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편지
감추어진 현실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운동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미행하고 감시하며 의도적으로 ‘왕따’시켜 그 사람이 병에 걸릴 정도로 고통 받게 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학대죄로 유죄를 받고 징역을 살거나 벌금을 내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죽게 될 걸 알면서도, ‘에이 죽으면 어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이를 죽게 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유죄를 받고 징역을 살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질러도 그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간다. 처벌받더라도 기업의 말단 직원 몇 명만 가볍게 처벌받을 뿐 진짜 책임이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고위급 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일반 상식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것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라는 이벤트였고, 사회운동으로서의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었다.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6년에 제1회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개최했고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이 기업은 ‘살인기업’입니다. 이 기업을 처벌하기 위해 기업살인법을 만듭시다!‘ 라고 노동건강연대가 공식적으로 주장해온 것은 2002년부터이니 관련 운동을 진행한 지 햇수로 15년이 넘는다.
초기에는 한국의 노동자 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컸다.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거나 일과 관련되어 죽는데도 아무런 사회적 움직임이 없는 나라, 매년 OECD 국가 중 산재사고사망률 1위를 다투는 불명예를 가지고도 실효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살인 행위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라!’고 외치고 싶었다.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은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 사회가 노동자 사망 문제에 대해 한번이라도 더 심각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2000년대 초부터 이러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정부도 산재사망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전인수격 해석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운동 때문에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 몇 가지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상향 등이 운동의 성과로 이루어졌다. 2005년 한 일간지에서는 이 운동을 주요 주제로 9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의 성과가 직선적이지만은 않았다. 특히 생명보다 이윤, 안전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민영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정책의 흐름 속에서 운동은 정체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반올림’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투쟁, 2012년 20대 청년들의 어이 없는 용광로 추락 사고 등 잇따른 산재 사망 사고를 겪으며,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은 기업에게 있으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은 꾸준히 확산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 운동은 그 폭과 깊이 면에서 근본적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 특히 공공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노동자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졌다. 논의의 확장에 걸 맞는 구체적 변화는 부족했지만 이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 탓이 컸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노동 현장의 관련 인식은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에 견줘, 이러한 인식 전환에 따른 내용적, 질적 변화 내지는 발전 속도가 더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질적 발전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큰 변화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운동의 문제의식과 근본 지향이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운동의 시작은 노동자 산재 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의무와 책임은 어떻게 규정되며, 탐욕스런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기업의 범죄 행위는 어떻게 정의되고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가?’ 물음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우선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지만, 이와 더불어 ‘기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라는 ‘근대적’ 과제와 ‘기업’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과제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과 더불어 실천적 대응을 지금,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객관적 상황의 변화로 여러 시민사회, 노동단체, 노동조합 등이 연대하여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만들어졌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가칭)’ 초안이 만들어져 국회에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광범위한 촛불 투쟁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시민의 안전과 노동자 안전에 대한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 국민과 노동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2017년 7월 3일 산업안전보건의날 기념사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이 될 수 없다.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히며 노동자 안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이 경제 규모에 견줘 산재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까닭은 다양한 요인이 중첩되어 그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요인 하나 하나는 모두, 매우 구조적 측면을 가지고 있어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하나로 단번에 해결하기 힘들다. 위험의 외주화 경향, 행정기관의 무능력,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노동자 안전 문제에 관심 있는 주체 형성의 어려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든 현재 한국의 노동자 안전 문제는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고, 노동부가 단기적이고 파편적인 계획을 발표한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몇몇 의미 있는 법제도 개선 등이 가시적으로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 기업의 체질 변화를 이끌어 내고 노동자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되기 전에는 체감되는 현실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역설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의 역할이다. 능력 있고 양심적인 관료나 전문가들의 역할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노동조합의 활동이고 사회운동의 역할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이 정부조차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는 실망과, ‘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는 백 약이 무효하다’ 는 비과학적 체념을 낳을 수도 있다.
이 시기,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진영은 보다 현실에 밀착하여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을 발굴하고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사회운동을 만들어가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정책’과 협의의 ‘정치’가 아니라 ‘운동’과 광의의 ‘정치’가 더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이에 우리 노동건강연대도 그간의 활동을 성찰적으로 정리하면서, 기업의 노동자 살인 행위를 보다 더 잘 드러내고,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며,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에 보다 힘을 쏟을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가칭)’ 초안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국회의 논의가 활성화되는 시점에, 주관적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관련 활동이 부진했다는 것을 성찰한다. 더욱 깊고, 넓게 관련 활동을 진행할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비판, 조언을 바란다.
서평
현장을 바꾸긴 어려워도 현장은 중요하다
캐런 메싱 <보이지 않는 고통>
회원 이주연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는 학계에 갓 발을 들인 나는 지난 한 해 많은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다. 조선 산업 불황의 한 가운데 있는 물량팀 노동자,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결핵에 감염된 미등록 신분의 이주노동자, 생계를 위해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작업 현장은 자아실현의 장이기 보다는 사고를 당하고 목숨을 잃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노동 현장에 찾아온 낯선 연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나에게 쉽지 않은 대화를 허락해준 것은 아마도 자신과 동료들의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고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나보다 앞서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위해 노력했던 선배 학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그때 읽게 된 책이 바로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이다. 캐런 메싱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여성 저임금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 평생 고군분투했던 캐나다의 인간공학 과학자이다. 이 책은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파리 기차역의 청소노동자, 감염 예방법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하는 병원 청소노동자,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만 하는 백화점 계산원들이 일터에서 겪는 고통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30년전 캐나다와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오늘날 우리사회 노동자의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캐런 메싱은 “가장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고용주, 과학자,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이 그녀가 설명하는 ‘공감 격차 empathy gap’ 이다. 특히 과학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 환경의 건강 영향을 부적절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캐나다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노동자 건강에 관한 국가적 자료가 구축되고 연구가 제도권에 자리잡아갈수록 역설적으로 ‘현장’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수집하는 대규모 2차 자료가 활용 가능해지면서 연구자들이 현장에 직접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반복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을 꼼꼼하게 둘러보지 않더라도 논문을 쓰는 데 아무런 기술적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노동자 건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많은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현장이 궁금하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은 젊은 연구자의 경우, 그런 기회를 얻는 것이 더욱 어렵다. 이런 기회조차도 현장 활동가들과 네트워크가 있고 오랜 시간 연구를 해온 소수의 학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갓 학계에 발을 들인 연구자들에게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이를 장려하는 학계 분위기, 현장 네트워크를 쌓아가고 이들과 소통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선배 연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 현장 연구가 가능하다는 생각 그 자체 – 에 대한 심리적/물리적 간극을 스스로의 힘으로 좁히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캐런 메싱이 말한 ‘공감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접점을 확대시키는 기회가 더욱 풍부해지고 또 제도화되어야 한다.
선배연구자인 캐런 메싱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더불어 ‘공감 격차’라는 진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개별 연구자들이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공감’만 한다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까?
캐런 메싱은 취약계층을 둘러싼 많은 이슈들에 대해 ‘공감’을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공감은 서로 다른 경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중요한 가치를 위해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돕고 싶은 대상이 생겼을 때 그의 고통을 더 잘 사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감은 대개 ‘특정 개인’의 고통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다수의 얼굴 없는 집단에 대해서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에 대한 공감의 열기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작년 여름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여섯 명의 청년 노동자들의 사연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이 위험 작업에 종사하는 불안정 노동자 집단 전체에 대한 공감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캐런 메싱이 지적하듯,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유사한 사람들에게 더 잘 공감하고,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놀랍도록 무심하다. 최근 5년 동안 이주노동자 511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그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다치고 병에 들었지만, 외딴 농촌의 비닐하우스에서 착취, 차별당하는 ‘타자’에게 우리 사회는 ‘덜’ 공감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과학자, 시민, 정책 결정자의 ‘공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의의 원칙에 기반한 도덕적 통찰력에 따라 옳고 그름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공감 받지 못해도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실재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공감 격차를 좁히는 노력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성의 힘을 길러야 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캐런 메싱은 자신이 출판한 많은 논문이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더 낫게 만든 것 같지는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캐런 메싱의 연구는 연구자뿐 아니라 동료 시민들이 개별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부당한 사회적 힘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노동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학자의 역할은 목소리를 갖기 힘든 당사자들을 대리하여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보다는, 이들과 연대하여 이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자, 특히 나와 같은 초보 연구자들, 그리고 과학기술 정책을 만들고 연구개발을 기획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현장이 없는 연구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이들 사이에서 공유될 때 비로소 연구가 동료 인간의 삶이 실제로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캐런 메싱. (2017). 보이지 않는 고통. 동녘.
해외소식
오바마는 매년 성명을 발표했고, 트럼프는 하지 않았다
-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Workers' Memorial Day)
이주연 회원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4월 28일은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을 기리는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Workers’ Memorial Day)’이다. 캐나다 노총이 1985년부터 전국적인 기념행사를 가졌고, 이어 1989년 미국, 1992년 영국의 노총도 연례 추모 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1996년 뉴욕에서 열린 유엔지속위원회가능회에 참여한 각국 노동조합 대표들이 4월 28일 추모식을 갖고 전 세계에 동참을 호소한 이래, 이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국제노동기구도 2003년부터 4월 28일을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정해 산재노동자 추모와 더불어 산재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자유노동조합연합(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 ITUC)과 영국의 안전보건 전문 매거진 해저드(Hzazards)는 매년 웹사이트에 ‘주제’를 공표하고 [표 1], 100여 개국 이상의 노동조합, 연대단체들과 함께 공동행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한다.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가마다, 정권마다 다르다. 아마도 가장 극적인 사례가 최근 미국 정치권의 변화일 것이다.
2010년 4월 28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성명서를 발표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재임기간 동안 매년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공평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었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노동권을 침해하는 기업을 연방정부 계약에서 제외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는가 하면, 광부들의 진폐증 예방을 위해 탄진 노출 수준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는 대통령의 추모 성명서가 사라졌다. 그래도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부국 홈페이지에는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리는 주 별 행사 정보를 제공했다 <그림 2>. 하지만 올해는 관련 정보가 전혀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현재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는 “우리는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한다,”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산을 구매하자”는 애국주의 수사로 도배되어 있다.
<그림 2>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 안내
미국의 이웃인 캐나다는 분위기가 다르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뿐 아니라 노동부 차관이자 초대 산업재해 예방관인 조지 그릿지오티스도 2017년 4월 28일에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캐나다 산업안전보건센터도 웹사이트에서 추모일을 알리는 팟캐스트/포스터/인포그래픽/핀/스티커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그림 3>.
<그림 3> 캐나다 산업안전보건센터 ‘4/28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포스터
한편 호주 정부는 2011년 기금을 조성하여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 설립을 시작하였다. 2013년 4월 28일, 호주 수도 캔버라에 위치한 산재노동자 추모 국립공원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고, 이제는 매년 이곳에서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가 열린다.
그럼 한국 사회는 어떤가? 국내 노동계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한 번도 정부나 국회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은 적은 없다.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다고 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산재 노동자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전보건이 갑자기 대폭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일구어졌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국가와 사회가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산업안전’을 3대 과제에 포함시켰다.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의 절반을 감축하겠다’는 정부 발표도 잇따랐다. 근대사에서 성장 패러다임이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국가경제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항상 뒷전으로 미뤄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중대한 진전이다. 올해 4월 28일에는 산재 사망 노동자들을 기리고 변화를 약속하는 대통령의 성명서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끝)
지상중계
2018년 1월 27일 2018노동자 건강권 포럼 ‘직장 앞에서 멈춘 촛불 노동의 자화상’
직장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
- <직장갑질119> 의 카톡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진행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녹취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대담 손님
왕복근 / 청년행동리빙액트
구교현 / 평등노동자회
김유경 /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
전수경)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직장갑질119> 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들이죠? <직장갑질119>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어떻게 이슈를 사회화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들어와 보신 분 계신가요? 이 카톡방이 1,000명이 정원인데, 현재 20명 정도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손님으로 모신 분들은 카톡방에서 본인 닉네임을 가지고 상담 스텝으로 활동하는 분들이에요. 각자 소개해주시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왕복근) ‘리빙액트’라고 서울 관악 지역에서, 청년, 노동 관련된 사안들을 지역에서 이야기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저희가 2015년에 심야노동실태조사를 관악구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때 노동건강연대에 여러 가지 자문을 구했는데 그 인연이 돼서 <직장갑질119>에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주로 월요일 오전 3시간 상담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메일을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이메일 답장 보내는 시간, 비는 시간을 대신 채우는 경우도 있어서 일주일에 5~6시간 정도를 <직장갑질119> 상담에 쓰고 있습니다.
구교현) 알바노조활동을 하다가 비정규직, 노조 없는 불안정한 노동자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직장갑질119>에는 금요일 오전에 카톡방에서 상담하고, 틈틈이 카톡방을 보고 있습니다.
김유경)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이 구요. 어느 날 메일이 한통 왔어요. <직장갑질119> 라는 플랫폼이 떴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메일이 왔는데 궁금해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봤거든요. 굉장히 충격,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보통 저희가 상담할 때 내용과 전혀 다른 세계가. 저는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실시간 채팅상담을 하고, 방송계갑질119라고 따로 만들어졌는데 거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상담까지 맡게 돼서 시간을 좀 많이 쓰고 있어요. 심각한 사안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상담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다보니 수면이 굉장히 줄어들었어요.
법은 멀고 하소연할 데가 없다
전수경) 1천 명 정도가 와글거리는 카톡방, 익명의 온라인이고, 심각한 경우에 이메일 상담을 하는데, 메일답장은 노무사, 변호사들이 하고, 더 필요한 경우 만나서 상담하는 것까지 3단계로 진행되고 있어요. 대면상담까지 가는 경우는 어려운 결심을 하신 분들이죠. 노동조합, 법률원, 노무사들이 상담을 많이 해왔잖아요. 노동 상담 자원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거든요. 전화 받고, 법률전문가 연결해주는 상담이 그동안에도 많았는데 왜 <직장갑질119>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릴까요?
구교현) 생각보다 하소연할 데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까 당장 오늘 아침에도, 어제 밤에 술 많이 먹고 온 부장님이 내 자리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래침 뱉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어디다 얘기를 하고 싶다, 검색하다가 <직장갑질119>가 나와서 카톡방에서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고 이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 거시기한 일들을 당했을 때, 딱히 변호사, 노무사랑 상담할 일은 아닌 거 같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찾아오는 분들이 좀 있고요. 카톡방에 1천 명 정도가 있어도 모두가 동시에 대화를 하지는 않거든요. 대화가 일어나다가 끊기기도 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정보도 주고, 피해자가 전문가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구조와는 달라요. 법률적인 정보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많지도 않고 이러다보니, 공감하고 걱정해 주고, 위로도 하는 관계가 형성되는 게 기존의 노동상담과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유경) 서초동 법원 옆 식당에서 일하던 분이 폭언을 듣고 해고당한 일이 있어요. 법률사무소가 많지만 그 분이 찾아가서 상담 받을 곳은 없는 거예요. 법은 멀고, 이분이 연세가 많은 분인데도 채팅방에 들어오신 거죠. 온라인으로 QA 답변 주는 사이트는 많아요. 부당해고 당했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 물으면 ‘노동위원회 가서 60일 걸립니다’ 자동 답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채팅방은 어떤 일을 하시냐, 어떻게 되신 거에요, 하고 물어요. 다 사연이 다른 거예요. 천차만별인데 그에 대해서 답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직장갑질119>의 특성이다, 법률적인 면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답을 주는 방이라는 거죠.
왕복근) 익명성이 갖는 효과가 큰 것 같아요. 드러나지 않으니까 안도감이 들고, 과격한 용어도 쓰면서 가감없는 이야기를 하죠. 보통 일대일 상담하면 편하게 하지 못하거든요. 여기는 서로 비슷다하, 이야기하다가 나만 갑질당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나도 이런 일을 당했어요 하면서 주루룩 열댓 명이 자기 얘기를 해주면 혼자만 갑질 당하는 게 아니구나, 동질감 같은 게 형성되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너무 일을 키우는 게 아닐까요?’라는 말도 많이 나와요, 메일 받아보면 정말 어디서 말할 수 없는 내용인데 말하고 나니 시원하다 하거든요. 노조가 있는 회사도 있는데, 노조 찾아가서 얘기 하면 너무 작은 이야기를 크게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요. 물론 실제로 작은 것도 있어요. 육아 때문에 출근이 늦어지는데, 폭언을 듣는다는 거예요. 이건 심각하다. 노조에 가서 이야기를 해도 된다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거나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거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게 법률상담과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전수경) 듣고 계신 분들은 카톡방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좋겠다 싶어요. 사람들끼리 와글거리는 재미, 공감이 힘이 큰 것 같아요. 제가 보도자료 때문에 이메일 상담내용을 볼 일이 있었어요. 답답하다, 이 정도를 못 챙기나 싶은 것도 있어요. 그러면 답변하는 노무사님이 ‘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이렇게 타박도 하면서 친근하게 답장도 보내고 해요. 정말 답답한 분들 많더라구요. 해결 안 될 것 같은 일도 너무 많구요. 남성들은 ‘직장상사가 욕 했어요’ 이러면 그게 ‘임마’ 이런 것도 있어요. 여성들이 듣는 욕은 이년저년 그 이상의 욕들이 난무해요. 여성들이 듣는 폭언, 욕설이 상상을 초월하고 대한민국 직장이 이 정도구나 깜짝 놀랄 일이 많더라고요. 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도 많고.
나쁜 사람, 사업주의 법률 위반만을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거죠. 특별히 악질적인 경우나 황당한 갑질이 있으면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우리는 보통 자르지 말라, 계속 일하게 해줘라 싸우잖아요, 그런데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는 직장인들, 그만두려면 손해 끼친 걸 갚아라, 협박을 한대요. 무서워서 그만둘 수가 없는 거예요. 인질처럼 일한다고 할까.
구교현) 쓰레기통에 가래 뱉은 그 회사는 더 물어봤더니, 우발적인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평소 여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거죠. 성희롱 발언 같은 건, ‘어제 밤에 여자들 있는 술집에 갔는데 돈 많이 버는 거 같더라, 너도 한 번 나가보지 그래’ 이러고, 주말에 나와서 일 하라고 하고, 줄줄이 사탕이더라고요. 하나의 사건이 드러났는데 이면을 보면 이 일도 있고 저 일도 있고.
또 하나는 IT 노동자인데 일하는 곳이 지하래요. 지하 3층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지하 1, 2층은 주차장이고 사무실이 3층에 있는 거예요. 창문이 당연히 없죠. 에어컨이 있는데 고장 났대요. 한여름에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고, 한 명이 쓰러졌대요. 그제서야 에어컨을 고쳐줬다고 해요. 위에 주차장 매연이 엄청날 거잖아요. 그거 맡으면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거죠. IT 노동자가 초과근무 어마어마 하잖아요.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하니 참 난감했는데, 전태일 시대 방직공장 같은 얘기죠.
골프장 캐디로 일하는데 골프장에 눈이 많이 내렸나 봐요. 돈 안주고 제설작업을 캐디한테, 눈 오면 캐디한테 치우라고 하니까, 노동부에 신고를 하자고 해서 찾아갔더니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우리가 도와줄 수 없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거죠. 특수고용이라고.
회사에서 매주 등산을 간대요, 매주. 정말 매주 등산을 가고 술자리 하고. 가족이야 이러면서 어울리고. 도저히 못 가겠다, 너무 힘들다 하다가, 산에 갔다가 발목이 다쳤대요. 발목 다쳐서 말했더니 ‘걸어 다닐 수는 있지? 산에 가자’ 하더래요. 결국 갔대요.
어떤 분은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왜 제가 잘려야 됩니까?’ 했더니 풍기문란이라고. 사내연애를 해서 풍기문란이라고 나가래요. 이런 일이 일어난 곳은 초과근무 해도 수당은 당연히 없고. 근로계약서가 불리하게 돼있고, 연달아 발생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공통된 불만이 있을 거잖아요. 그거를 모을 수 있는 시도를 해 봐야 하는 거죠.
김유경) 지금 이 시간, 카톡방에 올라온 상담을 보면 ‘인민재판’이 저희 상담 사례 중에 꽤 있거든요. 말 그대로 인민재판이에요. 너는 성과가 나쁘고 일을 못하니까,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하나하나 따지는 거죠. 너 왜 못했어, 왜 지각 했어, 따지고 징계를 받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모욕인데 어떤 경우에는 투표를 해서 이 사람을 내보낼까 말까 이런 일도 있고. 방금 올라온 사례는 파견계약직인데, 어느 날 빔프로젝터에 여태까지의 성과 이런 거 띄우면서 기습적으로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이 새끼 저 새끼, 이 꼬라지로 일을 하냐, 신입도 너보다는 낫겠다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이 일을 당한 분은 충격이 커서 힘들다고 올렸는데, 이런 식, 모욕을 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방송갑질 119 채팅방에 들어온 분 닉네임이 ‘상품권1000만원’인 거예요. 심상치 않잖아요? 20년차 카메라 감독인데 4개월치 임금을 상품권으로 받은 거예요. 두꺼운 상품권 다발을 받아 집에 와서는 이게 도대체 뭔가, 이 분 이야기는 <한겨레21>에 제보했어요.
가슴 아픈 상황은 대부분 괴롭힘, 왕따, 그림자 취급하고, 밥을 같이 안 먹고,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며칠 뒤에 사직서 냈다고 실업급여 받을 수 있냐고 연락이 와요. 혼자니까,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써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많아요.
왕복근) 월급 150만 원을 받는데, 수당 없고 기본급만 받아라, 사장이 폭언, 욕설, 개인 일 시키고. 이 분이 ‘해결할 방안이 없겠죠?’ 하는 거에요. 사직서를 쓰고 싶다 30분 상담을 하다가, 월급 150만원이라도 받아야 된다, 사직서를 쓰면 실업급여를 못 받지 않냐, 그만둘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서울 사는 분인데, 저축이 어려워 해놓은 것도 없고, 하루 12시간 폭언을 들으면서 일을 해도, 사직서를 2년 동안 넣고 다니면서도 결국 ‘저는 사직서를 못 낼 거 같아요’라고.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방법이 없고, 이직 준비하는 두세 달을 버틸 수 없는 분들이 많아요. 실업급여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인데 대기업에 다니는데. 애가 병원 갈 때 한번, 초등학교 추첨 때 한번 반차를 썼는데, 승진 심사를 코앞에 두고, 인사고과 최저점을 받았대요. 임원이 평소 여성은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얘기하면 좋을텐데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다, 작은 일을 키우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생활이 그런 거지,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전수경) 직장갑질119가 처음부터 ‘동지’, ‘활동가’ 이런 말 대신 부담 없는 용어로 ‘스탭’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나 노동부가 정해 놓은 상담의 틀에서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가 풀린 거 같거든요. 정규직/비정규직 담론이 있는데, 그 틈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나만의 문제로 쌓아놓고 있던 거라서. 우리가 만난 직장은 노동문제로 프레임지어 왔던 것과 다른 것 같아요. 집단적인 노사관계로만 바라보던 세계가 아닌 거죠. 우리 사회의 직장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로 질문을 옮겨볼까 합니다.
구교현) 연구대상인데요, 작은 회사에 직급이 낮고 여성이고,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죠. 그런 상황에서 갑질이 계속 쌓이고. 대한민국이 서열 사회잖아요. 학교가면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하고, 직장 다니면 상사 말씀 잘 들어야 하고. 원청과 하청, 하청과 하청, 도급 사슬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갑질의 낙수효과라고 해야 하나. 위로부터 떨어진 갑질이 쭉쭉 밑으로 내려오고, 최말단에서 당하는 분들이 직장갑질119 문을 두드리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함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는 일들도 계속 일어나는 것 같구요.
김유경) 학교에 들어가면, 외국처럼 학교에서 단체교섭을 가르치는 정도는 아니라도 최근에는 노동법 교육이 좀 이루어지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노동 자체에 대해서 얘기 하거나 고민을 해볼 기회가 없이 학교를 다니고 남성들은 군대에 가겠죠. 상명하복 조직에 있다가 나와서 취준생으로 한 3-4년 있다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서 간신히 직장에 들어가면, 빠릿한 신입사원으로서 시키는 거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방송계 쪽에서는 ‘막내 작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막내’라는 말을 쓰는 순간부터 만능맨이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뭘 시키든 다 해야 하고 갑질은 항상 겪고. 그렇게 고생스러운 초년기를 거치고 나서 힘들게 승진을 해서 올라간다고 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할지는 예상이 되는 거죠. 똑같이, 이런 구조들이 반복되고 있고, 그 와중에 성과주의가 버무려지니까, 동료끼리 경쟁대상이고.
왕복근) 상사한테 바른 말해서 부당전보를 당하고 그림자 취급을 받는 분이 있었는데, 이거를 하소연 할 데가 없으니까 가족에게 먼저 말을 했나 봐요. 아버지가 딱 이렇게 말씀했다고 해요.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야. 너가 할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고. 상사 말을 잘 듣지 그랬어’ 갑질은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다 겪는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니. 너가 잘하지 그랬어 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한테 굉장히 많이 듣고 있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을 쉽게 듣는 상황이예요. ‘갑질 = 사회생활’ 로 보니까, 이 분위기가 만들어 낸 효과들이 있어요. 사회가 이런 줄 몰랐어요 하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주변에 이야기하면 ‘야 나도 그래’ 이런대요, 이 방은 ‘억울하겠네요’ 라고 해 주죠. 갑질이 사회생활의 당연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저는 하급자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사입니다’ 하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야기하는 맥락을 보면 좀 다른 점이 있는데, 저는 회사를 위해서, 제가 회사와 하급자 사이에 중간 관리자로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우리 입장도 좀 고민해 달라, 이런 얘기를 굉장히 하더라구요. 본인과 회사를 일체화 시키거나 회사를 인격체처럼 생각해서 공감을 하는 거예요. 별 걱정을 안 해도 될 회사인데 친구 일처럼 걱정을 하면서 ‘제가 이렇게 하면 회사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회사는 어떻게 하죠?’ 종일 회사에 끼여서 살아가잖아요. 회사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신입사원부터 관리직까지 다 몸에 배서, 명분이 되는 거죠. 내 갑질은 회사를 위한 거야. 회사가 돌아가려면 이렇게 해야 해.
카톡방도 모두가 들어오기 편한 건 아냐
전수경) 상담에 등장하는 않는 분들이 건설현장이나 공장에 계신 분들이에요. 카톡방에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사실은 카톡방 들어오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요. 퇴근해서 여기 계속 서식하는 분들도 피곤함을 물리쳐 가면서 밤에 여기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출근하고 하더라구요. 얼마 전에 공단 지역에도 플래카드를 걸어보고 상담을 받아보자, 거기는 파견이 워낙 많으니까 파견과 관련해서 조금 더 상담을 받아보자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좀 봐야할 것 같아요.
힘이 없는 사람한테 권리주장을 하라고 하는 노동법 교육, 안전교육, 이런 거 시켜서 뭐할까. 왜 대들지 않았냐, 왜 당하고만 있었냐,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가, 물론 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요. 인권교육, 노동법교육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했지만, 바뀌어야 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아닐까요.
왕복근) ‘지르고 나올까요? 조용히 사퇴서를 쓸까요?’ 뭔가 저지르고는 싶은데 이걸 어떻게 저지르지, 이런 고민을 하는 분이, 그냥 부서 안에서 혼자 저지르는 것보다는 노조가 있으니까, 가는 것이 방법이다 이야기했어요. 이 분은 조용히 나갈까 시끄럽게 나갈까 고민하는 상황에서, 문제제기를 할 거면 노조를 통해서 세게 하는 게 좋겠다, 조용히 나가시면 뒤에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 이상한, 혼자 억울해서 난리치다가 나가는 것처럼 하지 말고, 고민을 해보는 게 좋겠다 말씀드렸죠.
전수경) 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상담을 요청했다가 직장갑질119에 연락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해온 분도 있어요. 노동법이나 근로감독관으로 해결하기 어려운데, 노동청에 갔다가 오는 분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직장갑질119를 반가워하는데, 그 이유가 진정 건은 되지 않으면서 인권침해는 맞고, 이런 거는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노동부에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계속 이렇게 사례가 모여야 사업장에 개입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이 활동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 돌아가는 길, 다른 길도 찾아보자
구교현) 직장갑질119 하면서 예전에 알바노조 활동 할 때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소규모 사업장에 소수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지금도 노조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서 교섭 요구하는 절차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잖아요. 직장갑질119 활동의 경험과 고민이 이런, 현재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그러나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서는 ‘노조를 만드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안 될까. 노조를 만들어야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노조를 만들어야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건데, 다른 수단, 이를테면 법률용어에 대항권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한다든가, 이런 대항권 개념, 개별노동자들이 대항할 수 있는 수단, 노조가 없더라도 교섭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한다든지, 노조가 없어도 시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안 되면 제 3의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든지, 카톡방 보면서 익명 신고제도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거든요. 드러나면 불이익 받을게 뻔하니까 제보를 못하잖아요. 익명으로 신고하는 제도, 3자가 신고할 수 있는 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3자 진정이 가능하잖아요. 기존의 노동조합이나 직장갑질119 같은 단체도 그런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노동자가 최소한의 수준으로 저항할 수 있어야 노조가 필요하구나, 할 수 있고요.
전에 독일 서비스노조 활동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저희가 맥도날드 알바노동자 조직하는 사업을 알바노조에 하면서 물어보니까 독일은 모든 사업장마다 정례 교섭을 의무적으로 하는 제도가 있대요. 노조가 있든 없든, 모든 맥도날드 매장에서 노동자들의 고충을 정기적으로 접수하고 처리하는 절차가 있고 그 절차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다, 노조가 없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노조에 도움을 청하면 자문해 주고, 노조를 경험하게 되고, 매장에서 노조를 만드는 사례도 나오고. 그래서 노조로 가기 위한 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그런 힘이 있어야 수평적이고 평등하게, 갑질을 안 주고 안 받는 아름다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전수경) 노동운동이 사회적 역할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직장갑질119가 잠시 대체한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 교육, 더 많은 인권의식 확산이 같이 간다면 해결될 문제도 있겠죠.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고, 기업별 노조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방식이 되면, 지금 카톡방에 들어와 있는 많은 분들에게 노사정 또는 노정 교섭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별노동자들이 가진 어려움을 계속 끌어안은 채로 네트워크가 가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에. 양대 노총, 노동부, 국가인권위 등은 이 상황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노총에 속한 대기업이나 기업별 노조, 이런 곳에서는 사례들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 성찰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기획2 환경 지역 건강이 만나는 현장을 찾아
문제가 일어난 지점에서 문제와 씨름하며 태어난 석탄화력 반대운동
-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대 담: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녹취록: 이주연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당진으로 유종준 사무국장을 만나러 가는 길, 고속버스로 한 번에 가는 길을 기차를 타고 광명역에서 내려 버스로 탈아 타는 방법을 택했다. 광명역은 거대한 역사안에 문을 연 상가보다 닫은 곳이 많다. 역사 안은 아침인데도 조명을 꺼놓아서 컴컴했다. 버스를 조금이라도 덜 타고 싶어서 택한 길인데 그 효과는 미미하지만, 거대하고 텅 빈 건물의 기억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당진터미널에 내려서 유종준 사무국장을 만난 곳은 터미널 1층, 당진비정규노동센터.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은 소식지 발송으로 분주하여 이 곳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비정규센터의 활동가, 대표님까지 반겨주시고 우렁쌈밥도 대접해 주셨다.
유종준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환경운동하기,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로 살아가기에 대하여 유쾌하게, 힘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느릿느릿한 듯 느껴지지만 사실관계와 관조하는 유머가 교차하는 입말의 재미에 빠지게 한다. 재미나게 들었을 뿐인데 교육효과는 아주 컸던 강좌 같았다고 할까. 그 현장으로 가서 운동이 태어나고 자란 그 지점에 대하여 들을 때 토론회보다 기자회견보다 더 깊고 더 근본적인 대안과 정치가 생산되는 지점을 배운다. 자주 잊게 되는 이 진실을 유종준 사무국장이 다시 일깨워 주었다.
세계 2,3,4 위 석탄화력발전소가 태안, 당진, 보령에
전수경) 당진 석탄화력발전소 주변 지역의 암 발생률이 높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주민들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부터 여쭤볼까 싶어요. 지역사회 안에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의 크기와 비중으로 다뤄져 왔는지, 그 동안의 활동도 궁금합니요.
유종준) 매우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요. 2013년도 환경부 조사 결과, 전국 시군구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서 당진이 1등을 했어요. 당진이 1등이고, 포항 남구, 광양, 그 다음에 울산, 여수, 이 순위더라고요. 당진이 이렇게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이유가 뭐냐, 하나는 석탄화력 발전소, 또 하나는 제철소, 현대제철이 있어요. 작년도, 올해도, 사업장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순위가 쭉 나오잖아요? 1위부터 5위까지가 다 석탄화력발전소예요. 당진화력이 4등, 현대제철이 7등. 10등 안에 당진이 2개가 들어갔어요. 엄청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거죠. 제철소는 10위권에 현대제철, 포스코 포항, 포스코 광양 세 개가 들어가 있어요.
제철소들이 철광석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석탄과 같이 연소시켜서 쇳물을 뽑아내서 고품질의 철을 만드는 거예요. 철광석과 함께 석탄을 많이 사용하죠. 1위부터 5위까지 석탄, 석탄이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거죠. 10위권 내 업체 중 8개 업체가 석탄을 사용해요. 5개는 화력발전소, 3개는 제철소. 이 정도로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거고요.
전국에 석탄화력발전소가 61개 있어요. 그 중 30개가 충남에,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여기 있는 거예요. 재작년에 당진화력 9, 10호기 완공되고, 작년에 태안화력, 보령화력 9, 10호기도 다 완공이 됐거든요. 당진 10개, 보령 10개, 태안 10개. 이게 어느 정도냐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석탄화력발전소가 중국에 있는 다탕발전소예요. 내몽고 쪽에 있고, 태안, 당진, 보령이 세계 2, 3, 4위 그만큼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막대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거고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피해로 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과거에는 공해 그러면 석유화학단지 이런 걸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나온 걸로는 가장 많은 대기오염은 석탄화력발전소, 두 번째는 제철소. 3등은 시멘트 공장, 4등은 석유화학단지. 충남이 1위, 30%예요, 경남이 2등. 2등이 15% 두 배예요.
문제는 그동안 지역주민들의 건강피해가 어떻다 최근에야 조사가 들어갔지 옛날에는 조사를 하지 않았어요. 잘 모르는 거예요. 발전소 주변에 있는 교로2리 마을에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한 거예요. 발전소가 생기고, 송전을 한 후에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죽어가고 이러니까, 어떻게 된 건지 집계를 한번 내 본 적이 있어요. 교로2리 한 마을에서 99년도에 발전소가 가동한 이후 지금까지 24명의 암 환자가 발생했어요. 그 중에 13명이 돌아가셨고 11명이 투병 중이죠. 이러다 보니까, 충남도에서도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있고요. 문제는, 다른 지역과 비교를 해야 하니까 시간이 걸리고 있어요. 이쪽 지역 주민들이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고, 요중 비소, 체내 중금속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요.
봄철 되니까 미세먼지 걱정이 많잖아요. 미세먼지도 당진이 가장 많이 배출해요. 대기오염물질 순위로 따지면 포항 남구가 1등이더라고요. 당진이 2등. 문제는 당진이 배출한 것 중에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이 있어요. 이건 압도적으로 1위예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은 공기 중에서 광화학 반응을 통해서 2차 미세먼지로 바뀌거든요. 이거는 PM10보다 PM2.5가 더 많아요. PM10보다 PM2.5가 입자가 더 작기 때문에 위험하거든요. 2차적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훨씬 많고 위험하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끼치는 거죠.
반대해도 자꾸만 들어오는 발전소, 당진시장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
전수경) 석탄화력이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충남에 대형 발전소가 세 개나 있다는 건 몰랐어요. 서울 쪽으로 전기를 보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 이유 때문이죠) 발전소 세 개가 건설되는 동안 지역사회 대응은 어땠나요?
유종준) 당진은 90년대부터 건설하기 시작했고요, 완공된 건 99년, 가동되기 시작했어요. (최근이네요?) 보령화력은 더 오래 됐고요. 한 84년부터, 태안은 당진과 비슷할 거예요. 처음에는 발전소가 들어오는 게 심각한 문제인 줄 몰랐어요. 전혀 몰랐거든요. 환경운동하는 사람들도 몰랐어요, 실제로 석탄화력이 들어와서 싸우면서 자료를 보니까. 어떤 사업장, 어떤 시설보다도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서, 중요시 여기고 싸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전수경) 발전소가 들어설 때까지, 건설될 때까지는 특별히 개입하지 못했고요?
유종준)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1호기, 2호기 들어올 때만 해도 위험한 줄 몰랐고, 물론 몇몇 사람들이 반대 했었는데, 조직적으로 대응도 못했거든요. 발전소가 처음 들어올 당시만 해도 환경단체도 없었어요, 마을 주민들 몇 분이 반대하다가 그냥 좌절하고, 1, 2호기 들어오고 3, 4호기가 들어왔어요. 1, 2, 3, 4호기를 겪어보니까 피해가 너무 심하거든요. 석탄분진이 계속 날려요. 마을에 떨어져요. 빨래도 제대로 못 널고, 지붕이나 창틀에 항상 석탄 가루가 날리거든요. 지역주민들이 못 참겠다,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했죠. 그때 5, 6호기가 또 들어온다는 거예요. 반대 운동을 열심히 했죠,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그래도 강행을 해요, 정부가. 그 다음에 7, 8호기가 또 들어온대요. 반대하는 대책위를 만들어 막 싸웠죠. 그래도 또 강행을 해요, 정부가. 그 다음에 9호기, 10호기를 또 만든대요. 또 막 반대했는데, 이것도 또 강행을 했어요. 9호기, 10호기를 또 만들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또 민간 화력발전소가 들어온다는 거예요. 지금은 당진에코파워, 과거에는 동부화력이라고 했어요. 동부건설이 동부그린이라는 발전소를 지으려고 했던 거죠. 시민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 범시민대책위를 구성해서 8년간 싸웠어요. 범시민대책위는 어느 정도냐면, 진보, 보수를 다 망라해서, 시민단체,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보훈단체, 우익, 보수단체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새마을부터 시작해서 막 그냥. 상임위원장이 자유총연맹 회장이예요(웃음).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사람들이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 보고 ‘빨갱이 나와!’ 발전소 반대운동 하는 사람한테 이야기하잖아요, ‘야 내가 자유한국당 충북도당 부위원장이다!’(웃음). 그럴 정도로 보수적인 분들도 위원장으로 있고, 공동위원장 중에 상당수는 읍면 개발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시민단체도 많이 들어가 있고요.
2016년 7월에 서울에서 일주일 단식 농성도 한 적 있어요. (당진 시장이 서울 와서 하셨던 거죠?) 시장이 단식하니까 다 지지방문 오더라고요. 깜짝 놀란 게 천막으로 군복 입은 할아버지들이 오는 거예요. ‘어버이 연합이구나, 이거 큰일 났구나’ 했는데, 이분들이 천막으로 오더니 플래카드를 확 펼치는데, ‘시장님을 따라 석탄화력발전소를 끝까지 막아 내겠습니다’ (웃음) 월남전 참전 전우회더라고요. 여기부터 시작해서 상이군경, 해병전우회까지 찾아와서 지지하고. 그때 정말, 당진 시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반대운동을 하게 된 거였죠.
막아냈어요. 2017년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당진에코파워는 LNG로 전환한다, 또 하나는 울산과 음성으로 각각 (발전소를) 둔다. 당진에코 싸움 8년만에막아냈어요.
전수경) 동부화력, 그러니까 민자 발전소를 막아내신 거죠. 지역사회 안에서, 교로 2리 그 시골 마을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당진시 전체는 이것이 절박하고 실제로 모두가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거네요?
유종준) 그렇죠. 몇 번 부침이 있었거든요. 그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고요. 발전소의 오염물질이 그 마을에만 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당진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까지, 북한하고 중국까지 가거든요. 그만큼 많은 피해를 일으키는 거죠.
전수경) 민자 발전소를 막아낸 거고, 현재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기다린다 그럴까, 그런 과정이네요 (계속, 매년 하고 있어요). 성과가 있었네요. 이 사이에서 당진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진 과정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은 초창기에는, 발전소를 몰랐으니까 싸우지도 못했고요. 90년대, 1996년, 97년 당시에 당진의 환경 현안은 중부권 특정 폐기물이 입주하려는 문제가 있었고, 성문 국가산업단지에 유공. 지금의 SK석유화학단지가 들어오려고 했거든요. 석유화학단지가 공해 업체니까, 그 반대운동을 했어요. 결국은 IMF가 터지면서 SK 쪽에서 포기를 한 것 같아요. 그 대책위원회가 모였죠. 이긴 걸 축하하면서, 이기긴 이겼는데 시민대책위원회가 끝났다고 해산하고, 또 뭐 하면 그때 또 위원회를 할 수는 없지 않냐, 해서 상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단체를 만들자고 한 거죠. 어떤 환경단체를 만들어야하나? 녹색연합도 가보고, 환경운동연합도 가본 거예요. 지역조직을 갖고 있는 데가 환경운동연합이잖아요. 당진 환경운동연합을 건설하게 됐죠. 99년 9월 9일. 외우기도 쉽게, 구구절 (웃음). 9월 9일 창립을 했어요.
창립하면서 반 이상을 석탄화력 싸움을 했어요. 99년에 우리가 창립했는데 딱 그때 완공이 됐거든요. 그때부터 발전소, 제철소. 현대제철, 전에는 한보철강이었어요, 한보철강, 환영철강. 이런 제철소는 어떻게 하냐 하면, 고철을 갖다가 고압의 전기를 이용해서 녹이는 거예요. 거기서도 오염물질이 꽤 나오고 분진도 날리고 하는데, 고로는 고철을 녹여서 전기로 쇳물을 뽑는데, 공장용 철근 이런 거 만들고요, 품질이 낮은. 철광석을 들여다가 석탄을 이용해서 쇳물을 뽑는 고로는 고품질의 철을 뽑아요, 자동차 강판 같은 거 만드는 데 쓰죠. 현대그룹에서 한보철강을 인수해서 여기에다 제철소를 세우겠다, 추진했던 거죠. 반대운동을 했는데 결국은 현대제철 들어오게 됐죠 (웃음).
전수경) 현대제철도 일자리를 만들고, 대기업이 들어오는 거라서 보통은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석유단지나 산단이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것이 지역사회를 먹여 살린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잖아요. 노동과 환경 사이에서 지역사회 여론은 어떤가요?
유종준) 현대제철은 들어올 때 갈등이 많았어요. 포항이나 광양 같은 곳을 다녀보니,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현대제철이 들어온다고 할 당시에, 서울대 백도명교수가 한 거였는데, 광양에 있는 포스코 공장 주변 주민들 건강조사 결과가 나왔거든요. 청소년의 호흡기 질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왔어요. 광양에 갔었거든요. 딱 가보고 어떤 느낌이냐면, 더 이상 제철소를 먹거리로 보지 않는구나, 환경문제가 심각하구나, 반대해야겠다 생각했죠. 당시에도 찬반은 있었어요, 지금 보면 현대 제철이 지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에요. 고용 인력이 많아요. 현대제철이 고용하는 인원만 1만 2천명, 1만 명이 넘어가요. 절반이 비정규직인 게 문제기는 한데.
제철이 들어오면 연관 산업단지가 들어와요. 철광석을 갖고 온던가 부산물을 가공하던가,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있는 편이거든요. 사실 당진이 다른 지역보다 성장하는 지역이예요. 인구도 늘어나고. 충남이 1인당 GRDP라고 하죠, 1인당 지역내 총생산이 울산 다음으로 2등일 거예요. 울산이 1등, 충남이 2등이예요. 충남 내에서도 보통 아산, 당진, 서산의 GRDP가 굉장히 높은 편이죠. 큰 역할을 하는 게 현대제철이에요. 그만큼 환경문제도 크지만요.
거기에 비하면 화력발전소는 고용 인력이 1천 명밖에 안 돼요.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고요. 고용 창출이 크지 않고, 연관 산업도 거의 없어요. 연관 산업이라고는 플라이 애쉬(fly ash)라고 해서 우리말로는 비회, 석탄재를 가공해서 시멘트 원료로 공급하는 그런 업체만 들어오죠. 당진과 똑같은 규모의 발전소가 태안도 있고 보령도 있는데, 그 지역들은 성장하는 지역이 아니잖아요. 태안은 지역경제 죽겠다고 난리고, 보령도 그런데. 석탄화력을 유치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에요.
전수경) 발전소 고용이 1천 명 정도라 하면, 비정규직은 어떤 직종에서 있나요? 현대제철도 비정규직 사망 사고가 해마다 여러 건씩 나잖아요. 그런데 정규직도 지역사회 주민이고, 비정규직도 지역사회 주민일까요? 외지에서 온 분들이 아니라, 지역에서 고용된 분들일까 궁금해서요.
유종준) 당진화력은 현대제철처럼 비정규직이 많지 않아요. 현대제철은 공정의 일부를 하청 주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편이고요. 당진화력은 청소, 경비용역들이 비정규직이죠. 발전소 안에 협력업체들이 서너 개 있고. 거기는 협력업체 정규직, 저희는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있죠. 현대제철도 외지 분들이 대부분이고. 어쨌든 와서 사니까 지역주민이 되는 거죠.
야적장에 뚜껑없이 쌓여 있는 석탄
전수경) 뉴스영상을 보니까 거대한, 그게 석탄인가요? 위가 그냥 뚫려있더라고요. 거대한 산처럼. (야적, 야적, 시커먼 거) 그게 발전 원료인가요? 지역으로 날아다닌다는 거잖아요?
유종준) 육상에 탐스럽게 쌓아놓은 걸 보셨으면 그건 저탄장이예요. 석탄 원료를 쌓아놓는 거죠. 바람에 비산돼서 주변에 떨어지는 거죠. 바람이 심한 날 많이 떨어져요. 발전소에서는 그걸 떨어지지 말라고 살수를 해요. 물을 뿌리는데, 그것도 표면경화제라는 걸 넣어서 뿌리거든요. 자기들은 표면경화제를 뿌려서 안 날린다는데, 안 날리긴 뭐가 안 날려, 그대로 다 날리더라고요. 물을 뿌리고 방풍림을 해도 날려요.
전수경) 그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야적장에 있나요? 아니면 외국 어디는 밀폐되어 있다 이런 건가요? 그러니까 비용 문제로 야적장에 있다는?
유종준) 비용 때문에. 당진화력도 전체가 다 야적을 한 것이 아니라, 9, 10호기는 밀폐형으로 되어 있어요. 1호기부터 8호기는 야적되어 있는 거죠. 우리가 계속 요구하거든요. 다 밀폐를 해라. 비용도 많이 들고 그걸 짓는 동안 어디다 쌓아놓으라는 말이냐 하면서 안 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미세먼지 때문에 전국이 난리가 났잖아요. 주범으로 석탄화력이 지목되면서 작년에 대책을 내놓았어요. 1조원 들여서 2024년 정도까지 모두 밀폐형으로 하겠다 약속했죠.
전수경) 지역주민들 건강문제가 나오는 주원인이 그 야적장의 미세먼지 인가요? 아니면 별도로 발전소 안에서 따른 오염원이 있는 건가요?
유종준) 사실 분진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오염물질인 거고. 분진도 물론 건강에 좋을 리는 없죠, 그보다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가 더 해롭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거기서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도 나오잖아요. 공기 중에 광화학반응을 통해서 2차 미세먼지가 나오니까. 그것이 주민들이 호흡하게 되는 거거든요.
또 하나는 석탄재를 매립을 하는데, 일부가 바다로 배출이 돼요. 그래서 중금속이, 조그마한 생물들이 먹을 테고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먹으면서, 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체내 중금속 농도가 높아요.
전수경) 체내 중금속이 높은 것은, 물고기를 섭취하는 문제인가요. 기술적으로 밀폐할 수 있는 것도 처음부터 발전소 측에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비용 문제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거고.
유종준) 두 가지가 되겠죠. 저탄장이 바람에 비산되면서 일부는 육상에 날아가고, 일부는 바다로 떨어지죠. 석탄가루가 직접 바다에 떨어지기도 하고, ‘회처리장’에서 원래는 차수막을 해서 밀폐해서 밖으로 못 나가게 하거든요. 이게 완전하지 못해요. 많이 터져있고 밖으로 유출되거든요. 해양생태계가 오염되면서 사람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죠. 현대제철이 들어올 때도 철광석하고 석탄을 야적을 하는데, 주민들이 반대하니까, 방법을 찾다가 대만에 있는 제철소가 밀폐형 돔을 씌운 걸 본 거예요. 그렇게 하자 해서 현대제철이 돔으로 다 씌웠죠. 철광석하고 석탄을 다 돔으로 씌웠어요. 당진화력도 이야기가 나올 거 아니에요. ‘야 현대제철은 하는 데 너희들은 왜 안 해’ 얘기가 나오니까 당진화력도 9호기, 10호기부터 밀폐형으로 하기 시작한 거죠.
전수경) 중금속 관련해서 물고기 섭취하는 거, 이런 것도 규제나 관리가 있는 건가요?
유종준) 물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려면 거기에 있는 중금속 농도를 재야 할 것 아니에요? 한 마리 잡아서 재보면 높지 않거든요, 한 마리 먹는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오랫동안 섭취하니까 그 지역 분들이 더 높은 거죠.
전수경) 그러면 어장에 대한 규제나 관리가 되고 있는 게 아니고 중금속이 높게 나오는 원인은 그것일 거라고 추정하시는 거죠?
유종준) 추정하는 거고요. 여기는 방조제가 막히면서 어업이 다 끝났어요. 옛날처럼 막 그물로 잡는 게 아니라 낚시나 맨손 어업 일부 하는 정도죠.
전수경) 환경부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나 주민건강을 위해서 행정력이 미치거나 규제하는 영역이 있는 건가요?
유종준) 국가에서 발전소를 규제하는 것은 대기물질과 관련해서, 일단은 대기환경을 규제하고 있는 거잖아요. 대기환경이 충남도에서 볼 때는 규제가 너무 느슨하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여기고, 배출허용 기준을 더 강화했어요. 대기환경정책법을 보면 도지사가 국가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환경기준과 배출허용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요. 충남도가 조례를 만들어서 배출허용기준과 환경기준을 더 강화한 거고요. 정부에서 논의하는 게 뭐냐면, 수도권 같은 경우 대기오염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잖아요? 대기오염 총량제를 하면 사업장마다 할당량을 주는 거예요. 할당량을 넘어가면 패널티를 부과하는 거죠. 그렇게 수도권 대기오염 총량제를 실시했는데,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온 거예요. 여기만 하면 뭐하냐. 충남에 있는 발전소에서 나온 대기오염물질이 서울로 가는데, 지금 충남권, 울산, 포항, 이렇게 문제가 되는 곳까지 대기오염 총량제를 확대하는 것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어요.
전수경) 먼지가 날아오는데 서울 하늘만 막고 맑게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주민 암 발병이 높다는 호소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하거나, 정부 태도가 달라진 게 있나요.
유종준) 지역주민 건강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별 관심 없고, 별 예산도 안 들이고. 충남도에서 예산을 들이고 조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1~2년 해서 될 게 아니에요. 장기추적 조사를 해야 하거든요. 이런 대기오염이나 수산물에 의한 중금속 오염 같은 경우는 짧은 시간에 되는 게 아니라 장기간을 두고 농축되고 인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기 추적조사를 실시하고 있어요.
전수경) 충남도에서는 예산을 들여서 하고 있지만, 발전소 운영하는 한전 측의 입장이나 중앙행정부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주민들의 암 발병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연관이 없다거나, 연관이 없을 것이다, 라는 거군요.
유종준) 연관성이 없다, 입증을 해 보라는 거죠. 주민들 보고. (지금도 그런가요?) 연관성 없다, 입증해 봐라.
전수경) 한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한전과 산자부의 책임 회피와 별개로 충남도가 기획하고 예산을
들이는 것이고, 이것으로 이득을 보는 한전과 발전 산업에 대해서는 충남도가 돈을 들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유종준) 발전소가 책임을 지지 않는 건 맞고요. 이런 건 있어요, 발전사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아까 말한 저탄장 하고, 대기오염물질 저감 장치 확대하겠다는 거고요. 건강영향조사와 관련해서는, 한전 쪽에서 충남도가 송전선로 주변지역 주민들의 건강영향조사를 한번 해보자, 해서 충청도가 하는 건데. 원인자 부담의 원칙에 의해서 한전이 돈 내라, 협의를 진행했는데 이게 잘 진행이 안 됐나 봐요.
당진에서 만든 전기는 서울로 간다
전수경) 지금 문제 중에 송전탑과 관련된 이슈가 별도로 있는 거죠?
유종준) 그럼요. 밀양에서 765kV 갖고 싸우잖아요. 그것이 당진에 제일 먼저 생겼어요.
전수경) 석탄화력발전소와 송전탑 이슈는 별개로 가나요? 아니면 같이?
유종준) 같이 가요. 우리 대책위 이름이 <당진시 송전선로 ․ 발전소 범시민대책위원회> 예요. 원래 송전선로로 출발했는데, 송전선로가 이렇게 많은 이유가 뭐냐면 발전소 때문에 생긴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발전소까지 넣어서 싸우고 있는 거죠.
전수경) 지중화 사업이 경기도 쪽은 되지만 여기는 계속 지상에 송전탑을 세우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여전히 그 상태로 가나요?
유종준) 그동안 그랬는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싸우면서 지중화율을 많이 얻어 냈어요. 아직 공사가 들어간 건 아니고요.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송전선로 노선이 2개가 있거든요. 북당진에서 신탕정까지 가는 345kV 송전선로가 하나 있고요. 당진화력에서 신송산까지 가는 345kV 송전선로가 있는데, 이중에 오래된 게 북당진-신탕정 3, 4호 같은 경우 한전에서 제일 처음에는 지중화 절대불가, 기술적으로도 안 된다 그랬어요. 뭐라 그러니까 3.5km 해주겠다, 그래도 안 된다 싸웠더니 5.8km 내주겠다고 해요. 주민들은 더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고요. 당진에서 신송산 가는 송전선도 5.7km는 지중화해주겠다 그러고 있어요. 우리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으니까 더 늘리라고 싸우고 있는 거죠.
전수경) 송전탑 아래 마을주민들 건강 문제가 중요한 이슈이고, 그 문제가 교로2리의 암 발병처럼 송
전선하고 관련한 것이죠?
유종준) 그렇죠. 교로2리 마을 같은 경우가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해서 시정하려고 했고요. 신당진 변전소가 당진시 정유면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어떤 곳인가 하면 낙후한 시골 지역이예요, 농촌. 공장도 없고 그냥 ‘깡촌’인데 신당진 변전소가 거기 있는 거예요. 변전소라는 건 버스터미널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변전소가 있으면 온갖 송전선로가 다 거기로 모여요. 가장 시골지역인데 철탑이 제일 많아요. 정유면 같은 경우도 역시 암이 많다 보고되고 있죠. 저희도 대응을 하고 있고요.
전수경) 변전소가 있는 마을처럼 화력발전소가 있는 곳, 송전탑과 고압선로가 지나는 곳, 이런 마을이 당진 안에서도 더 낙후된 시골이고 노년층이 많이 산다, 저소득층이 산다 이런 공통점이 있나요?
유종준) 그렇죠. 발전소는 무조건 바닷가로 가요. 바닷가로 가기 때문에 경치 좋은, 어촌마을로 가는 거죠. 시내와 떨어져서, 외진 곳으로 가는 거죠. 변전소도 가능하면 인구가 많은 곳보다는 시골로 가려고 하죠. 민원이 좀 덜한 곳으로.
전수경) 밀양이 싸울 때도 ‘왜 이 땅을 밟고 전기가 서울까지 가야 되나’ 물었던 것처럼, 당진에는 전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데 서울 수도권에 필요한 전기가 여기에다 건강피해를 떨구고 간다, 이렇게 보시나요?
유종준) 당진이 전력 자급률이 300%를 넘어요. 전기를 만들어서 다 수도권으로 보내는 거죠. 당진화력 전기를 당진 사람들이 안 써요. 전량 서울로 보내는 거예요.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수도권을 위해서 희생시키는. 중국, 한국이 석탄발전소가 많잖아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은 빠져 있잖아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특정 지역에 발전소를 몰아서 지을 수 없어요. 주민들이 가만히 안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특정 지역에 발전소를 몰아서 짓고 서울까지 장거리 송전하는 거예요. 수도권하고 가까이 있으면 수도권 시민들이 뭐라고 하니까, 가능한 떨어뜨려서 장거리 송전하는 거죠. 그러니까 발전소 집중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거고요, 두 번째는 장거리 송전으로 인한 송전선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장거리 송전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냐면… 765kV 송전을 해야 하거든요. 765kV 송전선로는 지중화가 안 되요. 무조건 철탑으로 가야 해요. 그 피해도 있는 거죠.
전수경) 서울에서는 미세먼지를 아침마다 체크하면서, 승용차를 제한하든가, 노약자 외출을 자제하라든가, 전쟁처럼 난리가 나요. 오랫동안 발전소 옆에서 싸우고 있는 분들 입장에서는 불공평해 보일 것 같아요.
유종준) 당진이나 충청권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서 사업을 한 적이 없거든요. 정부가 신경도 안 썼고,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 사업을 하느라고 무지하게 많은 돈을 때려 부은 거잖아요. 재작년에 감사원 감사 결과로, 그렇게 때려 부어봤자 원인은 거기 있는 게 아니라 충남에 있다, 그런 나온 거거든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석탄화력발전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죠.
전문가는 없고, 자료는 영어, ‘석탄화력실무’를 보면서 공부
전수경) 서울, 중앙의 환경운동은 보통 원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도가 높고 탈핵운동도 활발한데요. 큰 환경단체들이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던 이유가 있나요?
유종준) 석탄화력이 얼마나 피해가 큰 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핵발전소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집중해 왔던 거죠. 석탄화력은 신경을 안 썼어요. 처음에 저희들도 운동할 때 굉장히 외롭고 힘들게 했어요. 도와 달라 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게 싸워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전문가가 없어요. “탈핵” 하면 전문가 누구누구 생각나잖아요. 부를 만한 사람이, “석탄화력” 하면 부를 사람이 누가 있어요? 전문가가 없어요. 토론회를 하려면 전문가가 없으니까 미치는 거야. 그러면 생각 할 거 아니에요? ‘전문가 없으면 까짓 것 내가 공부해서 하지’ 그런데 자료도 없어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자료가 없는 거야. 자료를 찾은 게 ‘석탄화력 실무’라고 해서 발전소 직원들이 보는 거. 발전소 직원용이잖아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거예요, 너무 전문적이어서 무지하게 어렵더라고요. 그걸로 막 공부하고 했어요.(결국 급한 사람이 전문가가 되신 거네요) 그렇게 됐어요.
전수경) 석탄화력 공부하면서 건강과의 연관성, 지역주민 암 문제 같은 건 처음에 어떻게 연관 지어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셨어요?
유종준) 우리나라 자료보다 외국 자료가 먼저 있어요. 외국에서는 그런 자료들이 계속 나왔거든요. 석탄화력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만 연간 1만 3천 명, 유럽에서 1만 8천 명, 놀란 게 뭐냐면, 2013년도인가 호주에서 열린 ‘태평양 석탄반대네트워크’라는 NGO 모임을 간 적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은 별 관심이 없는데, 그린피스부터 시작해서 외국 단체들은 석탄에 대한 관심, 연구, 전문가가 엄청 많더라고요. 눈이 휘둥그레졌죠. 자료도 엄청나게 많고요. 자료 중에 하나를 봤는데 영어로 쓰여 있어요 (웃음). 제 영어실력으로는 그거 보려면 몇 주는 걸릴 거야 (웃음). 중국에서는 석탄 연소로 조기사망자가 매년 25만 명이 나온대요, 매년. (시 하나 인구네요) 중국도 대기오염이 심각하잖아요. 사실 원인이 석탄이예요. 석탄 발전소도 문제고, 난방을 석탄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죠. 옛날 런던스모그 사건 있잖아요. 겨울에 석탄을 땐 거예요.
전수경) 원전은 묵시록처럼, 암울한 미래와 연관지어서 지식인들, 전문가들이 관심이 많은 편인데, 석탄 역시 현재 진행형이군요. 19세기에나 썼을 것 같고, 석탄이 환경문제이고 건강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을 저는 관심을 못 가졌네요. 한국에서는 지금 서울 아니고 당진이, 당진환경운동연합이 석탄화력 운동에 대해서 중심이 되어있군요.
유종준) 그렇지 않아요 (웃음). 저희들이 하다 보니까 호주에도 갔다 오고 자료를 보고 저자한테 연락해서 다음 해에 국제 심포지엄도 열었어요. 없는 돈 끌어 모아서 한국 사례 발표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환경운동연합 중앙에서도 관심을 갖고 그린피스에서도 관심을 가진 거예요. 한국그린피스가 특히 큰 역할을 했어요. 제가 그랬잖아요, 미국은 1만 3천 명, 유럽에서는 1만 8천 명, 중국에서는 25만 명. 그럼 한국은? 그게 궁금했거든요. 그린피스에서 자료가 나온 거예요. 큰 도움이 됐죠. 석탄 피해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환경운동연합 중앙에 에너지 교육팀, 그린피스에 석탄전문 캠페이너가 따로 있어요. 석탄에 대한 활동도 많이 진행했죠.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려면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정답
전수경) 지금 건강문제, 조기사망 문제가 석탄화력에서 굉장히 결정적이고, 건강영향을 입증하는 것이 석탄화력 증설을 반대하는 키워드가 된다고 볼 수 있나요?
유종준) 석탄발전소가 전국에 60개가 있어요. 가장 심각한 게 미세먼지일텐데, PM10, PM2.5 이게 자동차, 사업장, 발전소에서 오는 건데 발전소 60개는 정부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LNG발전소도 있는데, LNG보다 석탄화력이 싸니까 석탄은 24시간 365일 돌려요. 기저부하라고 하죠. LNG는 항상 돌리는 게 아니에요. 전기가 부족할 때만 돌려요. 여름, 겨울 이렇게 전력 피크시 LNG발전소 가동률을 더 올리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줄일 수가 있어요.
자동차는 전국에 몇 대가 될까요? 미세먼지의 주원인은 대형화물차예요. 대형화물차하고 경유버스가 될 거거든요. 일반 승용차는 2부제 해서 막을 수 있다고 치고. 대형화물차는 어떻게 막을 거예요? 생계인데요. 버스도 마찬가지고. 방법이 없거든요. 사업장도 마찬가지예요. 전국에 몇 개나 될까요. 수 천, 수 만개 될 텐데 관리가 안 될 것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미세먼지 발생량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탄화력발전소예요. 배출원 관리가 쉬워요. 투자를 통해서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고, 대체할 수 있어요. LNG가 있으니까요. 미세먼지를 효과적으로 줄이고 대처할 수 있는 핵심 열쇠는 석탄화력발전소예요.
전수경) 대기오염 규제에 대해서, 석탄화력발전소와 미세먼지의 관계는 덜 본 것 같아요. 한전이 궁금한데요,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종준) 정부가 문제죠. 문제의 근원을 따라가면 당진도 밀양도, 산업자본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모든 사건이 다 발생하는 거예요. 산업계가 값싼 전기를 이용해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경영하거든요. 떼돈을 버는 거예요. 그 피해를 주민들이 보는 거죠. 값싸게 산업용 전기를 공급한다니까 쓰지 않아도 될 전기를 쓰는 거예요. 과소비를 막 해. 전기 수요가 늘어나겠죠. 정부는 ‘전기수요가 늘고 있네, 수요에 맞추려면 공급을 해야겠네’ 발전소를 건설하는 악순환이 되어온 거죠.
전수경) 지금 이야기하신 대기업, 산업을 굴리는 대기업들의 필요에 의해서 약자이면서, 아주 시골의 주민들에게 암이 생긴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거군요. 활동하실 때는 그런 부분을 많이 주장하시나요?
유종준) 산업자본에 값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게 본질적인 문제인데, 그 이야기를 하면 전기요금 인상 이야기가 나와요. 정부로서는 뜨거운 감자거든요, 전기요금 인상이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환경단체도 조심스러워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인상해야 해요. 지금처럼 값싼 산업용 전기를 막 쓰다가는, 가정용 전기는 좀 인상해야 해요. 산업용 전기는 훨씬 더 인상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말씀드리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어요.
전수경)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서 시민사회나 정부나, 전면적으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적은 없지 않나요?
유종준) 산업용 전기는 인상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만 나오면 산업계에서 반발하죠.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 적자 쌓인다, 그러니까 쉽게 못하죠. 정부도 이야기를 잘 못하고 있고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한데, 정부가 잘 못하고 있어요.
전수경) 산업자본에 대한 전기 공급인데, 실제로 이것을 운영하는 기업은 한전이니까, 한전하고 싸움을 만들거나 논쟁을 하는 것은 어려운 건가요?
유종준) 한전은 그냥 회사에요. 정부가 중요하죠, 한전 마음대로 전기요금을 할 수 는 없잖아요.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죠. 송전선로가 이리로 가냐 저리로 가냐는 한전하고 말할 수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한전하고 말 할 게 아니에요. 전기요금 인상은 산업자원부가 키를 가지고 있죠.
전수경) 원전 같은 경우에는 한수원에서 집요하게 원전 건설을 계속 하려고 해요. 자기 조직의 이해가 있기 때문에, 일자리도 그렇고. 신고리 공론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죠. 석탄화력 역시 한전 내부에서 일자리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정부와 산업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더 그런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유종준) 그런 것도 있죠, 물론. 석탄화력발전이 전기요금 문제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면 발전소 증설이나 유지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계속 반발하죠.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뭐냐면, 발전산업 노조가 있어요. 석탄화력발전산업노조. 한수원에도 노조가 있잖아요, 대응 방식이 정 반대였어요.
신고리 5,6호기 때 갔었거든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해서 울산에 가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노동가요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오더라고요. ‘아 우리 편이구나’ 했는데 우리 편이 아니더라고요, 한수원 노조. (조합원들 1인당 10만 원씩 벌금물린다는 소문이, 그 날 집회에 안 나오면) 어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탈석탄에너지 전환을 발표했잖아요. 발전산업 노조는 ‘동의한다, 탈석탄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동의했어요. 그 때 정부가 셧다운을 발표했잖아요. 발전소를 한시적으로 3개월 가동 중단하겠다고. 이러니까 발전산업 노조에서 동의한다, 발전소로 인한 주민들의 건강, 국민 건강, 미세먼지 피해를 보면 탈석탄으로 가는 게 맞다, 재생에너지로 가야한다 이러면서, 표현도 ‘애틋하게 동의한다?’ 마음 아프지만 동의한다 이렇게 나왔어요. 감동적이었어요.
노조가 자기 일자리 날아갈 지도 모르는데 석탄화력 발전소를 탈석탄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고 내놓은 거예요, 한수원 노조와는 다르게.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전수경) 그렇군요, 발전노조 같은 경우에는 연대한다고 볼 수 있네요. 중요한 걸 알았네요.
유종준) 발전산업 노조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지역주민과의 연대는 아직 어렵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가 당진에서 싸웠던 당진에코파워가 SK에서 하려던 거니까, 전기는 국가 기간산업이고 공공성이 높은데, 민간에서 들어오니까 반대했어요. 그래서 연대해 왔죠. 민영화반대, 사회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노인회장님이 직접 그린 암발병자 조사표
전수경) 원전과 석탄화력, 두 노동조합의 다른 행보까지 돌아봤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교로2리 암 환자 분들 상태나 치료비용은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있나요?
유종준) 자기가 하는 거죠. 어디다 요구하려고 해도 입증을 하라고 하잖아요. 당진화력도 그렇고.
전수경) 신문에 많이 나오긴 했지만, 주민 개개인에게는 변화가 없는 상태군요. (그렇죠) 그분들 성별, 연령대가 주로 어떻게 되시나요?
유종준) 교로2리도 그렇고 노인들이 많죠. 대책위 구성하고 싸울 때도 노인들이 나오세요. 노인 부장님들, 노인회 회원들이 중심이죠.
전수경) 그분들 치료비, 요양비, 장례비, 모든 것이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예요?
유종준) 그렇죠. 건강영향조사만 충남도에서 하는 거고. 암이나 질병이 의심되고 있는데 입증을 못하
니까 개인이 부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충남도에서 하는 조사는 문제가 있어요. 일단 예산이 너무 적어요. 연 3억. 샘플을 가능한 많이 확보해야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거든요. 주민들 몇 명이 아프다고 하면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렵잖아요. 많은 주민들을 정밀하게 장기 추적조사를 해야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거든요. 그만큼 예산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예산을 확보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로 화나는 게 뭐냐면, 지역자원 시설세라고, 원전에만 부과되던 게 얼마 전부터 화력발전소에도 부과됐어요. 제일 처음에는 0.26원 Kw당. 지금은 Kw당 0.3원까지 올라갔어요. 매년 백억 넘는 예산이 충남도와 시군에 들어와요. 그 많은 예산을 LED전등 교체하고 LNG배관가스 이런 데 쓰더라고요. 발전소로 인해 피해 보는 지역주민들 건강과 환경에 우선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전수경) 그게 발전세라고 하는 것인가요?
유종준) 정확한 명칭은 ‘지역자원시설세 화력발전분’ 이라고 하는데요, 그냥 화력발전세라고 부르죠.
전수경) 암 발병률이 높다고 언론에 보도는 되지만, 실제로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된다고 결론이 날 수도 있잖아요? 옛날 얘기지만, 미나마타병처럼 분명한 것도 기업이 처음에는 부정했는데, 여기처럼 추적조사가 필요한 상황은 인과관계를 밝히기 더 어렵잖아요. 충남도가 여론을 무마하려 조사하는 걸까요?
유종준)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충남도와 당진시가 처음에는 발전소 편이었죠, 주민들 편이기 보다는. 지역 지원금도 나오고 세금도 나오니까 도나 시는 좋아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피해가 심하고 문제를 일으키니까 시나 도도 화력발전소가 문제가 있다고 보고 탈석탄 에너지 전환을 선언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충남도가 건강영향조사를 보여주기 식으로 할 것 같지는 않아요. 도지사 의지는 확실한데 공무원들이 예산을 제대로 하지 않더라고요. 부족해요.
전수경) 지역 안에서 건강문제에 대한 주민 설명회나 주민교육이 이루어진 적이 있나요?
유종준) 단국대가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의대 교수하고 연구진이 가서 마을 회관에서 문진하고, 만나 뵙고 건강 조사하고 조사결과 보내드리고 그렇게 했죠.
전수경) 그런데 교로2리의 암 발병이 많다, 석탄화력과 연관이 있다고 처음에 치고 올라온 순간이 있나요?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유종준) 8년간 당진에코파워 싸움을 하면서 교로2리에 마을대책위원회가 구성됐거든요, 오랫동안 싸우니까 언론사도 오고, 대학, 외국에서도 와요. 오면 제가 모시고 교로2리로 갔죠. 주민들 이야기도 듣고, 그러다 보니까 지역주민들도 자료도 모으고, 노인회장님이 일일이 한 거예요. 표로 이렇게, 손으로 그려서, 몇 년부터 누구누구, 누가 죽고, 지금 투병 중인 사람은 누구 그걸 하셨더라고요. 노인회장님이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어떤 할머니들은 이름도 몰라서 누구의 처 이렇게. 제가 사진 찍어서 다시 표로 만들어 드리기도 했죠.
그랬더니 JTBC에서 표를 갖다가 어떻게 했냐면, 마을 사람들 아무개가 어디 사는지 알잖아요. 위성사진을 놓고 같이 띄웠어요. 아무개 집은 여기, 아무개 집은 여기, 이렇게 주소를 찾아서 찍었더니 발전소에서 765, 154 송전로가 지나가는 사이에 집중적으로 사망자가 나왔더라고요. 큰 도움이 됐죠.
전수경) 당진에코파워 반대운동 하시면서 주민들 만났을 때 주민들이 이미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군요.
생산력의 발전이 진보라고 믿던 운동권이 환경주의자로 거듭나다
전수경)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 개인적인 거 여쭤 봐도 될까요, 처음에 어떻게 환경운동에 뛰어 드셨나요, 어떻게 석탄화력발전 전문가가 되셨어요?
유종준) 환경운동 전에 일하던 직장은 지역 신문사였어요. ‘당진시대’ 라는 지역 신문사인데, 한겨레신문을 모델로 시민주를 모아서 만든 신문사거든요. 지역 문제를 고발하고 개선하기 위해 기자로서 일을 한 건데, 주로 많이 다루는 영역이 발전소였어요. 당시 당진화력 5, 6호기가 들어올 예정이고, 당진시에서 받기로 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이 저였을 거예요. 의회 방청하다 보니까 예산안에 올라간 거예요. 당진화력 5, 6호기 특별지원금이 딱 예산안에 포함된 거예요. 지역에서는 반대하고 있는데, 당진시는 이것을 받겠다는 얘기잖아요. 이거 보도하면서 범시민대책위가 구성이 됐죠. 가장 큰 현안이 계속 환경 문제였어요. 석탄화력발전소, 제철소. 그러다 보니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지니까 창립멤버로 참여했어요.
특히 가슴이 많이 울렸던 것이 언제냐면, 2000년이었을 거예요, 도법스님 강연회를 당진에서 했는데 그 강연회에서 충격을 받았죠, 처음 듣는 소리가 많았어요. 우리가 지나치게 이원론적인 세계에 살았다, 주체와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세계관을 가졌다, 환경운동연합의 환경도 적합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환경이란 것은 주체를 둘러싼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체라고 정의하잖아요. 사람을 위한 쾌적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하는 게 운동이냐, 자원이 유한하고 우리가 자원을 소모하다 보면 끝나는 건데, 에너지가 대표적이겠죠.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면 언젠가 고갈되고,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생태계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건데, 이게 제대로 된 삶이냐,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설명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진보적 운동을 쭉 하고 살았어요. 20살 이후로. 진보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역사가 발전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근저는 생산력, 생산력의 발전을 질곡하는 낡은 생산관계가 문제였던 거고, 계급투쟁이죠 이게. 생산관계를 깨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보적인 운동이라고, 결국 운동이 발전하면 생산력이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생산력이 이렇게 발전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20대부터 가져왔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였어요. 절대적인 신념 같은 거였는데 무너졌던 거죠. 내 운동에 대해서 돌아보고,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진 거죠.
지역 신문기자가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하는 건데,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해야 해요. 내가 피가 뜨거운 사람이라 그게 무척 어려웠어요. 내가 5월 광주에 있었다면, 내가 기자였다면 카메라 들고 있었을 것인가? 같이 총을 들었을 것 같아. 좀 더 실천적인 활동을 해야겠다.
전수경) 문제가 있는 곳에서 그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싸우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사례라고 할까, 그걸 보여주시는 것 같군요.
유종준) 정말 힘들었어요. 배울 데도 없지, 전문가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돌고 돌아서 저한테 와요. 내가 전문가래. 자료라도 내 놓으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없고 그린피스라고 외국에 있대요. 다 영어잖아, 구글 번역기로 돌리래요, 한국말이긴 한국말인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웃음)
전수경) 한국의 학자들, 의사, 환경운동가들 관심이 지역, 석탄화력, 주민건강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겠군요.
유종준) 어려웠어요. 그래도 호소하고,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 불러다가 토론회 하면서 전문가들도 관심이 높아졌어요.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 대기오염, 기후변화 전공하는 분들도 석탄화력에 대해서 관심 갖고 공부하면서 전문성이 높아졌어요.
전수경) 오늘 대화 마무리하면서 여쭤 볼게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변화, 발전소 자체를 폐쇄할 수는 없지만 변화가 감지되고 있나요?
유종준) 물론입니다. 탄핵을 통해서 문재인정권이 일찍 들어섰기 때문에, 당진에코파워를 막는 데 큰 힘이 됐어요. 탄핵이 되고 대선이 5월로 잡혔는데 4월 초에 갑자기 산자부에서, 내내 미루고 있던 전원개발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서 당진에코파워 건을 심의 의결한 거예요. 장관이 승인하면 모든 승인 절차가 끝나는 거예요. 난리가 났죠.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나서 탈석탄, 탈원전, 에너지전환 이야기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때 발표한 9개의, 현재 건설 이거나 계획 중인 석탄화력 발전소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당진에코파워 2개는 LNG로 전환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걸로 했고 나머지 7개는 그대로 건설하는 걸로 됐죠.
아쉬운 점은 있는데, 문재인 정권은 탈석탄, 탈원전으로 가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물론 속도는 굉장히 느리지만요.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이 생각하는 환경과 건강
임지애 / 단국대학교
2017년 겨울, 산업단지(산단) 인근 주민들의 건강피해를 연구하는 과제를 수행하느라 찬바람맞으며 돌아다닌 적이 있다. 새벽같이 SRT나 KTX를 타고 이동하여 택시나 버스를 타고 3~40분을 달려 도착한 산업단지 모습은, 이른 아침의 찬 공기 때문인지 참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의 산업단지는 경제발전의 상징이다. 1965년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70년대 중화학 산업단지가 크게 늘어났고, 2017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1천여 개의 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했던 작업은 2003년부터 산업단지 주변 주민의 환경오염 노출과 건강영향을 조사한 연구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과제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전 조사 연구들을 통해 수집된 자료들을 통합하고 건강보험공단 자료 등 2차 자료를 연계하여 각 산업단지 별로 환경오염 물질 노출과 이로 인한 건강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다른 한 가지는 지역 주민과 기업, 환경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며 산업단지 현황과 기존 연구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의 과제를 담당했다.
우리 연구가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전국 8개의 산단이었다. 산단 주변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산단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파악하고 설득과 읍소를 통해 산단 별로 대여섯 명의 이장님이나 마을 대표들을 만나 초점집단 면접을 수행했다. 산단에 대한 인식, 환경오염 노출, 주민 건강영향, 이해관계자 소통, 주민지원 내용 등에 관한 면접임을 미리 안내한 다음, 두 시간 내외의 면접을 시행했다. 연구 과정에서 총 33 분의 주민대표들을 만났다. 해당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수십 년 동안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산단 때문에 공기가 안 좋고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마을 주변에 산단 외에도 폐기물 처리장, 비행장, 소각장 등 오염시설들이 모여 있는 지역들도 있었다. 산단을 오가는 대형차량 으로 인해 대기오염은 물론이고 사고 위험도 컸다. 인도 확보나 횡단보도와 육교 같은 보행자 안전을 위한 조치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상수도 시설이 최근에서야 구비된 지역도 있었다. 산단을 건설하면서 주변에 기본적인 보건 위생 인프라도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주민들이 호소하는 환경 피해는 주로 대기오염과 악취, 비산 먼지 등이었고, 해양오염과 수질오염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특히 악취는 지역별 미세 기후 조건에 따라 심한 경우가 있었다.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피부질환 등 알레르기 질환, 호흡기 질환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에 암 환자가 다수 발생했다’ ‘환경오염 노출로 인해 조기에 사망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이 들어오면 기업은 주민들을 위해 목욕탕, 마을회관, 문화시설 등을 건축하거나 지원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행사비나 장학금 같은 금전적 지원, 1사 1촌 협력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 기업과 환경단체, 주민이 같이 하는 정기적인 환경감시 활동이 이루어지고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오염 노출과 개선을 위해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고 답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환경이 이전보다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전보다 관리기준 등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산단 규모가 커진 만큼 환경오염 총량도 커졌다는 의견이 있었다. 산단 규모가 커지면서 산단과 주민 거주공간을 분리해주던 녹지 공간이 계속 줄어들어 이격 거리가 더 짧아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과 바로 인접해서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이주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인근 지역에 아파트가 신축되는 등 산단과 거주 지역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산단 밀접 지역 주민들이 이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은 주민과 환경단체 뿐 아니라 일부의 기업 측 참여자들도 제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고향이거나 수십 년 간 살아왔던 곳이라 쉽게 이주를 결정하기 어렵고, 이주비를 고려한다면 특히 어려운 문제이다.
한편 산단으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보건소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환경 관리에 대해서는 수도권 대기특별법처럼 특별 관리 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국가 산단 관리에서 중앙정부 만이 아니라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은 한국 경제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발전을 위한 대가가 산단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부당하게 전가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산단을 통해 생산된 가치는 많은 이들이 누리면서 그로 인한 환경오염의 부담은 온전히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전가된다면 이는 정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상수도 시설 같은 공중보건 인프라 구축이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더 늦어지거나 취약한 점, 산단 이외에 다른 오염 시설까지 집중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특히 그렇다.
산단의 환경관리가 이전에 비해 개선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산단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환경오염 부담에 대해 주변 지역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환경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은, 현재 산단 주변지역 오염 노출이 대부분 규제 이하로 관리되고 있으나 누적된 노출 피해를 고려하여 총량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업의 환경관리와 주민이 느끼는 환경오염 노출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생각하는 환경오염과 건강피해 우려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설명이 절실하다. 중앙 정부나 지자체, 기업이 열심히 환경관리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이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처리해야 할, 번거로운 민원이 아니다.
산업단지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인근지역 주민의 환경오염 노출과 건강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른 환경보건 조치가 취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보장되어야 한다.
기획1 기업살인, 기업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노동자의 죽음에 계몽의 슬로건으로 답하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노동부인가 선전부인가
<개그맨 정태호의 안전벨소리>
구 분
카 피
작업 시작 전
(보호구 착용)
잠깐! 일하러 나가시기 전에 안전모랑 안전화는 잘 챙겼나요? 작업 전에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꼼꼼히 복장을 확인해야 한다구요~ 어제 아무 일 없었다고, 귀찮다고 소홀히 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작업 전 보호구 착용 잊지 마세요!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표를 그대로 옮겨보았다.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는 홍보자료가 넘쳐난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지속적으로 자료들을 올리고 있다. 안전 동요, 안전 노래, 벨소리 다운받기, 웹툰, 애니, 안전공단 캠페인송, 로고송, 안전연극, 안전 동화... 장르별로 있을 건 다 있다. 출연진들은 초등학교 합창단, 중창단, 대중가수, 개그맨, 연극배우, 유명 웹툰작가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의 제목들은 이러하다. 안전의 참견, 가우스 임파서블, 딸바보가 그렸어, 동화로 배워보는 산재예방, 무사고 패밀리, 산재예방 달인, 위기탈출 넘버원, 제로의 약속, 나안전 PD의 산업재해 제로, 안전 1박2일, 바람의 작업자...이건 시리즈물이다.
번개맨보다 안전맨, 안전은 나의 수호천사, 무재해는 좋아, 안전이 최고야, 별일 없겠지... 는 노래 제목들, 흥이 넘치는 제목들이다. 가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1절>
얼른얼른 급하다 급해 빨리빨리 해! (아 빨리 하자구)
안전은 무슨 그런 건 대충 대충 하자구 (대충 하자구)
하지만 안전모를 안 쓰면 (아악~)
안전수칙 안 지키면 (염라대왕이다~)
그러다 사고 나면 인생 꽝! 집안도 꽝! 회사도 꽝! 모두 꽝이야!
<2절>
사고 없는 안전한 현장 함께 만들어요! (함께 만들자고)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 사랑을 함께 나눠요! (함께 나누자고)
사랑하는 가족 위해 지켜요 (아빠~)
안전수칙 잘 지켜요 (여보 꼭 지키세요~)
보호 장구 착용하면 인생 짱! 집안도 짱! 회사도 짱! 모두 짱이야
오늘도 산만하고 부주의한 노동자들을 향한 공익광고가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인터넷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키라고, 보호구를 챙기라고.
2018년 3월, 안전보건공단은 신문사와 함께 "가족사랑 안전엽서 쓰기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한다. YTN 라디오에는 ‘안전극장’이 방송 중이라고 한다. ‘무재해운동’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2018년 3월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정부인증제도는 없어졌지만 자율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생수병에 담겨있다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꽤나 인상적인 제목이다. 공사현장에서 유독물질을 마시고 사망한 노동자의 사고 사례를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고 있다. 생수병에 왜 유독물질이 담겨 있는지 원인을 짚지 않은 채,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가 갈증을 불러왔고 그 때문에 노동자가 죽었다는 결론이다. 조롱인가. 위로인가. 안전보건공단 웹진에는 이렇게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흥미진진한 사연’ 끝에 사망한 노동자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제목들이 이렇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반전을 노린 잔혹극인가, 교훈을 주고자 하는 냉혹한 관찰기인가?
2. 노동자의 머릿속이 문제다
무지한 노동자들을 꾸짖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른바 전문가들과 기업경영자들의 발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2018년 3월 경총 간부가 산업안전보건법개정 토론회에 나와서 말한다. ‘산업재해의 대부분이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불안전한 행동을 근절시키기 위한 안전의식 제고 방안을 법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대한산업안전협회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처벌만 강화한다고 산업재해가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안전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대형 산재사망사고를 언급하면서 노동조합 대표가 답한다. ‘안전교육이 활성화되고, 안전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모델을 모색해 나가자’
정부와 안전협회라는 조직은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사진과 그림, 포스터 등 대규모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안전의식을 높이고 안전문화를 확산해 왔다는 것이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대기업 공장 앞으로 달려갔을 때, ‘무재해 O만 시간 달성’ 전광판과 ‘무재해’ 기가 날리는 풍경을 많이 보아왔다. 정부가 주도해서 1979년부터 시작했다는 무재해운동은 무재해 목표달성 인증을 받기 위해 기업이 산재를 감추는 요인이 되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2018년부터 정부인증제는 폐지되었지만 기업자율운동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섭섭한 것인지, 이제 ‘안전문화 인증제’를 만든다고 한다. 안전문화 인증을 받으려면 앞서 말한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다.
교육, 문화, 의식, ‘무재해’ 라는 조어가 공통적으로 손가락질 하는 곳은 결국 노동자의 머릿속.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게으르고 산만한 노동자의 머릿속이라는 것인가.
3. ‘노동자혐오’로 먹고 살다
2009년 6월 24일자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민생안전, 갈등조정, 양성평등, 차별요소 제거’를 위해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그동안 통합이 안 된 이유를 국민에게 돌리거나, 계몽운동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갈등의 원인이 사회경제구조에 있는데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회통합‘을 하고 싶다니 방법은 의식전환, 계몽, 선전밖에 없다. 노동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경제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막기 어려운 것인데, 이 구조를 개혁하거나 기업규제를 강화할 의지가 없으니 노동자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갈등은 국민 탓, 산업재해는 노동자 탓을 하면서 계몽과 교육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갖는다. 무지한 국민을 가르치기 위해 ‘새마을 노래’를 틀어대던 국가권력은 2018년에 ‘안전이 최고야’를 보급하고 있다. 물론 2018년의 시민과 노동자는 정부가 만드는 캠페인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공장마다 확성기로 틀어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찜찜한 것은 산재, 안전에 대해서는 유독 노동자의 의식, 교육, 문화 같은 정치적 공격이 난무하고 이것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목소리, 노동조합 조직의 목소리는 정부와 기업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사망이 사회적 죽음이고 구조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주장이 우리가 ‘기업 살인’ 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는 늘어났다. 그러나 부족하다.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노동자가 죽고 다쳐온 것인데, 생산의 지점에서 노동자는 권력이 약하거나 없다. 국가와 기업, 전문가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걸고 노동자 부주의론, 노동자책임론을 설파할 수 있는 힘과 미디어를 갖고 있다.
노동자의 의식이나 교육, 문화 탓을 하고 이것을 개선하는데 예산을 들이면 정부는 편하다. 양적 성과를 측정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사고가 줄어들면 노동자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면 된다. 사고가 줄어들지 않으면 더 많은 교육과 선전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워라밸’ ‘욜로’를 설파하며 가치 있는 삶을 꾸려가는 현명한 소비자로 개인을 칭송하지만, 사고로 죽고 직업병에 걸리는 노동자는 의식과 문화가 모자란 집단으로 치부하고 혐오한다.
이른바 안전 전문가들은 성과측정이 애매한 안전교육, 안전문화 일거리가 많을수록 좋다. 교육이나 문화는 많아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되기에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쉬운 것이 노동자에게 문제가 있기에 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과 전문가권력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슬로건이 걸리고, 공모전을 하고, 방송과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틀어댄다.
재미를 가장해 경계 없이 수용되고, 유머를 가장해 개인을 탓하는 언어들. 이 속에 숨어있는 나쁜 의도를 폭로하고 공공의 장에서 추방해버리고 싶은가.
애석하게도 공공의 장에서 슬로건을 걸고 떼는 권력은 저들에게 있다.
영국과 미국은 기업주를 처벌하고 있다
박진욱 / 계명대학교
영국 : 기업살인법 유죄판결 세 가지 사건
영국의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은 2007년 7월에 통과되어, 2008년 4월에 발효되었다. 기업살인법 위반 시 벌금액에 상한선은 없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선고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장 낮게 선고된 금액이 30만 파운드, 한화로 약 4억 5천만 원이다. 기업살인법에 의한 첫 번째 유죄 판결은 2011년 2월에 있었고, 많은 기소 사건들 중 현재까지 선고가 이루어진 사건은 20여 건이 약간 넘는다. 기업살인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여러 사례들 중 회사에 대한 벌금형과 책임자에 대한 징역형이 함께 선고된 최근 선고 사례 세 가지를 소개한다.
사례1] 중량물 운반 작업 중 노동자 두 명 사망, 벌금 18억 원과 관리자의 징역형 (2017년 5월 선고)
2014년 11월, 영국 런던 서부 나이트브리지의 고급아파트 리노베이션 작업 중 20대 노동자 두 명(토마스 프로코, 키롤 시만스키)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섯 명의 노동자가 115kg 짜리 소파를 약 7미터 높이의 건물 상층부로 올리는 작업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애초에 이 작업에는 운반용 승강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를 설치하려면 848파운드, 한화로 약 126만 원의 설치비가 들게 된다. 리노베이션 작업을 담당한 마티니제이션 사의 임원 마틴 구타즈는 비용 절감을 위해 승강기 설치 요청을 거절하고 사람들이 옮기라고 했다. 이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발코니 난간에 의지해 보도에 있던 소파를 건물 위로 끌어올리던 중 발코니 난간이 무너지면서 두 명이 추락한 것이다. 이 사고로 마티니제이션 사는 기업살인법 위반으로 120만 파운드, 약 18억 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승강기 설치 요청을 거절한 마틴 구타즈 역시 기업살인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4개월의 징역형과 임원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사례2] 지붕수리 작업 중 노동자의 추락사, 벌금 12억 원과 임원 세 명의 징역형 (2017년 5월 선고)
2015년 4월, 영국 에섹스 할로우 지역 오즈딜 투자회사가 소유한 창고에서 지붕 수리 작업을 하던 63세 노동자 니콜라이 발코프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오즈딜 투자회사 임원이었던 피랏 오즈딜과 오즈구르 오즈딜은 지붕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코세오글루 금속가공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 코세에게 지붕 수리작업을 맡겼다. 그러나 코세오글루 사는 지붕 수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곳이다. 지역 안전보건위원회 등에서 지붕 수리 작업의 위험성이나 안전망 설치 같은 안전 조치의 필요성을 경고했지만, 이들은 이를 무시한 채 수리를 진행했다. 작업현장에 대한 위험 평가나 작업할 노동자에 대한 훈련도 없이 수리 작업을 하던 중 니콜라이 발코프가 지붕의 채광창을 밟아 추락했고 사망한다. 이 사고로 피랏 오즈딜은 징역 1년, 오즈구르 오즈딜은 징역 10개월, 코세는 징역 8개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그리고 오즈딜 투자회사에는 벌금 50만 파운드 (약 7억 5천만 원), 코세오글루 사에는 벌금 30만 파운드 (약 4억 5천만 원)가 각각 선고되었다.
사례3] 악천후 속에서 작업하던 노동자의 추락사와 책임 은폐 시도, 벌금 6억 7천만 원과 관계자 네 명의 징역형 (2017년 3월 선고)
2014년 12월, 영국 맨체스터 램스바텀에 위치한 플렛처 뱅크 쿼리사 창고의 철거 작업을 하던 25세 노동자 벤자민 엣지가 건물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작업 현장에는 비계도 설치되지 않았고 그물망이나 추락방지 벨트도 없었다. 이렇게 안전설비가 전혀 없는 가운데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 속에서 지붕 위를 오가며 작업을 하던 벤자민 엣지는 추락하여 사망하게 된다. 원래 플렛처 뱅크 쿼리사로부터 건물 철거 작업을 수주한 곳은 MA 익스카베이션이라는 토목회사였다. 그런데 이들은 SR and RJ 브라운이라는 건설회사에 다시 하청을 주었다. 벤자민 엣지는 SR and RJ 브라운 사에서 6년 동안 일해 왔다. 사건이 발생하자 MA 익스카베이션 대표 마크 아스핀과 SR and RJ 브라운사 대표 로버트 제임스 브라운,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안전보건 위반을 감추기 위해 사건 현장을 조작한다. 사고 당시 벤자민 엣지와 함께 지붕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던 피터 힙을 매수하여, 사고 직전에 벤자민 엣지가 추락방지 벨트를 벗었고 피해자가 안전관리 지침을 무시한 것처럼 공모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결국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MA 익스카베이션의 마크 아스핀은 징역 12개월, SR and RJ 브라운의 대표 로버트제임스 브라운과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각각 징역 20개월, 사건 은폐에 가담한 피터 힙에게도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이와 별도로 MA 익스카베이션 사에는 벌금 15만 파운드 (약 2억 2천만 원), SR and RJ 브라운 사에는 벌금 30만 파운드 (약 4억 5천만 원)가 각각 선고되었다.
미국 : 소유주와 관리책임자를 징역에 처하다
미국은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작업 중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의해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경범죄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은 경우 처벌의 수위가 높지 않아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징역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6개월 이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015년 12월 미국산업안전보건국과 법무부는 고용주가 노동자 사망사고에 책임이 있는 경우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양해각서의 영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근 미국에서도 노동자의 작업 중 사망에 대해 소유주와 관리 책임자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고 각각에게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사망 사건은 2012년 1월에 발생했다. 라울 자파타는 시노 인베스트먼트 사에 고용되어 캘리포니아 주 주택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기초 작업을 하는 일용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기 이틀 전, 밀피타스 시 건물검사관이 공사 현장을 방문했고, 현장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던 단 루오에게 현장의 굴착 작업 등이 부적절하게 수행되었음을 지적하며 작업 중단 통지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단 루오는 노동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작업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작업 중단 통지서 발급 이틀 후, 단 루오는 노동자들에게 복도 굴착 작업을 지시했다. 그러나 굴착 작업 중 벽이 무너지면서 라울 자파타가 그대로 매몰되었고, 이틀 간의 구조작업 끝에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법원은 시노 인베스트먼트, 시노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주인 리차드 리우, 사고 작업장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단 루오 모두에게 이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 시노 인베스트먼트 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16만 8,175달러(약 1억 8천만 원)의 벌금을, 리차드 리우와 단 루오는 과실치사혐의로 각각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리차드 리우의 항소는 기각되었고, 단 루오는 2017년 항소심 재판에서도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기업이 관행이라고 말하니 법원이 이해해 준다
-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심 판결 분석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4000만원, 한 명의,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벌금
2015년 8월 29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한 명의 노동자(이하 A)가 사고(이하 강남역 사고)로 사망했다. 안전조치도 없이 혼자 일을 하다 역사 내부로 진입하는 전동차와 충돌하여 두개골 골절로 사망한 것이다. 2013년 성수역에서 발생한 사고(이하 성수역 사고)와 동일한 사고였지만 2년의 세월과 그간의 대책이 무색하게 똑같은 구조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마찬가지로 9개월 후인 2016년 구의역에서도 동일한 사고(이하 구의역 사고)로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8년 2월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강남역 사고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사고가 난 지 2년 반 만에 1심 재판이 마무리 된 것이다. 2013년의 성수역, 2014년의 독산역에 이어 3년 연속 스크린도어 수리 중 노동자가 사망했고, 2016년 구의역 사고로 노동자의 안전문제가 어느 때보다 진지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때라 서울메트로와 A가 일하던 기업에 엄벌이 처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재판 결과 그 누구도 노동자가 사망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지 않았다.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와 관계자들은 무죄를 받아 책임이 면제되었다. 사망한 노동자가 일했던 회사의 사장은 벌금 2000만원, 안전관리자와 회사는 각각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강남역 사고 재판은 원청의 책임을 경감하는 전통적인 법리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상 법원이 기업의 위험의 외주화를 독려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령에 의하면 도급인에게 수급인의 업무에 관하여 관리 감독의무가 부여되어 있거나 도급인이 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지시 감독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급인에게는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할 주의의무가 없다.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 노동자의 죽음이 노동자 개인의 탓이 아니라 하청으로 위험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안전을 돌아보기에는 부족한 수의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른 노동자에 대해서 법원의 무감각은 여전했다. 강남역 사고에 대한 판결은 일하다 죽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이 글은 강남역 사고와 그 판결을 통해 현재의 법과 제도 속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관행이 된 위험, 관행은 강력한 알리바이
강남역 사고가 있던 2015년 8월 29일, A는 강남역의 연락을 받아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직원들이 3일에 한 번 꼴로 수행하는 스크린도어 장애물검지센서 청소작업을 하기 위해 강남역에 도착한다. A가 했던 청소작업은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 쪽으로 들어가 한손으로 스크린도어를 잡고 다른 손으로 센서에 묻은 먼지 등을 제거하는,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혼자 1분 만에 청소를 하는 것이 관행적인 일상적 작업이 되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스크린도어를 잡은 손을 놓쳐 추락하거나 운행 중인 열차와 충돌할 위험이 매우 높은 작업이다. 그 위험성은 2013년 성수역과 2016년의 구의역 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빈발하는 사망사고는 이 작업을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수행해야 한다는 작업 매뉴얼을 만들게 한 계기였다. 하지만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일하기 위한 인원을 채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위험한 업무가 계속되고, 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업무가 지속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 당연시 되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작업 속에서 A가 어떻게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재판 기록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A는 유진트로컴(이하 유진)에 다니는 28살 노동자였다. 유진은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협약을 맺고 24개의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제작하고 설치해주는 대가로 스크린도어에 대한 광고판매권과 시설운영권을 가진 회사였다. 협약에 따라 유진은 스크린도어 고장에 대한 서울메트로의 요청이 있으면 경미한 상황은 1시간, 중고장은 24시간 내에 조치를 취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A는 유진에서 이 조치를 수행하는 기술본부에 근무하는 노동자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A는 서울메트로의 고장신고를 받고 사고가 난 강남역으로 갔다. 2013년 성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가 내놓은 안전대책과 2015년 4월 1일 경부터 규정된 절차에 따르면 전동차가 운행하는 시간에 스크린도어를 수리해야 한다면 설비팀 등의 승인을 얻고 난 후 2인1조 또는 3인 1조로 작업해야 했다. 또 종합관제소와 역무실에 통보하고 별도의 안전 요원을 배치해야 했다. 그러나 A는 혼자 강남역에 방문해 역무실에서 유진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한 후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CCTV로 확인하는 절차만 거친 뒤 사고가 난 10-2 스크린도어로 향했다.
유진의 사장은 A와 같은 일을 혼자하다 사망한 성수역 사고를 알고 있었지만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기술본부장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기술본부장과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직원 역시 성수역 사고 이후 제정된 매뉴얼이 있음에도 위험한 업무를 ‘관행’적으로 하청업체 직원 개인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A는 고장난 지 1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서둘러 강남역으로 달려왔고, 강남역에서 홀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열차가 들어왔다. A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피 묻은 스크린도어 사진이 남았다.
F[유진메트로컴-글쓴이] 직원들은 스크린도어 청소 점검을 위해 선로 내에 출입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소 등으로부터 작업 승인을 받아 2인1조로 작업하여야 함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작업 승인을 받지 아니한 채 1인이 출동하여 서둘러 스크린도어를 개방한 후 선로 내 작업을 실시하는 것이 관행화된 상황이었다. …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 업무량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로 인해 구조적으로 작업자들이 안전수칙을 잘 키칠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A는 그렇게 홀로 10-2 스크린도어로 갈 수밖에 없었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그의 안전에 대해 유진,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 모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인력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혼자 일할 수 밖에 없는 관행,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던 관행들. 이 모든 것이 A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의 관행이란 이유로 감형 사유가 되었다.
사고가 난 이후 : 사고는 노동자 탓이야
사고가 나자 유진과 서울메트로는 2년 전 성수역 사고처럼 서둘러 사고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성수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는 물론 하청업체였던 은성PSD[이하 은성]는 사망한 노동자 개인과실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 은성은 사망한 노동자가 지시도 없이 수리 작업을 진행하다 죽은 것이며 심지어 자살로 상황을 몰아가기도 했다. 서울메트로 역시 전동차가 없는 저녁에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 결과 성수역 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되었다. 경찰은 검찰에 은성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혐의로 송치했고, 검찰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결국 유가족은 소송을 통해 30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사고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3000만원으로 서울메트로와 은성의 책임이 면제된 것이다.
강남역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유진은 2인 1조로 해야 하는 업무임을 고지했고, 지하철 운행 중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며 A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작업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또 유가족에게는 수리 요청도 없었는데 홀로 출동해 화를 당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강남역 사고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노동단체와 유족이 고발을 진행하면서 서울메트로와 유진이 사건을 덮을 수 없게 되었다.
강남역 사고는 노동청과 경찰에 송치되었고, 1년이 지난 17년 7월 3일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검찰 수사 결과 “유지보수업체 대표와 기술본부장은 관련 업무지침 교육과 안전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속 직원들의 안전 확보의무를 소홀히 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서울메트로 사장과 강남역 부역장, 종합운동장서비스센터장이 역사 내 안전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하여 피해자가 혼자 선로에서 작업하도록 방치한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은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 사장, 강남역 부역장, 종합운동장서비스센터장 그리고 유진의 대표 및 기술본부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들이 근무했던 서울메트로와 유진은 산업안번보건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또 수사 과정에서 유진의 임원이 서울메트로 직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도 추가적으로 드러났다.
피고
검찰 구형
서울메트로
벌금 1000만원
유진
유진 대표 A
징역 1년 6개월
유진 기술본부장 B
금고 1년
유진 광고본부장 C
징역 10개월
서울메트로 대표 D
징역 1년
서울메트로 강남역 부역장 E
금고 8개월 집행유예 1년
서울메트로 종합운동장서비스센터장 F
징역 8개월 징행유예 1년
2018년 1월 22일 위의 혐의에 대한 4번째 공판이 있었다. 4번째 공판까지도 불구속 기소된 유진과 서울메트로의 임직원은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유진의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 서울메트로 사장에게 징역 1년, 유진의 기술본부장에게 금고 1년 그리고 유진과 서울메트로에게 벌금 1000만원 등을 구형했다.
선처의 이유 : 기업의 사정을 봐주고 또 봐주고
검찰 구형 한 달 후 강남역 사고에 대한 1심 판결이 진행됐다. <표2>에서 알 수 있듯이 법원은 유진과 유진의 대표, 기술본부장, 광고본부장(횡령)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았던 서울메트로와 서울메트로 임직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판결
무죄
벌금 2000만원
벌금 1000만원(횡령)
1심 판결은 검찰 구형에 비해서도 턱 없이 낮은 처벌로 끝났다.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책임은 아무것도 인정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심지어 횡령에 대해서는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한 반면 노동자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을 선고하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판결을 내렸다. 28살의 젊은 노동자가 죽었지만 유진의 임직원은 4000만원의 벌금으로 모든 죄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처분이 나온 것에는 법원이 기업과 기업주의 사정을 ‘너무나도 감안’해 주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C 등 F 관계자들로부터 작업자들이 안전수칙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작업자들이 직접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F 관계자들조차 작업자들이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오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보수원들의 작업실태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유진과 그 대표, 기술본부장이 안전보건관리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력이 유지·보수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감형 사유에 담았다. 하지만 왜 유진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늘리지 않았는지, 왜 A가 관행적으로 혼자 업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길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메피아’가 접대와 횡령으로 회사 돈을 유용했는지-횡령한 개인은 처벌했지만-도 감안하지 않았다) 유진은 서울메트로와의 새 협약을 통해 시설안전 개선비용으로 8년간 96억을 기부하기로 할 정도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8년 간 96억을 기부하는 것이 감형 사유가 된다면, 그 금액으로 왜 인력을 늘리고 노동자의 안전에 힘쓰지 않았는지를 다시금 되묻고 싶다. 하지만 판결문에서 96억의 기부는 감형사유로만 작동할 뿐이다.
무죄를 받은 서울메트로와 그 임직원들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결은 그들의 사정을 봐주는데 급급했다. 서울메트로와 그 임직원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던 작업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A가 혼자 작업을 진행하도록 방치함으로써 안전예방에 힘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역 근무 예규>를 들어 CCTV는 “일반적인 승객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임으로 규정상 A의 안전수칙을 점검할 필요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렸다. 또 유진과 마찬가지로 서울메트로의 인력부족을 언급하며 미처 A까지 살필 여력이 없었다는 서울메트로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더불어 산업안전보건법위반과 관련해 서울메트로는 유진과의 계약은 성수역사고에서의 은성PSD와 다르게 시설운영권을 부여해주는 조건으로 유지·보수업무를 실시하는 것이었다고 판결문에 적고 있다. 따라서 “메트로와 F 소속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없어 피고인 서울메트로가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1항에 따른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서울메트로의 책임을 모두 제거했다.
결과적으로 강남역 사고의 1심 판결은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책임 면제와 A가 일하던 유진의 가벼운 벌금으로 마무리 되었다. 2013년도, 2014년도, 심지어 강남역 사고 이후인 2016년에도 똑같은 사고가 났지만 법원은 원청인 서울메트로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고, 하청업체인 유진 역시 가벼운 벌금으로 그 책임을 대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CCTV는 노동자가 아닌 승객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강남역 사고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세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A와 마찬가지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노동자였다. 사람들은 위험이 더 취약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에 분노했고, 사고가 일어난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 수많은 추모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정치인들이, 사망한 김군과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구의역을 다녀갔다. 그로부터 3개월,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다짐으로 9-4 승강장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나는 너다”라는 추모 위령표가 붙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반이 지난 지금,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최근 뉴스만 봐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워크레인 붕괴, 건설노동자의 추락사는 계속해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동자의 산재사망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는 지금 왜 이렇게 노동자의 산재사망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강남역 사고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의 산재 사망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업무를 도급받은 하청업체는 관행과 인력부족을 핑계로 지켜야할 안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를 관리감독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도 인력이 부족하고 관리책임이 없다는 명목으로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원청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법원의 판결이 계속된다면 원청은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고, 하청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는 사태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4000만원, 크다면 큰 돈이지만 계속되는 사고로 한 명의 노동자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든 두 회사와 그 임직원의 책임을 묻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적은 돈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너무나 뻔하다. 계속되는 산재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을 끊는 것은 산재에 책임이 있는 (원청)기업과 기업주를 엄단할 때에만이 가능할 것이다.
‘기업살인’의 렌즈로 본 2017년 산재사망 통계
노동건강연대 기업살인법연구모임
노동건강연대는 2006년부터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함께 매년 가장 많은 산재사망자를 일으킨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반복적인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업의 책임과 처벌 강화를 위해서다. <표 1>의 ‘수상자’ 목록을 보면 지난 12년간 한두 차례 이름을 올린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위권에 반복해서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현대중공업은 잦은 중대재해로 2015~2016년 사이 세 차례의 안전실태 특별근로감독을 받았지만, 2017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등도 거의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표 1. 2006-2017 역대 최악의 살인기업
발표년도
1위
2위
3위
4위
5위
2006
GS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시온글러브
두산중공업
포스코
2007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롯데건설
SK건설
풍림산업
현대산업개발
2008
한국타이어
2009
코리아 2000
㈜송원오엔디
현대건설(주)
㈜유성엔지니어링
2010
경남기업
대우조선해양
서희건설
쌍용건설
2011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대림건설
현대제철
삼호조선
동국제강
2012
트레인코리아(이마트)
STX 조선해양
세진중공업
임천공업
TK케미컬
2013
한라건설
LG화학
휴브글로벌
아미코트
태영건설
㈜포스코(제조)
2014
천호건설
중흥건설
신한건설
한신공영
2015
한전KPS
두산건설
한국철도공사
2016
한화케미컬
한국철도시설공단
SK하이닉스
아산금속
고려아연(주)
2017
현대중공업(제조)
대림산업(건설)
2018
?
출처: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 (old.laborhealth.or.kr)
참고: 연도마다 순위 선정 방식에 차이가 있음. 예컨대 제조업과 건설업을 구분해서 순위 산출한 연도도 있음.
올해도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4월 25일에 2018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린다. 이에 즈음하여, 작년 한해 노동부가 집계한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 중대재해란 일터에서 발생한 ‘중대한’ 산업재해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재해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사업주가 지방관서에 신고하고 지방관서는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되어있다.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 요양을 요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인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인 이상 발생한 재해
● 어떤 업종에서 가장 많은 중대재해 사망이 발생했나?
2017년 한 해 총 81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2017년 중대재해통계는 <2018최악의살인기업> 선정을 위해, 국회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서 받은 자료를 분석하였다.-직업병이 아닌 사고로 인한 사망만을 말한다-. 매일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 셈이다. 산재 사망자의 55%인 446명의 노동자가 건설업 현장에서 숨졌다. 이는 건설 현장에서 매일같이 한 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간다는 뜻이다. 중대재해 부상 노동자는 총 91명. 제조업이 44%로 가장 많고, 36%는 건설업 현장에서 중대한 부상을 당했다.
● 중대재해 부상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8배가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다.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에서 일했던 하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1931년 자신의 책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에서 중대재해 한 건이 발생하기 전, 29회의 경미한 사고, 300회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고들이 대개 공통 원인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한국의 중대재해 부상 노동자는 사망자보다도 훨씬 적다. 하인리히의 법칙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한국 사회가 이 법칙에 들어맞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이러한 모순은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2015년 산재사망률 자료에서도 드러난다(표 2).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한국이 10만 명당 5.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지만, 일하다 다친 노동자 숫자는 10만 명당 451명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페인, 스위스, 독일 등 한국보다 산재사망률이 훨씬 낮은 국가들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2. OECD 국가별 2015년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와 부상자 수
국가
산재사망자
산재부상자
그리스
0.9
122
독일
1.6
2,371
멕시코
8.2
3,134
스웨덴
1.0
682
스위스
4.6
2,390
스페인
2.1
3,241
슬로바키아
2.8
438
에스토니아
2.5
742
영국*
0.4
329
오스트리아
2.3
1,947
체코
2.9
1,028
터키
6.9
1,324
폴란드
684
한국
5.3
451
헝가리*
2.0
479
호주
1.7
1,055
출처: 국제노동기구통계 (https://goo.gl/tDvqkr); * 2014년 통계
만일 OECD 회원국들의 평균적인 산재 부상자 대(對) 사망자 비율을 한국에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림 3>을 보면 한국이 산재 사망자는 많고 산재 부상자는 적다는 것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을 제외한 국가들 자료를 이용하여 산재 부상자와 사망자 수 사이의 관계를 함수로 간단히 만들고, 한국의 10만 명당 산재사망자 수인 5.3을 대입하면 부상 노동자 수는 1,927명으로 예측된다. 다른 국가의 특성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451명은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라는 의미다.
<그림 > OECD 국가별 2015년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와 부상자
처: 국제노동기구통계 (https://goo.gl/tDvqkr) 재구성
● 중대재해 특성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기
건설업과 제조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OECD 회원국들 중에서 가장 높다.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산업별 산재사망률을 보면, 건설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가 한국이 10만 명당 17.6명(2016년)으로 이스라엘과 멕시코에 이어 가장 많다. 건설업 산재사망률이 가장 낮은 스위스의 10배에 해당한다. 제조업 산재 사망자 수도 10만 명당 9.6명으로 가장 많다 (그림4와 그림5).
● 위험의 외주화: 일하다 더 많이 다치고 사망하는 하청 노동자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업의 경우, 사망 사고의 55%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났다(그림 6). 제조업 사망자의 경우 하청업체보다 원청업체 노동자의 비중이 높았지만 (그림 7), 중대재해 부상자는 제조업과 건설업 모두 하청 노동자가 각각 83%, 8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러한 숫자는 건설업과 제조업에 만연한 원·하청구조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림 6> 업종별 중대재해 사망자의 원/하청 업체 구성
<그림 7> 업종별 중대재해 부상자의 원/하청 업체 구성
한편 건설 현장에서 숨진 노동자의 61%(271명)는 추락사로 사망했다. 제조업은 감김이나 끼임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72명으로 가장 많았고(35%), 추락사망자가 30명(15%)으로 다음으로 많았다. 믿기 힘든 숫자다. 하지만 거리를 지날 때 흔히 마주치는 건설현장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계 위를 곡예하듯 아슬하게 넘어 다니는 노동자들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림 8).
<그림 8 > 건설업과 제조업의 발생형태별 산재사망자수
마무리하며...
고용노동부가 2012년에 제작한 산재예방 캠페인 광고에서 사고로 추락한 노동자는 떨어져 박살나는 한 통의 수박으로, 기계에 끼인 노동자는 오징어로, 그들이 흘린 피는 토마토케첩으로 묘사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서 광고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매년 300명이 가까운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그리 변한 게 없다. 이렇게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규모의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것을, 우연히 노동자 개인들이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구조적 요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 정부의 방관 아래 지속되는 ‘기업의 구조적인 살인행위’이다.
평판보다 이윤이 중요하다
-기업 살인이 멈추지 않는 이유
김명희 / 노동건강연대 회원
“기업 살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듣게 되는 전형적 반응. “기업이 살인이라니, 너무 심한 표현 아니야?” 맞다. 그런데 표현이 심한 게 아니라, 표현 안에 담긴 사실이 심하다. 기업이 사람을 죽게 만드는 현실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판매한다.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금을 내서 지역이나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 뿐만 아니다. 혁신을 통해 기술과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보다 이윤을 얻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환경 파괴를 서슴지 않고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때로는 시민이나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고 야수 같은 기업들을 길들여온 규제 발전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는 아동노동의 금지와 8시간 노동제부터 강제 산재보험의 도입은 몰론,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제조물책임법, 화학물질관리법과 각종 환경보호법규 등의 제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업의 윤리와 자율적 실천만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는 역사 상 실재한 적이 없고, ‘보이지 않는 손’은 자동이 아니라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인공물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본과 과학의 위험한 거래를 파헤친 책 [청부과학]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역학자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2009-2017년 동안 노동부 산업안전 차관보를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론과 현장에 두루 해박한 그는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기업주들은 본인이 종업원들에 대해 마음을 쓰고 누구도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전관리를 잘 하는 것이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되고 회사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고 때문에 평판이 나빠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한다. 기업주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작업장 안전보건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이클스는 자신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런 말이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산재 예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작업장 안전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이윤 사이에는 항상 저울질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업주들이 한편으로는 작업장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효율성과 매출 증대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할 때, 안전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리고 안전보건 비용과 이윤의 저울질에 사용되는 추의 무게가 심하게 불평등하다. 이윤 쪽의 추는 무겁지만 작업장 안전 쪽에 놓이는 추는 지나치게 가볍다. 누구도 일부러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겠지만, 작업장 안전이 훼손되어도 혹은 노동자나 시민이 죽어도 그로 인해 초래되는 손해나 처벌이 미미하다면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기업의 사회적 평판?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한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2010년 GS건설이 시공사인 서교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로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일이 있다. GS건설은 이미 2006년과 2009년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적이 있고, 그 즈음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설현장, 의정부 경전철 공사현장에서도 인명사고를 낸 전적이 있었다. 심지어 지난 2017년에 일어난 평택 자이아파트 건설현장 크레인 사고로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산재 때문에 GS건설의 평판이 나빠지고 수익이 줄어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사고 노동자의 원혼이 깃들었을 그 아파트는 ‘서교자이 메세나폴리스’라는 세련된 이름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났고, 자이아파트는 여전히 아파트 브랜드평판 1위를 다투고 있다.
산재에 대한 기업의 처벌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동안 노동건강연대가 사고 발생 초기에 기업을 고발했거나, 이후 사건 처리 경과를 모니터한 사례 중 두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지난 10년 동안 가장 대규모 인명피해를 냈던 산재 중 하나인 이천시 코리아냉동 화재사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건설 중인 냉동 창고의 화재로 무려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9명이 상해를 입었다. 전체 56명이 일하고 있던 작업장에서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하청업체가 고용한 임시직 노동자였고, 13명은 이주노동자였다. 화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일단 화재가 발생한 이후의 상황은 분명했다. 작업장 내부에는 단열재인 우레탄폼에서 발생한 유증기가 가득 차 있었고, 접착제와 페인트 등 가연성 소재는 물론 용접에 쓰이는 프로판가스통도 현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축구장 네 배 크기의 작업장이지만 냉동 창고 특성 상 수많은 격벽으로 분리된 채 창문이 없고, 출입문은 정면에 단 한 개밖에 없었다. 사업주는 오작동에 의해 공사가 중단될 것을 우려해서 화재경보기와 방화벽을 꺼놓은 상태로 작업하게 했고, 수도관이 동파할지도 모른다며 스프링클러의 물 공급도 차단해놓은 상태였다. 소방당국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설계를 변경했고, 감독기관에는 뇌물을 제공했다. 현장에 안전 관리자가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이나 응급상황 안전훈련이 안 되었음을 물론이다. 정말 전형적인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과실치사상을 이유로 기업과 기업주는 각각 2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현장 감독자들은 8~10개월의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벌금 총액 4천만 원에 사망자가 40명이니, 한 명 목숨에 1백만 원인 셈이다.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구조를 가진 건설현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2년 청주 LG화학에서는 폭발 사고로 인해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회사는 처음 설계와 달리 구조와 작업절차를 변경했다. 인화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정전기만으로도 화재나 폭발이 발생할 수 있어 바닥에는 대전 방지용 페인트로 칠하고 대전방지 안전화와 제전복을 착용해야 하지만, LG화학은 값이 저렴한 불연재 페인트를 사용했고 대전방지 작업화는 지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안전 절차를 모두 지킨 것처럼 허위보고를 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엄청난 인명 손상을 초래한 결과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해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징역 1년, 생산팀장 금고 1년, 생산팀 계장 금고 6개월에 모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기업에는 벌금 3천만 원이 부과되었다. 2011년 LG화학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2조 6,819억 원과 2조 8,417억 원이었다. 기업이 선고받은 벌금은 하루 치 영업이익의 약 1/250에 해당한다.
1995년 괌의 삼성중공업 작업현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추락 사고로 사망했을 때, 미국 직업안전보건청은 안전조치 미비를 이유로 삼성중공업에 185만 달러(한화 약 19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같은 삼성중공업이지만, 2017년 5월 1일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 전도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신호수’ 한 명만 구속되고 사장을 비롯한 관리직은 입건되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이 중단된 기간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휴업수당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서 말썽이다. 과연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이 날지 지켜볼 일이다. 괌에서 노동자 한 명 사망으로 냈던 벌금이 19억 원이었는데, 20년 동안 물가도 많이 오르고 6명이나 사망했으니 최소한 그보다는 벌금과 형량이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LG화학이 8명 사망에 3천만 원 벌금을 냈으니, 그보다 센 처벌을 받게 되면 삼성중공업으로서는 몹시도 억울할 것이다.
앞서 마이클스가 지적한 것처럼 기업의 산재 예방은 기업 평판이나 윤리적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 평판이 중요했다면 살인기업 선정식의 단골 수상자들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기업들이 안전비용과 이윤을 저울질할 때 쓰이는 저울의 균형점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안전을 무시한 대가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와 처벌의 추가 더 무거워야 한다. 특히 중대 재해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를 엄중하게 처벌해서 그들이 동료 인간으로부터 빼앗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적으로’ 실감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저지른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살인이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위험,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중, 고도의 기술적 복잡성 때문에, 혹은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던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업 살인’ 중단을 외치며, 기업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다.
* 참고자료
Park JE, Kim MH. Workplace fire – not a misfortune, but an avoidable occupational hazard in Korea. New Solutions 2015;24(4):483-494
Michaels D. 7 ways to improve operations without sacrificing worker safety. Harvard Business Review 2018 March
청주지방법원 판결: 2012고단2521, 2013고단409(병합)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결. 2008고단53, 2008고단105(병합)
대담 문재인 정부의 노동행정 느낌과 진단
누구 편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나 -노동행정과 근로감독을 보는 눈
진행 : 김명희 <노동과건강> 편집위원장
대담 : 강태선 노동건강연대 회원, 산업보건학 박사정해명 노동건강연대 회원, 공인노무사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녹취록 : 이주연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정부 문서에 등장한 ‘노동자’ 표현의 느낌적인 느낌
김명희) 문재인 정부 들어선지 1년이 되어 가는데 여기에 맞춰, 새 정부 정책에 초점을 두고 최근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봤던 어떤 대통령보다 일자리, 산재, 안전 이야기를 많이 했고, 노동부 차원에서도 시민사회 목소리를 들으려고 자리도 만들고 노력을 하는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과거정부의 유산이라는 게 있고, 정책의 흐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정부라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런 우려가 있어요. 게다가 막상 노동단체들은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우선 정해명 노무사가 새 정부 노동정책과 관련해서 현장의 변화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정해명)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구요, 저 뿐만 아니라 주변 노무사들도 얘기하는데 느껴진다고. 현장에서의 변화까지 이어지는지는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노동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노동부에서 나오는 문건을 보면 ‘노동자’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저도 깜짝 놀랐는데, 법상 명칭은 근로자가 맞아요. 노동부에서 ‘근로자’라고 표현해 왔고 자연스러웠죠. 어느 순간에, 개헌 관련해서도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꾼다는 얘기가 있긴 하던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특별한 느낌이다...
김명희) 그렇군요. 분위기 말고 실제로 규제나 제도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레토릭만 ‘노동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명) 사내하청이나 불법파견 건으로 노동부에 진정이나 신고를 하게 되면, 범죄나 이런 걸로 검찰에 고소․고발하는 경우에도 바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묵혔다가 형식적으로 무혐의처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노동부도 마찬가지예요. 불법 파견으로 신고하면 뜸을 들이거나, 언제 감독 나간다고 사업주에게 통보하고 나가거나 해서, 그 사이에 자료 파기하게 하고 다 세팅된 다음에 나가서 문제없다고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안산에서 진정 넣은 지 2주 만에 근로감독관 4명이 조사를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사전 통보 없이. 통보 없이 음주 단속하는 것처럼. 결국 불법파견 인정이 됐죠.
김명희) 이전 정부랑 똑같은 공무원이잖아요?
정해명) 똑같은 공무원이지만 상급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거죠. 개인을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아쉬운 부분은, 어느 정권이나 행정부에서 갖는 특징일 수 있는데, 공무원을 동원의 대상이나 정책 집행을 위한 돌격대 정도로 보는 경우가 있어요. 상반기 고용노동부의 가장 큰 이슈는 미투, 성희롱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안정자금’이예요. 작년 대비 최저인금이 인상되었으니까, 30인 미만 중소사업장 노동자 1명당 13만 원씩 3조원을 잡아가지고 이걸 빨리 집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이슈에요. 매일 지청장들 화상회의도 해요. 1월에 실적이 안 나서 2월에 정말 심하게 쪼였대요. 소상공인이나 최저임금 인상 예산은 잡아놨잖아요. 반납하면 안 되잖아요. 1월에 신청 건수가 얼마 안 나왔어요. 이걸 빨리 집행하라고 장관부터 시작해서 난리가 나서 온 행정력을 집중해 가지고. 집행 기관이 근로복지공단이니까 근로감독관들한테 할당이 내려와요. 이거 빨리 하라고. 언론에도 기사가 났어요, ‘일자리 안정자금, 근로감독관 골병 든다’, 밤 10시에 팩스를 보내요. 중요한 일이고 좋은 취지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일에까지 동원하는 건 아쉽죠. 무슨 생각이 났냐 하면, 몇 년 전에 일자리 문제가 정책의제였을 때, 일자리 찾는다고 근로감독관들 동원한 거예요. 이들은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나가거나 신고 사건을 처리하는 특별사법경찰관이에요,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있는 분들은 아니라구요. 이 분들이 관할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나간 게 아니라 일자리 찾으러 다녀요. 사람 구하는지 전화해서 물어보고, 점검 나가서 그런 거 찾는 거, ‘몇 명 부족하세요?’ 이런 일 하러 다녀요. 근로감독관 일이 많아요. 정말로 일이 많아서 영혼이 없게 되요. 탈탈 털려요. 저도 가끔 주말에 불려나가서 조사받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일자리안정자금 집행하는 일에 동원돼서, 자기 본업인 근로감독, 규제기관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자리안정자금 민원업무를 하고 있어요. 전임 정권이나 현재 정권이나, 좀 아쉽다 생각이 들죠.
김명희) 정부 기조의 변화가 기업한테 시그널이 되긴 되나요?
정해명) 저는 강하게 느껴요. 올해 초 가장 큰 이슈는 최저임금일 텐데 노동자들은 크게 체감하는 것 같지 않아요. 아직 급여나간 게 얼마 안됐기 때문에. 1월 급여가 2월에 나가잖아요. 사업주나 기업들은 당장 자기네 부담 인건비나 늘어나죠. 포털이나 언론에서 최저임금 인상됐다고 떠들고, 최저임금 일자리안정기금 플래카드가 동네방네 다 붙어 있어요. 사업주들이 상당히 민감해 하고 노동법 관련 이슈에 대해서 경각심이나 민감성이 훨씬 높아졌어요. 예전에는 직원이 20~30명 되는 회사에서나 관심을 가졌는데, 요즘은 10명 안 되는 회사에서도 미리 대응을 하려고 하고, 연차 수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상담 건수가 많이 늘어났어요. 노동, 노동법 이슈가 대한민국 식탁에서 메인 반찬으로 오른 적 없었는데, 요즘은 메인 디시에요. 의정부에서 활동하는 노무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에는 지청에 노동조합 면담을 요청하면 핑계 대면서 안 만나주는 경우도 많았대요. 요즘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만나려고 하고, 이런 분위기. 아래까지 이 분위기가 내려왔는지는 몰라도, 장관이나 정부의 태도는 확실히 바뀐 것 같다는 거죠.
강태선) 최저임금 인상도 있지만 법정 근로시간 한도 52시간이 확정된 것도 중요한 이슈인 것 같아요. 하긴 원래도 52시간이었지만 (웃음). 물론 이번 정부 노력만으로 된 건 아니예요. 여야가 합의한 건데 마침 시기가 맞아떨어졌던 거죠.
정해명) 근로시간 단축 관련해서도 기업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영세사업장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 공휴일 안 쉬는 회사가 꽤 많아요. 서울은 공휴일에 쉬는 분위기가 있죠. 특히 토요일, 주5일 일하는 회사들. 안산은 토요일에 일하는 회사가 상당히 많았어요, 서울하고는 좀 달라요. 서울은 병원이나 마트, 백화점 이런 서비스업은 공휴일에 안 쉬지만, 그 외에는 쉬는 회사가 많은데 다른 지역에서는 공휴일에 그냥 일하거나, 쉬기는 쉬되 연차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아요. 기업이 자율적으로 사규에 의해서 유급으로 할지 무급으로 할지 정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예외에 해당하는 회사들이 수두룩하고, 또 현실에서는 법 위반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52시간 규정 그 자체보다는 관공서에 적용되던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간주한 것이 파급효과가 훨씬 큰 것 같아요. 대기업은 공휴일에 원래 쉬기 때문에 그거 내줘도 잃을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영세사업장들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겠죠. 영세사업장, 30인 미만 사업장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52시간 초과해서 일할 거예요. 노동부에서도 52시간 넘는 사업장에 대해서 크게 개입하지 않았어요. 노동자들도 문제 제기 안하고. 큰 회사들, 현대자동차라든지 이런 데는 근로감독들 해서 52시간 넘으면 신규채용해라, 이야기 할 수 있죠. 작은 회사들은 법정근로시간 52시간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바로 줄이지 못해요. 그렇지만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사업주들이 이걸 본단 말이에요. 시간이 몇 년 있으니까 준비해야죠.
공단을 돌아보면 작은 공장 사장님도 노동법 챙기는 분위기
김명희) 강태선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강태선) 노동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도 이슈가 된 건 사실이에요. 미투도 노동 문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죠, 당국도 그렇고 일반 시민들도 그렇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문제가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이슈가 되면서 사장님들이 긴장한 거는 맞는 것 같아요. 최저임금은 약간의 분노? 이런 걸 불러 일으켰죠.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받으려면 4대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4대보험도 없이 일하는 것을 정상으로 보고 일자리안정기금은 결국 우리한테 손해다, 이렇게 생각하는 기업주도 많이 있어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주장인데, 그게 먹혀요. 그래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저임금 문제는 여론화가 많이 되어 있고, 긍정적인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노동시간 문제가 같이 불거졌는데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공약을 했고, 대법원 판례를 앞둔 상황에서 여야가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몇 시간이 정상노동인 거냐, 사람들이 알아보니 68시간이고, 그나마 특례업종은 그 이상이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근로기준법 59조가 있었죠. 작년에 버스 사고로 인해서 노동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특례 업종이 있고, 심지어 버스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죠. 지난해 하반기에 그 이슈가 뜨거웠는데, 요번에 특례업종이 대폭 줄었어요. 29개 업종에서 5개로 줄었어요.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 자체는 장기적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논문을 찾아봤더니 노동시간이 60시간에서 40시간 대로 줄어들면 손상이 23% 감소하는 것으로 나와요. 질병도 만만치 않겠죠.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나왔는데, 이것보다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위험도라는 것은 위해(hazard)와 빈도(frequency)의 조합으로 결정되는데, 일단 빈도 자체가 줄어드는 거잖아요.
김명희) 노동안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정책들은 특별한 점이 있나요?
강태선) 최저임금 때문에, 그것도 일자리. 일자리 정책에 근로 감독 쪽이, 안전을 포함해서 먹혀 있다고 봐요. 집행조직은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에 동원되고 있고, 청년 일자리 지원 자금 4조 추경으로 한다고 오늘 나왔는데 거기도 동원될 것 같아요. 단기적일지라도 근로감독관들이 동원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근로감독관이 힘이 있으니까 협조를 구하기에 좋아서 쓰는 건데, 감독 권한을 좋게 쓰는 게 아니거든요. 이렇게 권한을 쓰면 현장에서 사업주가 근로감독관을 쉽게 볼 수가 있죠. 아무리 급해도 원칙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봐요. 근로감독관을 일자리나 청년 지원 사업에 동원하는 것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규제와 행정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고용지원이라는 일도 하고, 근로감독도 하고 있거든요. 근로감독관들도, 지방 노동위원회까지 포함해서 기본적으로 정체성의 혼동이 있어요. 서비스를 하는 사람인지 규제하는 사람인지 조정하는 사람인지.
김명희) 원래 이 정부에서 근로감독관 1천 명을 더 뽑겠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안 되었는데, 그나마 이 정도라도 어디냐 라고 봐야 하나요?
강태선) 저는 이번 정부의 노동정책 중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노동계에서 엄청 비판했잖아요. 왜 이것밖에 안 뽑냐고. 하지만 그동안은 요구도 안 했잖아요. 지난 10년 정권들은 근로감독관이 있는지도 몰랐을 걸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만난 공무원들, 아마도 2003년도 6월이었을 거예요, 검사들 만나기 전에 만난 이들이 근로감독관이에요. 청와대에 불러서 오찬을 같이했을 거예요.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근로감독관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근로감독관을 불렀다는 게 의미가 있죠. 인권변호사이기도 했고. 2005년도에 근로감독관을 많이 뽑았던 거예요. 그때 한 600여 명을 뽑았죠. 기술직들도 30여명 들어왔고요. 일반 행정직 근로감독관도 역대 이렇게 많이 뽑은 적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동인권변호사였잖아요. 노동사건은 중재가 가장 필요한 분야거든요. 지금 보이는 남북 협상가의 능력을 여기서 갈고 닦은 게 아닌가 싶어요. 노동사건을 많이 했대요. 지금 근로감독관 정원이 1천 9백 명 정도고요. 일반 근로감독관이 1천 4백 명,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4백 명대. 그러고 보니 두 정권 빼면 거의 의미가 없는 거네요. 근로감독관이 195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도청에 한두 명씩 들어왔다고 하니까... 소방공무원 늘이는 것에 대해서는 시민들 요구가 있지만, 근로감독관 증원은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신고 사건이 너무 많아졌어요. 신고 사건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사전 현장 감독을 못할 지경이죠. 신고 사건이 대부분 임금체불. 그것만 감당하기도 힘든 거예요. 사전 현장감독을 하기 위해서 충원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수경) 정부를 대신해서 규제하는 사람인데, 사업장에서 근로감독관의 말발이 먹히나요?
정해명) 근로감독관 나오면 걱정하죠. 그게 다 돈인데요. 과태료, 임금체불 건드리니까. 아마 세무조사 다음으로 부담스러워 할 겁니다.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시그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원이 많거나 노동자 수가 많거나 파견 관련된 곳은 1년에 한 번, 두 번 근로감독을 하더라고요. 어찌 됐건 거기 대해서 관심을 갖고 돈을 쓰고 하거든요. 무풍지대였다가 한 번 나와 가지고, 그런데 노동자가 신고를 해서 나오면 운이 없는 게 되는 거죠. 운에 달린 사건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지 않잖아요.
강태선) 근로감독관을 많이 뽑는 건 반가운 소식이고 필요한 일인데, 노동부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까봐 걱정하죠. 신고사건이 폭주하고 있고, 그것도 처리하다 보면 뽑은 듯 만 듯 효과도 안 나타날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신고가 40만 건 정도 되는데.
정해명)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젊은 세대는 인터넷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전이면 그냥 넘어갔을 그런 상황도 말이죠. 하루 이틀 일하고 다음 날 월급 보내달라고 문자 보낸다는 거예요. 줘야죠, 당연히. 안 주면 신고하고 근로계약서 안 썼을 거니까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신고 들어가는 것도 많고. 노동자 감수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예요. 그러다보니 신고건 수는 갈수록 훨씬 더 늘어날 것 같아요.
강태선) 40만 건 중 송치 종결하는 경우가 약 9만 건 정도 되요. 일의 규모가 엄청 나죠. 그런 사건들이 참 힘든데. 신고 건수가 40만 건, 나가서 감독하는 건 3만 건 되요. 이게 노동부만 책임질 일은 아니에요. 임금체불 이유는 굉장히 다양한데 어떻게 구제할 것이냐, 노동부도 특단의 대책. 민사적인 것과 형사적인 것을 동원해서 빠르게 구제하는 조직적 수단, 행정, 사법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고, 그런 것을 병행해서 근로감독관이 늘어나야 해결이 되겠죠. 양도 늘리고 효율성도 극대화하면서. 그게 지금 문제예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한데, 일자리나 청년지원 정책 때문에 근로감독 혁신이라는 과제가 제대로 갈지 걱정이예요.
정해명) 지금도 노동지청 민원실에 가면 ‘민관조정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노무사나 정년퇴직한 노동부 공무원 몇 분이 계세요. 이분들은 사건화 되기 직전의 문제들이 접수되면 사업장으로 전화를 하거나, 진정권이 안 될 만한 건을 종결시킨다거나, 근로감독관에게 사건을 넘기기 전에 설득하거나 무마시키는 일을 하기도 해요. 지청에 4~5명 정도 있어요.
강태선) 직장갑질119도 활동이 활발하잖아요. 근로감독관 행정에 불만 제기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실상은 감독관은 임금 체불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죠. 우리가 일본과 제도가 같은데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일본은 체불 사건이 이렇게 많지 않고, 체불액도 우리보다 훨씬 적습니다. 직장갑질119를 통해서 우리 노동인권 의식이 고양되고 근로감독에 대한 성토도 나오고 하는데, 쉬운 게 아니에요. 근로감독관이 힘들어서 자살하잖아요, 기술직인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경력채용을 통해서 일부 뽑고, 60%가 일반 행정직이예요. 공무원 임용되는 배치는 원하는 순서에 따라 이뤄지는데, 노동부는 가장 밑이죠. 가장 선호도가 떨어져요.
정해명) 선호도는 떨어지는데 노동부가 지역마다 가진 관할 사무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9급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되면 상당수는 고용노동부로 와요
강태선) 6천 명이니까요, 노동부가 중앙행정기관들 중 인력은 많지만 선호도는 가장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이렇게 오는 분들은 노동법도 몰라요.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3D라고 잘 알려져 있거든요, 노동부가. 와서 실체를 알게 되는 거죠.산업안전보건은 60%가 일반 행정직인데 요새는 신규 일반 행정직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경력 많은 근로감독관이 산업안전보건을 했어요. 당시에는 민원에 덜 시달렸으니까, 요즘은 안전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업도 많고, 사건도 많아져서, 젊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산업안전보건을 하고 있어요. 하여튼 산업안전보건 감독관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요. 신고 사건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거기에 비례해서 근로감독관 수는 늘지 않고 있고, 근로감독관들의 노동 인권은 처참한 상태가 되고 있죠. 근로감독관들이야말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 공무원이거든요. 그래야 다른 사람 노동인권도 생각하고 그러는데 지금은 내가 더 죽겠다 하고 있어요.
정해명) 일이 많아서 이 분들 주말에 나와요. 주말 근무도 네 시간까지밖에 인정이 안 되요. 주말에 자기 8시간 나와서 일했어요. 4시간 공짜 노동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노동자가 임금 못 받았다고, 연장 근무 수당 못 받았다고 신고를 했어. 그럼 ‘나도 못 받았어’ 이러는 거죠.
강태선) 일을 진짜 많이 해요. 근로감독관이 편해야 한다는 게 이런 거예요. 노동법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와서 엄청난 민원에 시달리고, 노동 인권 의식이 생겨나겠어요?
정해명) 담당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까, 노동부에서 합의를 상당히 강하게 종용한다거나 사건을 종결시켜버린다거나 해서 실제 노동자들은 못 받는 돈이 생긴다는 거죠. 실제 많고요. 감독관 입장에서는 일이 워낙 많으니까 합의를 해서 쳐내지 못하면 자신이 송치해야 하잖아요, 100건 보고서를 어떻게 쓰냐고요, 워낙 사건이 많으니까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고, 개인적인 대응 방법으로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거나 합의시켜버리는 거죠.
전수경) 정해명 노무사가 일하고 있는 안산은 그곳만의 사례집이 따로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노동행정이 무능하거나 사용주 편이라거나, 이렇게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직장갑질119에서 봤던 사례는 체불 임금하고 연결된 건데요. 사업주의 지독한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직원이 큰 맘 먹고 근로감독관에게 찾아갔던 거예요. 그랬더니 이런 건은 안 된다면서 임금 체불 없냐고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그런 사례는 더 있어요. 근로감독관이 체불 건 아니면 물리적․언어적 폭력은 실제로 개입하기 어렵다 해서 대실망하고 성토하신 거죠. 또 노동부에서 특별감독 나갈 사건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알려준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회사에 전화해서 이러이러한 건으로 제보가 들어왔으니 가겠소, 그렇게 해서 제보한 분이 자기 신원이 노출되게 생겼다고 연락해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근로감독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노동행정 전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개별적 사례를 일반화하고, 근로감독관 다 소용없고 장관 바뀌어도 다 소용없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강태선) 노동부도 갑질119 이전, 미투 이전에 조금씩 준비해온 것 같아요. 최근 그런 요구가 폭주하고 있는데, 기존처럼 임금 체불에 묻혀 있다 보니 다른 법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져있는 것도 같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 일해보지 않았던 거죠. 신분을 보호하면서 사업장을 감독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그동안 임금 체불 중심으로만 일하다 보니까, 신고나 첩보를 접수하고 효과적으로 감독하는 것에 대해서 교육받지 못하고 있고요, 그런 것을 잘 생각하지 못해요. 미국 근로감독관의 70%가 컴플레인에 근거한 감독을 하더라고요. 컴플레인을 어떻게 수렴할 것이냐, 신원도 보호하면서 긴급하게 나가기 어렵다고 봐요. 그런 것들이 우리는 잘 개발되어 있지 않아요. 근로감독관이 악의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죠. 워낙 바쁘니까 사업장에 우선 전화를 한 거죠, 개선토록 미리 조치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고요.
전수경) 그건 있는 것 같아요. 꼭 정부가 아니더라도 직장갑질119 상담 내용 중에 보면 공공기관 사내고충처리위원회, 성희롱상담소, 이런 것이 운영될 만한 큰 기관 노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례를 보면 성희롱상담소도 실적 쌓기 용으로 접수를 받아줄 뿐이지 실제 해결이 안 되다고. 다들 겪어서 알고 있고, 노동 인권과 관련해서는 보고용이거나, 실적 쌓기용, 그래서 현장에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정부 사고조사 공개하라 요구하고, 교육 바꾸라고 요구해야
김명희) 이런 종류의 노동행정, 규제가 노동계의 관심이나 아젠다이기는 한가요?
전수경) 제가 일반적인 노동행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근로감독관 충원 문제는 전혀 이슈가 아니고요 관심이 일도 없고. 노동안전만 보자면 노동조합들이 하는 노동안전은 노동부 행정의 하위파트너, 정부가 빵구내는 일을 알아서 대신 하고 있는 걸로 느낄 때가 많아요.
강태선) 안전보건 이슈는 산재보상을 받아주느냐 마느냐에 집중되어 있고, 민주노총 자체도 그 사업 비중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전수경) 전에 당진 현대제철 사망사고 났을 때, 특별근로감독 때문에 지청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 근로감독관 말이, 대공장에서 계속 산재사고가 나가지고 근로감독관이 다 차출되어 가지고 당진에 와 있다는 거예요. 사건들이 쌓여있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공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결국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는구나 생각했어요. 민주노총은 영세사업장이나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감독관 행정이 미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야겠죠.
강태선) 한동안은 고용노동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을 중심으로 다녔어요. 그런데 50인 미만 사업장 감독 10개를 하는 거랑, 현대제철 3만 명을 열흘 동안 감독하는 거랑 차이가 크죠.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효율과 효과를 생각하면서 감독 계획을 짜는 지가 중요한데요. 우리가 보통 1년 이상을 내다보지 못해요. 어떤 지표를 가지고 성과로 볼 건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산재사고는 lagging indicator, 후행지표로 가장 늦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 사이에는 많은 왜곡이 가능해요. 그걸 갖고 감독 계획도 짜고 그랬는데, 그 부작용이 산재 은폐로 나타난 거잖아요. 재해 났다고 이듬해 감독점검 나가는 것이 산재은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이제야 재해율 지표를 갖고 감독하면 안 되겠구나 해서 덜 쓰고 있어요. 이제는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하는 시기에요. 사고 났다고 검경합동점검 나가고 이거 아니거든요.
김명희) 최종 결과 지표가 아니라 중간에 퍼포먼스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찾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될까요?
강태선) 우리가 goal setting rule, 혹은 goal-based rule이라고 해서 시시콜콜한 규정보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사업장에서 이행하도록 감독하고 강조해왔는데,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제도화할 수 있는 역량은 아직 없어요. 그것이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은 과제죠. 오히려 뭘 해서 백점을 맞으라고 하면 하겠는데 (산재를) 제로로 만들라는 것, 안 보이는 것을 지표로 만드는 것은 어렵죠. 이번 정부가 잘 하는 것은 안전 이슈 중에 노동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대통령이 분명히 알고 있다는 거예요. (대통령만 아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2018년 1월 23일에 발표한 3대 안전 대책에 교통사고, 자살, 산재가 들어갔거든요. 산재가 마지막 단계에서 들어갔다고 하더라구요. 안전도 분야가 여러 가지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지난 정부가 불량식품을 강조했었고. 사실 가장 중요한 안전이 산업 안전이에요. 노동자가 피해를 보기도 하지만 여파가 너무 큰 거예요. 산업안전이라는 게, 작년 7월에, 취임한 지 두 달이 안 된 상태에서 산재 메시지를 줬는데, 만만치 않은 메시지였죠. 원청 책임 강화, 국민 참여 사고조사 위원회. 그게 지금 논의되고 있어요. 사고조사가 중요하거든요. 초기 단계지만 국민참여 사고조사위원회 활동이 공개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많은 사고들을 겪었지만 그 전모가 공개가 안됐어요. 안전보건공단이 사고조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안전공단이 중대재해 조사의견서를 써놓고, 기술력이 집적돼 있는 건데 그것을 아무도 못 보게 해놨어요. 노동부가 그렇게 하고 있어요. 노동부도 수사 자료라고 하면서 비공개로 묶어놨는데 산재예방 의지가 있다면 노동부가 이를 공개했어야 하는데 손 놓고 있었던 거죠. 사고조사위원회는 국민들 참여도 의미가 있지만 공개를 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거든요. 이전 것도 다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용되어야 하거든요. 감독 전략을 짜는데, 그런 자료들을 활용하지 않았어요. 사고 조사, 그것의 공개, 이게 걸음마라고 생각해요. 걸음마를 뗐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시작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김명희) 지난 정부 때 파견이 확대되면서 메탄올 사건이 생겼고 중대재해도 계속 있었죠. 내일부터 당장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노건연이 집중해온 문제들에도 실질적인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하시나요?
정해명) 구조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루아침에 이걸 바꾸면 공단 자체가 휘청거릴 거라서. 그렇지만 사용자들에 대한 시그널은 충분히 효과적으로 갈 것이다, 좀 무리가 있긴 했지만 양대 지침인 성과연봉제를 공식적으로 폐기한다고 선언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예를 들면 최근에 불법파견 관련해서 ‘롯데캐논’이 문제인데, 대기업 공장들에서 비슷한 형태로 많이 하고 있거든요. 여기도 직접고용 하라고 나왔어요.
김명희) 예전에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세게, 이벤트성으로 여러 번 했잖아요. 조치 결과를 보면 노동자 상당수가 ‘원하지 않아서’ 직고용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건이 종결되더라구요.
정해명) 입법적 미비일 수도 있는데, 직접고용 하라고 했지 정규직으로 뽑으라고 한 거 아니거든요, 파리바게트 SPC 같은 경우, 상생기업 만들어서 반강제적으로 방안을 찾은 거죠. 법적으로 밀고 나가면 모 아니면 도,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제빵사들 과반수 이상이 이쪽으로 타협한 것 같고, 직접고용이 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합의가 나온 거 아닌가 싶어요.
김명희) 시그널 이상으로 불법파견구조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럼 중대재해 문제는 어떨까요? 국민참여 사고조사위원회를 통해 상당히 개선이 있을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강태선) 모든 걸 사고조사위를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큰 사고의 경우 의미 있는 효율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해요. 연구를 보면 비례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범죄예방과 처벌이. 행정법 특성 상 벌칙을 산업안전보건법만 유독 높일 수 없는 걸로 보이고요. 이번에 좀 높아져서, 징역 또는 벌금으로 되어있고 징역을 늘린다고 해도 벌금에 상한이라는 게 있고 양벌규정 10억 이하로 노력은 한 거죠. 경제적 제재는 분명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것이 행정법에 벌칙은 아닌 것 같고요
김명희) 징벌적 손해배상 이런 건 아니고요?
정해명) 손해배상 법리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강태선)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입법 예고된 안을 보니까 제 13조에, 그게 좀 주목이 되는데 대표이사가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서명하고 이사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게 있어요. 대표 이사를 책임의 당사자로 만든다는 것이고요. 입건할 수도 있고 최소한 참고인으로 불러서 책임을 묻는 거죠, 정부가,
정해명) 사망 사건의 다수는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지만, 기업주 개인들은 사업하면서 평생 사망 사고를 얼마나 겪을까요? 한 번? 회사가 워낙 많으니까요. 현대 같은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살인기업 선정식 하면 1, 2, 3위. 순위도 돌아가면서 먹고. 그런 회사들은 산재사망사고라는 게 현실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영세사업자들은 사망사고가 나면 그냥 재수 없는, 운이 없는 거예요. 처벌이 높다고 해서, 내가 징역을 살 수 있어, 그래도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아요. 50인 미만 작은 사업장일수록 산업안전보건법 있는 줄도 몰라요. 무풍지대예요. 근로계약서도 겨우 쓰는데 요즘. 그런 데들은 사업주 의무이기는 하지만 국가 행정으로 지원하고, 조금 강하게 가서 지도도 하고 알려주기도 하고, 정수기 코디 같은 분이 오셔서 관리하듯이.., 돈이 많이 들겠지만. 재해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 업종, 산재가 많이 일어나는 업종 데이터가 있으니까,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대신에 대기업 같은 경우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거나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거나 하면 강하게 처벌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김명희) 노동부 전략 이런 것을 세우겠죠? 5개년 계획.
강태선) 사실 다 하고 있는데요. 공단의 지원보다는 감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감독이 일정하게 억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공단의 지원도 수용률이 높아질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감독이 제자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말씀드린 대로 모색 중인데요, 조직적으로도 감독을 제대로 구상하려면 조직이 필요한데 일반 근로감독도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데가 없어요. 근로감독국, 근로감독청 등을 고민할 텐데, 산업안전보건도 근로감독이라는 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인력 자체가 한두 명에 불과하죠. 인원을 늘리면 무엇보다도 광역에 담당 과를 하나 더 만들 것 같아요.
김명희) 그 과에서 하는 일은 전략 세우고, 트레이닝하는 게 되나요?
강태선) 광역감독과. 나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좀 큰 사건들 맡아서 하고, 예전에 대응이 임기응변 식이었다면 좀 더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 효과가 있다고 자평해요. 산업안전보건도 이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사업장만 찾아다니는 것은 임기응변이거든요.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고 왜 이런 사고가 났을까, 다른 나라 감독사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퍼포먼스 기준과 목표 설정 전략을 세우는 거죠. 우리는 지금 안전난간 몇 cm 지켰나 수준의 감독을 하고 있어요. 효과적인 감독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감독관의 전문성, 그 다음에 감독 전략들이 잘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지금 조성되고 있는 거죠.
김명희) 보건의료 쪽을 보면, 정부가 어떤 안을 내놓거나 시민사회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상당히 디테일한 편이거든요. 운동단체가 기술적 전문성이 있고, 오히려 가끔은 공무원들이 할 만한 일을 왜 시민사회가 하고 있나 생각이 들만큼. 그에 비하면 노동행정 쪽은 운동 진영 내에서 거의 사각지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노동운동이 근로감독제도, 노동행정규제를 잘 감시하고 감독하고. 전수경) 전문성이 없죠. 개입전략이 없고, 정부를 향해서 요구하는 백 가지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보건의료 영역은 활동가 중에 전문가들이 많고 미시적 영역까지 다루지만, 노동 쪽은 민주노총이 전부 아니면 전무여서, 순위나 개입전략 같은 것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기술적 의료적 전문성에 대한 관심이 과도하고, 노조교육도 그런 내용이 많죠.
정해명) 편식이 심해요.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은 돈 문제와 근로조건이 연관성 깊으니까, 그리고 산재보험법은 이거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많으니까 민감하죠. 산재보험 처리나 이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디테일하게 이야기되고 있어요. 노동안전 쪽 분야는 전문가 풀도 많지 않고 노동조합에서도 변두리 이슈였던 게 사실이고, 주요 이슈가 안 되고 편식이 심한 편이죠.
강태선) 누구도 자기가 산재를 당할 거라고 생각을 안 해요. 긍정 편향이 있죠. 산재를 입었을 때는 아무리 동료라도 이해를 못하고. 입장을 달리 하고, 유족들은 조직되기 어렵고. 대부분은 아주 개별적인, 재해를 입은 사람들은 인종이 바뀐다고 이야기해요. 마치 인종차별처럼, 보편화되기 어렵죠. 재해율로 따지면 모두 드러난다고 할 때 2~3%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대단히 높은 건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이게 관건이죠. 임계점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전수경) 영세사업장이 사망률이 높으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사망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기업주 처벌을 강화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함으로써 사망이 일어나는 것은 막자는 것이고, 정부가 할 일은 작은 공장들, 시설이 낙후한 곳에 대한 전폭적인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운동으로서의 기업살인은 조금 다른 것 같고요. 철도현장에서 사고 발생했을 때, 철도노조는 국토부 김현미 장관이 현장에 가서 사고재발 방지 이야기를 하도록 했지만, 노조 활동가 분이 전화로 하소연을 하시더라구요. 선로보수 외부업체 노동자 사망했는데 원청 노조가 안 모인다는 거예요, 관심도 없고. 원청 노조는 자기 조합원 문제 아니면 관심을 안 갖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거예요. 대통령이 산재 줄인다고 하는데, 노동부 대책은 전과 다른 점이 없고, 실제로 안 줄어들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강태선) 사망감소 50%는 쉽지 않을 거예요. 이제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해요. 국토부에서 건설기준진흥법 강화하고 국토부 사고조사위원회 상설화하고, 의정부 경전철 사고를 조사했어요. 조사위원들은 비상근인데 공개를 다 했어요. 이제 좀 달라지는 거죠. 이제 시작이고, 안타깝지만 획기적으로 줄진 않을 거예요. 근거 있는 전략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일 뿐이지, 시행하고 몇 년이 지나야 줄어드는 것이지, 지금 뭘로 줄여요, 갖고 있게 없는데.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400명인데, 억제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거든요.
정해명) 제 기억에, 노무사 11년 하는 동안 제가 접촉했던 회사 중 사망사고가 발생해서 사고조사랑 처벌 이런 것 때문에 산업안전근로감독 받은 회사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은 좀 다르지만. 일반 근로감독은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나오거든요. 세무조사를 받으면 데이터가 신고 되고 탈탈 털린다, 공포가 있어요. 사업주한테 산업안전은 그런 중요도가 없어요.
강태선) 공포를 줘서는 효과가 안 나올 거예요. 세무감사는 잘 받아야겠다 대비를 할 수 있지만, 산업안전 근로감독은 견적이 안 나와요. 법 자체가 다양하고 내용도 많고, 감독관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과태료 50만, 100만원 바치는 게 현재로서는 합리적일 수 있어요. 작은 데는 그게 관행이고 큰 데도 다르지 않아요. 교육도 너무 강조하고 있어요. 누구를 교육하라는 건지, 사업주가 책임져야 하는 건데 노동자 정신상태가 글러먹어서 그렇다고 보는 거잖아요. 잘못된 거죠. 특별안전 교육이 중요해요, 모든 업종을 망라해서 분기 6시간 교육해라, 이런 건 우리나라만 있어요. 교육 문제는 아닌데 말이죠. 너희 사업장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뭐야, 그거 하면 인정해주는 거죠. 사업장에서 해야 하는 건 A인데, BCD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수료증 받고 사인하는 거 의미도 없어요. 우리가 도로교통법을 일일이 다 알아서 운전하는 거 아니잖아요, 소기업은 지원, 대기업은 자율, 이런 거 일종의 도그마예요. 편견을 버리고 정확한 통계 가지고 일해야 해요. 지금 통계가 엉망이잖아요. 사실 통계 소스는 많아요. 근로환경조사, 동향조사, 국민건강영양조사... 이러면 산재통계도 개선이 될 것이고. 사고조사 공개와 데이터로 정책을 뽑아내야죠. 도그마에서 탈피해서.
정해명) 일자리안정자금 올해 집행하는 거 보면서,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동네 골목마다 일자리안정자금 플래카드가 붙고 주민센터에 전담자가 앉아 있어요. 근로복지공단은 자기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 고용보험 공단에서도 이 일을 다 하고, 일자리 안정기금 신청 창구가 있어, 전담자가 있어요. 3조니까. 안전과 관련된 문제도 의지만 있으면, 1년에 사망자가 2천 명인데, 이정도의 관심과 예산만 쏟아 부으면 잘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쉽진 않겠지만.
강태선) 정확한 말씀인데 우리가 지금 의지가 없어요. 그게 문제예요.
정해명) 최근에 느끼는 게, 산재사고 발생하면 보고해야 하잖아요, 안 하면 물어야 하는 과태료가 올랐어요. 신고 안하면 700만원, 이제는 알고도 신고 안 하는 사업주는 없을 것 같아요.
강태선) 일자리는 청와대에서 챙기는 거잖아요. 안전도 정부가 중요하게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천이나 밀양 화재 등도 계기가 되었고. 그런데 이게 돈을 풀어서 되는 문제가 아니고 복잡한 문제거든요 시간도 많이 걸리는 문제고. 짧게 승부를 걸어야 하는 문제는 아닌데 계산을 하죠, 장기과제예요. 멈추지 않고 나가야 해요.
김명희) 그런 면에서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요구했으면 좋겠다, 이런 거 하나 이야기해 주세요.
강태선) 노동계가 정부 ‘근로감독’을 ‘감독’했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하는지. 국회 국감 때처럼 근로감독 몇 개 했어? 이런 식의 얄팍한 감사가 아니라, 정말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감독이 효과를 거두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미국의 AFL-CIO는 1년에 한번 “TOLL OF DEATH”라고 하는,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감독한 결과를 다시 감독하는. 즉 감사보고서를 발간해요. 감독 시간과 감독의 질까지 보는 거죠. 감독 숫자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보장하지 못하거든요. 고용노동부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은 더 가깝게는 노총들이, 먼저 시작해야죠.
전수경) 노동조합 소속 노무사나 변호사들이 일이 많을 때는 조합원 상담이 먼저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몇 명의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이런 보고서가 나오기 어려워요. 자기 조직이 먼저고, 자기 조합원이 먼저고.
강태선) 이해는 가요. 정책비판은 하지만 감독 행정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더라고요. 감독 행정은 법률이 있고 사업장이 있고 노동자가 있을 때, 톱니바퀴가 되어주는 건 집행이거든요. 법이 바뀌어도 집행이 안 되면 사각지대고요, 사각지대가 없으려면, 감독관 수 늘리라는 게 가장 원시적인 주장이고, 집행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해요.
전수경) 작고 재밌는 것으로 시작을 해야죠, 법원 판결문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작은 문제 같지만 그게 알 권리,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해서, 사고조사 보고서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정보공개청구운동을 하든가 해야죠.
강태선) 판결문 공개가 안 돼서 가장 피해보는 영역이 아마 노동안전 쪽일 거예요.
정해명) 근로감독 보고서를, 사업장 이름 지우고 공개하면 되거든요, 칭찬 받으려고 정부가 보도자료 내는 것 하지 말고요.
강태선) 좀 더 디테일한 행정 공개를 해야 되요. 개인정보 가리고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어요. 환경부가 화학물질 정보공개 하는 게 행정력을 들이지 않고 기업을 감시하는 방법이거든요. 효율적이에요. 일단 기초자료를 공개하면 그걸 가공해서 발암물질 지도 그림을 그리고, 배출 저감 계획을 보고 운동에 탄력도 받고요. 그건 공무원 수십 명 고용한 효과가 있는 거죠.
김명희) 밤늦은 시간인데 이야기 너무 많이들 하셨어요. 다들 할 이야기 없다고 하시더니만. 오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