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산업재해보험의 재정과 관련한 통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산재보험은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으로서, 공정한 보험료 부과체계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용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경우 보험료를 전액 사업주가 부담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보험료의 징수, 징수된 보험료가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발생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안전망인 산재보험에 노동자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험료 부과 방식이 공정한지, 기금운영이 효율적인지,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도록 산재보험이 활용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표 1을 보면 산재 보험은 약 5조원 정도의 보험료를 걷어, 4조원 정도를 지출하며 2010년 현재 적립금은 약 5조원에 달한다. 보험료는 노동자 임금의 1.8% 정도를 산정되어 있다.
표1 . 산업재해 보험재정 현황 및 적립금 (단위: 억 원, %)
표 2는 산재보험제도 운영과 관련된 두 공공기관의 운영비 현황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운영비는 연간 약 1천 7백억 원, 산업안전공단의 운영비는 약 8백 8십억 원에 이른다. 이 둘을 합치면 전체 산재보험료 수입의 약 5%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리운영비 수준은 이윤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영리보험에 비해 휠씬 낮은 것이다.
한편 2010년에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재활을 위해 사용한 예산은 약 4백 6십억 원이며, 이 중 합병증 예방관리 사업에 397억 원, 직장복귀 지원 6억 원, 사회심리재활 지원 20억 원, 재활심리 상담제 운영에 10 억 원등이 사용되었다. 전체 산재보험 예산인 5조 원 중 재활에 사용된 금액은 100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표 3은 2010년도 산업재해 예방사업의 재정규모를 나타낸다. 예산 규모는 약 1천 9백억 원으로 전체 산재보험 수입의 약 4%에 해당한다. 세부지출 항목을 살펴보면,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에 약 6백 5십억 원, 안전 보건관리 기술지원 약 5백 십억 원, 안전보건 문화정착에 약 200억 원, 산재예방 시설에 4백 9십억 원등이 책정되어 있다.
- 연구책임자: 강성규 - 참여연구원: 권오준, 김영선, 이경용, 최성원
지난 해 9월 7일 오전 2시, 제철소 용광로 작업자였던 29세 청년이 작업 중 1,600도를 오르내리는 쇳물 속에 빠져 사망하는 재해가 일어났다. 이후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추모 열기가 달아올랐고, 자연스럽게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수년간 정체 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행한 『산업재해정체 원인분석 및 대책 연구』는 한국의 산업재해정체 원인에 대한 분석과 그 대책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산재가 정체한 것처럼 보이는 가장 큰 요인이 산재 예방 지표로 사용하는 재해율 지표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매년 발표하는 ‘산업 재해율’은 1년동안 발생한 ‘재해자 수’를 한 해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누어 구한다. 이렇게 계산 한 산업 재해율은 이론상으로 단순 ‘재해자 수’가 아니라, ‘전체 근로자수’를 감안하기 때문에 ‘재해자 수’보다는 재해 예방효과를 더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산업재해율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재해 감소효과를 그대로 나타내지 못하는데, 이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점들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먼저 산업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산업재해로 인해 다치는 경우, 즉 ‘사고성 손상’ 이 있으며, 둘째, 직장에서 유해요인 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성 난청, 진폐증, 유해물질 중독 등 ‘업무상 질병’ 이 있다. ‘사고성 손상’과 달리 ‘업무상 질병’은 현재의 예방 노력과는 관계없이 과거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의 산재예방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산재보험에 적용을 받는 노동자 수가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재해자 수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산재보험적용 노동자수는 1,058만 명이었으며, 2009년에는 1,388만 명으로 약 330만명이 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재해‘율’의 정체 또는 증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셋째, 본 연구는 ‘산재 미가입사업장의 재해 발생 후 신고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산업 재해율 정체의 원인들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원칙적으로 1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모든 사업장에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당연히 가입하여야 할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비율이 높다. 이러한 사업장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산재보험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가 바로 ‘산재 미가입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한 사례’이다. 이런 사업장이 2001년에는 전체 재해건수의 2%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11%로 거의 다섯 배가 증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사례를 기업 규모별로 구분해보면, 30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는 전체 사업장 평균에 비해 이러한 사례가 29%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들만 가입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분모에 해당하는 전체 노동자 수가 정확히 반영이 되지 않은, 즉 실제보다 적게 반영된 상태에서 분자인 ‘산업재해자 수’만 증가하여 산업재해율이 정체 또는 오히려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사업장에서 일어난 재해 중 상당수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산재통계에 반영되고 있지 않은 점도 재해율 정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했다. 여러 연구들이 이렇게 통계에서 누락된 재해의 규모를 추정했는데, 적게는 2~3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문제는 앞서 말한 ‘산재 미가입사업장의 재해’와도 관련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미반영 재해는 향후 산재보험에 대한 인지도 증가로 인해 점차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 경우에도 분모(전체 노동자)는 실제보다 낮게 반영된 상태에서 분자(산업재해노동자)만 증가하므로 재해율은 정체 또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재해율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취업노동자의 고령화에 따른 재해율의 변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재해율의 변화, 경기변동에 따른 재해율의 변화, 교통사고, 체육행사 중 사고 등 재해예방정책들과 무관한 사회복지차원의 보상 증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경미한 재해에 대한 보상 증가 등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재해율 정체 현상은 실제 상황이라기보다 앞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산재로) 처리하지 않았던 사고 부상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인지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이 연구는 한국의 산업재해 지표와 미국, EU 등 OECD 국가들 사이의 산업재해 지표들을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 비교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으로 노동시간의 영향을 들고 있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2,200시간으로, 독일의 1,800시간에 비교하면 20.2%나 높다. 근무시간이 길면 늘어나는 시간만큼 재해 발생의 위험도도 증가하는데, 이러한 연평균 노동시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상시근무자 1인당 재해발생률로 국가 간 지표를 비교하면, 한국의 분모가 실제보다 적게 추정되므로 실제 재해발생률보다 더 높게 나타나게 되어 적절치 못한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비교에는 이러한 노동시간의 차이를 보정한 전임노동자수 (FTE, Full-Time Equivalent)로 보정할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직접 이렇게 보정을 한 경우에도, 200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십만 명 당 사고사망자는 8.81명으로 EU 15개국 평균 2.9명, 싱가포르 2.9명 보다 훨씬 높았다. 사고 손상율을 살펴보면, 2007년 평균노동시간을 보정한 손상율이 0.49%로 EU 15개국 노동자 100인당 평균 손상율 2.9와 비교해 6분의 1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산재사망율과 산재손상율의 불일치에 대하여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향후 산재예방 사업방향 및 지표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향후 산재예방 사업은 업무상 사고와 질병을 구분하여 실질적인 사업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업무상사고를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산업 등 업종별 사고 유형의 차이를 고려한 예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업무상질병에 대한 예방정책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지표개선과 관련해서는 모든 산재사고 손상이 통계에 들어오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으며, 이를 위해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자료의 연계분석, 표본 설문 조사를 통해 전체 손상 중 산재손상의 기여율을 확인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산재 예방효과를 보기 위한 적절한 지표로는 사고 사망자 수 또는 사고 사망률 등이 적합한 지표라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고 사망자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면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수준은 재해율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EU 국가들의 평균 수준에는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홈페이지 ‘안전보건 연구’ 게시판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 http://oshri.kosha.or.kr/bridge?menuId=901).
구제역에 전세대란에, 멀리는 리비아 민중혁명 소식까지 겹쳐지면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뉴스가 있었다. 2월 말에 접어들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일제히 단협 해지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2009년 노동연구원에서 시작된 공공기관의 단협 해지 행렬이 끝내기 한 판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보니, 사실 아주 놀랍지는 않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 비슷한 사안을 두고 미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유시장주의의 선두주자 바로 그 미국에서,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1월에 선출된 공화당 주지사 스캇 워커 (Scott Walker)가 2월에 예산 수정법안을 제출하면서 주 (state), 군 (county), 읍/면/동 (municipality)에 속한 공공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권을 폐기하는 내용을 끼워 넣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지사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1월에 적극적인 감세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런데 2월에 갑자기 주 정부의 재정 파산을 공표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해고는 물론 임금삭감과 연금/건강보험 같은 부가급여의 노동자 분담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없애겠다고 했다. 주지사는 금요일에 법안을 제안하고 다음 주 목요일에 하원 투표를 하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이런 중대 사안을 흔히 15분 사전 토론이 배정되는 예산 일부 수정법안 뒤에 덧붙임으로써 의회에서의 논쟁 자체를 차단하려 했다. 노동자들의 저항까지 예상하고, 일찌감치 주방위군 소집 명령을 내려두기까지 했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즉각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2월 14일, 한국에서 초콜렛과 사탕이 불티나게 팔리던 발렌타인데이에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조교 노조 (Teaching Assistant Association)에 소속된 대학원생들이었다. 이어서 교사들과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의사당으로 집결했고, 학교들은 문을 닫았으며, 사건은 순식간에 전국 이슈가 되어버렸다. Democracy Now 같은 미국의 대표적 독립 언론은 아예 매디슨 시에 위치한 주 의회 앞에 스튜디오를 열고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마저도 단체교섭권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며 주의 재정파탄 원인을 노동자에게 돌리지 말라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하원에 상정된 법안은 60시간이 넘는 긴 논쟁이 벌어지던 가운데 새벽 두 시, 공화당 측의 갑작스런 토론 중단과 날치기 투표로 순식간에 통과되어 버렸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당시 의사당 바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철야시위를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사당 안팎에서는 ‘Shame! (부끄러운 줄 알아라!)’이라는 함성이 넘쳐났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경호 속에 의사당을 빠져나갔다. 이제 법안은 상원으로 넘어왔고, 민주당의 의석수는 공화당보다 적은 상황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14명은 이웃 일리노이 주로 피신했다. 아예 의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도록 하자는 전략이다. 주지사는 투표 강행을 위해 상원의원 자택으로 경찰들을 파견하여 의원들을 데려오도록 했지만, 그들은 이미 집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이 와중에 시위 참여자는 점점 더 늘어나서 2월 28일에는 10만 명이 모였다. 이는 베트남 전 반대 시위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한다. 참가자들 스스로, 또 서로에게 놀라고 있다.
주 의사당 실내를 가득 메운 시위대 모습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즈
과연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놀랍게도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임금삭감이나 연금, 보험료 부담 증가 문제가 아니다. 바로 단체교섭권의 박탈이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래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미 임금삭감이나 보험료 부담 증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는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단체교섭권을 없앤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돈은 가져가라. 하지만 우리의 권리는 안 돼! (Take the money, but don't take our right)” 라는 구호는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 주의 재정이 어려워진 것은,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엄청난 감세정책에 기인한 바가 큰데다, 실제로 ‘위기’라고 부를 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니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듯 소위 귀족 노동자들의 해고, 임금과 부가급여 삭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예산절감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공화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산 절감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그냥 이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위스콘신은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노동조합 운동이 강력한 지역이다. 노조 조직률은 상위 10개 주에 속하며, 모든 공공부문은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다. 1932년에 AFCME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가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이자, 여성노동자 보호와 아동노동 금지, 실업보험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도 위스콘신이다. 물론 이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룬 것들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으며, 미국 전역에서 공공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36%에 달한다 (민간 부문 약 7%). 이들 공공 노동자들은 대개 부유하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혹은 서민 계층으로서, ‘공익’의 수호자라는 자부심도 상당하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본 미국의 보건소 직원들 중 자신을 ‘공공의 옹호자 (public advocate)’라고 표현한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아닌 단체교섭권이 공격을 받은 것은 초유의 사태로, 이는 노동권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사회 공공성 전반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투쟁 결과가 다른 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파 진영과 노동계급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오하이오 같은 인근 주에서 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멀리 캘리포니아의 노동자들이 연대를 위해 위스콘신으로 집결하기도 했다. 이번 법안에는 소방직과 경찰 노조만을 예외로 두었는데, 이들 노조가 지난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노조의 노동자들도 분명한 연대의사를 표명하며 현장을 함께 지키고 있다. 경찰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위한 경찰 (Cops for Labor)’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함께 행진했다. 심지어 의사당 경찰은 주지사의 시위대 퇴거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시위가 평화적이라는 이유로 강제집행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저항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최근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이집트에서 익명의 지지자가 의사당 근처 피자가게에 전화하여 시위대에게 피자를 배달시킨 것이 큰 화제가 되면서, 근처 피자 가게와 도넛 가게들은 미국 전역, 외국의 지지자들로부터 주문을 받느라 북새통이다.
의사당 내 시위대에게 피자배달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도한 뉴욕타임즈
사실 한국의 진보진영이 보기에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반(反) 노동적이기는 매한가지라지만, 최소한 이번 투쟁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더 네이션 (The Nation)’의 기자 존 니콜스 (John Nichols)가 지적했다시피, 이런 강력한 저항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문제제기야 했겠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달아 결국 법안에 동의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밤새도록 의사당을 점거하고 거리를 메운 군중들의 행렬은 민주당에게 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하원 투표 시 공화당 의원 4명도 반대표를 던졌다. 니콜스는 위스콘신 주의 명망 높은 진보적 정치지도자 로버트 라폴럿 (Robert LaFollete)의 “민주주의는 생활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민주주의란 투표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선출된 이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닌,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우리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번 사례만큼 사회운동이 제도권 정당을 성공적으로 ‘견인’해간 사례도 드물 것이다. 운동을 결국 ‘법안’과 ‘제도’로 협소화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이 투쟁의 과정에서 진정한 연대감을 맛본 현장의 10만 명, 단체교섭권이 노동자의 소중한 권리라는 것을 배운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의 경험 자체를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집회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매디슨 시 경찰노조의 조합원인 브라이언 오스틴 (Brian Austin)은 Democracy No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이 직업에 투신했을 때, 우리는 이 지역사회 성원들을 받들고 봉사하며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지금 이들과 함께 여기에 나와 있음으로써 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일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음악대학원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 소방 노동자들과 경찰들, 간호사들, 기간통신망 노동자들이 자기는 어느 지부의 조합원 아무개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지구 반대쪽 노동자가 보내온 피자를 나눠먹는 연대의 모습은 단식투쟁과 고공크레인, 죽음을 무기로 싸워야 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머나먼 것이다.
10만 명이 모인 지난 토요일 (2월 27일)의 집회 이후에도 주지사는 강경한 태도를 거두지 않고 있다. 주(州) 건강보장 프로그램의 대폭 축소와 소속 지자체의 재정지원 감소를 공언했고,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돌아와 법안처리를 하지 않으면 1,500명에 달하는 공공 노동자들의 해고절차를 시작하겠단다. 위스콘신 노동계는 이에 맞서 총파업을 심각하게 논의 중이다. 이 사건이 과연 어떻게 귀결될지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Dhaka) 인근 치타공 (Chittagong) 지역의 수출 가공 지구 (Export Processing Zone)에서 의류노동자들의 집회가 벌어졌다. 경찰은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려고 고무탄과 실탄, 최루 가스 등을 발포했다. 네 명이 숨지고 250명 이상이 다쳤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언론에서 이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영원무역’이라는 한국 의류회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국내 주요 보수 언론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불러온 물리적 충돌은 무시한 채 시위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방송화면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원무역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기업이 외부세력의 선동에 휩쓸린 노동 쟁의의 피해자인 양 보도했다. 정작 이러한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상된 최저임금의 적용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의류노동자 (출처:EPA)
방글라데시 의류산업과 의류노동자
방글라데시는 중국, 베트남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의 의류수출 국가이다.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업종으로, 연간 수출액은 120억 달러가 넘는다. 방글라데시 전역 약 4천 개의 의류공장에서 약 35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객은 미국과 유럽의 의류 업체들이다. 월마트, 테스코, 까르푸, H&M, 자라, 갭, 막스 앤 스펜서, 리바이스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기성복을 생산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치타공 지역에는 160여 개 공장에서 약 15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치타공 지역에 입주한 70여 개의 외국 기업들 중 하나인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전체 의류 수출의 약 5%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큰 의류수출업체들 중 하나다. 방글라데시 전역에 17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11개의 공장이 치타공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영원무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3만 6천 명으로 노스페이스, 나이키 등의 제품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류산업이 저임금을 좇아 저개발 국가에서 상품을 생산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OEM 방식의 수출 주도형 의류 산업이 호황을 누렸는데, 1980년대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국내 의류업체들의 해외 공장 이전이 시작되었다.
의류업체들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거쳐 방글라데시 같은 좀더 저개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며 여전히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반면, 여기 고용된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대부분(85%)은 여성으로 하루 10~14시간, 적절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문이 잠긴 공장 안에서1) 세계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2010년에 인상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해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표1 참조).
표 1. 26개국 의류노동자의 시간당 임금2)
번호
국가
시간당 임금
(미화)
(원)
1
미국
8.25-14
9,199-15,610
14
니카라과
0.65
725
2
영국
7.58-9.11
8,452-10,158
15
바레인
0.57
636
3
베네수엘라
2.73
3,044
16
태국
0.56
624
4
코스타리카
2.19
2,442
17
인도
0.55-0.68
613-758
5
과테말라
1.21
1,349
18
모리셔스
0.55-0.65
613-725
6
콜럼비아
1.2
1,338
19
베트남
0.52
580
7
온두라스
1.02
1,137
20
이집트
0.5-0.87
558-970
8
필리핀
0.94-1
1,048-1,115
21
멕시코
0.5-0.53
558-591
9
중국
0.93
1,037
22
스리랑카
0.46
513
10
페루
0.92
1,026
23
파키스탄
0.37
413
11
엘살바도르
24
인도네시아
0.35
390
12
요르단
0.74
825
25
캄보디아
0.24
268
13
말레이시아
0.73
814
26
방글라데시
0.21
234
노동자들은 왜 거리로 나왔는가?
2010년 7월과 8월,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들은 두 달여의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월 최저임금을 당시 1,662다카 (약 26,359원)3)에서 3,000 다카 (약 47,580원)로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2006년 이후 약 4년 만의 인상조치였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0년 11월부터 미숙련 노동자들(7등급)에게는 인상된 최저임금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였고,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숙련정도에 따라 등급별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표2 참조).
표 1).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숙련도에 따른 최저 임금 가이드라인, 단위: BDT (KRW)
숙련도
인상 전
인상 후
인상률(%)
5,140 (81,520)
9,300 (147,498)
80.9
3,840 (60,902)
7,200 (114,192)
87.5
2,449 (38,841)
4,120 (65,343)
68.2
2,250 (35,685)
3,763 (59,681)
67.2
2,046 (32,450)
3,455 (54,796)
68.9
1,851 (29,357)
3,210 (50,911)
73.4
1662 (26,359)
3,000 (47,580)
80.5
견습생
1200 (19,032)
2500 (39650)
108.3
하지만 11월분 급여가 지급되는 12월이 되고 보니, 인상된 최저임금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미숙련 노동자들에게는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숙련공들에게는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들은 임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 직무 재분류를 통해 임금을 조정하는 등 편법을 일삼았고, 심한 경우 20년 가까이 일을 하고도 미숙련 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불공정한 임금구조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특히 중간 등급 노동자들의 경우, 숙련노동자들과의 높은 임금 격차, 한편으로 신규노동자들과 비교해 낮은 인상률에 상당한 불만을 갖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영원무역 역시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폭이 미숙련 노동자들에 비해 적은 것에 비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에서, 사측이 임금인상을 기점으로 점심식대로 2006년부터 매월 지급하던 250다카 (3,965원)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노사갈등이 격화되었다. 당연히 영원무역의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식대 삭감에 항의했고, 이를 둘러싼 노사 간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교섭 도중이었던 12월 11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교섭을 결렬시키자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 이후 조업을 중단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노사 간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관리자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영원무역은 2010년 12월 11일 공장을 전면 폐쇄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공장폐쇄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이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리 시위에 대해 경찰은 폭력 진압을 가했고, 그간 내제되어 있던 임금과 관련한 불만들이 더해지면서 치타공 영원무역 노동자들의 시위는 다카와 루프간 (Rupganj), 아슐리아 (Ashulia)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게 된다.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여성 노동자 (출처: 연합뉴스)
12월 14일, 방글라데시 경찰은 노동자 시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단결포럼 (Garment Workers Unity Forum: 기성복 부문 노동조합) 의장인 모쉬레파 미슈(Moshrefa Mishu)를 체포했다. 경찰은 체포 영장도 없이 미슈를 연행했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미슈에게 의료서비스 제공을 거부한 것은 물론 고문까지 자행했다. 현재 미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4)
방글라데시 정부와 의류산업 사용자들은 시위를 배후 조정하는 외부세력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 역시 사건의 배경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외면한 채 한국 기업의 피해 상황과 노동자들의 폭력성만 부각시켜 보도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수출가공지구에서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허용되지 않으며, 채용과 해고, 임금 등에 관한 권한이 모두 사측에게 부여되는 등 기본적인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영원무역과 다른 한국기업들이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또 영원무역의 대표이사가 수출가공지구 투자자 협회 (Bangladesh Export Processing Zone Investors Association)의 의장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에 한국 기업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것을 쟁취해 내야할 이들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1)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작업 중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놓기도 하는데, 화재나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가 커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14일 방글라데시 아슐리아(Ashulia) 지역의 하밈(Ha-Meem) 스포츠 의류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5명이 죽고 10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화재 당시 공장에 남아있던 노동자들은 비상구가 잠겨있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다.
2) The National Labor Committee (http://www.nlcnet.org/alerts?id=0297)
NLC 자료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한국 원화(KRW)로의 환산은 1$=1115원 기준으로 필자가 계산한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2010년 최저임금은 시급 4110원이다.
3) 1 BDT(방글라데시 다카화)=15.86 KRW(한국 원화)로 환산
4) 현재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미슈를 비롯해 체포된 노동자들을 석방하라는 온라인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http://www.gopetition.com/petition/41542/sign.html#se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는 상습·악덕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체불사업주 명단공개, 금융거래 및 신용 제재, 정부입찰 참가자격 제한 등 불이익 추진”을 위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체불사업장 개선대책’)을 입법예고했다.
2010년 10월말까지 임금체불액은 무려 1조 4백억 원, 피해 노동자만 25만 명에 달하는 등 임금체불이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임에도 체불사업주는 소액의 벌금만 내고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음으로써 임금체불에 대한 경미한 죄의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새롭게 입법 예고된 주요 개정법안의 내용은 ① 체불사업주 명단공개, ② 체불사업주 금융 및 신용제재, ③ 정부임찰 참가자격 제한이다. 노동부는 이 대책을 통해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줄이고, 제때에 임금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생활고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번 체불사업장에 관한 개선 대책안은 기본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징수법)을 참고 또는 모델로 하고 있다. 즉, ① 체불사업주 명단공개는 산안법 제9조의 2항 (사업장의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 징수법 제28조의 6항 (고액·상습 체납자의 인적사항 공개)를 모델로 한다. ② 체불사업주 금융 및 신용제재는 징수법 제29조의 2항 (체납 또는 결손처분 자료의 제공)을 모델로 하며, ③ 정부입찰 참가자격 제한은 산안법 제51조의 2항 (영업정지의 요청 등)을 참고하고 있다.
이처럼 산안법 및 징수법을 참고한 체불사업장 개선대책은 산재발생 사업장 및 산재보험료 미납 사업장에 대한 적극적인 공개와 제한이 나름의 성과를 보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1월 25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을 포함한 사고·질병 등의 산재자 수는 확인된 경우만 해도 9만 8,620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숫자일 뿐, 공상 및 숨겨진 산재피해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클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산재가 50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으며 그 비율은 전체 산재사업장의 80%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9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의 규모별 재해분석에 따르면, 5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재해자 및 사망자의 비율이 감소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 및 산업재해 예방․점검이 대규모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불사업장 개선대책의 모델이 된 산안법 및 징수법을 살펴보면, 그 대상은 ① 산재발생이 신고된 사업장만을 ‘예방불량 사업장’으로 선정하여 그 결과를 공표하고, ② 고액 체납액을 기준으로 하므로 대규모 사업장이 주 대상이 되며, ③ 다수의 사망 및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사업장 규모별 재해자 발생 현황
이 때문에, 체불사업장 개선대책의 모델이 된 산안법 및 징수법 규정이 중소영세 사업장에 적용되어 효과를 발휘하려면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하다. 특히 본 제도가 신고 접수된 사업장별 산재발생건수만을 공개요건으로 하거나, 산재가 발생한 결과에 따라 금융·신용제재 또는 정부입찰자격을 제한할 경우 오히려 사업주가 산재발생을 은폐하거나 공상으로 처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산재가 발생하여 접수된 건수만이 아니라, 산재다발 지역 및 산업종류별, 특히 산재발생률이 높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통해 ① 산재를 은폐한 사업장 및 공상처리를 한 사업장에 대한 공개와 제재, ② 중소기업의 산재발생 시 산재처리를 활성화하고 유도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산재발생율의 공개 뿐 아니라 ③ 노동자의 산재요청에 대해 불합리한 이유로 산재신청과 자료요청을 거부한 사업장의 공개와 제재가 필요하다. 한편 ④ 이미 산재가 다수 발생하여 ‘산재예방 불량사업장’으로 공개되었던 사업장에 대해서는 산재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산재적용, 동일한 산재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환경 변태 등을 조사하여 작업환경 우수개선 사례로 개발하고, 산재예방을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⑤ 산재재해 발생건수 공표대상 사업장의 경우 ‘연간 산업 재해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재해율 이상인 사업장 중 상위 10% 이내에 해당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삼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지만, 금융·신용 제재 및 정부입찰자격의 제한에는 규모에 따른 차이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 중소기업에게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산업재해율 개선을 위해서는 ‘사업장 공개’와 ‘지원 축소’라는 강압적이고 일시적인 수단 이전에 ‘2011년 근로자 건강증진활동 비용지원계획’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 사업장 환경 개선과 산재예방 및 산재처리에 관한 교육 및 관리를 통해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산재예방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의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한 체불사업장 개선대책이 산안법과 징수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모범으로 삼은 이 법들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실질적으로 적용됨으로써 노동부가 말한 대로 ‘산재에 대한 처리미흡과 은폐를 방지하고, 산재에 대한 낮은 의식 수준을 고양시키며,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으로 인한 지속적이고 되풀이되는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초석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주택가 골목, ‘소망교회’라는 작은 교회지하. 도로에서 서너 계단을 내려가면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칠이 벗겨지고 갈라진 나무현판이 걸려있다. 유리문을 밀자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수천 부의 신문을 쌓아놓고 접고, 봉투에 넣고, 묶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30여 평 남짓한 사무실이 종이먼지로 부옇다. 작업대로 쓰는 탁구대의 초록색 매트 한쪽에 흰 우편봉투들을 보니 한국노총 로고가 찍혀 있다. 맞은 편에는 민주노총 로고의 봉투도 보인다. 민주노총은 정기 발행하는 기관지, 한국노총은 3.8여성의 날 포스터 발송을 의뢰했다.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바쁘다고, 멀다고 한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다. 동네빵집에서 사온 빵을 한 아름 안겼더니 함박웃음들이다. 신문을 봉투에 넣고 있던 박영일 대표가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요?” 웃으며 나온다. 탄탄한 체구와 울림통 큰 음성에서 오는 활기가 그의 첫인상이다. 알고 지낸지 10년이 넘은 그와는 공유하는 추억이 많다. 몇 해 전 겨울, 빵집 앞을 지나다가 “아이들 갖다 주세요” 하며 크리스마스 케익을 건네줄 때 그걸 받아 든 나는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의 차를 타고 지방에서 회의를 마치고 상경하는 길, 깊은 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를 몽땅 털린 적도 있다. 우리 일행의 가방들은 고속도로 가장자리 풀숲에 가지런히도 버려져있었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노동법전들이며, 회의 자료가 도둑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노동자의 자살에 관련한 자료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열었을 때 그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도둑은 쩨쩨하게도 필자의 지갑에서 전 재산 2천원을 빼갔다.
“산재노협 사무실 입구”
산재노협 소개를 부탁합니다.
으아… 다 알면서 쑥스럽게
<노동과건강>에 처음 소개하는 거야, 정식으로 해주세요.
산재노협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지나간 후 만들어졌어요. 산재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모여서 산재보상법을 몰라서 우리처럼 피해 받는 노동자가 없게 하자고 교육받고, 만들어졌죠. 목적은 산재를 알리고, 병원에 방문해서 치료권리를 알려주는 사업을 하죠. 병원방문사업과 상담은 중요한데 20년 넘게 하다 보니 다른 사업도 고민을 해야겠어요. 폭넓게. 재활이나 현장복귀사업도 계획에는 있었는데 10년 째 아직도 고민하고 있죠. 지난 1월에 총회를 하고 새 집행부를 꾸렸고요, 사업계획을 얘기했어요.
회원들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여성회원은 못 본 것 같아요.
네. 회원 중에 여성은 없어요. 후원회원 중에는 여성이 좀 있네요. 나이는 제가 서른 여섯으로 제일 어리고요, 40대, 50대가 많아요. 90%가 사고를 당한 환자고요, 근골격계 직업병이 있는 분도 조금 있어요. 경제, 생활고 문제가 크죠. 결혼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회원 두 분이 최근 결혼을 했어요. (부인들 중) 한 사람은 캄보디아, 한 사람은 베트남에서 왔대요. 다 돈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회원들이 부러워하죠. 한국 말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하대요.
산재 상담 사업이 제일 중요한 일이겠죠?
전국에 산재 이름 달고 브로커하는 조직이 26개라고 해요. 저기 대림역 앞에만 가도 ‘중국노동자 산재보상’ 간판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브로커하는 데가 아니니까. 병원에 방문하고, 인터넷을 통해서나 요새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알려지면서 직업병 상담이 들어와요. 여기 서울남부지역도 노동조합 네트워크 통해서 상담을 많이 하기로 했어요. 구로 지역에 IT 노동자가 13만 명이라고 하니까요.
아까 들어올 때 보니 우편발송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재정사업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96년에 우편발송대행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때 대표로 있던 분이 재정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민주노총 출범하고 나서 발송사업을 따왔죠. 대선 때 권영길 버튼 발송도 하고,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으로 2005년 <산재노협 부설 자활공동체>로 발전했어요. 취지는 치료를 받아도 재활이 없고, 중증장애로 직장을 갖지 못해서 그 분들이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재활을 하려고 하는 거죠. 원래는 산재노협과 따로 분리해서 사업체를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자활공동체를 하면서 장애인고용지원금을 받게 되었어요. 산재노동자 공간이, 장애인 복지가 이 정부 들어와서 많이 줄었어요. 장애인 고용지원금이라 해도, 장애 6급 이하에, 일한지 4년이 넘으면 지원금을 끊어요. 취업연수가 오를수록 줄이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지원금이 줄어서 자체적으로 임금을 보존해줘야 해요. 법정 최저임금은 맞추려고 하는데 일거리가 꾸준히 오는 게 아니라서… 몰릴 때 몰리고. 노동조합이 주 고객이니까 시기가 겹칠 때가 있죠. 신문이나 포스터가 나오는 때가 비슷하니까요.
발송 사업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지만 대표님 개인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산재노협에 어떻게 오게 됐나요.
다 아는 얘기잖아요.
아니에요, 다시 해 주세요. 자세히 들은 적 없어요.
98년 4월 17일 오전 9시 57분 사고를 당했어요. 시간, 그 시간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인천 길병원으로 갔더니 손목을 절단해야 한다고 하길래 광명성애병원으로 갔어요. 산재를 회사에서 한 건 알고 있었는데, 6월인가 병원에서 산재노협을 알게 됐어요. 회사에서 불리한 내용을 요양신청서에 쓸 수도 있으니 잘 봐야 된대요. 그 때부터 산재노협하고 친해지고 7월에 사무실에도 놀러가고, 10월에는 회원가입을 했어요.산재노협의 도움을 받으면서 오게 되었어요. 전혀 몰랐던 걸 알려주고 불리한 걸 확인해주니까요. 원무과에 확인하러 가니까 최초 신청서에 나의 부주의라는 내용이 있어요. 민사소송을 하게 되면 큰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래요. 산재교육에서 대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열심히 작업 중인 산재 노동자들의 모습”
무슨 일을 하다가 손을 다친 건가요?
군대를 가려고 할 때 구청에서 방위산업체를 권했어요. 16명이 일하는 데였는데 선반 깎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배운 적도 없는 프레스 일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난생처음 해보는데 한 달 안돼서 손을 다쳤어요. 제일 억울한 게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자동차 만들 때 엔진 깎는 데 일하다가 … 스물 셋, 왜 다친지도 몰랐어요. 느낌이 없으니까. 손이 따라오는 느낌이 나서, 보니까 프레스에 닭발처럼 손이… 꿈을 접어야 하니까 사람들 만나기가 싫었고, 친한 친구도 안 만나다가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 산재노협 사람들이죠. 산재노협에 왔을 때, 장애가 생기고 대인기피증이 걸렸는데 산재노협에 오니까 더 심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두 손으로 마우스를 쓰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비장애인들하고 있을 때보다, 여기서는 손을 꺼내놓고 있을 수 있어서 편하게 해 주고 교육 받으면서 산재는 이렇게 하는 구나 알면서.
다친 시간을 얘기하는 걸 보니… 그 시간이 자주 생각나고, 힘들지는 않은가요?
시간 때문에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산재노협에서 일하게 된 거군요. 젊고, 컴퓨터도 할 줄 알고요.
99년부터 재정국장으로 일하게 됐어요. 남한테 뭔가 해주고, 도움 준다는 게 좋았어요. 대인관계도 마음이 열리고, 비장애인 만날 때보다 에너지가, 인간은 교육 받으면서 발전된다고, 억울하면 얘기해야 하니까 싸워왔어요. 많은 모임도 보고,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반올림(삼성백혈병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반올림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조직이 되었는데… 경찰과 싸우면서 벌금도 많이 받았죠?
반올림의 집행부라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요. 삼성과의 싸움이었고 힘들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걸, 아는 걸 나누는 거 정도죠. 정부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싸우는 이유는 현장을 바꾸고 싶은 게 밑바닥에 있고, 정부와 자본이 공권력으로 막아도 우리의 요구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요새 반올림하면서 벌금 받은 것은 3번이고요, 나머지는 대추리, 평택, 개별 싸움의 현장에서 받은 거예요.
힘들게 하는 만큼 보람을 느끼나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나요?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보람이 아니라 현장이 바뀔 때까지, 요구를 관철할 때까지 싸우는 것이에요. 유족들이 나를 보고 힘을 받았다고 할 때 다행이다 생각은 하죠. 삼성이 대기업이고, 우리 움직임이 얼마나 영향을 줄까 생각했는데 반올림 카페보고 연락 오면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일류기업이라고 하면서 현장노동자들한테 실태를 숨기고, 하나씩 보면서, 상상을 깨는 정도의, 악랄하게 잔혹하게, 죽음의 현장이에요. 언론을 은폐하고, 가장 큰 문제는 건마다 삼성 죄를 묻지 않고, 현장이 개선되지 않고… 우리한테 왔을 때 막강해요, 정부를 휘어잡는 파워를 느껴요. 많은 노동자가 20대에 죽었고, 노동착취… 죽음을 대신해서 부를 얻고, 개선시키지 않고 변화도 없어요.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는 것에 분노합니다. 노동자건강은 생각 안 하고 숨기고 있었고, 죽음만 원할 뿐 자기 부를 위해서.
“박영일 산재노협 대표”
반올림 활동에 시간을 많이 내느라 산재노협 내부를 챙기는 시간이 부족하진 않나요?
일주일에 2~3일 투여했는데 산재노협이 다시 살기 위해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는 사업을 잡고 싶어요. 내부 고민을 갖고 반올림에 들어가야 하는데 몸 대주기로 한 건 아닌지. 뜻을 갖고 의도를 갖고 고민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책을 내는 데가 따로 있고, 집회동원 해 주는 데가 아니라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만들어야 하는데 역량이 부족해요.
산재보험을 개혁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사회복지 이슈를 타고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산재보험이 더 악랄해지는 것 같아요. 사회보장이 아니라 자본가들 악법으로 변질되는 것 같고… 투쟁이 부족한지, 그동안 민주노총이나 연맹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당사자들은 지금도 산재보험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제도개혁도 아는 자들, 경험한 자들 얘기잖아요. (제도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너무나 노동자의 치료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악법으로 있고, 개혁이 돼야 하고. 당사자 조직이 없어서인지 산재보험내용이 전문가 통해서만 얘기될 뿐, 실제 실태는 반영되지 않아요. 우리 내용, 고민을 모를 거고. ‘원 직장 복직’이 안 되고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치료받을 권리가 없는데... 전문가끼리 만들어서 공단이 결정권을 갖고. 내용 자체를 확 고쳐야 할 것이고, 바꾸자고 하는 내용도 같이 해 봤으면 좋겠고요.내용을 잘 모르는데 그렇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개혁의 이유가 뭔지, 정말 밑에 있는 노동자 얘기를 들은 건지, 현실적으로 권리와 대안을 만들어야 해요. 내용은 좋은데 당사자가 보면서 전문가 위주가 아닌 밑바닥 의견을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전문가 중심이면 원망을 들을 거예요. ‘원 직장 복직’을 주장하는 게 경미한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안 다친 사람도 구조조정 하는 판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걸 바꾸려면 여러 가지 포괄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손가락이 없는데 작업할거냐, 원하는 게 뭐냐, 이런 부분들이 현실성이 없어요.
앞으로 전망,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개인적 전망은 부딪치면서 싸우면서…뭐 있겠어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바꿔야죠. 우리는 매일 뒷북만 치고 억울해요. 우리 요구안이 먼저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 터진 다음에 천막치고 농성하지 말고. 전문가 위주가 아니라 각계각층 넓혀가면서, 시민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가는 것. 전문가 중심 개혁이 아니라 시민이 호응하고... 이상적이지만 필요해요. 산재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석면처럼 주위에서 관심이 퍼지는 것, 당사자만이 아니라 시민도 혜택을 받게. 5년째 대표를 하고 있는데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에요. 이제는 고민하는 조직이 돼야죠. 산재노동자운동이 말 그대로 산재노동자 누구든 위해서 가장 약한 점을 해결하고 고민을 나누는 조직, 발판을 만드는 작업, 상담을 하니까. 산재승인이 아니라 산재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가장 이상적이죠. 조직적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공간이 협소해서 공동체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회비, 후원금이 부족하죠.
< 2011년에 개선해야 할 점 >- 지속적인 재정사업 일들을 만들어야 함. (예) 9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지속적인 일. 금액이 적더라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함.- 2010년보다 더 적극적으로 노동조합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대외사업을 전담하도록 하는 게 사업에 확장에 도움이 될 것 같음- 사무실 작업환경 개선 필요- 연속적 중량물 운반에 관한 대책 필요- 밴딩기 구입, 우편자동화기기 (금액이 외부에서 기부가 가능할 경우만 고려해 볼 만함)
지난 1월에 열린 <정기총회자료집>에서 발췌해 보았다. 산재노협의 회원들은 대부분 손을 다친 후 장애가 남아있다. 우편발송 작업에서 필요한 자동화공정을 손으로 다 하려니 힘이 부친다. 더 많은 작업을 수주하는데도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자동화기기를 구입하려면 큰 돈이 필요하고, 현재로서는 기부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작업환경도 좀 더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여력이 없다. 무엇보다 무거운 우편물을 옮기는데 계단은 큰 방해물이다. 작업공간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다. 산재노협에서 재정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는 그들의 힘으로 만든 사회복지이자 고용창출이기 때문이다.
고용지원금이 대폭 깎이면서 공동체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작업 중 점심시간은 직접 식사준비를 하고 밥상을 차리는 밥상공동체의 향기가 풍기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일도 안 하면서 왜 그렇게 많이 먹냐’는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밥을 많이 먹어서 사랑받았던 나에게는 더 그러하다. 그러나 2011년 정부의 고용지원금이 삭감된 점심시간의 풍경. 한두 명은 식은 도시락을 꺼내고, 대부분은 근처 식당으로 간다. 식재료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식사는 각자 해결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웃음과 수다가 오고가던 공동체의 밥상이, 한 끼를, 자기만의 밥그릇을 해결해야 하는 차가운 현실에게 지고 말았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그리고 국민연금이라는 한국의 4대 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제도가 일본에도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과 연금이 전국민 대상의 통합 프로그램인데 비해, 일본은 대기업, 업종조합 등 직장 내지 업종을 기반으로 개별화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산재보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국 통합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산재들이 은폐되는 상황에서 요양비를 의료보험이 대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산재 은폐 사례들을 일부 살펴보고 소위 일본적 고용형태가 만들어 낸 의료보험, 연금 구조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2008년 산재보험 급여 자료를 살펴보면, 연간 총 사망자 수 1,268명, 휴업 4일 이상인 사상재해발생 건 수가 119,291건이다. 해마다 사망자 수와 재해발생 건 수 모두 감소하고 있다. 한편 정기건강검진 유소견률은 51.3%로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특수건강검진 유소견률도 6.5%로 과거 5년 동안 6%대에서 상승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서 산재 은폐가 발각되어 검찰에 송치된 건수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산재 은폐란 ‘고의로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 내지 ‘허위 내용을 기재한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관할 노동기준감독소장에 제출하는 것’으로, 노동안전위생법의 위반에 해당한다.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는 사업주가 노동부지청의 해당 노동기준 감독서에 내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서, 노동자가 사업장 내, 부속 건설물 내, 부속 기숙사 내에서 부상, 질식 또는 급성 중독에 의해 사망 내지 휴업한 경우 바로 제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행정감독기관 입장에서는 재해 발생의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자 사상병보고서 제출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노동성은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가 적정하게 제출되도록 사업주 지도를 철저히 하는 것과 동시에 산재 은폐를 파악해 조치를 강구하는 내부 행정지침문서(기발 제687호)를 1991년에 낸 바 있다. 문서에는 산재 은폐 조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① 사상병 보고서와 산재신청서류 등 서류들을 통해 재해 발생 상황 등 기재 내용 파악
② 산재 노동자에게 제보가 있는 경우 관계 서류 확인과 내용 파악
③ 감독 지도할 때 출근부, 작업일지 등 기재 내용 점검 파악.
①에서 ③까지 서류 기재가 자연스럽지 않는 부분을 파악하고, ④로서 현장 조사 실시 지시.
그리고 산재 은폐 사실을 발견한 경우에는 사업장에 대한 사법 처분, 경고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건설사업 무재해 표창 사업장에 대해서는 무재해표창 반납을 지시한다. 산재보험 ‘메리트 제도’ 적용 사업장에는 환부금 회수 등 보험료 징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노동성에서 후생노동성으로 부서 명칭이 변경된 후인 2001년, 산재 은폐를 없애겠다고 사업자단체와 건설사업자단체에 통지했다. 이 때 통계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산재 은폐 사례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2002년 새로 낸 지침에서는 산재 은폐가 범죄라고 하면서 계발에 중점을 둔 내용을 지시했다. ① 포스터와 소책자, ② 지자체 홍보물, ③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④ 산재방지 지도원, ⑤ 건설원정단체, ⑥ 의료기관, ⑦사업자단체와 노무사단체, ⑧ 공공공사 발주기관을 통해 산재 은폐 방지를 지도하도록 지시했다. 또 2008년에는 산재인데도 건강보험을 사용한 사람에 대해 산재보험을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산재보험에 청구하는 것을 권장하고 사업주를 지도하는 것을 지시했다.
후생노동성이 파악하고 검찰에 송치한 몇 가지 산재 은폐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례1 : 아파트 신축 현장. 2차 하청 A사 대표와 3차 하청 도장업 B사 대표를 검찰 송치함. B사 노동자가 도장 작업 준비 중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는데, A와 B가 공모해서 “수주를 확보하기 위해 원청에게 산재보험으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산재 사고를 은폐함.
사례2 : 운송업체 C사와 회사 사장을 검찰 송치함. C사는 물건을 다루는 중에 발생한 자사 직원의 골절 등 1년 1개월 동안에 발생한 5개 산업재해에 대해 ‘노동자사상병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음. 사장은 “화주가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진술함.
사례3 : 건설회사 D사와 회사 전무를 검찰 송치함. 건물 건설공사 2차 하청인 D사 노동자가 현장에서 화상을 입었는데, “D사 건축자재 창고에서 발생”이라는 허위 보고를 노동기준감독서에 제출. 공사현장의 산업재해는 원청회사의 산재보험으로 보상되는데, D사 전무는 “원청의 산재보험을 쓰면 폐를 끼치고 일을 못 받게 된다”고 진술함.
사례4 :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 원청 건설업체 담당자 2명과 1차 하청업체 사장, 전기공사업체 E사 사장을 검찰 송치함. E사 노동자가 리모델링 공사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 골절하는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공사현장 노동기준감독서에 ‘노동자 사상병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E사가 직접 도급한 다른 공사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위장해 다른 감독서에 보고서를 제출. 원청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공상처리하려다가 부담이 커서 다른 현장 산업재해로 위장했음. 원청회사 담당자와 1차 하청 사장도 묵인해서 공범으로 송치됨.
사례5 : 제철소 1차 하청 철강가공 F사와 회사 부장대리 등 2명을 검찰에 송치함. 제철소 내에서 발생한 3건의 산업재해에 대해 건강보험을 쓰거나 통근재해(출퇴근 중의 재해)로 취급함.
이상의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청업체들이 앞으로의 계약을 걱정해서 원청업체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무재해 사업장에 대해 보험료 삭감 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재해 예방”을 진행해 온 것의 문제점이 이런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고용보험
31일 이상 고용 예정이거나 1주 노동시간이 20시간 이상이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
의료보험
1961년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 피보험자가 되었다. 그러나 보험의 구체적 특징들은 민간기업의 노동자, 공무원, 자영업자, 선원 등 직역에 따라 다른 조합제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보험은 산업재해, 직업병 등 업무상 재해를 제외한 의료행위에 대해 보상하며, 이러한 질병/부상에 따른 휴업 기간에는 상병수당이 지급된다. 평균 임금의 약 60%로, 최대 1년 반 동안 지급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는 상병수당제도가 없다.
보험료는 사업주와 절반씩 부담하며 (국민건강보험인 경우 한국의 지역가입자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부담), 월수입에 대해 47개 등급으로 보험료를 정한다.
연금제도
일본의 공적 연금제도는 전체 국민에게 해당하는 ‘국민연금’과 임금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후생연금보험’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① 노령기초연금 (65세부터 지급), ② 장애기초연금 (중증 장애 상태가 된 경우 지급), ③ 유족기초연금 (생계주가 사망한 경우 유족에 지급)의 세 종류가 있으며 다음과 같은특징을 갖는다.
한편 후생연금보험은 근무 시작부터 69세에 이를 때까지 회사원이 가입해야 하는 공적 연금으로, 앞에서 살펴본 국민연금 제2호 피보험자가 그 대상이며, 보험료는 회사에서 징수한다.
지급되는 후생연금의 종류에는 ① 노령후생연금 (65세부터 지급), ② 장애후생연금 (중증 장애 상태가 된 경우 지급), ③ 유족후생연금 (생계주가 가망한 경우 유족에 지급)이 있다. 한편 후생연금과 구조가 같지만 공무원이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공제조합’이 있다.
이렇게 보험자를 정부로 하는 공적 연금제도 뿐 아니라 기업연금제도도 있다. 이 경우, 후생연금보험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가 의무화되어 있다. 기업 퇴직금의 일부를 기금에 내는 것으로 독자적인 기업연금을 설정할 수 있다. 설립 형태는 1개 기업의 단독설립, 동일 자본계열인 기업그룹의 연합설립, 같은 업종이나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함께 하는 종합설립이 있다.
산재보험제도는 국가에 의한 강제적 사회보험제도로서 보험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하여 노동자에게 업무상 사고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국가 행정기구를 통해 소정의 급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이 가진 사회보험의 일반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요양 급여 신청을 했을 때, 행정 당국이 직업과의 인과관계를 따져 승인 또는 불승인 조치를 내린 후 승인된 경우에 한정해 보상을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보험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보상은 몇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첫째, 이는 잘못된 질병 모형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질병의 원인을 직업 때문이라고 입증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쉽지 않다. 질병의 원인을 단일한 인자로 설명하는 ‘질병의 단일 병인론설’은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비과학적 설명 방식이다. 질병 발생에는 숙주 요인, 환경 요인, 매개 요인 등 다양한 요인 등이 관계된다. 즉, 어떤 요인이 주요한, 혹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험요인은 될 수 있어도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적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요인이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라고 추론은 가능하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폐암에서 담배의 영향이 크다고 해도, 특정한 개별 사례에서 폐암 발생의 원인이 반드시 담배였다고 단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많은 담배를 피운 사람이 폐암에 걸리지 않은 사례만 있어도 이러한 인과관계 가설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재보험은 질병의 원인이 직업에 기인하고 있냐를 따지는 업무기인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매우 잘못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고혈압, 당뇨병 등 전통적 직업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일반 질환들도 직업 관련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쳐야 기인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잣대는 매우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작업 때문이든 아니든, 어떤 원인으로 발병했든 노동자가 불건강 상태를 벗어나 건강하게 직장 또는 사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필요나 욕구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건강할 권리에 차이를 구조화하는 현행 보상 방식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으로서 건강권이 등장한 이래 건강권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재냐 아니냐에 따라 보상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사업주의 책임을 산재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점은 잘못이다.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로 승인된 재해 또는 질병에 대해서만 사업주 책임을 특정화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보상에 국한되고 있지만, 현행 산재보험체계가 안전보건에서의 사업주 책임 범위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산재로 승인된 질병만 사업주의 책임인가? 일반 질병은 사업주의 책임이 아닌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직업성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던 일반 질환들도 사업주 책임 영역인 근무 환경 및 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저체중 출생아의 출산은 여성노동자의 장시간노동 및 교대근무와 관련이 있으며, 고혈압 및 고혈압성 합병증의 발병도 직업스트레스 요인과 관련되었다는 연구보고들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산재가 반드시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잦은 사망사고와 중대재해는 건설업의 뿌리 깊은 하청-재하청 관계에 기인한 바가 큰데, 정부 정책이 그러한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부 정책이 산재발생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이처럼, 산재를 직업에 기인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
사전승인제도와 구조적 배제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의하면, 2006년 우리나라의 총 직업성 손상 규모가 2,853,7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진료를 받은 손상환자 자료를 근거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 해 건강보험 손상 환자 중 22.5%가 직업 및 경제활동에 의해 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 인구가 모두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농민 등 자영업을 제외하고 운전 등의 경계 영역을 제외하여 보수적으로 추계하더라도, 산재보험 적용 직업성 손상 규모는 1,091,1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산재보험으로 일 년간 승인된 사고성 재해 건수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표 1. 2006년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은 직업성 손상 추정건수
조건
(A) 건강보험 이용
직업성손상 추정건수
(B) 산재보험 이용
직업성 손상자수3)
계
(A+B)
비
(A/B)
전체 직업성 손상
2,774,086
79,675
2,853,761
34.8
산재보험 적용 근로자로 제한1)
(보정계수 0.518)
1,436,977
1,516,652
18.0
산재보험 적용 근로자중 사고원인이 교통사고인 경우 제외2)
(보정계수 0.361)
1,001,445
1,081,120
12.6
1) 사고 당시 직업이 농림어업, 자영업, 공무원, 군인인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임금근로자만 포함한 경우는 2,094명으로 전체 응답자 4,045명의 51.8%에 해당되므로 보정계수 0.518을 곱하여 추정함.
2) 임금근로자 2,094명 중 사고원인이 교통사고인 경우를 제외하면 1,460명으로 전체 응답자 4,045명의 36.1%에 해당하므로 보정계수 0.361을 곱하여 추정함..
3) 2006년 산재보험을 이용한 근로자는 89,910명이나 이 중 업무상 질환자 10,235명을 제외한 직업성 손상자 수는 79,675명이었음.
뿐만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로 신상도 등(2010)이 수행한 손상감시연구에 따르면, 산재 때문에 응급실을 방문하여 사망한 환자 중 일부가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처리된 경우도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직업관련성 질환에 비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알려진 손상의 경우에도 많은 수가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이전된다고 하면, 직업성질환의 경우는 물어보나 마나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직업 때문에 발생한 재해인데도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못 받는 이유는 산재보험의 사전승인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 제도 하에서 사고성 재해와 직업성질환으로 치료를 받게 된 노동자가 산재 보상을 받으려면 본인 또는 보호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해서 사전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재해가 업무 때문에 발생했는지, 업무 수행 중에 발생했는지 따져서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산재로 인정된다. 이처럼 사전승인 절차가 있다는 사실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을 재해노동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산재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직업성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 보상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고성 재해나 직업병이 발생하여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경우, 재해노동자는 본인과 회사의 날인, 병원의사의 소견서 등이 포함된 요양신청서 3부를 작성하고, 재해경위서와 목격자 진술서 등 증빙서류를 함께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지사는 요양신청서가 접수되면 회사의 담당자를 불러 작업관련성에 대해 조사 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자문의사에게 작업관련성에 대한 자문을 받은 후 최종적인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때 사고성 재해처럼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경우에는 1-2주 안에 승인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직업병의 경우는 작업관련성 여부에 대한 다툼이 커서 승인과정이 한정 없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요양이 인정되기 전까지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본인부담 비율이 50%에 달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만일 산재 신청이 불승인될 경우, 행정심판절차를 밟든지 아니면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 재해노동자 본인과 가계에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업무상 재해와 질병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제한적이고 엄격하다는 점도 문제점이다. 작업관련성이 확실한데도 산재보험에서 인정되는 업무상 질병의 범위가 좁고 기준이 엄격하여 실제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할 재해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요양급여를 제공받거나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건강보험의 급여수준이 매우 낮고 산재발생 후 재취업을 하거나 온전한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정기준마저 까다롭다는 것은 재해노동자에게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은 산재은폐를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은 그 정도에 따라 영업정지나 벌금 같은 행정처분을 받기도 하고, 미납 산재보험료에 대한 추징은 물론 요율의 인상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건설업의 경우 관급 공사 배제 같은 패널티를 부과받기도 한다. 따라서 개별 사업장은 산재가 발생하면 공상으로 처리할망정, 산재사실을 은폐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 사각지대와 차별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법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되지만, 아직까지 농업 등 업종별로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소규모 음식점처럼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1인 사업장 또는 자영업자들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으로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사업주에 고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적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해 적용 대상이 정해지고 산재 보험료를 전액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에서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재해노동자가 신청을 하면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밀린 산재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하거나, 행정 처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산재 적용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가 재해나 직업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린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기 매한가지다.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촉구 기자회견 (출처: 민중의 소리 2010.10.28)”
보장성 측면에서도 산재보험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2005년 10월 10일자 한겨레신문을 보면, 가스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재해노동자가 피부 이식 등에 들어가는 치료비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서 3년 동안 수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과정에서 결국 빚을 얻게 된 노동자의 집이 가압류되고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극소수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재해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재보험에서 제공해 주는 치료비, 즉 요양급여의 범위는 건강보험에 준한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다른 점은 건강보험의 경우 요양급여 범위 내에서도 치료비 중 본인부담이 있지만 산재보험은 본인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치료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고가의 시술이나 검사 등은 재해 노동자가 직접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고 그 비용이 상당한 수준이다. 물론 특진료 같은 일부 항목은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에서 보장을 받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치료비의 약 20% 정도는 본인부담이 존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보험에서 소득보전 차원으로 제공하는 휴업급여는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이기 때문에, 재해를 당한 이후 실질소득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 결과 빈곤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구인데, 배우자의 간병 때문에 가계의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폭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산재에 따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후퇴를 막지 못하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은 치료가 완전히 종결된 후에도 남는 장애에 의한 소득 손실에 대해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해급여로 보상하고 있다. 그러나 장해등급 판정 기준 또한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의 보상 수준조차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렇게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재해노동자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및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며, 산재보험의 배제와 차별을 구조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
단일한 노동자 건강보장제도의 필요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관련성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렵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재해노동자이 배제되며, 발병 원인에 따라 차등적 권리를 부여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노동자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이든 치료는 받아야 하고, 일을 못해 소득이 줄어든다면 소득 손실에 대해 보전을 받아야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의적인 잣대로 평가하여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행정 절차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비용 문제 뿐 아니라 건강할 권리의 평등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불건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산재보험에도 적용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을 한 두 개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는 상황에서 엄격하게 업무의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건강할 권리가 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이의 보편적 권리라고 한다면, 불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최대한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인의 종류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한국에서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제도를 통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의 전제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모두 부담을 하는데, 건강보험과 통합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산재 보험료를 모두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해서 사업주가 자신이나 주주 몫으로 돌아가는 이윤 중 일부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가시켜 왔다면, 사업주와 노동자의 부담 비율 문제는 결정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사회임금에 대한 보편적 동의가 확보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노동자 부담 비율을 줄이고 사업주 부담 비율을 늘리는 작업, 즉 사회임금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제도적 통합을 부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왜 노동자는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혹은 임금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왜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근본적 의구심을 가지고, 이를 바꾸기 위해 각각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거리서명운동 선포식 (출처: 매일노동뉴스 2010.11.01)”
통합 노동자 건강보장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과 전제조건들을 살펴보자. 우선,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보험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편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란다. 또한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치료 상황에서 발생하는 임금의 손실, 혹은 간병을 하는 가족의 임금손실에 대해서는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들이 건강보험에서도 산재보험과 같이 소득보장을 해주는 것과 비견된다. 그래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소득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질환에 대해서도 의료이용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별도의 소득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하더라도, 치료비 부담과 소득손실 때문에 중도에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예 직장에 돌아가기 어려운 심각한 상태이거나 임금노동자가 아닌 이들은 적극적인 재활 요양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일반 병원에서 장기간 요양하는 상황에 빠진다. 더욱이 직업 관련성 질환임에도 산재로 승인받지 못한 경우에는 충분한 치료와 재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상황은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노동자의 건강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직업성 질환이라는 좁은 범위에서만 보더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통합 또는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를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산재보험은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어려운 낡은 틀일 뿐 아니라, 고용 불안정성 문제와의 관련성을 극복해나갈 틀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기존의 산재보험은 불건강 상태에 처한 노동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이전 생활로 복귀하도록 돕는다는, 혹은 노동자 건강권을 실현하겠다는 철학과 목표에 기반해서 성립되거나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재해에서 사업주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개별 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과정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 자본주의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적 권리 의식이 커지면서, 그러한 산재보험의 틀로는 변화된 권리 의식을 담아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이 모두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엄격한 원인주의에 기초한 과거의 틀을 벗고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평등하게 향상시킬지에 초점을 둔 제도 개혁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독립적인 산재보험제도 운영의 전통이 강한 국가들에서도 자영업자 등 기존에 포괄하지 않던 집단을 산재보험의 틀에 포함시켜 나가고 있고, 북유럽 등 국가주의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은 통합적인 건강보장제도를 정착시켜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재보험은 사업주배상 책임보험적 성격을 한결같이 유지해오고 있다. 웃지 못 할 일은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일부 임직원들이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한 채, 자신들이 사업주의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보험은 엄격한 인정기준과 사전승인제도를 완고하게 유지하면서 노동자 건강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터 밖에서 모든 노동자의 건강이 평등하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대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프고 다쳤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어떻게 다쳤든 간에 노동자가 일을 못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산재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보상을 받고 건강보험이기 때문에 덜 보상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린 후 중장기적으로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첫 발은 어디에 디뎌야 할까? 산재보험의 보장성 강화, 재활체계 구축 등 많은 과제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 산재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병과 작업관련성 질환의 원인을 여타의 일반적인 질병원인들로부터 분리해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원인주의에 기초하여 산재보험의 수급 자격을 규정하는 경우, 재해 인정은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원인주의 접근방식의 장점은 재해노동자에게 특별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기 산재보험에서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원인이 명확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 질환처럼 원인이 복합적인 재해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위 선진국형 산재의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원인주의적 접근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해의 원인이 일과 관련이 있든 없든 동일하게 보호하는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다른 사회보장프로그램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불필요해진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아직 크기는 하지만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 질환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회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산재보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당장 결과주의 접근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건강보험과 타 사회보장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재보험을 결과주의적 방식으로 선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선보장 후평가’ 제도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만나는 최초의 시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만나면,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산재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를 산업재해분류기준표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체계로 급여 인정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단 산재보험 적용대상으로 분류되면 산재보험 급여를 통해 보장하고, 담당 의사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산업의학전문의에게 평가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면 부작용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제도 개선에 따른 산재보험 및 건강보험의 급여 제공 체계
이러한 제도가 정책되려면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의 당연지정 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울대병원 등 대형 3차병원의 일부가 산재요양기관 지정에서 제외됨으로써 발생했던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반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도입될 경우 산재노동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요양기관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산재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저하 문제는 병원급 이상의 요양기관이 아니라 주로 의원급의 입원서비스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시행규칙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급 요양기관은 외래서비스만 인정하고 입원서비스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는 것으로 질 저하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이 재활요양원 설치를 포함하여 재활사업을 강화한다면 재해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더욱 향상될 수 있다.
현재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보편적 건강보장제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특성을 상실하고 있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산재보험에 대한 노동자의 불신과 불만, 더 나아가 냉소가 팽배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담론과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활발한 논의와 실천을 조직할 때다.
* 참고문헌
․신상도. 응급실 기반 직업성 손상 감시체계 구축방안 연구. 국가손상통합감시체계 운영사업단 제 8차 손상정책포럼. 2010
․이인재 등. 사회보장론, 나남. 2010
․임준 등.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08
[1] 보편적 복지 담론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 전략1)
무상 급식 논쟁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진보 교육감과 한나라당 단체장은 연일 날을 세우며 무상 급식 시행 여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박근혜 씨도 복지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고, 이에 뒤질세라 민주당은 연일 ‘무상’ 정책 시리즈를 발표하며 복지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안간힘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복지 포퓰리즘’ 담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하며, 무상 정책 시리즈의 비현실성을 폭로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 블로그에 쓰인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비판글”
격세지감을 느낄 노릇이다. 특히 그간 복지 논의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왔던 진보 정당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 역시 한국 정세의 변화무쌍함을 증명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현 상황의 시대정신과 화두가 ‘복지’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는 급격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사회적 부의 재분배 구조가 파괴된 한국 현실에서 복지가 시급한 시대적 요청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한동안은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불황기가 아닌가?
이에 아이들 먹거리 문제로 시작한 복지 논쟁은 의료, 보육 등으로 그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연금이나 교육, 그 밖의 사회서비스 등에 대한 논의도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이 존재한다. 보편적 복지를 논함에 있어 핵심적 논의사항일 수밖에 없는 한 영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 안 보이는 것이다. 바로 노동시장 영역에 대한 분석과 보편적 노동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이다.
현재 보편적 복지 제도의 근간은 5대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현재 이 5대 사회보험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임금 노동자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늘 얘기되는 문제점이 사각지대의 존재다. 그런데 고용의 불안정성이 점차 심해지고 있고 현재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구조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이러한 복지 제도가 형평한 혹은 보편적인 제도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복지제도가 건강 보장 제도를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현금 급여 중심, 노년 연금 중심으로 제도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래서 향후 보편적 복지 제도 발전을 위해서는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의 공공화, 현물 급여 확장, 노동자를 비롯한 경제 활동 인구에 대한 복지 서비스 확충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논의는 무상의료 논의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도 노동자들 비롯한 경제활동인구를 위한 보편적 복지 제도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적다.
이러한 기이한 사회적 현상의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주객관적 요인이 모두 존재할 것이다. 오랜 동안 형성되어온 노동 배제적 사회 인식, 담론 사회에서 노동 담론의 허약함, 노동자/자본가 역관계 속에서 노동계급 힘의 압도적 열세 등이 모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요인에 못지않게 주체적 요인 탓도 크다. 그러한 주체적 요인의 문제는 이미 10여 년 간 ‘노동 운동의 위기’ 논쟁 속에서 평가되고 제기된 바 있다.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역량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논의를 이른바 산재보험 개혁 운동을 표방했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논의로 집중하고자 한다.2)
주지하다시피 산재보험 개혁에 대한 논의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태동기부터 노동안전보건 운동 진영의 핵심적 논의였다. 문송면 투쟁부터 원진 레이온 투쟁까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1990년대 말 근골격계질환을 둘러싼 노동조합의 대중 투쟁을 경과하면서 논의의 폭이 확장되었고, 2000년대 초 산재보험 개혁 공동대책위가 결성되면서 정책 내용이 깊어졌다. 그 결과 2005년 정부 주도로 확장된 산재보험 발전위 논의에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은 통일된 요구된 요구안을 내걸 수 있었고, 그것의 구체적 형태로 민주노동당과 협력하여 국회에 개혁 법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후 산재보험 개혁 논의는 민주노총과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배제된 채 급격히 노사정위원회 합의 구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려면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의 요구가 사회적 발언권을 얻는데 한계를 가지게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선보장 후판정’을 주된 슬로건으로 한 산재보험 개혁운동 진영의 요구가 일정한 사회적 반향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3)
그런데, 당시에 산재보험 개혁 공대위(이후 공투위) 활동으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단일한 단일한 정책 요구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 지점의 차이에 따라 일정한 경향성을 띤 몇 가지 운동 흐름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4)
첫째는 산재보험을 제대로 된 사회보장(사회보험) 제도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최대의 중점을 둔 요구와 실천 경향이다. 현재 한국의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으로 보기에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이 사용자 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산재보험 체계가 법제도 체계상 사회보장기본법의 하위법령이기보다는 근로기준법의 하위법령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운동 진영은 산재보험을 우리 사회의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로 만들려 노력해왔다. 이러한 경향의 운동은 무엇보다 산재보험 사각지대, 산재보험 급여의 불형평성, 산재보험 급여 신청 시 존재하는 제도적, 실질적 장벽 문제 등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이러한 문제 해결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해 왔다. 특히 산재보험이 보편주의적 제도로 발전하려면 현재 산재 신청 자체가 아예 막혀있는 대다수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산재 신청 장벽을 없애는 게 가장 큰 이슈라고 주장해왔다. 다른 표현으론 ‘산재 은폐’ 철폐다.
이러한 운동 흐름의 가장 큰 장점은 산재보험의 향후 개혁 경로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산재보험 제도가 사용자 책임 배상보험의 영역이 아닌,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사회보장 제도로 자리매김되어 노동자들의 질병, 장애, 생활, 노동을 책임지는 제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지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곧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주의 혹은 조합적 경제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신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 임금 노동자로 제한되지 않는 모든 일하는 계층의 요구를 정식화하였고, 그것에 기반하여 보편적 사회보장 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 경향의 크나큰 약점은 이를 대변하고 움직이는 운동의 주체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주장과 정책은 있었지만, 그러한 주장과 정책을 현실화할 세력을 확보하는데 늘 실패했다. 주장과 정책은 있었으되 전략이 없었고,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객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비타협적, 전투적, 기업별 노조주의를 특징으로 하던 그간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사회보장 운동을 개량주의로 폄하해온 전력이 있다. 민주노총 창립 시기 이러한 운동 경향은 혁명적 노동운동에 대비되는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으로 치부되고, 심지어 특정한 정파의 노동운동 경향이라고 치부된 적도 있었다. 이는 이러한 주장을 펴던 세력이 민주노총 내 특정한 정파를 대변하던 그룹이었던 탓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파적 색채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보장’을 외치는 세력은 개량주의자 혹은 특정한 정파를 대변한 세력으로 오인되었다. 사회보장 제도 개혁을 외치는 세력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착취와 억압에 눈감은 채 재분배 구조에만 신경 쓰는 개량주의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민주노조 운동 세력 중에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그룹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혁명을 꿈꾸는 노동운동도 사회보장 요구를 할 수 있고, 사회보장 요구가 개량적이지만은 않은 요구라는 것에 대해 노동운동 내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러한 오해와 몰이해는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보장 요구를 전면적으로 내거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판은 이러한 경향의 운동 세력을 ‘법제도 개혁주의자’나 ‘전문가 운동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법제도 개혁운동에만 몰두하는 운동 세력이나, 계급적 역관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전문주의’에만 빠져 그것을 최고의 진리로 신뢰하는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운동과 그러한 전문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제도 개혁 운동은 보다 큰 운동의 전술로만 유효하고, ‘전문가’는 보다 큰 민주주의적 틀 내에서 그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보장운동의 중요성, 산재보험 개혁운동의 사회보장 운동 성격을 말한다고 해서 이 흐름을 무조건 법제도 개혁운동 혹은 전문가 운동으로 치부하여 비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현실에 근거한 비판이기 보다는 정치적 마타도어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이러한 성향의 운동 세력이 성장하는데 객관적 장애물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오해와 몰이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책임지는 주체들의 순진함과 정치적 미숙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주장과 정책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연대와 연합의 전략전술을 구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펴는 주체들은 그러한 것을 하다가 포기하거나 아예 실천하지도 못했다.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 (출처: 오마이뉴스 2009.09.12)”
두 번째 경향은 산재보험을 구체적인 노사관계의 투쟁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다. 생산의 지점, 생산의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노자 관계의 대립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착취와 억압은 생산의 지점에서 발생하고 그것을 인식한 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에 나선다. 그래서 다양한 수준의 현장 투쟁이 발생한다. 이는 임금, 고용, 노동기준 등을 둘러싸고 이루어지지만, 때때로 산재보험을 둘러싼 투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재를 은폐하고자 하는 사업주와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노동자 간의 갈등,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업주 간의 싸움 등이 산재보험을 매개로 현장에서 발생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업장의 다양한 측면의 문제들을 드러내고자 산재보험이 활용되기도 한다. 가령 사업주의 비인간적, 비인권적 경영 문제를 드러내고자 노동자 건강 문제를 고발하고 이를 산재 승인까지 연결하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의 장점은 구체성, 현장성에 있으며 대중 투쟁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노동자의 현장 권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구체적 현장과 구체적 쟁점을 가지고 투쟁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은 일정 정도의 투쟁 동력과 주체를 확보하기에 이로운 장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모순과 대립을 구도로 투쟁이 형성되기에 그 폭발력도 상당히 크다. 이러한 운동은 그 투쟁의 헌신성과 끈질김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노동운동의 귀감이 된다. 이러한 투쟁이 승리할 경우 특정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현장 권력 확장 효과가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투쟁 의제를 확장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투쟁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그 폭발력에 비해 성과가 특정 현장에 한정되거나, 제도 개선이 되더라도 부분적인 경향이 있다. 산재보험 문제의 보다 근본적 치부를 드러내고 그것에 칼을 대게 하기까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이러한 성격의 운동 자체가 의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러한 운동 자체가 산재보험 제도 개선이나 개혁 자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업주의 착취와 억압 관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투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현장 권력의 확대를 의도하는 것이니만큼 이 운동이 산재보험 개혁에 도움이 되냐 안 되느냐로 평가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도 모두 그간 산재보험 개혁 투쟁으로 간주되었던 현실을 고려하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 성향 자체가 중앙의 집중적 정치 투쟁을 방기하고 현장의 중심성만을 강조하는 아나코-생디칼리즘의 한 변형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 번째 경향은 현실에서의 산재보험 구조를 인정하고 여기서 현실 가능한 대안을 찾자는 흐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 ‘운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과거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는 운동세력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적 성격과 사업주 책임 배상보험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만큼,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개혁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산재보험 구조의 변혁을 꾀하기 보다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일부 제도 개선을 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의 노동운동과 산재보험 개혁 운동의 힘을 패배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변화하지 않는 상수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러한 일부 개선과 개혁으로는 오히려 제도 자체의 불형평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간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지만, 그간의 운동이 오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옳은 방향임에도 힘이 부족했거나, 힘을 모으지 못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산재보험 개혁을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사실 2005-6년 산재보험 개혁 논의 당시 노동안전보건 운동 진영은 최대로 힘을 모아 부딪쳐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법안을 만들었고, 현장에 이슈를 교육했고, 그것을 발판으로 몇 번의 대중집회도 진행했다.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민주노총의 3대 핵심 요구 사항으로 산재보험 개혁 요구가 들어가기도 했다. 말하자면 할 만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힘이 부족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재보험을 자신의 사안이라고 느끼고 나서는 이들을 조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단위 노조는 개혁안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했지만, 당위만으로 운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당시 산재보험 개혁안의 핵심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도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산재보험을 자유롭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이를 자신의 운동으로 만들어 갈 조직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조직된 노동조합이 이를 주요한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라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에도 산재 신청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업장 의 노조들은 이 운동으로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산재 진입 장벽이 철폐된들 기존의 대공장 노조는 얻을 게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운동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지만 산재보험 개혁 운동 주체들은 그러지 못했다. 잘 나서지 않는 노조들을 욕이나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명확히 걸려있지 않은 사안에 나서지 않는 것을 뭐라 하기 힘들다. 물론 이렇게 중요한데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당위적으로 윽박지를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대공장 노동자도 산재보험을 자신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나설 수 있도록 요구와 운동을 만드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단위 노조를 넘어 더 많은 운동 동력을 확보하는 게 정답이다. 우리의 산재보험 개혁안으로 실질적 이익을 얻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를 핵심 세력으로 삼을 도리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운동 세력으로 세우기 힘들다. 하지만 조직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사안이 단지 조직된 노동자를 위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에게 이 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사안의 중요성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과 전술이 문제인 것이다.
바람직한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경로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로 가는 것이다. 그 궁극적 길은 산재보험 해체가 될지도 모른다.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결과에 대해 그 원인과 계층을 불문하고 사회적 보장을 해 주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상해와 질병, 질병으로 인한 임금손실, 장해, 사망 등의 원인이 무엇이건, 다시 말해 그것이 산재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가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로 가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다른 사회보장제도가 산재보험 제도만큼의 보장성과 적용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상태에서 보편성만을 강조해 모든 사회보장제도가 통합된다면, 이는 하향평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산재보험 수준이라는 전제 하에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을 고려할 수 있고, 국민연금 장해연금, 유족연금 등의 수준이 산재보험 장해급여, 유족급여 수준이 되었을 때 이들 급여의 통합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고용보험의 훈련지원 급여, 고용촉진금 등이 산재보험의 재활급여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각 사회보험에 비해 산재보험의 보장성이 크고 적용범위가 넓어 통합 논의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무상의료 논의의 진전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이제는 민주당마저 입원 환자의 보장성 90%라는 ‘무상의료’를 공약하고 있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 제도 형성을 위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산재보험 개혁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통합 논의를 제기하자는 게 한 가지 경로가 될 수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이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이라는 요구로 한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통합하여 병원 치료비는 산재건 아니건 간에 상관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후 조사와 평가를 통해 산재보험은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 다른 현금급여 및 부가급여를 담당하자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첫째,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기업 부담 강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에서 기업 기여율이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경총은 산재보험요율 산정 시 한국의 산재보험요율이 1.7-1.9% 정도로 다른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생색을 낸다. 하지만 이를 사회보험 전체에 대한 기업부담율로 따지면,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사회보험료를 훨씬 적게 내는 축에 속한다. 사회보험에 대한 기업과 노동자 부담률이 OECD 평균 5.4:3.1인데 비해, 한국은 2.4:3.2로 오히려 노동자가 기업보다 많이 내고 있다. OECD 평균적으로 기업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에서 노동자들보다 1.7배를 더 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의 4분의 3정도밖에 안내고 있다. 그런데도 산재보험료를 많이 낸다고 생색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재보험료, 혹은 고용보험료,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이든 기업이 내는 사회보장 분담 비용을 더 높이라는 주장을 해야 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에 맞는 설득력 있는 근거라는 것이 외국의 사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 통합 논의를 하면서 자연스레 이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통합 시 기업이 건강보험에 더 내야할 비용에 대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현재 기업이 건강보험으로 떠넘기고 있는 산재 환자의 규모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도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건수는 총 9만 3천 건으로, 180억 원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여 환수 조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이 2007년에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 일하다 다친 ‘업무 중 사고’ 사례는 108만 건으로, 2006년에 산재보험 적용 사례인 8만 9천여 건에 비해 12배나 더 많았다. 실제 산재 처리해야 할 건수의 12분의 1만이 산재 처리가 되고, 나머지는 다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 규모가 어림잡아 한 해에 2,000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건강보험 재정 손실분은 아니지만, 산재보험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까지 따지면 기업이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보험료를 떼먹는 돈의 규모는 더욱 크다.
한편, 현재 시스템과 의학 연구의 한계 때문에 산재보험 인정이 어려워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있지만, 그 원인을 작업에 돌릴 수 있는 질환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한 질환들은 직업성 암, 직업성 호흡기계질환, 직업성 정신질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질환 등 수없이 많다. 이러한 질환에 대한 기업부담금 명목으로 기업의 건강보험료를 올리자는 요구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건강보험료의 기업 : 노동자 비율은 6:4로 높이자는 주장을 하면서, 이 재원으로 무상의료를 실현한다는 전제 아래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을 주장할 수 있다.
둘째, 산재보험에서 요양급여 수급의 장벽이 사라질 수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통합하면, 일단 다치거나 병들어 병원에 갔을 때 병원비는 무조건 건강보험으로, 개인의 부담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치고 병든 사람이 산재건 아니건 간에 병원에서 치료받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다. 상해와 질병 치료에 대해서는 보편적 급여가 실현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어도 산재보험 상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을 수급하기 위한 평가와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병원 요양 과정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산재 및 직업관련성 질환 여부를 병원이 판단하여 급여 청구를 하도록 하면, 이에 대한 장벽도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5)
셋째. 이러한 주장과 요구로 보편적 복지 논의에 더해 노동자 복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통합 논의를 전면화하게 되면, 자연스레 산재보험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이전보다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간 산재보험을 이용하던 연 9만 여명 외에 무상의료에 관심 있는 많은 세력이 산재보험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무상의료 논의에도 도움이 되고, 보편적 노동자 복지 논의에도 도움이 된다. 무상의료 주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 부담 측면을 강조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현재 산재보험에서 더 제공되는 급여의 포괄 여부를 사회적 의제로 올릴 수 있다. 휴업급여 및 간병급여 등이 그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서 제공되지 않는 상병급여, 간병급여 등이 보다 포괄적인 급여를 보장하는 건강보험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더불어 건강보험에 떼어주고 산재보험에만 남게 될 휴업급여, 장해급여, 재활급여 등을 진정으로 보편적인 노동 복지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급여의 수준과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한 논의와 개별화된 기업별 노동 복지를 보편적 노동 복지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논의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로는 현재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 중심의 직업성 질환 인정 구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조직된 노동조합을 견인하는 전략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은 현재 진입장벽 철폐에 별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해관계가 결부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싸워달라고 하기보다는, 현재 그나마 투쟁의 집중점을 가지고 있는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 변화를 고리로 투쟁에 동참하도록 호소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성질병판정위원회를 해체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 투쟁이 산재보험에 대한 진입장벽 철폐 투쟁임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길게 논의하지 않겠다. 기존에 이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제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경로는 현재 산재보험 적용이 제외되어 있으나 보험이 필요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이 그 대상이 되겠다. 이들을 운동의 동력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산재보험!’ 정도가 메인 슬로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상술하지 않는다. 역시 기존 논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변화해가는 정세 속에서 산재보험 개혁과 관련된 논의를 어떻게 촉발하고 어떻게 질적 발전을 도모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맨 앞의 각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은 논쟁을 촉발시키고 고민을 모으기 위해 쓰여졌기에 많은 부분의 논리가 엉성하고 추상적이며 성글다. 향후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에서 이러한 논의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 정책을 가다듬고 필요한 조사와 연구가 있다면 이를 수행하여 자료를 보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많은 사회운동 세력과 이러한 전망에 대해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무상의료 운동 세력 및 보편적 복지를 주요한 운동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운동 그룹과는 문제의식 확장을 위해서든 문제의식 교정을 위해서든 적극적인 토론과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향후 그 과정에서 희망적인 ‘그 무엇’이 배태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는 2011년부터 본격화되는 정치의 계절에 우리 목소리를 가지고 투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산재보험 정책에 대한 글이 아니다. 산재보험을 진정한 사회보장제도로 만들기 위해 어떠한 주장과 전략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전략 페이퍼의 성격이 강하다. 논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논의를 추상화하고, 주장을 간결하고 선명하게 전달한 측면이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구체성과 복잡성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것이니만큼 양해를 바라며, 이 글이 목적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집중하여 생산적 논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내용은 노동건강연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산재보험 개혁운동 전략에 대한 노동건강연대의 입장은 보다 많은 토론을 통해 마련될 것이다.
2)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영역은 그간 크게 산재보험 개혁 운동과 산재예방 운동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왔다. 물론 주체는 많이 겹쳤고, 그래서 이 모든 영역의 운동이 노동안전보건 운동으로 불리어져 왔다. 여기서 서술하고 논의할 영역은 주로 산재보험 개혁 운동임을 밝혀둔다. 산재예방 운동 영역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따로 상술이 필요하지만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2005년 정부 주도의 산재보험 개혁 정국에서 산재보험 개혁 운동 진영이 어떤 포지션과 요구를 가지고 어떤 운동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또다른 평가가 필요하다. 당시 일부는 정부 주도의 노사정위원회에 희망 섞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대다수는 민주노동당 입법안을 중심으로 장외 투쟁을 벌였다. 또다른 소수는 민주노동당 입법안도 탐탁치 않아했지만 다른 대안을 내지는 못했다.
4)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술하자면, 향후 서술할 특정 운동 흐름은 특정한 운동 주체가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조합, 단체, 개인들은 향후 서술할 세 가지 경향을 때에 따라 다르게 가지면서 활동하여 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서술하고 있는 일정한 운동 진영 혹은 경향이라 함은 추상화된 개념으로 파악해 주기를 바란다.
5) 세부적인 정책은 보다 정교화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 논의는 생략한다.
일시 : 2011. 2. 8 오전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