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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정치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활동하기 위하여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대표
    대표의 편지


    정치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활동하기 위하여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대표


    공장에서 메탄올을 만지다 눈이 먼 6명의 청년노동자에게 일어난 사고에 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동건강연대를 접한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저희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노동과건강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는 30여년, ‘노동건강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도 16년이 되었습니다.  활동을 좀 더 대중적으로 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 혹은 활동가 조직입니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하게 되면 사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발생하지만,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요구할 권리도 존재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민주적 조직인 노동조합의 영역이어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안전, 건강과 관련된 활동은 임금이나 고용보장 이슈에 견줘 그리 활발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활동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으로 오해하여 전문가들에게 많은 활동을 위임하거나 위탁하는 실정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것보다 더 문제가 있는데,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0% 남짓밖에 안되고,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적용률도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권리를 옹호하고 싸우는 주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노동조합이 신경 쓰지 못하는 노동자 계층의 안전과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알바, 계약직, 파견, 외주, 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하기 힘든 노동자들 입니다. 
    우리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 산재보험 제도 개혁 사업, 작은 공장의 노동자 건강을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킹 사업,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사업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회원 중에 의사, 노무사, 변호사 등이 상대적으로 많아 저희를 ‘전문가’ 단체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전문가 단체나 연구 단체는 아닙니다. 활동가 조직을 지향합니다. 자격증은 중요하지 않고 전문적 지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 문제를 전문지식 안에 가두지 않고 보다 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사회운동 조직입니다.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다수의 후원회원들이 노동건강연대 재정의 핵심입니다. 이들이 조직의 중추입니다. 무보수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다수의 활동 회원이 노동건강연대의 힘입니다. 
    오랜 만에 나온 <노동과건강>을 읽어 주신 독자, 회원에게 감사드립니다.
    활동을 통해서, 글을 통해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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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20년 전의 성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주 주관적인 서평

    20년 전의 성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김동춘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전수경 / 읽는 사람 


    김동춘 교수에게 노동건강연대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을 부탁한 적이 있다. 토론회 관객은 열 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가끔 생각난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김동춘 교수는 전문성이 없는 분야라고 고사하다가 기꺼이 와 주었다. 김동춘 교수는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집합적 계급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운동과, 노동자 내부의 건강의 격차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했다.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고 풀지 못한 숙제다.
    시대의 요구가 있다면 그에 답하는 학자. 책 한권 읽었다고 서평을 쓸 실력은 안 된다. 그냥 생생하고 깊이 있는 그의 글, 작은 논문들을 읽는 재미가 좋다.
      
    <시사IN> 주간지 517호(2017.8. 9 발행)에 ‘‘삼성 장충기 문자’ 전문을 공개합니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 이런 문자들을 보았다. 

    사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갖고지켜봐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복많이받으셨습니까? 지난해는 사장님회사의지원으로우리나라가안정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감사드립니다. 또한 자료는 아주 유용하게활용되고있습니다.이또한감사합니다.올해도변합없는성원부탁드리며,회사와더불어국가의발전을기원합니다.행운과행복을듬뿍담아인사드립니다^_^

    언론사 간부가, 국가정보원 간부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라는 자에게 보낸 문자들이다. 장충기라는 자는 삼성에서 정보와 대관업무(정부상대 업무를 지칭한다고 함) 를 총괄했다고 한다. 언론사, 국가기관의 고위직들이 재벌기업 사장들과 저리 배려심 많고 애교 넘치는 문자를 주고 받는구나, 빤스만 입고 있는 모습을 훔쳐본 본 듯 민망하다. 

    김동춘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말하는 사회의 기업화는 그동안 학자들이 많이 이야기해온 바, 단순한 법인체의 영향력 확대와는 다르며, 사회구성원의 기업의 종업원화라는 의미에 가깝다. 과거에는 기업이 음성적 로비 등을 통해 정치권, 정부,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면, 기업사회에서는 정치, 정부, 언론의 활동이 사실상 기업들이 외주 용역을 준 것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 즉 기업의 정치부서, 기업의 행정·사법 담당부서, 기업의 홍보부서 일들을 기업조직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성의 외양을 띤 별개의 조직이 수행하도록 하되, 그 방향은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조직과 인원, 기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에 남아 있는 인력도 낮에는 공익적인 일을 수행하지만 밤에는 기업의 직원으로 역할하도록 하고, 언론과 대학을 최대한 사유화하여 기업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7년에 쓴 글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를 ‘기업사회’라 명명한다. 기업의 CEO가 사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넘어서 사회조직이 기업조직처럼 되었다는 의미에서다. 
    저 문자들은 ‘기업사회’의 꼭대기에서 누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저 문자를 입수 공개한 시사주간지 <시사IN> 기사에는 진짜 권력자는 이재용 같았고, 박근혜 최순실은 들러리 같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꼭대기만 욕하고 시원하다 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뼈 속까지 기업사회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가족, 학교, 공공기관, NGO 등 돈벌이와 관계없는 사회조직도 기업조직의 원리와 운영방식을 채택하여 인간 사이의 수고와 노력이 금전 보상으로 대체되고, 우리는 기업에 고용되기를 원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의 책은 글 쓰는 자신을 미화하는 글쓰기와 다르다. 어떤 학자들의 글은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한다. 교수들이 왜 그렇게 자주 신문의 독자투고 란에 짧은 글들을 투고하는지 모르겠지만, 사회문제에 막 눈뜨는 흥분 같은 감상이, 여과되지 않은 글을 볼 때가 제법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이해관계의 갈등과 혼란, 통계와 숫자 등을 섞어서 현상의 거죽을 핥는 글을 언론사에 보낸다. 본인이 취재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소재를 얻어 짜깁기한 것처럼 보이는, 신문사들은 이런 글에 왜 그렇게 관대한지.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는 주로 잡지에 시평형식으로 기고한 글 중에서 해마다 한편씩을 모아서 책으로 묶어냈다. 주제들은 무거운 편이고,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질문들이다.
    책의 맨 뒤에 ‘책을 기획하며’ 라는 짧은 글이 실려 있다.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사회의 흐름을 특정 지식의 글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어떤 사회적 의제에 관한 당시 여러 논자의 글들을 묶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그 자가 시대 속에서 남긴 사고의 편린들을 지금 시점에서 모아 유산화한다.

    이런 기획으로 찾은 첫 번째 학자. 당대에 개입하려는 평론의 색채가 짙고, 집요하게 자신의 현재와 비평적 관계를 맺어온 사회학자를 찾으니 그가 김동춘 교수였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로 쓰되 연민도 미화도 아닌 글을 쓰는 학자. 
    동시대의 현상들에 대하여 소재만 끌어다 쓰면서 동어반복의 해결책을 내는 학자들 글이 많다.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는 우리가 겪는 현상의 근원,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구조물은 어떤 역사와 정신으로 건축되어 온 것인지 그 기원을 찾고자 하는 지적인 성실함, 지적인 집요함을 담았다. 집요함은 겸손에서 오는 것 같다. 공부해야 할 것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아는 것. 충분히 알기 전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는 『역사비평』 편집위원을 할 때 역사학자들로부터 팩트를 추궁하는 연구태도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사회과학자들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고, 정확한 근거없이 이야기하는 안 좋은 점을 교정하는데 엄밀함을 추구하는 역사학의 방법론이 도움이 되었’ 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용역 폭력이 활개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를 읽을 때는 이렇게 좁은(?) 문제까지 다루는 거야, 짐짓 시시하다고 생각했으나, 길지 않은 글인데도, 읽은 후에는 현대사에서 국가와, 국가가 용인하는 폭력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 해방 후 좌익을 때려잡는 서북청년단과 1970년대의 구사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철거현장에 나타난 용역깡패,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를 파괴하던 사설폭력집단은 국가의 비호, 묵인을 넘어서 ‘폭력행사의 보조적 역할을 하였다. 해방 직후 북에서 내려와 깡패가 된 서북청년단과 검은 헬멧을 쓰고 파업현장에 나타난 사설경비업체 직원들의 시대는 다르지만 계급적으로 동일하다.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과 폭력은 씨줄 날줄로 직조되어 있다.

    해방정국의 우익 테러 세력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이승만이나 극우 세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중략)사실 폭력의 횡행 그 자체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원수로 만들고, 이들 모두를 쓰레기로 만드는 자본주의 자체가 쓰레기 자본주의다.

    탄핵 이후 새 대통령이 흰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주간지 표지를 본다. 상쾌한 느낌이다.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폭력을 이용하여 국가권력, 기업권력을 작동시키는 시대는 이제 간 것일까. 군에서 일어난 노예병사 사건을 본다. 전자팔찌를 찬 채 장군의 사택에서 전을 부치고 떡국을 끓이는 군인. 장군의 냉장고를 청소하는 군인, 동료군인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군인. 군대 내 폭력과 김동춘 교수가 말하는 쓰레기 자본주의는 겹쳐 보인다, ‘똥파리’ 자본주의는 군대라는 서식환경 속에서 온존한다. 그리고 사회로 나와 ‘갑질’과 순응의 전근대적 직장문화, 조직문화로 양분을 공급한다.

    그의 박사논문 제목이 「한국노동자의 사회적 고립」 이라고 한다. 1993년이니 노동자대투쟁이 있던 1987년으로부터 멀지 않고, 현장의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다. 그 때 인천, 마산 등 현장을 다니면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하는데, 이미 노동운동의 후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이미 한국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로 정착하고 있었으며, 이후 계속 심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쓴 ‘왜 전태일 기념관이 필요한가’를 펼쳐본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창립선언문, 1996년 민주노총의 창립선언문에는 전태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70년대 노조운동에 대한 일반적 언급 정도만 있을 뿐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하의 지배적 담론이 ‘경제 성장’이었다면, 전태일은 그 ‘성장’의 그늘이었다. 그는 성장주의의 비인간화에 맞선 민주화 그리고 인간화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중략) 그런데 전태일의 노선은 자본과의 적극적인 대결 투쟁을 요구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의 한 전사前史로만 다루어졌으며...현재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열악한 사업장이나 극히 부당한 노동조건에서 고통받는 주변부의 노동자들,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지표로 삼았던 영세사업장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잊혀졌다. 노동운동은 전태일과 그 친구들을 잊었는가. 
    1997년에 쓴 ‘노동자대투쟁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자.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법개정 문제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자신의 생활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제반 사회입법의 개혁에 무관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1987년 이후 지난 10년은 소수의 교섭력 있는 노조가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점차 정부가 용인한 기업별 노조체제의 포로가 된 대가로 사실상 노동자 전체의 사회적 역량을 제자리걸음이었다. 

    1997년에 쓰인 이 글을 2017년의 현장 활동가가 구어체 버전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지금 이 책에 실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의 인터뷰를 보라. 탄식, 한탄 같은 것. 20년 전에 출발한 성찰은 아직 우리 노동운동에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지식인은 통상 냉엄한 권력투쟁이나 자본 축적의 세계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념과 원칙의 관점에서 노동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노동문제는 실천의 대상이라기보다 유토피아 실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당장의 현실에서 약간의 진전이라도 수용해야 하는 보통 노동자의 입장과는 크게 다르다.

    지식인도 아닌 나는 활동하면서 늘 저런 종류의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그가 박사논문을 쓸 당시 사회변혁의 방법론에 대하여 운동진영간의 논쟁이 치열했는데 레닌이 이 구절은 이렇게 주장했고, 마르크스가 이 구절은 이렇게 주장했고, 이렇게 논쟁하는 게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레닌이나 마르크스의 문건으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엄청 짜증이 나 있었어요’ 이런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의 현장을 조사한 박사논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회고담이 아니다. 쓰인지 오래된 글도 동시대의 질문을 품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김동춘 교수의 숨가쁜 분석에선 분노와 슬픔의 기운을 감출 수가 없고, 박근혜 게이트와 촛불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촛불을 들었던, 들지 못했던 시민 모두를 살핀다.   

    아 글을 마치기 전에, 왜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신문에 투고를 하는가, 나의 불평에 대하여 김동춘 교수가 답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저도 칼럼을 쓰는 사람이지만 미디어가 학자들에게 저널리스트 역할을 요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참 웃기는 현상인데, 학문적으로 천착하는 사람보다 미디어에 알려진 사람들이 마치 대단한 학자인 것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학문의 체계가 아직 안 잡혀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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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수돗물 오염에 맞선 미국 플린트시 주민들의 투쟁
    박진욱 / 계명대학교
    해외소식

    수돗물 오염에 맞선 미국 플린트시 주민들의 투쟁


    박진욱 / 계명대학교


    2017년 7월, 미국의 TV채널 라이프타임은 미시건주 플린트(Flint) 시의 수돗물 오염사건을 TV영화로 제작 중이라는 발표를 했다. “플린트”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이 영화는 2014년에 플린트 시에서 수돗물 오염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지역공동체의 연대와 투쟁이 어떻게 정부를 움직였는지 등 문제 해결의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플린트 시에서는 2014년 4월부터 오염된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했는데, 1년 반이 지난 2015년 10월이 되어서야 오염된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동안의 노출로 약 3천 명의 어린이가 납 등의 중금속 중독을 진단받았고, 12명이 레지오넬라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도 이와 관련한 소송들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지방 정부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계속된 거짓말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00만 달러를 아끼기 위한 선택

    미시건 주에 위치한 플린트 시는 자동차 생산기지로 유명했던 디트로이트 시와 인접한 공업 도시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지속적 불황으로 미시건 주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정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11년, 미시건주 주지사에 취임한 공화당의 릭 스나이더는 플린트 시를 포함한 재정 위기 지자체에 비상재무관리자를 임명하고 지자체의 재정 관리 권한을 부여했다. 플린트 시는 디트로이트 시가 인근 휴론 호(湖)에서 취수한 상수를 다시 구매하여 수돗물을 공급해왔는데, 재정 파산을 겪은 디트로이트 시가 상수사용료를 인상했다. 역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플린트 시는 인상된 사용료를 지불하기보다 다른 지자체와 연합하여 직접 휴론 호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것이 장기적으로 재정 절감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파이프 건설을 시작했다. 수돗물 사용계약 중단으로 재정에 타격을 받게 될 디트로이트 시와 플린트 시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났고, 디트로이트 시는 2014년 4월 이후로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파이프 건설 완료까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디트로이트 시와 2년 단기재계약을 하면 500만 달러(약 56억 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플린트 시는 파이프 건설 전까지 인근의 플린트 강을 임시 취수원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4월부터 플린트 강의 물을 상수도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플린트 강을 임시 취수원으로 사용하는 데에도 역시 400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다. 겨우 1백만 달러를 절감한 셈인데, 문제는 플린트강의 수질이 상수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드러나는 문제들과 계속되는 거짓말에 맞서 싸우기 

    2014년 4월부터 플린트 강으로 수원지가 변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돗물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물이 변색되었고 악취가 날 뿐 아니라 발진 같은 피부질환과 탈모가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여름에는 물이 대장균에 오염되어 있으니 끓여서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보가 반복적으로 내려졌다. 10월에는 GM의 트럭조립 공장이 플린트 강물이 엔진 부식 등을 일으킨다며 플린트 강에서 끌어온 상수 사용을 중단하고 휴론 호의 물을 구매하여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가 바뀌어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2015년 1월, 플린트 강에서 공급되는 상수의 트리할로메탄 농도가 허용기준치 넘게 검출되어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의 경고를 받았다. 트리할로메탄은 수돗물의 염소소독 처리과정에서 수중의 유기물과 염소가 화합해 생성되는 발암물질이다. 그러나 플린트시장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본인과 가족들도 매일 수돗물을 먹는다며, 수돗물이 식수로서 안전하다고 이야기했고,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주민들은 수돗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주민 회의를 조직했다, 변색된 수돗물을 물병에 담아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플린트 시의회도 플린트 강의 취수원 사용을 중지할 것을 시에 건의했다. 하지만 플린트 시의 비상재무관리자는 비용 증가를 이유로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2015년 2월, 플린트 주민 리 앤 월터의 집에서 측정한 수돗물의 납 농도가 EPA 기준치의 7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EPA는 높은 납 농도에 우려를 표하면서,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에 플린트 시의 상수처리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문의했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플린트 시가 부식 방지를 위해 최적화된 처리를 하고 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플린트 시는 부식 방지를 위해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았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2015년 3월, 플린트 시의회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디트로이트 시로부터 물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결의안을 투표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플린트 시 비상재무관리자는 이번에도 재정 적자를 이유로 이 결의를 무효화했다. 주민 리 앤 월터의 집에서 납 농도를 측정하고 두 달이 지난 2015년 4월, 그의 아들이 납중독을 진단 받았다. 리 앤 월터는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납중독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부식된 수도관이 납 노출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플린트 강의 수질은 농장 유출수, 하수, 산업 폐수로 오염되어 있었고 염분 함량과 산성도가 높았다. 염분과 산이 오래된 납 수도관의 코팅을 부식시켜 납을 노출시키고 이렇게 노출된 납이 용출되어 각 가정의 수돗물에 높은 농도로 함유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00달러를 들여 부식방지제를 사용했어야 하는데, 플린트 시와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식방지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5년 6월, 플린트 시 가정의 수돗물에서 고농도 납이 검출된 것에 대한 EPA 담당자의 메모가 공개되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고 계속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플린트 시장은 지역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접 수돗물을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 대변인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돗물에 문제가 없다며 안심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플린트 시와 미시건 주정부를 믿을 수 없었던 지역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민간전문가들과 협력해 수질을 검사하고, 정보 공개 청구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해 나갔다. 2015년 9월,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마크 에드워즈 교수 연구팀이 플린트 시 가구의 40%에서 허용 기준치 이상의 납이 검출되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같은 달 헐리 메디컬 센터 의사인 모나 한나-아티샤는 플린트 강으로 취수원이 변경된 후 플린트 시 아동들의 혈중 납 농도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이 두 연구 결과도 부인했지만, EPA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플린트 시의 납 오염을 공식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후 마크 에드워즈와 모나 한나-아티샤는 플린트 시 수돗물의 납 노출 문제를 드러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7월에 MIT 미디어 랩 불복종 상을 수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은 최소 2억 달러

    이제 플린트 시 수돗물 오염 문제가 공식화되고 전국적으로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5년 10월, 미시건 주 주지사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플린트 시의 상수원을 원래로 되돌리는 것에 대한 예산 집행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취수원이 변경되었어도 이미 수도관이 부식되었기에 여전히 납이 배출되었다. 2016년 1월,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플린트 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병에 든 생수와 수도 필터 등을 무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생수 공급은 올해 2월까지 계속되었다. 
    수돗물 오염 문제는 사건 발생 후 3년이 넘게 지나고, 지방정부가 이를 인정한 지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사결정을 했던 비상재무관리자들과 문제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전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납수도관 교체와 납중독 진단을 받은 이들에 대한 치료 지원 등을 위한 정부 예산도 얼마 전에야 합의되었다. 수도관 교체와 치료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2억 달러(약 2,25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돗물 오염이 주민의 건강 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플린트시의 영아사망률은 2013년–2015년 평균 출생아 1천 명 당 10.7명 수준이었는데, 2015년에는 13.7명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플린트시의 수돗물 오염 사건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비용 절감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행정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교훈을 보여준 전형적인 환경오염 사건이다. 또한 플린트 주민의 약 60%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로 표현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여전히 문제 해결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행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고작 안전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시민들이 투쟁해야 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과 건강을 위한 지역 주민들의 연대와 투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 10월 말 방영 예정인 영화 “플린트(Flint)”에서 시민들의 투쟁과 공동체의 연대운동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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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1,740만원의 힘” 스토리펀딩과 토크콘서트 후기
    이근탁 노무사 / 노동건강연대 회원,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1,740만원의 힘”
    스토리펀딩과 토크콘서트 후기


    녹취: 이근탁 노무사 / 노동건강연대 회원
    진행·정리: 전수경

    다음 스토리펀딩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는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선대식 기자는 흡입력 있는 글쓰기로, 갑작스레 시력을 잃은 청년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스마트폰이나 PC에서 ‘다음’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항상 수십 개의 콘텐츠가 번쩍거린다. 그 안에서 ‘스토리펀딩’을 찾아서, 누군가의 ‘스토리’로 들어가, 후원창을 열고, 한 줄의 글을 남기는 것. 터치만 하면, 클릭만 하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500만원을 목표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네티즌들의 공감과 응원 속에 1,700만원을 넘기며 펀딩을 마감하였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큰 돈이다. 장애 적응과 재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프로그램을 6명의 피해 노동자에게 제공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금액이기도 하다.
    현재 사회복지 전문가가 개인별로 어떤 프로그램, 또는 물품 지원이 필요할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장애노동자 재활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7월 16일, 펀딩에 참여해 준 네티즌들을 초대해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작지 않은 공간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6명의 노동자를 대리하여 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민변 변호인단의 박인숙 변호사, 국회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비롯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특히 이번 메탄올 사건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그리고 스토리펀딩 프로젝트의 주역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가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되었다. 

    특별한 노래손님도 찾아주었다. 그 노래손님이 들려준 이야기로 토크콘서트 지상중계를 시작하고자 한다. 416합창단이다. ‘아름다운 사람’과 ‘동백섬’을 부르고 아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안녕하세요 단원고 2학년 8반 안토니오 엄마입니다.
    안토니오는 성당에서 뛰어놀던 아기였어요. 마냥 평범하게 살았던 제가 가톨릭 청년회관에서 이렇게 공연을 하게 되었네요. 왜 우리 아이들이 구조받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어야 했을까요. 미수습자 아홉 분을 모두 찾아야 합니다. 단원고가 보이는 화랑유원지에서 우리 아이들을 이제는 같이 추모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새 정부가 세워졌으니 마음 놓으라고 하지 마시고 이런 우리의 발걸음에 힘이 되어주십시오. 
    젊은이들이 시력을 잃었습니다. 환기도 되지 않는 최악 조건의 사업장. 누군가는 해야 할 위험한 일이라면 더 안전하게, 더 대접받아야 합니다. 위험하다는 고지조차 하지 않은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하여 우린 여기서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미래를 내다봐야 하고 세월호 이전의 삶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안전한 나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2, 제3의 세월호는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연대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메탄올 실명 노동자와 관련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근황까지 여쭤보겠습니다. 선대식 기자는 안산지역 공장에 위장취업 했던 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요?

    선대식 기자: 
    2016년 2월 17일, 6명의 노동자 중에 가장 나중에 실명한, 이진희 씨가 공장에서 쓰러진 날인데요. 저는 정확히 일주일 뒤에 LG스마트폰 부품업체에 위장취업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보니까 똑같은 일을 했더라고요. 이진희 씨는 인천이었고, 저는 안산 반월공단이었고요. 제가 있던 업체는 에탄올을 사용했더라고요. 이진희 씨가 4일 만에 시력을 잃었는데, 만약에 제가 그 공장에서 일을 했다면 제가 시력을 잃었을 것 같아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두 번째 업체는 조그마한 가전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라인에서 분무기를 주더라고요. 그걸 뿌려서 닦으라고. 분무기를 아무리 뿌려도 잘 안 닦여서 보니까 메탄올이라고 써 있었어요.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신체에 큰 영향이 없었을지 모르겠으나, 메탄올이 정말 흔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거죠. 파견노동자 누구에게나 메탄올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겁니다.

    한정애 의원:
    저는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불법파견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해당업체만 책임을 지게 되어 있어요. 원청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부분, 법안을 내놓았어요. 유해위험물질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외주를 주지 못하게 하는. 
    재판결과를 보고 제가 분노한 것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징역을 살게 하면서,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그렇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벌금이나 징역으로 약하게 처벌을 해요. 입법부에서 법을 만들 때는 ‘제대로 책임을 부과하세요’라는 권한을 준 것인데, 사법적 판단을 고무줄처럼 사용하는 게 아쉽네요. 우리 사회가 공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제가 선대식 기자의 기사를 빼지 않고 보는 편인데요, 우리도 모르게 썩어가고 있던 것을 알려주시는 데에 감사하고, 이를 고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입법부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메탄올 사용기업에 대한 재판도 방청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얘기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대식 기자:
    형사재판을 계속 다녔는데요, 직접적인 가해자가 파견사업주 5명, 사용사업주 3명입니다. 누구도 감옥에 가질 않았습니다. 그것도 분노를 유발하는데, 판결문을 보면 비문들이 있어서 더 화가 납니다. 8명의 가해자 중 마지막 사람의 1심 선고가 6월 30일에 있었어요. 안 아무개라고 이진희 씨와 전정훈 씨의 눈을 멀게 한 가해자예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사회봉사 80시간이 나왔어요. 판결문에 양형사유가 ‘메탄올이 위험한지 알면서도 메탄올을 썼다’는 말이 나오고, ‘온전히 위험한지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것보다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가해자가 초반에 500만원을 준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처리하려고 한 것이므로 양형에 참작한다고 합니다. 가해자를 조사한 인천지검 공안부인데, 검사가 2년 6월 구형을 하면서도 집행유예가 나오지 않을까 했대요. ‘사람이 한명 죽어서는 구속이 되지 않는다. 여러 명이 죽어야 구속된다’고 검사가 말을 하니, 사법부가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검찰도 잘한 것은 없어요. 다섯 건 선고가 모두 집행유예가 나왔는데, 검찰은 한 건도 항소장을 내지 않았어요. 검찰도 집행유예를 받아들인 다는 것이죠. 

    희망을 가져야 하는데 암담하네요. 사업주와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손해배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박인숙 변호사:
    선대식 기자가 말씀하신 형사 판결문을 보면, 법조인인 저로서는 의미 있는 구절이 있어요. 
    ‘피고인은 불법 수익을 도모하기 위해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관행에 따른 법률상 부지에 의하여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 것입니다. 이 기업은 3차 하청 업체이고, LG와 삼성이 발주한 형태의 구조적 문제인데, 안전시설을 해야 할 대기업의 관심이 1차, 2차, 3차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도급계약에서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일을 주게 되면 원칙적으로 책임이 없어요. 수급인만의 문제입니다. 도급인은 기본적으로 돈만 주고 일의 완성품만을 받으면 됩니다. 삼성의 경우에는 발주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게끔 하는 경우에 지시, 감독, 안전시설 의무를 발주자에게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3차 하청업체가 재판에 나와서는 메탄올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하지만, 한 단계 넘어갈수록 단가가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시죠? 값싼 메탄올을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법수익을 도모하기 위한 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는 말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발주자와 원청이 책임지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삼성과 LG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지 않느냐 질문을 받는데요. 실질적으로 지시감독을 했느냐 증거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법률의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하였을 때 저희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삼성이나 LG를 피고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쉽지 않은 소송이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위안부 피해자 재판이 진행 중인데, 가습기 사건에서는 국가책임이 인정이 안 되었고요.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에게 일부의 위법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상태입니다. 법률 상 위법이 있는지 없는지가 쟁점인데요. 가습기 살균제 소송과 저희 사례가 유사합니다. 국가에서 피해자들에게 아무것도 안한 것, 부작위에 대한 위법이 있다고 해야 되는데요, 고의과실이 있어야만 국가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국회에서 정부를 향해 ‘당신들이 만든 청년들의 일자리가 이런 것이냐’ 호통 친 일이 떠오릅니다. 한정애 의원은 새정부 국정자문위원회 참여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한정애 의원:
    저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분노가 끓어 오르는데요. ‘삼성은 정말 몰랐을까?’ 왜 질문을 하냐면 현대자동차의 경우에 잘못된 부속품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1, 2, 3차 하청업체까지 품질관리를 하기 위해서 업체를 다니면서, 현대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적합하게 만들라고 요구를 합니다. 삼성이 갤럭시를 만드는데, 세계로 수출되는데 품질관리를 하지 않을까요? 1, 2차까지는 했을 거예요. 기준을 정해 주었을 겁니다. 이것이 서류화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이고요. 삼성은 모를 수가 없는 겁니다. 제품관리를 해야 하고, AS를 해야 하는데, 모르면 비용이 더 들어요. 
    그 불법파견업체 중 하나가 정식으로 삼성의 하청업체가 되었는데, 불법을 저지르고 노동자들을 다치게 했는데... 정식으로 하청이 되었어요, 몰랐을까요? 노동부가 감독을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지만, 서류 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기업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검찰이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품질만큼 근로조건은 이런 수준을 만족해야 돼, 안전보건 기준은 이런 것이야, 이렇게 해야 됩니다. 삼성, 현대, 대기업들이 해야 됩니다. 대기업들이 봉사활동하고, 무슨 행사하는 것 안 해도 되요. 2차, 3차 하청업체를 따라오라고 하면 사회적 공헌이 충분합니다. 
    국정자문위원회도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의견을 많이 내는데요, 5년간 매의 눈으로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에서는 억울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정에서 기업의 형사책임에 대해 하청업체 사업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군요, 민사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도 그렇고요

    선대식 기자:
    형사재판에서 보면 정말 반성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한데요. 가해자들이 낸 자료를 보면, 판사 앞에서는 피해자들과 원만히 합의하고 사과를 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민사 재판에 낸 자료를 보면 ‘보통의 작업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부주의와 장난으로 눈에 메탄올을 넣었다’, ‘일부러 메탄올을 마셨다’고 하고 있어요. 삼성, LG에 비춰보면 이들도 피해자일지 모르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싼 메탄올을 사용한 가해자들이 반성을 하지 않는구나,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만 노력하는구나. 민사재판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생각하면 가슴이 좀 아픕니다.

    박인숙 변호사:
    자괴감이 조금 드는데요. 이것은 국가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묻는 것이거든요. 국가 쪽에서 아직 서면답변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입니다. 현재 시스템에서 산업안전감독관이 엄청 많은 기업을 관리하는데, 사전적·예방적인 감독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어려운 면이 있겠죠.
    국가의 책임은 두 가지인데요. 법령위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찾기가 쉽지 않아요. 다음은 예견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사고가 발생하고 감독관이 조사를 했는데 사업주가 메탄올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 말을 믿고 감독관들이 돌아온 일이 있어요. 거기서 이진희 씨 실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근로감독관이 메탄올 사용을 사전적·예방적으로 감독할 의무가 있는 것인지, 국가의 감독 책임이 있는 것인지 근거 법률을 찾고 있습니다.

    근로감독 책임에 대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답답하군요.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산재 문제에 대해서 원청, 발주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강력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정애 의원: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에 산업재해에 대한 판례를 발표한 적이 있을 만큼, 이 분이 노동 사건을 주로 하실 때 산업재해가 큰 주제였어요. 산업재해에 대해서 겉으로만 아는 것은 아니죠.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산재에서 원하청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파견을 보낸 업체, 일을 시킨 업체, 그리고 업무를 준 원청까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죠. 
    건설의 경우 발주자가 대한민국 정부나 지자체인 경우가 많아요. 임금체불, 산재에 대해서 발주자가 잘 하면, 건설재해가 상당부분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제조업은 유해위험물질, 발암물질, 질식 작업 등을 관리해야 해요. 외주를 아예 못 주게 하거나 원청이 직접 관리하고, 하청을 주는 경우에는 조건을 부과해서 지금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알아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서 대국민 메시지를 준 것은 처음입니다. 여당에서도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봐요. 대통령의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비할 영역, 노동부가 어떻게 감독을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감독관과 일반근로감독관 다 인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입법부는 국민이 요구한 것을 받아서 법안을 내는데요. 실현은 행정부가 해야 하고요. 사회적 이슈로 법을 만들어도 시장 논리는 공무원 수를 늘리면 안 된다고 압력을 행사해요.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는 공무원의 수를 늘려야 해요.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공무원 수는 어느 정도 합의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이 부여되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메시지를 발표한 행사장에 전에 데모를 하러 간 적이 있어요. 이번에 보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고요. 하고 싶은 말씀 짧게 해주세요. 

    한정애 의원:
    고용노동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지난 정부는 파견을 합법화하려고 했었는데, 불법파견한 곳을 한 군데만 잡아서 일벌백계를 했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저는 ‘준비된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과는 다른 노동행정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최저임금 7,530원,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국정기획 100대 과제에도 노동의제가 많이 있어요. 고용노동부가 잘 하실 거라 믿습니다.

    박인숙 변호사:
    저는 이 사고가 나자마자 민변에서 손해배상소송을 같이 할 변호사를 모았을 때 번쩍 손들고 참여했습니다. 힘을 모아서,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더 노력하고 연구하겠습니다.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대식 기자:
    오늘 많이 와 주셔서 좋고요. 안타까운 이야기들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1년 전과 비교하면 올해 정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취재했을 때는 박근혜 정권에, 새누리당이 다수당이었고 파견법 개정을 하려고 했어요. 저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취재를 하고 다녔는데요. 1년이 지나서 청와대 주인과 다수당이 바뀌었어요. 스토리펀딩을 했을 때 노동건강연대에서 1,500만원을 모으자고 했을 때는 많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큰 도움을 주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파견문제와 산업재해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리라 생각하고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생각해도 세 분의 이야기 손님을 잘 선정한 것 같습니다. 
    들어주신 관객 여러분, 펀딩에 참여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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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3 - 산재보험, 갑질 하는...
    임준 / 노동건강연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3 - 산재보험 
    갑질 하는 산재보험


    임준 / 노동건강연대·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이중삼중의 제약을 만들어놓은 산재보험, 사회보험 맞나

    노동자가 직업과 관련하여 질병, 손상이 발생하여 산재보험을 신청한 후 승인을 받은 경우, 산재보험은 재해노동자의 치료비를 부담할 뿐 아니라 소득보전을 위해 휴업급여를 제공해준다. 그 수준은 현재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 정도이다. 그런데 치료비 보장범위 설정에서 건강보험 방식을 따르다보니, 의료비에서 본인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재해 이후 실질소득 감소와 겹쳐,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사람이 다치면 배우자 간병 때문에 가계의 실질 임금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일부 대기업처럼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산재에 따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감소를 충분히 막을 수 없다. 
    치료가 종결된 후에도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산재보험 제도는 장해급여가 있어서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애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상해주고 있다. 하지만 장해등급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가 발생한 노동자조차도 보상 수준은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처럼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재해노동자가 적절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이다. 피해 당사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고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데에는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 문제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의료비 보장만 하더라도 산재보험의 급여범위가 건강보험의 급여를 준용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비정상적인 비급여 구조는 산재보험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또한 건강보험은 의료비만 보장할 뿐 소득손실에 대한 보장 기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산재보험에서 상병수당인 휴업급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즉, 건강보험이 산재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낮은 보장성이라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그나마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법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도 적용되지만, 아직까지 농업 등 업종별로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또한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적용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특수고용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다수는 실질적으로 사업주에 고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 논리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경제활동 인구의 50% 이상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질병과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비에 대한 보장성도 낮고 휴업급여도 없는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하여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을 정한다. 또한 산재 보험료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재해노동자의 신청으로 적용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미납한 산재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한다거나 행정 처분을 하기 때문에,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이로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 산재 적용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아예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리기 때문에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재 신청을 피한다. 이 정도면 산재보험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재 신청을 한다고 해서 또 모두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산재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보호자가 산재보험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게 되는데,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즉, 재해와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본인이 입증해야 산재로 인정을 해준다. 이처럼 사전승인 절차가 있다는 점,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을 재해노동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산재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실제 발생하는 재해의 10% 정도만이 산재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설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쉬운 제도로 산재보험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산재보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선,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만나는 최초의 시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의 당연 지정 의료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서비스 부문 노동자 등 실질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는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사업장 단위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처럼 개별 노동자의 정보에 기초하여 개별 노동자 단위로 보험료를 부과, 징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산재보험에서 배제되어 있는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부터 산재보험 적용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비공식 부문 노동자, 농민 등 자영업자 등으로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산재보험 급여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명백하게 치료와 상관없는 일부 항목만 비급여 항목으로 정해놓고 치료, 재활, 요양 중에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요양급여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휴업급여의 경우도 현행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는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산재노동자의 경우는 휴업급여를 임금수준에 따라 70~100%로 확대하여 임금 수준이 낮은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증장애, 저소득 산재노동자의 소득보장이 현실화되도록 장해보상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재해노동자의 기능 손실 정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현행 장해등급판정 체계를 개편하고 장해급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특히 중증장애인과 산재이전 직장의 보수가 낮은 재해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후에 급격한 소득 상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치료부터 직장 및 사회복귀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재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재노동자가 산재요양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첫 시점부터 재활치료계획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하고, 산재노동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재활 관련 시설 및 인력 등 재활을 강화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직업 복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재노동자에 대해 산재발생 시점부터 직업복귀에 이르는 전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사회연대성에 기초하여 재원조달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산재 위험의 대부분은 대기업에 의해 촉발되지만, 그 위험은 원하청 관계, 용역/외주/파견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재해율이 높아지고 산재보험료를 많이 부담하게 되는 불공평한 차등보험요율 제도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보험요율이 더 높아 부담의 역진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사업주의 부담 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영세사업장에 대한 산재보험료를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는 산재보험제도가 운용되어야 한다. 조합주의 전통이 강하여 국가의 적극적 의무가 제한되어 있는 독일에서도 산재보험은 노사의 동등한 참여 속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제도가 운용된다.  그런데 이미 국가 공보험으로, 제도적으로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춘 한국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극히 형식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재보험제도의 해체와 건강보장제도의 통합

    산재보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현행 산재보험 체계에서 명확하게 업무상 질병이라고 보기 어려운 질병도 사실은 노동자의 업무 또는 직업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어 사업주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노동자 개인 부담이 훨씬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되어 사업주에서 노동자로 부담이 전가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비 전가 문제는 전체 문제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편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경제활동인구의 경우, 질병으로 인한 소득손실은 별도의 민간보험을 들지 않는 한 보전할 방법이 없다. 민간의료보험을 들기 어려운 농민이나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질병에 이환될 경우 의료비 부담에 소득손실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현재 일반화되어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건강보험 가입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손실은 암 보험 같은 일부 질병의 정액형 상품에 가입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질병에서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편성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 소득손실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에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특히, 소득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질환이더라도 소득 보전이 필요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의료이용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현재 소득 손실에 대한 별도의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이거나 농민 등을 포함하여 자영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치료비 부담 뿐 아니라 소득손실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에게도 해당한다. 실제 산재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충분한 치료와 재활을 받지 못하고 직장으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직업성 질환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보더라도 노동자의 건강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제도를 구분하여 보장을 다르게 할 이유가 없다. 건강보험도 산재보험에 준하는 보장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며, 임금노동자든 자영업자든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여 소득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를 받고 소득 손실에 대하여 보전을 받으며 건강하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대상자를 구분할 뿐 아니라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여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건강권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복잡한 행정 절차에서 비롯된 사회적 비용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적절치 않다.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해 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불건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장을 시행하는 국가들은 치료비와 상병수당을 의료보험에서 제공하고, 국립보건서비스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정부가 세금을 통해 치료비를 부담하고 상병수당은 별도의 사회보험료를 거두어 지급하고 있다. 이 경우 산재보험은 보편적 보장이 이루어진 후 부가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다. 질병의 원인을 한두 개 원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업무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평가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산재보험조차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매우 취약하다보니 급여 보장성 측면에서는 건강보험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재보험제도와 건강보험제도를 당장에 통합시키는 것보다 두 제도의 낮은 보장성을 높이면서 제도의 통합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의 경우 낮은 보장성을 높이면서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고,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제도와 연동되는 방식으로 승인절차를 개선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을인 산재보험제도는 없어져야 

    재해 노동자가 신청하고 입증해야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산재보험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이 아닌 사업주 책임을 배상해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산재보험이라면 비스마르크의 무덤으로 보내져야 한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이 아닌 고용관계의 하부 구성요소로서 산재보험이 존재하는 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체, 그리고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거나 될 것 같은 산재 사건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본인이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남의 일이다.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 처한 다수의 자영업자들에게 산재보험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신청주의와 인과성이라는 극히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인 잣대를 걷어치우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장받고 암울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면 자본의 행정을 대리해주고 관료주의와 전문주의에서 한 발도 진전하지 못하는 산재보험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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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2 - 파견노동, 완전범죄를...
    김명희 / 노동건강연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2 - 파견노동 
    완전범죄를 모의하는 파견노동 


    김명희 / 노동건강연대·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메탄올 독성은 최소한 보건학계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상식이고, 중독 예방을 위해서 아주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처음 들은 보건전문가들은 저마다 귀를 의심하면서 ‘메탄올?’이라고 반문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원인을 밝히기 어렵거나, 예방관리를 하는 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이 ‘사태’의 진짜 원인은 메탄올이라고 볼 수 없다. 노동건강연대는 메탄올 중독 사태가 메탄올 독성보다는 파견노동이라는 문제적 고용 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해왔다. 
    이 글에서는 파견노동이 도대체 무엇이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만연해 있으며, 왜 이렇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 ‘파견노동’ 혹은 ‘간접고용’

    근로계약에 의해 형성되는 ‘근로관계’는 근로자와 사용자라고 하는 두 당사자 간에 성립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간접고용’이 존재한다. 이는 직접 고용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타인이 고용한 근로자를 자신의 사업에 직접 편입시키거나 결합시켜 사용 또는 이용하는 고용”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근로자파견, 용역, 사내하도급 등이 포함된다. 이 중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근로자파견법 제2조). [참고문헌 : 김기선. 간접고용의 현황과 정책방향.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14년 10월]

    예상할 수 있듯, 파견노동의 경우 고용불안정이 크고 근로환경과 고용조건에서 노동자가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을 통해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근로자 파견법 제 5조), 근로자파견 사업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 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에 한정해야 한다. 그러나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 파견사업을 행할 수 있다. 
    메탄올 중독 노동자들은 모두 스마트폰 제조 공정에서 일했다. 또한 출산휴가나 병가를 떠난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해 단기간만 근무한 것도 아니었다. 근로자 파견법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불법’ 파견으로 일했던 것이다. 

    ● 국내 간접고용/파견노동의 실태

    그렇다면, 메탄올 사건은 불법을 저지른 ‘예외적’ 사업장에서 벌어진 ‘우연한’ 사건인 것일까?
    우선 국내 통계를 살펴보자. 가장 최근 자료인 2016년 8월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자료에 의하면,’ [참고문헌 :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6.8) 결과. KLSI Issue Paper 2016년 제 9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체 임금노동자 규모는 약 1천 963만 명이고 그 중 874만 명(약 44.5%)이 비정규직이다. 파견과 용역 [참고문헌 : 경제활동 부가조사에서 임금을 파견업체에서 받았다고 하면 파견근로, 용역업체에서 받았다고 하면 용역근로로 분류하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노동자 규모는 약 89만 8천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6%,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10%를 차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완만하게 감소하는 추세였고, 2014년 3월 이후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에 비해 파견/용역 근로의 경우 2002년 8월 43만 명 수준이던 것이 2007년 3월 76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하다가 이후 2012년까지 비슷한 규모를 유지한 후, 2012년 8월 90만 명을 정점으로 지속 감소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80만 명을 저점으로 다시 증가하여 현재 90만 명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파견노동이 어느 정도나 합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과 ‘남동공단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119’은 2015년 초부터 9개월에 걸쳐 인천 지역 내 파견업체 전수 조사를 통해 336개 파견법 위반업체를 확인하고, 2015년 10월에 이들을 노동부에 고발했다. 당시 고발대상이 된 사용업체 11곳은 모두 핸드폰 부품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업체 중 전체 직원의 40% 이상을 파견 노동자로 채운 곳이 48%에 달했다. [참고문헌 : 미디어오늘 2016년 12월 15일자 “‘불법파견’ 신고하면 뭐하나, 노동부 무더기 무혐의 처분”] 이러한 상황은 고용노동부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노동부는 2015년 3월부터 3개월 동안 인천 남동․주안․부평공단, 안산 시화․반월 공단, 대구 성서공단에서 파견 노동자 사용업체 566곳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35%에 해당하는 195곳에서 3,379명의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다며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업체 311곳 중 46%인 142곳이 1년 이상 파견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고 해당 노동자는 2,268명에 달했다. [참고문헌 : 한겨레신문 2015년 8월 3일자 “제조업 공장 35% ‘불법 파견’…고용부, 무더기 적발 ”]
     노동부는 2016년 7월~12월 동안에도 파견사업체와 사용사업체 1,346개사를 대상으로 근로 감독을 시행했다. 그 결과 89.2%인 1,200개사에서 4,119건의 위법 사항 적발했는데, 일시․간헐적 사유 없이 파견근로자를 상시 사용한 경우가 54개사 1,434명에 달했다. 그리고 불법 파견 사례의 49%가 인천/경기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이들은 대개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 상시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였다. [참고문헌 :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 보도자료 2016년 12월 23일자]
     
    제조업 사업장의 불법파견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할 수는 없지만, 지역노동단체들의 실태조사,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를 종합하면, ‘상당한’ 규모의 불법파견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고발조치’와 ‘근로감독’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메탄올 피해 노동자들의 노동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 왜 간접고용을 하는가? 

    모든 간접고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기존 노동자의 출산휴가나 병가를 보장하기 위해 대체 단기 인력으로 간접고용을 활용할 수 있다. 기업에서 자체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간접고용을 통해 확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내세우는 파견노동의 필요성과 정당성이다. 이러한 사유에 의해서만 간접고용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기업의 동기는, 이것이 직접 고용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사용사업주는 파견사업주에게 파견료만 지급하면 되고, 근로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사용자로서의 모든 위험부담은 파견사업주에게 전가할 수 있다. 단기간 대체 인력이 아니라 상시 인력을 파견노동자로 채우는 것은, (적발만 되지 않는다면) 비용은 줄이고 각종 위험부담은 회피할 수 있는 수지맞는 경영전략인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간접고용을 하게 되면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직무지시와 감독이 어려워진다. 거래비용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직무가 불확실하고 노동자의 자율성이 큰 직무라면 직접고용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론적 예측과 달리 직무 불확실성이 커도 직접고용을 더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에서 고용안정 장치가 부족하고 해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간접고용 상태에서도 노동자가 ‘딴짓’을 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육훈련과 경력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직무 수행에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크지 않은 점도 노동자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가로막는다. [참고문헌 : 김성훈. 간접고용 결정 이론: 거래비용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010년 12월]
     말하자면, 기업주는 노동자에 대한 지시 감독 권한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간접고용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불법파견이 만연한 것은, 이러한 내적 동기에 덧붙여 다단계 원하청 구조에서 물량변동에 따른 인력 수요의 변동이 크고 원청과 여러 단계의 하청 기업 사이에 이윤, 비용의 극심한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는데 일조했다. 2016년 9월 15일,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대타협을 천명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참고문헌 :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사회적 대타협’ 2015년 9월 15일] 
     그러나 “우리 노사정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보호, 장시간 근로의 개선과 아울러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합의문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날인 9월 16일 새누리당은 5대 노동법안이라면서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여당은 불법파견을 양성화하고 저임금에 노출된 하도급, 용역근로 등을 근절하며 고령노동자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파견법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합법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참고문헌 : 매일노동뉴스 2015년 9월 17일자. “노사정 합의 비웃듯 노동계 뒤통수친 새누리당 노동입법” (https://is.gd/Q63bcz)]
     고용노동부는 개정안을 발의하기 전에 시행한 파견업체 근로감독에서 ‘비정규직 서포터스’를 활용해 안산․부천지역 파견노동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이들의 입을 빌어 제도개선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사업주들은 파견근로자 활용 사유로 ▴물량 변동에 따른 탄력적 인력운영, ▴직접채용 여력 부족, ▴정규직 채용 선별 기능 등을 주로 언급하였으며, 제도 개선사항으로 파견허용업무 확대와 파견기간의 연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근로자들도 “파견 근로 외에 해당 지역의 노동시장 진입 방법이 제한되어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현 상황에서는 근로조건의 향상, 차별 시정 등을 전제로 파견업무 다양화, 파견기간 연장 등을 통한 고용안정을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참고문헌 :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 보도자료 2016년 12월 23일자]
     결국, 정부가 수집한 자료와 법률개정안은 모두 파견업의 확대를 향하고 있으며, 불법을 감수하고 있는 제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골자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서 노동자들이 심각한 권력의 열세에 놓여 있고, 간접고용으로 얻는 사용업체의 이득과 위험회피가 상당하며, 이를 규제할 법률의 집행이 미약한데다, 그나마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기울어져 있는데, 굳이 법을 지키며 파견노동자를 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한국은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이 심하고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국가로, 사실  OECD 국가 내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참고문헌 : 정이환, 김유선. 노동시장 유형 분류와 한국 노동시장체제의 성격. 경제와 사회 2011년 12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파견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 사건이 터졌다. 극도의 고용불안정 때문에,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의 규모를 파악하고 추적 관찰하는 것조차 쉽지 않으니, 하마터면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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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1 - 제도운영과 정부, 왜... file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대표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노동과 건강 PDF 본문보기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1 제도운영과 정부 왜 막지 못한 것일까.pdf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1 - 제도운영과 정부 
                  왜 막지 못한 것일까?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메탄올 사건을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메탄올 중독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 몇몇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이긴 하지만, 핸드폰 부품 생산의 수요가 과밀해진 특정 시기에, 안전보건 문제에 무감했던 일부 영세 제조업체의 관리체계 부실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아무런 대책이 필요 없게 된다. 그저 무책임한 영세 사업장 사업주만 처벌하면 그만이다. 가장 문제가 많은 시각이다.
    두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한국의 영세 제조업 사업장 일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의 영세 제조업 사업장 일반이 거의 모두 생산성 저하와 비용 절감 압력에 시달려 안전보건 예방관리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언제든 심각한 안전보건 사고나 집단 발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은 그러한 문제가 곪아 있다 터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고 재발을 위해서는 영세 제조업 사업장 안전보건 시스템 구축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세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 체계 부실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관리 체계는 부실 그 자체인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그 물질의 독성이나 유해성은 어떠한지 알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으며, 그러다보니 당연히 관련 예방관리 체계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화학물질 중독 사고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것인데, 그게 이번에 터졌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한국 제조업 사업장의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다. 
    네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 관계의 불분명함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파견 노동이라는 고용 관계의 특수성상 사용사업주, 파견사업주가 다름에 따라 법적으로 각각의 사업주의 의무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가와 별개로, 실재 현장에서는 어떤 사업주도 노동자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복잡한 안전보건 채임 소재를 단순화하고 실제 책임을 지워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시스템의 실패는 맞다-그러나 어떤 시스템?

    첫 번째의 관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 관점은 이번 사건을 시스템 실패의 결과로 본다는 점에서 모두 일말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의 핵심은 네 번째 문제에 있음을 분명히 해 왔다. 물론 영세 사업장 일반의 문제, 화학물질 관리 체계 부실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는 한국의 고용 문제, 비정규직 문제의 한 반영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건강연대의 입장은 제조업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너무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결 방식 제안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주구장창 파견 문제만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고, 삼성과 LG의 사회적 책임 문제만 제기하면 뭐가 하나라도 바뀌냐는 문제 제기도 없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아주 조그마한 거라도 하나 바꿀 수 있게 구체적인 정책을 얘기해야 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 모두는 새겨들을 만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메탄올 중독 사고 문제가 불법 파견 문제, 원청 사업장의 책임 문제이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노동건강연대가 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태도, 존재조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문제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운동 단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분석 및 접근 방식과 운동 방식이 보다 근본적일 뿐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핸드폰 생산 주기와 맞물려 핸드폰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부품 물량 수요가 많아지면서 이를 생산하는 인천, 부평 인근의 영세 공장들은 불법인줄 알면서도 파견 노동자를 공급받아 일을 시켰다. 공장 사업주들은 이들의 이름도 잘 모른 채 업무와 관련된 교육이나 지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투입했다. 안전이나 건강상의 주의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사실 제조업 공장에서 불법으로 파견 노동자를 쓴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단 지역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들을 이 공장에 소개한 파견업체도 노동자들을 개인적으로 파악하거나 교육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만 열어놓고 노동자들을 가입시켜 해당업체에 소개해 주고 수수료만 받아 챙긴다. 파견법상으로는 이 업체가 4대 보험 등을 가입하고 인력 관리도 해야 하지만 그런 건 안한다. 불법업체니까.

    삼성, LG의 책임과 불법파견의 책임

    영세 공장 사업주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덜한 에탄올을 써야 하는 작업 과정에 메탄올을 썼다. 에탄올이 2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메탄올을 썼으면 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환기 시설을 잘 갖추고, 장갑, 마스크, 보안경 등을 지급했어야 했는데 그도 안 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 싶었다. 불법 파견으로 온 노동자들이니 존재도 없는 노동자들이라 교육이나 정보 제공은 신경도 안 썼다. 법적으로는 이 사업주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핸드폰 생산 대기업은 1차 하청기업에 알루미늄 케이스와 부품을 납품하라고 하고 계약을 맺은 뒤,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최근 핸드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라는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동 노동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앰네스티 등에 의해 밝혀졌다. 전자산업 부품의 공급사슬(supply chain)에서 대기업의 인권 보호 책임 혹은 의무가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 등 해당 기업은 핸드폰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 원료를 생산하는 광산은 전세계에 걸쳐 있고 몇 천개가 넘는데 이를 어떻게 다 신경쓰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국제규범상 대기업의 ‘상당한 주의 의무(due diligence requirements)’는 기업의 가치 사슬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예방하며, 경감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LG전자 공급망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안전보건 문제 및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 LG전자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이 한국의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 원청의 책임 문제와 보다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 중에서도 불법 파견 문제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고 논의를 진행할 것이냐, 원청 사업주의 책임 문제를 보다 강조할 것이냐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노동건강연대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삼성과 LG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 경도되어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거나 부당한 비판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나뉘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상황적이거나 계기적인 이유로 어느 한쪽을 어느 시기에 보다 강조한 적은 있으나 의식적으로 두 가지 문제 중에 우선순위를 정한 적은 없다. 한국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그게 하도급이든 파견이든 불안정 고용 노동자 증가의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논의와 별개로 메탄올 중독 사건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 볼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었다.

    시스템의 후진성과 노동자공급기술의 첨단성(?) 

    과연 이번 사건이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고 있는 노동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메탄올이라는 화학물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오던 물질이고, 이러한 물질을 사용하는데 있어 주의해야 할 수칙은 아주 상식적인 것이며, 메탄올 중독 사고가 났다는 보고가 제3세계에서조차 확인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번 사고가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얼마나 후진적이고 불균등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GDP로 대표되는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뒤떨어져 있고, 어느 부분은 매우 선진적인데 반해 어느 부분은 제3세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아주 잘 알려진 오래된 문제도 적절히 잘 해결하지 못한 후진적 시스템 문제만은 아니다. 파견 노동자를 모집하고 업체를 배당하여 파견하는데 개입된 새로운 기술 문제도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오프라인 구인, 구직 광고와 모집, 인력 배치되던 시대와 핸드폰, 인터넷 등 전자통신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구인, 구직 광고와 모입, 인력 배치가 진행되는 시대의 변화도 분석의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알바 모집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구인, 구직, 인력 배치가 되는 상황 속에서 인력의 관리나 교육, 소통, 네트워크 등이 깨지거나 사라졌기에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도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크기와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 준 현장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고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 부재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보다 조기에 문제의 일단이 발견되어 조기 대책이 세워졌더라면 피해의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게 되지 못한 측면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하다.
    정부는 2016년 1월 최초 환자 확인 후 빠른 대처로 추가 환자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 환자 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이번 사고 대처에 있어 초기 대응이 잘 되었던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사실을 과장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초기 환자 발생 후 9개월이나 지난 2016년 10월, 우연하게 확인된 환자가 그로부터 자그마치 1년 전인 2015년 2월에 메탄올 중독 사고를 겪었다는 점이었다. 이 환자가 2016년 10월이 아니라 사고 발생 직후인 2015년 2월에 확인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더라면 그 이후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환자는 왜 공식 산재 발생 보고 체계에 포함되지 못했고, 그 후로도 오랜 기간 개인적으로 산재 보상을 받을 기회도 잃은 채 지냈어야 했을까? 물론 산재 보상도 하지 않고, 돈 몇 푼 쥐어주고 개인적 합의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해당 공장 사업주의 문제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비일비재함을 고려할 때 이는 이 사업주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에 보고를 하고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사고를 숨기고 개인적 합의로 해결하려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내재화된 이유를 밝히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재 사고 보고 시스템과 통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계급

    청년 고용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가 화두가 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다수의 청년들이 손쉽게 구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이거나 위험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일자리라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제도 시급하지만 어떠한 일자리에서 일하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각과 뇌 손상을 입은 청년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자리에서 이와 같은 사고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다수의 청년 일자리들에, 특히 소위 ‘알바’ 일자리들에, 해당 일자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나 직무 교육, 안전 교육도 없이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청년 노동자 일자리를 고위험 일자리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을 안전보건 제도 측면에서만 돌아보더라도 많은 분석 과제와 고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의 논의를 벗어나는 내용이라 논의하지 않았지만, 메탄올 중독 사고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계층 단절 문제와 특성화고 졸업생 혹은 전문대 졸업생 청년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의 노동, 건강, 안전, 교육, 계층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지금 여기의 문제점을 그 어떤 교과서나 텍스트보다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텍스트이자 컨텍스트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 이야기가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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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속 깊은 대화 :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노동자들...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1

     


    속 깊은 대화 :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노동자들과 함께 한 1년

     

     

    대담 참여자 : 김명희 / 편집위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근연구원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비가 내리던 지난 6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전수경 활동가들과 ‘메탄올’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년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1년이 넘었다. 이 날도 두 활동가 모두 ‘다음 스토리펀딩’의 마무리를 장식할 토크 콘서트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사건을 알리는 언론 인터뷰는 많이 했어도, 오랜 시간 차분하게 앉아 자신의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길어져서, 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인터뷰는 편집위원인 김명희가 진행하고,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류한소가 기록과 정리를 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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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던, 가서 만난 것

     

    김명희: 이번 메탄올 사건의 발단부터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다뤄왔는데, 뭐가 제일 보람 있었고, 제일 아쉬운 건 뭐였는지 얘기해주세요.


    박혜영: 가장 보람 있었던 건,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던, 가서 만난 것. 여섯 명 중 두 명은 병원에서 만났고, 두 명은 수소문도 하고, 트위터에 어떤 간호사가 올린 글 보고 쪽지 보내서 무작정 찾아가게 되었고... 하루하루 피해자 찾느라고 인터넷을 얼마나 뒤졌는지 몰라요. 두 명은 나중에 사무실로 제보가 온 건데요. 사실 처음에 엄청 경계를 하셨는데 일단 만나서 얘기를 들은 것. 가족이나 지인 이외의 첫 사람인 거라서. 뭐랄까, 사건으로 다가갔다기 보다는 인간의 삶으로 다가갔다고 그래야 되나?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흩어져있는 피해자들과 관계를 맺는 게, 활동하는 내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계속 관계 맺음을 했어요. 그래서 더 자세한 상황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고, 피해자들도 서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서, 그게 보람 있는 것 같아요. 아쉬운 건, 노동계에서 폭넓게 이 사건을 함께 대응하지 못한 것. 처음에는 뭔 상황인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몰라서, 각자 대응하다가 굵직한 요구 같은 걸 못 만든 게 아닌가 아쉬움.


    김: 제대로 대응을 못했단 건 어떤 거죠?


    박: 피해 당사자들은 만났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인천, 부천 지역과 상황을 공유하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일을 못했어요. 인천 지역은 건강권 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 분들이 적극적으로 해주셨죠. 노동자들은 자기가 메탄올을 쓰는지조차 모르는데 메탄올 피해자 찾는다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부천은 그것조차 안했거든요. 그걸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상의할 수 있는 조직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작년 10월 초에 추가 제보 들어오고 나서야 답답한 마음에 부천을 무작정 갔죠. 가기 전에 민주노총에 물어봤을 때, 부천 지역에는 조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 그래서 한국노총부터 찾아갔죠. 비정규센터랑 이주민 센터도 찾아갔어요.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데가 없더라구요. 그 때 후회를 했죠. 진작에 찾아왔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 사건을 혼자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누가 운 나빠서 눈이 멀었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얘기가 공장 주변에 돌았다 하더라구요. 김영신, 전정훈 씨도 사건이 알려진 지 9개월 만에 알려지고, 현장이랑 멀리 있어서 그리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나 방송하면 피해자 줄일 수 있어요? 그럼 할래요”

     

    김: 일로서 제일 어려웠던 건 뭐예요?


    박: 기자들 상대하는 것 (웃음). 산업 담당 기자들한테 연락이 많이 와 가지고... 노동을 생판 모르는 기자들이 1부터 다 물어보니까.


    김: 근데 그들이 왜? 노동 기자가 아니라?


    박: 삼성 LG 얘기가 나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헤아려보니까 5~60명은 넘게 만난 것 같은데, 왜 힘들었냐면, 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설명해야 되니까. 노동재해의 역사부터 설명을 해야 했어요. 제가 1년에 몇 명의 노동자가 일 하다가 죽는지 아시나요 물으면 안다는 사람이 한 5% 되려나? 위험의 외주화 이런 말은 들어봐서 아는데, 사망은 정말 몰랐다는 거죠. 1년에 2천명이 죽는 거는. 파견노동에 대해서도 한두 시간 인터뷰를 해 가면, 기사에는 대기업 하청 문제만 나와요. 초창기에는 언론에 피해자 인터뷰가 제법 나갔어요. 당사자는 몸도 마음도 아프고 힘든데, 자꾸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힘겨워 하는 당사자 설득하고 같이 울고, 다독이고 또 가족들이랑도 양해 구하고, 한다 안한다 했다가 그 때 정말 마음이 힘들었죠. 가족들이 언론을 굉장히 꼼꼼하게 모니터링 하셨는데, 기사에 사실관계가 다른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거나 개인정보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면 그걸 다 나한테 항의하세요. 기자랑 인터뷰 할 때 말씀하신 건데, 그거 고쳐달라고 나한테 뭐라고 하니까, 난 또 밤늦도록 기자들이랑 실랑이 벌이고, 고쳐지기도 하고 안 고쳐지기도 하고, 당사자들이나 가족한테 미안하고. 중간에 시사매거진 2580 촬영할 때, 아무도 인터뷰 못하겠다고 하고, 나도 공중파에 그렇게 나가는 건 지금 상태에서 많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새로운 피해자가 나온 거에요, 이진희 씨. 그 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현순 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나 정말 하기 싫은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왔다면서요? 내가 방송하면 더 피해자 줄일 수 있어요? 나 그럼 할래요.” 하는 거에요. 그날 전화통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네이버 기사에 댓글 다는 활동가

     

    김: 그럼 본인이 활동가로서 성장한 부분은 뭘까요?


    박: 이런 민망한 질문을... 저는 감성적인 사람이라서, 차분하게 정리하는 버릇은 생기긴 했어요. 자칫하면 관성에 따라 일하게 되는데, 이번 경험을 하면서 그걸 경계하는 훈련이 되었어요.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깨닫기도 하고...


    김: 아,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박: 너무 부끄러웠어요, 진짜. 트위터, 우리가 보는 페이스북이랑 언론, 그 바깥의 세상을 맞닥뜨렸다는 생각이 들고, 편하게 운동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반성을 하고...


    김: 지식인 사회에는 뭐가 제일 놀라거나 실망한 거예요?


    박: 지식인 사회는 일단은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평론을 먼저 시작하는 것 같애(웃음). 민주노총도 그렇고...


    김: 민주노총이 지식인입니까?


    박 : 글쎄요, 지식은 많죠. 그 지식이 현장이랑 괴리된 것 같아요. 처음 사건 터지고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기대했거든요. 우리는 당사자들이랑 관계가 있고, 현장 노동운동에는 현장의 감각이 있으니까. 그런데 민주노총 현장에서는 이 일을 몰랐고, 중앙에서는 어땠냐? 민주노총이 직업환경의학회, 한국 산업보건학회, 한국 직업건강간호학회랑 같이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한다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토론회 할 건데 장소 좀 빌려봐 봐’. 그 황당함은 말로 못해요. 전문가들 모여서 토론회를 할 때인지 모르겠고,. 결국 토론회를 하더군요. 토론회에도 오라는 얘기조차 못 듣고, 포스터 보고 찾아 갔죠. 보고 있는데, 정말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건가? 예방책이라고 제시한 걸 하면 정말 예방이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분들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을 했어요. 근데, 저들이 현장, 파견노동의 현장, 무정부상태인 그 현장을 정말 알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또 파견 노동이 아니라 영세사업장 건강관리 문제, 메탄올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동안 산업보건이라는 게 저런 식으로 되어 왔구나, 현실은 없고 서류만 있었구나. 토론회 다 끝나고 손들고, 피해자들은 이렇게 지낸다, 이거 좀 생각해달라,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말았는데. 그 뒤로도 노동부에서 노동계랑 미팅을 엄청나게 했대, 한 달에 한 번 이상.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는 지금도 몰라요. 들은 일이 없으니...


    김: 그 노동계라 함은 민주노총?


    박: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안전보건 담당자요. 그래도 피해자 문제는 내가 젤 잘 아니까, 상의도 하고, 다양한 각도로 하면 좋았겠지만, 그런 상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많이 아쉬웠어요. 좀 더 상의하고, 폭넓게 대안도 내서 현장을 더 들여다보는 활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제가 사건 대응에 지쳐서 좀 휴식을 취하다가 9월 말에 전정훈 씨랑 김영신 씨 새로 제보받고 바로 기자회견 급하게 열었잖아요? 그리고 김영신 씨랑 같은 회사를 다니던 양호남 씨 누나를 만나러 수원에 JTBC 기자랑 가 있는데 민주노총에서 전화가 왔어. “내가 뭘 해야 되냐?” 이러는 거예요. 뒤늦게 부천 지역엘 찾아갔더니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선전전이라도 하자 했더니 유인물을 만들어 오라는 거야, 뿌려주겠다고. 지역에서 상의 해보고 의견을 내 보겠다,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어요. 우리는 지역 상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 단순히 피해자만 찾는 것보다는, 파견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나 행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갔는데.


    김: 그러니까 민주노총 라인 안에서도?


    박: 응. 한국노총도 다를 것 없고, 지역 비정규센터도 몰랐어. 외국인 노동자 센터도 몰랐고.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이 문제를 아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어요.


    김: 신문에도 제법 나왔는데...?


    박: 아니 한번이라도 얻어 걸려야 될 거 아니야. 얼마나 기사가 많이 나왔어? 시사프로그램도 다 나왔고. 저는 초반에 민주노총 중앙에서 부천이나 인천 쪽이랑은 이 문제를 가지고 상의를 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추가 피해자는 진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부천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부천이나 인천 지역에는 없는 거냐 한탄을 했더니, “거기 찾아가 봐” 그래서 뒤늦게 찾아간 거야.

     

    김: 만약에 유사한 일이 또 벌어진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죠?


    박: 팀을 잘 꾸려야 된다. 관성적인 연대, 대책위 같은 거 필요 없고. 해서도 안 돼. 대책위 같은 건 하면 실무만 늘어나. 정말 끔찍해.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걸 찾아야죠. 지금 꾸리라 그러면 뭐 부천, 인천, 비정규센터 이런 데 찾아갈 것 같아. 안산 비정규센터도 포함하고, 파견 문제 하는 조직 포함하고. 하여튼 무슨 서울에 60개 조직 연대체, 이런 건 안 돼.


    김: 기존에 하던 중앙 단위의 이런 게 아니라?


    박: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있겠죠. 그런데 현장에서만, 지역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있거든요. 지역의 정서와, 현장 상황 이런 것들.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싸울 수 있는 당사자도 한명이라도 더 생기고. 작년에 제가 네이버 지식인이나 언론 기사 중 파견, 메탄올 관련된 글들에 댓글을 달고, 혹시 유사한 피해자가 있는지 찾는 일을 했어요. 그 댓글에,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 달라고 사무실 전화번호를 엄청 뿌렸거든요. 사고가 발생하고 몇 달 후에 사고 난 세 개 업체 중 두 개에서 일을 했다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 어떻게 알고 전화했냐고 했더니, “댓글에 전화하라고 써놓으셨잖아요” 하더라고요. 1~2월에 사고가 났는데 전화 온 게 5월쯤이었어요. 왜 이제야 전화했냐고 하니까, 자기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는데, 같이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지나가면서 누가 눈이 멀었다더라 이런 얘기를 들었대요.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구요. 그 분은 저랑 다섯 번 정도, 한 번에 1시간 정도씩 통화를 했어요. 폐업한 업체가 어디 가서 다시 회사를 차렸는지, 노동환경은 어땠는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공정에 투입되는지 등을 자세하게 들었어요. 중간 중간에 계속 노동법에 대해서 묻는 거에요. 한국노총 노동상담소에도 실제로 찾아가셨고, 도움도 받았어요. 10월에 새로 피해자가 밝혀지고 나서, 그 분을 만나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죠. 88년생인데, 고시원에서 어떻게 사는지 얘기도 듣고... 그 분은 결국 공장 일 그만 두고 건설현장에서 일해요. 건설현장이 일 하는 시간은 비슷한데 돈은 더 많이 줘서 그게 더 좋대요. 후배 활동가들이 이런 일을 하면, 현실을 제대로 알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옥문이 열린 걸 보는 듯했다

     

    김: 전수경 활동가는 이 사건이 있는 동안 세월호 특조위, 말하자면 좀 바깥에 있었잖아요? 박혜영 활동가하고는 상황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전: 일단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했죠. 이중 구조화된 노동시장 밑바닥에서 뭔가 지옥문이 열린 걸 보는 기분, 맨 밑바닥부터 무너져가는 시스템을 빨아들이는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요.


    김: 시민사회나 노동의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전: 공무원 사회만 칸막이가 있는 게 아니라 이쪽도 칸막이가 있어요. 이게 소수 단체만이 아니라, 노동계가 같이 대응해야 될 일이었는데, 너무 전문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으로 칸막이를 쳐버린 것 같았어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전문가가 대응 과정이나 정부와의 대화 라인을 독점한다든가... 이 분야의 활동 시스템이 전문가 중심으로 되어 있고... 사실 메탄올 사건이 부천이나 인천 노동현장이 아니라 우리 같은 단체로 들어온 건, 우연히 초기 진료를 담당했던 전문가가 우리 회원이기 때문에 그리 된 것도 있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반노조, 노동 상담소, 지역 네트워크 이런 데가 작동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김: 현장에서 얘기가 들어온 게 아니라 병원의 진료현장을 통해서 왔죠.


    전: 네. 지역별로 비정규센터들이 있고, 지자체 보조를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는 곳도 많은데, 이곳들이 원래 지역 기반으로, 메탄올 피해자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권익을 보호하려고 있었던 조직일텐데... “공장마다 파견이 많더라, 서로 이름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이런 말 해주는 현장 활동가가 없었던 것 같아요.

     

    김: 논의를 확대해 볼게요. 전수경 활동가는 세월호 특조위에서 안전과 관련된 포괄적 의제를 다뤘잖아요, 원전부터 시작해서 노동에 이르기까지. 그 2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이 달라진 게 있나요?

    전: 관점, 시각은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 전문가들의 밥그릇, 거기 맞춰서 셋팅된 관료, 공무원 조직. 이게 공고하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전반적인 사회적 의제와는 소통이 가로막히고,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영역만으로 문제가 축소되었는데, 노동운동이 그걸 또 그대로 받아서 하다 보니 노동자 권리나 건강문제가 보편적 의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어요. 세월호를 보면서 안전, 건강이 민주주의, 정치 문제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박: 특조위 가서 사회제도에 대한 시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전: 산재보험이든 노동부나 안전공단이든 이런 데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자기 권익을 보호할 조직이 없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변화를 주는 거니까. 그 안에서 밥그릇을 차지하고 있는 관료 행태나 관료에 기생하는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항상 관심이 많았죠.


    김: 따뜻한 관심?


    전: 서로 붙어먹고 사는 그 시스템을 깨뜨리고 다시 세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90% 사람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답답해 가지고 ‘차라리 산재보험을 없애고 다시 시작하든지’ 이랬더니 대표가 나보고 ‘왜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서 왔냐’고 하더라고.

    김: 한국 남자들은 메타포를 이해하지 못해요 (웃음). 무정부주의에서 죽어나는 건 사회적 약자예요.

     

     

    청년 담론에서도 배제된 생산직 노동자들

     

    김: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메탄올 사건에 여러 층위의 문제가 겹쳐 있는데 하나씩 원포인트로 이야기해봅시다.


    박: 노동에 대한 사회적 습관, 사회적 무관심. 위험하고 힘든 노동은 그냥 이야기거리로 소비되고... 옛날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데, 사회적으로 발언권 없는 사람들로 계속 채워지면서 여기에 무심했던 이 사회. 습관이라면, 노동계도 너무 하던 대로만 하고.


    김: ‘그러려니’ 하는 것?


    박: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럼 너네가 알아 와 봐 이런 식이거든요.


    김: 전수경 활동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장 약한, 혹은 결정적 고리라면?


    전: 최근에 한국사회 청년세대와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더라구요. 혼자 사는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기업... 청년 유니온이 최저임금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기는 하지만, 이를테면《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그 ‘열정’에도 끼지 못하는 저학력 저소득층의 육체노동자, 현장 실습생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더라구요. 청년 담론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정말 밑바닥 저수지에 있는 청년들, 아무런 문화자본도 없고 사회적 네트워크도 없는 그 사람들의 문제가 메탄올로 드러난 건데... 키워드 하나를 꼽는다면, 그거 같아요. 불평등.


    김: 메탄올도 아니고 영세 사업장이란 키워드도 아니고.


    전: 영세사업장, 5인, 50인, 300인 이렇게 나누는 건 정부가 관리하기 편하라고 만든 기준이고, 전문가들의 밥그릇도 더 많이 생기는 것이고. 50인 미만 사업장 관리한답시고 그걸로 계속 돈을 벌잖아요. 사업장 경계를 넘어서 그냥 흘러 다니는 육체 알바 노동자들, 실업자, 계절공. 이런 젊은 육체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규모별로 되어 있는 정부의 관리 제도가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있잖아요. 정부가 이걸 영세사업장, 공장 문제로 보는 건 경로 의존성도 있고, 갑자기 흔들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차라리 산재보험제도를 없애버리고 근로복지공단도 없애고 일반 보건의료체계로 흡수해서 개별 국민에게 접근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그 사람들을 그나마 포착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박: 그리고 뭔가 되게 정형화돼서 사업체가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떨 때는 10명이 일하고 어떨 때는 100명 일하는데 어쩌란 말이야(웃음).


    김: 상상의 지평이라는 건 굉장히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상병수당, 휴업 급여, 이런 문제만 해도, 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아파서 이틀 못나가도 월급이 깎이지 않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상상이 없는 거야. 휴업 급여가 왜 필요한 건지, 상병 수당이 왜 필요한지, 인식의 지평 안에 없어요. 책을 통해서 학습을 해도, 경험치가 따라오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파견 이슈 대신 메탄올

     

    김: 정부 대응에서는 뭐가 제일 문제였나요?


    박: 언론플레이를 너무 잘하는 거야. 기자들 불러놓고 엄청 설명해대고. 잘하고 있으니까 칭찬해 줄 건 칭찬해주라 그러더라구. 근데 우리가 왜 칭찬까지 해줘? 칭찬은 남들이 해주면 되지(웃음). 나는 이미 박근혜 때문에 화나 있었거든. 파견법을 확대하라 그래서. 나중에 메탄올 대책 보니까 짜놓고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견 문제가 완전 빠지고, 처벌에서도 그렇고. 노동부 담당자도 파견 문제로 볼 생각은 안 했어요.


    김: 의도는 모르겠지만 프레이밍 자체가 물질 중심으로 축소돼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이 문제를 엉망으로 만드는 데 고리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박: 총체적으로는 그렇죠.


    전: 노동부 안에서는 이게 파견고용 문제로 가는 걸 막으려고 했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용 정책의 실패나 파견제도로 가지 못한 게 있어요. 고용정책 실패로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게, 일주일 안에 소화기로 다 뿌려서 진화해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니까. 정부로서는 성공을 한 거예요. 당시 박근혜가 밀어붙였던 파견확대 문제로 전혀 옮아가지 않고 불을 껐으니까. 노동 쪽에서 파견 문제로 쟁점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요.


    김: 전문가 입장에서는 이걸 빨리 알려줘야 환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이지 이걸로 파견 이슈가 점화되는 걸 막겠다 이런 건 아니었잖아요.


    전: 그렇죠. 그 문제는 전문가가 할 일도 아니고. 이쪽이 잡아채서 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거죠.

     

    21세기의 전근대적 자본주의

     

    김: 사측의 대응은 어땠나요?


    박: 사측이 너무 많아, 이번 사건은(웃음). 일단, 파견사업주는 사고 대응한 게 일절 없었죠. 사고 당시에 산재 은폐하려고 했던 파견회사가 한 개 있었어요. 전정훈 씨한테 어차피 산재 안 되니까 몇백만 원 받고 합의하자고 거의 협박해서 합의서 받아갔죠. 파견회사들은 파견법 위반으로만 재판을 받았고. 이게 산업안전보건법상 문제가 됐으니까 사용사업주도 문제가 된 거죠. 사용사업주들은 각각 다른데 예를 들면 처음에 만났던 피해자들이 일했던 덕용 ENG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걸 줄 알았으면 우리 가족이 다 나와서 일을 했겠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거야. 그러니까 ‘피해자가 억울하니까 메탄올을 마셨다,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자기가 십년 이상 이 일을 했고 이 업계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사회적 이슈도 되고, 노동부도 찾아오고, 영업 정지 처분 내려지고 이러니까 사업주들도 겁이 나서 돈을 조금씩 줬죠. 당시의 병원비. 근데 어차피 산재보험으로 돌려받았어. 최근까지도 연락을 안 한 사업주들도 있고요. 미안하다고 초반에 병원비를 좀 내주던 사장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미안한 감정도 사라지고, 자기들도 억울한 마음도 들고 그러면서 연락도 뜸하게 되고, 민사 소송까지 들어가고 형사재판 받게 되니까 연락 뚝 끊겼죠. 그러다가 형사재판에 합의서가 필요하니까 다시 찾아오는 사장도 있어요. 합의를 하려고 돈을 얼마를 준다 그러고. 근데 금액이 너무 턱없이 작아요. 그러다 지난 10월에 피해자 2명이 더 나타났고 그제서야 부랴부랴 합의를 더 하네 이런 얘기를 했는데, 뒤로는 재산을 빼돌렸죠. 재산을 빼돌리느라 바빴을 거야. 기계가 한 대에 2~3억 정도 한다 그러는데 3개 사업장 기계가 50~70대 가량 있었단 말이야.


    김: 그럼 100억이네?


    박: 사업주들 두세 명이 동업을 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했다고 했는데, 민사소송 들어가서 보니까 모두가 재산이 1원도 없어. 사업주들은 다양한 각도로 자기 살길을 찾았겠죠. 나중에 재판 가서 BK 테크 사장을 만났는데 자기 부모가 장애가 있다고... 누구보다 장애인 가족의 마음, 장애인의 마음을 잘 아는데 자기가 정말 재산이 없어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고. 합의해 달라고... 그러면서 돈도 한 푼 안 주고(웃음). 그 회사가 메탄올 사건 터지고 노동부 점검까지 하고 난 후에 사고가 난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연락 없이 지내다가 최근 형사재판 때문에 찾아오고 연락오고 했죠. 그래도 다른 사업주들은 피해자들한테 조금의 위로금이라도 중간 중간에 주곤 했어요.


    김: 발주처들은 어때요? 대기업.


    박: 일단은 이게 3차 하청이잖아요. 1차 하청한테 연락이 왔어, 처음에 사고가 나고 막 이랬을 때. ‘거기는 영세하고 돈도 없고 그래’ 그러면서 자기한테 애기하라는 거야(웃음). 그래서 우리가 요구안 내는 거 보시라고, 개별적으로 할 얘기 없다고 하고, 우리가 발주처에, 원청에 세 번의 질의서를 보냈잖아. 삼성이랑 LG는 하청의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해, 하청 계약 담당자만 있고. 산업안전 쪽 사람은 그냥 원청회사 관리만 할 뿐이지, 하청 기업의 위험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는 거죠.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이걸 담당해야 되냐 시끄러웠다고 하더라고. 그건 그들의 사정이고. 처음에 사건 터지자마자, 이게 3차 하청인데 왜 자꾸 원청한테 책임을 돌리냐 이런 댓글이 엄청 많았어요.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원하청 구조가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특별하게 그들이 눈에 띄게 대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 질의서 답변 내용을 보면 ‘1차 하청까지 우리는 책임진다’ ‘2, 3차 하청은 1차 하청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렇게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메탄올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여기도 메탄올 문제로 접근하는 거죠. 우리는 메탄올이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데. 아직 피해자들에게 말 못한 게 있는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원청 답변서에 물 90%에 식품첨가제가 함유된 메탄올 대체재를 개발했다고 써놨더라고.


    김: 대기업들이 이렇게 하는 걸 가능하게 한 요인이 뭘까요?


    전: 적어도 자본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가 기업 간에 공정거래할 수 있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 CNC 업무가 진짜 3차 하청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기록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기업간 경제활동으로 잡힐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 세계 11위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는 나라에서,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될 때 미처 정리되지 못한, 맨 밑바닥 노동이 지금까지 있는 것 같아요. 전자산업 공급망 측면에서 보면 관리되지도 않고 관리되기 어려운 데서 일어난 일들인데, 노동자 관리도 전혀 안 되고... 전근대적 상황이잖아요.


    김: 어렸을 때, 그런 거 안 했어요? 라디오 부품 이런 걸 집에서 막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공장에서 동네에 이걸 쫙 뿌려 가지고 그걸 집에서 손으로 조립해서... 푸댓자루로 가져다가 이렇게 했는데.... 이게 지금 기계가 2억이잖아요. 기계가 비싸서 가내 공업을 못할 뿐이지 기계가 만약 한 10만원이었으면 집에 나눠주고 옛날에 했을 그런 방식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박: 지금도 공단지역에 많아. 푸댓자루 왔다갔다 해.


    김: 그러니까 기계가 비싸서, 2억이라서 그렇게 못하는 거야, 그렇게 하고 싶은데 너무. 나눠주고 세척해 와라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전: 이렇게 생산하는 방식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을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재벌 그룹이 발명해낸 게 아니라 바닥부터 있던 걸 얘네는 어쨌든 이용한 거죠. 예전에 반월공단 이런 데 다녀보면 안전공단 지원금 받아서 공장에 보건관리 한다고, 공장마다 다니면서 사장들 혈압 재주고 커피마시고 나오고 그러거든요. 노동부가 그렇게 해왔는데, 이런 메탄올 같은 일이 터진 거죠.

     

    전문가의 책임윤리란 무엇인가?

     

    김: 전문가 문제는 두 가지로 지적했던 것 같아요. 하나는, 노동 분야가 취약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건 전문가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두 번째는 실제로 전문가들의 대응이나 프레임이 잘못된 것. 사건 대응 과정에서 전문가, 학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죠.


    박: 사실 그들이 뭘 했는지 잘 몰라. 노동부랑 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뭘 잘 했다, 잘못했다 말할 수 있는 게 잘 없고.


    김: 근데 전문 학회들도 노건연을 통해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 여러 활동을 한 거잖아요? 근데 그것에 대한 피드백은?

    박: 전혀 없었죠. 학회들은 초반에는 좀 떠들썩하더니 그 후에는 잘 모르겠어요.


    전: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에 개입하려고 했던 전문가들이, 이번 메탄올 사건을 보면서 어떤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만큼의 반성적 성찰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87년 이후에 현실을 바꾸자고 사회 각계로 나갔던 지식인, 전문가 영역 중에서 사실 현장과 접점이 있는 학문이란 게 몇 개 없잖아요. 고용구조나 노동시장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불평등,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이쪽이고 이런 접점을 가진 현장이 별로 많지가 않아요. 전문가들이 이렇게 현실을 알 만한 영역이 별로 없잖아요. 최저 임금 가지고 경제학자가 무슨 실천적 활동을 하겠어. 근데 이 영역은 지식인들이 현장으로부터 자기 성과를 빨아가고, 정부한테서 연구과제 따가고, 자기가 연구자로서 성장하고... 정부 관료로 가있는 이들도 많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현실을 착취만 할 뿐이지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해서 참 마음 편하게들 있구나.


    김: 다 같이 반성하러 갈까?


    전: 책임감을 가진 전문가들은 없고, 현실을 착취하면서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는 것 같아요. 견제, 비판의 목소리도 없고. 제가 특조위에서 가장 열 받았던 순간 중 하나가 위원장한테 자문위원 임명장 받은 교수가 있어요. 그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 다시 한 번 잘해보겠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저 교수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면 세월호특조위 자문위원장을 또 하고 싶을까’


    박: 너무 냉소적이야.


    전: 안전이 개인 책임이다, 노동자 부주의론을 만들어왔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그런 사람이 특조위 오는 걸 왜 못 막는지 생각해 봐야죠.

     

    “홈페이지 보고 하세요”

     

    김: 산재보험 이야기 좀 해 볼게요. 사실 이번에는 산재 승인이 되게 빨리 되었잖아요. 신청부터 재활 단계에 이르기까지 박혜영 활동가가 가장 가까이서 다 봤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시죠.


    박: 산재 신청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승인 나오는 것 보고 황당했죠. 내가 지금 반올림 백혈병 사건 3년째 하고 있었잖아, 산재 신청만. 이 사건에 관련된 공단지사가 3개였는데 어디는 이걸 사고로 보고 어디는 질병으로 보고. 질병으로 분류하면 판정위원회를 열어야 되는 건데, 바로 승인이 나는 걸 보면서 이건 완전 운빨 아니냐, 당사자한테는 다행이었지만,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이 이렇게 자의적이구나 불쾌했어요. 그리고 10월에 만난 피해자들의 첫 질문은 자기가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느냐는 거였어.


    김: 나도 해도 되느냐?


    박: 초창기에 만났던 피해자들도 자기들이 산재보험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못 믿었어요. 파견 제조업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산재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또 스스로 4대 보험 가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4대 보험을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월급 좀 더 받으려고 산재보험을 안 들겠다 말했는데 이렇게 하면 죄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 설명을 해도 굉장히 주눅이 들고 의구심을 가졌어, 자기가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에. 서류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와, 이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신청이라는 장벽이 처음부터 작동하는구나. 정부는 신청서를 낸 것에 한에서만 주는 거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당사자가 어떻게 해야 된다, 이런 설명은 일절 없고.


    김: 신청서 낸 건 해주지만 추가적 정보를 더 주고, 이런 게 없었다는 얘기죠?


    박: 전혀 없었고... OO씨 경우에는 자살 시도를 했는데 정신과 질환 추가 상병 신청을 해야 하잖아요? 신청을 했더니 근로복지공단에서 그냥 질병판정위원회를 연 거야. 자살시도를 했던 피해자를 불러다놓고 네가 정말 힘들었느냐를 캐물은 거지. 그래서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울다가 나온 거죠.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비정상적인거냐, 죄를 짓고 있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김: 인정 받았지요?


    박: 인정은 받았어. 그것도 역시 근로복지공단이 뭔가 여러 가지 고려를 했겠죠.


    김: 정신과질환 인정받기 되게 힘들잖아요.


    박: 나는 사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그래도 정신과입원까지 했고 이런 게 소식이 들어가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전화는 한 통 하지 않을까, 어떤 치료를 더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조언해줄 관심 정도는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게 혼자 찾아간 사건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많이 관심이 있었던 사건이니까. 피해자들이 계속 정신적 문제를 겪으니까 이 문제를 제도 안에서 풀어보자 싶어서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쭉 관찰한 다음에 어디 전화를 하면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여러 군데 돌렸어요. 근데《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되었어요(웃음). 두 시간 전화 연결, 어디로 돌렸다가 어디로 돌렸다가 결국엔 마지막으로 다시 지사로 갔는데 지사에서는 우리는 ‘그런 것’까지 다 못한다, 이런 대답을 받았고.


    김: ‘그런 것’의 그런 건 뭐죠?


    박: 예를 들면 ㅁㅁ씨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 병원에 있으니까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한다거나 재활이랑 연결시키는 게 있어요. 그냥 일반병원에 있거나, 입원해도 치료할 게 없어서 집에서 있는데, 이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싶을 때 어디에 찾아갈 수 있는가, 그게 궁금했던 거죠. 뒤져보니까 찾아갈 데가 없더라구요.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현실에서 찾을 수는 없어. 나는 그나마 전문성이 있는 사람인데도 못 찾아냈고. 또 하나는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요양이 끝나고 장애로 넘어가는데, ‘요양 끝나면 장애급여 신청하세요’란 안내도 아무도 안 해줬어. 당사자들이 아무런 안내도 못 받는다면 장애 등급을 신청하는 건 불가능하더라구. 그래서 우리가 카톡방에서 요양기간 언제 끝나는지 서로 확인을 하고 먼저 끝나는 사람들부터 일단 장애 등급을 신청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죠. 병원을 계속 왔다갔다 해야 되는데, 맞물린 게 동사무소 장애등급이었어요. 동사무소 장애등급 받는 것도 또 신청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아무도 안 알려줬고. 피해자들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동행할 사람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려면 동사무소 장애등급을 신청해야 되는데, 돌고 돌아 얽혀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각자가 병원 원무과 돌아다니면서 해야 됐죠. 피해자 가족들은 다들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케줄 맞추기도 힘들고, 내가 같이 가거나 친구가 같이 가서 장애등급 신청을 양쪽에 하게 되고.


    김: 근로복지공단이랑 동사무소랑 서로 연락을 안 하나 봐요


    박: 그게 화가 나... △△씨는 혼자 고군분투해야 되는데,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등급 신청하러 왔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니까 “홈페이지 보고 하세요” 이랬대(웃음). “저 시각장애인인데요” 그제서야 얼굴 쳐다보고 책을 하나 줬다는 거야.


    김: 책? 점자책?


    박: 아니.


    김: 그냥 책?


    박: 응(웃음).


    김: 아니 홈페이지 보는 거랑 뭐가 달라?


    박: 장애인 복지관도 궁금하고,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물어봤지만 동사무소에서 제대로 아는 게 없어. CC씨한테 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같이 시청을 가자, 해서 인천 시청을 둘이 같이 갔어. 장애인 복지과를 찾아갔더니 “동사무소를 가셔야죠. 여기는 그런 것 안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지.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 왔다, 그랬더니 ‘원래 우리가 이런 거 안 해주는데’라며 또 책자를 줘.


    김: 그 놈의 책(웃음)


    박: 그 다음에 “동사무소 공무원 이름을 아느냐” 이렇게 물어봐. 그래서 계속 우리를 담당할 사람인데 고민에 빠졌지, 어쨌든 말을 했어. 왜 이렇게 연결을 안 해주느냐 했더니, 거기는 노동부 관할이고 여기는 복지부 관할이라 안 한다, 우리는 노동부가 당연히 해주는 줄 알았다, 이런 대답을 인천 시청 공무원이 했지. 그리고 나서 돌아 나오는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온 거야. “불편한 점 있으십니까?” (웃음) 지금 산재보험 장애등급을 신청하고, 지자체 신청을 동시에 했잖아. 두 개 다 연금이 나오는데 그 연금을 두 개 다 받는 게 아니라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그런 걸 아무도 안 알려줘. 결론적으로 어떤 제도에 대해서도 한 번도 미리 들은 적이 없다, 연결고리도 없다.


    김: 의료비 등 문제나 휴업급여는 어때? 산재보험도 비급여가 있지 않아요?


    박: 네. 그건 개인이 내야 돼.


    김: 부담이 얼마나 되는 것 같아요?


    박: 일단 피해자들이 다 장애등급이 달라요. 병원에 있거나 완전 새카맣게 안 보이시는 분들은 간병급여가 같이 나오는데, 간병급여도 신청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한동안 헤맸어. 급수가 다르고 액수가 차이가 나서. 비급여 치료를 받게 되잖아. 그 부분은 개인 부담으로 남아 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치료가 많지가 않아요. 시신경은 손상됐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시신경 손상 이외의 뇌 손상 같은 경우에는 재활을 받아야 되는데 그래서 병원에 있는 분들 중심으로 비급여가 생기고 있죠.


    김: 휴업급여는 잘 나오고 있어요?


    박: 사람마다 다르고 마음이 아픈데, 회사가 미안하다고 일당을 많이 써준 데가 있고 그냥 있는 대로 써준 데가 있어서 휴업급여도 차이가 나요. OO씨는 앞이 안 보여 일을 못하는 건 같은데 조금 희미하게 보인다고 급수가 차이가 나서 연금을 못 받게 되고. 돈이 조금 나오고. 울분이 쌓이는 거야.

     

    근로복지공단 어쩌지

     

    김: 이 문제 해결하려면 산재보험제도 어떻게 해야 해요?


    박: 진짜 그 생각 많이 들더라고. 근로복지공단 얘넨 대체 왜 있는 거야?


    전: 지금 시스템으로는 안 되는데, 사회보험청이나 이런 게 있기 전에는 안 될 것 같아.


    김: 왜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 근로복지공단은 기본적으로 자기네가 사업주 책임보험을 대행해준다고 생각하지 사회보험으로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공단이 왜 1주일 만에 산재승인을 해줬느냐, 이건 당연히 공단 판단이 아니라 노동부 판단으로 했을텐데, 산재나 이게 얼마든지 정치적 쟁점이 된다는 걸 알고 대처한다는 방증이잖아요. 쟁점으로 만들기 전에 힘 빼버리는 거지. 역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해줄 하등의 유인책이 없는. 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김: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전: 지금의 고용구조 하에서 산재보험 시스템으로 커버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근로복지공단 자체 개혁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고. 노동정책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사회복지 영역에서 이걸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김: 구체적으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통합, 이런 것을 생각하는 건가요?


    박: 나는 그게 너무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ㅁㅁ씨나 △△씨가 눈이 안 보이는데, 또 어떻게든 일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니까 일자리를 구했어. 그러다가 나중에 또 아팠네? 그럼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 노동이 너무 파편화되서 지금 근로복지공단에서 이걸 감당하는 건 말도 안 되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김: 일정한 정도의 보장성 확대, 이런 개혁이 이슈가 아니라 아예...


    박: 아휴 보장성 확대는, 득 보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될까? 산재보험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 정도가 되겠죠. 공원에서 OX 퀴즈를 깔아 놓고 ‘내가 잘못하면 산재신청 못 한다’에 전부 다 O를 체크했거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김: 내 친구 부모님, 산재 신청 포기했잖아. 가장 큰 이유가, 회사가 산재보험을 주는 줄 알고 계시더라고. 얘는 연구소에 있었으니까 지도교수가 사실은 사업주였단 말이야. 어떻게지도교수님한테 그러냐. 그게 아니라 나라에서 주는 거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이해가 안 되시는 거야.


    박: 너무 존재감이 없어, 산재보험이.


    전: 경제활동인구를 2천만이라고 쳤을 때, 정규직 1/3, 비정규직 1/3, 자영업자 1/3 이렇게 놓고 보면, 산재보험이 거의 70%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놓치고 있는 거에요. 새 판을 짜지 않으면 사실 개혁은 어렵다는 거죠. 그런데 양 노총이 이렇게 요구할 가망이 별로 없고, 피해 당사자들은 그 정도의 목소리를 낼 여력이 없고... 그래서 이건 위로부터 개혁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박: 댓글들 보니까 대기업 정규직들은 무상 의료 수준이라서... 그래서 완전 그냥 모르는 것 같아, 보상도 어렵고 치료도 어려운 세상을.

     

    정부가 나서서 조직없는 노동자들 보호하라

     

    김: 조금 근본적인 얘기. 위험의 생산 이야기를 해봅시다. 원청, 발주처에 대해서 윤리 경영, 사회적 책임 경영 이런 것을 가지고 가는 전략이 적절한 건지, 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박: 이번에 UN에서 영신 씨 발표하는 날 아침, 거기 세션 의장한테 삼성이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개선을 했는지 그런 내용들이었대요. 그런 걸 보면 사회적 압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건 맞는데, 딱 거기까지 아닌가 싶어요.


    전: 현대 중공업 하청 노동자 사망 문제 가지고 선주사한테 압박을 가하는 활동을 했는데, 그 후에 현대중공업 사측이 달라진 게 없어요. 지불 여력이 되는 기업, 평판이 중요한 기업들한테만 극소수 노동자들이 보상 싸움 하는 게 현실이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건 사실이고요. 책임투자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투자자의 선의에 기대서는 사회가 바뀌지 않잖아요. 이런 활동이 나름 의미는 있지만 보완적이거나 부수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데... 노자 간에 힘의 균형이 안 맞고 계속 지기만 하니까 조금 곁눈질을 해보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자본이 바뀌지는 않죠. 현대중공업 보면 노자간의 대립 구도조차 형성이 안 될 만큼 압도적으로 노동의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자본의 선의에 기대서 해결할 수 있다면 사실 자본주의가 아니게 되는 거죠.


    김: 원포인트 해결 고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지금 노동이 매번 깨지는 상황에서, 결국 정부의 개입밖에 기댈 데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많은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조직이 정부인데, 그 정부에서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보호하는 방식의 경제개혁, 이런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을 것 같은데...


    김: 사업장 근로감독 이런 게 아니라, 구조 자체의 개혁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는?


    전: 구조 개혁 자체가, 지금은 적어도 위로부터의 개혁밖에 안 보이고.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의 힘으로는 최소한의 공정한 자본주의조차도 한국사회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김: 성군을 만나야 되는 거야 우리?


    전: 그런 것 같아. 되게 비관적이지. 어쨌든 지금 정부가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걸 잘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그것도 애매한 지점에 있는 것 같아. 그 활용이라는 게 현실에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느냐면 ‘나 누구 국장 안다’ ‘나 누구 비서관이랑 친하다’ ‘그 사람한테 얘기해서 어떻게 하겠다’ 이런 건데, 이게 세력으로서 푸시해서 하게 하는 게 아닌 거잖아요. 그러니까 위로부터의 개혁도 말이 좋아 위로부터의 개혁이지. 아는 사람 통한 읍소. 상소문 쓰는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여전히 집단적 운동이 중요하다

     

    전: 이번에 메탄올 보니까 노동부는 노동운동에서 집단적으로 대응할까봐 걱정했는데, 노동계는 집단적 대응의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너도나도 전문가가 되어서 달려들었던 것 같아. 집단의 힘으로 투쟁하고 이런 건 없어졌는데, 동시에 하층, 육체노동자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소비하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요. 가령 뭐 하청 노동자, 알바, 편의점... 인터넷 설치 기사가 살해당하고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살해당하고... 사회적으로, 집단의 힘으로 푸는 게 불가능해지니까 스토리로 소비하거나 감성으로 소구하는 방식? 어떤 연대의 정신이 남아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직의 힘이나 집단의 힘으로 풀려고 하는 시도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같아요.


    박: 구의역 사건 같은 건 좀 다르잖아요.


    전: 구의역 사건도 그렇지만, 알바 노조에서 시급 만원 제안했던 게 몇 년 후 대선 공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기존 조직노조가 아닌 곳에서 시작된 이슈를 나중에 조직노동이 받은 건데, 그런 거 보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구의역 사건은 집단의 힘으로 조직되었다기보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열아홉 살에 사발면... 빈곤 청년의 스토리텔링이죠. 그 후에도 지하철이나 철도에서 사고가 계속 나더라고요. 그러니까 구조를 바꾸는 건 확실히 집단의 힘이 있어야, 집단의 힘이 없으면 안 바뀌는 거죠.


    박: 구의역 겪으면서 처음에는 스토리텔링이었지만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힘은 여전히 대중에게 있구나 생각했어요. 조직 노동이 뭔지도 헷갈려요.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야만 조직된 힘인가? 사람들이 기존과 다르게 조직되어 움직이면 그게 조직된 힘인가? 구의역에서 사고가 나고, 옆의 노조 활동가에게 스크린도어 사건 세 번째라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될까 했더니, “그러게요. 우리 기관사들 힘들겠어요” 이래요. 사고 나면 기관사들 힘든 건 맞지만. 사람들이 구의역 오고 추모하고 포스트잇 붙이기 시작하니까 조직노동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뭐가 뭐를 견인하는가, 어떤 게 사회적 힘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어요.


    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


    전: 우리는 불안정 노동자 이슈로 하는 노동단체로 활동한 지 꽤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비는 영역도 있지만. 이제 불평등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해서 새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메탄올 사건 이후에 들어온 회원들을 보면, 정말 이것만은 막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거 하는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 하면서 조용히 가입한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현실을 발굴하는...


    김: 새로운 세대의 회원들이란 말인 거죠?


    박: 연령대는 다양한데 그런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호객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는 걸 보면 그런 사람들을 더 만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 이제는 진짜 하나 정도는 바꿔야 되지 않을까. 목소리 없는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좀 편해지는 거 하나를 꼭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되게 급한데, 5년 동안 하나 만들고 또 다음 5년에, 지금부터 10년 정도는 실제로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 나아지도록 만들어야 된다. 건강보험이든 산재보험이든, 하나 바꿔 내서 문해 능력이 있건 없건, 제도에 대해서 접근성 자체를 좋게 해주는 것을 하나 정도는 만들어줘야지 성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좀 나아지게 해야 하는 거지.


    김: 긍정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끝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네요(웃음).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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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기록하고 되짚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다음 국어사전에서 
    사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만한 일
    사태: 벌어진 일의 상태나 일의 되어 가는 형편

    위키피디아에서 
    사건: 사건(事件)은 무엇이 특정 시간에 일어난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사건의 중요성을 주관적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역사를 돌이켜서 각각의 구간을 구분할 때 사건의 중요성을 소급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휴대폰 부품공장 노동자들이 메탄올이라는 투명한 액체를 다루다 시력을 잃은 일에 대하여 무어라 불러야 할까. 여러 가지로 명명해왔지만 대체로 메탄올 사건 또는 메탄올 사태로 불리어왔다. 국어사전을 보니 사건이라 불러도 되고, 이후 일이 돌아가는 형편도 같이 살피고 있기 때문에 사태라 불러도 되는 것 같다. 
    무어라 부를 것이냐, 라는 한가한 소리를 할 형편은 아니다. 이 사건은 많은 함의를 갖고 있다. 모든 종류의 직업병 사건은-다른 사회적 사건들이 그렇듯이- 계급과 노동, 보건의료, 정치적 맥락을 갖지만, 메탄올 사건은 이 맥락을 새롭게 또는 강력하게 해석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공장알바’ ‘생산직알바’ 로 일자리를 구하고, 연락이 오는 당일로 봉고차에 실려 공장으로 가는 고용형태부터, 현재 산재보험이든 사회복지시스템이든 어디에서도 적절한 도움과 재활을 받지 못하는 6명의 시각장애인으로 남기까지. 구체적 기록과 사회적 정치적 맥락 까지 끊어서 짚어야 할 대목이 많다. 
    이번 기획에서도 익숙한 문제 몇 가지만 우선 짚어보았을 뿐 국가를 상대로 해 보려고 하는 손해배상청구라는 큰 프로젝트가 있고, 6명의 각 노동자가 보여주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있다.

    산재보험이 이 기획에 들어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6명의 노동자는 바로 산재보험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 지점이 산재보험제도의 허약한 토대를 보여준다. 평소 산재보험은 장벽을 높게 쳐서 이용이 어렵다. 조금만 아파서는 참고 일한다. 메탄올은 사회적 주목을 받으니까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산재보험 처리를 했다. 그러나 산재보상금 지급 이외에 시각장애를 입은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은 거의 없다. 산재보험 재활사업은 근로복지공단 이미지광고에서나 볼 수 있다.

    메탄올 사건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 펀딩으로 네티즌을 만나 1700만원이 넘는 돈을 후원받았다.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나 ‘피해자’가 된 이야기 자체로 큰 흡입력을 가졌다. 실명과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큰 결심이었다. 우리 단체로서도 고민이 깊었다. 그래도 사려 깊은 시민들의 동참으로 큰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후원자를 모시고 토크콘서트라는 행사까지 마쳤다. 보여주는 행사에는 한계가 많다. 그래도 마이크를 타고 나온 말들의 적지 않은 무게를 우리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메탄올 사건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일지도 첨부한다. 이 일지는 계속 업데이트 될 것이다. 우리는 메탄올 사건의 기록과 제도개혁의 지점,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추적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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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 file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현장
    노동과 건강 본문 PDF로 보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pdf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 
    토론회 지상중계  


    기록 및 정리 :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2018년 1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 토론회는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할 권리, 즉 건강권을 새로운 헌법에 담고자 열린 행사이다. 
    지금의 헌법은 제36조 3항을 통해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열린 토론회는 현행 헌법체제에서 보장된 ‘보건권’을 확장해 ‘건강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토론회에서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건강권이 왜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권인지를 증언해주었다. 지역사회, 학교, 작업장, 병원과 같은 장소에서, 성소수자, 청소년, 노동자, 저소득층, 모든 사람에게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건강할 권리가 헌법을 통해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① 학교 급식 노동자 박화자 

    박화자씨는 12년째 학교급식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시간 내에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일이다. 10명도 안 되는 적은 인원이 정해진 시간 내에 수백인분의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160도가 넘는 기름 앞에서 튀김을 튀기고, 무거운 식자재를 들어야하며, 뛰어다니다가 젖은 바닥에 미끄러지는 일이 잦지만 학교는 노동환경 개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급식실 후드가 고장 나서 여름에 50, 60도까지 급식실 온도가 올라갔지만 비용을 이유로 1년 반 동안 고쳐주지 않았다. 동료 한 명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야 학교는 후드를 고쳐줬다. 그러다보니 “산재사고도 많이 나고, 노동 강도가 세지다 보니까 근골격계 질환이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도 학교의 눈치를 봐야하니까 산재 요청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산재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으면 좋겠”고, “다쳤을 때나 골병 들었을 때 산재로 당당히 해서 쉴 수 있도록 하고”싶다고 이야기한다.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 살 맛 나게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업장의 노동 조건은 시민의 건강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② 성소수자 청소년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이인섭 

    이인섭씨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상담해주고 지원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동성애 성정체성을 지닌 청소년은 또래 청소년보다 두 배 많이 자살을 시도하고, 노인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는 다른 노인에 비해 더 큰 사회적 고립과 의료에 대한 높은 장벽을 경험한다. 성소수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주된 위험 요인은 그들의 유전적, 개인적 요소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와 같은 사회·문화적 요인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 학교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가정에서도 커밍아웃 이후 폭력이 많이 발생한다. 성소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정체가 들어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야 되는”일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직업을 잃을까봐, 따돌림 당할까봐 정체성을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답답하고 힘들고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 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성소수자의 정신건강 문제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건강권이 인권의 문제라고 할 때, 인권은 곧 살아감에 있어서의 중요한 부분, 인간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성소수자는 한 인간으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것, 그것은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이 보장해야 할 또 다른 영역일 것이다.      

    ③ 당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유종준

    당진은 1999년 석탄화력발전소가 도입되어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다. 최근 9, 10호기의 가동으로 당진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이 되었다. 값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비수도권인 당진에 발전소가 대규모로 건설된 것이다. 대대적인 발전소의 건설은 당진을 전국에서 대기오염물질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2014년도 오염취약 지역 조사에 따르면 체내 중금속, 뇨 중 비소,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호흡기 질환 등 당진 지역 주민의 건강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자료분석에서 당진 지역의 암발생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했는데 99년도 발전소 가동 이후에 지금까지 24명의 암환자가 발생했어요. 그 중 13분이 돌아가셨고 11명이 투병하고 계시죠. 물론 그 전에도 암환자가 발생하긴 했대요. 근데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거예요 유독 발전소가 가동을 한 이후에 급증했다고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화력발전소와의 인과관계에 대한 조사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 
    “가난한 지역, 가난한 마을이 환경도 나쁘고 건강도 안 좋더라고요“ 수도권과 산업계의 이익만을 위하느라 비수도권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민주주의가 우선이다. 
     
    ④ 성남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활동가 백승우 

    성남은 1973년 시로 승격된 이후 분당, 판교 개발로 현재 인구 백만에 이르는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구도심과 신도심의 격차는 매우 크다. 의료기관의 경우 대형병원이 신도시에 위치하고 있고, 구도심에 있는 민간병원이 폐업하면서 중증질환과 응급의료에 대한 공백이 발생했다. 공공의료성남행동은 공공병원 설립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이다. 구도심과 신도심의 건강격차가 크다보니 “생활의 질의 격차가 워낙 심하니까 시민들이 갖는 박탈감 되게 크”고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아프면 서울대 병원이나 이런 곳에 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들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거리, 아파도 재정적인 상황이 안 좋아도 적정 진료를 받을 수 있” 기를 원한다. 
    현재 성남 공공의료기관은 시민의 거센 요구로 실천되어 설립을 시작했지만 건설사의 법정관리로 인해 중단된 상태이다.   

    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치이즈 

    치이즈씨(가명)는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어 학생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애주기에서 가장 활발하고 건강해 보이는 청소년이지만, 청소년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로 갖은 차별과 통제를 겪고 그 때문에 다양한 건강문제를 겪고 있다. 고등학교 기숙학교에서의 경험은 통제와 차별이 건강문제를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기숙학교에서 7시 50분까지 등교했고 밤 11시 반까지 야자를 했어요. 수면부족 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시험이 한 달이 아니라 정말 일주일 간격으로 쪽지 시험들이 있잖아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는 버릇이 생겼어요. 졸리지도 않는데 억지로 그냥 자는 거예요.  아웃해버리는 느낌이었어요.” 소화불량과 편두통은 청소년의 만성질환이 되었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스트레스, 영양, 주거 노동 문제 등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학생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학생이니까 견뎌라, 어린아이가 무슨 건강이냐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성인이 될 때까지 몇 년 고생하면 된다는 인식은 청소년의 건강문제를 ‘지금’의 문제로 여기지 않게 만든다. 청소년의 아픔의 건강이, 미래를 위해 견뎌야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⑥ 건강보험 체납 피해자 김금선 

    김금선씨는 5년간 약 150만원의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다. 남편은 쉬는 날 없이 일하지만 경기가 나쁜 탓에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자 병원에 갈 수 없었고, 아픈 몸은  더 나빠졌다. 무릎은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 할 만큼 아팠고, 갑상선항진증 후유증이 심헀지만 치료받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체납에 대해 압류, 독촉 통지만 보냈지, 왜 체납을 했는지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병원 가는 게 두려어요. 언제 끊겨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병원도 웬만하면 가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는 “아프지 말라 그러죠” 또 열한 살 아이가 “너무 성격이 활발해서, 부러질까봐 다칠까봐 정말 알게 모르게 노심초사 키”울 수 밖에 없다. 
    김금선씨에게 건강은 권리가 아니다.  

    문 : 헌법에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서 보호를 받는다. 이걸 혹시 아셨어요?
    답 : 아니요. 전혀 몰랐죠. 
    문 : 건강은 권리다, 인권이다. 이런 거는?
    답 : 아니죠. 자기 문제인 줄 알았죠.
    문 : 헌법에 건강과 관련해서 뭐라고 한마디라도 넣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있으신가요?
    답 : 너무 광범위한 느낌이라. 누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 거.

    2016년 7월 기준으로 6회 이상 보험료 체납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받고 있는 지역가입자는 134만 7천 세대, 사업장은 3만 7천 개소이다. 이 중 월 보험료 5만 원 이하 ‘생계형’ 체납 세대는 체납 세대의 67.4%, 2년 이상 ‘장기’ 체납 세대는 체납 세대의 53.4%이다.  

    ⑦ 장애인 가족 최은경 

    최은경씨는 뇌병변 사지마비 와상 1급에 지적장애 1급의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을 키우고 있다. “제가 예전에 일산 호수공원을 가는데 거기 구름다리처럼 해놨더라구요. 장애인들한테 하는 그건 완전히 죽음의 다리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건강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최은경씨 아들의 경우 학교에 가면 경직으로 인해 다리가 뻗치기 때문에 아침 9시부터 가슴과 다리를 꽁꽁 묶어놓는다. 그럼 12시까지 혼자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세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학교에 치료사가 상주하고, 수업 안에 치료가 들어 있어야 하지만 최근 치료사가 사라지고 치료에 대한 부분이 현금지원으로 바뀌었다. 장애인은 다양한 치료와 보조기기를 필요로 한다. “저희 아이처럼 설 수가 없는 아이들은 엑스레이 서는 것조차 제대로 못 서거든요. 그런 기계 자체가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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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그 곳에 노동자가 있다 -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자... file
    강언주 / 부산녹색당 탈핵위원장

    현장

    이 글의 2절부터 6절은 표가 깨져 PDF본문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 노동자 있다,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자 실태 조사.pdf

     

    그 곳에 노동자가 있다

    -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자 실태 조사



    강언주 / 부산녹색당 탈핵위원장

     

    *이 글은 ‘녹색당 핵발전소 비정규직노동과 안전운영 모색 간담회’(2017.9.25.)에서 발표한 자료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건설재개 결정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건설재개 59.5%, 건설중단 40.5%) 문재인대통령이 후보시절 약속했던 신고리5,6호기를 비롯한 신규핵발전소 전면백지화 공약은 공론화결정으로 후퇴되었고 결과적으로 지켜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상 처음으로 수능이 연기되었고 시민들의 불안은 다시 핵발전소로 가닿았다. 한수원은 포항지진발생 단 20분 만에 ‘모든 원전 정상가동’이라고 보도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시민들이 지진과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반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모든 핵발전소의 안전점검이 제대로 면밀히 되었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문재인정부의 탈핵사회선언과 신고리5,6호기 공론화의 과정은 노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수원노조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를 반대하며 장외투쟁을 진행했었고 최근에는 한수원이사회의 월성1호기 핵발전소 조기폐쇄 논의를 무산시키기 까지 했다. 노조 내에서도 점진적 탈핵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외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한수원노동자들이 이렇게 까지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핵발전소의 노동자들을 갑자기 다른 분야로 전환시킬 수 없다는 판단과 그런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권과 고용의 안정화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지금의 이 갈등 가운데 함께 논의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이 핵발전소 내 모든 비정규직노동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약 40%가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들이다.(이것은 2017년 국감에 한수원이 보고한 자료이지만 한전KPS를 협력업체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있으며, 경상정비 기간에 참여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을 헤아려 본다면 40%이상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의 노동현장은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첨단장비가 갖춰져 있는 깨끗한 공간이 아니다. 2014년부터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들었던 증언은 우리가 흔히 상상해왔던 것과 달랐다. 때로는 부당했고 차별적이었으며 열악했다.


    “원자력발전소라는 게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정비업체의 경우, 적재적소에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거죠. 10년 이상 경험하신 분들이 주르륵 있는데 그런 분들은 숙련도가 더 높은데도 비정규직입니다. 그런 분들이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는 것은 잘못된 제도인 거죠. 이런 것은 한수원노조가 함께 싸워줘야 합니다.”(2014년 5월 17일 울진 핵발전소 노동자 간담회)


    “한수원 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차이가 두 배 이상입니다. 발전소마다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10년을 일해도 연봉이 3000만 원이 안 돼요. 하청업체 입찰시 최저가 입찰을 하기 때문인데 이런 업계의 관행 문제가 정말 큽니다. 하청업체나 원청사인 한수원이 우리를 기술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예요... 걸레질하는 걸 제염작업으로 보지 않고 그냥 걸레질하는 건 줄 알아요... 고리1호기를 폐쇄하면 폐로산업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것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만약 지금처럼 무분별한 경쟁입찰 문제나 노동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자리만 생기겠죠. 폐로산업에 대한 기대는 사실 없어요.”(2015년 4월 24일 고리 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 인터뷰)


    “어차피 사고 나면 우리는 피폭받이에요. 우린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월성핵발전소에 만났던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너무도 태연하듯이 말했다. 우리가 만났던 비정규직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차별'과 '안전'이었다. 그것이 이 설문조사의 필요였고 이유가 됐다. 이 설문조사는 핵발전 노동자 중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건, 복지제도, 노동환경에 대해 조사하고 현안에 대한 인식을 분석함으로써 핵발전 노동의 안전 확보와 노동권리의 향상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진행했다.


    1. 조사의 배경 및 방법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발생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사회는 방사능공포와 공동체파괴를 비롯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농도 방사성물질이 배출되는 위험한 발전소현장에서 수습·제염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피폭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일본 핵발전 노동의 상황이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된바 있고 지난 해 핵발전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제작된 영화 <판도라>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핵발전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조사와 논의는 부족한 현실이다.


    친원자력계에서는 한국의 핵발전소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노동자들의 사고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올해 8월에도 신고리 핵발전소 1호기 배수관로에서 배수구 거품제거 작업을 위해 안전고리대를 설치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써 지난 5년 동안에만 11명의 노동자들이 사고로 사망했고 부상자도 182명에 달했다. 그들 중 90% 이상이 하청업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연간 피폭량이 0.9m㏜로 한수원 정규직노동자의 연간 피폭량에 0.09m㏜(밀리시버트)해 비해 방사선 피폭량도 10.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해 7월에는 현대건설이 3년간 핵발전소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121건을 은폐한 것이 밝혀졌다. 이렇듯 재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국가라면 핵발전소라는 특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방사능 피폭에 의해 건강을 위협받는 사건들이 있어왔으며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사망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2007년 9월, 국제 전문 월간매체인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에는‘노동, 폭력과 죽음의 장소’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사실 원자력산업은 어쨌든 방사능노출 한계치를 엄격히 준수한다는 사실을 내세울 수 있고, 그렇게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원자력산업 전체 방사능 노출치의 80%는 원자력시설 유지, 관리를 위해 방사능오염 위험이 상존하는 '통제구역'에 출입하는 2만5천명에서 3만5천명의 외부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아니테보 모니>


    중층 하청 노동구조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한다. 핵발전노동은 건강권의 문제를 넘어 노동구조의 현실과 함께 노동자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근무 장소와 형태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핵발전소는 피폭노동 없이 단 하루도 돌아갈 수 없다. 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불안정노동의 상태에서 더 위험한 작업에 노출되기 쉽다. 핵발전소를 건설, 유지·관리, 해체하는 과정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문제- 특히 최하층 노동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위협이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 ‘포스트 후쿠시마, 핵발전 노동자의 삶’을 개최하여 한국과 일본의 원전노동에 대해 논의했던 바가 있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핵발전소 지역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핵발전 노동의 현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모로 원전은 명백하게 빈곤과 차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어디에 가나 원전은 차별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원청은 하청 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이 인정하는 것은 3차까지이다. 노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에 3차 하청직원으로 원전 현장에 들어간다. 고용관계가 위장되는 것이다. 누가 고용주인지도 모르는 애매한 하청구조는 전력회사에게만 좋은 것이다. 노동자는 피폭되면 일하지 못한다. 일회용 노동자이니까.”(나스비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 활동가/ 2014. 한-일 핵발전노동 워크숍)


    사고가 발생하든 발생하지 않든 1차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는 건 결국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정부와 사업자는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노동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적어 보인다. 사회적 관심과 논의는 탈핵운동을 하는 시민사회계의 노력도 부족했다. 핵발전 노동의 안전, 노동권리 향상과 더불어 핵발전소자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6년 11월부터 주 연구팀인 동부밸트를 중심으로 원전노동 조사연구팀을 구성하여 핵발전 노동실태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핵발전노동에서도 하층노동의 현실을 조사하고자 조사대상을 고리, 영광(한빛), 월성, 울진(한울)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한정했다. 이 설문조사의 기초 정보와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2016년 7월, 월성핵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질문지 구성과정에서 각 핵발전본부 노동조합 간부의 의견을 반영하여 확정했다. 2016년 12월 질문 구성을 확정, 우편을 통해 700부의 설문지가 배포되었고 각 발전본부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협조로 395부가 회수되었다. 설문조사기간은 2016년 12월 5 항목은 크게 ▲근무형태 ▲임금과 노동조건 ▲노사관계 ▲안전관리 ▲산업재해 및 피폭 ▲현안에 대한 인식 등으로 구성되었다. 


    --------------------- 본문 생략, 2-6절까지의 내용은 첨부된 PDF 파일을 참조해주세요 -----------------


    7. 결론 및 제언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비정규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핵발전소지역 출신으로 거주지와 가까운 이유로 직업을 선택했다는 점, 다른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 직업을 선택했다는 점을 통해 핵발전노동은 지역사회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 특성과 관계적 측면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보여진다. 노동조합 조직 이후 처우와 안전에 대한 개선효과가 있었다는 응답이 많았으므로 노동조합이 없는노동자들의 조직화률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차별과 불평등 및 더 심각한 피폭상황을 확인한 바,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리향상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설문대상의 과반 가까이 핵발전 노동이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 (‘노동조건개선’ 34.6%, ‘원자력시설의 안전한 관리’ 31.1%, ‘사업자의 투명한 운영’ 19.9%, ‘원전설계 및 안전성 보완’ 14.9%, ‘노동자 안전교육’ 9.0%)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자 대다수가 방사능 피폭과 안전관리 모두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 즉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매우 크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고용불안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발생 이후에도 안전 교육 내용과 횟수에서 모두 미흡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교육, 그 중에서도 사고발생시 대응과 대피 관련한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방호방재 매뉴얼에 대한 숙지, 연간피폭선량 허용 기준 등 방사능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구체적 교육이 필요하다.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 지진 이후 특히 월성의 경우, 핵발전소의 안전이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포항지진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을 비롯해 핵발전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지진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방향에 대한 질문에 원전비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점차 축소, 폐쇄 및 재생에너지로 전환의 의견이 더 많았지만 핵발전소가 폐쇄될 경우 고용불안이 초래될 것이라는 의견 또한 많았기 때문에 종사 노동자들을 고려하는 에너지전환정책이 필요하다. 근무하는 곳에 따라 인식하는 문제에 대한 응답차이가 존재했다.


    고리: ‘폐로대책’ ‘비리와 은폐사건’ ‘원전의 밀집’

    월성: ‘노후화 심각’ ‘지진 등 자연재해 위험’ ‘폐기물 처리와 보관의 위험’

    한울(울진): ’신규 원전의 건설‘

    한빛(영광): ’심각한 노사갈등 문제‘ ’잦은 사고 발생‘ ’지역주민과의 갈등‘

    4개 발전소별, 지역별 구체적 현안 파악이 선행되어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중앙정부, 정당, 지자체, 한국수력원자력, 시민단체 등에 대한 신뢰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으나 그나마 환경단체 및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과정에서 한수원노조와 탈핵진영의 시민사회계는 상반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한수원을 제외한 다른 핵발전노동자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 다층적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과의 만남과 연대를 통해 서로의 오해를 줄이고 안전과 노동권리 향상을 위한 논의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동안 만났던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탈핵운동진영 또한 이해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폐쇄한다고 해도 안전하게 유지·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체가 없어질 수 없고 오히려 건설사업자들과 원청사에서 ‘탈핵은 곧 해고’라고 소문을 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에너지의 전환은 노동의 전환과 함께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이미 탈핵을 선언한 국가들이 명확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부퍼탈연구소에서 진행한 <핵발전부지에서의 일자리발전과 지원조치/2002-2004> 연구에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구조적 전환과정은 전체적으로 보아 부정적 고용영향을 낳지 않으며 오히려 확연한 긍정적 고용영향과 함께 여타 중요한 사회적 목표들에 기여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현우 연구부소장-.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가 늘고 있고 분권형의 새로운 전력시스템은 새로운 노동을 만들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핵발전소 내에서 이뤄지는 노동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표본도 고르지 못했다. 핵발전소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노동자들을 더 많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핵발전노동’에 대해 함께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녹색당에서 진행했던 ‘핵발전소 비정규직노동과 안전운영 모색 간담회’에 는 노동조합, 보건의료단체, 정당, 학계, 에너지연구소, 행정 감시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나눈 공통된 이야기는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에 대한 조사연구가 부족했다는 것, 핵발전이라는 중층적이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노동의 착취, 안전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안전과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공동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핵발전소의 안전한 운영과 노동의 안전은 톱니바퀴와 같이 맞물려 있다. 핵발전 비정규직노동의 노동권향상과 안전의 요구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요구이기도 하다. 핵발전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노동과 함께 가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전환의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시스템만 바뀐다고 해서 차별과 안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안에 ‘정의로운’ 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해야 한다. 시스템보다 사람이 먼저다. 그곳에 노동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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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호 메탄올 노동자 6명 사회복지 분투기 file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현장

     노동과 건강 PDF 원문보기 메탄올 노동자 6명 사회복지 분투기.pdf


     

    메탄올 노동자 6명 사회복지 분투기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이 글은 제목에서 보이듯 메탄올 노동자 6명의 ‘사회복지’ 분투기이다. 노동과 건강에 사회복지라니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메탄올 피해 노동자 6명이 재해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체·심리·사회 재활이 필수적이다. 이 글은 바로 집과 병원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노동자 6명의 노력에 대한 관찰기록이다. 관찰기록이 ‘분투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메탄올 중독에 책임 있는 어떤 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해 좌충우돌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9월, 노동건강연대에서 맡은 첫 업무는 메탄올로 인해 시각을 잃은 노동자 6명이 재해 이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는 일이었다. 메탄올로 인한 시력 손상은 메탄올 피해 노동자들의 신체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만들었다. 늘 다니던 길을 더 이상 다닐 수 없었고, 분신과도 같은 핸드폰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돌봐 줄 가족이 애초에 없거나 부재중일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어진 것이다. 한순간에 시각을 손실하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인해 시각장애에 대한 정보조차 부재했다. 하지만 메탄올 중독 사건이 일어난 지 적게는 1년 반, 길게는 2년 반이 될 때까지 누구도 그들에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산재 노동자의 재활서비스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메탄올 피해 노동자 6명과 함께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찾아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다음 스토리 펀딩 기금’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6명 모두 살고 있는 곳이 달랐고, 몸 상태와 현재 처한 처지도 달랐다. 기관을 찾는 것도, 필요한 서비스와 기기를 사는 것도 품이 6배로 더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글은 메탄올 노동자 6명이 재해 이후 막 사회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노동자에서 장애인이 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A와 B의 여정

     

    메탄올 노동자 6명 중 제일 먼저 A와 B에게 연락한 것은 두 사람 다 부천에 살고 있다는 점이 매우 컸다. 물론 A는 한쪽 눈이 어렴풋이 보이고, B는 전혀 볼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필요한 것도 당연히 달랐다. A의 경우 핸드폰 화면을 크게 확대해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재해 이후에도 여행도 다니고 볼링도 치러 다니는 등 바깥 활동도 자주 하고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에 A에게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은 직업과 관련된 훈련이었다. A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주로 안마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직업 훈련을 포기하고 친구들과의 약속 이외에는 주로 집에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B의 경우는 눈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활하는 모든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장 밥 먹는 것부터 이동하는 것까지 한순간에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어 생활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처럼 언제까지 B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B의 어머니와 B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보행훈련, 핸드폰·컴퓨터 사용-과 점자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A와 B와의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둘에게 필요한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들은 후 본격적으로 재활 기관과 필요한 기기 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천시가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한 첫 지역인 탓에 맨땅에 헤딩일 수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입은 시각장애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제공해줄 서비스가 없다며 부천지역 복지관 몇 군데의 전화번호만을 전해줬다.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장애인야학에서 오랫동안 교사를 했지만 주로 지체장애인과 정신적 장애인에만 익숙했지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결국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한 곳, 두 곳 전화를 통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 경기도, 부천시청, 한국산재장애인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천에 위치한 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기관에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돌리는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대부분은 자신의 기관은 시각장애 및 산업재해와 관계가 없으니 다른 적합한 기관에 전화를 하라고 이야기했고, 관련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곳은 본인이 직접 찾아와 봐야 알 수 있다거나 두꺼운 책자 하나를 보내주고는 말았다. 심한 경우는 소속을 밝히고 정보를 묻자 ‘너네가 뭔데 이런걸 물어보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좌충우돌에도 A와 B는 6명 중 가장 먼저 필요한 재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부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도서관인 <해밀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밀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배리어프리영화 등을 제작, 대여해주고 다양한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 1층에 부천 시각장애인연합회가 있어 시각장애인에 대한 동아리나 활동 정보를 전해들을 수도 있었다. 현재 A와 B는 주 2회씩 <해밀도서관>에서 점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또 B의 경우 보행교육과 핸드폰 사용 교육 등을 받고 있다. 시각장애의 특성상 노령으로 인한 시각장애 많은 편인데 두 분 모두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그 곳의 볼링동아리 조정동아리 에서 둘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A와 B의 경우 집 근처에 점자 도서관이 있어 통합적인 재활을 받는 아주 좋은 케이스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A의 경우 바리스타 교육 등을 받길 원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은 매우 제한적이다. B의 경우 당장 혼자 걷는 것부터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 또 필요한 물품 역시 많다. B의 경우 시각장애인 사용하기 가장 쉬운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다음 스토리 펀딩 기금으로 구매했지만 여전히 컴퓨터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화면해설, 화면확대이 필요하다. 영신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여전히 알아야할 정보가 많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콜택시 이용법,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혜택 등. 살아가면서 알아야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신청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C 의 경우

     

    C는 아버지를 산재 사고로 일찍 떠나보내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함께 살며, 많은 일을 했다. 현재에도 동생과 함께 인천에 거주하고 있지만 동생이 회사 때문에 늘 바쁘다. C 역시 눈이 전부 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생이 사다놓은 반찬 등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또 익숙한 길은 혼자 다닐 수 있지만 신호등이 있는 길은 불빛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다니기가 힘들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C가 일요일에 십수년간 다닌 교회, 유일한 취미인 라디오 듣기를 빼고는 주로 집에서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C는 늘 필요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C는 자신의 꿈이 제빵사이며, 신호등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시각장애가 있는 본인만 건너는 신호를 보지 못해 가만히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까봐 걱정이 많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C의 경우 부천에서의 시행착오 덕분인지, 주민센터 그리고 교회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C의 경우 인천에 위치한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연락이 닿아 점자 교육, 직업 훈련 등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 메탄올 피해자가 자신의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을 인지한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소개받고 방문할 수 있었다. 물론 주민센터의 연락은 사고가 나고 1년 반이 넘은 시점에 온 것이었다. 또 평소 동생과 함께 다니는 교회 교인의 도움으로 이동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보행과 관련해 신호등을 건널 때 도움이 되는 음성신호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음성신호기는 시각장애인이 신호등을 건널 수 있도록 신호등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안내기계가 음성으로 신호등의 변화를 알려주도록 하는 기계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C가 지금 받고 있는 재활서비스가 아무것도 없으며, 그전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 C가 방문한 시점에는 올해 프로그램 모집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내년도 프로그램이 계획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 밖에 들을 수 없었다. 또 기껏 구매한 신호등 신호유도기는 신호등 신호기가 큰 도로 신호등에만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동네에 작은 신호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전히 C는 집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A와 B처럼 주변에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이 있음에도 C는 아무것도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은 지역이나 기관에 따라 노동자, 더 넓게는 시각장애인의 삶의 질이 차이가 나게 만드는 온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D의걱정


    D는 메탄올 노동자 중 유일하게 기혼자이며, 남편, 딸, 시어머니와 함께 서울시 강서구에 살고 있다. D의 경우 메탄올 중독으로 시각뿐만 아니라 뇌손상도 입었다. 그 때문에 걷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말도 약간은 어눌하다. 다행히 시력의 경우 재해를 입었을 당시보다 좋아져서 메탄올 노동자 중 가장 양호한 시력을 가지고 있다. D는 불편함 없이 걷고 싶고, 계속해서 좋지 않은 몸 때문에 신체적인 불편함을 느낀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부분에 있다. D는 재해 이후에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다. 재해도 재해지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비관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그리고 메탄올 사건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상심이 매우 큰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재활에 있어 정신적인 부분에 주목하지 못했다.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초창기에는 주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 등을 권유했다. 하지만 최근에 구매한 핸드폰도 있었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동 등도 다른 분들에 비해 큰 불편함이 없었다. 또 컴퓨터 교육 등 의사가 있는지 타진해 봤지만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신체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통원치료 중이었고, 이미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D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몇 번의 통화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D의 경우 메탄올 노동자 중 유일하게 시력에 있어서 차도가 있었다. 매우 기쁜 일임에도 불구하고 D는 그것이 혹시 자신이 현재 받고 있는 여러 가지 관심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D의 생활과 신체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음주와 흡연이 잦아진 것이다. 그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화통화를 할 때 D는 늘 몸이 좋지 않아 기존에 다니던 근로자건강센터도 잘 다니지 못하고 외출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D에게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자신의 몸과 정신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D 역시 이에 동의했다. 현재 D는 몇 번 만난 적이 있던 상담사와의 인연과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도움으로 상담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상담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다.

     

     

    E 의 취미

     

    E의 경우 현재 부모님과 함께 수원에서 살고 있다. E는 메탄올로 인해 시각뿐만 아니라 뇌에 큰 후유 장애를 입었다. 식도에도 큰 손상이 있어 전화 통화도 매우 힘들었다. 그 탓에 다른 분들과 달리 E의 의사를 듣기가 매우 어려웠다. 통화가 어려운 E를 대신해 그 동안은 주로 E의 누나와 연락을 취해왔다. E의 누나는 2교대로 공장에 다니고 있는데 근무시간에는 연락하기가 매우 힘들었고, 퇴근 이후에도 잠을 자야 해서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중국에 계신 아버지가 오신 후 아버지가 E의 병원 치료 등을 함께 다니고 자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난감했던 점은 E의 아버지와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E의 누나에게 들은 정보와 E의 아버지에게 들은 정보가 다를 때도 있었고, 전화 통화 상으로는 아버지의 중국 억양을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E의 새로운 핸드폰을 살 때 이런 문제가 드러났다. E의 핸드폰이 망가져 시각장애인에게 편한 아이폰을 사서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전화 통화로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아 갤럭시를 개인적으로 구매하신 것이다. 소통이 어려운 탓에 사실 E의 경우 함께 무엇을 알아보는데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아버지가 E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미 알아보고 계셨다는 점이다. E는 컴퓨터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E는 수원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교육에 참여하고 있었고, 앞으로 집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을 실습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를 다음 스토리 펀딩 기금을 통해 구입할 예정이다.

     

     

    F 의 불행과 다행

     

    F의 경우 메탄올 노동자 중 아직까지 병원에 있는 유일한 노동자다. 다른 5분이 서울, 서울인근 도시에 거주하는 점과 다르게 경남 창원에 거주하고 있고 그 지역의 근로복지공단 산재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직까지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F의 경우 E 마찬가지로 시각 뿐만 아니라 다양한 후유 장애를 겪고 있고 여전히 치료를 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직접 통화가 어려워 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알아보았다. F 아버지의 경우 부지런히 정보를 모아, 여러 제도 등에 정보가 밝으신 편이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F의 경우 산재 전문 병원에 있기 때문에 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활프로그램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산재병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주로 지체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F와 같은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F를 담당하는 직원이 진희를 위해 함께 점자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F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핸드폰이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 보니 너무나 무료한데, TV 등은 함께 입원한 다른 분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마땅히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폰을 구매해 보내드렸다. 이후 아버지에게 F가 핸드폰 때문에 2KG이나 감량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무료했던 F가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익히는데 식사도 잊은 채 집중하면서 체중도 빠진 것이다. 다행히 창원 시각장애인연합회에 중도로 시각장애인이 되신 분 중 F에게 핸드폰 교육을 해줄 수 있는 분이 병원까지 오기로 했다. F가 조만간 핸드폰을 이용하는데 편해질 것 같다.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 주지 않는다

     

    메탄올 노동자 6인의 재활 기관과 서비스를 찾는 과정은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보다 더 쉽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수십 번의 통화를 하면서 알아본 A와 B와 같은 경우도 있었고, 병원이나 지역에서 받고 계시는 다양한 활동들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처음 이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산재장애인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중심축이 있고, 지역사화에 있는 다양한 기관들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두 군데에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본인이 움직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이 없거나 설령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지만 정보를 얻고 무엇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한 순간에 시각손상이라는,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지만 그 과정을 책임지는 몫은 산재노동자 본인과 가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알게 된 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지역의 기관이 산재노동자의 삶의 질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부천과 인천은 인접지역임에도 둘 중 어디에 살고 있고, 가까운 기관이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B와 A처럼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도, C처럼 그 계획이 유예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메탄올 노동자 6명의 사고 이후... 삶에서의 ‘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점자를 배우고, 시각장애인용 콜택시를 이용하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앞으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된 메탄올 노동자의 분투에 계속되는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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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과 건강 2019 봄 통권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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