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여겨볼 연구
영국의 경기 침체기와 자살 사이의 관련성 연구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연구제목: Suicides associated with the 2008-10 economic recession in England: time trend analysis
저자: Ben Barr, David Taylor-Robinson, Alex Scott-Samuel, Martin McKee, David Stuckler
발표저널: BMJ 2012;345:e5142
최근 영국정부의 긴축정책으로 특히 공공부분의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실업률이 증가하였다. 저자들은 이러한 경제 환경이 영국인들의 건강, 그 중에서도 특히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궁금증에서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특히 영국에서의 자살률은 긴축정책이 시작된 2008년도에 상승하기 시작하였으며, 남자는 7%, 여자는 8%가 증가하였다.
2010년도에는 자살률이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자살률이 증가하기 전인 2007년에 비하여는 높은 상태이다.
물론 현재 일어나는 자살률의 증가가 경제위기로 인한 긴축정책 때문에 일어났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살률의 증가를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하는 해석은 너무 성급하고 과도한 해석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여러 개별 연구들은 실업이 자살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자살률의 증가가 경제 하강기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관련성의 강도는 나라마다 다른데, 실업자에 대한 고용 프로그램이 있거나 사회적 지원이 발달된 경우는 자살 위험도가 경감된다고 하였다. 물론 경제위기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요인이 자살률의 증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 주제와 관련된 과거의 연구들은 주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국가의 자료를 모아 이루어져서 자료의 숫자가 부족한 한계가 있어, 관련 요인을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저자들은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적인 실업률의 차이와 자살과의 관련성을 기간에 따라 본다면 보다 의미있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도로 본 연구에서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의 지역별로 실업률과 자살률의 차이를 분석하여 실업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보았다.
연구는 어떻게 수행되었나
영국의 93개 지역별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사망자 중 검시관이 자살 또는 원인불명의 손상으로 결론을 내린 경우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원인불명의 손상까지 포함한 이유는 검시관에 따라 자살로 결론을 내리는 기준이 통일되지 않고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가능한 모든 자살사례를 연구에 포함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였다.
각 지역별 실업률은 영국 통계청이 제공하는 지역별 실업급여 청구자 자료를 이용하여 구하였다. 이러한 방식이 모든 실업자를 다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연구대상의 모든 지역별로 집계가 되는 가장 정확한 자료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 연구의 분석은 두 가지 방법으로 수행되었는데, 첫째로 연구기간 (2000~2010년) 중 경제침체기인 2008~2010년에 자살률의 유의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봤고, 둘째 연구 전 기간 동안 지역별, 성별로 자살률과 실업률 사이의 유의한 관계가 있는지를 보았다.
연구 결과는 어떠한가
2008년 경제 위기 직전, 2000년부터 2007년에는 매년 영국의 자살률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에는 자살자가 다시 증가하여 2008년부터 2010년에는 남자는 846명의 자살자가 증가하였고, 여자는 155명의 자살자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연구 전 기간 동안 실업률과 자살률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에서는 연간 실업률이 10% 상승한다면 남자의 자살률은 1.4%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여자의 자살률은 유의한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러한 분석을 경제 침체기인 2008년부터 2010년으로 한정하였을 때는 이 기간 동안 2007년에 비하여 실업률이 25.6%가 증가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남자의 자살률은 3.6%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숫자로 따지면, 남자 자살자 329명에 해당된다. 따라서 같은 기간 동안 남성 중에 증가한 자살자 846명 중 5분의 2에 해당하는 329명이 실업률 증가로 인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연구진들은 이러한 연구결과가 얼마나 타당한가에 대해 분석하기 위하여 기간을 나누어 분석을 하고, 자살률이 너무 높았던 해는 제외하고 분석하기도 하였으며, 기간을 더 연장하여 1993년부터 분석을 수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하였으나, 실업률과 특히 남성의 자살률 사이의 관련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였다.
연구의 한계점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수행한 관찰연구이기 때문에 실업자와 비실업자 사이에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인 요인 (예를 들어 낮은 교육수준 또는 정신 건강상의 문제 등) 의 분포가 차이가 있는지를 보지는 못하였다.
둘째, 해당 지역 실업자의 수는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으로 한정하였으나, 이는 전체 실업자를 포괄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면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등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하여야 하지만 모든 실업자가 이 기준을 충족할 수는 없다. 영국에서도 전국 취업자 통계가 나오긴 하지만, 본 연구에 이용할 만큼 자세한 지역별 통계는 없다고 하였다.
셋째, 자살은 실업으로 인한 전체 건강영향의 일부분에 국한된다는 점과, 넷째 지역별로 자살에 대한 검시관들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한계점 등을 지적하였다.
정책 제안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경기침체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해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경기침체기는 자살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여야 하지만 2017년까지 경기침체기가 지속될 전망이어서 정책 수행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 경기침체기에 정부 예산의 감축은 공공부분의 일자리를 줄이고, 사회보장 서비스를 감소시켜, 자칫 경기침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예산의 감축은 상대적으로 빈민가에 더 큰 영향을 주어 자살률의 증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들은 논하고 있다.
해외판례
은행지점장 전속 운전기사의 과로사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일본의 법률잡지사인 쥬리스트(JURIST)는 그 동안 각 법률 분야의 판례 100선(判例百選)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가 일본의 산재보험제도를 모태로 시작된 만큼, 일본의 산재 판례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 같다. 아래 판례 내용은 쥬리스트가 2002년 11월에 발간한 노동판례백선(제7판)에 실린 판례이다.1)
업무상 질병 중 ‘과로사’는 이제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최근 노동자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기인한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산재보험법 시행령은 그 인정 기준으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어서, ‘업무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만성적 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실례로, 하루에 15시간씩 매일 변함없이 일했던 노동자가 있다고 하자. 근무기간 동안 추가적인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는 없었다. 이 노동자는 2년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이 발병하였다. 하루에 15시간 노동을 했다는 것은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거의 전 시간을 노동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만 판단하면, 뇌출혈은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법의 기준으로 보면, 이 노동자의 뇌출혈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산재보험법에서 제시하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사례들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이 때문에, 24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24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에게서 ‘업무상 변화’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일본 판례는 급격한 업무상 변화는 없었지만 장기간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뇌출혈이 발병한 X의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도 “①업무에 관련되는 특이한 일을 조우(遭遇)하였을 것, 또는 ②일상 업무와 비교해서 특히 과중한 업무에 종사한 것에 의해서「업무에 의한 명백한 과중부하」를 발병 전에 받았을 것”을 정하고 있었다. 우리 산재보험법 시행령과 같이 ‘업무상 변화’를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X가 휴업보상을 신청하였지만, 원처분기관인 노동기준서는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노동자 X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일본 최고재판소는 “만성 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의 지속이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고 하여, 일상 업무와 비교해서 특히 과중한 업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장기간의 잔업 등에 의한 만성적 과로도 업무상 질병의 원인 될 수 있음을 판시하였다. 업무상 질병 여부를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으로 판단하는 우리 산재보험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판결이다.
사건명
橫濱南勞基署長(東京海上橫濱支店)사건
最高裁 平成 12년(1998년) 7월 17일 제1소법정판결
(平成 7년(行ツ) 제156호 요양보상부지급결정취소청구사건)
사실의 개요
은행지점장 전속 운전기사인 X(당시 54세-원고ㆍ피항소인ㆍ상고인)는 1984년 5월 11일 이른 아침에 지점장을 맞이하러 가는 도중에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이 발병했다.
X는 위 지주막하출혈이 발병하기 약 반년 전부터 1일 평균 시간외노동이 7시간을 웃돌아 매우 길었으며(원심에서는 1989년 2월 9일자 노동성 고시「자동차운전자의 노동시간 등의 개선을 위한 기준」과 비교하여, 1개월의 구속시간에 그 최고한도인 325시간에 가깝거나, 초과하는 달이 많았다. 또한 1일에 대한 구속시간에 그 최고한도인 13시간을 대폭 초과하는 날이 많아, 근무를 마친 후 휴식기간에 그 최저한도인 계속 8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하고 있다), 1일 평균 주행거리도 매우 길었고, 정해진 휴일이 전부 확보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근무를 계속하는 것이 X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당한 부하가 되어 만성적인 피로를 초래하였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발병 전날에는 오후 11시경까지 차 수리를 하고 겨우 3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후 오전 5시경에 당일의 업무를 개시하는 등, 그때까지 X의 장기간에 걸친 과중한 업무의 계속과 더불어 X에게 상당한 정신적, 신체적 부하가 가해지고 있었다.
판결 내용
「이상 설시한 X의 기초질환의 내용, 정도, X가 본건 지주막하출혈 발병 전에 종사하고 있던 업무의 내용, 양태, 수행 상황 등에 추가해서, 뇌동맥류의 혈관병변은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에 의해 악화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성 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의 지속이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 점을 생각하면, X의 위 기초질환이 위 발병 당시 그 자연적 경과에 의해서 일과성 혈압 상승이 있으면 곧바로 파열을 가져오는 정도까지 악화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그 밖에 확실한 악화요인을 찾아낼 수 없는 본건에 있어서는 X가 위 발병 전에 종사한 업무에 의한 과중한 정신적, 신체적 부하가 X의 위 기초질환을 자연적인 경과를 넘어서 악화시켜 발병에 이르게 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며, 그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 아래에 실린 일본 쥬리스트(JURIST)사의 노동판례백선(제7판)의 번역은 노동건강연대 대표를 맡고 계시는 김진국 변호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해외이슈
노동과 건강을 위한 국제연대
- 미국 공중보건학회 참가기1)
김 명 희 / 노동건강연대회원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지난 10월 말, 국내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연구자들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공중보건학회 (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 APHA) 104차 연례회의에 다녀왔다. 굳이 바다 건너 먼 나라 학회까지 왜 가게 된 것이냐 하면, 이 학회의 직업안전보건 분과에서 열리는 반도체 노동자 건강문제 세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학회 전후로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을 주제로 몇 가지 국제연대 활동도 계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처럼 비싼 비행기 타고 멀리까지 왔으니 알뜰하게 다른 활동 계획들도 세웠다. 샌프란시스코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는 보건 의료 및 돌봄 분야의 노동권․건강권 운동이 비교적 활발한 곳이라,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고자 했다.
그 곳에서 보고 듣고 생각했던 몇 가지를 <노동과 건강>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활동가와 연구자가 함께 하는 공간
미 공중보건학회는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속한 연구자들 뿐 아니라 공중보건 실무자와 활동가들도 대거 참여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학술대회와는 모습이 좀 다르다. 특히 직업안전보건 분과에는 노동조합이나 안전보건 활동가들의 직접 참여가 두드러진다. 학회의 공식 개회 전날 ‘전국 직업안전보건연합 (National Coalition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최고회의가 열렸다. 행사는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 투쟁을 담은 동영상 상영 이후 APHA 전임 회장인 린다 메이 머레이의 개막 연설로 시작했다. 그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소수자와 빈곤층의 건강권을 위해 30년 이상 활동해 온 전문가이자 활동가이기도 한 그녀는, 1995년에 시카고에서 벌어졌던 교원노조의 감동적인 투쟁 경험을 소개하며, 권력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역설했다. 한국의 예방의학회나 직업환경의학회 회장이 학회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미국의 노동운동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슬프게도) 우리가 그럴만한 처지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음 프로그램도 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Worker Dialogue”라는 프로그램인데, 일종의 토크쇼이자 간담회였다. 활동가들이 편한 차림으로 나와서 각자 세차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캠페인 경험, 아시아 지역 전자산업 노동자 투쟁 사례, 캘리포니아의 네일 케어 노동자, 호텔 노동, 화물/폐기물 처리 노동자 조직화와 안전보건 활동 경험을 소개하며 어려웠던 점, 성공 요인들을 이야기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거창하고 완벽한 ‘성공의 스토리’는 없었다. 성차별, 인종차별, 반(反) 노동조합 정서와 무기력,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 위협과 보복들을 넘어서 얻어낸 작은 승리들과 앞으로 남은 과제들, 연대의 요청은 사실 언어와 무대배경만 바꾸면 한국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토크쇼를 주재했던 젊은 활동가는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인정으로, 사흘 후 APHA 직업안전보건 분과가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이 분과의 공로상은 뛰어난 연구자 뿐 아니라, 직업안전보건에 기여한 활동가들에게도 주어진다. 재작년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가 받았던 국제부문 공헌상의 올해 수상자는 중국의 유잉이었다. 그녀는 또래의 중국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기차로 사나흘이 걸리는 도시로 이주하여 열악한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열일곱 살, 그녀가 일하던 장난감 공장에 불이 났다. 노동자 감시를 위해 탈출구는 폐쇄되어 있었고, 많은 소녀들이 숨졌다. 유잉은 이 사건의 생존자였다. 그녀는 온 몸의 75%에 화상을 입었고, 지금도 목발이나 휠체어에 의존해서 걸어야 한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여성, 장애인, 산재 노동자로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해왔다.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인 그녀는 많은 중국 여성 노동자 투쟁에서 맏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그녀가 통역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연대를 요청했을 때, 강당의 모든 이들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나는 약간 우울해졌다. 왜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고, 언제 어디에서건, 노동자가 죽지 않으면 좀처럼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그림 1) 버클리대학 리카싱 센터에서 발표하는 중국 활동가 유잉과 통역을 맡은 홍콩 활동가
§ 국제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연대활동
사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전자산업의 총본산이었고 지금도 ‘본부’ 격인 미국 안에서 학계 내에 이를 공론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동안 연대활동을 해왔던 단체와 활동가, 연구자들은 “국제 반도체 산업의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적 검토”라는 구연 발표 세션, 라운드테이블을 조직하고, APHA 정책 위원회에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와 관련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구연 세션에서는 보스턴 대학의 역학자 리차드 클랩 교수가 미국 IBM 사례를, 한국의 김인아 교수가 ‘국제직업환경의학회지’에 발표했던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례보고를 발표했다. 또한 대만 국립 양밍 대학의 린 이핑 교수가 비판적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대만 전자산업 여성 노동자 건강문제를 발표했고, 나는 반도체 산업의 암과 생식보건 영향에 대한 기존 역학연구결과들을 종합한 리뷰 결과를 발표했다. 상당히 많은 청중들이 발표장에 모였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세션이 끝난 후 직접 찾아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전자산업의 건강 문제를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이야기해준 이들도 있었다. 발표문 결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반도체 산업은 기술 자체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며, 전 세계적 생산 연결망 속에서 위험이 빠르게 이전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연대와 정보 공유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학술적인 것보다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국제연대 활동을 전개할 것인지, 특히 현재 전자산업의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활동을 어떻게 펼쳐나가는 것이 좋을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또한 빈센트 나바로 교수와 더불어 미국 내 대표적인 진보적 성향의 보건의료 전문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하워드 웨이츠킨 교수는, 포스터 발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장하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미국 내 진보적 사회운동의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통신기업 크레도 모바일 (Credo Mobile)로 하여금,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중단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사실 AT&T나 Verizon 같은 시장지배적 통신사가 아닌 크레도의 조치가 삼성에게 과연 타격을 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평소에 크레도가 내세운 가치와 고객 신뢰를 고려한다면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림 2) 자신의 포스터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하워드 웨이츠킨 교수
그리고 우리 그룹이 APHA 정책위원회에 제기한 결의안은 이견 없이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빠르게 성장하는 국제 전자산업의 건강 영향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알 권리 보장, 제품 설계를 통한 건강 문제 예방, 다양한 수단을 통한 노동자 건강 감시라는 세 가지 전략을 제안했고,2) 학회 마지막 날 보도자료로 배포되었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는 마침 미국 실리콘 밸리를 근거지로 하는 ICRT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 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 활동이 10주년을 맞는 때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실리콘 밸리부터 삼성까지”라는 제목으로 홍콩, 중국, 한국, 대만의 사례들이 발표되었고, 이후 음료와 다과를 나누며 작은 파티가 열렸다. 70년대 처음으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제기했던 백발의 미국 활동가들과 당면한 투쟁을 소개하는 아시아 지역의 젊은 활동가들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연대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 대학-노동의 연계
우리는 그밖에도 지역의 노동안전보건 조직들을 방문하고 연구자들을 만났다. 그 중 버클리 대학의 LOHP (Labor Occupational Health Program, 노동건강 프로그램) 센터를 꼭 소개하고 싶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의 지역사회 공공 프로그램의 하나로, 1974년 미국의 직업안전보건법이 막 통과된 직후 설립되었다. 당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지원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대학의 지역사회 공헌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거의 4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센터는 대학, 정부기관, 공익 재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조합들과의 연계 속에서 다양한 실태조사, 교육, 정보와 자료 개발, 전략 수립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곳에서 만난 50-60대 활동가 ‘왕언니’들은 젊은 활동가, 연구자들과 함께 뛰는 여전히 현역이었고, 아카이브로 구축된 자료들은 그 자체로 역사 기록물이었다.
센터는 80년대 새로운 안전보건 문제였던 VDT 작업부터 최근의 돌봄 노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노동자 건강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번 학회에서 발표한 홈케어 노동자 (home care workers) 교육 프로그램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홈케어 노동자는 한국의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활동보조인 비슷한 일을 한다. 이들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와 손상, 감정노동, 폭력 등에 시달리고 있다. LOHP 팀이 오랫동안 노동자, 고용주, 전문가, 서비스 이용자들을 토론하면서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올바른 자세나 안전수칙 뿐 아니라 환자의 가정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이용자와 어떻게 대화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한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이들은 노동자에 대한 교육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뒷받침하는 캠페인, 즉 돌봄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환자들의 건강과 안전도 잘 돌볼 수 있다는 ‘소비자 캠페인’을 전개할 뿐 아니라, 돌봄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주 입법 활동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적대적 관계가 될 수도, 가장 강력한 연대 세력이 될 수도 있는 돌봄 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 관계에 초점을 둔 운동 방식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림 3) LOHP 센터가 개발한 돌봄 노동자 교육자료 소개
무엇보다도, 지역 대학과 노동운동이 안정적인 장기간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구체적인 사업과 전략을 개발하면서, 후속 세대의 연구자와 활동가를 키워내는 시스템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노-학 연대’를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1) 모금을 통해 아시아 지역 활동가들에게 여비를 보태준 샌프란시스코 지역 활동가들, 학회 전후로 우리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마련해준 토드, 로라, 학회 특별행사 참가 비용을 지원해준 New Solutions 편집위원회 모두에게 지면을 통해 고마움과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학회 참가 비용을 지원해준 시민건강증진연구소와 후원회원들에게도 감사한다.
2) http://ipen.org/pdfs/apha_release_31_oct_2012-en.pdf
대선 정국을 맞이하여 여야 대선 주자들 모두 노동법 개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는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경영상 해고1)를 일삼는 대기업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문 앞으로 달려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훌륭한 광경이다. 그러나 이 북적되는 광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법의 보호에서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공식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지만 현실에서는 배제된 사람들.
대선 주자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노동운동 진영의 요구안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먹고 꼼꼼히 찾아야 보인다. 저 구석 한 귀퉁이에,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문구 안에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이들은 노동법의 모법(母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5명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극히 일부 조항들만이 예외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따라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하루 24시간 밤새워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연차휴가를 단 하루도 주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고,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단 한 푼 주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배제된 이들 스스로도 이 사실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선 주자들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이들을 모두 잊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1,000만명이 넘는다.2)
그렇다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상황이 나을까? 출퇴근길 지나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상점들, 식당들, 소규모 공장들. 어디에나 노동자들이 있고, 이 사업장들 중 많은 수는 5인 이상 사업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도 앞의 1,000만명과 다를 바 없다. 법적으로만 보면, 이들은 정규직이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정규직이다. 대부분의 영세 업체에서는 근로계약서 자체가 작성되지 않으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인 셈이다.
이들에게 언론과 정치권이 연일 쏟아내는 비정규직법, 경영상 해고,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는 어떻게 비춰질까? 어쩌면, 이들에게는 ‘고용 의제’니 ‘불법 파견’이니 법적 다툼을 벌이는 광경도 부러울 수 있겠다. 적어도, 그 다툼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는 쓰고 일하는 노동자일 테니 말이다. 근로계약서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 한마디가 곧 노동법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부러워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기에, 이들에게 경영상 해고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들에게는 경영상 해고를 당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대선 주자들이 분주히 노동조합들 사이를 오가며 ‘노동’을 이야기 한다. 간만에 세간의 이목이 ‘노동’에 집중되니, 기분이 좋아야 당연한 것인데. 이 꿀꿀한 기분은 왜일까? 복잡한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노동법인가. 누구를 위한 노동운동인가.
1) 기업이 경영상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행하는 해고를 통상 ‘정리해고’ 라고 칭한다. 그러나 노동자도 사람이고, 사람을 정리한다는 표현은 왠지 꺼림칙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리해고’라는 단어 대신 ‘경영상 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2) 통계청 2012년 7월 고용동향 조사결과 참조
긍지와 가치의 작은 바람
- 은평 돌봄노동자 건강권 교육프로그램 현장보고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은평에 바람이 불었다. 부동산과 신도시 개발관련 뉴스로만 접했던 은평. 그러나 뉴스에는 나올 수 없는 깨알 같은 노동의 이야기가 숨겨진 은평이었다.
은평 돌봄노동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전문의와 상담을 하는 한편, 심리상담과 미술치료, 물리치료, 스트레칭, 명상 프로그램과 함께 교육사업도 병행되었다.
노동건강연대에서는 프로그램 전반의 기획과 운영에 전폭적으로 참여하고 전문 의료진과 강사진을 집중 투입하였으며,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교육프로그램에 관하여 생생히 보고하겠다.
교육프로그램은 두 종류, 4주 코스와 8주코스로 각각 2기로 진행하였다.
1기는 요양보호사 중심이었으며, 2기에는 보육, 간병,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강의내용은 건강권과 더불어 산재보험 특강, 인권교육, 노동권교육, 글쓰기 강좌로 자신과 마주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자신과 마주한다고 했지만 참으로 생소한 경험이다. 이런 참여형 교육을 접한 적도 없을 뿐더러, 동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생소한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일해야 하고, 시설이 아닌 가정집을 돌며 환자와 1:1로 만나는 재가요양보호사들은 다른 동료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은평에서 만난 돌봄노동자들은 참으로 솔직하고 발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이야기가 많아서 즐겁다.
[몸지도 그리기]
‘삼순아, 이거 네 몸이야. 너 가슴 짝짝이잖여~ 호호호’
몸지도 그리라고 큰 도화지를 드렸더니 안 그려도 될 것 까지 그리신다. 옆 모둠을 힐끔힐끔 컨닝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예쁘게 그리느라 난리가 났다.
자기 몸 만한 그림위에 아픈 곳을 표시하는데 표시가 안 되는 곳이 없다. 환자를 노상 일으켜 세우고 이동시키고 목욕시키느라 주요 관절과 근육에는 온통 빨간 스티커 투성이다. 환자 휠체어에 발이 찍힌 사람, 종일 서서 일하느라 발바닥이 아픈 사람도 부지기수. 머리에도 스티커가 수두룩하게 붙는다. 두통과 스트레스다.
모둠별로 토론하는 순서가 되자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재가요양보호사 한분은 시간이 촉박해서 카드리더기에 급하게 달려가다가 계단에서 구르셨다. 다른 분은 환자모시고 택시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할머니 대신 고추밭에서 밭 매다가 다친 사연, 자기얘기에 덤으로 들은 이야기까지 풀어놓으신다.
아픈 이야기의 2부는 언제나 민간요법이다. ‘약국 가서 뭘 달래서 발라보니 좋더라’
약국을 애용하는 분들이 있고 찜질기구를 달고 사는 분들, 각종 처방이 난무한다. 사람들이 가장 눈을 빛내는 것은 어느 정형외과가 싸고 확실하게 치료해주는가 하는 부분이다.
또 다른 화제는 성희롱이다.
‘내가 가는 집의 할아버지는 목욕시킬 때마다 꼭 내 앞에서 팬티를 훌렁 벗으신다’
이럴 땐 옆의 요양보호사 선배한테 마이크를 넘겨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럴 땐 난 냅다 소리 질러. 할아버지 막 혼내고’
9년차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데 그 표정이 정말 진지하다.
[인생곡선 그래프 그리기]
보통 나이가 50대 후반을 넘는 분들은 인생곡선을 그려보라고 하면 처음엔 난감해 하지만 결국엔 굴곡진 그래프를 그려내신다. 출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면 그 사이 자신의 건강 곡선도 함께 보이니 서로 발표하면서 재미있어 하신다.
중요한 것은 돌봄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계기인데, 몸도 안 좋고, 마음이 안 좋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을 때(특히 남편 부도-IMF때)의 계기가 많았다. 힘들고 박봉이지만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보면 몇 가지 유형이 나타났다. 어떤 분들은 어려운 사람을 ‘돌본다’는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심리적인 만족을 갖는데 이 경우 종교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런 분들의 발표를 듣고 있으면 신앙심과 소명의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보다 더 많은 경우는 직업으로 돌봄노동을 선택한 것인데 이분들에게는 노동의 대가, 즉 환자, 협회 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대우, 저평가와 저임금 등에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
[일터지도 그리기]
업무의 종류를 구분하고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어디가 많이 아픈지, 아픈 이유는 무엇인지 정리해 보았다.
돌봄 과정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휠체어, 택시 이동에서 힘든 일이 많았고 집안에서도 욕실에서 목욕시킬 때 무리한 자세를 많이 이야기하였다. 이런 힘든 작업에는 각자의 노하우가 제법 있었는데 환자를 어떤 자세로 부축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목욕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서로 안전한지에 대해 열띤 이야기가 오갔다.
[엄마아빠놀이 - 요양보호사 역할극]
가운데 앉은 사람은 요양보호사이고 왼쪽은 협회장(사업주), 오른쪽은 노동조합간부 역할이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조합 가입에 관해 협회장은 ‘가입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고, 노동조합 간부는 ‘가입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남을 설득하고, 상대방의 논리의 이해해보는 훈련프로그램인데, 몇몇 요양보호사는 취지와는 상관없이 ‘노동조합이 원래 더 좋으니까’라며 감정적인 선택을 해서, 심지어 협회장도 같이 노조에 가입하기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웃기긴 한데, 근데 정말 그러면 좋겠다, 그렇지?’
[강의-나는 왜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되었는가]
공공운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의 서울대병원 간호사시절 경험담을 들었다. 현정희 부위원장은 강의에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솔직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날 강의를 듣고 전원이 그 자리에서 노동조합 가입서를 쓰게 되었다.
[산재보험 특강 - 2만6천원 받으려고 그 고생을]
환자를 돌보다 다쳐서 산재보험 신청을 했는데 며칠 일도 못하고 근로복지공단을 쫓아다닌 결과, 고작 2만6천원 보상받았다며 ‘그 고생을 했는데’ 라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하루 종일 시달리는 문자메시지]
한 요양보호사가 살짝 보여준 문자. 지적장애인을 돌보고 있는데 그분으로 부터 매일 수십통씩 이런 문자를 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뭐 괜찮아요, 이런 식으로 밖에 누군가한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 아이가 딱하니까’ 답하였다. 이 직업은 착한 심성이 필요한 것 같다.
[산재보험 강의]
어려운 법 이야기에 복잡한 신청절차. 강사말씀 들으랴, 메모하랴, 질문하랴 참가자들이 바빴다. ‘사실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한테 전화하세요’ 라는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강사의 말에 빵 터졌다.
[강의-돌봄노동자들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
노동자들이 왜 건강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지, 사회적으로 건강 불평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노동건강연대 임준 집행위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강사가 솔직하고 쉽고 강력하게 전달하여 높은 호응을 받았다.
한 참가자는 ‘똑똑한 의사선생님들이 우리 편이니까 우리이야기 좀 잘 해 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옆의 다른 분이 ‘우리얘기를 우리가 해야지, 직접 우리가 해야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대꾸하신다.
[1박2일 졸업여행과 수료증 수여]
남을 돌보기만 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1박2일 졸업여행을 갔다.
진행자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든 이들은 감격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돌봄을 받는 것은 처음이고 참 행복하네요’
수료증을 주는 사람도 처음이고, 받는 사람도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하고 감사해 하였다.
수료증을 끝으로 교육프로그램은 마무리 되었고 종로 종각 앞에서 ‘돌봄노동자대회’를 함께 하였다.
돌봄노동의 각 영역-보육교사, 가사돌보미, 간병인, 장애인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의 여성노동자들이 돌아가며 마이크 잡고 이야기 하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무리 정교하고 혁신적인 기계도 절대 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우주를 왕복하고 초정밀 기계를 다룰 수는 있지만 아픈 사람의 몸을 만져주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을 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고 자리 잡아야 우리는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다. 언젠가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서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이 ‘언젠가는 우리도 시설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겠지’ 하시는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집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문제
강희태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2012년 6월부터 8월까지 노동건강연대와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를 위한 공대위] 에서 보육교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생활재활교사의 5개 돌봄노동자 직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설문지는 보육교사 154명, 간병인 117명, 요양보호사 112명, 장애인활동보조인 87명, 생활재활교사 116명, 총 586명이 응답하였다.
일반적 현황성별은 여성이 91.99%, 남성이 8.01%로 여성이 많았으며, 이중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남성비율이 26.74%로 다른 직종보다 많았다. 연령은 간병인이 57세로 가장 많았으며, 요양보호사도 53세로 연령이 높았다. 반면 보육교사는 평균연령 31세로 가장 젊었다. 장애인활동보조인과 생활재활교사의 평균연령은 40대 중반이었다.이번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전체 조사대상자 중 45%였다. 직종별로 간병인이 89%, 생활재활교사가 77%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이 많았다. 반면 장애인활동보조인(9%)와 보육교사(14%)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이 매우 적었다.
노동조건 현황근무형태는 보육교사와 장애인활동보조인은 대부분이 주간 근무였다. 반면 간병인의 경우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 형태 및 24시간 맞교대처럼 24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주간 근무 형태가 가장 많았으며, 12시간 맞교대나 24시간 맞교대 형태가 그 뒤를 이었는데, 이를 요양보호의 종류에 따라 나누면 재가 요양보호는 모두 주간근무인 반면에, 시설 요양보호는 12시간 맞교대(35%), 24시간 맞교대(22%), 8시간 3교대(9.8%), 주간근무(16%) 순으로 대부분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생활재활교사의 경우 12시간 맞교대 형태가 가장 많았으며, 기타 근무형태 및 주간 근무, 야간 근무가 그 뒤를 이었는데, 기타 형태에는 12시간 정도씩 격일제 근무나 변칙 3교대(8시간 근무, 24시간 근무, 휴무) 등이 속해 있었다.
월평균 근무일수는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보조인은 21일 남짓이었고, 간병인은 19일 정도, 생활재활교사는 17일 정도였다.
일평균 근무시간은 24시간 연속근무 형태가 많은 간병인이 22시간으로 가장 길었으며, 교대근무가 많은 생활재활교사도 13시간으로 길었다. 장애인활동보조인과 요양보호사는 일평균 근무시간이 7~8시간 사이였다.보육교사는 대부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통상적으로 근무하고, 경우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형태로 근무일수를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 다만 평일 평균 근무시간을 조사하였고 평일 평균 근무시간은 9.5시간으로 나타났다.
조사된 돌봄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132만원이었다. 생활재활교사가 평균임금 209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보육교사 149만원, 간병인 125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보조인은 각각 89만원과 86만원으로 100만원도 안 되는 월 평균 임금을 받고 있다.
근무 중 휴식시간이 있는 경우는 전체적으로 30% 정도였다. 직종별로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이 62%의 사람들이 근무 중 휴식이 있다고 해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요양보호사가 45%로 뒤를 이었다. 보육교사의 경우는 휴식시간이 있는 경우가 28%였고, 생활재활교사와 간병인은 휴식시간이 있다고 한 경우가 10%대에 불과하였다.
업무 중 업무와 연관된 성희롱을 경험했는지 질문하였다.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는 성희롱 문제가 없었고, 장애인들을 돌보는 생활재활교사나 장애인활동보조인의 경우에는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나 노인들을 돌보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의 경우 성희롱 경험 비율이 40% 내외로 높게 나타나 심각한 수준이었다.
원래 돌봄 업무가 아닌 청소, 빨래 등과 같은 가사업무를 요청받는 경우, 간병 응답자 110명 중 32명(29%)이 현재 가사업무를 요청받고 있다고 하였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75명 중 절반이 넘는 41명(55%)이 가족들의 가사업무까지 요청받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85명 중 12명(14%)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비율로는 높지 않으나 일부 장애인활동보조인의 경우 원래 업무가 아닌 가족들의 가사업무까지 요청받아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될 위험이 있다.업무에 대한 만족도조사에서는 전반적인 만족도는 불만족률이 19.5%였으며,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의 불만족률이 30% 정도로 높았고, 장애인활동보조인과 보육교사는 10% 미만으로 낮았다.임금 및 소득에 대한 만족도는 불만족률이 42.5%로 다른 항목에 비해 매우 높았다. 간병인 63.6%, 요양보호사 59.8%가 불만족했으며, 보육교사도 43%가 불만족했다. 장애인활동보조인과 생활재활교사는 불만족률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트레스
돌봄노동자들을 대상으로 PWI-SF라는 스트레스 수준 측정 설문을 시행하였다. 총 18문항으로, 점수를 매겨서 8점 이하는 건강군, 9점에서 26점까지는 잠재적 스트레스군, 27점부터 54점까지는 고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설문이다.
전체적으로 건강군은 4.4%에 불과하였으며, 잠재적 스트레스군이 57.9%, 고위험군은 38%에 이르렀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건강군은 모든 직종에서 5% 내외로 매우 낮았으며, 고위험군은 생활재활교사, 간병인, 요양보호사가 비슷하게 40% 초반대였으며, 보육교사는 34.4%였다. 고위험군이 가장 낮은 직동은 장애인활동보조인이었으나, 그 비율이 26%에 이르렀다.
우울증
우울증 관련해서 21문항으로 이루어진 Beck의 우울 척도 Ⅱ(Beck Depression Inventory Ⅱ, BDI Ⅱ)를 이용하였다. 21문항에 대해서 점수를 매겨 0-13점은 정상, 14-19점은 경한 우울, 20-28점은 중등도 우울, 29-63점은 심한 우울로 판정한다.
전체적으로 경한 우울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설문 참여자 중 36.5%를 차지하였으며, 중등도 우울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18.7%,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진료와 관리가 필요한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7.2%였다. 같은 설문지를 이용해 한 지역의 소방서 직원 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경한 우울이 3명(7.7%), 중등도 우울이 1명(2.6%)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울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BDI 항목 중 자살충동과 관련된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살할 생각 있는 경우는 전체의 32.5%로 특히 요양보호사가 42.2%로 가장 많았고, 간병인이 36%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적극적으로 자살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554명 중 10명(1.8%)이었으며,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겠다는 사람은 2명(0.36%)이었다.
수면의 질
수면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 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PSQI) 설문지를 이용하였다. 설문지를 이용하여 채점을 하면 0점부터 21점까지의 점수가 얻어진다. 0점은 수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21점은 수면의 전 방면에 걸쳐서 심각한 어려움을 가진다는 것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절단점 5점을 기준으로 5점 이하는 정상으로, 6점 이상은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판정한다.
전체적으로 수면의 질이 나쁜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 60%로 절반이 넘었다. PSQI 평균 점수로도 7.01점으로 절단점인 5점을 훨씬 넘었다. 직군별로 살펴보았을 때 24시간 연속근무 등의 형태로 근무하는 간병인이 수명의 질이 가장 나빠 수면이 질이 나쁜 군이 76.7%나 차지하였으며, PSQI 점수 평균도 9.02점이나 되었다. 그 다음으로 교대근무 형태가 많은 생활재활교사에서 69.8%가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고, 3번째는 요양보호사로 58.8%, 4번째는 보육교사로 54%가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은 다른 군에 비해서는 수면의 질이 좋았으나 역시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군에 38.8%나 속해 있었고, PSQI 점수도 5.4점으로 절단점 이상을 나타냈다.
건강 문제
돌봄노동 업무를 수행하면서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건강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지 질문하였다. 총 428명이 응답하였고, 그 중 319명(74.5%)이 업무연관성으로 생각되는 건강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직종별로는 요양보호사(91.5%), 생활재활교사(82.8%), 간병인(75%), 보육교사(70.6%), 장애인활동보조인(48.6%) 순으로 업무연관성 건강문제 경험이 많았다.
어떤 질환들이 문제가 되었는지 정도가 심한 것부터 5가지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가장 정도가 심한 1순위 질환으로는 요통 및 허리디스크(29%), 상지근육 및 관절질환(23%), 위장질환(17.5%)을 꼽았다. 허리, 상지, 하지를 합친 근골격계질환을 합치면 62%로, 근골격계질환과 위장질환을 합치면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연구조사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건강 문제, 특히 정신건강 문제에 대하여 직종별로 조사를 한 데 의미가 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돌봄노동자의 문제를 알리며 정책개발의 기초자료로 사용하고자 한다.
감정노동이 건강을 해친다
이태경 /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보고 싶어 보는 게 아니야”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니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한국 전체 산업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늘 상 하는 말이다. 속마음은 이런 게 아닌데 하고 싶은 표현은 속으로 삭이면서 과장된 웃음과 강요된 표준어 뉘앙스로 손님,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 마치 군대처럼 ‘다’ ‘나’ ‘까’ 훈련도 받는다. 괜히 손님 응대 잘못했다 민원이라도 생길 차원이면 머릿속에 직장상사가 떠오른다. 잘못한 게 없는데 ‘무조건 사과’하라는 식의 욕지거리 섞인 질타가 두렵다. 경위서 쓰는 게 두렵지는 않지만 잘못도 없이 잘리까봐 억울하다. 누군가가 아니고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1. 감정노동 고노출군
고객만족과 매출이 관련된다고 인식하는 동안은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은 마케팅 분야에서 고객만족(CS: customer satisfaction), 고객감동을 강조하면서 나보다는 ‘고객 감정’을 우선시 하는 서비스를 강요하고 있다. 노동자는 업무 지침에 따라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강제 당하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 받고 때로는 내면 감정마저 통제 당하게 된다.
소위 고객서비스를 담당하는 판촉 및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간호사, 항공기승무원, 민원상담실 직원, 슈퍼마켓, 백화점, 호텔, 패스트푸드점, 보험회사의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고객 서비스를 주 업무로 하는 산업 근로자는 모두가 똑같은 감정노동이라는 직업적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2006년 대부분의 근무시간에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30~60%이었고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약 32만 명, 전체 취업자의 약 2.2%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수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전체 감정노동자중 여성에서, 젊은 연령에서, 대민업무를 직접 수행할 가능성이 높은, 낮은 직급에서 감정노동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2. 감정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감정노동에 관한 외국의 앞선 연구들은 감정노동이 소진(burnout)3과 직무 불만족4 등의 부정적인 결과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문제를 유발한다고 보고하고 있다.국내 연구중 감정노동의 부정적 결과에 대하여 우울증상(Depressive symptoms) 또는 신체증상(Physical discomfort)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대부분의 연구는 소진(Emotional exhaustion), 직무만족도(Job satisfaction) 및 이직의도, 조직시민 행동 등의 결과와 감정노동의 관련성에 대한 것으로 감정노동의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문 편이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근무시간 동안 손님 응대에 실수(?)가 없게 하기 위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소위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을 하는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고 혈압은 높게 유지해야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은 계속해서 분비되어 몸을 데운다. 이런 스트레스 상태에서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거나, 적절히 해소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억눌린 감정을 해결하지 못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직무스트레스의 건강영향으로 알려져 있는 작업관련 뇌심혈관 질환,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 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강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 하급 직원에게 짜증을 부리고 기혼 여성의 경우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서서히 의욕상실로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는가 하면 우울감(증)을 겪을 수도 있고 불면증, 생리불순, 소화장애, 경련성위통,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신체화 장애를 격을 수도 있다. 정신적 장애가 심해지면 자살 등 극한의 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일부 언론과 인터뷰 기사 글에서도 는 감정노동자가 느끼는 건강상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백화점 식품부 판매직 정모씨(27) (한겨레 신문, 2005년 6월 1일자)“우리는 매대 판매를 하잖아요. 어떤 때는 사람에 치여… 사람들이 물건 사러 오면서 우리한테 주는 스트레스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친절을 강조하니까…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거예요. 사람이 싫어요.”
기업 고객만족팀장 김모씨(35) (중앙일보 2002년 8월 19일자)어느날 회식 도중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의식을 잃은 뒤 공황 장애로 병원을 전전함. 고객의 다양한 불만 처리와 대인관계 책임에 따른 감정노동이 직무 스트레스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산업재해 요양 판정을 받음
감정노동이 직무스트레스의 한 요인으로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은 심각한 건강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업병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그 실태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관련된 규제나 기준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3. 감정노동 스트레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윤을 향한 기업의 경영전략은 갈수록 강화되고 서비스직의 비율이 높아가고 감정노동 종사자의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감정노동문제는 고객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별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과정 통제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근로자 개인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감정노동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수준에서는 내키지 않더라고 개인 업무시간과 양 등 노동강도를 조절해주어야 한다. 휴게시간 확보, 감정부조화 해소 프로그램, 교대제 개선도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노동자는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인격존중의 회사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직무스트레스 문제 해결에 상급자나 동료의 상호 지지와 배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고객에게도 떳떳한 대응을 주문해야 한다. 고객의 불쾌한 언행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조치, 폭행에 대한 적정한 제재조치 및 예방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노동자 개인차원에서도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 등의 대처기법을 활용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고서는 그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
‘소비의 지점’과 보건의료노동자의 감정노동
임준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1.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해도 될 정도로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위험물질 및 위험공정에 대한 세세한 규정과 그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의무 등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업의 안전보건 문제를 추가하고 있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이 다른 업종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제조업만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리화학적 위험 인자 및 공정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조업의 물리화학적 위험 인자 및 공정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전체적으로 매우 나열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제반 위험 요인을 열거해 놓은 규정은 그에 해당하는 인자 및 공정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에 해당하지 않는 위험 인자나 공정, 또는 환경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단점을 갖는다. 제조업만 하더라도 신기술의 도입 등으로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을 노동자가 다루어야 하는데, 현재의 법적 근거로 이러한 공정에 대한 사전 예방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산업이 제조업 등 이차 산업에서 서비스업과 같은 삼차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1990년대부터 노동자의 산업별 구성을 보면, 서비스업 종사자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구의 노령화와 맞물려 사회적 필요가 커지고 있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업과 같은 이차 산업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서비스업 비중의 증가와 더불어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현행 안전보건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지점이다. 비정규직의 확대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화된 위기 또는 전 지구적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노동 포섭의 경향적 흐름이고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정규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 특히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이 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의 궁극적인 목적 또는 지향점이 노동자의 건강에 있다고 할 때 당연하게 그 주체와 대상은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 주체와 대상의 면모가 과거와 달라졌다면 산업안전보건이 과거의 틀과 달라져야 한다. 제조업이 주도하는 산업 구조와 정규직 중심의 사업장에서 주로 나타났던 안전보건의 문제와 틀은 서비스 산업 등이 확대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2. '소비의 지점'과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산재보험 통계에 기초한 한국의 재해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사망자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지만, 사망만인율 역시 줄어들고 있다. 특히 산재보험 통계에 기초한 공식적인 보건의료부문의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을 보면, 보건의료 등 서비스 업종의 재해율이 제조업, 건설업 등 전통적인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에 비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업종별 재해율 및 사망만인율
자료: 노동부, 2009년도 산업재해분석, 2010
그러면, 보건의료 부문에서 산재가 정말 적게 발생하는 것일까? 2007년 발간된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연구보고서를 보더라도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건강보험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산재보험 통계로 잡힌 직업성 손상자수가 전체 직업성손상자의 2.5%에 불과하고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면서도 산재보험에 누락된 직업성 손상자수가 전체의 35.1%에 이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 중 상당수도 실제 직업성 손상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으로 치료 받지 않고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림 2. 건강보험 손상 환자를 통해 추정한 직업성손상자 분포(2006)
자료: 한국산업안전공단 2007
미국의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의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산재가 적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가 은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2002년 통계를 보면, 병원부문 노동자의 재해율이 9.7%로 다른 산업 노동자 평균인 5.3%에 비해 훨씬 높다. 이러한 재해율 수치는 과거 재해율이 높았던 산업인 광업, 제조업, 건설업의 재해율인 4.0%, 7.2%, 7.1%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다른 산업의 재해율은 감소 추세이지만, 보건의료 부문 노동자의 재해율은 정체 또는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3. '소비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새롭고 다양한 건강 문제의 발생
보건의료노동자는 화학물질 등에 의한 산재와 중량물 취급 및 반복 작업, 그리고 불안전하고 부적합한 작업 과정 등에 기인한 근골격계질환, 작업 도구 등에 의한 알레르기성 피부염 등 제조업 등에서 발생하는 전통적인 유형의 산재에 노출되어 있다. 제조업 사업장의 두 배 이상인 300여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병원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전체 산업 노동자 중 보건의료노동자에게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을 정도로 환자 및 기구의 운반, 장시간 기립 등 많은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보건의료노동자는 제조업 노동자와 같이 노동과정에서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보건의료서비스의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환자의 접촉 지점에서도 심각한 건강 문제에 노출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환자의 접촉 지점에서 발생하는 위험요인은 전통적인 위험요인에 비해 건강 위험요인이 훨씬 다양하고 문제의 성격이 이질적이다. 특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요인에 보건의료노동자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폭력과 정서적 박탈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사업장 폭력의 32%가 보건의료노동자에게서 발생하고 있을 정도로 보건의료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이 중 51%가 환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폭력이다. 더욱 문제는 병원 경영자 또는 보건의료노동자들조차도 환자에 의한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폭력은 노동자 개인의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 뿐 아니라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적절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지금 미국은 적은 수의 간호사 인력, 보안 시스템 미비, 경영진의 인식 결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폭력 문제가 구조화되고 있다. 또한, 보건의료노동자는 장시간 노동 및 교대 노동 뿐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접촉 과정에서 부정적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업종에 비해 정서적 소진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건강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직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건강 문제는 보건의료 노동과정의 본질적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및 불만으로 내재화된 환자와 일상적으로 접촉해야 한 보건의료 노동자는 환자와 관계 속에서 구조적 갈등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보건의료의 특성상 정보가 비대칭적이고 평가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환자의 요구가 즉자적이고 공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병원조직의 특성이 문제를 더 증폭시킨다. 병원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가부장제에 기초한 성별 직종 분리가 구조화되어 있어서 성별 문제와 결합된 직종 간의 갈등이 크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여성노동에 대한 비하와 저평가,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가 직위와 직종을 통해 관철되면서 환자의 접촉 지점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박탈과 폭력이 증폭되거나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갈등 관계는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폭력 문제를 유발하기도 하고, 심각한 정서적 소진을 유발하기도 하며, 결국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치료행위 중심의 보건의료체계와 의사 중심의 병원 운영이 간호를 포함한 서비스 인력의 절대적 부족으로 나타나고 결국 환자 및 보호자와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도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업무의 특성상 교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정서적 소진 등 건강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철웅 등(2010)이 수행한 연구에서 높은 정서적 소진 상태에 있는 간호사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표 1. 간호사의 높은 정서적 소진 상태에 대한 국제 간 비교 결과
구분
미국
캐나다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한국
간호사
다른
직종
전체
내과,
외과,
산부
인과
직무만족도
41
32.9
36.1
37.7
17.4
61.7
68.5
39.9
높은 수준의
정서적 소진 비율
43.2
36
36.2
29.1
15.2
62.9
70.4
35.1
이직 계획 비율
22.7
16.6
38.9
30.3
16.7
28.9
32.1
9.9
4. 환자권리 향상과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연대의 모색
‘소비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환자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김철웅 등(2010)이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환자의 부작용을 경험한 간호사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낙상사고의 경우 주요 과목의 간호사의 경우 58.8%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환자 안전 문제는 일차적으로 병원 인력의 부족에 기인하게 되는데, 결국 병원 인력의 부족은 환자 안전 문제를 발생할 뿐 아니라 노동자와 환자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정서적 소진을 높이는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다시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저하 문제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인력의 부족 뿐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정서적 소진 상태가 심각한 상황에서 환자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소비의 지점’에서 환자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업무의 특수성 뿐 아니라 고통과 불만이 내재화되어 있는 환자의 특성, 그리고 병원조직의 전근대성 등 다양한 복합적 요인으로 인하여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보건의료의 특성상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결국 환자의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부문보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노동자와 환자가 노동자의 건강권과 환자권리 및 서비스의 질을 매개로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 출발은 인력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참고문헌
김철웅. 2010 대한민국 병원을 말한다! - 병원인력 확보,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연구발표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0
노동부. 2009년도 산업재해분석. 2010
임준.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 한국산업안전공단. 2007
감정노동 : 가면의 노동, 허물어지는 건강
박주영 /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1. 감정노동, 회사의 목적에 맞게 감정을 통제하는 것
“고객님, 사랑합니다”로 전화를 받는 114전화상담원, 고객이 코너를 물으면 해당상품 진열대 앞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마트 점원, 몸을 더듬는 환자에게도 ‘환자에게 안 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간호사, 욕설과 막말을 들어도 끝까지 친절해야 응대해야 하는 고객센터 상담원.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서비스업이 팽창하면서 대인업무에 종사하는 직종도 늘어났고 그만큼 이들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그러나 감정노동의 개념과 발생, 이에 대한 접근법과 대책마련은 한국에서 그리 활발하지 않다.
‘감정노동’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학자로는 ‘앨리 러셀 혹쉴드’(이하 혹쉴드)가 유명하다. 그녀는 이미 1983년 자신의 책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에서 감정노동을 ‘공적으로 주목받는 얼굴 표정, 신체적 행위를 만드는 데 따르는 느낌을 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혹쉴드는 항공승무원, 미용사, 가게점원, 추심원 등이 감정노동을 하는 전형적인 직업인을 소개한다. 생산성과 고객만족, 수익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소속조직의 목적에 적합하게 감정표현을 통제해야만 한다. 혹쉴드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기 위해 팔린다’는 점에서 ‘교환가치를 갖는다’. 감정이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며 감정노동이 교환가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사용가치만을 전제하는 감정업무(emotional work)라는 용어와도 구분한다.
2. 감정을 감추는 ‘표면행위’, 진짜 감정을 바꾸는 ‘심층행위’
이렇게 통제되는 감정노동은 ‘표면행위’(surface acting)와 ‘심층행위’(deep acting)로 구분된다. 표면행위는 감정을 감추고 실제로 있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척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표면행위를 할 때 노동자는 불쾌한 속마음은 그대로 감추고, 겉으로 나타난 표정과 행동만 꾸미게 된다. 이에 반해, 심층행위는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않고 고객의 말과 행동에 맞추어 노동자의 감정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바꾸고 조절해서 고객을 응대하는 것이다. 표면행위 때에 노동자들은 고객의 행위에 대한 불만을 잠시 감추고 자기감정을 꾸미지만, 심층행위를 할 때 노동자들은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실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위해 다른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실제 감정이 어떤지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표면행위와 심층행위를 통해서, 감정노동은 조직의 수단으로서 인간의 감정이 이용되어 상업화된다는 점을 알려준다고 지적한다. 감정노동은 결국 업무처리 상황에서 조직의 목적달성에 바람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다. 이 개념은 인간의 감정이 조직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된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진실한 감정이 억압되고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팽창하는 서비스업, 높아지는 기대수준, 그러나 감정노동에 대한 인정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객의 만족도와 구매의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관리하는 노력이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를 노동의 새로운 형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혹쉴드는 감정노동을 통해서, 상대방이 우호적이고 안정된 장소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를 위해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감정을 억압하거나 감추고 꾸며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의 특성은 생산물인 서비스가 눈에 보이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을 복잡한 유통구조 속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지도 않는다. 노동자는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서비스라는 상품을 ‘판매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통제도 제조업과 달리, 고용주-노동자간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고용주-노동자-소비자의 삼각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판매 점원이나 승무원이 고객에게 받은 불만 요구, 환자가 제기하는 간호사의 불친절 민원,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옴부즈맨, 모니터링단의 존재 자체가 서비스노동자에게 노동통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서비스 산업이 팽창하면서 서비스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지속적인 업무가 되었고 고객지향적인 질적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요구받게 되었다. 기업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 또는 고객을 둘러싼 경쟁의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게 되었고 거기에는 서비스 내용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까지 포함되게 되었다. 서비스업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서비스의 질이란 무엇일까? 소비자-고객이 다시 찾아오는 것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 기업, 회사, 가게를 추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비스 부문의 이윤의 원천은 서비스를 수행하고 기꺼이 제공하는 감정노동에서 나오게 된다. 관리자에 대한 불만, 고객에 대한 분노, 억울함 등 노동자들이 일할 때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감정들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해도 그 감정 자체가 노동의 일부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정노동자들의 경우, 직무에 맞지 않게 자신의 본래 감정을 드러내고 이를 상대방에게 들키게 되면 어찌될까? 당연히 그 노동자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감정상태 자체를 그 직업에 개입시켜야 하며, 이 감정이 ‘서비스’라는 생산물의 일부가 된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노동과 차별성을 갖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환자나 보호자의 민원을 피해가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까지 감수해야 하는 간호사들이 그렇고, 성희롱이나 폭언에 시달려도 문제제기할 수 없는 상담원들의 처지가 그렇다. ‘고객이 왕’이라는 전근대적 분위기 속에서 ‘민원 발생=업무능력 하락’으로 직결되는 감정노동자들의 처지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가식적인 친절을 강요받는다.
4. 표준화된 감정규칙, 거기서 생겨나는 감정의 부조화
앞서 말했듯, 감정노동은 서비스업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감정노동이 서비스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규칙과 이를 표현하는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고객과의 관계에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무례한 행동에 대응하기를 자제하는 것,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기 등이 그런 것이다. 서비스업의 고용주들과 관리자들은 이렇게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규범화해서, 감정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서비스가 고객의 주관적 요구와 취향에 부합되어 이윤을 높일 수 있는지 모색한다. 백화점과 외식업체에서 고객만족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사례가 그렇다.
매뉴얼로 만들어진 규범과 규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모든 노동자들이 항상 일상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동일적인 형태의 서비스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고용주와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표준화된 감정규범을 숙지하고 이를 내면화하도록 요구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노동과정에서 갈등은 언제나 발생한다. 따라서 고용주와 관리자들은 노동자가 수행하는 서비스노동에서, 노동자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노동과정에서 요구되는 (규범적)감정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를 관리하고자 한다. 이렇게 노동자가 요구받는 감정의 표현규칙과 노동자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분리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과 긴장이 발생하게 된다. 혹쉴드는 이것을 ‘감정의 부조화(Emotive dissonance)’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표면행위와 심층행위를 통해 감정을 가장하거나 꾸미거나, 스스로 속이고 바꾸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분리하면서, 그리고 꾸며진 자신의 감정표현에 죄책감을 느끼고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감정노동의 부정적인 결과라는 점에는 모든 연구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5. 감정노동을 다루는 다양한 연구흐름
혹쉴드가 ‘관리되는 감정과 느낌’을 정의 내리긴 했지만, 그 범위와 구성요소를 두고 논의가 다양하다. 어떤 연구자들은 혹쉴드가 정의내린 ‘느낌’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경험된 내적 감정보다 외적인 표현행위를 중심으로 감정노동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애쉬포스(Ashforth)와 험프리(Humphery)라는 연구자들은 감정의 내적 관리보다 ‘관찰되는 행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면서, 관찰가능한 표현과 직무효율성 또는 직무수행도와의 연관성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모리스(Morris)와 펠트만(Feldman)이라는 연구자들은 ‘대인관계에 관련된 활동 중에 조직적으로 기대되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노력, 계획, 통제’를 감정노동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감정노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감정표현의 빈도와 같은 양적인 측면에만 치중할 뿐 질적인 면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이들은 감정노동의 개념을 다차원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이들이 밝힌 감정노동의 4가지 구성요소는 ‘바람직한 감정표현의 빈도’(얼마나 자주 상호작용하느냐), ‘바람직한 감정표현이 요구하는 주의력 정도’(얼마나 집중해서 얼마나 오래 상호작용하느냐), ‘요구되는 감정의 다양성’(얼마나 다양한 가정을 요구하느냐), ‘감정의 부조화’(진짜 감정과 요구되는 감정의 분리)다. 혹쉴드도 앞서 말했던 이 감정부조화에 대해, 어떤 연구자는 감정노동이 일어나기 위한 선행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감정노동 그 자체를 유발하는 한 요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감정노동 수행의 결과, 해당 직무수행자가 갖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 갈등상태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감정노동을 다루는 정의나 범위, 요소를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연구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감정적 표현을 직장에서 규제하며, 감정노동은 조직적 목표에 따라 감정과 표현 둘 다를 규제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특히, 감정을 관리하는 방식으로서 표면행위와 심층행위에 대해 구분하고 있으며, 표면행위(관찰가능한 행위를 관리)와 심층행위(자신의 진짜 감정까지 관리)의 과정은 감정을 규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혹쉴드를 비롯한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일터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공식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주목을 받으면서 노동자들에게 끼칠 해로움에 대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림 1) 일자리에서 일어나는 감정규제에 대한 개념적 틀 출처: Grandey, AA. Emotion Regulation in the Workplace: A New Way to Conceptualize Emotional Labor,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2000, Vol. 5, No. 1, 95-110.
출처: Grandey, AA. Emotion Regulation in the Workplace: A New Way to Conceptualize Emotional Labor,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2000, Vol. 5, No. 1, 95-110.
6. 서비스 질과 만족도는 강조,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 감정노동
감정노동이 감정을 주요요소로 하지만, 최종적으로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성격의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판매서비스직 노동자는 창고 물건을 정리하고 진열해야만 매장을 소비의 바람직한 대상으로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서비스 노동자는 고객들에게 편의와 친절함을 보이기 위해 대부분 서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의 성격은 육체적 건강의 문제를 유발하는 근거가 된다. 한 사회학자는 서비스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매우 복잡하다고 지적한다. 육체적 노동의 성격을 강조하게 되면 감정노동의 성격이 비가시화되고, 감정노동의 성격이 강조되면 그것이 비가시적인 특성 때문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거나 육체노동의 성격도 비가시화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가 대인관계에 기반한 감정노동에 의해 좌우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감정노동에 대한 인정은 어떤가? 대개 감정노동은 정신노동이나 육체노동에 비해 평가절하되며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조직화된 행정이나 평가도구들은 객관성을 강조하면서 도구적 합리성을 도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관계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감정업무는 공식적으로 인식되지도, 보상받지도 못하게 된다. 실체적이고 관찰가능한 요소만을 명시하는 직무기술서가 아닌, 상대적으로 관찰과 측정이 어려운 감정노동기술은 직무기술서와 성과평가, 그리고 보상체계에서 배제된다. 어느 행정학자는 대인업무를 주로 하는 행정체계를 평가하며,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현재의 행정맥락은 가시적이고 측정가능한 요소들은 더욱더 부양되도록 하고 ‘태가 나지 않는’ 감정 업무는 더욱더 침몰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7. 감정노동, 여성에게 습득된 자질인가?
감정노동이 인정받지 못하는 근거 중 감정노동의 복잡함, 측정 및 평가의 어려움 외에, 감정노동 종사자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팽창하는 서비스 부문의 노동시장은 소수 고소득전문직과 다수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로 양분된다. 이 중에서도 여성들은 판매와 음식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저임금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2005년 기준,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 전체 취업자의 52.4%가 남성이었고 여성은 47.6%를 차지했다. 다른 부문에 비해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개인서비스업의 임금이 가장 낮은데, 평균임금은 시간당 5,387원, 월평균소득은 불과 64만원으로 다른 직종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특히 최근에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보육, 간병과 같은 감정노동을 주요특징으로 하는 돌봄 서비스 부문에서는 다른 직업보다 임금이 낮다는 것이 기존 연구들의 공통점이다.
여성이 지배적인 서비스 부문의 임금이 왜 이토록 낮을까?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은 여성들의 성역할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자질이기 때문에 숙련이나 기술과는 관련이 없다는 생각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여성의 자질이라고 여겨지는 돌봄, 응대, 친절과 같은 요소들은 남성적 자질이라 여겨지는 기술이나 숙련과 달리 낮게 평가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임금결정체계나 제도 안에 규범으로 드러나 있다.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감정노동 직업군에서 임금이 낮고 숙련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여성들이 그 노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감정노동은 비가시적이며 개인의 성향이나 사회성과 비슷하게 인식되어 노동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8. 가면을 써야 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허물어진다
최근 연구 중 감정노동자들과 비감정노동자들을 비교해서 직무만족도나 건강상태를 다룬 연구에서는, 감정노동을 하고 직업 불안전성의 정도가 클수록, 직무만족도가 낮을수록 우울수준이 높았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직무자율성이 낮은 사람들이 더 많은 감정적 고갈을 경험한다는 것은 기존연구에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이 연구에서 밝힌 바, 감정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면접객 관계에서 이따금 원치 않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더 높은 우울수준을 보였다. 서비스제공자로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기대수준은 높아지는데 비해, 이에 따른 사회적 인식이나 보수체계는 마련되어 있지 않고, 직무의 장래성이나 고용안정도 안정적이지 못해 감정노동자들의 우울수준이 높아졌다. 감정노동자의 근무태도가 바로 생산성 및 판매실적에 직결되는 특수성으로 인해 고용주와 조직에서 끊임없는 압력을 받고 있어 이 또한 노동자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 연구는 지적했다.
산업사회의 변화를 통한 서비스업의 팽창, 기업의 이윤 논리 속에서 감정노동자들의 자괴감은 깊어간다. 자본주의가 낳은 위선적인 친절, 가장된 미소를 통해 감정노동은 가면 뒤에 감춰진 노동자들의 눈물을 만들고 있다.
참고문헌김경희, 서비스사회의 감정노동에 대한 이해,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11년 5월호 pp.27~37.김수연 외, 서비스직 근로자의 감정노동과 우울수준, 대한산업의학회지 제14권 제3호(2002년 9월), pp.227~235.김현주,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업병, Hanyang Medical Reviews Vol. 30 No. 4, 2010. 앨리 러셀 혹쉴드, <감정노동>, 이매진, 2009년 12월.정진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직업병의 새로운 발생원인- 감정노동(emotional labour)과 정신건강, 일과 건강, 2007년. 최성욱, 행정세계에서 합리성과 감정의 이원구조해체, 한국행정학보 제45권 제3호(2011 가을): 227~249.Ashforth, BE., & Humphrey, RH., Emotional labor in service roles: The influence of identity.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993, 18(1), 88-115.Grandey, AA. Emotion Regulation in the Workplace: A New Way to Conceptualize Emotional Labor,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2000, Vol. 5, No. 1, 95-110.Morris, JA., & Feldman, DC., The dimensions, antecedents, and consequences of emotional labor,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996, 21(4), 986-1010.
연중기획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함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
지난 9월, 두 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에 용광로 쇳물을 뒤집어쓰고 사망했다. 한명은 백일짜리 딸의 아빠였고, 다른 한명은 노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용광로는 그들의 뼈와 살을 녹였고, 유가족은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일하던 공장은 2007년 이후 매년 산업재해가 발생하던 사업장이었다. 노동부도 산재 다발 사업장으로 선정하여 재해예방 추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곳이었다. 결국, 참사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회사의 관리 소홀과 부주의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은 들끓었다. 노동부와 검찰은 이례적으로 회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산재사망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던 과거 노동부와 검찰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이었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간단히 기각해 버렸다. 물론, 피의자의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측면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법원이 산재사망을 대하였던 소극적 태도들을 돌이켜볼 때, 이번 기각 결정이 과연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 실로 의문이다.
그렇다. 무수히 많은 산재사망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노동부나 검찰보다 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너무도 관대한 법원 덕택에, 산재사망을 야기한 무수히 많은 사업주들이 벌금 몇 푼만 내면 모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노동자가 불에 타죽고, 떨어져 죽고, 팔 다리가 잘려 나가도, 정작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업주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몇 만원짜리 상품권을 훔치거나 맨홀 뚜껑을 훔친 생계형 범죄자들에 대해 그토록 엄격했던 법원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2011년 산재사망 사건 1심 판결에서 쉽게 확인된다. 법원은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미약한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심지어 노동자 3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도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아래 표 참조) 산업안전보건법의 중요한 기능은 산재를 야기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통하여 그 재발을 방지하고 다른 사용자들에게 자발적인 예방 조치를 강구하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솜방망이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최소한의 기능조차 다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건번호
피해규모
판결결과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건설현장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
창원지법
2011노756
1명사망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
하청회사 벌금 300만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회사 무죄
울산지법
2011고단2571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
인천지법
2011고단2202
하청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회사 각 벌금 1000만
2011고정578
하청 현장소장, 하청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
수원지법
2011노4417
중대재해
하청 사업주 벌금 500만
하청회사 벌금 700만
창원지법 통영지원
2011고단391
3명 사망, 1명부상
원청 대표 벌금 700만
원청 벌금 500만
원청 공무부장 벌금300만
원청 안전관리팀장 벌금300만
하청 대표 벌금700만
하청 벌금500만
출처: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
이 같은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2008년 - 2011년 대법원에서 판결된 주요 산재사망 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심지어, 원심에서 어렵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업주들에 대해서,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아래 표 참조)
피해 규모
대법원 판결 결과
무죄취지 파기환송 사례
대법원 2009도12515
하청 대표자 벌금200만
원청 OO건설 무죄취지 파기환송
OO건설 현장소장 무죄취지
파기환송
수급인 OOOO 직접 무죄판결
대법원 2009도13252
OO건설 무죄
OO건설 현장소장 벌금300만
컨소시엄 현장소장 벌금200만
대법원
2008도101
원청 및 원청 현장소장 무죄
하청 현장책임자 벌금 300만
2008도7834
원청 현장소장 벌금 200만
원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하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2008도5707
회사 대표 무죄
운전기사 징역1년 집행유예 2년
출처: 전형배,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워크샵, 2012
왜 법원은 산재사망에 대해 경미한 처벌을 반복하는 것일까?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법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통해서 쉽게 확인된다. 판결문 어디에서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들에 대한 엄중한 응징의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마치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이 같은 경향이 더 노골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법원과 검찰이 산재사망 사건에서 형사상 ‘행위자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하면,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이 산재가 유발된 작업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산재사고에 대한 사업주 책임과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문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문구이다. 판결문의 논리에 따르면, 사업주가 처벌되기 위해서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직접 지시하였거나,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사업주가 처벌될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될까?
사업주에 대한 구 법 제66조의2, 제23조제3항 위반죄는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구 법 제23조제3항에 규정된 안전상의 위험성이 있는 작업을 규칙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등 그 위반행위가 사업주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지, 단지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위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7.3.29. 선고 2006도8874판결, 대법원 2008.8.11. 선고 2007도7987 판결, 대법원 2011.09.29. 선고 2009도12515 등 참조)
셋째, 도급 사업주 책임에 대한 입법 미비의 문제점이다. 반복되는 산재사망 사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이 있다. 도급 사업에 있어서, 도급인, 발주자, 원청 등 실질적 권한을 지닌 도급 업체의 대표자들은 처벌을 피해 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급인은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및 제24조에서 정한 사업주의 의무를 지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산재사망이 발생하더라도, 도급인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제23조(안전조치) 및 제24조(보건조치) 위반 책임을 묻기가 어렵고, 협의, 지도, 지원 등 도급인의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산재사망 사건에 대한 총 6건의 대법원 판례를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급업체 대표자가 형사 처벌된 경우는 없었다.1)
넷째, 노동부와 검찰의 능력상 한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수사권을 지닌 노동부와 기소권을 지닌 검찰 모두 산재사망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노동부와 검찰은 그 동안 경찰이나 소방 당국의 조사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산재사망이 발생한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점 내지 업무 시스템 상 문제점 등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 사업주의 처벌 가능성은 당연히 낮아진다. 계도적 법규로만 산업안전보건법을 바라보는 법원에, 사업주들의 범죄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하는 노동부와 검찰이 더해져서, 지금의 솜방망이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첫째, ‘형식적인 사용자 책임’을 넘어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도급업체의 대표자 내지 실질적 권한(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향유하는 지위에 있는 자)을 보유한 자가 처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벌 강화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실례로, 현재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파견사업주가 아닌 사용사업주가 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이에 대한 법률적 보완은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행위자 처벌 원칙’을 넘어설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고민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그리고 상상적 경합 관계에 놓이게 될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직접 행위자가 아닌 대표자나 고위 임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개 노동자에 불과한 하급 실무자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사업장에서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행위자 처벌 원칙을 유보하는 조항을 명문화하는 방안, 형법상 죄가 되지 않더라도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과정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정의하는 방안 등2)이 고려될 수 있다.3)
셋째,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원인에는 노동사건의 기소권을 보유한 검찰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노동부의 한계 내지 문제점도 있다. 입법적 문제점이 해결되더라도 이와 같은 한계 내지 문제점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입법적 시도들과 더불어,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노동부의 수사권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례로, 산재사망에 대한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및 조사 권한을 행사하는 ‘(가칭)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법원도 작금의 현실에 대해 항변할 수 있다. 현재의 법 구조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법원 고유의 권한인 구속영장조차 쉽사리 기각해 버리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논리는 변명이고, 거짓일 수밖에 없다. 결국, 법원은 기업의 산재사망을 방조하고 있는 또 다른 공범자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이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이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돈과 맞바꾸는 비도덕적 사업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것이다.
1) 전형배,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포럼자료, 2012.
2) 예를 들어, 화염병을 제조한 자도(그것을 사용하여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3) 강문대, 형사 처벌의 이론적 검토와 효과에 대한 검토, 노동건강연대 토론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