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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정부동향
    노동건강연대 편집팀

    산업재해 많이 발생한 사업장 164곳 공개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5일 산업재해율이 높거나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 164곳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한 사업장은 ① 2010년도 산업재해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재해율을 넘는 사업장 중에서 상위 10% 사업장(상시 근로자 150명 이상인 사업장으로 재해자 2명 이하 제외): 135곳  ② 2010년도에 2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으로 사망만인율(연간 상시근로자 1만명 당 발생하는 사망자수로 환산한 수치)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사망만인율 이상인 사업장: 17곳  ③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최근 3년간 산업재해 발생 보고의무를 2회 이상 위반하여 사법조치 또는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업장: 6곳  ④ 2010년에 중대산업사고가 발생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법조치 또는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업장: 6곳 등이다.


    이에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이 산재 다발 업체로 공개되었고, SK에너지,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이 사망사고 다발 사업장으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번 집계는 하청 노동자 재해를 하청사업장으로 집계하여, 상대적으로 원청 사업장 노동자의 재해율 및 사망자수가 낮게 집계된 문제가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시정된 공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청소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모든 업종의 사업주는
    휴게실·샤워실 등 위생시설 설치에 협조해야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 8월 25일 입법예고했다. 사업을 도급하는 자는 업종과 관계없이 수급인에 소속된 근로자를 위해 위생시설(휴게실, 세면·목욕시설, 세탁시설, 탈의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도급하는 자가 갖춘 위생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편, 영업 비밀을 이유로 사용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근로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근로자 건강보호가 소홀히 되지 않도록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작성할 때에는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에 따른 영업비밀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화학물질의 구성성분 및 함유량을 반드시 기재토록 했다.


    이는 그간 청소 노동자들이 쉬거나 씻을 공간도 없이 일하고 있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사업주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한 화답 성격이다. 이 개정안은 특별한 이견이 없으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이 개정안의 시행으로 청소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이 개선될지, 그리고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가 충족될지 추적 검토가 필요할 듯 하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산재보험 적용 확대,
    사내하청 산재로 원청에 집계

     

    정부와 여당이 지난 9월 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저임금 근로자에 대해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하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주요 내용은 내년 하반기부터 정부가 저소득근로자에게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를 연간 1인당 25만원 지원하고, 기업주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을 차별하면 최고 1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여기 안전보건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었다. 택배 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확대, 원청 업체가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강화하도록 원청 업체의 재해율 산정시 사내하도급 업체의 재해를 포함, 원청 사업주의 사내하도급 업체에 대한 산재예방 조치를 현행 건설·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확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대책에서 드러나듯 그것이 노동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채, 오히려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여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해가 되는 방향의 정책이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와 개입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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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분석 :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산재 1차 판결, 어... file
    노동건강연대 / 편집위원회

    § 사건의 개요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한 故 황유미 씨와 故 이숙영 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유가족들에게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사례들 중 처음으로 업무로 인한 질병발생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 노동자들의 근무력과 질병 경과


    故 황유미 (1985년 4월 21일생) 씨는 2003년 10월 6일에 삼성반도체에 입사하여,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확산(diffusion) 공정업무를 담당했으며, 2004년 12월부터 2005년 6월까지는 습식식각 (wet etching)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그러다가 2005년 6월 10일에 급성골수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았고, 이후 투병을 하다가 2007년 3월 6일에 사망했다. 한편 故 이숙영 (1976년 11월 11일생) 씨는 1995년 1월에 삼성반도체에 입사하여, 1995년 1월부터 2001년 6월까지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금속배선공정 (구체적으로는 스퍼트 공정) 업무를 담당했다. 2001년 7월부터 2004년 6월까지는 화학증착 공정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이후 2004년 7월부터 2006년 7월까지는 같은 3라인에서 수주업무 (라벨부착업무), 습식식각업무, 확산공정업무 등을 돌아가며 수행했다. 2006년 7월 13일에 급성골수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같은 해 8월 17일에 사망했다.


    이들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확산 및 습식 식각 공정에서 근무하는 동안 벤젠, 포스핀, 신너, 2-메톡시에탄올 등 에틸렌글리콜 류의 화합물, 산화에틸렌 등에 노출되었다. 또한 더미 웨이퍼에 대한 디캡 (decap) 작업을 하면서 벤젠, 산화에틸렌 등에 노출되었고,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 특히 광학현상 공정에서 사용된 벤젠, 임플란트 공정에서 사용된 아르신, 아르신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발생한 삼산화비소 등에도 노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임플란트 공정 베이에 설치된 가속이온주입기 앞을 지나다니면서 방사선에도 노출되었으며, 이에 더해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수시로 생체리듬을 깨는 야간근무, 초과근무 등을 수행함으로써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등 다양한 발암성 작업환경 위험요인들과 과로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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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근로복지공단에서 연좌농성 중인 피해 노동자 가족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작업환경 측정과 역학조사 결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7년 9월에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3라인을 대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에서는, 벤젠, 톨루엔, 크실렌, n-부틸아세테이트, 2-에톡시에틸아세테이트, 2-메톡시에탄올, 2-헵타논, 에틸렌글리콜, 인산은 모두 측정되지 않았고, 아르신은 측정되지 않거나 흔적(trace)만 있는 것으로 측정되었으며, 불화물은 최고 노출농도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측정되었다고 보고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3라인 9개 베이에서 측정·평가가 이루어졌으나, 화학물질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었고 발암성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아르신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방사선 노출평가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의뢰에 따라서 한일원자력주식회사가 2007년 12월에 시행했다. 근로자가 1일 8시간 동안 피폭될 수 있는 최대 피폭선량을 산출한 결과, 5개 지점 중 4개는 자연방사선 미만 수준, 1개는 시간당 2.4 uSv로 연간 주당 40시간 씩 50주를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총 4.8 mSv 정도에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참고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는 1 mSv). 당시 이러한 조사결과를 전체적으로 평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평가위원회의 의견을 살펴보면, 위원 13명 중에서 3명이 이들의 사망에 업무관련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고, 1명은 업무관련성이 있다는 증거도 없으나 명백한 반증도 없다는 의견을, 9명은 업무관련성이 낮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후 2008년도 1월초부터 12월말까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국내 전체 반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자 역학조사를 시행했다. 인사코호트와 고용보험 코호트 자료를 활용하여 표준화 사망비와 표준화 암등록비 등이 계산되었고, 전반적으로 암사망이나 발생등록비가 일반인구집단보다 낮게 추정되었다. 하지만 여성근로자의 비호지킨 림프종 표준화 암등록비가 2.67배(95% 신뢰구간은, 1.22~5.07) 높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편 2009년 6월경 반도체협회로부터 자문의뢰를 받아 서울대학교가 5개월 동안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를 수행했다. 당시 감광공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감광제 벌크(액체용액)에서 미량이지만 벤젠이 검출되기도 하였고, 이온 주입과정에서 아르신 가스와 부산물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들은 백혈병의 원인물질들로 알려진 것들이다.

     

     

    § 재판부의 판결과 의미

     

     

     판결의 주요 내용


    재판부의 이상의 근거들을 검토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현대 의학에서 백혈병의 위험인자가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벤젠, 1,3-부타디엔, 산화에틸렌 등 일부 화학물질과 전리방사선이 백혈병의 발병 원인으로 알려져 있고, TCE, 포름알데히드 등도 백혈병을 발병시키는 의심인자로 보고되었으며, 또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비록 그 화학물질이 백혈병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점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하더라도 그에 의한 백혈병 발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역학조사 결과에서 반도체 사업장 여성 근로자의 백혈병 관련 표준화 사망비나 표준화 암등록비의 신뢰구간의 폭이 넓어 그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보다 표준화 사망비나 암등록비가 높다는 점은 이들의 백혈병 발병에 작업환경이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비록 이들에게 발병한 급성골수구성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들이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급성골수구성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발병한 급성골수구성백혈병과 그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 판결의 명과 암


    이번 판결에서 상당히 전향적이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인정된 질병의 종류가 급성골수구성백혈병(AML)이라는 점 (급성림프구성 림프종과 비호지킨 림프종은 불인정), ② 故 황유미 씨의 경우 잠복기가 1~2년 정도로 짧게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인과성이 인정된 부분, ③ 노출평가결과 명확한 발암성 요인(Group I)인 벤젠과 전리방사선 외에도 발암성 가능요인(Group IIA)인 TCE 등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는 점, ④ 역학조사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음에도 표준화사망비의 상승을 인과적 판단에서 언급한 점 등이다. 이는 기존의 직업성 암 판결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진전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함께 행정소송이 이루어진 나머지 세 건의 사례들에서는 원고와 피고 (실제로는 피고라기보다 보조참고인인 삼성반도체) 사이에 팩트(fact)를 둘러싼 주장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피고 (실제로는 보조참고인)의 주장이 ‘채택’됨으로써 유해요인의 인과성은 차치하고 노출 과거력 자체를 상당부분 인정받지 못했다. 


    산재, 특히 업무상 질병을 둘러싸고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드물지만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증거가 채택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많은 경우 사법부의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정보에 기반한’ 판단에 따라 여태까지 그래왔듯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들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산보연의 역학조사 보고서는 작업과의 백혈병 사이의 인과성을 확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었지만, 바로 그 보고서를 근거자료로 법정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점은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개별 사례에서 업무 연관성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노동자 입증책임으로 정해놓은 산재보험 체계, 법원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기구,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학술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과성’의 확정 권한까지 부여한 현행 행정소송 제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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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생활의 발견] 벌레세상, 참고살아야지 file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퇴근길의 전철에는 자리가 없다. 서서 자리가 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에어컨 바람에 시원하지만 그래도 한 시간 이상을 서서 가는 것은 고단하다.
    전철을 타자마자 재빨리 객차 안을 스캔해보지만 역시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내릴지 눈치 봐서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것이 좋다. 서울 벗어나기 전에 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수리를 지나 양평까지도 가는 장거리 승객도 섞여있으므로 이들을 구별해내는 것은 편안한 퇴근길의 핵심이다.
    어떻게 구별해낼까? 옷차림으로는 알 수 없다. 소지품과 핸드폰 사용행태로도 구별이 힘들다. 이럴 때엔 종아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종아리에 모기 물린 자국이 많은 사람. 이들을 피해야 한다. 내 다리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시골에 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파트와 도시 내에 사는 사람들은 희고 깨끗한 종아리를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 그 앞에 서있으면 얼마안가 자리가 날 확률이 높다. 두 번째 여름을 나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여름의 시골은 곤충의 천국이다. 이놈들은 가리는 곳도 없고 크기와 힘에 있어 도시의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집의 여름 군식구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우선 모기


    방충망을 치고 모기향을 피워도 늠름히 집안을 장악한다. 시골의 모기는 검은 얼룩 띠와 무시무시한 침을 갖고 있는 산모기라 서너 군데를 한꺼번에 물릴 경우 오한과 발열, 두통을 선물한다. 물린지 사나흘 지나면서부터 고름이 차기 시작해 한 달 가량 가려움증과 진물로 고생하게 한다. 일주일쯤 지나면서부터 물린 부위가 검게 변하여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종아리와 팔뚝은 얼룩덜룩해진다.
    간혹 축사로부터 날아온 쇠파리도 집안에 들어오는데 작년에 TV보다 발바닥을 쏘였을 때엔 기절할 만큼 아프고 가려웠다. 뇌가 멈춰버려, 일주일가량은 무언가에 대해 차분히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루살이와 이름 모를 날벌레들


    이름을 모르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대략 십 여종의 날벌레가 대략 3,4백마리 부엌에 산다. 저녁에 형광등을 켜놓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벽과 천장의 흰 벽지 위에 까맣게 붙어있다. 처음엔 약도 뿌려보고 향도 피워보고 했으나, 이젠 그냥 내버려둔다. 수명이 짧아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대부분 죽어 바닥에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며칠 동안은 잠잠하다.
    음식을 하는 동안 아주 가끔은 종아리 피부에 붙어있는데 그러고 나면 아주 작은 모기자국 같은 것이 생기는 것으로 봐서, 사람의 피부를 무는 것은 모기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거미


    날아다니는 것이 많아서인지, 거미도 많다. 콩알만 한 거미부터 손바닥만 한 대형거미까지 벽 모서리마다 잔뜩 거미줄을 쳐 놓는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길은 밤새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의 정글을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신기한 것은 새로 지은 거미줄일수록 탱탱하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아침햇살에 은색으로 반짝이며 손으로 만져도 끈적이지 않을 만큼 매끈하다. 손끝으로 살짝 튕기면 ‘덩~’하는 소리가 날 것 같다. 힘 좋은 큰 거미는 마당과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르는 집을 지어놓기도 하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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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층의 주인아주머니는 거미줄을 보는 족족 빗자루로 뜯어버리지만, 나는 절대 뜯지 않는다. 거미줄에 잔뜩 걸린 모기와 날벌레를 보면 거미가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집안의 거미줄도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편인데 보기는 좋지 않다. 집안에도 거미가 많아 TV를 보고 있으면 꽤 큰 놈이 천정에서부터 내려와 눈앞에서 흔들흔들 할 때도 있다.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집안에서 우리와 같이 기거하는 거미의 숫자는 대략 30여 마리로 추정된다.
     


    풍뎅이와 귀뚜라미, 그리고 나방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집안은 일순간 소란스러워진다. 형광등이 꺼지면 깜짝 놀란 풍뎅이와 나방이 불빛을 찾아 요란을 떨며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놈들의 특징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안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들의 뜀박질이 시작된다. 벌레를 잡기위해 푸다닥거리며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마룻바닥에는 여지없이 나방을 비롯한 무엇인지 알기 힘든 벌레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다. 제일 보기 싫은 것은 귀뚜라미의 잔해이다.
    여러 번 산채로 잡아 창밖으로 내보내 주지만, 고양이들에게 잡히는 것들이 더 많다.

    청개구리
    신기한 일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부엌에 꾸준히 들어오는 청개구리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들어와서 싱크대 위의 양푼이에 떡~하니 올라앉아있거나 쌀독 항아리 뚜껑에 앉아있다. 아침마다 부엌에서의 첫 번째 하는 일은 개구리를 잡아서 창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동화에 나온 개구리 왕자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지. 말이 통한다면 꼭 묻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청개구리 대신 맹꽁이(?)처럼 생긴 커다란 떡두꺼비가 부엌뒷문 방충망 밖에 앉아 부엌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있다. 우리 집 부엌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지. 그래도 청개구리는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들 중에 가장 점잖고 의젓하여 좋아하는 편이다.

     

     

    반딧불이


    밤에 산책 나가면 집 앞 길가에서 볼 수 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작년보다는 보기 힘들다. 길 옆 으로 개울이 나 있는데 그 개울가 뽕나무 근처나 피마자 나무 덤불주변에서 볼 수 있다. 시골의 날아다니는 곤충 중에서 가장 귀하고 신기한 벌레들이다. 작고 수줍은 푸른 불빛을 보면 매번 감탄을 하게 된다.

     

     

    방아깨비, 여치, 사마귀, 자벌레


    집안 보다는 마당의 풀밭에 바글바글 거리며 살고 있다.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2,30마리의 방아깨비를 볼 수 있는데 사람 발자국소리에 놀라서 이리저리 풀쩍거리며 뛰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발밑이 어지러워 걸음을 떼기가 힘들다.

     

    10 방아깨비.jpg


    마당에 빨랫대를 놓고 빨래를 널고 있노라면 방아깨비와 여치 등이 빨래 위에 앉아 있기도 하다. 처음엔 속옷 등에 벌레가 앉아 있으니 꺼림칙하였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대신 빨래를 갤 때  조심해야 한다. 소맷단 같은 곳에 이러저러한 벌레가 붙어 옷장 서랍 안으로 같이 들어가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마귀는 주로 신발장의 우산에 붙어산다. 우산 손잡이에 앉아 있다가 비 오는 날 우산을 꺼내려고 하면 무척 귀찮은 듯 천천히 비켜나준다. 마당의 다른 벌레들이 녹색인 것에 반해 사마귀는 색도 검붉고 크기도 커서 좀 징그러운 구석도 있으나 움직임이 느려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벌


    옆집이 꿀벌을 친다. 그 집 마당과 뒷산까지 해서 벌통이 서른 개 가량 되는 모양인데, 그렇다 보니, 자연히 집 주위에 벌이 많다. 원래 벌을 별로 안 무서워해서 상관없지만, 집안으로 들어오거나 하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하다. 지난겨울에 먹다버린 몇 가지 채소의 씨가 땅에서 싹을 틔워 지금 부엌 뒷문밖에는 참외와 수세미, 호박 등이 넝쿨로 자라고 있다. 여름 내내 노란색 꽃을 피워대니 당연히 꿀벌도 모여들었다. 그래서 부엌 뒷문 밖은 항상 꿀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로 요란하였다. 노란 수세미 꽃에 동골동골 꿀벌이 앉아서 부지런떠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름 내내 재미였다.
    반면 말벌은 귀엽지도, 재미있지도 않는 존재이다. 건물 벽과 지붕 처마 밑, 마당의 싸리나무 사이 등등에 수시로 벌집을 지어놓고 떼로 모여 산다. 꿀벌에 비해 크기도 크고 발도 흉측하게 길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음흉한 느낌이 드는데 말벌에 대한 편견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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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는 추석을 앞두고 마당의 나무와 화초들을 대거 가지치기 하면서 나무에 붙어있던 말벌 집을 빗자루로 떼어 버렸다. 벌집의 크기도 작고 말벌도 몇 마리 안 되 길래 그냥 툭 쳐서 떼어 버렸다. 그러고 내쳐 주변 가지를 정리하는데 말벌에 두 번이나 쏘인 것이다. 처음 쏘인 것이라 병원을 갈까말까 했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오히려 그날 모기에 물린 곳이 더 붓고 곪아버렸다. 말벌보다 모기의 침이 더 독할 수도 있나보다. 

     


    그럭저럭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그 외 나비와 잠자리, 매미 그리고 기타 등등, 이런저런 벌레들과 한동네서 살고 있다. 원래 이름도 모르는 벌레라서 봐도 눈에 딱히 들어오지는 않는 많은 곤충들과 함께. 그리고 아파트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름을 말하기도 싫은 해충들까지.
    처음에 이사 와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벌레가 많아요?’하고 물었더니 많다고 답해주셨다. ‘어쩔 수 없어, 시골은.’이라는 설명과 함께.
    작년에 워낙 벌레 때문에 고생한지라, 올해 여름을 맞아 새롭게 조치를 취했다. 우선 방충망을 스텐레스 방충망으로 바꿨다. 값이 일반방충망에 비해 두 배로 비싸지만 큰맘 먹고 투자하였다. 그리고 모기퇴치 액을 사서 고무장갑 끼고 방충망에 덕지덕지 발랐다. 술에 약한 나는 그날 밤에 약 냄새에 취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것도 모자라 건물 외벽에도 퇴치 액을 뿌려두었고 창 아래 화단에도 잔뜩 뿌려주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올해 비가 많이 와서 곤충번식에 애로점이 있었는지 아무튼 올해 여름을 무탈히 나고 있다. 여전히 벌레는 왕성하지만 그래도 노래가사처럼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긴 시골이고, 여름엔 곤충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참아내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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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눈여겨볼 연구] 1984~1998년 미국 여성의 직업... file
    임형준 / 노동건강연대 /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저     자: 신디아 로빈슨 (Cynthia F. Robinson), 패트리샤 설리번 (Patricia A. Sullivan), 

                    지아 리 (Jia Li), 제임스 워커 (James T. Walker)

     논문제목: 1984-1998년 미국 여성에서 직업성 폐암.

     출      처: 미국산업의학회지 (American Journal of Industrial Medicine) 

                    2011년 54호 102-17쪽



    이번 호에는 2011년 미국산업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Industrial Medicine)에 실린 논문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논문은 1984년부터 1998년까지 15년간 폐암으로 사망한 미국 여성들의 직업을 분류하여 여성들에서 폐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큰 직업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았다.


    암 치료기술이 매우 발전하기는 했지만, 폐암은 발병 후 5년 후 생존률1)이 15%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매우 치명적인 암 중의 하나이다. 미국암학회에서는 2006년 전체 여성 암 사망자 중 29%가 폐암으로 사망하여 그 비중이 가장 크다고 보고했다.2) 더 큰 문제는 남성에서 폐암 사망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의 폐암 사망률은 적어도 2004년 시점까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널리 알려지고, 보건 당국에 의한 금연 정책과 각종 캠페인들이 적극적으로 펼쳐지면서 일반인들은 흔히 폐암이라고 하면, 흡연만이 유일한 원인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직업적 폐암 위험요인을 간략히 나열하면, * 먼지 (석면, 이산화규소, 나무먼지), * 금속 (크롬, 비소, 니켈, 카드뮴, 납), *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디젤엔진 배출물질, 조리용 기름, 흡연, 용접 흄, 기타 연소 부산물 등), * 방사선 (라돈, 이온화 방사선), * 일부 유기용제 등이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1978년부터 1997년 사이 건강영양조사 결과 여성 흡연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동안 여성 폐암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흡연에서 폐암 발병에 이르기까지 20년 이상이 걸리므로, 흡연률의 변화가 바로 폐암 발병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치명적인 질병인 폐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금연 정책뿐 아니라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직업적인 유해 요인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 것도 필요함을 시사한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특히 미국 여성 노동자들에서 직업적 노출과 폐암 사망 사이의 관련성을 보는 연구가 현재까지 매우 부족하다는 결론에 따라 이 연구를 수행하였다고 밝혔다.


    §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미국의 사망진단서에는 사망자의 친척이 고인이 생전에 가장 오래 종사했거나 일생동안 종사한 직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정보는 표준 직종 분류와 표준 산업 분류에 따라 구분하여 전산 정보화된다. 이 작업에는 미국의 모든 주가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며, 50개 주들 중 27개 주가 참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들 27개 주에서 수집된, 1984~1998년의 15년 동안 사망한 여성 457만여 명의 사망 기록을 이용하여 본 연구를 수행했다. 자료에는 사망자의 직업과 주요 사인 이외에도 사망 시 연령, 성별, 인종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인종에 따라 결과를 나누어, 백인, 흑인과 히스패닉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

    통계분석은 비례사망분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간략히 설명하면, 먼저 비례사망비(PMR, Proportionate Mortality Ratio)라는 것을 구하는데, 이는 특정 직업군에서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전체 직업군에서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얻는 값이다.


    비례사망비 = 특정직업군에서 폐암 사망자의 비율 / 전체 직업군에서 폐암 사망자의 비율 x 100


    따라서 특정 직업군이 전체 직업군에 비해 유달리 폐암 사망자의 비율이 높다면, 비례사망비의 값은 100 이상이 나오며, 그 정도가 심할수록 더욱 큰 값을 가지게 된다. 이 지표가 100 이상으로 유의하게 높은지는 몇 가지 종류의 통계 방법을 이용하여 검정했다. 또한 다른 코호트연구와 국민건강영양조사 등에서 관찰된 직종별 흡연률과 흡연자들의 폐암 사망률 등 외부 자료를 이용하여 간접적인 방법으로 흡연의 영향을 보정한 비례사망비를 계산했다. 저자들은 실업자, 파트타임 노동자, 가사노동자, 가정주부, 직업 또는 산업이 불분명한 경우는 분석에서 제외하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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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본문에 소개된 1984-98년 27개 주의 직업성 사망자 수



    § 연구의 주요 결과와 그 의미는?


    연구기간 동안 사망한 여성은 457만여 명이었으며, 이 중 21만여 명(백인 19만 4천여 명, 흑인 1만 8천여 명, 히스패닉 1천 5백여 명)이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직업을 업종별로 구분했을 때, 건설업, 운수업, 소매업, 농업, 임업, 어업, 간호/개인돌봄 산업(nursing and personal care industry) 등에서 다른 업종에 비해 여성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한편, 직종별로 구분했을 때는 정밀 기계 생산직, 경영직, 기술직, 관리직, 전문가 직종에 근무한 여성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연구자들은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이 폐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직업적 노출 요인에 대한 가설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폐암의 비례사망비가 높았던 주요 직종과 업종에 근거하여, 가능한 폐암 발생 유해요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생산직 여성 노동자에서 폐암의 비례사망비가 높았는데, 업종별로 구분하면, 기계공, 수리공, 박판공 (sheet metal worker), 전기공, 전기기구 조립공, 펀칭공, 프레스공, 금속가공공, 플라스틱 기계 운전공 등이 해당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에서 높았는데, 그 중에서도 라디오, 텔레비전, 통신기계 제조업, 인쇄출판업, 전기 기계 제조업 등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업종들은 이전의 유사한 연구에서도 폐암 사망 위험이 높다고 보고된 바 있다. 노출 가능한 폐암 유발 위험물질로는 석면, 비소, 비스(클로로메틸) 에테르, 6가 크롬, 니켈, 니켈 화합물,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라돈, 염화비닐, 아크릴로니트릴, 베릴륨, 카드뮴,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실리카 (규소), 콜타르, 코크스로 배출물질, 합성 유리섬유, 간접흡연 등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운수업 부분에서는 트럭 운전과 버스 운전, 대중교통 운전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폐암 비례사망비가 높았다. 가능한 유해요인으로는 디젤엔진 배기가스에 포함된 다핵방향족탄화수소 (PAH), 운송수단 내부에서의 간접흡연, 브레이크 라이닝에 포함된 석면 등을 꼽았다.


    경영 및 관리직종, 기술직종, 전문가 직종 등에서는 공무원, 컴퓨터 업무, 비서, 도서관 사서 등의 다양한 사무직 여성 노동자에서 폐암의 비례사망비가 높았다. 언뜻 생각하기에 의외의 결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무직 여성 노동자에서 폐암의 위험 증가는 유사한 여러 연구들에서도 관찰되었던 사실이라고 저자들은 언급했다. 이들 직종에서의 가능한 위험요인으로는 실내근무에 따른 라돈 노출, 간접흡연 등이 있으며, 작업장 내부 또는 가까이에 위치한 사무실의 경우 사무직 여성 노동자라도 작업장의 폐암 유발물질에 동시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보건의료직종에서는 간호사, 의사, 방사선 기사, 임상기사 등의 직종에서 높았으며, 이는 방사선, 포름알데히드 등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업종에서는 도소매업, 부동산업, 가죽 및 신발가게 점원, 주유소 등에 근무한 여성 노동자에서 높았다. 각각 취급하는 물질에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과 석면, 디젤엔진 배출물질, 분진, 간접흡연 등을 가능한 위험요인으로 언급했다.


    § 연구의 한계점과 장점, 그리고 결론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지적한 연구의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친척이 제공한 정보로 사망자의 직업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분류가 부정확할 수 있으며, 또한 한 사람이 일생동안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그 중 가장 오랜 기간 종사한 직업 하나만을 이용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체는 아니지만 27개 주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간 동안 대규모의 사망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분석한 기존의 연구는 전체 폐암 중 6~17%가 흡연 이외의 직업적 위험요인 노출과 관련 있다고 추정했다. 또한 여러 종류의 직업적 폐암 위험요인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흡연을 하는 경우에는 직업적 위험요인 노출 없이 흡연만 하는 경우에 비해 폐암 발생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치명적인 질병인 폐암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직업적 노출 위험요인들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본 연구는 2011년 미국산업의학회지에 출간된 최신 논문이며, 검색엔진인 구글이나 펍메드(Pubmed)에서는 초록만 확인할 수 있다. 원문은 대학교 도서관/의학도서관 등에서 확인 가능하다.


    <끝>



    1) 암 진단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환자가 살아있을 확률을 일컬음


    2) 한국의 2010년 사망통계에서도 여성에게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은 폐암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위암, 대장암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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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해외이슈] 일본의 성적 괴롭힘 산재 인정 기준... file
    스즈키 아키라 / 노동건강연대

    한국에서 성적 괴롭힘, 공식적으로는 ‘성희롱’으로 번역되는 'sexual harassment' 는 일본에서 ‘성적 짓궂은 짓’으로 번역되다가 요즘은 영어의 일본식 발음으로 표현하거나 줄여서 “세쿠 하라”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인 ‘성희롱’으로 쓴다.1)

     

    2010년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에 있는 전국의 노동국 고용균등실에 요청된 성희롱 상담은 총 11,749건이었다. 고용균등실은 남녀 균등 대우 확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양립 지원, 파트타임 노동 대책 등을 추진하는 기관이지만 상담의 절반은 성희롱에 관한 것이다. 반면 성희롱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는 2004-2009년 사이에 22건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운데 후생노동성은 2011년 6월 전문가회의를 열어 성희롱으로 정신질환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과 운영 수정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배경에는 성희롱에 시달린 한 여성의 투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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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희롱 인정 길 넓힌다” 올해 가을에 설립할 ‘퍼플 유니온’에 대해 논의하는 사토 씨(중앙)와 고야마 위원장(우) (출처: 2011.06. 28 홋카이도신문)



    § 파견노동자에게 가해진 성폭력과 피해자의 고통


    사토 카오리 씨는 통신업계 대기업이 만든 계열사인 파견회사 직원이며 모회사인 통신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파견노동자였다. 교육 강사로 일하던 2003년 말부터 상사의 성희롱이 시작되었다. 메일로 ‘고백’이 오고 식사나 여행을 같이 가자는 끈질긴 권유가 계속되었다. 심지어 손에 입을 밀어 붙이는 등 상사의 행동은 점차 심해졌다.

    사토 씨는 ‘성희롱’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해고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그저 상사를 피하는데 급급했고, 상사의 행동과 ‘성희롱’은 연결시키지 못했다. 

    사토 씨는 상황을 눈치 챈 동료의 권유로 병원 정신신체의학과에 갔고, ‘적응 장애’ ‘강박성 장애’ ‘우울병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토 씨는 교육 강사 업무를 그만두었다. 이 업무를 그만 두면 가해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희롱은 점점 더 심한 괴롭힘으로 변해 갔다. 가해자가 걸어오는 내선 전화, 감시 행동으로 사토 씨 정신상태도 악화되었다. 그러나 생활을 위해 일 자체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 성희롱 피해자를 지원하지 않는 기관과 전문가들


    사토 씨는 생각다 못해 용기를 내어 원청회사에 상담을 했지만 아무 대응도 없었다. 변호사에게 상담했지만, ‘증거가 없다. 소송을 권유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의료기관에서는 ‘왜 싫다고 안 했어요?’‘상담할 수 있는 친구는 없어요?’라고 추궁당했다. 산재를 신청하려고 간 기관에서는 ‘성희롱의 산재 인정은 어렵다’고 창구에서 단념시키려 했다.

    도움을 요청한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사토 씨는 병원 접수대에서 본 성희롱 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전화를 받은 지역여성노조인 “홋카이도 여성 노조”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 피해자와 여성노조의 싸움으로 이루어진 변화


    2006년 사토 씨는 퇴직 직전에 여성노조에 가입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회사와 교섭을 진행하면서 2007년에 산재 신청을 했다.

    산재는 불승인이었다. “사업주에 의한 성희롱 상담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었다. 동료도 상사에게 주의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형식적인 회사 상담 창구가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재심사청구에서는 심리적 부하강도가 3급으로 수정되었지만, 발병 전 6개월 동안 상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사건 발생 직후 상담하기 어려운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후속하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2010년 1월, 사토 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성희롱 산재 불승인에 대한 행정소송은 일본에서 첫 사례였다. 여성노조는 성희롱 상담사례를 모아 후생노동성, 국회위원, 관료들에게 산재 인정기준 개선을 호소하면서 전국 노동조합 조직들과 함께 집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2010년 11월, 판결 전에 산재 인정 방침을 밝혔다. 결국 2011년 3월, 원처분청이 산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동시에 후생노동성은 전문가회의를 열어 성희롱 산재 인정기준에 관한 검토를 시작했다. 6월 28일자로 발표된 전문가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후생노동성은 연내에 새로운 성희롱 산재 인정기준을 고시할 예정이다.

    사토 씨는 올해 가을에 성희롱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퍼플 유니온” 설립을 도쿄에서 준비하고 있다.


    8 해외이슈 일본 성희롱기사_1.jpg


    그림 3. 2011년 7월 5일자 홋카이도 신문 “성희롱 산재 인정기준 후노성 재검토, 고용의 불안정함도 고려” “정신질환 판단 대상에 ‘6개월’의 벽”



    § 참고자료 1. 일본의 정신장애 산재 인정기준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장애 등에 관한 업무 상외 판단 지침”


    1999년 제정, 2009년 일부 개정

     

    1. 업무 상외 판단


    정신장애 등 업무 상외는 정신장애의 발병 유무, 발병 시기 및 질병명을 밝힌 위에

    ①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② 업무 이외의 심리적 부하

    ③ 개체 측 (個體側) 요인 (정신장애 병력 등)

    에 대해 평가하고 이들과 발병한 정신장애와의 관련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2. 판단 요건


    업무 상외 판단 요건은 아래와 같다.

    (1) 대상 질병에 해당하는 정신장애를 발병하는 것.

    (2) 대상 질병 발병 전 대략 6개월간에 객관적으로 해당 정신장애를 발병시키는 우려가 있는 업무에 의한 강한 심리적 부하가 인정되는 것.

    (3) 업무 이외인 심리적 부하 및 개체 측 요인에 의해 해당 정신장애를 발병한 것을 인정되지 않는 것.

     

    3.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평가


    (1) 평가 방법

    정신장애 발병 전 대략 6개월 동안에 ① 해당 정신장애 발병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떠한 사건(일)이 있었는지. ② 그 사건(일어난 일)에 동반하는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직장에서 심리적 부하평가표를 이용해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강도를 평가하고 그들이 정신장애를 발병시키는 우려가 있는 정도의 심리적 부하 여부를 검토한다.

    단 사건(일어난 일)에 동반하는 변화를 평가할 때 일의 양, 질, 책임, 직장의 인적/물적 환경, 지원/협력 체제 등에 대해 검토하는 것. 특히 항상적인 장시간 노동은 정신장애 발병의 준비 상태를 형성하는 요인이 되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평가 때 충분히 고려한다.

     

    (2) 정신장애를 발병시키는 우려가 있는 정도의 심리적 부하에 대한 판단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가 정신장애를 발병시키는 우려가 있는 정도의 심리적 부하로 평가되는 경우란 별표1의 종합평가가 “강”으로 되는 경우로 하고 구체적으로는 아래의 경우로 한다.

    ① 사건(일어난 일)의 심리적 부하가 강도“Ⅲ”이고 사건에 동반하는 변화가 “상당 정도 과중한 경우”

    ② 사건(일어난 일)의 심리적 부하가 강도“Ⅱ”이고 사건에 동반하는 변화가 “상당 정도 과중한 경우”

     

    (3) 특별한 사건(일어난 일) 등에 대한 취급

    아래와 같은 상황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별표1에 의거하지 않고 종합평가가 “강”으로 된다.

    - 생사에 관한 사고에 조우 등 심리적 부하가 극도인 것.

    - 업무상 상병에 의해 요양중인 자의 극도의 고통 등 병상 급변 등

    - 생리적으로 필요한 최소한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정도의 극도의 장시간 노동

     

    4. 업무 상외의 판단


    업무 상외의 구체적 판단은 아래와 같다.

    (1)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이외 특별한 심리적 부하, 개체측 요인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이자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가 별표1의 종합평가가 “강”으로 인정될 때에는 업무 기인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2)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이외 심리적 부하, 개체적 요인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가 별표1의 종합평가가 “강”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업무 이외의 심리적 부하, 개체측 요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들과 발병한 정신장애와의 관련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단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의 종합평가가 “강”으로 인정되는 경우이자 아래 가 및 나의 경우에는 업무상으로 판단한다.

    가. 강도”Ⅲ”에 해당하는 업무 이외인 심리적 부하가 인정되지만 극단적으로 큼 등의 상황에 아닌 경우.

    나. 개체측 요인에 현저한 문제가 없는 경우.

     

     

    § 참고자료 2. 
    “정신장애 산재인정 기준에 관한 전문검토회 - 성희롱 사안에 관한 분과회 보고서”


    “정신장애 산재인정 기준에 관한 전문 검토회 - 성희롱 사안에 관한 분과회”는 2011년 6월 28일 보고서를 발표해 성희롱 특유의 사정을 고려해 산재인정기준 개정과 조사에 대한 유의사항을 제언했다.

     정신장애 산재 판단지침에서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스트레스를  Ⅰ~Ⅲ 등급까지 3단계로 평가하는 “심리적 부하평가표”에 정리하고 그 평가에 의거해 업무에 기인한 정신장애로 인정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심리적 부하평가표”에는 성희롱에 관한 항목은 사건 (일어난 일) 유형 분류 속 ‘대인관계의 트러블’에 구분되며 구체적인 사건(일어난 일)으로서 ‘성희롱을 당했다’라는 항목이 하나 있다. 이 항목에 대한 심리적 부하 강도는 Ⅱ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같은 유형에는 ‘심한 짓궂은 짓, 괴롭힘 또는 폭행을 당했다’ (Ⅲ), ‘상사와의 트러블이 있었다’ (Ⅱ), ‘동료와의 트러블이 있었다’ (Ⅱ), ‘부하와의 트러블이 있었다’ (Ⅰ) 등이  열거되어 있다.

     

    검토회 보고서는 ‘성희롱을 당했다’에 대한 평균적 부하강도를 ‘Ⅱ’로 하면서 ‘Ⅲ’ 등급으로 수정하는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제안했다.

     

    심리적 부하강도를 ‘Ⅲ’ 등급으로 판단하게 하는 구체적인 수정 사례

    (1) 특별한 사건

     심리적 부하가 극점에 해당하는 것

     강간이나 본인의 의지를 억압해서 행해진 외설행위 등 성희롱.


    (2) 강도를 ‘Ⅲ(강한 심리적 부하)’로 수정하는 사례

     행위의 태양이나 반복 계속의 정도

    - 가슴이나 허리 등에 대한 신체적 접촉을 포함하는 성희롱이자 계속해서 이루어진 행위.

    - 가슴이나 허리 등에 대한 신체적 접촉을 포함하는 성희롱이자 행위는 계속되어 있지 않으나 회사에 상담해도 적절한 대응이 없어 개선되지 않았거나 또는 회사에 상담 후 직장의 인간관계가 악화된 사안.

    - 신체 접촉이 없는 성적인 발언만의 성희롱이자 발언 속에 인격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하고 동시에 계속해서 이루어진 사안.

    - 신체 접촉이 없는 성적인 발언만의 성희롱이자 성적인 발언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동시에 회사가 성희롱으로 파악해도 적절한 대응이 없고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안.


    (3) 강도 ‘Ⅱ’이지만 심각성에 따라 ‘Ⅲ’에 수정해야 할 유의 사례

    - 가슴이나 허리 등에 대한 신체적 접촉을 포함하는 성희롱이지만 행위가 계속되지 않고 회사가 적절하고 신속히 대응해서 발병 전에 해결된 사안.

    - 신체 접촉이 없는 성적인 발언만의 성희롱이자 발언이 계속되지 않는 사안.

    - 신체 접촉이 없는 성적인 발언만의 성희롱이자 복수 이루어졌지만 회사가 적절하고 신속히 대응해서 발병 전에 행위가 종료한 사안.

     

     평가 기간은 발병 전 약 6개월

     병발하는 일에 대한 고려

    - 행위자로부터의 희롱

    - 피해 신고를 계기로 행위자나 동료로부터의 괴롭힘이나 희롱.

     기타 유의 사항

    - 피해자가 근무 계속이나 성희롱 피해 경감을 위해 할 수 없이 행위자에게 영합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도,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안이하게 판단하면 안 된다.

    - 피해자가 피해 직후 상담 행동을 취지 않아도 단순히 심리적 부하가 약하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

    - 의료기관에서 처 진료 때 성희롱 사실을 호소하지 않는 것만으로 심리적 부하가 약하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

    - 행위자가 상사이고 피해자가 부하인 경우, 행위자가 정규직이고 피해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우 등, 행위자가 고용관계 상 피해자에 대해 우월적인 입장에 있는 사실은 심리적 부하는 강해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

     

     

     


    1) 영어 harassment는 ‘침략, 괴롭힘’의 뜻을 지니는 반면, ‘희롱’은 ①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②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 ③ 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 등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가벼운 놀림이나 상호 즐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희롱이라는 번역어 자체가 한국사회 젠더 감수성의 부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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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해외이슈] ILO 가사 노동자 협약의 의미 file
    박진욱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2011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제100차 국제노동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협약 (Convention Concerning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 Convention. No. 189, 이하 가사노동협약)”과 이 협약의 적용에 대한 지침이 포함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권고안 (Recommendation Concerning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 Convention, Recommendation No. 201, 이하 권고안)”이 함께 통과되었다. ILO의 협약은 2개국 이상이 비준을 해야 하며, 2개국이 비준을 하면 비준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을 한 경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되므로, 한국이 비준을 하려 한다면 우선 관련 노동법에 대한 개정 또는 독립된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현행 국내법과의 조율이 선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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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1. ILO 뉴델리 지부에서 가사노동자의 질 좋은 일자리(decent work) 증진을 위해 개최한 사진전 작품 - 약 4천 명의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일과 삶에서의 존엄성을 요구하고 있다. 


    § 협약의 주요 내용 


    가사노동협약은 전체 27개의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문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협약 제1조는 가사노동과 가사노동자를 정의하고 있다. 조문에 따르면 가사노동이란 “가구 (혹은 여러 가구들) 내에서 수행되는 또는 가구(혹은 여러 가구들)를 위해서 수행되는 노동”이다. “가사노동자”는 고용관계 속에서 가사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정의되는데,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가끔 또는 산발적으로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은 가사노동자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협약의 제3조는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의 인정, 강제 노동 금지, 아동 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명시했으며, 제4조에서는 18세 이하의 가사노동자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줄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협약 제5조는 학대, 괴롭힘, 폭력으로부터 가사노동자를 보호할 것을, 제6조에서는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제7조는 가사노동자들이 고용과 관련한 조건들을 고지받고 서면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정했으며, 제8조에서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제9조에서는 가구 내에 거주하는 가사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 10조는 노동시간, 연장노동수당, 휴게시간과 주휴 및 유급연차휴가에 대해 가사노동자와 일반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며, 주휴는 적어도 24시간의 연속된 휴게시간이 되어야 하고,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협약 제11조는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12조는 임금의 지급방법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13조는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제14조는 출산을 포함한 사회보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협약 제15조는 직업소개소의 폭력적인 관행으로부터 가사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며, 제16조는 재판 등 분쟁해결 절차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할 것을, 제17조는 가사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접근가능한 신고제도와 방법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 전 세계 가사노동자 현황


    ILO에서 가사노동자에 관해 5편의 시리즈로 발간한 정책요약집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약 5,260만 명, 전 세계 임금 노동자의 약 3.6%정도가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사노동자의 약 83% (약4,360만 명)는 여성으로, 이는 전 세계 여성임금노동자의 약 7.5%를 차지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 여성 임금노동자의 26.6%가 가사노동자이다. 전 세계 가사노동자 중 42.5%는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며, 56.6%는 법정노동시간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44.8%는 일주일 중 단 하루의 휴일 (24시간 이상 연속적인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다. 여성 가사노동자의 35.9%는 출산휴가에 대한 법적 권리가 없고, 39.6%는 출산휴가 중 임금보전이 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특성상 사생활 침해, 폭언 및 폭력 등을 포함한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으며,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 안전사고의 문제 등 일과 관련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    

    § 국내 가사노동자 현황


    공식통계에 잡히는 국내의 가사 및 육아 도우미 노동자 규모는 2011년 1/4분기 기준으로 약 20만 명이다. 이는 통계청에서 분기별로 실시하는 지역별 고용조사에 근거한 것으로, 2008년 같은 조사에서 약 26만 명이던 것이 2009년 22만 명, 2010년 19만 5천명으로 감소했다가 2011년에 약간 증가한 것으로, 이들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다 (표 참조). 지역별고용조사는 국내에 거주하는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들 중 외국인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한편 가사 및 육아도우미 외에도 가사노동자의 범주에 포함되는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일, 산후도우미, 정원 관리, 주택 경비, 가족의 운전기사, 애완동물 관리 등의 일을 하는 노동자의 규모는 따로 파악할 수 있는 마땅한 통계가 없어, 실제 국내 가사노동자의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대략 30~6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2008 

    2009 

    2010 

    2011 - 1/4분기 

    전체

    256 

    220 

    195 

    201 

    남성 

    4 

    3 

    3 

    3 

    여성 

    252 

    217 

    192 

    198 


    표.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른 ‘가사 및 육아 도우미’ 노동자의 규모 (단위: 천명)


    앞서 전 세계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잠시 살펴보았지만, 국내 가사노동자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가사노동자들은 노동법 적용 예외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가사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근로자의 퇴직급여보장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령,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국내 노동법은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아도 노동조건이 열악해도 부당한 대우에 시달려도 합법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가 없다. 
    한국은 ILO 총회의 가사노동협약에 관한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협약의 비준과 관련한 정부 입장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가사노동협약의 기본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관련 법 개정과 비준 등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만일 정부가 협약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 진심이라면, ILO  가사노동자협약 통과에 맞춰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사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도록 관련법령을 즉시 제·개정하고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특히 가사노동자들이 직면해 있는 직업소개소의 불공정한 계약과 임금착취문제, 이주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가사노동을 공식노동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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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법의 이면]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의 문제 file
    임치용 / 공인노무사 / 노무법인 참터 강원지사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이 올해 7월부터 가능해졌다.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운동 진영이 예전부터 정부에게 요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지금, 노동운동 진영은 이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물론 사용자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소위 ‘어용’ 노동조합들은 환영하겠지만. 그 이유는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은 노동조합들이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의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조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약화와 노동조합 간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업(장)에 다수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각 노동조합들은 자율적인 개별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하지 않더라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은 기존에 누리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잃게 될 수 있다. 더욱이 교섭창구 단일화에 참여한 노동조합들 중에서도, 전체 조합원 수의 10%를 넘지 못하는 소수 노동조합은 공동교섭대표단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쟁의행위는 창구 단일화에 참여한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고 교섭대표노조의 지도 아래 행할 수 있으므로, 쟁의행의권의 행사도 심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처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헌법이 노동조합에게 부여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률과 시행령이 정하고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미비와 불합리함으로 인해, 앞으로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억울한 피해를 입는 노동조합들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고용노동부는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설립 신고증을 교부받은 노동조합 또는 그 노동조합의 지부ㆍ분회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노동행정 측면에서 고용노동부의 해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행정관청의 신고증 교부 지연, 부당한 보완 명령 등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참여 기한을 넘겨 신고증을 교부받게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현재 시행령에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유지기간을 2년으로 보장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못한 노동조합은 2년간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는 껍데기 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수반하여, 노동조합 설립 신고에 관한 제도를 형식적인 절차로 변경하고, 행정관청의 설립신고단계에서 사전 심사는 최대한 배제하도록 제도를 변경해야 한다. 

    다음으로, 현행 제도는 교섭대표노조의 지위 유지 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있다. 이 노동조합이 1년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경우, 새롭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개시되도록 정하고 있는데, 해당 교섭대표노조가 아무런 제한 없이 다시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즉 교섭대표노조가 고의적으로 교섭을 지연하는 경우, 그 사업(장)의 모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이 장기간 박탈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기존 교섭대표노조의 권리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노동조합 간 자율적 해결을 우선시하되, 교섭대표노조의 권리 남용이나 해태(懈怠)로 다른 노동조합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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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현행 복수노조 제도에 항의하는 노동자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마지막으로, 개별교섭에 관한 동의권이 사용자에게 있고 사용자도 교섭 단위 분리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어서, 사용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노동조합을 우대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이 경우, 사용자에게 대립적인 노동조합은 자연스럽게 조직력이 약화되거나 사업장에서 고립될 수 있다. 물론, 법률은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공정대표 의무를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고,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 시정 요청을 통해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차별의 입증은 쉬운 일이 아니며 분리된 교섭단위 간의 차별을 인정받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한 입증요건을 완화시키고 그 위반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  수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을 생각할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은 그 제도적 폐해로 인한 결과물이 전체 노동운동의 약화와 노노간의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동조합들 간에는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한 노동조합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자와 결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OO항운노조의 조합원들 일부가 새로운 항운노조를 설립하자, 기존 노조는 이중가입을 이유로 이들을 제적시켰고, 제적된 노동자들은 새로 설립된 노조가 근로자공급 사업권을 받지 못한 까닭에 일자리를 모두 잃게 되었다. 만약 제적된 노동자들이 다행히 일자리를 되찾게 된다면, 이들은 기존 노조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될까? 또한 이들은 사용자에게 과연 어떠한 태도를 갖게 될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현재 시점에서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가 어떻게 정착될 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정착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피해를 입거나 문을 닫을 수 있고, 자칫 전체 노동운동이 노노 갈등과 교섭력 약화로 인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그 긍정적 효과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 간의 연대이다. 자기 조직에 대한 이기적 관점을 버리고 사업장 내의 모든 노동자를 고려하는 관점, 나아가 전체 노동운동의 발전을 고려하는 관점에서 서로가 연대한다면, 여러 독소 조항들과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현행 제도에서조차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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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 file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제 일관성이죠”


    - 노동건강연대 주영수 대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지난 8월말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단체 회원 분들은 사무실에서 발송한 메일을 통해서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 내 언론에 오르내리던 ‘캠프 캐럴’의 고엽제 문제에 대해서 고엽제만이 아니라 심각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던 주영수 한림대 교수. 100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12살 아이들 두 명이 백혈병과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렸고, 20대 주민 두 명이 백혈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는, 주민들에게 공포만 안겨주고 지역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을 먼저 이야기하더군요. 

    언론에 났으니 할 일을 다 했다거나 정부에 대책을 세우라고 목소리만 높이는 태도는 없습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 그와 만나게 된다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강력한 지원자를 만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분이 노동건강연대의 상임대표이시니 어찌 든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지난 호에서 사무실의 동료를 인터뷰했던지라 다시 같은 단체에 있는 이를 만난다는 것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떠들썩했던 환경, 인권 관련 사건 중에서 그가 관여한 일이 적지 않음을 우리 회원들께 알리고 싶어서, 주민의 처지에서 피해자의 처지에서 약자의 처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분투해 온 그 속마음이 궁금해서 지하철 4호선 평촌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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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프캐럴이 있는 경북 왜관에 다녀오셨다고요, 미군기지와 환경문제는 정말 분리할 수 없는 문제로군요. 
    _ 왜관 이라는 곳에 대해 먼저 설명을 좀 드려야겠네요. 1960대부터 50년간 (주한미군의) 병참기지였던 곳이 왜관이죠. 그 전부터 왜의 관이 있던 곳이라 해서 마을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고 해요. 지리적 조건이 그렇게 만든 거죠. 베트남전 10년 동안 사용하던 고엽제를 수거해서 태평양의 조스턴 섬에 폐기처분했는데 그 중간 저장지가 한국의 DMZ와 ‘캠프 캐럴’이었다고 해요. 1978년 미국은 카터정부 때 ‘러브커낼 사건’이라고 중요한 환경사건을 겪게 되는데 그 후 고엽제를 폐기하라는 정부지시로 매립을 하게 됐어요. 고엽제는 유기염소제초제로 (고엽제에서 나오는) 다이옥신이 암이나 신경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요. 
    백혈병, 림프종, 폐암 등 10종의 암을 포함한 15개의 후유증이 알려져 있죠. 얼마 전 스티브 하우스라는 미군퇴역군인이 왜관을 방문해서 고엽제를 묻은 곳을 증언했고 정부는 그 드럼통을 찾겠다고 했지만 땅을 파도 못 찾았다고 하잖아요. 
    사실 고엽제 다이옥신은 문제의 일부일 거라고 봐요. 50년 전이고 고엽제 매립양이 많지 않을 것이고, 이번에 나온 주민 건강조사결과는 미군기지의 다른 오염물질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죠. 

    여기서 잠시 미국의 ‘러브커넬 사건’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1892년 윌리엄T.러브가 주정부로부터 승인을 얻어 운하건설을 추진하던 중 1910년 미국의 경제불황으로 건설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후 방치되어 있다가 1940년대 후커 케미컬이라는 화학회사가 인수하여 공장에서 버리는 화학물질을 철제 드럼통에 넣어 이 웅덩이에 매립하였는데, 이때 매립된 화학물질은 PCB, 린덴, 다이옥신, 트리클로로페놀, 헥사클로로시클로펜타디엔 등 매우 유독한 물질이었다. 
    1942년부터 1950년 사이에 무려 2만여t의 유독성 화학물질을 운하에 매립한 후 1953년 이 화학회사는 이곳을 포함한 주변지역을 시교육위원회에 기증하였고, 교육위원회는 이곳에 초등학교와 주택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 주민들은 피부병과 두통이 자주 발병하였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유산율이 높았다. 1976년 큰 홍수 후 가로수와 정원의 꽃이 죽어 갔고, 연못에서는 유해한 화학물질을 포함한 물이 표면으로 스며 나왔다. 또한 많은 주민이 신체의 통증을 호소했다. 뉴욕주 보건당국이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이 지역의 오염도이 확인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 연방환경처는 1978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 지역을 환경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요구하였으며, 문제의 학교를 폐쇄하였다.   출처: ‘환경사전’ 환경운동연합

     미군기지 문제가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잘 모르는 대표적 문제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고요.
    _ 미군기지가 잘 보면 대도시 한복판에 있어요. 대구, 춘천, 군산, 서울… 외곽에 있지 않죠. 
    우리 군부대는 시골에, 우리 눈 밖에 있는데 말이죠. 미군기지가 있던 도시에서 시민발언권이 높아지면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중요해졌어요. 너무 오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최소 50년 이상 피해를 입었던 주민들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죠. 이번 왜관 ‘캠프 캐럴’은 현지 역학조사를 제안 받으면서 제가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여론화가 중요하니까. 
    이번 사안으로 동대구에서 회의를 하는데 대구경북지역이 시민운동이 어려워요. 대구지역 환경단체들이랑 회의를 하는데 그날이 복날이라 제가 삼계탕을 사주고 왔어요. 힘들게들 일하고 있으니까. 

    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이 공통되게 호소하는 문제들이 주로 무엇인가요.
    _ 어느 기지든지 헬기, 공군기지 피해가 높아요. 소음, 유류 오염 등 문제가 생기죠. 매향리 사격장의 경우 오폭으로 인한 사망, 유산, 불임, 불면, 스트레스 등 문제가 심각했어요. 
    이번 왜관의 경우에는 유기용제 오염이 심각합니다. 우리 문제제기로 환경부가 역학조사를 하기로 했어요. 주민추천 전문가로 제가 참여하게 되었죠. 

     지난 8월에 서울역 노숙인을 코레일이 추방하겠다고 하면서 이슈가 됐는데요, 걱정이 많으셨죠? 노숙인 건강지원 활동을 하면서 노숙인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셨잖아요.
    _ 사실 코레일이 서울역사 안 노숙인을 쫓아내겠다고 했을 때 철도공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았는데 서울시가 비난받을 일을 철도공사가 대신 받는 면이 큽니다. 노숙인이 있으면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실제로 철도공사 처지에서는 힘겨운 면이 있어요. 서울역 노숙인 300명.중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10~20명을 선별해서 내보낼 수도 없고. 노숙인들도 ‘우리 이러면 안 된다 ’화장실 깨끗이 쓰자’고 서로 제재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공중시설을 빌려 쓰는 것이니까요. 강제로 쫓아낸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니고… 흐름, 가능성이 있어요. 자체 순기능이 있고 그런 부분을 도와줘야 하는데 서울시와 복지부가 알아서 해라 서로 미루다 결국은 서울역이 나서게 된 것이죠. 서울역 측도 문제는 있죠. 위생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공간이 넓으니까 SOS 센터부터 만들 수도 있고요. 

    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내보내게 되면 노숙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나요.
    _ 그렇게 되면 노숙인 들은 안 보이는 곳, 남산 같은, 자기 영역이 아니었던 곳에 숨어들게 되는 겁니다. 퍼져나가죠. 풍선효과라고 하잖아요. 영등포로도 많이들 갔다고 해요. 문제는 그분들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이에요. 2009년 통계지만 한해 숨진 노숙인이 357명이예요. 하루 한명씩 사망했다는 것인데. 사망원인이 뇌손상이 많아요. 응급처방이 되었으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얘기에요. 이제는 안 보이는 곳에 죽어가겠죠. 그나마 파악이 되고 있었는데.
    8월 21일 코레일이 노숙인을 내보낸다고 하는 그 밤에 서울역에 같이 있었어요. MBC, KBS에서 카메라 나와서 계속 들이대니까 강제로 내보내질 못하더라고요.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노숙인 지원단체들이 서울역사에 들어가 앉아서 밤샘을 한 것은 훌륭한 판단이었어요. 

    여기서 잠시 신문기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주영수 대표는 숫자 한자리수도 틀리지 않고 노숙인 사망통계를 말하였군요. 혹시나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한 게 참 죄송한 마음입니다.   

    <경향신문 2011. 8. 22>
    최근 5년 동안 노숙인이 하루 한 명꼴로 숨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47·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전국 노숙인 쉼터 등록자료(2만2148명·여성 노숙인 854명 제외)와 통계청 사망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8~2009년 노숙인 사망자 수는 2923명으로 집계됐다고 21일 밝혔다.
    조사 결과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명에 불과하던 노숙인 사망자 수는 1999년 95명, 2000년 142명, 2003년 304명으로 꾸준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사망자가 284명으로 줄긴 했지만 2005년 300명, 2006·2007년 325명, 2008년 319명, 2009년 357명으로 3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하루 한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사인은 다쳐서 숨진 경우(664명)가 가장 많았고 술 관련 간질환(412명)이 뒤를 이었다. 암과 심근경색 등 순환기계 질환도 각각 389건, 386건이었다. 일반 사망률 대비 노숙인 사망률은 1999년 1.47배에서 2006년 이후 1.9배 이상으로 높아졌고, 2009년에는 2.14배로 조사됐다.  


     노숙인 건강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_ 노숙인 건강 문제를 제가 처음 학술적으로 정리한 것이 1999년 예방의학회 학술대회 자리였어요. 인기 있는 주제였죠. 발표장이 꽉 찼으니까요. IMF사태를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노숙인들에 대해서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이 거리진료를 시작했어요. 2,300여명의 노숙인에 대한 진료기록을 토대로 그들의 건강실태, 생활을 분석했어요.
    저는 그 때 박사논문을 쓰던 중이었는데 8월말에 을지로 지하도에 가 보았죠. 너무 놀라 눈물이 날 정도였죠. 근처 영락교회에서 나와 밥을 주고 있었는데 700명이 줄을 섰더군요. 충격적이었습니다. 9월에 설문지를 만들어 각 대학 진료동아리 학생들과 설문지를 들고 1:1 조사를 했어요. 정신 심리평가도 했죠. 


     당시 노숙인 규모가 실제보다 적게 추정되는 것을 대표님이 바로잡아 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_ 당시 서울시가 노숙인 수를 발표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자는 사람을 최소 추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죠. 노숙인들 공간이 서울역, 남대문, 서소문 쪽과 을지로 쪽 구역이 달라요. 을지로 쪽 노숙인들은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고, 이분들은 서울역 쪽 노숙인들은 ‘인간 말종’이라고 우습게 봅니다. 양쪽 인원을 보니 5천 명 규모로 추정이 되더라고요. 
    서울시에서 항의전화가 왔어요. 우리가 파악하기로 3천 명인데 왜 5천 명이냐, 근거가 뭐냐. 서울시가 99년 당시 영등포에 <자유의 집>이라고, 3천 명이 들어가는 시설을 지어놓고 노숙인들에게 들어오라고 할 때였거든요. 그 후로는 서울시에서 자문요청하는 전화가 왔죠. 

    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숙인 진료가 진행되고 있다니 놀라운데요.  
    _ 진료는 매주 금요일 서울역 지하도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진료에 참여하는 의대 학생들을  운영위로 조직하고 연합동아리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저는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망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발적으로 모이는 성격이어야 오래 간다고 생각한 것이죠. 제 의견대로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진료소는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조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조직 없이 하는 활동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하지만, 인의협 회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에 대해서 저는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는 활동이 오래간다고 보았어요. 대신 그 학생들을 데리고 1년에 한 번 씩 섬에 가서 진료하면서 공부도 하고 오죠. 노숙인 진료활동 하는 학생들하고 노화도, 소완도 같은 곳에 가서 진료활동하고 토론도 하는 것이죠. 여름마다 섬으로 간 지가 10년이 되었네요. 
    그 덕분에 학생들이 바뀌어서 와요. 진료소 출신들이 해마다 졸업을 할 때마다 ‘나의 진료소’였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10명은 되죠. 이 학생들 불러서 연말에는 제가 꼭 밥을 삽니다. 

    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면서도 그렇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나오다니 놀랍습니다.
    _ 대학교 때 안병욱 민중 신학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예수와 여인들’을 주제로, 예수가 왜 위대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나를 설명하셨죠. 예수가 원래 죽을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 여인들이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안 죽을 수 있나, 하는 거죠. 어머니도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 같은 사모하는 여인도 예수를 보는 눈이… 부활할 때도 마찬가진데 무덤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부활을 안 할 수가 있나, 하는 거죠. 
    저도 비슷해요. 철학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눈빛이... 한해 여름 바빠서 섬에 못 갈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선생님이 안 가시면 우리끼리라도 섬에 가겠습니다’ 하는데 그 눈빛이… 그래서 10년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섬으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조직화라는 목적의식을 갖지 않고 제 일만 한 것 같은데도 조직이 됐다고 할까요. 의과대학 교육이 기술적 교육만 주로 하니까 제가 섬에 가는 것은 교육의 목적도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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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원유유출 사건 때도 바쁘셨죠.  아, 이 사건도 벌써 잊혀진 일이 된 것 같습니다.
    _ 제가 산업의학을 하려고 예방의학을 공부했지만 환경역학 일을 많이 했어요. 미군기지 문제 같은 것이 환경역학이죠. 산업의학은 임상이 중요해지고 환자 개인진단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죠. 예전에는 두 영역이 구별이 안 되었지만. 
    태안은 현재 환경보건센터가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어요. 문제는 4년이 됐는데, 틀은 만들었는데 운영이, 주변 연계해서 하는 운영이 잘 안돼요. 

     벌써 4년이 되었군요. 당시 태안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 같지가 않습니다. 
    _ 원유의 반이 휘발성 유기화합물인데 사람에게 노출되면 안 되는 물질이죠. 그런데 당시 전국에서 사람들이 방제 작업하러 모이고, 주민들도 노출됐죠. 원유덩어리는 바다에 침전되고 양식어패류에 쌓이거든요. 
    양식업을 못하게 됐어요. 상당기간 재배와 채취를 못하죠. 위험한 일은 남모르게 문제되는 것을 파는 것이죠. 주민들은 경제적 피해가 있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일부 암이 늘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가 늘고 자살이 늘었다는 보고도 있고요. 당시 주민대책위장이 굴 양식하던 분이었는데 분신자살한 뉴스도 났었잖아요. 환경오염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지금은 잊혀진 지역이 되었어요. 

     온 국민이 태안으로 달려가서 기름 때 묻은 바위를 닦았는데 노출되면 안 되는 물질이었다니 놀라운데요. 
    _ 초기대응을 잘못했어요. 주민을 제일 먼저 대피시키고 방제작업을 해야 했는데 다 달려가서, 초등학생까지 부모 손잡고… 150만 명이 달려갔죠. 해병대들은 3~4개월씩 해병대 티셔츠 하나 입고 마스크도 안 쓰고 일했어요. 인기가수가 가서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암환자가 늘어날 수 있겠다 생각할 수 있어요. 

    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누구 하나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군요.
    _ 그 때 제 주장이 대피해야 한다, 보호장구 있어야 한다 주장했는데 언론이 안 실어줬어요. 이렇게 봉사열의가 높은데 찬물을 끼얹는 주장을 기사화할 수 없다는 거죠. 녹색연합이랑, 12월 7일 사고가 났는데 12월 16일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언론에도 안 났어요. 어떤 환경단체는 심지어 버스를 타고 단체로 가기도 했죠. 대피하고 제거했어야 하는데. 
    12월 26일 건강대책에 대한 전문가 미팅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주민건강을 생각해서 접근을 막고 보호구 지급하자고 했더니, 회의 주제가 건강영향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라는 거예요. 어떻게…. 원유유출 현장에 가기 전이나 후나 건강에 이상이 없도록 하는 게 우선인데 어떤 이상이 나타나는지 연구하겠다는 것은, ‘생체실험’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죠.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건강피해연구라니…. 

     정부의 존재이유가 의심스러운데요, 재난에 대한 시스템이 전혀 없는….
    _ 20년 전 알래스카 원유유출 사건을 보면 아직도 통제가 안 풀린 데가 있어요. 20년 이상 관리대상인 지역이 있는데 태안은 4개월 후 바로 풀렸죠. 주민지원, 대피, 보상도 없이 사후관리 매뉴얼도 없고. 피해보상이 없으니 주민을 비난하기 어려워요. 위험한 해산물이 유통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죠. 원유유출의 책임자인 삼성도 배상을 안했어요. 피해액수가 2~3조 된다고 추정하는데 겨우 4천억을 보상에 썼어요. 

     음 재난 지역 주민 보호에 대해서는 거의 무정부상태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군요.
    _ 미군기지도 마찬가지죠.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많아요. 과학연구만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주민에게 애정이 있어야 대책도 나오는데 정부가 연구자에게 맡겨버리고 말죠. 
    왜관도 정부가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부 조사해야 하는데, 주민이 50년간 피해를 입었는데, 고엽제만 안 나오면 괜찮다, 생각하는 의도가 명확한 거죠. 주민 추천전문가로 제가 들어갔으니 주민입장에서 생각하여 애쓰긴 하지만. 
    주민들이 50년 세월을 말하면서 헬기가 대포 매달고 왔다갔다 하는데, 무서웠다, 힘들었다 하잖아요. 고엽제 안 나와서 괜찮다고 어떻게 말하나요. 

     노동조합하고도 사업을 많이 하셨죠. 검진사업도 많이 하실 테고…
    _ 노동조합에 대해서 서운한 것도 많고 불만도 많지만 얘기하지 않겠어요. 확실한 것은 노동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유럽 출장을 가서 놀란 것이 북유럽, 독일 같은 곳은 사회구성 주체로 노동조합이 자기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놀라웠어요. 독일 산재보험의 의사결정은 노사 50:50으로 하더군요. 동등하게.

     요즘 개인적인 고민이랄까, 개인적인 이슈는 무엇이 있나요.
    _ 사실 이제는 일을 좀 내려놓고 농사를 짓고 싶어요. 농사라기보다는 템플스테이 같은 걸 한 번 해보니 의외로 체질에 맞더라고요 (웃음). 워낙 나서는 자리를 못해요. 불편해서요. 나이가 들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요. 엊그제 돌아가신 이소선 어머니가 82세에 돌아가신 것인데, 제가 36, 37살 더 살아야 하는 나이인데. 내가 지금 47살이니까 짧게 남았어요. 하고 싶은 거 한 건 얼마 안 돼요. 
    애들한테도 어떻게 얘기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하는 걸까. 뭐가 잘하는 걸까. 무엇이 정답일까 요새 자주 생각해요. 

     하시는 일이 워낙 많아서 하나씩이라도 후계자를 키워야 쉬실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_ 그렇죠. 후계자를 키워서… 제가 구금시설수용자 인권, 국제결혼이주여성 실태조사도 했었고, 오늘만 해도 홈리스 연구회, 도시 공간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고요, 진폐 노동자 문제도 있고. 섬 주민들의 건강문제도 있고, 사회적 소수자,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주로 해왔는데. 한 분야씩 후배에게 가르치고 넘겨주고 있기는 해요.  

     마지막으로 그동안 해 오신 일을 하나로 관통하는 원칙이 있다면 말 해 주세요.
    _ 주변에서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제 일관성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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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남은이야기> 어느 출장검진의사의 야간노동 file
    김현주 / 노동건강연대 /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글을 써달란 요청을 받고 난감했다. 최근 이삼년간 상당한 과로에 시달리다 보니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 차분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쓰겠다고 할 염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건강진단업무를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써도 괜찮다면 해보겠다고 했다. 원고를 쓰기 위해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새벽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날 나는 아침 6시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손석희 씨의 말투가 약간 비장하게 들려왔다. 계속 들어보니 그날이 <손석희의 시선집중> 10주념 기념일이라, 첫 회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다시 들려준 것이었다. 십년을 한결같이 새벽을 지켰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손석희 씨는 문화방송에서 자신을 아침 방송용으로 뽑았다는 설(說)이 있다고 전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아, 아무리 대단한 아나운서라 해도 생체리듬을 거역하는 일은 힘들구나 싶었다. 애청자와 함께 하는 생방송이었는데, 새벽 여섯시에 출퇴근을 한다는 어느 교대근무 노동자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40분 동안 이 방송이 늘 곁에 있어주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컴컴한 새벽길에 집을 나서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깊은 공감이 갔다. 우리 출장검진팀이 병원을 출발하는 시간은 대략 아침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이다. 퇴근 시간은 병원 규정인 오후 다섯 시 반이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일하는 날이 많아 육체적 피로가 누적된다. 아침에 가족들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출근해서 저녁 시간엔 행여 다음 날 업무에 지장 있을까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지내거나 개인의 발전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는 어렵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겐 정신적인 부담도 심해지는 근무조건이다. 어떤 날은 새벽 네 시 반에 병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검진 대상 회사의 야간근무자들이 퇴근하면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거리 출퇴근자인 나는 집에서 병원까지 갈 수 있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그 전날 병원 기숙사에서 잔다.
     
    몇 년을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궁시렁궁시렁거리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그날 아침은 유독 피곤하고 출근하기 싫었는데, 새벽 배달된 우유를 보고 이걸 배달하는 이는 몇 시에 나왔을까 생각하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데 투덜대지 좀 말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출근하던 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손석희도 힘들고 그 방송과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고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위로는 해결책은 아니리라. 출장건강진단을 하러 가서 처음 만나는 수검자들은 흔히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들이다. 건강진단이고 뭐고 다 귀찮으니 얼른 집에 보내달라는 사람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다. 여건이 좀 나아서 검진하는 날을 여러 날로 잡아 주간근무자만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하는 회사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병원은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검진을 할 때 증상문진표를 작성하도록 하는데, 교대근무 사업장에선 많은 노동자들이 피로와 수면문제를 호소한다. 고혈압과 고지혈증과 같은 기초질환 유병율도 비교대근무 사업장에서 더 높고, 음주, 흡연, 운동부족과 같은 위험요인도 더 많기 마련이다. 야간 근무가 끝나고 나면 잠이 안와서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야간근무하고 나면 꼼짝도 하기 싫어서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 피곤할 때 담배 한 대라도 피워야 좀 낫다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그렇게 일하고 난 다음날 새벽 네 시, 출장검진하러 떠나기 전 먹을거리를 사러 들른 편의점에서 역시 피곤한 얼굴로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는 청년의 얼굴을 보면 이건 정말이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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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8. 야간에 꼭 필요한 노동? 

    생각해보면 보건의료산업이나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분, 장치의 특성상 24시간 가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 등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오밤중이나 꼭두새벽에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워 일하는 것도, 일상생활용품을 사고 파느라 편의점이나 할인점에서 누군가 잠을 안 자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야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병원이나 발전소, 철강 산업 등 업무 특성상 야간근무를 그만둘 수 없는 곳들도 있다. 이런 경우 노동자의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게 야간 근무 일정을 짜고, 건강관리를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 노동기구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야간근무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업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침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도 충분하진 않지만 유사한 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십 년 동안 수많은 사업장을 다니면서 검진을 하고 노동자 건강상담을 하고 사측 관리자들에게 보건관리업무에 대한 조언을 해온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한숨 나오는 일이 더 많다.    
     
    올해는 야간근무로 인한 건강문제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유난히 생각을 많이 했다. 내 몸과 마음도 여기 저기 아팠지만 집에서 잠만 자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병원의 검진업무를 그만두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검진업무를 그만둘 수 있었지만 내가 만났던 야간노동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다. 출장검진업무를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아침 잠 푹 자고, 불가피하게 밤 근무 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한 휴식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야간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적 책임이 있는 전문가로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려면 나 스스로의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시간 노동은 야간 노동 못지않게 건강에 유해한 근무조건이다. 그래서 일단 당분간은 하루 8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원고 제출이 3일 늦었다. 노동건강연대에 일러스트 자원활동을 하시는 분이 나 때문에 휴일에도 일을 하시게 될까봐 죄송스럽다. 노건연 회원으로서 하기 미안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소식지 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비표준적 근무시간대에 일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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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3. 일본의 심야,장시간 노동에 대한 현실과 대책 file
    스즈키아키라 / 노동건강연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일본도 한국 못지않은 장시간 노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나라이다. ‘과로사’ 발음 그대로 Karoshi 라는 영어단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이래 다양한 노동자 보호장치가 마련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그 대책들을 살펴보고 현실에서의 적용은 어떠한지 현지 방문 면담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 심야업 종사자 건강검진을 제도화하다


    1972년 일본에서는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노동기준법’에서 안전보건을 분리시켜 ‘노동안전위생법’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심야업 종사자에 대한 건강검진이 제도화되었다.


     특정업무 종사자 정기 건강검진 제도

    특정업무 종사자에 대한 검진이 정해지면서 심야업도 그 범주에 포함되었다. ‘특정업무’에는 고온 업무, 저온 업무, 방사선노출업무, 식물성/동물성/광물성 분진 업무, 이상기압 하 업무, 진동 업무, 갱내 업무, 중량물 취급 업무, 소음 업무, 납/수은/비소 등 유해물 업무, 병원체 오염 업무 등이 있다.

    이러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 사업주는 해당 업무에 배치전환 시, 혹은 매 6개월마다 정기 건강점진과 같은 항목의 건강검진을 실시해야 한다 (위반 시 50만 엔 이하의 벌금).

    이 특정업무 검진과 별도로 분진, 유기용제 등 유해요인에 의한 건강영향을 조기에 발견하고 파악하기 위한 특수건강검진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 심야업 종사자 건강검진의 내용

    심야업에 해당하는 시간대는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5시를 말한다. 과거 6개월 평균하여 한 달에 4회 이상 이러한 심야 시간대에 종사한 노동자는 검진을 받아야 한다.

    검진 항목은 일반 검진과 같은 내용이다.



    1. 병력, 업무력 조사

    2. 자각증상, 타각증상 유무 검사

    3. 키, 몸무게, 시력, 청력 (1,000 4,000Hz) 검사

    4. 흉부 X선 검사 및 객담 검사

    5. 혈압 검사

    6. 빈혈 검사 (Hb, RBC)

    7. 간기능 검사 (GOT, GPT, γ-GTP)

    8. 혈중 지질 검사 (LDL 콜레스테롤, TG, HDL-콜레스테롤)

    9. 혈당 검사

    10. 뇨 검사 (당, 단백)

    11. 심전도 검사 (안정 시)

    12. 복위

    * 흉부 X선 검사는 1년에 한 번.

    ** 키, 객담, 빈혈, 간 기능, 혈중지질, 혈당, 심전도는 의사 판단으로 생략 가능.


     심야업 종사자의 자발적 검진

    심야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건강에 대한 불안도 높아지자, 노동자가 스스로 받은 검진 결과도 인정하고 사업주가 사후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가 2000년 4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제도 하에서, 검진 결과 제출 후 사후 조치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실시 의무가 있지만 검진을 받을지 여부, 그리고 결과 제출 여부는 노동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 때 검진 비용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 이용 촉진 목적으로 비용 지원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 지원제도를 이용한 노동자는 2007년도에 2,485명이였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50대 34.7%, 40대와 30대가 24.2%였고, 독립행정법인 노동자복지기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79.8%가 건강상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이 지원제도는 국가 재정 점검으로 2010년에 종료했다.   


     심야업 검진의 실태

    표1~표3은 2005년에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노동안전위생 기본조사” 결과 중 일부를 보여준다. 전국에서 10명 이상 상시고용 사업장 약 1,200개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들 10명 이상 상시 고용 사업장에서 심야업에 종사한 노동자 비율은 총 15.0%로 나타났다 (표 1).



    표 1. 사업장 규모별 심야업에 종사한 노동자 비율

    사업장 규모

    심야업 종사 노동자 (%)

    1,000명 이상

    20.6

    500-999명

    17.8

    300-499명

    17.3

    100-299명

    21.0

    50-99명

    11.7

    30-49명

    13.3

    10-29명

    10.5

    전체 

    15.0


    산업별로 살펴보면, 심야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의 비율은 34.1%이며, 운수업이 55.5%로 가장 높고, 전기/가스/열공급/수도업 46.0%, 음식점/숙박업 43.9% 순이다. 심야업 종사가 있다고 대답한 업계 비율은 5년 사이에 10.4포인트 늘어났다. 자발적 검진 결과를 제출한 노동자 비율도 운수업, 전기업에서 높았다 (표 2).


    표 2 심야업 종사 노동자 유무 및 자발적 검진 현황

    단위: %

    업종

    심야업 

    종사자 있음

    자발적 검진 결과를 사업주에게 제출한 노동자 있음

    건설업

    18.9

    1.6

    제조업

    25.2

    6.9

    전기/가스/열공급/수도업

    46.0

    15.1

    정보통신업

    26.4

    5.8

    운수업

    55.5

    16.6

    도매/소매업

    36.0

    1.0

    음식업/숙박업

    43.9

    4.4

    서비스업

    38.4

    4.3

    2005년 계

    34.1

    5.0

    2000년 계

    23.7

    5.4



    한편, 자발적 검진 결과를 제출받은 사업장 중 심야업 종사 횟수를 줄이거나 배치전환 등 사후조치를 강구한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 비율은 전체 19.2%로 나타났다. 심야업 종사자 비율이 높은 전기/가스/열공급/수도업에서 0%인 이유는 불분명하다.



    5 그림_특집6.jpg

     사후 조치(심야업 횟수 감소, 배치전환 등)를 강구한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 비율 


    심야업 종사자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지만 후생노동성은 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건강검진 실시 사업장과 노동자 수는 파악하지만 심야업 종사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통계가 없다. 심야업 검진에 대해서는 일단 법적 규제가 존재하지만, 검진 결과가 노동자 건강 유지나 증진에 얼마나 기여하며 현장에서 어떤 갈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면담에 응한 후생노동성 담당자도 알지 못했다.



    § 장시간노동에 대한 의사 면접 지도


     “과로사” 인정 기준 개정 - “과중 노동” 대책 마련


    2000년 7월 일본 대법원은 자동차 운전기사에 관한 행정소송 판결에서 업무의 과중성 평가에서 만성 피로나 취업 양태에 응하는 여러 요인을 고려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 판결에 기반하여, 2001년 12월 후생노동성은 발병 전 6개월 동안의 장기간 피로 축적을 고려하는 새로운 과로사 인정 기준을 만들었다. 종래 발병 전 1주일의 부하를 인정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개정한 것이다.

    새로운 인정 기준 책정을 위해 전문가위원회가 구성되고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뇌/심장 질환 인정 기준에 관한 전문 검토회 보고서>가 그것이다 (2001년 11월).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장기간에 걸친 장시간 노동이나 그에 의한 수면 부족에서 비롯된 피로 축적에 의한 건강 영향에 대해 ① 발병 전 1개월 내지 6개월 동안, 1개월에 대략 45시간을 초과하는 시간 외 노동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업무와 뇌/심장질환 발병과의 관련성이 약하지만, 대략 45시간을 초과하고 시간 외 노동시간이 길수록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서서히 강해진다. ② 발병 전 1개월 동안 대략 100시간 또는 발병 전 2개월 내지 6개월 동안 1개월 당 대략 8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 외 노동이 인정되는 경우는 업무와 뇌/심장 질환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


     노동자의 스트레스와 과중 노동 대책

    일본 사회가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경제활동의 국제화, 규제완화에 동반하는 산업구조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기업 간 경쟁 격화, 능력주의/성과주의적인 임금/처우 도입, 노동시간의 장단 양극화 속에서 노동자의 60%가 일에 대해 강한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2003년, 업무에 의해 명백한 과중 부하로 뇌/심장 질환이 산재 인정된 건수는 312건이었다. 또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를 원인으로 정신장애 발병, 혹은 정신장애에 의한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경우가 108건이었다. 

    후생노동성은 2002년에 “과중 노동에 의한 건강장애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자 건강 확보를 추진하도록 새로운 대책들을 실시했다. 이때부터 “과중 노동”이라는 단어가 후생노동성에서 쓰이게 되었다.

      

     장시간 노동자에 대한 의사에 의한 면접 지도

    2006년 4월, 노동안전위생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50명 이상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자에 대한 의사 면접 지도가 의무화되었다. 그리고 2008년 4월부터는 50명 미만 사업장에서도 면접 지도 실시가 의무화되었다.



    사업주는 노동자의 시간 외/휴일 노동시간에 따라 아래와 같이 면접 지도를 실시해야 한다.


    ① 시간 외/휴일 노동시간이 한 달에 10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로서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의사에 의한 면접 지도를 확실히 시행해야 한다.

    ② 시간 외/휴일 노동시간이 한 달에 8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로서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의사에 의한 면접 지도를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③ 시간 외/휴일 노동시간이 한 달에 10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 또는 한 달에 8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 내지 6개월 평균 한 달에 8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의사에 의한 면접 지도를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④시간 외/휴일 노동시간이 한 달에 45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로서 건강에 배려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면접 지도 등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강제력이 떨어지는 제도화

    장시간 노동자에 대한 의사 면접 지도는 한 달에 100시간 초과 노동자에 대해서, 그것도 신청한 노동자에 대해서만 의무화되어 있다. 100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자에 대한 의사 면접 지도는 강제력이 없다. 이 부분은 법제화 과정에서 경영계에 반발 때문에 후퇴한 것이다.


     의사 면접 지도 실시 상황 (2010년)

    2010년에 장시간 노동자에 대한 의사 면접 지도를 실시한 사업장은 총 16.6%이었다. 2005년 조사에서 100시간 초과 노동자 비율은 13.4%, 이 가운데 면접 지도를 받은 노동자 비율은 8.6%이었다.

    면접 지도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의 약 80%는 대상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상자가 있어도 면접 지도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면, 300명 미만 사업장의 70%, 300명 이상 사업장 100%가 노동자 신청이 없었다는 것이다 (표 3, 그림 6).


    표 3. 사업장 규모별 면접 지도 실시 현황

    단위: %

    사업장 규모

    면접지도를 

    실시하지 않았다

    면접지도 미실시 이유

    대상자 없었다

    대상자 있었지만 안했다

    50명 미만

    2.4 

    13.7 

    86.3 

    50-299명

    26.3 

    27.6 

    72.4 

    300명 이상

    47.0 

    40.0 

    60.0 

    전체

    16.6 

    20.1 

    79.9 


     5 그림_특집7.jpg 

                                  대상자 있었지만 면접지도 미실시 이유


    한편 현장에서 산업보건의사로 면접 지도를 담당하는 의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의무 규정에 상관없이 장시간 노동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의사 면접 지도를 실시하는 사업장이 많다고 했다. 이는 만일 장시간 노동자가 쓰러져 민사소송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 동안의 전례들을 볼 때 기업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실시는 기업이 해야 하는 안전(건강) 배려의무 이행의 일환으로 민사 판례에서 자리잡고 있다.


     건강 우려되는 시기를 놓치는 면접 지도

    현장의 산업보건 의사는 이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면접 지도가 필요한 시기, 즉 장시간 노동에 의한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 시점에 면접지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면접 지도의 기준은 한 달 10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이 시간 계산은 장시간 노동을 한 다음 달에 집계가 된다. 그리고 의사에게 면접 의뢰가 이루어져 실제로 장시간 노동자와 면접을 하는 시점은 약 두 달 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의사 면접 지도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대책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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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2. 교대근무는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이다 file
    임신예 /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경희대학병원 산업의학과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 중 교대근무자 1,773명과 비교대근무자 267명을 대상으로 한 교대근무의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교대근무자들의 84%가 ‘수면 장애’로 고생한다고 한다. 수면 장애 증상으로는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과 주간에 졸리는 증상 등이 보고되었다. 또한 전체 교대근무자들 중 75%가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교대근무 근로자들이 힘들어 하는 수면 장애는 그 자체의 건강영향도 문제이지만, 이로 인해 삶의 질이 낮아지고 피로가 느껴지며 근무 중 실수를 하게 만들고, 또 퇴근 시 졸음운전으로 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이거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대근무는 수면장애만 일으킬까


    그렇다면 교대 근무가 수면 장애에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교대제란 전체 작업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른 노동자나 다른 조가 연속하여 교대로 일하도록 짜인 근무시간 배치 방식을 일컫는다. 더 넓은 의미로는 일반적인 낮 근무시간을 벗어나 근무하는 모든 형태를 포함하며, 교대여부와 상관없이 밤이나 새벽에 근무하는 형태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산업화가 먼저 시작된 서구에서는 교대근무에 의한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 건강영향이 나타나는 기전을 밝히고, 수면 장애를 개선하는 여러 방법들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교대근무가 우리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경로는 인간의 몸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생체 일주기리듬(circadian rhythm)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인류는 진화의 초기부터 빛이 있는 낮에 활동을 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는 생활방식을 취해 왔다. 그러다가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밤에도 약하지만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전기와 전구의 발명으로 밤에도 낮처럼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소화불량부터 당뇨병까지 : 교대근무의 건강영향


    오늘날과 같은 야간 노동의 역사는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며, 이는 인류가 그동안 적응해왔던 시간에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것이다. 더구나 다수의 사람들이 밤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잠을 자는 생활은 가족 행사 참여나 일상적인 가족들 사이의 대화 같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그럼, 지금까지 교대근무의 건강영향에 대해 어떤 것이 연구되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수면 장애 외에도 식욕 부진과 소화불량, 식사 전후의 상복부 통증, 배변 습관의 변화(변비 혹은 설사), 공복 혹은 식후의 속 쓰림, 복부 팽만감, 체중 변화, 메스꺼움 같은 위장관 증상 및 소화성 궤양 등의 위장관질환, 근무 중 졸림증 및 피곤함으로 인한 손상은 물론, 당뇨병, 간질, 갑상선기능 항진증 등이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뇌졸중,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질환, 암 및 자연유산, 조산, 저체중아 출산과 같은 생식보건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해외 연구들은 교대근무가 질병, 특히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대근무가 정상적인 생체리듬과 일치되지 않고 본래의 수면/각성 주기에 문제를 일으키며, 사회생활 및 가정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줄임으로써 스트레스를 심화시키고, 이로 인해 흡연, 불규칙한 식사습관, 영양소가 불량한 음식 섭취 등 행동 변화를 초래하여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5 그림_특집4.jpg
     교대근무가 질병을 일으키는 질병 설명 모델 


    교대근무의 건강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들


    교대근무 노동자들에게서 교대근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들을 살펴본 역학연구들을 간략히 소개하려 한다. 이러한 역학 연구들의 결과를 보고할 때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 또는 반대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관련 인자들을 보정한다” 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표현이 언급되면, (아직 ‘원인’으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교대근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관련 인자들을 보정한다”는 것은 교대근무 외에 심근경색증이나 암 발병과 관련된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나이, 성별, 흡연, 음주, 콜레스테롤이 높거나, 가족력 등의 영향도 함께 고려했다는 뜻이다. 또한 역학적으로 ‘원인적 연관성’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양-반응관계이다. 이를테면, 어떤 원인에 노출되지 않으면 병이 생기지 않고, 조금 노출되면 발병 위험이 조금 증가하고, 많이 노출되면 발병 위험이 많이 높아지는 것처럼, 원인으로 추정되는 조건의 노출수준(양)에 따라 질병 발생(반응)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 심혈관질환

    우선 교대근무와 뇌혈관질환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를 찾아보았다. 현재까지 교대근로자들에서 뇌졸중과의 관련성을 조사한 연구는 많지 않다. 스웨덴에서 펄프와 제지공장 근로자 코호트의 사망자료를 조사한 결과, 교대근무자들이 주간 근무자들에 비해 뇌경색으로 사망할 위험이 비록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지만 1.5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대근무기간이 5년 미만인 군에서 뇌경색 위험이 유의하게 4.57배 높아졌다. 또한 미국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관련 위험인자들을 보정한 후 뇌경색 발병 위험이 교대근무기간 5년마다 4%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뇌경색을 확진 받은 사례들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 특히 야간근무기간이 15-19년인 경우 위험이 1.42배 증가하여 야간교대근무 기간이 긴 간호사들에서 위험이 어느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교대근무와 심혈관질환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다. 종이와 펄프 제조공장 근로자 중 394명의 교대근무자와 110명의 대조군을 15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낮근무자에 비해 교대근무자에서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이 비록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지만 1.4배 증가했다. 교대근무기간을 좀더 세분하여 분석한 결과, 교대근무기간이 2-5년인 경우 1.5배, 6-10년인 경우 2.0배, 11-15년인 경우 2.2배, 16-20년인 경우 2.8배로 증가하여 교대근무기간이 길어지면서 관상동맥질환 위험도 증가하는 양-반응관계가 관찰되었다. 특히 근무기간이 11-20년인 군에서는 위험 증가가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하지만 근무기간이 21년 이상인 군에서는 오히려 위험이 다시 낮아지는데, 이는 ‘선택효과 (selection)’ 때문이다. 연구 대상자들 중 교대근무 시작 후 3년만에 63%가 의학적 또는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낮 근무로 전환했으며, 결국 매우 건강한 소수의 노동자들만이 20년 이상 장기간 교대근무를 지속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에서는 나이가 많아지고, 교대근무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관상동맥질환 발병 위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국 간호사 대상의 연구에서도, 42-67세 간호사 79,109명에서 1988년부터 4년간 심근경색증 및 관상동맥질환 발생 여부를 추적조사했다. 관련된 심혈관질환 위험요인들을 보정한 후, 대조군에 비해 야간교대근무 경험군의 관상동맥 질환 위험이 유의하게 1.31배 높아졌으며, 야간교대근무기간과 관상동맥질환 발생 간에 양-반응관계가 관찰되었다. Bøggild 등이 교대근무와 심혈관 질환 간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수행된 역학 연구 결과들을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교대근무자에서 대조군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40% 높다.  
    심혈관 질환 자체뿐 아니라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들에 대해서도 여러 연구가 수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사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 고중성지방혈증, 저HDL 콜레스테롤혈증, 고혈압, 공복 시 고혈당 중 3가지 이상의 문제를 가진 경우를 지칭한다. 대사증후군이 중요한 이유는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교대근무자들에서 대사증후군이 발생하는 이유는 혈당과 중성지방 등의 대사장애, 스트레스, 생체리듬의 파괴, 수면 장애, 활동량 감소 등 때문이다. 수면 부족은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렙틴을 감소시켜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이는 식욕을 증가시켜 결국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아직까지 교대근무가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분명한 기전이 밝혀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앞에서 제시한 여러 원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동맥경화증, 대사증후군, 제2형 당뇨병 등이 나타나서 결국 심혈관질환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 암
    다음으로 중요한 질병이 “암”이다.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국제암연구소(IARC)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환경들이 암을 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기관인데, 2007년에 꽤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교대근무가 생체 일주기 리듬에 장애를 일으켜 결국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 야간근무를 포함하여 교대근무가 인간에서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제한적이지만, 동물을 대상으로 매일 밤에 빛을 노출시킨 실험 결과 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교대근무로 인해 야간에 빛에 노출되면 생체 일주기 리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멜라토닌 생성이 감소하고 이어서 에스트로겐 생성은 증가하며, 이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암인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교대근무로 인해 생체 주기 리듬이 깨지고, 몇몇 유전자들에 장애가 발생하며, 축적된 수면 부족은 여러가지 내분비 리듬에 변화를 가져오고 면역계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교대근무와 관련된 암에는 유방암, 전립선암 외에도 대장암과 기타 다수의 암들이 포함된다. 그 중 가장 많이 연구된 것은 유방암인데, 교대근무로 인해 유방암 발생 위험이 ‘어느 정도 (moderately)’ 증가하며, 특히 교대근무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유방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여, 여성 야간작업자들에서의 유방암 발생 위험은 약 1.51배 높아진다고 한다. 전립선암의 발생 위험 또한 ‘어느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대장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악성 임파종 등의 관련성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연구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 손상 : 사고의 위험
    다음으로 손상과의 관련성을 살펴보자. 그동안 교대근무와 사고 간의 관련성을 조사한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아침 근무에 비해 오후 근무 시 재해 발생율이 18.3% 증가하고, 밤 근무시에는 30.4% 증가한다. 특히 밤 근무 중에서도 두 시간째 (11-12시) 위험이 약 20% 증가하여 최고가 된다. 밤 근무를 연속해서 할 때 사고 위험은 밤 근무 첫날을 기준으로 했을 때, 둘째 날 6%, 셋째 날 17%, 넷째 날 36% 증가한다. 낮 근무를 연속해서 할 때에도 사고 위험이 증가하기는 하지만 그 크기는 밤 근무 때의 약 1/2 수준이다. 근무시간이 길어지면 근무 초반에 비해 후반에 위험이 증가하며, 초과 근무시간 및 주당 근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재해율이 높아진다. 또한 휴식 후 근무가 시작되면서 다음 휴식시간까지 사고 위험은 직선형으로 증가한다. 교대근무 중에 재해가 증가하는 이유는 정상적으로 수면을 취해야 하는 시간에 일을 함으로써 각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실수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군에서 고정 밤근무군보다 ‘사고’ 위험이 더 높다.

     수면장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교대근무자들에서 가장 심각하고 빈번한 건강문제는 수면장애다. 정상적인 수면 주기는 각성기 (수면 0단계) → 얕은 수면에서 깊은 수면 (1-4단계) → 렘수면 (렘 단계, 빠른 안구 운동 단계, 혹은 꿈 수면) 으로 이루어진다. 2단계 수면 혹은 렘수면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수면의 질이 상당히 떨어진다. 교대근무자들의 경우 야간 및 아침근무 시에는 수면시간이 1~4시간 정도 줄어들며 깊은 수면인 3-4단계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2단계 및 렘수면 단계가 감소하여 수면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떨어진다. 
    강원대학교 연구팀이 2004년에 자동차 공장 생산직 남성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정 주간근무 노동자의 주간근무 기간 중 평균 수면 시간은 6.77시간이었고, 교대근무 노동자들의 경우, 주간근무 시 평균 7.02시간, 야간근무 시 평균 5.86시간으로 야간근무 때 수면시간이 상당히 짧았다. 반면에 주말에는 교대근무 노동자들이 고정 주간근무 노동자보다 수면시간이 훨씬 길었다.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응답한 경우는 주간 근무자의 14.81%, 야간근무자의 24.41%였다. 주간교대근무에 비해 야간교대근무에서 심한 졸림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호소한 경우 근무 끝나고 심한 졸림을 호소하였다. 밤 근무가 끝났을 때의 평균 각성도는 6.77, 고정주간근무는 5.05, 낮교대근무 시는 5.13으로 밤 근무가 끝난 후에는 졸림 현상이 심해졌다. 야간근무 때 심한 졸림은 작업시작 상태에서 9.9%, 작업이 끝난 시점에서 54.6-66.1%로 작업이 끝날 때 쯤 절반 이상이 심한 졸림 상태에 있었다. 근무 직후의 심한 졸림과 강한 관련성이 있는 요인들로는 교대형태, 노동시간, 야간노동시간, 수면의 질과 양, 라인작업, 노동강도 변화 등이었다. 해외 연구에서 교대근무 상태 변화와 수면 및 졸림 간의 연관성을 5년간 추적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관련 요인들을 보정했을 때 교대근무를 시작되면 수면 입면 및 작업 중 졸음 위험이 1.7-2.9배 높아졌고, 교대근무 및 야간근무를 지속하는 경우 졸음 위험이 1.6배 정도 높아졌다. 반면에 교대근무를 중단하면 수면 장애에서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정신건강
    현대사회에는 스트레스가 많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여러 가지 건강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우울한 기분 및 신체 증상 같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며, 결근 및 사고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도 한다. 스트레스 반응은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궤양 혹은 심혈관질환과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고, 자살이나 급사 같은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도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여러 사업장들이 지속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 근로자들의 스트레스 정도 및 원인 분야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건강 문제 중 하나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업무 능률의 저하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조기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울증이 발생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직장에 계속 근무하는 경우라면 우울증보다는 약한 상태인 “우울한 기분” 또는 우울증 증상이 심각하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교대근무 중인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우울증 여부를 조사하면 실제보다 위험성이 더 낮게 추정될 수 있다. 
    교대근무자에게서 주요 우울증의 유병률은 여자 22.6%, 남자 13.4%라는 보고가 있으며, 교대근무기간 20년까지는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예 교대근무와 우울한 기분간의 관련성을 조사할 목적으로 대규모 코호트 연구가 진행 중이다. 남자에서는 낮 근무군에 비해 교대근무군에서 우울한 기분의 위험비가 높아졌는데, 3교대에서 2.05배로 가장 높고, 다음이 5교대 1.34배, 불규칙 교대 시 1.79배 높아졌다. 여자에서는 5교대군에서 5.96배 높아졌으며, 근무시간이 늘어날수록 우울한 기분의 위험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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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에서 노출되는 여러 스트레스들로 기분 장애가 발생하는 기전 


     소화기 장애 : 불규칙한 식사와 혼자 먹는 밥
    교대근로자들에서 소화불량, 복통, 변비 또는 설사 등의 위장관계 증상 및 소화성 궤양 같은 위장관 질환이 문제가 흔하다. 1994년 방적회사 생산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연령별, 교육수준별, 근무기간별, 작업부서별로 표준화한 위장관계 증상은 3교대군에서 44.9%, 2교대군에서 39.3%, 낮 근무군에서 33.1%로 나타났고,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3교대군에서는 ‘자주 식욕이 없다’, ‘식사 30-90분 후 상복부부위의 통증이 있다’는 호소율이 높았고, 2교대군에서는 ‘대변보는 습관이 불규칙적이다’의 비율이 높았다. 위염, 위궤양 진단율은 낮 근무군 8.7%, 3교대군 18.1%, 2교대군 13.6%였으며,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율은 낮 근무군 1.9%, 3교대군 4.5%, 2교대군 1.9%였다. 일본에서 남자 제조업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를 살펴보면, 야간근로자들은 식이섬유, 아연, 비타민 A, 비타민 D 등의 영양소 섭취가 섭취권장량에 비해 적었으며, 낮 근무자들에 비해 불규칙한 식이 양상을 보였다. 야간작업 시에는 근무하는 직원 수가 더 적기 때문에 작업 중 식사를 할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또한 야간작업을 하는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줄어들고 식사를 혼자 준비해서 먹는 경우가 많아져 영양소 섭취 측면뿐 아니라 가정 및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특히 야간 근무를 마치고는 잠을 자기 위해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론적으로 밤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군은 낮근무군에 비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나게 되며, 중요한 원인으로는 생체일주기 리듬의 파괴, 멜라토닌 분비 감소, 수면 부족, 사회 생활 및 가정 생활 참여 부족, 식사 문제, 흡연 및 음주 등 불건강 행동 요인들과 관계가 있다. 이로 인해 교대근무 근로자들에서는 뇌졸중 및 관상동맥질환과 같은 심혈관 질환, 유방암과 전립선암, 손상, 수면 장애, 정신건강(우울증), 위장관 증상 및 궤양과 같은 위장관질환 등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 국내 연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제까지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연구 결론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을 조사한 여러 연구들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은 낮 근무자들에 비해 나이가 더 어리고, 교육수준이 더 낮고, 수입이 더 적으며, 근무 경력이 더 짧고, 흡연과 음주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즉, 교대 근무군과 낮 근무군은 기본적인 인적 특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두 군으로 나누어 질병 발생 여부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은 교대근무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교대근무에 적응을 못해 아주 힘들거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 근로자는 아예 직장을 그만 두거나 낮 근무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연구 당시 사업장에 근무 중인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교대근무를 그만 둔 근로자들이 포함되지 않아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이 낮게 평가될 수 있다 (“건강근로자 효과”)
     
    국내외에서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을 분석한 여러 연구들을 살펴본 결과, 한국의 연구들은 거의 대부분 단면연구로, “원인적 연관성”을 확정하기에는 제한점이 많은 연구설계를 따르고 있었다. 해외 연구들처럼 뇌심혈관질환 혹은 암 같은 장기간 추적조사 결과들은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고령화도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교대근무에 노출되는 기간도 길어진다는 것이며, 따라서 교대근무로 인해 파괴된 생체리듬의 효과도 누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교대 근무자들의 여러 가지 특성을 고려하고 건강영향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잘 설계된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교대근무 근로자들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산재 인정을 위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교대 근무군에서 장시간 근무까지 하는 경우 건강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의 영향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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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가을호 1. 시간의 주인이 되자 -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 file
    김인아 /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노동시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 투쟁을 계기로 폭발(?)한 측면이 있지만, 몇 년 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도 주간연속 2교대를 가지고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정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0년 9월 30일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장시간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1,800시간 대로 단축해서 고용 창출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 모두에서 주 40시간제와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된다. 
    바야흐로 노동시간의 길이와 노동시간의 배치, 모두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 해가 진 이후부터 해뜨기 전까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의 건강 영향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논쟁의 주제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길이와 상대적 밀도에 대한 것이며, 이를 고려한 배치 형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노동시간의 길이 연장은 ‘외적 연장 (extensification)’이라는 용어로 나타내기도 하며, 같은 노동시간 안에서 업무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내적 연장(intensific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에 교대제 같은 노동시간의 배치 문제까지 포함되면서 노동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의제들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전 국민이 24시간 불야성 사회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 교대노동, 야간노동을 대해 적절한 언어로 정의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대 노동의 형태와 빈도 같은 노동시간의 배치와 분할근무, 변형근로제의 도입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노동시간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해가 떠 있는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 사이에 일하는 것을 ‘표준적’ 노동시간이라고 보고 이를 벗어나는 모든 형태의 노동시간을 ‘비표준적’ 노동시간이라 정의해 사용하고자 한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


    역사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자본의 일차적 수단은 노동시간의 연장, 생산설비의 24시간 가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항상 노자 간에 첨예한 접점을 형성하며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양상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다. 20세기 초 혁명적 고양기에 이루어진 투쟁들은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가져온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자본의 반격으로 인해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성과가 미미한 채로 생산성과 통제가 향상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1848년 프랑스 혁명 당시 12시간 노동법이 제정되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잇따른 유럽의 혁명적 투쟁은 8시간 노동법 쟁취로 이어졌다. 1935년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내각을 장악하면서 주 4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시기 노동시간 규제는 전 산업과 기업에서 일제히 실시되면서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장기간의 끈질긴 싸움에 의해 개선을 쟁취해 가는 경우, 노동시간 규제는 하나의 산업부문으로 확대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한편으로 노동시간의 개선은 쟁취하지만 다른 노동조건은 개악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유연화와 임금유연화, 비표준적 노동에 대한 자발적 동조


    한국은 점차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더구나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불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세 속에서 생산성 향상과 저임금 시급제 구조를 안착시키고 노동자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자리를 나누자고 했지만 정규직 충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임금보전을 위해서는 잔업과 특근을 통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구조 속에서 물량에 목숨 걸고 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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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에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평생직장’ 믿음은 깨졌다. 세계 경제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민감하게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생산의 유연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었다. 정규직이라 해도 회사가 살아남아야 자신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의 물량이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와 특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발적 동조’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작업조직의 유연화, 자본의 흐름에 맞춘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비표준적 노동시간을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국 국립직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4년에 장시간 노동의 건강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관련한 노동시간의 연장을 교대근무 같은 근무 일정의 다양화와 노동일 증가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히 노동자에게 질병과 재해의 위험을 높이며, 노동의 질과 임금에 영향을 준다. 또한 이러한 노동시간은 가족 구성원의 돌봄, 가족 관계의 질, 가족 소득, 가사 노동 부담에도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에게도 생산성, 질, 질병과 재해로 인한 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전체 공동체 차원에서도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비용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개인, 가족,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업주에게도 영향을 주며 이는 사회적인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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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3. “아빠는 언제 우리랑 외식해?” 

    현장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영향은 좀 더 구체적이다. 24시간 노동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일 밖에는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이다. 15년 넘게 연간 2,500-3,000 시간을 일 해온 현대자동차의 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는 날 되면 쉴 줄도 모르고, 놀러갈 줄도 모르고, 어디에 가야 맛있는 곳이 있는지 안 가보니까 모르지요. 있을 때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벌어놓자.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지나가고 돌이켜 보면 벌써 40~50세, 정년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그것도 잠깐이거든요. 나중에 좋은 날이 오면 즐겁게 재미있게 살겠지 그랬는데 그날이 없네요. 항상 부족하고 힘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없이 살아가요. 매일 특근, 잔업, 야간근무 이렇게 살다보니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여름이 가는지 몰라요.” 

    이렇게 일을 해왔건만 그들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시간당 임금이 정해지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시간제 임금체계에서 그들의 삶은 불안하다. 잔업이나 특근을 못하면 현재 받는 임금의 절반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애가 중학생인데 과외를 하거든요. 만약에 특근을 줄이면 과외를 못 받아요. 이게 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임금, 지출 이거를 줄여줘야만 어느 정도 임금이 감해도 생활이 가능하죠.”

    이렇게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삶의 전부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노동시간은 수입과 직결되어 있으며, 가족 및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 성원과의 관계, 자아 존중감과 정체성,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삶은 항상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비표준적 노동시간과 노동시장의 문제


    한편 노동시간 단축은 불안정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정규직의 월 평균 근무시간이 195.7 시간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67.4 시간으로 훨씬 짧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세부 형태에 따라 다시 살펴보면 파견/용역 노동자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206.7 시간으로 정규직에 비해서도 월등히 길다. 기간제 노동자와 한시 노동자의 경우에도 각각 월 평균 노동시간이 189.3 시간과 193.4 시간이나 된다. 


    즉, 비정규직의 짧은 노동시간은 일일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자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러한 고용형태 이외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더 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의 자료까지 포함한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일 것이다. 실업과 반실업의 불안정성 속에서, 그나마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할 때라면 기꺼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시간의 단축 문제가 결코 해결하기 쉬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OECD 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짧다고 알려진 유럽의 국가들은 법정 노동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건강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의 개선


    따라서 교대제 개선처럼 노동시간 배치 방식만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노동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 해결의 방향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노동시간의 건강영향이 일직선의 양-반응 관계가 아니라 U자 모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노동시간이 너무 짧으면 노동시간이 긴 것만큼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표준 노동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것은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는 노동시간뿐 아니라 가사와 육아를 위한 시간을 포함하여 생활시간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대부분의 업종에서 여성의 노동시간이 남성에 비해 짧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시간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취약 집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 세기 넘게 지속된 노동자들의 요구


    잠시 역사를 되짚어 보자. 한번쯤 들어보았을 ‘메이데이’의 유래인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 당시 노동자들의 요구는 다름 아닌 ‘8시간 노동 쟁취’였다. 경찰은 당시 유혈 탄압을 자행했고, 이를 기억하고자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는 매월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하기로 했다. 당시 인터내셔널이 채택했던 연대 결의는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하자”는 세 가지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 치하였던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연맹 주도 하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최초의 메이데이 행사를 치렀다. 일제시대, 한국 노동운동의 여명이었던 그 시기에도 원산총파업 같은 주요 파업에서의 요구사항은 ‘8시간 노동 쟁취’였다. 헤이마켓 사건 이후로 121년이 흐른 2011년에도 여전히 ‘8시간 노동’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심야노동을 하지 않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폭력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전히 한국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야간에 노동을 하는 비정상적인 나라이다. 생물학적 영향을 고려한 야간노동의 기준인 ‘오전 7시 - 오후 6시 이외의 시간에 노동을 하는 경우’를 적용한다면 전 국민의 대부분이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 간호사들과 발전소 노동자들은 3교대로 일터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청소 노동자들은 해도 뜨기 전인 새벽 4시에 일을 시작하며, 나이 지긋하신 아파트 경비 분들은 24시간 맞교대를 한다. 

    노동시간의 주체가 되기 위하여


    노동시간은 빈곤, 임금, 일상의 불안정성, 가족관계와 공동체, 건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적정한 노동시간을 쟁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무엇이 아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일자리의 질, 노동시간의 배치와 이에 대한 자율성, 시간압박, 노동강도의 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젠더 관점과 일-생활 균형의 측면에서의 고려도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를 가진,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노동하는 주체들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본인의 시간을 필요에 따라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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