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일본 비정규직 노동운동에서 배운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일본 비정규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을 인터뷰하여 엮어낸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2012, 그린비)』를 읽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프리타 전반노동조합’의 활동가로 일하는 야마구치 모토아키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상담을 오고 조합에 가입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노동조합 규모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의 규모에 대해서 200명 300명은 너무 많다, 소통이 어렵다고 하면서 소통하기에는 30명 40명 정도의 조직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답니다. 30명 40명 조합원을 가진 노동조합이 파출소의 숫자만큼 늘어나고 그 노동조합이 네트워크로 소통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노동조합은 상근자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활동을 책임지는 운영진은 있지만 간부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노조활동을 합니다. ‘직원을 두면 직원의 생활을 지탱해주기 위한 운동이 됩니다’.
‘프리타 전반노조’는 활동자체가 사회운동이 되는 활동을 지향하기 때문에 노동상담이나 집회 만이 아니라 2명이상의 찬성이 있을 때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수 있다고 합니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4~5명이 모여서 시작했다는 노동조합은 조금씩 조합원이 늘어나 100여명이 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꽤나 몸이 무거운 조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활동가들의 유머와 여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 경계너머를 보기에 여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프리타노조’의 야마구치 활동가는 조합에 가입하는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합니다. ‘조합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의 일을 당신이 돕는 동안에 당신 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
싱거운 말 같은데, 평범한 이야기인데 새롭게 들립니다. 서로 도와줘야 같이 살 수 있고 서로 도와줘야 이길 수 있을 테니까요.
생활의 발견
집을 사다 _ 첫 번째 이야기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드디어 집을 샀다. 시골 농가를 사게 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창피하지만 우리 집 가계형편도 공개해야 이야기가 풀리겠다.
지난 봄, 주인아주머니가 전세금을 2천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니, 무려 40%인상이다. 이렇게 높은 인상률이 합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주인댁의 여러 문제에 시달려온 후라 우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인댁과의 감정적 말다툼 끝에 서로 석 달 안에 우리는 새 집을, 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기로 하였다. 홧김에 질러놓고 돌아서니 걱정이 앞섰다. 전세가 많이 올랐다는데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예상대로 주변의 전세가 너무 많이 올라있었다. 전세 7천만 원은 기본이었다. 특히 전철역 가까운 곳은 아예 집이 없었다. (여기서 ‘가깝다’의 기준은 도시와는 좀 다른데, 차로 10분 거리 이내는 역세권이다. 차로 10분 거리는 사람이 걸어서 30분 이내를 뜻하는데 이 거리가 걸어 다니기의 한계인 듯하다) 불과 2년 만에 전세 값이 2,3천만 원이 오르다니. 서울의 전세대란은 약 6개월 후 양평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시장통의 전단지-역에서 차로 15분거리의 외곽지역 전세집]
게다가 우리가 집을 고를 때 가장 문제는 개와 고양이 6마리를 키울 것을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전세금 5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읍내의 다세대, 혹은 낡은 연립 등 공동주택들인데 여기서는 6마리의 동물을 키울 수가 없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전세 8천,9천을 육박하고 있었다.
보름 정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던 우리는 어느 날 저녁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나날이 뛰는 전세 값도 문제지만, 집을 매입하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또 시골에 살면서도 동물을 마당에 내놓지 못하게 하는 집주인들에게 질리기도 했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지만,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경기불황의 여파에 상관없이 투자의 가치가 있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5천만 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치고, 1억~1억3천만 원 선에서 집을 알아봐야 한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 전철역 인근이어야 한다. 작아도 동물을 맘껏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의 대출심사를 위해 토지대장, 건축물대장등의 서류가 구비되어 있고, 토지에 불법건축물이 없어야 한다. 결론은 이런 집은 없다는 것.
우선 양평의 단독 주택의 시세는 보통 2억부터 시작한다. 2억 미만의 주택은 거의 없다.
1억3천 선에서 매매를 알아보고 싶은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부동산엔 그런 매물은 없어요.
소파에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부동산 사무실 입구에서 퇴짜 맞기 일쑤였다. 10곳 중에 1곳 정도만 “일단 앉아보세요” 라며 대꾸를 해주었다. 이런 푸대접을 하루 종일 받다보면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둘째, 전철역 인근은 아예 매물로 나온 집 자체가 별로 없고 있어도 가격대가 너무 높았다. 셋째, 도대체 서류가 깔끔한 집이 별로 없었다. 원주민들의 오래된 집은 과거부터 토지대장 등이 투미한 채로 자손에게 상속된 것이 많았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도 알 수 없는 많은 이유로 서류가 허위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집은 23평으로 짓고 준공허가를 우선 받은 후, 임의로 증축하여 30평을 만들었다. 등기에 없는 7평은 무허가건축물인 셈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인데 이런 집이 태반이다. 우리처럼 은행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허가 증축은 안 될 말이었다.
집을 못 구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많이 돌아다녀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의 주택밀집과 달리 시골은 집이 뜨문뜨문 있을 뿐이다.
[포병부대 옆 집-대지 160평. 집 자체만 봤을 땐 여기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한 달을 돌아다닌 결과, 몇 군데 집을 보았다. 우선 1억2천 짜리 양동면의 농가주택. 이 집은 50년 된 집으로 벽이 흙벽으로 되었는데 너무 낡아 수리가 불가능하고 새로 지어야 하는 집이었다. 건축비 최소 3천만 원.
개군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바로 뒤가 포병부대여서 장갑차등의 각종 중장비의 소음과 매연이 심각하다는 뒷집 아주머니의 귀띔이 있었다.
지평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대지도 240평이고 집도 쓸 만한 콘크리트 집이어서 맘에 들었는데 뒤편이 헬기부대착륙장이어서 훈련기간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개군면의 1억2천 짜리 집은 아담한 한옥을 개조한 집으로 한옥마을이 생각나는 곳이었는데 2층이 무허가 증축이라는 문제가 있고 바로 앞이 대규모 축사가 버티고 있어 벌레와 냄새가 심각했다.
청운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전철역에서도 차로 30분이라 거리도 멀고, 건축물 등기도 없는 집이었다. 읍내에서 가까운 1억3천 짜리 농가는 땅도 넓고 집도 깔끔했지만 토지가 절대농지로 묶여있는 곳이어서 앞으로도 거래가능성이 낮은 곳이었다.
그리고 여주경계를 넘어 천서리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 1억5천 짜리 집은 다른 조건은 훌륭하나 진입로가 없어 앞집 마당을 거쳐서 다녀야 하고 일 년에 50만원씩 진입로 사용료를 줘야 하는 곳이었다. 진입로 없는 집은 땅의 가치가 불확실하므로 탈락.
지평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 산이 남한최대의 탄약저장고였다. 산기슭을 따라 탄약 창고의 입구가 줄지어 늘어져있고 산 전체가 삼엄한 경비로 둘러 싸여 있었다. 이 탄약고가 터지면 양평일대가 절단난다는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탈락.
[개군면의 한옥집-대지 80평. 뒤로보이는 2층이 무허가 건축물이라 은행대출이 안된다]
대략 이런 집들을 보았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가격에 맞는 집들은 다 이런 상태였다.
부동산을 찾아다닌 한 달,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돈이 없어 맘 상하고 퇴짜 맞아 속상하고, 그나마 본 집이 이 꼴이어서 황당하고, 이사 들어올 사람은 이삿날 잡아달라고 독촉하고.
개, 고양이 6마리에 세간을 이고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시련은 계속된다. 어렵사리 마땅한 집을 구해서 계약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안 팔겠단다. 가을에 원주 행 전철이 개통되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했다.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또 한 집을 찾아내서 계약을 하려니 집주인이 유산문제로 송사중이어서 기다려야 한단다. 2순위로 생각한 집이 있어 연락했더니 그사이 다른 사람이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식욕도 없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짜가 한 달도 안 남았다. 불안하기 그지없다.
[2순위로 생각했던 집-대지 170평. 하루이틀 머뭇거리는 틈에 다른 사람이 계약해버렸다]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려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한 곳에서 집을 보여주었다.
청운면의 이 집은 1억3천 이고 고속도로 바로 옆이었다. 70년대 지어진 새마을주택으로 지붕은 나무 널판지, 마당엔 무허가 창고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지붕올리고 창고 철거하는데 만 1천만 원가량 들것 같았다. 석면슬레트건물이라 특수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마당 한 쪽에 시커멓게 서있는 한 칸 건물을 가리키자 ‘화장실’이란다.
‘수세식 화장실은 없나요?’ ‘네, 없어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화장실 없는 집까지 보게 되었구나. 수세식으로 바꾸려면 정화조부터 묻어야 하는데 그것만 600만원이라고 한다. 집을 개조하는 공사비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너무 하는군.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야’
[고속도로 옆집- 대지 200평. 푸세식 화장실. 70년대에 지은 새마을 주택이다]
차를 끌고 달렸다. 집 같지도 않은 집을 비싸게 내놓은 사람들에게도 화나고, 일이 틀어지는 상황에도 화나고, 보증금 500만원 월세방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지나갔다. 양쪽 부모로부터 돈 10만 원도 안 받고 지금에 이른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과연 바보 같은 짓이었나. 자괴감도 들었다.
강을 건너 여주로 넘어갔다. 30분 정도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아, 여주는 얼마나 평화롭고 좋은 집도 많이 보이는지.
마침내 우리는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계약에 이르렀다. 양평에서도 서울 쪽으로 가까운 옥천면이고 전철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며 축사도 없고 군부대도 없는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이고 외지인이 별로 없어 원주민들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이었다. 집도 지은 지 16년 된(16년 밖에 안 된!) 빨간 벽돌집에 마당도 100평으로 살 만 했다. 바로 앞에는 개천이 있고 하루 두 번 이지만 버스도 들어오는, 경주 정씨 집성촌이란다.
우리가 살 집은 이 정씨 집안의 한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 2년 전 돌아가신 곳으로 최근에 집을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집을 구했다는 말을 하자, 민준이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아니, 그 동네에 집이 나왔어? 그 동네에 집이 나올 리가 없는데, 새댁이 운 좋게 잘 잡았네’ 라며 신기해했다. 옥천면은 다른 면에 비해 공시지가가 3배가량 높아 은행대출도 문제없는 이점이 있었다.
[어렵게 구한 옥천면 집-대지 100평. 건물은 8평]
문제는 한가지, 집이 8평이라는 것이다. 방 하나,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한 칸. 그러나 일단 수세식 화장실이어서 정화조도 땅 밑에 있고, 창문도 다 달려있고, 벽도 제대로 서 있었다. 벽이 없는 집도 본적이 있다. 집을 허물어 버리려고 했는지 변기, 세면대, 싱크대도 철거되고 없었다. 그건 작은 문제일 뿐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나니 부엌 한 칸을 따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펜스를 설치해 동물들을 풀어놓을 준비도 해야겠다. 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보인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끝날 것 같던 ‘내집마련’,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8평짜리 집이 어떻게 11평이 되었는지, 이사를 왜 두 번하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이 집을 판 주인은 왜 집을 내놓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겠다.
이야기의 힘
노동건강연대 특강 : 당신의 건강과 정의
반쪽의 과학,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노동건강연대는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일을 맞아 지난 4월 3강의 연속강좌를 열었다. 사회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의 문제도 보편적인 사회문제로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지난 봄호에 이어 강좌를 지상으로 만나보고자 한다.
여성노동을 이야기하자
『반쪽의 과학』 은 책의 제목입니다. 노동과 건강에 있어서 젠더차이를 가장 잘 분석하고 현장과 잘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책입니다. 오늘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여성, 젠더 차이라고 하는 것, 사회 안에서 역할이나 가치가 달라지면서 여성의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이러한 차이가 잘 밝혀지고 있는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신문사기자를 하다가 88년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저의 연구나 관점은 사회학에서 시작해서 보건학과 만나는 과정입니다. 석사논문은 자동차산업 부품공장에 들어가서 노동과정을 연구하는 주제였는데 남자들은 기계, 성형, 금형 같은 일을 하고 4,50대 동네아주머니랑 저랑 패킹작업을 했는데요.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여름이었는데 머리를 감으면 시커먼 먼지가 나와요. 사람들은 막걸리에 돼지고기 먹으면 먼지가 다 쓸려 내려간다고 했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박사논문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를 만나서 우리사회 발전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했죠.
토론토에서 공부할 때는 의학, 간호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연계하여 배웠어요. 현장하고 항상 연결된 곳이었죠. 연구결과가 나오면 기업용, 노동조합용, 전문가용으로 자료를 만들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성, 여성의 노동과 건강은 왜 이슈가 되지 않을까요. 여성이라는 기준점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건강에 취약한 쪽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예요.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얘기는 왜 최근에서야 알려졌을까요.
여성의 노동, 노동력의 여성화는 새로운 건강 위해 요인이 있어요. 감정노동은 주요하게 부각될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입니다.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도 높고요. 감정노동의 요구가 높아지는 데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많아지면서 폭력, 성희롱 등이 늘어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요. 일과 삶의 조화가 어려워요. 신체적 위험요인, 사회심리적 위험요인이 결합하고 있죠. 이제까지는 분리되어 있었어요.
여성의 노동과 관련하여 요즘 떠오르고 있는 개념을 말씀드릴게요.
친밀노동과 돌봄노동
친밀노동은 최근에 나온 이야기인데 노동을 하면서 만지거나 감정이 개입되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는 노동을 말하죠. 가정에서 행해지건 밖에서 행해지건 여성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네일아트, 간병, 가사노동 등입니다. 주관적이면서 밀착되는 형태로 노동이 이루어져요.
돌봄노동은 구분이 좀 어려운데 간병,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원 등 남을 돌보는 직업이죠. 돌봄노동은 제3세계 여성들이 제1세계로 가서 하녀나, 유모 등으로 많이 일하고 있어서 이주 여성노동자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 친밀노동과 감정노동은 건강문제가 많이 겹칩니다.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일자리는 부족하고 임금은 낮고, 고용관계가 3자간의 관계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보험 적용이 잘 안 되고 있죠. 가정이 노동현장이 되고 업무시간이 불규칙하고 장시간 노동인 경우가 많아요. 돌봄 대상자와의 관계에서 폭언, 폭력, 성희롱 문제도 심각합니다. 감정적 소진도 심각하죠.
『감정노동』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책의 원제는 ‘관리된 심장’이예요. 심장을 관리해서 노동을 수행하고 그를 통해서 회사가 이윤을 얻는 거죠. 저자가 미국사회를 잘 분석해놓았어요. 감정노동도 종류가 다양한데 판매직은 웃으면서 일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노동도 있습니다. 길에 ‘돈 받아드립니다’ 붙여놓은 플래카드나 종이들 가끔 보잖아요. 이분들은 부정적인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고, 심판원, 판사 등은 중립적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죠.
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긍정적 감정노동을 하는 여성들입니다.
연구자의 처지에서는 아직도 감정노동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TV프로그램에 자료를 만들어준 적이 있는데 판매직 여성이 우울증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감정노동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얼마나 깊게 하는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에 따라서 부조화가 많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르다
서비스직 안에서도 남녀 노동자에 대한 통제방식이 다릅니다. 남성은 시말서, 경고, 정직 같은 통제방식이 많고, 여성들은 시말서가 많긴 하지만 공개사과 형식도 많아요. 개인적인 모독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연구결과에 나옵니다.
여성의 직종을 보면 상담, 승무원, 백화점판매직, 콜센터 등인데 여성들은 감정노동도 힘들지만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고객의 편에 서서 나무라거나 조치를 취할 때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고객의 감정적 요구와, 관리자의 감정적 요구를 얼마나 받는가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남성노동자들은 실제 신체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노동자들은 폭언과 물리적 폭력 모두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은 비교는 안 해 봤지만 외국보다 훨씬 하대받는 문화입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하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죠.
외국에 좋은 사례가 많아요.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당신이 한 말이 녹음되며 폭언, 폭행, 성희롱 등이 있으면 제재를 가한다’ 는 말이 나와요.
4,50대 여성노동자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특히 많아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죠. 병원 간병노동자를 면접해보면 하루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병원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가사노동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현실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어요. 현재 법제도는 출산, 육아, 보육 정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대상에 한정되어 있죠. 휴가나 휴직도 대기업, 공무원 정도만 적용을 받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예요. 노동시간이 줄어야 집에 가서 무얼 해도 체력이 남아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근골격계질환도 요즘 많이 얘기하는데 사무직도 많지만 공장도 많아요. 법을 보면 무게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커다란 물건을 옮기는데 중심을 둔 것이죠. 무게는 덜 나가지만 횟수가 많은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직업병은 인정받기 어렵게 되어 있어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남성노동자의 경우
같은 직업명을 갖고 있어도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가.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건강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직업에서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릅니다. 청소라는 직업에서도 남성은 기계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창틀을 닦는 작업을 하죠.
최근 요양보호사 면접을 할 때 여성노동자만 만나다가 남성이 한명 왔어요. 이일을 왜 하시냐 물었더니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왔대요, 그러면서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이 든대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4대 보험도 되고 하는 일도 별로 없더라… 하는 거예요. 가시면 뭐 하시냐 물어보니까 목욕한번 시키고 얘기하다가 집에 온다고 해요.
여성 요양보호사들은 온통 가사노동에 잔심부름을 다하는데 말이죠. 남성들에게는 요리, 빨래를 시키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을 안 시킨 거겠죠.
그 남성은 요양보호사 하다가 경영을 배워서 자기가 차리겠다, 남성만 쓰겠다고 하더군요. 남성이 힘은 좋을지 몰라도 좀 부족한 게 있지 않겠나 물어보니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같은 남성이 있다, 그들을 시키면 목욕도 시키고 일도 잘할 거다’ 하더군요.
한국은 산재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일 때문에 병에 걸렸습니다’ 하고 산재신청한 비율을 봤더니 신청에도 남녀차이가 있습니다. 승인에도 차이가 있고요, 근골격계직업병을 보면 여성은 5%, 남성은 16%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에 대한 처리방식도 여성은 71.7%가 개인이 해결한다고 답했어요. 남녀모두 산재신청을 안 하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방식은 여성이 훨씬 높아요.
남성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과 어린이집 여성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을 판단할 때 어떻게 볼 것이냐 어렵습니다. 여성들이 불평불만이 많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래서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거라고 말을 하죠.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질환 비율을 보면 남녀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산재승인을 받으려고 할 때 여성노동자가 아프다고 하면 부부문제나 가정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노동 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반쪽의과학』 저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첫째 과학적 연구라고 하는데, 과학이라고 하면서 평균치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데 주로 여성이나 취약계층입니다.
둘째 과학적 엄밀성을 따지는데 통제가 잘 안 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을 과학적 엄밀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죠. 다양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셋째 사회적 환경요인과 노동환경이 건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이 같다, 연령이 같다, 소득이 같다 는 전제 아래 보기 때문에 잘 안 보입니다.
넷째 연구비 심사를 어떻게 하느냐도 달려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에는 연구비가 많이 가 있어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죠. 유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석을 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주지 않아요.
현장에서 요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왜 대학생들이 대학 선생 말을 안 듣고 유명한 멘토들 찾아다닐까요.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어서 현장을 잘 모르고, 새내기들의 고민을 모르죠.
캐나다에서 연구할 때 보면 사회학, 생물학, 보건학, 환경학 연구를 같이 합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이 어디에 배치돼서 노동과 건강을 연구해야 하나 고민하죠. 교수의 논문을 평가할 때 지역사회가 참여해서 평가하고 지역사회에서 대학이 무슨 연구를 하고, 예산을 줄까를 주민이 참여해서 결정합니다. 한국도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생겼는데 정치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하는 돌봄노동이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보이면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어요. 존중, 임금, 지위 전부 낮아요. 내가 필요해서 돌봄노동자를 불렀는데 저 사람이 없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물어야죠. 젠더차이라고 하는 것도 여성이라는 공통의 요구가 많은가 봐야 하죠. 젠더가 하나의 기준이 돼서 남녀를 가르는 게 아니라 주요하게 사회집단을 그룹핑하는 기준이 돈이 있나, 나이가 어떤가, 지역적 차이 등이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고 할 때 공통점이 있어요. 요구가 상당히 비슷하겠죠. 여성의 건강이 왜 이슈가 되지 않았나.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연구자들이 연구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3강 : 홍삼 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보라
진료실풍경
할머니와 열사병
노동건강연대 회원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날씨가 더우면 일하는 곳도 더워진다. 더운 날씨에 일을 하거나, 더운 곳에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번 호에서는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하여 다루어 보려고 한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농촌 지역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 날은 아주 더웠고 진료실 바깥은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날씨가 더우니 환자들도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 할머니가 갑자기 조용한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마치 힘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나 지금 몸이 너무 이상한데 좀 봐주시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이상해져서 오셨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병도 없고 아픈 적도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몸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계속 ‘이상하다’다고만 표현을 하셨기 때문에 무슨 문제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체온과 혈압을 재던 간호사가 놀란 목소리로 “체온이 41도나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병원에서는 어떤 병으로 오건 우선 체온과 혈압을 먼저 재보게 되어있는데 그 순간 바로 문제가 발견된 것이었다.
“할머니, 어디서 무었을 하셨습니까?”
“그냥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평소에 하시던 밭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바깥은 불볕더위가 아닌가? 순간적으로 이건 몸의 체온이 너무 올라가서 생기는 ‘열사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사병이 발생하면 몸의 체온을 빨리 낮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가 체온이 너무 올라가서 생긴 현상입니다. 빨리 체온을 낮추어야 하니 우선 옷을 벗고 편안하게 누우세요.”
옷을 벗은 할머니에게 선풍기를 가져다가 틀어드렸다. 간호사에게는 수건에 물을 적셔서 온 몸을 닦아드리라고 했다. 바로 물의 증발을 이용하는 치료법!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갔을 때에는 이것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의사들이 보는 책에는 열사병이 발생할 경우 무조건 그늘에서 쉬게 하며 섭씨 39도까지 체온을 빨리 낮추라고 되어있다. 샤워기로 시원한 물을 틀어주거나 욕조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방법을 쓰려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어야 한다. 열사병의 병세가 진행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는데, 잘못하면 물이 폐로 들어가거나 욕조에서 물에 빠져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찬물 목욕으로 인하여 저혈압이나 온몸 떨림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열사병에는 해열제와 같이 열을 내려주는 약을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되어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온 몸에 물을 바르면서 선풍기를 쐬는 것이다! 할머니의 체온은 우리가 쓴 방법만으로도 다행히 섭씨 39도로 내려가며 회복이 되기 시작하였다. 작은 진료소에서 근무하였던 시절이었고 응급조치 이외에는 더 이상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나는 주차장으로 나가 햇볕 아래에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던 내 고물 자가용의 시동을 켠 뒤 에어컨을 완전 가동하였다.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5분 거리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옮겨다 드렸다.
만약 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할머니는 생명을 잃으셨을 것이다. 밭일을 하다가 쓰러져서 돌아가시는 농부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항상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아니던가. 열사병을 앓고 나면 온 몸(신경, 심장, 폐, 신장, 혈액)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심한 장애가 남을 수도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진료소로 돌아왔다.
세상에는 농촌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처럼 더운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공장, 농촌, 군대, 학교 등.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면 좀 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으니 문제이다. 날씨와는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더운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유리를 녹이는 곳이나, 용광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고온의 공기가 발생하는 작업 공정 때문에 공장에 들어서면 후끈거리는 곳들도 많다. 만약 이와 같은 작업장에 몸에 해로운 물질들이 많다면 작업은 더욱 힘들어진다. 방독면, 귀마개, 보안경과 같은 보호 장구들을 모두 착용하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 몸에 흐르는 땀과 먼지, 유독 가스, 그리고 하루 종일 착용해야 하는 보호 장비들은 작업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더운 곳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작업을 미리 계획하여야 한다. 열사병 예방지수(WBGT)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작업장의 온도, 기류(바람), 습도, 복사열(물체표면온도)을 가지고 계산해 내는 수치이다. 어느 정도로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지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앉아서 손을 사용하는 조립 작업과 곡괭이질 혹은 삽질은 그 세기가 매우 다르다. 열사병예방지수와 작업의 세기를 알면 그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쉬어야 하는 시간이 정해진다. 어떤 경우에는 45분간 일을 한 뒤 15분간 쉬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15분간만 일을 하고 45분간 쉬어야만 생명에 지장이 없다.
이전에 더운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작업 시작 전에 2주 정도 서서히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를 ‘고온순화’라고 하는데 더운 작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안전수칙이다. 작업자가 주말에 하루 이틀 간 쉬고 출근하는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만약 3일 이상의 휴가를 다녀왔다면 다시 고온 순화를 거쳐야 일을 할 수 있다.
고온 작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작업 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 설계되고 유지되는 냉방시설이 있어야 한다. 샤워시설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작업장이 그러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업 환경에 대한 개선뿐 아니라 적절한 수분과 염분의 섭취, 충분한 휴식과 같은 조치도 필요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염분 없이 물만 계속 마시면 ‘열경련’이라고 하는 근육의 심한 경련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노인, 살찐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신체에 병이 있는 사람들은 열사병이 쉽게 올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열사병은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병이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100% 사망하며, 체온이 섭씨 43도 이상일 때는 80%가 사망한다. 체온이 섭씨 43도 이하일 때는 40%가 사망한다. 따라서 여름에 야외에서 일하는 경우 혹은 사시사철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많은 주의를 하여야 하겠다.
요즘처럼 뙤약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가 되면 밭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들어오신 할머니가 자꾸 생각이 난다.
눈여겨볼 연구
성과급제는 아담 스미스의 의견처럼 산업재해 가능성을 높이는가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논문제목: Piece rates and workplace injury: Does survey evidence support Adam Smith?
저자: Keith A. Bender, Colin P. Green, John S, Heywood
서지사항: J Popul Econ (2012) 25:569-590. DOI 10.1007/s00148-011-0393-5
성과급제(piece rates)는 노동자에게 생산량에 관계없이 고정된 임금을 주는 대신에, 실제 생산량에 따라 임금을 달리 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성과급제를 수행하는 경우, 고정급제를 수행하는 경우에 비하여 생산량도 많아지고 임금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급제가 예기치 못했던 효과, 즉 산업재해의 증가와 이로 인한 노동자 건강의 악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제기되었다.
일찍이 18세기에 자본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그의 책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에서 노동자들은 성과급제로 임금을 지급받는 경우 (많은 수입을 벌기 위하여) 과로를 하기 쉬우며, 그 결과 자신의 건강을 해치기 쉽다고 하였다. 아담 스미스가 지적한 것처럼 성과급제 하에서는 기업과 노동자들이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 생산속도를 올리고, 근무시간을 늘리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최근에 수행된 여러 연구들에서도 성과급제의 도입이 생산성의 향상과 함께,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여러 연구들은 성과급제와 산재발생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여러 산업들에서 연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산재보험 보상 비용의 수준 또는 전반적인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대리지표 (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 BMI) 등과의 간접적인 관계를 이용하여 수행하기도 하였다. 벤더(Keith A. Bender) 등이 수행한 본 연구도 성과급제가 산업재해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수행된 연구이다.
성과급제와 산업재해간의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였는가?
유럽의 자료로 수행된 이 연구는 성과급제와 산업재해간의 관련성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본 연구에서 사용된 자료는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조사된 유럽노동조건조사자료 (EWCS, the European Working Conditions Survey) 이다.
이 자료는 임금 지불 방식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를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성과급제 시행 여부, 이윤 분배, 집단 성과급제 등의 시행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또한 직장에서의 업무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건강에 영향을 준다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자료도 조사하고 있고, 또한 작업환경과 관련하여 진동, 소음, 고온 또는 저온, 분진, 중량물 취급, 화학물질 사용, 방사선 노출, 담배 연기 노출, 감염성 질환, 반복작업, 서서 하는 작업 등 여러 가지 유해요인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어, 산업재해를 직접적인 결과 변수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연구 결과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의 13% 이상이 성과급제로 임금을 받고 있었다. 연구자료의 분포를 보기 위하여 성과급제와 비성과급제로 나누어 산업재해율을 단순 비교한 결과 성과급제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14.4%로, 비성과급제 노동자의 산업재해율 7.5%과 비교할 때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높았다. 또한 성과급제 노동자는 비성과급제 노동자에 비하여 작업시간이 길었고,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지만 두 집단 사이에 근무기간이나 연령의 차이는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단순비교에 그치지 않고, 산업재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감안한 분석을 시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근무기간과 근무시간을 감안하였고, 노동자들이 작업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평가한 작업속도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한 분석을 시행하였고, 사무직과 생산직을 구분하고, 단순작업, 반복작업 등도 고려하여 연구를 수행하였다.
주된 연구결과
연구결과에 따르면, 작업장의 위험요인, 작업의 특성과 노동자의 노력 등의 산업재해의 여러 가지 원인을 감안한 상태에서도 성과급제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는 고정급제 노동자에 비하여 산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5% 정도 높다고 밝혔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생산직 노동자 (manual workers)에서 6.7%로, 사무직 노동자 (non-manual workers) 의 1.4%에 비하여 거의 네 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였다.
성과급제가 고정급제에 비교해서 임금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성과급제가 이러한 산업재해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임금 수준을 책정하기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산업재해의 발생을 감안한다면, 실질 임금 수준이 높을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본 연구는 언급하고 있다.
본 연구의 초록 또는 원문은 구글 등의 검색사이트에서 본 연구의 논문제목으로 검색하여 다운받거나 대학 도서관의 학술 자료실 등에서 검색하여 다운받을 수 있다.
해외판례자료
‘과로자살’과 회사책임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
정해명 /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공인노무사
최근 경기 침체와 성장 둔화가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는 대신 기존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노동,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IT기술 발전에 힘입은 스마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하여, 기업은 언제, 어디서든, 아무런 제약 없이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 고강도 노동은 노동자에게 육체적 문제(과로)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스트레스)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과로 자체는 또 다른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의 문제는 자살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주제이다.
일본의 법률잡지사인 쥬리스트(JURIST)는 그 동안 각 법률 분야의 판례 100선(判例百選)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가 일본의 산재보험제도를 모태로 시작된 만큼, 일본의 산재 판례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 같다. 아래 판례 발췌 내용은 쥬리스트가 2002년 11월에 발간한 노동판례백선(勞動判例百選) (제7판)에 실린 판례 해설중 일부이다.1)
이 사건은 ‘장시간 심야근로’가 일상적인 일본의 회사에서 벌어졌다. 사망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도한 심신의 피로상태로 인한 우울증이 발병하였고, 끝내 자살에 이르렀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우울증과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였는데, 이는 과로자살에 대하여 회사(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한 중요한 판결이다. 이 판결은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이 일상화된 한국의 사용자와 노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고재판소는 사용자는「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하였고, 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이 같은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다. 이에, 최고재판소는 사용자인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불이행의 과실이 있어 유족에 대하여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1. 사건명
電通(덴쯔)사건
最高裁(최고재판소) 平成(평성) 12년(2000년) 3월 24일 제2소법정판결
(平成 10년(オ)제217호 손해배상청구사건)
2. 사실의 개요5)
Y사에서는 잔업에 관하여 자기신고제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장시간의 심야근무가 일상적이었고 심야잔업을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였으며, Y사는 이 상태를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Y사에는 다음날 출근유예제도 등도 있지만, 주지를 철저히 하지 않아서 그다지 이용되고 있지 않았다.
A는 1990년 4월에 입사하여, 같은 해 6월부터 sales(판매)ㆍevent(행사) 등의 기획입안 등 다양하고 바쁜 업무와 잡무를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A의 건강상태는, 과중한 업무에 의한 철야와 다음날 아침에 이르는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 하에서 차츰 악화되고 있었다. 한편 A의 근무에 대한 상사의 평가는 호의적이고 양호하였지만, 동시에 상사는 A의 근무태도나 이상행동을 알고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도록 지도하였지만, 인원을 보충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지는 않았다. X 등이 A의 과로를 걱정하고 있던 중 1991년 8월, A는 근무 중에 상사도 알아차릴 정도로 이상한 언동을 보였지만, 무사히 업무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다음 날 아침 자택에서 자살했다.
3. 판결 취지6)
「노동일에 장시간에 걸쳐 업무에 종사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등으로 피로와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규제나 노동안전위생법의 건강배려ㆍ적절관리규정(65조의 3)은 해당 위험발생의 방지도 목적으로 한다.「사용자는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에게 종사하게 할 업무를 정해 이것을 관리할 때, 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하고,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당해 주의의무의 내용에 따라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A의 업무수행과 우울증 이환에 의한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해당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였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2. 사실의 개요
본건은 전 회사원 소외 A의 과로자살에 대해서, A의 부모인 X등(원고, 피항소인ㆍ부대항소인, 피상고인ㆍ상고인)이 Y회사(피고, 항소인ㆍ부대피항소인, 상고인ㆍ피상고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던 사안이다.
제1심(東京地判 平成 8. 3. 28)은 A의「常規를 벗어난 장시간 노동」에 의한 과도한 심신의 피로상태와 우울증 및 우울증과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하고, Y의 이행보조자인 상사가 A의 상태를 인식하면서도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에 안전배려의무불이행의 과실이 있다고 해서 Y의 사용자책임(민법 715조)을 인정하여, 약 1억 2600만엔의 지급을 명했다.
제2심(東京高判 平成 9. 9. 26)은 Y의 배상책임에 관해 제1심 판결을 지지했지만, 손해액의 산정에서는 A의 우울증 친화적 성격, 합리적 행동(병원에 가는 등)을 취하지 않은 점, A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X 등의 잘못 등을 고려하여 A측의 과실을 인정하고, 과실상계(민법 722조 2항)를 유추 적용하여 그 3할을 감액했다.
3. 판결 취지
X의 패소부분을 파기환송.
(ⅰ) Y의 책임 「노동일에 장시간에 걸쳐 업무에 종사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등으로 피로와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규제나 노동안전위생법의 건강배려ㆍ적절관리규정(65조의 3)은 해당 위험발생의 방지도 목적으로 한다.「사용자는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에게 종사하게 할 업무를 정해 이것을 관리할 때, 업무의 수행에 수반되는 피로나 심리적 부하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하고, 업무상 지휘감독권한을 수행하는 상사도 당해 주의의무의 내용에 따라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A의 업무수행과 우울증 이환에 의한 자살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해당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였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ⅱ) 과실상계의 범위 과중한 업무 부담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에서도 손해의 공평한 분담의 이념에 비추어 과실상계를 유추 적용하여, 손해의 발생ㆍ확대에 기여한 피해자의 성격 등 心因的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最一小判 昭和 63. 4. 21). 그러나 노동자의 성격은 다양하기 때문에「(어떤)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개성의 다양함으로 통상 상정되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한, 그 성격 및 이것을 기초로 한 업무수행 양태 등이 업무의 과중 부담에 기인하여 당해 노동자에게 생긴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하였다고 해도」그 사태는 사용자로서 예상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용자나 업무상의 지휘감독권한을 갖는 상사는 노동자의 적성을 판단하여 배치나 업무 내용의 결정을 하는 것이며, 그 때에 노동자의 성격도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성격 등이 전술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 법원은 당해 노동자의 성격 등을 심인적 요인으로 참작할 수 없다.
본건의 경우 A의 성격은 사회인 일반에게 종종 보이는 바이며, 상사는 업무와 관계에서 A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으므로 전술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A의 성격 등을 참작할 수 없다. A는「독립된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의사와 판단을 기초로 Y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던」것이며, X 등에게 과실 책임을 묻을 수 없다.
(파기환송심에서 화해성립, 1억 6800엔의 지급).
4. 해설
(1) 서문
과로자살은 bubble(거품) 붕괴 후 장기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급격히 증가하여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과로자살은 최저인원으로 회사에 대한 성과(공헌)를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의욕ㆍ노력ㆍ자기관리로서 요구하고, 마이너스 부분도 포함하여 개인에게 귀착시키는 노무관리ㆍ노동환경 하에서 노동하는 것에 대한 인간 정신의 고독한 저항이다.
과로자살은 과중한 업무가 심신에 과중한 부담을 준 결과로 나타나는 산업재해이지만, 사망원인인 자살이 심인적(心因的) 측면을 강하게 의식하게 하는 점에서 과로사(뇌졸증 등 신체적 질환의 죽음)와 구별된다. 과로자살은 직업병이나 사고를 전형적으로 하는 산재보상에서 멀어서 산재인정을 곤란하게 하며, 대신에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이 노동자 구제에 길을 열어 왔다.
산재 민사소송에서 사용자책임을 추궁하는 이론 구성은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이 있지만, 산업재해나 질병에서 계약상의 안전배려의무가 정해져 있는 점도 있어 채무불이행의 구성이 많다. 본건은 과로자살에 사용자책임을 긍정한 최초의 사례이다.
(2) 사용자의 책임
사고나 질병의 경우, 사용자의 무과실책임을 달리하면 주로 업무에 내재하는 위험의 회피조치를 둘러싸고 사용자의 책임을 물어왔다. 과로자살의 경우는, 과중한 업무를 과하여 정신을 해치는 위험을 만들어 내는 노무지휘 책임을, 따라서 위험이나 자살을 회피하는 조치의 부작위 책임을 묻는다. 노동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등을 들어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정신을 해치는 위험을 지적하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이러한 위험을 만들어 내는 책임을 묻는다. 다만 사용자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다하면 좋을지는 불명확하다.
위법한 장시간 잔업이나 애매한 노동시간 관리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고 정신을 해칠 정도의 업무「양」을 해내지 않을 수 없는 노동환경에서 노무지휘 책임의 문제이다. 따라서 부과된 업무의 수행에 노동자의 재량이 있는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부당한 노무지휘에 대하여 노동자는 당해 명령을 거부하고 그 무효를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고 그 밖의 불이익에 노출되게 되고, 부당한 노무지휘에 대항할 수 있는 근무청구권ㆍ노무급부거절권은 일반론으로서 긍정되고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이 법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위험회피나 손해발생ㆍ확대에 노동자 측의 기여를 논하여 노동자 측의 책임을 논의하는 것은 공정성을 결여한다(후술 4 참조). 나아가 전술한 왜곡된 노무관리ㆍ노동환경의 현실에 유의해야 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불법행위 구성을 채택하고 있다(같은 취지, 浦和地判 平成 13. 2. 2 三洋電氣서비스사건). 본건 하급심이 계약상의 안전배려의무로 검토하면서 어떠한 이유로 불법행위상의 주의의무로 구성하였는지는 불명확하다. 채무불이행구성과 차이에 관하여 양자의 차이는 없고, 채무불이행구성의 의의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과중 노동에 대한 손해배상에 한정되지 않는 법적 구제, 노동관계와 다른 분야와의 정합성, 상사ㆍ노무담당자책임(이행보조자)에 관한 이론구성 등 검토해야 할 과제는 남겨져 있다. 더욱이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사용자책임(민법 715조) 구성을 채택하지만, 민법 709조 구성도 가능하다.
(3) 과중노동과 자살의「인과관계」
자살은 일반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에서도 자살은 급여를 제한하는, 고의에 의한 사망(12조 2의 2)에 해당하게 된다. 산재 민사소송에서도 자살이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하게 되면 사용자는 예견할 수 없고, 자살과 인과관계가 중단된다고 해석된다.
법원은 이 문제를 ①과중한 노동이 노동자에게 정신적 질환을 초래하고, ②그 질환의 증상에 의한 자살이라고 파악하여 이 문제를 극복했다. 의학적 식견에 의존한 이 인과관계는 경험칙으로 정식화되었다. 다만 이 정식은 첫째로는 사실적 인과관계이다. 법적 인과관계(상당인과관계)로서는 사용자의 예견가능성, 회피조치(인원을 보충하는 등)의 유무ㆍ정도나 회피 가능성ㆍ정도 등이 검토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법적 인과관계로서 파악하고 있다. 東加古川幼稚園사건(最三小決 平成 12. 6. 27)에서는 퇴직 1개월 후의 우울증 상태에서의 자살과 과중노동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한 전술한 三洋電氣서비스사건에서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라 상당한 주의를 다하면 정신적 질환에 이환된 것을 파악할 수 있고, 이환된 자가 자살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사용자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여, 자살을 야기하는 정신적 질환에 이환되어 있던 것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지만, 승진 후의 노동이 과잉이라고 할 수 없고 자살이 본인의 素因에 의한 任意的이라는 요소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하여, 자살에 대한 기여도에 관해 본인 고유의 것이 7할이라고 하였다.
사안에서 사실의 취사선택ㆍ평가가 그 성부ㆍ정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어떠한(가치) 판단이 이루어져서 법적 인과관계가 인정된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특히 노동자 측의 사정이 기여도에서 고려된다고 하면, 사용자 책임의 구조와 관계에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 점은 민사소송법 248조에 의한 배상액의 비율적 인정문제에도 미칠 수 있다.
(4) 과실상계와 심인적(心因的) 문제
법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불법행위책임 성립 후의 손해액 결정함에 있어, 피해자 측의 과실을 묻는 과실상계의 유추적용에 의해서 조정하는 방법이 교통사고나 과로사 등의 사안에서 파악되고 있다. 피해자 구제의 요소가 가해자 책임의 범위나 법적 인과관계 성부 판단에 불명확함을 남긴 채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한 결과, 적절한 균형(balance)을 취할 필요를 느껴 그 장을 과실상계에서 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교통사고 판례를 선례로서 이러한 경험칙에 따라, 심인적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고 일반론으로 인정한 뒤, 노동자의 적성을 판단해서 배치나 업무 내용의 결정을 실행하는 사용자 측의 지휘감독권한을 바탕으로 과실상계법리를 과로자살에 적용하는 경우의 범위를 한정했다(판시(ⅱ)). 이 한정에 관해서는「항상적인『 과중부하』라는 현실적 사태를 직시한 뛰어난 정책적 경고」등, 다수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의 법리에는 의문이 제시되고 있다. 애초에 심인적 요인을 포함하여 피해자 측의 사정을 인과관계나 과실상계에 반영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이다. 민법학에서는 불법행위책임 자체가「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가해자책임이라는 형태로 피해자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분담시키는 것이며, 과실상계 자체가 한정적이라고 하여 피해자의 책임을 과실상계에 끌어 들이는 것에 소극적인 견해가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2에서 서술한 바이지만, 과로자살은 노동환경을 형성ㆍ관리하고, 그 아래에서 적성을 포함하여 노동자를「적정」히 배치하여 업무를 명하는 관계에서 생긴 사건이며, 교통사고 등과 같이 볼 수 없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도 노동관계의 이러한 특수성을 인정하여 과로자살에 대해서 노동자의 심인적 요인을 감액요소에 포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최고재판소는 과실상계법리의 통일성 요청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나아가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렇게 이해한 경우 법적 인과관계의 기여도에 노동자의 심인적 요인을 포함하는 것도 제한된다고 이해되고, 그 설명도 필요하게 된다.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에도 최고재판소의 제한에 따라 과실상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오타후쿠소스사건(廣島地判 平成 12. 5. 18) 이외에, 앞에서 든 東加古川幼稚園사건에서는 노동자의 성격이나 심인적 요소에 비추어 8할을 감액한 원판결을 최고재판소 자신이 지지하고, 나아가 앞에서 든 三洋電氣서비스사건에서는 본인 등이 주치의에게 자살미수의 보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나, 근무계속을 원했던 원고의 언동 등에 대해서 과실상계 유사의 신의칙상 상계해야 한다고 했다(5할). 이러한 판결례에서 보면 과로자살에 관한 과실상계법리는 본건 최고재판소 판결에 의해서 확정되었다는 할 수 없고, 거꾸로 위 설명이 없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가족의 대응을 사용자의 책임감경대상에서 제외한 본건 최고재판소의 견해는 지지되어야 한다.
1) 아래에 실린 일본 쥬리스트(JURIST)사의 노동판례백선(제7판)의 번역은 노동건강연대 대표를 맡고 계시는 김진국 변호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해외이슈
영국 건설노동자, 블랙리스트에 맞서 싸우다
박진욱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블랙리스트’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MBC, KBS 등의 방송사에 일부 연예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보도된 바 있고, 두산중공업, 양주상운, 울산지역 건설플랜트노조, 현대중공업, KT 등에서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취업을 제한하거나, 노동조합 선거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 왔다는 사실들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런던올림픽이 열린 영국에서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대규모 소송이 벌어질 예정이어서 그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2009년 3월, 영국 정보감독관실(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 ICO)1)은 우스터셔주(Worcestershire) 드로이트위치(Droitwich)에 자리한 한 사무실에서 3,213명 노동자의 이름, 주소, 사회보장번호, 직업력, 가족 관계, 노동조합원 여부, 노동조합 활동 참여 여부 등과 얼마나 강성 조합원인지 또는 회사에 얼마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지 등의 사찰 정보가 적혀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 주로 건설현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단체 행동을 조직하거나, 안전보건 대표를 맡은 이들이 명단에 올라 있었다.
66살의 이안 케르(Ian Kerr)가 운영하던 문패도 없는 사무실에서 발견된 이 문서들은 대형 건설 회사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컨설팅 연합(Consulting Association)’이라는, 이름부터 불분명한 단체에 의해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수집된 조합원 정보는 44개의 건설 회사들로 팔려나갔다.
건설 회사들은 일 년에 3000파운드(약 530만원)를 연회비로 지불하고, 블랙리스트를 조회할 때는 한건 당 2파운드(약 3,500원)의 요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컨설팅 연합은 폐쇄되었으나, 사설 조사원이던 이안 케르에게는 데이터보호법 위반으로 겨우 5000파운드(약 880만원)의 벌금만이 부과되었으며, 40여개의 건설 회사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46살의 엔지니어 데이브 스미스(Dave Smith)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것은 안전보건 노동자 대표로서 작업장에서 석면 노출 등을 포함한 안전보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고서 소득은 4만 파운드에서 1만2천 파운드가 됐고 그의 자녀들은 우유 급식을 받아야 했다. 스미스에 관한 파일은 36쪽짜리로,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파일에는 스미스의 노동조합 활동, 작업장 안전을 위한 노력, 사회보장 번호, 정치적 활동, 사진, 그의 자동차와 그의 형제가 일하는 곳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미스는 카릴리온(Carillion)이라는 건설 회사를 상대로 고용 심판을 제기했다. 그동안 블랙리스트로 인해 입었던 손실에 대해 17만5천 파운드(약 3억)를 보상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카릴리온은 자회사 두 곳에서 스미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그가 조합원이며 작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에 대한 정보를 컨설팅 연합에 은밀히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카릴리온의 승리였다. 카릴리온이 스미스의 직접 고용당사자가 아니고, 스미스가 에이전시를 통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카릴리온은 스미스를 포함하여 224명의 건설노동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2). 뿐만 아니라 한 분기에만 2,776명의 노동자의 이름을 컨설팅 연합에 확인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74살의 믹 애봇 (Mick Abbott)의 파일은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2006년 피케팅을 한 기록이다. 건설회사들은 무려 40년이 넘게 그를 추적하고, 고용에 불이익을 주었던 것이다. 애봇은 1985년부터 일자리를 잡는 것이 어려웠으며, 이로 인해 결혼 생활이 파탄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료 식사를 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대회장으로 입장할 때 성화 봉송 주자를 맞은 5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실제 올림픽 경기장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런던올림픽에 사용할 미디어 센터, 경기장 등을 건축하는 현장에서 여전히 블랙리스트가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던 프랭크 모리스(Frank Morris)라는 노동자는 관리자에게 폭력을 동반한 위협을 당한 뒤 해고되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고용 심판에서 승리한 몇 안 되는 노동자 중 하나였던 스티브 켈리(Steve Kelly) 역시 올림픽 현장에서 일을 구하려 했지만 런던 최고의 골칫덩이라며 채용을 거절당했다.
스미스와 애봇을 비롯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정이 파괴되고, 아이들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게 되거나,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을 앓는 등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컨설팅 연합은 지난 30여 년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브 스미스의 재판 중에 정보감독관의 증언을 통해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이들이 수집한 정보들 중 일부는 경찰이나 정보기관(MI5)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으로, 경찰과 정보기관이 이들과 공모하여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한편 컨설팅 연합에 대해서는 그 뿌리가 경제 동맹(Economic League)이라는 단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 동맹은 1919년부터 1993년까지,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반하거나, 반체제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하던 단체이다.
경제 동맹은 특히 1940년대 이후 MI5와 결탁하여, 공산주의자부터 핵 폐기론자까지, 주로 좌익성향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왔다. 이때 주요 건설 회사들은 IRA의 테러 위협이 있는 가운데 아일랜드계 건설 노동자들을 밝혀내는 데 정부와 협력 작업을 해왔고, 이러한 토양 속에서 컨설팅 연합에 이르기까지 정보기관과의 협력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 동맹은 1980년대 들어와서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며 1993년에 해체되었지만, 이때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들이 카프림(CAPRiM)3)과 컨설팅 연합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0년 3월, 고용관계법에 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한 블랙리스트 규제부분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블랙리스트를 규제하는 법이 만들어졌으나,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의 모임인 건설노조의 반대가 이어졌다. 건설노조는 논의 과정에서 법이 불충분하며, 이런 수준으로는 블랙리스트를 근절할 수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결국 노동조합이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법은 발효되었다.
2010년 3월에 발효된 법은 개인, 회사 또는 어떤 조직이든 특정한 배제를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거나, 사용하거나, 팔거나,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용자로부터 채용을 거부당하거나, 고용 에이전시에서 서비스 제공을 거절 당하거나, 해고 당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어떤 다른 종류의 해를 입어 고통 받거나 했을 경우, 고용 심판소에 소를 청구할 수 있다. 소는 개인이 청구할 수도 있고, 노동조합에서 청구할 수도 있으며, 보상은 최대 65,300파운드 (약 1억 1천 5백 만원) 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에는 형사 처벌 조항이 빠져 있고, 노동조합 활동을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비공식적 행동에 관련된 노동자 보호 부분이 빠져 있다. 이는 안전상의 이유로 작업을 중지하거나 잔업을 거부하면 합법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도 된다는 뜻이 된다.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현재 17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송을 고등법원에 제기했으며, 소송 참여자가 늘어나면 금액은 무려 1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 중 하나인 로버트 맥알핀사 (Sir Robert McAlpine Ltd.)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로버트 맥알핀사는 런던올림픽 경기장 건설에 5천만 파운드를 기증했고, 경기장 건설 컨소시엄을 주도하여 입찰을 따내 런던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한 회사이다. 그리고 2009년 컨설팅 연합의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컨설팅 연합에 연회비를 내고 있던 현직 회원사 중 하나였다. 피해노동자들은 로버트 맥알핀사가 나머지 40여개 회사들을 선도하여 블랙리스트를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송의 결과는 빨라도 2013년이 되어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실체가 드러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우선 건설회사들이 경찰이나 MI5와 결탁하여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에 대한 진상 조사도 필요하고, 직접고용이 아니라 에이전시를 통해 간접 고용되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은 건설사들의 공식적인 사과를 원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사용자들은 편집증이 아니냐, 절대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없다는 등의 답변으로 일관해왔었지만, 그 실체가 명백히 드러난 이상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유럽 의회의 고용사회위원회(Committee on Employment and Social Affairs)에서도 블랙리스트를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강한 제재를 가하려는 노력과 함께 안전보건 노동자 대표에 대해 사용자가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내부 고발자를 보다 잘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는 계획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블랙리스트가 드러나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명백한 지배•개입 의도가 있는 부당노동행위임이 뻔히 눈에 보이는 데도 아무런 처벌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용자들의 반인권적, 반노동적 행동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와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관련법의 재․개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림 1)] 블랙리스트 지원 그룹이 2010년 7월에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 21차 “전국 위험관리 컨퍼런스 (National Hazards Conference)”에서 ‘알란(Alan)’상(지역사회 환경 보건과 작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열심히 활동한 이들에 대해 고인이 된 활동가 알란 달튼(Alan Dalton)을 기리며 주는 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www.hazards.org)
[그림 2)] 런던올림픽 관련 건설 현장에서 블랙리스트가 사용되고 있다는 내부 고발을 한 뒤 해고된 프랭크 모리스 (사진 출처: Blacklist Support Group)
[그림 3)] 프랭크 모리스(메가폰 든 사람)와 조합원들이 올림픽 건설 현장에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블랙리스트를 금지하라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www.hazards.org)
[그림 4)] 2011년, 맨체스터에서 블랙리스트를 멈추라는 행진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진 출처 : http://manchestermule.com)
1) ICO(The 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 : 정보감독관실. 정보 공개 및 개인정보 보호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한 영국의 공공기관이며 데이터보호법, 정보보호법 등의 법률을 총괄하고 있다.
2)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카릴리온과 자회사들이 저지른 일들은 영국의 일반노조인 GMB가 2012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 [BLACKLISTING ‐ illegal corporate bullying: endemic, systemic and deep‐rooted in Carillion and other companies]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보고서 원본 링크 : http://www.gmb.org.uk/pdf/The%20Carillion%20Blacklist%20v12%20(1).pdf
3) 카프림(CAPRiM) 역시 컨설팅 연합과 비슷한 단체로 경제동맹 해체 직후 만들어졌다. 카프림은 맑시즘, 생태주의, 윤리적 소비, 국가간 모니터링, 노동조합 등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기업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위험에서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회사가 원하는 사람에 대해 개인의 ‘진실성’을 확인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법의 이면
전기원 노동자 사망과 산재유발자 한전의 법적 책임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전기가 없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냉동실의 음식들은 모두 녹아버리고, 당장 컴퓨터를 켤 수조차 없다. 캄캄한 방안에서 책이라도 읽으려 하면 촛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핸드폰은?
전기를 공급해 주는 자와 이를 유지하는 자의 관계
전기세만 잘 내면 전기를 쓰는데 지장이 없는 세상, 우리는 한번쯤 높은 전봇대에 올라 전기 줄을 보수하는 헬멧을 쓴 노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이 그 전기를 공급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노동자는 한국전력의 정규직 노동자로 여긴다. 이들이 한 달에 1명 이상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기억하자.
헬멧을 쓰고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은 전기원이라 불린다. 공급될 전기를 각 가정과 각종 건물에 무사히 연결시키기 위한 배전설비의 설치, 보수, 운영에 이들이 없다면 전기사용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전력 소속이 아니다. 전국의 1,200여개(2011년 기준)의 전기공사업체의 소속으로, 상용 또는 일용직의 형태로 근무하는 한마디로 하청 노동자들이다. 한국전력이 배전설비관련 사업을 발주하면 이를 수주한 전기공사 업체들이 전기원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관리하게 된다. 결국 전기를 공급하는 자와 유지시키는 자는 여러 차례의 하도급을 거쳐 만나지만, 이들은 안전관리에 대해 직접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이다.
2만2천9백 볼트 전기선에 흐르는 사연
22,900볼트 전류는 언제나 전기선을 타고 흐른다. 여기서 포인트는 ‘언제나’ 이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전기원들은 전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된다. 왜 이들은 위험천만하게 전류를 흐르게 해놓고 일을 할까?
2012년 3월 전기공사협회 회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전이 지난 1994년부터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배전작업시 시행해 온 직접활선공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직접활선공법은 작업자의 감전과 추락위험성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배전공사 현장에 작업정전 제로화 및 감전 제로화를 위해 시급히 간접활선 및 가송전공법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1)
‘활선’은 전기가 살아있는 선을 말한다. 직접, 간접, 가송전 모두 무정전 상태의 작업이지만, 직접은 말 그대로 배전공이 보호구를 착용하고 직접 전선을 만지는 공법인 반면, 간접은 스틱이나 로봇 등을 조작해 공사를 진행하고 가송전은 전력을 따로 연결해 작업선을 사선으로 만든 뒤 공사를 진행한다. 딱 봐도 직접활선공법은 너무나 위험하다. 일본의 경우 무려 1985년부터 직접활선공법을 버리고 간접활선공법을 사용해 안전사고 ‘제로’를 달성하고 있다. 2)
안전에 관한 의무가 있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 그들마저 공법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니, 안전사고의 위험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알리면 하면 폐업을 감수해야 하는 업체의 현실로 인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기원 노동자에게 남게 된다. 제대로 된 산재 통계하나 갖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24%의 원가절감의 대가는 가혹하다. (직접활선공사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는 24%라고 한다.)
<초고압 송전선로 활선공법 및 관련장비 개발을 위한 조사연구, 한국전기공사협회, 2002
직접활선공법의 장점에 유일하게 ‘작업의 안전성’이 빠져있다.>
그런데 2005년, 한국전력은 ‘직접송전공법(전선이선공법)’ 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한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을 한전에서 사들여 전체 현장에 도입하게 된 것인데, 현실에서는 전선이 좁은 간격으로 설치되어있어 신기술 사용 시 감전사고 등이 더 발생되는 실정이고, 특히 신기술 사용으로 인한 산재 처리가 되면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산재신청이 어려운 실정이다.
산재유발자가 된 한국전력
거기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또 어떠한가? 한전의 ‘무정전 배전공사 시공업체 관리절차서’를 보면, 총 23조까지의 규정 중 10조부터는 전부 안전관리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전기원 업무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함은 한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규정만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면 패널티를 줄 뿐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은 전혀 없어, 이는 업체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전은 그동안 전력업체 선정기준 추정 도급액은 늘리되 상시보유 노동자는 늘리지 않아 소규모 업체의 폐업을 유도하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양산해왔다. 그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일용직으로, 다단계 최하층으로 편입되어 일을 하게 된다. 안전을 넘어 생명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이동이다. 이 과정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무하니 필연적으로 재해율은 늘어만 간다.
<2000년 이후 한국전력 배전현장 연도별 산재처리현황, 이미경의원_ 산재 공식통계(요양승인 일자 기준)를 기준으로 발주자가 한전, 한국전력 등으로 되어 있는 재해현황임>
<재해분석을 통한 배전선로 활선작업 공종별 위험지수 평가, 2011, 한국전기산업연구원-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90일 이상의 재해손실 일수의 노동자들이 전체의 62%로 절반이 넘게 차지하는 사실은, 그만큼 전기공사업의 재해강도가 크고, 위험한 작업임을 나타낸다. >
결국 한전이 전기공사 업체에게 제시한 기술로 인해, 노동자들은 94년부터 1차 안전위협, 05년부터는 가중된 안전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모자라 대량의 구조조정의 위협까지 시달리게 되었다. 한 달에 한명 이상이 죽고, 하루에 한명 이상은 재해를 당한다. 그 재해마저 중상 및 사망자가 다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기원들은 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도급업체 노동자일 뿐이다. 한전은 정말 전기원 노동자의 수많은 재해에 책임이 없는가. 자신들이 발주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경영에 필요 없는 요소인가.
전기원 노동자들이 한국전력과의 사용종속관계에 대한 보다 많은 증거들을 수집하고 사실관계들을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하수급에게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도급인(발주처, 원청)과의 근로관계를 인정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전력의 도급인의 지위를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전력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7항이 2011.7.25. 개정되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 ⑦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 수행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개정 2011.7.25><제6항에서 이동, 종전 제7항은 제9항으로 이동 2011.7.25>
1. 설계도서 등에 따라 산정된 공사기간을 단축하지 아니할 것
2. 공사비를 줄이기 위하여 위험성이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공법을 변경하지 아니할 것
⑧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급인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위생시설에 관한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수급인에게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적절한 협조를 하여야 한다.<신설 2011.7.25>
위 개정 규정에 따르면,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 수행을 위하여 설계도서 등에 따라 산정된 공사기간을 단축하지 않아야 하며, 공사비를 줄이기 위하여 위험성이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공법을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전력이 현재 도입하고 있는 신공법이 안전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음이 확인된다면, 이에 대한 법률적 문제 제기를 통하여 한국전력의 책임을 논하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의 마련을 요구할 수 도 있다.3)
하청이 더 많이 죽는 게 당연해 졌나
언제부턴가 산재사망 기사를 보면 하청노동자인지, 원청은 어디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지난 8월 14일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4명의 노동자 중 3명도 하청노동자였다. 대기업이 무재해로 인해 산재보험료를 오히려 더 적게 내는 현실을 감안하면 위험한 업무들은 거의 하청업체로 넘겨졌음이 확실하다. 그로 인해 기존의 원청, 도급업체가 갖고 있던 안전에 대한 책임이 하도급업체로 넘어갔다. 그 책임을 떠넘긴 결과는 비정규·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한전은 관리지침, 기술지정 등으로 모든 업체들을 관리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한전에 있는 것이다. 한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철로 보수공사를 하다가 사망한 하청노동자,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이마트 하청업체 노동자 등 이제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하청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그리고 이들 노동의 장소적, 물리적 통제권은 여전히 그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에 안전책임을 지워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살핀 바와 같이 실제 주요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실태를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청노동자의 사망은 원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4명이 죽어도 100만원의 벌금을 내면 그만인 이마트가 과연 앞으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겠는가?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로 4명이 죽어도 대국민 사과한다고 언론플레이는 하면서 정작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유족은 거들떠도 안보는 GS건설은 정말 이 일과는 무관한 것인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의 책임있는 안전관리가 세계 1위의 산재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린 산업구조 속에서, 제도적으로 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시급하다.
관련 글 :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원 노동자를 아시나요? http://old.laborhealth.or.kr/32489
1) 실적 부풀리기 등 허위신고업체 등록취소, 전기에너지 뉴스, 2012-3-24
2) CN뉴스, 한전 원가절감에만 혈안-사고위험은 나몰라라, 2012-04-02
3) 전기원 노동자 노동안전보건 실태와 한국전력의 책임(유성규, 2011)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니 고향이 중심이야, 변방은 없어"
-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감독
숨이 멎을 것 같은 폭염이 조금은 수그러든 8월 중순의 안산역. 평일 한 낮 인데도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제법 많다. 역지하도에는 노점들이 유달리 많고, 상가마다 서너개 나라 언어가 기본으로 붙어있다. 안산역 맞은 편 ‘국경없는 마을‘ 에 도착하기 전이지만 안산역 자체가 국경없는 마을의 정거장이었다.
‘국경없는 마을’에서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감독을 만나 쌀국수집으로 간다.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가끔 사먹던 쌀국수와는 다르다. 베트남 사람이 만들어 준 베트남 쌀국수다. 오리지날 쌀국수와 비빔쌀국수, 볶음밥까지 베트남식으로 배불리 먹었다. 맞은 편 파키스탄 찾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짜이와 라씨를 주문했다. 베트남식 식사에 파키스탄식 디저트.
<지구인의 정류장> 으로 가는 길. ‘국경없는 마을’의 끄트머리에 2층짜리 다세대 건물에 <지구인의 정류장> 이 있다. 좁은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작은 방들이 여러 개 보인다. 1층은 한국인 주민들이 산다. 2층 계단을 돌아 올라가니 제법 큰 집이다. 넓은 마루 한 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쇼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 안쪽 방에 누워 낮잠에 빠져있는 사람… 이주노동자다. 모두.
주방에는 설거지된 그릇이 한 소쿠리 쌓여있고, 화구 두 개짜리 구형 가스레인지가 있다. 냉장고 옆에 쌀포대가 쌓여있다.
먼저 이주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_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10여년 전 버마민주화 운동에 대한 다큐를 찍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은 월급의 1/3을 내놓으면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죠. 2000년에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베트남전의 상처를 접하면서 국경의 안과 밖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2007년 안산에 정부가 지원하는 이주노동자센터가 만들어졌어요. 센터 안에 미디어팀을 만들어서 영상교육을 하면서 안산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미디어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활동비도 없이 일했지만 2008년에 이주노동자들과 30여편의 영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대통령이 바뀌면서 센터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왜 카메라교육이 필요하냐, 나가달라 고 하더군요.결국 압력으로 센터를 나오게 됐는데 이 때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연작 다큐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결국 ‘이 별에서 살다’ 라는 다큐 한편을 찍고 연작은 중단되었죠.
흠 다큐제목이 단체이름이 된 건가요, 이주노동자에게 카메라가 왜 필요한가 라는 압력으로 활동도 중단되었다니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군요.
_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다큐를 구상할 때는 문화, 습성, 사고방식 등 노동자정체성을 담는 걸 생각했어요. 이주노동자 쉼터를 관찰하면서 구상한 것인데요. 요새 다문화를 많이들 말하는데 다문화는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과 그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고요, 한국문화를 강요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죠. 우리가 평소에 한복을 입나요? 태권도 공연하면 다문화인가요. ‘오늘 여기 현재의 삶’이 없는 다문화는 국가정체성을 주입하는 이미테이션 장사죠.
저는 2009년 안산역 앞 다른 단체 사무실에 방 한칸을 얻어 다시 다큐작업을 시작했어요. 센터에서 나가라고 할 때는 장비를 갖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장롱에 있던 옛날카메라까지 모아서 작업을 했죠.
아 듣기만 해도 그 열악한 상황이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를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_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라기보다 이주노동자에게 미디어교육을 제공하고 그들이 직접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죠. 당사자의 자기표현이 중요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정체성도 생기는 것이고요.
그 때부터 안산에 계속 있어야겠다, 왜 있고 싶은가? 할 얘기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자의 시선으로는, ‘하더라’ 는 이야기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죠. 이주노동자들이 일만 하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말 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생각, 다른 기획을 할 수 있는.
그런데 어쩌다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숙식을 할 수 있는 공동체까지 오게 된 것인가요?
_ 처음부터 생활공간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쉼터를 유지한다는 게 날마다 새로운 경험이고 날마다 처음 일어나는 일들인 상황인데요, 그 전까지는 다큐를 어떻게 할까 구상하고 있던 상태였어요. 이주노동자들과 문화컨텐츠 교육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제일 많이 만나게 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한국 사람들에게 교육도 하고 국가정체성으로가 아니라 정말 다양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더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를 두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고 대학교 때 보던 노동법 책을 20년만에 다시 펴보게 되었네요. 제가 법학과를 나왔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지구인의 정류장>은 애초에 미디어교육과 영상작품을 이주노동자가 주도하여 창작하는 공동체를 꿈꾸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단체처럼 되고 있다는 말씀 아닌가.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산재, 등록노동자와 미등록 노동자의 처지에 따라서 다른 도움요청들. 이런 문제들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나 정부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왜 이주노동자가 카메라 잡는 것을 싫어할까요.
_ 이주노동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한국에 일하러 왔는데 왜 돈 안 벌어?’ 이렇게 말하죠.
어떤 사장이 말하길 자기 공장에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숙소에 남자친구를 자주 데려와서 노는데 풍기문란이라면서 ‘짤라야겠다’ 고 하더라고요. 제가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주말에, 일 끝난 시간에 남자친구 데려오는 게 뭐가 문제냐, 다른 노동자들도 그러지 않냐 물었더니 ‘자주 와’ 이래요. 사장이 계속 베트남 여성노동자에게 남자친구 데려오지 말라고 협박하길래 제가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했더니 “사장이 때린 것도 아니고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 이럽니다.
이주노동자가 많이 찾아올수록 저도 노동부와 말싸움할 일이 늘어나죠.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도망온 노동자가 있는데 사장은 노동부에 ‘걔가 자해하고 도망갔다’ 이럽니다.
카메라를 잡아본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_ 미디어는 일차적 수요는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내가 카메라에 잘 찍히나 예쁘게 나오나’ 관심을 갖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사회적 발언의 주체로 자기 표현하는 경험을 하기는 어렵죠. 이게 중요한데요. 프레임의 문제인데요, 내 문제를 내가 표현하면 누구라도 함부로 하지 않죠. 인권개선에 도움이 돼요.
저희 공간에 오는 노동자들 중에도 자기 얘기를 야무지게 표현하는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카메라로 자기 숙소를 찍어와서는 ‘여기가 돼지 키우는 데냐’ 멘트도 하고요.
저 역시 이주노동자를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온 사람들, 돈 많이 벌어서 돌아가야 할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자기 발언권 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_ 여기서 처음에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알음알음으로 계속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모이고 있어요. 캄보디아에는 최저임금제가 없어서 한국에 와서도 근로기준법 개념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이 힘들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죠. 충분히 항변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럴 때 통신의 권리가 중요해요. 통신을 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죠. 통신, SNS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얼마 전에 김포 쪽에서 일하던 베트남노동자가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망했어요. 발병하고 나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병원에 간 모양이에요. 미열이 나기 시작할 때 바로 병원에 가 봤어야 하는데 정보가 없었죠.
전북 익산에서 22만원 주고 택시타고 찾아온 여성노동자가 있어요. ‘안산역에 있어요’ 라는 말만 듣고 찾아온 거예요.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양계장에 취업한 여성노동자인데 돈을 덜 받았어요. 한 달에 90만원 받고 매일 열 시간도 넘게 일을 했어요.
요새는 농촌에 취업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나요. 도시, 공장지역보다 감시감독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는 지원단체가 안 되려고, 센터가 안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센터가 얼마나 많아요? 만원 받고 서류 한 장 써주는 센터가 안산에 넘쳐나요. 인력소개소도 간판에는 ‘센터’라고 붙여놔요. 센터, 중심이라는 소리인데 왜 여기가 센터냐,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가 그래요. ‘니 고향이 중심이야’ 변방과 중심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고 싶어요.
도와주는 자와 받는 자의 지위를 거부하고 다른 관계를 만들어야죠. ‘너의 문제를 도와줄 사람은 너 뿐이야 네가 스스로 도와줄 방법을 모르면 누가 하냐’ 제가 자주 하는 말이에요.
많은 이주노동단체들이 도와주는 자의 지위에 있는 편이지요?
_ 그래요. 이제는 많은 조직들이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에 왔어요. 지원 조직의 90%가 교회인데 평등, 인권 등 다른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본인의 삶을 극복할 기획을 해야죠. 목사의 시선, 자선의 시선으로 상담하는 게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경험을 만들어야 해요. 개인의 경험과 집단의 경험을 사례로 남기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에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_ 제가 참 우아하고 교양 있는 미디어, 문화 교육을 꿈꿨는데, 문화의 이질성을 서로 알고 가르쳐주고, 문화역량이 있는 다큐후배들을 발굴하고 문제제기 하는…. 지금은 급한 사건들 상담하랴 문제 해결하랴 본래 하고 싶었던 건 당분간 보류한 상태예요.
활동가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구인의 정류장>은 하반기를 어떻게 날 것인지 오늘 밤 회의가 있는데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할 것인지… 상반기 단체등록이 목표였거든요. 수입을 확보해서 전체 예산의 20%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쓸 곳을 정하고 했으면 좋겠네요. 지금 은 냉장고가 고장 났고, 밥 먹는 상다리가 부러졌어요(웃음).
음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요?
_ 즐겁게 해야죠, 내 마음이 후회할 수도 있는데. 돈을 내면 마음도 가잖아요. 옛날 친구들 만나면 후원하라고 명함을 내밀죠. 처음에는 못했는데. 그러면 대학교 때 친구들은 ‘정부 지원이이나 제도’ 이런 얘기 하면서 말이 많아져요. 오히려 중학교 때 친구들, 시골 친구들은 ‘반갑다 얼굴 그대로구나’ 하면서 별 말없이 후원을 하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집단이 커지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규율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정비할 게 많아지네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카메라는 못 하고 돈 모을 궁리를 하고 있네요. ‘종교를 만들어라’ 그러면 돈이 모인다고 농담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지구인의 정류장 후원을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구인의 정류장 상임역무원 김이찬입니다.
2009년 ‘이주노동자들의 영상공부방’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 ‘노동인권상담, 긴급피난자의 임시체류, 생활일기비디오 만들기, 기획영화 제작교실, 라디오교실, 그림이 있는 한국어교실, 북새통(인근 연극단)과 함께 하는 연극교실 등으로 확장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활동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노동현장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인권침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소극적이고 때론 비우호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고 사회관계에 보다 깊이 성찰할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의 한계가 있지만 노동자에게 효과적인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를 느낍니다.
요즘엔 2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정류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식사도 많이 합니다. 한 달에 쌀 두가마를 소모합니다. 쌀 보내주세요.
상시적으로 노동자들은 고용지원센터, 노동부감독관, 고용주 등과 때론 협의하며 항의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지 위해 할 일을 경험 속에서 배웁니다. 가능하다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넘어서도록 유도합니다.
매주 2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노동상담을 하기위해, 다른 2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그냥 들르러’ 다른 2~5명의 노동자가 동료를 도우러, 체류하거나 방문하거나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정류장 블로그 : http://ichan.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