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위험은 불평등하다
고발전문 단체?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일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2011년 7월 2일. 이마트 지하 기계실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노동자 중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 중이던 대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1년 내내 청바지 한 벌로 살아도 한마디 불평도 않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착한 아들과 작별 인사도 미처 하지 못한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누구든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런 절박함에서 산재 사망에 대한 사업주 고발 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거창한 성과나 눈에 띠는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산재 사망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고, 그 책임을 져야할 사업주들이 면죄부를 받고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는 것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자는 것이었다. 사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책임지는 자는 없는 현실이 연일 반복되고 있었지만,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그 영문조차 제대로 몰랐다. 부실한 수사를 해도 무죄를 결정해도 비판받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산재 사망을 야기한 많은 기업들을 고발했지만, 그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 실망스러웠다. 기업의 부실한 관리에 기인해 노동자가 죽었음이 명백했으나 벌금형이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마저도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기업 원청이나 최고경영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기 일쑤였고, 하청이나 중간관리자들만 처벌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발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산재 사망은 굳이 우리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노동부가 조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회의와 논쟁 속에서 고발은 계속되었다. 노동부 조사 과정에 고발인으로 출석해 고발의 취지와 시민사회가 주시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동일하게 반복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노동부와 검찰의 법 논리상 문제점을 확인하고 비판했다. 고발인으로서 기소이유와 불기소이유를 통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LG화학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다이옥산이 담겨있던 드럼통이 폭발해 20대 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사고를 당한 7명의 노동자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청주지방법원은 상무를 비롯한 관리자들에게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고, 기업에 대해서도 3,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비록 처벌 대상에서 대표이사는 제외되었지만, 그 처벌 수위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면서 아래와 같은 엄중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판결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본다.
“대기업은 새로운 재료를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이익을 추구하기에만 급급하였고 새로운 공정에 관하여 엄격하게 안전 점검을 하거나 안전 수칙을 세우고 관련 교육을 하는 부분은 소홀히 하여 위와 같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되었는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앞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개발과 경쟁 논리에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를 기원한다.”
청주지방법원 2013.4.11.선고 2012고단2521 2013고단409(병합) 판결
최근에는 이 보다 진일보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4년 4월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울산지방법원은 하청업체 대표뿐만 아니라 원청인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에게도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원청 대표는 아예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처벌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쳤던 그간의 처벌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판결이었다.
<표> 과거 유사 사건 형량과 현대미포조선 사건 형량 비교
사건번호
피해 규모
판결 결과 (형량)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원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원
창원지법
2011노756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원
하청 회사 벌금 300만원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 회사 무죄
울산지법
2011고단2571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원
인천지법
2011고단2202
하청 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 회사 각 벌금 1000만원
2011고정578
하청 현장소장, 하청 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원
2015고단295
하청 대표 징역 6개월 (짐행유예 2년)
하청 회사 벌금 500만원
원청 대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원청 회사 벌금 500만원
주)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의 표와 새로운 내용 합쳐 표를 재구성
물론, 이 같은 변화들이 그간의 고발 운동의 결과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일지 모른다. 그러나 고발인들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동부, 검찰, 법원에게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기소 이유가 되었든 불기소 이유가 되었든 고발인들이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비판할 것이란 부담이 상당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부담과 불편함이 작은 변화에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노동부, 검찰, 법원에 일종의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항상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누군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고, 누군가 그들의 불기소 이유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들의 판결문을 차분히 모아놓고 살펴보고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쌓여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노동부, 검찰, 법원은 비로소 움직인다.
하기에, 우리는 계속 그들을 고발해야만 한다.
2015 하반기 정부동향
시간제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감정노동자와 관련된
산재보험법 시행령, 시행규칙 입법예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2일(월), 시간제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감정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보호를 확대하는 등의「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및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시행규칙」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첫째, 복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산재보상 시 재해 사업장뿐 아니라 재해 당시 근무하던 다른 사업장의 임금도 합산해서 평균임금을 산정하게 개정되었다.
둘째, 대출모집인 등 3개 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추가적으로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가 적용되는 직종은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전속 퀵서비스 기사였으나, 대출모집인, 카드모집인, 전속 대리운전기사가 추가되며 보험료는 사업주와 종사자가 절반씩 부담하게 된다. 여러 업체의 콜을 받아 일을 하는 비전속 대리운전기사는 ‘중․소기업 사업주 특례’에 추가되어, 보험료는 본인이 부담하고 산재보험에 임의가입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산재보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병’이 추가되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산재보험 보상이 확대된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소음성 난청 특례평균임금 적용기준일을 다른 직업병처럼 진단서나 소견서의 발급일로 변경하고, 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산재의료기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확대 등이 담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정부안으로 국회에 계류 중
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확대되고, 작업중인 근로자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가 미흡하다고 여겨질 경우 사업주에게 추가 조치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부에 의해 제출되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도급사업에서 수급인 근로자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도급인의 의무가 강화된다. 도급인(원청)이 사업장내에서 수급인(하청)과 함께 안전․ 보건조치를 해야하는 장소가 확대된다. 도급인이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 유해위험 장소는 현재 20곳으로 한정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도급인의 사업목적 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든 작업으로 확대된다.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은 도급인에 대한 벌금 부과도 조정된다. 기존에는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도급인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재해예방 의무를 도급인과 수급인이 공동으로 진다는 점을 감안하여 수급인과 동일한 수준인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며 산업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근로자의 건강에 유해한 작업을 할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은 후에 사내 도급을 줄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도급 인가의 유효기간이 없어 사후관리 부실로 인한 근로자 건강 장해의 우려가 있어 인가 기간을 3년 이내로 설정하였으며, 기간 만료 시 연장 신청을 통해 다시 인가를 받고, 시설 변경 등 기존 인가받은 사항에 변동이 있을 때에는 변경인가를 받게 할 예정이다.
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어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를 하였으나 미흡하다고 여겨질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추가로 안전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불응하는 경우 근로자는 위험 상황을 고용노동부에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아울러, 위험 상황에서 대피 또는 신고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사업주에게는 과태료(1천만원 이하)를 부과하는 근거규정도 마련하였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지방노동관서에 보고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 부과금액이 1,000만 원 이하에서 1,500만 원 이하로 상향된다. 나아가 산업재해 중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를 보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한편, 종합적․체계적인 재해예방 활동을 위해 화학물질 유통량, 기계의 안전검사 정보 등 재해 예방에 필요한 사업장 기본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 통합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근거도 마련하였다.
진료실 이야기
현명한 건강검진
김정민 / 청주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출장검진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검자들이 밀려들어 시장통 같은 분위기 속에 중년의 남성이 나에게 물었다. “검사(문진) 항목에 ‘정상’이라고 체크하셨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적습니까?”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비정상’적인 소견이 없으니 ‘정상’입니다.” 검진이 부실한 것 같아 물었을 그에게 나는 이상한 선문답을 하고 말았다. 역학교과서에서 읽었던 글귀가 갑자기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없는 정상인이란 충분히 검사받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a normal individual is a person who has not been sufficiently examined).”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 주인공 헥터는 ‘때론 진실을 모르는 게 행복일 수 있다’고 행복의 팁을 전한다. 갑상선암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아내고 있는 한국에서 곰곰 생각해볼 말이다. 검사 항목이 많을수록, 검사가 비쌀수록, 문제를 많이 찾아낼수록 좋은 검진일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흔히 쓰게 되는 단어가 ‘과잉’이다. ‘정상과 비정상’만큼이나 ‘적정과 과잉’이라는 대응은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분명 과잉 진단은 존재하고 유해한 추가 검사와 과잉 치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액셀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다뤄야 하듯, 유익한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필요한 검사와 불필요한 검사를 구별할 줄 아는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가 필요하다. 또 무슨 공부를 하라는 거냐는 귀차니즘이 발동한다면 건강검진은 국가건강검진이면 충분하다고 정리해도 괜찮겠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일반 검진과 암 검진만 충실히 받아도 당신은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검진의사로 일하면서 수검자에게 자주 언급하는 주의 사항이 있다. 1) 검진은 증상이 없는 정상인이 받는 것이다. 일단 몸에 이상이 느껴져 불안하다면 동네 주치의를 찾거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2) 검사를 위해 금식이 필요하더라도 당뇨약을 제외한 필수적인 처방약(혈압약 등)은 아침 일찍 소량의 맹물로 복용해도 좋다. 물론 주치의와 상의하는 게 기본이다. 3) 위암 검진은 위장조영검사보다 위내시경검사가 좋다. 4) 대장내시경검사에서 정상이라고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5년 뒤에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으면 충분하다. 5) ‘수면’내시경검사는 틀린 용어다. ‘진정’내시경검사가 바른 용어다. 푹 자고 일어났다면 사실 진정제 용량이 과했던 것이다. 6) 방사선 노출이 많은 CT 검사는 피해야 한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그렇다. 7) 종양표지자검사라는 혈액검사도 피해야 한다. 결국 수치가 정상보다 높지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결과를 듣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이 딱 맞다.
2012년부터 미국에서는 ABIM(미국내과의사인증기구) 재단을 중심으로 70여 개의 전문학회가 참여한 ‘현명한 의료이용(Choosing Wisely)’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과잉 진단과 불필요한 치료를 막기 위해 의사와 환자에게 표준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 2014년 이런 ABIM 재단에서 미국 의사 600명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하게 되는 이유를 물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1) 의료사고가 걱정돼서(52%), 2) 혹시 모르니까(36%), 3) 환자를 안심시킬 정보를 얻기 위해(30%), 4) 환자가 거듭 요구하니까(28%), 5)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23%), 6) 최종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으니까(13%), 7) 환자와 충분히 상담할 시간이 없어서(13%), 8) 수입을 위해서(5%), 9) 새로운 기술이라서(5%). 불필요한 검사가 의사의 방어적 목적이나 환자의 요구로 인해 실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가 불안하니 건강에 대한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료 이용자가 성숙해져야 과잉 진단(검진)을 막을 수 있다. 새삼 ‘불행을 피하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아니’라는 헥터의 조언을 되새겨 본다.
특집2 젊다고 건강한건 아니다
헬조선시대, 청년의 노동과 건강
김철주 / 노동건강연대
1. 들어가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근본체제를 뒤흔들어놓게 된다.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정이 늘어나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일자리에 뛰어들게 되었고, 사업장에서는 기존 인력 감축을 자제하는 대신, 향후 기업 신규 채용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으로 뽑는 것을 노사가 합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97년 이후 청년들은 일찍부터 산업전선에 뛰어들고 이들이 차지한 자리는 대부분 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직이 된다. 이로 인해 청년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문제가 심화되고, 청년노동자의 특성을 연구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청년노동자의 고용기간이 짧은 특성으로 인해 업무상 질병재해보다 사고성 재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성 재해 중에서 사망은 2014년 산재통계에 의하면 24세 이하의 경우 31명이다. 이 중에서 11명이 오토바이 배달로 인한 사고였다. 2011년 청년유니온의 사회적 문제제기로 ‘30분 배달제’가 폐지되었지만 배달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재해자는 2014년 기준으로 24세 이하가 3,660명이다. 전체 재해자 중에서 큰 부분은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선진국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경미한 사고재해는 성인노동자보다 청년노동자에게 더 잘 일어나고, 우리나라 산재통계가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며 청년노동자의 사회적 발언권이 약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은폐된 수많은 재해가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글에서는 주로 어떠한 특성이 청년노동자에게 업무상 사고재해를 일으키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기술하고자 한다.
청년노동자는 대부분의 법에서 채택하는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24세 이하도 18세 미만과 업무적 특성이 비슷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24세 이하로도 규정한다. 이글에서는 후자의 정의를 사용한다.
2. 업무상 사고재해를 유발하는 청년노동의 특성
패스트푸드점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노동자는 캐셔업무뿐만 아니라 조리, 청소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단기근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다양하고 이는 업무상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성인노동자의 위험업무를 청년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밝히고 있다. 청년노동자의 업무는 대부분 임시직이고 이로 인해 업무통제권과 자율성이 떨어지며, 결과적으로 사고 위험성을 줄이는 조절능력이 떨어져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청년노동자의 개별적인 특성이 업무상 사고재해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몸집이 작은 경우 성인에 맞추어져 개발된 장비나 공구를 사용하게 되면 사고위험성이 높아진다. 두뇌발달에 있어서 전전두엽 피질의 성숙지연으로 자기감정조절 발달이 지연되거나 림빅 시스템이 관여하는 보상심리의 변이 또한 사고 위험성을 높인다. 상황에 따라 사고위험성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혼자 일할 때는 성인에 비해 사고위험성이 높게 나타나지 않지만 또래 집단과 함께 일할 때 사고위험성이 높아진다. 약물을 복용하거나 헬멧을 쓰지 않는 등의 위험행동을 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고발생률이 네 배나 높다. 남성의 경우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성상을 과시하기 위하여 이른 나이에 높은 근력이 요구되는 업무를 수행하거나 안전에 소홀한 경우도 있다. 어떤 연구에서는 17세에서 18세의 청년노동자들이 더 어린 경우보다 사고발생률이 높게 나온다.
작업 특성 중에서는 비효율적인 작업배치, 빈번한 위험노출, 과중한 노동, 관리자의 안전에 대한 의지결여 등이, 인구통계학적 특성 중에서는 인종적 소수자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사고발생률을 높이는 인자로 조사되었다.
3. 청년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활동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제정된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노동법, 국립직업안전연구소의 안전보건기술지침으로 청년노동을 보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2007년을 기준으로 15세부터 19세의 청년노동자의 상해를 10% 줄이기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산하기관인 국립직업안전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민간기관과 함께 ‘청년노동 업무상 사고재해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펀드를 설립하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부 또한 웹사이트에 청년노동에 관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지역 센타에서 수행하는 안전교육을 강화하였다. 민간기관에서는 보험회사가 중심이 되어 청년노동자의 안전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캐나다
미국과 다르게 연방정부에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상세한 내용은 주정부가 정하고 있다. 캐나다 산재보상위원회연맹에서는 청년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문제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National Government/WCB Young Worker Health & Safety Initiatives/Program Inventory 2012-2013’를 발간하였고 여기에는 각각 청년노동자, 사업주, 부모와 후견인,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부적인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한국
근로기준법에 청년노동에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으나 5인 미만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법적인 구속력이 떨어진다. 또한 관련된 안전보건기술지침도 없고 정부 차원의 정보제공도 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노동자라는 인식보다 학생이라는 인식이 강해 일부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청년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문제는 중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4. 앞으로의 방향
우리나라는 청년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문제에 관한 정부차원의 실태자료가 없다. 산재통계자료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특성상 사망사고 이외에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경우만 신청할 수 있는 산재의 특성 때문에 많은 재해들이 누락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감시체계를 구축해서 정보를 축적해야 하고 이를 통해 각종 정책의 근본이 되는 실태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이를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중심이 되는 기관과 인력이 있어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이를 담당해야 하는데 연구인력이 부족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울산으로 이전한 후에는 퇴사자가 늘어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의제 발굴은 점점 요원해져 선진국에서 20년 전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청년노동에 관한 안전보건기술지침 하나도 못 만들고 있다. 연구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우수연구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연구원의 특성상 수도권 이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년노동자는 수많은 재해 사고를 당하고 있고, 임금체불부터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또한 청년노동참가율은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대학진학률로 인해 아직까지 청년의 대다수가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경제침체와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로 인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므로 청년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나 서서 일 하는 노동자, 감정노동자처럼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청년노동은 우리사회의 주요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청년이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가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청년노동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성인노동자가 먼저 보호받아야 한다. 현재 노동 현장의 대다수가 외주화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문제에 심각하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외에도 낮은 노조조직률, 정부차원의 근로감독의 부재 등의 요인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2015 서울노동권익센터‘나와 노동’강연/
알바노동 십계명 프로그램 참가 후기
잉여와 자립, 그리고 노동
-정섭, 충남대학교 의학과 본과 1학년
학부를 졸업하기 이전에 하던 청소노동자 한글/컴퓨터 교실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단체 메시지방에 예전 간사분께서 이번 나와노동 프로그램을 올렸고, 마침 방학 때 할 게 동아리 일정 빼고는 별로 없던 차에 강연이나 한 번 가 볼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1주일치와 3주일치의 강연과 프로그램을 날려먹는 쪽으로 스케쥴이 진행되어 버렸지만요 --;
7월 초에 기말고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니 마침 2주차 류동민 선생님 강연이 시작되던 타이밍이었습니다. 1주차 김진숙 위원장님의 강연과 3주차 이수정 노무사님의 강연을 놓친 것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사실 장기간 아르바이트나 과외로 생활을 유지해보았던 적이 없는 저로서는 김진숙 위원장님의 투쟁 경험이나 실제 일을 하면서 부닥껴야 하는 현실을 알려주셨을 이수정 노무사님의 강연이 아쉬웠습니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하고 팀 프로젝트에서 놓친 것들은 메신저 대화 방에 노동건강연대 간사님께서 올려주신 프로젝트 진행 사진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알바노동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재해들의 목록을 보니 학부를 졸업하고 의학과에 입학하기 이전의 겨울방학 시간에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보던 아르바이트들의 여러 목록이 떠올랐습니다. 한창 할 일이 없던 차에 보았던 아르바이트들은 대체로 택배 상하차, 까페, 빵집, 편의점 등의 아르바이트들이었습니다. 대체로 시급이 5-6000원 정도 되었고 하루에 6시간, 8시간 정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주말동안 일해서 24만원정도 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신청을 했는데 어째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죄다 떨어졌었는지 좀 그랬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이전에 했던 아르바이트는 번역, 학교 강의실 조교와 같은 그렇게 힘들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의 아르바이트를 찾던 경험에서 그 자체로 그렇지만 자신의 생활을 지탱하고 그것으로 자립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적어도 학부를 다니고 있거나 막 학부를 졸업한 청년 입장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학부를 다닐 때 보았던 많은 여러 교지들에서도 그러한 의미에서의 노동과 자립을 많이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저는 학부 등록금과 생활비, 주거비 및 지금의 의학과 등록금을 모두 다 지원받고 있는 청년의 입장에서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소위 서울의 명문 학부를 다니고 있는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잉여롭다고 하는 청년들, 그리고 아마 제 자신도 그에 대해 그런 쪽에 속할 것입니다. 사실 저희들은 그러한 것에 무감각해진 편이라기보다는 저희들에 대해 절대적인 물주인 ‘엄빠’ 부모님들과 그 사이에서의 신경증과 가족 갈등, 폭력이라고 볼 수 있을 온갖 그 사이의 강요와 신경전, 우울증에 익숙해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멀쩡한 척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생활을 하는.
카드뉴스를 만든 것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일으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만들면서 학습해가고, 배워가는 과정들,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들 등 사소한 배움 들과 아르바이트 경험, 이주노동자 지원을 위해 일했던 경험들 등을 얘기하고 나누면서 말했던 소소한 웃음들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사실 잊어먹게 되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모이면 됨..)
‘잉여’로 있는 사람들에서 연대에 대한 욕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런저런 일상만화보다는 ‘단지’ 등의 일상의 폭력 문제를 다루는 웹툰들을 더 좋아하고 ‘송곳’을 잠깐잠깐 챙겨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욕망을 끌어낼 수 있다면, 같이 무언가를 조금씩 꾸며볼 수 있다면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러한 모임들이 잘 나오다 보면 교육 프로그램과 정당활동, 또는 옛날 식의 패기 넘치는 정치 비전이나 기획이 2015년도에 나름대로 맞는 버전으로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잉여’롭다는 두루뭉술한 좌절감과 권태로움의 안개와 자신이 ‘잉여’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존재적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보다 여러 동시대인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통을 함께하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연대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까지 거창한 일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교육을 받는 것도 연대의 일환이겠죠.
사람들과 함께 에너지를 얻어가는 일이 즐겁습니다. 아마도 노동자 분들이나 실제 알바를 하고 계신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는 일이 즐겁다면, 그리고 그러한 것이 활동이라면, 활동을 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을 계속 해보고 싶습니다. 전문의로서 있다 치더라두요. 다만 참가자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노동자 보건의 실태 교육이나 감수성 교육 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았었으면 했는데, 아마도 그랬으면 저는 학기를 못다녔을 것 같기도 하고 -_-;; 좋은 분들을 뵈고 무언가를 잠시 해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뵐 수 있기를 바래요!
특집2 젊다고 건강한건 아니다 [나와 노동]과 '알바 건강 10계명'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2015년 7월 1일부터 4주간에 걸쳐 서울노동권익센터와 함께 청년을 위한 노동권리찾기 [나와노동] 강연과 팀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강의 후 프로젝트 팀인 ‘알바 건강 10계명’ 카드뉴스 팀은 사회복지과 대학생들, 의대생들, 영양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알바하며 에너지드링크를 물처럼 마시는 청년, 젊다고 건강할까?” 라는 질문을 통해 모인 프로젝트팀은 사례 및 관련 자료 세미나 등에 함께 했는데, 정해진 시간을 늘 지나고 모일 때 마다 밤 12시까지 대화를 나누었다는 후문입니다.
4주에 걸친 강연과 토론 끝에 참가자들이 직접 밤을 새워가며 만든 알바노동자를 위한 카드뉴스를 소개합니다. 카드뉴스는 5주차 발표를 거친 후 페이스북에 공개 되었으며,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공유하고 돌려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중 노동건강연대 회원이 된 오정섭 군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카드뉴스]
아르바이트 500만 시대, 만약 일을 하다 다친다면?
하해성활동가의 희망노가리
반말이 존댓말이 되게 한 힘, 기승전 노동조합
하해성 /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조직부장
드라마 송곳이 생각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까루프 투쟁을 넘어 이랜드 투쟁 과정까지 다뤄 주길 바랐지만 까루프 투쟁의 본격적 과정도 축약되며 막을 내렸다. 아쉽다. 하지만 원작자 최규석에 의해 깊이 있게 다뤄진 노동조합의 정당성과 속살 같은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을 소개한 성과가 있었다. 직장과 노사관계에 대한 성찰적 대사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래서 고민이 생겼다. 노동조합을 소개하려는 ‘희망노가리’ 입장에서는 소재나 밑천이 다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작가들처럼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과 언어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노가리는 노가리 일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듯이 노동조합이 경험하는 수많은 상황들을 풀어가다 보면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글을 시작한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 졌다. 추워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농성장의 투쟁하는 동지들과 새벽에 나와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이다. 특히 2013년 겨울에 만난 한 조합원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신생분회가 있는 대학의 미화 소장이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아침 일찍 현장 순회를 하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한 조합원을 만났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한 겨울이었는데도 반팔 티에 땀을 엄청 흘리고 있었다.
웬 땀을 이렇게 흘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뇨, 어제 행사가 있어서 오늘 유난히 치울게 많아서 그래요. 하신다. 한 겨울에 난방도 아직 켜지 않은 아침 7시에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것이 안쓰러워. 다시 말을 건넸다.
아유, 조금 쉬어 가면서 하세요.
쉬엄쉬엄 하면 저도 좋죠, 하지만 그러면 학생들 오기 전에 일을 다 못 끝내요. 첫 차를 타고와도 시간 내에 끝내려면 뛰어다녀야해...
대화를 하느라 잠시 멈춰서 땀을 훔치시며 하시는 말씀에 내가 쉬는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더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한 겨울에도 땀을 흘리던 그분을 보며 더운 날씨에는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했었다. 그날 이후 날이 추워지면 농성하는 동지들과 함께 새벽에 나와 일하시는 조합원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노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유급으로 계산되는 시간보다 1~2시간 일찍 출근 한다. 일찍 오지 않으면 자신의 할당 구역을 제대로 청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찍 출근해서도 정신없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고 만다. 땀에 전 옷으로 일하기 힘들어 여벌 티를 갖고 와서 옷을 갈아 입어가며 일을 하시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통의 청소노동자들은 정규직들이 업무를 시작하거나 학교의 경우 수업이 시작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용역회사들은 그런 청소노동자들이 아침 청소를 마치고 쉬는 시간을 무급으로 계산하기 일쑤다. 점심시간을 무급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아침식사 시간도 무급이라는 논리다. 정시보다 일찍 출근해서 노동한 것에 대해서는 임금을 주지 않고, 다음 노동을 위해 필요한 회복 시간도 무급으로 계산한다. 시간 안에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을 준 자신들의 잘못은 철저히 외면한다. 노동부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들이 교통카드 이용기록, 카드 출입기의 기록으로 정시 출근시간 보다 1시간 이상 조기출근하고 있음을 입증해도 노동부는 번번이 사용자의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노동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노동시간을 제대로 계산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의 몫이다.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에 맞게 임금을 계산하도록 만들어야 정상적인 임금이 지급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을 바로잡는 과정도 쉽지 않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무료노동으로 누리고 있던 이익을 결코 내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필요할 경우 준법투쟁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준법투쟁은 정해진 출근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조합원들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있다. 준법투쟁을 조합원 총회를 통해 결정해도 조합원들이 쉽게 따라주지 못한다. 일단 정시출근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시 출근하고서도 담당구역 청소는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 다니신다. 너무 서두르다가 다치는 분들도 나온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원성이 나온다. 청소를 다 못해도 되니 평상시 하시던 속도로 일을 하시라고 말씀드리면 대답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지만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열심히 일하던 습관, 맡은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래도 돈 받고 일을 하는데 맡은 일은 잘 해야죠.’라는 공자님 말씀이 돌아온다. 그래서 노동시간 정상화를 위한 단체협약이 쉽지 않다.
그래도 결국 원하는 단협을 하나씩 쟁취해 나가고 있다. 꾸준한 교양과 타 노동조합의 사례들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면 하나 둘 성취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권리 위에 잠자고 있어서는 안 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리를 자신이 직접 누리기 위해서는 권리의 맛을 보아야 한다. 일상 활동, 교육 그리고 실천투쟁으로 만들어진 조합원의 권리의식 수준이 그 단위 조합의 실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조합의 실력이 교섭력으로 이어져 좋은 단체협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좋은 단체협약은 조합의 건강한 발전의 토대가 된다. 선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임금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시작하지만 선순환이 진행되면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누리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최근에는 서울신문사와 언론진흥재단이 있는 건물의 청소노동자들이 수년간 중간착취를 해오던 소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투쟁을 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소장이 일상적으로 해오던 반말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퇴근할 때 반말하지 말라고 한마디 해줬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조합원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두려워하며 눈 마주치기도 싫었던 상대에게 당당하게 반말하지 말라고 요구할 때 얼마나 떨리면서도 짜릿했을지 상상이 간다.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근로조건 변화 이상으로 중요한 노동조합이 만드는 변화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청소, 경비 노동자가 대부분이라 모두 새벽같이 일을 시작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낮에 하는 집회는 참가가 가능해도 저녁에 시작하는 촛불집회나 문화제는 조직이 어려운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3달 넘게 매주 금요일 저녁 한 분회씩 돌아가며 연대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 고공농성 승리를 위한 금요문화제에 매주 참석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쟁 사업장 모두와 연대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한 곳이라도 꾸준히 연대하자고 결의한 것이 8월 말이었다. 11월 중순이 넘어가자 추위가 닥쳐왔다. 게다가 한번은 문화제가 있는 날 낮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처음 문화제를 시작할 때는 정말 사람이 너무 적어 고공농성 중인 한규협, 최정명 동지가 힘 빠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다행히 문화제를 마칠 때는 제법 많은 참가자가 모였다. 문화제를 마친 후 한 조합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비가 오니까 오늘 가지 말자는 말을 했는데, 누가 ‘저 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해서 오게 됐어요. 와서 보니 어떻게 저기서 버티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많은 사람들이 비 맞으며 함께하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자리에 우리 분회가 와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다른 한 분회 일꾼들은 이렇게 꾸준히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조합에 가입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거창하게 연대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끼리 하나의 목표를 향해 행동하면서 느끼는 일체감과 자부심 이것이 노동조합이 주는 또 다른 보상이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 같이 내 결론이 단순하다고 한다. 무조건 노동조합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하면 기승전 노동조합이다. 노동자의 인권이든 청년실업 문제든 심지어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노동조합이 바로 서면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결론이란다. 사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상근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고 상담하게 되면서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 진다. 복잡한 문제가 얽힌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만이 해결방안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이 이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는다.
노동조합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운영 과정에서 미흡할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송곳’에서 보듯이 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 지기도 한다. 직장에서 감정통일이 안되면 서로 피할 수 있지만, 같은 노동조합에서는 관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문제가 크고, 아픔이 깊다. 그래서 성공적인 조합 활동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의 어려움과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여러 무리 중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한 사람이 아니라, 어둠의 장막을 뚫어 사회에 빛을 끌어오는 송곳이 되는 그런 노동조합을 만들자.
노동법이야기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 만든다고?
김한울 / 공인노무사
필자는 대학 졸업을 앞둔 이른바 “청년(靑年)”이다. 청년(靑年)이란 ‘신체적 ·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주-NAVER 국어사전 참조]을 지칭한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靑年)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들은 온통 청년 백수, 청년 실업 등 ‘자기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청년(靑年)’이라는 단어 뒤에 ‘문제(問題)’가 따라 붙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심지어 모든 사회문제의 표상으로서 20대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시 되고 있으며, 이들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그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에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청년 고용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노동시장을 수술대 위에 올려두고 메스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필자의 지인들은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하여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 시대의 최대 문제아인 청년들이다. 정부가 가장 핵심과제로 삼아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에도, 즉 청년들의 밥벌이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정작 청년들은 큰 관심이 없다. 실제로 필자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지인들에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그 내용을 모르고, 내용을 알려고 찾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고 했다. 겨우겨우 찾아 읽은 개혁안은 뭐가 알맹이이고 뭐가 포장지인지 구분이 어려워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오히려 의문이 든다고 했다. 과연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청년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서 자신에게 이로운 정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은 가장 예민하게 자신에게 이로운 상황과 사회적 움직임 등에 치열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토록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주제에 대해 둔감한 까닭은 바로 어차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즉, 정부나 경영계의 주장처럼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여 고령자 근로자의 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나’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진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친구들과 경쟁하고 선배 그리고 동생과 경쟁하게 하더니, 이제는 엄마, 아빠와 까지도 경쟁하라고 하는 정부의 정책에 말을 잃었을 뿐이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의 범위 내에서 연장한다는 내용에 대해 1년 8개월 가량 계약을 갱신, 연장해온 한 기간제 근로자는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정규직이 되던, 실업자가 되던 할 줄 알았더니 앞으로 2년 동안 또 계약만료시점이면 찾아오는 불면증을 달고 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듯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및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노동시장에 합법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더 많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즉 청년노동의 문제 중 하나인 이른바 열정 페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열정의 한계를 시험 해 열정조차 사치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하는 말이다.
<출처 : 고용노동부 광고>
정부가 정책홍보에 활용한 상품인 장그래는 작년 tvn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의 극중 캐릭터로서, 대기업에 입사하여 기간만료를 이유로 퇴사하게 된 극히 평범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회사원들의 일상을 다룬 미생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공감”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을 보면 과연 그들이 장그래의 삶과 힘겨움에 대해,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노동자의 삶에 “공감”을 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들게 한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추구하려는 유연안정화는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한 개념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노동자에게 튼튼한 사회 안정망을 제공해 노동자의 불안을 최소화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목적의식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이 상징하듯이, 사회 안정망에 대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유연성을 획득한 노동시장은 노동자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에 공감은 못할지라도, 이를 고려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화의 장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기고
또 발생한 집단 수은 중독, 지금은 분명 21세기 인데...
송한수 / 조선대학교 직업환경의학
1988년 문송면 군이 온도계 제조 업체에 근무 중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공장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 수은 증기 흡입으로 수은에 중독됐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2015년에도 발생했다는 점이다.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위치한 남영전구에서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이 발생한 것.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걸까. 문송면 군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동건강연대에서 이에 대한 이유와 대안을 고민하는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남영전구 집단 수은 중독 사건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위치한 남영전구에서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15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진행된 형광등 생산 설비 철거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본격적인 철거 작업은 3월 말부터 4월 초순까지 2주간 이루어졌으며, 주로 지하 작업장 형광등 제조 설비의 철거 과정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고농도의 수은 노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은이 철거 현장 바닥에 굴러다녔다는 증언과 당시 현장 사진이 있으며, 산소 절단, 철거 작업이 수은의 확산과 증발을 촉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집중적인 철거 기간에 약 2주간 직업 철거 업무를 수행했던 60세 김 모 씨가 산재 요양 신청을 하면서 알려졌다. 김 모 씨는 작업 이후 온몸에 두드러기와 가려움증이 생겼으며, 이후 기력 저하, 손발 저림, 입술 떨림 등의 증상이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걷기 어려워지고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할 정도가 되자 6월 중순경 전북 소재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수은 중독으로 진단받고 치료에 호전이 없자 8월 4일경에 서울성모병원으로 전원하였다. 김 모 씨는 산재요양신청을 하였고, 이러한 상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한 당시 철거 업무 작업자들이 추가로 산재 요양 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은 집단 중독 사건이 되었다. 산재 신청 후 역학 조사를 거치면서 산재 승인은 11월 17일에 결정되었다.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의 데자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1988년에 발생한 문송면 군 수은 중독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송면 군 사건은 15세의 문송면 군이 공장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가 수은 증기 흡입으로 수은 중독이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문송면 군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2개월간 근무하였다가 두통, 전신 통증, 불면증, 전신 장애, 식욕 감퇴, 피부 가려움 등의 증상을 겪었다. 발병 후 1개월 뒤인 3월 9일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중독으로 진단받았으나, 회사 측은 책임을 회피하였고, 노동부는 요양 신청서에 사업주 날인이 없고 진단 병원이 산재 요양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 승인을 반려하였다.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6월 20일이 되어서야 산재 요양 승인서를 발급하였다.
문송면의 증상은 그 이후 호전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던 중 장마비와 심한 구토로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질식으로 사망했다. 이후 진상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문송면이 일했던 작업장은 5평 이하 크기의 폐쇄된 공간이었고, 기숙사 텃세가 심해 그 작업장에서 잠을 잤다. 겨울철 추운 날씨를 난로를 켜놓고 견뎠다. 그리고 이미 협성계공 다른 노동자들도 수은 중독 증상이 있었으나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2012년 7월 1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2012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제'. 문송면 묘역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문송면의 수은 중독이 직업병임을 인정받기 위한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문송면의 형 문근면 씨다. ⓒ일과건강
'지금까지 괜찮았다' 주관적 위험 인식의 위험
"일하다가 간혹 피부 발진이 생기곤 한다."
남영전구 직원들이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에게 전한 말이었다. 이에 대해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은 '피부 이상이 생길 수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남영전구 직원들은 수은을 오랫동안 취급한 경험이 있었고, 작업 중 수은 노출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수은 노출로 다소 귀찮은 증상이 생길 수는 있으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 생각은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공기 중 수은이 통상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거 작업은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문송면이 일했던 협성계공의 사업주나 관리자들도 간혹 작업 시 수은 노출이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송면이 심각한 수은 증상을 호소하였을 때, 보상을 노리고 증상을 과장되게 드러낸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15세의 소년이 겨울철에 기숙사 대신 차가운 작업장에서 창문을 닫고 난방을 하며 잠이 들었을 때 수은 노출 수준이 얼마나 더 증가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은 중독의 다른 예외적인 상황은 가열 때문에 고농도의 수은 증기가 발생하는 경우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산소 절단 과정에서 수은이 순간적으로 고폭로가 이루어졌다면, 화학성 폐렴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었다.
대부분 사고는 다른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대부분 직업병이 장기간 노출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러한 위험 인식 자체가 위험요인이 된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경험해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경험적 인과론이다. 50년간 담배를 피워온 사람이 ‘나는 지금까지 폐암에 걸리지 않았으므로 담배는 폐암의 원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위험 인식은 작업 현장에서 흔히 관찰된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시행하여 이러한 현장의 경험적 인과론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수은 중독의 진단에서의 혼란
당시 현장에서 철거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문송면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증상을 겪었다. 대부분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 발진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손과 발의 피부 증상이 지속되었다. 두통, 전신 근육통, 무기력감, 식욕 저하, 불면증과 같은 모호한 증상이 생겼다. 이런 증상은 흔히 두드러기나 감기 몸살로 여겨지며 곧바로 수은 중독이라고 의심하기 어렵다. 손과 발의 저림과 떨림, 감각과 운동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때 비로소 단순한 감기 몸살로 보기에 특이한 상태가 되면 신경계 질환을 의심하고 수은 중독과 같은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증상 초기에 진단이 늦어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수은 중독은 단지 의학적 검사만으로 진단되는 질환이 아니다. 진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수은에 노출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 건강 검진 제도가 시행된다. 특수 건강 검진은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 검진이다. 특수 건강 검진을 시행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건강 검진 이전에 노동자가 다루는 위험물질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건강 영향을 평가한다. 이러한 검진은 노동자가 자신이 어떤 위험물질을 다루는지 파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도급에 의해 시행되는 단기간 철거 작업은 특수 건강 검진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단기간에 진행되는 작업이고, 작업 조건은 수시로 바뀌고, 작업 대상의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접근이 한계적인 상황으로 인해 사실상 특수 건강 검진은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예외 상황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산재요양 승인까지, 너무 긴 시간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다행히 증상이 완화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적게는 수 주에서 많게는 수개월 동안 알 수 없는 무기력감, 통증, 불면증으로 일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고, 직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은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의 언론 보도로 인해 큰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있는 대처다. 피해자들은 고용노동청의 명령으로 임시 건강 진단을 받았지만 법률적, 의학적 상담과 지원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산재 요양 신청 후 그 결정을 기다리는 데까지 수개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는 1988년 문송면이 겪었던 상황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았다. 문송면은 스스로 직업병임을 증명해야 했고, 그 증명을 통과한 이후에야 지원과 보상을 얻었다. 정황과 조건상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임이 추단되는 상황에서도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증명과 승인의 과정. 이 과정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이다. 왜냐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얹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직업병 사건이 명백한 상황일 경우, 먼저 지원하는 보다 인간적인 제도는 불가능한 것일까?
집단 수은 중독 사고 조사 보고서를 남겨야
완벽한 제도는 없고, 예외적인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건 발생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대처에서 선진국의 면모가 드러난다. 사건의 팩트를 파악하고,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원인 분석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산재 사고는 다양한 위험 요인들이 동시간대, 동일 장소에서 작용한 결과 발생한다. 사고 사례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만으로 놓치고 있었던 위험 요인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산업 재해 통계와 사업 재해 원인 조사가 사고의 원인에 대한 정량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이러한 사고 조사 보고서는 질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사고 조사 보고서는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며, 한 사회의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다. 그리고 완성된 사고 조사 보고서는 공개되는 것도 중요하다. 산업 안전 보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고, 산업 안전 보건 교육의 참고 문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리 감독은 완벽하지 않다. 사업주가 이윤 동기에 따라 은폐하거나 법 규정을 피하려는 시도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취하는 행정적 조치는 유사업종의 사업주에 보내는 중요한 시그널이며 수많은 재원을 투자하여 시행하는 산업 안전 보건 사업만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최종적 책임 소재를 어떻게 두느냐, 처벌 수위를 어떻게 두느냐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모든 사고는 사고 이후 대처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지 반복된다.
기획 기업살인법, 만들때가 왔다.
2002년, 노동건강연대 사무실 한 켠 에서는 기업살인법 도입 운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605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사망한 해, 일을 하다가 죽는 일이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사회적으로 호명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시작했습니다. 올 해로 10년입니다. 1등 상을 받는 기업들이 움찔 했습니다. 매년 살인기업 선정식 때가 되면 사무실에는 1위가 어디냐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은 위험함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법 제정을 본격화 했습니다. 기업의 통제 없는 이윤 추구 행위가 모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참사 463일째 날, ‘중대재해 기업처벌 제정연대’의 닻을 올렸습니다. 4.16 유가족을 비롯한 21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합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기업살인법이 필요한 이유와 이미 기업살인법을 시행 중인 영국과 캐나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획 / 기업살인법, 만들 때가 왔다.
여전히 우리에 필요한 기업살인법
1.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산재왕국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85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지난 10년간 한 해 평균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으니 지난 10년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어림잡아도 10,000명이 넘는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산재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의 수는 90,909명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에 비해 산재 노동자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다.
연도
산재사망 노동자수 (명)
산업재해 노동자수 (명)
1998
2,212
51,514
1999
2,291
55,405
2000
2,528
68,976
2001
2,748
81,434
2002
2,436
81,911
2003
2,701
94,924
2004
2,586
88,874
2005
2,282
85,411
2006
2,238
89,910
2007
2,159
90,147
2008
2,146
95,806
2009
1,916
97,821
2010
1,931
98,645
2011
1,860
93,292
2012
1,864
92,256
2013
1,929
91,824
2014
1,850
90,909
출처: e-나라지표의 통계와 고용노동부 2012. 12월말 현재 산업재해 발생 현황의 통계를 종합
2008년 주요 OECD 국가들의 업무상 부상 만인율[주- 노동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산재 부상자수의 비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현황분석 참조]과 업무상 사망 만인율[주-노동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수의 비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현황분석 참조]을 비교하면, 독일은 부상이 사망의 1,414.5배에 이르렀고, 호주는 485.7배, 스웨덴은 427.3배, 이탈리아는 611.25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부상은 사망의 39.4배에 불과했다. 실제로 산재 사망 노동자 수에 비해 산재 노동자 수가 적어서 이 같은 통계가 만들어졌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상이 그렇게 긍정적일까? 이와 관련,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이 동일한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은 절망적이었다.
구분
독일
호주
멕시코
스웨덴
이탈리아
부상만인율
62.7
282.9
102.0
355.4
64.1
244.5
사망만인율
1.59
0.20
0.21
1.00
0.15
0.40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 2014
신상도 외 (2013)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직업성 손상 환자의 61%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고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경우는 26%에 불과했다.[주-신상도 외, 응급실 기반 직업성 손상 원인 조사 연구, 산업안전보건공단, 2013] 직업성 손상이란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일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을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 조사 결과는 산재의 상당수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주-유성규, 기업의 산재 은폐 에방을 위한 개선 방안,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 자료집, 2014]
위 수치는 정부연구기관이나 사용자단체의 조사 결과에도 부합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조사 결과, 산재은폐율은 2006년 64%, 201년 66.5%에 이르렀다. 또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조사 결과, 산재은폐율은 2002년 56.1%, 2007년 75.5%에 이르렀다.
조사기관
산재
처리
미처리
비고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30.9
69.1
한국사회복지연구소
노동건강연대
45.2
54.8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43.9
56.1
대한전문건설협회
36.0
64.0
협회 자체조사
24.5
(39.8)
75.5
(60.2)
소규모현장 산재보험 타당성분석
대한건설정책연구원
7.0
93.0
철콘업종 재해 및 공상처리 설문
13.1
86.9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 조사대상 : 133개 업체
- 산재발생 : 총 497건 중 공상처리 432건
33.5
66.5
합계
32.5
67.4
산재가 은폐되었다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적발되어 환수된 산재 건수도 상당했다. 2011년에는 398,000건이 적발되었고 634억 5천만원이 환수되었다. 2012년에는 333,000건이 적발되었고 567억 8천 1백만원이 환수되었다. 2013년에는 444,000건이 적발되었고 713억원이 환수되었다.
결국, 고용노동부 공식 통계상의 90,909명은 오류임이 드러난다. 고용노동부의 공식 자료가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의 산재 발생 통계가 산재보험 승인 통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뤄진 사고라도 산재 통계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실제 산재 노동자 수는 어느 정도 규모일까? 이를 정확하게 산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통계가 없으므로, 이는 추산될 수밖에 없다. 임준(2012)에 따르면, 주상병에만 국한하더라도 직업성 손상과 관련된 산재보험 미적용자수는 중간값 기준으로 2009년 1,425,962명, 2010명 1,490,097명, 2011년 1,452,027명으로 추산된다.[주-이 수치는 주상병에 국한하여 산출된 수치로서, 만약 부상병까지 포함해 직업성 손상과 관련된 산재보험 미적용자수를 추정하면, 이 수치는 중간값 기준으로 2009년 1,556,751명, 2010년 1,628,871명, 2011년 1,590,542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다만, 이 수치는 사업주를 포함한 것이므로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수치의 산출 근거인 건강보험 통계에서 누락된 노동자들(산재보험의 보호대상이지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상당하다는 점, 직업성 손상 이외에 분석 범위를 근골격계질환, 천식, 뇌심혈관계질환 등에까지 확대할 경우 위 수치가 더 높아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 은폐 싪실태를 확인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산재 노동자들이 정부의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출처: 임준, 산재보험 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 규모 추정 및 해결 방안, 국회예산정책처, 2012
2. 대한민국은 왜 산재왕국이 되었을까?
(1) 1981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해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35년이 흘렀다. 35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 그렇다면 산재 예방을 위한 유일무이한 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도 산업 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35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 원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고용 형태의 변화’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1981년으로 돌아가 ‘간접 고용’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면, 정부조차도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우회해서 고용한다? 1명의 노동자에게 2명 이상의 사용자가 존재한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는 핀잔만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조항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사내하청, 불법파견, 위장도급... 35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현장의 일상어다. 간접 고용의 증가로 인해, 대기업들은 법적 책임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사용자의 기본적 의무조차 이행하기 힘든 영세업체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불안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이 같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마찬가지로 사용자 책임을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용자에게 집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결국,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산재 사망 실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간접 고용의 증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로 현상되고 있다.[주-유성규ㅡ 전기원 노동안전보건실태와 한국전력의 책임, 노동건강연대 토론회, 2011.]
(2) 300
300명.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안전보건 지도감독을 책임지는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들의 수다. 앞서 산재 통계에 집계된 사업장의 수는 2,187,391개소였다. 그렇다면, 300명의 근로감독관 1명이 담당해야할 사업장의 수는 무려 7,291개소에 이른다. 300명의 근로감독관들 중에 상당수의 행정인력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장을 지도 감독하는 감독인력은 300명에 훨씬 못미칠 것이다.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산재가 발생하는 구조를 파악하여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윤을 쫓는 기업의 속성상 이를 기업에게 맡겨두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따라서 이는 고용노동부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20군데씩을 다녀도 1년에 사업장 1곳을 간신히 방문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근로감독관들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산재 예방을 위한 지도감독은커녕 산재 발생에 대한 처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3) 2,000
2008년 경기도 이천의 냉동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 결과 지하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0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끔직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항소심 법원이 원청 대표자와 원청 법인에게 선고한 형량이 각 벌금 2,000만원이었다. 당시 이를 두고 우리나라 노동자 1명의 가치가 고작 50만원이냐는 분노 섞인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4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도 벌금 2,000만원만 내면 끝나는 나라에서 기업들과 산재 예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그 사업주에 대한 징벌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산재를 야기한 1명의 사업주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산재 예방에 나서도록 촉구함에 있다. 이 때 처벌은 일종의 시그널로 기능한다. 따라서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가 부당하게 처벌을 피해가거나 미약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이는 자칫 다른 사업주들에게 산재 예방을 방기해도 된다는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산재 예방을 하지 않더라도 적절히 피해갈 수 있다는 시그널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기업들로 하여금 산재 예방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긍정적 시그널이 아니라 산재 예방을 방기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부정적 시그널들이 난무한다.
3. 1987년 영국과 2015년 대한민국
1987년 3월 6일 영국의 여객선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가 영국 도버항을 향해 벨기에 지브뤼게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배는 출항한 지 2분 만에 완전히 침몰했고 193명의 승객과 선원들이 물에 빠져 사망했다. 침몰 원인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다. 뱃머리 문을 닫지도 않고 배가 출항한 것이다. 당연히 출항하자마자 열려있는 뱃머리 문을 통해 대량의 물이 들이닥쳤고 배는 중심을 잃고 빠른 속도로 침몰했다.
사고를 야기한 직접적인 행위자는 부갑판장이었다. 뱃머리 문을 닫지 않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갑판장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배에는 뱃머리 문이 열렸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고, 출항 전에 뱃머리 문을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감독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결국, 부갑판장의 부주의한 행동이 그대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된 원인은 기업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여론은 기업에 대한 처벌을 원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는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행위자인 선장과 선원들만 처벌되고 기업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허망한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영국의 시민 사회는 경악했고 기업의 천박한 이윤 추구가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참혹한 결과를 야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행동을 낳았고 행동은 결실을 맺었다. 그 결실이 바로 ‘기업살인법’이라 불리우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다. 이에,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산재사망을 야기한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적 도구라는 형식적 의미 이외에 더욱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시장과 이윤이 최고의 선(善)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일지라도 결코 기업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線)이 존재함을 확인한 것이다. 영국 사회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궁극적인 이윤의 집결지이자 실질적 결정권자인 기업이 직접 처벌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 ‘기업살인법’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주-유성규, 기업살인법, 법기술 논쟁보다 중요한 것, 노동과 건강 2014년 여름호]
4. 우리에게도 기업살인법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에게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법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반드시 새로운 법률의 제정만이 해답은 아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도 그 내에 제대로 된 문제의식만 담아낼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새로운 법률에 담겨야 할 문제의식은 아래와 같다.[주- 아래의 문제의식은 유성규,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모색, 울산 동구청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2에서 인용내지 참조]
첫째, 산재를 야기한 기업이나 사업주에 실질적인 압력이 되는 처벌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처벌 수준만 강화되면 산재가 줄어들까? 회계 관련 처벌 규정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회계 관련 범죄를 반복하여 저지르는 이유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산재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산재에 대한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하한선을 정하고 그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 ‘산재를 야기한 기업의 정보를 언론에 공시함으로써 기업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등 기업에 실질적으로 압력이 되는 처벌 유형이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형식적인 사용자 책임’을 넘어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대표자 내지 실질적 권한(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향유하는 지위에 있는 자)을 보유한 자가 처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벌 강화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에도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파견사업무가 아닌 사용사업주가 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법률적 보완은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셋째, 형사 처벌의 기본 원칙인 ‘행위자 처벌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형사 처벌의 대상을 행위자로만 국한하게 되면 노동자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가져간 기업은 물론 그 이익의 최종 향유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산재에 있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처벌에서 열외가 되고 일개 실무자에 불과한 하급 관리자들만 처벌되는 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행위자가 아니어도 그 책임이 인정되는 기업이나 최고 책임자 등이 처벌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 예방 법제가 되지 못하는 원인에는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고용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입법적 문제점이 해결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해소되지 않는다면,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입법적 시도들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고용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 사건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가칭)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5. 결론을 대신하여
과거 기업살인법 입법을 위한 논의는 매번 기존 법 체계와의 조응을 둘러싼 법 기술적 논쟁을 야기했다. 기업살인법은 기존 법체계를 뛰어넘지 않고는 현실화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매번 법 기술적 논쟁 속에서 허망한 결과로 귀결되었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시민들의 공분과 공론을 발판 삼아 기존 법체계를 훌쩍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법 기술적으로 어떤 법률 조항을 만들고 어떤 법체계를 만들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에 앞서서, 이윤 쫓아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과 정부를 시민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공분과 공론을 차분히 모아 나가야 한다.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은 이를 위한 ‘슬로건’이자 ‘도구’가 되어야 한다. 시민의 공론과 공분을 차분히 모아 나간다면, 어느 순간 기업살인법은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주-유성규, 기업살인법, 법기술 논쟁보다 중요한 것, 노동과 건강 2014년 여름호]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획 연재기사 <조선소 잔혹사>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노동건강연대는 2014년 5월 시작한 현대중공업의 해외투자자 대응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UN 기업과 인권 포럼에 참가 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 문제를 집중적으로 알렸습니다.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조선소 잔혹사>를 영어로 번역해 발간한 책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인권활동가들과 언론,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투자자와 선주사 까지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몇몇 선주사와는 한국에서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조선소 잔혹사> 영어판은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번역에 참여해주신 노동건강연대 회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선사 잔혹사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이 쇼킹하다고?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 4월, 이메일이 왔다. <Norwegian engineering magazine Teknisk Ukeblad>라는 노르웨이 잡지사 기자였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 문제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2014년 5월 구성된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산재사망사고 네트워크'에서 외국 투자자와 선주사에 사망사고와 각종 산재문제 관련 정보와 질의서를 보내면서 외신에도 보도자료를 보냈었다.
이메일을 받을 당시, 현대중공업은 노르웨이 선주사로부터 세계 최초로 건조되는 원통형 FPSO인 '골리앗' 제작을 마친 상태였다. 노르웨이 기자는 자국 선주사가 의뢰한 배를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한국 노동자가 죽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곧바로 이메일을 보낸 기자와 긴밀한 소통 속에서 3건의 기사가 만들어졌다. 그 기사는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골리앗'이 노르웨이에 도착할 즈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노르웨이 기사화면
2014년 5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던 시기였다. 이미 5월이 되기 전, 상반기에만 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기업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선 여전히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한국은 산재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단적으로 영국에서 1명이 사망할 때, 한국에서는 12명이 사망한다. 다양한 요인이 이런 차이를 만들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사람이 일하다가 더 많이, 더 자주 죽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망은 다른 OECD 가입국을 압도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한 일로 여긴다. 반면, 해외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노동건강연대의 한 연구자가 스웨덴에 갔을 때, 한국의 높은 산재사망률을 줄이는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일하다가 왜 죽나요?"
어느 나라에서 기업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생명은 길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현대중공업의 투자자나 배 제작을 요청하는 선주사는 주로 해외에 있다. 특히 유럽에 몰려있다. 그들이 돈을 내서 만드는 배가 이렇게 위험하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산재사망사고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연기금에 첫 편지를 발송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사망한 노동자 명단과 구조적 이유를 전했다. 4만 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위험한 처지도 함께 전했다. 하청업체의 무책임함과, 그것을 유도하는 원청인 현대중공업,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는 5분 대기조인 물량팀의 존재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책임 있는 투자를 요청했다. 노르웨이‧네델란드 연기금은 현대중공업 투자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 연기금자산운용(APG)의 아시아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7월 4일, 아시아본부 지속가능‧지배구조 담당자가 울산을 방문했고, 그 길에 동행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사회 등을 통한 구조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2014년 8~9월에는 두 기관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특히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문서에는 "For ABP this is shocking information that raises a lot of questions that have to be answered by the company.(ABP의 입장에서 이는 현대중공업이 대답해야만 하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하는 충격적인 정보입니다)" 이런 문장이 있다.
길가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할 때도, 우주복처럼 생긴 보호복을 착용하고 일하는 나라에 사는 그들에게, 일을 급하게 하다가 떨어져 죽고, 질식사 하고, 깔려 죽는다는 이야기는 꽤나 놀라웠던 듯했다. 이 소식을 중요한 주제로 다룰 것이며,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조선소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다.
노르웨이 중앙은행 산하 투자관리청(NBIM. Norway Bank Investment Management)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8000개 이상의 회사의 투자와 글로벌 주식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운용하는 중요한 관점 중 기업의 위험에 관한 부분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UN 글로벌 컴팩트,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을 따른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 문제도 이러한 원칙에서 검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NBIM에서는 2015년 3월에도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OECD 가이드라인을 특별하게 따르고 있다, 우리는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기준과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으며, 위험관리절차의 단계로서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확인하고, 2015년 3월, 현대중공업 이사회에 통보했다. 우리는 윤리위원회에 위의 사실을 통보했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윤리위원회의 결정사항을 따를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사실을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인권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키는 해외 기업들
이러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세 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다.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1976년 제정되었고 2011년에 제5차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가이드라인은 OECD회원국이 다국적기업에 부과하는 행동기준(standard of the activities)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OECD가입국에 근거를 둔 다국적기업은 ①활동장소에 관계없이 ②국제적으로 인정된 모든 인권을 존중할 책임을 진다는 것, ③직접 부정적 인권영향을 야기하거나 그에 연루되어도 안 되며, 사업관계를 통해서도 인권침해에 연결되면 안 된다는 것, ④인권존중정책을 선언해야 하며, ⑤인권침해를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해서 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 ⑥발생한 침해에 대해서는 구제절차를 제공하거나 구제에 협력해야 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권위있는 국제기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국제적 보편성을 띤 규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1)
또 다른 하나는 UN Global Compact다. 이는 2000년 공식 출범하였는데, 국제사회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세계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며, 인권·노동·환경·반부패의 네 가지 영역에서 10개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UN Global Compact는 기업의 행위나 활동을 강요하거나 조정하는 규제수단이 아닌 관계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2015년 기준 161개국 이상에서 8368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유엔과 기업이 직접 인권원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하는 방식이다.2)
마지막으로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은 1999년 OECD 각료회의가 제정하고 2002년에 개정한 일종의 지침으로서, 주주와 이사회의 권리와 책임, 이해관계자의 존중, 공시 등에 관한 원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다수의 정책입안자, 투자자, 기업들에 의해서 권위있는 지침으로서 수용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원칙에 비춰볼 때, 현대중공업의 산재 사망사고는 투자운영회사 입장에서도 문제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일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네가 투자하는 회사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투자자인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사람 죽는 구조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현대중공업
이렇듯 해외의 반응은 지금의 구조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현대중공업은 사태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2014년 9월 29일, 네트워크는 현대중공업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 현황'과 '산재안전' 관련한 몇 가지 질의'를 보냈다. 6월, 현대중공업그룹인 현대미포조선에서 하청노동자 3명에 대한 질식사고가 있었고, 8월 또 한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직후였다.
질의서에는 ①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역할과 성과 ②'안전경영 쇄신을 위한 종합개선대책'에서 밝힌 3000억 투자의 구체적 내용 ③안전보건공단에서 실시한 ‘현대중공업 종합진단 결과’에 대한 주요 내용과 대응 계획 ④위험과 재해의 전가,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은폐와 차별 현황 ⑤산업재해 관련 정책 및 성과의 정기적인 보고여부 및 공개여부 ⑥6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 3인의 질식사고,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1인의 사망사고 이후 최근까지의 경과 ⑦CSR보고서 중 '인권', '노동', '사회' 지표의 보고내용 추가, 총 7가지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답변 기한을 10월 20일까지로 두었으나, 현대중공업에서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11~12월 동안, 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고 올해에도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한 명의 노동자가 현재 의식불명이다. 현재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죽고 있고, 올 해 초부터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고 있다.
하청노동조합은 여전히 하청노동자들에게 큰 들숨을 쉬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존재이다. 업체 폐업, 하청노동조합 가입으로 인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100일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사이,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의 FIFA 회장 출마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나라 하청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구조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걸까. 지금 상황으로는 이런 상황이 지속해서 반복될 듯하다. 해외 연기금에 보낸 편지를 한국 국민연금에도 보냈다. 한국 국민연금도 현대중공업의 주주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보낸 답변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귀 기관이 요청하고 있는 사안은 국민연금의 안정적인 투자수익 제고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으며, 또한 만일 국민연금이 개별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간섭하는 경우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로 간주되어 5%공시, 10%공시, 단기차액반환 등에 있어서 국민연금이 받고 있는 예외적용 혜택을 상실하게 되어 운용상의 직접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와 관련되어 현재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며 책임투자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아직 합의에 이르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현행 기금운용 규범체계 내에서는 귀 기관의 요청사항을 국민연금공단이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참고
1)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상수
2)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슈와 대응 방안, 고동수
연구노트
위험의 하청화 실태 및 개선방안 모색
- 국가인권위원회 ‘산재위험직종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정리하며
곽경민 한림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15년 만에 집단 수은중독이 광주 남영전구에서 발생하였다. 다단계 하도급의 마지막 하청 일용직 노동자들이 철거작업을 수행하다 집단으로 수은에 노출되었다. 연이어 보도되는 커다란 일터 사망사고 뿐 아니라 이제는 수은중독까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이 점점 아래로 하청업체들에게 가고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놀랍지 않은 일이다.
2014년 12월 국가위원회는 ‘산업재해 위험 직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림대학교 주영수 교수님이 수행한 이 연구는 조선, 철강, 건설프랜트 업종의 사내하청 현황과 안전보건 실태를 파악하였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하도급이 만연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사고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도 시사점이 많은 연구이다.
이 연구는 하도급 비율이 특히나 높은 조선업, 철강업, 건설플랜트를 대상으로 하였다. 연구는 크게 설문조사, 집단면접조사, 전문가 의견조사로 이루어졌다. 설문조사는 관련 업종 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건, 고용형태, 사내하청 노동과 노동안전, 그리고 건강에 대한 문항들을 물어보았으며,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이 288명, 철강업 하청 노동자들이 245명, 건설플랜트 하청 노동자들이 258명이 설문에 응답하였다.
업종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상당수의 하청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보건교육을 받지 않으며, 위험 작업시 충분한 안전조치 없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80~90%의 응답자가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노동자들에 비해 산재위험이 더 높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주관적인 응답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스스로 사업장 내에서 산재 위험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질문을 하였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응답은 일부에 불과하였다(조선업 7.2%, 철강업 7.9%, 건설플랜트 20.3%). 많은 수가 공상처리, 개인보고 등으로 처리하여 산재은폐가 상당 수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설문조사 뿐 아니라 조선업, 철강업, 건설플랜트 원청 사업장들에 소속되어 있거나 관련되어 있는 하청 노동자, 원청 노조 간부, 원청 안전담당자, 그리고 해당 안전보건공단 지사 실무진 등을 대상으로 집단면접조사를 시행하였다.
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면접조사에서 주요하게 언급된 내용은 노동조건에 대한 것이다. 조선과 철강업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하였으며, 건설플랜트의 경우 임금 수준은 낮지 않으나 무척 협소하고 위험한 작업공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업무상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서 선재로 처리하지 못하고 공상이나 개인부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만약 산재로 처리하였을 경우 재취업이 어려움이 있으며, 소속 하청업체에서도 공상처리 등을 유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자의 산재사고를 은폐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2012년 9월, 조선소에서 쓰러진 하청노동자를 트럭에 싣고 가다가 사망한 사건 이후,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조합은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산재은폐 실태조사를 지속적으로 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원청 노동조합 간부들은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힘든 일들 하고 있음을 말하며, 하청업체가 산재보험료를 줄이고 원청 대기업과의 재계약을 위해 산재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고, 하청노동자 스스로도 고용 불안 때문에 은폐하는 경우가 빈번함을 지적하였다. 최근에는 산재은폐를 줄이기 위해 도급 재계약시 산재를 은폐한 하청업체의 경우 재계약시 불이익을 주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원청 안전담당자의 경우 하청업체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이 미약하고, 안전보호장비 착용이 불량함을 지적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하청업체와 원청업체간의 안전관리협의체를 구성하여 하청업체의 안전의식 수준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안전보건공단 지사 실무진과의 면접조사에서 사업주의 의무를 강조하며 안전보건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면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얘기하였다, 또한 위험작업시 안전보호장비 착용 강화, 그리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의 활성화, 산재예방기금의 확충 및 지원 등을 언급하였다. 집단면접조사에서 각자 입장의 차이가 있으나 하청노동자들이 더 힘든 일을 하며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실제로 산재가 많이 발생하고 은폐되고 있으며 이를 하청노동자들의 중요한 산업안전보건 문제라 말하였다.
또한 10명의 산업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개선방안에 대해 전문가 델파이 조사를 시행하였다. 여기서 전문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실적인 개선방안으로 산업안전보건교육의 강화(실제 일하는 공정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교육) 및 감독 강화를 지적하였다. 실행가능성과 상관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선방안으로는 ‘산재발생시 사업주 처벌강화’,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하청노동자의 작업환경 개선’ 등을 언급하였다.
설문조사와 면접조사, 전문가조사를 종합하여 하청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 방안으로 산재사고 등에 대한 원청업체 사업주의 처벌강화를 우선적으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유해위험업무 하도급 금지 제도화, ‘물량팀’ 등 다단계 하도급 금지, 허청 노동자들에게 작업 중지권 등 기본조치권한 부여,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안전보건서비스 제공시 하청노동자와 원청노동자 간의 차별 철폐를 제시하였다.
이른바 원하청관계를 통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산재위험이 전가되고 있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위험 전가에 대한 브레이크가 작동하고, 사업주 처벌 강화, 노동조건, 작업조건 개선 등과 같은 실효적인 개선대책이 나와야할 것이다.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하청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실태는 얼마만큼 좋아졌을까. 수시로 터지는 중대재해와 알려지지 않고 여전히 은폐되는 중소규모의 산업재해들을 생각하면 연구보고서의 실태조사 결과는 지금 유효한 현실일 것이다.
* 산재위험직종 실태조사 보고서는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