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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1981년 만든 법을 그대로 두면 개혁은 어렵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했다.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불완전 고용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곳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공언했다. 전임 대통령들도 집권 초기에는 대부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집무를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의 쟁점이 되는 곳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낯선 모습이었다.
그 뒤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최저임금 16.4% 인상,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과 발주처 책임 강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위한 양대 행정지침 폐기 등 파격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과 민주노총 출신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임명되자 경영계는 경계를 넘어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노동계 내부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새 정부의 파격 행보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만, 실행 계획은 부실한 정치적 상징과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당황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노동계가 그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정책들이 정부 당국의 입을 통해 연일 천명되는 상황에서 어떤 입장과 견해를 피력해야 할지 난감할 법도 하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새 정부가 주창하는 소득주도 경제성장은 아베노믹스나 오바마노믹스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아베노믹스의 노동정책들을 살펴보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차별 완화, 노동조합 단체교섭 중시 등 새 정부의 노동정책과 매우 닮아있다. 지금 노동계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섣부른 열광이나 막연한 비판이다. 노동정책의 거시적 성과들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노동계가 어떤 방향으로 새 정부를 견인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새 정부가 발표한 노동정책의 상징적 의미 외에 구체적 실행 계획과 의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이와 관련,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대선 공약, 광화문 1번가 정책 건의 사항, 민생 과제, 정책 현안 등을 종합한 “100대 국정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노동정책에 대한 새 정부의 실행 계획과 의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 중에서 노동안전보건정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100대 국정과제에 담긴 노동안전보건정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이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덧붙였다.
이번에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는 크게“5개 국정목표”와 “20대 국정전략”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데, 20대 국정전략 중“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전략에는 (아래 표와 같이) 안전, 생명과 관련한 총 8개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55> 안전사고 예방 및 재난 안전관리의 국가책임체제 구축
<56> 통합적 재난관리체계 구축 및 현장 즉시대응 역량 강화
<57> 국민 건강을 지키는 생활안전 강화
<58> 미세먼지 걱정 없는 쾌적한 대기환경 조성
<59> 지속가능한 국토환경 조성
<60> 탈원전 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
<61> 신기후체제에 대한 견실한 이행체계 구축
<62> 해양영토 수호와 해양안전 강화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8개 과제에는 산업재해와 관련한 과제가 없다. 물론, 산업재해는 노동정책과 관련한 과제에서 담아냈다고 반론할 수 있다. 또 노동정책과 관련한 과제에는 실제 산업재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안전, 생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정책 이슈들을 담고 있는 국정전략(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과제에서 산업재해가 빠져있다는 사실은 많은 점들을 시사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산업재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노동정책 관련 국정전략(노동존중, 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의 내용은 어떠한가? 이 국정전략에는 총 4개 과제(노동존중 사회 실현,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가 포함되어 있는데, 산업재해와 관련한 내용은 독립된 국정과제로 분류되지 않고 다른 과제 곳곳에 분산되어 포함되어 있다. 여러 곳에 분산된 내용들을 모아보면 아래 표와 같다.
<63> 노동존중 사회 실현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부터 근로자 권익 구제 강화”
“18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근로자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 마련ㆍ시행”
<64>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상시ㆍ지속,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원청 공동사용자 책임) 도급인의 임금지급 연대책임 및 안전보건조치
의무 강화”
“(산업안전보건체계 혁신) 특수고용노동자 등 보호대상 확대,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의무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 마련, 중대재해 발생시 처벌강화”
“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산재보험적용 확대 등 보호 사각지대 해소”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영업비밀 심사제도 도입, 일정규모 이상 사업장안전ㆍ보건관리업무 위탁 금지 등 제도 개선”
<71>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ㆍ생활의 균형 실현
“(1,800시간대 노동시간) ’17년부터 주 52시간 근로 확립 등 법ㆍ제도 개선, 포괄임금제 규제, 장시간 근로사업장 지도ㆍ감독 강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ㆍ근로자 부담 완화 지원”
“근로시간 단축 종합점검추진단 운영, 근로시간 특례 제외 업종 및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
“ (휴식 있는 삶 보장)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 금지, 공휴일 민간 적용 및 1년 미만 근무 연차휴가 보장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종합 개선방안 마련”
“주 52시간 근로 법제화 및 제도 개선 등을 통해 ’22년까지 1,800시간대근로시간* 실현”
중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 정책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직장 내 괴롭힘, 감정노동, 장시간 노동, 특수고용노동자, 화학물질 영업비밀 등의 내용이 100대 국정과제에 담긴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또한 위험의 외주화, 장시간 노동, 특수고용노동자 등 핵심 현안도 제대로 짚고 있다.
하지만, 100대 국정과제는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을 뿐, 그 문제점들을 끊어내기 위한 정책적 포인트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이는 과거 정부들이 산업재해 감소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100대 국정과제가 놓치고 있는 정책적 포인트는 무엇일까?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전면적 개편이 빠졌다.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핵심 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에 만들어진 법률임에도 아직까지 그 기본적인 틀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이에,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제조업 중심의 직접고용, 종신고용을 전제로 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고 비정규직, 불법파견, 위장 자영업자(특수고용노동자)가 넘쳐나는 현재의 산업 및 고용구조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오작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전면적 개편 없이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것은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일지 모른다.
다음으로, 정책을 집행할 행정력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2015년 1월 현재 노동안전보건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의 수는 400명이 되질 않는다. 1인당 약 6,900개 사업장(약 5만4천명 노동자)을 감독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어떤 훌륭한 정책이 만들어지더라도 이를 집행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정부가 소방관ㆍ경찰ㆍ사회복지사ㆍ교사ㆍ근로감독관 등 공무원 일자리를 대폭 확충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이를 위한 추경예산도 확보했으므로 이 부분은 계속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산재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를 유발한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중대재해 발생시 처벌 강화”라는 추상적인 문구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이 문장은 과거 정부들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문구다. 처벌은 특정 사업주에 대한 징벌을 넘어 전체 사업주들에게 중요한 시그널로 기능한다.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도외시한 기업에 대한 강력한 응징의 시그널. 이 시그널은 기업들로 하여금 산재 예방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한다. 100대 국정과제에 이 시그널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정부 초기에, 그것도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100대 국정과제에 담긴 단편적 메시지만으로 정부 정책의 향방을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내용을 지금 시점에서 평가하는 것도 성급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부분을 짚어주는 것도 반드시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설사 성급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말이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어서, 한 두 달만 늦어도 돌이키기 힘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새 정부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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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이후 더 많은, 더 좋은 탈핵을 이야기하기
김현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1. 공론화 결과의 의미 해석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탈핵과 탈석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진정성 또는 에너지전환의 수준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하지만, 이는 70년대 이래 산업화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기조로 해 온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전례 없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 변화는 그동안 탈핵을 외쳐온 사회운동뿐 아니라 관련 산업계, 언론, 정치권 모두에 상당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탈핵의 전부도 아니고 공론화도 하나의 부분적 수단일 뿐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진행된 공론화 과정은 탈핵의 도정에서 큰 기회와 함께 도전을 제기했다. 조기대선 기간에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백지화와 함께 공정률이 90%를 넘은 신고리 4호기, 신울진 1,2호기의 완공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자고 했던 후보 시절의 발언에 비추어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후퇴한 것이 분명하고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론화위원회가 주관하는 3개월의 과정 동안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뿐 아니라 핵발전과 관련한 전반적인 쟁점들, 나아가서 온갖 에너지 이슈들이 다루어지는 것 자체가 한국 에너지정치에서는 매우 큰 계기였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시작부터 몇 가지 우려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탈핵 의제가 신고리 5,6호기 찬반으로만 좁혀지는 프레임 효과가 있으며, 충분하지 않은 시간과 ‘숙의’를 보장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공론조사의 결과에 따른 시비와 해석 논란이 찬반 양측 모두에서 제기되었다.
어쨌든 471명 시민참여단의 최종 의견조사에서 장기적 탈원전에는 53%가 찬성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59.5%가 찬성(건설중단은 40.5%)한다는 결과는 탈핵진영에게 참패로 다가왔고 내부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이는 정부의 정책을 탈핵운동 진영이 대리하여 정당성을 방어해야 하는 기묘한 구도에서 비롯한 문제도 있지만, 찬핵과 탈핵 진영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운운하기에는 탈핵 진영의 전반적 역량과 전략이 미흡했던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앞으로도 에너지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 더 좋은 구성과 방식의, 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그리고 열려 있는 논의와 결론을 요청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최선의 공론화를 통하더라도 그 자체로 탈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역으로, 대통령 개인의 의지나 국회의 의결이나 법안이나 정당의 활약이나 수만 명의 집회 시위를 통해서만 탈핵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터다. 이번 공론화 과정과 결과는 대체로 시민사회의 탈핵-에너지정치 현재 역량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이며, 찬핵과 탈핵 진영 모두의 윤곽과 실력을 드러내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에너지전환은 어떻게 오는가?
‘탈핵’은 에너지전환의 일부이며, 에너지전환은 에너지 공급원(에너지믹스)의 변화 뿐 아니라 에너지 이용 방식의 변화 그리고 이와 관련한 물리적 기반시설과 제도의 변화, 나아가서는 에너지와 관련된 경제와 주체의 변화까지를 포함한다. 지금 정부가 언급하는 에너지전환은 우선 에너지원에서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이거나 퇴출시키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그 퇴출 또는 대체의 속도 또는 비율은 다양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에너지전환 운동을 주창해 온 이필렬 교수에 따르면, 에너지전환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의지와 구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에너지전환 절차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수십 년 이상이 걸리는 에너지전환을 보장할 수 없고, 중간에 탈핵 경로를 이탈하거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나라들도 여럿 있었다. 때문에 둘째, 전력수요 자체의 감소 또는 정체, 그리고 셋째,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의 급격한 증가가 함께 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에너지전환이 물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기정사실화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넷째, 에너지전환에 대한 높은 국민적 공감대와 이러한 인식의 세대 전승도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에 문재인 정부의 탈핵 의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핵발전 총량의 절대적 감소와 탈핵의 페이스 또는 시점은 열린 문제로 남아 있다. 노후 핵발전소들을 서둘러 폐쇄한다고 해도 현 정부 내에 핵발전의 총 설비용량은 되려 크게 늘어날 것이고, 신고리 5,6호기까지 완공되면 최신 핵발전소의 설계수명을 60년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경우 한국의 탈핵 시점은 최대한 2082년까지 연기될 수 있다. 탈핵 정책을 보완할 로드맵과 전력요금 제도와 조세제도, 전력산업 구조 개편 같은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에너지 수요 감소나 조절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산업 부문을 포함하여 전력수요 증가세가 이미 둔화되고 있으며, 당분간 전력예비율에 여유가 있을 뿐 아니라 발전설비의 총용량 보다 계절별 시간대별 피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에너지전환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물론 LNG 발전의 비중 확대와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이 역시 적정 수준과 방식의 설계와 함께 설득과 공감 형성의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 확대는 기술 개발과 경제성만을 놓고 보면 단지 시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풍력과 태양광 발전 입지에 따르는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과제도 중요하며, 공기업과 민간 부문 그리고 시민 영역의 적절한 역할 배분과 협력도 필수적이다. 에너지믹스의 변화가 여전히 국가 독점의 중앙집중형 체제에 머물거나 대기업들이 이윤과 성장 위주로 에너지 시장을 분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에너지전환의 의의는 반감될 것이다.
한편 에너지전환에는 시민(사회), 정치(사회), 경제적 조직, 여론, 시장 상황 등이 모두 개입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전환의 당위성과 주체 형성의 당위성만을 주로 언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보면서, 이제는 에너지 전환의 주체 전략을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당위론과 도덕론을 넘어서, 에너지 민주주의의 주체 측면에서 각 집단의 입장 차이와 연대의 물질적 근거와 조직 및 행동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정부-시장-시민사회라는 삼각 구도로 단순화했던 것을, 좀 더 세분화하여 입장과 기반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 이에 따라 각 집단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드러나며, 이를 기반으로 전환의 주체적 정치 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자의적인 그림으로 예시한 ‘탈핵-에너지정치의 지도’의 주체들은 그 위치와 외연을 특정하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와 맥락을 파악할 때, 동맹, 단절/대립, 전술적 제휴 등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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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전략적 혼선과 평가의 곤란함은 이러한 지도 그리기와 전략 논의가 평소에 부재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언급해왔던 ‘정의로운 전환’의 두 주체, 즉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제휴(적록동맹)의 실체도 결코 당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운동 모두가 탈핵의 입장인 것도 아니고, 지역운동 모두가 찬핵인 것도 아님을 우리는 뚜렷하게 목도했다.
3. 도둑처럼 다가올 생태문화사회를 위해
많은 이유에서 탈핵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세계적 추세도 그렇게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선례를 따라 가면서도 어떤 탈핵인지, 그리고 어떻게 도달하는 탈핵인지를 함께 물어야 할 때다. 예컨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에너지전환은 가능하지도 않고,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탈핵과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든 퇴행할 수 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은 에너지원뿐 아니라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마땅히 여겨온 거대 에너지 시대를 마감하고 그것이 억압했던 민주주의마저 해방하고 갱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즉 탈핵이라는 입구로 들어가는 전환은 사회경제 체제의 민주화와라는 더 넓은 출구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에너지전환이라면 지도자의 선포행위나 전문가들만의 설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도둑처럼 다가 올 것이고, 우리는 그 의적(義賊)과 함께 생태문화사회에서 살아갈 기대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대안적 경제 담론과 정치 기획(정의로운 전환, 탈성장, 좋은 삶, 에너지 민주주의, 연대와 공유의 정치 경제, 공공성과 공동자원 등)을 제시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과 기술 환경, 그리고 탈핵 정치와 탈핵 시민의 더디지만 꾸준한 성장을 감안하면 한국의 탈핵은 대략 2030년을 전후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을 것이며, 이를 둘러싼 새로운 구체적인 의제가 제출되고 경합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2082년 이전의 가장 빠른 시점에, 가장 단단한, 그리고 가장 에너지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에 부합하는 에너지전환을 이룰 것이냐를 다각도로 궁리하고 다층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여러 갈래길이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길을 걸어갈수록 더 넓고 탄탄한 길이 될 것이고, 그 길이 더욱 넓어지면 기울어짐이 문제 되지 않는 운동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담II
PDF로 본문보기 : 각자도생과 21세기 복지의 풍경.pdf
각자도생과 21세기 복지의 풍경
-불안정 고용시대의 사회보장을 다시 생각함
대담 일시
2017년 11월 17일 (금), 노동건강연대 회의실
대담 참가자
김정숙 / 건강세상네트워크,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
사회 : 김명희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기록 : 이주현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된다. 이러한 불평등의 핵심에는 노동시장 문제가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빈곤 문제가 주로 일하지 않는/못하는 계층의 문제라면, 한국 사회는 여기에 더해 ‘근로’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렇게 벼랑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작은 사건도 커다란 삶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비극적인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아픈 두 딸을 돌보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건강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바로 생계가 막막해진 것이다.
원래 예기치 못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회보장 제도이다. 실업이나 질병, 산업재해, 노령 같은 위험에 집합적으로 대비하는 장치가 바로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보험 제도들이 ‘안정된 고용’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료급여나 생계급여처럼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국가가 보장해주는 부조 제도도 있지만, 수급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적용 인구가 제한적이다.
이 대담에서는 소관부처 혹은 운동의 전문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불안정 노동자, ‘근로빈곤층’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사회적 위험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명희(사회): ‘노동’ 쪽에서 이렇게 세 단체가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우선 각자 소개를 간략하게 해 주세요.
전수경 (수경): 저는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고요, 저희는 일반적인 노동, 산재보다는 비정규직, 파견처럼 노동운동에서 잘 포괄하지 않는 노동자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는 편이에요. 요즘 조금 주춤해졌는데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고, 기업 살인법 제정 운동을 한참 했어요.
정성철 (성철): 저는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빈민단체들의 연대체인데, 사무국을 중심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요. 주로 선정기준이나 보장수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특히 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조건부 수급자, 자활사업 등의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정숙 (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보건의료 시민단체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 왔고요. 건강보험에서 배제된 사각지대, 이를테면 건강보험 체납자, 취약계층, 의료급여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사회: 취약계층. 사실 이 말 되게 싫은데 딱히 좋은 용어가 없어서 취약계층이라고 할게요. 노동과 고용. 건강.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했으면 해요.
정숙: 저희가 만났던 사례 몇 가지가 있죠. 송파 세 모녀 같은 사건을 비롯해서, 저희가 빈곤사회연대하고 같이 소송을 제기한 최O기 선생님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분은 원래 미국에서 사시다가 사업이 잘 안 돼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일을 전전하고, 버스 운전을 하다가 어느 날 쓰러져서 병원을 가보니 대동맥류였던 거예요. 수술을 두 차례 하고 기초생활 수급을 받으면서 살고 계셨는데, MB 정부 지나면서 근로능력평가가 강화되었어요. 대동맥류가 심장 근처 큰 혈관을 인공 혈관으로 바꾸는 거라,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무거운 걸 든다거나 노동을 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담당의사는 어느 정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이 사람은 일 할 수 있다’고 판정을 한 거예요. 이렇게 ‘조건부’ 수급자가 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기 위해 영국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처럼 끊임없이 구직활동을 해야 해요. 이 분이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그나마 노동 강도가 약하다고 생각한 아파트 경비, 청소를 한 거예요. 청소일 한 지 몇 달 만에, 사실 청소 일이 쉬운 게 아니거든요. 일하다가 혈관이 다시 터졌고, 돌아가셨어요.
사회: 이 경우에 산재는 어떻게 되었어요?
성철: 자활사업은 4대보험이 되지만, 이 경우에는 아마 안 될 거예요.
사회: 조건부 수급이라는 게, 당사자한테 일을 하라는 거지, 반드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 가야 한다, 이런 건 아니잖아요.
정숙: 그렇죠. 자활사업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후에 얼마나 취업을 했느냐가 평가 기준이기 때문에 담당 사회복지사들은 일자리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에요. 산재보험이나 근로환경 같은 조건을 따질 상황이 아니죠. 당사자들이 나이도 많고 학력이나 기술 같은 것도 별로 없고 하니 일자리 조건을 따질 게 아니라서... 어쨌든 당사자는 일을 해야 수급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 일이라도 찾아서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성철: 사실 구청 공무원들이 최종 판단을 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능력 판정을 해도. 그래서 최O기 님이 취업하기 전에 경비, 청소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업체에 내가 이런 질환이 있다는 걸 알려야 되지 않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구청에서 ‘그런 걸 쓸데없이 왜 이야기 하냐’고 이야기했다 하더라고요. 청소하는 곳이 지하고 환기도 잘 안되고 공기도 굉장히 안 좋은 곳인데, 심혈관 문제가 있는 분이 지하에서 힘든 일을 하게 된 것도 구청에 책임이 있는 거죠.
사회: 업체는 본인들이 날벼락이라고 생각했겠네요. 만약에 질병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우리는 고용 안 했을 거다, 이러면서. 이 문제를 대응하는 과정에 기초생활보장제도 문제와는 별개로 산재 신청을 생각해보셨어요?
정숙: 그 당시에는 근로능력 판정 문제하고, 또 의료사고 가능성도 있고 해서 그 문제에 대응하느라 산재까지는 미처 고민을 못했어요. 아쉽죠. 이 사례 말고도, 제가 만났던 분 중에 동자동 쪽방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있는데, 지금 80세가 다 되셨을 거예요. 10대 때는 넝마주이셨대요.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넝마주이 생활 하다가 20대부터 50대까지는 막노동으로 사신 거예요 평생. 막노동으로 사시다가 50대 중반에 이제 몸이 아프신 거죠. 너무 몸을 험하게 썼다고 본인이 생각해요. 암도 오고, 암도 한 세 가지가.., 지금도 몸이 아픈데 폐지를 주우면서 사세요. 이 분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 구조와 사회보장체계의 문제점이 압축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철: 최근에 한 열 네 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다 비슷하더라고요. 과거에 막노동을 하셨던 분들이 많고, 비정규 근로나 자영업... 사업이라고 본인들은 말씀하지만 사실 큰 사업은 아니고 작게 노점상을 했다든가, 작은 점포에서 임차 상인을 했다든가, 뭐 이런 경우가 많죠. 그러다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게 되는 이유는 사업이 망한 경우 아니면 막노동 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진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 분들이 의료급여가 된다고 해도 2종이 되면 병원 이용에 제한이 많아요. 2종은 일을 해야 하는데, 자활사업에 참여하면 임금수준이 되게 낮잖아요. 임금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정식 노동자라기보다 복지 일자리 참여자가 되는 건데, 이런 저런 노동법에서도 배제가 되고, 한 90만원, 많이 받으면 100만원 가까이 받아요. 그런데 병원에 가면 비급여가 있는데, 이 부분이 정액이 아니라 정률제로 가다 보니까 병원비가 얼마 나올지 모르니까 돈 걱정 때문에 안가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허리가 아예 골절이 되었던 분이 수술을 마치고 나서 1년도 안돼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나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럼 2종이거든요. 수술 받을 때는 의료급여 1종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생활비, 통신비, 식비 지출하고 나니까 재활치료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받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사례들은 대부분 상황이 비슷해요. 의료급여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굉장한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죠.
작년에 거리 상담에서 만난 안타까운 사례도 말씀 드릴게요. 60대 후반에 혼자 살고 계신 여성 분이었어요. 아무 혜택도 못 받고 계시더라구요.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긴 한데,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닌 거예요. 왜 안 되냐 봤더니 수급 신청을 아예 안 해보셨던 건데, 그 이유가 아들이 □□서비스센터에서 수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 갔더니 아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거를 아들에게 말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안 하셨던 거예요. 이걸 신청한다는 것 자체가 아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아들한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있으신 거죠. 그래서 계속 신청을 안 하고 그냥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주는 음식들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고 아프셔도 병원에 제대로 못가고 계셨던 거예요. 서울역에 아웃리치 나갔을 때도, 기초생활 수급 신청 안 하시는 이유 물어보면 ‘가족이 있으니까 안 된다고 하드라’ 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럼 같이 신청해보실래요’ 하면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는 거냐’ 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안 하겠다고 말씀하고... 동자동에 계시는 80대 초반 어르신이 계셨는데, 아들이 결혼을 해서 4인 가구로 있었어요. 아들 집에 같이 살다가 가족 갈등 때문에 집을 나와 동자동에 방을 얻은 거죠. 기초연금 받아서 그걸로 쪽방비를 내고, 식사는 무료급식소, 교회에서 해결하고.
사회: 다른 소득 없이 기초연금만 받으면 쪽방비 내면 땡이잖아요?
성철: 맞아요. 쪽방비 내면 딱 땡이어서 식사는 거의 무료급식소 이런 데서 하고, 옷이나 이런 것도 서울역 근처니까 다시서기센터나 이런 데서 얻어서 입고, 이불이나 그런 것도 다 그렇게 생활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기초생활 수급 신청하자고 말씀 드렸더니, 아들한테 연락이 가느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이 간다, 그렇기는 한데 이게 절대로 피해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직접 연락 안해도 동사무소에서 연락해서 관계단절확인서 내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거 설득하는데 1년 반이 걸렸어요. 1년 반 걸려서 겨우 신청을 했는데 관계단절 인정을 못 받았어요. 왜냐면 1년에 한 번씩 연락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게 지침 상에도 그렇고...
사회: 이게 공무원 업무 지침에 있어요?
정숙: 전화기록까지 다 뒤져요. 그래서 우리가 당사자 분들한테 전화할 때 꼭 공중전화 이용하시고 꼭 이야기해요. 복지가 오히려 관계를 단절시켜요
성철: 일 년에 한두 번 연락 한다고 해도 보장기관이 판단했을 때 관계가 단절됐다고 보이면 관계단절로 인정해야한다고 지침이 변경되기는 했는데, 구청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거죠. 이의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고... 걱정되는 게 뭐냐면 그 분 전화가 끊겼어요. 핸드폰도 없어지고 연락도 안 되고. 이런 게 한 반 년 정도 됐는데...
사회: 이렇게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분들이 사실 평생 놀고먹고 이런 분은 잘 없잖아요. 뭔가 일을 계속 하고, 특히 그 와중에 다치거나 이런 분들. 제가 만났던 분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노동 문제나 산재 문제로 다뤄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그냥 일상이었던 거죠.
수경: 약간 충격이네요. 통화기록 조회라니 왠지 국정원이 할 일 같은데, 복지부가 이상한 걸 하고 있네요. 원래 전통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그런 데 보면 도시 빈민들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이런 상황이 항상 나오잖아요. 개인한테 이건 산재, 이건 복지, 이렇게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20대 노동자들 인터뷰를 계속 하고 있는데 두 번 정도 굉장히 낯선 이야기를 들었어요. 보통 알바천국 같은 데를 통해서 공장 이런 곳에 알바를 나가거든요. 그런데 한 분이 말씀하길, 자기 옆에 있는 동료가 20대 초반 여자 아이인데, 학교 졸업하고 바로 온 것 같은데 이름을 말 안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수급자인데 일하는 게 탄로 나면 안돼서 가명이거나 그냥 예명만 쓴다는 거예요.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이런 파견 노동 같은 경우에는 공장에서 일을 해도 그 공장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어요. 그래서 만약 그 친구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어떤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고용 기록도 안 남고, 산재 신청을 할 수도 없죠. 수급권을 뺏길 수 없으니까.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게 관계를 아예 단절시켜 버린다는 거예요. 이름도 말할 수 없고, 누군지도 말해주면 안 돼. 이런 식으로 공장을 또는 알바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삼성 백혈병처럼 암에 걸리거나 일하다 어디가 절단되거나 이런 경우가 아니면 산재보험을 신청한다, 자격이 있다 이런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다가 생기는 건강문제들은 사실 완전히 방치되어 있는 거죠. 노동부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특수고용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4대 보험에 가입된 노동자였다가 사업자나 프리랜서 신분이 되면서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바뀌고 국민연금 같은 것은 아예 유예해 버리고.... 월급에서 까이니까 아까워서 안 하거나 자기가 지역가입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제 20대에 출발이 그렇다는 거죠. IT 분야에서도 경력이 좀 쌓이고 프리랜서가 되면 월급이 늘기 때문에 노동자신분을 읽어버려요. 건강보험이 지역가입자로 바뀌고 국민연금도 붕 뜨고. 그런 경우도 여러 번 들었어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도 개인사업자에요. 스텝들은 원장이 고용하지만 헤어 디자이너는 자기 성과만큼 이득을 분배해 가는 거예요. 이런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20대 공장 알바는 가족이 수급자인 걸까요?
정숙: 그럴 수도 있고 본인이 수급자일 수도 있어요. 가족 구성원 개별로 수급이 정해지는데 가족 소득을 합산하여 일정 수준을 넘으면 수급 탈락해요. 복지를 받으려면 일을 하면 안 되고, 일을 하면 복지를 못 받고 이런 악순환이 생겨나요. 노동시장에 나가서 소득이 제대로 보장이 되면 괜찮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부정 수급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실제로. 제가 아는 분도 수급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우니까 퀵 서비스를 하거든요, 이 분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데, 여기에는 수급자들이 많이 살잖아요. 퀵 서비스 하려면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콜이 오면 나갈 수밖에 없는데, 같은 임대아파트 사는 분들이 그 분을 부정 수급자라고 신고했어요. 이 분들이 되게 예민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수급비가 얼마 안 되는데, 나보다 더 많이 버는 거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이 분이 2년 치 수급비 2천만 원 토해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제가 안내를 해 가지고 1천만 원으로 깎기는 했어요. 이 분이 그러면 소득이 수급비밖에 없는데, 이러면 수급이 한 1년 동안 중지가 돼요, 이게 악순환인데, 그럼 또 알바를 해서 또 10만원씩, 20만원씩 할부로 그걸 갚고 있는 거예요. 어쨌든 소득기준을 넘으면 또 수급자 탈락하니까 월 70만원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알바를 뛰면서... 너무 힘든 거예요. 너무너무 괴롭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사람의 자존심이나 이런 것도 완전히 무너뜨리는 제도인 거고.
사회: 이런 분들이 주로 법망 바깥에 있는 아주 불안정한 알바나 파견노동시장으로 가는 것 같아요.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신분 세탁을 위해서는 파견이 짱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만났던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도 기록이 없어요, 그 분이 15년 동안 용접일도 하고 보온 작업도 했는데 한 번도 산재보험 적용받거나 건강보험을 든 적 없대요. 다 지역가입자. 거대한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수경: 알바천국 상담게시판을 보면요, ‘아버지가 수급자인데 들키지 않고 알바 할 수 있는 방법 알려주세요, 고3이에요.’ 이런 말도 있어요.
정숙: 4인 가족이라고 해봐야 수급 기준이 200도 안 될 텐데...
사회: 이런 분들이 위험한 일에 종사하게 되고, 또 다치고...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황당한 사례들이었는데, 이제 제도 이야기를 하나씩 해볼까 해요. 산재보험 쪽부터 이야기해 주시죠.
수경: 산재보험은 산업화과정에서 광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대형사고를 대비한 데서부터 시작한 거예요. 광산 노동자, 500인 이상 사업장 이렇게 시작했죠. 처음부터 사망, 아주 심한 부상에 대해서 시작해서 한 50년 동안 조금씩 찔끔찔끔 대상을 확대했어요. 아마도 시민들은 삼성 백혈병 문제처럼, 암에 걸리고 인과관계를 다투는 것에 대해서 인상깊게 생각하실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일하다 다쳐서 4일 이상 치료를 받을 상황이면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으로 했다가 오히려 구상권을 청구당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어요. 건강보험공단이 요즘 개별 노동자에게 열심히 구상권 청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회: 근로복지공단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아니구요?
수경: 그러니까요. 노동자는 건강보험공단에 돈을 물어주지만, 산재를 입증하는 절차는 밟을 기운이 없겠죠. 현재 산재보험이라는 거는 언론에 나오는 아주 극적인 사례들, 한해 2,000명의 사망과 직업병, 절단 같은 사고에 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건데, 그게 채 10만 명이 안 되요. 제가 만났던 대다수의 노동자들. 의류매장에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옷 꺼내다가 넘어지고, 미용실에서 파마기술 배우다가 손등이 중화제로 다 터져가지고 1년 정도 계속 피딱지를 달고 사는 그런 노동자들은 그냥 ‘당연하게’ 이 상황을 혼자 버티면서 일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산재보험하고 전혀 관계가 없어요. 아까도 사회자가 ‘산재보험 해보셨어요?’라고 물어봤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손등 터진 미용실 스텝은 보험신청서를 쓸 수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100만 명인지 200만 명인지 몰라요. 경제활동인구가 2천만이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동자는 1,500만 명인데, 그 중에서 1년에 9~10만 명만 산재보험을 받거든요. 나머지 아픈 사람들은 그냥 일하는 거죠. 이거는 산재보험을 더 친절하게 만들어라, 이 정도로는 안 되요.
사회: 아까 손등에 미용 중화제, 그 분은 산재가 확실한데...
수경: 병원을 안 가신대요. 손등이 계속 터져서 피가 실핏줄마다 난대요. 밤마다 바셀린을 바르고 장갑을 끼고 자고, 낮에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할 때는 벗고 만지고. 이렇게 해서 1년 정도 지나면 피부가 적응을 해서, 헤어디자이너 3년 차인데 멀쩡해졌다,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중화제 독이 겨드랑이까지 올라와서 겨드랑이까지 흉이 있다 그러더라고요. 이 친구가 겨우 25살이었어요. 출발이 완전히 다른 계급인 거죠. 우리는 이 사회 밑바닥 노동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고 있어요. 이들에게 산재보험은 턱도 없죠. 의미가 없어요.
사회: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에 무슨 포럼에 갔다가 복지 연구자가 우리나라가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이 전 인구와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고 해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보험은 어떤가요?
정숙: 건강보험은 탄생 자체가 박정희 시절이었죠. 저랑 나이가 똑같더라고요. 77년도에 만들어져 가지고. 국가 주도로 만들어지다 보니까 사회보험 원래의 목표인 시민들의 연대보다는 시혜적 관점이 굉장히 강한 것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회보험인데도, 사람들은 세금에 가깝게 이해하고, 시혜적 관점이 강하다 보니 취약계층 보호나 의료급여 같은 것도 굉장히 부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IMF 이후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의료보호에서 권리성을 나타내는 의료급여로 처음 도약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연대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시혜적 관점이 지속되고 숫자도 작고... 세 모녀 사건을 거치면서 맞춤형 개별급여도 쪼개지다 보니까, 이게 가난한 사람들한테 종합적인 사회보장이 아니라 오히려 권리 개념을 더 해치는 상황이 된 게 아닌가 걱정 되요.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기보다는 많지도 않은 예산을 정해두고 그 예산에 맞춰서 사람들을 끼워 넣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비슷비슷하게 가난한 사람들인데도 그 안에서 또 쪼개요. 수급 빈곤층과 비수급 빈곤층, 차상위 계층. 이렇게 돈에 맞춰 사람들을 나누고 차별하고...
사회: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는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의료급여니까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정숙: 의료급여가 건강보험에 비해서는 보장성이 높죠. 그런데 법정본인부담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총 진료비가 10,000원 정도인데, 6,000원은 우리가 평소에 내던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고 4,000원만 본인이 내죠. 이걸 법정본인부담이라고 해요. 문제는 의료급여 환자한테도 이런 법정본인부담금 말고 비급여가 있다는 점이에요. 의료급여 환자가 감기에 걸려서 동네 의원에 가면 1~2천 원밖에 안 내거나 한 푼도 안 낼 수 있고, 큰 병원에 가도 10% 정도만 부담하면 되요. 병원비가 천만 원 나오면 백만 원 정도 본인이 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비급여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기초생활수급비가 한 달에 50만원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몇 십만 원 짜리 MRI 같은 걸 찍기는 쉽지 않죠. 공공부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미충족 의료가 많은 상황인 거죠.
수경: 산재보험도 역시 비급여가 있거든요. 그래도 건강보험과 다른 게, 휴업급여가 있고 장애연급도 있으니까, 노동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산재로 인정받아야 되는 거예요. 건강보험보다는 보장성이 좋으니까. 안산 공단지역 병원을 돈 적이 있어요. 병실마다 다치고 부러진 분들이 쫙 누워있단 말이에요. 들어가는 병실에서, 다리에 어떤 좋은 보호구를 하고 싶다 하소연을 하는 거에요, 무릎 다친 분이. 제품번호 따져가면서 좋은 보호구는 비급여고 싼 보호 장구만 급여가 되고, 환자들이 종일 그거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이 일일이 심사를 하잖아요. 병원마다 브로커들이 상주하면서 급여 받게 해주겠다며 활동하고 있고요.
사회: 언뜻 보기에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잖아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성철: 이 제도는 건강보험, 산재보험에 비하면 나중에 만들어진 거죠. 2000년에 시작했으니까. IMF 이후에 새로운 빈곤, 당시에 해고당하고 실업이나 부도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제도로 탄생했어요.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같은 사회보험의 보장성이 충분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제도가 필요하게 된 거죠. 법적 취지는 좋아요. 가난해졌을 때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복지제도를 권리로서 보장하겠다. 하지만 살인적이라 할 만큼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너무 많은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소득과 재산 조사를 해야 하고, 부양 의무자에 대한 조사가 있고, 노인이나 아동, 청소년이 아닌 경우에는 근로능력에 대한 판정을 받아야 해요. 셋 다 너무 문제가 많아요. 우선 소득기준이 너무 낮아요. 의료급여 자격 기준만 해도 1인 가구 기준으로 70만원이 안 되고, 생계 급여는 그것보다 더 낮은 49만 5천 원 정도예요. 이보다 소득이 더 낮아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데, 이게 실제로 내가 일을 통해서 벌어들인 소득뿐 아니라 재산까지 소득으로 환산하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금융자산에 대한 소득 환산율이 6.26%니까 예금이 100만원 있으면, 한 달에 62,600원이 매월 소득으로 잡히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문제죠. 연락은 가끔씩 하지만 부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난한 사람에게만 부양을 강제하고 있는 셈이에요. 가족에게 ‘부양하라’ 고 강제하고, 그렇게 안 하면 보장을 해주는 게 아니라, 부양을 떠넘긴 채로 수급비를 깎는다든가 박탈하고 있어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이런 것들로 약을 하루에 열 몇 알씩 먹고 계신 분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나오고.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나서 약을 더 이상 안 먹는다는 이유로 근로능력 있음이 나오고...
사회: 그런 분들이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보고서 쓰는 일은 하실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근로 능력이 있는 거죠. 하지만 그런 분들이 갖는 일자리가 그런 일자리가 아니라는 게 문제잖아요.
성철: 맞아요.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측되는데,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는 거죠. 또 이렇게 까다로운 선정기준을 다 통과해도 보장수준이 굉장히 낮아요. 1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서울 사는 분에 한해서 주거비로 한 20만 원 정도가 추가로 나오고, 생계비로는 49만 5천원이 나오는데, 사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식비도 안 되는 금액이고, 전기세, 통신비도 할인이 된다고는 하지만 공과금 다 내고 나면 얼마 안 남기 때문에 생활이 안 되요. 그래서 무료급식소라든가 이런 곳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불이나 이런 것도 사지 못하고, 겨울에 난방도 제대로 못 하고 동사무소에서 받는 이불로만 추위를 나야 해요. 빈곤을 예방하는 제도여야 하는데, 예방을 하지 못하고 해결도 못하는 제도로 남은 거죠. 사회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이나 일자리에서의 위기, 사회적 위기에서 한번 발을 헛디디면 완전 추락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이를 떠받쳐줄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거죠. 바닥까지 떨어지면 정말 삶을 딱 연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보호하는, 낭떠러지에 밧줄 묶어 놓고 있는 셈이에요.
사회: 그렇게 배제된 400~500만 명이 파견노동자나 특고로 일하고, 아니면 영세자영업하면서 건강보험 체납되고, 힘든 일 하다가 다치고... 다 같은 분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이고 세세한 정책을 만드는 것은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정숙: 요즘 ‘생애주기별’ 이런 표현들 많이 쓰잖아요. 충분치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에도 생애주기별 복지 제도가 있기는 있어요. 출산수당, 아동수당이 있고 교육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어쨌든 건강, 고용, 산재보험이 있고, 국민연금하고 장기요양보험이 있잖아요. 제도들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고 선별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IMF 때부터 만들어진 복지 정책의 기조가 ‘일 하는 복지’다 보니까,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분이 많고...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 같은 게 대표적인데, 개인적인 가족 관계 문제를 왜 공공부조가 나서가지고, 복지 제공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일본 모델을 잘못 베껴 가지고... 국내 비정규직들은 고용보험 가입률도 낮고. 건강보험 가입률도 40% 정도 밖에 안 돼요. 이분들이 노후빈곤까지 연결되겠죠. 현재의 사회보험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제 불안정 고용이 고착화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노동시장이 어떻게든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보험이 안정될 거라는 생각이 들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노동시장 문제와 사회보장 문제 해결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봐요.
문제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분들이라는 점이예요.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뭉쳐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배제하기가 더욱 쉬운 거죠. 이런 분들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복지의 질과 주체의 문제는 사회운동 측면에서 같이 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성철: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법은 잘 모르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법 취지만 보면 굉장히 아름다워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권리로 보장하겠다. 막상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취지 빼고 나머지 조항들은 다 없애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보험이 제대로 되어 있고, 출산수당이나 아동수당부터 현재의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이 촘촘하게 짜여 있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이나 규모가 이렇게 크지는 않을 거잖아요.
수경: 요즘 사회보장과 관련해서 기본소득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기본소득 논의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없는 제도를 힘들게 논쟁해서 만들어가지고 청년들에게 주려고 하지 말고, 4대 보험에서 주겠다고 한 거를 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본소득 자체는 아름답고 멋있어요. 그게 화이트칼라 지식인들한테 굉장히 매력적인 용어인 것도 알겠어요. 기본 소득이 되면 좋겠다고 저도 생각해요. 그런데 있는 제도 놔두고 없는 제도를 힘들게 논쟁해서 만들려는 건, 왜 그런 걸까요.
정숙: 저도 있는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수경: 20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나중에 기초수급자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20대 때 4대보험가입을 잘 해 줘야하지 않나요. 산재를 건강보험으로 했다고 구상권 때리고 이런 방식이 아니라, 건강보험하고 산재보험을 통합하거나 협업해서 운영하면 좋겠어요. 기술적인 방법이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본소득 설계할 그 역량을 이쪽에... 중화제 때문에 손 터졌다는 분 있잖아요. 제가 ‘정말 피가 났어요?’ 물어보니까 ‘정말 피가 철철 났어요.’이러는 거예요.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맥도날드 일하는 분 보니깐 팔뚝에 화상이 칼자국처럼, 양팔이 난리도 아닌 거예요. 후시딘 바르면서 일 하는 거예요. 기술적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손등에 피가 나서 피부과 갔는데 미용실에서 일한다고 하면 피부과 의사가 알아서 산재 코드로 신청하고, 노동자는 산재보험으로 하는지 건강보험으로 하는지 아무 생각 없이도 치료 받을 수 있는 방법.... 그런데 노동 운동도 이 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요. 노조 조직률이 10%인데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산재 적용 대상이거든요. 산재는 일단 제도에 진입하기만 하면 장애급여, 유족급여, 휴업급여 해가지고, 받기만 하면 나름 괜찮아요.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면 해고도 당할 수 있고,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병원비 나가고, 노무사 변호사 브로커를 사야 해서 그렇지. 그런데 그 중간에, 제도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건강보험, 산재보험 가리지 않고 아프면 가서 상담도 받고 소득 손실도 안 되고 직장도 안 잃게 하는 방법이 왜 없겠어요. 국세청이 세금 잘 걷고 사업장 관리를 다 전산망으로 하는 마당에...
사회: 인공지능 시대에, 방법을 찾아보면 없을 리가 없죠.
수경: IT강국이잖아요. 최소한 전근대성을 버리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모델 정도만 갖고 와도 나아질 거 같아요.
정숙: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모두에게 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하지만 현재 공공부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강화해서 안전장치를 좀 만들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소득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을 우선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수경: 알바들 최저임금 잘 주고 야근 수당만 잘 줘도 좀 나아질 것 같아요.
사회: 그동안 노동 쪽에서 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산재 인정이나 임금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었죠. ‘이게 왜 직업병이 아니란 말이냐’가 핵심이었던 거죠. 그런데 오늘 이야기 나온 미용사도 그렇고 조건부 수급자였던 대동맥류 파열 환자도 그렇고, 산재 인정은 둘째 치고 산재라는 제도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상태군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몰래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또 그 일자리는 굉장히 뻔한 일자리. 다치기 쉽고 해고되기 쉬운. 역시 이들도 산재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고 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건강보험 체납, 의료급여는 상관없는 문제인 거예요, 지금까지는. 최소한 미조직 노동자나 불안정노동과 관련된 활동에서는 앞으로 변화된 상황을 인지하고 빈곤,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 체납, 의료급여, 산재 사각지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움직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요. 순수하게 재정적 측면에서만 봐도, 산재에서 부담할 거를 건보가 하고 있고, 또 기초생활제도의 일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해서 빈곤층에서 빠져나가면 나랏돈이 절약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죠. 우파적 관점으로나 좌파적 관점으로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같이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 이제 마무리 발언을 해 주시죠.
수경: 저희가 공장에서 메탄올 작업하다 실명한 6명의 시각장애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데, 복지부는 노동 문제라고 안 쳐다보고, 노동부는 복지를 몰라가지고, 이분들 6명이 각자 도생해야 하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까지는 받았는데, 이제 갑자기 점프해서 동사무소로 가서 시각장애와 관련한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중간에 아무런 안내가 없어요. 노동자의 몸이 노동부 소관이었다가 복지부 소관이었다가,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거죠. 서로 협업하지 않고. 노동부는 산재 노동자 재활을 강화하겠다, 재활을 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별도 예산을 코딱지만큼 투여해서 엄청 예쁘게 홍보를 하고 있어요.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나 뭐라나. 그게 어불성설인 게, 이미 복지나 재활 관련 업무를 해오던 복지부에서 배우든지, 아니면 복지부 쪽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부처별로 자기 부처만의 완결적 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있어요. 이렇게 제도가 분절되어 있어서 인지, 피해자 분들이 스스로 살아남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대 딸이 갑자기 눈이 멀었는데 엄청 씩씩하게 정보를 찾고 인터넷을 뒤지고 의사를 찾아다니고... 물론 굉장히 힘든 상황이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이거를 헤쳐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사회: 한국 근대사 100년을 다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수경: 이게 21세기 복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처럼 적어도 문해 능력이 있는 분들은 그렇게 헤쳐 나가는 거고, 나머지 저수지에서 일하고 있는 알바, 20대 불안정 노동자들은 이미 빈곤을 예약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4대보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노동기록도 없이, 빈곤으로 갈 확률이 높죠. 저는 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나, 정부 시스템을 조금만 바꿔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전문가들도 조금만 자기 아집을 버리고, 자기 밥그릇을 버리면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성철: 맞아요. 부처 간, 제도 간에 연결이 잘 안 돼요. 복지제도도 홍보는 진짜 엄청 크게 많이 하잖아요. 부양의무자 기준 한번 완화되면 텔레비전에서도 광고 막 하고, 거리에도 플래카드 엄청 붙고, 버스에도 붙여 놨더라고요. 부양의무제도 11월부터 완화되는 부분이 있고, ‘신청하세요’ 이런 게 붙어있는데,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고 그걸 신청해야하는 분들한테는 연락이 제대로 가지 않아요. 맞춤형 개별 급여 제도가 박근혜 정부 때 시행되었잖아요. 기초생활보장 제도에서 사실상 첫 번째 대규모 개정이었고 당시에도 현재처럼 엄청나게 홍보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쪽방에 계시거나 수급을 받고 있는 분들한테는 어떻게 제도가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전달이 안됐거든요. 이 분들도 각자도생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게 아까 말씀하신 거랑 똑같아요. 쪽방까지 오셔서, 아니면 고시원까지 밀려나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정말 열심히 찾아보고, 그러다가 할 수 없이 카드를 돌려막는다든가 아니면 대출 댕겨 쓴다든가 이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가 쌓이기도 해요.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처별 협업도 그렇고, 1차적으로는 동사무소나 구청, 지자체에서 정보 전달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쪽방 상담소 같은 곳들도 서울 뿐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하나씩 생기고 있는데, 복지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보니까, 완전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없으면 상담자들에게 아예 정보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같이 사회 운동을 한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의 요구를 대할 때 동정과 시혜로 볼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불쌍하니까 가난하니까 도와야지. 우리 빈곤사회연대가 더 잘 해야겠죠? 캠페인을 대중적으로 만들지를 못했던 거죠.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로를 확인하고, 홈리스들을 만나는 이런 자리들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빈곤 문제는 굉장히 게토화 되어서, 노동운동 내에서 빈곤, 홈리스는 너무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정숙: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은 연속적이고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잖아요. 태어나서 교육받고 일하고 병에 걸리고 늙어서 소득이 없고 이런 문제들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그런 문제들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건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사회보험이 불안정 고용 시대에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할 때, 핵심은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느냐, 어떤 연대의 방식과 관점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세상네트워크도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이 드네요. 당사자들의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통할 것이냐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수경: 급 반성 모드로(웃음)...
사회: 마무리 할게요. 현재 국내의 사회보장제도는 평생 안정된 고용을 전제로 건강보험, 연금, 실업, 산재가 구성되어 있고, 혹시라도 여기에서 빠지는 사람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어떻게 좀 해주겠다. 이제 노동시장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이런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 일종의 임계점이 온 것 같아요. 구글이나 애플 같은 곳조차 기본소득을 이야기 하는 게, 그들도 이 상황을 알게 된 거라고 보거든요. 정숙 활동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쪽에서 밀어내면 저쪽으로 가고, 국가 전체로 보면 돈이 안 드는 게 아니에요. 그런 측면에서 체계의 통합이나 사람을 중심에 둔. 노동부나 복지부가 중심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와 시민을 중심에 둔 체계 개편이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도 이렇게 같이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논의를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대담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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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내줄 여유가 있어야지,
각자도생이다 그러면 노조 못 만듭니다
- 이남신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대담 정리: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기록: 류한소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8월의 첫날 아침, 길은 이미 달궈져 있었다. 이남신 소장이 일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실은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3번 출구, 후텁지근한 공기가 지하 승강장까지 가득 차 있다. 아이스커피는 좀처럼 안 마시지만 더운 커피를 주문할 엄두가 나지 않는 여름날이었다.
이남신 소장은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정부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 측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노동․시민단체들이 구성한 ‘최저임금1만원 비정규직철폐공동행동(만원행동)’의 집행위원장이기도 하였다.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만원행동은 사회적 총파업을 진행했다.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건설, 병원, 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리기사들, 알바들이 나섰다. ‘파업’이라면 무조건 비난하고 보는 언론의 관성은 여전했지만, 몇 배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히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터진 논란도 있었다.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이 최종 결정된 후 민주노총이 낸 성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담고 있었다. 환영, 실망, 반발 등 각기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관심에 비추어 봐도 의아하였다.
최근에 일어난 일부터 질문을 하자고 생각하고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된 질문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첫 질문에서 좀체 나아가지 못했다. 답이 길어지고, 멀리 가는 듯해도 다시 돌아왔다.
최저임금 올라가면 노동조합 가입률도 올라가
전수경(전): 반갑습니다. 최저 임금 인상이 노동계 바깥에서도 큰 뉴스가 되었습니다. 논의과정과 결과에서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성과는 무엇이고 내부적으로도 아쉬운 점은 무엇일가요?
이남신(이): 이번에 최저 임금이 시급으로 1,060원, 22만원 오른 것이거든요. 16.4%인데 어떻게 보면 어마어마한 인상률입니다. 노조가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다 포함해서 두 자릿수 이상 인상은 굉장히 어려워요 현재로는. 근데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 거의 대다수에 적용되는, 어떻게 보면 국민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추산해서 한 500만 정도로 저희가 보거든요. 그게 월 22만원이 올라간 거기 때문에 임금인상 폭으로 보면 역대급이라고 보이고요. 워낙 적용대상자가 넓기 때문에, 심지어는 현대차 정규직 조합원도 영향을 받거든요, 기본급 수준에서는. 전 노동자들에게 즉각 영향을 미치는 인상이어서 저임금 노동자들 삶의 질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노동조합 가입률을 높인다는 확신이 있어요.
노조라고 하는 건, 먹고 살 만해야 만드는 것, 자기 옆구리를 내어줄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되거든요. 나 혼자 산다, 각자도생이다 그러면 노조 못 만듭니다. 최소한 어깨 걸고 함께 갈 수 있는 정도의 동료를 생각하는.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정도의 수준에 있어야 노조를 만들 마음도 생기거든요. 너무 힘들면 노조 못 만들어요. 저는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결국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과 관련해서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무기로 쟁취하는 굉장히 중요한 관문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최저임금 대폭인상 관련해서 양대 노총이 역할을 잘 했어요,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도 조직 노동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굉장히 잘 받쳐 줬어요, 특히 민주노총이. 대표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는. 그전까지 이거 참 못했잖아요. 꼰대처럼 구는 게 많아서.
이번 최저임금 같은 경우 양대 노총 공조가 잘 유지된 유일한 의제이기도 하고요. 이번 최저 임금 협상은 노동자 위원 추천권을 갖고 있는 양대 노총이 간만에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임금이라고 하는 건 상대방이 볼 때가 정확해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계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인상률을 확보를 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무, 이런 것들이 그래도 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조직 노동은 죄인인데, 민주노총이 잘한 건 6.30 사회적 총파업을 했잖아요.
정말 말도 많았던,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무슨 파업이냐. 사실은 10만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파업이었거든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초예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조할 권리를, 최저임금 1만원 요구로 총파업을 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촛불 시민혁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 당사자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으면 안 올라가요. 임금이라고 하는 건 당사자 요구가 핵심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6.30 총파업은 결정적인 지렛대가 됐다 생각해요.
전: 인상의 파급력이 엄청난 거죠?
이: 엄청 크죠. 임금 협상이 그냥 정리가 되는 수준으로. 내년엔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 문제가 부각될 거예요. 실제로 폐업하는 기업들이 나올 수 있어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인건비 상승은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거고, 최저임금이 가속도가 붙기 어려운 정세가 펼쳐질 수 있거든요.
민주노총은 이미 작은 조직이 아니에요. 80만 조직이에요. 한국에서 민주노총보다 힘 센 조직이 없어요.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 최저임금에서 민주노총은 박수 받을 역할을 했어요.. 촛불시민혁명에서 최저임금 대폭인상까지, 대중조직으로서, 대중조직의 연맹체로서 민주노총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된다. 과도하게 근본주의로 치환하게 되면 주객전도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저임금, 미조직, 비정규직, 청년,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에 두는 건강한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사자 중심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죽는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촛불이 민주노총을 지켰어요. 사내하청을 배제하고, 비정규직에 무심하고, 정규직화 반대하는 주요 노조들이, 촛불 아니었으면 그냥 적폐가 될 가능성이 높았죠.
너무 자기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 아닌가
전: 촛불 말씀을 하셔서 제가 의아했던 것 몇 가지가 있는데, 촛불 때 성과 연봉제 폐지나, 특정인 석방을 위한 모금이 있어서 놀랐어요. (이: 저도 되게 불편했어요) 한쪽에서는 금방 일하다 나온 것 같은 20대 초반의 청년들도 있었거든요. 성과연봉제 이런 건 불편했지만, 사실 민주노총이 어디서든 이름 내세우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데 폐쇄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비정규직 관련해서 전교조는 외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요.
이: 전교조, 공무원 노조가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서 사실은 반대하고 있죠.
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감각이 왜 이렇게 무뎌진 것일까요.
이: 어려운데요. 한편으로는 이해해요. 정규직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에요. 비정규직들이 공무원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공시생들이 주장하듯이 시험을 봐야 한다 이건 과도해요. 학교 비정규직,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이 공무원 해달라는 게 아니거든요. 공무원은 적용법도 다르고 채용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신분이 달라요. 노동법 대상도 아니잖아요. 그걸 원하는 게 아니고 공무직 수준의, 공무직이라는 이름의, 공무원과의 차별을 최소화한, 처우 개선. 근데 공공부문이 예산이 딱 정해져 있거든요. 처우 개선이 된다는 얘기는 이걸 나눠 먹어야 되는 것이에요. 어디서 나눠 먹겠어요? 가이드라인 보시면 맨 밑에 소심하게 한 줄이 있어요. ‘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써 놓은 거예요, 양대 노총이 반발할까 봐 강조는 못하고요. 실제로 총액 인건비로 보면 그 전의 정규직이 가져갔던 임금의 몫 일부를 줘야 한다는 얘기예요. 고용보장을 넘어서서 처우개선까지, 무기계약직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정규직 임금 체계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죠. 공무원을 시켜달라는 게 아니더라도 정규직 임금, 특히 복지에 영향을 미쳐요. 차별을 없애는 데 노조가 뭐라고 하기 어렵죠, 쪽팔리니까.
그렇지만 속으로는 ‘저거 되면 어떡하지?’ 그건 현대차 정규직도 똑같은 거예요. 사내 하청이 정규직 되면 정리해고 0순위가 되는데, 젊은이들이 정규직 되면 내가 먼저 잘리는데. 전에는 하청이 완충지대였지만 역으로 내가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고, 가족 생계비가 많이 들어가는 시기에 잘리게 되는. 대의로는 거부 못하지만 실제로는 다수가 반대하는, 경제적으로 보면 이해해요. 정년 얼마 남기고 잘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민주노조라면 그렇게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설득하고, 의견을 모으는 걸 포기한 게 민주노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현장에 가 보면 하향평준화 돼 있거든요. 공무원 노조나 전교조에서 심각한 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전반적 인식이에요. 바뀌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안 바뀝니다.
노조의 역할이 뭐냐 물을 수밖에 없어요. 노조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뭐가 다른 거냐. 이익단체 기능을 하는 정규직 노조가 계급조직으로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정규직 노조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요. 정규직화 되고 나면 이기적으로 변하고. 민주노조라고 할 때의 정체성, 이익단체도 해야 하지만 계급조직으로, 사회적 약자인 저임금 미조직 이주노동자, 중소영세 노동자 이해를 앞에 두고 고민해야죠. 전노협 때 했던 것처럼. 지금 퇴행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역사 속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거예요. 그 초심을 찾아야죠. 공무원 노조나 전교조는 좋은 기회가 온 거예요. 성과 연봉제 폐지되고, 전교조 합법화도 시간문제에요.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신경 써야 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때야 밥그릇 자체가 위태로우니까 싸우는 게 정당했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이번에 비정규직 교원 처우 가이드라인을 보면 기간제 교사, 강사 다 탈락 위기잖아요. 전교조, 공무원 노조가 성명을 내는 게 맞는 거예요. 우리 같은 비정규단체가 내 봐야 그러려니 하는 거고, 전교조가 내면 파급력 있죠. 상급단체가 해야죠. 당사자 조합원들은 갈팡질팡할 수 있지만. 세월호 때 순직한 두 분만 예외적으로 되는 것 그게 의미는 있지만, 기간제 교사, 이 사람들 처지는 안 변한다,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기간제 교사, 강사가 학교 비정규직의 절반이에요. 전교조가 어떤 입장을 갖느냐, 공무원 노조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대해서 어떤 입장 가지느냐가 중요한데 입장을 안 내요.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보면 더 앞서 있는 거죠. 정부에 대해 비판적 성명이 나오면 좀 우스운 게 대통령을 앞질러가면서 압박을 해야지, 뒤 쫒아가지도 못하면서, 조금 문제 있다고 과도하게 비판성명을 내고. 전교조나 공무원 노조 같은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겠다 싶어요. 성과연봉제 폐지되고 합법화 되고 박수치고... 그게 내 성과다 하는 것은 욕을 얻어먹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거야 말로 시혜적인 것 아닌가요. ‘전교조가 필요한 거구나’ ‘공무원 노조가 필요하구나’ 이런 걸 국민들이 느끼는 데서 역할을 해야죠. 이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올해 내로 가닥이 많이 잡힐 거 같거든요. 전교조나 공무원 노조가 더 이상 실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 우리 것 다 됐어’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저희가 지금 조사를 해 봐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설움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두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 건강한 활동가들, 간부들은 사실 고민을 해요. 비정규직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데 주류가 아닌 거죠. 이것을 주류로 만드는 고민을 구체화해야 될 때가 아닌가. 더 이상 공공부문 정규직은 조직 확대가 될 게 없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 얼마나 조직하느냐가 공무원 노조나 전교조가 살 길이에요. 오히려 조직이 많이 축소됐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규직 노조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비정규 문제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과감하고 대범한 기획을 내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전: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이 올라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이 크시군요. 화재를 돌려서 메탄올 실명 사건과 불법 파견 문제 관련해서 여쭤볼게요. 저희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메탄올로 실명된 파견 노동자 이야기 연재할 때 시민들이 너무 많이 호응을 해서 놀랐어요. 이 사건의 성격, 전개과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부끄럽죠. 저희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제가 알기로는 아마 노동건강연대처럼 활동가 멤버십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사실 없는 것이잖아요. 노동건강연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서 되게 빚을 졌다 이런 생각을 했고요.
비정규직 문제에서 가장 사각지대가 지방 공단이에요, 특히 영세사업장. 영세사업장은 정규, 비정규가 의미가 없어요. 정규직도 똑같아요. 비정규직 지위나 마찬가지고 폐업되면 일자리를 잃는 게 다반사여서. 그쪽은 실태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어 있고 다만 비정규직 센터가 있는 지역에 불법 파견 문제, 특히 안산 시화공단이나 대구 성서공단, 이런 쪽의 불법파견 문제는 많이 파악이 되긴 했지만 압도적 다수가 불법 파견의 이주 노동자들이 많은 데거든요.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제대로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이 개인들이 실명하고... 그건 너무 치명적이잖아요. 한 분이 아니고 반복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거고. 심지어 제가 듣기로는 피해 당사자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있을 수도 있다면서요? 이주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알 수가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의 치부가 드러난 것 아니냐. 어떻게 보면 우리같이 비정규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장님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비정규 문제와 산재 문제, 우리가 매일 6명씩 죽는다고 통계로 강조하지만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규 문제와 연결되는데도 활동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산재나 노동 안전 문제에 대해서 비정규 운동도 중요한 영역으로 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들었는데, 해결책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비정규직 문제의 사각지대는
지방 공단의 영세사업장
전: 그렇죠. 정부도 완전히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에요.
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달려들면 좋은데 쉽지 않죠.
전: 실명 자체가 충격적인 것도 있지만, 그게 상징하는 게 지금도 지역이나 상담 조직에서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중앙 언론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지만 지역의 노동조합에서도 모르더라고요. 기본적으로 그때 지역 단체들이 사실은 거의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했었거든요.
이: 공대위 같은 게 꾸려지지는 않았나요?
전: 네. 공단 지역에 선전전을 해보고 싶었는데 노동건강연대가 선전물을 좀 만들어달라, 뿌려주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이: 외주도 아니고) 없는 인력에 잘 하지 못했어요. 공단 지역에 공장 알바라고 해서 방학동안 단기간 알바를 많이 들어가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무법지대, 무정부 상태로 있는데(이: 현장실습 문제도 있죠) 이것을 지역의 비정규 노동운동이나 지역본부가 손을 못 썼다, 현장에서 이슈를 만들지 못했고 바닥이 약화된 느낌을 받았어요.
이: 그게 지역 편차가 있을 것 같긴 한데요. 피해 당사자들이 있던 곳이 부천, 인천이었잖아요. 근데 원래 부천, 인천은 가장 지역 노동 운동이 활발했던 곳이잖아요. 일반노조도 있었고. 지금은 아마 그쪽의 일반노조들이 많이 시들해져 있는 것 같긴 한데, 지역 네트워크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만큼... 어떻게 말해야 될까요? 산재 문제는 음... 비정규 운동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비정규 센터도 주로 결합하고 있는 곳은, 아시겠지만 성과 낼 수 있는 사업장들이에요. 주로 재벌 사업장, 공공부문 이런 데. 그리고 동질적이고 규모가 있고 사용자가 지불능력이 있는, 사회적으로 쟁점화되기 쉬운. 이런 곳에서 주로 노조가 만들어지고 싸우거든요. 우리가 주로 그런 데 가서. 그런데 정작 노동조합도 없이 완전히 파편화되어 있는 쪽은 우리도 몰라요.
전: 근데 이게 메탄올, 산재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의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조건의 상징이잖아요.
이: 맞아요. 거기만 그런 것도 아니고. 저는 그 지점에서 아, 어떻게 평가를 해야 될까요? 조금은 저 자신도, 비정규센터도 그런 반성이 있는데. 성과주의 측면이 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단체가 존속이 되려면 10년 내내 성과가 안 나는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어쨌든 좀 티 나는 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쪽으로 치우친 활동을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중소영세 사업장, 수도권이 아닌 지방은 거의 신경 못 쓰는 거예요. 그쪽은 노동 네트워크도 취약하고.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 비정규 운동도 양극화 되어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그렇게 양극화 극복을 절실하게 얘기하면서 정작 비정규운동, 우리 내부도 양극화 되어 있는 거 아니냐. 특히 산재문제는 의제로 보면 이게 완전 소수자 문제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비정규 의제 중에서도 정규직화 의제, 처우개선이나 이런 것들은 중요한 의제가 되어 있고 노사정이 다 집중하고 있는데 산재 부분은 노사정이 다 불편해하고. 이게 성과내기 쉽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다 보니까 인명이 걸려 있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홀대 받고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 자신도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실천적으로 뭘 해야 되지? 하면 막막해요. 우리 비정규 노동센터가 뭘 좀... 예를 들면 지역 비정규센터 네트워크들이 있으니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산재 관련해서는 사실 다뤄본 적도 없어요. 그냥 이런 일 생기면 연대성명 내고 지원할 일 있으면 소소하게 하는 것 외에는. 우리 사업 계획으로 논의한 적이 없거든요. 청소년 노동 인권이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런 건 우리가 공동사업으로 중요하게 논의해요. 산재는 한 번도, 이런 심각한 일이 발생했고 불법 파견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량 자체가 너무 취약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노동조합도 없이 홀대받고 있는 노동의 현실,
우리도 잘 모르고 있어
전: 불법파견, 제조업체에 만연해 있는 불안정한 노동의 핵심인데 이것을 너무 기술적인 문제로 본 것은 아닌지... 노동건강연대는 사실 그런 관점으로 일을 하지 않아 왔는데도. 이게 불법파견 또는 계절공처럼 여름에 투입됐다가 개학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이런 문제랑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아무데서도 가이드가 없는 거예요. 민주노총도 전문가나 의사처럼 접근하고... 노동부가 존재감이 없고 이번에도 딱 뒷짐 지고 전시행정(이: 이번 추경에서 유일하게 깎인 게 근로감독관 증원이에요), 정부의 책임이 막중한데 정부 책임을 묻는 의제가 안 만들어지더라고요. 노동이 안 나서니까.
이: 사실은 노동건강연대처럼 접근하고 같이 해야 하는데 그럴 파트너가 많지 않죠.
전: 산재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만 남았어요. 오히려 다음 스토리펀딩에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지금 생산직 현장이 얼마나 엉망인지 아느냐, 이런 얘기들이 많이 올라와 있고, 영세든 대기업이든 기본이라도 지켜라, 근로기준법이라도 지켜라, 이런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너무 기본이 필요한 거죠. 사각지대에 대해서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은 왜 이렇게 무심한가.
이: 하... 그러니까요. 그게 당사자 요구가 없으니까 그래요.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조합원들이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겠죠. 유일하게 불법파견 당사자로 투쟁하고 있는 곳은 완성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투쟁을 했고, KTX 승무원, 공공부문에 굵직한 불법파견 투쟁이 있었지만, 지역 차원의 영세업체들 불법파견에는 주목을 못하는 거예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불법파견 투쟁에는, 대부분 민주노조가 있어요, 정규직 노조가. 있기 때문에 자기 문제이기도 하고 이게 워낙 사회적 파급력이 큰, 핵심은 사용자에 맞서는 투쟁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든 산별노조든 싸울 수밖에 없고 의미 있는 투쟁이 되는 거죠. 중요한 건 영세 업체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 공단에서의 불법파견 문제는 주목도 못 받고, 조직되어 있는 노조도 거의 없고 그러니까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어서...
불법 파견은 복잡하지 않아요. 그냥 폐기해야 돼요. 파견법 폐기에 대해서는 좀 이견이 있어요.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 가능한 로드맵이 아니기 때문에 파견이나 용역인 경우 과도기적으로는 원청 사용자성이나 폐지를 얘기하는 것 보다는 고용승계나 처우 개선이나. 사실 파견법을 제대로 적용받는 노동자인 경우에는 사업주들이 부담스러워 하거든요. 최저임금 지켜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지켜야 하고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훨씬 부담스러워 한다고 해요.
저는 적법한 영역에서 보호될 수 있는 파견 노동자, 이 부분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근본적으로야 파견 철폐를 당연히 해야죠. 그건 중간착취니까. 사람 장사 그만해라 하면서 철폐 외치는 거야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불법파견 철폐가 핵심이다. 어쨌든 파견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특정 직종에서는. 지금처럼 이렇게 양산되는 건 최소화해야 하지만. 근데 불법 파견은 철퇴를 가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큰 사업장 말고 작은 사업장의 불법 파견, 아웃소싱 형태로 되어 있는 이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지금 실태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정부가, 모든 요구는 실태로부터 나오잖아요, 먼저 실태조사 해야 한다. 물론 그 실태조사가 굉장히 어려워요.
영세 업체고 불법 파견이면, 협조도 안 될 거고 어마어마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할 텐데 저는 그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 하지 않으면, 지금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만들자고 하고 있는데 그 중소기업의 여러 가지 적폐들을 푸는 노력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저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도 큰 일이지만 중소업체 자체의 문제도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의 핵심이 불법파견이라고 생각하고, 이주노동 문제도 연관되어 있고. 이 부분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센서스 수준으로 전수 실태조사를 한 번은 해야 해요. 비정규 전체 실태도 전수조사를 한 번은 해야 되요. 이건 너무 큰 인력과 예산이 들기 때문에 나중에 차기 정권에서 하더라도, 일단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잖아요, 이건 용인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엄밀하게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그런 인력과 예산이 현재는 없겠죠.
올해 근로감독관이 원래 500명 증원 계획이었거든요. 그게 추경에서 200명으로 줄었는데 증원된 근로감독관들 중에 최저임금, 비정규직, 중소영세업체의 이런 불법에 대해서 전담을 하는 근로감독관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그러면 안돼요. 이게 항상 마지막, 후순위이기 때문에 다른 것 다 하고 시간 날 때 하는 거예요. 비정규나 최저임금, 산재는 준법적 수준에서도 절대 시정이 안 돼요. 노동부가 실태 조사를 하고 전담 태스크포스나 근로감독관 배치를 통해서 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죠.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은 역시 후순위구나 느꼈죠, 근로감독관 정원부터 깎이는 걸 보면서. 하여튼 쉽지 않은 조건이긴 하지만, 지역 공단의 불법파견문제에 대해서는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부분에서 특히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은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좀 더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파견 철폐’ 이렇게 해버리면 아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냥 오로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상의 노동자 개념, 사용자 개념 이걸 바꿔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게 하고 입법적 수준에서 이미 불법 파견은 엄벌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파견 철폐로 밖에 갈 수 없다면, 영세 업체 불법 파견 관련해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파견으로 되어 있는, 용역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문제와 관련해서 근본주의적 입장보다는 좀 더 개량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입장으로 민주노총이 해야 하지 않을까.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내부의 이런 저런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잘 판단한 것처럼, 이 부분도 자기 조합원 요구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중심에 두고 해야죠. 그들이 파견 철폐가 핵심이겠어요? 당장 자기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이런 메탄올 실명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소한 최저 임금은 지켜지도록, 업체가 폐업하거나 용역 바뀌더라도 최소한 고용이 승계되는, 이런 정도가 보장되면 굉장히 큰 변화거든요. 근데 그런 얘기를 민주노총이 중요하게 하지 않아요. 파견을 그냥 두자는 거냐? 이렇게 접근하면, 용역 파견 그대로 두고 고용승계만 하면 된다는 거냐? 근본적으로 직접고용하고 정규직화 해야지, 그런 얘기 누가 못해요, 가장 쉬운 건데. 그건 옳은 얘기이긴 하지만 욕 안 얻어먹을 얘기지. 정작 해야 되는 일을 안 하는 거죠. 실천적인 대안을 갖고 좀 더 지금의 과제에 집중해서, 100년 후 과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영세사업장 지역공단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 관련해서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사실은 너무 힘들어요.
우리 안의 성과주의 유혹을 버려야
불법파견으로 받는 고통을 어떻게 할 거냐, 이게 더 힘든 문제
전: 일반적으로 비정규 노동운동하고 다른 의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수고용이 그럼 비정규냐, 이번에 최저임금 투쟁하면서 영세 자영업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냐. 쁘띠부르주아로 볼 것인가 노동자로 볼 것인가. 저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우리가 영세 자영업자 문제를 하느냐, 노동자 문제에 집중해야지 반발하는 정파도 있는데, 저는 그건 좀 우리가 입장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영세 자영업자들은 한때 노동자였고 현재도 준노동자이고 실제로 비정규보다 더 열악한 사람들도 있어요. 100만 원 미만의 소득이 태반이에요.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유럽 수준으로라도 사회안전망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니까 실업급여를 준다거나 이렇게 해야죠. 영세업체, 중소기업 이 문제에 대해서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로서 노동자와 함께, 이 부분도 그렇게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조직화 대상으로는 굉장히 난감한 영역이에요. 그러니까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손 안 대는 거예요. 아무리 해봐야 별로 아웃풋이 없어요. 조직해도 금방 날아가고 지속가능성도 별로 없고, 폐업해서 없어지고 막 이러니까. 그리고 소수잖아요, 힘도 없고. 그러니까 노조로 만들기에는 굉장히 열악한 거예요.
아까 제가 우리 안의 성과주의를 얘기했는데, 불법파견에 산재 문제까지 겹치면 그건 정말 선뜻 하기가 쉽지 않은... 저는 솔직히 그게 이해가 되요. 진짜 난감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운동이냐? 그럼 그건 운동은 아닌 거지. 저는 좀 위선일 수는 있다는 생각은 들고 다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거든요. 그럼 이걸 슬기롭게, 예를 들면 노동건강연대가 갖는 그런 문제의식들이 서로 삼투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옳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몫도 중요하고, 비정규 센터 같은 노동단체의 몫도 중요하고. 예를 들면, 불법파견이나 산재 문제를 매개로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정규 관련해서는 많잖아요. 산재와 관련해서는 그런 네트워크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법 파견이나 산재 문제를 엮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부도 압박하고 그런 정도까지 되려면, 사실 넓게는 양대 노총, 최소한 민주노총이나 주요 산별 연맹들이 돈을 내놓든 사람들 내놓든 뭘 좀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고요. 그렇게 만들어진다면 저희 비정규 노동단체들도 산재나 불법파견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핵심 의제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주로 우리가 재벌 사업장의 다단계 하도급, 그것도 불법파견 문제거든요, 위장도급. 거기에 집중하고 있잖아요. 아예 노조 만들 엄두를 못 내고 노조 만들어봐야 별 메리트도 없는 이런 불법파견 영세사업장 어떻게 할 거냐, 결국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비정규 노동 단체도 어떤 측면에서는 의제 이동을 해야 한다. 더 열악한 지위의 불법파견 노동자 문제에 집중하는 게 비정규 노동단체의 몫이잖아요. 조직노동은 몸이 무겁다 보니까. 우리는 기동전 할 수 있으니까, 가볍게 가볍게. 우리도 어떻게 보면 불법파견 관련해서, 될 법한 사업장 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하여튼 만들어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노조 만들 엄두 못 내고, 만들어도 의미없는 영세사업장,
양대 노총이, 돈이든 사람이든 뭘 좀 해야
전: 마지막 질문 드리면서 종합해 볼게요. 알바노조나 청년유니온이나 (이: 잘 하죠) 이런 조직들이 비정규 이슈를 대중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고, 새 정부가 이슈를 빨아들이는 걸 보면 그동안 청년이나 알바 이런 데서 제기했던 것들을 이번에 최저임금 만원처럼 흡수하는 것도 있잖아요. 이번 정권에서 비정규 노동운동이 어떤 활동 방향을, 어떤 흐름을 갖게 될까요? 노조를 많이 만드는 것, 조합원들을 많이 만드는 것, 또는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처럼 생활의제로 전선을 대중화하는 것이 있잖아요. 말씀 들으면서 아, 역시 노동조합이 중요하다, 비정규 노동운동도 최대 과제는 노조 확대겠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일단 공약 이행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 완성도가 높아 보여요. 그게 사실은 이게 민주노동당 공약이에요. 특히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최저임금 1만원 이건 예전의 진보정당 공약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문재인의 공약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 정당이 투쟁해서 받아들이게 한 공약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반드시 이행하게 해야 된다. 2005년에 국가 인권위원회가 사용사유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반드시 그 두개를 비정규 보호법의 전제로 해야 된다고 얘기했거든요, 규모를 감축하고 차별을 최소화하려면. 근데 그걸 안 받아들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벌이나 관료들의 반발에 타협을 한 건데, 그냥 기간제한 방식으로 간 것이거든요. 그러면서 실패했어요. 물론 이 두 개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이걸 한다고 해서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가 클지는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되지만. 한 번도 안 해봤잖아요.
비정규 노동문제는 다 실패했잖아요, 민주개혁 정부에서부터. 딴 거는 몰라도 이 두 개 공약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1만원 이건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챙겨야 된다. 딴 건 모르겠어요. 근데 이건 무조건 챙겨야 된다. 그 공약 이행을 비정규 운동이 감시해야 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 중의 하나가 통계 바꿔라. 지금 비정규통계가 30.8%로 뜨고 있잖아요. 우리는 44.3%고 누락까지 하면 55%인데 통계가 잘못됐는데 무슨 대안이 나오겠어요? 그래서 정부 통계가 갖고 있는 문제부터 바꿔라 요구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공약 이행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첫 번째 과제고요.
노조는 다다익선이니까, 헌법상 기본권이기도 하고. 노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최저임금이 인상됐는데 우려가 되는 것은 영세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쪽 문제도 있지만 더 우려하는 것은 위반율이거든요. 지금도 230만이 넘는 최저 임금 미달 노동자들이 있는데 7,530원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딱 되잖아요. 그러면 위반율이 얼마나 될까? 아마 사용주들이 개기려고 다 위반해 버릴 수 있어요. 그럼 최저임금 못 올려요. 위반율이 그렇게 올라가 버리면. 그게 역설적으로 최저 임금의 발목을 잡는 것이거든요. 경총이나 전경련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우리 다 불법할 테니 잡아가라 이럴 수도 있다는 거죠. 아주 막장으로 가면.
저는 정말 걱정되거든요. 16.3% 올랐는데 미달되면 어떡하지? 그럼 올린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걸 시정할 유일한, 강력한 기구는 노조 밖에 없어요.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이 노조로 가입되면 절대 그럴 일 없어요. 그냥 고용노동부에 불법이라고 신고하면 되요. 그럼 시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전부 체불임금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런 지점에서도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의 노조 가입률 제고가 관건이다, 여러 지점에서 관건이다. 불법 파견 문제도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만드는 과정 자체가 물론 너무 힘들기는 하지만, 최소한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 20%, 비정규직 10%는 넘어야 하는데, 지금 2% 밖에 안 돼요. 이건 헌법 기본권이 아니에요. 최소한 10%는 넘는 수준, 전체적으로 20%는 넘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국사회가 바뀔 것이거든요. 저는 그걸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반드시 해야 된다 생각하고요. 말씀하신 청년노조들 관련해서는 양대 노총 바깥에 세대별 노조가 있고 여성 노조가 있거든요, 노년 유니온까지 다 포함해서. 다 노조들인데 왜 양대 노총 바깥에 있지? 양대 노총이 대변을 못하는 거죠.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 여성노조,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시니어 노조 같은 이런 세대별 노조, 노동조합 바깥의, 노동조합 이름을 갖지 않은, 그러니까 유니온도 노조인데 기존 노조와는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잖아요?
특히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박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틀을 벗어나서 하고 있는 건데 저는 그게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노동조합 또는 노동운동 생태계가 풍부해졌으면 좋겠어요. 양대 노총으로는 대안이 되기 어려워요. 한국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의 한계도 분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에 많이 가입되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당사자 중심으로 현장을 대변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저는 아직 비관적이에요. 그래서 저는 실제 당사자를 대변하는 그런 외곽의 노조들이 굉장히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런 접점에서 민간단체를 포함해서 비정규 노동단체들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역시 중요한 것은 지역과 공단이에요. 여기서 물꼬가 트이지 않으면 말짱 황이에요. 이게 안 되면 기존의 양대 노총 수준의 이슈 파이팅을 벗어나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쉽지는 않지만 변방에서부터 노조 가입률 제고, 양대 노총 바깥의, 꼭 노조가 아니어도 되는데요. 여러 가지 자생적인 이익단체, 계급조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최저임금이 인상해 놓고 위반율 높으면 무슨 소용인가,
노조가 있어야 최저임금도 지킬 수 있어
전: 지난 10년을 봤을 때 정규직 노동 운동은 정체기거나 쇠퇴하고 있고, 비정규 운동은 정체기, 조직률이 2%라는 건 사실, 예전엔 1%라고 했었지만, 그 상태에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군요.
이: 비정규 노조가 최근에 변신을 도모하고 있죠. 삼성전자 서비스나 희망연대 노조에서 보이듯이, 전체 계급적 요구를 중심에 두고 선봉적인 역할을 하고, 자기 사업장에서부터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예전에는 무조건 그냥 정규직화만 목표였잖아요. 저는 정규직화 요구는 계급적인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 요구이긴 하지만 운동과는 별 관련 없어요. 중요한 요구이긴 하지만 임금요구 수준이죠. 중요한 건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무가 뭐냐, 정규 비정규 따질 것 없이. 그건 당연히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를 좁히고 전체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고시키는 데 노조가 지렛대 역할을, 최소한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걸림돌이 되면 안 되고. 지금 정규직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고. 비정규 노조들도 걸림돌이 안 됐느냐, 일부 됐죠. 자기 요구만, 정규직화든 뭐든. 그래서 저는 그걸 벗어나야 한다. 요즘 삼성전자 서비스노조가 180만 삼성그룹의 전체 미조직 노동자들이여 일어나라, 이재용 직접 교섭하자, 이게 정말 담대하고 멋있고 바람직한 요구거든요. 비정규 노조들도 진화한 거예요. 그냥 된 게 아니고 십수 년의 비정규 투쟁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서 희망연대 노조나 삼성전자 서비스지회가 그런 역할을 자기 과제로 지금 상정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수준으로 비정규 노조들도 상향 평준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 사업장의, 일반적인 조합원 이해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안 되려면 비정규운동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해야 하고 비정규 운동 단체들도 자기 혁신을 해야죠. 지자체 예산 받자고 거기 매달리는 형국이 되어서는 그건 진짜 가망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민주노총보다도 더 난감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순환 되어야죠. 노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비정규 노조운동도 거듭나고, 비정규 노동단체들도 자기 과제를 제대로 찾아가는. 지금 좀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무게중심을 이쪽으로 다시 바르게 가져오는. 이게 서로 어울려지고 아까 말씀하신 세대별 노조를 포함해서 소위 조직 노동 바깥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사실은 규모도 작고 영향력은 미미해요, 그러나 사회적 의제로는 주목받고 있는 거죠. 청년 의제나 여성 의제, 어르신 의제와 직결되다 보니까. 그래서 이 부분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 아래서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이번 최저임금 인상처럼 할 수 있다.
옆구리 내줄 여유가 있어야,
이: 저는 기대는 있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공약에 대해서 응원하되 냉정한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워낙 고공 지지율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저는 꼭 비판해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되게 매력 있고 멋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다만 비정규 문제나 소수자 의제, 성소수자든 이주든, 이런 의제들에 대해서는 취약한 건 사실이에요. 비정규 의제에 대해서도 간접 고용, 특수 고용에 있어서는 굉장히 취약해요, 공약도 그렇고. 저는 믿지 않아요. 조만간 헛발질 할 거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대통령이 핵심 공약은 직접 챙겨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런 점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도 조만간 위기가 올 것이다, 특히 노동문제 관련해서. 다만 참여정부처럼 노정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공멸하는 수준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정규 운동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특히 올해는 애정 어린 비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년 이후에는 달라진 조건에서 좀 더 대안을 제시하면서 근본적인 비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그걸 염두에 두고 비정규 운동이 마지노선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쉽지 않은 문제여서 그 지점과 관련해서는 예측 가능한 공약 후퇴나 상충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그런 일이 생기고 나서 화들짝 놀라면서 이럴 줄 몰랐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예상하고 우리가 어떤 대안을 줄 거냐. 정부 입장에서도 대안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공공부문 비정규직문제만 해도 어지럽거든요.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밀어 붙이고 있는 거라서. 우리 책임도 있어요. 잘 안 되는 게 그냥 대통령 책임이냐? 아니죠. 노조나 비정규 운동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보니까 사실은 제대로 그것이 될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들 수 없어서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라도 해야 되는데 우리가 이 부분이 너무 약해요. 저는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근본적인 입장을 벗어나서 현실적인 대안 중심으로.
안 되면 그냥 대통령 책임이냐,
그림이 되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약해
전: 여기서 실력이 나타나겠죠.
이: 예전에 노동부 관료가 저 보고 민주노총은 너무 쉽대요. 민주노총은 무슨 입장을 낼지 뻔하다는 거예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한국노총은 어렵다는 거예요. 디테일을 공격하니까. 민주노총은 디테일을 공격하지 않거든요. 프레임을 공격하지. 그건 편하죠. 저는 그런 것 벗어나야 되고 디테일 수준에서 한국노총이 아니라 진전된 대안들을, 근데 이런 걸 우리가 하기에는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맞서 싸우는 데만 익숙하다 보니까. 그런 점에서는 비정규 운동들도 자유롭지 않거든요. 비정규운동은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만큼, 자유롭게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봤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비정규 운동은 그런 정도의 역할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하되 내부를 강화하는 이런 방식으로.
주객이 전도되면 그건 좀 곤란하다. 우리가 문재인 정부 들러리를 자처할 필요는 없고 또 되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하고요. 저는 그게 백지장 한 장 차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건 당사자들만 아는 거죠. 그래서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지 않도록 계속 뒷받침을 하는 것까지 같이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전: 긴 시간 감사합니다.
노동건강연대 기관지인 [노동과 건강]을 마지막으로 펴낸 것이 지난 2015년 봄이다.
여느 시민단체나 다 비슷하지만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꼬박꼬박 책을 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고 갑자기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느리더라도 꾸준히 기관지를 펴내자고 다시 결정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노동건강연대의 활동, 그보다는 그 활동이 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떠다니는 시대이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투쟁에 대한 기억, 기록은 여전히 부족하다. 신문기사 한 구석의 구구절절한 사연, 혹은 술자리에서 전승되는 무용담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장 기록,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주장,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평가들이 더 많이 생산되고 읽히고 남겨져야 한다. 특히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들을 알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정의를 향한 투쟁, (아주 가끔의) 승리와 (많은) 패배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동건강연대 ‘조직원’을 위한 ‘내부문건’은 아니다.
노동건강연대에 ‘조직원’ 따위는 없다. 상근활동가와 각자 자신의 일터를 가진 회원들만이 있을 뿐이다. 회원들이 지닌 전문성, 회원활동에 쏟을 수 있는 시간, 노동자 건강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과 지식수준이 모두 같지도 않다. 회원 세미나, 실태조사, 언론 기고, 서명운동 등 회원 활동의 방식은 다양하다. 이 책은 그러한 다양한 회원 활동에 기초가 될 수 있는 ‘사실’과 ‘문제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역할도 맡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현재의 노동건강연대 회원 뿐 아니라 미래의 회원들, 많은 시민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랜만에 발간하는 만큼, 풍성한 내용을 담아보려 노력했다.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개혁적 성향의 새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처한 현실과 역량,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거침없는 이야기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에게 청해들었다. 지난 2013년 가을 이후 다시 성사된 이남신 소장과 전수경 활동가의 대담은 신랄하면서도 유쾌하다. 노동과 환경 정책 이슈에 대한 분석 글을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이 써주었다.
2016년의 노동건강연대 활동을 지배한 것은 메탄올 사건이었다. 기자회견과 인터뷰, 언론기고, 실태조사 등 다양한 활동이 쉼 없이 이어졌다. 사건 발생 1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 있었던 박혜영, 전수경 두 활동가와 함께 사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정부와 노동계, 전문가들의 대응은 적절했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할지에 대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대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도와 정부, 파견노동, 산재보험이라는 키워드로 간략한 분석글을 덧붙였다. 또한 오마이뉴스와 함께 진행한 다음스토리펀딩과 토크콘서트의 뒷이야기를 실어서, 이 사건이 현재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여섯 청년 노동자들의 삶이 시시각각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박진욱 회원이 미국 플린트 시의 수돗물 오염 사태와 주민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전수경 활동가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참여적 지식인 김동춘 교수의 새 책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에 대한 서평을 써주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에서 수돗물 오염이라니, 의아한 일이지만 글을 읽어보면 그 전말을 알 수 있다. 또한 서평을 읽고 나면, 서평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기획할 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은데 막상 원고가 다 정리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완벽한 작품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위안을 하며, 그래도 최선의 노력이라는 변명과 함께 독자들에게 책을 내놓는다.
[노동과 건강] 무크지는 앞으로도 계속될 진행형 프로젝트다. 이는 현재의 회원들, 그리고 미래의 회원들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도전적인 문제제기, 전문성을 발휘한 분석 글, 이 모두를 환영한다.
- 그리고, 일부 원고는 지난 여름에 씌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서 변화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로 싣게 된 글도 있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