류센터 노동자를 모아 놓고 사고은폐 종용 및 거짓진술 강요
강원도
개발공사
(알펜시아 리조트)
9월 1일
'알파인 코스터'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심모(24)씨는 일을 마치고 해당 기구를 타고 내려오다 좌석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9일 뒤 사망.
김천시
오후 13:24
경북 김천시 삼락동 김천시문화예술회관 공연장 무대 위에서 소품에 색칠을 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정모(여·24)씨가 지하 6~7m 아래까지 내려가 있던 승강무대로 추락하여 사망.
3. 돌연사, 원인 미상
현대중공업 자회사 모스의 하청업체 소속 크레인 기사 곽모(63)씨가 크레인 상부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 후 사망(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미)
※ 산업재해 의혹 과로사 추정(최근 3개월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5시간 이상)
세아특수강
1월 29일
오후 13:25
포항철강공단 내 세아특수강 협력업체 노동자 유모(37)씨가 선재제품 보관장 3문 입구에 쓰러져 사망(돌연사).
※ 불법파견 의혹
: 세아창원특수강 사내하청 노동자 1인 시위 및 1,500여 장의 불법파견 증거를 제출 → 처리결과(고용노동부 불법파견 아니라고 판단)
홈플러스(주)
4월 3일
홈플러스 김포 풍무점 시설유지 관련 업무 총책임자인 하청업체 (주)맥서브 소속 노동자 이모(47)씨가 기계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 가슴통증 호소 후 사망.
※ 산재 은폐의혹 : 시위, 영업방해, 언론보도 등을 금지한다는 합의서 제시
KT의 전화, 인터넷, IPTV 설치 및 수리를 담당하는 계열사 KTS북부 소속 유씨 사망 (심장마비 추정).
삼성중공업
11월 13일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차모(47)씨 사망 (원인 조사 중).
4. 자살
아시아나
항공
7월 2일
오전 09:34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을 공급하는 협력업체 사장 김모(57)씨가 타협력업체 공장화재로 기내식 공급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서해
종합건설
7월 24일
서울동부지법원 시공을 맡았던 서해종합건설을 상대로 비리의혹을 제기하고 하도급 갑질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여온 하청업체 직원 김모(52)씨 자살.
계절에 한 번씩,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의미로 <노동과 건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책 발간이 늦어지고 매번 ‘반성문’을 쓰면서 책을 시작하게 됩니다. 4계절이 아니라, 여름/겨울만 있는 곳이라면 부담이 좀 줄어들 텐데 하는 헛된 상상도 해봅니다.
계절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노동건강연대가 줄곧 이야기했던 ‘기업 살인’. 이번 호에도 다시 한 번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올 한 해 안타까운 산재 사망 소식이 들릴 때마다, 노동건강연대 기업살인대응팀에서는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회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지훈 활동가가 ‘2018년 기업살인 – 원하청 관계에서의 사망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우리 회원인 강원대 법대 전형배 교수의 초청 특강을 지상 중계한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해 본다’에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업살인 특집 원고는 사실 여기서 끝나야 했지만, 현실에서 ‘기업살인의 마감’이란 없었습니다. 12월 청년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라는 글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은 미투 운동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직장갑질119, 시민건강연구소의 활동가, 연구원이 모여 노동의 관점에서 미투 운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내용을 ‘미투의 시대, 일하는 여성의 세상에서 본 미투’라는 제목으로 지상 중계합니다.
<노동과건강>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 문제를 다룬 해외 연구나 법제도, 사회운동을 꾸준히 소개해왔습니다. 이번 해외연구 동향 코너에서는 이주연 회원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소개해주었고, 박진욱 회원은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투쟁 사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한편 2018년 하반기에는 보건의료운동과 관련한 여러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찾은 페미니스트 노동보건과학자 캐런 메싱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이나단 활동가, 미국의 의료영리화를 비판한 책 ‘코드 그린’의 북토크 행사에 참여한 한지훈 활동가가 각각 후기를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민건강연구소의 김정우 연구원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원고 편집을 마무리하는 동안,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보 전진이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건강과 안전을 지킬 권리를 담고 있는 건조한 법 조항, 문구 하나하나마다 한 사람의 생명과 가족들의 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다른 김용균이 생겨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노동건강연대가 나아갈 길이고 우리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