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에 (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단체연합 주최 [보건의료진보포럼]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사내하청노동자, 요양보호사, 병원노동자와 함께 하는 “무상의료와 노동 - 한국노동자의 삶과 복지” 좌담회를 열어, 노동 현장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임금, 안전,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퀵서비스 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사회보험에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 생활임금을 벌기 위해 밤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의 이야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퀵서비스를 이용하실 때 ‘빨리 가주세요’ 라고 하는 말은 그 노동자에게 위험하게 일하라는 말과 같다는 호소가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좌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이야기의 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정책국은 최근 복지담론에서 빠져있는 산재보험 개혁방안을 연중 토론하기로 하고, 3월 25일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첫 정책 토론회를 열어 “산재보험개혁과제와 개혁의 우선순위”를 검토하였습니다.
* 그림 1. 정책토론회 모습
이상윤 정책국장은 산재보험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자영업자에 대한 보호를 산재보험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산재보험 이용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신청절차를 폐지하고, 의료기관이 분류하는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산재보험에 대한 토론은 계속됩니다.
4월 19일(화) 저녁 8시,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4월13일~18일 <후쿠시마원전사고 한일조사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의 방문보고와 주영수 대표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건강피해를 발표한 주영수 대표는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건강영향을 주지 않는다거나 안전하다는 주장에 대해, 기준치는 무의미하며 방사선량이 낮아도 인체에 대한 피해는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기준치가 계속 낮아져왔는데, 한국정부는 건강피해를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안전하다는 홍보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날 특강에는 노동건강연대 신입회원과 노동조합에서 참석하여 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 그림 2. 특강 참석자들의 모습
4월19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준), 진보정당을 비롯하여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2011 따끈따끈 캠페인”이 선포식을 갖고 캠페인단을 발족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도 ‘노동자의 건강권 수호’라는 주제를 가지고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캠페인단은 100만에 이르는 간병요양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은 물론, 필수적인 의료기본권의 일부로 자리매김한 간병요양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 그림 3. 캠페인에 참가한 간병노동자들
4월 25일 광화문 소라광장에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민주노총, 진보신당, 한국노총)이 최악의 살인기업 시상식을 진행했습니다.
* 그림 4. 살인기업 시상식에서 회견문을 읽는 강문대 공동대표
노동건강연대 이서치경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은 양대 노총의 발언과 “최악의 살인기업 및 특별상 선정 결과 발표”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강문대 노동건강연대 대표가 회견문을 낭독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건설업
제조업
1위 대우 건설 13명2위 현대 건설(주)11명3위 GS 건설 9명4위 포스코 건설 8명5위 대림 건설 7명
1위 대우조선해양 5명1위 현대제철 5명 2위 삼호조선 4명 2위 동국제강 4명
* 특별상 : 이명박 대통령 - 4대강 공사 사망 책임 2009년 8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총20명의 노동자가 사망
* 그림 5. 작업화 위에 놓인 추모의 국화꽃
* 그림 6. KBS 1라디오 [열린 토론]
산업재해로 현재 하루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데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신종 직업 관련성 질병도 크게 늘어, 산재예방과 보험제도 개선을 위해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보호를 위해 보험적용 대상과 기준을 완화해야 하고, 질환이나 사고의 업무 기인성에 초점을 맞춘 보상지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따라 [KBS 열린 토론]은 산재예방과 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과제에 대해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이같은 토론주제가 선정된 것에는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조합과 단체들의 활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토론회에는 박두용 (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한성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우기영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장), 임성호 (한국노총 산재보험국장),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팀장),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가천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참여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토론회 전문을 다음 주소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kbs.co.kr/radio/1radio/kbsopen/interview/index.html
[성명]
한나라당 방안으로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실질적 적용 확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 정책위 산하 빈곤퇴치 태스크포스팀은 지난 3월 20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산재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었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추진한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방안대로 추진된다면 실질적으로 제도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뿐더러 오히려 재정 부담의 불평등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현행 제도 내에서도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50:50 부담하고 있어 실제 적용률은 10%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다른 노동자들은 보험료를 100% 사업주가 내고 있는데, 이들은 보험료의 반을 자신이 부담해야 하니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예 본인들이 적용 제외 신청을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이 제도가 먼저 고쳐져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다른 노동자와 같이 보험료 납부 부담 없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100% 부담한다는 전제 아래 현재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화물트럭 운전사, 덤프트럭 운전사, 퀵서비스 노동자, 대리운전 노동자, 병원 간병 노동자 등의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산재보험 적용 확대가 이루어져야한다. 위와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대상 확대만 이루어진다면 그 효과를 내기 힘들다. 당연히 이들도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적용 제외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한나라당 태스크포스팀은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유도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사업주가 100% 책임져야 할 산재보험료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업주를 보조하겠다는 발상으로 어불성설이다. 해당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사업주가 져야 할 책임을 왜 국민들이 져야 하는가?산재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적용이 배제되어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에는 한나라당도 동의하는 듯하다. 하지만 차별 없이 실질적으로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방안으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노동자와 같이 특수고용 노동자도 사업주가 100%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체계로 산재보험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2011. 3. 21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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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방사능낙진예보, 한국정부는 비를 맞지 말 것과 불가피하지 않은
야외활동 자제권고를 내려야 한다
- 교육당국은 초등학교 휴교령 고려 및 야외활동 자제 권고해야
오스트리아 기상지구역학 중앙연구소(ZAMG)는 7일 한국 중부지역 상공에서 시간당 3마이크로 시버트의 방사능낙진이 있을 것으로 예보했다. ZAMG는 유엔의 위임을 받아 미국과 일본, 러시아 등 전 세계 관측망을 동원해 방사성 물질 누출량과 이동경로를 분석하는 기관으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CTBT)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기관이다.그런데 정부기관과 대한의사협회 등은 현재 방사선 수준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준은 이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 보건성은 (U.S. DHHS, Public Health Service Agency for Toxic Substances and Disease Registry) 전리방사선의 예방에 대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면 해롭다고 가정해야 한다"고 분명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전리방사선량에 대한 연구들에 의하면, 전리방사선은 무역치선형(NTL)모델(아무리 적은양이라도 위험하며 노출되는 양에 비례하여 위험성이 커지는 질병모델)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는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면 그만큼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미연구평의회에 의하면 연간 100 mSv의 전리방사선에 노출되면 100명당 1명이 평생 암에 더 걸린다는 것이고 이는 연간 1 mSv에 노출되면 인구 10000명당 1명이 암에 더 걸린다는 결론이다.(전미연구평의회 2006, National Reserach Council. Health Risks from Exposure to Low Levels of Ionizing Radiation: BEIR VII -. Phase 2 Committee to Assess Health Risks from Exposure to Low Levels of Ionizing Radiation). 한국 전체 인구가 연간 1 mSv의 전리방사선에 노출되면 평생 5,000명이 암에 더 걸린다는 것이다. 매우 적은 양이라도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와 규제당국의 의무인 까닭이 이것이다.지금 한국정부는 낙진이 '무시할만한 양'이리고 말한다. 그러나 ZAMG에 의하면 내일 한국의 중부지방에서는 시간당 0.3마이크로시버트의 낙진이 예상된다. 이를 연간 노출량으로 계산하면 2.628 mSv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러한 낙진이 연간 지속되면 한국인구 중 평생 12,600명 이상이 암에 걸릴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이를 1/100로 줄여 잡는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126명의 암환자 발생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만한 양이 아니다. ZAMG가 0.3마이크로 시버트까지 예보를 하는 까닭이 이것이다.또한 만일 내일 비가 내린다면 그 비는 대기 중 방사선 물질을 한꺼번에 몰고 지상에 떨어지질 수 있어 그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 임산부들의 경우 전리방사선은 위험하다. 어린이들은 커가는 상태이므로 세포분화상태가 활발하고 이는 전리방사선이 분화되는 세포를 주로 공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린이들의 경우 방사선에 노출되면 훗날 수십 년 동안 암에 걸릴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우리는 이에 따라 한국정부가 전국민에게 내일 비를 맞지 말고 불가피하지 않은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릴 것을 촉구하며 특히 교육당국은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하여 최소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휴교령 고려를 포함하여 야와 활동에 대한 자게권고를 즉시 내릴 것을 촉구한다.우리는 또한 한국정부가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하여 방사능 낙진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이에 따른 국민행동지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도 1 mSv이하의 노출환경에서도 노출경로에 대해 주기적으로 검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ICRP 2007 권고) 국민의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그에 따른 대비책 제시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2011.4.6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기자회견문]
노동자 죽이는 4대강 사업 중단하고,
건설기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하라
-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며
2011년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인 법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난 1981년 12월 31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노동자들의 지속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법은 법대로 현실은 현실대로인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10년 한 해에만 노동부 공식 통계상 2,2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 이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다.4월 28일은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220만 명, 하루에 5,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 행위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식적으로 한국은 '산재 왕국'이다. 노동부의 공식 통계상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죽어갔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법 어기기를 예사로 하고 있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있는 사업주를 제대로 지도, 감독하고 있지 않고, 불법 사업장을 엄하게 처벌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이번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대우 건설은 죄질이 좋지 않다. 대우건설은 현재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총13명의 노동자를 죽게 만들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대우 건설은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대우건설 사례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생각지 않는 기업은 비윤리적 기업이라는 사실을 웅변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산업은행이 하루 빨리 대우건설 지분을 매각하려 서두르는 동안 죄 없는 건설 노동자들은 예방 가능했던 사고로 죽어가야만 했다. 실적만을 생각하는 과도한 기업 운영이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것이다.2011년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4대강 공사와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빠른 시일 내에 실적을 내려는 조급증은 너무 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2011년 4개월 동안에만 총12명, 공사 개시 이후 총20명의 노동자가 이 사업 현장에서 죽어갔다. 이는 산재 사망률이 최고로 높다고 하는 건설업 평균 사망률보다도 3.7배나 높은 것이다. 그야말로 4대강 공사가 ‘死대강’ 공사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이 일자, 공사의 책임자라는 장관은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설기업 임원이 이러한 행태를 보여도 이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그런데 건설기업의 무책임을 감독하고 시정해야 하는 정부 장관의 입에서 ‘노동자 실수로 인한 사고’ 운운하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참 한심한 정부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정부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건설기업을 감시하고 감독하여 산재를 줄일 수 있겠는가?원칙적으로 모든 산재는 예방가능하다.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산재 예방의 기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 놓고 노동자 실수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면, 왜 유럽 주요 나라 건설 현장에서는 사고가 적은 것인가? 문제는 한국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한국 기업과 정부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 회피, 속도 경쟁, 실적 위주의 관리와 운영이 문제인 것이다.이대로는 안 된다. 부실 경영과 실적 위주의 경쟁으로 온갖 비리와 국토 훼손의 온상이 되어버린 건설기업에 대한 감시와 개선이 필요하다. 어느 기업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죽게 만들고 있는 건설기업의 비윤리성과 무책임이 시정되어야 한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건설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것일 뿐, 국토를 훼손하고 노동자를 죽이고 있는 4대강 공사 강행을 재고해야 한다. 얼마나 더 죽고 다쳐야 이를 그만둘 것인가? 4대강 공사는 물과 땅과 동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죽이고 있다.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건설기업이 체질을 바꾸고, 정부가 의식과 관행을 바꾸지 않는 이상, OECE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씻기 어렵다. 국제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건설기업과 정부는 건설기업 이윤에 덧칠된 피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2011. 4. 25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신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야간노동 없애자는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정당하다- 정당한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이명박 정부 규탄한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5월 24일 오후 4시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기어이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하였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리하기는커녕 정당한 것이었고, 교섭 상황 역시 예년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 사업주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였고 정부는 이들을 공격하였다.유성기업 사업주와 노동자는 지난 2009년 수십 년 간 지속된 주야 12시간 교대제를 폐지하고 심야노동이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실시를 합의하고 2011년 시행을 약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갑자기 합의 이행에 난색을 표명했다. 이는 곧 현대자동차 사측의 압력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현대차/기아차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전 유성기업 노사 합의 이행 불가”라는 현대자동차의 지배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현재 한국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야간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야간 노동은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고, 노동자 삶의 질과 가족 관계를 악화시킨다. 교대 근무와 야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그 질병으로 사망할 위험도 높아진다. 피로 누적, 수면 장애, 위장 장애, 일과 관련된 사고의 증가 등도 교대 근무와 야간 노동의 결과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심리적 병리 증상과 질병이 증가하는 것도 큰 문제다. 야간 노동이 증가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족 관계가 어려워져서 노동자의 삶의 질이 하락하고 가족 관계가 파괴된다. 오죽하면 고용노동부조차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2011년 한 해 동안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하고 있겠는가?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이와 같이 정당한 요구로 합법적 집단 행위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해산한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경찰은 유성기업에 배치된 경찰을 철수하여야 한다. 더불어 명분없는 공권력 투입을 결정한 경찰청장을 파면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완료된 후, 유성기업 사업주는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다시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
2011. 5. 25 노동건강연대
고용노동부(장관 박재완)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사장 노민기)에 따르면 지난 4월 12일 남동산업단지(인천 소재)를 시작으로 시화산업단지(시흥 소재), 하남산업단지(광주 소재) 등 3개 영세사업장 밀집공단에 「근로자 건강센터」가 본격 운영된다. 이들 「근로자 건강센터」는 이 지역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지역 내 기반을 둔 대학병원의 전문의와 간호사, 작업환경 전문가 등이 상주해 노동자 건강관리에 관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건강․질병에 관한 상담, 직무스트레스 및 근무환경에 대한 상담, 건강진단 결과 사후관리, 업무적합성 평가, 근골격계 질환 및 뇌심혈관질환의 예방 등 각종 업무상질병 예방과 관련된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근로자건강센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업종의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자가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되며, 주말에도 필요 시 문을 여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바쁜 노동자들이 퇴근 이후에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사업장에서 상담이나 교육을 신청할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을 받아 방문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개소를 시범 운영한 후 2015년까지 23개소를 추가로 설치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에 ‘노동자건강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자는 제안은 운동 진영이 꾸준히 제기해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센터가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모형은 그러한 필수 요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듯하다. 향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와 견인이 필요하다.
고용노둥부가 지난 5월 6일 2011년 1/4분기 산재 통계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4분기 산업재해자수는 21,260명으로 전년 동기(23,426명) 대비 2,166명(9.2%) 감소했다고 밝히며 정부의 산재 예방 노력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와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은 전년 동기에 비해 늘었다. 이는 실제로 산업재해가 작년 동기에 비해 더 은폐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다. 최근 고용노동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 및 지도, 감독은 산재를 예방하기는커녕 산업재해 은폐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한 대목이다.
구 분
2011. 3월말
전년 동기
증 감
증감율(%)
ㅇ 사업장 수 (개소)
1,598,378
1,505,238
93,140
6.19
ㅇ 노동자 수 (명)
14,258,532
13,816,509
442,023
3.20
ㅇ 재해자 (명)
21,260
23,426
-2,166
-9.25
․사고성 재해자 수
19,557
21,434
-1,877
-8.76
․사망자 수
524
521
3
0.58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
350
307
43
14.01
ㅇ 재해율 (%)
0.15
0.17
-0.02
-11.76
ㅇ 사망 만인율
0.37
0.38
-0.01
-2.63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
0.25
0.22
0.03
13.64
사용자가 산업재해를 내고도 보고를 하지 않거나 노동자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면 즉각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5월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업주와 노동자의 안전보건 의식을 함양하고 법 준수 풍토를 정착시키려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시정기회를 한차례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해왔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산업재해를 보고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즉각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2차 적발 시에는 600만원, 3차 이상 적발 시에는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재를 거짓으로 보고하다가 적발되면 1000만원, 안전 및 보건 관리자를 선임하지 않다가 들키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즉각 매겨진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풍토를 만들기 위해 과태료 부과 제도를 개선했다. 그간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해도 되는 법으로 인식해 온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법 이행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처벌을 효율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작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란 측면에서 과태료 개선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낼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산재장해노동자가 사회복귀를 위해 직업훈련을 받지만, 3명중 2명은 훈련과 무관한 직종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훈련 중 별도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법에 보장된 교육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윤조덕 박사는 <노동리뷰> 2011년 5월호를 통해 발표한 “산재근로자 직업훈련 실태”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처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훈련을 마친 산재노동자의 취업직종과 훈련직종 사이의 연관성은 40% 미만에 불과했다. 산재판정일 1년부터 3년 이내 장해자를 대상으로 한 '예산사업'의 경우 훈련후 직업복귀자 1182명중 35.9%(424명)만 연관성 있는 직종에 취업했고, 나머지 64.1%(758명)는 아무 관련성 없는 직종에 취업했다. 2008년부터 도입된 직업재활급여사업의 경우도 직업복귀자 343명중 62.4%(214명)은 관련 없는 분야의 직업을 구했다. 이는 장해노동자가 직업복귀를 위해 훈련을 시작하지만, 도중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직업훈련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윤조덕 박사는 “독일의 경우 법적으로 훈련기간을 2년 보장하고 있고, 노동자들도 이 기간 기숙생활 등을 하면서 충분히 훈련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훈련분야에 취업한다”며 “우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직업훈련수당을 지급받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예산사업으로 직업훈련을 받은 산재노동자 1인당 평균훈련기간은 월 2.4개월로, 2009년에 비해 0.4개월 줄었다. 직업재활급여에 의한 직업훈련도 평균훈련기간이 2.6개월로 2009년(3.1개월)보다 0.5개월 감소했다. 산재노동자의 직업훈련 중단자 비율도 증가세다. 예산사업 직업훈련 중단자 비율은 2008년 5.5%에서 2009년 24.8%, 2010년엔 20.6%를 나타냈다. 직업재활급여의 경우 2009년 1.4%에서 2010년 9.5%로 증가했다. 직업훈련을 중단한 이유로는 △ 출석미달 (31.9%) △ 취업 및 자영업 (27.2%) △ 건강악화 (9.7%) 등이었다.
현행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재활 시스템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이고 운동 사회내 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문제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재 예방과 산재 노동자의 원직장복귀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자리 정책 중 하나다.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아침 8시.
마당에 나서는데 봄의 시골 아침 공기는 차갑고 상쾌하고 충만하다.
옆집 민준이 네 앞을 지나면서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눈다.
“출근하는 거야?”
“네, 근데 오리들이 안보이네요? 어디 갔대요?”
“응, 뒤편 닭장에 있지”
“왜요?”
남의 집 오리얘기와 수세미 씨를 뿌렸는데 싹도 안 나온다는 둥, 오늘의 수다를 잠깐 떨다가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나는 인사성 밝은 동네 새댁.
전철역에 들어가며 전광판을 보니 열차가 전전역에 도착해 있다고 나온다. 서울과 달리 역 사이가 멀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케이. 여유롭게 정기권을 충전해도 되겠군.
역사의 한쪽에 있는 기계 앞에 섰다. 정기권 충전을 위해 6만 4천원 지폐를 정신없이 밀어 넣고 나서 돌아보니 내 주위에 할머니들이 모여 서있다.
“새댁아~ 나 차표 한 장만 끊어주게”
주위의 할머니들이 “나도 나도”를 중얼거리신다. 아무래도 ‘누구 하나 걸리길’ 한참 기다리신 듯 하고 때마침 내가 나타났나 보다. 구부러진 허리에 짐 배낭을 짊어지고 주름이 조글조글 한 얼굴로 애교웃음을 날리시다니, 한두 번 부탁해본 솜씨가 아니다.
할머니들의 표를 다 뽑아드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서울 가는 열차는 그새 가버렸다. 30분에 한 대 있는 열차인데... 오늘도 또 놓쳤구나.
* 그림 1. 표 파는 곳은 폐쇄되고 기계들만 즐비하다.
다음 차를 기다리며 대합실 나무의자에 앉는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있는 일. 원망스런 눈으로 창구를 쳐다보지만, 요즘 전철역이 다 그렇듯, 자동기계만 놓여있고 창구는 굳게 닫혀있다. 시골역이라 이용객이 노인들인 덕분에 자주 내가 ‘직원’처럼 표를 뽑아주는 일을 대행하고 있다. 나는 노인들에게 친절한 젊은이.
넓고 한산한 역 대합실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동참한다. 일단 서로 묻는다. 어느 마을에 살고 있고 뭐 하러 서울(혹은 양평 읍내) 나가는지. 마침 양평 장날이라 할머니들이 많다. 표를 끊어줘서 고맙다고 한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옆의 할머니도 내 등을 토닥여 주신다. 잠자코 앉아 “네~”하고 웃는다. 나는 붙임성 좋은 막내딸 같은 새댁.
* 그림 2. 한산한 대합실 풍경, 주민들이 열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철이 도착한다. 할머니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 할머니가 나와 나란히 앉으신다. 양수리에 볼일 있어 나가신다고 한다. 양수리 말 나온 김에 양수리엔 들어온 도시가스가 우리 동네엔 언제쯤 들어올지 한참 수다 떨다가 할머니가 내리고 나는 혼자 남았다.
앞으로도 한 시간 반 이상을 더 가야 하니, 책과 스마트폰은 나의 무기다. 길고 지루한 전철 안에서의 시간과의 싸움이 나를 기다린다.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것 없나...하며 두리번거리니 전철 안의 몇 안 되는 승객들 모두 서로를 관찰하고 있다. 내 맞은 편 할머니가 나를 한참 살피더니 “서울 가셔?”하고 묻는다. 같은 차를 타고 가는 이유로 우리는 이웃처럼 군다.
* 그림 3. 시골마을을 누비는 전철 객차는 승객이 드물다.
한참을 달리니 창밖에 아파트가 한두 개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심역이다. ‘도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골의 끝자락에 있는 역이다. 그래도 아파트가 좀 있는 동네라 사람들이 좀 탄다. 이때까지 객차에 열 명도 안 되던 승객 수가 늘어난다. 동시에 나도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한가롭게 늘어져 있던 등을 곧추세우고 두세 자리에 걸쳐 있던 다리도 곱게 접어 똑바로 앉는다.
여기서부터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셈이다. 사람들도 더 이상 서로를 살피지 않고 각자의 도구에 집중한다. 핸드폰이나 책에.
점점 아파트 숲이 많아지더니 구리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한 도시구역이다. 더 이상 산과 숲은 보이지 않고 온통 고층아파트의 장벽뿐이다. 승객들도 반짝거리는 도시인들이다.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이어폰과 스마트폰은 ‘말 시키지 말아주세요’는 심경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제 노인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젊은 사람들은 눈을 내리 깐다. 나 역시 책에 얼굴을 묻고 옆 사람이 들고 나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창밖은 온통 회색. 동시에 나의 근육과 신경도 회색의 콘크리트에 주파수를 맞춰둔다. 눈길은 책에 고정하고 표정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입가는 야물게 닫는다.
이제는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소용없다. ‘어디 가셔요?’라고 물어봤자 ‘별걸 다 묻네’라며 뚱한 표정을 지을게 뻔하다. 다들 그렇게 서로 묻지 않기로 하고 전철 안의 밀폐된 공기는 그 암묵적 합의를 옆 칸으로 옆 칸으로 확대시켜간다. 그래서 나도 ‘말 걸지 말아주세요’의 뜻을 밝히며 책과 이어폰으로 무장한다.
우연히 앞사람과 눈길이 마주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을 피한다. 궁금하지도, 친근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전철이 거대한 도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고층건물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타고 객차 안의 구두굽 소리가 많아질수록, 아이폰과 이어폰의 수가 많아질수록 공기 중의 깔끔함과 까칠함의 밀도도 높아진다. 전철이 주행하면서의 진동은 나의 몸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댔고 두 시간 가량 진동 속에 흔들리던 나의 체세포들은 한계상황에 도달하였다.
어느덧 나는 도시여자로 변화했다.
7호선을 타고 내방역에 내리자 온통 모르는 사람, 바쁜 사람, 북적이고 있다. 나 역시 한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걷는다. 한손에 6만 4천 원짜리 전철정기권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업무통화를 하며.
길가에 야쿠르트 아줌마도 앉아 있고 유모차 끄는 애기엄마도 있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나는 바쁜 도시의 직장인이다. 오늘 저녁 퇴근하기 전까지, 여기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나의 감정은 도시에 걸맞게 팽팽히 긴장되어 있을 것이다.
<끝>
[2011 보건의료진보포럼 - 한국 보건의료, 이것이 최선입니까?] 행사 가운에 “무상의료와 노동 - 한국 노동자의 삶과 노동” 좌담회에 함께 해주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시 : 2011. 3. 19
장소 :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 108호
사회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발표 : 김혜정 / 서울대병원노동자 (간호사)
이건복 / 요양보호사
김현 / 퀵서비스노동자
황호인 / 대우자동차사내하청노동자
정리 :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그림 1. 좌담회 모습
사회 : 먼저 임금수준을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한국은 전체 고용 중 저소득 노동자가 25%를 차지한다. 미국보다 많은 비율이다. 노동자 평균 임금의 2/3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전체의 1/4이라는 건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여성노동자, 나이든 노동자, 젊은 노동자, 학력이 낮은 노동자, 비정규직이거나 서비스 직종, 가장이 아니거나 파트타임일 경우에 저임금일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노동이 가져가는 비율이 낮다. 노동에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만 보면 20년 사이에 자본이 가져가는 비율이 더 늘어났다. 법정최저임금 미달자가 11.5%라고 한다. 최저임금이 평균임금 대비 32%밖에 안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고 있다.
황호인 : 임금차이가 정규직과 많이 나긴 나는데, 비정규직이라 해도 대공장 사내하청은 (비교적) 많이 가져가는 축에 속한다. 죄송하다. 시급은 최저임금에서 얼마 차이 안 난다. 대공장이다 보니 상여금이 좀 많고, 대공장이 임단협 끝나고 나면 성과급도 정규직의 절반, 명절이나 휴가 때 상품권이 나오기도 한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항상 절반이다. 금속노조 조합원이지만 정규직노동자 위주로 단협을 하기 때문에 사내하청이 단협을 맺어본 적이 없다. 조합에 가입하면 해고하거나 탈퇴 공작을 하고, 노조와 단협을 하면 업체가 폐업한다.
그림 2. 황호인 노동자의 발언 모습
사회 : 임금을 노동자사이에 비교하지 말고, 자본과 노동의 비율을 보자.
김현 : 수입은 저희가 가장 많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니다. 매출을 기준으로 보면 월매출 700만 원까지 간다. 유류비, 장비, 오토바이, PDA를 본인이 사야 하고 700만 원 매출 올리면 기름값, 회사수수료만 해도 400만원이다. 통신비, 식비, 오토바이 수리비도 들어간다. 노동조합이 조사해보니 10만원 벌면 47,500원을 가져간다고 한다. 실제로는 그조차도 안 된다. 매출의 65%가 나간다. 특수고용이다 보니까 4대보험은 희망사항이고, 산재는커녕 상해보험도 안 된다. 타워크레인이 위험1등급인데 퀵서비스가 그 위에 있다.
이건복 : 요양보호사를 아시나요. 치매나 중증노인에게 서비스하는 일인데 재가요양과 시설요양이 있다. 저는 재가요양을 했다. 광진구에 있는 사회적 기업인데, 시급 7천원에 4대보험, 퇴직금 되고 상여금은 없다. 아까 상여금 얘기 들으니 부럽다.
* 그림 3. 토론자로 참여한 보건의료 노동자들 (파일 이름: 이야기_그림3.jpg)
김혜정 : 이런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노동자 현실이 많이 개선되면 좋겠다. 잘 살면 건강하다고 들었다. 맞는 것 같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도쿄사람들 위한 발전소인데 후쿠시마가 고통당하고 있다. 강남보다 강북사람이 못 살고, 병원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크다. 자본가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공개되지가 않아서 얼마 받는지 궁금한 적도 없다. 내 임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가져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들은 얘기로는 13년차에 3교대하는 나보다 13년차 금융인, 교사가 더 많이 받는다. 의사들한테 돈 벌어라 시키고 있다. 평가지표 만들어서 성과급을 주는데. 교수 중에 어린교수가 한 달에 2천만 원을 받고 흉부외과 의사는 한 달에 9천만 원 받기도 한다. 제가 세금 떼고 280만 원을 받는다. 제 월급의 1/3을 받는 분, 반 받는 분도 있다. 최저임금 받는 분 많다. 하청하시는 분들, 청소, 시설관리, 주차관리 하는 분들이다. 병원 시설관리 쪽에 청소하는 분들이 환자이송 할 때 옷을 달라고 했는데 해고되었다.
사회 : 지엠 대우가 어려웠는데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자본에 양보한 과정이 있었다. 최근 자본과 노동의 양상이 변화되었나?
황호인 : 대우자동차에서 지엠 대우로 바뀔 때 1천 7백 명 정리해고 됐다. 지엠이 요구해서. 단체협약이 노동자에게 유리한 형태로 되어 있었지만 지엠이 초기 인수했을 때, 기업이미지를 정상화하려고 했다. 노동자들이 자본압박을 많이 받는다. 무조건 양보해 달라고 한다. 단협도 후퇴하고 노동 강도도 세졌다. 노동자들이 돈을 버는 건 잔업, 특근으로 버는 건데, 기본 8시간 일해서는 돈을 못 번다. 엠이 인수했을 초기에만 해도 잔업특근이 없었다. 지엠 판매량이 늘면서, 대우자동차 시절에는 비정규직이 거의 없었는데, 1천 7백 명 빈자리에 비정규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2006년 2공장이 정상화되면서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2천 3백 명이 들어왔다. 정규직으로 뽑아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정규직노조와 합의해서 비정규직을 받았다. 공장이 정말 잘 돌았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오면서 지엠 미국시장이 죽고 한국 지엠도 여파를 받았다. 공장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절반은 휴업에 들어가고 잔업특근 없애고 위기를 조성했다. 정리해고 안 하려면 비정규직이 나가야 한다는 거다. 정규직 노조가 고용안정 확약서를 쓰고 비정규직 천 명을 해고했다. 자본은 고용을 문제로 불안하게 하면서 이윤은 똑같이 가져간다.
사회 : 이윤은 계속 나는데, 주주 투자자는 계속 가져가고, 노동자는 잘리고, 임금은 줄어든다. 퀵서비스, 요양보호사는 오래된 서비스가 아니다. 이 직업에 들어온 이유를 물어도 될까?
김현 : 퀵서비스 일을 한지 20년이 넘었다. 그 전에는 퀵서비스란 말이 없었고 용역이라 했다. 원래 화물차 운전기사였다, IMF 무렵에 대형사고가 났다. 다시 일어날 수가 없어 시작한 게 퀵서비스 일이다. IMF 때 벌이가 괜찮았다. 화물사고 나면서 3억 원 빚을 졌는데 퀵서비스하면서, 새벽에 야채배달 하면서 3억을 갚았다. 그때는 하루 20시간 일했다. 지금도 하루 18시간 일한다. 갈수록 경기가 안 좋아서 화물 일을 다시 할 수도 없고.
이건복 : 전형적인 저소득층으로 살다가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16년 전 병원 간병을 시작했다. 간병이 참 어렵다. 24시간 간병을 하면 일주일에 하루, 24시간 쉰다. 집을 비우니까 어렵다. 은행구내식당에서 밥도 해보고, 치킨도 해봤다. 일을 조금씩만 하는 게 없을까 벼룩시장을 뒤지다가 저소득층, 정부 보조받는 분들 자활사업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2008년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사회 : 나이 50, 60이 되셔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일거리가 있었나?
이건복 : 제가 여기서 7년차인데, 벼룩시장 보니 딱 한 가지, 청소용역 일을 할 수 있었다. 50대 초반인데 나이 많다고 딱지 맞았다. 요양보호사는 급여는 적었지만 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월 급여 60만원이 안됐다.
사회 : 임금 조건 말씀을 들어 봤는데, 한국노동자 노동시간과 삶의 질이 연관되어 있다. 하루 8시간 일해서는 기본급이 안 되니까 노동시간을 강제하게 된다. 거의 모든 시간을 일에 매달린다. 근속연수도 초단기다. 처음 직장 임금이 가장 높고, 점점 임금이 낮은 쪽으로 직업이 변한다. 정부가 육아휴직에 쓰는 돈이 적으면 적을수록 여성의 직업 참여율이 낮다. 삶의 질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5점 정도 된다. 사회활동하고, 친구 만날 시간이 없다.
김현 : 하루 18시간 일하는데, 명절 당일도 쉬지 않는다. 쉬는 날을 정하는 건 자기 마음이다. 요즘은 퀵이 일감이 많이 없는 때다. 아침 6시나 7시에 출근한다. 시스템이, 집에서 오다받고 시작한다. 하루에 처리하는 게, 18시간 일한다고 할 때, 많이 해야 20건이다. 저는 13건 한다. 9시간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머지 9시간은 PDA 쳐다보면서... 0.1초 차이로 좋은 일거리를 놓칠까봐 밥 먹을 때도 쳐다본다. 퀵서비스 노동자가 서울, 경기에 8만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네크워크 그룹도 600개 기업이 공유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 한 사무실에 20명만 있다고 해도, 강남에만 3천명이 있다는 얘기다. 3천대 1의 경쟁이다. PDA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제일 힘들다. 처음 시작할 때 강남에 앉아서 6시간 동안 한건도 못 찍고 포기하고 집에 간 적도 있다. 일하는 시간은 길고, 수입은 적고, 기사들 경쟁시켜서 스스로 알아서 경쟁하게 만든다. 호홉기도 나빠지고 시력도 빨리 나빠진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시력이 안 좋아져 수입이 줄어든다. 동작도 빠르지 않아서 경력자 우대 같은 게 없는 일이다.
황호인 : 퀵서비스나 청소용역 얘기를 들어보면 밥 먹을 시간도, 공간이 없이 일하신다. 우리는 두 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밥도 먹는다. (웃음) 기본 8시간에, 잔업 2시간을 일하고 주야맞교대 일한다. 주야근무가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생명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해서 주간연속 2교대를 추진하고 있다. 밤에는 잠을 자고 휴일에는 쉴 수 있는 제도를 추진하는데, 만만치 않다. 8시간 근무해서 어려우니까. 정규직이 연봉 5-6천만 원을 받아도, 아이 교육 문제 등 어렵기 때문에 잔업특근에 민감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5명이 하는 일을 3-4명이 하니까, 노동 강도가 세다. 조장이나 여유인력이 일손을 채우는데 비정규는 여유인력이 없어서 무조건 출근해야 한다. 경조사 가면 밉보인다. 잘릴 수 있기 때문에 노는 날 쉬고 싶어도 무조건 특근한다. 공장이 쉬지 않는 이상 법은 휴일을 보장해도 비정규직은 일을 안 하면 계약해지 당한다. 서로가 특근 경쟁하면서 얽매인다. 서럽다. 기계에 매달려서만 일해야 한다. 인간성도 없어지는 것 같다. 8시간만 일하면 정규직도 신문배달하고 알바 나간다. 비정규직에게 8시간 일하라 하면 최저임금이다. 공장은 24시간 돌리려고 하니까 노동자랑 서로 맞는 거다. 생활임금 수준 받으면 일 못 한다. 고리가 안 끊어지는 이상 힘들다.
사회 : 제조업의 월급시스템이 기본급이 너무 작게 책정되어 있고, 일한 시간에 비례해서 받아가도록 하니까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가 없다. 병원 일터는 어떤가?
김혜정 :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있다. 용역은 아니고, 병원이 직고용한 비정규직들이다. 정규직보다 노동시간이 길다. 간호사들은 3교대하는데, 8시간 근무라고 하는데 10시간씩 일한다. 신규간호사들은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근무시간이 몇 시간이냐고 가족이 전화하기도 한다.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조건이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얘기할 시간도 없고 부서에서 휴가, 교육 가려면 눈치 보인다.
이건복 : 8시간 일을 했으면 좋겠다. 두 집에서 4시간씩 8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요양보호사가 100만 명이 배출됐다. 일하는 사람은 20만 명이라고 하는데. 요양대상자는 적은데 제공자는 많다보니 경쟁하고, 대상자를 빼가기도 한다. 일거리가 없다보니 하루 8시간 일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되고 하루 4시간 일하는 사람이 많다.
사회 : 삶과 건강의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노동조건은 다 다른데 공통점은 일하다 다칠 위험이 높은 직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 신청은 어려운 직종이다. 산재보험은 법으로는 비정규직도 적용받는데 보험신청은 못한다. 건강위험도 높고 사고위험도 높다.
이건복 : 요양보호 일을 하기 전에는 부상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이 왔다. 환자마다 특징에 따라, 같은 부위를 계속 쓴다. 침상에 누운 채로 모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 위해서 청소, 빨래, 장보기, 세탁을 다 해야 하고, 목욕, 식사, 욕창관리도 해야 한다. 오른쪽 어깨 인대가 손상돼서 산재신청을 했는데 실패했다. 여성 나이 50대 후반에는 이 일을 안 해도 손상된다면서. 전문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산재를 진행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요양보호사로 산재신청해보는 사람이 내가 처음이니까 끝까지 진행해봤다.
김현 : 산재는, 저희는 평생 가져가야 한다. 일을 하면서 다치는 부위가 많다. 급차선 변경하는 차를 피하려다 혼자 넘어졌는데 일을 못하고 쉬었다. 싣고 다니는 물건이나 학생 태우고 가다 사고가 갈 때는, 운전자는 안 되고 물건과 학생만 보험이 된다. 오토바이 사고 나면 어떤 보험도 안 된다. 운전하다 다쳐서 병원가면 다른 일로 다쳤다고 거짓말해야 치료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상해보험도 배제되고, 어떤 보험도 들 수 없는데 산재보험 되면 정말 좋겠다. 1-2년 안에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계속 싸워보려고 한다. 병원 가려면 걸어가다 넘어졌다, 자전거 타다가 다쳤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5일제 시행 전에는 사고가 별로 없었고, 사고율도 낮았다. 마음이 느긋했다. 하루 8시간 노동 얘기 들으면 가슴이 철렁철렁한다. 노동시간이 길어야 우리 벌이가 되는데. 비정규철폐 외치지만 비정규직 늘어나면서 우리 벌이가 유지되는 거다. 정규직이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면, 우리는 수수료 떼고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번다.
황호인 : 제조업은 대공장이라서 4대보험 가입은 되어 있지만 보험을 이용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자동차 공장은 근골격계 직업병, 과로사, 압착, 사망사고도 발생하는데 중대재해는 산재가 되지만 근골격계 직업병이나 과로는 어렵다. 일하는 게 몸을 비틀거나 기어들어가야 한다든가 하는 작업이 많다. 사람이 비트는 게 아니라 차가 돌아야 하는데, 돈이 드니까 작업자가 움직여야 하는 거다. 정규직은 노동조합 힘이 있으니까 산재가 되지만, 비정규직은 전혀 적용이 안 된다. 작업장은 정규직이 조건도 좋고 에어컨도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고 한다. 비정규직은 춥든 덥든 분진이 나오든 일한다. 사고위험이 높고, 위험요소 많은데도 다치면 잘린다고 보면 된다. 입원하게 되면 여유인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바로 빈자리를 채운다. 입원하는 순간 사직서 쓰고 나간다. 산재처리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잘 싸우는 사람이 공상 정도 한다. 하청업체는 산재신고 들어가면 업체 계약이 안 된다. 중대재해 일어나면 업체가 통째로 계약 해지된다. 각종 질병도 특수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일반검진 대충 받고 넘어간다.
사회 : 조건도 다르고 고용, 노동형태 다른 네 직종을 모시고 얘기를 들었다. 오늘 정규직과 노동조건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정규직이 조건이 좋은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높여야 하는 거다. 무상의료나 보편적 복지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임금 외에 의료, 주거, 복지 같은 사회적 임금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좋은 말씀 해준 네 분께 감사드린다.
이번 호부터 이화평 노동건강연대 회원의 <진료실 풍경> 연재를 시작합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그가 병원 진료실에서 혹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경험했던 보람과 고민거리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직업병을 전공으로 하는 의사로서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지만 소개하려 한다. 직업환경의학과 (구, 산업의학과) 전공의 혹은 전문의들은 산업 현장으로 출장검진을 가곤 하는데 나도 수년전 전문의가 되기 전에 한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비록 전문의 신분은 아니었지만 이미 삼사 년 간 직업병 진단과 치료에 관한 수련을 받은 전공의 ‘고(高)년차’였고, 많은 노동자들을 진료하고 상담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에 출장을 간 공장은 일반적인 검진을 하는 곳이라 특별한 곳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방문했다.
진료를 받는 분들은 이미 1년 전에 일반 검진을 받았기 때문에 각자의 기록부에 이전 검사 결과들이 적혀있었다. 한 아주머니의 기록부에는 작년 검진의 결과인 ‘이상지질혈증 주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수치들이 높은 상태였다. 나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우선 ‘생활습관 개선’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생활습관 개선’이란 다름 아닌 운동, 금연, 혹은 식습관 개선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습관’이 안 좋았다. 1년 전 이상지질혈증을 주의하라는 내용과 운동 및 생활습관 개선에 관한 서면 통보를 받은 뒤에도 보건소나 의원은 가본 적이 없었고 아무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는 듯 했다. 나는 마침 잘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활습관의 문제와 개선 방법에 대해 이 기회에 좀 배우고 가시라는 생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개선 방법들을 아주머니 앞에서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이야기가 잘 안 통하는 것이었다.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주머니, 이상지질혈증이라는 것은 콜레스테롤이 높은 상태를 말하는데 혈관에 문제를 일으켜서 질병을 가져올 수 있으니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우선 당장 약을 먹는 것보다는 운동을 몇 달 동안 규칙적으로 하고 나서 다시 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말씀하시길, “전 운동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생활습관이 나쁜 사람들이 곧잘 내놓는 변명처럼 들렸다.
“그래도 시간을 내셔야지요. 혈관에 병이 생길 수도 있어요.” 생활습관이 불량한 아주머니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엄포를 좀 놓았다.
“일이 많아서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밤이라도 좋으니 공원에 가셔서 한 바퀴씩 도세요.” 밤늦은 시간에 공원 운동장을 빠른 걸음으로 몇 바퀴씩 도는 아주머니들을 본 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시라고 권유를 했던 것이다.
“밤 10시에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11시에요. 1시간 동안 집안일 하고 자면 12시라서 밤에도 운동을 못해요.”
“이른 아침은 어떤가요?”
“6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가족들 챙겨주고 나서 출근하고 8시에 공장에 도착하면 일을 시작해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마음이 있다면 길이 없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주말에라도 하세요.”
“주말에도 일을 해요.”
“일요일도 말인가요?”
“네.”
“아니, 그럼 한 달에 며칠을 쉬세요?”
“하루요.”
처음에는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던 아주머니는 그냥 포기하시는 듯했다. 나도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당황하다가 약을 드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 드리며 상담을 서둘러 마치고 말았다.
이 아주머니에게는 정말 고지혈증 치료약을 먹는 방법 외에는 아무런 개선방법이 없었다. 의사들은 현 의료제도 하에서는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을 많이 토로한다. 그러나 이 분은 교과서적인 치료법을 알아도 이를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을 가진 분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데로 하자면 생활습관 개선이 우선인데, 바로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월급을 좀 더 받기 위한 선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생각하며 상담을 마쳐버렸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나서 받는 월급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충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액수의 절반 정도 되는 적은 돈이었다. 긴 노동시간과 적은 월급. 그것이 문제였다.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지식도 있고, 실천해 볼 만한 좋은 치료법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현실’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좋은 기회를 만나 환자를 깨우쳐주려던 의사로서의 나의 노력은 말 그대로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오히려 나는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하루 몇 시간을 일하는 지조차 정확히 몰랐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 거대한 공단의 한 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게차를 운전하는 한 노동자를 만났는데 역시 ‘생활습관 개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분 역시 보건소나 의원을 방문할 형편은 되지 못했다. 예전에 만났던 아주머니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생활습관의 문제뿐만이 아닌 노동시간의 문제도 있었다. 이 분의 말씀으로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한 뒤 바로 일을 시작하는데,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밤 12시가 돼서 바로 잔다고 하였다. 하루에 6시간 잠을 자는 것 이외에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 붇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시지 말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야 그래도 월급을 좀 더 쥘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요즘 일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일의 내용을 들어보니 하루 종일 지게차로 엘시디 TV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외국에서 월드컵이 한창일 때라 TV가 굉장히 많이 팔려서 두세 달 정도 쉴 틈이 없이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일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은 자신의 몸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몸에 병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규칙적인 운동이나 생활습관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았지만, 그런 말들이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순간에도 나는 왠지 움츠려드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공의 시절과는 달리 전문의가 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일반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노동시간의 문제를 이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노동시간과 관련된 건강 문제는 국내외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일을 중단하거나 직업을 쉽게 바꿀 수가 없으니, 당사자에게 알맞은 처방을 알아도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건강 문제를 상담할 때 일하는 시간과 교대 작업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각자가 처한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이러한 부분들이 의사인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한국도 이제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은 다른 분야와 함께 발전하지 않은 것만 같아서 항상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소위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진정 바뀌어야 할 부분은 ‘노동시간 줄이기’가 아닐까?
저자 : 린다 델프 (Linda Delp), 카를 문테이너 (Carles Muntaner)
논문제목 : 캘리포니아 주 방문 간병노동자의 정치․경제적 상황 (The political and economic context of home care work in California)
출처 : 뉴솔루션즈 (New Solutions) 2010년 20호 (4권) 441-64쪽
노동자안전보건과 환경문제를 실천적 관점에서 다루는 학술지 <뉴솔루션즈 (New Solutions)> 2010년 20호에 실린 “캘리포니아 주 방문 간병노동자들의 정치․경제적 상황”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노인 인구가 점차적으로 증가하면서, 가정에 있는 노인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노동자의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방문 간병노동자들은 주로 여성이며, 저임금과 스트레스가 심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특별히 캘리포니아 주의 방문 간병서비스 프로그램 (IHSS In-Home Supportive Services)을 다루고 있다. 이는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 방문간병서비스로 약 45만 명의 저소득층 노인 환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30만 명 이상의 간병노동자가 서비스 제공에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서비스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간병노동자들은 주로 여성이었으며,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일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건강보험 가입과 임금 상승이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공공 보건서비스에 투입되는 예산이 삭감되면서, 간병노동자와 간병 서비스를 받는 저소득층 노인 환자들의 상황이 다시 악화되고 있다.
간병노동자들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교통비나 초과근무수당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와 비교해 임금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간병 노동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http://www.cuhw.org/)
다음은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본 연구는 간병노동자 4,530명에 대한 전화설문조사와 6개 초점집단에 대한 면접조사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간병노동자들의 특징과 업무환경,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와 대처방안 등에 대한 조사가 시행되었다.
간병노동자의 86%가 여성이었으며, 히스패닉계가 45%로 절반을, 흑인이 32%, 백인이 23%를 차지했다. 평균 연령은 52세로 기혼자가 대부분이었다. 여성 간병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교육수준이 낮았으며 수입도 적었고 히스패닉 계 미국인과 이민자의 비율이 높았다. 대부분 부양가족이 있었으며, 가족에서 유일한 수입원인 경우가 많았다.
전형적인 사례로 소개된 한 간병노동자는 근무경력이 14년이었으며, 몸이 아픈 자신의 아들과 다른 두 명의 환자들의 간병을 맡고 있었다. 남편이 있으나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가족의 수입원은 자신이 유일하며, 본인도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간병노동자들은 업무 관련 스트레스에 대한 질문에, 몸이 아픈 중환자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서 오는 신체적․감정적인 부담, 업무와 가사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일정, 낮은 임금과 자신의 건강 문제 등이 주된 것이라고 답했다.
간병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환자를 들어 올리거나, 부축하여 걷거나, 목욕을 시키거나 하는 등 여러 동작에서 간병노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음식준비, 빨래, 청소 등의 가사 노동도 간병 노동자의 몫이었다. 학대받거나 모욕을 당하는 간병노동자는 많지 않았으나, 이러한 상황에 처한 경우에는 우울증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앞에서 감정을 참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흔했다. 심리적인 탈진부터, 요통 등의 신체적 불편감, 가정 방문의 특성상 개에게 물리는 사고까지 다양한 건강문제를 호소했다. 면접조사에서 간병노동자들은 중한 질환을 앓고 있거나 통증이 심하거나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을 간병할 때 신체적, 감정적 부담감이 특히 크다고 했다. 또한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망하거나, 환자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고통스럽다고 했다.
면접조사에서 일곱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는 6년 경력의 간병노동자는 업무 중 과중한 신체적 부담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하루는 너무 힘들게 일해서 두 손 힘줄에 모두 염증이 생겼어요. 한 손 힘줄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는 말도 못하게 많구요. 아무튼 그 때는 너무 심해서 젓가락도 들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데, 매일 소독약을 많이 쓰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눈도 시려서 안약을 매일 달고 살아요.”
또한 환자를 들어 올리거나 가사노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는 상황도 흔히 일어나고 있다. 간병노동자들의 신체적․감정적 부담감은 근무시간, 임금과 건강보험 가입 수준에 따라 더 심해질 수도, 개선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일정과 관련된 스트레스는 돌보는 환자 수, 주당 근무시간, 주당 근무일,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초과근로시간 등과 관련이 있다. 간병노동자의 77%가 한 명의 환자만 돌보고 있었다. 초점집단면접 참가자들은 한 명 또는 두 명의 환자만 돌보기를 선호했으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더 많은 환자를 간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간병노동자는 자기 아들을 간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두 명의 환자를 더 돌보고 있었는데, 이는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의 근무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간병근무 조건 상 업무로 인한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휴일을 가질 수 없는 점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간병노동자들은 1주일에 평균 6.3일, 주당 34시간을 근무했다.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 평균 가계소득은 연간 10,720달러 (연간 1,200만원, 월 100만원 수준) 정도에 불과하다. 간병노동자의 47%가 임금 수준이 기본적인 생활비용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적다고 답했다.
간병노동자의 77%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나, 40%의 간병노동자는 경제적인 문제로 지난 1년 동안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초점집단면접에서 간병노동자들은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아플 때는 진찰을 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을 언급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가 공공 간병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을 줄이려 한다는 소식에 간병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상황을 걱정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간병노동자는 건강보험을 잃게 되면, 비용이 너무 비싸서 당뇨약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간병노동자들의 업무조절권한은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나,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여성과 히스패닉계의 업무조절권한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간병노동자의 54%가 실업과 직업의 불안정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과 히스패닉계 간병노동자가 학력수준이 낮고 이민자가 많으며 평균 나이가 많은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간병노동자들은 배우자, 친구와 친척이 개인고민을 들어주고, 일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하였다. 히스패닉계가 백인이나 흑인에 비하여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는 지원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97%의 간병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이 어느 정도, 또는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노조 가입이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흑인은 82%였으나 히스패닉은 30%에 불과했다. 이는 흑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노조의 역사성, 히스패닉은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간병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초점집단면접에서 간병노동자들은 노조가 임금 체불 대책 마련, 강좌를 통한 감정적 지원, 푸드뱅크 등을 통한 물질적 지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노조 설립 이전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으나, 최근에는 노조의 활동이 자신들의 존엄성을 되찾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답하였다.
본 연구에서 캘리포니아 주 간병노동자는 주로 중년의 유색인종 여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으며 이민자가 많다고 보고했다. 간병노동자의 계층과 성별에 대한 사회적 제약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주정부가 간병관련 복지예산을 삭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환자에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 노조 조직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간병노동자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많은 업무를 수행하며, 업무관련 손상의 위험도가 높고,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다. 전통적으로 가정 간병 서비스는 무급으로 가족들에 의해 수행되는 개인 서비스였다.
업무상 손상과 질병에 대한 예방교육과 장비를 누가 부담하며, 업무상 손상을 입은 노동자를 누가 보상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간병노동자가 아플 때 치료해주는 제도, 대체 근무 인력 제공, 환자 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보험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히 필요하다.
가정방문 간병노동의 근무환경을 위한 정책적 접근이 부족한 이유는, 임금을 받지 않는 사적 영역이었던 가사 노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정방문 간병노동자의 문제는 성차별, 인종, 이주민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라 할 수 있다.
간병노동자가 겪는 업무 스트레스를 성별, 인종, 이민 등의 특성으로 구분하는 연구가 더 필요하며, 업무스트레스가 이들 간병노동자에게 주는 영향의 차이를 보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본 연구는 노조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가정방문 간병노동자 노조는 “우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아니다 (Invisible No More)”라는 슬로건 아래 간병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노조는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가 자신의 생활과 업무조건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고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방문 간병서비스 프로그램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간병노동자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간병노동자와 환자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간병노동자와 환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주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에 맞서고, 업무조건과 간병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의 간병제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면서 전통적으로 가족이 무급으로 수행해왔던 가정 간병 노동이 공적보험을 재원으로 하는 유급 노동으로 공적인 사회적 경제체계에 편입되었다. 한국도 캘리포니아 주와 유사하게 환자가 자신의 가족을 간병노동자로 선택할 수 있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간병노동의 업무환경과 서비스 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제민주연대, 민주노총, 좋은기업센터, 서울공익법센터 APIL,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이 조사단을 꾸려 지난 2월 9일부터 5일간 방글라데시 치타공 현지를 방문했다. 이들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제출한 보고서1)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규모로 확산되고 폭력적으로 진행된 이유는 단순히 임금에 대한 불만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새로 적용된 임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산발적인 조업 중단을 실시하는 등 소극적인 파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영원무역의 관리자가 5명의 노동자를 불러 데리고 나간 뒤 이들 중 3명이 손목과 발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채로 사무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동료들이 다치고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3명을 포함한 5명의 노동자 모두 그 후 실종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데일리스타>의 3월 20일자 기사2)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수출가공지역의 의장인 샤히둘 이슬람, 치타공 수출가공지역 관리청의 압둘 라시드 청장, 치타공 경찰서장인 모하메드 사나울라 등은 인터뷰를 통해 영원그룹의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실종되었다는 것은 루머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조사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실종 및 상해에 대한 어떤 보고도 받은 바 없었고 증인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건너간 진상조사단은 노동자 폭행 현장의 증인을 만났고 5명의 실종을 확인했지만, 현지의 책임자들은 상해와 관련한 증인도 실종자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과연 당국에 의한 조사가 중립적이고 엄격하게 이루어진 것인지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하루 빨리 실종자들의 상태가 확인되고, 폭행과 관련된 영원무역의 책임여부에 관한 진실도 가려져야 할 것이다.
올해 2월, 공화당 소속의 위스콘신 주지사가 재정위기를 이유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약권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81호가 발간된 후인 3월 10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위스콘신 주 상원은 53 대 42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주지사가 여기에 서명한 바 있다. 그러자 18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고, 공개회의법 위반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여 일단 판결까지 임시집행정지 명령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5월 26일, 위스콘신 순회 법원은 법안 의결 당시 이를 공공에 충분히 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의회가 주의 공개회의 법을 위반했다며, 의결 절차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위스콘신 대법원은 이 사례를 두고 다음 달에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전열을 가다듬어 재시도를 할 것이다. 이후의 결과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민적 연대에 따라 달린 셈이다. 현재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3명에 대한 주민소환이 확정된 상태고, 추가로 3명이 더 소환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위스콘신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방식의 의회투쟁과 거리시위, 시민적 연대의 모습들은 한국의 노동-사회 진영에도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스콘신과 관련된 최신 소식을 한글로 접하려면 “위스콘신 노동권 수호 투쟁 관련” 트위터 게시판 http://chirpstory.com/li/792 참조하면 된다.
1)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한겨레21 “우리는 피 흘리는 동료를 보았다” (2011.04.01 제854호)에 기사화되어 있으며, 영어로 작성되어 인권단체 등에 배포된 보고서(Report of Fact Finding Mission on Demonstration of workers of Youngone Trading in Chittagong) 내용은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홈페이지 [http://www.humanrights.asia/news/forwarded-news/AHRC-FST-011-2011]에서 볼 수 있다.
2) http://www.thedailystar.net/newDesign/news-details.php?nid=178402 (2011년, 3월 20일자 기사)
핵발전소에서 북서방향 60Km 떨어진 후쿠시마 시 교외에서 방사선 측정량이 1.93μSv를 기록했다. 1년 누적량으로 환산하면 16.9mSv은 일반인 연간 피폭 제한선량의 17배에 해당한다. 매화나무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대조된다.
핵산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결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핵발전을 포함한 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해마다 전력회사에 5천억 엔 (6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지출해왔다. 핵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싸다는 전력회사의 선전에 언론, 어용학자, 저명인사가 동원되었다. 일본의 핵발전소는 모두 바닷가에 건설되어 있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상금이 사용된다. 또한 핵발전소가 위치하는 지자체와 현에는 교부금이 주어진다. 일단 핵발전소 건설이 결정되면, 지역사회에 일자리가 생기고 건설 후에 전력회사는 지역 주민을 하청업무 등에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후쿠시마 시 아즈마 종합체육관에는 1,700명 정도가 피난해 있었다. 발전소에서 20Km 떨어진 가츠라오무라 지역에서 피난 온 60대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츠라오무라는 농촌 지역이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주로 외지로 나간다. 이 남성은 철근공으로 60년대에 일본 최대 댐인 구로베 댐 공사 현장에서 일했고, 뒤이어 시작된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건설 공사에 참여했다. 1호기부터 5호기까지 관여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남녀 모두 핵발전소 공사장에 나갔다고 했다. 남성은 후쿠시마 공사 후 도쿄에 일하러 나갔다가 도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고향인 가츠라오무라로 돌아왔다. 장애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였다. 그는 병약자에게 우선적으로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도 뇌출혈로 반신에 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아들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데 방사능 오염 소문 때문에 거래가 중단돼 회사는 문을 닫았고, 아들은 다른 지역의 관련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성은 더 이상 원망의 말은 하지 않았다.
반핵활동가 이시마루 씨(68세)는 원래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남쪽에 위치하는 토미오카마치에 살고 있었다. 사고 후 손자를 데리고 300Km 떨어진 아키타 현에 피난해 있다가, 조사단을 안내하기 위해 후쿠시마로 온 것이다. 후쿠시마 제1, 제2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을 후타바 지방이라고 하는데, 이시마루 씨는 ‘후타바 지방 원전반대동맹’에서 40년 간 활동해 왔고 지금은 대표를 맡고 있다.
이시마루 씨가 전력회사의 지배구조를 설명해 주었다. 피난소에서 리더 격으로 나서는 사람은 대개 도쿄전력 하청회사 등 핵발전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 나서서, 피난소에서도 핵발전소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도쿄전력이 피난소를 찾아갔을 때도 그 리더 역할 하는 사람이 “오늘은 항의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피난민들의 호소와 항의를 막으려고 했다.
핵발전소가 건설된 지역과 주변 지역에는 교부금이 지급된다. 그래서 핵발전소 가까이에 갈수록 도로도 넓어지고 문화/복지 시설물이 눈에 잘 뜨인다. 우리가 사고 발전소 5Km 권역에서 보았던 체육관은 3월 말 완공 예정으로 도쿄전력이 지어준 것이었다. 폐허가 된 마을 속에서 그 체육관은 마치 지진 피해가 없는 것처럼 서 있었다.
이이타테무라 지역의 시라우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측정한 공간선량이 7.87μSv, 지표에서 12.29μSv를 기록했다.
이시마루 씨가 우리를 피난지역인 반경 20Km 지점까지 차로 안내해 주었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반경 30Km를 넘는 지역이지만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핫스팟 (hotspot)으로 마을 전체가 피난 지역으로 선정된 이이타테무라라는 마을이 있었다. 핵발전소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교부금 같은 것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는 지역이다. 나름대로 농축산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지며 마을 만들기를 실천해 왔던 평화로운 마을이 강제 이주 지역이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도쿄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한 눈물이었다.
전력회사는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돈으로 지역 주민들을 매수했고, 초기에는 경찰력을 동원해 반대운동을 탄압하기도 했다. 언론과 전문가도 조직하면서 반대 의견은 아주 소수파로 전락해버렸다. 도쿄전력을 포함한 전력회사 노동조합인 전력총련은 일본 노총인 렌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내에서도 영향력이 큰 조직이며, 렌고는 핵발전을 지지하고 있다. 전력총련 출신 지방의원과 국회의원들도 지역의회와 국회에서 핵발전 추진 역할을 맡아 왔다.
과거 40년 동안 이렇게 강력한 동맹이 형성되면서 핵발전 추진력은 갈수록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시마루 씨 말처럼 ‘원자력 제국주의’ 사회에서 돈과 어용학자, 매수된 언론에 의해 이성적인 대안 에너지 정책이나 탈핵사회 전망은 확산될 기회를 잃었다. 이렇게 주입된 ‘핵발전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은 핵사고 직후도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 2011.4.4 보도
(전국 조사, 4.1~4.3)
마이니치신문 2011.4.18 보도
(전국 조사, 4.16~4.17)
아사히신문 2011.4.18 보도
핵발전소
․모두 폐지 12%
․삭감 29%
․증설 10%
․현상 유지 46%
전력의 30%를 핵발전으로 조달하는 현재 에너지 정책
․모두 폐지 13%
․삭감 41%
․부득이하다 40%
․중지 11% (7%)
․삭감 30% (21%)
․증설 5% (13%)
․현상 유지 51% (53%)
*( )는 2007년 조사 결과
핵발전소를 폐지 내지 줄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약 40% 정도 되지만, 현상 유지하자는 의견도 절반에 달한다. 아사히신문 보도에서는 2007년 조사결과와 비교할 수 있는데, 증설하자는 의견이 줄어들고 축소하는 의견이 늘어났다. 그러나 현상 유지라고 답한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4월 말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핵발전을 추진해 온 보수적인 인사가 당선되었다. 핵시설이 있는 지역에서도 핵발전소 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일본 전국에서 탈(脫) 핵발전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모임과 집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총평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 사회당의 정치 블록이 반핵 운동을 전개해 왔지만 총평 해산과 함께 힘을 잃었다. 지금 일어난 반핵 운동은 그 운동을 계속해온 사람들과 새롭게 탈핵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과의 연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일본인들이 과연 탈핵 사회로의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지, 현재 일본 사회의 민주주의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핵발전소에서 남향 33Km 지점 국도변에 “원전 어딘가로 가져가” “원자력발전 필요 없다”라는 붓글씨가 쓰인 다다미가 걸려있다.
1) 현은 한국의 ‘도’에 해당
지난 1월 25일에 시작되어 2월 11일, 결국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이집트 혁명은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이집트 노동자들의 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번 호 <해외 이슈>에서는 혁명 전후 이집트 노동 운동 동향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1)
이집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것은 1942년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2) 이후 정부는 상급단체인 이집트 노총의 결성을 허가했지만, 1천 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경우에만 상급단체 가입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가했다. 이후 2011년까지 이집트에는 전국단위 노총이 단 한 개만 존재했다. 1957년에 설립된 이집트 노총 (Egyptian Trade Union Federation)은 정부와 여당(국민민주당, NDP)의 지배하에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어용노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76년에 제정된 노동조합법은 사업장에서 최소 50명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노동조합으로 인정해주었고, 이집트노총에 소속된 23개 일반노조 중 하나에 무조건 가입하도록 강제했다. 또한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집트 노총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등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더해 2003년 새로운 노동법이 통과되면서 사용자들은 노동자를 임의로 해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시위에서 비롯된 사회 분위기는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노동자 파업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여러 제약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약 3천 건의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높은 실업률, 오르지 않는 임금, 복지혜택의 삭감, 생필품 물가 인상 등은 노동자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섬유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투쟁은 운수, 음식서비스, 건설 부문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인 교사, 언론인, 세금징수원 등도 합류하면서 마침내 모든 부문의 노동자들이 투쟁에 동참하게 되었다. 특히 2006-07년 등에 일어난 마할라 지역의 섬유노동자 파업에 72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면서 노동자 계급 투쟁은 본격화되었다. 물론 이집트 노총 산하의 지역 노동조합 위원회는 파업을 인정하지 않았고 노총은 투쟁 지원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개별사업장에서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이렇게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은 공식적인 노동조합 구조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지배정당의 요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쟁취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정치적 투쟁으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집트 민중이 가진 힘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뒤이은 이집트 혁명의 토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난 3월 24일에 열린 공공운수노동자 독립노조 설립 대회
(사진 출처 : JANO CHARBEL 블로그 http://she2i2.blogspot.com)
2009년 4월, 부동산 세무노동자 노조 (The Real Estate Tax Authority Employees' Union, RETA)는 이집트 정부에 최초의 독립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뒤를 따라 독립교사협회 (The Independent Teachers' Syndicate), 이집트 보건기술직협회 (Egyptian Health Technologists' Syndicate), 연금수급자 연맹 (Pensioners' Federation) 등이 뒤따라 독립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1년 1월 30일, 혁명에서 비롯된 자유의 흐름을 타고 기존의 4개 독립노조가 연합한 조직인 이집트 독립노총 (The Egyptian Federation of Independent Trade Unions EFITU)이 설립되었다. 그 후 3월 24일, 역시 독립노조인 공공운수노동자 독립노조 (the Independent Union of Public Transport Authority Workers, PTA)가 설립되었으며, 현재 이집트 독립노총은 약 25만 명, 12개의 독립노조로 구성된 전국단위 노총으로 급성장 중이다.
그러나 이집트 노동운동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혁명 이후에도 노동 운동을 억압하려는 시도들은 여전하다.
3월 13일, 이집트 노동부는 노동자들이 노동부 또는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독립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 법은 어업, 농업, 청소노동자 등 기존에 노조가 없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자극이 되었다. 4월 14일, 이집트 최초의 농업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4월 17일에는 어업인 노동조합도 결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순조롭게 노동조합 결성 서류가 받아들여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독립 노조 설립에 관한 새로운 정책을 고지 받은 바 없다며 서류 접수를 거부당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 정부는 지난 4월 12일에 발효된 법을 통해 시위와 파업을 불법화하고, 시위참가자들을 구속하거나 무거운 벌금을 매기고 있다. 새로 발효된 법은 공공기관의 일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등의 농성이나 여타 행동에 참여, 장려한 사람을 수감하거나 5만 이집트 파운드 (약 910만 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했다. 만약 시위도중 폭력이 발생하거나 공공 또는 사유 재산에 해를 가하면 ‘생산 수단 파괴’ 또는 ‘국가의 통합과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저해했다는 명목으로 최소 1년의 징역이나 벌금 50만 이집트 파운드로 처벌 수위가 올라간다.
지난 5월 1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이집트 노동자들은 이러한 노동운동 억압에 맞서 여전히 투쟁하고 있으며, 지난 54년간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노동운동을 억압해온 이집트 노총을 해체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3) 이집트 노동운동은 여전히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 등을 통해 정치세력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5월 1일, 거의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노동절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후원 없이 치러졌다. 노동조합, 정당, 여성 그룹, 인권 운동 조직, 대중 위원회 등이 이날의 행사를 기회했고, 타흐리르 광장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독립노총의 결성을 축하하고 이집트 혁명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했다.
한국의 87년 6월 항쟁을 그린 최규석의 만화 100°c 에는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60년의 억압을 지나 마침내 끓어 넘치기 시작한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이, 부디 급속히 식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그 열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1) 이집트 및 튀니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혁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한다면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발간한 “북아프리카에 부는 변화의 바람, 노조 민주화와 젊은 비공식 노동자 운동” (http://www.awm.or.kr/bbs/view.php?board=pssp_awm_repo&id=45), 한편 이집트혁명 이후 계속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소식은 Jano Charbel의 블로그 (http://she2i2.blogspot.com) 를 참고하면 된다.
2) 1952년 7월 23일 나기브와 나세르를 지도자로 한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통해 이집트의 친영국 왕조인 메메트 알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혁명. 이후 나세르는 옛 헌법의 폐지, 농지개혁 등의 사회개혁을 실시하고, 영국군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철수 시켰으며, 영국의 통제하에 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등 이집트를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로 만들었다.
3) 현재 이집트 노총의 지도부는 얼마 전 해체된 국민민주당(NDP)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다.
저는 지금 수습 노무사들의 모임인 “노동자의 벗”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벗 기획 프로그램 중에 “반올림”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반올림은 반도체 산업 전반의 노동문제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데, 우리 모임에서는 반올림의 활동을 지원하고 삼성 백혈병 관련 소송, 해외의 관련 투쟁 등에 대해 함께 세미나 하고 기회가 되면 재판 참관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하기 전에는 첨단산업의 이면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 몰랐습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첨단 산업은 기존의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 건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나 봅니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교대제 근무 등 엄청난 노동 강도의 일을 하면서 백혈병 뿐 아니라 각종 희귀 질환에 걸려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재청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 역시 심각했습니다.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을 보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와 법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은 유해한 물질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유해 가스 등이 배출 되었다 하더라도 배기장치가 완벽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이를 흡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반도체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심지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암과 기형 발생, 사망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행법과 근로복지공단은 유독 물질을 사용하였는지, 환기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노동자에게 입증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사용 물질, 배기장치 등은 얼마든지 은폐, 개선할 수 있는데 이걸 노동자한테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입증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사용물질을 제출하라는 요구에도 삼성은 기업비밀이라며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불승인한 근거라고 하는 역학조사도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삼성 반도체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이 조사 의뢰를 한 산업안전공단의 조사는 낡은 시설에서 근무한 작업자들과 2000년대 이후 강화된 안전보건기준 아래에서 새로운 시설과 원료를 사용하는 작업자를 한꺼번에 조사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한 노동자의 차이를 반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 결과의 해석에도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계가 있는 조사결과를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 등 일부 반도체 업체들이 직접 조사를 의뢰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작업환경 조사결과에서는 감광제에서 벤젠이 검출되었는데도 이것이 공개되지 않다가, 이후 국정감사에서야 밝혀졌습니다. 이후 삼성은 다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는데 이 조사에서는 벤젠 등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작업환경은 평상시의 작업환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보다 유해물질 사용량과 발생량이 줄어들어 노출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한 피해 노동자들이 작업한 공정이 아예 없어지거나 시설이 교체되어서 유해요인 노출 정도를 제대로 추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백혈병 피해자들이 법정소송을 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는 더욱 공정성을 잃어갑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내부공문을 통해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가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고,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을 감안하여 소송 진행 중 특이사항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행정소송에서는 이해당사자인 제3자도 보조참가인으로서 소송에 참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우려한 사회적 파장이 무엇인지, 매년 1조가 넘는 산재보험의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삼성과 긴밀한 협조를 하는 것인지, 국가경제 차원에서 긴밀한 협조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을 취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장시간 야간근로를 하였고, 젊은 노동자 수십 명이 암과 희귀 질환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원인을 피해자가 스스로 밝혀내지 못하였다고 직업병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옳을까요?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은 어떻게 실현하려는 걸까요.
반올림과 함께 공부하면서 느낀 산재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을 기업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공단의 태도입니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산업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활동을 묵묵히 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같은 사무실의 동료를 인터뷰해보신 적이 있나요? 음, 저는 해봤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요. 일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작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공유해 온 동료를 대상으로 인터뷰원고를 쓰는 기분… 쑥스럽습니다. 마주 앉아서 서로 시선을 좀 피하다가 드디어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첫 질문치고는 좀 약하군요.
자기 소개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 직책이 없어, 어떻게 해야 되나. 상근활동가라고 할까?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직책이 뭐냐고 물어. 그때는 상근자라고…
이상하다, 명함에 직책 만들어서 찍지 않았나요? 이번에 CBS라디오 인터뷰할 때도 사회자가 직책이 뭐냐고 물었는데, 없어요 했죠? 사회자가 당황했겠는데.
- 그러니까, 얼마 전 국회 토론회에도 지정토론자로 나갔는데 직책이 없냐고, 토론문에 그냥 상근활동가라고 적혀있으니까.
빨리 만들어 달라고 얘기를 하죠.- 아! 직책을 공모합니다, 낼까? 여기에?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이라면 사무실의 일본인 상근자 스즈키 씨를 알 겁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도요. 전화를 받거나 모임에서 인사를 하는데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회원들은 처음에는 긴장합니다. 그의 부드러운 한국어를 듣는다면 바로 긴장을 풀리기는 하지만. 스즈키 씨는 지난 4월 13일에서 18일까지 후쿠시마 재난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고국의 재난현장을 조사하고 왔다는 소식에 많은 한국 언론이 기사를 썼습니다. 라디오시사프로에 초대받아 방송국까지 다녀왔지요. 한국에 사는 일본인, 게다가 사회 운동하는 일본인에 대한 관심이 늘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 관심에 대해 거리를 두고 지내왔지만, 이번만은 고국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요청이 오면 어디든 달려가신 스즈키씨입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려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사무국장이 우리 단체 티셔츠를 들고 와서는 입으라고 합니다. 분홍색 후드티셔츠.
“잘 어울려요, 젊어 보이는걸”
“회원여러분 반갑습니다, 특별히 반갑진 않아요”
키득키득 웃으시는 스즈키씨. 나이와 매우 안 어울리는 언행입니다. 하긴 스즈키 씨는 일본에서 활동하시다가 한국의 노조활동가에게 반해서 결혼을 하러 건너오신 용감하고도 순수하신 분입니다.
잘 모르는 회원들을 위해서 자기소개를 다시 한 번 해주시죠.- 회원 여러분, CMS동의서를 다시 써야 됩니다. 써 주십쇼.
일본사람이 단체에 있다는 이유로 회원들이 일을 더 시키지 않나요? 평소에 궁금해 하지 않던 일본 소식들, 연구 자료들, 법제도들 물어보고 번역해달라고 조르잖아요.- 음… 주로 일본의 연구, 일본 산업보건이나 법규 등 한국과 유사하니까 일본 정보수집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일본에서 선행된 제도를 한국이 보완해서 잘 쓰려는 부분이 있죠.
사무실에서 회비관리하시고 회계 맡고 계시잖아요. 내가 왜 한국까지 와서 이 일을 하고 있나, 하기 싫진 않으세요?- 회계라기 보다는 거의 지갑관리 수준인데(웃음), 재정계획 세우는 정도는 아니라서… 있는 만큼 계산하는 일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노동건강연대의 재정 상태를 평가해주신다면 어떤 상태입니까?- 노건연의 재정상태가 음… 계획은 세우지만 절대로 예산대로 가지 못하는 재정구조입니다. 그러니까 통상 회비만으로는 적자, 적자 부분에 대해서 회원들 후원금에 기대는 현실이죠.
괜히 물어봤다. 회계담당자의 슬픈 진단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 4월의 후쿠시마 방문에 대해서 질문하려고 합니다. 후쿠시마 다녀오신 후 바쁘셨죠? 여기저기서 계속 불렀잖아요.- 후쿠시마 사고가 해결이 안되고 있고, 방사선 피해가 늘어나고, 노동자들 피폭이 계속되는 상황이니까 계속 주시하고 한국에 알려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기자들이 제일 많이 궁금해 하는 게 어떤 건가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핵공학 전문가가 아니니까 핵 자체에 대해서 묻는다기 보다 일본 사람이 뭘 생각하나 궁금해 하는 거죠. 일본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없고 정보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요. NHK만 듣고 있으면 크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요. 지금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포함해서 농수산물을 안전하다고 하고 있는데 모두 검사할 수가 없고, 애 엄마들은 아이한테 무얼 먹이면 좋은지 고민하고 있어요.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비중이 높은 편인가요?- 각 지역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고, 우유는 세 번을 검사해서 세 번 다 방사선 수치가 안 높으면 시장에 나갈 수 있게 돼 있어요. 식품모니터링이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무얼 먹는다는 게 불안할 만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군요.-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다는 사람도 있죠. 방사선이 외부피폭도 문제지만 먹는 거, 내부피폭도 문제인데, 도쿄 옆에 치바 현이라고 있어요. 애엄마 모유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왔거든요. 내부피폭이 있다는 증거예요.
핵발전소폭발만 무서운 건 줄 알았는데, 일상생활 영위해가는 일도 공포의 연속이네요.- 오염된 식량이 상당수 있을 거예요. 오사카 같은 서쪽지방으로 이주하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생각 못 하죠. 생활기반을 버리고 이동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선량피폭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아예 무시하는 사람이 있고, 적어도 어린이에게는 덜 영향을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
아이들이 컸을 때 건강할지 두렵네요. 핵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뭐가 안전한지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주류학자들은 방사선위험을 축소하려고 하죠. 한국도 일본처럼 그런 것 같아요. 저선량피폭이 위험하다고 인정한 보고서가 별로 없어요. 체르노빌사고도 저선량의 건강장애는 보고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요.
핵 옹호세력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돼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했고, 일본도 간 총리가 하마오카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하겠다고 했잖아요. 반대하는 세력도 많은 것 같지만 …- 핵으로 살아야 하는 세력이 반발하고 있죠. 그렇지만 일본은 어느 때보다도 탈핵움직임이 의미있는 큰 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요. 핵 밖에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선전해 왔는데, 핵은 위험하다 대안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거죠. 독일을 비난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정책으로 평가해야죠.
일본은 핵으로 큰 고통을 겪은 나라인데 어떻게 바로 핵발전소를 지을 수 있었나요. 참 궁금한 점이예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을 IAEA가 쓰기 시작했죠. 심지어 일본 공산당까지 핵에 대해 반대 안 했어요. 자민당이 추진하는 핵은 반대했지만 사회주의가 사용하는 핵은 지지한다고 했죠. 그래서 60년대 반핵운동이 갈라졌어요.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핵을 맞고, 미국이 태평양에서 수소폭탄실험을 할 때 일본어민들이 피폭됐죠. 일본이 수소와 핵을 모두 처음 맞은 거예요. 그런데 당시 50년대 후반 냉전시대, 중국이 핵폭탄개발에 성공하자 일본 공산당이 미국 핵을 견제하기 위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어요.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원수협)가 먼저 있었는데 사회당계열,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 등이 떨어져 나와서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원수금)를 만들었죠. 원수협에는 공산당계열만 남게 됐어요.
그래서 일본 반핵운동이 모든 핵을 금지하자는 세력과 ‘핵의 평화적 이용’은 가능하다는 세력으로 갈라진 것이죠.
그렇군요. 현재 일본의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일본은 전국적 환경단체가 없어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이나 건설예정지역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하죠. 도시는 도시대로 반핵운동이 있지만 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이 한국과 달라요. 80년대 일본반핵운동은 총평과 사회당이 있어서 할 수 있었거든요, 노동조합의 대중동원이 가능했으니까요. 89년 총평이 해산하고 운동도 시들해졌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만들어지면서 노동운동이 우경화되고 전국적 구심도 없어졌어요.
지금 사고를 낸 도쿄전력에도 노동조합이 있나요?- 전력회사들 노동조합이 있죠.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사고 때 도쿄전력 홈페이지를 보면 사고에 대한 사과는 없어요. ‘계획정전으로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는 말만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 노총이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입장이었는데 5월에 입장을 보류하고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전력4회사의 노동조합이 노총의 중심세력인데 쉽지 않죠. 한국 노동조합의 상황과 비슷해요. 노동조합이 선택하기가 어려워요. 일자리문제라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규제하기 전에는 어렵죠.
일본은 지역운동이 활발하다고 하셨는데 한국의 반핵운동이 지역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까요?- 지역에서 반대를 하지 않으면 지금 같은 핵추진 구조에서는 어려워요. 부안을 봐도 지역 주민이 투쟁으로 핵폐기장을 백지화했잖아요. 그냥 토목공사라고 생각하는 지역은 유치할 것이고, 후보지로 나서는 구도예요. 정책적으로 탈핵을 하지 않는 한, 유지하기 위해서도 계속 핵발전소 얘기가 나오죠.
도쿄시민들이 이번 여름의 전력수요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 일본정부가 고심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실내냉방온도를 너무 낮추지 말자든가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사실은 도쿄전력의 1/3은 대공장이 쓰는 거예요. 가정에서도 절전해야 겠지만 큰 공장의 절전이 관건이에요. 토요일 일요일 쉬는 게 아니라 전기수요가 많은 평일에 쉬고 주말에 공장을 돌리자, 작업시간을 일찍 시작해서 일찍 일을 끝내는 식으로 하자, 심야노동을 도입하자는 얘기도 있어요.
음, 덜 사야 덜 만들고 생산량을 줄일 텐데 물건은 계속 만들어내야 하고 일자리도 걸려있고 쉬운 문제가 아니군요. 이제 일본의 건강권 운동 상황을 들어볼까요.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가요? - 후쿠시마에서 노동자 피폭이 계속되고 있어요. 전국노동안전위생센터연락회의(안전센터)가 정부와 교섭을 하고 있어요. 노동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라고. 사고 수습을 위해서 전국에서 노동자가 투입되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피폭량이 있을 거예요. 확실히 안전하게 피폭작업을 관리하고 피폭결과를 계속 추적하고, 건강관리 제도를 보완해야 해요. 전국안전센터가 후생노동성하고 교섭하고 있는 것인데, 정부가 핵발전소 작업자의 1년 노출상한선을 250 밀리시버트(mSv)로 올렸거든요. 250mSv에 노출되면 조혈기능에 장애가 분명히 나타난다고 되어 있어요. 실제 현장에서는 250이 아니라 100mSv 노출되면 투입을 안 하는 방향으로 하고는 있지만. 100mSv도 평상시의 5배예요. 보통 1년에 20이 기준이니까요. 방사선작업종사자의 1년한도도 50mSv가 최대이고요.
아 그렇군요. 사고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어요. 플랜트, 건설, 배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죠. 일용노동자들도 동원되고요. 오사카에서 트럭운전사 모집한다고 해서 갔더니 본인도 모르게 후쿠시마 원전에서 폐기물처리 일을 하게 된 경우도 있어요. 트럭운전사가 국가대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심각하군요. 일반 노동문제 중에 는 어떤 이슈가 있나요?- 아! 최근에 정신건강 문제, 멘탈 헬스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정부는 과중노동, 장시간노동의 문제로 다루는데 직장 내 왕따, 괴롭힘 같은 문제가 많아요. 점점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노동 강도가 세지고 인간관계가 공격적으로 변해서 그런 건지 상담이 늘어나고 있어요. 노동 상담으로 오는데 들어보면 정신건강 문제인 경우가 많아요. 산재로 신청하려는 상담이 아니라 지역유니온, 일반 노조에 노동 상담으로 오는 거예요. 상담이 오면 노동조합은 교섭을 통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시정하려고 하는데 잘못하면 해고가 되니까 어려운 문제예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비정규직,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서 새로운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맞아요? - 일반노조나 유니온의 활동스타일이 일본과 한국이 달라요. 한국 노동조합은 개별 노동상담, 법적 대응은 주로 노무사가 맡아서 하고, 노동조합은 조직 확대, 노조설립에 주로 공을 들이잖아요. 일본은 유니온, 지역일반노조들이 개별노동자 상담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요.
한국은 노동자가 혼자 찾아오면 보통 노무사를 연결해주는데 일본은 활동가들이 상담에 대해 하나하나 대응해요. 사람과 시간은 투입하는데 성과는 더디거든요. 한국은 노동위원회가 개인이 구제 신청하는 것도 다루는데 일본은 집단적 분쟁만 노동위원회가 다루거든요, 그러니 개인이 지역노조에 상담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되는 거예요.
한국 노동운동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이 많다고 하잖아요, 일본의 상황은 어때요?- 일본과 비교하자면 일본 정규직은 한국만큼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한국은 조직하려고 하잖아요. 비정규직의 존재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두 노총이 의지를 표명하거든요. 일본은 조직사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노동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희망이 있나요?- 희망은, 노동자가 독자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회변혁의 힘이 약하죠. 농민도 그렇지만 노동자도 자기 목소리가 없으면 자본의 공세는 누가 막나요, 노동조합에 희망을 가져야죠.
역시 오늘도 한 수 배웁니다. 잊고 있던 기본을 깨우쳐 주실 때가 많은 대선배이십니다.
노건연 일은 어때요? 재미있나요?- 재미있냐고? 음… 음… 노건연이 그러니까… 전문가 단체잖아요. 노건연에 모이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살리는 기획을 하면 좋겠어요.
지금 활동이 재미있냐 이거죠. 노건연 일이 재미없으신 거 아녜요? - 재미있냐… 바빠서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재미가 없는 것보다 아무래도 비정규직, 영세노동자 연대하는 사업, 지금은 정책 사업이 중심인데 조금 충전해서 영세노동자랑 연대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노동건강연대가 전문가 단체라고 하셨잖아요. 여기서 상근활동가의 역할은 뭘까요?- 전문가와 현실 사이에 실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연결하는 게 상근자 아닐까요. 전문가 한 사람 한 사람은 전체를 못 보거든요. 운동 전체를 보는 건 상근자예요. 회원들이 힘을 발휘하게 하는 역할이죠. 노건연 회원들도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지만요.
역시 잊고 있던 부분을 짚어주십니다. 저는 과연 그렇게 진지한 생각으로 활동을 하고 있나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한국생활은 어때요? 마포 성미산 지역에 살면서 지역운동도 하고 계시잖아요.-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던 몇 년 전보다 비중이 줄었어요. 일본에 연수 가는 아이들 위해서 일본어도 가르치고 그랬는데… 한국생활은… 그냥 한국에 사는 거죠.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바쁘게 산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한국문화는 어때요?- 사회변화가 빠르죠.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요즘 노동자 문화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노동자 문화라… 자세히 얘기해 주시죠.- 집회문화가, 자기들이 만들었다기보다 역할분담을 딱딱 하면서. 옛날에는 같이 만든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대와 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일체감이 없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하는 집회는 잘 하는 것 같은데. 무대에도 올라가고, 발표도 하고 공유하려고 아주머니들이 재미있게 하는데.
남성노동자의 집회문화가 변화가 필요하긴 하죠. 최근 본 한국영화 있나요? 일본 소설가 중에 좋아하는 소설가 있어요?- 드라마도 안 보고, 가수도 몰라서… 용산문제를 다룬 <남일당이야기>를 작년 겨울엔가 봤고, 일본 소설가는 일본 가면 가끔 일본 고전소설, 옛날 작가들 소설을 사오죠. 한국에서 인기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가는 허무주의를 부추겨서 안 좋아해요.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터뷰의 기록입니다. 수첩을 덮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근 한국정세부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까지… 그러다가 다시 후쿠시마 사고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일본의 르뽀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취재한 이들은 대부분 프리랜서 들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노동건강연대에 스즈키 씨같은 훌륭한 상근활동가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착한 마음씨, 원칙을 지키는 엄격함, 부지런함, 성실성… 저에게 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있으면서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아, 너무 진지해서 썰렁할 때도 더러 있지만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단체 활동가들이 스즈키 씨를 보며 배웁니다. 완전 소중한 우리 곁의 선배활동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스즈키 씨의 진한 통찰을 들려드리면서 조금은 길었던 인터뷰를 마칩니다.
- 후쿠시마의 이번 사고는 일본이 패전 이후 겪은 최대의 사건이에요. 95년의 한신지진도 국지적 피해였고. 이번 핵발전소 폭발은 핵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할지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민주주의를 행사할 수 기회를 준 거죠. 일본은 그동안 핵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이제는 판단해야 하는 거예요. 사고가 터졌어도 아직 각성안 한 사람도 있고, 핵발전소 운전정지로 일거리가 끊어지는 사람도 생겨요. 한번 만들면 선택하기 어려워요. 제 딸이 꿈을 꿨대요. 일본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사는 꿈. 일본이 지진, 태풍, 쓰나미 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방사선까지 안고 살게 생긴 거예요. 일본은 공해문제도 많이 겪었어요.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성을 알게 된 거예요. 일본 사람들이.
좌담회 일시․장소: 2011년 4월 27일 프레시안
참가자: 김현 (퀵서비스 노동자),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허덕범 (건설 노동자)
정리: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일반적으로 일하다 다치거나, 일로 인해 직업병에 걸리는 걸 두고 산업재해라고 한다. 여기에는 죽음도 포함돼 있다. 일하다 죽는 건 본인에게 굉장히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이 사회에 미치는, 그리고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하지만 둔감하다. ‘일하다 죽을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는 그렇게 죽을 수 있는 일은 없다.
* 허덕범 (건설 노동자): 건설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다친다. 최근 사례로 잘 알려진 4대강 사업의 경우 19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건설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이다. 아파트를 지을 경우, 시공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낙찰제를 통해 선정된다. 시공사는 무더기로 참여한 업체들 중, 얼마나 저비용인지, 공사 기간을 얼마나 단축하는지 등을 따져서 업체를 선정한다. 그렇게 선정된 하도급 업체는 다시 사업권 입찰을 붙이고 또 그 아래 하도급 업체는 이를 또 붙이면서 그 사이에서 이익을 챙긴다. 정작 실제 공사를 하는 업체의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은 떨어뜨리고, 안전보호 장치 등을 소흘히 할 수밖에 없다. 돈 때문이다. 하청 소속으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다칠 경우, 그 책임은 원청이 져야 한다. 원청은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전 복원 책임도 원청 사업자에게 있다. 하지만 그런 책임을 지는 원청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 이상윤: 건설은 특성상 프로젝트로 산재보험을 하고 있다. 특정 공사 기간 동안만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이다. 그 산재보험료는 원청이 내야 한다.
* 허덕범: 말 뿐이다. 그 비용은 다 하청에서 내야 한다. 안 그러면 사업권을 따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은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다. 사망이 많이 발생하는 원인은 일반적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문제에 있다.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설치하지 않으니 추락사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에 대한 보완은 없다. 추락사가 그렇게 일어나는 데 추락 망을 설치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는 다단계 하도급 때문에 발생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법적으로 원청 사업주가 안전을 책임지게 돼 있지만 그것을 돈 때문에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허덕범: 이런 부분도 있다. 기계공 노동자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정 부분 일을 하다가 어떤 사정에 의해 그곳 일을 그만뒀다고 치자. 그럼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의 자리를 채우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거의 백발백중 사고가 발생한다. 새로 온 사람은 그 현장을 잘 모른다. 더구나 전임 노동자가 뭘 어떻게 해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하다보면 분명히 사고가 발생한다. 인수인계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공사장의 문제다.
* 그림 3: 허덕범 건설노동자 ⓒ프레시안 (최형락)
* 이상윤: 현장의 안전은 시스템의 문제인 게 맞다. 현장에서 이런 부분이 위험하고, 이곳은 고쳐야 한다 등을 이야기하고 지시를 내려야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하지만 분절돼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곳에 위험한 게 있다고 해도 아는 사람만 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다치는 구조다.제조업의 경우 건설 현장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주목할 부분은 죽는 노동자들은 전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원청 노동자는 안 죽는다. 죽는 이유가 의사소통이 안 돼서 그렇다. 작년 대우조선소에서 난 사망사건의 경우, 위에서 뭔가가 떨어져 아래 있던 사내 하청 노동자가 깔려 죽었다.원청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죽은 곳이 원래 위험한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곳으로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위험한 곳을 막아놓지도 않았다. 거기다 이곳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체계가 분절돼 있으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내하청은 교체가 빠르다. 그래서 교육 등이 잘 안 된다. 사망 통계를 봐도 일을 한 기간이 짧은 사람이 죽는 경우가 많다.
* 김현 (퀵서비스 노동자):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퀵서비스 노동자들도 항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죽기도 많이 죽는다. 하지만 죽어도 이들의 죽음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물론 사고가 나도 산재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한다.퀵의 무서운 점은, 우리는 PDA로 호출이 올 경우, 이걸 먼저 클릭하는 사람이 일을 따낼 수 있다. 그래서 운전 중에도 오토바이 앞부분에 부착한 PDA를 자주 본다. 행여 운전 중에 호출이 뜰 경우, 이를 찍기 위해서 한 손을 핸들에서 놓기도 해야 한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앞 차가 갑자기 서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빠른 시간을 요구하는 업체들의 광고도 문제다. 늘 회사에서는 15분 내 픽업을 선전한다. 그렇다보니 속력을 낼 수밖에 없다. 신호라도 걸리면 마음이 급해져 더 속력을 낸다. 그러다보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목숨 걸고 일한다. 그러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 상황이 그렇게 된다. 급히 시간을 맞추려다 보면 교통 법규도 어기게 된다. 그러다 사고가 날 경우 100% 내 잘못이 된다. 사고가 나도 우린 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보험회사에서는 종합보험(대인, 대물, 자손, 자차)을 들어도 자차나 자손은 해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특성상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다. 그래서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보험에 가입해도 자신이 상해를 입거나 오토바이가 부서져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쳤다고 하면 적용이 안 된다. 그냥 계단에서 굴렀다고 해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배달을 하다 혼자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휴대전화로 119를 불렀다. 그때 나는 구급차 대원에게 괜찮다며 돌려보내야만 했다.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게 드러날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다.
* 그림 4: 김현 퀵서비스 노동자 ⓒ 프레시안 (최형락)
* 이상윤: 사고도 문제지만 일을 하면서 질병을 얻는 것도 문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다. 질병으로 죽는 이는 많지만 산재 통계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유해 화학물,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수는 사고로 인해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건설 노동자의 경우 온갖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다. 퀵서비스 노동자도 도로 매연 등에 매일 노출된다. 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직업과 관련한 사망자 수는 엄청나다.매년 죽는 2천 2백명의 노동자 중 과로사로 죽는 사람이 600~700명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암, 자살, 호흡기 질환, 진폐증 등으로 죽어가고 있다.
* 허덕범: 높은 곳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의 경우 조금만 누군가 건드려도 깜짝 놀란다. 항상 극도의 긴장을 하고 일을 한다. 전기공의 경우,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온통 암흑인 곳에서 일을 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게 매일 반복되니 공황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다.
* 이상윤: 서비스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특히 인원 감축이 심하다보니 한 사람이 여러가지 업무를 봐야 한다. 한 사람이 고객 면담부터 서비스 제공까지 다 해야 한다. 일인 다기능화다. 그러다보니 회사에 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결국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스트레스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에까지 다다르게 된다.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생산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속도에 사람이 맞추는 것도 스트레스다. 거길 따라가지 못하니 제조업 노동자들도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 김현: 퀵서비스의 경우 핸드폰, 무전기 등 총 5개의 이어폰을 귀에 꽂아야 한다. 언제 호출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전기의 경우 하루 종일 소리가 나온다. 그걸 듣고 있노라면 나중에는 귀가 잘 안 들린다. 이건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계속 무전을 듣다보면 내 차선으로 끼어들려는 차가 경적을 울려도 못 듣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경우 대형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매연 문제도 심각하다. 초창기 퀵서비스를 할 때, 겨울만 되면 버스 바로 뒤에 딱 붙어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버스는 뒤에 엔진이 있어 따뜻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안 하지만 그땐 그렇게 했다. 매연의 위험도 잘 몰랐었다.방진 마스크를 쓰긴 하지만 그것도 사용하기가 참 어렵다. 사무실에 물건을 주러 들어갈 경우, 방진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면 다들 이상하게 본다. 그러면서 회사에 전화해 '저 사람 보내지 말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사무실 들어갈 때 마스크 벗고, 나올 때 다시 쓰고…. 이런 거 하기도 무척 어렵다.문제는 본인들도 이게 직업병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기야 직업병이라 한들 어디 가서 보상을 받을 수 있겠나.
* 이상윤: 상황은 심각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별로 이런저런 대안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봐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기업이 자기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게 필요하다. 그걸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스템을 만들자 사망율이 줄어들었다.하지만 현 정부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나라에 비해 지도·감독 횟수가 적다. 근로감독관 수도 적다. 인프라가 약한 셈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정부가 이런 규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법이 있어도 규제하는 곳이 없으니 자기 맘대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이 고쳐야 되는 부분이다.노동구조 자체도 문제다. 간접고용, 하청용역이 늘어나는 게 문제다. 노동구조 자체의 변화가 절실하다. 제조업의 경우 위험한 작업은 다 하청에게 주고 있다. 암 발생이 우려되는 도장공장의 경우 다 하청업체에게 준다. 하청 노동자들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 이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다.
* 김현: 일본의 퀵서비스는 잘 돼 있다. 일본은 100% 월급제다. 오토바이도 회사 소유다. 오토바이도 cc별로 반경 5km는 50cc로, 5km 이상은 125cc 등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아침에 퀵서비스 배달원들이 출근하면 오토바이 정비부터 한다.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증도 없다. 회사에서 지시를 하기에 운행 중에 PDA를 찍어야 할 필요도 없다.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퀵서비스가 법제화되지 않아 문제다.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야 현재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상황은 대안이 없다. 모든 대안은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 다음에 나온다.
* 임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배를 가장 빨리 만든다. 건물도 빨리 짓는다. 그걸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는 정말 잘못됐다. 빨리 하는 걸 능력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건 능력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한다.기본적인 사회적 가치, 노동자의 목숨 등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혜를 받는 건 소수 사용자들뿐이다.
* 이상윤: 사람들은 말한다. "어차피 건설 현장은 위험하니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배 만들고 집 만들려면 그 정도는 죽어야 하는 거 아니냐", "퀵서비스도 오토바이 타는 게 위험하니 죽는 거 아니냐. 안타면 되지 않냐" 이렇게 말한다.하지만 외국의 경우 집 짓고, 오토바이 타고 다녀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많이 죽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도 위험하면 우리처럼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이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임준: 산재 사망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속도를 부추기는 사회구조가 문제다. 이걸 어떻게 멈춰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정치권력인 '포크레인' 정부를 먼저 멈춰야 하지 않나 싶다.
4월 28일은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일하다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10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열린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는 열린다. 하지만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추모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 잡힌 것만으로 2010년 한 해 동안 2천 2백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였다. 하루에 6명꼴이고 4시간마다 한 명꼴이다. 산재 사망의 특성상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음을 고려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정부도 이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안심일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오랜 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것일까? 기업이나 정부 말처럼 우리 노동자들이 ‘안전불감증’에 빠져서인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구조 자체가 이러한 상황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노동 구조, 고용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돌파구는 없다.
가장 문제는 점차 심화되어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안정한 고용 형태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도급이 사슬을 이루고, 용역과 파견 노동으로 노동 인력이 대체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수준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2007년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이 시행한 연구에 의하면, 상용직에 비해 일용직, 파견직, 임시직, 시간제 등 비상용직의 산재 사고 발생 비율이 높았다. 특히 일용직의 경우 상용직에 비해 6배 이상 산재 사고 발생 비율이 높았다. 이를 원하청 고용 구조별로 비교하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원청 노동자에 비해 하청 노동자는 2.5배, 파견 노동자는 1.8배나 사고 위험이 높았다. 산재 위험이 비정규직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하청 노동자, 용역 노동자, 파견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더 산재를 많이 당하는 까닭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직업을 얻기 위한 계약 경쟁 속에서의 경제적 압박, 일단 직업을 얻은 후에는 계약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압박, 최저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많은 수가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는데 이러한 상황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사업주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힘들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등은 큰 사업장이나 정규직 노동자가 거부한 일을 하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산재 예방 시스템 자체를 허물어뜨린다는 면에서 더욱 문제다.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등의 존재 자체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해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도 동원된다. 그래서 한 작업장에 그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가 존재함으로써 전체적인 안전보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 임시노동자나 하청노동자는 해당 작업에 경험이 부족할 때가 있고, 직업안전보건 관련 규칙이나 법규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와 관련된 정보의 교육 기회가 박탈되기도 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그들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체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제도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도 문제다. 1980년대에 틀을 갖춘 관련 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그 제도에 따른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하거나, 권리 주장을 하였을 경우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권리와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뿐 아니라, 산재에 대한 보상 제도인 산재보험 제도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안전망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특수 고용 노동자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적용대상이더라도 정보 부족이나 고용 유지에 따른 불안 때문에 이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 구조 개편, 유연화 된 생산방식의 도입 등, 최근 들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제 및 산업 구조도 이전의 건강 문제와는 다른 형태의 건강 문제를 광범위하게 야기하고 있다.
생산방식의 변화로 생산과정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생산기일도 여유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노동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한 시간도 불충분해지고 있다. 무리한 생산량을 정해 놓고 이를 자동화된 공정에서 수행해야 하기에 빠른 생산 속도에서 지속적으로 노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한편 노동을 효율화한다는 명목 아래 생산기일을 매우 짧게 잡아서 노동을 쥐어짜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빠른 생산과정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력과 시장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감소하기는커녕 더욱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역시 OECD 국가 중 1위임은 잘 알려져 있다. 법률에서 정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다양한 형태로 초과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생활을 온전히 직접 임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법정 노동시간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않는다면 생활의 어려움에 봉착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초과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절대적 노동시간의 증가와 별도로 비정상적인 노동시각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교대근무가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고, 야간 근무, 휴일 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 역시 비정규직과 서비스직에 두드러진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작업장에서의 노동을 감시, 통제하는 방법도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 CCTV를 설치하여 노동자 개개인의 활동을 감시함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메일까지도 검사하는 등, 노동의 질 관리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동의 자리가 점점 더 병영 혹은 감옥을 닮아가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유연화 된 생산방식은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등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형태로 경영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에 따른 건강 영향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짊어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기업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요즘 한국의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 혹은 ‘국제 기준’을 많이 떠들고 있다. 이것이 한낱 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항목에 고용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얼마나 잘 보장하는가와 관련된 지표가 적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업에 막대한 벌칙을 주는 제도도 강구되어야 한다.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사업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업주에게 징역형을 처하고, 징벌적 배상에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법안이 있다.
작업장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여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안전보건 선진국의 경우 예외 없이 작업장에 노동자들이 선출한 노동자 안전보건 대표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사업주가 보장한 시간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그 지식으로 사업장을 순회하며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 도입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일상적 산재 예방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도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전시 행정 위주의 지도, 감독으로는 현실을 바꾸어내기 힘들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에 대한 감시, 감독, 제재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자율’과 ‘규제 완화’가 아니라, ‘감독과 제재’, ‘규제 강화’가 노동안전보건 정책의 모토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