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위험은 불평등하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10년을 함께 하는 기업들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우정사업본부 현대중공업 삼성물산 대림산업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사조산업 SK건설 원진레이온 한국철도공사 현대산업개발 현대자동차 두산건설 대우조선해양 동부건설 유성엔지니어링 현대제철)
지난 10년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20대 기업 명단입니다.
노동건강연대 편집국
대우, 현대, GS, LG...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적혀진 위의 표는 역대 최악의 살인기업의 명단이다. 우리 사회는 단 하루에만 5~8명 이상의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일로 인해 그 삶을 잃어가는 나라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은 왜 하죠?
- 기업이 저지르는 ‘살인’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2006년 4월, 국내 노동단체들은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만들고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시작한다. 2015년,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는 이 행사는 왜 기획 되었을까?
처음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시작한 2006년 당시, 한 해 평균 25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죽고 있었고, 다치는 사람은 통계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일을 해 왔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다가 죽고, 건물을 올리다가 죽고, 배를 만들다가 죽었다. 전국에 우후죽순 세워진 공단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병에 걸리면서 물건을 만들었고, 그 노동자들은 수출의 역군이 되었다. 역사에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은 죽고 병든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기업은 날로 성장했고 어떤 기업은 세계로 그 무대를 옮길 만큼 경쟁력이 강해지기도 했다.20
출처 : 고용노동부, 2012년 산업재해 현황분석 책자 재가공
- 블로그 자료로 본 한국, 한국인
(http://plug.hani.co.kr/data/textyle/1734973)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세련되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일을 하다가 사망하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다. IT 강국이라는 멋진 표현과, 산재사망 OECD 1위의 타이틀이 공존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일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미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산재사망은 70% 이상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쏟아내었고, 일을 하다가 죽는 일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결과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인식에 이르렀고, 영국, 호주 등 몇몇 나라는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제정해 제대로 산재사망을 예방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을 ‘살인죄’로 처벌하기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선 상징적인 처벌이 있었다. 이마트에서 4명의 하청 노동자가 질식한 사건에 벌금 100만원을 부과한 것이다.
아직 한국 기업이 안전을 챙기기에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전 세계를 휩쓸어 한국의 대기업들이 홈페이지와 홍보물에까지 들어가는 세상에 모순됨이 있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가장 첫 번째 항목으로 지목하는 책임은, 바로 그 기업을 구성하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파란이었다. 국민을 먹고 살게 해주는 버팀목이라 여겨졌던 기업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니.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보자. 추락, 끼임, 화재, 질식과 같은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새로이 지어 올리는 아파트 구조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비계 시스템이 있다면? 똑같은 아파트를 건설하더라도 독일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떨어질 일이 없고,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수도 없이 떨어져 죽고 있다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공사(시공사 GS건설) 당시 있었던 폭발 사고를 떠올려보자. 공기단축을 위해 용접과 도장작업을 동시에 시켰다. 빈 공간을 가득 매운 인화성 가스가 용접 불꽃에 폭발했다. 지하공간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4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동시에 GS건설은, 건설현장에 붙어있던 건설사 로고를 떼어내고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후진적 사건이었다. 원청에서 일정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서 두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최악의 살인기업’을 사회로 불러낸다. 어떤 기업이 ‘살인기업’인지를 사회적으로 공표함으로써, 기업에는 그 책임을 묻고 앞으로의 사고를 예방하도록 경고를 하며, 정부에는 제대로 된 처벌을 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최악의 살인기업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매년 4월 28일, 세계 110여개 나라에서는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가 열린다. 13개 나라는 국가가 공휴일로 지정해 온 국민이 함께 일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넋을 기리고, 미국에선 매년 대통령이 성명을 낸다. 미국을 만들고 세운 노동자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선 노동조합과 단체들을 중심으로 살인기업선정식과 각종 추모 행사가 열린다. 유독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노동자가 켜켜이 많은 나라지만, 아직까지 국가에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은 지난 10년 동안 매우 엄격했다. 해가 쌓일수록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행사장소에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행사 며칠 전부터 어디가 1위인지 묻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자신들이 가진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지 꼼꼼히 따져보기 때문에, 그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 선정기준
노동부가 매년 산재보험 자료를 근거로 집계하는 ‘사업장별 산재사망자 현황’을 바탕으로 한다. 한 해에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기 때문에, 기업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거친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라도, 사망한 장소를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원청 대기업을 알 수 있다.
* 다단계 하청구조가 여러 단계인 경우 정확한 원청기업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산재보험 처리를 하지 않는 교통사고 사망 등에 대해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으므로 집계되지 않는다.
2010년부터는 건설부문과 제조부문으로 나누었다. 건설업 노동자의 사망이 압도적으로 높아 제조업과 분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과 함께 수여되는 특별상은 지난해 가장 상징적이지만 순위에 들어가지 못하는 기업 등을 선정했고, 2012년부터는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하고 있다.
2012년 살인기업 선정식 특별상 온라인 투표 페이지
- 백혈병 문제 등 직업병으로 산재사망 통계에 안잡히는 삼성이 1위를 차지했다.
세월호와 최악의 살인기업 10주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기업과 정부가 꾸준하게 키워왔던 위험은 이제 일터에서 모든 곳으로 확장되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은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10해가 되는 해였다. 지난 10년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산재사망 50대 기업과 시민생명을 위협한 기업을 선정했다.
순위
기업
사망자수
1
현대건설
110
10
SK 건설
53
2
대우건설
102
12
원진레이온
50
3
GS 건설
101
13
한국철도공사
47
4
우정사업본부
75
14
현대산업개발
45
5
현대중공업
74
현대자동차
6
삼성물산(주)건설부문
69
16
두산건설
44
7
대림산업
62
17
대우조선해양
39
8
롯데건설
61
18
동부건설
38
9
포스코건설/건설일괄
59
19
유성엔지니어링
37
사조산업(오룡호)
현대제철
* 지난 10년 산재사망 20대 기업
다음 10개의 기업은 노동자와 시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상징적인 기업들이다.
지난 10년, 어떤 기업이 우리를 죽게 하고 위험에 빠트렸는지 확인해보시길.
특집 1 위험은 불평등한다
우리는 왜 그들을 고발해야 하는가?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2011년 7월 2일. 이마트 지하 기계실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노동자 중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 중이던 대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1년 내내 청바지 한 벌로 살아도 한마디 불평도 않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착한 아들과 작별 인사도 미처 하지 못한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누구든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런 절박함에서 산재 사망에 대한 사업주 고발 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거창한 성과나 눈에 띠는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산재 사망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고, 그 책임을 져야할 사업주들이 면죄부를 받고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는 것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자는 것이었다. 사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책임지는 자는 없는 현실이 연일 반복되고 있었지만,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그 영문조차 제대로 몰랐다. 부실한 수사를 해도 무죄를 결정해도 비판받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산재 사망을 야기한 많은 기업들을 고발했지만, 그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 실망스러웠다. 기업의 부실한 관리에 기인해 노동자가 죽었음이 명백했으나 벌금형이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마저도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기업 원청이나 최고경영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기 일쑤였고, 하청이나 중간관리자들만 처벌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발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산재 사망은 굳이 우리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노동부가 조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회의와 논쟁 속에서 고발은 계속되었다. 노동부 조사 과정에 고발인으로 출석해 고발의 취지와 시민사회가 주시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동일하게 반복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노동부와 검찰의 법 논리상 문제점을 확인하고 비판했다. 고발인으로서 기소이유와 불기소이유를 통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LG화학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다이옥산이 담겨있던 드럼통이 폭발해 20대 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사고를 당한 7명의 노동자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청주지방법원은 상무를 비롯한 관리자들에게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고, 기업에 대해서도 3,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비록 처벌 대상에서 대표이사는 제외되었지만, 그 처벌 수위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대기업은 새로운 재료를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이익을 추구하기에만 급급하였고 새로운 공정에 관하여 엄격하게 안전 점검을 하거나 안전 수칙을 세우고 관련 교육을 하는 부분은 소홀히 하여 위와 같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되었는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앞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개발과 경쟁 논리에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를 기원한다.”
청주지방법원 2013.4.11.선고 2012고단2521 2013고단409(병합) 판결
당시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면서 아래와 같은 엄중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판결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본다.
최근에는 이 보다 진일보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4년 4월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울산지방법원은 하청업체 대표뿐만 아니라 원청인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에게도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원청 대표는 아예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처벌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쳤던 그간의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판결이었다.
<표> 과거 유사 사건 형량과 현대미포조선 사건 형량 비교
사건번호
피해 규모
판결 결과 (형량)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원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원
창원지법
2011노756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원
하청 회사 벌금 300만원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 회사 무죄
울산지법
2011고단2571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인천지법
2011고단2202
하청 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 회사 각 벌금 1000만원
2011고정578
하청 현장소장, 하청 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원
2015고단295
하청 대표 징역 6개월 (짐행유예 2년)
하청 회사 벌금 500만원
원청 대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원청 회사 벌금 500만원
주)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의 표와 새로운 내용 합쳐 표를 재구성
물론, 이 같은 변화들이 그간의 고발 운동의 결과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일지 모른다. 그러나 고발인들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기소 이유가 되었든 불기소 이유가 되었든 고발인들이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비판할 것이란 부담이 상당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부담과 불편함이 작은 변화에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노동부, 검찰, 법원에 일종의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항상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누군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고, 누군가 그들의 불기소 이유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들의 판결문을 차분히 모아놓고 살펴보고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쌓여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은 비로소 움직인다.
하기에, 우리는 계속 그들을 고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