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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05년 가을호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갈등과 대립을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근로복지공단
수많은 정부조직 및 정부산하기관들 중에서 올해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곳을 꼽는다면 단연 근로복지공단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 접할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모습은 그 이름에 걸 맞는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니었으며, 항상 민원인들과 갈등을 야기하고 문제를 일으켜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4년도 말부터 연달아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 ‘요양업무 처리규정 개악안’ 등을 지역지사에 하달함으로써, 가뜩이나 높았던 피재노동자들과의 ‘담’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또한 2005년 6월에는 ‘과격집단민원 대응요령’이라는 이상한 지침을 마련하여, 피재노동자들을 예비범죄자 취급하고 실제로 고소·고발·가처분을 남발함으로써, 피재노동자들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 뒤이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요양신청불승인, 서울북부지사 직원의 폭언사건, 서울대병원 몰카 사건 등에서 보여준 근로복지공단의 모습은 ‘근로복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 잇따라 터지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비리 사건들은 요양승인을 위해 100일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단식까지 해야 하는 피재노동자들에게 더욱 심한 분노와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결국,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피재노동자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는다는 설립 취지와 전혀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 또한 공공행정기관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과 예의조차 어기고 있어서 일반 공공행정기관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분노와 고통을 민원인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오른다. 근로복지공단은 왜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근로복지공단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인가? 또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이라는 화두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피재노동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산재보험제도의 보험사업자이자 현재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야기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도 현재 자신들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으며, 어쩌면 그 해결 방안까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로 인하여 근로복지공단은 동일한 문제점들을 계속 양산해내고 있으며,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즉,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점들이 근로복지공단이라는 행정시스템을 통하여 현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과 개혁의 방향을 이야기하려면, 근로복지공단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① 보험재정에 대한 그릇된 관점
- 보험재원은 징수된 보험료로만 충당되어야 한다?
현행 산재보험제도하에서, 산재보험기금은 근로복지공단이 징수하는 보험료로 충당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은 노동부로부터 징수권을 넘겨받아 행사하고 있다. 나아가, 근로복지공단은 이렇게 확보된 보험 재원을 기반으로 하여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피재노동자에 대한 보상권(승인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정시스템은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들이 대부분 여기서 기인하고 있다.
보험사업자인 근로복지공단이 보험료를 징수하여 이를 주된 보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보험 재원이 징수된 보험료에 의해서만 충당되어야 한다는 정부 및 근로복지공단의 관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와 같은 관점 때문에, 정부는 보험재정 적자가 발생한 2004년과 2005년에 대하여 이를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재정운영으로 단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은 그 원인을 피재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해 버리면서 모든 원인을 피재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현재의 보험 재정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른 권한인 보상권을 활용하여 보험급여의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으며, 피재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각종 방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2004년도 하반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제반 업무처리 지침과 지침 개악안, 그리고 보험급여 요건에 있어서의 후퇴와 보수화 등은 그 결과물들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전까지 인정되던 업무상 재해가 하루아침에 업무외 재해로 둔갑해 버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민원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지침과 지침에 근거한 폭력적 대응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② 과도한 기능의 집중
- 근로복지공단에만 모든 권한과 기능을 집중시켜야 한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보험가입자 및 수급권자에 관한 기록의 관리·유지, 산재보험료, 고용보험료 기타 징수금의 징수, 보험급여에 관한 조사와 승인 업무, 보험시설의 설치와 운영, 피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상담사업, 노동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 심사(행정심판)에 대한 결정” 등으로서, 산재보험제도와 관련한 모든 권한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인원은 전국 지역본부, 지사를 통틀어서 3,600여명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계약직, 일용직, 어린이집 직원 등 비정규직 1,100여명을 포함한 숫자이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매우 적은 인원을 가지고 산재보험제도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행정서비스의 ‘전문성 결여’와 ‘서비스 질 하락’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재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근로복지공단의 담당 업무들은 그 내용상 경중을 따지기 힘들며, 피재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가 반드시 필요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관에서 그것도 매우 적은 인원들이 이를 담당하다 보니, 모든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부실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사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징수 업무’의 경우에도 징수율이 80%에 불과하며, ‘보상 업무’의 경우에도 잘못된 법률적 판단과 조사 미비 등에 기인하여 추후 행정심판 및 소송 등을 통하여 번복되는 비율도 20%가 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징수 업무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하는 사업장은 1인 이상을 고용하는 전사업체이므로 이는 일종의 준조세 징수 업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정규직 2,500여 명 중에서 일부만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세청의 직원 수가 17,000여 명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그 사업의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80%라는 징수율이 오히려 대단할 정도이다. 보상 업무의 경우에도 제대로 된 현장조사와 의학적 자문을 토대로 전문적인 법률적 판단을 요하는 핵심적 업무이다. 그러나 제도 여건상 충실한 조사에 기인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며, 담당직원에 대한 보수교육도 제대로 진행 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징수나 보상 이외에 정작 중요한 재활이나 복지사업 등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된 것이다.
③ 내부 견제의 취약성
- 가재는 게 편이 아니고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보상 업무’ 즉 승인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승인 여부에 따라서 보상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피재노동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보험료를 징수하고 이를 토대로 보험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보험사업자가 과연 제대로 된 승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정부가 보험재정에 지원을 거의하지 않고 있고 보험재정이 적자일 경우에 질책이 가해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말이다.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다. 자신의 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 하는 입장에서 돈을 사용하는 데에 인색할 밖에 없으며, 때로는 재정의 원칙이나 자신의 이익을 내세워 정작 자신의 본분을 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재정 지출 시스템을 살펴보면, 지출의 재원이 되는 국세의 징수는 행정부가 담당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최종 지출 승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행사한다. 즉, 징수와 지출에 대한 승인권한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두개의 권한이 구분될 때에야 비로소 내부견제의 기제가 작용하여 효율적이고 원칙적인 재정의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칙은 산재보험제도 운영에 있어서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원칙이다. 더욱이 산재보험은 피재노동자의 치료와 재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이 원칙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문제를 더욱 미시화(微示化)하여 승인 업무에 대한 산재보험 내부의 견제 기능을 살펴보더라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스템상의 문제로 인하여 승인업무에 있어서의 객관성은 이미 어느 정도 훼손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다시 내부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장치라도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나, 내부 견제 기능은 더욱 취약하다. 즉, 승인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와 문제점들이 행정소송 이전인 행정심판과정에서 걸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심판에 대한 기능조차 근로복지공단이 모두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사 최초결정이 잘못되었음이 명백하더라도 행정심판을 통하여 이를 취소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모두 피재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막대한 소송비용과 장기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현상화되고 있다.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이 곧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의미한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논지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으로 현상화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근로복지공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재보험의 제도적 문제라는 것이다. 즉,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은 근로복지공단 자체를 뒤흔들기만 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명제이며, 산재보험제도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다.
① 보험재정에 대한 올바른 관점의 재정립
산재보험 재정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재정립되지 않는 한, 어떤 기관이 보험사업자가 되더라도 유사한 문제점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즉, 확보된 보험료의 틀 안에서 모든 보험 사업을 수행해야만 한다면, 피재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가 존재하여도 재정 관점에 입각하여 무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 그러나 산재보험법이 피재노동자의 권리와 근로복지공단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천명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단순히 재정의 관점을 들어서 마땅히 받을 수 있는 보상의 범주를 제한하거나, 이를 위해 행정 시스템을 기형적으로 왜곡시켜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산재보험법 제3조는 정부는 매 회계연도 예산의 범위 안에서 보험사업과 보험사업의 사무집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2003년도 및 2004년도에 발생한 보험재정 적자가 재정 운용을 잘못하여 발생했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산업재해율이 상승하면 당연히 보험재정의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며, 재정상 부담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보험료 징수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면 될 일이다. 이를 피재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보상이나 서비스를 제한하여 보험재정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피재노동자들에 대한 명백한 권리침해행위이자 권리남용인 것이다.
②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승인 권한 폐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복지공단이 그릇된 재정관점에 기인하여 부당하게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침들을 하달하여 피재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재정 운용과 승인 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재정 상황 등 외부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승인의 범위를 왜곡시킬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그 승인업무를 독립시켜 별도 기관에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또한 승인업무의 독립은 근로복지공단 기능의 제고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든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징수와 보상업무는 물론 재활이나 복지사업에 이르는 전 사업에서 서비스의 부실화가 나타나고 있다. 승인 업무가 독립된다는 것은 업무량의 감소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서비스기관으로의 자리매김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전문적인 높은 질의 서비스로 이어져 산재보험의 원래 제도적 취지를 실현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8월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에서 입법 발의한 개정안 역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것인데, 그 개괄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공단과 독립적인 제3의 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이 승인업무를 담당함
■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받은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에 승인여부에 대한 결정을 요청하여야 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의 결정에 대하여 공단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음
(개정안 제40조의6제4항)
③ 업무상재해 인정방식의 전환
승인 업무가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이하 ‘평가원’)으로 이관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문제점들이 평가원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문 인력의 부족과 시간상 촉박함으로 인하여 부실한 조사와 그릇된 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왜곡된 재정 관점이 다시 개입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에서 입법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들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을 판단되는 바, 이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 현재 노동자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입증해 내야만 하며,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음.
■ 이에 개정안은 피재노동자가 최초로 접하는 의사 등이 산업재해분류기준표(노동부령으로 정함)에 따라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였으며, 이 기준표에 부합할 경우에는 그 반증이 없는 이상 일단 업무상 재해로 취급하도록 하였음.
(개정안 제40조의5)
이와 같은 시스템이 마련되면, 평가원은 대부분의 사건에 대하여 그 판단의 타당성만을 검토하면 되고 복잡한 사건에 대해서만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진행할 수 있으므로 승인과정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을 대신하여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면 대부분 직장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 이후에 대부분의 피재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장애로 인한 생활상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들 피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이 거의 유일한 실정인데, 피재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부터 일단 배제 당하게 되면 이는 곧 치료의 곤란뿐만 아니라 생활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관점 및 사업 방향의 전환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피재노동자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지만,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노동력의 심각한 손실과 사회적 비용의 발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근로복지’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와 공공행정기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각주)
1) 이 문제는 재정에 대한 관점만이 아니라 산재보험의 제도적 성격에 대한 관점이 상이하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산재보험을 단순히 사용자배상책임보험의 성격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현재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도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을 사회보장적 성격의 사회보험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이는 맞지 않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재보험제도의 제도적 취지를 담고 있는 산재보험법 제1조는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보다 먼저 산재보험을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에, 산재보험의 성격이 사용자배상책임보험에서 사회보장적 사회보험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경제력의 증대에 힘입어 가용 보험재원이 충분히 확보된 측면도 있으나, 산재보험이 모든 국민에게 확대되면서 산재보험이 생활보장적 성격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재해발생 추이 등을 검토할 때,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적 성격의 강화는 제도적 발전방향으로 반드시 견지되어야 한다.
2)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본래 입법취지는 ‘미인식 노동자의 권리구제’의 측면에 맞추어져 있으나, 그 추가적 효과로서 이 글에서 검토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향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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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산재노동자
1. 들어가며
우리나라는 ‘산재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2005년 현재에도 ‘산재왕국’이라는 별명은 여전히 따라 다니고 있다. “한해 3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0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질 정도이다. 경제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산업재해로 인해 매년 양산되고 있는 산재노동자들은 건강상의 고통뿐만 아니라 노동력 상실과 치료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를 이해하는 정부와 자본의 시각은 노동자의 개인적 부주의와 개별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탓하거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건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선진성에 비교하여 산업재해 문제의 후진성을 생각해보면, 또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외국의 산업재해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산업재해 문제의 본질을 숨기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와 산재노동자의 존재는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2. 산재노동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산재노동자’라는 용어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1) 1982년 ILO 결의안에 따르면 산업재해란 “사망, 부상, 질병을 야기하는 업무수행 중에 일어난 재해”를 말한다. 따라서 산재노동자는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산업재해의 피해를 당한 노동자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노동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든 분명한 것은 산재노동자의 존재가 인식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시도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연구하는 경제학 이론에서도 산업재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크게 다음의 2가지 관점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첫째,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파적 시각이다. 신고전파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비용-편익 분석으로 산업재해를 이해한다. 신고전파에 따르면, 모든 노동은 직무에 따르는 위험을 수반한다. 노동자는 직무의 위험으로 인해 산업재해라는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직무 수행의 대가로서 임금 소득과 같은 ‘편익’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편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산업안전의 적정 수준과 산업재해의 최적 수준이 결정된다. 간단히 말해서 산업재해의 발생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업에 대해서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게 되고, 기업은 그 수준에 맞추어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수행한다는 말이다.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실제로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고임금 노동자가 아닌 저임금 노동자이다. 더구나 산업재해 발생의 ‘최적 수준’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비윤리적인 발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정치경제학적 시각이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나눈다. 각각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설명되는 이러한 잉여가치 생산은 모두 노동자의 피로도를 증가시킴으로서 산업재해를 발생시킨다. 또한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가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진전되면서 노동의 비인간화, 노동의 세분화에 의한 단순반복 작업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국가․노동․자본의 상호관계 속에서 산업재해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3.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재해
1) ‘압축 성장’과 산업재해의 발생의 가속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은 ‘압축 성장’이라는 말로 주로 표현된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50년 만에 이룩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의 과정은 경제 성장 이외에 자본주의의 모순도 압축적이고 폭발적으로 발생시켰다. 산업재해의 발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실제로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고임금 노동자가 아닌 저임금 노동자이다. 더구나 산업재해 발생의 ‘최적 수준’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비윤리적인 발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정치경제학적 시각이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나눈다. 각각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설명되는 이러한 잉여가치 생산은 모두 노동자의 피로도를 증가시킴으로서 산업재해를 발생시킨다. 또한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가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진전되면서 노동의 비인간화, 노동의 세분화에 의한 단순반복 작업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국가․노동․자본의 상호관계 속에서 산업재해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3.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재해
1) ‘압축 성장’과 산업재해의 발생의 가속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은 ‘압축 성장’이라는 말로 주로 표현된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50년 만에 이룩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의 과정은 경제 성장 이외에 자본주의의 모순도 압축적이고 폭발적으로 발생시켰다. 산업재해의 발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위의 <표-1>은 1972년부터 2003년까지 연도별로 발생한 산업재해자수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고도성장 시기였던 1970년대부터 산업재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46,603명이었던 산업재해자 수는 1984년 157,800명으로 3~4배가량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산재통계의 부정확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수치이다.
이렇게 증가하던 산업재해는 1987년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바로 ‘87년 노동체제’의 성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은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 과정에서 안전보건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다. 때문에 정부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산업재해는 1998년 이후 다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IMF 경제위기’와 함께 닥쳐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여파이다. 1998년 이후 노동강도의 강화와 각종 안전보건 규제의 완화는 산업재해를 다시 증가시킨 결정적인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2)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산업재해
자본의 운동은 가치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가치증식 운동이 거시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자본축적방식의 변화이다. 가치를 증식시키는 방법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시간의 연장에 의한 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에 주된 방식이다. 우리나라 또한 1960~70년대 저임금 장시간노동으로 이를 관철시켜왔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시간은 감소하고 대신 기계화․자동화라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정을 세분화하여 컨베이어 벨트를 생산에 도입하고 거대한 생산설비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후반 중화학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이 과정이 관철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견 산업재해의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계화․자동화를 노동환경의 개선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노동강도의 강화와 직결된다. 바로 가치를 증식시키는 또 다른 방식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때문에 산업재해의 발생 위험은 여전하다. 오히려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의 발생 위험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가 상당히 진전된 현재에도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한 산업재해의 지속적 증가는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3) 산업조직의 독점화․수직계열화와 산업재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대기업이 자치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1980년대 소위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계속되었고, 1998년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대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지속되면서 독점화가 진전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의 재벌 중심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독점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독점화는 대자본에 의한 중소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데, 이것은 중소기업의 하청계열화에 의한 산업조직의 수직계열화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산업조직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산업재해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의 <표-2>는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사업장 규모별 재해 발생의 추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대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에 비해 50인 미만 사업장은 오히려 산업재해가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에게 유해하고 위험한 공정을 이전하거나 하청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에 의해 상시적으로 공급원가 절감을 요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한 안전보건 투자를 회피할 수밖에 없다.
4. 자본주의적 노동과 산재노동자의 존재
1) 노동력재생산의 위기와 산재노동자
산재노동자의 존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경제 영역은 노동력재생산이다. 노동력재생산의 연구는 임금, 고용, 개인적 소비의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즉, 소비의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의 문제를 주요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재해는 노동력재생산의 파괴나 일시정지를 의미하고 노동력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게 되면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하여 요양을 필요로 한다. 산업재해의 강도가 강할수록 그 회복의 기간은 길어지며, 치료비와 심리적 부담으로 인하여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산업재해는 산재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신체적․경제적․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고, 산업재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사회는 엄청난 노동력재생산 비용의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한 비용 손실이 막대하다. 2003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2조4천9억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노동손실일수는 59,135,167일에 달한다.
2) 노동복지정책의 실패와 산재노동자 재활정책의 부재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농촌인구의 급격한 도시로의 이동을 경험하였고, 자본은 이 과정을 통해서 ‘저임금의 근면한 노동자’들을 무한하게 공급받게 된다.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소비재의 가치 수준에서 결정되는 노동력의 가격이므로, 무한한 노동력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정부와 자본은 생계비 수준의 저임금을 지급하는 이외에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때문에 노동자가 산업재해의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산재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매우 빈약했다.
정부에 의해 우리나라에 산재보상보험법이 도입된 것은 1963년,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산재노동자의 재활보다는 치료와 보상 쪽으로 비중이 치중되어 있다. 때문에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다수가 재활을 통해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채 빈곤층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노동력재생산의 중단 상태를 해소하기보다는 연장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산재보험제도의 이러한 절반의 실패는 사실상 우리나라 노동복지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선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복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로서 쟁취된 계급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압축적 성장 과정에서 복지정책 또한 국가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스스로 대변시키지 못한 노동복지정책의 추진은 반쪽짜리가 되었으며, 산재보험 또한 산재노동자들의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기에 재활정책의 부재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5. 마치면서
최근의 노동시장은 산업재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른 비정규직화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구조인 것이다. 노동계약의 단기간화는 비숙련노동을 양산하고, 아웃소싱은 비정규노동을 위험작업으로 집중시킬 수 있으며, 파견․변형근로의 증가는 노동자 보호에 대한 자본의 책임의식을 낮추는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는 산재노동자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산재노동자들이 노동능력 상실 등의 이유로 더욱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도록 함으로써, 산재노동자의 상태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 확실하다.
산재노동자 또는 산재장애인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자본주의적 모순의 표현이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해 산업재해를 발생시키게 되며, 산재노동자의 존재는 노동력재생산의 비용을 증가시킨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산업조직의 독점화․수직계열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경제적 지위가 낮은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를 집중시키는 구조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미비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경제성장에 급급하여 노동자의 요구와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 정부 주도의 노동복지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실패한 정책을 비판하고 산재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동복지정책을 실현시켜야 한다. 산재보험제도의 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바로 이 시점이 산재노동자의 조직과 단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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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업재해 . 빈곤 그리고 재활
1. 들어가며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감소됨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 확대와 비정규직 증가 등 현재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여건 속에서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입게 되는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산재 산고를 당한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노동능력이 완전히 또는 상당부분 손상된 산업재해 장애인이 되어 노동시장으로부터 탈락의 위험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동능력에 대한 상실은 곧바로 산재 장애인들의 경제적 빈곤화와 이로 인한 심리적 좌절감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 및 파괴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재활 정책은 의료적 치료나 현금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정작 산재 노동자에게 필요한 직장 복귀 및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재활 그리고 사회심리재활 등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본 글에서는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직면하게 되는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감 그리고 가족 갈등의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을 산재 장애인의 수요자 입장에서 보다 필요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2. 산업재해 노동자의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
산재로 인해 장애를 입게 된 노동자들은 산재 이후에 겪게 되는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가정 및 직장을 포함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 산업재해 이전의 생활 상태로 복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중 경제적 빈곤화와 심리적 소외감으로 인하여 산재 장애인이 일반인과 함께 지역사회로 통합되어 살아가는 데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겪게 되는 빈곤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소외감이 크게 부각되어오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실제로 많은 산재 장애인들이 산재 이후 사회경제활동으로의 복귀가 좌절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위협에 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이 산재병원에서 치료 중이거나 직업재활원에서 재활훈련 중인 산재 장애인 1천 231명을 대상으로 직업재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조사대상자의 87.9%가 ‘복직이나 재취업 등 직업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3/4(77.3%)이상이 장해판정을 받은 뒤 무직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83.1%는 산재를 입은 뒤 ‘가정경제가 악화되었다’고 응답하였다.
가정경제의 악화
무엇보다도 근속기간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의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 산재 이후 재취업이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3년 산재를 입은 노동자 중 과반수(59%) 이상이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험 미숙으로 산재를 입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산재를 입은 후 재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이전에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직장으로의 복귀를 포함한 직업재활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산재 이전과 이후의 직업분포를 살펴본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박수경, 1999), 1-7급 장애인의 경우 10명 중 8명 이상은 재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 이전의 경우 기능직 노동자나 단순노무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60% 이상이었던 반면, 산업재해 이후의 경우 이들 대부분이 재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경증장애인 8-14급의 장애인 경우, 중증장애와 마찬가지로 기능직 노동자와 단순노무직 노동자에 60%이상이 종사하였으나, 절반 이하(약 25%)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당사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문제로 확대된다. 산재 장애인들이 부양가족을 둔 가장 위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재 현황을 보면 산재 장애인의 약 90%가 남자이고, 30대 이상의 경우가 80%이상으로 가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노동부, 2002). 더욱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도 80%이상인 것으로 나타나(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1996),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발생은 가족전체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직결되고 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
이처럼 산재 장애인들의 신체기능의 손실은 산재 발생 이전에 수행하였던 가정과 직장 내에서의 역할을 제한한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특히 자존감이 저하되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로 인해 신체적 활동성이 저하되고 재취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까지 경험하게 되어 더욱 더 외부 출입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가족이나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등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이 속에서 산재 장애인의 가족은 가장의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 장애로 인한 역할 변화 및 부담으로 인해 만성적 스트레스 등을 겪게 된다. 곧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심한 경우 가정이 파경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산재 장애인들이 본래의 직장으로 혹은 작업 전환을 통하여 노동시장으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시장의 진입이 어려운 경우 산재 이후에 경제적 빈곤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재 장애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 및 가정 및 사회적 관계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예방할 수 있는 재활정책이 함께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3. 산업재해 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재활정책의 제언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직업복귀 및 소득보장을 포함하여 산재 장애인의 개인적, 가족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응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포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은 주로 산재보험의 급여조건 및 수준 그리고 의료적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금전적 보상 위주에 국한되었다. 무엇보다도 산재 장애인에게 중요한 직업재활과 심리사회재활 및 가족개입에 대한 서비스가 매우 미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산재 장애인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얻도록 그리고 동시에 생산적 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직업재활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애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을 극복해줄 수 있는 심리사회적 재활과 연결될 수 있으며, 나아가 가족 및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의료적 치료가 중심이었던 소극적이고 협소한 재활정책의 시각에서 벗어나, 산재 장애인의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재보험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과 사회재활서비스에 대한 지원수준을 보다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산재보험에서 제공하는 급여는 요양급여와 장해급여가 있으며, 희망자에 한해서 제공되는 직업훈련과 자립작업장, 생활정착금 대부와 자녀학자금 지원 등이 있다. 이 중 산재 장애인에게 필요한 직업훈련이나 사회재활서비스의 경우 1%미만의 극히 명목적인 수준에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의 재활사업비를 대폭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투자의 확대는 단기적 차원에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차원에서 볼 때 산재장애인의 잔존 능력을 최대화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산재보험금의 지출을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재활급여 비중의 확대
또한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하고 작업 복귀에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영업에 필요한 자금능력이 부족하여 산재 장애인이 취업에 곤란을 겪거나 자영을 원하는데 개업을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정착금 대부 금액을 상향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 때 무엇보다도 담보능력 부족 등으로 대부가 어려운 현실이 있음을 감안하여, 자영개업을 원하는 수료생을 대상으로 업종, 거주지 등을 고려하려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에 점포를 임대․지원함으로써 확실한 직업복귀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임대자립작업장 지원 사업을 바탕으로 한 대부사업을 함께 확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업재활서비스가 취업까지 현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직업재활훈련원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안산과 광주 2곳에 있는 직업재활훈련원의 경우 연간 3천 명 정도 발생하는 1-7급 산재장애인 중 채 10%도 미치지 못하는 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산재 장애인의 수를 소화하기에는 직업훈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용 가능한 최대인원 수가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재 장애인의 수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직업재활 훈련시설의 프로그램 내용이 재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이 취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수요적 측면을 고려하여 보다 다양화되고 현실화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업재활훈련원에 직업상담원을 배치하여 산재 장애인의 직업 적성을 상담하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며, 나아가 직업 결정에 필요한 정보 및 상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 이후 재취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게 되는 산재 장애인이 새로이 변화된 직업 환경 속에서 직장 동료 및 상사 그리고 작업과정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직업훈련 지원체계의 변화가 요구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 장애인들이 원하는 직업훈련원이나 사설학원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에서 1년 이내에 해당하는 직업훈련 기간 동안 지원되는 훈련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훈련비 지원수준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포괄적인 직업재활서비스 및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제공
셋째, 산재 장애인을 위한 심리사회적 재활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산재 장애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삶을 영위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입게 되어 급격한 환경적 변화를 맞게 된다. 장애를 입기 전과 매우 다른 환경에 갑자기 접하게 됨으로써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직업재활 등 주변의 여건이 지지적이지 못하여 심리적 좌절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기 어려워 만성적 스트레스를 느끼며 삶에 대한 자포자기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는 본래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재 장애인의 재취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장애를 빨리 수용하고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장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키우며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자신에 대해 긍정적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사회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재병원이나 산재지정병원에서 산재 환자들을 위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심리사회재활서비스가 산재보험에 수가로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현실화를 위해서라도 산재보험에 수가화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 장애인의 심리적 좌절감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야기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산재 장애인의 경우 장애발생 후 기존의 친구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절반 이상 단절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업재해 발생 이후 산재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지 체계를 강화시켜줄 필요가 있다. 산재 장애인의 사회적 지지를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거나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재활스포츠나 취미 활동 등 여가 활용 프로그램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여가 모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조 집단을 형성하여 유지시키게 도와줌으로써, 산재 장애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의 가족 지지, 사회적 지지의 강화
넷째, 산재로 인한 장애의 발생은 산재장애인 당사자를 넘어서서 그 가족의 심리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더군다나 갑작스런 변화 앞에 자아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산재장애인을 보호해야하는 가족들의 스트레스와 보호부담이 가족 체계의 파괴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 본인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족이나 주변의 절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각종 정보와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재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장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교육시키며, 또한 장애발생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갈등과 역할 변화의 가능성을 교육시킴으로써 이로 인한 혼란을 감소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과 가족 사이의 의사소통 및 갈등을 치료해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재 장애인의 신체적 손상을 최소화하고 일상생활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재활공학 서비스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산재 장애인의 장애 정도 뿐 아니라 일상생활능력 정도도 재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으로 나타났다(박수경, 1999). 그러므로 산재 장애 후 잔존능력을 최대화하여 일상생활능력의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신속하고 체계적인 의료적 치료뿐만 아니라 보장구, 재활용구나 편의시설이 개발되고 제공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의 산재의료관리원 산하에 있는 전문연구기관인 재활공학연구센터를 활성화하여 재활공학서비스의 보급 확대 및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보장구 및 기기를 지급하거나 보장구를 구입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체 기능의 최대화를 위해 산재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내부를 개조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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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재활 사업 5개년 계획의 평가와 전망
들어가며
지난 2001년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산재의료관리원 및 한국노동연구원 산업복지센터와 논의를 통하여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받았던 산재보험 재활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산재근로자 재활사업 5개년 계획(2001~2005년)’을 수립하였다.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러 2005년 현재 재활사업 계획을 마무리하고 평가하여 향후 예정되어 있는 ‘제2차 산재근로자 재활사업 5개년 계획(2006~2010년)’에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작업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은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이하 ‘산재재활사업’)의 세부 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수행하기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산재재활사업의 문제점과 향후 개선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작성되었다.
산재재활사업의 수립 배경
산재보험은 1964년 7월부터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며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활 및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작년 2004년 한 해 동안 산재를 당한 노동자수는 노동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약 9만 명 정도이고, 산재장애인은 매년 2만 여명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노동능력이 56% 이상 상실된 중증 장애인도 2,500여 명 이상으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산재요양에 대한 관심은 다른 노동 현안 문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의 비중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조차 휴업급여 등 보상부분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산재보험 재활사업에 대한 관심은 산재보험 분야에서조차도 낮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안전망이 선진국이나 비슷한 수준의 개발도상국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은 휴업급여 등의 현금 위주 보상체계와 같은 생활보장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산재요양에서 6개월 이상 장기요양치료를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휴업급여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산재보험 재정위기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산재보험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산재보험 재활사업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산재보험 재활사업은 산재노동자의 직장 및 사회통합을 촉진함으로써 요양기간을 단축하고 나아가 산재보험 재정건전화에 기여할 수 있고, 생산성 있는 노동력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노동부의 ‘산재재활사업’이 수립,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의 사업 분야와 사업방향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은 총 8개 사업 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사업에 따라 1~6개의 세부과제로 나뉘어 총 27개 단위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8개 사업 분야는 의료재활 지원 사업 및 시설확충 사업, 보장구지급 서비스 개선 및 재활공학연구센터 기능 활성화 사업, 재활관련수가 개선, 직업재활시설 건립 및 직업재활훈련 활성화, 직업재활상담제도 확대운영, 사회적응프로그램 운영, 취업 및 창업 제고, 산재근로자 생활안정 지원사업 확대, 재활사업 인프라 구축 등의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부가 밝힌 산재재활사업의 사업방향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 재해발생에서 사회복귀까지 총체적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의료재활 선진화, 직업재활 내실화, 사회복귀 정착 지원 등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 재활사업 투자예산을 매년 6%씩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고, 셋째, 신체적 치료기능에서 의료재활, 직업재활 및 사회복귀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산재의료관리원 병원의 의료재활 전문병원화를 추진하고 이 중 재활공학연구센터와 함께 하는 인천중앙병원을 의료재활 전문병원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직업재활 훈련 및 연구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을 통해 예상했던 기대효과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에 따른 기대효과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 밝히고 있는데 첫째,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은 산재보험의 예방, 요양 및 보상, 재활이라는 3대 축을 형성하여 산업재해에 있어 노동자를 전방위적으로 보호하는 21세기 산재보험서비스 모델을 새로이 제시하는 것이며, 둘째,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 과정을 개인적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인식하여 제도화하고 지속적,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매년 약 1,000여억 원(산재기금 대비 4.0%)을 투자함으로써 재활사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산재보험제도를 보상 위주에서 생산적인 서비스체계로 전환시켜 재활서비스 수혜자를 2000년 17,000명에서 2005년에 540% 증가한 92,000명까지 확대하고, 산재노동자의 개인별 특성에 따른 다양한 재활 욕구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재활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사회복귀가 곤란한 중증장애자 또는 고령 장애자를 위한 간병 및 보호시설을 건립하여 소외계층이 없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며, 산재근로자 원직장 복귀를 위해 고용지원금 제도를 도입하여 2000년 직업복귀율을 37%에서 2005년에는 70%로 2배 늘리겠다는 기대효과를 밝힌 바 있다.
넷째, 재활사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요양기간이 단축되고 보험급여의 절감효과가 있어 오히려 산재보험의 재정 건실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구체적으로 1인 평균 요양기간이 117일에서 91일로 감소하고 요양 및 휴업급여가 8,500억 원에서 6,577억 원으로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의 성과와 문제점
현재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이 아니므로 공식적인 평가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현재까지 중간평가결과만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애초에 노동부가 ‘산재재활사업’을 추진하기 전 기대효과로 잡았던 목표점에는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면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재활사업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재활사업의 양적 확대가 이루어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재활사업비는 2005년 6월까지 총 2,173억 원이 집행되어 당초 계획인 4,650억 원의 절반에 못 미치지는 수준이지만 재활사업 수행 전 2000년 229억 원에 비해 매년 약 5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고정적으로 지출되어 사업비는 2배 정도 증가하였다. 또한 재활서비스 수혜자가 대폭 증가하였고, 재활사업을 연계하기 위한 상담 인원은 2001년 22,570명에서 2004년 39,993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재활사업의 수행기관으로 전국의 민간기관을 이용하여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접근성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재활상담체계의 구축, 다양한 재활프로그램의 개발 및 도입, 민간 재활서비스 전달체계와의 연계 및 활용 등을 통해 재활서비스 전달체계의 기반을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과에 비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재활사업의 추진기간이 이제 5년째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5개년 계획의 수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 목표설정과 사업방식의 오류
현재까지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표 설정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는데, 애초 기대 효과로 잡았던 1인 평균 요양기간의 감소, 요양 및 휴업급여의 절감과 같은 부분은 재활사업 단독수행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고, 요양과 재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볼 때 재활사업 단독 추진의 성과 목표로 잡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앞으로 평균 요양기간의 감소, 요양 및 휴업급여의 절감과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산재보험의 여러 분야 즉 보상, 요양, 재활 등 여러 분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해결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한 분야만의 단독 사업으로 이러한 종합적인 지표를 개선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현재의 재활사업은 요양자 중 재활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서 평가 후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동적 차원이 아니라 재활서비스를 받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사람만을 대상자로 선정하는 수동적인 사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재활서비스의 주요대상이 요양 초기의 환자보다 일정 기간이 지난 입원환자나 치료가 종결된 산재노동자가 대부분이므로 대부분 재활상담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노동자가 원하는 재활사업을 연계해주는 행정업무의 비중이 높으며 전문적인 심리상담이나 원직복귀를 위한 사업주와의 상담 등 중요한 업무의 비중은 일부분만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재활사업이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요양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산재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또한 재활서비스의 적절한 대상자를 능동적으로 발굴하고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획일적인 산재보험 재활사업 서비스와 실적 평가시 성과지표의 부재
현재 산재보험 재활사업의 문제점으로 각각의 서비스들이 산재노동자들의 희망에 따라 단편적으로 제공되며, 제공되는 산재보험 재활사업도 아직은 선택의 폭이 좁고 획일적인 서비스라는 지적이 있다. 산재노동자의 상태와 직업재활 가능성은 다양함에도 현재는 이러한 다양함을 평가하고 알맞은 재활사업을 선택해주는 체계가 없음으로 재활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재활사업의 선택 폭과 관련해서도 산재노동자를 위한 재활서비스는 의료재활부터 심리재활, 사회재활, 직업재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산재의료관리원, 재활훈련원 등에서 일부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할 뿐 다양한 분야의 전문재활프로그램의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산재재활사업의 각 단위사업별로 실적을 평가할 때 성과지표가 설정되지 않아 실적 중심의 평가만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각 단위사업별로 질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측면이 있다. 향후에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관리원, 재활훈련원 등의 재활사업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성과지표를 개발할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선결되어야
마지막으로 직장 및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다양한 재활서비스가 산재노동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함에도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산재노동자가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 산재보험 재활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로 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만큼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앞으로 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현재 산재재활계획의 재활관련수가 개선사업에서 의료재활수가 개선과 후유 증상 진료 범위 확대분야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활의 의미를 의료에만 국한하여 너무 좁게 보고 있는 한계점이 있으므로 향후 재활급여 도입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활정책의 향후 과제 - 사례관리체계의 도입
현재 노동부는 2006년부터 제2차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을 추진할 계획에 있으므로 앞서 지적되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산재재활체계의 문제점들을 반영하여 2차 사업 기간 중에 양적 확대와 아울러 질적 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포괄적인 재활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사례관리체계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산재보험 재활서비스는 다양한 산재보험 관련 기관에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산재노동자 개인이 제공되는 재활서비스를 모두 파악하기도 힘들뿐더러 제공되고 있는 재활서비스 중 자신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고른다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서 산재노동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재활서비스를 선택하고 요양 초기부터 가능한 이른 시기부터 단계적으로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례관리체계를 도입하여야 한다. 사례관리란 산재노동자를 요양부터 사회복귀 및 직업복귀까지 필요한 서비스를 조정해서 제공하거나 연계시켜 주기 위해서 한 사람의 재활상담원이 지속적으로 산재노동자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특히 산재노동자의 재활과정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판단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공단에서 위치가 불안정한 재활상담원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보상위주 관리 개편 - 보상, 요양, 재활체계의 유기적 개선이 필요
또한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보상위주 조직을 개편하여 요양과 재활서비스를 전담하여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체계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보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요양, 재활체계의 개선이 유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산재보험체계에서 지적되는 문제점들은 매우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므로 다양한 분야의 정책대안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현재 요양치료와 재활서비스가 너무 단계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 점이 문제이다. 산재재해 초기부터 요양과 재활서비스가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 서로의 장점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나, 현재의 시스템이 투입된 비용에 대비하여 효율이 낮은 점은 두 부분의 연계체계가 부족한 점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산재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장애인에 대한 재활정책은 훨씬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며 사회 전반적인 장애인 재활 정책에 대한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어서 산재 재활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앞으로 수행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장애인 재활사업의 초기에는 산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사업이 주축이 되어 발전하여 결과적으로 일반 장애인 재활사업의 수준도 향상시키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산재보험의 재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고, 산재노동자는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일반 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장복귀 의지가 높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직 장애인 재활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부족하여 산재재활제도의 발전을 방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심지어는 일반 장애인 재활사업에 비해 산재노동자 재활 사업이 양적인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거꾸로 이용하여 산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사업에 투자가 너무 과다하여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향후 산재노동자의 재활사업이 우리 사회 전반적인 장애인 재활정책에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사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며 산재재활사업이 궁극적으로 산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킨다는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재보험 재활사업 계획이 효과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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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업보건체계의 개선 방안
1.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 현황
가. 산재예방체계의 문제
산업보건영역에서 산재예방체계는 그 운영주체나 내용면에 있어서 상당히 독자적으로 오랫동안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그 역사성과는 달리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지 못하는 고전적인 유해물질(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등) 중심의 직업병 예방체계와 그로 인한 매우 낮은 직업병 진단율(0.07~0.09%) 문제는 산재예방체계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와 연관되어, 근래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노동력 손실이 큰 새로운 질환들(예,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에 대한 예방 및 조기진단 체계의 부재 문제와 실제로 업무상 질병의 예방보다는 건강검진사업(2차 예방인 조기진단 사업)을 통한 수익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산업보건사업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수준으로까지 부각되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고령화되어가는 노동인구에게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만성질환들(예, 생활습관 병)에 대한 산업보건 예방서비스 부재 문제는 향후 국가의 보건부담의 크기 면에서 매우 중대한 논의주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요양체계의 문제
지금까지의 산재요양체계에는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른 자연스런 역할 구분이나 적절한 분화과정이 없었다. 이는 일반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문제를 산재요양체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산재요양체계는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요양체계를 있으므로 이러한 비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최근에 산재보험기금이 고갈되면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부적절한 요양서비스 제공문제는 이미 노동계, 경영계, 정부 모두로부터 심각하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1, 2차 수준의 민간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수입증대를 위한 요양의 장기화 경향이나, 부적절한 과잉 시술(예, 불필요한 척추수술 등), 그리고 산재의료 내 전달체계 부재 상황 등은 적극적인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반면에 대표적인 종합전문요양기관들(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중앙병원 등)이 병상회전율 둔화로 인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산재의료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또 다른 측면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다.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정책 집행구조의 문제
현재까지의 자료를 확인해보면 다음의 표와 그림에서 보이듯, 한국 산업안전공단으로 출연하는 산재예방비용이 늘수록 오히려 작업관련성 질환은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재예방사업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산재예방 담당기관이 미래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산재예방을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된 대처가 가능한 조직(방식)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라. 사업장내 보건관리 체계의 와해
정부는 1997년 말 국가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 하에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선임규정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 결과 2003년 현재, 보건관리자를 선임하였다고 보고한 8,527개 사업장 중에서 6,439개(75.5%)가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보건관리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분히 형식적인 관리제도(와 내용)는 현장에서 업무상 질병과 만성 질환(생활습관 병) 등에 대한 보건학적 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게 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로 확인되고 있다.
마. 국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의 역할 부재
산재의료관리원 산하 산재병원들은 산재환자 진료, 작업관련성 질환의 평가, 산재 및 직업병 진료표준의 설정 등 공공이 담당해 주어야 할 역할에는 소홀한 채, 수익증대를 통한 생존만을 꾀하여 왔다. 물론 과거 탄광을 중심으로 그 존재가치가 십분 발휘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의 효용성을 수익성으로만 평가하는 평가 잣대가 1차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산재환자를 통한 수입이 전체의 50% 밖에 되지 않고 있고 산재의료관리원이 최근에 수립해온 일련의 발전계획과 자구책을 검토해 볼 때 결국은 산재의료관리원도 산재요양기능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수익창출과 생존을 위한 기존의 일반적인 의료기관 모형을 택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산재의료와 관련되어 전문화된 국가중앙의료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유일한 대안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전무하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로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 일반병의원, 산업보건기관 등과의 역할중복과 비효율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해결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바. 보험급여(휴업급여, 요양급여)중심의 산재보험제도
우리나라 산재보험재정의 세출 요소별 구성비를 보면, 보험급여가 85-90%를 구성하고 있으며, 재해 예방비가 일시적으로 10%를 상회한 일부기간을 제외하고는 ‘예방’에 대한 비용 또한 대부분 5%내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재의료에서 그 비중이 상당히 중요한 ‘예방’과 ‘재활’에 대한 비용지출은 매우 적거나 전혀 없는 대신에, 주로 환자의 소득을 보상하는 ‘휴업급여’와 진료관련 비용으로 지급하는 ‘요양급여’ 등의 항목들에 대부분의 산재보험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볼 때 급격한 재원고갈이 발생할 수 있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구조라고 판단된다.
2.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의 개선방안
가. 산업보건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추진주체 신설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산재예방 정책을 추진하려면 산업안전보건청 1)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산재요양 정책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산재의료관리원을 단순한 요양병원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현 체제에서, 재활과 장기요양에 보다 정확히 초점이 맞추어지고 전문적인 지침 제공 등 국가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가질 수 있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해와 직업병 관련 원형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능을 재편하고, 여기에 미래지향적인 기능인 산업보건연구기능을 부가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
산재보험 자체에 ‘예방사업 관련 항목(산업보건 예방사업과 관련된 항목)’과 ‘재활급여(의료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는 재활을 위하여 상당 수준(독일의 경우는 25% 이상)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내용적으로 요양급여에 포함되어 있는 일부 물리치료 등 재활 의학적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외국과 비교가 가능한 재활사업(의료재활, 교육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 등)으로 투입되는 산재보험 재정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체 산재의료체계에서 이러한 ‘재활사업’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재활사업으로의 투입비용이 결국은 전체 보험급여(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 비용을 충분히 절감시킬 수 있음이 알려져 있는 만큼, 현행의 소극적이고 부적절한 재활서비스 관련 (수가)제도를 철폐하고,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새로운 수가개발과 비용지불을 통해 질 높고 풍부한 다양한 ‘재활사업(서비스)’ 공급을 유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와 직업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객관적인 기준에 합당하면 담당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별도의 승인절차 없이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만약 사후평가 과정에서 승인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을 도입 2)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의 개정
전국에 있는 50여개의 종합전문요양기관을 재해전문병원 3)과, 직업병 전문병원 4)으로 구분하여 신청할 수 있도록 유인하고, 이와 관련된 산재보험수가 개선을 통한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국에 5,000개 이상 지정되어 있는 1, 2차 병의원의 경우는, 일부 특화된 기능이 있을 경우 전문병의원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장기요양병의원으로 구분하여 지정 운영토록 함으로써 현재 산재의료체계의 난맥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라. 산업보건 예방사업의 다양화
현행 산업보건 예방사업은, 근로자 일반 및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으로 나눌 수 있으나, 그동안 이를 통해 예방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여 왔다. 이를 보다 실효성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과 ‘사후 질환관리 사업’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마. 지역보건센터의 구축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 산재의료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고 또한 법제도 내에서 실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하여 방치되어 있는 상당수의 고 위험집단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기존의 일차의료자원(예를 들어, 보건소)을 활용하여 이를 이용한 예방보건사업 및 지역 의료자원 연계사업을 수행하고 이를 위해서 조직구축, 재원조달, 서비스의 내용정비, 인력수급 등의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충실하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연계할 의료자원이 없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산업보건의 특성이 충실히 반영되어지는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도록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바.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배치 확대 및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
일정 규모(예, 100인)이상의 사업장의 경우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여 전담 보건관리자를 반드시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보건관리자에 대한 자격조건(의료인)과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전담 보건관리자들이 사업장내에서 보건관리사업(이들이 주도할 수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 사후 질환관리 사업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업비를 지원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해서는, 매년 적절한 사업계획 수립과 사업수행 평가를 통해 그 성과와 개선안을 모니터링 하여 보다 발전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 노동부내 ‘직장 건강증진위원회’ 설치를 통한 건강증진 도모
노동부가 중심이 되어, 타 부처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직업별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표준화 하고, 또한 직장과 지자체에서 일정부분 재정지원을 유도하고, 대상자가 일정 이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는 자발적으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 보건복지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
국가중앙의료원과의 긴밀한 업무연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산재와 직업병에 대한 표준진료지침 등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산업안전보건청(가칭) 간에 업무협의가 필요한데 통합적인 국가정책에 대한 의견교환과 정책집행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지원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국립대병원, 재활, 정신, 요양, 응급 센터와 산재의료관리원 및 산재지정 의료기관과의 연계는 실제적으로 환자 의뢰 등을 통한 역할 분담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보건소와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사업장 보건관리자와의 연계 문제는 보건사업 수행과 관련하여 기술지원, 교육지원, 인력지원 등의 긴밀한 연계를 가짐으로써 해결해야 할 것이다.
3.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개선 추진전략
가. 단기 과제
산업보건 예방사업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적 유해물질 중심의 예방사업(특수건강진단 등)에서 고령화되어가는 노동력에서 가장 보건학적으로 중요성이 높은 만성 성인병 질환과 새롭게 발생률이 급등하고 있는 작업관련성 질환(예,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등에 관한 예방사업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지역보건센터를 구축하되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예, 보건소)에 사업장 예방보건서비스 제공, 지역 내 의료자원연계 등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을 부여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일부 지역보건조직이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업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보건관리자 선임기준 완화조치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하여 전담 보건관리자 6)의 선임을 다시 확대토록 함으로써 원칙적으로 현장 중심의 보건관리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업장내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서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가 선임되어 있는 중소기업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산업보건기관 혹은 지역보건센터를 대상으로 하여 산업보건 예방사업 시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나. 중장기 과제
중장기적으로는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산재의료관리원의 혁신을 통해서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추진주체를 새롭게 건설하고,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을 재해전문병원, 직업병전문병원, 재활전문병원, 장기요양 병의원 등으로 분화시켜 그 역할분담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보건센터 모형을 구축하되,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가 없는 지역에 대하여,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이 충실한 새로운 모형의 지역보건센터 광범위하게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과 같이 노동보건과 일반보건이 이원화 되어 운영됨으로써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보건복지 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각주)
1) 기존의 1200명이 넘는 조직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노동부의 산업안전국의 기능을 발전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음
2) 다만, 이러한 접근을 전면적으로 할 것인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함. 사실, 산재보험은 요양기간 중에 소득보상이 이루어지나 건강보험은 그렇질 못하므로 양 체계 간에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 여건에 맞게 단계적으로 실행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하나씩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3) 일반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과, 방사선과, 중화상 치료, 하반신 마비, 수지 접합, 골수염 담당 전문과 등이 있어 고도의 외과적 접근이 가능하고 의료재활을 할 수 있는 병원
4) 직업관련성 평가 및 치료 등을 수행하는 병원
5) 2002년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수는 총 44,029개소로 종합병원 284, 병원691, 의원23,299, 치과병원 80, 치과의원 11,120, 한방병원 1345, 한의원 8,097개소 등임. 그 중에서 12.8%에 해당. 종합전문요양기관 지정율은 90% 수준으로 전국 50개소 중 6개소(서울대병원, 가톨릭 강남성모병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원자력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를 제외한 44개소이며, 서울, 경인지역은 80%, 그 외 지역은 100% 지정․운영 중임. 2003년 현재,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은 총 5,566개소로 줄어듦.
6) 의료인으로 정하고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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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업안전부문 국정감사 보고서
1. 여는 글
작년 국감을 끝난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바로 올해 국감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정규 법안을 놓고 몇 차례 공방을 치르고 여름이 되어 휴가 갔다 오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바로 거기였다. 국회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국회 시계는 빨리 간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시국회가 두 달에 한 번씩 열리고 한 번 열린 임시국회는 한 달간 진행되는 관계로 의원이나 보좌관이나 모두 시간을 쪼개서 인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구조가 바로 빠른 시간을 만드는 주요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암튼 작년 국감 피로도가 채 잊혀 지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국감을 준비해야만 했다.
작년에는 국정감사의 의미와 진행방식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국정감사 준비를 했었는데, 올해는 최소한 그렇지는 않았다. 전체 진행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국감에서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제기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등을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 부담감은 결코 줄지 않았다.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국감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년에야 다소간의 실수를 해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신참’이라는 변명거리가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 부담감을 일에 대한 집착과 추진 동기로 삼을 도리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을 주된 국감 대상으로 삼다
올해 국감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마음에 쓰였던 것이 산업안전부문에 대한 것이었다. ‘산업안전부문 국감보고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올 초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작년 연말에 제정된, 근골격계 지침과 과격민원(?) 대응 지침, 비슷한 시기에 행해진 요양업무처리규정의 변경, 그 이후에 이어진 공단 이사장과 서울북부지사 차장의 황당한 발언, 하이텍알씨디코리아(주) 조합원들에 대한 요양불승인 결정, 그에서 촉발된 농성과 40일이 넘는 단식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감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안전부분에 대한 부담감을 안 가질 레야 안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작년 국감에서 산재 통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노동부로 하여금 올 해 개정 방안을 마련하게 하는 등 큰 성과도 있었기에 부담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국감 전체 기획 단계에서부터 근로복지공단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국감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낱낱이 한 번 밝혀보리라, 굳은 각오를 다졌다. 산업안전부문을 관장하는 여러 기관 중에서도 근로복지공단에 특히 주목하였던 것은, 객관적으로는 올해 들어 앞에서 말한 그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고 주관적으로는 산재 발생 이후의 권리 보장 문제를 다루는 근로복지공단 업무가 내게는 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당시 산재보험법 개정안 마련 작업을 막 끝낸 시점이라 산재보험과 관련된 논쟁을 국감으로 이어갈 필요성도 있었고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부 민원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올해 국감의 주요 의제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감 전체의 방향과도 일치하였다. 이런 연유로 의원실은 올해 국감의 주 공략 대상으로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라고 함)을 설정하였다. 그 이후 남은 과제는 공단을 공략할 전략과 전술을 효과적으로 수립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산재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안전공단에 대한 대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2. 준비과정
국정감사라는 것이 일정 기간 동안 전체 기관을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각 기관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다. 공단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전체 국감 일정 중 공단에 배정된 날짜는 고작 하루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여러 기관(장애인고용촉진공단, 산업안전공단 등)과 함께 배정되기 때문에 하루 전체가 다 배정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 하루 국감 일정 중 한 의원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이다. 그것도 각 기관장의 답변을 포함한 시간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이번 국감 기간 중 한 기관에 배정된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의원실은 한 기관을 대상으로 2-3개의 의제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질의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 의원실도 다른 기관에 대해서는 불가불 그런 식으로 국감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공단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올해 국감을 통해서는 공단의 전체적인 면면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장벽을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해 낸 방안이 바로 공단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단의 행정실태를 자료집에 담아 배포하면 국감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될 경우 공단에 대한 이른바 ‘사회적 감사’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단에 대한 감사계획을 위와 같이 세우고 보니, 그 준비과정이 문제였다. 공단의 방대한 행정을 짧은 시간 안에 나 혼자 분석하여 자료집까지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에 산재법 개정안 마련 작업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이 동지들 역시 공단 행정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여서 나의 요청에 순순히 응해 주었다(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산재문제에 깊은 관심과 식견을 두루 갖춘 동지들의 동참으로 공단에 대한 국감 준비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애당초 공단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 분석을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에, 산재법과 공단의 업무편람 및 교육자료 등을 함께 읽어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그런 자료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공단 행정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토론 과정을 통해 그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는 자료 목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번 국감 때 요청한 자료요청서만도 20페이지, 100여 항목에 이르렀다.
3. 국감에서 제기한 의제들
위와 같은 자료를 통해 공단에 대한 이번 국감에서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첫째, 질환종류별 요양승인 실태와 관련, 암․간질환․정신질환 등 사회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척추추간판탈출증․척추추간판팽윤 등 노동자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환의 승인실태를 살펴보았다. 노동자들이 업무와 관련하여 자살에 이르는 실태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3년간 암에 대한 요양신청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비율이 17.7%에 불과한 사실이 드러났다. 암 종류별로는, △ 간암의 경우 총 257건의 신청 중 48건(18.6%)이, △ 백혈병의 경우 총 49건의 신청 중 10건(20%)이, △ 폐암의 경우 총 154건의 신청 중 48건(31%)이, △ 기타 암의 경우 총 135건의 신청 중 단 3건(2.2%)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것으로 밝혀졌고, 위암과 전립선암의 경우 각 52건과 4건의 신청 중 단 한 건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외에도 근골격계 질환의 불승인 비율이, △2001년도에는 8.1%(144건/1,778건), △ 2002년도에는 6.7%(131건/1,958건), △2003년도에는 6.3%(304건/4,836건), △2004년도에는 9.85(449건/4,561건), △2005년도에는 18.1%(359건/1,984건)로 2004년도 이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고, 척추추간판탈출증의 불승인 비율도 2003년도에는 25.6%(3,541건/12,370건), 2004년도에는 31.5%(3,814건/12,121건)이던 것이 2005년도에는 41.2%(3,843건/6.534건)에 이르러 2005년도에 들어 급격히 증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근골격계 질환의 불승인 비율이 이처럼 높아지는 시점은 공교롭게도 공단이 2004년 11월과 12월에 ‘근골격계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 지침’과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조사위원회 운영규정’을 제정하면서부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산재보험 적용과 요양 업무 실태
둘째, 산재보험 적용업무 실태와 관련하여,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실태, △가족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실태, △노조전임자의 산재보험 적용실태, △요양신청을 반려한 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실태가 매우 미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공단이 사업주의 가족 노동자와 노조전임자에 대해 행하는 보험적용 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단이 요양신청을 반려하는 주된 사유가 신청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 및 산재법상 적용제외 사업장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셋째, 요양업무 실태와 관련하여, △지난 3년간 업무상 질병과 업무상 사고의 승인 실태와 소송실태, △요양신청서 작성 항목 중 사업주 날인란의 문제, △추가상병신청과 재요양신청 사건의 승인실태, △자문의사협의회 운영실태, △특진운영실태, △산재지정 의료기관의 실태, △심사를 담당하는 공단심사실과 재심사를 담당하는 노동부 산재보험심사위원회의 운영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업무상질병의 승인률은 약 80%(다만 주요 도시의 경우에는 50%대에 불과하였다)이고 업무상사고의 승인률은 약 96%라고 하는 사실, △공단이 소송에서 패소하는 비율이 약 20%라고 하는 사실, △공단은 소속 근로자 여부 및 재해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업주 날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런 점은 사업주 날인이 없어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 반해 사업주 날인이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재해신청 자체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사실, △재요양 승인률이 최초 요양 승인률보다 낮은 75%대라는 사실, △지사별 자문의사 중 산업의학전문의의 비율이 7%에 불과한 사실(63명/892명), △자문의사협의회의 개최 여부 및 운영실태가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지사장 재량이나 관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 △특진 실시 역시 지사장 재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 △우리나라 5대병원(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이 모두 산재지정의료기관이 아닌 사실, △심사업무가 심사장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 심사장이 대부분 보상업무를 수행했거나 수행할 예정인 자들이라서 공정한 심사를 행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실, △재심사 과정에서 한 사건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5분 정도에 불과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었다.
보상업무의 문제점
넷째, 보상업무와 관련하여, △평균임금 증감 실태, △이종요양비 지급실태, △요양급여 범위의 조정실태, △한방급여 지급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당사자가 평균임금 자동증감 신청을 하지 않아 손해를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일부나마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산재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과잉진료로 인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건강보험 수가에는 포함되지 않더라도 공단 이사장의 신청과 노동부장관의 승인으로 산재보험 수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제도가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한방요양환자의 수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외에도 하이텍알씨디코리아(주) 노조원들에 대한 요양불승인 결정의 타당성 여부도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이와 관련 단병호 의원은 위 회사의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왕따’라인을 구성하고 ‘왕따’ 라인을 비추는 별도의 CCTV를 설치하여 관리자들로 하여금 상시적인 감시․통제를 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것이 “적응장애를 유발시킬 정도의 자극요인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부당하고 쟁의 후 노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빚어진 일을 쟁위행위와 연속된 노조활동이라고 하여 마치 쟁의행위 중에 발생한 일인 것처럼 판단한 것은 자의적인 법 집행이라고 추궁하였다. 단병호 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도 서울대병원 노조원 면담시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경위에 대해 추궁하면서 재발 방지를 촉구하였다.
한편, 산업안전공단에 대한 감사에서는 △석면피해확산 문제, △지하노동자 및 화학장치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 △산업안전공단의 사업계획 수립 방식의 문제, △이주노동자의 산재율 증가 및 유해물질 노출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석면 사업장에서 다수 발생하는 종피종 환자에 대한 건강수첩 발급 및 병력 발생원인 역추적 등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지하노동자 및 화학장치산업에 대한 근로조건 기준 설정 및 작업환경측정과 역학조사 등을 2006년 사업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하였고, 이주 노동자 사업장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안전예방에 힘쓰겠다고 약속하였다. 김영주 의원은 건설현장의 산재 은폐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였고 노동부는 그에 대한 실태 조사를 약속하였다.
4. 성과와 한계
이번 국감의 성과로 들 수 있는 것은, 공단의 요양 업무 행정에 대해 포괄적이고 전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여 공단의 행정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저지할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라는 기구를 꾸려 산재보상 체계 개선을 계획하고 있고 공단은 행정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산재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해 나가고 있는데, 이번 국회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함과 아울러 산재보상보험 업무에 대해 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정부 주도의 일방적 개편 방안을 저지할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국감을 통해 공단이 구체적으로 약속한 제도 개선 사항은, △요양신청서의 사업주 날인 란을 폐지하는 방안과 사업주 날인란을 폐지하지는 않는 대신 사업주가 거부할 경우에는 사업주 날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를 기재하는 것을 검토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 부의안에 담당 직원의 의견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주치의의 소견을 반드시 기재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에 산업의학 전문의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 △치료종결 여부를 결정할 때 자문의사협의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철저히 시행하겠다, △주치의사와 자문의사의 소견이 다른 경우 등 자문의사협의회를 거쳐야 하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최대한 협의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 개최시 5인 이상이 참석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 하겠다, △재요양 승인시 평균임금 산정 시점을 정함에 있어 피재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 등이다.
한편, 국감을 끝내놓고 뒤돌아보니 이번 국감에서 공단과 노동계가 대립했던 사안들에 대해 근본적 개선 방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대처하지 못했던 것, 현장의 요구를 전부 다 반영하지는 못했던 것, 전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는 공단 행정의 문제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던 것, 이번 국감을 통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핵심과제를 선정하지 못했던 것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점들이 바로 이번 국감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5. 향후 과제 및 계획
일단 국감에서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공단 및 노동부가 개선을 약속한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 국감에 미처 반영하지 못한 내용들이 향후 상임위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어차피 국정감사라고 하는 제한된 틀 속에 현장의 요구들을 전부 수용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상임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상시국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제도 개선 없이 현재 상황에서도 ‘상시국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의원실의 판단이다. 이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임위 활용에 대한 의지와 기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시국감의 방침 속에서 현장 및 제 산업안전보건 단체들과 체계적 연대의 틀을 다지는 것도 향후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서적 교감의 차원을 넘어서서 민중운동 진영의 대 의회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연대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의원실의 판단이다. 의회의 기능이 부풀려져서도 안 되고 의회를 통한 운동 방식만 고집해서도 안 되지만, 의회가 제도 개선을 이루는 데 있어 유용한 공간인 것은 틀림없는 이상 그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원실은 향후 현장 및 단체들과 연대하여 국감뿐만 아니라 일상적 상임위를 통해서도 산재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6. 마무리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감사가 있던 날, 비가 많이 왔다. 공단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옷이 다 젖었고 얼굴에도 빗물이 흘러내렸다.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처지에 눈물도 함께 흘리는 노동자들이 분명 많이 있었을 것이다. 감사를 하러 가는 입장이라, 양복을 입고 우산을 쓴 채 대오를 뚫고 감사장 안으로 들어갈 때의 그 복잡한 심사라니. 동지들의 심정을 국감장에서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 런지, 동지들의 분노를 제대로 반영하는 의제를 선정한 것인지 하는 우려부터 농성과 투쟁 단계에서부터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웽웽거렸다. 어쨌든 국감은 끝이 났고 단식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들과 GS 건설 노동자들과 전국 각지의 근골격계질환 노동자들의 고통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지점이 바로 내년 국감과 상임위를 준비하는 출발점임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겨 넣는다.
각주)
1)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 본 근로복지공단 행정의 문제점’ 자료집을 참조하기 바랍니다(www.labordan.net으로 들어가 자료실에 들어가면 위 자료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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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Asbestos Shock
석면공장 주변 주민 피해의 파문
2005년 6월 29일.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쿠보타(Kubota) 회사가 퇴직자를 포함한 노동자에게 석면관련 질환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 쿠보타의 발표에 의하면 ①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석면질환에 의하여 사망한 노동자가 75명(중피종에 의한 사망자 42명)이고, ② 현재 요양 중인 노동자가 18명(중피종에 의한 요양자 4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 주민 3명도 중피종에 결려 회사가 위로금 지급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7월 5일, 석면함유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니치아스 회사가 석면관련 사망자 현황을 발표했다. 니치아스는 1971년까지 청석면을 사용하였고, 1992년까지 갈석면을 사용했던 업체다. 발표에 의하면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석면제품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중피종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20명에 이르고,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41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중피종으로 요양 중인 노동자는 3명, 폐암은 2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고, 석명과의 관련이 의심되는 진폐증 사망자가 39명에 이르며, 요양자도 14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장 외부의 공사관계자로 중피종에 이환되어 사망한 노동자는 15명, 폐암은 10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죽음을 부르는 석면의 공포
니치아스의 피해가 보도된 이틀 후 다시 쿠보타의 석면 피해가 보도되었다. 쿠보타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아내가 중피종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다. 석면 원료 공급을 담당한 남편의 작업복을 빨래할 때 석면에 노출되었다고 추측과 함께 쿠보타 측에서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석면에 관해 피해 실태 파악과 상담 접수 등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업에 의한 석면관련 피해사례가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건축자재 제조, 조선, 열차차량 제조, 석면제품 운수, 석면을 운반하는 항만노동자의 중피종 사망사례가 보도되었다. 경제통상성은 7월 15일 석면제품 제조업체로부터 정보 제공을 받아 공식적인 결과를 발표했는데, 일본 정부가 석면 피해자에 대해 처음으로 밝힌 피해 상황은 사망자 391명, 요양 환자 92명이었다.
또한, 후생노동성이 석면피해가 발생한 기업명을 밝히기 시작하였는데, 후생노동성 노재보상부는 기업 이름을 공개하는 이유로 ① 석면관련 작업 종사 노동자에게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② 주변 주민이 이를 인지하고 확인하기 위해, ③ 관계부처, 지방공공단체 등 석면피해 대책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공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 사망자는 479개 사업장의 739명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석면 노출에 의한 폐암, 중피종 환자의 산재인정 건수를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48.6%, 건설업 43.4%이었으며, 두 업종이 92.0%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조업 가운데 선박제조업(수리업 제외)과 요업․토석제품제조업 순으로 산재 인정된 사업장이 많았고 제조업 전체로 보면, 48.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석면관련 질환에 대한 정보 공개와 보상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석면취급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 공장 주변의 주민까지 석면에 의하여 질병이 발생하였고, 그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석면 규제
일본의 석면 수입은 1970년대에 급격히 늘어 1974년 최대 수입량 35만2천 톤을 기록하였다. 일본 정부가 석면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것은 1971년이었다. 특정화학물질 등 장해예방규칙이 제정되어 석면도 제조, 취급 작업에 있어서 규제 대상이 되었다. 그 내용은 발산방지 설비 설치, 작업 주임자 선임, 작업환경측정 실시 등이었다. 1975년에는 규제가 강화되어 석면 질이 금지되고 발산방지가 강화되었다.
ILO, WHO, 그리고 EU가 갈석면, 청석면을 사용 금지하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갈석면, 청석면을 1995년 사용 금지하게 되었고 백석면은 2004년에 제조와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발전소 등 고온 환경에 있는 배관 연결부분 등에 대한 사용은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20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석면 수입량은 8,000톤에 이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8년부터 전면 금지를 방침으로 내세웠지만, 잇따른 건강피해로 이를 앞당기려는 움직임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석면 사용 규제운동
일본에서 석면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쟁점은 이미 1987년에 터진 적이 있다. 학교나 보육시설, 공공장소에 사용된 석면에 대한 조사와 제거가 사회문제화 된 것이다. 행정적으로 여름 방학 동안에 집중 공사를 실시하면서 언론보도도 줄어들게 되었고, 마치 석면 문제가 끝난 것처럼 인식되었다. 정부도 석면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지만 사용 금지 등에 관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가 노동조합, 시민단체, 소비자단체로 구성되었고, 석면제품 제조 판매를 금지하는 석면규제법 제정을 목표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석면규제법안은 당시 사회당 의원에 의한 입법 발의까지 진행되었는데도 자민당 반대로 폐기되었다.
1993년은 석면제품 제조업체의 노동조합이 석면규제법에 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어 규제법 성립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노총인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는 “석면은 관리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규제법은 관련 산업에서 일하는 자의 생활기반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며 석면 금지가 아니라 “관리사용”을 주장해 규제법 제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석면 규제를 진행시키려고 하는 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고, 사회적 쟁점화를 시도해왔다. 석면 피해를 알려주고 석면에 의한 산재인정을 쌓으면서 사회 이슈화에 노력해온 것이다. 그 결과가 올해 터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책임 그리고 노동조합의 책임
지금 일본에서 석면에 관한 전반적인 경향 내지 방향은 석면의 사용 금지를 향하고 있다.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면서 겨우 이러한 방향을 잡게 되었는데 석면 피해가 긴 잠복기를 겪고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앞으로의 피해 확대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석면의 사용 조사, 제거, 보상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석면의 유해성을 알면서 방치한 정부 책임은 매우 크다. 그리고 동료의 죽음에 직면하면서 석면의 규제에 반대해온 노동조합 책임도 적지 않다. 과거의 공해문제를 보면 가해 기업의 노동조합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노조가 기업별노조로 자기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석면 금지 정책을 내세우지 못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석면 금지의 움직임은 석면과 관계없는 생활을 해오다가 중피종에 걸린 쿠보타 공장 주변의 시민이 공장에서 어떤 식으로 석면이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회사와 교섭을 진행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환자나 가족의 사회적 고발이 석면 금지를 진행시킨 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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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관계맺기에 대한 회화적 비유
Relationship, 나무판위에 아크릴채색, 60x210cm, 2002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필연적으로 맺어야 하는 세상과의 관계라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 어려운 관계맺기에 대한 주제를 이명진은 현상적인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가 복잡한 세상사와 관계를 맺는 현상을 마치 작은 단위의 조각들이 이어지는 모습으로 파악해 작업의 기본적인 구조로서 제시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 하나하나는, 이명진이 여러 방식으로 대상 세계와 만나는 ‘개별적 공간’일 수 있다. 작가는 매일 작은 조각을 만들어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작가가 만났고 쉬었던 개별적 공간이 또 다른 그 개별적 공간들과 계속 패치워크되어 만들어지는 현상은 마치 이질적 세계가 맞물려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한 회화적 비유이다.
1976년 서울 출신인 이명진은 홍익대 회화과 졸업 후, 3회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독특한 부조 형식으로 제시하는 참신한 여성 작가이다.
글쓴이 김지영은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 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동신대 겸임교수,경기대 강사 등을 역임 후, 현재는 독립큐레이터로서 <반 고흐와 서양명작전>을 기획하고 있다.주요 전시기획으로는 <밀레전>,<사람을 닮은 책전>,<살바도르 달리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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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
선입견을 버리고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들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대부분 감은 잡는 듯한 눈치다. 뻔하지 않은가? 아니 뻔하지 않겠는가? 노동계나 경영계의 반응이 대개 이렇다. 이렇다보니 이 제도가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논의조차 잘 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문제를 발굴하고 제기하고 해결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작업장의 최소단위(대개 10~20명 정도의 공정단위)마다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도록 하고, 회사는 선출된 대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시간과 비용 등)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무제한은 아니고, 추후 많은 논의와 협의 그리고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유럽의 여러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일주일에 4시간정도의 활동시간을 법으로 보장한다. 비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기타의 지원사항에 대해서도 별도의 법적 규정은 없다. 대개 세부적인 사항은 사업장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정한다. 노사의 협의기구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며, 노측대표는 노동안전보건대표자들 중에서 구성한다.
것 봐, 뻔하지
일단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자 측에서 보면 꽤 괜찮은 제도요, 사용자 측에서 보면 꽤 괜찮지 않은 제도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따져볼 것도 없이 대개 찬반의견이 정해진다. 이쯤에서 더 이상 이 제도의 취지나 내용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죽어라고 밀어붙이거나 죽어라고 반대하는 수밖에.
어? 이게 아닌데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기존의 노사관계의 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1) 안전보건에 대해서는 협조적 (참여적) 노사관계를 전제로 하며, (2) 산업안전보건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의 단체협상과 분리하자는 것이며, (3) 노동자에게 권한도 부여하지만 동시에 이행책임도 주자는 것이다. 어라? 어째 얘기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지 않는가?
20명마다 한명?, 2만명이면 대표자만 1,000명?
경영계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안전보건대표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대의원이 많은데 각 공정마다 안전보건대표자를 두라고 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엄청난 부담을 가져올 것이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명 정도마다 안전보건대표자를 선출한다면 현장노동자가 20,000명의 경우 안전보건대표자만 1,000명이 된다.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한두 명을 채용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좀 황당해 보이지 않은가? 언뜻 보기에 그런 것 같다. 황당하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거다. 혹시 QC분임조라고 들어보거나 경험해 본 바가 있는가?
QC분임조
최근 들어 업종을 불문하고 품질관리는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품질이 중요해지면서 한두 사람의 전문가가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1년에 한두 번 품질검사를 한다고 해서 품질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품질관리의 핵심은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조직, 그것이 QC분임조이다. 사업장에서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QC분임조를 몇 개나 두는가? 또한 품질조장은 몇 명이나 두는가? 일반적으로 QC품질분임조는 10명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장노동자가 20,000명이라면 분임조대표는 2,000명이 된다. QC분임조와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이다.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가는 기본 원리도 똑 같다.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변형된 노조전임자 제도?
경영계에서 우려하는 두 번째 문제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와 맞물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7년 3월 13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하면서 노조전임자는 임금을 받아서는 아니 되며(제24조제2항)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규정(제81조)한 바 있다. 동법부칙에서 이 조항들은 2001년 12월 31일까지 유예한 바 있으며 2001년 2월 9일 노사정위원회에서 다시 2006년 12월 31일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하여 현재 2006년 12월 31일까지 이 조항들은 유예되어 있다. 따라서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도입하여 유급의 활동시간을 보장하면 노조전임자가 안전보건대표자로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유급의 노조전임자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우려가 되는 사업장이 몇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우려나 부작용은 별론으로 하고 다른 여러 각도에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좀 더 살펴보자.
노동안전보건문제의 노사관계
노사관계는 협력적인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교섭이나 협상은 거시적인 것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산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기업별 노조정책을 고수해 온 우리나라는 거시적인 정치적 문제부터 현장의 안전보건문제까지 많은 노사문제는 모두 기업별 노동조합의 몫이 되어 왔다. 산별노조체제가 발달되어 왔다면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의 상당부분은 산별노조에 맡김으로써 기업단위의 노동조합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기업별 노조는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개별 기업내 복지 등 비교적 협조적인 관계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그야말로 노사협의회 차원에서 노사협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대기업 위주의 전투적 노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산별노조를 억압한 노동정책에 있다고 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문제는 이와 반대되는 차원 즉,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적절한 노사협의기구가 없기 때문에 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떠 넘겨진다. 노동조합은 현장의 관리문제부터 정치적인 투쟁까지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통제와 억압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임금협상이나 기본적인 복지문제에 대한 단체협상을 제대로 체결하는 것도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노동안전보건은 노사관계의 4차 차원에서 가장 낮은 차원, 즉 작업현장에서 항상 제기되고 해결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노동안전보건문제는 노사자치(自治)에 기반을 노사의 자율적 협상보다는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에 의해 사업주가 강행적으로 지켜야 하는 공적 기준에 가깝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자율적 의지에 따라 조합을 결성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단결권),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단체교섭권), 파업과 같은 실력을 행사하는(단체행동권) 권리는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사가 협의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거나 적어도 노사협의를 강제하는 것이 노사는 물론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경우 노사협의를 법적으로 강제화한다.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바로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따라서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참여와 증진에 관한 법’에 의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노동조합의 유무와 관계없이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적 노동통제정책 기조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에서 노사문제나 노동정책은 곧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조정의 문제로 귀결되어 왔기 때문에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같은 강행적 노사협의 및 노사공동결정과 같은 노동정책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대립적 노동정책의 종속변수로만 취급되어 왔다. 특히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현장에서 다룰 기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노동안전보건문제에 대한 노사협상이 단체협상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노사협의가 끝나는 시점과 시작되는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의 일차적인 목표는 단체협약의 체결에 있다. 단협이 체결되면 그 이행은 주로 사업주의 몫이다. 노동조합은 단협의 이행여부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문제는 노사공동결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이 곧 실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작업장의 유해․위험관리는 시설개선이나 적절한 보호장비의 보급 등 사업주의 기본적인 안전조치에 대한 의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부분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공동결정은 노사공동책임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노동안전보건의 분리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이 등장하였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제도가 도입되었는데 공통적인 법제도를 크게 보면 노동법과 보험제도이다. 노동법은 노동보호법률과 계약보호법률로 구분하는데 노동보호법률은 절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계약의 내용에 상관없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기준을 공법적으로 설정하는 것에 해당되고 계약보호법률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계약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단결권과 단체교섭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률을 말한다. 노동안전보건과 최저임금제와 같이 주로 개별적 노사관계에 대한 강행적 기준은 노동보호법률에 해당되며, 흔히 말하는 노동법(노조법 등)은 계약보호법률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노동보호법률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안전보건은 노사가 적당히 계약을 통해 조절이나 침해를 용인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일정한 안전이나 환경기준을 초과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공법적(公法的) 기준이다. 즉, 노사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업주는 사전에 법으로 정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노동자는 이 법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노동법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업주는 국가에 의한 형벌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노동안전보건이 일반적인 노동행정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와 논리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노동안전보건문제는 현장에서 항상 진행되는 노사문제의 최일선이다. 따라서 노사의 참여와 개입 없이는 효과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는 노사참여, 특히 노사참여의 기제(제도)가 된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인 셈이다.
선진국에서의 노동안전보건대표제도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가는 유럽연합(EU)이 1989년 안전보건에 관한 유럽연합지침(EU Directive 89/391)을 채택하면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가 도입되었다. 유럽연합에서는 이 지침을 통해 사업주의 의무를 (1)유해․위험요인을 파악(Risk Identification), (2)평가(Risk Evaluation), (3)개선(Control), 그리고 그 사항에 대해 (4)노동자에게 고지(Risk Notification)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사업장에서 이러한 사업주의 의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동자에게 다음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였다. 법적인 강제사항은 (1)노동자가 안전보건에 대해 의문사항을 언제나 협의․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할 것(Workers' Consultation), (2)노동자가 스스로 대처가 가능하도록 교육․훈련을 제공할 것(Workers' Training), (3)노동자가 참여를 보장할 것(Workers' Participation), (4)단위공정마다 노동자가 직접 선출하는 안전보건대표자를 두도록 할 것(Workers' Safety Representative) 등이다.
유럽연합에서 4R(RI, RE, RC, RN)과 4W(WC, WT, WP, WR)의 체계를 위험성평가제도라고 한다. 위험성평가의 의무는 사업주에게 부과되지만 실제 위험성 평가는 각 공정마다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를 중심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참가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기 사업장에 어떤 유해․위험요인이 있는지 무엇이 가장 위험하고 어떤 것이 덜 위험한지 각각의 위험에 대해 회사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고 노동자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과 훈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노사협의와 공동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지난 15년간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에서의 경험이다.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도입한 국가에서는 대부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많다. 이제 우리도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늦은 감이 든다. 늦어도 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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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재사망과 기업에 대한 징벌적 배상
1. 징벌적 손해배상의 개념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특히 강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법원은 가해자를 징벌하여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다액의 배상금 지불을 명할 수 있는데, 이를 징벌적 손해배상(懲罰的 損害賠償, Punitive Damages)이라고 한다.
즉, 일반적인 손해배상의 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를 요건으로 하여 가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배상을 전보함과 동시에 가해자 및 사회 일반에게 억제적 효과를 갖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특히 악의에 가까운 고의 혹은 결과 발생을 의도적으로 용인하는 정도의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통상의 손해배상 이상의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법치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일반적인 효과가 있으며, 나아가 현대 사회가 국가 공권력, 대기업, 기타 힘 있는 조직과 일반 시민 혹은 소비자, 근로자 등 다수의 분산된 개인의 대결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구조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사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 외국의 입법 사례
이러한 제도가 처음 실시된 곳은 영국인데, 1763년에 법원은 집행관이 불법구금을 한 사건에서 배심원이 현실의 재산적 손해를 넘는 금전손해배상을 평결할 수 있다고 판결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처음 판례로 나타났으나, 찬반론을 거쳐 1964년 이후에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1784년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급된 최초의 판결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에 관한 법리가 인정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네브라스카 및 워싱턴 4개주를 제외한 전역에서 판례에 의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고 있으나(루이지애나와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각 주마다 달라서 현재까지도 일부 주는 원고의 소송비용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미 및 요건도 각기 다른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과다한 배상액 부과의 제한이 문제로 되면서 찬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3. 산재사망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필요성
산재 사망의 경우 현재 유족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보상을 받고, 사용자는 관련 법규의 위반으로 형사처벌(주로 벌금) 되거나 보험료가 인상되는 정도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망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고 더 나아가 이미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그대로 방치하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제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일정액의 벌금이 부과되고 보험료가 일부 인상되는 것으로 끝난다면(물론 위 금액은 산재사망의 보상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이는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가 거꾸로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편, 2002년에 장애인이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의 오작동으로 사망한 발산역 사건의 경우 사망피해자는 1급 장애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었으므로 일실수입에 대한 배상이 전무하였고 따라서 가해자 측의 과실이 크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손해배상으로는 장례비와 일정정도의 위자료만 배상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법원이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상당한 정도의 손해배상을 결정하였고(대법원 2005. 1. 28. 선고 2004다58338 판결),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행위의 피해자였던 수지 김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결과를 낳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고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따른 것이므로 보다 제도적인 문제해결로서 현재의 손해배상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용자 또는 감독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기한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 관련 법규 위반에 의한 불법행위를 근절시켜 법치주의의 수준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그 대안 중의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고 할 수 있다.
4.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시 쟁점
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반대론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손해배상의 범위를 실제 발생하였거나 발생이 확실시되는 경제적 손실로 한정하고 있는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와 상치되며(입법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쟁점입니다),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에서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을 근거로 한 반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1) 기업 활동 위축의 측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기업의 입장에서 항상 소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면 일정한 정도의 불법행위를 감행할 유혹이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현재 한국사회의 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준법의식을 제고하고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서 발달한 징벌적 손해배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기업 중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은 기업 활동 위축이라는 비판이 부분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말해는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법률체계상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
우리나라 법제는 민, 형사 책임이 분리되어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형사벌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기업 활동의 많은 부분이 자유화됨으로써 비형사범죄화되므로 손해배상으로 이를 규율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 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게 된다면 법률체계상의 문제점은 없을 것이다.
(3)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
최근 위자료 액수가 상향 추세에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아직도 지나치게 소액일 뿐 아니라 특히 다수에 대한 경미한 피해인 경우에는 위자료를 아무리 많이 인정해주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위자료의 인상은 해결방식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 도입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쟁점
(1) 도입범위
도입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쟁점 중의 하나는 손해배상 일반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분야에 한정하여 개별적으로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도입 대상을 특정 영역에 한정한다면 어떤 영역에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손해배상 일반의 제도로 도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현재 손해배상 제도는 고의 또는 과실에 근거하여 책임을 묻고 있는데 그 정도가 매우 다양하므로 강화된 요건이 아니면 법관에 따라 엄청난 편차가 발생할 수 있고 나아가 소송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낮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우리의 손해배상 제도가 대륙법계이므로 이질적인 제도임은 틀림없으며,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손해배상제도의 일반적 원칙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목적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 범위는 크게 나누어 첫째, 사회적인 강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의 목적, 둘째, 사회적 약자가 보다 쉽게 소송제도를 통하여 손해를 전보 받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목적 등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강자에 의한 계속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하여 제도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꾸준하게 논의하여 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는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기타 음주운전 관련 부분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노동법 분야에서는 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의 경우에 그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노동법 분야(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 거론되고 있다. 산재 사망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아마도 위에서 거론한 특정 영역 중 노동법 분야에 도입하는 것이 될 것이다.
(2) 손해배상액수
손해배상액수에 대해서는 미국의 예와 같이 일정한 한도를 정하는 것이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구체적으로는 손해배상 액수의 2배 내지 3배를 원칙으로 하고, 구체적인 개인의 손해 액수가 적은 경우는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2배와 3배 사이에서 법관이 소송자료를 보고 판단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인권관련 소송이나 소비자 소송의 경우에는 변호사 보수를 패소자 측에서 전액 부담하는 방식을 도입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변호사 보수란 원고 측에서 실제로 지급하는 구체적인 액수가 아니라 변호사의 노력에 대한 실비용 정산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며, 변호사 보수로 변호사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할 정도여야 할 것이다.
(3) 손해배상금 수령자
징벌적 손해배상의 수령자가 구체적인 개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는데, 이는 소송이라는 행위를 감행하는 위험은 있으나 그 위험이 손해배상의 수배에 이르는 금전적인 보상과 같은 수준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에 대해서는 제한된 금액만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사회단체나 혹은 지방자치단체, 법률관련 단체의 공공기금 등 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5. 산재사망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구체적인 방향
가.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경우
첫째,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그 산재 사망에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방법과 둘째, 근로기준법 제8장 재해보상 부분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특별법을 만드는 경우 특별법의 적용범위에 산재 사망이 포함되도록 하면 될 것이나, 모든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산재 사망 위험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알면서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에도 위에서 검토한 내용들을 새로운 규정으로 만들어 추가하여야 할 것이다.
나. 구체적인 방안
어느 경우에나 손해배상액수의 상한은 실손해액의 2 내지 3배로 하고, 실손해배상액수가 적을 경우 최고액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당사자(유족)는 일부분(실손해액의 1.5배 정도)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과 같은 공공기금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 다른 재해보상 규정들-특히 제85조(유족보상) 및 제86조(장의비)에 구애받지 않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도록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90조(다른 손해배상과의 관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징벌적 의미를 고려하면 배제하여야 할 것이나, 이중 부담을 초래할 수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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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타도! 근로복지공단
‘건강한노동세상’에서 개최한 산재학교에 수강생으로 참여할 때,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실제 수강생들이 현장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발표하도록 한 적이 있다. “여기 노무사도 있죠?” 수강생 중 노무사는 무려 3명이나 되었다. 일단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후 “개인적으로도 산재와 큰 인연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시다가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는 74년도에 있었죠. 30년이 지나 산재사건을 담당하면서 사건의 성패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밥 먹고 사무실 올라갈 때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가면서 밖에 보이는 근로복지공단 건물을 보고 ‘타도 근로복지공단’을 외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타도 근로복지공단” 소리에 몇몇이 웃었던 적이 생각난다.
병원 노동자의 고통... 그리고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
사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산재사건의 특징이다. 이기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실제 소송의 결과는 그렇지도 못하다. 또한, 남들이 다 진다는 사건도 실제 해보면 작은 실마리가 생기고, 그 실마리에서 새로운 결과를 획득할 수 있다.
작년 이맘 때. 지금은 법률원을 나가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는 이은옥 변호사가 나에게 와서 작은 부탁을 한 것이 오늘 소개하는 사건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 노무사님.. 이 사건 판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노무사님이 좀 맡아 주시면 안되요..”그 때야 법률원에 온지 몇 달 안 되어 사건에 대한 두렴이 별로 없었고, 뭐든 부딪치자는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전에 사건을 검토해보니 소장과 감정촉탁서만 제출되었고 그 이후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소장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이건 청구성심병원에서 노조 간부까지 했던 분이였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집단 요양승인(‘전환장애’라는 정신질환)의 당사자였다.
원고는 2003. 3. 7. “추간판탈출증과 양측슬관절 퇴행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03. 4. 14.자로 추간판탈출증은 염좌로만 승인하였고 후자의 상병에 대해서는 불승인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심사와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추후 2004. 1. 27. 원고는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04. 2. 27. 불승인하였다. 요추부위 상병은 탈출이 아닌 퇴행성의 추간판팽윤이며, 무릎부위 또한 퇴행성 질환이므로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공단의 처분 요지였다.
“판사가 원했던 것은 원고(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용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고등학교 때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때 물리치료사를 직접 대면한 것 이외에는 물리치료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운동전문 물리치료사는 말할 것도 없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행한 2001년도 송무세미나 자료집 중 실제 산재담당 판사업무를 하다가 개업한 변호사가 쓴 글을 보더라도 “업무기인성에 대해 당사자의 업무내역에 대한 충실한 입증이 법관의 심증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판사 또한 처음 접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소송의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판사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 통화 목소리도 조금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실제 사무실에 왔을 때 처음 봤을 때 느낌도 전화통화와 마찬가지였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저 판사가 원하는 것은 실제 운동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인데 뭐 좋은 자료가 없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하나는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 관련 외국전공서적이었고 이를 책 속에 있는 업무내역사진을 중심으로 복사․스캔해서 준비서면과 함께 서증자료와 증거CD로 제출하기로 했고, 다른 하나는 물리치료사의 근골격계질환 관련 논문자료였다. 논문자료는 의학전문논문사이트와 학술정보사이트 등을 뒤져서 몇 개를 건질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이제 산재사건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준비서면을 통해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을 재정리하고 이에 대한 증거자료로 외국전공서적을 복사 ․ 스캔한 자료를 첨부하여 근골계질환 발생의 위험성이 높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추간판팽윤과 추간판탈출증과의 구분 모호성 및 추간판팽윤일지라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판례 5개를 첨부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 공단은 CT판독지, 진료기록지, 근전도검사결과지, MRI판독소견 등 각종 원고에 대한 의학적인 자료와 원처분, 심사, 재심사를 통해 축적된 자문의사들의 소견을 근거로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도 원고의 상병은 추간판팽윤이며, 추간판팽윤이 업무상 질병으로 불승인된 판례 4개를 첨부하여 반박에 나섰다.
단초는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장하고 신청한 “추간판탈출증”과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이 명확한 상병임과 동시에 이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감정을 받아낼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뒤 짚을 수 있는 단초는 역시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이라고 판단하고, 기존 2004. 7. 우리가 신청한 서울대병원에 대한 감정을 감정회신이 늦어짐을 설명하고, 빠른 감정을 얻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으로 2005. 1.월경 재촉탁신청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고의 준비서면에 대한 반박서면을 작성하기 위해 원고와 관련된 의학자료를 모두 분석하고 기존 주치의 등의 소견이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고, 다른 사건에서 피고가 팽윤이라고 하였지만 감정결과에서 추간판탈출증이라고 판단한 감정회신서를 증거자료로 첨부한 준비서면을 2005. 3. 제출하였다. (사실 의무기록지나 각종 판독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데 이때 지역 활동을 통해 알고 있는 간호사, 방사선사 등에게 수차례 물어보고 네이버를 검색하면서 지루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세브란스병원의 감정회신서가 도달하였는데, “제5요추 제5천추 추간판의 변성 및 우측 후외방 탈출증”이라는 소견을 보였다. 이를 이익으로 인용하면서 「추간판 탈출증에 있어 수핵의 탈출은 추간판의 후방 및 후외측에서 흔하게 발생되며, 추간판탈출증은 그 탈출된 정도에 따라 돌출 추간판(protruded disc), 탈출 추간판(extruded disc), 격리된 추간판(sequestrated disc)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정형외과학’ (제5판, 대한정형외과학회)의 내용」을 추가하면서, 「원고의 상병이 일부 팽윤의 증상이 있지만 추판탈출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우측 우회방으로 탈출 소견을 보이는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서면을 작성하여 2005. 4.월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무릎부위 상병명에 대한 감정결과가 ‘경미한 퇴행성 관절염과 연고연화증‘인 점, 요추부위에 대한 진단 또한 ’추간판의 변성이 동반된 점, 워녹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상 아무런 이상증상이 동반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강한 반박서면을 제출하고 2005. 5. 3.자로 변론이 종결되었다.
고심과 관련 자료의 분석 끝에, 감정회신서 등을 근거로 추간판팽윤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것을 재강조하는 한편 추간판탈출증은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들병원 홈페이지 자료’와 기존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서 어렵게 찾아낸 판결문(서울행정법원 2002구합22493. 선고 2003. 5. 22. 판결)을 증거자료로 입증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원고의 업무내역 등 기존 제출한 서면내용을 정리하여 2005. 5. 20. 참고서면을 제출하였다.
노동자의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크고 작은 문제점들로 상당한 어려움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원고의 업무내역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점, 둘째 의무기록지와 판독지 등을 해독하여 우리 주장에 맞는 자료를 정리하는 점, 셋째 감정이 추간판팽윤으로 나올 때를 대비하여 추간판팽윤을 분석하여 업무기인성을 강조하는 예비적 논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점, 넷째 감정회신서상 불리한 슬관절 부위 회신을 의학적으로 반박하는 점, 다섯째 원고에 대한 기존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었던 점을 반론하여 입증하는 점 등이 있었다. 이에 반해 원고가 자신의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검색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점, 기존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연구하고 이와 팽윤과의 상이점에 대해 공부하고 판례를 분석하여 서면을 제출해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의미있는 (피고가 탈출을 팽윤이라고 판단하여 불승인 하였던 사건) 감정회신을 받아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분석에서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찾을 수 있었던 점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추간판탈출만이 인정되는 “일부 승”,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결과는 그래도 만족할 만했다. 나 자신에게는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경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이었고 당사자에게는 희망의 단초를 심어줄 수 있었다. “저 노무사님. 일부라도 이길 줄은 몰랐어요. 이 사건 처음 시작할 때 보건의료노조에서 말릴 정도로 안 된다고 했거든요.” 처음 전화통화 때와는 사뭇 다르게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직업이 어렵지만 할 만한가 보다!! 항소심에서 끝장을 봐야겠다.!! “타도 근로복지공단” 오늘도 나의 스트레스는 현재 진행형으로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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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재보험을 둘러싼 전투2 (The Bettle Over W...
번역연재 : 산재보험제도를 둘러싼 전투 ②
자본의 산재보험제도 통제
제임스 엔렌버거 (James N. Ellenberger)
산재보험에 대한 사용자 통제의 강화
사기캠페인은 산재보험의 중요한 조항들에 대하여 사업주들과 보험업자들의 통제권을 부여하기 위한 고의적이고 계산된 캠페인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공격은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부터 시작되었다.
의사 선택에 대한 통제권의 획득
의사는 적절한 의료적 혜택과 치료를 위하여 본질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그들은 또한 의료적 혜택이나 보험급여의 제공에 있어서 “문지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산재보험의 급여 제공은 최초 의사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결정을 하는 의사들의 판단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재해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손상과 장애 정도에 대한 판단을 의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사들은 언제, 어떠한 조건 하에서 산재노동자들이 현장에 복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누가 의사를 선택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은 어떤 노동자가 산재보험급여의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역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주 법률은 의사를 선택하는 권리를 노동자나 사업주 중 어느 한 쪽에만 주고 있는데, 대략 절반 정도의 주들이 선택권을 재해노동자에게 주고 절반 정도는 사업주(또는 보험업자)에게 주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주 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만약 사업주와 보험업자가 의사를 선택하게 될 경우 산재노동자들을 관리의료(Managed Care)1) 체계에 직접적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실율에 대한 통제권 획득
장애로 인한 상실율은 항상 논쟁적인 이슈였다. 대다수의 주는 임금손실 또는 소득능력상실제도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포괄적인 “장애”에 기초한 산재보험제도를 갖추고 있다. 상실율은 연령, 직종, 교육, 그리고 기타 실제 삶의 상태에 관련된 많은 요소들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나 보험업자와 사업주는 물리적인 장애 부분만 보험급여를 인정하는 AMA의 ‘영구장애 평가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를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평가지침의 기준에 따른 장애율이 직접적인 재정적 보상과 장애 정도를 측정하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AMA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2)
산재보험의 급여대상 범위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산재보험법이 “지나치게 자유롭고” 혹은 그 구성이 너무 산재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청구권의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반복 작업에 의한 재해의 범위를 줄이거나 억제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기왕증 혹은 비직업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들 또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의 결과 등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3)
법적 절차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재해의 작업관련성을 밝히는 “입증책임”에 대하여 변화를 시도하였다. 보험급여의 청구권이 성립하려면, 노동자들은 “분명하고 명백한 증거” 혹은 심지어 “증거의 우세함”에 대해서 입증해야만 한다. 또한, 많은 주에서 법령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유롭게 해석”되거나 혹은 법원이 그러한 방식으로 법을 해석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했는데, 최근 들어와서 산재노동자의 권리가 유리하게 해석되지 않도록 현행 법령이 변화되고 있다. 4)
보험급여의 양과 기간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직업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 보험급여가 낮게 유지되어야 하며 급여가 제공되는 기간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 하더라도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법적 판단을 통해 노동자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보험급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보험급여는 이전의 수입, 기술, 경력, 또는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무관하게 노동자가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구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조차도 그 개인이 사회보험급여의 자격이 있든 없든 간에 65세가 되면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료기록에 대한 통제권 획득
진료기록에 대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는 산재보험에서 존재하지 않는 권리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산재보험업자들은 청구가 이루어질 때 양해각서에 노동자들이 서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구는 노동자들이 가장 취약한 시기에 보험업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의료적, 비의료적 정보가 산재보험업자들에게 위임되고 있다.
법적 대리인의 대표성을 부정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권 획득
보험업자와 사업주들은 무과실원칙의 “소송”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면서 원고의 대리인들이 제도를 “부정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였다. 그 결과 구체적인 행위가 취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법률대리인의 수수료를 삭감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건을 맡으려는 대리인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개악”이 이루어지다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에서 도입되었던 산재보험제도의 개악은 산재보험을 훼손하려는 다른 주로 확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끔찍한 전투 중 하나가 1991년 콜로라도에서 일어났다.
덴버포스트는 일관성 없는 산재보험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사업주 책임이라는 구식 개념이 콜로라도의 법에 편입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에서 적용되었던 수많은 조항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콜로라도의 의원들은 사업주가 산재노동자를 재고용하지 않을 때도 산재보험 급여를 줄이거나 노동자가 단지 ”최대의 의료적 회복“에 도달하자마자 다른 혜택들을 중단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매우 심각한 재해를 입은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영구 장애에 대한 보험급여는 노동자가 65세에 이르렀을 때 자동적으로 중단되었다. 이것은 퇴직연금의 수준 또는 그러한 연금에 대한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사업주에 이해를 대변한 정치인들
새로운 법안은 최근 민주당의 의장이 된 주지사 로이 로머(Roy Romer)에 의해서 서명되었다. 당시 콜로로도 AFL-CIO의 의장이었던 자동차노동자 엘돈 쿠퍼(Eldon Cooper)는 그 법안을 “지난 50년간 콜로라도 의회에 의해서 통과된 최악의 법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그 법안에 대한 로머의 거부권 포기는 모든 산재노동자를 “등 뒤에서 찌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1991년, 메인 주의 공화당 출신 주지사 맥케넌(McKernan)과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 윌슨(Wilson)은 미래에 발의될 산재보험법의 개악을 강제하기 위해 주 예산을 “인질”로 삼았다. 맥케넌은 심지어 노동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10년까지 보험급여 지급을 제한하려는 그의 요구에 의회가 항복할 때까지 주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주기도 했다.
1992년의 선거 기간 동안에 대부분의 주가 산재보험의 개악을 늦추었던 반면, 메인 주는 그해 10월 특별회기 동안 그 사안을 다시 다루었다. 급여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절반을 줄임으로써 산재보험법의 개악이 더욱 강화되었다. 산재사망자의 배우자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전에는 평생 동안 지급되었던 유족급여가 10년 이하로 제한되었다. 모든 보험급여는 고정되었고 생계비 정산(cost-of-living adjustment)은 사라졌다.
개악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다
사업주와 보험업자의 연합은 1993년 산재보험법의 개악에 성공하였다. 네바다, 몬타나, 코네티컷, 아칸소,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네브라스카,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등 많은 주에서 산재보험제도가 훼손당했다. 아칸소 주만 하더라도 존 에프 벌튼 주니어(John F. Burton, Jr.)가 민주당 출신 주지사 짐 게이 터커(Jim Guy Tucker)에게 이러한 변화가 현재도 “악법인 산재보험법을 더욱 나쁘게 만들 것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을 정도로 심각한 개악이 이루어졌다. 민주당이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코네티컷 주도 산재보험의 심각한 후퇴가 발생하였다. 모든 대상에서 보험급여가 1/3로 삭감되었고, 생계비에 대한 보정이 폐지되었고, 머리, 얼굴, 목 부위가 아닌 경우 흉터에 대한 보상이 없어졌다.
이러한 심각한 개악은 미네소타, 서부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켄터키와 같은 주로 이어졌다. 보험업자와 사업주에 의해서 잘 짜여진 각본이 여러 주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관철되었다. 보험업자들이 소유한 평가기관인 ‘산재보험 국가위윈회’(the National Council on Compensation Insurance)조차도 당리당략적 “훼손”에 있어서 그들의 역할에 대한 공을 다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도개혁안의 입법화는 어렵지만 필요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는 사업주들, 보험업자들,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료전문가들 중에서 산재보험제도의 개혁 방안을 조언하는 전문위원회를 지명함으로써 그들의 이해에 복무하고자 하였다. 전문위원회로부터 제기된 괴상한 아이디어들 중에는 산재보험을 강제적인 것이 아닌 자유의사에 맡기도록 만드는 방안, 의료저축구좌(medical saving accounts, MSAs)를 산재보험에 도입하여 노동자들이 비용마련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 사업주에게 의료적 결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의료제공자의 선택에 대한 통제권뿐만 아니라 의료제공자의 결정에 대한 통제권까지!)을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되었다. 당연하게도 깅그리치의 수많은 부유한 후원자들은 이러한 제안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 중에는 전문위원회의 의장인 리차드 스크러쉬(HealthSouth의 사장 ― 많은 산재보험 관리계획에서 중요한 참가자이다)와 골든룰 보험사의 설립자이며 의료저축구좌(MSAs)의 주요 제안자인 팻 루니가 포함되어 있었다. (번역:윤석진/정책국)
<각주>
1) 미국 민간의료보험의 경향 및 특성을 정의한 개념으로서 계약을 통하여 공급자 및 의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가는 일련의 경향 및 특성을 의미함.
2) 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s,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Fourth Edition, p.1/5, 1993.
3) 기왕증의 범위를 삭제하기 위한 캠페인은 Second Injury Funds(SIF)의 폐지를 위한 보험자들의 노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기금들은 만약 노동자들이 이후의 업무관련 상해 또는 질병을 겪을 경우 그 위험에 대해 보상함으로써 고용주들이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을 고용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보험업자들은 '장애인 법률'(ADA)로 인하여 SIFs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물론 ADA는 경영계, 특히 미국 상공회의소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불가피하다 : SIFs의 폐지, 기왕증에 대한 제한, ADA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은 모두 장애인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고용에 대한 기회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플로리다 산재보험법, §44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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