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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관한 고찰...
뇌심혈관계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경우가 최근 전체 업무상 질병 사망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본 연구에서는 현행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논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번호에 연재될 1편에서는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재해인정기준의 문제점과 외국제도 및 의학적 근거에 대해 다루고 다음호에 연재될 2편에서는 구체적인 개선방향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관한 고찰 (1)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외국제도 및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들어가는 말
산업현장에서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한 근로자 중 업무상 질환으로 인정받은 근로자는 1996년 420명에서 2003년 820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전체 업무상 질병 사망자 1,390명의 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뇌심혈관계 질환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뇌심혈관질환이 급증하는 이유는 이를 유발할 수 있는 기초질환(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유병률이 높아서 발생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업무상 과로(과중한 업무와 직무스트레스)에 의해서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고 승인률 또한 높아 산재보험급여 신청이 증가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뇌심혈관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의 급증에 비하여,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과정은 일반적인 사고성 재해를 다루는 관행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즉, 뇌심혈관질환은 원인과 결과사이의 인과관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사고성 재해나 전통적 직업병(소음성 난청, 진폐증, 중금속, 화학물질 중독 등)과는 달리 업무상과로와 스트레스가 직접 원인이 아닌 기여요인이거나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업무관련성 평가와 과정이 일반적인 업무상재해와는 달리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 간과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뇌심혈관질환의 업무관련성 평가를 둘러싸고 이해당사자 뿐 만 아니라 결정기관과 사법기관간의 갈등과 소송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여야 할 근로자와 사업주가 이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하는데 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현행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의 문제점
현재 제정되어 있는 뇌혈관질환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상의 인정기준 뇌혈관 및 심장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1)은 1982년 노동부 예규 제71호로 '재해성 두개내출혈 및 심장질환만 인정'하는 규정이 마련된 이후 현재까지 수차례의 개정과 검토가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인정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뇌심혈관질환중 대상질환으로 현재 7가지 질환이 열거되어 있으나, 행정처분결정이나 판례를 통해 살펴보면 7가지 이외의 뇌심혈관질환도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직업병에 대한 인정 범위를 혼합주의로 채택하고 있는 현행 산재보험법의 원칙을 수용하여 혼합주의 방식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 뇌심혈관질환을 발병하게 하는 업무상 유해인자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여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업무상 유해인자에 대한 해설 내용이 객관적 근거가 없이 임의적 내용으로 되어 있다.
△ 뇌심혈관질환 발생시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뇌심혈관질환의 병리기전 상 질병의 경과가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업무수행성 고려는 불필요하다.
△ 당해근로자와 보통 평균인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러한 문제점의 발단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다음 몇 가지에서 비롯된다고 요약할 수 있다.
△ 뇌심혈관계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
△ 다른 업무상질병은 질병발생의 충분원인으로서 업무기인성이 확실한 것과 달리 뇌심혈관계 질환은 질병의 원인이 매우 다양하며 업무상 과로가 충분원인이 아니라도 악화요인으로서의 업무관련성만으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그림 1).
△ 업무상과로의 개념도 모호하고 객관적인 판단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업무상과로가 기초질환의 자연경과속도를 넘어 급격히 악화시키는지에 대한 근거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아 판단이 매우 어렵다.
본 연구의 목적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행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여부를 판단을 하는 데 제기될 수 있는 업무 관련성을 최종결정하는 과정을 어떻게 공정하고 신속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절차와 판단의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향후 공정하면서 신속하게 인정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림1>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의 발병과정
일본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일본의 뇌심혈관계질환에 관한 인정기준은 1961년에 책정되어, 1995년, 1996년에 개정된 「뇌혈관질환 및 허혈성 심질환 등의 인정기준」을 통해 뇌․심장질환이 과중한 업무에 의해 발생했다는 업무기인성의 판단이 이루어졌으며 2001년 다시 개정되었다.
대만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대만은 중앙정부인 행정원(行政院, Executive Yuan) 산하에 노공위원회(勞工委員會, Council of Labor Affairs)가 설치되어 산업안전보건과 보험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직업재해노공보호법(職業災害勞工保護法)의 직업질병인정기준 인정기준적요(認定基準摘要 총 108종 가운데 제 4종에 해당됨) 및 직업인기급성순환계통질병진단인정기준(職業引起急性循環系統疾病診斷認定基準)에 따라 직업성 뇌심혈관질환을 직업성질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뇌심혈관계질환이 직업성질환 전체 사망자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인정질병 및 인정기준은 일본의 기준과 유사하나 인정요건이 보다 엄격하다.
미국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미국은 산재보상제도가 주마다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일부 직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요건을 만족하면 특정 질환은 업무상 질병으로 자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래의 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내용으로 소방관, 경찰 등 공무원 중 일부 직종에서는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일부는 5년 이상 근무 시에 인정)2)
미국에서 뇌심혈관질환관련 업무상질병 인정여부
미국에서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연시 인정되는 상황 외에는 법원 판례를 통해 결정된다. 가장 중요한 보상가능성(Compensability)의 판단여부는 업무기인성(AOE: Arise Out of Employment)과 업무수행성(COE: in the Course Of Employment)이 동시에 작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 때 업무수행성은 법원의 판단이며, 업무기인성을 판단하는데 의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3)
1998년 발표된 통계4)에 따르면, 1985년과 1986년 동안 미국에서 심혈관계 질환으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사례가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뇌심혈관 질환 관련 판례 5)6)7)
심혈관질환 불승인 판례5) - 일리노이주 상고심 판례
55세 자동차 시트 제조회사 부사장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여 유족이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심장질환의 원인임을 주장하며 유족급여를 청구하였다. 조정기관은 소송인의 의견에 동의하였으나 위원회에서는 검토의견을 파기하였다. 위원회는 망인의 심장질환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이 모두 없다고 하였고, 순회법정도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미망인은 항소.
상고법원은 망인의 업무가 비일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망인의 심장질환이 회사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 발생하였지만, 망인의 경우 다른 기간보다 더 바쁘지는 않고, 사망 당시 망인의 근무시간이 길지 않았다. 게다가 망인은 회사가 매각될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걱정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의 통상적이며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피고인 회사의 의사가 증언한, 사망 7개월 전에 망인과 임신한 딸이 각각 유방암과 호지킨 임파종으로 진단되었고, 망인이 약간 비만하며, 부친 역시 55세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에 주목하였다.
심혈관질환 승인 판례6) - 일리노이스 주 상고심 판례
피재자는 1971년부터 1991년 11월까지 우케건시 경찰로 근무하였고, 1985년부터 1990년까지는 순환경찰로, 그 이후는 부서장으로 일했다. 1991년 11월 5일 아침에 심장발작이 있었다.
조정기관은 피재자의 심장발작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다하여 영구완전장애(PTD: Permanent & Total Disability)급여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위원회는 결정을 지지하였으며 순회법원도 위원회의 결정을 확정하였으나, 피고인 회사는 항소하였다.
업무수행성과 기인성에 대해서 첫 번째 항소심 재판부는 위원회의 인과관계 인정 부분을 받아들였다. 의사가 피재자가 다른 사람보다 스트레스에 대해 심각한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 증언하였고,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피재자의 업무가 크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음을 알리는 방대한 증거가 있었다. 재판부는 피재자의 현재의 심장상태가 다른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때 사망할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증언과 피재자가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사의 견해를 받아들여, 피재자가 실질적으로 업무를 계속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영구완전장애 급여 지급을 결정하였다.
기존 심장질환의 악화가 인정된 판례
피재자는 2년동안 견과류 포장업체에서 근무하였는데, 주 작업은 땅콩부대를 들어 용기에 담는 것으로 부대의 무게는 115-125 파운드 정도이며, 엉덩이 위로 약간 들어 올려서 아래로 쏟는 작업형태였다. 주 6일 근무하였으며 하루에 150개의 부대를 처리했다. 어느날 오후에 일상적인 작업을 하다가 급작스런 통증을 겪게 되었으며, 진단 결과 좌측 관상동맥의 폐쇄를 동반한 좌심실의 심근경색으로 진단되었다. 피재자의 진단상 기존에 심장질환이 있었고 현재 작업형태는 동일한 연령대 및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는 금기되는 작업이라고 결정되었으나 피재자는 이 사실에 대해 진단시까지 모르고 있었다.
상충되는 의학적 견해가 제기되었지만, 위원회는 피재자에게 좀 더 우호적이었으며, 피재자가 업무 수행 중 및 업무에 기인하여 재해를 당했다는 점과 기존 심장질환의 악화로 장해상태로 진행하였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피재자가 의심할 나위 없이 기존에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검사당시에 있었던 피해는 최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독일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현재 독일에서 인정하고 있는 직업병 항목에는 뇌심혈관질환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 등은 제외되어 있어 정확한 정보나 통계는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2004년 한국노동연구원 주최의 세미나에서 1963년부터 2004년 사이 독일에서 23건의 스트레스성 심근경색, 심장질환, 고혈압, 뇌출혈에 대한 산재여부가 심의되었으나 모두 인정받지 못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독일사회법전 제7권 제9조 제2항에 따라서, 다음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향후에라도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독일 사회법전 제7권 제9조 제2항>
1. 특정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직업으로 인하여 특별한 영향에 일반인보다 더 심하게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2. 이 영향은 최신 의학지식에 의해 특정 질환을 유발시키기에 일반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3. 이 의학지식은 최신의 것이어야 한다.
4. 질환과 위험유발작업 사이 인과관계는 구체적인 경우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의 의학적 근거
급성 스트레스가 뇌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기전
급성 스트레스와 심혈관계질환의 관련성은 잘 알려져 있다. 9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 따르면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의 사망 후 1달 내 남성에서는 2배 이상, 여성에서는 3배 이상의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사망률의 증가는 사건 발생 1달 후 정상화되었다 (Kaprio, 1987). 1994년 로스엔젤레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급성 심장사가 지진 발생 당일 평상시 4.6건에서 24건으로 증가하였다는 연구가 있다 (Leor, 1996). 고혈압의 과거력이 있는 84세 남성이 아내의 죽음 뒤 급격한 혈압의 증가로 뇌실질내출혈로 사망한 증례보고가 있다. 카플란은 급격한 혈압의 증가나 뇌혈류의 증가는 뇌혈관의 파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급성 스트레스가 심혈관계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하는 요인은 심근허혈, 뇌경색, 부정맥, 혈관의 경화반 형성, 혈전형성의 위험성 증가 등이며 이에 대한 병태생리학적 기전은 다음 그림에 요약되어 있다 (Rozanski, 1999).
급성 스트레스가 뇌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기전
만성 스트레스는 여러 과정을 통해 뇌심혈관계질환 발생에 관여한다.
첫째,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동맥경화를 촉진시킨다. 동맥경화를 촉진시키는 현상은 여러 연구에서 관찰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혈압을 상승시키고 지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Vogele, 1998). 정상적으로 내막세포의 탐식세포가 활성화되면 산화질소가 생성되어 혈관내막에 대한 보호효과를 가지지만 스트레스에 의해 혈관손상이 있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혈관수축을 유발하게 된다 (Yudkin, 1999). 또한 스트레스는 IL-6와 같은 전달물질을 생성시켜 (Peters, 1999) C-반응성단백(C-reactive protein, CRP)의 증가, 피브리노겐의 증가, 혈소판 활성의 증가, 지단백분해효소(lipoprotein lipase)의 활성 증가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동맥경화 진행에 관여하게 된다.(Yudkin, 1999)
둘째,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부교감신경계를 억제하여 심박동수 변이를 감소시킨다 (Davis, 2000;). 심박동수 변이가 감소하면 동맥경화, 허혈성 심장질환, 급성 심장사, 심근경색, 부정맥의 발현이 증가된다고 알려져 있다 (Hayano,1990).
셋째, 스트레스는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Capes, 2000)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는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유발한다. 스트레스가 뇌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 경로와 간접적 경로로 분류하곤 하는데 위 3가지 기전은 직접적 경로이고 마지막 기전은 간접적 경로로 볼 수 있다. 즉 스트레스는 음주, 흡연, 환자의 순응도 저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뇌심혈관질환의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Rozanski, 1999).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증가된 혈압은 중년이나 노년의 남성에게 허혈성 및 혈전성 뇌졸중의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보고하고 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된 뇌졸증의 가설적인 발생기전은 섬유소 괴사(fibrinoid necrosis), 소혈관에 의한 뇌혈관질환, 갑작스러운 고혈압성 뇌출혈, 혈관내막의 비후와 경동맥의 협착, 사이토카인의 분비증가 그리고 점성 혈소판증후군(sticky platelet syndrome) 등이 있다
장시간 노동에 의한 뇌심혈관계질환에 관한 역학연구
장시간 노동이 유발할 수 있는 건강장해로 정신건강, 심혈관계질환, 작업수행능력 등이 나타나는데 40세 이하에서는 주60시간 이상 근무자나 교대 근무자에서 심혈관계질환 발생이 4배 증가한다고 하였고(Russek, 1958), 캘리포니아 직업사망률 자료를 통해 44세에서 48시간 이상 근무하면 심혈관계질환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Buell, 1960). 영국의 전화 회사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장시간 근무자에서 심혈관계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증가하였으며 (Hinkle, 1968) 또 한 연구에서는 주60시간 이상 근무자에서 심혈관질환의 발생이 46%로 비교군 26%에 비해 높았으며 50-60시간 노동군은 대조군에 비해 약간 높았다고 한다 (Thiel, 1973). 17개 논문을 메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장시간 노동이 생리적, 정신적 건강 장애를 유발한다고 나타났다 (Spark, 1997). 일반적으로 주 5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이 심혈관계질환을 포함한 건강에 유의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Spurgeon, 1997).
교대근무에 의한 심혈관계질환의 발병에 관한 역학연구
연구마다 위험성에 대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 아직 확립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Koller 등(1978)은 호주 석유정제공장에 대한 연구에서 교대근무자의 순환기질환의 유병율이 19.9%로 낮 근무자의 7.4%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수치를 보여주고 교대제 근무자에서 낮 근무자에 비해 심근경색을 앓은 병력도 많다고 보고하였다. Tenkanen 등(1997)은 헬싱키 심장 연구의 일환으로 1,806명을 6년간 추적 조사한 코호트 연구 결과 교대근무가 관상동맥질환의 발병을 높인다고 보고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근무 직종과 관계없이 교대근무는 낮근무에 비해 관상동맥질환의 발병율을 1.4배 정도 높이며 특히 2교대근무 생산직에서는 관상동맥질환이 1.9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하였다.
직무 스트레스와 뇌심혈관계질환
직무스트레스와 심혈관계질환의 관계에 대해서는 카라섹모델을 이용한 단면조사뿐만 아니라 환자대조군 조사, 추적조사에서도 업무 요구도가 높거나 업무 자율도가 낮은 경우에 심혈관계질환 특히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밝혀졌다. 사회적 지지를 포함시킨 확대모형에서는 사회적 지지가 낮은 군에서 심혈관계질환의 발현률이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스웨덴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 중 13,799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정신 사회적 작업환경과 심혈관계질환 이환율과의 관계를 조사하였는데, 높은 업무요구도, 낮은 자율도, 낮은 지지도 그룹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연령보정 이환률이 2.17배 높았다 (Johnson 등, 1989).
심근경색을 처음으로 경험한 환자군 1,047명과 동일지역의 거주자를 성, 나이, 방문병원 등으로 층화하여 대조군으로 하여 시행한 연구결과, 자신이 평가한 업무자율성은 교차비가 1.3으로 심근경색의 발병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었으며 이는 보정 후에도 유사하였고 자신이 평가한 업무요구도는 교차비가 1.4로 역시 유의하였다 (Theorell 등, 1998).
헤밍웨이와 마르모트(1999)의 직무스트레스관련 10개 연구 중 7개가 카라섹 모형을 적용한 연구인데, 7개 논문 중 5개 연구에서 고긴장군에서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았으며, 상대위험도는 1.5~4.95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연구는 10,30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5.3년 추적결과 업무요구도가 낮을 경우 심혈관계질환의 상대위험도가 1.93이었다. 또한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1) 조사에서 3,575명의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14년 추적 조사한 결과 고긴장군에서 추가적 위험이 없었으나 업무자율성이 낮은 경우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이 1.4배로 나타났다 (Steenland, 1997). 그러나 4,737명을 대상으로 18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관련성이 없다고 나타났다 (Reed 등, 1989). 위 논문 이외에도 몇 개의 전향적 조사에서 역시 고긴장군에서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이 높다고 나타났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것은 1,928명의 스웨덴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6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인데 심혈관계질환이 4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Karasek, 1981).
뇌경색의 발생률과 사망률은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또한 스트레스에 유발된 반응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캐롤은 수축기 혈압이 정신적인 업무에서 직업적 계층과 연관되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다.
직업운전
운전업은 뇌심혈관계질환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직종이다. 벨킥(1994)은 1962년부터 32개 논문 중 28개 논문에서 직업운전 자체가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율을 높인다고 하였다. 발병 기전은 운전시 혈압, 맥막, 부정맥, 심정도, 혈압 코티졸 변화와 심혈관계 위험의 강력한 증가를 유발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 각주 -
1) 뇌혈관 및 심장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에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원인으로 인하여 뇌실질내출혈․뇌경색․고혈압성 뇌증․협심증․해리성 대동맥류․심근경색증이 발병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업무수행 중에 발병되지 아니한 경우로서 그 질병의 유발 또는 악화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이 시간적․의학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1)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로 근로자에게 현저한 생리적인 변화를 초래한 경우
(2)업무상 양․시간․강도․책임 및 작업환경의 변화 등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만성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3)업무수행중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이 발병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원인이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었음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아니한 경우
가목(1)에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라 함은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과중부하를 말한다.
가목(2)에서 "만성적인 과로"라 함은 근로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전 3일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이상 증가되거나 발병전 1주일이내에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작업환경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
2) Physician's guide. Industrial medical council.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STATE OF CALIFORNIA). 3rd ed. 2001
3) Physician's guide. Industrial medical council.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STATE OF CALIFORNIA). 3rd ed. 2001
4) Job-Related Diseases and Occupations Within a Large Workers’ Compensation Data Set. 1985-1986. Bureau of Labor Statistics' Supplementary Data System(SDS)
5)6)7) Flynn v. Industrial Comm’n, Ill. App. 3d 1998 WL 909747 (Ill. App. Dec. 31, 1998)
Waukegan v. Industrial Comm’n, 298 Ill. App. 3d 1086 (1998)
Liberty Mutual Ins. Co. v. IAC (Calabresi) (1946) 73 CA2d 555, 11 CCC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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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엔렌버거 (James N. Ellenberger)
번역 : 김정민 / 노동건강연대 회원
마구잡이식 “개혁(reform)”의 열풍은 “위기(crisis)”에 봉착하지 않은 주(州)의 고용주들에게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대다수의 주(州)에서 산재노동자와의 갈등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실재(實在)하거나 조작된 “위기”를 획책하던 시절, 오하이오에서 벌어진 전투는 노동자에게 눈부신 승리를 안겨 주었다.
오하이오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미국노동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의 의장이었던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의 후임자였던 윌리엄 그린(William Green)은 오하이오에서 주(州)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오하이오(Ohio)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Workmen's Compensation Act)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사업주에게 산업재해보상을 위한 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특별기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AFL의 부의장으로 활동하던 그린은 1921년 덴버(Denver)에서 있었던 정기총회를 통해 오하이오 법의 기조(基調)를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책임보험회사는 산재보험을 오하이오에서 팔 수 없게 되었고,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의 피를 빨아 먹던 책임보험회사를 집에서 몰아낸 일에 대해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상업적인 영리보험회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오하이오의 경영계는 다른 주(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이라는 보험업계 캠페인을 접하면서 더 큰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1993년 “관리의료(managed care)"를 통해 의사들을 통제해왔고, 1995년에 산재보험 관리자(administrator)의 선임에도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오하이오의 주(州)기금은 1997년에 18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94년 25억 달러의 일시차입금은 1997년에 29억 달러의 잉여금(54억 달러의 변동)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 보험료의 천문학적인 증가(평균 50%이상)를 경험했던 주변 주(州)의 고용주들과 달리 오하이오의 보험료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1996년에는 실질적으로 6% 감소하였다.
탐욕스런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Manufacturers Association)와 오하이오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주지사 조지 보이노비치(George Voinovich), 그리고 주(州)의회를 장악했던 공화당원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고용주에게 매년 2억 달러의 지출을 감면시켜줄 법률개정을 추진했다. 물론 작업장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거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개정이 아니라 산재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착취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보상범위와 보상금액을 축소하려했다.
1997년 4월 22일 주(州)의회에서 통과하여 주지사 보이노비치에 의해 승인된 상원의 법안 45호(Senate Bill 45; SB 45)는 다른 주(州)에서 이미 실행되었던 수많은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안은 일부 근로자의 임금손실에 대한 보상기간을 200주에서 26주로 축소하였고, 직업병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오늘날 급격한 증가추세이며 경제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직업성 질환인 대다수의 누적외상성질환들(repetitive motion injuries)이 산재보험에서 제외되었으며, 특히 이러한 질환에 이환되기 쉬운 직장에서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차별적인 법안이었다. 또한 SB 45는 미국의사협회(AMA)의 영구장애평가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고, 이로 인해 영구적인 부분장애로 고통 받던 노동자들의 보상금은 대폭 삭감되었고 산재보상이나 의료급여 지급에 따른 소송의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
1997년 4월 16일, 오하이오 하원이 SB 45를 가결하던 날,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The Cleveland Plain Dealer)지(紙)는 “오늘이 오하이오 경영계의 봉급날(pay day)이다”라고 평했다. 새 법안의 통과와 거의 맞물려 보이노비치가 산재보험사무국(the Bureau of Workers' Compensation)의 책임자로 임명한 제임스 콘라드(James Conrad)는 오하이오 고용주에 대한 보험료 할증률을 15% 낮추었다.
자본의 공세에 대항한 노동자의 연대
야비한 공화당과 경영계의 폭압이 사회적으로 묵인되자 노동자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하이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의장 빌 버가(Bill Burga)와 미국 자동차 항공우주 농업기계 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UAW) 2지역 관리자 워렌 데이빗(Warren Davis)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위원회(Committee to Stop Corporate Attacks on Injured Workers)"를 조직하였고, UAW 2-B지역 및 오하이오 트럭운전자연맹(the Ohio Conference of Teamsters) 지도자 잭 시즈모어(Jack sizemore)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오하이오 법정변호사협회는 기금을 조성했으며, “오하이오의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한 오하이오인 모임"에서 회원들이 활동을 시작했고, 종교인단체도 이를 도왔다. 투쟁기간 내내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연대(coalition)를 이루었다.
1997년 7월 22일로 효력이 발휘될 새 법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문제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오하이오 선거에 국민투표(referendum)가 도입된 지는 거의 60년이 되었다. 국민투표를 위해서 최근 주지사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6%의 서명이 필요했고, 200,774명의 서명은 주(州)에 있는 88개 지역의 반수에 해당하는 44개 지역에 등록된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7월 21일, 장갑자동차를 이용해 88개 모든 지역 유권자 414,934명의 서명이 오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내졌고, 곧바로 새 법안의 효력일은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되기까지 미확정상태로 남게 되었다.
현재 쟁점 2호(Issue 2)로 알려진 국민투표는 노동자들에게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공화당소속 국무장관에 의해 결정된 판단의 어조는 오해하기 쉬운 위험성이 있었다. “찬성(yes)”에 투표하는 것이 새 법안을 통해 산재보험관련 사기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와 동일시 될 수 있었다. 사실 그 법안은 거의 사기행위에 대한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았으며, 산재노동자에 대한 독소조항은 18줄의 설명으로 그치던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경영계는 최대의 활동을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Committee to Keep Ohio Working)"를 조직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77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이 금액은 노동계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모은 금액의 3배에 달했다. 가장 많은 기부를 한 곳은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 상공회의소, 크라이슬러사, 프록터 앤 갬블, 오하이오 자동차판매상협회였으며, 다른 기부자로는 제너럴 모터스, 포드, 오하이오 건강관리회사, 일본 소유의 혼다 자동차회사가 있었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캠페인에 참가하여 2달러를 기부해줄 회원을 모집하는 수준이었다. 지역 조합들은 그들의 모(母)조합에 기부하였으며(특히 건설업계), 철강노동자연맹(the United Steelworkers), 자동차노동자연맹(the United Autoworkers), 미국언론노동자단체(the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식품 및 상업노동자연맹(the 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전미 주ㆍ군ㆍ시 고용인동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호텔 및 식당고용인단체(the Hotel Employees & Restaurant Employees)는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미주리, 뉴멕시코, 펜실베이니아, 텍사스와 같은 다른 주 연맹에서도 오하이오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를 도우려 애썼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는 경영계가 캠페인에 퍼붓는 자금의 반(半)도 마련할 수 없었다.
다른 캠페인으로부터 얄팍한 술책을 빌린 법인 주도의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는 쟁점 2호에 대해 ”찬성"에 투표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의 당나귀 실루엣이 그려진 전단지를 15만 명의 민주당원들에게 보냈으며, 공화당은 산재노동자의 편지를 날조하여 현재 표결에 부쳐진 쟁점 2호, 즉 상원의 법안 45호를 지지하는 신문사들에 각각 보냈다.
술책은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월초 콜럼버스 디스패치(the Columbus Dispatch)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1 이상의 차(差)로 쟁점 2호는 쉽게 통과할거라는 예상이 나왔다.(찬성 56%, 반대 26%, 미정 18%) 주요 신문사와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은 모두 “찬성”투표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에는 전략이 없었다. 주(州) 근처 중앙노동회의(Central Labor Councils)는 공장입구와 작업장에서 전단(傳單)을 돌릴 지원자를 조직할 현장 코디네이터를 임명하려 하였고, 노동조합신문들과 지역 출판물들은 위태로운 쟁점들을 회원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자”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에게 작업장의 모습을 알리고 다른 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요청했다. 뒤이어 텔레비전 캠페인을 통해 산재조합원이 출연하여 산재보험시스템의 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상원의원 존 글렌(John Glenn)이 쟁점 2호에 대해 “반대(No)"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예상 득표의 획득은 못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상세한 계획으로 노동자 가족들이 선거에 참여하여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쟁점 2호와의 투쟁에 있어 노동계 캠페인의 비장의 무기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매년 두 차례 오하이오의 AFL-CIO에서 시행되는 일주일 코스의 산재보험관련 강습회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었다. 강습회는 오하이오 AFL-CIO의 시민권 및 산재보험 분야의 지도자에서 최근 물러난 톰 벨(Tom Bell)에 의해 조직되었고, 지방 노동조합 운동가들에게 산재보험법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직장에서 산재노동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육시켰다. 철강노동자연맹의 39년 회원이기도 했던 벨은 오하이오 AFL-CIO의 의장인 빌 버가에 의해 쟁점 2호에 맞선 노동계 캠페인의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
점점 벌어지던 차이는 점차 기세를 꺾이고 있었다. 2:1의 여론조사 이후 주(州) 전체의 쟁점이 없었던 중간선거에서 노동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고, 산재보험과 같은 난해한 쟁점에 대해 관심을 유도하였다. 지난 수년간 벨 등에 의해 훈련된 일반조합원 운동가들이 대세를 바꿔놓았다.
사업주들이 주(州)의회를 통해 밀어붙이고 보이노비치가 4월에 승인한 법안을 유권자들은 57대(對)43, 14포인트라는 큰 차로 거부하였다. 놀랍게도 31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참고로 지난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35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었다. 노동계에서 주장했던 “반대"의견은 오하이오의 88지역 중 73개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패배를 경험한 거대 기업주들과 옹호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뻔뻔스럽게도 “찬성"를 종용하던 제임스 콘라드 국장은 ”노동계의 캠페인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경영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유권자들이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산재노동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똑똑한 사업주들과 이들의 공화당 협력자들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일반인들은 쟁점 2호에 대한 분쟁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경영계가 법과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산재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훔쳐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빌 버가가 말했듯이 오하이오에서 노동자들은 돈보다 사람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클리블랜드의 로컬 2015(Local 2015)를 통해 자동차 제조 노동자 로드니 보거(Rodney Boger)는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라고 말했고, UAW의 동료였던 제리 세실(Jerry Cecil)은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지(紙)를 통해 노동자가 승리한 이유를 간단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는 어리석지 않다. 그 법안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산재노동자들의 보험급여에 대한 강탈에 대해 유권자들이 “반대"한다는 반향을 불러일으킨지 8일째 되던 날, 보이노비치의 주(州)정부는 사업주에게 할인해주었던 13억 달러의 산재보험료를 노동자에게 되돌린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 금액은 연간 사업주들이 주(州) 보험기금에 지불하는 액수의 75%에 해당했다.
보이노비치의 공식성명에 대해 그 사기성과 이중성을 비난하며 빌 버거는 말했다. “13억 달러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주지사 보이노비치는 수개월 동안 산재보험 사무국이 상당액의 보험료를 할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맥락에서 쟁점 2호의 산재보험급여 삭감을 오하이오 유권자들에게 승인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언제나 노동자들이 지배세력을 이길 수 있겠는가?
1997년 11월 초, 오하이오에서 수천의 일반 조합원들과 비조합 노동자들이 일궈낸 승리는 직장에서 얻은 상해와 질병뿐만이 아니라 사회보장시스템의 거짓된 약속에 고통 받던 수백만 산재노동자들에게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이자 희망의 횃불이 되었다.
현재 다른 여러 주에서 AFL-CIO 조직들이 과거 산재보험시스템의 “개혁”이 가져온 피해를 바로잡고자 투표 발의를 검토하고 있으며, 아칸소(Arkansas) 주에서는 산재노동자의 존엄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투표를 이용하려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공판을 통해 콜로라도 노동계는 법원으로부터 1992년 투표를 하려했으나 불법적으로 저지당한 “안전한 작업장" 추진사업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중요한 판결을 얻어냈다.
이제 다음 전투가 서서히 임박하고 있다. 보험회사와 고용주들이 일리노이나 뉴욕과 같이 커다란 주에서 추가적인 “개혁"을 기대하며 군침을 삼키고 있고, 주지사 조지 파타키(George Pataki)는 산재노동자의 보상금을 과감히 삭감할 수 있는 방법을 뉴욕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있다. 뉴욕 AFL-CIO와 함께 안전보건운동 및 법정(trial bar)의 지지자들이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노동운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동가들을 양성하며 산재노동자들을 돕고 있으며, 안전보건위원회는 입법부 의원들에게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과 예방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정치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대표하는 변호인들은 쟁점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고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대한 위협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으며, 산재노동자단체는 이 전투에서 산재노동자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노동계는 1998년 선거에서 그들이 지지하던 후보가 승리하는 여세를 몰아 오랫동안 미뤄왔던 산재보험급여의 인상을 얻어내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는 1993년 “개혁"의 결과 50억 달러의 부담을 덜었던 고용주 집단이 약속한 것이었다.
이렇듯 산재노동자단체들이 전 지역에 걸쳐 활기를 띄고 있다. 설립된 지 오래된 루이지애나 산재노동자조합(Louisiana Injured Workers Union)같은 단체들은 미시시피,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플로리다,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동종의 단체들을 후원하는 데까지 역량을 확대했으며, 텍사스, 오하이오, 노스다코타, 뉴욕 등의 주 노동기구들도 이러한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이러한 후원에 힘입은 펜실베이니아 AFL-CIO는 펜실베이니아 산재노동자동맹(Pennsylvania Federation of Injured Workers)을 설립했으며 현재 주(州)전역에 12개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해서는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산업재해이후 산재보험시스템에 의해 또다시 모욕과 충격을 받게 되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안내와 후원을 제공하며 노동을 포함한 다른 지원시스템도 제공한다. 또한 이들은 산재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이나 직업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의 개선에 대해 시위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여전히 고용주나 보험업자 단체들은 끊임없이 입법부 의원들과 행정 관료들을 부추겨 산업재해보상프로그램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 일부 주지사들, 주 입법부 의원들, 산재보험위원들이 산재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운 위기에 대한 경고들과 맞서고 있다(경영계 리더들은 곧 비용이 다시 급등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조직, 동료와의 대화ㆍ토론, 과거와 같은 정치적 활동은 승리의 연대는 만들어질 것이며, 오하이오에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산재보험 및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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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2005년, 뜨거웠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성수동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 실태조사’
의외의 뜨거운 반응에 공동실태조사단 모두는 놀랐다.
지역에 실태조사를 한다는 현수막을 건 다음날인 6월 20일부터 여러 사람들한테 전화가 왔었다. “지역에 사는 장애인인데 도시가스요금을 못 내서 가스가 끊겨서 밥을 못해먹고 있는데 해결이 안 되겠냐”는 이야기부터, 동사무소 직원이 어떤 실태조사인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00회사인데 언제 실태조사 하러 오느냐?”는 질문, 그리고 가장 갈급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나오는데 현수막이 보여서 그날 바로 상담 왔던 제화노동자들이었다. 심지어는 전세 계약의 문제로 사무실까지 찾아왔던 사람들도 있었다. 겨우 성수동의 4개 동에 1개씩의 현수막을 걸었을 뿐인데... 어쨌든 반응이 없는 것 보다는 좋았다.
먼저 성수동에 대한 사전답사부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시작하기 3주전에 성수동 4개 동의 공단밀집지역을 답사했다. 성수1가1동의 뚝방길 옆은 악세사리를 만드는 금속사업장이 몰려있는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공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주택인지 공장인지 잘 구분이 안가지만, 근처에 가보면 공장이라는 것을 알겠다. 대부분 금속 똥(금속을 깍을 때 나오는 찌꺼기?)들이 주변에 있고, 찌든 기름때와 어두컴컴한 분위기, 시끄러운 쇠 깍는 소리가 들린다. 공장들은 대부분 경기를 타서인지 일이 없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답사 간 때가 비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단병호의원실과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아서 여기처럼 작고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실태와 복지 요구도를 조사하여 이후에 사회적으로 요구할 것이니까 다음에 실태조사 나오면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시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고 커피까지 타주셨다. 대부분은 부부, 혹은 사장 혼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임금을 주는 아주머니 한 분 정도 두고 사장과 같이 일하는 곳이었다.
성수2가3동은 1가1동쪽보다는 규모가 좀 큰 곳들이 많다. 일하는 사람들이 5인 안팎에서 20인 사이. 그래봤자 20인 넘는 곳이 많지 않지만. 인쇄․금속․제화 사업장들이 서로 얽혀서 혼재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아파트형 공장들이 많다는 점이다. 안으로 들어갈려 했더니 경비아저씨가 막아선다. 화장실 출입도 쉽지 않았다. 현장 방문하여 설문조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현장방문을 통한 설문조사
지난 3월25일 지역의 9개 단체가 모여서 ‘영세사업장이 밀집해있는 성수동 지역에서 실태조사를 하자’고 결의하고 ‘영세노동자 노동 복지를 위한 공동실태조사단’을 꾸렸다. 3달여 동안 자료를 조사하고, 수차례의 모임과 회의를 통해 설문지를 만들고, 실태조사를 도와줄 봉사자(조사원)를 조직하고, 각 분야별 전문 자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도 듣고, 두 차례의 조사원교육도 가졌다. 샘플조사를 통해 최종 설문지 수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설문을 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세우기도 했다. 우선은 9개 단체를 각 동별로 팀을 나누고, 우리의 목표치인 노동자 500부, 사업주50부, 실업자50부를 나누어서 받기로 했다.
조사를 도와주는 조사원들과 함께 조사 설문지를 갖고 현장을 갔다. 현장의 분위기는 냉담하기도 했다. 사장이 “우리 바빠요, 다음에 오세요” 라고 하면 직원들도 더 이상 해준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사무실(사장한테)에 가보세요”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해주세요. 내일 찾으러올게요”라고 해서 놓고 가면 다음날 해주기로 했지만 며칠을 가야 해주는 경우도 있고, 또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곳은 이런 취지에 동감하며 “자격이 되겠냐?”고 물어 보며 음료수까지 주면서 설문조사에 응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좋은 방법은 지역의 연고자를 찾아 방문하여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함께 설문조사를 받는 것이다.
하루에 3부까지 하면 많이 하는 것이다. 날은 더워서 땀이 그냥 떨어진다, 장마철 대비해 기념품으로 “우산 드려요”라고 해도 쉽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부당했을 때 다시 다른 현장에 가서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방문 선전전’하는 것이랑은 또 다른 것 같다. 한부를 작성하는 데 최소 10분 이상 15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고 물어오면 “그렇기 때문에 설문조사하고 사회적으로 요구 할 거예요” 하고 강조 하지만 ‘정말 잘 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성수동 거리의 실태조사 캠페인
몇 날 현장방문 실태조사하고 조사원들이 모여서 서로의견을 나누었다. 지역에 알릴 겸 거리에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반응을 보고 다시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6월 28일 성수역 근처 기업은행 앞에서 첫 실태조사 캠패인을 벌였다. 크게 천막을 치고, 가판대를 놓고, 냉커피도 타 드리고, 노동 상담이 필요한 분에게는 노동 상담도 하였다.
야~! 점심때가 되자 식사를 하러 나온 주변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오던지! 또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교대일도 많아서 퇴근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우산 주니까. 아님 냉커피 한잔 마시려고 왔겠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왔든, 설문을 응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걸리느냐?”고 하면서도 한 문항 한 문항 답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펼치곤 하였다. 이날 우리가 받은 부수는 노동자 52부, 실업자 7부, 사업주 7부로 총 66부를 받았다. 현장방문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3~5부인데 하루에 이만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현장방문해서 노동자들에게 설문 받는 것은 어려운데 거리에서 하니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와서 설문조사에 참여할 수 있고, 또 1:1로 면접 조사를 하니 우리의 처음 조사방법에서 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라고 판단하여 모두들 “또 해야지!” 라고 의견을 모았다.
3주에 걸쳐 영세사업장이 몰려있는 지역을 찾아서 돌며 6차례의 거리 캠패인을 하였고, 7월 23일 실태조사를 마감하였다. 이렇게 받은 설문은 노동자 478부, 실업자 58부, 사업주 72부로 총 608부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설문조사를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제화 일을 하시는 한 여성분은 남편의 실직 상태가 오래 되어서 결국은 본인이 가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떤 중년의 아저씨는 나에게 2000원을 빌려 달라하였다. 이유인 즉, 일자리를 구하면 그 날 그 날 일당으로 잠자리를 해결하는데, 요 며칠 비가 와서 일을 못했다면서 찜질방에서 하루 자야하는데 2000원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소개해줄까요?”라고 물었지만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오히려 화를 내셨다. 어떤 분은 인쇄 일을 오래했던 기술자인데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였고, 일자리를 계속 못 구해서 결국은 고물을 주우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다른 조사원들도 나처럼 다양한 인상에 남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하다보니 대부분 장시간 노동과 직장에서는 법정복리후생항목을 대부분 받을 수 없고, 공공복지에서는 거의 받아 본적이 없고 정보도 모르고 있다. 일자리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버텨야 하고, 아픈 몸은 웬만큼 견딜만하니 병원갈 일 없고, ‘이 정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들... 요즘과 같이 웰빙을 말하는 시대에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
2005년 10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 드디어 여름 내 흘렸던 땀방울의 결실이 발표되었다.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두툼한 자료집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는 분석에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여건, 노동안전, 노동복지, 고용안정 등에 대한 조사 결과와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42만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104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 연월차는 80% 정도가 받지 못했으며, 토요일 전일 근무를 하는 경우는 33%에 달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51.7시간, 60% 정도의 노동자들이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든 경우 산재보험 신청율은 23.3%에 불과하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5명 중 1명이 산재보험을 잘 몰라서 산재신청을 안했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들을 요구하였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 법정수준의 노동조건 개선, 영세사업체에서 기업복지의 한계를 사회복지로 보전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영세사업장 안전보건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지역에 일반보건의료와 산업보건서비스를 총괄할 수 있는 공공적 지역보건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또한 성수동과 같은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노동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후 공동실태조사단은 성수동에서 지역보고대회를 진행하고 평가의 자리를 갖은 다음 해산하였다. 애초 ‘실태조사’라는 목표를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실태조사는 향후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요구의 출발점일 뿐이다. 멈춤 없이 이러한 노력을 이어나가는 것이 실태조사에 응해주신 608명의 사람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향후 사회적 요구에 함께 한 9개 단체가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함께 일을 해보니 성수동은 정말 모범이 되는 지역이다. 서로가 결의하고 맡은 역할에 대해 책임감 있고 기동력 있게 움직이는 것은 쉽지가 않는 일임에도 모두 헌신적으로 해주어서 이렇게 실태조사가 중간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 성수동을 뜨겁게 달궜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기가 2006년에는 커다란 함성으로 메아리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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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건강하지 못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노동건강연대, 아시아의 친구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은 이주노동자 직업병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실태와 더불어 직업병에 대한 지식, 작업장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기초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2005년 1월, 화성에 위치한 모니터부품 공장에서 일한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 노말 헥산 중독에 의해 다발성 신경마비(앉은뱅이 병) 증세를 호소하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그들의 작업장 실태가 고스란히 수면위로 올라왔다.
당시 노동부에서도 급히 조사에 착수하여 산재를 승인해 주고 사업주를 처벌하며 귀국한 3명의 노동자 또한 재입국시켜 치료를 해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보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병들은 몇 년 후에 나타나는 병들로 미루어보자면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말-헥산 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태국인 여성노동자들.
한국의 이주노동자 유입의 역사는 이미 15년을 넘어섰고 90년대 말,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입국을 하였고 현재는 33만 명(2005년 8월 통계)을 넘어서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오고 있으며 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흔히 3D업종이라고 불리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던 시기인 2000년도에는 1/3이 넘는 외국인 연수생들이 이탈하고 미등록체류자의 수는 날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탈 연수생, 미등록 체류자를 체포하여 강제출국 시키겠다는 대책 이상은 마련하지 않고 있었고, 이러는 사이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강제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빈발하는 산재사고, 송출업체에 의한 중간착취, 여권 압류, 공장 밖 출입통제 및 폭행 등 기본적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동안의 인권단체와 상담소 등의 꾸준한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개선노력으로 사회 전반에 그 문제의식이 부각되고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그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고 본다.
매해 이주노동자의 실태 등 개선방향에 관한 여러 실태조사들이 진행되었고 크게 성과를 본 자료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작업장 내 안전수칙 준수 등의 작업환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들에 대한 경각심은 적었다.
사실, 이주노동자 관련단체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상담을 하면서도 실무자들의 직업병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거니와 직업병이라 해도 당시 사건에 대한 처리, 산재 관련한 안내가 전부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안된 이번 직업병 실태조사는 안양과 파주 지역에서 총 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진행되었다. 총 1백40여 건의 조사를 분석한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안전수칙, 직업병에 대한 인식 등이 현저히 낮다는 평가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건강연대에서 진행하였던 성수동 직업병 실태조사와 비슷한 구조를 보였으며, 이와 비교해 볼 때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3D제조업, 영세업체에서 근무하는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석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점은 안양은 주변이 공단지역이었고 파주는 영세사업장이 많아 나타나는 질병이라든가 인식 자체에 다른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고 회사에서의 사전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사업주들조차도 직업병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경인지역 이주노동자관련단체 상담실무자에 대한 노동안전보건교육
이러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경인지역 이주노동자 관련단체 상담실무자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실제적으로 이주노동자들과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작업환경, 직업병의 발생경로, 작업장 내 지켜져야 할 안전수칙 등에 대한 교육을 통한 정보공유의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처리절차도 중요하지만,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를 사고의 요인을 파악하고 예방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의 자리를 통해 상담실무자들은 그동안 각 지역 상담소와 단체에서 발생한 사고와 상담사례들을 나누면서 열악하고 다양한 위험요인을 안고 있는 작업장 내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교육의 내용은 각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 있는 직업병,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고, 함께 고민하고 인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거 같아 뿌듯함을 가지 수 있었다. 앞으로 다양한 기회가 생겨 좀 더 여러 분야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등이 이루어져서 다양한 부분에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개선되어 졌으면 하는 바람과 좀 더 나은, 좀 더 인간다운 이주노동자 정책이 수립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가 이주노동자이며 우리는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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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경동빌딩 옥상에 자리 잡은 것은?
< 노동건강연대의 주소 : 서울시 성동구....경동빌딩 2층 >
사진속의 경동빌딩 옥상
광화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인권전.
57회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여 ‘오늘의 인권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러 작가들의 사진과 그림들을 스윽 감상하고 있던 차,
내 눈에 불현듯 들어오는 제목, ‘경동빌딩 옥상’
‘아니, 우리건물이랑 이름이 같네?’
호기심에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속의 경동빌딩은 전원에 사는 것이 염원이었던 한 노부부가
자신이 사는 건물의 옥상을 마당으로 가꾸어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의 시작은 회색 시멘트바닥에서 시작하였다.
부부는 여기에 빨간 고무 다라이를 놓고 흙으로 채웠다.
흙에서는 곧 여러 가지 푸른 것들이 자라난다.
회색투성이 옥상은 어느새 초여름의 햇빛을 받아 파래지고
할머니의 발걸음이 분주해질 때마다
손주와 이웃들의 움직임도 늘어간다.
화단은 점점 무성해져서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고
늘어선 빨래들 사이로 어느 날 차양막이 쳐지고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경동빌딩 옥상’ (박용석 / 새사회연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염원인 부부가 옥상을 정원으로 꾸몄다.
“경동빌딩에 사는 부부는 마당이 없다.
그래서 옥상을 마당으로 개발한다.
커다란 밭을 만들고 채소와 화초를 가꾸며 이웃을 모아 잔치를 벌인다.
옥상은 마당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그 구조를 변해간다.
이 다큐멘터리 사진은 전원에 살기를 염원했던 부부가
옥상을 작은 밭으로 가꾸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제 옥상은 부부의 방이며 사적인 마당이며 또한 환경이 되었다.”
작가의 메모는 옥상에 담긴 부부의 생활을 간단히 표현하고 있었다.
또 다른 경동빌딩 옥상
한편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경동빌딩.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건물인 이 경동빌딩의 옥상의 풍경.
에폭시로 바닥 방수처리를 하고 한쪽에 물탱크가 놓여있는 것이
흔히 보는 건물 옥상의 풍경이다. 옥상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성수동 일대의 건물 옥상들 역시 비슷하다.
또 다른 경동빌딩의 옥상.
평범한 옥상이다. 시멘트 바닥과 물탱크.
수지가 개발되기 시작할 때 한 아파트 건설회사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하였다.
아파트 동중의 하나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작은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계획은 건설회사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고 아파트 한 동을 포기함으로써 발생되는 손실을 생각하면 현실성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분양이 시작되자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졌다.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인근의 아파트 세대의 분양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가가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아파트 한 동에 해당하는 손실은 공원을 둘러싼 세대들의 분양가에서 모두 되찾고 오히려 아파트의 이미지 상승에 필요한 광고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몇 년 되지 않은 일이지만, 이젠 아파트를 지을 때 중앙에 공원과 광장을 두는 설계는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전시회 사진속의 부부가 가꾸던 옥상은 사람이 도시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주변을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식목일이 아니라도 봄만 되면 서울외곽의 원예하우스들은 북새통을 이룬다.
각종 허브에서부터 고추, 깻잎 등의 모종, 철쭉 등의 꽃나무와 사시사철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관엽식물 등까지.
여름이면 다 말라 죽게 만들면서도 해마다 봄만 되면 화분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설레는 나도 있다.
성수동 경동빌딩의 옥상에서 바라본 인근의 풍경.
풍경이라고 할 것도 없이 건물 투성이의 동네모습이다
결국 손 닿는 곳, 눈길 닿는 곳에 푸릇푸릇한 것을 놓고 키우던가 혹은 구경만이라도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기본으로 갖고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염원’이라는 부부는 그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옥상을 가꾸고 있고, 옥상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방 한쪽에 화분이라도 놓고 산다.
그것도 아닌 또 다른 경동빌딩은, 그리고 이 동네 성수동 일대는 그런 노력도 제지된 채로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인권전에서 ‘경동빌딩의 옥상’이 내 눈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로수하나 없이 담장 넘어 내려오는 개나리 잎사귀하나 구경하기 힘든 회색투성이의 성수동에서 살다가 ‘경동빌딩옥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저렇게 살면 좋겠다, 주변에 저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더 숨통이 틔게 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었다.
인간이 녹색의 자연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이 결여되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 그것도 인권으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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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농촌의 산업구조와 농부증
농민의 노동재해, 농부증
도시생활과 제조공업에 익숙한 우리들은 농촌생활에 환상을 갖기 쉽고, 농촌생활에 환상을 갖는 이들에게는 농촌은 건강한 사회로 보인다. 맑은 공기와 푸르른 대자연의 품에서 곡식과 과실을 경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우 건강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농촌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유쾌하지 않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농부증’이라는 말이 있다. 농부증이란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농민들에게 주로 많이 발생하는 정신적․신체적 장애증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농업노동을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건강문제는 여러 가지이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반복적인 동작을 할 때 발생하는 근골격계질환, 농기계에 의한 사고, 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농약중독,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에 오염된 토양과 용수로 인한 피부질환, 고온 다습한 밀폐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비닐하우스증후군,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면서 얻게 되는 일사병 등.
실제로 우리나라 농민들의 건강 상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2004년 6월부터 9월까지 농민약국 16명의 약사들이 전라남도 나주, 해남, 화순, 경상북도 상주의 농민 3,132명을 대상으로 대표적인 농부증 증상 8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42%가 농부증, 42.1%가 농부증 의심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4년 12월 9일에 발표된 농림부의 ‘농림어업인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림어업인의 42.7%가 농부증 양성반응을 보였고 34.0%는 농부증으로 의심되었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농업노동은 아마 농민들의 몸에 무수한 질병을 주었을 것이다. 한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몸이 골병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농민들이 농업노동으로부터 얻게 되는 건강문제는 농업의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농업의 자본주의로의 편입 과정이 만들어낸 기계화․화학화․시설화 등은 농민들이 겪는 건강문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벼로 녹색혁명은 성공했지만....
1960~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녹색혁명’은 급격한 인구증가를 지탱하기 위해 이루어진 농업의 산업구조 개편이었다. 농업생산의 기계화,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다수확 품종의 개발과 재배, 상업적 시설농업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녹색혁명은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가 간의 불균형”이라는 명제가 예언했던 인류의 종말적 기아상태를 일정정도 해소했다. 우리나라 또한 통일벼와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녹색혁명을 성공시켰다. 농업생산량은 극적으로 늘어났고 농민들은 한때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사의 유행과 함께 부유한 농촌을 꿈꿨다.
그러나 녹색혁명의 결과는 농민들의 소박한 희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첫째, 소위 현대적 농업경영으로 전환은 농민들에게 지속적인 농자재의 수요를 유발시켰다. 농민들은 경작을 계속하기 위해서 종자,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 등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생산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은 제조업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 저곡가정책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소규모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한 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둘째, 가축에서 나오는 퇴비를 비료로 논밭을 경작하고 그 경작물을 다시 가축의 먹이로 사용하는 전통적 농업의 물질교환이 사라지면서, 농민들은 농업 원자재를 시장교환으로 충당해야 했다. 그런데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원자재의 생산과 판매는 세계 농업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초국적 농업자본에 의해서 지배된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초국적 농업자본에 예속되었다. 셋째, 식량증산을 위해 주식 곡물인 쌀의 재배가 우선시되어 단작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토종 종자가 사라지고 오히려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말았다.
농촌경제의 모순이 농민 건강의 위협이 되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언제나 농촌경제의 보호와 식량주권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농민들이 경험했던 사실은 수출 공업화 전략의 보조수단으로서 농업 구조조정과 농촌경제의 시장화였다. 즉, 한국의 농업을 자본주의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발현된 모순이 농촌경제를 붕괴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와 같은 근현대 한국 농업의 역사는 농촌경제를 역사상 가장 반(反)생태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가장 친환경적일 것만 같은 농촌사회의 경제구조를 반생태적이라고 규정하다니?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반생태적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의 성격을 우리 농촌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녹색혁명이 추구했던 기계화,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다수확 품종의 개발과 재배는 자연과 인간노동의 유기적인 물질순환구조를 파괴했고 수많은 환경문제를 유발시켰으며 생물다양성을 파괴하였다.
농민의 건강문제는 녹색혁명의 과정에서 농촌경제에 부여된 반생태적 성격이 표현되는 모습 중 하나이다. 농업기계화는 농작업 사고를 증가시키고 있고, 화학농업화는 중금속과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을 유발하고 있다. 시설재배의 확산은 비닐하우스증후군이라는 독특한 직업병을 만들어냈고, 가축업의 공장화는 동물로부터 인간으로의 질병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농업의 기계화와 농기계 사고
녹색혁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노동으로 이루어졌던 농작업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고, 우리나라에서 또한 농업의 기계화가 추진되었다. 1961년 동력경운기가 보급된 것을 시작으로 1982년부터는 5년 단위의 농업기기계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5차 5개년(2002~2006년) 계획이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농업기계화 정책의 일관된 초점은 농기계의 보급을 확대함으로써 기계화율을 높이는 데에 있다. 정부는 소규모 자영농이 대다수인 농민들에게 값비싼 농기계를 보급하기 위해 융자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하였고, 도시로의 노동력 유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했던 농민들은 기계화를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로 현재 농촌에서 사용되고 있는 농기계는 어림잡아도 약 35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보급 확대만을 우선시했던 농업의 기계화는 현재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기계의 고장수리를 위해 필요한 부품과 인력이 부족하여 농촌에서 사용되는 농기계들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농촌의 노동력은 고령자와 여성이 대부분이며 주로 소규모 경작이 이루어짐에도 농기계 경량화, 안전성, 조작 편의성, 생체반영 디자인 등의 개량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은 빈번한 농기계 사고로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농업공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동형 농기계인 경운기, 콤바인, 트렉터의 농작업사고율은 연간 100대당 3회를 초과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혁명의 추진 과정에서 기계화가 필요했지만, 수출 공업화의 보조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린 농업에서 기계화란 애초부터 문제투성이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농기계 사고 빈발과 많은 농민의 사망 또는 부상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기계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사조차 없는 것이 2005년 한국 농업의 현실이다.
화학농업과 중독
우리나라 농업의 경우에는 특히 화학농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경작지 면적의 한계와 농업노동력 감소를 극복하고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학비료 사용량은 1990년까지 연평균 3.1% 증가하였고, 1995년 사용량은 978천 톤으로 ha당 444Kg이 사용되었다. 농약 사용량은 1970년대부터 연평균 10.2%의 증가를 보여 왔고, 1994년 사용량은 26,282톤으로 ha당 13.0kg이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사용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의 절대량은 높다.
이러한 화학농업화의 결과는 주로 농작물과 소비자에 대한 피해를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 사용은 농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고,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을 낮추며, 중금속이 농축된 상태로 만드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농약의 잔류량이 많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농축된 농작물을 식품으로 섭취하는 소비자의 건강에 대한 우려 또한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때문에 ‘웰빙’이라는 모호한 뜻의 선전문구가 유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찾고 있다.
그러나 화학농업화의 피해는 생산물과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부각되고 있을 뿐 정작 그것이 생산자에게 일으키는 문제는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그것을 사용하는 농민에게 가장 먼저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점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화학농업화는 농민의 건강에 전례 없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농민들의 농약중독이다. 1998년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단위면적당 세계 2위의 농약사용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농민약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농약 살포시 한 가지 이상의 자각증상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경우가 전체의 67.5%나 되었다. 또한 2004년 농림부는 매년 7%의 농민이 농약중독을 경험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단기적인 중독 현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전체 투하량 중 30~50%가 유실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농촌지역의 수질오염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한 사용으로 토양의 산성화와 이화학적 성질의 악화 등 유해물질의 오염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화학농업화로 오염된 물과 토지에 밀착하여 살아가는 농민들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겠는가?
시설재배의 확대와 비닐하우스증후군
우리나라의 농촌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비닐하우스이다. 식량 증산을 위해 주곡물인 쌀 단작화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던 비닐하우스. 우리 농촌에서 비닐하우스는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인공적 시설물을 이용하여 채소, 과일, 원예 등 상품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재배의 대표적 방식이다. 쌀 재배 면적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시설재배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시설채소 재배만 보더라도 1985년 1.7만ha에서 1998년 4.5만ha로 13년간 164.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설재배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고부가가치의 생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정부의 농업정책은 시설재배를 장려하였고, 시설재배를 통해서 농민들은 농작물의 상품화를 향해 진전할 수 있었다. 결국 비닐하우스로 대표되는 시설재배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적응하고 있는 농촌경제의 상징인 것이다.
시설재배 비용 때문에 엄청난 부채를 얻게 된 농민들의 살림살이와 온실 유지를 위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변화되는 농업의 생태적 모순은 차치하고라도, 비닐하우스는 농민들이 이전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건강 문제를 발생시켰다. 비닐하우스는 겨울철 농한기를 없애 농민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켰으며, 농민들은 좁은 실내에서 불편한 동작으로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고온다습하며 바깥과 온도차가 심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게 될 경우 인체에 생리적 모순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축의 질병과 농민의 질병
소, 돼지, 닭, 오리 등등... 가축은 인간에게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사육의 형태는 완전히 변형되었다. 근대화 이전 가축은 식량일 뿐만 아니라 농사일의 주요한 노동수단이자 비료의 공급자였지만, 현재 가축은 고기를 얻기 위한 용도로 축소되고 있다. 그리고 소위 현대화된 사육시설이란 좁은 우리 속에 많은 수의 가축을 몰아넣어 운동량을 최소화하고 인공사료를 이용하여 무게를 최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불결하고 좁은 우리 속에서 먹고 자는 것만을 강요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양계장을 떠올려보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것처럼 고기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가축들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집단 사육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가축들의 몸에 대단히 불건강한 상태를 강요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한된 운동량과 인공사료는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각종 질병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가축들의 질병은 인간에게 끔찍한 질병을 전이시키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고, 그 1차적 피해자는 가축들에 가장 가까이 있는 농민들이다. WTO가 인류의 대재난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는 ‘조류독감’을 떠올려보자. 집단사육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닭과 오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였고, 그 다음 차례로 가금류를 사육하던 농민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위험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농촌경제는 녹색혁명과 함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에 급속히 편입되면서 농업은 기계화․화학화․시설화 되었다. 그 결과는 농촌의 생태적 모순 심화와 농민의 건강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농촌의 생태적 위험과 농민의 건강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닌 듯하다. 건강한 노동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농민들과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다가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관련하여 최근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고 있는 말은 ‘제2의 녹색혁명’이다. 이것은 BT(Biotechnology)를 활용하는 농업으로 식량생산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두 번째의 녹색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소위 ‘바이오농업’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농업의 핵심기술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 유전자변형생물체)이다. 이것은 농작물의 유기세포 기능을 이해․변형․조작하려는 목적을 가진 기술을 말한다. 세계 농업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들과 초국적 농화학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GMO 농산물은 이미 상업화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밥상에도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GMO는 아직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GMO가 순환기장애물질이나 독성물질을 유발시킨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유적자적 오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GMO가 일단 자연 상태에 노출되면 인위적 조작 차원을 벗어나 자연 질서의 통제에 들어갈 것이며, 이 경우 농작물의 유전자 변형은 생태계로 전이되고 슈퍼해충이 탄생하거나 바이러스의 변형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농촌의 생태계와 농민들의 건강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의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한 농촌을 위한 고민을 시작하자
이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고 자신은 빚더미를 떠안은 채 죽어가는 늙은 농부의 이야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후 빈곤국가에서 세계 12위권의 경제국으로 압축적 고도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농촌경제는 붕괴되었고 농민들의 삶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농업포기정책과 농업시장개방으로 농민들이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벼랑 끝에 내몰려 저항하는 농민을 공권력으로 무참히 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농촌은 초국적 농업자본에 종속되고 농민의 삶은 더욱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빠져들 위험이 높다.
그동안 우리는 농민의 삶에 너무도 무관심했다. 농민의 건강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태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농민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농민들이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농촌의 경제가 생태적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관심과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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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진실과 욕망
0. 진실게임
유재석이 진행하는 ‘진실게임’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를 섞어놓고 둘을 구분해서 찾아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출연자들 대부분은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알쏭달쏭 진실게임. 현실과 영화와 책을 통과하면서 우리도 한 번 시작해볼까?
1.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란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과 PD수첩의 후속 방송으로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줄기세포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이 각자 기자회견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였고, 급기야 서울대에서 조사위가 꾸려져 중간발표를 가졌고, 최종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사 결과야 더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몇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첫째, 누군가가 전 국민 아니 전 세계를 상대로 초대형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둘째, 황우석 교수가 그 거짓말에 상당 부분 가담되어 있다는 사실. 셋째,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체세포줄기세포에 대한 원천기술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과학자로서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사실.
2. 라이어
이번 황우석 사태를 보면서 주진모, 공형진 주연의 2004년 작 ‘라이어’라는 코믹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이중생활을 해오던 택시 운전사 정만철(주진모 역)은, 하나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이런 거짓말들로 위기를 모면하는가 했으나 거짓말들은 자꾸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예전에 영화를 볼 때는 ‘뭐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 이게 영화니까 가능하지 현실에서 가능하겠어?’ 하면서 웃어 넘겼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지금까지 어린 꼬마 아이부터 연세 드신 어르신까지 모두 존경해왔던 황우석 교수님이 손수 재연해 보이셨으니, 이 코믹한 상황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3. 방각본 살인사건
김탁환이 조선 정조 시대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의 북학파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꿈과 열정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연쇄살인을 당한다. 이 사건을 파헤치던 도중 한 명의 소설가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연쇄살인 사건은 계속되고, 조사가 계속되면서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배후는 끝내 밝히지 못한다. 정치세력들 간의 이해관계와 정국의 안정이라는 이유로 진실은 어둠 속으로 묻힌다. 이런 상황은 우리 역사와 현실 속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소위 ‘깃털’이라는 특수용어(?)는 이런 상황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최근에도 X파일과 관련해 삼성 관련 몸통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의혹을 폭로한 기자만 애매하게 다치게 생겼는데, 그것 참~
4. 지구를 지켜라
백윤식을 처음으로 배우라고 불리게 만들었던 장준환 감독, 신하균, 백윤식 주연의 2003년도 영화. 개봉당시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처음에 병구(신하균 역)가 강사장(백윤식 역)을 안드로메다 외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관객들은 병구의 망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 강사장이 외계인이고, 영화 속 사건들은 외계인들이 인간을 선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진실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런 진실 속에서 병구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 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진실에만 얽매여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5. 혈의 누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의 2005년도 영화. 피 튀기는 장면이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근래에 보기 드문 치밀한 구성의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살인사건을 파헤쳐 가면서 진실을 밝혀나가는 작품으로, 진실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들을 여과 없이 잘 드러내준다. 특히 섬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광기에 사로잡히는지, 그 집단광기 속에서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니체라는 철학자는 ‘진리(진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진리라고 믿어지는(혹은 믿고 싶어지는) 것을 누가, 왜 추구하느냐 하는 진리의지 혹은 권력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단광기는 이런 진리의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집단광기는 영화 밖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6. 프랑스와 호주의 인종 폭동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에 골똘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집단광기에 대한 것이다. 집단광기에 대한 좋은 참고서는 독일의 나치즘이 벌인 유태인 학살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저런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게 된 것일까? 국가에 의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편향된 정보가 주어지고, 사람들이 세뇌를 당해서 그랬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을 무엇으로 설명이 되는가? 최근 프랑스와 호주의 소요 사태는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랑스는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호주는 사회의 주류 세력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두 사태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인종주의적 차별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나치즘도 마찬가지로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잠재된 무의식 때문에, 군국주의라는 기름을 부었을 때 활활 타올랐던 것은 아닐까?
7. 우리나라의 열정 혹은 보수적 애국주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뜨겁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유래가 없는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2002년 월드컵 때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넘쳐흘렀다. 대선 때 국민들의 뜨거운 참여로 노무현의 참여 정부가 탄생했을 때, 옆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부러워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국민들의 뜨거움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꿋꿋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그 뜨거움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너무 뜨거우면 자칫 비이성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간격은 백지 한 장 차이 밖에 안 될 수 있다.
8. 존 말코비치 되기
열정이 지나쳐서 비이성으로 흐를 때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너는 이쪽 편이냐 아니면 저쪽 편이냐? 편 가르기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힘이 약한 저쪽 편에 서게 되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선택하기를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획일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참으로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00년 작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면,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가 자기 머리 속으로 들어가면서 세상이 온통 존 말코비치로만 무한 복제되는 상황이 나온다. 남자건 여자건 모든 사람들이 존 말코비치이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모두 말코비치 밖에 없고, 아무리 매력적인 배우라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가장 못 견뎌하는 것은 존 말코비치 자신이다. 영화 밖에 있는 우리들은 그런 획일성을 참을 수 있겠는가?
9. 다시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란
황우석을 둘러싸고서도 많은 논란이 오갔다. PD 수첩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은 땅 속에 묻힐 뻔했다. 뭔가 수상쩍은 것이 있는데도, 내버려두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묻어두고 싶어 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사는 것은 퍽퍽하고, 내 꿈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었던 영웅이 그런 식으로 내팽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보다는 욕망의 힘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욕망이 진실을 압도할 때는 조심을 해야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욕망에만 위태롭게 의존하다가,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허탈감과 분노만이 뒤덮을 수도 있으니까.
0. 진실 게임 속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하다. 그렇지만, 진실 게임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자. 이번 논란은 진실 너머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한 국가뿐 아니라 세계를 들썩거릴 정도로 수업료가 비싸니, 열심히 공부하고 반성하고 바꿔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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