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일, 햇수로는 5년 3개월이 조금 넘는다. 나는 직접고용을 쟁취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기륭전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가리봉공단)에서 GPS와 위성라디오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2005년 당시 생산직 3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고작 10여명에 불과했다. 250여명이 파견직이었고, 40여 명은 계약직이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 의하면 제조업은 근로자파견이 금지된 업종이다. 기륭전자는 다른 제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250여명을 ‘불법’ 파견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열악한 임금수준을 높이고자 노조를 만들었고, 회사는 해고로 응답했다.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놓았지만 회사는 해고를 멈추지 않았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것이 기륭전자 아줌마 조합원들의 기나긴 투쟁의 시작이었다. 철야, 단식, 고공농성, 언론사 점거농성 등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 사진 1. 지난 10월 15일, 기륭 단식농성장에 난입한 포크레인을 저지하는 김소연 분회장
(출처: 참세상 2010/10/15자 기사)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한국의 기업들은 급속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경영효율화라는 미명하에 인건비 부담을 대폭 축소하기 위한 해고가 대유행했다. 그렇게 줄인 인원은 아웃소싱, 외주화, 파견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간접고용이란 직접고용과 달리,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근로자공급, 파견, 위장도급 등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간접고용은 사용자인 기업에게는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주며, 그 비용 역시 직접고용보다 저렴하다. 덤으로 노동조합 조직이 어렵다는 장점까지 있으니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셈이고, 이는 노무관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비춰졌다.간접고용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근로자파견’과 ‘위장도급’이다.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으로 파견법에 의해 규율된다. ‘위장도급’이란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수급인이 도급받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자기가 고용하는 근로자를 도급인의 사업장에 투입하는 형식을 취하나, 실제로는 도급인이 해당 근로자를 직접 지휘ㆍ명령하면서 사용하여 직접고용 또는 근로자파견 또는 근로자공급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급속하게 늘어나던 간접고용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고, KTX 승무원들은 한국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했으며,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 등이 있었던 것이다.
간접고용은 계약의 명칭과 관계없이 그 실질이 직접고용관계 또는 근로자 파견관계로 판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간접고용에 대한 법원의 판결들을 잠깐 살펴보자.
• 현대미포조선 - 묵시적근로관계 인정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나75088 판결)“원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의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 예스코 - 불법파견도 직접고용의무 적용 (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 판결)“불법파견, 적법파견이든 불문하고 파견근로자보호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된다
• 현대자동차 - 사내하청 불법파견 인정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법원은 원청과 사내하청 사용자 중 누가 실질적 사용자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였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경우 하청사용자를 사용자로 보되,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으로 판정하였다.법원은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의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일하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혼재하여 배치된 점, △원청회사의 생산시설 등을 사용하여 원청이 일괄하여 작성한 각종 작업지시서(작업표준 자료)에 의한 단순반복 업무를 하였고, 사내협력업체의 고유기술 자본 투입 없는 점, △현대자동차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 가지고 작업량, 작업방법, 작업순서를 결정하였고, △노동시간, 휴게시간, 교대제, 작업속도 결정, 정규직 결원 시 사내협력업체로 대체하였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근태상황, 인원현황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였다.
이러한 판례의 법리는 파견법 제정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하나씩 정리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려 왔다. 자신들이 왜 차별받는지 명쾌히 알지도 못한 채 좌절과 체념, 이직을 반복했고, 마침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자 해고되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난지 석 달이 훌쩍 지났다. 불법파견이라도 2년이 경과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현대자동차의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직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접고용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그 대신 지난 11월 2일, 기륭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이 합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년 4개월을 투쟁한 결과 쟁취한 직접고용이다. 단기파견의 경우에는 고용의무조항도 무의미했던 법과 제도의 그늘을 기륭노동자들이 양지로 만든 것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열사의 외침이 여전히 유효한 이 시대, 투쟁의 이유는 여전히 많다.
사진 2. 2007년 6월,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을 보도한 <한겨레 21> 기사
사진 3. 2010년 11월 12일, 고법의 불법파견 판정을 보도한 <참세상> 기사 - 끝 -
당신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광부의 얼굴, 광산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보라. 탄가루가 묻은 검은 얼굴, 순박한 눈빛, 어쩌면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탄광촌은 박광수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 그려낸 것처럼 실패한 운동권 지식인이 숨어들어간 은신처이거나,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처럼 발레를 꿈꾸는 소년이 상실과 성장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그려지곤 한다. 최소한 필자에겐.
이런 낭만적인 이미지는 태백에서 아직도 석탄을 캐내는 광산현장을 보고, 진폐환자의 고생스런 말년을 마주하고, 또 석탄박물관에서 굳어진 폐를 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지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영국 광산촌의 비참한 주거시설을 묘사한 대목을 읽고서야 탄광촌의 낭만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오늘 만난 김상전 님(한국진폐재해자협회 서울경기지부 총무부장)은 탄광에서 일한다면 당연히 캐는 당연히 광부들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일면적 이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김상전 님은 발파전문가로서 관리자였고, 굴진업체를 운영하던 사업주이기도 했다. 그의 이력을 들으면서 당시 막 태동하던 한국적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개척자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6,70년대 태백으로 모여들었던 이들이 모두 가난한 농민의 아들은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든 그 내부에는 불균질한 배경을 가진 계급계층이 존재하고, 그 충돌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을 단면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을 김상전 님의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상전 님은 진폐환자이긴 하지만 어떠한 사회보험의 도움도 받지 못한 환자이다. 한국의 진폐요양제도는 10~30년 간 광산에서 젊음을 보내고 늙어가는 퇴직노동자들을 적대적인 두 세력으로 갈라놓았다. 진폐증의 인정요건에 해당하는 9가지의 합병증 가운데 하나 이상의 합병증이 발견되면 요양대상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조치되며 동시에 월 250~300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9개의 합병증 가운데 한 가지 증상도 없는 진폐환자들은 직업병 환자이되 집에 ‘방치되는’ 재가(在家) 진폐 환자가 된다.
앞의 요양환자들은 <전국 진폐 재해자협회> (이하 ‘전국 진폐’)회원이 되어 원하든 원치 않은 보험급여를 깎이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투사들이 되었고, 뒤의 재가 진폐환자들은 <한국 진폐 재해자협회> (이하 ‘한국 진폐’)의 회원이 되어 치료권과 생활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투사가 되었다. 전자에는 3,500~4,000명의 회원이 있고, 후자에는 1만 5천~2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또, 이 두 조직 어디에서 속하지 않거나 그 존재를 모르는, 혹은 사망한 수만 명의 광산 퇴직노동자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 진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재가 진폐환자들의 권리를 위해 사회전면에 나서서 투쟁하였다.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죽어간 동료노동자의 모습에 분노하여 갱도를 뛰쳐나오던 광산노동자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탄광촌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 12월(2010)부터 재가 진폐환자들은 최저생계비 정도의 보험급여를 매달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진폐의 예방과 진폐노동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서이다. 김상전 님은 이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을 비상한 기억력으로 들려주셨다. 이 분들이 거리로 나섰던 기록들은 2008년 일간지의 사회면을 검색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법 통과되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작년에 국회에, 민주당 조정식 의원을 통해서 질의서를 냈어요. 진폐라는 것은 불치병이라고. 죽을 때까지 낫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판정을 받고 나서 재검사를 받으면 9급이 11급으로 내려가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말이야… 의사판정인데 하향이 되냐고. 의사들, 박사들인데 말이야. 노동부는 잘못이 없다는 거야. 우리는 대항할 힘이 없잖아. 한나라당은 맨날 똑같고. 그래서 민주당으로 질의했단 말이야.
* 사진 2. 2008년 9월 24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국진폐> 회원의 청와대 앞 일인시위 모습
진폐증 판정에 문제가 많다는 말씀이죠?
현재 판정이 잘못된 것은, 우리가 약자다 보니까 재심을 신청하면 기각이 반수 이상이고, 재심이 안 되는 거지. 위에서 억압하니까 판정의사들은 그대로 따라가는 거지. 진폐 판정 의사들이 모인 판정협회가 있는데, 의사들이 8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고 해서 그러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결과는 한가지예요. 두 명씩 돌아가면서 판정을 한다는데. 그래서 우리가 그랬어요. “실명제로 합시다” 그랬어요. 노동부에서 안 된다 그래. 왜 안되냐 했더니, 실명제 하면 마음 잘못먹은 사람이 칼부림 할 수도 있지 않냐 하는 거야. “칼부림 안 당할 수 있게 판정하면 되지 않냐” 했지. (엑스레이) 사진이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앞에서 보는 거 하고 옆에서 보는 게 다르다고 하더라고. 그쪽에서.
판정이 그렇게 어려워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아무리 투쟁해도 안 들어주는구나, 사람은 계속 죽어나가는데. 재가 진폐환자들은 100명 죽어도 한 사람 진폐로 인정받기가 힘들어. 죽으면 진폐가 아니라 다른 병으로 죽었다고 진단을 내려버려요. 지금은 (기준이) 더 강해져서 요양환자도 진폐 아닌 사망원인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 9가지 합병증 중 하나로 죽은 게 아니라, 고혈압으로 죽었다… 그러면 유족급여가 안 나와요. 장례비 120일분이 안 나와. 진폐 사망이라야 나오지. 그런 게 억울하고.
열심히 일하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싸워야 한다는 게…
과거로 갑시다, 6,70년대에는 발달이 안 되고, 국가도 가난하고. 우리가 캐낸 탄을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살림이 부흥한 거야. 탄을 조금 더 캐려고 사업주, 감독자, 광부에게 ‘산업전사’ 고상한 이름 붙여서 생산에만 열중하고. 보호장치 없이 앞이 안 보여도 도급제로 하다보니, 더 캐내야 돈을 많이 번다고, 그래서 병이 더 많이 걸렸어요. ‘산업역군’ 이라면서... 산업전사, 산업역군 신나지. 탄으로 정부 관료도 그 돈의 영향을 입었지. 연탄불, 온수, 밥 해 먹고, 모든 영향을 줬는데, 지금 나 몰라라 하는 그것이 잘 못됐고.
도급이라 하면...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도급이라 하면 기본급만 있는 거지. 출근비, 입항수당만 받고. 탄 10톤을 캐면 9톤 팀보다 많이 받고 그게 바로 도급이예요. 내가 했던 굴진도 마찬가지예요. 저쪽 1미터를 파고, 이쪽이 1미터 20을 팠으면 돈을 더 받는 거예요. 그래서 죽자사자 하는 거지. 산업전사, 역군 이런 말에 실제로 자부심을 갖고 그랬죠. 양복 입고 이래 가면 술 외상 먹자 그래도 안 돼. 시커먼 얼굴에 장화신고 가면 금방 외상을 줘요. 그래 인기가 많았다고.
탄을 캐는 광부가 아니라 굴진사업을 하셨다는 거네요.
김해공병학교를 다녔는데, 많이 배웠다고 들어가서 소위가 됐어요. 발파학을 배우고 나니 상급 장교가 같이 사업을 하자고 해서, 전라도 진안, 충청도 다니면서 금맥 찾는 거, 시멘트 찾는 거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망하고 태백까지 가서 도계에서 석공(대한석탄공사) 관리직을 하게 된 거지.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씩 항내에 들어가 훑어봐야 돼요.
처음에 화약 관리하면서 보니까 감독이 내가 받는 돈의 두 배를 받는 거야. 가까이 가서 물었어. 감독은 어떻게 되냐, 시험 친다고 하더라고. 생산문제, 위험문제 공부하면 된다고 하면서 공부하던 책을 주는 거야. 2, 3개월 공부해서 시험 쳐서 합격하고 관리직을 하다가, 굴진업자를 보니 돈을 물 쓰듯 하더라고... 그래서, 굴진업체 하청을 나를 달라 해서 굴진업자가 됐지.
석탄공사의 하청회사를 운영하다 진폐증에 걸리신 거군요...?
진폐에 걸리는 것은, 내가 관리자였으니까 생각도 안 했어요. 99년 목에 가래가 끓고… 2000년 검사신청해서 받으니까 11급이 나오더라고. 하루 두 번 감독하는데, 굴진업자가 돼도 하루 두 번 감독이랑 교대해서 들어가 보고 둘러보고 하거든.
그렇게 도계에서 석탄공사 하청을 하다가 굴진 마구리(갱도)가 3~4개는 되야 하는데, 측량하고 탐사해보고 희망이 없으면 중지하기도 하고, 두 세 곳 되다가 한 곳도 되고. 그런데 한 곳으로는 밥 못 먹어. 그래서 81년인가 큰 아이 초등 3학년 때 안 되겠다, 서울 가면 밥은 먹겠지, 애들 공부도 시키고... 해서 서울로 온거야. 현대건설 정무과에서 3년, 서울우유 교육관에서 실장 4년 하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 나이 많다고… 막을 내린 거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는데 좀 더 빨리 법개정 투쟁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2002년 김대중 정권 말기 때, 재가환자 월 73만원씩 주자고 했었어요. 신문에 났어요. 노동부공문을 내가 갖고 있어요. 이것이 끝을 못 맺고 노무현 정부로 넘어갔는데, 없어져버렸어요. 없어진 공문을 찾아서 전해준 사람이 있어요. 그 공문 갖고 찾아다니는데 말이 안 먹혔어요. 나중에 노동부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더라고. 힘을 내서 투쟁에 박차를 가해서, 2007년 공청회를 태백에서 하는데, 처음에 한 달에 53만원 주자는 거에서 40만원으로 내리자고 하더라고, 노동부 조OO 과장이. 우리가 허락을 안했어요.
서울 올라와서 인권위 시위도 하고, 올림픽 파크텔에서 2008년 공청회를 하고, 계속 밀고 땅기면서 싸우다가 2009년 말에 국회통과를 약속했어요. 국회도 많이 방문했어요. 통과 가능성이 많았는데 당시에 추미애 의원이 환노위 의장이었어요. 이 사람이 전임자 임금문제를 독단적으로 통과시켰나봐요. 민주당 징계를 받고, 정세균은 추미애가 처리하는 걸 결사반대하는 거야. 그래서 통과가 안 되고 넘어갔는데... 2월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약속하더니, 또 추미애 때문에 김재윤 의원인가가 반대를 하고.
정말 험난하군요, 국회의원 싸움에 끼여서 법안 처리가 밀리고, 또 밀리고…
그래서 신문기사 난 걸 다 모아서 잘랐어요. 요리저리 붙여서 복사를 수백 장 해서 병원, 정밀검사 하는 데 우편으로 보내서, 국회에 편지를 써라, 글씨 잘 쓰는 것도 필요 없고, 자기 실력대로 활자 틀려도 관계없고, 4월에 국회통과가 안 되면 3만이 넘는 재가 진폐환자들, 가족, 친인척 들이 어떠한 선거에도 불참하겠다 써라, 했죠.
진짜 한통씩 부친 거예요. 국회 갔더니 사무실에 편지가 쌓여 있어. 내 생각인데 거기서 안산에 이화수, 천정배, 시흥에 조정식, 한나랑 박정숙 같은 사람들이 타격을 받아요. 안산에 많이 사니까. 4월 28일 국회통과가 됐는데, 마지막 회의에 끝나기 6분전에... TV로 지켜봤어요. 213명 참가 중에 반대가 1, 기권이 1이고 나머지가 찬성이예요.
보험급여를 받으시면 생활이 좀 안정될까요?
지금 영향 받는 게, 재가환자 11급한테 만 1년이 지나면 복지공단에서 통보가 와요. ‘정밀검사’ 받으라고. 전에는 신청해도 안 되던 게, 이제는 깎을라고. 면목동 사는 구 아무개가 2년 동 의증을 받았는데 물어봐요. 이번에 검사받으려고 했다고. 작년과 변동 없으니 받지 마라 했어요. 급수가 있는 사람은 신청을 안 해도 받으라고 하고, 13급이 연금에 해당하니까 검사를 받으면 의증이나 정상으로 나올 거라고. 법 통과 후 그런 일이 많아요.
3급 이상은 연금이나 일시금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지장이 없으면 연금을 가입하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열 중 아홉은 다음에 떨어져요. 3급이 안 되요. 내가 3급은 검사받지 마라 얘기하는데, 그게 받으면 떨어져요.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 때부터 다시 싸움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디서나.
복지공단 가서 싸움도 많이 했어요. 보험료 아끼려고 온갖 것을 다 하니까. 연금액수가 노동자 평균임금의 65%로 정해졌는데, 복지공단이 막 협박을 해요. 검사받으라고, 연금에 지장 있다고. 너무 불공평해, 참 너무 해.12월에 연금이 나오는데, 12월에 연금 타고 내년에 투쟁해야 돼. 급수 하향조정하지 말라고. 박사님들이 불치병이라고 하는데, 하향조정에 반대해야죠.
급여 뿐만 아니라 치료받을 권리도 찾으셔야죠
‘의증’이라는 게 우리밖에 없어요. 일본, 독일 다 없어요. 의증에 ‘증’자가 있으니, 반이라도 주든가.‘후유 증상 진료카드’가 있는데, 그 수첩이 단 한 병원에서만 쓸 수 있게 정해놨어요. 내가 알기로 독일, 일본은 인터넷으로 나온다는데. 우리는 내가 부산 갔다가 갑자기 아프다 그러면 서울까지 와서 처방전을 받아야 돼. 인터넷으로 큰 병원, 큰 약국에서 약을 타게끔 해야지. 갈 때마다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아니고 얘기 좀 하고 처방전 받는 건데, 왜 병원이 정해져야 하는지.
이 투쟁을 하시면서 <전국진폐>하고 갈등이 많으셨지요?
요양환자들 모임인 <전국진폐>에서 자기들 혜택이 줄어들까봐 방해를 해서 법이 결정될 때까지 요양환자는 손대지 마라, 당부했어요. 요양환자들은 2008년 7월 1일 이전 받은 사람들은 전이랑 똑같이 급여를 받는 거고, 이후 판정받은 사람들은 바뀐 법대로 연금을 받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기억을 하시나요? 비법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내가 기억력이 좋은 거는 일기랑 메모를 매일 써요. 날마다 저녁에 정리를 해 놔야, 만나는 사람들한테 정확히 얘기를 해줘야 하니까. 우리 조직이 서울경기에 회원이 1,200명이 있어요. 본부는 태백에 있고. 굉장히 힘이 드는 게 다 모이게 할 수도 없고... 월요일에 녹색병원, 화요일에 여의도성모병원, 수요일에 안산중앙병원, 세 개 병원을 돌면서 약 타러 오는 사람, 정밀검사 받으러 오는 사람 모아놓고 강의를 해요. 개정법 알려주고, 상담해주고. 1년에 두 번 총회를 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요. 점심도 먹여야 하고.
이 투쟁에 뛰어드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를 아직 안 여줘봤네요
이상하다 느껴서, 강원도 동해병원 요양환자실 관찰을 해봤어요. 밤에는 술 먹고, 밤새 고스톱 치고, 아침에는 얼굴이 형편없어지는 거야. 의사가 얼굴보고 많이 아프구나 느끼게. 약을 안 먹고 변기에 버려. 요양 종결이 겁나서. <한국진폐>가 2005년 10월 25일에 노동부 허가단체 339호 가 됐어요. <전국진폐>가 방해해서 기존환자는 손대지 않고. 요양판정 받으려고, 브로커가 많이 다녀요. 그걸 없애기 위해서 2006년부터 활동한 거예요. 요양환자가 되면 한 달에 250, 300만원이 나온다, 혜택을 많이 주니까 입원하려고 하죠. 선진국에는 진폐는 움직여야 된다고 나와 있대요. 요양한다고 침대에만 누워있으면 폐가 줄어든다고, 수명이 단축된다고.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 되는데. 한 번 요양 판정 받으면 절대로 안 나가려고 약도 안 먹고 밤새고 그래요. 2009년에 3천 8백명 정도가 요양을 하고 있어요. 코에 호스 끼고 있는 사람 제외하고, 3천명은 출퇴근하라는 거죠. 3천명에 3백만 원씩, 90억 원이 생기는데 산재 돈이 모자란다니 말이 안 되요.
내가 동해병원 가서 5일간 검사받기 전에는 사업도 해보고 했으니 보는 눈이 있는 거예요. 다음해 안산중앙병원 가서 또 5일을 검사받으면서 관찰을 한 거예요. 언젠가 투쟁해야 된다… 90억이면 재가환자들 연금이 나가요. 내가 교편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상한 거 안 지나쳐요. 국어선생을 했었어요.
몇 년 전까지는 태백지역 신문에 브로커 기사가 가끔 났던 것 같아요
브로커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지. 그 어려운 환자들이 브로커한테 속아서 돈을 버려. 잘하는 브로커, 요양 잘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정선에 OO의원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무려 15년을 원장, 엑스레이 기사, 심폐기능 검사하는 사람이 짜고 해먹었어요. 2007년에도 태백에 브로커가 나타나서, 젊은 사람들은 도시 가고 없으니까, 멋지게 생긴 놈이 노동부에서 환자들 살피러 왔다고, 급수 받게 해준다고 30만원씩 한 20가구에서 받아갔대요. 새마을금고 가서 막 돈 빼다 주고. 그리고는 연락이 안 오는 거지.
석탄산업이 문들 닫고 태백을 떠난 사람들은...
서울 와서 노는 사람들 많아요. 엑스레이 하면 취업이 안 되고, 하루 노동밖에 안되고. 그게 어려움이예요. 지금 태백, 정선, 사북, 영월에 많이 남아있고, 반월공단에 공장이 많으니까 취업하려고 가고, 자식 따라 가고. (회원들) 주소를 보면 아파트로 되어 있어서 보면 전세고, 몇 달 있다가 보면 전세가 월세로 바뀌고 주소 바뀌고.회원 1,200명 중에 7,8백 명은 급수가 있고, 나머지는 의증이거나 정상으로 나온 사람들이예요. 급수 없어도 협회 가입하는 거예요. 참 어렵지. 공사판 일일잡부, 공장 경비, 공장 청소를 70살에도 하고 있어요.
여성회원도 있나요?
있어요. 여성이 5, 60명 있어요. 선탄, 잡석을 골라내야 되고, 탄을 부숴요. 탄 먼지가 말도 못해. 선탄을 100명이 하면 관리자만 남자야. 돈이 적어. 입항수당이 위험수당인데 그런 게 없으니까.
남편은 탄 캐고 부인은 선탄하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었겠군요.
있지. 부부진폐증도 있어요. 아버지랑 아들도 있고, 아버지 어머니 둘 다도 있고. 너무 힘들어. 제도가 너무 잘못돼서 기초수급이 안돼요. 아들 있으니 안 되고, 아들이 직장 있으니 안 되고. 교육이 부족하니 서울 와서 뭘 해요…많이 배우면 태백공고를 갔지. 태백공고가 유명한데 광산학과 나오면 3개월 연수받고 감독취업이 됐거든. 그게 제일 출세하는 거지. 도시의 공고나 상고랑 다르게 광산학과가 최고기술이었지.
조직 유지가 앞으로 큰 일일 것 같아요
2년 반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마음이 더 바빠요. 대의원도 뽑아야지, 사무실도 얻어야지, 유지비도 들어가지. 회비를 받겠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고. 돈 나오면 연락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회비를 일일이 받을 수도 없고. 강원케어센터가 있어요. 들어갈 자격이, 기초수급자도 아니고 차상위도 아니면서 밥을 끓여줄 여자도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한 달 20만원을 내야 돼. 고민이, 20만원을 누가 낼수 있냐고, 정부가 하는 건데도, 돈 나올 데가 없는데. 일반요양원은 한 달에 7, 80만원 내야 돼. 정말 못 내서 나온 사람도 있어요. 이번에 연금이 60만원 나오니까 20만원 내고 있을 수 있겠지.
임대료도 높고, 사무실 유지비도 많이 들어갈 텐데 사무공간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계속 환자가 나오고, 예비환자가 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발병하는 병이니까. 모르고 있어요. 권고하고, 설명하고, 가입하고, 보험, 급여 문제가 많이 생겨요. 같이 투쟁해서 찾아줘야 하니까 행정도 만만하지가 않아요. 사람은 많은데 시위참석도 나 아니라도 모이겠지 하고, 막상 돈 나오면 힘들어져요.전국에 13개 지부가 있어요. 2만 명 가까이 되고. 어떻게 해야 환자 도움을 주나. 내 힘으로 안 되고 내 맘대로 안 되는데.
태백에 계실 당시 관리자로 일하셨고, 나는 노동자랑 다르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작년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내가 장부 만들고 명부 만들고, 영수증 챙기고.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컴퓨터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1934년생, 77살인데 저녁에 집에 가면 누워있어요. 너무 힘들어. 글쓰는 게 일인데 글만 써서 그런가 어깨가 오른쪽 어깨, 팔이 아파서 걱정이예요. 컴퓨터 배워놨으면 좋을 걸. 전부 손으로 써서 기록을 하고 있으니.내 형편이 큰아들이 사업하다 부도나고, 아내가 2002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아직도 병원 다녀서 어려워요. 나이 많아서 폐가 나빠서 일도 없고. 다른 건 할게 없잖아.
사회복지가 잘 돼 있으면 덜 힘드셨을 텐데...
우리 처가 다쳤을 때 동사무소에 구호 신청하러 갔었어요. 아들이 있어서 안 된대. 딸이 40대 중반인데 미국 가서 LA 살고 있거든. 그거까지 조회해서 무슨 구호대상이냐고, 현실을 모르고. 노부부가 자기 집 작은 거 갖고 있다고 해서 안 된다고 하고... 집 먹고 사나? 현실정치가. ‘굶어죽든 살든 손 안 벌리겠다’ 하고 나왔어요.
- 끝 -
<2> 미국의 노동안전보건 운동
일시: 11월 5일 오후 4시-6시 장소: 성수노동자건강센터 교육장 통역: 박준규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원)
이 날 강연을 맡은 찰스 레벤스타인 (Charles Levenstein)은 현재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로웰 캠퍼스(UMass Lowell) 보건환경 대학원 석좌교수이고, 크레이그 슬래틴 (Craig Slatin)은 같은 대학원의 교수입니다. 두 분은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노동 환경 정의에 관련된 연구를 주로 진행해왔으며, 보건의료노조, 교원노조와 함께 현장 활동도 활발하게 해온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레벤스타인 교수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였지만 아들은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는 노동조합연맹의 수석경제학자로도 일했다고 합니다. 슬래틴 교수는 대학 중퇴 후 육류 생산 업체의 운송 노동자로 일하다가 노동환경과 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뒤에 소개할 COSH 그룹을 찾게 되었고, 그 곳에서 활동하던 중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보건대학원을 진학하고 나중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두 분은 그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노동조합과 보건의료 전문가 집단, 또 지역사회 환경운동 그룹이 함께 하는 안전보건 운동에 대해 소개해주었습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행동은 광산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산별연맹들이 안전보건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뤄왔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노조운동의 쇠퇴는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미국직업안전보건청 (OSHA)의 ‘뉴디렉션 (new direction)’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안전보건과 관련하여 전문가나 활동가, 노동조합 간부들을 교육하는데 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안전보건 교육과 활동가 양성을 물론 기초적인 노동자 조직화 사업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레이건 행정부가 집권하고 직업안전보건청에 반노동 인사를 책임자로 선임하면서 이 기금은 노조보다는 사업주가 받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1986년에 시작된 ‘유해 폐기물 처리 노동자 훈련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전역에 매립된 산업폐기물 처리를 위한 슈퍼펀드 (superfund) 법과 연계하여, 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훈련 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다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전문가들입니다. 미국 공중보건협회 (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 APHA)는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가장 큰 단체로, 주로 대학에 재직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된 학회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여기의 직업안전보건 분과는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기업에 고용된 산업의학 의사들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이후 60년대 좌파 운동을 경험한 진보적 성향의 의사들이 분과를 장악하면서 다른 공중보건 전문가들과 노동계와 연합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과는 현재 안전보건 전문가들과 노동계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학회는 1년에 한 번 열리지만,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주요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 토론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레벤스타인 교수가 예전에 이 분과의 수장을 맡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국내 언론에는 매우 인색하게 다뤄졌지만, 공유정옥 씨가 반올림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이 분과입니다. 공중보건협회는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공간이기에, 사회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지위가 있어서 캠페인 활동에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또 다른 주체는 ‘안전보건 연합 (Coalitions for Health and Safety, COSH)’입니다. 지역사회 풀뿌리 운동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60-7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시카고 지역에서 처음으로 COSH가 설립된 이래, 여러 지역으로 이 운동이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매사추세츠, 뉴욕, 필라델피아, 코네티컷 등 여러 주로 COSH 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COSH 그룹들은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 성격이나 지역 특성들이 다양한데, 이를테면 레벤스타인과 슬래틴 교수가 속해있는 MassCOSH (매사추세츠)는 보건의료 전문가와 노동조합이 주요한 활동의 축이고, 뉴욕 COSH는 강력한 노동조합들이 핵심 세력이며, 코네티컷은 ‘뉴 디렉션’ 프로그램의 영향을 통해 지역사회 주민단체와 연계를 조직했고 특히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고 합니다. 활동의 내용이나 방식들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전문가들, 노동조합, 지역사회, 환경운동 단체들이 함께 연합을 구축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뉴저지 주에서는 주민들의 산업 공해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소송을 하기도 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 교육, 혹은 정보공개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뉴욕 COSH는 가장 규모도 크고 활동도 왕성한데, 지난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 당시, 사고 현장의 먼지 실태와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공개함으로써 뉴욕타임즈에서도 이를 다루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COSH 같은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약화되면서 현재 대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국 단위의 공통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오바마 행정부로 바뀌면서 노동부와 OSHA에 개혁적인 인물이 수장으로 임명되었기에 COSH 운동에도 활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다고도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주목해야 할 새로운 움직임은 ‘노동자 센터 (Workers' Center)’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새롭고 자발적인 형태의 노동자 결사체인데 전국에 100개, 보스턴에만 이미 6군데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주로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특히 남미에서 이주해온 좌파운동의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이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건강문제 뿐 아니라 노동권과 관련된 다양한 상담 활동, 조직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화하고 발전해나갈지는 알 수 없으나, 발표자 두 분 모두 낙관한다고 하셨습니다 (하긴, 낙관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오랜 동안 꾸준하게 사회운동에 헌신할 수 있을까요?)
이후 질의응답과 토론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오바마의 집권, 그리고 이어진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 승리 같은 정치적 변화가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두 교수는 누가 정권을 잡을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층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며, 여기에서 싸움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민중의 투쟁이고, 어렵긴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에는 낯선 방식인 환경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의 결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환경정의 (environmental justice) 개념이 대두하면서, 자동차 노조의 훈련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처음 다루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환경주의자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면 그것이 해당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에게는 해가 되는 경우가 있고, (이를테면 유해 사업장 폐쇄로 인한 일자리 상실), 노동조합에서는 조직 유지를 위해 중요한 환경문제임에도 외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함께 가야 합니다. 이를테면 산업폐기물 처리와 환경복원을 위한 기금인 슈퍼펀드의 경우, 다른 방식, 이를테면 ‘노동자 슈퍼펀드’를 마련하여 유해산업에 종사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지원프로그램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슬래틴 교수는 이를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부르며, 산업구조의 이행 과정 자체가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흔히 환경운동이 엘리트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경향이 있고, 일상적인 환경오염은 중요하게 다루면서 막상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나 고용의 권리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가장 유명한 ‘시에라 클럽’과 함께 지역연대운동을 구축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환경 문제는 엄연한 계급 문제이며, 노동자들의 권리와 그 문제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가 함께 운동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 이 분들 주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일본 노동법학자에게 듣는다 - 일본의 비정규노동 현실과 한국의 미래 -
일시: 9월 3일 오후 7시-9시 장소: 성수노동자건강센터 교육장 통역: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세 분의 발표자들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카 가즈미치 교수(가나자와대학 경제학경영학계)는 파견과 청부 형태의 간접고용,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와키타 시게루 교수 (류코쿠대학 정치학과)는 일본에서의 노동/사회보장분야 규제완화와 권리의 문제, 그리고 한국의 비정규 고용 문제를 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요로이 다카요시 교수 (류코쿠대학 법률학과)는 노동계약론을 주로 연구하며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 파견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해왔습니다. 세 분 모두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학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파견 노동자 상담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지원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법조인들이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이들이 드문데, 한국에서는 참가자들 중에 젊은 세대가 많다며 몹시 부러워하였습니다.
- 고카 가즈미치 (가나자와대학 경제학경영학계 교수)
우선 제조라인에서의 파견노동 허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1995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일경련)이 신시대 일본적 경영 지침을 냈다. 그 문서는 정규직을 줄이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을 확산시키자는 내용이었다. 그 후 하시모토 수상은 규제완화를 주장했는데, 1996년 부가세를 3%에서 5%로 인상시키면서 오히려 소비는 줄어들고 경제는 더 나빠졌다. 다음 오부치 수상은 규제완화를 추진하지 못했고, 2001년 고이즈미 정권이 본격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일본 경제는 2000년대에 낮은 수준이기는 했지만 호황을 유지했다. 우리는 흔히 경제가 좋아지면 생활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사례를 보면 호황기에 워킹푸어와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당시 NHK 방송국에서 3차례의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그 시기에 일본에서는 거주지가 없는 파견노동자가 늘어나면서 PC방에서 숙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2003년에 제조라인에 파견을 늘리는 법 허용이 있었다. 2007년 5월 일본경제신문을 보면 일본 대기업들은 4년 연속 이익을 냈다. 하지만 노동자 수입은 늘어나지 않았다. 고용형태가 비정규고용으로 바뀌고, 낮은 조건에서 멈춘 것이었다. 이를테면 대규모 할인점의 시장진입을 막는 규제가 철폐되었고, 택시 업체 규제완화로 택시는 늘어났지만 택시노동자 임금은 줄어들었다. 공공부문에서 시장화,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공무원의 비정규직화도 심해졌다. 지방자치단체가 파견업체를 만들어 임시직원을 고용하는 형태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법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동법을 완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보호를 해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용형태의 구체적인 변화를 살펴볼 차례다. 1997년부터 5년간 정규직 400만 명이 줄고 비정규직이 300만 명 늘어났다. 2007년 호황기에도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은 늘었다. 호황기에 정규직을 줄이는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2007년에는 비정규 고용비율이 37%가 되었다. 파견노동자는 1997년 25만 명에서 10년 사이에 6배가 늘었다. 1997년 당시 파견노동자는 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2002년에서 2007년 사이에 제조업 파견이 허용되면서 남성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사내하청에 대한 통계, 도급노동에 대한 통계는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 이번에 방문해서 현대차 전주공장에 내려가 사내하청노동자를 인터뷰했다.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되어 있지만 그는 정규직이으로 헤아려진다. 어디까지나 추산이지만, 현재 일본에는 파견, 도급 노동자를 합치면 28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이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2008년 이후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시작된 것이다. 파견, 도급노동자가 줄었고, 간접고용노동자가 전체적으로 줄었다.
파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일본 파견법이 정한 26개 업종의 임금을 보면, 하루 8시간 근로 시 11,254엔 (약 15만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청회사가 내는 비용의 68.8%이다. 즉, 나머지 32%를 파견업체가 가져가는 것이다. 이 26개 업무는 사용기한이 정해져있지 않으며, 그 외 업종에서의 파견 사용기한은 3년이다. 파견노동자의 임금은 시간 당 1,281엔(약 1만 7천원)이다. 파견노동자들의 산재 현황을 보면, 파견업체와 원청회사 신고 건수가 같아야 정상인데 원청회사의 건수가 적다. 원청회사들이 산재를 은폐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을 뿐 아니라 산재위험도 높은 고용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정사원이지만, 승진도 상여금도 없는 정사원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정규직도 장시간 노동하게 되었다. 비정규고용이 늘어나는 것은 정규직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노동빈곤층이 157만 명 이상 늘어났다. 연 수입 100만~200만 엔 (약 1,300만~2,600만 원)사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저임금노동자가 확대된 것이다. 비정규고용의 3/4은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실업자이면서도 실업수당을 못 받는 비율이 중국 84%, 일본도 77%나 된다. 즉 실업자의 23%만이 실업수당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정규고용의 대다수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혼인 상태를 조사해보면, 30대 후반 비정규직 남성의 60%가 결혼을 못하고 있고, 40대가 되어도 50%가 결혼하지 못한다. 비정규고용이 심화될수록 저출산이 더 심각해진다. 그대로 가면 일본 국내에서 구매력이 떨어지고, 자본은 해외로 시장을 찾아아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악순환이다. 한국에서 파견법을 확대하고 제조업까지 포함되고 나면 일본같이 변화할 것이다.
- 와키다 시게루 (류코쿠대학 정치학과 교수)
고카 교수가 발표한 것처럼 일본에는 연수입 200만엔 이하 빈곤층이 6천만명이 있다. 노동자 4명 중 1명은 빈곤층이며, 연봉 200만 엔이면 기초생활보장 수준보다 낮다. 일본 정부는 빈곤율이 얼마나 되는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다가, 작년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발표했다. 2008년 조사 결과 빈곤율은 15.7%였다. 한부모 가정은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다. 어머니가 가장으로 일하는 가구의 연수입은 아주 낮다. 비정규고용이 빈곤의 주된 이유다. 여성은 정규직 비율이 절반에 못 미친다. 일본 비정규문제의 중심은 여성이다. 비정규고용의 많은 형태는 파트타임이다. 남성의 경우는 파트타임보다 아르바이트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80%정도가 정규직인데 비해 여성은 그 비율이 50% 미만이다. 일본의 비정규문제는 남녀차별적 성격이 강하다.
2006년에 제조업파견을 허용하면서 비로소 남성 비정규직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부터 여성 비정규직화가 진행되었는데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남성은 젊을 때부터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정규직이 늘어나자 언론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내가 1996년부터 홈페이지 통해서 파견노동자들의 고충상담을 시작했다. 연구자가 직접 나서 노동자 상담을 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일본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비정규문제를 다루지 않고 노동조합 고문변호사도 그런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홈페이지 개설하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 상담이 많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여성들이 많았지만, 최근에 남성이 많아졌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에 전형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되었다. 70년대에는 고용의 70%가 정규직고용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숙련노동자로 고용되어 기업 내에서 직업훈련을 받았다. 근속기간이 늘어나면서 임금도 늘어났고, 수당과 퇴직금은 기업의 책임이었다. 1947년까지 일본 내에서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좌파노동운동이 있었지만, 미군정 하에서 기업별 형태로 강제당한 것이다. 일본적 고용 관행은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기업 규모에 따라 노동조건이 격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 고용방식은 남성을 중심으로 하고, 여성은 노동시장 퇴출을 전제로 하는 고용형태이다. 이후 비정규 고용의 아주 나쁜 형태가 생겨났다. 일본적 고용관행의 좋은 부분은 사라지고, 나쁜 점인 기업 간 격차, 남녀차별만 유지된 셈이다.
기업별 노조는 정규직 노동조합이라 비정규 고용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서구의 비정규고용과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1970년대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결혼하면서 남성의 피부양자가 되어 남성고용을 파괴하지 않는 한에서 파트타임으로 고용되었다. 노동조합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정규직을 위협하지 않으니까 문제 삼지 않았다. 우수한 여성노동자들이 남성보다 싼 임금으로 일하게 되었고, 기업은 이를 활용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파트타임과 비슷한 수준으로 풀타임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그 형태가 바로 파견, 하청, 기간제고용이다. 우선 여성과 생산직 남성에서부터 시작했다. 80년대에 시작된 일회적 고용형태를 일본 자본은 90년대에 확산하려 했다. 결국 지금은 반대 목소리가 늘어났다. 일본의 정규직 고용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비정규고용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은 불안정한 노동이기 때문에 정규직임금의 3,4배를 받아도 결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고용도 불안정하고 임금도 차별대우를 받는다. 세계 유래가 없는 나쁜 형태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최소한 법규상으로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에는 그런 법규제 조차 없다. 파트타임 고용은 가구 내 남성 정규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남편이나 아버지는 정규직, 아내나 자녀들은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피부양자 임금이 130만 엔 (약 170만 원) 이하면 사회보장에서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또한 노동시간이 정규직의 3/4이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했을 때 비과세 한도는 103만 엔 (약 140만 원)인데 이를 환산하면 시급 687엔 (약 9,400원)이 된다. 이는 시급 기준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내가 한국말로 이걸 ‘남편 짝벌이’ 현상이라고 부른다. 파트타임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관행은 심각한 문제다. 모자 가정의 어머니가 열심히 일해도 빈곤한 이유가 바로 파트타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1985년에는 노동자파견법을 통해 위장도급을 합법화했다. 남성노동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 게 파견법이다. 당시 수상이던 나카소네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우익으로 일본국철노조를 부당하게 탄압했다. 파견법은 단결파괴법이 되었다. 기업별 노조는 회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을 나카소네가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좌파 계열의 노총이 있었는데 산별노조를 지지하고 파업도 했었지만, (일본 최대의 노동조합인) ‘렌고’는 한국의 현대중공업 노조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파견법이 생긴 이후 일본 노동조합은 파업을 하지 않았다. 2008년 가을에 대기업 파견노동자 27만 명이 해고가 되었다.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옆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해고를 당했는데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나카소네의 전략이 관철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규, 비정규, 직영, 파견으로 분할되고 있다. 1999년, 파견법이 원칙적으로 자유화되었다. 이때를 기준으로 현재 파견 노동자가 3배 이상 늘어났다. 일본의 최저임금이 파트타임 기준으로 책정되면서 저임금 노동자가 대폭 늘어났다. 도요타, 파나소닉 같은 경우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은 800만 엔 (약 1억 1천만 원), 파견노동자는 200만 엔 (약 2,700만 원)이다. 이러한 격차나 빈곤은 정치적 변화를 만들었다. 2007년 참의원선거에서 여야가 역전된 것이다. 1999년 파견법에서 한국보다 나은 점 한 가지는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바꾸어도 원청회사는 3년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03년부터 제조업에서 파견이 확대되면서 3년 제한규정 때문에 위장도급이 늘어났다. 언론에서 파견이 위장도급을 늘린다고 보도하면서 단속이 시작되었다. 시정명령이 이어지고 도급 대신 파견을 활용하게 되었다.
2007년 선거를 통해서 여야가 역전되고 파견노동자 보호에 대한 법 개정 요구가 강해졌다. 2009년에는 중의원 총선이 있었는데 야 3당이 모여 개정안을 만들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민주당 공약으로 파견법이 일부 개정되었지만 아직은 명목상으로만 노동자 보호를 말하는 수준이다. 야 3당 안은 한계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이 있다. 제조업파견의 원칙적 금지, 불법파견은 직접고용으로 본다는 것 등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불법파견 상태에서 고용주 선택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원청에서 사용할 것인가 혹은 파견업체에서 사용할 것인가. 일본에서 없었던 균등대우라는 말도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안의 경우, 원칙은 금지라고 하면서 예외를 많이 두었다. 그 중 하나가 원청회사에서 파견이 상시고용이면 허용된다는 것이다. 균등대우를 확보하는 부분은 ‘균형을 고려한다’로 바뀌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개정이 아니라 지금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좋으니까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일본에서 이러한 상태를 깨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특히 단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비정규 노동자에게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들을 위한 노동조합은 거의 없다. 직장 내에 있는 조직보다는 지역노조, 일반노조가 적당할 것이다. 한국의 산별노조가 지향하는 방향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 일본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노동자 내부보다 시민연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올해 4월 <일본 변호사연합회> 회장이 된 이는 주로 사채 문제를 다루며 반(反) 빈곤운동을 열심히 해 온 사람이다. 작년 11월에는 <비정규 노동자 권리실현 전국연락회의>라는 단체가 생겼다. 이 단체에는 변호사, 연구자, 시민들이 함께 한다. 내가 그 대표를 맡고 있다. 앞으로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려나가면서 노력할 것이다.
비정규직 확대가 결혼 연령을 늦추거나 안 하는 비율을 높인다는 언급에 대해
여성 비정규직은 결혼 후 파트타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비정규직과 임금 차이가 없어지면서, 예전에는 여성의 미혼 비율이 높지 않았는데, 남성처럼 결혼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 비정규노동자는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도 한국처럼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는가?
특수고용이라는 말은 일본에 없다. 노동자 내지 자영업자이다. 노동자가 싸우지 않으면 모두 자영업자로 분류되고,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한국은 네 가지 특수고용에서는 산재가입을 할 수 있는데, 일본은 특별가입으로 자기 돈 내고 자영업자 형태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전에는 보험설계사, 레미콘운전사가 노동조합에 속했지만, 요즘에 와서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판례가 생기고 있다. 독립자영업자라고 하면서 사용자 지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싸운다. 노조 만들고 인정하라, 노동자성 있으니까 산재 보상하라고 소송하는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비정규직 연봉 200만 엔이면 일본 내에서 어느 수준인지 가늠이 안 된다
일본의 생활보호 제도는 지자체마다 약간 차이가 있는데 교토의 경우 30세 부부와 2살 아기의 최저생계비가 한 달에 22만 엔 (약 300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연 200만 엔 (약 2,700만 원)이면 혼자 살기도 어렵다. 부모와 같이 살아야 겨우 살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하면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노숙자 되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가 사망해도 국민연금 받으려고 신고 안하는 젊은이도 있다.
2007년 여야가 역전된 것에 비정규노동자 증가가 영향을 미쳤나?
계기가 되었다. 파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비정규고용이 늘어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국민이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선거로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 사민당, 국민신당 세 야당에서 파견법 개정이 쟁점이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처럼 일본에 유사한 판례가 있나?
비슷한 판례가 없다, 2008년 4월 마쓰시다 사건이라고, 현대차하고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오사카고등재판소에서 이겼으나 대법원에서 작년 12월 패소했다. 2008년에 금융위기 이후 파견노동자들이 많이 해고당했다. 60건 정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 개인들이 제기한 해고무효 소송이다. 일본 파견법에서는 한국처럼 2년 이상 사용하면 직접고용이다,라는 조항이 없다. 원청의 지휘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보고 우리는 용기를 받았다.
일본도 한국처럼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하는가?
노조가 힘이 있을 때, 사업장에 활동가가 있을 때에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이를테면 공산당 활동가를 사찰, 미행한 사건이 있었다. 기업이 노동자의 퇴근 후와 휴게시간에도 계속 감시했다. 기업의 감시는 불법이다 소송을 해서 노동자가 이겼다. 기업이 감시한 것은 직장에서 인간관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대법원 판결로 확정했다.
노동조합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금속노조 구호 속에 ‘총고용’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고용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에 병행하여 임금 쟁취 투쟁이 있어야 한다. 제일 나쁜 조건에 처한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전체 임금을 인상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노조를 보면 노동조합이 활동가 단체이지만, 일단 파업에 돌입하면 노조원 수의 5, 6배가 동참하고 그 협약은 전체노동자에 적용된다. 지금은 고용불안정이 확산되어 있기에 일을 하고 있어 실업율은 줄어들었지만 빈곤율은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이다.
지난 2010년 3월,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 (이하 ‘산재예방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부가 추진할 예정인 산재예방 정책의 청사진에 해당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제8조는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산재예방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부는 1991년부터 산재예방계획을 세워왔다. 이 글에서는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05~2009년 2차 산재예방계획을 돌아보며, 노동부는 사망재해 다발업종․영세사업장 등 산재취약부문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여 산재예방체계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주요 성과로 울산, 여수, 천안, 안산 등 대규모 공업단지가 위치한 지역에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중대산업사고 발생이 감소했으며, 50인 미만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작업환경개선을 위한 재정 및 기술지원 (클린사업)을 통해 재해 감소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장 무재해운동, 안전점검의 날, 강조주간행사 등의 안전문화 활동 추진도 성과로 제시했다.
이와 더불어 한계점도 지적했는데, 첫째, 산업안전보건 정책수립 및 의사결정과정에 정부 이외 산업계, 지역, 민간의 참여기회가 부족하였던 점을 들었다. 둘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등 자율적 예방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운영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 내 안전보건 관리자의 위상 강화 추진이 미흡했으며, 셋째, 재정․기술지원, 교육 지도․점검 등 산재예방 사업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해 사업효율성이 저하된 점을 지적했다.
또한 산재예방계획에서는 정책적, 법․제도적, 재정적 측면에 대한 노동부의 상황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 산업구조와 고용형태 변화 등에 따라 재해원인 및 유형은 다양해지고 있으나 체계적인 대응은 미흡하다고 밝혔다. 전체 재해의 8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고, 제조․건설업 중심의 시설개선 위주의 기술지원만으로는 증가하는 서비스 산업 재해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 특히 고령자․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취약계층근로자의 재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가 미미하다는 점을 밝혔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 책임주체, 규제방식 등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이를테면, 현 제도는 정규직 근로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어 비정규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취약취업계층에 대한 보호에 한계가 있으며, 다단계 도급 등 생산방식의 다양화로 대기업은 소규모 사업장에 산재위험을 전가하고 있으며, 형벌․과태료의 양형체계가 현실적으로 법 준수 강제장치로서의 기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측면에서는 현재의 예산규모 및 재정지원 중심의 사업수행 방식으로는 정체된 재해율을 감소시키는 데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8년 이후 최근 10년간 산재예방 사업대상은 사업장 수를 기준으로 6.1배 늘어났으나, 근로자 1인당 산재예방비용으로 환산할 때 사업 예산은 오히려 0.7배 감소했고, 예방인력은 같은 기간 1.2배 증가에 그쳤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앞서 언급한 정책적, 법․제도적 측면, 재정적 측면에서의 상황 인식에 근거하여, 산재예방계획의 기본방향을 정책목표, 지원대상, 전달체계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 정책목표 부분에서는 법․제도의 개선, 보완 등 기술적 접근방식 위주에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인식을 전환하는 문화적 관점으로 확대하여 사업주와 근로자의 참여에 바탕을 둔 자율적 예방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지원대상의 경우, 산재예방사업의 성과가 대기업, 정규직, 특정업종 등에 편중되지 않도록 50인 미만 영세소규모 사업장 등 산재취약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중앙정부, 공공기관에 의한 하향식 정책 전달체계에서 탈피하여 지역․산업의 현장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분권화․다양화시키고, 수요자 중심의 사업수행체계 구축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개선하며, 정부의 역할도 직접공급과 규제 위주에서 전략수립, 정보제공, 인프라 구축 등 전략적 촉진자로 전환하겠다고 하였다.이러한 방향에서 총 여섯 가지의 중점추진과제를 수립했는데, 그 첫째는 법․제도 기반 구축을 통한 자율적 산재예방활동 정착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위험성 평가 제도 정착을 위한 기반 구축, 위험성평가로의 전환을 위한 법체계 개편과 법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들어있다. 위험성 평가 제도는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자율관리 성과를 중심으로 관리․감독하는 자율예방관리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며, 이의 도입을 위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단일 법령체계를 모든 업종․위험요인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기본 법령과 특정 업종․위험요인에만 적용하는 개별 법령 체계로의 전환을 검토 중이다. 또한, 법집행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이행강제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형량을 고의․과실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고,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즉시 행정․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중점추진과제는 참여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전달체계 다원화이다. 과거에는 노동부, 안전공단 등 공급자 중심 운영으로 시장수요가 제한적이었고, 민간의 전문성과 역량도 취약하다는 현실 인식 하에, 노동부와 안전공단 이외에 재해방지전문기관, NGO 등 시민단체,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지역별 ‘지역안전보건지원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협의체는 지역에 위치한 안전․보건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참여형 안전 보건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외에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산재예방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도록 할 예정이며, 노사 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수를 직장의 규모에 맞게 조정하도록 개선하고, 위험성평가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중점추진과제인 ‘특성화된 예방대책 추진을 통한 사업 실효성 제고’ 과제에서는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화학업 등 업종 특성에 맞게 재해예방에 대한 기술지원방식을 특성화하는 것과, 건설일용직․외국인․고령․여성 근로자 등 산재취약인력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지원방안으로, 건설일용직 근로자는 채용 전 안전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외국인 근로자는 특수 검진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모국어로 된 특수검진결과와 기술자료를 배부할 계획이다. 고령 근로자는 신체적 특성을 감안한 작업공정 개선기법과 안전보건기준을 개발 및 보급하고, 여성 근로자에 대해서는 주요취업 작업의 안전보건 매뉴얼, 고객 상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건강증진․관리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넷째, 선제적 질병예방 관리시스템 구축 분야에서는 발암물질 취급사업장을 노출수준, 취급근로자수, 직업병 발생현황 등에 따라 차등 관리하고,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비용 지원을 확대하며, 자율 보건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 보건관리자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업종을 운수․도소매․건설 업종까지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한 석면 해체․제거 작업에 대한 관리와 지도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섯 번째 중점 추진과제는 안전보건문화 확산을 통한 안전보건의식의 내재화․생활화이다. 여기에는 NGO, 노사 단체, 언론사, 업종별 직능 단체 등 관련 단체와 합동으로 캠페인을 수행하는 등 안전보건문화의 전국적 확산을 유도하고, 노사 공동으로 사업장별 안전보건문화 수준을 자체 평가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문화인증제’를 운영하며, 인증 사업장에는 시설개선을 위한 클린사업 우선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보건 행정역량 강화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화를 추진하고, 업무분장을 지역담당제에서 기능담당제로 전환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산재통계의 경우, 산재 규모 파악 방법을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공단, 민간안전검사기관, 노동부 등에 분산되어 있는 사업장 안전 관련 정보를 통합정보관리 시스템을 통해 일원화시키고 이를 예방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3차 산업재해예방계획의 전반부에 언급되어 있는 정책적, 법 ․ 제도적, 재정적 측면에 대한 노동부의 현실인식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제기된 직업안전보건정책의 한계점들에 대한 지적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문제, 고령자․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 문제, 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중점을 둔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 다단계 도급 방식으로 대기업이 소규모 사업장에 산재위험을 전가하는 현실, 형벌․과태료의 양형체계가 법준수 강제장치로서의 기능이 미약하고, 안전보건 분야의 예산규모와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현실 인식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야심차게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위험성 평가제도의 경우, 노사의 ‘자율’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위험성 평가제도는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자율예방관리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지만, 단지 위험성을 ‘평가’만 하고, 그에 대한 대책과 개선이 지속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와 행정지도가 필수적이이다.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위험성 평가제도를 시행하지는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노동부는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정책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행강제금 제도’와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대한 즉시 행정․사법 처리 방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정처벌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의 벌칙 조항 일부 개정 등의 대책이 뒤따랐다. 하지만 실제 처벌 수준이 미약하다는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위험성 평가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실제 위험한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또한 매우 취약하다. 유사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와 각 직장마다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위험성평가제도의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재예방계획에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현실적 대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험성 평가제도가 연착륙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노력을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0년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강성천 의원은 사업주가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자율적으로 찾아 개선하는 노동부 시범사업인 ‘위험요인 자기관리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산업재해자가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만일 위험성 평가제도가 사업주의 ‘자율’에만 집중하는 경우,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안전보건문화운동의 모호함이다. 노동부의 계획서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제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안전보건문화’란 사업주가 기업 내 안전보건체계를 법 준수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경영활동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적극적 인식을 갖고, 이에 따라 노동자도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려는 마음 자세와 안전보건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에 안전보건문화가 효율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위험성 평가제도처럼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사업장내 체계와 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노동부의 산재예방계획에 제시된 안전보건문화운동과 인증제가 실질적인 대책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법률적․행정적 구속력을 갖출지는 미지수이다.
이외에도 지역별 산업안전보건 네트워크의 실효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재해방지전문기관, NGO 등 시민단체,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참여하며, 이 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참여형 안전 보건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계획으로는 노동자 대표들의 참여 여부가 불분명하고, 협의체의 권한이 불분명하여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취약근로자 대책의 세부사항을 보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통역서비스 제공, 안전보건매뉴얼 제공, 안전보건교육 강화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지원책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통역서비스의 경우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자원의 부족이 분명하게 예상된다.
또한 여러 산업안전보건관련 기관들의 자료를 통합하여 관리할 예정인 통합정보관리제공 시스템의 경우, 본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산재노동자들의 개인정보 누출과 이로 인한 피해의 우려를 자아낸다. 비윤리적이거나 불필요한 정보의 사용을 막기 위한 윤리위원회 등의 안전장치 확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노동부의 제3차 산재예방계획의 주요 정책들을 소개하고, 한계와 우려되는 부분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돌이켜보건데, 노동부는 1991년부터 산재예방계획을 수립하여 그 동안 여러 가지 정책을 도입하고 추진해왔지만, 산업재해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0.7%대에서 정체해 있다. 사고성 재해도 2003년 이후 연간 8만 명 수준에서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제3차 산재예방계획에도 언급되었듯, 국제 산재사망률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10만명 당 21명으로, 멕시코 (10.0), 태국 (10.1), 러시아 (12.4)에 비해서도 높다. 현재의 상황은 그 동안의 산재예방계획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심케 만든다. 제3차 산재예방계획이 원래의 목적과 의도에 적합하도록 충실하게 진행되어, 계획 종료 시점인 2014년까지는 산재가 제발 큰 폭으로 감소하기를 바란다. - 끝 -
지난 10월 28일 민주노총 소회의실, 건설노조, 금속노조의 노동안전담당자들과 노동자건강권단체 활동가들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안전장치 없는 용광로에 떨어져 젊은 노동자가 사망하고, 아파트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두 명의 남성노동자가 사망한 뒤였다. 통계상 하루 6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한다니 죽음 그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난간만 있었어도 곧 결혼을 앞둔 청년이 1,000°C의 쇳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또 건설수주 1위의 재벌회사가 서울 한복판 유명 브랜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두 명의 노동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안타까움과 놀라움에 빠졌다.
노동건강연대가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며, 따라서 기업의 최고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1년에 한 차례, ‘살인기업’을 선정하여 언론에 발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회적 활동이 없었고, 내부 논의를 이어가거나 내용을 쌓아가는 작업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다. 용광로와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노동건강연대가 ‘기업살인’ 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요구들이 쇄도했다. 언론의 관심이 높아진,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었을까?
<기업살인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담회는 그렇게 기획되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노동조합과 단체들이 기대한 정책과 실천방안에 대해 분명한 제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산재사망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공동의 대응을 구상하는 모임이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모임을 이어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정리 : 전수경/노동건강연대)
간담회 참가자들의 모습
< 참석자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 박영일, 김재천, 김갑경 / 산재노동자협의회 이현정 /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진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상윤, 유성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발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최근 산재사망 문제가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는 느낌이다. 환영철강 노동자 사망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몇몇 언론에 산재사망과 관련된 기사가 꽤 비중있게 실렸다. 이에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회는 이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좌담회를 마련했다.
노동건강연대를 중심으로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라’고 외치며 (가칭) ‘기업살인법’ 제정 논의를 시작한지 7년이 넘었다. 노동건강연대는 200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해왔다. 당시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산재사망이 너무 가볍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적었고, 그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후속 논의나 대책은 전무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내부에서도 ‘자극적이다’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전면화했다. 더불어 ‘기업 살인’이라는 용어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러한 활동을 7여 년간 이어온 결과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 미진한 점이 많다. 이에 이 운동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하고 향후 계획을 세우고자 이 좌담회를 마련했다.
논의를 이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오해와 비판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 운동을 단순히 특별법 제정 운동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운동이 사업주 처벌 강화 방안만을 목표로 한다는 비판이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오해와 비판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되었는데 이는 우리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아니다. 제1의 목적은 산재사망 문제 해결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이 운동의 하나의 유효한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운동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협소화될 수 없음을 얘기했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는 특별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은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업주의 행태와 의식, 노동자의 힘,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등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이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도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기업살인법이 제정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제정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효과를 내기는 힘들다.
그러면 왜 우리는 기업살인법 제정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는 이러한 요구가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 온 바와 같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고 규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기업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나마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살인법과 관련된 또 다른 편향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또 다른 편향은 기업살인법을 보다 구체화하여 실제 법 제정안을 국회에 내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힘을 빼느니 당분간은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법조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경우 의미 없는 법조문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 초기에 이러한 법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두고 운동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운동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뿐 아니라, 다른 처벌 방식의 강화, 노동부의 사업주 지도감독 강화, 노동자 참여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해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우리는 구체적으로도 노동안전보건청의 설립,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의 도입 등을 주장해 왔다.
2003년 경부터 이러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정부도 산재사망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운동 때문에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 몇 가지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향상 등이 우리 운동의 성과로 이루어졌다. 2005년 한 일간지에서는 우리 운동을 주요 주제로 9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운동이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 정책 부재의 현실 속에서 산재사망 문제로 운동을 만들어가기 힘들었던 객관적 조건 탓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운동을 만들어 가지 못한 주체의 문제도 있다. 이에 이 좌담회를 통해 향후 이 운동을 지속하여 진정으로 산재사망 문제를 해결하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발판이 다시 마련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아직 실태를 구체적으로 충분하게 드러내는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역량 투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구체적 양상과 이후 처리 실태가 충분히 조사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재사망은 어떠한 산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자주 벌어지고 있는지,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때 사업주는 어떠한 행태를 취하는지, 신고 이후 경찰과 정부의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보고서 작성 후 검찰 송치 과정의 문제는 없는지,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나는지 등등에 대한 세세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더불어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례가 많이 모아져야 한다. 산재사망의 특성상 당사자가 사망하고 없기에 사례를 수집하기 힘들고 유족을 조직하기도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노력을 통해 사례 수집과 유족 조직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다음으로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아주 세세한 요구부터 이데올로기적 요구까지 체계적으로 요구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도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상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경과와 현재를 말씀드렸다. 오늘 좌담회에서 이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개진되기를 바란다.
환영철강 용광로 산재규탄 기자회견 모습 (출처: 프레시안 2010/09/15)
§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
기업주를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는 법적 맹점이 있다. 잘못한 놈은 때려잡으면 되지만, 이는 자본주의 얼개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만 작동된다. 지금 논의되는 처벌주장이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나? 실은 복잡한 문제가 놓여있다.
산재사고에 대한 한국의 처벌규정이 결코 약하지는 않다. 호주나 영국의 기업살인법에 비해서도 낮지 않다. 양벌규정도 존재한다. 벌금이긴 하지만 이미 산안법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처벌되는 경우는 없다. 실례로 2008년 코리아냉동 사고로 40명이 사망했을 때, 벌금 2천만 원과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검찰은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기소하지 않는다. 기업주가 처벌받지 않는 이면에는 검사가 있다. 노동사건은 공안부 검사가 담당한다. 사망사고에 대한 상식적 분노만 있었어도 현재와 같은 결과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법조항보다 심각한 문제가 이면에 자리한 것이다.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이 움직이지 않으면 법을 만들어도 공염불일 수 있다. 호주는 과실여부(?), 영국은 매출액 기준으로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노동자 1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도 공표를 한다. 비윤리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을 개정하는 방향도 있다. 처벌규정을 명확히 해서 벌금의 하한선만 두고 벌금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산재사망 기업을 공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호주나 영국과 달리 한국은 기업체를 범죄주체로 규정하는 법적 기반이 없다. 행위자 중심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처벌객체로 끌어오는 것에 국회가 동의할까? ‘고위임원에 대한 간접처벌이 되는데 그것이 가능하냐, 행위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 과실범에 대해서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고의범에 대해서만 살인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기업주를 처벌하라는 것은 형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특별조치법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 산안법을 통해 처벌이 가능하게, 즉 검사가 기소재량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방안을 두는 것이다. 기업 공표제도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기업살인법 운동이 당위로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자본주의 법제도 하에서 이면에 복잡한 문제들이 놓여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사망사고가 나면 어떤 처리과정을 거치는지 알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 ‘내사종결’이라고 쓰인 사고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 ‘내사종결’이 되나 보니, 본인이 안전조치 위반, 또는 현장이탈, 불완전한 행동을 한 경우들이다. 이주노동자 사고도 그렇다.
산재처리하면 직업복귀가 안 되니 공상처리를 많이 한다.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사망사고 가 은폐되는 경우도 있고... 사고의 70%는 은폐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건설업의 직업병은 이슈가 안 되고 있다. 건설현장의 직업병이 심각한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건설노동조합들이 고용관련 집회는 많이 한다. 산안법 위반으로 고발한 현장도 조합원을 채용한다고 하면 고발을 취하해주기도 한다. 최근 진보적 지자체장이 당선된 지역에서는 협의체를 구성해서 공사 현장에서 노조가 역할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산재사고에 대해 기업책임을 알리는 시민캠페인이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시민이 참여하는 사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GS 사고현장 앞에서 노동건강연대가 한 것처럼, 사고가 나면 플래카드를 걸고 국화꽃도 놓고 하면서 시민에게 사고를 알리는 활동을 하자. 우리 기업들이 해외수주를 많이 하고 있는데, 두바이 원전건설 등을 보면 해외에서 안전에 관심이 많다. 여기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를 이용해서 해외에서 떠들면 기업들이 민감해진다. 해외에서 떠들자. 영문 홈페이지에서 사고를 알리고, 불매운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은 수주를 할 수 없도록 지자체를 압박할 수도 있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금속 안에서 보면 조선업종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한 곳에서 사고가 나면 24시간 안에 조선업종노동조합이 집결하고 사고원인을 공유하고 공동대응을 해왔다. 이 방식이 좋다. 사례전파도 되고. 하지만 나머지 업종 노동조합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사망사고가 일어나도 노동조합 안에서조차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금속노조는 산재는 최대한 산안법을 활용하려고 한다. 회사는 빨리 가동하려고 하지만, 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어서 대응하자고 한다. OO자동차에서 관리자가 지게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활용하여 라인을 세웠다. OO차 본사가 움직여서 노조를 업무방해로 고발했지만 노동조합이 이겼다. 노조는 작업중지권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OO조선에서 지난해 12명이 죽었는데 사장 구속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업중지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단협으로 이를 압박하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사망사고가 난다 해도, 예전에는 기계를 세우고 조치를 했다면 지금은 선가동 후조치로 바뀌었다. OO자동차에서 사고 났을 때 노조가 컨베어벨트를 멈췄다. 회사는 업무방해라며 6억 원을 노조에 걸었지만, 최근 무혐의가 나왔다.
서교 GS건설 크레인 전복사고 현장 (출처: 민중의 소리 2010/10/07)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건설산업은 한 회사만 잡는 전술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생각에 건설은 90%가 사고를 은폐한다. 십장을 따라서 일하러 돌아다니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자가 와서 은폐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자들 자체가 무뎌진다. 다리 부러지는 건 우습게 생각한다. 기업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게 노조 쪽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유럽 쪽에서는 건설안전에 규제가 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나? 사망이 많은 건설회사가 수주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노조가 반성을 해야 부분이, 건설이 옥외작업, 사고가 워낙 많으니까 으레 그러려니 할 때가 있다. 외국 건설회사도 우리처럼 사고가 많이 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원래 제조업이나 건설은 사고가 많지 않나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산재가 노동계 쟁점이 안 된다.
작업 중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신규조합원 교육할 때 교섭, 쟁의, 파업 교육은 많이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료가 죽었다면 망치를 놓고 일을 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민주노총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교육매뉴얼이다. 교섭 교육만큼 노동안전 교육도 많이 해야 한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조선공장에서 일요일에 사망사고가 났다. 근로감독관이 월요일에 왔고, 노동부가 특별안전보건진단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이 파업은 안했지만 그 공정 작업을 3일간 중지했다, 그래서 특별안전보건진단을 따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신뢰한다. 당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고였고, 노조에서 특별점검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그 중 하나를 얻은 것이다.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건설은 사고 나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규제완화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노동조합 대응을 주로 얘기했는데, 용광로 사고는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 생각해보자. 네티즌이 시를 올리고, 감성을 울렸던 부분이 무엇일까? 사망사고가 나면 우리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주목을 받지 못하는지 짚어보자. 트위터 열심히 하면 되나?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용광로 사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만의 문제인줄 알았던 것 같다. 우리가 이것을 사회에 알리려고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고, 노동자가 죽으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정식으로 문제제기 하고 활동해아 하는 시기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회운동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 문제를 사회의제로 만들려면 담는 그릇이 치밀해야 한다. 임단협 교육할 때 산재교육을 하지 않는 노조도 있다. 노조는 무엇을 할지 논의하고, 사회적 영향을 갖고 있는 세력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환경, 인권 단체도 만나고, 정치세력도 만나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삼성백혈병 운동이 사회적으로 울림을 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김재천 / 산재노동자협의회세 박자가 맞은 것 같다. 피해당사자가 있고, 활동가들이 있고, 삼성이라는 점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준 부분도 있고.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삼성도 글로벌회사인데, 국내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콧방귀도 안 뀐다. 해외에서 떠들어야 한다. 선거 때 국회의원 후보, 지자체 후보에게 안전공약 받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삼성백혈병이 어떻게 사회문제가 될 수 있었나. 끈질기게 해서 그렇다.
§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크레인 사고를 추적해 봐야 한다. <한겨레21> 기사를 보면, 작년에 16명의 크레인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사망사고가 났는데 벌금 700만원이라니 말이 되냐. 상식적인 법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피해자 조직화, 유족을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례를 쥐고 있어야 사회에 알릴 수 있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기자들이 사례를 원해서 모아놓는다. ‘4대강 공사하면서 사고 난 거 있냐’ 이렇게 물어오니까. 타워크레인도 이번에 <한겨레21>에서 다루어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게, 10년 동안 모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축적한 것하고 노동조합 자료하고는 차이가 있다. 전봇대 2만 2천 볼트 전류가 흐르는데 활선 만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전에서 인원을 줄여가면서, 예전에는 전력을 죽여 놓고 일을 했는데 지금은 살려놓고 작업을 해서 감전사가 늘어났다. 2년 동안 50명이 죽었다는 자료를 만들었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사람을 줄이니 사고가 난다. 국감에서 사고 자료를 제시했다. 한전 사장이 국감에 나와서 예산절감 안 하겠다고 답변했다.
국회 환노위에서도 처벌이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근로감독관이 처벌하려고 해도 검찰이 기소유예를 해버린다. 국회 법사위에 대해서는 왜 활동하지 않나? 노동단체가 법사위는 안 건드린다. 근로감독관은 말한다. “검찰이 기소를 안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2010년 6월 18일, 한전 본사 앞에서 보유인원 축소 철회를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매일노동뉴스)
노동조합이 사업주 처벌여부를 추적할 수 있을까? 유족의 처벌의사와 상관없이 처벌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부담 없이 기소유예를 할 수 있다. 검사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유일한 조직은 노동조합인데, 조합이 검사에게 압력행사를 안 하고, 노동부에도 압력을 안 넣는다. 관심이 별로 없다. 노동안전 이슈 자체에 관심이 없다. 검찰이든 노동부든 맘대로 하는 구조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보다 구체성 있는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이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를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유족과 사례들을 모으기 위해 콜센터를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문길주 /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24시간 안에 노동부에 보고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달 후 발표되지 않나. 바로 발표하도록, 실시간으로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 이진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처음에 말할 때 기업살인법 운동이 답보상태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납득이 안 된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레토릭으로써, ‘기업살인이 뭐야?’ 궁금하게 만드는 탄력은 받았는데, 기업살인법 얘기만 했더니 관심이 떨어졌다. 타당성, 현실가능성, 법체계 등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운동이 아니라 법제정을 위한 복잡한 논의가 되면서 재미가 떨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책자체가 없어졌고, 그전에는 떠들면 반응은 왔었는데 반응이 아예 없으니까 힘이 떨어진다.
§ 유성규 / 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우리의 이해와 요구가 아닌데, 지속성을 가지고 표출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진다. 이슈파이팅을 이어가는, 작게는 노동조합, 크게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가 중요하긴 한데 밀린다. 넘어간다.
§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사망사고가 나면 단계별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보자. 24시간 안에 조사하게 되어 있는데 조사하는지, 검찰은 왜 사망사고에 관심이 없는지, 판사는 어떻게 보는지 등등.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해서 파일링을 해 놓자. 노동조합이 구체적인 활동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의 정책요구안에 대해서도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
§ 임상혁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례분석을 하면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사례를 모아야 한다. 설비, 정비의 문제 뿐 아니라 숨어있는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산재가 나면 이슈가 되지 않고 묻힌다. 노동재해에는 관심 없고, 환경성 재해에는 사회적 관심이 많다. 시민과 호흡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공동사업으로 해보자.
기업살인법 안내 페이지 입니다. http://old.laborhealth.or.kr/corporate_killing
이 글은 2010년에 유럽 직업안전보건청이 발간한 <유럽에서 직업안전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의 효과 평가>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업장 안전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감독과 벌칙이 우선되어야 한다. 감독과 벌칙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조건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유럽적 맥락에서 직업안전보건 향상을 위한 유일하고 최고의 방법으로서가 아닌, 보완적 제도로서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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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2007년 대비 2012년에 산재사고를 25% 줄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EU의 사업장 건강·안전 규제를 각 국가 법률에 반영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으로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는 법의 집행이 필요하며, 특히 중소규모의 사업장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감독과 벌칙 같은 방법으로 법을 따르도록 하는 직접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사업장 안전·보건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기업체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경제적 인센티브 정책도 도움이 된다.
보고서의 표지
이 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 인센티브의 효과와 관련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였는데, 그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업체가 산업안전보건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만드는데 세금 감면은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형태의 인센티브는 법인세를 납부하는 사업체에서만 효과가 있다 (즉, 공공기업이나 비영리법인에서는 효과가 없음). (2) 경제적 인센티브를 감시·감독이나 중재 프로그램에 연계시키는 것은 산업안전보건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유망한 방법이다. (3) 기업이 사업장 안전보건에 사용하는 금액에 비례하여 보조금을 제공하는 매칭 펀드(matching fund)는 산업안전보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적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센티브는 기업이나 정부에 높은 행정비용을 초래한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보험과 관련된 경제적 인센티브는 기업들이 산업안전보건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개별 기업의 산재 발생률에 따라 보험료를 가산하거나 경감해주는 ‘경험요율(개별실적요율)’의 효과를 평가한 연구들을 검토한 결과, 이 제도가 보험 청구 건수를 줄여 준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기업이 보험료 상승을 막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도록 노동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결과라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사회보장 제도는 주로 조세에 기반하는 비버리지 방식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를 포함한 11개국에서 채택)과 보험을 근간으로 하는 비스마르크 방식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대부분의 기존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16개국에서 채택)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산재보험 제도는 국가가 운영하는 독점 체계 혹은 사적인 경쟁 시장 체계로 구분된다.
몇 개의 EU 국가들(덴마크, 에스토니아, 그리스, 스페인, 영국)에서는 보험에 기반한 인센티브(예를 들면 보험요율과 관련된 인센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 보험료 가산은 위험도 구분에 따라 정해지며, 이 경우에는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게 할 만한 경제적 동기가 별로 없다. 다른 EU 국가들(벨기에, 불가리아, 체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핀란드)은 보험료 가산이 산재 사고율에 따라 책정되는 (이른바 경험요율) 경제적 인센티브를 지니고 있다.보험 관련 인센티브를 통해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는 사전에 정해진 모델에 따라 산재 예방 노력을 기울였을 때 보상하는 방법이다. 이런 접근법은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활용된다.
EU 국가들에서 산업안전보건 영역의 세금 관련 인센티브는 매우 드물다. 반면에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자금 지원은 거의 모든 EU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다. 자금(보조금, 교부금)은 관련된 물건과 도구의 구입에서부터 산업안전보건 관리 체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지급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조금 제도, 조세 관련 인센티브, 비(非) 금전적 인센티브는 모든 EU 국가들에 적용이 가능하다. 경험요율 또한 경쟁적 시장이나 독점 시장 모두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향후 산재 예방을 위한 노력(예를 들면 교육이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투자)에 자금을 제공하는 방법은 제도별로 적용에 차이가 있다. 독점적 시장의 경우, 보험 회사가 투자를 한 만큼 산재 청구가 줄어들어 이득을 얻기 때문에 적용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경쟁적 시장의 경우, 사업주가 보험 제공자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따라서 한 보험사가 예방 활동에 투자를 한다 해도 그 이득이 경쟁 보험사에게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선뜻 투자를 하기 어렵다. 경쟁적 시장에서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기업체와 보험사 간에 수 년 동안 장기 계약을 맺도록 하거나, 혹은 보험자들이 분담하여 공동의 예방 자금을 조성할 수도 있다.
인센티브 참여 기업과 비참여 기업의 산재율 비교 그림 (보고서 111쪽)
경제적 인센티브가 산업안전보건의 향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1. 인센티브는 산재율 같은 과거의 결과에 대해서 보상할 뿐 아니라, 향후 산재와 건강문제를 줄이기 위한 예방 노력들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한다.2. 인센티브는 모든 규모의 사업체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특히 중소규모 사업체들의 특별한 필요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3. 인센티브는 사업주들의 참여를 유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4. 사업체의 예방 활동에 대해 명확하고 즉각적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5. 참여하는 사업체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기관 모두의 행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명확한 인센티브 수여 기준이 존재해야 하고, 그 기준은 가능하면 적용하기 쉽도록 설계되어야 한다.6. 많은 사업체들을 대상으로 인센티브 제도가 시행되는 경우, 명확한 기준을 가진 보험이나 조세에 기반한 인센티브가 가장 효과적이다. 7. 특정 영역에서 혁신적인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보조금이 가장 효과적인 인센티브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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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유럽에서 산업안전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되고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한국에서도 개별실적요율을 적용하는 산재보험제도, 클린사업장 등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가 일부 시행되고 있다. 이들 인센티브 제도가 산업안전보건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끝 -
한국의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우습게 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기보다는 위반 적발 시 벌금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현실에서 그게 훨씬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사망 등 중대 재해로 처벌받은 사업주 2,358명 중, 구속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모두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주가 산재 예방에 나서는 것을 바라기는 힘들다.
법이 사고에 대한 예방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법을 어겨 처벌 받는 것보다 이득이 된다는 생각을 사업주가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 시에도 처벌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억지력을 갖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최고 형량은 낮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예방법으로 취급되어, 실제 법정에서는 형량이 낮게 구형되고 선고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히 사고로 인한 사망 등 중대재해의 경우에는 사업주에게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의 사업주나 법인에게 이 죄를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 등 중대재해의 발생은 안전보건의 중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법 체계상의 문제를 개혁하고자 보완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사업주의 직업안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법 위반 행위에 대한 높은 벌금, 고위 임원에 대한 구금형 같은 벌칙도 효과가 있지만, 법 위반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실추 유도도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산재다발사업장 공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예방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 강화와 더불어 사망 같은 중대재해나 반복적인 재해 등에 대해 현재보다 훨씬 강화된 처벌이 필요하며, 처벌의 형식도 다양화하여 안전보건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심각한 직업안전 사고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통해 법적 사고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한다. 처벌 대상이 되는 재해는 미필적 고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망재해, 죄질이 나쁜 사망 재해, 반복적 사망 재해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필적 고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망 재해는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해당할 것이다. 행정당국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고도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중대재해의 위험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업을 강행하다가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사전에 유해물질 정보와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아 직업병에 이환되어 사망에 이른 경우 등이다. 죄질이 나쁜 사망 재해의 경우로는 사업주가 사전에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가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알려주지 않아 재해가 발생한 경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반복적 사망 재해는 해당하는 유사한 부주의로 유사한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 사진 1. 영국의 기업살인법 도입에 관한 BBC 뉴스 기사 화면 (2006.7.21)
특별법은 양벌 규정을 통해 사업주와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특별법에 의한 처벌은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예방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살인죄’에 버금하는 죄의 결과에 대한 처벌이므로 징벌적 성격을 띠도록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심한 경우 고위 임원을 금고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벌금형의 경우에도 기업 규모에 따라 벌금액의 규모를 다르게 판시할 수 있도록 하여 실질적인 징벌이 되도록 한다.
직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경우 자격박탈, 기업해산, 사회봉사 등 다양한 처벌 방식을 통하여 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금고형으로 인한 자격박탈은 중범죄와 흉악범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형벌이다. 금고형은 다른 보호 관리 형벌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만 선고된다. 자격박탈의 목적 중 하나는 개인에게서 자유를 박탈하여 범죄자가 적어도 감옥에 갇혀 있는 기간만큼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목적도 있다. 기업을 금고형에 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격상실이나 기업해산을 포함하는 대안적 형벌들이 제안되고 있다.자격박탈은 기업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특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자격박탈은 사업의 제약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업해산과 비교했을 때는 낮은 형벌이다. 몇 가지 종류의 자격박탈 유형이 있는데, 특정 기간 동안 거래를 못하게 하는 방법, 특정 지역에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특정한 면허를 취소하는 방법, 정부기관과의 계약 같은 특정한 계약의 신청 권리를 박탈하는 것 등이다.
자격박탈은 법률위반기업이 특정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법률을 잘 준수하는 기업에 비해 경쟁력을 낮춘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자연인이 일으키는 범죄에서 자격박탈의 형벌이 존재한다면, 기업도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자격박탈의 형벌을 선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 자격박탈을 통해 거래를 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업해산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다른 비판은 자격박탈이 형벌의 목적 중 제지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복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며, 그 결과 근로자나 주주들에게 처벌의 넘침 (spillover)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격발탁과 달리 등록취소는 기업해산을 가리키는 또 다른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기업을 사회로부터 제거하는데 쓰이는 형벌로써, 자격박탈보다 처벌의 정도가 심한 형벌이다. 기업해산은 실제로 기업을 해산시킴으로써 달성할 수도 있고, 기업의 모든 자산을 매각해야 될 정도로 많은 벌금형을 선고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해산시킬 수도 있다. 기업을 해산할 때는 벌칙의 넘침 현상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위반의 정도가 매우 심한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
기업해산의 문제점은 해산된 기업의 소유자가 이름만 바꾸는 ‘불사조’ 기업을 다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격상실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호주에서 기업이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은 유일한 사건인 덴보 회사 판례의 경우를 보자. 회사는 기소 시점에 이미 청산 절차에 들어가 있었고 채권자들로부터 2백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유죄선고에 따라 벌금형을 받기 6개월 전 이미 회사는 파산상태였기 때문에 12만 달러의 벌금도 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선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이름만 바꾼 채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불사조 기업을 세운 사례가 있다.
기업해산은 대기업보다는 소규모기업에 더 적합한 형벌이라는 주장이 있다. 소규모기업은 기업해산으로 인해 기업구성원, 주주, 근로자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기업해산으로 인한 넘침 현상의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범죄에 적절한 형벌이 아닐 수 있다. 회사의 청산은 회사 자산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권자 등 제3자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청산한 회사를 모기업이나 또는 관심 있는 외부기업이 사들임으로써 제3자를 보호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 형벌의 목적 중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회사 청산에 대한 위협은 경영진들에게는 경영권방어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사회봉사명령은 범죄자가 관찰자나 감독자의 지시 하에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프로젝트에 참가할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범죄자의 전문분야에 적합한 분야에서 참가가 이루어진다. 범죄자의 전문분야와 관련된 사회봉사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기업을 처벌하는 형벌로는 효과가 매우 좋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명령을 받은 기업은 자신의 전문가들 또는 노동력을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공급해야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속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형벌의 효과는 전통적인 자격박탈이나 벌금형 등의 형벌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봉사명령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속죄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회봉사명령의 또 다른 긍정적인 특징은 형벌에 대한 비용이 적게 들고 원치 않는 넘침 현상의 발생 가능성을 줄여주며, 복구, 보상, 중재 효과를 거두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기업주들이 저지르고 있는 노동자 살인 행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살인 기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에 대한 창조적이고 효과적인 벌칙 부과 등과 더불어 검찰 및 법원의 개혁도 필요하다.
* 사진 2. 독일의 연방 노동법원 누리집 (http://www.bundesarbeitsgericht.de/index.htm)
산재를 일으켜 노동자를 죽인 기업주 혹은 기업의 고위 임원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했다. 현재의 법 체계 안에서도 형법 상 업무상 과실치사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이들을 얼마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이 감옥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검찰과 법원은 법 체계 상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는 기업주나 기업 임원이 처벌의 대상이 되기 어려우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는 중형을 선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기에 우리는 ‘(가칭) 기업살인법’ 같은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검찰과 법원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검찰과 법원이 기업의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이 범하는 환경 범죄, 식품안전 범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부패와 관련된 경제 범죄까지도 검찰과 법원은 중죄로 다루지 않고 ‘경범죄’로 다룬다. 기업 범죄를 수사할 때 기업주나 고위 임원을 구속 수사하는 경우는 드물고, 유죄 판결을 내더라도 집행 유예를 하기 일쑤다. 노동 관련 문제에 대한 판결에 비하면 그나마 이러한 경우들은 나은 편이다. 검찰과 법원은 기업의 노동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사업주의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하는 경우는 아예 없고,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한 경우는 2008년 한 해 동안 단 1건에 불과했다.
이들의 친(親)기업적 의식을 보여주는 예는 너무나 많다. 그 중 하나만 살펴보자. 2001년에 노동부는 한 사업장에서 세 번 연속해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검찰에 사업주 구속을 요청하는 소위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대우조선에서 6월까지 벌써 6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했고, 노동부는 검찰에 대우조선의 지원본부장을 구속 수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는 기각되었다. 검찰은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조선업이 활기를 찾고 있고, 대우조선이 지역 및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구속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경제를 걱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경제 운운하며 기업의 범죄 행위를 눈감아주는 것은 행정부나 사법부가 결코 다르지 않다.
검찰과 법원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태생적으로 이들은 이 사회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법원이 우리 사회 보수층 최후의 보루로 기능해 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범죄 행위를 중죄로 다루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기업살인법 제정 같은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러한 구조적 변화의 일부로써, 현재 검찰 공안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를 담당하는 구조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검찰 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공안부가 이러한 사건을 담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구나 환경 범죄, 산업안전보건 범죄 등은 수사에서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만큼, 이러한 범죄를 전담하는 검찰청 내 독립적인 부서의 설립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의 경우, 노동법원을 별도로 설립하여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심리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최고 형량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규제는 기본적으로 예방적 규제이기에, 이것의 위반 사항은 부작위(不作爲)의 범법 사항으로 취급되어, 법적 최고 형량과 관계없이 법원에서 선고하는 양형 수준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즉, 법상의 최고 형량이 높게 책정되어 있어도 선고되는 형량이 낮기 때문에 처벌로 인한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가 처벌되지 않고 유예될 뿐 아니라, 벌금 수준도 낮게 선고된다. 행정벌칙이라고 할 수 있는 과태료 역시 그 수준이 높지 않아, 현실에서 과태료로 인한 산업안전보건 예방 효과는 크지 않다.
한편, 규제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포괄적 책임을 물어 엄정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사업주가 스스로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이를 위해 주로 행정적 인센티브와 포상 및 기업 이미지 고양 등의 방법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일정한 규모와 능력을 가진 사업주의 경우 구체적, 기술적 의무 중심의 명령형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자율 안전보건관리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 제도의 효과가 제대로 평가된 적은 없다.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가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자율 안전보건관리 제도의 도입은 오히려 사업주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호에는 노동안전보건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처벌강화 방안과 효과적 인센티브 구성 방안을 살펴본다. 두 가지를 병렬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역시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벌 강화 방안이다.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센티브는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몇 주 전부터 사무실도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의외로 - 전태일 40주기를 직접 준비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 분주하였다.
일간지에서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오늘의 전태일을 찾겠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가난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제조업(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를 찾아야 한다, 면서 기자가 전화를 했다. 얼마 전까지 공장에서 일했고, 노조의 열성 조합원이었던 청년이 떠올랐지만, 그는 올해 여름 대학생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자는 하소연을 했다. “20대 초반 나이에 공장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만 보더라도 40대 남성노동자들이 젊은 축에 속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신문사가 2010년의 청년 전태일을 찾았는지, 공장이 아닌 다른 현장에서 찾는 것으로 기획을 바꾸었지는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공통점이 많은 이를 찾고 싶은 마음은 알 것 같지만, 40년의 시간차를 무시하는 것은 무모한 것 아닐까?
‘2010년의 전태일’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서비스 산업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10대, 20대 노동자들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회나 정보가 그들에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자우편함에는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노동단체 활동가들에게 묻는다며 설문지가 한 통 도착해있다.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비정규노동자대회>와 문화제가, 11월의 첫주 일요일에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전태일 40주기’ 수식어를 달고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린 늦가을의 저녁, 자리를 잡고 보니, 비슷한 파마머리에 같은 조끼를 입은 수십 명의 ‘아줌마’ 노동자들과 한데 앉아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길어서 따라할 수가 없네.”
“진짜 사장이 고용해라 비정규직 철폐 투쟁 라고 하는데요.”
“응 맞어 맞어 진짜 사장이 해야지, 중간에서 남 일한 거 빼먹는 것들, 아주 불쌍한 것들이야” “어디서 일하세요?”
“청소, 지하철. 새벽 5시에 나와서 일하고, 여기 또 나왔더니 힘들어. 더는 못 앉아 있겠네.”
계속되는 집회발언과 사회원로 소개에 지쳐가던 아주머니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내일이면 다시 ‘남 일한 거 빼먹는 불쌍한 것들’에게 잘리지 않기 위해 쓰레기통을 비우러 가시겠구나.
노동자대회에 앉아있다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가 보다. 주먹을 치켜든다고 다 같은 조합원이 아닌가 보다. 구호가 길어서 따라하지 못하는 참가자가 유난히 많았던 집회가 저물고 있었다.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 깃발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있다 (출처: 참세상)
일주일 후 다시 같은 자리에 와 있다. 깃발과 깃발 사이마다 같은 점퍼, 같은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로 광장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깃발이 없고, 소속이 없으니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앉다. 지난 주 비정규직대회 때보다 뻘쭘하다. 헤매다가 빈틈을 찾아 무대가 보이는 곳에 앉았다. 어깨가 닿은 옆자리 여성노동자가 자꾸만 바라본다.
“관심 있어서 보려고 왔는데 앉을 데가 없네요.”
“예, 우리 조합원인가 해서…” 웃는다.
주최 측은 전태일의 이야기를 짧은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전태일이 남긴 일기 한 구절 한 구절은 그대로 노랫말이 되어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품은 세상이 얼마나 넓었는지,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공연은 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들과, 결단을 앞둔 전태일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며칠 후면 시작될 부자나라들의 이벤트, G20 을 공격하려는 이날 집회의 목적이 잊혀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뮤지컬에 이어진 동희오토 노동자의 절규는, 전태일을 찬양하는 일은 쉽지만 비정한 현실의 착취를 직시하고 몸을 던져 깨뜨리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결단을 요구한다는 감상적 후기를 남기고야 말았다.
두 주 연속 꽤나 긴 집회를 쫓아 다니면서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도 피곤했다. 전태일 버튼을 가방에 달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집을 2만 5천원이나 주고 샀지만, 그 마음을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6년을 싸워서 비정규직 이름을 털어버린 기륭노동자들의 그 서러움을 다는 모르고, 용역들에게 듣는 욕이 끔찍하게 싫지만 회사 앞 노숙농성을 포기할 수 없는 재능교육 조합원들의 분노를 다는 모르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이름 뒤에 숨어서 연대를 말하는 것은 깃털만큼 가벼운 일인데, 얼마를 나누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진 것 가운데 무엇을 버릴 수 있어야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을호가 늦어졌습니다. 10월 말, 11월 초에 여러 가지 행사들이 이어지면서 기왕이면 이들까지 함께 담아 내보내자는 편집위원회의 욕심이 지각 사태를 낳고 말았습니다. 독자들께서 애타게 기다리셨다고 확신하면서 (^^), 늦어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니 그 기다림에 대한 조금의 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이벤트라는 G20 행사로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외국 손님이 보실 감나무에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고정시키고, 한국의 전통미를 알리기 위해 고등학교의 콘크리트 담벼락에 곱게 돌담 문양을 그려넣는 기상천외함을 보며, 개그맨들은 뭐 먹고 사나 걱정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들만 바빴던 것은 아닙니다. 올해로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됩니다. 전태일 다리가 만들어지고, 성대한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모두들 많이 바빴습니다.
전태일을 기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활동가의 <시론>으로 가을호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태일의 40주기에도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지켜야만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법의 이면>은 ‘5년 동안 안 해본 것 없이’ 싸웠던 기륭 노동자, 수 년 동안의 피 말리는 법정 투쟁 끝에 겨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낸 현대차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전합니다. 또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진폐환자들의 현재 진행형 고통과 역시 절박한 투쟁의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편 ‘건강과 인권’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옮긴 <이야기의 힘>에서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갈등과 투쟁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진실을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용광로에 빠져 숨진 청년노동자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GS 건설 크레인 전복사고로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노동건강연대가 주최한 [기업살인운동 간담회] 지상 중계를 <특집1>에 담았습니다. 이는 연중기획 [한국의 노동안전보건행정] 제 3부와 이어져, 규제의 실질적 집행을 위해 처벌 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특집2>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제 3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제시했습니다.
<특집3>강화와 인센티브 부여라는 두 가지 접근방법을 살펴보게 됩니에서는 진보적인 해외 연구자들의 초청 강연 현장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의 파견법이 가져온 심각한 사회상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미국의 노동-보건의료-환경운동-지역사회 연합 구축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강연을 해주신 일본과 미국의 교수진들의 헌신과 열정을 지면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본에서 오신 연로한 교수들은 다음 날 새벽에 비행기를 타야하는 데도, 저녁식사까지 거른 채 늦게까지 질의응답을 계속하며 우리와 경험을 나누려 애쓰셨습니다. 미국의 슬래틴 교수는 마침 59번째 생일을 맞아 강의 참가자들과 함께 조촐한 생일파티를 벌였고, 강의 전에 성수동 제화노동 현장을 둘러본 레벤스타인과 슬래틴 교수는 보건의료노조에서 받은 강사료를 노동건강연대에 기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지면을 통해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국제연대의 가능성은 <해외동향>에 실린 방콕 안로브 참가기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본 없는 드라마’로 칭송받았던 칠레 광부 고립사건의 숨겨진 진실과 일본의 자살 문제 대응 과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갑니다. 남아있는 2010년,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동과 건강>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저희 발길이 멀리까지, 그리고 깊게 미칠 수 있도록, 독자들께서 저희를 불러내고, 야단쳐 주시길 바랍니다.
2010.11. <노동과 건강>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