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동자와 휴가
경쟁력의 언어에 휩싸인 휴가
김영선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
1. 말해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 생산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초코파이도 어딘가에 숨어서 먹는다. 그게 그 아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요 상식이기 때문이다.”
어떤 프레임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달라진다.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진리가 진리로서 생산되기도 하지만, 허위로 간주될 수 있다. 진리가 진리인가 아닌가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진리를 담아내는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 타인들과 관계맺는 방식, 세상에 대한 믿음 등을 특정하게 구조화하는 체계이다. 프레임은 우리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틀지우고, 사유 방식을 형성하며, 심지어 지각 방식과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슈도 정의한다는데 있다. 프레임은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통제한다. 나아가 프레임 밖의 관심사‧호기심을 차단‧배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프레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나아가 한 프레임이 다른 프레임보다 더 우선권을 갖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프레임의 문제는 미래의 틀을 다시 만드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여름휴가철의 한강수영장 (사진출처 : 서울시공식블로그 서울마니아)>
2. 마조히즘의 언어에 둘러싸였던 휴가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에게 휴일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로 여겨졌다. 그것은 낯선 것이었다. 주말이 현재와 같은 보편적인 휴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일주일에 하루씩만 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는 한 노동자의 외침은 메아리없는 울림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서면서 ‘모두’를 지향하는 휴일·휴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인 추세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도적으로 휴일이 확대되었다. 휴식의 증대를 통한 국민복지의 증진이란 명분을 내세워 노태우 정권은 1990년부터 법정공휴일을 17일에서 19일로 늘렸다. 종전 음력설의 하루 휴일을 3일 연휴로 늘린 것이다.
게다가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칠 때에는 월요일을 휴무토록 하는 ‘익일휴무제’가 1990년부터 실시케 되었다. 이는 법정공휴일을 하루나 이틀 늘리는 조치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휴일의 보편적 배열을 의미했다. 력(曆)에 고정된 상태로 휴일을 ‘고무줄처럼 늘어난 대로 또는 줄어든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휴일이라는 자유시간의 절대적 보장을 의미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익일휴무의 제도화는 ‘모두를 위한 휴가(holiday for all)’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상징적 표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차유급휴가와 관련하여 휴가 부여일수가 대폭 상향조정 되었다. 1989년 초 제정된 근로기준법(1989. 3. 29 시행, 법률 4099호)에 따르면, 연차휴가 일수가 1년 개근한 노동자에 대해 8일에서 10일로, 9할 이상 출근자에 대해 3일에서 8일로 늘어났다.
이에 기업들은 휴가 희생담론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다. 기업부담, 경제 위기, 한국병, 낭비 등의 이유로 휴일, 휴가는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반복되었던 언표들을 압축하면 과소비 지양, 생산성 제고, 노동윤리 제고, 글로벌 스탠다드, 위기 극복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여기서는 1987년 이후 휴가를 ‘불필요한’, ‘낭비적인’, ‘한국병’, ‘후진적인’ 것으로 반복 재현하며 문제적(problematic)으로 바라보는 마조히즘의 언어들을 들춰본다. 그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1) 과소비는 안 돼!
경영담론은 전통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및 자유시간 증가를 과소비와 연관된 표현들과 짝짓는다. 과소비는 낭비, 게으름, 향락, 퇴폐, 범죄를 양산할 것이라 여겨진다. 이와 같은 해석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시간을 왜곡된 욕구(false needs)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로부터 도출되는 해결책은 자유시간을 억제하는 길이다. 이성의 언어나 노동의 언어로 계몽되고 규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담론이 내놓았던 휴가에 대한 우려의 언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과소비, 유한족의 낭비, 시간낭비, 금쪽같은 시간 허비, 한해 절반 놀기, 사치와 향락, 사치스러웠던, 노는 분위기의 확산, 놀자 풍조 조장, 놀자판 될 가능성, 노는데 정신 팔려, 놀 궁리에 바쁘다, 놀고먹겠단 얘기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놀이와 여흥은 사회적 규율을 깨뜨리고 도덕성을 갉아 먹는다는 혐의를 받고 금지의 대상으로 재단된다. 그것들은 비합리적인 욕구이자 도덕적 일탈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과소비 언표들은 도덕주의를 강하게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시간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과소비 언표는 자유시간 증가로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제한다. 현재와 같은 공휴일로 인해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경영담론 내에서 공휴일은 당연히 축소·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즉 질병 덩어리(한국병, 위기의 진원, 경쟁력 하락 등)로 재현된다[현재의 휴일·휴가 → 노는 날 순증 → 흥청망청 소비 →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약화].
2) 노동윤리 제고해야!
노동윤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자본의 시도는 항상 자유시간의 출현을 강하게 견제했다. 그것은 자유시간을 게으름, 수동성, 낭비, 공포, 두려움, 퇴폐의 씨앗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한거(閑居)하면 불선(不善)하다는 것이다. 게으름을 윤리적으로 단죄한다. 이는 자유시간의 배분이 노동윤리를 침식한다는 굳건한 신념에 근거한다.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도덕성에 좋은 효과를 미친다고까지 주장한다. “젊은 도제들이 술집에 가서 취하도록 마실 시간이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악의 근원인 무위도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담론은 자유시간의 배분에 따른 게으름의 부도덕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비상한 각오로 노동윤리를 제고해야 함을 강변한다. 그래서 무위도식하는 자, 무절제하고 방탕한 자, 늦잠 자는 자, 넋 놓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 게으름 피우는 자, 노는데 정신이 팔린 자는 정화되거나 훈련되어야 할 대상으로 처리된다. 나아가 먼 미래를 위해 쾌락을 지연하고 절제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는 게으름뱅이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시간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time)에 방해물은 자본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3) 생산성 떨어질라!
셋째, 휴가는 기업 부담을 가중시켜 경제적 진보를 위험(위축, 하락, 추락, 감퇴)에 빠트릴 것이라는 논리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휴가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인건비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이는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격에 전가되고 경쟁력을 약화시켜 미래 투자가 지연되어 구조적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경제적 진보와 상충한다는 주장으로 변질돼 휴가는 ‘지금’은 이르기에 ‘다음’으로 연기되어야 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생산성 약화’라는 선율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그 가운데 ‘기업부담’과 연관된 언표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과도한 부담’, ‘기업경영 발목’, ‘기업 추가 부담’, ‘열악한 중소기업에게는’, ‘인건비 상승’, ‘문제는 비용분담’과 같이 기업부담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 ‘기업 의욕 상실’, ‘경영 의욕 떨어짐’, ‘기업의 투자 위축’, ‘투자 의욕 감퇴’, ‘생산성 1/3’, ‘생산 리듬파괴’, ‘생산성 하락’, ‘생산 분위기 해침’, ‘생산비 증가’, ‘작업 능률 급락’, ‘수출경쟁력 하락’, ‘국가경쟁력 감퇴’, ‘산업 경쟁력 타격’, ‘대외 신인도 추락’ 등과 같은 언표들이 반복되고 있다.
4) 지금은 위기다!
넷째,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진단은 통상 고통 감수라는 해법을 끌어들인다. 고통 감수는 휴가 축소라는 희생을 직접적으로 요구한다.
휴일·휴가 축소를 정당화하는 경영담론은 현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진단하곤 한다. 위기론의 어휘들 중에는 ‘어려움’이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 어려움의 원인은 물가와 부동산 폭등, 무역적자, 국제경쟁력 약화 등으로 진단되곤 한다. 하지만 ‘어려움’이라는 어휘는 위기의 상황이나 정도를 구체적으로 표시하진 않는다. 이는 기업의 위기를 상상된 것으로 언표하고, 그러한 상상된 관계 속에서 노동자들의 환기를 촉구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위기론이 가지는 전형적인 배열 방식은 ‘위기 → 고통감수 → 유토피아적 미래’라는 형식을 띤다.
‘위기’를 전면에 배치한 후 ‘마른수건 쥐어짜는’식의 논리는 노동자들의 환기를 촉구하는 전형적인 전략(상황정의)으로 자주 반복된다.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문(제15차 라디오 연설문, 2009. 5. 18)을 보면, “지금은 긴장을 늦출 시점이 아니고, 전세계가 당면해 있는 위기상황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그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누적돼 온 비효율과 거품을 제거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빠르게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여매자.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상황대처).” 이러한 논리는 시차를 두고 반복 계열화되면서(제17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브리핑, 2009. 5. 7), 사회의 질서/상식을 재설계해 나간다.
<울산시내 문닫은 상가들 (사진출처 경상일보 홈페이지 캡쳐) >
5)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마지막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언표는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그 의미를 짚을 수 있다. 당시 정권은 군사독재라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노력으로 OECD 가입에 열을 올리며 과거의 것(한국병, 나쁜 옛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세계(글로벌 스탠다드, 좋은 새 것)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병의 항목에는 불행하게도 생리휴가 및 늘어난 공휴일도 포함되었다. 한국 특수적인 휴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김영삼 정권은 생리휴가나 월차휴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 옷이기에 폐기되어야 것으로 재단해 나갔다.
‘세계화(segyehwa)’라는 기치 아래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구호는 곳곳에 파고들었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전면에 배치되는 맥락에서 늘어난 공휴일은 ‘사회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려온 한국병의 정체’로 분류된다. 그 진단은 해외의 휴가 일수와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국제 비교라는 준거를 따랐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도록 휴일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질병치유의 시선은 재계의 고통분담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기조와 더욱 부합했다. 특히 글로벌 스탠다드 규범은 생리휴가, 월차휴가와 같은 한국 ‘특수적’ 휴가제도를 폐기해야하는 논거로 적극 활용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세계화 시대에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산물로 여겨졌다. 개발연대의 서글픈 유산이라는 것이다. 다분히 ‘열망적’ 수준에 머물렀고 당위론적 수사의 나열에 그쳤던 세계화라는 구호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당시 정권의 전략적인 몸부림이었다.
<표 1> 휴가를 둘러싼 마조히즘 담론의 층위, 1990년대 이전
기업부담의 덩어리로 재단된 휴일·휴가를 축소하기 위해 전방위의 희생담론이 동원되었다. 낭비를 제거해야한다는 논리는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작업장 너머의 가족시간, 자유시간, 여가시간 등 일상영역까지 침투하여 재구조화할 것을 강요했다. 희생담론은 과소비 지양, 생산성 제고, 노동윤리 제고, 글로벌 스탠다드 지향, 위기 극복이라는 각종 논리를 동원해 휴일·휴가 축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담론적 실천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휴가는 마조히즘의 언표들에 둘러싸였는데, 그것은 절제, 제거의 대상으로 재현되었다. ‘한국병’을 고치고 ‘신한국’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시간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낭비제거라는 복음은 기업부담으로 여겨지던 자유시간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휴가의 보편적 배열, 즉 휴가의 민주화로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휴가 희생 이데올로기는 자유시간을 ‘사회적 낭비’, ‘비효율적인 습관’ 등으로 계열화하면서, 휴가의 실질적 민주화로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차폐화시키고 있었다.
3. 경쟁력의 언어에 휩싸인 휴가
역사적으로 휴가는 통제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다. 억압적으로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여겨지던 휴가는 언급한 바와 같이 금지·부정(-)의 언표로 재현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휴가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생산의 대상으로 처리되었다. 자유시간을 생산시간화 하려는 긍정(+)의 언표들에 전방위적으로 휩싸였다. 특히 90년대 중반이후 경쟁력 담론은 휴가를 ‘~ 이도록’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의 대상으로 특정화했다. 이전처럼 자유시간의 억압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 담론은 자유시간을 조절하고 기획하며 통치할 수 있는 전략을 지향하고 실천한다.
90년대 중반부터 갑작스레 별의별 이름의 휴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의상 리프레시 휴가로 통칭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름철에 일시 사용하던 휴가를 리프레시 휴가로 바꿔 부르는 경우부터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해외연수, 배낭여행, 안식휴가까지 다양하다.
쏟아지는 휴가들의 성격을 정리하면, 우선, 휴가의 배분기준이 변화했다. 그것은 ‘근속연수’ 기준에서 ‘능력/역량’ 기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임직원이나 오래 근무한 부차장급을 대상으로 제공되던 것이 최근에는 핵심인재를 중심으로 제공된다. 기존에도 특별형태의 휴가는 대부분의 사원들에게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능력 기준으로 포상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둘째, 휴가에 대한 강조점이 변화했다. 휴가 배분에 있어 ‘경쟁력 강화’, ‘생산성 제고’와 같은 논리와 규범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휴가에서도 창조적 기획에 기초한 자기경영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획되어야 하는 재충전 시간으로 의미화되고 ‘업무의 시작’ 단계임을 강조하는 생산성 담론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전과 유사하게 여름휴가를 단순 재배치하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 특별형태의 휴가 대부분은 여름휴가에 그 동안 사용하지 못한 연차유급휴가를 덧대는 형태다. 이를테면 여름휴가 및 명절연휴 앞뒤로 하루나 이틀 정도의 연차휴가를 덧붙인다. 기존 여름휴가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1) 일할 때처럼 철두철미하게!
갑작스레 쏟아진 휴가들은 우선 ‘계획과 기획’의 강조했다. 관련된 언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어렵게 낸 시간인 만큼 그는 일할 때처럼 철두철미하게 휴가계획을 세웠다. 매일 등산, 매일 온천 목욕, 매일 책 한 권 일기, 매일 산책이란 목표를 이루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② “2005년 초 윈윈어그리먼트라는 1년치 사업계획서를 내며... 안식년 계획을 밝혔다.” ③ “한 달 휴가를 별생각 없이 어영부영 노는 것으로 보내선 곤란하다. 목표를 세우고 철저하게 계획을 수립하자...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자!”
2) 잘 쉬고 노는 게 경쟁력!
‘쉬고 노는’ 일은 역사적으로 터부시되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쉬고 노는’ 것이 긍정의 가치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쉬고 노는 일도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표준에 맞춰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대상으로 다뤄진다. ‘잘 놀고 쉬는 것’이 ‘경쟁력’을 위한 토대라는 점을 쉼 없이 강조하는 언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잘 놀고 잘 쉬어야 능률도 높다”, ②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 ③ “잘 놀고 잘 쉬어야 창의력도 높아진다.” ④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야 말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⑤ “당당하게 휴가를 보내는 임직원이 많을수록 기업들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⑥ “기업들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발한 휴가 제도를 도입”, ⑦ “테마가 있는 휴가로 창의력 개발”, ⑧ “잘 쉬고 노는 게 경쟁력”.
3) 이것이 혁신이다!
전통적으로 ‘개미’와 ‘휴가’는 모순적인 관계이지만, 혁신이라는 논리안에서는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관계로 재설정되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으로 의미화된다. 리프레시 휴가야 말로 ‘혁신’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① “창의력이 강조되는 21세기엔 잘 노는 것이 경쟁력”, ② “휴가를 즐길 줄 아는 개미야말로 진짜 일개미”, ③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선진국형 휴테크 개념이 확산”, ④ “21세기 경쟁력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⑤ “푹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휴테크 개념의 확산”.
4) 휴가=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① “충분히 쉬면서 아이디어 구상을 잘 할 수 있게 하자!” ② “직원들의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 생산성을 높이는 경영기법”, ③ “아이디어와 전략을 창출하는 생각주간”, ④ “휴가는 더 큰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 ⑤ “기업들도 직원들의 여름휴가를 직접 챙기고 있다. 여름휴가기간 동안 충분히 쉬고 재충전한 직원만이 회사에서 창의력을 발휘, 업무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⑥ “휴가는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실력을 키우고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 ⑦ “잘 쉬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것”, ⑧ “휴가=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 ⑨ “업무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재충전하고 많이 배워오라는 뜻”.
<표 2> 휴가를 둘러싼 경쟁력 담론의 층위, 1990년대 이후
최근 휴가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경쟁력 담론에 의해 생산적이고 유용하고 쓸모 있게 관리해야할 대상(자원, 휴테크)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위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휴가는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생산의 도구(채워야할, 재생산의 영역)로 처리된다. 휴가를 떠나더라도 노동자는 자신의 휴가를 자기충족적으로 즐기지 못하게 되고 단지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업이 요구하는 ‘수행원리(performance principle)'일 뿐이다.
사실 리프레시라고 불리는 휴가는 과장되거나 현실과 무관한 모습이었고, 리프레시라는 재현은 경쟁력, 생산성, 아이디어 등으로 스테레오타입화 되었다.
긍정의 언표로 채색된 경쟁력 담론은 곳곳에 파고 들어갔다. 경쟁력이 새로운 합리성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시간 영역인 휴가까지 경쟁력·생산성·아이디어의 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경쟁력 담론의 최대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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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안전보건1)
번역․요약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은 기업이 기업 경영을 할 때 자발적으로 관련 이해당사자와 상호소통을 하면서 사회적, 환경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단순히 법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인적 자본, 환경, 이해당사자와의 관계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전하고 적절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영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 포함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음과 같은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 내부 영역 : 인적 자원 관리, 노동자 안전과 건강, 기업 윤리, 변화에 대한 적응, 조직 교육 -노동자의 참여 및 발언권 보장 • 외부 국내 영역 : 지역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경영 파트너, 지역 정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적절한 협력 • 외부 국제 영역 : 인권, 국제 환경 이슈,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건강과 안전,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소비자, 투자자, 국제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소통
• 내부 영역 : 인적 자원 관리, 노동자 안전과 건강, 기업 윤리, 변화에 대한 적응, 조직 교육 -노동자의 참여 및 발언권 보장
• 외부 국내 영역 : 지역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경영 파트너, 지역 정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적절한 협력
• 외부 국제 영역 : 인권, 국제 환경 이슈,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건강과 안전,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적절한 역할 - 소비자, 투자자, 국제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소통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이끄는 주된 동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에 대한 관심(시장 확대, 보다 나은 평판 등), 조직의 연속성을 위해 기업 위험을 보다 잘 관리하는 것 등이다.
이는 또한 최근 기업의 재정 비리 등으로 인한 사회적 책임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기업의 투명성과 청렴성 요구가 증가된 것에 따른 반응 성격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광범한 이해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 혁신적 방법의 채택 등의 새로운 경영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자 안전과 건강 맥락의 변화를 추동하고 향후 방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이루어진 몇 가지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정착은 기업 내 최고 경영진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 내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행하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혁신적인 이미지를 형성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는 학습의 과정이었고, 처음부터 정해진 청사진이나 마스터플랜은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활동은 긍정적 비전과 개념에 의해 작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속가능성, 사회적 승인, 노동자 리더쉽, 새로운 경영 방침 개발, 새로운 시장 확보, 호감가는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 행복한 기업, 건강 증진, 이해당사자 만족, 사용자의 선택 등이 그러한 것들의 예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안전과 건강 영역에서는 그러한 긍정적 비전과 개념이 일반적이지는 않고, 주로 위험 감소와 관리라는 개념이 주된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성공적인 기업은 대부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 경영의 핵심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다. 윤리적 동기도 중요했다. 일부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위험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때때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영향과 생산 과정에 대한 영향 사이의 차이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하여, 이해당사자 모두에 대한 영향을 숙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 이슈는 전통적으로 생산과정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러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채택되는 기업도 있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그들의 노동의 의미에도 영향을 끼친다. 노동자들은 그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물도 자랑스러워하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자신을 기업과 동일시하게 되고, 노동자와 기업이 중장기적 관계를 갖게 된다.
광범한 이해당사자와 소통하고 투명성과 자료 공개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요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외부와 내부의 이해당사자와 균형잡힌 소통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자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된 내외부 소통 및 참여 경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기업들은 기업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있는 기업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도 중요하게 여긴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 영역에서 좋지 않은 결과는 기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있다. 이는 국내 및 국제 하청 관계에 있는 하청기업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전략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증진을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 기업 수준에서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상을 주고, 윤리적 규범을 제시한다
2. 지식 공유 : 성공 사례, 네트워킹, 시범사업, 가이드라인 등
3. 표준화 및 인증
4. 정보 공개 및 소통
5. 시민사회단체, 공공 및 민간과의 혁신적 파트너쉽
6. 윤리적 교역 및 무역
7. 재정 부문 투자, 재정적 인센티브
위의 영역 중 몇 가지들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을 활용하여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영역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 안전 및 건강 영역에 다른 점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대부분 기업의 자발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 및 건강 영역은 법적 제도적 강제사항이 많다.
실제로 아직까지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 및 건강 관련 파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그들은 환경 및 경제 영역, 경영 과정, 이해당사자 관계 형성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 안전보건 파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발에 제한적인 관련성만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안전보건 영역에서 주요한 행위자는 사회적 파트너와 정부인데 반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보다 광범한 그룹과 관련이 있다. 시민사회, 미디어,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중요한 행위자이다. 노동자 안전보건 영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이를 활용해야 한다.
1) 이 글은 “European Agency for Safety and Health at Work,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and safety and health at work, 2004” 보고서를 요약 번역한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밖에 존재하는가
조기홍 /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 사용자 단체, 투자 회사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에서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중시 되는 분야가 환경 과 노동 분야인데, 환경에 대한 관심은 환경 단체나 기업에게서 모두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노동 분야 특히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들은 환경 분야에서의 책임 실적은 자랑스럽게 홍보하지만, 노동 분야의 실적은 되도록 감추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이슈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노동부는 2011년 산재율이 0.7%미만(0.65%)으로 떨어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산재 노동자의 수는 10만 여명에 이르렀고,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죽고, 24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한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매일 산재와 사투를 치루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최근 한국의 기업들은 너도나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고,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윤리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고 다치는 현실은 뒤로 하고, 사회 공헌 프로그램 몇 개 진행했다고 사회적 책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기업들이 발간하고 홍보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산재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삼성의 예를 들어보자. 삼성은 경영 원칙을 통해 환경, 안전, 건강을 중시하고(원칙4)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원칙5) 홍보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은 경영 원칙(4.2에)서
“인류의 안전과 건강을 중시한다. 안전과 관련된 국제기준, 관계법령, 내부규정 등을 준수한다.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쾌적한 근무환경을 조성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이러한 원칙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사망하였음이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삼성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영국 CR Reporting Awards 본상을 수상하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과연 이 같은 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대 건설은 지난 2007년, 2012년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이다.
필자가 속한 한국노총은 현대건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에 산재사망 노동자에 대한 기록과 산재 예방을 위한 대책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전문기관인 Corporate Register는 현대건설의 본상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도 있다.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간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들은 사회적 책임 평가 기관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G3 guideline, SA8000, SRI 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최재욱 교수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안전보건정책 및 계획, 활동 목적을 기술한 보고서는 전체의 60%에 불과했고, 산업재해 발생률을 다루고 있는 보고서는 36%, 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보고서는 22%에 불과하였다.
한국노총은 2008년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보고서에 대한 산업안전보건활동 평가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위 실태조사는 기업들이 2007년과 2008년에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중 국내 보고서 22개, 국외 보고서 46개를 분석한 결과이다. GRI guideline1)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 그 공개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산업안전보건지표(OSHL)2)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에서도 공개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책임(CSR) 측정 지표의 발굴
기업이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책임 측정 지표의 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측정 지표는 국제적 기준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하청기업의 산재율과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지원 사항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급증하고 있는 직업성 질환,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등의 항목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주도의 활동이지만, 노동안전보건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그 측정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노사가 공동으로 TFT를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면 이를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도 현재보다 확대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 통로,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풀어갈 수만 있다면, 기업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견인하고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GRI guideline LA6 - LA9
2) OSHL1 - OSHL2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노태웅 <여름밤의 추억>
여름밤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정경(情景)이 있겠죠? 제 마음속의 여름밤은 노태웅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시골집 앞마당에 멍석 깔아놓고 널브러져서, 밤하늘의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입니다. 새까만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말이죠. 올해 여름도 꿈만 꾸다가 가을을 맞이하고 있네요.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하지만, 여름호가 여러분들 손에 전달될 무렵이면, 제법 가을 분위기기 나기 시작하겠죠. 무덥고, 분주했던 여름을 정리하면서, <노동과 건강> 여름호와 함께 독서의 계절 가을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생각 나누기>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이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그릇된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조합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의 일을 당신이 돕는 동안에 당신 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는 일본 프리타노조 활동가 야마구치 모토아키의 이야기가 인상 깊네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노동과 건강>은 지난 호부터 ‘노동자 건강권’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를 노동, 자본, 정부 각 주체를 겨냥하여 <연중 기획>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은 기업들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관점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집기획>으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휴가와 노동자’라는 주제를 사회학적, 법학적, 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인식했던 ‘휴가’라는 담론 속에 이렇게 많은 역사와 경험, 쟁점과 이슈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놀라실 겁니다.
<법의 이면>에서는 여름호 기획 의도에 맞추어 ‘휴식’에 대한 다양한 법적 상식과 고민들을 다루었습니다. 그 동안 ‘노동’은 강조되었지만, 그 이면의 ‘휴식’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진 것이 사실이죠. 실무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진료실 풍경>에서도 여름과 관련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여름에 다발하는 열사병과 관련된 의학적 상식을 실제 진료 경험을 통해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글입니다.
<눈여겨 볼 연구>에서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확산되고 있는 성과급제가 산업재해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살았던 아담스미스도 이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이 놀랍네요.
<이야기의 힘>에서는 지난 4월 노동건강연대와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기획하였던 ‘당신의 건강과 정의’ 기획 강연을 지난 봄호에 이어서 소개합니다. 이번호에서는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정진주 선생님이 강의한 “반쪽의 과학,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을 소개합니다.
<해외 이슈>에서는 ‘블랙리스트’에 관한 영국의 소송 사례를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코미디언 김미화를 통해 이슈화되었던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 새로운 시도로 일본의 산재 판결 사례들을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시작이 일본 산재보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번역에 애쓰신 김진국 대표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김이찬 선생님은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이자 상담소인 ‘지구인의 정류장’을 열심히 일구고 있는 열정적인 분입니다.
<생활의 발견>에서는 도시를 벗어나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시골에서도 집 문제는 똑같이 고민거리군요.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무더운 여름이 빨리 가고 가을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여름이 가버리면서 지난 아픈 기억들도 모두 가져가 버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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