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들어가 보니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가 정치라 한다. 정치는 나누는 것, 분배의 문제라는 위키피디아의 정의대로라면 정치얘기가 아무리 재미있고 술자리 안주거리가 많아져도, 이 나라 정치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2011년의 키워드와도 같았던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청년실업, 경제위기, 99% 대 1% 시위, 한미FTA 까지 떠올려보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와 관련이 없는 이슈가 없다. 그런 면에서 2011년의 대중은 어느 때보다 정치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비추어보면 2011년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언어를 갖지 못하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 아치에 올라갔을 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고 눈물 흘릴 때, 불법이라는 법관의 판결을 조롱하며 비정규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현대자동차 자본에 대하여 정치적 언어로 말하지 못하였다.
공장 울타리 안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문제이다, 나에게 일어났듯이 너에게 일어날 일이다. 너의 고통을 내가 알듯이 나의 고통에 공감해 달라. 그러나 노동운동은 못하였다. 배타적 지지 관계에 있는 진보정당이 이를 하였는가. 농성이 일어나면 뛰어가서 앞줄에 앉아있고, 기자들 앞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진보정당의 노동운동 지원방식인가.
노동을 모르는 자들, 관심 없는 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정치라면 플래카드 앞에 서는 일보다 나를 모르는 곳, 진보정당을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정치일 것이다.
노동으로 향하는 정치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연대이고 공감일지라도 타인에 대한 연대와 공감이 정치의식의 시작일 테니 2011년의 SNS 야말로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막다른 삶의 고비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정서적 지원을 하자는 운동이 결실을 맺어 치유센터를 세웠다 한다.
이 지원활동이 있기 전에 노동운동 내부의 조직으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심리치유활동을 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지친 바 있다. 성공과 실패는 어디서 갈리는가, 노동운동의 조직과 언어, SNS의 언어와 네트워크 사이에 무엇이 놓여있어 결실의 차이를 보였는가 짚어볼 일이다.
현대자동차 자본이 2011년 차를 *0000대 팔아치우고 연말 성과급 잔치를 벌일 때, 같이 차를 만들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하청비정규노동자들의 존재를 누가 떠들어줄까. 현대 자본을 괴롭게 하고 망신 주는 것은 주가 해주는가. 아무도 못하였다. 당사자들이 꿈틀거리고 부르짖고 있지만 울림으로 연대로 되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 조직은 조직내부 정치와 의식을 치르느라 바쁘고, SNS에서도 너무 급진적으로 나가면 흥미도 재미도 잃고 찬바람만 날릴 것인가.
연합을 해도 좋다. 통합을 해도 좋다. 홀로 남겠다 하여도 좋다. 그러나 계급의 정치라야 사회경제적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이 아닌가. 계급 간 연합이고 계급 간 타협이고 계급의 쟁투이다. 어정쩡하게 섞어 놓으면 내편도 잃고 네 편도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진보정당이 누구의 편인지 대중들은 지켜본다. 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봐도 실패하여 반역이 되었건, 성공하여 정권을 잡았건 바닥에서 부글거리고 끓고 있는 민중의 원한, 민중의 꿈을 잡아채어 자기 것으로 하는 자가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가.
복지. 2011년 복지담론은 부상하는 단계를 넘어 대세가 되었고, 흐름이 되었다. 복지 자체를 궁극의 사회체제로 격상하는 세력이든, 생산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폄훼하는 세력이든 복지가 대세가 되었고,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회제도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때이다. 개인이 생존하고자 몸부림쳐도 국가가 나서서 벼랑으로 몰고 자본이 나서서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공포체험이 뉴스거리도 안 되는 체제이기 때문인 걸까. 지친 대중들이 자기개발과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내려놓고자 하는가.
분명한 것은 복지제도의 작은 변화조차 그것이 결핍되었던 이들에게는 보호막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태껏 본 복지담론, 복지논쟁은 선거 출마자들, 담론생산자들이 주로 제기해온 것이다. 허전한 이유는 노동운동의 복지담론, 복지논쟁이 없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고용을 승계해주고 싶어서 자본과 협약을 맺는 아버지의 마음으로는 노동운동의 복지담론을 만들 수 없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줄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 한 부모로 아이를 키우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비정규직노동자의 처지에서라야 복지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기지 않겠는가. 일하는 사람 안에서도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위하려면 노동운동 밑돌을 바닥부터 다시 깔아야 함을 알아야지만 우리가 얕보는 복지가 다수의 노동자에게 중요한 문제임도 깨닫게 되겠다. 노조 가입한 노동자가 백명 중 열이 안 되는 지금은 어려운 주문일 수 있겠다.
나 노조원이요, 나 노동자요 하는 이들이 숫적으로 우세해야 계급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아니면 대표성을 갖기 위해 가장 정치적인 의제를 내야 하는데.
비정규, 아르바이트, 하청, 백수, 실업자, 실업계고교생, 다수 여성노동자가 조합원이 된다면 복지문제를 아니 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인가 2011년에 들은 가장 정치적인 말 가운데 하나, “모든 사업 다 중단하고 조직, 오로지 조직 하나만 살려서 해야 승부를 볼 수 있다” 는 전직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고개를 돌려 여기 좁디 좁은 내부를 본다. 산재보험을 개혁하자고 외쳐왔지만 변변한 성과가 없다. 이유를 채 모르는 것인가. 개혁이라고 떠벌려놓고 직업병 인정기준 매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 아닌가.
정치는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걸고 바꾸고자 함인데, 노동조합 안의 구성원에게 걸린 문제와 전체 노동자에게 시급한 문제를 구별하지 못함이 이유이다. 산재보험이 무언지도 모르는 이가 일 닥치자 여기저기 읍소하러 다녀야 하는 게 지금의 썩은 보험제도다.
산재보험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험이 찾아올 수 있도록 관료주의적, 기계적 장벽 일체를 없애는 일과 직업병 기준. 이 가운데 무엇이 우선한 정치적 과제이겠는가.
2011년의 정치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노동자의 소리가 없었다는 것. 지난 대선에서 여당의 대통령후보였던 이가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을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할 때 많은 이들이 심드렁, 팔짱기고 냉소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게 정치가의 모양 아닌가. 변할 수 있다. 시절이 변하면 정치하는 사람도 변화를 받아들이면 된다. 더 가난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기획은 실패하였다고 봐야 할까. 노동운동이 특정정당에 배타적지지를 고수하는 것이 죽은 명분을 붙잡고 살려보겠다고 하는 자기위안은 아닌가.
90%의 노동자. 노동조합이 없고, 노동조합을 모르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진보정당에 관심이 없어도 진보정당은 그들에게 가야 하는데.
낮에 공장지역을 돌다 보면 철문에 기대어 담배를 문 젊은 노동자, 불 꺼진 공장에 앉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젊은 노동자가 있다. 노동 상담 찌라시 한 장에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본다. 글 모르는 사람, 안 배운 사람도 그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이 정치의 힘이요, 정치의 필요일 것이다. 많이 만나야 한다. 더 가난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생계의 최전선에서 흔들려도 지키는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당신이 밀려나지 않기에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이라 말 해주어야 한다. 정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또는 정치이야기로부터는. 세상 더 나아져야 한다. 더 나누어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커다란 쓰나미를 동반하면서 그 지역에 위치하는 후쿠시마 다이이치 핵발전소에 타격을 가했다. 결과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국제원자력사상평가척도(INES) 레벨 7에 해당하는 사고로 첼르노빌 사고와 같은 '심각한 사고'가 되었다.
핵발전소 건물이 수소 폭발로 파괴돼 대량으로 방사성물질이 대기 중에 방출되었다. 3월 15일에는 시간 당 2000조 벡렐(Bq)*의 방사성물질이 날아갔다.
바람을 탄 방사선물질은 정부가 대피시킨 변경 20Km 지역은 넘어 250Km 지점까지 날아갔다. 방사성물질은 정부가 대피계획을 낸 동심원상으로 확산하지 않고 지형과 풍향에 따라 확산하면서 국소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을 만들었다. 핵발전소에서 북서방향에 24Km 지점에서는 2012년 3월 11일까지 추정하는 적산선량이 313.9mSv를 기록하는 Hot spot이 출현했다.(사진1,2 참조)
일본국립환경연구소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핵발전소에서 방출된 요오드131의 13%, 세슘137의 22%가 일본 육지에 침착하고 나머지는 바다로 가든지 모델 계산 영역 외에 수송된 것으로 추계했다. 바다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바다 생물을 오염시킨다. 4월 18일 핵발전소 앞바다 30Km 지점에서 잡은 까나리에서 일본 정부가 기준으로 하고 있는 1Kg당 500Bq의 29배가 되는 세슘을 검출했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먹이사슬을 통해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것은 이미 미나마타병이 가르친 교훈이다.
해양생물 체내에서 농축된 방사성물질이 그 생물을 먹는 인간을 내부 피폭하는 것이다.
대지진에도 큰 쓰나미에도 안전하다고 주장해 온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와 핵산업에 의거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안전 신화'가 무너지는 사건이 3.11이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사능오염은 일본 땅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켰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태아, 유아동, 청소년의 10년 후, 20년 후를 어찌할 지 걱정하고 있다.
* 벡렐(Bq) : 상사성물질의 방사능량. 1초에 원자 하나가 분괴하면 1Bq. 담뱃재 1g=5.9Bq.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식품위생법에 의한 잠정적 규제치로 방사성 세슘은 식수 200Bq/Kg(10Bq/Kg), 우유 200Bq/Kg(50Bq/Kg), (신설 유아용식품 50Bq/Kg), 채소, 곡류, 고기, 계란 등 500Bq/Kg(100Bq/Kg)[()내는 2011.12.26 신기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시버트(Sv)로 표기한다.
2. 핵발전소 사고 수습 작업 노동자 피폭과 어린이 피폭
일본 정부는 사고 4일 후인 3월 15일 법령 개정을 하고 긴급 작업 때 피폭 한도를 100mSv에서 250mSv에 인상했다.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2007년 권고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ICRP 권고는 일년 선량 한도를 넘는 긴급 작업에 종사하는 자는 지원자로 해야 하고 발생하는 가능성이 있는 건강 위험성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긴급 업무에 종사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태는 다르다. 지진 피해 지역의 “붕괴 건물 처리 일자리” 라는 구인에 응모한 덤프 운전기사가 알고 보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5,6호기 앞 물 탱크 급수 작업에 종사하는 일자리였다는 것은 한 사례이다. 전력업체를 정상으로 원자로제작업체, 건설전문업체가 관여하면서 5차, 6차, 7차까지의 하도급 구조가 있는 것이 핵발전소다. 하청노동자에게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안 가면 평생 일을 안 준다’ 하는 식으로 협박하여 노동자를 모집하는 상태이며 안전교육이나 본인의 의사 확인은 없는 상황에서 피폭노동이 이루어졌다. 3월에 투입된 인력 3,700명 가운데 개인 피폭량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려고 하다가 30명의 노동자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사고 때문에 발생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핵발전소에 관련하는 정기점검, 사고 대응 때 항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 왔다. 전국 핵발전소를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하도급구조 말단에 위치하는 영세업체에는 폭력조직이 개입하면서 청소년을 포함해 시회적 약자가 핵발전소에 투입된 사실을, 깨끗하고 안전한 핵발전소의 얼굴로 포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동안 몇 개의 르포 이외는 언론보도가 되지 않았다. 전력업체가 막대한 광고비로 언론을 매수한 결과이기도 한다.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투입된 노동자에 대한 국가적인 추적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 긴급 작업에서 노동자 피폭선량이 상향 조정되면서 일반인의 한도선량도 올라갔다. 일본 정부는 연간선량이 20mSv에 이르는 지역 주민에 대해 강제 대피를 시켰다. 원래 1mSv가 일반인이 제한되는 피폭량이었는데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피폭되는 한도인 20mSv가 적용되었다. 이 조건은 방사선 영향을 미치기 쉬운 어린이에게도 적용하게 되며, 후쿠시마 학부모들의 강한 항의를 불렀다.
학교 운동장 등 선량이 높은 장소에 대해서도 제염(방사선물질 제거) 등 대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부과학성의 대응이었다. 이 결정에 원자력위원회 위원이 항의해서 사임하는 일화까지 생겨 결국 하교 등 어린이 관련 시설에서는 선량을 1mSv로 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이러한 외부 피폭뿐만 아니라 내부 피폭 문제가 있다. 음식물을 통해 몸 속에 들어온 방사선물질에 의한 피폭은 그 방사능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지방자치단체가 학교 급식에 대한 방사능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3월 11일을 경계로 세계가 변했다” 오래 전부터 반핵운동을 해 온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 조교의 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연간 선량 20mSv까지는 적국적인 대책 없이 시민들의 피폭을 방치하고 있다. 이 선량 수준은 방사선 관리구역에 해당한다. 이 관리구역 내에서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곳이다. 후쿠시마 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에 떨어진 방사성물질은 빗물을 타고 하천에 흘러가고 오염을 확산한다. 유통된 음식물에 대한 안전성은 불확실하다.
3. 다시 노동자 피폭에 대하여
지진으로 의한 붕괴된 건물 등 제거작업을 통해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방사선물질에 오염이 된 쓰레기들이다. 또 빗물로 흘러나간 방사선물질이 하수도에 들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물 재생센터에서는 하수도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흙을 소각하고 시멘트나 비료로 재이용해 왔다. 사고 이후 이 정화시설에서 나온 소각된 잿더미에서 53,200Bq/Kg의 세슘이 검출되었다. 원자력대책본부는 방사성 세슘이 8,000Bq/Kg 이하라면 매립 처분을 할 수 있고, 10만Bq 이하는 주택지와 거리를 두고 관리식 처분을 하고, 10만Bq 초과하는 쓰레기는 콘크리트 등 차폐 시설에 엄중 보관하는 방침을 세우었다.
지금까지 상상도 안 했던 노동 영역이 피폭 노동이 되고 있다. 하수도, 쓰레기 소각장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운반 노동자! 청소노동자가 피폭하는 경우도 예측된다. 건물에서 빗물이 집중하는 곳에 있는 진흙, 도랑 속 진흙에서 고농도 방사선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서쪽 200Km 지점에 있는 주유소 세차장 도랑에서 9만Bq/Kg 세슘이 검출된 바 있다.
농림업 종사자의 건강 피해도 우려된다. 후쿠시마현 북부지역의 논은 대부분 방사선 관리구역이다. 올해 수확된 쌀에서 500Bq/Kg을 초과하는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2012년은 100Bq/Kg을 새로운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대상 농가는 후쿠시마현의 18%, 11,800세대가 된다.
앞으로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곳에 대한 제거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건강 관리와 제거 물질에 대한 보관 관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월계동 방사선 도로 포장이 문제가 되었다. 무방비로 제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제거 된 아스팔트 처리도 어렵다.
우리는 지금 핵 오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환기하면서 글을 마친다.
사진1,2는 2011.4.13-17 필자도 참여한 한일 공동 후쿠시마 조사단이 실시한 현장 조사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1 : 핵발전소에서 북서 33Km. 후쿠시마현 이타테무라 나가 도로로 가는 고개.
지상 1m 공강선량 22.08μSv. 1년간 누적 추정 적산선량 91.1mSv.
사진2 : hot spot. 핵발전소까지 20Km 직전 지점 도로 옆에 “후쿠시마현‘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땅에 가까운 지점이고 풀들이 많아 떨어진 방사성물질에서 나온 방사선량이 많은 지점이다. 간이선량계는 92.05μSv를 나타냈다.
포드 기원 632년의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담당할 역할이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다. 델타 계급이나 입실론 계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단순 노동을 반복하다 죽게 된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적 능력 따위는 필요 없다. 생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뇌 교육이 강조된다. 각 계급이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다른 계급의 역할이나 지위를 넘보지 않도록. 이 사회에서는 '소마'라는 환각제가 배급된다.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스트레스를 소마 하나로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신이다. 시민들이 모여서 소마에 취해 포드를 찬양한다. 포드력이라는 새로운 달력이 사용된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그린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학창시절에는 이 책을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느꼈던 것 같다. 내 눈에 세상과 미래는 모든 가능성이 열린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으니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지금 이 책이 무서운 예언을 담고 있는 공포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쓴 시기는 1930년대지만 2011년 대한민국과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미래를 의지와 능력만으로 그려갈 수 있을까. ‘간판’과 ‘스펙’으로 직업과 연봉, 배우자까지도 결정되는 대한민국에서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가. 2011년 대한민국에도 어떤 이들은 발가락 하나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그들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600만 비정규 노동자와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그야말로 ‘생존’하고 있는 160만 기초생활수급자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부유하고 있는 110만 청년 실업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럼에도 이 사회는 돌아간다. 알파 플러스 계급1)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덕분이다. 올 한해 알파 플러스는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였다.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교리에 충실하기 위해. 멋진 신세계에서 포드가 만물 위에 서 있는 초월적 존재인 것처럼 대한민국은 시장과 신자유주의가 진리가 되어, 노동조합은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요인이고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2011년 시장을 굳건히 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빼들었다. 2010년 타임오프제 시행에 뒤이은 복수노조의 허용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복수노조라는 예쁜 포장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칼날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0년 이후 타임오프제에 휘청거리던 노동조합 운동은 2011년 교섭창구 단일화에 치명상을 입고 있다. 어떤 노동조합은 어용노조에 밀려 교섭권을 상실하고 어떤 노동조합은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조합을 짓밟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합원 뺏기 싸움이 벌어지거나 노조 사이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이이제이(以夷制夷)2)라 했던가. 알파 플러스가 날린 칼날이 정확히 델타와 입실론의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2011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도 힘을 기울였다. 한진 중공업 투쟁, 유성기업 파업,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에서 보여준 정부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노동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물대포를 쏟아 부었고,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철탑을 올랐다. 덕분에 파업, 농성일수에 있어서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모습이다. 2010년 12월 시작된 전북고속 파업은 1년을 넘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2011년 1월 시작된 대우자동차 판매지회의 점거 농성이 뒤를 따르고 있다. 309일간 크레인 위에서 버텼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희망버스 덕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재능교육노동자들의 투쟁은 1,500일을 앞두고 있다. 2012년 새해에도 전국 52곳의 사업장에서는 농성과 파업이 현재 진행형이다.
억울한 죽음도 잇따랐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19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이마트 사망 사고부터 12월의 인천공항철도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밀려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언론도 국회도 검찰도 침묵했다. 언론은 노동자의 불법행위를 단죄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국회는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검찰도 진보정당에 가입한 공무원, 교사 색출하느라 바빴으니 시간이 부족했을 터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보면서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술을 권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성인들이 1년간 소주 70병, 맥주 100병을 마셨다고 한다. 소주 한잔만 마셔도 술기운이 오르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이를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델타나 입실론이 소마에 취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듯 우리는 술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일 듯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행복이 넘쳐날 것만 같던 21세기였는데 이 꼴이라니.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한진중공업의 문을 희망버스로 열어 젖혔고, 반올림 투쟁을 통해 거대 자본을 상대로 산재 인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지지율 5%의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켰으며, SNS를 통해 알파 플러스의 강력한 무기인 기성 언론을 무력화시키기도 하였다. 봉도사(정봉주)의 구속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나는 꼼수다’ 열풍, 놀랍지 아니한가. 청년들이 청년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희망이다.
이 같은 성과와 의미에 대해서 설왕설래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굳건할 것만 같았던 알파 플러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희망버스를 움직였던 시인, 영화배우, 자영업자, 학생, 주부, 노동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능케 할 주역이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람시의 ‘서발턴(Subaltern)’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 노동자 계급이 일관되고 통일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진실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1)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다양한 계급들이 존재하는데, 알파, 감마, 델타, 입실론 등으로 나뉜다. 알파 계급은 그야말로 최상의 엘리트 계급으로서, 이는 다시 플러스, 마이너스 등으로 나뉜다.
2)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한다는 의미의 4자 성어
1. 대리운전 노동자의 현황과 업무형태
대리운전업은 1998년경부터 등장하여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초창기에는 매우 영세한 규모의 대리운전회사 위주였으나 2003년 이후 시장규모가 확대되어 현재는 수천 명의 기사를 둔 대리운전회사가 등장하였다. 2008년 현재 대리운전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8만-10만 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대리운전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리운전회사는 사업자 등록만으로 영업을 할 수 있어 시장 진입이 수월하였고, 대리운전자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자들이 양산되면서 자동차면허증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일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규제 없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의 근로조건 악화, 대리운전 사업주간 경쟁으로 인한 가격 덤핑으로 업종의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대개 오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여 새벽 4시에서 6시 정도까지 근무를 한다. 대리운전업체와는 ‘도급계약’ 또는 ‘정보이용계약’ 등을 체결하고 PDA를 통해 제공된 콜을 먼저 잡는 사람이 오더를 수주하는 형식으로 일을 한다. 대리운전노동자는 회사와 계약한대로 수입금액의 20-30%를 정률제로 지불하며(일부에서는 정액제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음), 그 밖에 콜 프로그램 사용료, 자동차보험료, PDA 요금료, 전화통화료, 이동 시 교통비 등도 지출해야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평균 4-8건의 대리운전을 소화하면서 월평균 100-1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현재 근로자로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리운전 노동자가 본인 의지에 따라 다양한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고 근무를 할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이나 장소도 자유로운 등 통상적인 노동자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리운전회사가 프로그램에서 오더보기 금지(락)를 걸면 일을 할 수 없는 등 근로종속성도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자영업자들과도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다.
2. 대리운전 노동자의 건강문제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수행 중에 재해를 경험한 사람은 21.6%로 나타났고 재해의 형태는 교통사고(45.2%), 타박상/삐임(39.8%), 기타(14.5%), 골절(14.0%) 순으로 사고와 관련된 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고 및 질병에 대한 치료비 처리 방법은 건강보험처리 27.1%, 가입된 민간 상해보험처리 25.8%, 자동차보험 처리 25.3% 순으로 나타났다.
위의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리운전 노동자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강문제는 교통사고이다. 따라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보험사들이 대리운전보험의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의 보험가입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영세 대리운전회사에 소속된 대리운전 노동자는 보험가입이 사실상 어려워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현실이다. 또한 대리운전보험 가입 관리는 회사가 대행을 통해 일괄적으로 하고 있는데 일부 업체의 경우 보험료 대행 및 수납 과정에서 이행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리운전보험은 그 구성에 따라 대인, 대물 등 피해자에 대해서 보상하는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리운전 노동자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서 보상하는 자손은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있어 대리운전 중 다쳐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3. 대리운전 노동자의 보호방안
현재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상당 부분 근본적으로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덤핑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대리운전업체들은 대리운전 기사들을 다량 모집하면서 수수료를 여러 명에게 받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받을 수 있는 콜 수가 적어지면서 수입이 악화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리운전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며, 가격 덤핑을 막을 수 있는 표준요금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들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가는 업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게 되면 아예 대리운전 노동자로도 진입을 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리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을 유도하자는 논의가 일부 있었고, 여기에는 몇 가지 논쟁점이 존재한다. 우선 산재보험 가입 적용 방안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그 방식에 따라 대리운전 종사자를 강제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당연적용 방안과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임의가입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보장 측면에서는 당연적용 방안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상당수가 신용불량 상태로 자신들의 소득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제가입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종은의 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노동자 중 55.3%가 임의가입을 원하고 있었고, 특히 대리운전을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는 경우 임의가입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다음으로 보험료 산출 및 보상기준에 대한 논란이다. 대리운전자는 일정한 임금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콜 획득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소득을 추계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대리운전업체 및 프로그램사가 콜 획득수를 축소해서 보고하는 (사업주 측의)도덕적 해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리운전 제공시간에 대한 구간별 고시임금을 적용하거나 대리운전 노동자 평균임금을 산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보험료부담 주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기존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업주가 1/2씩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만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업주와 노동자가 1/2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적용제외 신청을 적용하는 경우 회사가 PDA를 통해 업무 통제를 하고 금지(락)를 걸어 업무를 못 하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른 업종보다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많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하나의 회사가 아닌 중복된 업체에 등록되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보험료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 하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 간병노동자의 고용현황
간병노동 종사자의 고용형태는 직접고용, 간접고용, 특수고용 형태로 구분된다. 일부 ‘노인전문요양원’의 경우는 간병노동 종사자가 직접 고용되어 있어서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직접고용이 아닌 경우는 파견업체 또는 소개업소를 통하여 간병노동이 이루어진다. 일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은 파견업체를 통해 간병근로자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 다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의 경우는 간병인소개소를 통해 간병인력을 공급받고 있다. 또한 간병인 소개소(센터)의 폐해를 경험한 간병노동자들이 자생적인 자조회를 만들어 환자들과 간병인들과 직접 연결하기도 한다.
2. 간병노동의 현황 및 계약관계
가. 병원/시설과의 계약관계
간병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 등에서 일부 직접고용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 역시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고용이 아닌 경우는 파견업체 또는 소개업소를 통하여 간병인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은 파견업체를 통해 간병인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 대부분의 병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의 경우에는 간병인 소개소를 통해 간병인력을 공급받고 있다.
간병인은 의료기관 또는 간병인 협회와 구두 혹은 특별한 계약없이 일을 시작하며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갱신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간병인협회와 병원 사이에는 협약을 통해 간병인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근로내용(복무규정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간병인의 의사 및 동의 절차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간병인의 급여(간병료)에 대해서도 1일 일반환자 5만5천원, 중환자 6만5천원으로 병원과 협회 간의 협약에서 정하고 있다.
간병인 노동시장에서의 계약관행은 간병인협회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며, 계약시점은 대체적으로 협회가 병원으로부터 요청 받은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을 시작할 때, 특별히 병원과 간병인 사이에 협의하는 사항은 없으며 환자에 대한 정보는 병원에 가서야 알 수 있고, 휴일·휴가, 계약해지 및 갱신 등 주요한 계약조건에 대한 협의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나. 간병인 협회와의 계약 관계
간병인협회(소개소)가 간병인에게 간병업무를 알선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개별 간병인협회(소개소)가 간병인들을 회원제로 운영 및 관리하고 있으며 일정액의 가입비와 월 30,000원~70,000원의 회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 환자와의 계약 관계
간병인은 환자 또는 환자보호자와 구두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특별한 계약체결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간병료 및 간병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복무에 관한 사항은 대체로 협회와 병원(시설)간에 체결된 협약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간병인은 동 협약에서 정한 간병료를 초과하여 요구할 수 없으므로 간병인과 환자 또는 환자보호자간에 간병료 및 기타 계약조건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으며, 다만 간병의 지속여부에 대해서는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 안전과 건강
간병인은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과정, 누워있는 환자를 체위변환 시키는 과정에서의 척추질환 등의 허리통증, 디스크, 손목 삐임, 안과계통 질환(안구건조증 등),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위장병, 24시간 간병으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인한 질병, 환자로부터의 감염(결핵, 피부병 등), 환자 또는 보호자로부터의 비인격적인 대우(폭언, 폭행 등)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4. 간병인의 산재보험 적용 및 산재 예방관리 체계 방안
가. 의료시설에서 직접 고용하는 형태 - 근로자성 부여
- 의료시설에서 직접 고용하고 있는 형태로 근로기준법 및 산재법, 산업안전보건 법 등 노동관계법이 전면 적용되고 있다.
- 간병노동자 보호에 있어 가장 효과적이며, 심지어 노동조합 가입도 가능하므로 단체협약 체결도 가능하나, 의료시설에서 4대보험료 및 퇴직금, 관리비용등의 이유로 직고용을 꺼리고 있어 소수에 불과하다.
- 노동관계법이 전면 적용되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에 편입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나. 근로자파견제도로 통합하는 방안
- 간병노동은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이 가능한 ‘개인보호 업무’에 해당되어 합법 파견이 가능한 사업에 속한다.
- 의료기관과 간병인 파견회사와의 ‘근로자 파견계약’에 의해 간병인을 의료기관에 파견하고, 파견 간병인은 의료기관의 업무지시(주로 간호사)에 따라 간병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 주로 1:1 개인간병보다는 다인간병 또는 병실별 간병의 형태로 파견이 가능할 것을 보인다.
- 파견법이 적용되므로 간병인의 안전보건체계는 사용사업주인 의료기관의 안전보건 체계에 편입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 그러나 의료기관에서 2년 이상 근로할 경우 직접 고용의무가 발생하므로 파견 간병인의 고용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호하는 방안
- 산재법상 특례조항으로 간병노동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간주하여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할 수 있다.
- 다만 우려할 수 있는 문제점은
1) 근로기준법상 간병인은 근로자에 해당되나 ‘가사사용인’에 해당되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근로자’인 간병인을 근로자성인 인정되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의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가사사용인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으나, 현실적인 개정가능성은 낮은 수준이다.
2) 보험료 부담의 문제 - 산재보험료는 원칙적으로 사업주가 부담해야하는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아 보험료를 간병인과 사업주(의료기관 or 소개업체)가 각 50%를 부담할지의 문제가 발생하며, 실질적으로 사업주 부담분 50%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3) 보험료 산정 기준의 문제 - 간병노동자 개인별 소득을 근거로 보험료를 산정할지, 고시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할지의 문제가 있다.
-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안전보건의 문제 - 산재보험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조항을 두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및 고려가 없다. 산안법은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것인데,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사업주의 안전보건체계 내로 포괄할 경우 사업주의 반발이 예상된다.
- 그러나 장소적(시설) 종속성이 강한 간병인이나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하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하더라도 산안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택배기사의 고용 형태
이호근 등(2008, 235~273쪽) 등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업무는 '배송'과 '집하'로 나뉜다. '배송'은 택배기사가 택배회사에서 담당 구역의 고객에게 택배물품을 배달하는 업무이고, '집하'는 이와 반대로 택배기사가 담당 구역의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택배물품을 배달을 위하여 택배회사로 운송하는 업무를 말한다.
택배기사의 근로 계약 또는 사용 계약 관계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택배기사의 업무계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택배회사의 구조와 택배차량의 소유주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먼저, 택배회사는 본사와 영업소로 구성되어 있다. 본사는 택배회사가 직접 직영하지만, 영업소는 특정 지역의 영업소를 담당하도록 개인사업장인 영업소장과 계약을 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택배회사의 마크를 달고 있더라도, 택배기사는 본사 직영 소속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본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영업소 소속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영업소장이 택배기사 업무를 겸임하는 경우도 있다.
택배차량은 택배기사 개인이 직접 소유한 차량인 경우도 있고, 택배본사나 영업소장이 소유한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도 있으나, 화물운송용역업체(또는 차량지입전문업자)가 "차량위수탁관리계약"에 따라 택배회사에 공급하는 지입차량을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택배기사는 택배차량을 택배회사에 공급하는 화물운송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때 택배기사는 근로자로서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고, 신분상 개인사업자로서 "용역계약"을 맺게 된다. 이에 따라 택배기사는 실제로는 택배 본사나 영업소장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지만, 위와 같은 계약 과정으로 인하여 택배 본사나 영업소장은 택배기사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또한, 화물운송용역업체도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또한 근로기준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화물운송용역업체는 용역계약에 따라 정해진 용역료를 매월 택배기사에게 지급하고, 택배기사는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 (차량 유류비, 전화비, 식사비 등) 과 택배업무 중 발생하는 손해 (화물의 분실, 손상 등) 를 모두 부담한다.
택배기사가 근로자인지에 대한 판단에 대하여서는 회사 직영 차량을 운전하거나 영업소가 소유하고 있는 차량을 운전하는 택배기사는 근로자로 판단된다. 자신이 소유한 차량으로 영업소 소장과 계약에 의하여 택배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라도 택배박스당 수수료에서 급여부가세(10%)나 소득세(3.3%)를 차감하는 경우는 사실상 근로소득세를 영업소에서 차감하고 있으므로 근로자로 판단된다. 그러나 영업소에 소속된 택배기사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기사의 근무실태와 안전보건문제
이호근(2008, 235~273쪽) 등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일반적으로 오전 7시에 택배회사 지역센터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며, 일을 마감하는 시간은 오후 9시~11시 정도이며, 법정 공휴일은 쉰다고 하였다. 이승욱 등(2006, 143~153쪽)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64.1시간, 연평균 근로소득은 56.5%가 2,400만원~3,599만원이라고 하였다. 이호근 등(2008, 235~273쪽)이 수행한 택배기사 면담조사에 따르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업무수행에 드는 비용과 손해 발생시 보상 비용을 소득에서 제하기 때문에 택배기사의 실제 소득은 한 달 평균 180만원 정도라고 하였다. 산재 발생시 처리방법은 본인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한다고 하였다.
이호근(2008) 등에 따르면, 택배업무는 1일 평균 화물 100박스를 취급하고 있는데, 이중 15% 정도는 30~40kg의 중량물이라고 한다. 이들 중량물을 상, 하차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주택이나 빌라의 경우 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므로, 허리나 무릎 등의 통증 등 불편한 증상과 근골격계질환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또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 중에 밑으로 추락하여 다치는 사례, 본사에 화물을 집하하는 경우 컨베이어 벨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분이 협착하여 다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업무의 기본 특성인 택배차량 운전에 따른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슨 이유로든 아파서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경우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여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여 대신 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외부에서 구하게 된다. 이 때 하루에 비용이 20만원에서 25만원이 소요되며, 실제 소득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손해라고 한다. 영업소 소속으로 근로자로 인정될 여지가 있는 사례에서도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에 전혀 가입되어 있지 않아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택배기사의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가능한 해결책
이호근 등(2008, 478쪽)은 택배기사들에 대한 보호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시하였다.
택배기사들은 현재 택배수수료가 낮은 것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건 당 수수료가 낮으므로 일정한 규모의 수입을 위해서는 1인이 배송해야 하는 물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근무시간의 증가와 피로도의 증가는 근골격계질환, 추락, 협착사고, 교통사고 등의 산재발생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택배수수료가 낮은 이유는 최초화주로부터 최종택배회사 선정까지 여러 단계의 중간알선업체를 거치면서 단가가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어, 이에 대한 문제점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택배기사 직업안전보건 개선을 위한 제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택배기사의 업무는 거의 동일하지만 택배회사본사, 영업소, 화물용역업체 등 어디와 계약을 맺는지 여부에 따라 또한 택배차량의 소유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한다. 택배기사의 경우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거나, 인정받을 여지가 있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화물용역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다수의 택배기사는 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택배기사의 이해관계를 정부와 사용자 측에 요구할 수 있는 대표 협의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점도 불리하다.
또한 택배기사의 고용관계와 근무형태에 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도 부족한 현실이다. 택배기사의 직업안전보건 개선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실태조사의 필요성이 크다. 향후 실태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택배기사의 전체 규모 추정, 근로계약관계의 종류와 비율, 사회보험 가입률, 안전보건교육 이수율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더불어 주로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선진국들에서는 이러한 특수고용직의 직업안전보건개선을 위한 대책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조사가 직업안전보건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택배기사의 직업안전보건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안전교육 등 예방조치의 강화만으로는 택배기사들의 호응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선, 4대사회보험 가입율 향상 등의 택배기사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먼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하여 업무가 힘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우선순위도 높고, 필요성도 높기 때문이다.
산재보험 가입율의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 본사 직영이나 영업소에 소속된 택배기사와 같이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택배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산재보험가입율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덧붙여 화물용역회사와 용역계약을 맺는 택배기사의 경우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의 특수고용직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처럼, 산재보험료를 택배기사가 일부 부담해야 하겠으나, 계약의 당사자인 용역회사와 더불어 실질적인 사용자인 택배회사도 동일한 비율로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의 특성을 감안하여 택배기사는 가능한 임의 가입방식이 아닌 의무 가입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직의 임금 수준이 매우 열악함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국가에서 산재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제도와 관련하여서는 택배기사의 안전보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실질적인 사용자인 택배회사에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택배기사가 영업소장과 계약을 하는 경우일지라도, 택배회사가 일차적인 안전보건교육과 적절한 근무시간 준수 등의 안전보건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영업소는 계약상으로는 자영업의 형태이나, 영세한 경우가 많고, 안전보건에 투여할 자원이 부족하여 영업소에서 시행하는 안전보건교육은 유명무실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영업소장은 택배회사가 책임지는 안전보건교육에 택배기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성심껏 조력할 의무가 있음을 택배회사와 영업소 사이에 의무적인 계약조건으로 넣어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의 안전보건대책은 이호근 등(2008)이 지적한 것처럼 표준임금제 등 운송단가 현실화방안 마련과
하도급관계 공정거래법 적용 등 실질적인 보호대책과 함께 진행되어야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므로, 사회복지, 안전, 직업보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대책을 협의하여야 한다. 또한, 정책의 당사자인 택배기사들의 참여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겠다.
참고문헌
윤조덕, 김영문, 이호근 등. 비정규직 근로자 산재보험 적용실태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에 대한 적용확대. 2004. 한국노동연구원
이승욱, 김영두, 김승호, 김종진. 특수고용직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보고서. 2006. (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가인권위원회.
이호근, 김영문, 윤조덕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실태 및 다단계구조 집단갈등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 2008. 노동부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어김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부끄러운 내 얼굴에 인사를 한다. 열광했던 그래서 그만큼 미움이 많았던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김근태 선생님, 그 분도 또 그렇게 떠나갔다.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은 호위호식하면서 살고 있는데, 인간의 권리를 온몸을 던져 구현하고자 했던 분들은 그 토록 아프고 서럽게 염원했던 그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속절없는 죽음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노동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불러보아도 가슴 한 복판에 뜨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동자, 평등한 인간이기를 간절하게 염원한 그 노동자도 오늘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잔인하고 탐욕으로 눈이 먼 이마트의 지하실에서 숨조차 쉴 수 없어 죽어간다. 자본을 위한 자본의 속도전에서 한 많은 육신이 땅에 떨어져 흩어진다. 육신의 한자락 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한 노동자가 사라진다. 철로에서 병실에서 그렇게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삼성. 어제도 오늘도 그 탐욕의 공간에서 노동자가 죽어간다. 이유도 모른 채.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역사가 반동으로 점철되고 노동의 권리, 인간의 권리가 짓밟히는 속절없는 세상을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나. 사람이 죽어가고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이 세상을 왜 우리는 참고만 있어야 하나.
분노하자. 손을 잡고 길을 나서자. 함께 가자. 냉소와 무관심, 의심과 불안감을 뚫고 전진하자.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길,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길, 노동자가 정치의 중심에 서는 길,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실현하는 길에 함께 가자.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냉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수와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한다. 혁신을 이야기한다. 또 다시 거짓 사탕발림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비정규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듯이 복지와 인권을 입에 올린다. 모두들 과거를 반성하고 마치 모든 잘못이 몇 몇 탐욕스러운 국제금융자본과 몇 몇 정치인에게만 있는 듯 비판한다. 하물며 그 공격에 신자유주의의 돌격대를 자임했던 여당조차 비판 대열에 합류한다.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정치도 비껴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노회한 술수인 것일까? 신자유주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주당의 변신은 더욱 놀랍다. 거침이 없다. 특정 세력은 진보정당에 합류하기조차 한다. 또 다시 진보세력이 흔들린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거대 자본에 맞선 전 세계 민중이 스스로 절대 다수임을 자각하고 연대를 선언한 시대, 그 시대를 위해 노동자의 죽음 앞에 절망 대신 희망을 품에 안고 목숨을 걸었던 진보세력은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의 역동적인 정치 공세에 또 다시 흔들린다.
오늘도 죽어가는 노동자, 그 곁에서 눈물을 머금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내딛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정치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정치가 희망을 향한 절체절명의 큰 도전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시대, 민주주의를 훼손해도 결코 알갱이를 없앨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알갱이는 정치를 넘어 경제민주화와 삶의 민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촛불로 희망버스로 확인한 시대, 우리는 그 시대가 노동자에게 절호의 기회이자 도전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어떻게 가능할까? 한 번도 정의가 정의의 순수한 모습으로 드러내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한 번도 진리가 진리의 결정체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를 분간하고 정의와 진리를 향해 연대운동을 진보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정치가 보수와 자유주의세력의 전유물이 되어 버리고 진보세력은 그 길을 찾지 못한 채 타협과 비타협, 자유주의와 혁명주의의 갈등구조에서 머뭇거리고 스스로를 닫힌 존재로 역사에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2012년 새해 벽두에 난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 조장하는 탐욕의 생산 장치와 구조가 멈추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건강권,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 더 나아가 생산과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치, 진보정당의 정치가 구현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힘찬 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2012년을 열었습니다. 마야문명에서는 2012년 12월 동짓날 세상이 끝나는 달력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 달력의 연유야 알 수 없어도 한반도와 지구사회 운명이 2012년에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선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올해는 변화의 큰 물결에 함께 노 저어 가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니 TV나 라디오에서 올해는 밝은 소식, 행복한 소식만 전하고 싶다, 착한 뉴스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군요. 그러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 연말에만 해도 철도선로를 고치던 하청노동자들이 죽었고, 조선소에서 배 만들던 하청노동자들이 죽었고, 자동차공장에서 밤샘노동을 하던 청소년이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망 또는 의식불명으로 사회면 뉴스를 채웠지만 행복하고 싶었던 보통사람들이었습니다. 착한 뉴스만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고투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어찌 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에서 삶을 지켜내야만 하는 이웃들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모르는 것일까요.
<노동과건강> 겨울호, 인터뷰기사가 많습니다.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람’ 이라고 합니다. 다달이 큰 차이도 없어 보이는 각종 여성월간지의 표지들,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얼굴표정을 클로즈업 하면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이유, 다 사람으로 사람이야기로 장사하는 문화상품들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노동과건강>에는 팔릴 만한 상품들이 즐비합니다.
1895일이라는 경이적인 나날을 자본과 정권, 사회적 시선에 맞서 싸워온 기륭 여성노동자의 이야기 속에서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의 주체였지만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 ‘주변부 노동자’로 호명되어 오는 여성노동운동의 맥박과 기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국적 자본에 맞서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을 매개로 전투를 벌여온 미국과 대만 두 나라 활동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분절되어 있던 관점이 통합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농민과 노동자 진료운동의 경험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나누어준 텐묘 선생의 이야기에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애정이 묻어납니다.
회원들이 쓴 생활 글들도 사랑스러운 소품들입니다.
<노동과건강> 의 버팀목인 연중기획과 특집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과 지난 해 우리에게 벌어진 문제 중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들을 담았습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의 재앙이 노동의 영역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읽다 보면 ‘반핵’ ‘탈핵’ 은 말 그대로 생존의 영역이라는 깨달음이 옵니다.
지난 한 해 원고료도 감사인사도 없는 <노동과건강>에 필자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디자이너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2012년에는 염치를 차려 감사인사만은 확실히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새 단장한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종이책으로 묻히기에는 아까운 필자님들의 옥고가 널리 퍼지도록 애쓰겠습니다.
2012년, 노동자의 정치가 살아나길 바라는 임준 집행위원장의 절절한 바람을 함께 읽어주시기를 권하면서 토론과 투쟁의 현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