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II
PDF로 본문보기 : 각자도생과 21세기 복지의 풍경.pdf
각자도생과 21세기 복지의 풍경
-불안정 고용시대의 사회보장을 다시 생각함
대담 일시
2017년 11월 17일 (금), 노동건강연대 회의실
대담 참가자
김정숙 / 건강세상네트워크,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
사회 : 김명희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기록 : 이주현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된다. 이러한 불평등의 핵심에는 노동시장 문제가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빈곤 문제가 주로 일하지 않는/못하는 계층의 문제라면, 한국 사회는 여기에 더해 ‘근로’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렇게 벼랑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작은 사건도 커다란 삶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비극적인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아픈 두 딸을 돌보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건강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바로 생계가 막막해진 것이다.
원래 예기치 못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회보장 제도이다. 실업이나 질병, 산업재해, 노령 같은 위험에 집합적으로 대비하는 장치가 바로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보험 제도들이 ‘안정된 고용’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료급여나 생계급여처럼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국가가 보장해주는 부조 제도도 있지만, 수급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적용 인구가 제한적이다.
이 대담에서는 소관부처 혹은 운동의 전문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불안정 노동자, ‘근로빈곤층’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사회적 위험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명희(사회): ‘노동’ 쪽에서 이렇게 세 단체가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우선 각자 소개를 간략하게 해 주세요.
전수경 (수경): 저는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고요, 저희는 일반적인 노동, 산재보다는 비정규직, 파견처럼 노동운동에서 잘 포괄하지 않는 노동자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는 편이에요. 요즘 조금 주춤해졌는데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고, 기업 살인법 제정 운동을 한참 했어요.
정성철 (성철): 저는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빈민단체들의 연대체인데, 사무국을 중심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요. 주로 선정기준이나 보장수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특히 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조건부 수급자, 자활사업 등의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정숙 (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보건의료 시민단체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 왔고요. 건강보험에서 배제된 사각지대, 이를테면 건강보험 체납자, 취약계층, 의료급여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사회: 취약계층. 사실 이 말 되게 싫은데 딱히 좋은 용어가 없어서 취약계층이라고 할게요. 노동과 고용. 건강.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했으면 해요.
정숙: 저희가 만났던 사례 몇 가지가 있죠. 송파 세 모녀 같은 사건을 비롯해서, 저희가 빈곤사회연대하고 같이 소송을 제기한 최O기 선생님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분은 원래 미국에서 사시다가 사업이 잘 안 돼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일을 전전하고, 버스 운전을 하다가 어느 날 쓰러져서 병원을 가보니 대동맥류였던 거예요. 수술을 두 차례 하고 기초생활 수급을 받으면서 살고 계셨는데, MB 정부 지나면서 근로능력평가가 강화되었어요. 대동맥류가 심장 근처 큰 혈관을 인공 혈관으로 바꾸는 거라,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무거운 걸 든다거나 노동을 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담당의사는 어느 정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이 사람은 일 할 수 있다’고 판정을 한 거예요. 이렇게 ‘조건부’ 수급자가 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기 위해 영국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처럼 끊임없이 구직활동을 해야 해요. 이 분이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그나마 노동 강도가 약하다고 생각한 아파트 경비, 청소를 한 거예요. 청소일 한 지 몇 달 만에, 사실 청소 일이 쉬운 게 아니거든요. 일하다가 혈관이 다시 터졌고, 돌아가셨어요.
사회: 이 경우에 산재는 어떻게 되었어요?
성철: 자활사업은 4대보험이 되지만, 이 경우에는 아마 안 될 거예요.
사회: 조건부 수급이라는 게, 당사자한테 일을 하라는 거지, 반드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 가야 한다, 이런 건 아니잖아요.
정숙: 그렇죠. 자활사업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후에 얼마나 취업을 했느냐가 평가 기준이기 때문에 담당 사회복지사들은 일자리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에요. 산재보험이나 근로환경 같은 조건을 따질 상황이 아니죠. 당사자들이 나이도 많고 학력이나 기술 같은 것도 별로 없고 하니 일자리 조건을 따질 게 아니라서... 어쨌든 당사자는 일을 해야 수급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 일이라도 찾아서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성철: 사실 구청 공무원들이 최종 판단을 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능력 판정을 해도. 그래서 최O기 님이 취업하기 전에 경비, 청소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업체에 내가 이런 질환이 있다는 걸 알려야 되지 않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구청에서 ‘그런 걸 쓸데없이 왜 이야기 하냐’고 이야기했다 하더라고요. 청소하는 곳이 지하고 환기도 잘 안되고 공기도 굉장히 안 좋은 곳인데, 심혈관 문제가 있는 분이 지하에서 힘든 일을 하게 된 것도 구청에 책임이 있는 거죠.
사회: 업체는 본인들이 날벼락이라고 생각했겠네요. 만약에 질병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우리는 고용 안 했을 거다, 이러면서. 이 문제를 대응하는 과정에 기초생활보장제도 문제와는 별개로 산재 신청을 생각해보셨어요?
정숙: 그 당시에는 근로능력 판정 문제하고, 또 의료사고 가능성도 있고 해서 그 문제에 대응하느라 산재까지는 미처 고민을 못했어요. 아쉽죠. 이 사례 말고도, 제가 만났던 분 중에 동자동 쪽방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있는데, 지금 80세가 다 되셨을 거예요. 10대 때는 넝마주이셨대요.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넝마주이 생활 하다가 20대부터 50대까지는 막노동으로 사신 거예요 평생. 막노동으로 사시다가 50대 중반에 이제 몸이 아프신 거죠. 너무 몸을 험하게 썼다고 본인이 생각해요. 암도 오고, 암도 한 세 가지가.., 지금도 몸이 아픈데 폐지를 주우면서 사세요. 이 분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 구조와 사회보장체계의 문제점이 압축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철: 최근에 한 열 네 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다 비슷하더라고요. 과거에 막노동을 하셨던 분들이 많고, 비정규 근로나 자영업... 사업이라고 본인들은 말씀하지만 사실 큰 사업은 아니고 작게 노점상을 했다든가, 작은 점포에서 임차 상인을 했다든가, 뭐 이런 경우가 많죠. 그러다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게 되는 이유는 사업이 망한 경우 아니면 막노동 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진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 분들이 의료급여가 된다고 해도 2종이 되면 병원 이용에 제한이 많아요. 2종은 일을 해야 하는데, 자활사업에 참여하면 임금수준이 되게 낮잖아요. 임금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정식 노동자라기보다 복지 일자리 참여자가 되는 건데, 이런 저런 노동법에서도 배제가 되고, 한 90만원, 많이 받으면 100만원 가까이 받아요. 그런데 병원에 가면 비급여가 있는데, 이 부분이 정액이 아니라 정률제로 가다 보니까 병원비가 얼마 나올지 모르니까 돈 걱정 때문에 안가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허리가 아예 골절이 되었던 분이 수술을 마치고 나서 1년도 안돼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나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럼 2종이거든요. 수술 받을 때는 의료급여 1종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생활비, 통신비, 식비 지출하고 나니까 재활치료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받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사례들은 대부분 상황이 비슷해요. 의료급여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굉장한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죠.
작년에 거리 상담에서 만난 안타까운 사례도 말씀 드릴게요. 60대 후반에 혼자 살고 계신 여성 분이었어요. 아무 혜택도 못 받고 계시더라구요.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긴 한데,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닌 거예요. 왜 안 되냐 봤더니 수급 신청을 아예 안 해보셨던 건데, 그 이유가 아들이 □□서비스센터에서 수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 갔더니 아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거를 아들에게 말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안 하셨던 거예요. 이걸 신청한다는 것 자체가 아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아들한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있으신 거죠. 그래서 계속 신청을 안 하고 그냥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주는 음식들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고 아프셔도 병원에 제대로 못가고 계셨던 거예요. 서울역에 아웃리치 나갔을 때도, 기초생활 수급 신청 안 하시는 이유 물어보면 ‘가족이 있으니까 안 된다고 하드라’ 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럼 같이 신청해보실래요’ 하면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는 거냐’ 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안 하겠다고 말씀하고... 동자동에 계시는 80대 초반 어르신이 계셨는데, 아들이 결혼을 해서 4인 가구로 있었어요. 아들 집에 같이 살다가 가족 갈등 때문에 집을 나와 동자동에 방을 얻은 거죠. 기초연금 받아서 그걸로 쪽방비를 내고, 식사는 무료급식소, 교회에서 해결하고.
사회: 다른 소득 없이 기초연금만 받으면 쪽방비 내면 땡이잖아요?
성철: 맞아요. 쪽방비 내면 딱 땡이어서 식사는 거의 무료급식소 이런 데서 하고, 옷이나 이런 것도 서울역 근처니까 다시서기센터나 이런 데서 얻어서 입고, 이불이나 그런 것도 다 그렇게 생활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기초생활 수급 신청하자고 말씀 드렸더니, 아들한테 연락이 가느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이 간다, 그렇기는 한데 이게 절대로 피해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직접 연락 안해도 동사무소에서 연락해서 관계단절확인서 내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거 설득하는데 1년 반이 걸렸어요. 1년 반 걸려서 겨우 신청을 했는데 관계단절 인정을 못 받았어요. 왜냐면 1년에 한 번씩 연락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게 지침 상에도 그렇고...
사회: 이게 공무원 업무 지침에 있어요?
정숙: 전화기록까지 다 뒤져요. 그래서 우리가 당사자 분들한테 전화할 때 꼭 공중전화 이용하시고 꼭 이야기해요. 복지가 오히려 관계를 단절시켜요
성철: 일 년에 한두 번 연락 한다고 해도 보장기관이 판단했을 때 관계가 단절됐다고 보이면 관계단절로 인정해야한다고 지침이 변경되기는 했는데, 구청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거죠. 이의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고... 걱정되는 게 뭐냐면 그 분 전화가 끊겼어요. 핸드폰도 없어지고 연락도 안 되고. 이런 게 한 반 년 정도 됐는데...
사회: 이렇게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분들이 사실 평생 놀고먹고 이런 분은 잘 없잖아요. 뭔가 일을 계속 하고, 특히 그 와중에 다치거나 이런 분들. 제가 만났던 분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노동 문제나 산재 문제로 다뤄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그냥 일상이었던 거죠.
수경: 약간 충격이네요. 통화기록 조회라니 왠지 국정원이 할 일 같은데, 복지부가 이상한 걸 하고 있네요. 원래 전통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그런 데 보면 도시 빈민들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이런 상황이 항상 나오잖아요. 개인한테 이건 산재, 이건 복지, 이렇게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20대 노동자들 인터뷰를 계속 하고 있는데 두 번 정도 굉장히 낯선 이야기를 들었어요. 보통 알바천국 같은 데를 통해서 공장 이런 곳에 알바를 나가거든요. 그런데 한 분이 말씀하길, 자기 옆에 있는 동료가 20대 초반 여자 아이인데, 학교 졸업하고 바로 온 것 같은데 이름을 말 안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수급자인데 일하는 게 탄로 나면 안돼서 가명이거나 그냥 예명만 쓴다는 거예요.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이런 파견 노동 같은 경우에는 공장에서 일을 해도 그 공장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어요. 그래서 만약 그 친구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어떤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고용 기록도 안 남고, 산재 신청을 할 수도 없죠. 수급권을 뺏길 수 없으니까.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게 관계를 아예 단절시켜 버린다는 거예요. 이름도 말할 수 없고, 누군지도 말해주면 안 돼. 이런 식으로 공장을 또는 알바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삼성 백혈병처럼 암에 걸리거나 일하다 어디가 절단되거나 이런 경우가 아니면 산재보험을 신청한다, 자격이 있다 이런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다가 생기는 건강문제들은 사실 완전히 방치되어 있는 거죠. 노동부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특수고용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4대 보험에 가입된 노동자였다가 사업자나 프리랜서 신분이 되면서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바뀌고 국민연금 같은 것은 아예 유예해 버리고.... 월급에서 까이니까 아까워서 안 하거나 자기가 지역가입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제 20대에 출발이 그렇다는 거죠. IT 분야에서도 경력이 좀 쌓이고 프리랜서가 되면 월급이 늘기 때문에 노동자신분을 읽어버려요. 건강보험이 지역가입자로 바뀌고 국민연금도 붕 뜨고. 그런 경우도 여러 번 들었어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도 개인사업자에요. 스텝들은 원장이 고용하지만 헤어 디자이너는 자기 성과만큼 이득을 분배해 가는 거예요. 이런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20대 공장 알바는 가족이 수급자인 걸까요?
정숙: 그럴 수도 있고 본인이 수급자일 수도 있어요. 가족 구성원 개별로 수급이 정해지는데 가족 소득을 합산하여 일정 수준을 넘으면 수급 탈락해요. 복지를 받으려면 일을 하면 안 되고, 일을 하면 복지를 못 받고 이런 악순환이 생겨나요. 노동시장에 나가서 소득이 제대로 보장이 되면 괜찮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부정 수급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실제로. 제가 아는 분도 수급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우니까 퀵 서비스를 하거든요, 이 분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데, 여기에는 수급자들이 많이 살잖아요. 퀵 서비스 하려면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콜이 오면 나갈 수밖에 없는데, 같은 임대아파트 사는 분들이 그 분을 부정 수급자라고 신고했어요. 이 분들이 되게 예민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수급비가 얼마 안 되는데, 나보다 더 많이 버는 거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이 분이 2년 치 수급비 2천만 원 토해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제가 안내를 해 가지고 1천만 원으로 깎기는 했어요. 이 분이 그러면 소득이 수급비밖에 없는데, 이러면 수급이 한 1년 동안 중지가 돼요, 이게 악순환인데, 그럼 또 알바를 해서 또 10만원씩, 20만원씩 할부로 그걸 갚고 있는 거예요. 어쨌든 소득기준을 넘으면 또 수급자 탈락하니까 월 70만원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알바를 뛰면서... 너무 힘든 거예요. 너무너무 괴롭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사람의 자존심이나 이런 것도 완전히 무너뜨리는 제도인 거고.
사회: 이런 분들이 주로 법망 바깥에 있는 아주 불안정한 알바나 파견노동시장으로 가는 것 같아요.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신분 세탁을 위해서는 파견이 짱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만났던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도 기록이 없어요, 그 분이 15년 동안 용접일도 하고 보온 작업도 했는데 한 번도 산재보험 적용받거나 건강보험을 든 적 없대요. 다 지역가입자. 거대한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수경: 알바천국 상담게시판을 보면요, ‘아버지가 수급자인데 들키지 않고 알바 할 수 있는 방법 알려주세요, 고3이에요.’ 이런 말도 있어요.
정숙: 4인 가족이라고 해봐야 수급 기준이 200도 안 될 텐데...
사회: 이런 분들이 위험한 일에 종사하게 되고, 또 다치고...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황당한 사례들이었는데, 이제 제도 이야기를 하나씩 해볼까 해요. 산재보험 쪽부터 이야기해 주시죠.
수경: 산재보험은 산업화과정에서 광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대형사고를 대비한 데서부터 시작한 거예요. 광산 노동자, 500인 이상 사업장 이렇게 시작했죠. 처음부터 사망, 아주 심한 부상에 대해서 시작해서 한 50년 동안 조금씩 찔끔찔끔 대상을 확대했어요. 아마도 시민들은 삼성 백혈병 문제처럼, 암에 걸리고 인과관계를 다투는 것에 대해서 인상깊게 생각하실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일하다 다쳐서 4일 이상 치료를 받을 상황이면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으로 했다가 오히려 구상권을 청구당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어요. 건강보험공단이 요즘 개별 노동자에게 열심히 구상권 청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회: 근로복지공단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아니구요?
수경: 그러니까요. 노동자는 건강보험공단에 돈을 물어주지만, 산재를 입증하는 절차는 밟을 기운이 없겠죠. 현재 산재보험이라는 거는 언론에 나오는 아주 극적인 사례들, 한해 2,000명의 사망과 직업병, 절단 같은 사고에 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건데, 그게 채 10만 명이 안 되요. 제가 만났던 대다수의 노동자들. 의류매장에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옷 꺼내다가 넘어지고, 미용실에서 파마기술 배우다가 손등이 중화제로 다 터져가지고 1년 정도 계속 피딱지를 달고 사는 그런 노동자들은 그냥 ‘당연하게’ 이 상황을 혼자 버티면서 일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산재보험하고 전혀 관계가 없어요. 아까도 사회자가 ‘산재보험 해보셨어요?’라고 물어봤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손등 터진 미용실 스텝은 보험신청서를 쓸 수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100만 명인지 200만 명인지 몰라요. 경제활동인구가 2천만이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동자는 1,500만 명인데, 그 중에서 1년에 9~10만 명만 산재보험을 받거든요. 나머지 아픈 사람들은 그냥 일하는 거죠. 이거는 산재보험을 더 친절하게 만들어라, 이 정도로는 안 되요.
사회: 아까 손등에 미용 중화제, 그 분은 산재가 확실한데...
수경: 병원을 안 가신대요. 손등이 계속 터져서 피가 실핏줄마다 난대요. 밤마다 바셀린을 바르고 장갑을 끼고 자고, 낮에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할 때는 벗고 만지고. 이렇게 해서 1년 정도 지나면 피부가 적응을 해서, 헤어디자이너 3년 차인데 멀쩡해졌다,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중화제 독이 겨드랑이까지 올라와서 겨드랑이까지 흉이 있다 그러더라고요. 이 친구가 겨우 25살이었어요. 출발이 완전히 다른 계급인 거죠. 우리는 이 사회 밑바닥 노동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고 있어요. 이들에게 산재보험은 턱도 없죠. 의미가 없어요.
사회: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에 무슨 포럼에 갔다가 복지 연구자가 우리나라가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이 전 인구와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고 해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보험은 어떤가요?
정숙: 건강보험은 탄생 자체가 박정희 시절이었죠. 저랑 나이가 똑같더라고요. 77년도에 만들어져 가지고. 국가 주도로 만들어지다 보니까 사회보험 원래의 목표인 시민들의 연대보다는 시혜적 관점이 굉장히 강한 것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회보험인데도, 사람들은 세금에 가깝게 이해하고, 시혜적 관점이 강하다 보니 취약계층 보호나 의료급여 같은 것도 굉장히 부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IMF 이후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의료보호에서 권리성을 나타내는 의료급여로 처음 도약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연대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시혜적 관점이 지속되고 숫자도 작고... 세 모녀 사건을 거치면서 맞춤형 개별급여도 쪼개지다 보니까, 이게 가난한 사람들한테 종합적인 사회보장이 아니라 오히려 권리 개념을 더 해치는 상황이 된 게 아닌가 걱정 되요.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기보다는 많지도 않은 예산을 정해두고 그 예산에 맞춰서 사람들을 끼워 넣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비슷비슷하게 가난한 사람들인데도 그 안에서 또 쪼개요. 수급 빈곤층과 비수급 빈곤층, 차상위 계층. 이렇게 돈에 맞춰 사람들을 나누고 차별하고...
사회: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는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의료급여니까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정숙: 의료급여가 건강보험에 비해서는 보장성이 높죠. 그런데 법정본인부담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총 진료비가 10,000원 정도인데, 6,000원은 우리가 평소에 내던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고 4,000원만 본인이 내죠. 이걸 법정본인부담이라고 해요. 문제는 의료급여 환자한테도 이런 법정본인부담금 말고 비급여가 있다는 점이에요. 의료급여 환자가 감기에 걸려서 동네 의원에 가면 1~2천 원밖에 안 내거나 한 푼도 안 낼 수 있고, 큰 병원에 가도 10% 정도만 부담하면 되요. 병원비가 천만 원 나오면 백만 원 정도 본인이 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비급여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기초생활수급비가 한 달에 50만원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몇 십만 원 짜리 MRI 같은 걸 찍기는 쉽지 않죠. 공공부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미충족 의료가 많은 상황인 거죠.
수경: 산재보험도 역시 비급여가 있거든요. 그래도 건강보험과 다른 게, 휴업급여가 있고 장애연급도 있으니까, 노동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산재로 인정받아야 되는 거예요. 건강보험보다는 보장성이 좋으니까. 안산 공단지역 병원을 돈 적이 있어요. 병실마다 다치고 부러진 분들이 쫙 누워있단 말이에요. 들어가는 병실에서, 다리에 어떤 좋은 보호구를 하고 싶다 하소연을 하는 거에요, 무릎 다친 분이. 제품번호 따져가면서 좋은 보호구는 비급여고 싼 보호 장구만 급여가 되고, 환자들이 종일 그거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이 일일이 심사를 하잖아요. 병원마다 브로커들이 상주하면서 급여 받게 해주겠다며 활동하고 있고요.
사회: 언뜻 보기에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잖아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성철: 이 제도는 건강보험, 산재보험에 비하면 나중에 만들어진 거죠. 2000년에 시작했으니까. IMF 이후에 새로운 빈곤, 당시에 해고당하고 실업이나 부도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제도로 탄생했어요.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같은 사회보험의 보장성이 충분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제도가 필요하게 된 거죠. 법적 취지는 좋아요. 가난해졌을 때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복지제도를 권리로서 보장하겠다. 하지만 살인적이라 할 만큼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너무 많은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소득과 재산 조사를 해야 하고, 부양 의무자에 대한 조사가 있고, 노인이나 아동, 청소년이 아닌 경우에는 근로능력에 대한 판정을 받아야 해요. 셋 다 너무 문제가 많아요. 우선 소득기준이 너무 낮아요. 의료급여 자격 기준만 해도 1인 가구 기준으로 70만원이 안 되고, 생계 급여는 그것보다 더 낮은 49만 5천 원 정도예요. 이보다 소득이 더 낮아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데, 이게 실제로 내가 일을 통해서 벌어들인 소득뿐 아니라 재산까지 소득으로 환산하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금융자산에 대한 소득 환산율이 6.26%니까 예금이 100만원 있으면, 한 달에 62,600원이 매월 소득으로 잡히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문제죠. 연락은 가끔씩 하지만 부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난한 사람에게만 부양을 강제하고 있는 셈이에요. 가족에게 ‘부양하라’ 고 강제하고, 그렇게 안 하면 보장을 해주는 게 아니라, 부양을 떠넘긴 채로 수급비를 깎는다든가 박탈하고 있어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이런 것들로 약을 하루에 열 몇 알씩 먹고 계신 분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나오고.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나서 약을 더 이상 안 먹는다는 이유로 근로능력 있음이 나오고...
사회: 그런 분들이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보고서 쓰는 일은 하실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근로 능력이 있는 거죠. 하지만 그런 분들이 갖는 일자리가 그런 일자리가 아니라는 게 문제잖아요.
성철: 맞아요.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측되는데,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는 거죠. 또 이렇게 까다로운 선정기준을 다 통과해도 보장수준이 굉장히 낮아요. 1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서울 사는 분에 한해서 주거비로 한 20만 원 정도가 추가로 나오고, 생계비로는 49만 5천원이 나오는데, 사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식비도 안 되는 금액이고, 전기세, 통신비도 할인이 된다고는 하지만 공과금 다 내고 나면 얼마 안 남기 때문에 생활이 안 되요. 그래서 무료급식소라든가 이런 곳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불이나 이런 것도 사지 못하고, 겨울에 난방도 제대로 못 하고 동사무소에서 받는 이불로만 추위를 나야 해요. 빈곤을 예방하는 제도여야 하는데, 예방을 하지 못하고 해결도 못하는 제도로 남은 거죠. 사회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이나 일자리에서의 위기, 사회적 위기에서 한번 발을 헛디디면 완전 추락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이를 떠받쳐줄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거죠. 바닥까지 떨어지면 정말 삶을 딱 연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보호하는, 낭떠러지에 밧줄 묶어 놓고 있는 셈이에요.
사회: 그렇게 배제된 400~500만 명이 파견노동자나 특고로 일하고, 아니면 영세자영업하면서 건강보험 체납되고, 힘든 일 하다가 다치고... 다 같은 분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이고 세세한 정책을 만드는 것은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정숙: 요즘 ‘생애주기별’ 이런 표현들 많이 쓰잖아요. 충분치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에도 생애주기별 복지 제도가 있기는 있어요. 출산수당, 아동수당이 있고 교육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어쨌든 건강, 고용, 산재보험이 있고, 국민연금하고 장기요양보험이 있잖아요. 제도들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고 선별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IMF 때부터 만들어진 복지 정책의 기조가 ‘일 하는 복지’다 보니까,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분이 많고...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 같은 게 대표적인데, 개인적인 가족 관계 문제를 왜 공공부조가 나서가지고, 복지 제공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일본 모델을 잘못 베껴 가지고... 국내 비정규직들은 고용보험 가입률도 낮고. 건강보험 가입률도 40% 정도 밖에 안 돼요. 이분들이 노후빈곤까지 연결되겠죠. 현재의 사회보험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제 불안정 고용이 고착화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노동시장이 어떻게든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보험이 안정될 거라는 생각이 들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노동시장 문제와 사회보장 문제 해결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봐요.
문제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분들이라는 점이예요.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뭉쳐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배제하기가 더욱 쉬운 거죠. 이런 분들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복지의 질과 주체의 문제는 사회운동 측면에서 같이 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성철: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법은 잘 모르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법 취지만 보면 굉장히 아름다워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권리로 보장하겠다. 막상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취지 빼고 나머지 조항들은 다 없애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보험이 제대로 되어 있고, 출산수당이나 아동수당부터 현재의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이 촘촘하게 짜여 있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이나 규모가 이렇게 크지는 않을 거잖아요.
수경: 요즘 사회보장과 관련해서 기본소득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기본소득 논의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없는 제도를 힘들게 논쟁해서 만들어가지고 청년들에게 주려고 하지 말고, 4대 보험에서 주겠다고 한 거를 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본소득 자체는 아름답고 멋있어요. 그게 화이트칼라 지식인들한테 굉장히 매력적인 용어인 것도 알겠어요. 기본 소득이 되면 좋겠다고 저도 생각해요. 그런데 있는 제도 놔두고 없는 제도를 힘들게 논쟁해서 만들려는 건, 왜 그런 걸까요.
정숙: 저도 있는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수경: 20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나중에 기초수급자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20대 때 4대보험가입을 잘 해 줘야하지 않나요. 산재를 건강보험으로 했다고 구상권 때리고 이런 방식이 아니라, 건강보험하고 산재보험을 통합하거나 협업해서 운영하면 좋겠어요. 기술적인 방법이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본소득 설계할 그 역량을 이쪽에... 중화제 때문에 손 터졌다는 분 있잖아요. 제가 ‘정말 피가 났어요?’ 물어보니까 ‘정말 피가 철철 났어요.’이러는 거예요.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맥도날드 일하는 분 보니깐 팔뚝에 화상이 칼자국처럼, 양팔이 난리도 아닌 거예요. 후시딘 바르면서 일 하는 거예요. 기술적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손등에 피가 나서 피부과 갔는데 미용실에서 일한다고 하면 피부과 의사가 알아서 산재 코드로 신청하고, 노동자는 산재보험으로 하는지 건강보험으로 하는지 아무 생각 없이도 치료 받을 수 있는 방법.... 그런데 노동 운동도 이 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요. 노조 조직률이 10%인데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산재 적용 대상이거든요. 산재는 일단 제도에 진입하기만 하면 장애급여, 유족급여, 휴업급여 해가지고, 받기만 하면 나름 괜찮아요.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면 해고도 당할 수 있고,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병원비 나가고, 노무사 변호사 브로커를 사야 해서 그렇지. 그런데 그 중간에, 제도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건강보험, 산재보험 가리지 않고 아프면 가서 상담도 받고 소득 손실도 안 되고 직장도 안 잃게 하는 방법이 왜 없겠어요. 국세청이 세금 잘 걷고 사업장 관리를 다 전산망으로 하는 마당에...
사회: 인공지능 시대에, 방법을 찾아보면 없을 리가 없죠.
수경: IT강국이잖아요. 최소한 전근대성을 버리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모델 정도만 갖고 와도 나아질 거 같아요.
정숙: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모두에게 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하지만 현재 공공부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강화해서 안전장치를 좀 만들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소득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을 우선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수경: 알바들 최저임금 잘 주고 야근 수당만 잘 줘도 좀 나아질 것 같아요.
사회: 그동안 노동 쪽에서 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산재 인정이나 임금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었죠. ‘이게 왜 직업병이 아니란 말이냐’가 핵심이었던 거죠. 그런데 오늘 이야기 나온 미용사도 그렇고 조건부 수급자였던 대동맥류 파열 환자도 그렇고, 산재 인정은 둘째 치고 산재라는 제도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상태군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몰래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또 그 일자리는 굉장히 뻔한 일자리. 다치기 쉽고 해고되기 쉬운. 역시 이들도 산재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고 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건강보험 체납, 의료급여는 상관없는 문제인 거예요, 지금까지는. 최소한 미조직 노동자나 불안정노동과 관련된 활동에서는 앞으로 변화된 상황을 인지하고 빈곤,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체납, 의료급여, 산재 사각지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움직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요. 순수하게 재정적 측면에서만 봐도, 산재에서 부담할 거를 건보가 하고 있고, 또 기초생활제도의 일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해서 빈곤층에서 빠져나가면 나랏돈이 절약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죠. 우파적 관점으로나 좌파적 관점으로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같이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 이제 마무리 발언을 해 주시죠.
수경: 저희가 공장에서 메탄올 작업하다 실명한 6명의 시각장애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데, 복지부는 노동 문제라고 안 쳐다보고, 노동부는 복지를 몰라가지고, 이분들 6명이 각자 도생해야 하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까지는 받았는데, 이제 갑자기 점프해서 동사무소로 가서 시각장애와 관련한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중간에 아무런 안내가 없어요. 노동자의 몸이 노동부 소관이었다가 복지부 소관이었다가,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거죠. 서로 협업하지 않고. 노동부는 산재 노동자 재활을 강화하겠다, 재활을 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별도 예산을 코딱지만큼 투여해서 엄청 예쁘게 홍보를 하고 있어요.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나 뭐라나. 그게 어불성설인 게, 이미 복지나 재활 관련 업무를 해오던 복지부에서 배우든지, 아니면 복지부 쪽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부처별로 자기 부처만의 완결적 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있어요. 이렇게 제도가 분절되어 있어서 인지, 피해자 분들이 스스로 살아남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대 딸이 갑자기 눈이 멀었는데 엄청 씩씩하게 정보를 찾고 인터넷을 뒤지고 의사를 찾아다니고... 물론 굉장히 힘든 상황이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이거를 헤쳐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사회: 한국 근대사 100년을 다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수경: 이게 21세기 복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처럼 적어도 문해 능력이 있는 분들은 그렇게 헤쳐 나가는 거고, 나머지 저수지에서 일하고 있는 알바, 20대 불안정 노동자들은 이미 빈곤을 예약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4대보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노동기록도 없이, 빈곤으로 갈 확률이 높죠. 저는 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나, 정부 시스템을 조금만 바꿔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전문가들도 조금만 자기 아집을 버리고, 자기 밥그릇을 버리면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성철: 맞아요. 부처 간, 제도 간에 연결이 잘 안 돼요. 복지제도도 홍보는 진짜 엄청 크게 많이 하잖아요. 부양의무자 기준 한번 완화되면 텔레비전에서도 광고 막 하고, 거리에도 플래카드 엄청 붙고, 버스에도 붙여 놨더라고요. 부양의무제도 11월부터 완화되는 부분이 있고, ‘신청하세요’ 이런 게 붙어있는데,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고 그걸 신청해야하는 분들한테는 연락이 제대로 가지 않아요. 맞춤형 개별 급여 제도가 박근혜 정부 때 시행되었잖아요. 기초생활보장 제도에서 사실상 첫 번째 대규모 개정이었고 당시에도 현재처럼 엄청나게 홍보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쪽방에 계시거나 수급을 받고 있는 분들한테는 어떻게 제도가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전달이 안됐거든요. 이 분들도 각자도생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게 아까 말씀하신 거랑 똑같아요. 쪽방까지 오셔서, 아니면 고시원까지 밀려나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정말 열심히 찾아보고, 그러다가 할 수 없이 카드를 돌려막는다든가 아니면 대출 댕겨 쓴다든가 이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가 쌓이기도 해요.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처별 협업도 그렇고, 1차적으로는 동사무소나 구청, 지자체에서 정보 전달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쪽방 상담소 같은 곳들도 서울 뿐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하나씩 생기고 있는데, 복지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보니까, 완전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없으면 상담자들에게 아예 정보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같이 사회 운동을 한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의 요구를 대할 때 동정과 시혜로 볼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불쌍하니까 가난하니까 도와야지. 우리 빈곤사회연대가 더 잘 해야겠죠? 캠페인을 대중적으로 만들지를 못했던 거죠.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로를 확인하고, 홈리스들을 만나는 이런 자리들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빈곤 문제는 굉장히 게토화 되어서, 노동운동 내에서 빈곤, 홈리스는 너무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정숙: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은 연속적이고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잖아요. 태어나서 교육받고 일하고 병에 걸리고 늙어서 소득이 없고 이런 문제들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그런 문제들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건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사회보험이 불안정 고용 시대에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할 때, 핵심은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느냐, 어떤 연대의 방식과 관점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세상네트워크도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이 드네요. 당사자들의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통할 것이냐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수경: 급 반성 모드로(웃음)...
사회: 마무리 할게요. 현재 국내의 사회보장제도는 평생 안정된 고용을 전제로 건강보험, 연금, 실업, 산재가 구성되어 있고, 혹시라도 여기에서 빠지는 사람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어떻게 좀 해주겠다. 이제 노동시장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이런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 일종의 임계점이 온 것 같아요. 구글이나 애플 같은 곳조차 기본소득을 이야기 하는 게, 그들도 이 상황을 알게 된 거라고 보거든요. 정숙 활동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쪽에서 밀어내면 저쪽으로 가고, 국가 전체로 보면 돈이 안 드는 게 아니에요. 그런 측면에서 체계의 통합이나 사람을 중심에 둔. 노동부나 복지부가 중심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와 시민을 중심에 둔 체계 개편이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도 이렇게 같이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논의를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이야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