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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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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노동의 모든 측면과 건강의 모든 측면에 대하여
    '노동과건강'이 복간된다. '노동과건강'은 지난 1988년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의 노동자 건강문제는 단지 건강하지 못하여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만 조망되었다면, ꡐ노동과건강ꡑ을 통하여 노동 때문에 건강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처음으로 그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동과 건강을 함께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고 또한 이 둘 사이의 역학관계를 좀 더 균형 있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노동과건강'이 본격적으로 노동과 건강에 대한 문제를 노동조합의 일로 제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실제 지금에 이르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노동과 건강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양하여 졌다. 특히 고용관계에서만 바라보는 노동이 아니라 고용관계를 떠한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게 되면서 더욱 다양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의 실직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취업자의 취업으로 인한 건강문제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사일과 같이 가족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무임금노동일지라도 고된 것은 고되고 힘든 것은 힘든 일로 남아 있다는 점은 특별한 말을 통하지 않고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성매매종사 노동자들의 경우 비록 합법적인 고용이나 거래관계는 아닐지라도 성매매를 통하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지점의 하나가 성매매로 인한 건강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도 누누이 확인된다.

    심지어는 노동과 건강이 어느 한 시점에서만 관계를 맺지 않고 성장과 노화를 통하여 전체 삶의 궤적을 통하여 그리고 어느 한 개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뛰어 넘어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알려지고 있다. 사업장에서의 발암물질의 사용에서와 같이 부모의 노동을 통하여 자식의 건강이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한편 연령에 따른 폐기능의 발달 그리고 저하와 같이 감성, 지성, 그리고 신체의 발달이 어린 시절에 지체되어 향후 노동조건에 중요한 제약을 가하는 건강조건으로 작용하면서 결국에는 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지난 88년 '노동과건강'이 문제제기를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건강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들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제는 노동과 건강을 단순히 어느 한 시점에서 어느 한 가지 방향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점에 걸쳐서 노동의 모든 측면과 건강의 모든 측면이 서로 쌍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건강이 노동과정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며 또한 한편으로 그 결과로서 동시에 작용한다는 점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과건강'이 복간된다. 예전에 노동과 건강의 문제를 제기하였던 초심으로 돌아가 이제 노동과 건강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특히 아직도 일방에서만 바라보거나 무시되고 왜곡되는 지점들을 비쳐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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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생채기 난 나무가 오래 가듯이
    반갑고 고맙다. 10여 년 전 노동자들이 산재와 직업병에 힘없이 스러져 갈 때 「노동과건강」이 우리사회를 향해 발언하면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 불씨를 당겼다. 노동조합과 품앗이를 해가며 오늘의 노동자 건강권 운동, 노동운동을 세워 왔다. 얼마간의 단절의 역사가 있었지만 생채기 나고 휘어진 나무가 오래 가듯이 끝까지 밀고 갈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반갑다.

    우리는 자본의 신자유주의가 노동자 건강을 뿌리째 난도질하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목격하고 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위기에 몰려있다는 것이 과장된 언술이 아니라는 것을 맘 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치료중인 산재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우리 사회는 흘려 듣지도 않는다. 이렇듯 노동자의 삶이 곪아터져도 노동조합의 활동과 투쟁은 아직 날이 덜 서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여 「노동과건강」 복간이 더욱 고맙다. 주목받는 것은 애초 타인의 몫으로 양보하고 더 낮고 더 힘겨운 곳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다. 아직도 컴컴한 소규모사업장으로 운동의 불씨를 옮기고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최전선을 마다하지 않을 ‘동지’가 있어 노동자의 한쪽 어깨는 든든하다.

    이제 힘차게 나아가라. 그래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 활력을 넣어주는 싱싱한 불길이 오르도록 풀무질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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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참고서가 되길
    소위 시장지상주의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이든 단시간 노동이든 그것은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장시간노동을 하는 사람은 돈을 좀더 벌 수 있다면 단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은 여가를 더 즐길 수 있기에 결국은 동일한 양의 행복을 얻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에게 있어서 노동시장에 편입된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는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특히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서 장시간 노동은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요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지난해 말에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단체와 함께 성수동에서 무료건강검진사업을 벌인바 있습니다. 이 결과 놀랍게도 3,40대의 비교적 젊은층의 검진대상 노동자들이 최근에 3개월 이상 질환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절반이 넘고 그중 대부분이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치열한 생존의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서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큰 공장과 비교한 작업장 환경은 공개하기에도 창피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을 영세사업장 노동자 스스로 포기하거나 사치스럽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야근, 철야를 하고 임금 떼이지 않으려고 골몰했지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간의 치열한 이윤경쟁 속에서 대자본의 우위가 그대로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우열로 가름되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문제는 단위 기업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복간되는 「노동과건강」은 비정규, 중소영세,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문제를 사업장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관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도 실천 과제를 던져줌으로써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참고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편집진의 노고가 현장의 노동자들과 맞닿을 수 있는 훌륭한 기관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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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친형제자매 같다고 느껴왔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대해서 활동하는 여러분들과의 만남은 1993년 10월 ‘제1회 노동과 안전에 관한 한일 공동세미나’까지 올라갑니다. 이 후 조직 명칭 변경 등이 있어도 여러분들과의 관계는 친형제자매 같다고 느껴 왔습니다.
    만남의 당초부터 친한 「노동과건강」(당시는 노동과건강연구회 기관지)이 복간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앞으로의 발전도 확신하는 바입니다.

    일본에서는 작년, ‘종합규제개혁’의 이름 아래 산재보험을 민영화하자는 책동이 있었고, 이와 관련한 공방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보험회사 그리고 미국의 일부 보험회사 등이 시장침입을 노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있지만, 우리 전국안전센터나 산재노동자단체,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정부ㆍ후생노동성, 의사회, 노동정책심의회 산재보험부회 공익ㆍ사용자위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강한 반대로 작년 말에 수립된 ‘규제개혁추진 3개년 계획’에 담는 것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오는 11월 도쿄에서 ‘2004년 세계 아스베스트(석면) 도쿄회의(GAC2004)’를 개최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직위원회 국제위원에는 노동건강연대 백도명 교수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치사성 발암물질인 아스베스트(석면)에 의한 위험이 없는 아시아와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획기적인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여러분들의 대표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노동과건강」복간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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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조엘 슈프로(Joel Shufro)/NYCOSH 미국 뉴욕에 있는 노동안전보건관련 사회단체. NYCOSH 외에도 미국의 20여개 주에 COSH(노동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은 관련 전문인, 노조활동가 등으로 미국노총(AFL-CIO)과 밀접한 연계 속에 노조지원, 미조직노동자에 대한 교육 등을 벌이고 있다.
    뉴욕노동안전보건위원회 사무처장


    뉴욕노동안전보건위원회(New York Committee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에서 한국 노동건강연대의 「노동과건강」발간에 즈음해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뉴욕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전세계 모든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에 대한 권리를 지지합니다.
    어떠한 노동자도 일로 인한 건강침해를 강요받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그 노력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잔해 속에 있는 유독물질이 노동자들과 주민들에게 미칠 위험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 조사 결과, 환경청(EPA)이 위험을 축소 발표하면서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1층에서 붕괴 잔여물 청소를 했던 노동자 중 6,000명 이상이 호흡기질환으로 진단받았고, 다른 6,000명은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되었습니다.
    우리는 조지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경제상황이 일자리 창출을 못하고 이라크 전쟁이 계속되는 한 부시는 약화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진행중인 총선에서 당신들 진보정당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뉴욕에서 연대의 인사를 전하며.

    Solidarity from New York i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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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경제위기, 빈곤 그리고 건강
    아직도 기억이 새로운 IMF발 경제위기가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 사이 IMF는 국제기구의 이름이라는 지위를 벗어나 경제위기의 상징으로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고, 아직도 경제적 불안정과 불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살아있다. 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기간이 지났지만, 아직 경제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상황은 한마디로 “만성적인 경제위기”라고 할 만하다.

    경제위기의 차별적 영향

    IMF 체제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실업과 가계소득의 감소로 전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고, 그 고통은 계층 간에 균등한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는 차별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표 1에서 보듯이 실업률은 1998년-1999년 사이에 천정부지로 상승하였고, 그 이후에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나 2002-2003년에도 3.1-3.4%로 경제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수치조차 비정규직의 급증과 구직희망의 포기 등에 가려진 과소추계된 것이다. 그림 1에서 보듯, 비정규 노동은 이제 아예 보편적인 노동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경제위기에 따른 거시경제의 변화는 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 2에서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소득을 살펴보면 1997년 3/4분기 242만원을 기록한 이후, 1998년 3/4분기 207만원까지 떨어졌다가 2000년 3/4분기에 가서야 240만원대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평균소득 감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의 여파가 소득계층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표 2에 의하면, 1998년도 빈곤율 주1)은 1997년에 비해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빈곤율의 증가에 따른 생활의 고통은 저소득계층에 집중되었다.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근로자 계층별 소득 격차는 경제위기를 계기로 악화되어 2001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빈곤이 증가하고, 고소득계층에 비해 저소득계층의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함에 따라 빈부격차는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표 3). 소득집중도(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1년 0.319로 높아져,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질병의 위험과 사망률의 변화

    인과관계를 쉽게 추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에 따른 건강상의 악영향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분적인 지표로나마 경제위기에 의해 건강수준의 악화와 의료이용의 감소가 나타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우선 경제위기는 의료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표 5에서 보듯이, 1997-8년의 경제위기 이후 의료비 지출 감소는 소득계층별로 불균등하게 이루어져, 저소득계층(Ⅰ,Ⅱ,Ⅴ)은 고소득계층(Ⅵ,Ⅶ,Ⅷ)에 비해 의료비지출 감소 폭이 더 컸다.


    의료비 지출 변화는 실직 가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1997년과 비교할 때, 1998년 의료비 지출은 23% 감소했고, 의약품 소비는 40%나 감소했다. 자영업자와 도시지역 노동자 가계 의료비가 각각 16.9%, 15.5% 감소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실직 가정의 의료비 지출 감소폭은 매우 크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절대적인 의료비 지출액이다. 1998년 실업자, 자영업자, 도시 노동자 가계 의료비는 각각 55100원, 51400원, 50600원이다. 실업자 가정이 다른 집단에 비해 의료서비스를 보다 많이 이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업자 가정은 의료이용을 가장 많이 하지만, 경제위기에 따라 의료비 지출이 가장 크게 줄어들었다.
    건강상태의 변화도 있다. 김한중 등은 IMF 이후 우리나라 사망률 변화에 관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주2)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위기와 사망률의 관련성은 유의미하게 나타난다. 전체 사망률은 경제위기 발생 1년 후부터 유의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위기 직후부터 증가하였다.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위기 직후 첫 1년 동안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 한편 자살률은 경제위기가 발생한 3개월 후부터 6개월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에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경제위기 전 양상으로 회귀하였다. 이 연구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위기로 야기된 실직 또는 수입의 감소 그리고 물가 상승 등 외적 요인이 스트레스와 같은 질병의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사망률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박정한 등도 경제위기가 원인별 사망률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는데,주3) 실업자수와 유사한 변화양상을 보인 사망원인별 사망자수는 자살, 패혈증, 빈혈, 정신 및 행동장애, 근골격계 및 결합조직 질환, 비뇨,생식기계 질환, 피살 등이었다. 1997년 말과 1998년 초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으나 1998년 말부터 사망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사망원인 질환을 보면, 허혈성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외에도 호흡기 결핵, 폐렴, 인플루엔자, 만성호흡기질환, 당뇨, 기타 내분비,영양대사성 질환, 주산기에 기원한 특정 병태, 자궁경부암 등이었다. 또한 자동차 사고와 선천성 기형․변형 및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사망은 1997년 말을 전후하여 크게 감소하였다. 연구자들은 경제 위기가 경제적 취약계층 외에도 여성과 노인, 장년기의 경제활동인구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특별히 노동자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환경의 악화와 산업안전보호의 후퇴이다. 경제위기 이후에 일시적으로 감소하였던 연간 노동시간은 1999년 2497 시간, 2000년 2447시간으로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강도가 크게 강화되었다. 1998년과 2001년 사이에 70건 이상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제가 완화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부에 추산에 의해서도 산업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가 1996년에서 98년 사이에 각각 41%, 15% 감소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초래한 노동자의 안전보건 악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제위기 시기에 산재 발생률 자체는 약간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중대재해와 사망률은 오히려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가 많은 산재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안전의 위협은 경제위기에 의해 크게 악화된 것이 명확하다.


    경제위기 - 빈곤 - 건강파괴의 인과관계

    우리는 앞에서 경제위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부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종류의 건강위협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날 뿐, 자본주의 질서에 내재된 것이다. 현존하는 사회질서에 의해 건강이 파괴되는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산업재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재해 문제는 어느 정도 그 실상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8~9년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어든 노동부 예산이 산재예방사업 예산이라는 사실은 경제위기와 여기에 대한 시장적 반응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4) 더구나 노동 현장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산재사고가 빈발하는 바로 그 때 이루어진 결정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라니 딱한 일이다. 주5) 산업재해가 노동하는 자에게 생기는 건강위험이라면, 경제위기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을 박탈당한 자에게도 심각한 건강위험을 불러온다. 산업재해가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 파괴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운동방식과 직접 연관된 실업과 이로 인한 빈곤으로 인한 건강문제는 좀 더 간접적이고 교묘하다. 물론 둘 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희생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꼭 같다.
    1998년의 경제위기가 노동을 박탈하거나 혹은 노동과정에서의 건강 피해를 강화하거나, 누구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전제인 한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패배하거나 배제당함으로써 삶과 건강이 파괴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가 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 9월 전국의 3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업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업자들의 36.7%는 불안감, 28.3%는 우울증, 22.1%는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별거 이혼 사별'등을 겪은 실업자 10명 중 8명은 `신경이 예민하고 마음의 안정이 안된다'는 불안심리상태, 10명 중 4명은 `죽고 싶은 기분'이라는 우울 증세를 보였다. 주6)
    그러나 이러한 건강의 파괴는 앞의 예와 같은 몇 가지 간접적인 결과들을 제외하면, 반드시 “희생자 비난하기”가 아니더라도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자살과 같은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형태가 아닌 한,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판단이 유보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단이 아닌 개인의 경우 시장과 자본-빈곤-건강의 연결고리는 대부분 은폐된다. 그렇지만 1998년의 경제위기가 단지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건강의 연결고리를 드러내는 역할(물론 전체는 아니지만)을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건강피해는 사회적 맥락으로서의 시장은 빠진 채 복잡한 개인적인 요인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말이다.

    --------------------------------------------------------
    주)
    1) 빈곤율은 최저생계비 이하 가계지출을 보인 도시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2) 김한중 등. 한국의 IMF 경제위기 전후 사망률의 변화.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연제집, 2001

    3) 박정한 등. 한국에서 경제위기가 원인별 사망률에 미친 영향.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연제집, 2002

    4) 1999년 정부의 산재예방사업 예산은 전년대비 30.9% 감소한 액수로, 예산 감액에 따라 축소된 사업부분은 안전보건시설 개선지원 및 융자, 안전보건연구 및 국제협력, 안전문화운동 추진 등이다. 노동자 신문 1999년 1월 5일자

    5) H자동차 조합원들 가운데 87.6%가 목, 어께, 팔꿈치, 손, 허리의 통증 및 감각이상을 호소해 1998년 한해 동안 노동강도가 매우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이를 “회사가 무차별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이후 일방적으로 UPH(시간당 생산대수)를 조정해 노동강도를 높여온” 결과라고 해석했다. 노동과 세계 99년 2월 15일자

    6) 1999년 2월 11일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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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신자유주의와 노동자건강
    1. 자본주의체제의 공황적 성격

    역사상 대부분의 생산양식들은 필요비용 이상의 초과분 즉, 사회적 잉여를 생산해 왔다. 서구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대부분에서 지배적으로 수용된 자본주의는 두말할 나위 없이 더욱 가혹하다. 자본주의체제는 시장지향적인 상품생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개인주의적이며 탐욕적이며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양식을 기초로 한다.

    자본주의체제는 임금노동착취와 자본의 경쟁적 축적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쟁과 효율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이 체제는 과잉생산, 재고누적, 수익성 저하, 부도, 도산, 실업을 수반하며 체제적 위기에 직면한다. 이는 공황으로 나타나는데 자본주의 시장문제와 공황문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문제다. 자본주의체제는 본질적, 태생적, 항상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화폐론을 분석한 본 펠드(W.Bonefeld)는 과잉이윤축적은 과잉착취의 다른 표현이며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은 노동조정 즉 노동해체의 또 다른 표현이라 했다.

    김수행교수는 그의 <경제변동론>에서 자본주의경제는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이 일어나는 환경이고 이 환경 안에서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그 성장자체를 중단시킬 수 있는 공황의 원인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공황의 원인이 작용하여 유효수효의 부족이나 신용질서의 혼란 등 공황을 예비한다. 공황의 폭발은 회피할 수 없으며 또 이 공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들(경제성장을 파괴시킨 원인들)이 일시적으로 해소되어 자본주의경제는 새로운 성장을 시작한다.

    경기변동이나 공황적 상황을 극복하는 자본주의체제의 복원력은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자본은 노동을 개별화하여 통제관리하고, 잉여노동력의 착취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며, 확대재생산은 이윤율 저하라는 경향적 법칙을 통해 위기에 직면하지만 노동착취라는 구조조정을 통해 자본은 위기를 극복한다. 개별화된 노동자는 경기의 상승기나 후퇴기 할 것 없이 자본주의체제 유지를 위해 재배치된다.

    노동의 재배치는 자본주의 상품시장 확보전쟁이든 제국주의 자원침략 전쟁이든 모두 노동자를 동원하며 이는 실업을 해소하는 자본의 정치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체제의 공황적 성격은 자본의 세계화와 더불어 구조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빠른 속도로 주기적 반복을 거듭한다. 자본주의체제의 위기가 증폭하면 자본은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데 노동을 주요대상으로 한다.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은 경제불황이나 경제위기의 자연스런 결과가 아니다. 자본은 자신의 재생산위기를 노동자들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이용한다.

    2.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15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의해 시작된 서구 제국주의 침략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과 후발 자본주의국가인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식민지국가는 제국주의 상품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원료는 물론이고 노동력의 무제한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식민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오늘날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는 양 차 세계대전, 한국전과 베트남전을 거치며 세계 제1의 정치, 경제, 군사 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이다. 이라크침략전쟁에서 보듯이 전지구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노동과 자본의 타협에 의한 지속적인 경제성장모델인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80년대 공황을 경험하면서 통화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였다. 하이에크류의 구자유주의인 시장근본주의와 레이거노믹스 및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가 결합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군사력과 결합된 금융자본주의의 극단적 모습이다. 18c 암스테르담, 19c 런던이었던 금융중심지는 20c 이래 뉴욕으로 이전하였고 미국은 뉴욕 월가와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으며 자본주의 세계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1960년대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과 1971년 닉슨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 중지, 이로 인한 1973년 고정환율제 파산으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미국의 달러화에 의한 세계지배, 세계적 인플레, 달러발권을 통한 화폐권력이 수립된 것이다. 이어 1989년의 동구권의 몰락으로 뉴욕금융자본의 세계지배와 침략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IMF외환위기 이후 변동환율제로 전환하였고 1999년 4월 금융시장 완전개방으로 금융의 세계화체제에 편입되었다. 이제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될 채비를 갖춘 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 소수의 번영과 다수의 빈곤(95:5의 사회)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산층의 몰락과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있다. 셰계화는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립국면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자본의 이윤극대화와 경쟁적 생존전략은 문명화에 대한 위기를 초래하고 자본주의 진전이 가져온 첨단기술의 승자와 패자, 노동계급을 위한 진혼곡, 더욱 더 위험한 세계(실업, 범죄, 전쟁) 등으로 노동의 종말을 예고하였다.

    19c <금융자본론>의 저자 힐퍼딩은 자본주의 공황의 형태는 금융공황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금융자본은 수많은 종류의 파생금융상품을 생산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1973년 달러-금본위체제가 붕괴하고 변동환율제가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통화제도라 할 수 있는 달러-월스트리트체제(dollar-wallstreet system)가 출범하였다. 이는 한 국가의 화폐발권과 금융관리에 대한 권리의 박탈과 부(富)의 일방적 이동을 의미한다.

    오늘날 세계화의 양상은 식민지 상품시장과 원료확보를 위한 전통적이고 군사적인 제국주의 침략과는 달리 금융시장 지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자본주의 본래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소유보다는 개별기업의 최대한의 이윤추구가 무정부적인 경쟁을 초래하는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농업과 공업의 불균등, 기업간 불균등 발전이 격화되고 이는 자본주의 세계전쟁으로 나아간다. 달러-월스트리트 체제하에서 소위 IMF식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금융자본에 의한 노동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강화할 뿐이다.

    3. IMF체제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주의 체제는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오늘 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는 한 기업이나 한 국가 내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관철해 나간다.
    1960년대 이래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해 오던 한국 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경기후퇴와 마이너스 성장, 대량실업이라는 최대의 시련에 직면하였다. IMF구제금융에 다른 경제운용 프로그램은 IMF와의 정례협의 하에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경제신탁통치로 전락하였다. 그리하여 물질적 풍요와 성장 그리고 선진 경제대국의 대열에 진입하겠다던 희망은 좌절로 바뀌었다. IMF금융위기 원인에 대해서는 내부요인으로는 개발연대의 한국경제성장모델로 대표되는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중심경제구조와 정책실패다. 외부요인으로는 냉전질서 붕괴, 거대 초국적 자본의 확대와 급격한 이동이다.

    IMF이행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정부의 경제주권은 상실하였고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1998년이후 IMF외환위기 5년간은 구조조정 경제정책의 핵심이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유연화로 귀결되었다. 임금, 노동시간, 고용의 전부문에 걸쳐 노동의 유연화가 전개되었다. 외형적으로 임금이 인상되고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2004년 상반기 현재 실업률이 3.9% 수준에 머무름에 따라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제고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대와 노동자간 임금격차의 확대, 실노동시간의 증가, 고용불안의 증대 등 IMF외환위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재벌대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해고로 이어졌고 사회적으로는 실업문제를 야기시켰다. 실업은 IMF금융위기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다. 특히 현대 경제의 성장전략인 지식과 기술 혁신주도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포드주의 생산방식인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 등 유연생산방식을 채택한다. 그것은 유연기업과 유연노동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1980년대부터 전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은 1990년대 자본시장의 개방과 세계화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IMF금융위기 이후 노사간에 벌어진 대립과 갈등은 바로 노동유연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업의 존립을 위한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생존권 확보투쟁이었다.

    구조조정을 통한 자본의 노동유연화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후퇴하고 있으며 노동현장의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통한 노동착취는 강화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극대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법을 개악한다.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동시장 내 이중구조를 강화 내지 고착화시킨다. 저임금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양산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불가피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산업(노동)재해를 빈발하게 한다.

    4. 신자유주의 공세와 노동자 건강

    1984년 157,800명을 정점으로 1998년 51,000여명까지 계속 감소해 오던 재해노동자수가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계속 증가하여 2002년 현재 82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인 사망자수가 2,600여명에 달해 후진적이다 못해 야만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산재로 인한 공식적인 경제적 손실만도 1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산재직업병은 전통적으로 제조공장과 건설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보험서비스 등 전산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사업장과 근속기간 1년미만 사업장에서 전체재해의 60.5%로 재해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유연화로 인한 비정규노동자들이 높은 산재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노동환경이 월등하게 좋다고 볼 수도 없다.

    1970년 창사이래 현대중공업은 32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70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 최근 6개월 사이에만도 1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였는데 그 중 7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다. 박일수 열사의 분신은 물론이고 최근 현대 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요양중인 노동자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 두명의 자살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져온 노동환경 악화는 규모에 상관없이 전사업장, 전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965~75년의 10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연인원으로 수십만명에 달했는데 부상자 7만여명에 전사자가 5,000여명이었다. 이와 비교할 때 산재로 인한 부상자나 사망자수는 가히 전쟁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망만인률에서 보면 영국보다 20배가 높고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4배나 높게 나타난다. 은폐율을 감안하면 더 높을 것이다.

    지난 3년간 근골격계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가 961%나 늘어났고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산업현장의 노동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95년 한국통신전화교환노동자들의 검진을 통해 확인되기 시작한 근골격계질환은 집단적으로 발생하거나 그 심각성이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이나 노동조건 개선 또는 시설을 마련하기보다는 노동자개인의 안전 의식이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재해는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상실하고 생존권의 위협에 처하므로 사실은 노동재해(勞動災害)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재해는 노동과정의 사고로부터 발생하는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인 자본의 이윤축적과 확대재생산에서 비롯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고용불안과 노동재해에 노출된 채 대량생산의 톱니바퀴에 끼어 압착당하는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값싼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재해는 단순히 불행을 당하는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에게 항상 가까이 존재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얘기하는 상부구조의 개혁은 진실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부 자본주의 생산구조의 현실을 외면한 그 어떤 제도개선이나 정치적 구호도 자본의 이윤확보에 중심이 있음을 노동현장에서 확인된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하루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는 일용건설 노동자, 불법체류의 멍에를 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단순 노무 서비직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그리고 장애인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윤착취의 대상이 되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본의 과잉축적은 과잉착취의 다른 표현이라 했다. 자본에 의한 노동의 분할 지배 전략은 노동재해 부문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비정규직의 문제 특히 건설, 제조업 현장의 하청 노동자 문제는 자본에 의해 쳐진 정규와 비정규 노동자 분할 지배의 표본이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는 대량살상과 과잉노동력폐기의 극단적 단면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부분은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지급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열되면 될수록 자본이 비정규하청노동자들에게 이를 폭력적으로 전가하여 광범위한 노동재해를 유발시키고 있다.

    노동재해는 자본의 이윤추구와 맞물려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엉터리 산재통계를 유지시키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노동재해의 현실을 은폐하거나 개인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적 저항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노동운동 역시 조직된 다수 노동자들의 요구와 문제에 급급한 나머지 자본의 밀려오는 재난과 재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단체협약 모범안 총 14개장, 188조항 중 산업안전보건 관련 장은 24개 조항이다. 실제 제조업현장에서는 임단협 시기에 산업안전보건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임금, 고용 등에 밀려 한계에 직면한다.
    노동현장에서의 노동 개선과제는 노동조합의 조직적 규모나 힘의 뒷받침 없이는 확보할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경제(개발)성장과 노동자 건강의 선후문제 내지 조화를 둘러싼 철학이다. 노동현장의 산재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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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신자유주의와 노동자건강
    1.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확산과 노동자건강권운동의 흐름

    2000년 산재추방운동연합이 해산하기까지 산재추방운동 또는 산업안전보건운동으로 불리어진 노동자건강권운동의 주요한 쟁점 내지 과제를 살펴보면, 산재 발생에 따른 사후적 대책을 요구하거나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투쟁이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 쟁점을 형성하거나 주도하는 투쟁보다 제도 틀 내에서 문제점을 촉발시키고 개선책을 요구하는 투쟁이 주요한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노동자 참여권을 요구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투쟁을 벌인 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현재의 안전보건 패러다임을 유지한 속에서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까지 노동자건강권운동의 주요한 관심사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유해 환경 또는 유해 물질에 대한 예방 유무를 따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산업현장이 아닌 곳에서 발생하거나 그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기 어려운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더욱이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노동자건강권운동의 주제 밖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컸다. 산업재해 피해 단체를 중심으로 보상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운동의 흐름은 주어진 틀 내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산재추방운동의 성격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안전보건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철되고, 산업현장에서 안전보건의 최소 기준과 제도가 후퇴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노동자건강권운동이 개별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인 노동운동의 과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주요한 내용과 쟁점으로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IMF 위기 이후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소위 IMF, 세계은행, 미국정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서 전망한 것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율을 증대시켜 투자증대를 가져오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시장개방에 따라 수출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해외자본의 유입이 커지게 됨으로써 기업의 투자가 증가하고 고용창출 및 실질임금의 상승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하였다. 더욱이 저숙련층의 고용기회가 확대되어 저소득층의 임금증가율이 평균을 상회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빈곤층이 감소하여 소득불평등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장개방에 따른 수입증대와 해외직접투자의 전후방연관효과 상실로 경제성장률을 높이지 못할 뿐 아니라,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소싱으로 실업률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소득계층간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선진외국과 달리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복지의 과잉(?)과 생산력 정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적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은 매우 큰 부작용만 낳는다는 사실을 몇 년간의 뼈아픈 경험으로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한국에서 관철될 수 있었던 것은 내적 필요성보다 외적 변수가 주요한 힘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영국과 미국 등 선진외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전후 안정적인 성장의 동력이었던 복지의 확대 전략이 생산력의 정체와 고실업률로 현상화되어 나타나면서 내적으로 공공부문의 민영화, 복지의 축소, 규제 완화를 달성하고, 이를 외적으로 확대하여 상품 뿐 아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달성함으로써 축적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반면, 한국은 개발독재식 성장의 한계로 인한 축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차용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IMF 위기 이후 내적 준비가 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의 도입 배경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광범위하게 비정규 노동이 존재하였고, 법적 제도적 장치 또는 규제 장치와 무관하게 자본이 생산 현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상황에서 선진외국과 같이 과도한 사회복지 비용과 규제장치 때문에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자본의 주장은 완전히 전도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결국 자본이 OECD 표준을 외치며, 노동의 유연성 운운하는 것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더 이상 개발독재식 성장정책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새로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기제를 활용하여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새로운 성장담론을 이어져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2.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서 근골격계투쟁의 의의

    IMF 이후부터 본격화된 구조조정과 규제완화의 흐름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직접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은 노동자를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고 있고, 작업조직 및 작업공정의 변화와 함께 노동강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위험작업 및 부담작업이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한도를 넘는 노동강도를 감내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부담이 증가하고 누적되면서 근골격계질환이 산업 현장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IMF 이전에도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근골격계질환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성장하여 산재보상을 신청하게 되면서 심각하게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지금의 근골격계질환의 문제는 과거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과거의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폭력적인 노동과정 및 노동통제의 전근대성에 무게중심이 있었다고 한다면,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노동통제 및 노동과정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문제가 직접적인 지배와 장시간의 노동을 통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고 하다면, 현재는 간접적인 지배방식과 노동과정의 내포화, 그리고 단위 시간당 노동강도의 강화에 무게중심이 있다는 데에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절대적 수치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물리적 부담은 훨씬 더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와 달리 고용불안의 정도가 매우 심해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부담에 대한 저항이 쉽지 않게 되었고,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규제개혁’이라는 논리로 안전 및 보건관리자 선임 및 안전 장치의 마련 등 안전보건의 최소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안전 장치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근골격계질환 등 신종 직업병이 증가하면서 사망, 중대재해, 사고성재해 등 악명 높은 재래형 산재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숱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첨병 국가인 영국과 미국조차도 최소한 산재 사망을 포함하여 재래형 산재 문제가 전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결국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존속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정책 내지 이데올로기 기제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타국에 비해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의 증가에 맞선 투쟁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투쟁이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규제완화에 맞선 투쟁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집단요양투쟁은 형애화되어 있는 산재보험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투쟁이자 개별화된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산재문제를 집단적 쟁점으로 만드는 투쟁이란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은 건강문제 또한 노동분할정책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투쟁이 단위 사업장을 뛰어 넘어 전체 노동자의 연대로 발전하거나, 최소한 현장의 조직노동자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전체, 즉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향후 자본의 조직화된 대응을 돌파하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임단협 투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배치하는 전술적 태도를 보인다면, 그러한 경향이 더욱 커지고 문제의 해결은 더욱 더 구조화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3.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투쟁과 사회권 강화투쟁의 연계

    향후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집단요양투쟁은 산재보험제도의 구조적 개혁,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의 포괄적 권리의 쟁취 투쟁 등과 연계되어야 한다. 특히 산재보험제도의 구조적 개혁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 연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노동분할 정책을 통해 비정규 노동으로 전가함으로서 문제를 회피하려는 총자본을 공격하기 위한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사회안전망으로서 최소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산재보험에 대한 구조 개혁은 산재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첫출발이라 할 수 있다.
    아프고 병들고 다치면 어떠한 전제 조건과 장애물 없이 손쉽게 노동자가 의료를 이용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권리,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로 언제든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완전하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출발은 지금과 같이 근로복지공단이 사전에 심사하고 인정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가 신청하지 않더라도 바로 보상과 보장이 이루어지고 사후에 평가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근로복지공단의 전면적인 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산별 노조와 민주노총은 단위 노동조합의 집단요양투쟁의 동력을 모아 사회개혁투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일관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의 사회권쟁취 투쟁은 협상을 잘 하면 쟁취되거나 운 좋으면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의 투쟁과 요구를 모아내고 단일한 투쟁력과 협상력으로 연계시키지 않는다면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작년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집단요양투쟁을 산재보험제도 개혁투쟁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민주노총의 계획이 현실화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쉬웠던 상황이라 하겠다.


    4. 기업살인운동의 의의와 노동자건강권운동의 과제

    이러한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사회권 강화투쟁과 함께 전체 노동자들이 관심을 갖고 투쟁해야 할 문제가 바로 산재 사망 및 중대재해 등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투쟁이다. 일명 ‘기업살인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투쟁은 그동안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형식적인 산업안전보건법 이행 유무로 제한하고 이를 통과하면 책임을 면해주었던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이다.
    자본의 통제 하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험과 안전보건의 문제를 노동자가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안전보건법의 이행 유무만으로 제한하지 않고,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강상의 책임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만약 사업주의 책임을 산업안전보건법에 국한할 경우 구조화된 안전보건의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총자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감시 기전이 작동하는 조직노동자의 영향력을 벗어난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여전히 성장의 논리, 전사의 논리로 무장한 정부 관료, 검찰, 법원 등 지배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며, 법적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리가 현실인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논리를 다 떠나서 현재의 상황은 사업주의 처벌을 포함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지 않고서 안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루에 7-8명의 노동자가 노동과정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문제의식은 매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단지 귀찮고, 적당히 덮어버린 채 지나쳐도 되는 문제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인권과 노동자의 복지는 수사에 지나지 않고 여전히 70-80년의 향수에 젖어 있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문제의 심각성 또는 경각심을 일깨울 뿐 아니라 산재문제를 회피하고선 사업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노동자건강권운동이 산재 발생 후 사후적 대응이 주를 이룬 수세적 투쟁이었다고 한다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의 과제를 노-자간 대립의 주요한 쟁점으로 만들 수 있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 과제란 점에서 기업살인운동의 의의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중대한 안전보건 문제를 발생시킨 사업주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해야 하고, 포괄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못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론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총자본과 대립이 격화될 수밖에 없고, 구체적으로 사업주에게 중대한 위협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총자본의 약한 고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기업살인운동의 의의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중대재해 및 산재사망을 일으키는 대규모 사업장의 산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본의 양보만이 문제의 일보 진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데, 당연히 현 시스템 하에서 문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산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토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업주 자체를 목표로 하는 투쟁은 사업주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갈 것이다.

    산재추방운동연합의 해체를 계기로 노동건강연대 등과 같은 새로운 조직이 결성되고 새로운 운동 주체와 조직적 틀이 마련되고 있는 노동자건강권운동 진영은 내용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기업살인운동,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투쟁, 산재보험제도 구조 개혁을 포함한 사회권강화투쟁 등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투쟁의 과제와 쟁점을 갖고 운동 전선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투쟁은 과거보다 훨씬 더 현장 노동자의 조직적인 투쟁의 요구와 의지를 모으는 것이 요구되며,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한 사회운동 진영과의 연대와 협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항상 그래왔듯이 노동자의 요구, 사회적 요구는 노동자건강권운동보다 항상 앞서 있고, 운동의 진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노동자의 요구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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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신자유주의와 노동자건강
    “우리는 소통이 부족하지 않다. 반대로 우리는 소통을 너무 많이 한다. 우리는 창조가 부족하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이 부족하다.” -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1980년대 이래로 전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재편의 흐름은 전세계 민중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음이 속속들이 증명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금융자본 및 투기자본은, 1997~8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와 남아메리카 국가의 금융 위기를 초래했고,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넘긴 위기는 세계 금융 질서에 상존하는 위협으로 도사리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한 압력은 각국에서 실업률의 증가, 비정규직의 증가, 노동자 실질임금의 감소 등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의료, 교육, 전력, 식수 등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가 사영화됨에 따라, 민중들의 생존의 조건이 직접적으로 파괴되는 양상도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의 부가 상위 20%에 집중되어 하위 80%는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해악이 드러남에 따라, “다른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구호 아래 그 영향력을 확대해 오던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점차 적지 않은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각 대륙과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던 저항의 흐름은 1999년 시애틀 투쟁을 기점으로 점점 더 그 지향을 명확히 해 가고 있고, 전세계 민중들에 의해 조직된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구호 아래 대안적인 세계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저항은 무르익지 않은 듯하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소규모의 승전보는 간간이 들려오고 있으나 저항은 아직 많은 면에서 비체계적이고 산발적이다. 특히 20세기 초중반 투쟁의 흐름을 이끌었던 유럽 노동운동의 침묵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은 존재한다. 이에 그간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저항 중 몇몇 알려진 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성공한 저항의 예들을 소통시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의 상상력과 창조성, 그리고 저항을 매개하기 위함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은 옳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창조’와 ‘현재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을 통해 21세기형 저항의 전략과 전술이 구체화될 것이다.


    노동착취기업에 맞선 노동자-학생 연대
    노동착취기업에 반대하는 학생연합(United Students Against Sweatshops)의 예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보편화되면서 일반화된 생산 양식 중 대표적인 것이 제3세계로의 위험산업 혹은 노동착취산업의 외주화이다. 기존에 제1세계에 존재하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유해한 작업환경의 노동착취기업은 자국 노동자들의 크나큰 저항에 직면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원거리 무역에 제약이 없어지게 되자, 초국적기업은 그러한 노동착취 공정을 제3세계에 유치함으로써 초과 이윤의 착취를 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 일대에 광범위하게 초국적기업의 외주공장이 생겼다. 이들 초국적기업의 제3세계 외주공장은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아동노동까지 혹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의 의류 및 신발, 갭스, 디즈니 등의 의류 및 완구 등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유포된 세련된 기업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장시간노동으로 혹사당하는 동남아시아 어린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세련된 기업이미지 뒤편의 추악한 실상을 폭로하고, 이들 기업이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운동이 미국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이 노동착취 공장을 제3세계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들과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들 회사에는 나이키, 리복, 갭, 디즈니 등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미국의 대학이 라이센스의 형태로 이들 기업과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많은 이득을 챙겨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생다운 패기와 창조성을 발휘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Behind The Label", "Anti-Sweatshop"등을 구호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곳에 초국적기업의 제3세계 공장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비디오로 촬영하여 링크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마련하여 대중들이 이들의 지침을 따름으로써 회사에 직접적인 타격이 되도록 하였다. 한편 각 학교 캠퍼스에서는 ‘대안적 패션쇼’를 열어, 문제가 되는 회사의 의류를 입고 신발을 신은 모델이 패션쇼를 벌이는 동안, 장내 아나운서는 이들 회사의 악랄한 노동착취 형태를 고발하고 촬영한 비디오를 상영하여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이러한 캠페인에는 30여 개 이상의 학교가 참여하였고, 1999년에 이르러 이들은 노동자권리협회(Worker Rights Consortium)를 창립하여, 지속적으로 학교와 계약을 체결한 회사의 노동조건을 감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들은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도 이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운동의 성공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운동 방식 덕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중요 조건은 제3세계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성공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운동 방식 덕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중요 조건은 제3세계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초국적기업의 제3세계 하청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였고 초국적기업에 대항하였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의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예를 들어 레비 스트라우스 기업에 의해 해고된 샌 안토니오의 노동자들은 그들만의 조직을 만들어 불매운동을 벌였다. 멕시코 접경지역인 마퀼라도라에 있는 노동자들은 무자비한 탄압 가운데에서도 독립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진행하였고 공장을 점거하였다. 캠페인을 진행하던 학생들은 이들과 직접적인 연대를 시도하였고, 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할 수 있었다. 투쟁하는 노동자 집단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은 그들이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권리를 위하여 싸우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투쟁에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들의 운동은 미국의 노조운동과도 적지 않은 관계를 가졌다. 존 스위니에 의해 주도된 미국노총(AFL-CIO)의 개혁노선은 이전의 보수적인 색채를 다소나마 버리고 이러한 학생들의 운동을 여러 모로 지원하였고, 역으로 학생들의 운동 역시 미국노총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개혁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운동은 외부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초국적자본의 행태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학교 자체가 얼마나 기업화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게 되었다. 학교는 기업과 갖가지 계약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학내의 다양한 서비스들을 노동착취기업에게 외주화함으로써 이득을 챙기고 있었고, 강의실 안에서는 저임금의 대학원생들을 착취함으로써 강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학교의 기업화에도 저항하였다. 강사노조를 지원하였고, 노조에 적대적인 다양한 서비스업체와의 계약에 저항하였으며, 학내의 청소부, 식당조리사 등으로 이루어진 노조를 지원하였다.

    노동착취기업에 반대하는 학생연합의 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저항하는 운동이 어떠한 형태를 취할 것인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들의 운동은 전지구적이다. 발달된 통신 수단을 통하여 이들은 제3세계의 노동착취 현장을 고발하고 그것을 본인들의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제3세계 노동자와 제1세계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이 연대하여 초국적자본의 착취에 대항하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몇 가지 한계 및 위험성도 지적되고 있다. 미국노조의 보수적인 성향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편 학생그룹 내부의 인종 문제도 심각하지는 않지만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백인 학생들인데 이들이 자국 내의 인종 문제에는 무관심하면서 이 운동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아직 이 운동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노동착취 기업에 반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들의 투쟁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물결을 막아내고, 새로운 세상의 한 끝을 열어갈 지에 대하여 많은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저항
    -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봉기의 예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전지구적으로 전면화되면서 노동 구성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 있다.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외주화의 결과로 노동의 유연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층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노동 구성의 변화에 따라 운동 진영에서는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의 문제가 점점 더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불안정노동자는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조직화되기 어려운 많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그들을 묶어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불안정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들의 투쟁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심은 만큼 거두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안정노종자 투쟁의 가능성을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봉기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2001년 8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실업노동자들이 봉기하여, 300여 곳 이상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아르헨티나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다. 이들은 2001년 9월까지 이러한 고속도로 점거를 광범위하게 벌여 나갔고 노조는 파업으로 이러한 실업노동자들의 봉기에 연대하였다. 이 운동은 노조뿐 아니라 지역 상인, 연금생활자, 공중보건 종사자, 교사,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시민세력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며 지속되었고, 결국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이 운동은 노조뿐 아니라 지역 상인, 연금생활자, 공중보건 종사자, 교사,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시민세력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며 지속되었고, 결국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사실 이들의 승리는 긴 시간에 걸친 피땀어린 투쟁의 결과였다. 처음에 이들은 평화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고 청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정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이들은 전술을 바꾸었다. 그들은 공공기관을 점거하고 때로는 방화하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6년 6월과 1997년 4월에는 두 곳의 도시에서 도로 점거와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은 사영화된 전력회사에 의해 자행된 전력 요금의 인상과 단전 조치에 대해 항의하였다. 광범위한 사영화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나 정부는 IMF가 요구한 긴축 예산 정책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런 대책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은 더욱 단련되었고 보다 전투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들의 투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시장주의자들에 의하여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수행되고 있었다. 공기업은 광범위하게 매각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된 많은 수의 공장들이 폐쇄되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하되었고 노동조건이 악화되었다. 수천 명의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수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였다. 노동조합은 큰 타격을 입어 세력이 약화되었다. 교육, 의료 서비스와 같은 공공 서비스 제공이 제한되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80%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빈곤선상에서 근근히 생활을 꾸려 나갔다.

    한편 주체적 측면에서 조직화를 위한 조건이 충족된 면도 있다. 해고된 산업노동자들, 청년실업자, 여성 가장 등이 주변부 도시지역에 광범위하게 밀집되어 있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이전에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노조 활동과 집단 행동의 경험을 가졌던 다수의 해고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랜 동안 지속된 경제 위기로 인하여 여성과 청년실업자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고 전투성도 증가되어 있었다. 이들의 밀집 지역이 고속도로와 가까이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이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독립적으로 조직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당시 보수화되어 있고 관료화되어 있던 노조나 정당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조직화를 진행하였다. 사실 이전부터 기존 노조에 의해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는 모두 실패하였다. 이는 이들이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규직 노조원의 투쟁에 ‘동원’하기 위한 세력 정도로 생각하는 등, 이들 조직 자체를 부수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정당들에게는 더욱 기대할 것이 없었다. 이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조직하고 직접 행동을 행하는 전술을 채택하였다. 이들은 실업노동자운동(Unemployed Workers Movement, MTD)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풀뿌리 조직을 통하여 조직되었고 매우 탈집중화된 형태를 띠었다. 이들은 밑에서부터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가며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하였다. 모든 결정은 모두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참여하는 공개된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각 지역에는 독자적인 단위가 구성되었고, 이러한 지역 조직의 협의 기구가 존재했다. 여기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이 협의 기구에서 모든 투쟁 전술과 요구조건이 정해졌다. 정부가 협상을 제의하였을 때에도 이들은 대의된 대표와 진행되는 협상이 아닌, 이와 같은 공개된 협의 기구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협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함께 협상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형식화된 대표나 리더를 가지지 않았다.

    이들 투쟁의 성공에 있어 고속도로 점거라는 전술이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전술은 산업노동자들이 기계를 내려놓고 생산을 멈춘 것에 맞먹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전술은 물류의 유통을 막아 생산과 소비의 흐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이들은 고속도로 곳곳을 점거하고 집회를 열었다. 실업노동자 가족과 여성 가장들은 아예 고속도로 옆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까지 하였다.

    “운동이 진행되면서 요구조건들이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식료품 문제의 해결, 투옥된 수백 명의 동료 실업노동자의 석방, 식수,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보장에 대한 요구를 추가하였다”

    처음 그들의 요구조건은 국가가 보조하는 일자리의 창출이었다. 그러나 운동이 진행되면서 요구조건들이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식료품 문제의 해결, 투옥된 수백 명의 동료 실업노동자의 석방, 식수,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보장에 대한 요구를 추가하였다. 고용에 대한 요구도 처음에는 임시 고용에 대한 요구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최소임금을 보장하는 정규 고용에 대한 요구로 바뀌게 되었다. 특정 지역의 경우에는 이들이 주변부 도시를 장악하고 해방구로 선포하여 독자적인 권력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정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러한 지역적 요구를 넘어 전국조직인 MDT는 국가 부채의 상환 정지, 긴축 예산 정책 포기,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 포기, 공공 부문의 회복 등을 요구하였다. 2001년 9월에 전국의 실업노동자 대표, 노조지도자, 학생 대표,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2000여 명이 모여 6개의 주요 요구안을 작성하였다. (1) 구조조정 정책 중단, 구금된 활동가들에 대한 법적 절차 중단; (2) 긴축 예산 정책 중단; (3) 공공 부문의 고용 증대, 16세 이상의 모든 실업노동자들에 대한 식품 공급, 실업노동자에 대한 등록 절차 확립; (4) 영세농민들에게 1헥타르당 일백 페소(약 12만 원)씩의 지원금 지불; (5) 해고 금지; (6) 무장 경찰의 즉각적인 철수.

    노동운동의 침체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은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층의 증가를 그 이유의 중요한 부분으로 꼽곤 한다. 많은 노조 지도자들은 이러한 불안정노동자 계층이 조직하기도 힘들고, 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미미하며, 집단 행동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고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들은 불안정노동자 계층도 충분히 조직될 수 있고, 집단 행동을 벌일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크나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 운동은 지역의 운동이 단숨에 국가적인 문제 제기를, 더 나아가서는 전지구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운동 역시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운동의 주도 세력들이 보였던 지역주의의 문제, 운동의 진행과정 속에서 노조와 정당, 다른 운동세력과의 관계 설정 문제, 대안 권력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의 역할 등에 대해서 많은 논쟁점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전일적으로 관철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노동운동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심각한 파열을 내는 방법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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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역사는 고통받는 자의 말대로 실현된다 file


    얼마 전 한 신문사가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 한국사회노동문제 바로보기’의 연사로 나왔다. 그 강연회가 TV에 방영되던 날 우연히 보게 되었다.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될 이들이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은 선택과목이다. 두껍고 골치아픈 노동법책을 공부하는 판검사가 없다. 이들이 노동자 권리를 보호할 수 있겠나… ” 이런 말로 시작한 그는 시종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생존을 위해, 살길을 위해 모여있는 노동자들 앞에서의 교육이 아닌, ‘교양’을 찾아, 지식을 찾아 온 이들 앞에서의 강연은 너무 힘겨웠다고 말했다.
    하종강의 글과 말은 자주 접할 수 있다. 소위 노동운동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진보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시사주간지에 연재해온 사람들 이야기는 현실의 작은 고통에도 빠지기 쉬운 자기연민을 경계하라 하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그의 칼럼은 눈에 보이는 분노를 넘어서는 차분한 성찰을 주었다.

    잊고 있던 기본을 만날 때 가끔은 이것이 더 신선할 때가 있다. 노동운동이든, 노동자건강권 운동이든 각론에서 조금은 빠져나와 보편적인 운동의 원리를 확인하고는 이마를 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과건강』을 복간하면서 처음으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하종강이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은 평소 그가 하던 이야기보다는 좀 무겁다. 운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노동운동의 희망을 보고,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한다.

    『노동과건강』도 그런 기본에서 출발하고 싶다. 미약한 힘이지만, 큰 꿈을 꾸면서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 정치적 격변기다.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총선이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거라 보나

    탄핵 소용돌이 이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탄핵 싸움에 손해보는 사람들은 민중들이다. 탄핵이 있던 날 시장에 가보니 오후 4시가 되도록 개시를 못했다고 한숨을 쉬더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손님이 더 안 붙는다며 한숨이 깊다. 산불이 난 강원도를 봐라. 자원봉사자 조직이 안 된다. 폭설피해 입은 농민들을 봐라.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보고 울던 농민은 ‘지원 나오던 전경들도 집회 때문에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민중의 삶이 달라지나. 안 달라진다.
    정치적 격동시기에 보람있는 삶이 뭘까, 가치있는 삶이 뭘까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유럽은 노동자 중심정당이 금세기 최고 번성기를 누리고 있다. 변질된 사민주의라 해도…. 지금 이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많지 않다. 유럽식 사민주의, 미국식 순수자본주의, 남미식으로 양극화된 사회, 프롤레타이아 독재를 꿈꾸는 이들도 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거 아니냐.

    - 탄핵과 같은 일이 왜 일어났을까

    탄핵은 일제시대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결과다. 왜곡된 역사발전이, 왜곡된 자본주의 발전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세력이 분단정서를 배경으로 나와 다르면 바늘끝만한 차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초등학생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탄핵이 일어나고 방송국 아는 PD 한테 전화했다.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왜곡된 역사가 퇴장하는 순간 인거 같다, 맞냐?’ 맞는거 같다고 하더라 (웃음).
    수구세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5년만 참자’ 했는데, 노무현이 다음 5년을 이어받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극도의 불안이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다.

    - 최근 우리 사회 진보운동의 전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역사의식, 진보세력의 토대, 이런 혼란이 노무현대통령 시기의 혼란이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진보세력의 토대가 될 것이다. 지금 이후가 중요하다. 100년간 진행된 왜곡된 역사의 전환기가 될 거다. 근대화 과정의 부도덕한 세력이 정리되는 과정이다. 이번 친일인사 규명법이 누더기가 돼서 통과된 현장을 봤다. 통과를 반대한 사람들은 ‘자식된 도리’로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단발마적 비명이 나온거다. 수구세력이 역사의 전면에서 퇴출되는 국면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가 곳곳에 있다가, 두꺼운 얼음 밑을 흐르던 강물처럼 나오고 있다.
    길게 보자. 공무원노조를 봐라. 저기 강원도에서 전라도 소읍, 제주도까지 공무원노조 깃발이 나부낄 줄 알았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고등학생이 ‘소비에트 해체 이후 세계의 진보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가’를 묻는다. 질문내용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전교조 선생님들 덕분이다. 한 학생이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것에 분노하여 ‘의로운 사람들’의 대열에 함께 하고자 국회 앞에 갔다가 다음날 신문을 보니 소수 몰지각한 이들의 난동으로 뒤바뀌어 있는 걸 보고는, 아, 이 사회 모든 곳에 선한 세력을 누르려는 악한 세력이 있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1,600명 전교조 교사가 해직될 때를 봐라, 말이 1600이지 모아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가. 그러나 역사는 고통받는 자의 말대로 실현된다. 전두환, 노태우 처벌하자고 했을 때 얼마나 비장했나.
    당할 땐 고통스럽지만 진보는 빠르다. 민주노동당을 보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죽기 전에 노동자 정당이 헤게모니를 갖고 집권할 날도 볼 수 있고, 통일되는 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온갖 매체에서 쏟아내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파편화된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노동자의 덕목, 운동의 덕목이 뭘까

    노동자변화, 우리노사관계는 미국보다도 후진적이다. 케인즈주의적 노사협조가 대기업에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이 변하고 있다. 희생, 사명감보다 지금 대기업 간부들은 노동자가 살아가는 선택할 수 있는 한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희생적 투쟁을 해야 하는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다수인 상황에서 현대중공업노조처럼 갈거냐, 독일식 사민주의로 갈거냐, 정상적인 노조활동가 어디냐. 노조운동이 어디로 갈거냐, 어떻게 발전할 거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은 원래 잘 먹고 잘 사는 운동이다, 근데 이게 사회전체에 이익을 가져오게 잘먹고 잘 사는 걸 말하는 거다. 노동운동이 타락했다고 비판하는 자들을 보라. 현대중공업 노조를 보라.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있지만 노동운동은 쉽게 타락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할 때 계속 부결되지만 그 안을 보면 찬성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진다. 2/3가 되어야 규약이 통과되는데 과반수이상이 산별노조에 동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주점 티켓을 파는데 정규직노동자들이 한나절에 다 사 버렸다. 작년 유행했던 드라마의 유행한 대사가 뭐냐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거다.
    이건 인류애의 전통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는 거, 이게 노동자의 본성이다.

    - 새 집행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이수호 위원장이 된 것이 민주노총이 달라진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조직사회 안에 있는 이들에게 큰 차이로 느껴지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다르지 않다. 단병호 위원장 세대에 대해 오류가 있다고 평가하는 건가, 아니다. 단병호 체제를 깎아내리면서 이수호 위원장에게 새로운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이수호 위원장에게 요구하는 게 비정규노동에 관심을 가져라, 책임지는 투쟁을 해라, 사회연대적 전략을 가져라 같은 것들인데 새로운 요구들인가, 아니다. 조직 안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민주노총이 대기업노조 중심 인 것이 단병호 위원장의 잘못이었나, 아니다. 어느 특정한 정파가 그런 오류를 범한 게 아니다. 잘못이 아니라, 현실이 그런 거였다. 물론 차이가 없진 않다. 작은 차이를 크게 부풀려 큰 차이로 만들면 운동 전체에 손실이 될 뿐이다.

    -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다 보면 여전히 지원이 필요하고, 운동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교육을 다닐 때 대기업노동자, 공무원 노동자들도 많이 만나지만, 일반노조 조합원들 많이 만난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운 걸 보면 사회양극화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사회가 남미화 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대기업이 비정규노동자들 위해, 영세노동자들 위해 기금을 출연하려 한다. 이렇게 가는게 맞다. 나누어야 한다. 비정규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이다. 대기업노동자들이 자기일로 삼을 때가 됐다.

    - 그런데 이런 현실을 노조운동 비판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나..

    최근 현대중공업노조가 보여주는 모습은 노사관계가 협조주의로 갔을 때 최악의 안 좋은 행태를 보여주는 거다. 현장으로부터 노동자 권력창출을 못한 결과가 사회전체적으로 해를 끼치고 있는 거다.
    노동자의 삶이 양극화되는 건 사회의 비극이다. 부채감을 가져야 한다. 홍세화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지금 운동의 화두는 부채감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많이 공감한다. 잡상인들이 물건을 꼭 팔고 나간다는 게 교사들이라는 데 정말 그런 거 같다(웃음).
    양극화되면 공동체 전체가 불행해지는 사회가 된다, 같이 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기업노동자들은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 해도 노동운동을 비난하면 안 된다. 자신이 한 말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은 옳은 소리라 생각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시비를 걸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줄을 타는 광대가 균형을 잡는 건 부채로 조절을 하기 때문이다. 잘났다고 부채를 가운데로 들면 바로 줄에서 떨어진다. 공정하게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뱉어내는 건 사회에 해로운 것이다. ‘역사가 평가한다’ 부채를 어느 쪽에 펼칠까. 역사는 그 사람이 평등에 기여했는지, 차별을 공고히 했는지 평가한다.

    - 지금 노동운동이 편협하게 자기 이익만을 고집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자문제가 그것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통시적 관점에서 봐야 오늘의 노동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보인다.
    자기만의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걸 고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전체적으로 보자는 말이 먹힌다. 고달픈 활동 속에서도 정신적 만족감이 있다. 운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운동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정체되는 게 당연하다. 그럴 때는 일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어느 가치로 살 것인가. 노동운동은 본래, 가치를 고민하는 운동이다. 얼마전, 농공단지 비닐하우스에서 조합원 10명이 모여 교육을 한 적이 있다. 이분들도 함께 하려는 노동운동의 가치를 공감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 지난 1년 노무현 정권하에서 노동교육 다니는게 예전하고는 많이 달랐을 거 같다.

    대통령 여섯 번 바뀔 동안 노동자 권리 옹호하기가 지난 1년처럼 힘든 시기가 없었다. 내가 나가는 사적인 모임이 있는데 여기서 노동자 얘기를 해서 아무의 지지도 못 받은 건 작년이 처음이다. 노동운동 안하는 사람이 당당하게 노동운동을 비판한 적은 전에는 없었다. 가장 개혁적이라는 대통령 아래서 가장 보수적 상황이 연출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세력이 위기감을 갖고, 조중동이 총력을 들여 공격하고 있는 이 때, 노무현이 당선된 것만으로 개혁이 된 것처럼, 친노동자 정부가 들어선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이 착시현상을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성, 장애인의 권리가 높아지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민정수석이 되고, 국정원장이 되고, 법무부 장관이 됐다. 근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집시법이 개악됐고,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이건 한나라다이 밀어부친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아하, 그 사람들은 원래 인권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라는 게 중요하다. 변호사가 누구냐. 제도권이 부여하는 최고의 특권을 쥔 사람들이다. 개혁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거였다고 말한다.

    - 전경련이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대졸자들, 중고등학생들에게 까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교육하고 있다..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짓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한국 자본은 케인즈 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인간이 아니었다, 이게 당연했다. 지금 전경련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그 주장과 동일하다. 역사적 정당성을 잃은 것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전경련의 이론가들은 ‘평등의식은 기업의 적’ 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게 되었다. 원숭이 무리에서 실험을 해 봤다. 평등의식과 정의감을 태어날 때부터의 본성이다.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 비정규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나..

    통계를 봐라. IMF가 한국의 비정규 노동자 숫자를 줄이라고 했다. 한국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지 웅변하고 있다. 사회양극화가 혁명의 물적 토대라 기대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벼랑끝으로 몰리는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행할 힘을 갖는게 아니라 변혁의 힘을 잃어버리고, 파편화된다. 경제 양극화에 건강한 자영업자들도 설자리가 없어지는 형국이다.
    비정규 노동의 문제는 휴머니즘에도 위배된다. 경제에도 해롭다. 단위사업장에서 단기적 비용절감에 눈이 멀어 있지만, 한국경제의 이해관계와도 배치된다는 걸 깨달을 거다. 외국의 파견과 우리의 파견은 다르다. 전경련이나 경총이 외국을 인용하지만 맞게 인용한 적은 한번도 없다. 외국은 파견을 해도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이 나오고, 사회보장이 된다.

    - 노동자건강문제로 좀 화제를 돌려 묻고 싶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근골격계 투쟁에 대해 어떻게 보나

    근골격계 문제가 언젠가 터질줄 알았다. 10년 전에 그런 얘기 하지 않았나. 외국 사례들을 보면,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발전하면 근골격계문제는 터지게 되어 있는거다.
    근골격계 투쟁이 미조직노동자들, 비정규노동자들의 이해를 함께 대변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좀 애틋한 불안감이 있다. 조직노동자 운동이 정당성을 가질려면 미조직 노동자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노동자정서가 그걸 깨닫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니까. 학습하고 공부하는 노동자가 요구된다.
    근골격계 투쟁의 전망을, 역사적 의의를 고민해야 한다.

    - 노조가 산재문제를 풀 때 전문적, 의학적 문제로 풀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산재문제를 운동으로 만들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편견이 이 운동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그렇다. 척추모형 갖고 교육하는 노조 간부들이 있었다. 전문지식만으로 활동하는 간부들은 오래 하기 어렵다. 세계사 속에서 성찰, 고민이 없으면 어렵다. 잔머리 굴려서 성공하는 운동은 없다. 준전문가로 활동하는 모습을 극복하자. 전문지식은 전문가들에 맡기고, 노동자가, 노동운동이 맡을 영역이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라 했을 때 그걸 상상하는 게 불가능한 사회에 살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산재문제에 대한 노조운동의 대응도 장기적인 걸 고민해야 한다.

    -산업재해라는 용어가 노동자건강문제를 주변적 문제로 만들고, 편협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도 많이 말씀했었는데..

    산업의 입장에서 산업재해가 아니다, 노동자의 눈에서 노동재해가 돼야 한다. 노동문제를 봐라. 사회의 다수가 노동자인데도, 소수문제처럼 치부되어 왔다. 노동자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이 사회의 다수이므로 노동자건강문제도 다수의 문제다. 노동자가 국회에 들어가면 노동문제가 의제가 될 수 있을 거고, 노동자건강의 문제를 국회에서 중요하게 다룰 수 있다. 노동운동에서 건강문제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 외국의 선험적 사례를 봐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직장인의 건강문제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민예총 강좌를 나가서 젊은 친구를 만났다, 어느 학교를 나왔나 물으니, ‘저는 학벌없는 사회를 지향하기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더라. 작은 일이지만 신선했다. 그 후에 보니 ‘학벌없는 사회’ 단체도 생겼더라. 작지만 열심히 하면 누군가에게 호소력이 생긴다. 이에 비하면 노건연의 지평은 넓다.

    - 노건연 활동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없는지

    노건연에는 항상 부채감, 미안함이 있다. 노건연이 하려는 기업살인 운동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지만, 현재 참여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있나(웃음).
    노건연이 말한 선보장, 후판정이라는 산재보험 개혁방안에 대해서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통합과정, , 사회보험 전체의 통합 관점으로 이해했다. 장기적으로 보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 몇 년간 발행을 안 하던「노동과건강」을 복간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읽고 싶은 책을 만들어 달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노동자들이 읽고 싶은 매체를 만들어보는 거다. 지금은 다른 일들에 밀려 꿈만 꾸고 있지만..

    - 어떻게 만들어야 읽고 싶은 책이 나올까

    어떻게 만들어야 읽고 싶어할까 고민해보자. (웃음).

    인터뷰 후기
    이 인터뷰는 3월 15일에 이루어졌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고, 바로 행해진 인터뷰이기에, 4월 15일 행해진 17대 총선결과를 반영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탄핵에 대한 역사적 판단, 진보정당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 셈이다.
    아울러 역사는 고통받는 자의 말대로 실현된다는 그의 말은 현재의 진보운동에 주는 축사이자, 닥쳐올 고난 속에서도 기억해야 할 힘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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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제안함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따라서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사정책을 도입하여야 한다.” 이것이 2002년부터 노동건강연대가 주장해 온 「기업살인법」제정운동을 압축한 말이다. 노동건강연대의 「기업살인법」제정운동은 시작부터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동안 노동건강연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펼치면서 주로 들었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 또는 강화하면 되지 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가, 과연 특별법 제정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예방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과 문제제기는 반론이라기보다는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문제제기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즉, 기업살인법에 대한 논란은 본격적인 주장과 반론이라기보다는 문제제기수준에서 지지와 회의적인 반응 또는 반대수준의 논란이 있었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시작한 것은 단지 보복이나 응징의 차원에서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의 제도를 모방하고자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가 고민을 시작한 것은 비교적 단순했다. 왜, 산재책임자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감정적으로 처벌강화를 주장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산재책임자 처벌수준이 단지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의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법을 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사정책도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한 것이 구조였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고민하자 현행 노동안전보건정책은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러한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기업살인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업살인법」이야말로 현재의 문제점과 대안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년간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문제제기 자체에 역량을 집중했다. 덕분에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은 저변이 많이 확산되었다. 따라서 이제 단순한 문제제기와 주장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살인법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 나감으로써 현행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개혁해 나가고자 한다.

    계간『노동과건강』에서는 향후 3년간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기획시리즈로 엮어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제기해 나가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글로 ‘제1편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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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봄호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제안함 file
    박두용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장
    I.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의 함정

    산재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은 대부분 크게 ‘사전 예방적 정책차원’과 ‘사후 보상적 대책마련’이라는 틀로 나누어 접근한다. 정책수립과정이나 산재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에 대한 분석의 틀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산재문제에 대한 정책 보고서와 자료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논의가 이러한 관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 왔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식적 접근은 ‘사전=예방’과 ‘사후=산재노동자 보호’라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사전예방=산업안전보건법’과 ‘사후조치=산재보상보험법’이라는 사고가 지배하도록 한다. [그림 1]과 같이 우리나라 노동안전관련 법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라는 양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고체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체계에서 산재예방은 주로 전자에 국한되기 쉽고 논의자체가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안에 묶여 버릴 수밖에 없다.

    그림 1.JPG


    그 동안 산재예방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위와 같이 사전조치는 ‘예방적 차원’으로, 사후조치는 ‘피해자 구제’의 차원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산재예방 대책을 사전조치에 국한시키고 사후조치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일반적인 오류를 낳게 된다. 또한 사후조치를 사전예방과 연계시키기 위하여 취지나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른 산재보상보험법과의 연계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결부시키려는 시도나 주장이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는 산재보험제도가 산재예방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를 목적으로 사전예방과 다른 차원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반적 오류라고 판단된다.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사전예방강화라는 관점에서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무리하게 결부시킴으로써 실익도 크지 않으면서 제도의 본질적 측면을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방대책은 산재 피해자에 대한 사후대책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시간적 전후 개념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즉, 예방활동은 사건 전․후의 개념이 아닌 일상적, 지속적 활동이다. 따라서 예방은 사전예방측면과 사후조치 및 그로 인한 예방활동 강화를 모두 포함한다. 예방대책을 사후적인 구제대책과 구분한다면, 산재발생 시점이 아니라 주요 대상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사후 구제대책이 피해자를 주요대상으로 한다면 예방대책은 가해자 또는 책임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이란 현행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전형적인 예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은 지나치게 명령지시적인 규제(command control regulation)로 되어 있는 점과 기술기준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논하기로 한다. 모든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던, 하였던, 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노동과정에서 사전에 취해야 할 안전보건상 의무조치를 규정하는 것이 사전 예방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사후예방이란 문법적으로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산재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정부가 개입하여 다시는 그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함으로써 예방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과 같다. 만약 소를 잃었다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사후예방조치는 사고조사와 적절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사업주로 하여금 사전예방의무를 보다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인 것이다.
    사후보상에 대해서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직업병 인정기준’ 또는 ‘선보장-후판정’과 같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사후보상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전보상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거나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사고로 사망 또는 신체에 손상을 입었거나 직업병에 걸린 경우에는 사후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직업병에 딱 걸렸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몸이 상당히 불편한 경우 또는 그러한 노동환경에서 계속 일할 경우 직업병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일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면 이는 사전보상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명백한 위험작업에 대한 위험수당 또는 생명수당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엄청난 논란이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사전보상을 실시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나 주장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예방과 보상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산재예방을 위한 정책은 사전예방이라는 미명아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국한시키고 산재사고이후의 논의는 오로지 보상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노동안전보건정책과 노동계의 투쟁에는 오류의 함정이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 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표 1>은 이와 같은 인식체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법체계는 민법과 형법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민법과 형법만으로는 다양성과 전문성 또는 특수성을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비효율적이거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법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법을 보통 특별법이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법들은 모두 정부가 헌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즉 국가의 기본적 의무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므로 보통 행정법으로 분류하며 기능적인 측면에 따라 상법, 노동법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각 개별법에 처벌조항을 두고 있어 형법적 요소도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의 형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형식적 체계의 구분을 통하여 산재예방 수단을 검토하면, 산재예방 정책이나 수단을 강구함에 있어서 논의구조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안에 국한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표1.JPG



    II.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에 대한 구조적 한계

    1. 산재책임자 처벌현황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물론 일부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개략적으로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표 2>는 실질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처벌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 대한 처벌현황과 산재사망자수를 분석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구속된 자의 수로써 직접적인 처벌수준을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구속여부가 처벌수위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산재사망자수와 구속조치된 현황을 비교해 보는 것은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수준을 평가하는데 적절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2000년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108건으로 이중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하여 실제 처벌수준이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구속된 비율은 산재사망자수와 비교하여 1~2%수준에 불과하다. <표 3>을 보면 2000년도 한해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가 이루어진 9,246건 중 구속상태에서 공판이 이루어진 경우는 단 5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2>에서 2000년도 처리인원이 9,084인데 <표 3>에서 접수건수가 9,246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전년도에 발생하였으나 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2000년도 넘어 온 것 등이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108건으로 이중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하여 실제 처벌수준이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2.JPG
    표3, 4.JPG



    2. 산업안전보건법에 나타난 처벌수준
    일단 위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처벌되고 있는 수준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처벌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처벌수준을 대폭 강화하면 법원에서의 처벌수준이 다소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 형량수준은 다른 법과 비교하여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으며, 형량수준을 높인다고 해서 실제 처벌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검찰과 법원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검찰이나 법원이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처벌을 강화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지 몇 가지 현실을 살펴보자.

    3. 현실
    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공안사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가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공안사건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검찰은 몇 개의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데 과거 독재정권의 산물로 노동사건은 공안사건으로 분류되어 처리되고 있다. 공안담당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사업주를 기소할 때 처벌수준을 강화하려 할 것 같은가 아니면 낮게 처벌하고자 할 것 같은가?

    나.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의 사법권한은 오로지 산업안전보건법
    실제 산재사고가 나면 사고조사와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관리는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다. 물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초기에는 일반 경찰도 수사를 하지만 일단 그것이 산재사고라고 판명이 되면 대부분 사고조사와 수사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게 된다. 노동법에 대한 수사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인 근로감독관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의 수사범위는 노동관계법으로 국한되어 있으며, 산재사고의 경우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여부에 대한 수사는 일반 형법처럼 사고에 대한 과실치사상죄의 여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된 의무이행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을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정한 조항 위반여부를 찾아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산업안전보건법상 특별한 의무위반을 찾아내지 못하면 처벌하기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산재사고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샅샅이 훑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엉뚱한 특수검진 대상자가 누락된 것을 처벌한다든지 법정 게시물의 미게시와 같은 사항으로 처벌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고육지책처럼 보인다. 그러한 위반사항으로 과연 검찰이 높은 형량을 구형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법원은 높은 처벌을 선고할 수 있겠는가?

    현재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가 원론적인 주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틀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일 뿐이다.


    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는 ‘처벌을 강화하여 산재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누가 산재책임자인가’ 즉,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하는데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거리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그것이 구호로 나타나던, 현실에 적용된 모습으로 나타나던 간에 ‘처벌강화’와 ‘불가(不可)’라는 주장의 차원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데 그 장벽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테두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반론은 부지불식간에 모두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처벌강화나 불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재에 대한 책임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사회정책적 개입의 법적 체제와 그에 따른 집행구조의 문제이다. 그러나 산재예방정책에 대한 논의는 모두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가 원론적인 주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틀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일 뿐이다.

    III. 구조적 인식오류

    이와 같은 상황은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인 문제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관련 법적 체계와 집행구조를 말하며, 인식오류란 현재의 문제를 법적 체계와 집행구조로 보지 않고 현행 체계내에서 처벌을 강화하면 될 것이라고 보는 인식에 오류가 있다는 뜻이다. 즉,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법적 제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노동법학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먼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검찰이나 법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행위로 기소된 것이나 처벌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범죄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라 하면 산재사고와 관련된 모든 범죄를 총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그 중에서도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초래한 범죄, 특히 사망과 같은 중대산업재해를 초래한 범죄를 염두해 두고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방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방 그 자체, 즉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수반하였거나 수반하지 않았거나 법에서 규정한 의무이행사항에 대한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차원이고, 산재사고 등으로 인하여 타인의 신체나 생명에 피해라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과 처벌에 대해서는 형법적 차원의 문제이다.

    이미 전술한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은 행정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이 취하여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였다고 해서 중한 처벌을 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라는 결과와 상관없이 법의 적용대상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예방법으로 일종의 질서유지법이다. 따라서 법에서 정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즉 질서를 위반하였다고 해서 아무런 피해가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론에서는 보호법익의 침해정도에 따라 침해범과 위험법으로 구분한다. 침해범은 보호법익이 침해되어야 기수가 되는 범죄이며, 위험범은 보호법익이 침해되지 않고 보호법익을 침해할 위험성만 발생시키면 기수가 되는 범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안전보건상 예방의무를 단순히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보호법익의 침해라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위험범일 것이다. 그러나 보호법익을 근로자 안전과 보건의 유지․증진 그 자체라고 해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행위의 상당수는 침해범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전재경 등,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실효성 확보방안연구,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00, pp. 103-104와 오영근, 형법총론, 대명출판사, 2002, pp. 98-100 참고.
    엄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 정당성을 주장하기 힘들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다른 모든 법에서도 같은 논리로 처벌강화를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교통법상 단순 신호위반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둘째, 산재가 발생한 특정한 사업장만 선별하여 적용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법적용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으며,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똑같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여러 개의 사업장이 있는데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만 처벌을 받거나 중한 처벌을 받는다면 개별 사업장의 입장에서는 산재라는 결과가 발생할 확률이 크지 않다고 보고 의무이행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크며, 산재예방이라는 법의 취지가 손상될 것이다. 셋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의무를 모두 이행한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근거의 미비로 처벌하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이행한 사업장이라면 사업주로서 선량한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특성상 사업주의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미국 산업안전보건법(OSH Act) 제5조 (a)항은 다음과 같이 일반의무(general duties)라 하여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29 USC 654 Sec. 5.(a)Each employer (1) shall furnish to each of his employees employment and a place of employment which are free from recognized hazards that are causing or are likely to cause death or serious physical harm to his employees; (2) shall comply with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standards promulgated under this Act].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에도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나 단순한 노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의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선언적 의무규정에 불과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사업주의 의무) ①사업주는 이 법과 이 법에 의한 명령에서 정하는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기준을 준수하며, 당해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통하여 적절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고, 근로자의 생명보전과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도록 하여야 하며, 국가에서 시행하는 산업재해예방 시책에 따라야 한다. ②기계․기구 기타 설비를 설계․제조 또는 수입하는 자, 원재료등을 제조․수입하는 자 또는 건설물을 설계․건설하는 자는 그 설계․제조․수입 또는 건설을 함에 있어서 이 법과 이 법에 의한 명령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여야 하고, 그 물건의 사용에 의한 산업재해발생의 방지에 노력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법규에서 모든 안전보건규정이나 조치를 다 열거할 수 없다. 따라서 법규에서 정한 사항을 모두 이행하였다고 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준수하였다고 볼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곧 산재예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법의 특성상 법규의 준수여부는 형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법적 준수와 실제 내용이나 활동은 별개인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방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방 그 자체, 즉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수반하였거나 수반하지 않았거나 법에서 규정한 의무이행사항에 대한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차원이고, 산재사고 등으로 인하여 타인의 신체나 생명에 피해라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과 처벌에 대해서는 형법적 차원의 문제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벌칙조항에 대한 형량수준은 타법과 비교하여 그렇게 낮은 수준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산재예방을 위하여 사업주가 취하여야 할 의무이행조치의 불이행에 대하여 중벌을 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인하여 설령 산업안전보건법의 형량수준을 상향조정한다고 하여도 최종적으로 법원에서의 양형결과는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조항에 대한 형량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처벌을 강화하거나 이로 인한 실효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조항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그 동안 사법부의 판결결과를 종합해 볼 때 기대 실익(實益)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와 이를 통한 산재예방 억지력의 확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처벌수준의 분석과 논의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산재예방=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인식의 틀에 오류가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물론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드시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처벌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의 형벌수준을 높이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산재 책임자 처벌이나 이를 통한 산재예방의 억지력(抑止力)을 확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와 이를 통한 산재예방 억지력의 확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처벌수준의 분석과 논의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산재예방=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인식의 틀에 오류가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IV. 산재예방의 3가지 측면

    이제 산업재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는 방식은 <표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게 행정적 규제, 민사적 제재 및 형사적 제재라는 3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이 좀 더 명확해졌으며, 이것은 모두 예방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정적 규제와 민사적 또는 형사적 제재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이며, 산재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억제하는 수단이나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민사 또는 형사적 제재는 기본적으로 산재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면 개입기제가 발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잠재적 피해자에 대해 충분한 보호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산재라는 결과에 대한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산재사고는 직접적 산재당사자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에게도 막대한 간접적 피해를 줄 우려가 크기 때문에 미연에 산재사고에 대한 예방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나서서 미리 사회적 질서를 유지시킨다. 이것이 곧 행정적 개입이며, 정부규제 또는 행정규제이다. 따라서 행정규제는 민간 경제주체들의 통상적인 경제활동에 정부가 일정한 통제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간섭을 하게된다. 즉, 행정규제는 피해나 사건이 발생되기 이전에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경제행위에 일정한 제약이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표 5.JPG

    형사적 제재는 국가가 원인제공자나 가해자에게 신체적 또는 금전적으로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형사적 제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방적 기능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민사적 제재도 원인제공자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불법행위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예방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사적 개입은 주로 사인간(私人間)의 관계에 있어서 가해자에 대한 응보나 처벌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이나 구제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사상 책임은 주로 피해에 대한 보상과 원상회복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며, 이것은 가해자에 대한 부분보다 피해자 구제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보통 민사적 개입은 사후보상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민사적 개입에 있어서도 잠재적 가해자나 원인제공자에 대하여 위협을 가함으로써 사전예방의 억지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 가해자나 원인제공자에게 피해의 실질적 가치보다 훨씬 과중한 배상을 하도록 함으로써 고의나 중대한 과실과 같은 불법행위를 스스로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예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민사적 개입이라고 하더라도 구제의 측면이냐 또는 제재의 측면이냐에 따라 그 목적과 기능 그리고 기본적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대국가에서는 기능적, 지역적, 전문적, 기술적 또는 계층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민법이나 형법에서 규율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행정정책적 차원에서 규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규율한 법규를 민사특별법 또는 형사특별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법’이나 ‘보건범죄에관한특별조치법’ 등은 형사특별법에 속하며, 법규의 위반과 단속의 많은 부분이 행정부처에서 위임되어 있다. 한편 민사특별법으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예를 들 수 있다.

    산재예방 ‘실효성’은 궁극적으로 산재예방의 ‘실제적 효과’를 거두는 것을 의미하며, 실효성 확보의 ‘방안’이란 정부의 개입방식이나 방안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국가의 개입방식은 크게 행정 정책적 측면, 형사 정책적 측면 그리고 민사 정책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3가지 측면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국민 또는 법인과 같은 민간경제주체에 개입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개입방식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유무와 위하력에 대해서 노동안전보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표 5>에서 보는 바와 같다. <표 5>에서 각각의 이행수단에 대한 노동안전보건분야에서 적용범위나 위하력에 대해서 논란이나 반론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산안법상 불량보호구나 미검정 보호구의 수거 폐기 등의 조치는 행정상 강제집행수단인 직접강제에 해당하며 이러한 방안이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이러한 행정개입방식이 주로 ‘사업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이 의무를 위반하는 자에 대한 간접적 제재방식을 취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직접강제가 제도적으로 장착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노동안전보건분야에서의 적용범위나 위하력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나 잣대로 분류한 것은 아니며 전체적인 분석 틀과 사고체계를 제시하기 위하여 <표 6>을 제시하였다.

    표 6.JPG


    V. 노동부의 한계, 행정의 한계

    그 동안 노동안전보건정책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온통 노동부를 향해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현행 시스템에서 노동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노동부를 비호하거나 노동부를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필자도 노동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부의 역할이나 의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익숙한 비판에서 빠져 나와 다른 틀을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함이다.
    행정법규상의 의무이행확보수단은 일반적으로는 크게 ‘강제’와 ‘제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제’는 행정기관이 법규의 의무사항을 강제로 집행하는 것으로 대집행, 집행벌, 직접강제, 강제징수 등이 있으며 보다 직접적인 의무이행확보 수단이다. ‘제재’는 의무불이행이나 법규위반자에게 행정벌을 부과함으로써 행정대상이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는 간접적인 수단이다.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사업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즉, 노동안전보건은 반드시 사업주를 통해야 하는 ‘이중적 구조’에 있다.

    1. 노동안전보건의 이중적 구조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사업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길거리에 불법광고물을 설치하면 행정관청에서 강제로 철거할 수 있지만, 즉 강제집행이 가능하지만 사업장의 안전보건확보는 현실적으로 정부가 강제로 시행할 수 없다.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정부가 강제로 국소배기를 설치할 수 없는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은 ‘사업주가 알아서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은 사후에 ‘감독과 처벌’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위한 의무이행확보수단은 거의 전적으로 ‘제재’라는 간접적인 수단에 의존한다. 즉, 노동안전보건은 반드시 사업주를 통해야 하는 ‘이중적 구조’에 있다.

    2. 부작위와 작위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범죄가 형성되는 것을 작위(作爲)에 의한 범죄라고 하며, 그러한 범죄자를 작위범이라 한다. 살인죄, 절도죄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형법상 범죄는 대부분 작위범죄이다. 불량식품을 제조하여 유통시키는 행위와 같은 범죄도 작위범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범죄가 성립되는 것을 부작위범죄라 하며,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부작위범이란 한다. 산업안전보건범죄는 대부분 부작위 범죄이다. 안전상 또는 보건상 규정된 의무이행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작위범은 알고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몰래 또는 대부분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 범죄가 되는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작위범죄에 대한 제재방식은 작위범죄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 형사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3. 산업안전보건법 집행강화?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강화? 대부분 당연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짐작을 했겠지만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자 이 말을 꺼냈다. 물론 현행의 시스템에 국한시켜 하는 이야기지만.
    산재예방정책의 기본적인 모델을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분히 선형적이며, 분절적(分節的)이다. 크게 보면 투입은 산재예방정책이며, 산출은 산재감소 또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유지․증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재감소나 노동자의 안전보건 유지․증진에 대한 직접적인 투입은 정부가 직접 수행할 수 없고 사업주 또는 사업장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노동안전보건정책은 지원과 제재라는 간접적인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투입은 특정한 지원사업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행정감독의 형태와 같은 지원이나 제재인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일차적 산출(output)은 사업장의 대응이다. 다만 사업장의 대응이 적절하여 정부의 지원사업이나 제재가 궁극적으로 산재감소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림 2.JPG



    이러한 기본적인 모델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모델에 실제 산재예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투영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행의 시스템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만 강화할 경우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보다는 행정규제준수에 집중할 것...사업장내 진정한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오히려 저하될 수도 있으며, 행정규제가 오히려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활동을 가로막는 장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먼저 [그림 2]와 같은 모델에서 보듯이 산재감소나 사업장의 안전보건 유지․증진은 궁극적인 목적 또는 지향점(goal)이지 정부가 수립하고 집행하는 산재예방정책의 직접적인 목표지점, 또는 성과로 설정할 성질이나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은 사업장이나 사업주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중적 구조의 한계로 인하여 산재예방이라는 투입이 산재감소라는 산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선형적 가정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예방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사업장이라는 매개(媒介)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산재감소라는 직접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투입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림 3]은 노동안전보건의 행정규제에 대한 사업장의 대응방식과 노동안전보건 목표달성과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모델을 도식화 한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의 규제는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상 안전 및 건강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이러한 법익의 침해가 나타나기 이전에 사업주에게 특정한 예방의무를 부과하고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즉, 직접적 개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호법익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일상적인 기업의 활동에서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산재예방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그림 3]의 A). 그러나 많은 경우 사전규제방식은 사업장에 안전보건활동을 정착시키거나 활성화를 도모하기보다는 규제자체만 준수하는 것에 그치는 단점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대한 역량을 본질적인 안전보건활동보다는 행정적 규제준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사업장내 진정한 안전보건활동이 저하되기도 하며, 행정규제가 오히려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활동을 가로막는 장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사업장은 그 행정규제 맞추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노동안전보건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사업장내부의 안전보건활동이라는 의미도 크게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업주에게 부과된 법적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재예방을 위한 사업장 자체의 노력과 활동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전자의 목적이 본래 후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며, 후자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전자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보호법익이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상 안전 및 건강보호이지만 이러한 근로자의 법익을 침해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 즉 정상적인 기업의 활동에서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가벌적(可罰的)인 유형을 설정하는 입법형식을 띄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고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 신체의 손상 또는 직업병의 발생과 같은 보호법익의 침해결과에 대한 응보적(應報) 해결이나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일반 형법은 대부분 사후 응보나 처벌 위협을 통하여 간접적 예방을 도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정형법이 그러하듯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안전보건상 예방조치라고 하는 어떠한 행위를 하였거나 하지 않았으면 산재사고의 발생이나 직업병의 발생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행위자체를 처벌하는 직접적, 사전적 개입방식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위반은 결과범(結果犯)이 아니라 위험범(危險犯)의 형태를 띄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어느 정도의 위험에 대해 처벌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처벌을 전제로 하는 위험정도를 계량화하는 것은 시간적 변이, 기술상 난점, 그리고 감독 인력의 수나 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거의 불가능하다. 죄형법정주의라는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명확성(明確性)의 원칙(原則)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처벌이나 감독은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에서는 사업장에서 행해야 하는 사항이 무엇인지 법규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규제이외의 다른 사회․정책적 제재장치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안전보건의 행정규제적 제재만 발달할 경우 사업장의 대응은 [그림 3]의 C와 같이 행정규제의 준수에 주안점을 두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현황이 A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C와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사업장은 그 행정규제 맞추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노동안전보건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림 3.JPG 그림 3.JPG



    VI. 문제는 적절한 제어시스템이 없다는 것

    투입과 산출의 모델에서 제대로 된 체계(system)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어나 환류(feedback)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어나 환류과정이란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 그 자체와 함께 사업장의 안전보건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한 적절한 제재를 말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직한 산재예방활동은 사업장에서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안전보건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산재예방활동은 사고와 직업병의 예방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장의 산재예방활동 및 그 성과에 대한 적절한 평가, 보상 및 제재와 같은 사회․정책적 개입기제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정책평가나 사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사업장의 산재예방노력과 그로 인한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시스템이 있는가, 또는 산재예방노력의 부재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 즉 산재사고나 직업병발생과 같은 결과에 대해 적절한 제재나 억제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구조적 환류시스템(feedback system)을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구조적 환류시스템이 없다. 단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스템이 자체가 없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정부의 산재예방정책이나 산재예방사업이 사업주나 사업장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보다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은 사업장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다. 사업장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제재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서 보상이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논의가 되겠지만 제어는 처벌강화와 함께 면책이나 책임의 경감(輕減) 등의 보상도 같이 논의되어야 실질적인 제어시스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4.JPG


    V. 목표지점

    이제 목표지점을 밝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림 4]가 그것이다. 사회전체로 볼 때 산재예방의 실효성은 단지 행정규제의 준수여부나 산업안전보건정책의 효율적인 집행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장의 자체적인 안전보건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업장 안전보건활동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산재예방은 물론,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이룩하도록 유도되어야 한다. [그림 4]는 현재의 산재예방 체계와 향후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산재예방체계를 도식화 한 것이다. [그림 4]의 A와 같이 적절한 제어나 환류시스템(feedback system)이 없는 현행의 선형적 산재예방체계에서는 산재예방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강화하면 할수록 자발적인 사업장의 산재예방노력보다는 단순한 행정규제의무를 이행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산재예방의 실효성 확보강화란 곧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집행강화를 의미한다. 산업안전보건법규는 그 특성상 명령-통제형 규제(command and control regulations)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명령-통제형 규제는 자연히 사업장의 실제적인 노동안전보건의 확보보다는 일정한 형식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

    노동안전보건의 실질적 확보는 사업주가 실제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산재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이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집행이나 이행이 곧바로 실제 산재예방의 실효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그 동안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동안의 경험이나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현행의 시스템에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고 해도 산재예방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을 통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효율을 높이고자 처벌규정의 상당부분을 행정형벌에서 행정질서벌(과태료)로 전환한 바 있다. 노동부차원에서 곧바로 과태료를 부과함으로써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과태료의 부과를 통하여 사업장내 자발적 안전보건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안전보건의 실질적 확보는 사업주가 실제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산재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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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과 건강 2019 봄 통권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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