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아키라(鈴木明․42)는 '눈이 많은 고장' 나가노에 태어났다. 1982년에 메이지(明治) 대학에 입학, 학생운동을 하다가, 1990년부터 97년까지 도쿄에서 영세사업장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과 산재직업병 상담활동을 했다. 97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노동건강연대에서 지역노조와 함께 하는 '성수동사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과건강』에 일본의 다양한 노동자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이면서, 함께 나아갈 동지들인 일본 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편집자 -
‘도쿄 동부 노재직업병 센터’ 상근자가 되어 처음에 맡았던 상담은 이주노동자 산재상담이었다. 1990년 가을의 일이었다.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인 R씨의 산재상담은 지역노조를 통해서 들어왔다.
일본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거품 경제 아래 브라질 등 일본계 남미 사람이나 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급증에 대해 정부와 노동성은 1988년 <제6차 고용대책기본계획>을 책정해 전문․기술분야에 대한 외국인 허용과 단순노동은 안 된다는 단순노동 불가정책을 내세웠다. 한편 1989년에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일본계 남미노동자의 취업을 합법화하였다.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에 따라 노동상담도 늘어났다. 임금체불, 해고 그리고 산재. 이러한 노동상담은 지역노조(유니온)나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NGO단체가 맡게 되었다. 이주노동자가 상담을 하자고 하면 그들에게 문을 열고 있는 지역노조 만이 상담에 응해 주었다.
이주노동자는 모국의 친구끼리 공동체를 형성한다. 자기 문제가 해결이 되면 어려운 친구를 데려오므로 지원단체도 남아시아 출신자가 많은 단체, 남미 출신자가 많은 단체 등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어쨌든 800만 명을 조직하는 노총인 ‘연합(RENGO)’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 방안을 세우지 않는 지금, 한 사람이라도 가입할 수 있는 지역노조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있다.
R의 직장은 ‘마치코오바’라 불리는 작은 공장이었는데 낮에 방문하면, 일하는 사람이 이주노동자 네 명밖에 없었다. R과 인도 출신인 형제, 그리고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는 스무 살의 여성이 있었다.
사장은 제품 배달 등 외근이 많아 교섭하기 위해 시간을 잡는 게 어려웠다. 공장 2층에 기숙사가 되어 있고, 거기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했다. 공장은 어둡고, 더럽고 구조적인 하청화에 허덕이는 ‘마치코오바’이었다.
마치=동네, 코오바=공장 인데, 제조업의 말단 구조에 있는 동네공장은 산업 공동화에 따라 경영하기가 어렵다. 자본력이 없는 동네공장은 설비투자도 힘들다. 일본에서는 ‘3K’라는 말을 쓰면서 사람이 일하기 싫은 일터를 표현한다. ”Kiken"(위험하다), “Kitanai"(더럽다), ”Kitsui"(힘들다)가 3K인데 일본인이 일하지 않는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들어 일하고 있다.
R은 연마기계로 손가락이 잘려 버린 산재를 당했다. 작업을 서두르다가 당한 사고였다고 한다.
R의 회사는 산재보험 미가입 회사였는데, 사장에게 호소했는데도 결국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한국의 노동사무소에 해당하는 노동기준감독서에 신고해 감독서 지도로 산재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본 노동법에는 국적조항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산재보험도 마찬가지고 산재보험 미가입이라도 산재 발생시까지 소급해서 가입하면 산재노동자는 구제할 수 있다. 요양신청서, 휴업급여신청서에 사업주증명이 없더라도 ‘사업주가 증명하지 않는다’고 감독서에 제출하면 처리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영세사업장에서는 ‘최저 노동조건인 노동기준법, 최저한 보상인 산재보험’이라는 개념이 사업주에게 없다. 그래서 사업주와의 교섭은 그런 사업주를 설득하는 걸로부터 시작한다. “외국인에게도 산재보험을 할 수 있고 보상되니까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대부분의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 일을 못 하게 되면 제대로 보상도 하지 않는 채 해고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주거지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부동산 유리에 있는 물건 표시에 ‘외국인 불가’라고 써 놓는 것이 일본인이 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를 사업주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가 보증인이 되고 방을 얻거나 공장 부지 안에 있는 컨테이너에 사는 예도 있다. 그러므로 해고는 주거 상실과 직결된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를 기계처럼 대하는 사업주이지만, 상담으로 만난 이주노동자 가운데 사장이나 사업장에 있는 일본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 점에서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나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불만으로 든 것과 차이가 난다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주거지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부동산 유리에 있는 물건 표시에 ‘외국인 불가’라고 써 놓는 것이 일본인이 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를 사업주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이주노동자의 차이라면 투쟁방법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동지인 조합원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일은 있지만, 일본 노조지도부는 이주노동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주노동자도 집회에 참여하고 시위도 같이 하는데 연행, 즉 강제추방 대상인 이주노동자를 앞세우는 게 아니라 일본인이 권력과의 마찰에서 방조제가 되도록 한다. 한국처럼 시위에서 이주노동자가 경찰과 몸싸움하거나 단식농성을 하는 것은 일본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탄압에 맞서는 일본 운동의 역동성이 모자란 것처럼 보인다.
일본 정부의 200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 인구는 1억2700만명. 외국인등록을 한 외국국적 사람은 177만명이다. 이 속에는 일제시대 일본에 살게 된 한국, 대만 출신자와 2세, 3세인 ‘특별영주자’ 50만 명과 영주권을 얻은 ‘일반영주자’ 18만명이 포함된다. 그리고 법무성-입국관리국이 말하는 ‘불법체류자’는 22만 552명이다. 1993년 29만8,646명이 최고치로,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 총노동력인구는 6,889만명이다.
일본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은 주로 주요 전철역에서 실시된다. 그러나 입국관리국은 2004년 2월 14일부터 홈페이지 상에서 ‘불법체류자’에 관한 정보를 접수하기 시작해 시민단체, 변호사회 등으로부터 삭제를 요구받아 있다. 입국관리국은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에게 좋지 않는 외국인을 강제로 국외로 퇴거시키는 것으로 건전한 일본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불법체류자 = 범죄의 온상”이라는 문구는 경찰로부터 발신되고 언론을 통해서 선동되어 있다.
“B는 손가락 끝을 재단기에 잘린 산재를 당해 요양중이고 치유를 기다리는 단계였는데, 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되었다. 거기서 의료기관에 다니고 의사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친구끼리 방을 얻어서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집단으로 살면 이웃 사람의 눈에 띈다.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이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에게 불법체류자로 연행된 예가 있었는데 본인이 산재 상담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도 몇 명이 잡혔다. 산재를 당해 일할 수 없고 요양중인 이주노동자가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연행된 것이다.
S는 식품회사에서 대형 교반기로 팔을 부러뜨린 산재를 당해서 재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요양이 오래 걸리는 S는 매달 정해진 날에 입국관리사무소에 출두하는 것으로 입국관리국이 판단해 풀려나기도 했다.
B는 손가락 끝을 재단기에 잘린 산재를 당해 요양중이고 치유를 기다리는 단계였는데, 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되었다. 거기서 의료기관에 다니고 의사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치료나 임금체불이 있는 경우 입국관리국은 일단 노동채권을 노동자가 얻을 때까지 강제추방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B는 방글라데시 사람인데 인도 여권을 갖고 있었다. 돈을 주면 언제든지 위조 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B가 인도로 갔는지, 방글라데시로 갔는지 궁금하다.
일본인은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다. 구미 사람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갖고 아시아 사람에 대해서는 멸시하는 일본인의 경향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서구 문화 섭취와 아시아 참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천왕제’라는 강력한 장치로 민중을 통제하여 제국주의전쟁에 돌입한 일본은 패전 후도 천왕제 이데올로기를 유지해 왔다. 전후 민주화도 미국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일본 민중은 스스로 천왕제를 단죄하고 침략의 역사를 청산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본정부는 전쟁책임을 다하지 않고 일제의 만행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채 현재에 이르러 최대의 전쟁책임자인 천왕과 천왕제가 남아 있다. ‘만세 일계인 천왕을 받들어 모시는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이 일제시대에 강제되면서 그 잔재를 제거하지 않고 온 일본인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고치기 위해서는 일제 침략사의 청산과 다민족 공생의 시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한다.
대나무는 전통적으로 사군자의 중요한 소재이다. 문인화에서 먹과 붓의 필치를 통해 군자의 인품과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는 동양화가 박병춘의 그림에서는 그것과 사뭇 유사하기도, 사뭇 다르기도 하다. 단순한 형태와 흑백의 단색조 색감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도, 재료와 기법, 그리고 그 정신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 점이 그것이다.
작가는 먹이 아니라 고무의 파편을 오려내어 캔버스에 오려 붙어 일명 ‘고무 대나무’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다가서기 힘든 고귀한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품위 있는 대나무와 하찮은 ‘똥’이라는 소재를 대치시켜 놓았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먹의 운용에 의해 창출된 은은한 색감의 변조보다는 고무의 파편이 가져다주는 단순함과 명확한 도식성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소 희극적인 똥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문인화 속에 삽입시켜 소재와 정신의 일상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제 그 ‘대나무’는 ‘똥’처럼 우리 가까이에 친근하게 함께 하는 대상이다.
작가 박병춘은 1966년생으로 홍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전 7회와 다수의 그룹전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현재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글쓴이 김지영은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후, 동신대 겸임교수, 금산갤러리와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밀레의 여정>, <현실주의>, <사람을 닮은 책> 등 수많은 전시를 기획했고,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전체 취업자의 과반수를 하회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일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노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이요 건강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건강은 개인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는데 또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며 일을 가진 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일자리 유지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기본 수단이 된다. 즉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 내 업무와 관련한 예방의 의무가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할 경우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저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산업보건분야에서 건강의 논의는 대체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고 사고나 부상 등에 제한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건강을 작업장내의 환경에만 초점을 바라봄으로서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요인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별로 많지 않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정책도 주로 여성의 재생산기능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모성보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의 결과로 모성보호의 법개정과 향상이 있었으나 여성이 사회와 노동환경에서 처한 불평등과 건강을 연계한 연구와 정책제언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었다. 특히 여성의 건강을 신체적인 현상으로만 국한하거나 임신, 출산 등 재생산 기능에만 국한하여 바라보는 것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이나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원인, 예컨대 성 분절적인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의 요인이 건강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여성의 불건강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의 결과로서 이해하고, 이러한 불평등의 개선을 통한 건강정책은 부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을 위해서 성별 건강 불평등성을 낳는 기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여성노동자의 건강의 성별차이를 보기 위한 시론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여성의 건강수준의 저하는 사회적 불평등성과 성(gender)이라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여성이 사회에서,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건강은 인간 생리, 보건관리의 조직,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물리적인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규정된다(Health Canada, 2002). 또한 건강은 ‘삶의 질’의 기본적인 차원으로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삶의 질’이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한 기회를 의미한다면, 건강은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자원으로서 볼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교육도 받고, 일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건강은 삶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한 사회 내에서 구성원의 건강수준은 매우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단, 교육을 높게 받은 집단,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보다 많이 향유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건강할 수밖에 없다(UN, 2003; WHO, Rhoades, 1998).
즉, 건강수준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구성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건강불평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사회적 계층과 성(gender) 성(gender)은 성(sex)과는 다른 개념으로 성(sex)이 주로 신체적, 유전적 측면에 강조점을 둔 반면 성(gender)은 여성, 남성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 역할과 사회적인 규범, 인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강과 성(gender)의 연계는 건강이 단지 신체적인 차이가 아닌 사회내의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건강수준이 달라지고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건강상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이다. 한 예로 캐나다의 국가적 차원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불건강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인 수명에서 상위소득계층에 속하는 남성은 하위소득계층 남성에 비해 6년 이상을 살고 여성은 소득계층간 차이가 남성보다는 작게 나타난다. 질병의 경우 그 차이는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상위계층의 남성은 하위계층의 남성에 비해 질병이 없는 상태가 14년이 더 길고 여성의 경우는 그 차이는 8년으로 나타나 경제적 지위가 건강에 미치는 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지표가 건강불평등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성에 의한 중요한 차이가 여전히 각각의 계급수준 안에서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한편 기존의 연구(Ostlin, 2001)에 의하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사회적 지위나 건강결과를 어떻게 측정하던지 관계없이 모든 사회의 남성과 여성에서 보다 나은 건강과 지속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간 총사망률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크기에 대한 분석이 시행된 나라를 보면, 여성에서 보다 적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보고되었다. 또한 총 사망률 수준에서 남성들 사이에서 보이는 커다란 불평등은 여성들에게 흔하지 않거나 반대인 경우가 있다. 반면, 심혈관 질환, 허혈성 심질환의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큰 상대적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계층과 성이 건강수준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여성내부의 차이이다. 여성건강의 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 레슬리 도얄(Doyal, 1995)은 여성과 남성을 단순히 대비하는 것은 한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인종과 계급으로 인한 뚜렷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여성/남성의 비교라는 매우 조야한 방식보다 사회내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서로 연계되고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건강수준이 발생하게 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간의 차이를 극대화하여 여성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 여성내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위치가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은 비슷한 신체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성은 여전히 하위계층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의 건강을 바라볼 때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거나 여성내 집단의 파편화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치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성이라는 요인과 어떻게 작용하여 건강의 불평등을 낳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Status of Canada, 1996; WHO, 1997). 이러한 분석은 고전적인 건강에 대한 책임성 - 의료이용이나 서비스 등에 국한한 - 의 경계를 더욱 확장시켜 제반 사회적 요인과 건강을 연계하여 살펴보고 건강권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Krieger, 1993).
건강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성(gender)이라면 성 인지적인 건강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사회내의 다차원적인 영역에서 성(gender)이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건강의 성별 불평등성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체로 1)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책임, 2) 사회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지위, 3) 여성과 남성의 자원 사용과 자원에 대한 접근, 4)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적 코드, 5) 여성 신체의 독특한 기제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 인지적인 건강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Walters et al, 1995).
일하는 여성의 건강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하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일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특징으로 첫째,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일을 하지 않는가를 먼저 밝혀보아야 한다. 여기에 경제적 필요도, 건강수준, 일에 부여하는 의미, 원하는 일자리 존재여부, 가족 내 여성취업에 대한 태도, 가족-직장양립 가능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여성 즉 실망실업자의 건강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Moss, 2002).
둘째,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불평등한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의 편입으로 인해 여성이 종사하는 산업, 직종, 직무가 남성과 상이하고, 최근 보다 급속하게 다양화되고 있는 유연한 노동으로 인한 비정규직의 여성화 등은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Ferrie 2001, Quinlan et al, 2000).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고용주와 맺는 고용관계의 특성, 직장에서의 제반 규범과 규율의 내용 역시 달라지며 이는 여성의 건강수준과 관련을 맺는다(Benach etl al, 2000; Fuhrer, 1999). 여성은 대체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으며, 조직의 위계 질서에서 볼 때 하층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소규모사업장이나 비정규직으로 종사한다는 점에서 건강 위해요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는 기제가 부족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Duxbury, 1997; Hall, 1989).
셋째, 건강의 위험요인(risk factor)이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각 직업별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은 다양하며 같은 직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하는 직무가 상이하여 건강 위해요인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Messing, 1998; Mergler et al, 1987).
일반적으로 남성에서 건강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기여하는 대부분의 요소(물질적 불리함, 고용상태, 결혼 상태, 직업환경요인, 건강관련행태)가 여성에게도 기여하지만 이러한 건강결정인자의 사회적 패턴에 대한 중요한 성별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는 성 분류적 노동에 기인한 것으로 성에 의해 매우 다양해지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산업화된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소음, 진동, 부적정한 온도, 유기용제,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유기용제 관련 질환, 난청, 진동에 의한 상해, 직업관련사고는 남성에서 훨씬 많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과 연관된 질환은 낮은 사회경제적 그룹에서 보다 많이 나타나게 된다.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 단조로운 작업, 폭력과 부정적 스트레스의 위험, ‘작업의 정신적 긴장과 낮은 결정범위의 복합’ 등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피로감, 반복성 긴장, 직업관련 근골격계질환, 사회심리적 건강문제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하게 나타난다(Griffin et al, 2002; Kilbom et al, 1998). 이럴 경우 남성은 작업장에서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을 제거하는 개입이 근골격계질환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 일수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이 주로 직장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재해나 직업병은 남성노동자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여성도 점차 산업현장에 뛰어 들어감에 따라 일과 관련한 질환도 증가하게 되었다. 여성은 직장에서 남성보다 단순 반복적이고, 일에 대한 통제가 낮으며,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가 만연하고, 직장과 가정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상이하다(정진주, 2002). 이렇게 여성과 남성이 종사하는 일의 내용이나 직무가 남성과 다르기 때문에 여성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는 남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성노동자 위주의 시각과 조사결과를 가지고 여성노동자에게 ‘작은 남성’으로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성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다(Mergler et al, 1987).
넷째, 여성노동자에 대한 건강관리와 불건강한 상태에서 제공되는 보건의료서비스나 보상의 영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건강관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닌 직장에서 건강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를 말하는데, 여성을 위한, 여성의 요구에 기반한 산업보건관리가 시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관리의 정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과 노동환경의 위해요인으로부터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에 대한 치료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환경개선이 얼마나 수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불건강한 상태로 인하여 더 이상 일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자리를 떠난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정진주, 2002).
다섯째, 건강에 관한 인식과 건강증진의 요구가 여성의 불평등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증상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와 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현대의 직업병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근골격계질환 - 목, 어깨, 허리, 손, 팔 등의 통증으로 일컬어짐 -의 경우 같은 중증도의 질환에 걸리더라도 남성이 여성보다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진주, 2002). 이는 흔히 남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강함’에 대비하는 ‘약함’ 이라는 신체적 증상이 근골격계질환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고나 부상은 남성에게 수용하기에 보다 용이하지만 근육과 뼈의 무기력함은 ‘약한 여성’라는 이미지에 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코드 외에 직장에서 여성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고용의 불안정성 등의 불이익이 오면 요구도는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앞 절에서 지적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그림 1과 같다. 향후 일련의 노동시장 과정에서 성인지적인 관점을 가지고 건강의 불평등성을 연구해 볼 필요가 존재한다.
일하는 여성의 업무와 관련한 건강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력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용한 노동력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건강이 보장되어야 하고, 가족 내 성별 분업과 취업에 대한 가족적 지원, 일에 대해 가지는 의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자리가 존재하는 한 노동력으로 유입되어야 한다.
일단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은 고용형태, 산업, 직종, 기업규모 등으로 분리된 시장에 위치하게 되어 건강상의 위해요인의 노출요인과 노출 정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노동과정 내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 건강상 부정적 위험요인도 상이하게 된다. 이러한 면은 거시적인 성 차별적인 노동정책 하에서 구체화된다. 여성은 대체적으로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서비스산업 등에 집중적으로 종사하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남성과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요인이 달라지게 된다. 직장에서 건강관리는 예방대책, 질병발생 이후 보상, 건강문제를 건강문제라고 인식하고 요구하는(empowerment)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여성은 종사상 지위, 소규모 사업장 집중 등으로 인해 예방, 보상, 요구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성별 불평등과 배제에 따라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심각한 경우는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게 된다. 물론 같은 여성집단이라고 할 지라도 더욱 취약한 집단이 존재한다.
건강이 취약한 여성집단은 경제활동기간이 짧게 되므로 노후의 연금수혜도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적 빈곤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와 영위, 사회관계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도 빈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노동력으로 활용되지 못할 경우 기초생활보장이나 자활사업의 대상자가 되어 공식적인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빈곤과 불건강의 상태가 영속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향후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연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내의 다양한 영역 즉, 가족, 노동시장, 노동조건, 사회복지의 다차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은 단순히 작업장내의 위해요인 분석을 넘어서 확대되어야 하고 기술적, 물리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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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OO은 제주시내에 신축 중이던 빌라 공사를 하던 도중 고압선에 감전되어 화상을 입었다. 위 빌라 공사는 △△건설이라는 업체가 수주를 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건설은 그 공사 과정 중 골조 작업 부분을 최OO에게 하도급하였고, 박OO은 하도급을 받은 최OO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최OO이 위 작업을 할 때 △△건설의 직원들이 위 공사 현장에 상주해 있으면서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점검하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최OO은 위 골조 공사를 거의 다 마친 후 각 층에 널러져 있던 자재를 크레인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리려고 하였다. 크레인 작업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이루어졌는데 그 때는 모두 위 건물 뒤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위 날은 유독 위 건물 앞쪽에서 크레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편 거기에는 고압전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설의 직원은 최OO이 위와 같은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방치하였다. 박OO이 건물 아래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자재를 받아 내리던 중 크레인 선이 전선에 닿아 박OO은 고압선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박OO은 위 사고로 오른쪽 어깨와 오른 손에 부상을 입어 오른 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박OO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았다. 최OO을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지는 않았지만, 원수급자인 △△건설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박OO이 요양승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산재보상보험의 적용에 있어서는 사업이 수차의 도급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경우에도 그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기 때문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조), 박OO이 당연히 요양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OO은 치료를 종결하면서 장해 등급 4급(“한 팔을 팔꿈치 관절 이상에서 잃은 사람”)을 받았고, 연금을 선택하였다(4급의 1년치 연금 액수는 평균임금×224일분이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든 관계로 2년치는 선급으로 받았다. 연금을 선택한 경우에도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는 4년분까지, 그렇지 않은 자는 2년분까지 선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위 법 제42조 제5항).
박OO이 이처럼 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았으나 당장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박OO은 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박OO은 최OO과 △△건설 모두를 대상으로,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최OO이 영세업자로서 가진 재산이 없었으므로 △△건설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박OO은 그와 동시에 △△건설의 재산(부동산과 은행 계좌)을 파악하여 가압류를 하였다.
△△건설은 골조공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OO에게 완전히 하도급을 주었으므로 골조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위 사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건설의 주장대로 하도급을 준 원청업체는 하도급 업체가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민법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되어 있다(제757조). 이 규정에 의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책임이 없고, 다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면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위 규정은 완벽한 형태의 도급, 즉 일의 진행 및 완성에 대해 수급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그런 형태의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수급인이 영세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배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에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법원은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두 가지 상황을 인정하였는데, 그 첫째는 하수급인이 공사에 관여한 정도 및 도급인이 사전에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도급인이 직접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이고(1992. 10. 27. 선고 91다30866), 그 둘째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이다.
대법원은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 또는 그 피용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하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급인이 단순히 공사의 운영 및 시공의 정도가 설계도 또는 시방서 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여 공정을 감독하는 데에 불과한 이른바 감리만을 행한 경우에는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았다(1992. 6. 23. 선고 92다2615).
결국 도급인이 감독을 했느냐 감리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법원은 도급인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OO은 위와 같은 판례를 근거로 원청업자인 △△건설에게 기본적인 안전 시설 설치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건설이 감독자로서 사용자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OO은 재판과정에서 △△걸설의 직원이 실제로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 및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건설의 직원이었던 정OO와 크레인기사 구OO 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고 사고 발생 장소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고압선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 시공업자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사실조회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법원은 고압선에 대한 안전조치는 원청업체가 해야 한다는 사실 및 위 공사현장에 병이 파견한 직원 정OO이 현장대리인으로서 공사를 지휘․감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은 그런 사실을 토대로 “피고(△△건설)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로서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정OO)와 동일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던 피고의 수급인(최OO)이 고용한 근로자인 원고(박OO)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 즉 크레인의 작업 위치 및 유로폼의 적재 위치의 적절한 선정을 위한 지휘, 감독과 고압선에 대한 절연조치 등의 안전조치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므로 위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04. 2. 3. 선고 2003가단8083).
법원은 대법원이 인정한 위 두 가지 상황 중 첫 번째 경우를 이 사건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현재 법원은 위험의 공평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청업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향유한 자가 그 위험도 부담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법원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조리노동자는 다양한 음식업종에서 인간의 노동력 재생산 뿐만 아니라 삶의 유지 자체에 필요한 최종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조리’라는 일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존엄한 ‘노동’으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여자나 하는’ 부엌의 허드렛일로 여겨져 평가절하되고, 조리노동자는 ‘식당 아줌마’라는 호칭 아래 이미 냉엄한 노동시장에 편입되어 자본의 이익에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잊혀져 왔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 작업환경 및 그 유해성에 대한 평가 또한 미미하며, 이에 대한 연구 및 관심도 매우 드문 실정이다. 한 조리노동자의 노동사례를 들어보자.
...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하고 서둘러 출근합니다. 출근해서 작업복에 위생모 쓰고 장화신고 긴 앞치마를 두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물에 손톱은 세포가 죽어 물이 차 빠지고, 화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환경에서 무거운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발톱이 검게 죽어 새로 가는 고통도 느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 조리실 내부의 온기와 습도는 살인적인 사우나가 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때문에 시력이 저하되고, 화상의 위험에 늘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들면서, 출근해서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어가면서 한달 꼬박 일해 받은 월급은 약 60만원정도, 유치원생 원비 내고 큰아이 학원비 내고 나면 내 손에는 빈 월급봉투와 허탈만 남게 됩니다...(하영숙,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집에서)
...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하고 서둘러 출근합니다. 출근해서 작업복에 위생모 쓰고 장화신고 긴 앞치마를 두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 뜨거운 물에 손톱은 세포가 죽어 물이 차 빠지고, 화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환경에서 무거운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발톱이 검게 죽어 새로 가는 고통도 느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 조리실 내부의 온기와 습도는 살인적인 사우나가 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때문에 시력이 저하되고, 화상의 위험에 늘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들면서, 출근해서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어가면서 한달 꼬박 일해 받은 월급은 약 60만원정도, 유치원생 원비 내고 큰아이 학원비 내고 나면 내 손에는 빈 월급봉투와 허탈만 남게 됩니다...(하영숙,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집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관심이 증대하는 가운데,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영양사, 급식조리노동자, 사서, 과학실험보조원)의 차별철폐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조리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작업환경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판단하여 노동건강연대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조사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간 학교급식의 문제점 및 대안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시도들은 많았으나, 정작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조리노동자들의 노동과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조사는 크게 설문조사와 인간공학적 평가로 구성되었다. 2003년 7월 중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8명과의 예비면접조사를 통해 설문지 초안을 만들고, 8월 중 예비조사와 노조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설문지를 수정․보완하였다. 초등학교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와 비노출군인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2003년 가을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또 근골격계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2003년 11월 경기도 지역의 일개 초등학교 조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인간공학적 평가도 실시하였다. 다음은 그 조사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급식은 1990년대 들어 급격한 증가를 보이기 시작해 2002년 9월 현재 급식률은 전체학교의 94.6%에 이르고 있다. 학생수로는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초, 중, 고, 특수학교) 전체의 83.1%인 약 650만명이 학교급식을 이용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육체적 노동을 통해 식사를 실질적으로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로서 조리사와 조리보조원이 이에 해당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수는 2002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56,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하루일과를 간단히 살펴보자. 아침 8시-8시30분 사이에 출근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그날의 음식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은 뒤 음식 전처리, 조리에 들어간다. 11시-11시 30분 가량 되면 각 학급에 점심식사를 배식할 준비에 들어가고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12시 20분까지 배식을 끝낸다. 그러고 나면 20-40분 가량 조리노동자들에게도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나마 여건이 좀 나은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서서 점심을 먹고 먹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점심식사 후 식판, 밥판, 국통, 반찬통 등을 수거하고 설거지, 뒷정리를 한다. 오후 4시-4시 30분사이 간단한 위생교육 등을 하고 일과를 마치게 된다.
초등학교 단독조리 급식학교의 규모별 필요인력을 조사한 강명희(1995)의 연구에 의하면 400식 이하의 경우 4.1-4.8명, 401-700식에서는 6.8-8.2명, 701-1000식에서는 9.7-13.5명, 1001-1500식에서는 11.1-14.9명, 1501식이상에서는 10.9-13.3명의 조리노동자가 적정한 인력인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실제 규모별 평균 조리노동자수를 보면, 전체 급식의 80%이상을 차지하는 701식 이상의 규모를 가지는 학교들에서 필요 인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조리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그림1).
한편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위 연구의 필요인력보다 적은, 학생 200명당 1명의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를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리노동자 일인당 평균 급식인원수가 200식을 초과하는 학교도 37.5%에 달해 인력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력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필요한 휴식시간도 보장받을 수 없고 노동강도는 자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학교급식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에게 사고 및 질환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일당임금은 약 28,500원, 급여일수는 일년의 2/3에도 못 미치는 약 233일이었다. 일일 노동시간은 평균 7.6시간이었고, 휴식시간이 있다는 응답이 80.6%에 이르렀으나, 휴식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점심시간이라고 응답해, 점심시간 이외의 휴식시간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학교의 조리환경에 대한 질문에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75%이상이 소음, 고열, 다습한 환경이 심각하다고 응답하였다. 본 조사기간 중 일개 학교를 대상으로 측정한 소음수준도 평균 77dB-90dB 수준으로 소음에 대한 적절한 조치 및 감시가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면접조사 과정 에서 ‘일 몇 년 하다보면 귀가 먹먹한 게 잘 안 들린다’ 라고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실제 소음성 난청이 발생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스팀작업시 배출되는 수증기와 음식 조리시 발생하는 수증기로 인하여 식당은 매우 다습한 환경이다. 이러한 환경은 조리시 발생하는 고열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땀띠 등의 피부질환을 유발시킬 수 있다. 또한 조리시에는 기계 및 기구의 사용이 많기 때문에 화상, 절상 등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게 되며, 항상 물기가 있는 식당의 바닥도 미끄러지는 사고의 한 원인이 된다. 일부 시설이 낙후되고 오래된 작업장의 경우 조명이 어두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누적시켜 사고를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Karasek 모형을 이용한 직무스트레스의 측정에서 조리노동자의 직무재량도 값은 50.0점으로 조사되었다. 이 값은 한 연구를 통해 조사된 우리나라 노동자 직무재량도 평균값에 비해 약 8점 가량 낮은 수치로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경우 업무에 있어 재량도가 매우 낮음을 시사한다. 정신적 직무요구도는 38.4점으로 참고치 평균값에 비해 5점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을 주영수 등(2003)의 연구에서 조사된 국내의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서비스 관련 단순노무자, 고객서비스 사무 종사자, 운전원 및 관련 종사자보다 직무재량도는 낮으면서, 컴퓨터 관련 준전문가 등에 비해 직무요구도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는 직무재량도는 낮고 직무요구도는 높은 전형적인 ‘직무긴장도가 높은 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림2).
직무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 사회적 지지는 20.4점으로 조사되었다. 사회적 지지는 상사에 의한 것과 동료에 의한 것으로 구성되는데, 상사에 의한 지지는 참고치에 비해 낮게 조사된 반면, 동료에 의한 지지는 높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특히 직무불안정성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직무불안정성 점수인 5.7점보다 2.5점 이상 높은 점수를 보여주어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직무불안정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낮은 사회적 지지와 높은 직무불안정성은 직무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림2. 직업군에 따른 직무요구도와 직무재량도의 분포
(02 행정 및 경영관리자, 03 일반관리자, 12 컴퓨터관련 전문가, 13 공학 전문가, 15 교육 전문가, 21 과학관련 기술종사자, 22 컴퓨터관련 준전문가, 23 공학관련 기술종사자, 25 교육 준전문가, 26 경영 및 재정 준전문가, 31 일반사무 관련 종사자, 32 고객서비스 사무 종사자, 44 보안 서비스 종사자, 51 도소매 판매 종사자, 71 추출 및 건설 기능 종사자, 72 금속, 기계 및 관련 기능 종사자, 73 기계설치 및 정비 기능 종사자, 74 정밀기구, 세공 및 수공예 기능 종사자, 81 고정기계장치 및 시스템 조작 종사자, 82 기계 조작원 및 관련 종사자, 83 조립 종사자, 84 운전원 및 관련 종사자, 91 서비스 관련 단순노무 종사자)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서 지난 1년간 사고의 발생율은 34.2%였으며, 전업주부에 비해 위험성이 7.86배나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수치는 조선업 등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비해서도 높은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고열, 다습, 소음, 위험한 기계 및 기구, 미끄러운 바닥 등 작업환경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 일찍 관심을 갖고 현재 많은 연구들과 대책들이 진행 중인 일본의 경우, 사고가 다발하는 원인으로 일하는 사람의 주의력 저하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의력 저하’가 결코 ‘주의력이 원래 부족한’ 어떤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리 주의력을 열심히 유지하자고 해도 피곤해지면 점점 저하되고, 결국 주의부족 상태가 된다. 인간은 그러한 동물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므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의력이 저하되는 원인이 되는 피로가 급격히 쌓이는 것을 방지하도록 적절한 노동강도를 유지하고, 피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휴식시간을 적절하게 설정하고, 기계는 주의력이 떨어질 때에도 충분히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또 만일의 경우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기계에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강도가 높은 국내의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에게도 반드시 환기되고 적용되어야 할 대안이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가 겪는 사고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선 사고내용으로는 화상이 45.4%로 가장 많았다. 화상을 당하는 부위는 팔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손, 다리 순이었다. 화상 다음으로는 등/허리 등이 삐끗하는 것으로 16.8%를 차지하였으며, 바닥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12.6%로 뒤를 이었다. 그 외에 자상 또는 절단, 끼임 등의 사고가 있었다.
1인당 사고빈도는 지난 1년간 1-2회가 69%로 가장 많았으나, 3회 이상도 31%로 나타났다. 사고가 난 경우 중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는 48.9%였으며, 치료비는 75%가 본인이 부담한다고 응답하였으며, 학교부담은 13.6%, 산재보험처리는 9.1%로 조사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처리실태에 대한 한 조사(한국산업안전공단, 2001)에서 산재보험 적용이 18%인 것에 비하면 이것은 매우 낮은 수치이다. 더군다나 사고성 재해에서의 산재보험 처리가 9.1%이므로, 상대적으로 산재처리가 더 까다로운 질병까지 감안하면 전체 사고와 질병에서는 산재처리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현재까지 근무하는 동안 작업 중 다친 경우에도 산재보험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에서는 가벼운 사고여서라는 대답 다음으로 32.3%가 산재신청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라고 응답하였다. 이는 현행 산재인정체계가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고, 재해당사자인 노동자에게 입증 책임이 부과되며, 인정기준 또한 협소하여, 산재보험의 이용에 있어 노동자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은 불편한 자세, 반복작업, 중량물 취급 등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성이 높은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공학적 평가에 따르면 전체 17개의 작업 중 7개의 작업이 매우 위험정도가 높은 작업이고, 9개의 작업이 상당한 정도의 위험작업, 1개의 작업이 비교적 안전한 작업으로 평가되었다.
인간공학적 요인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 또한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학교급식 노동자처럼 부족한 인력으로 일정한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게 되면, 시간당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동일한 시간에 근골격계에 더 많은 부담을 주게 되므로 근골격계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또 근골격계의 긴장을 적절하게 풀어줄 수 있는 휴식시간이 보장이 되지 않는 것, 근무긴장도가 높은 점 등이 근골격계 질환 유발을 가중시키는 셈이다.
실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에서 근골격계 장애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근골격계 자각증상 호소자는 54.3%, 근골격계질환 의심자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람은 26.2%로 조사되어 근골격계 장애의 위험이 매우 높은 직종으로 조사되었다. 전업주부에 비해서도 근골격계질환은 4.89배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은 손/손목. 어깨, 등/허리, 팔, 팔꿈치 순으로 주로 상지와 허리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근골격계 증상 때문에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약 58%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치료에 효과가 있었는냐는 질문에는 약 37%가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작업에 기인한 근골격계 증상의 경우 의학적인 치료만으로는 그리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약 10%는 근골격계 증상으로 인해 조퇴, 결근, 휴직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피부증상은 47.2%가 호소하였으며, 이는 전업주부에 비해 3.22배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질병명을 알고 있는 경우 가장 많은 것은 자극성접촉성피부염(28.9%)이었고, 땀띠(22.2%), 알레르기성접촉성피부염(17.8%) 순이었다. 이는 업무 내내 물과 접촉할 가능성이 크고, 그밖에 각종 세척제 등에 노출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국외의 연구에 의하면, 조리노동자의 피부질환의 경우 40-46%가 자극성접촉성피부염, 약 25%가량이 알레르기성접촉성피부염으로 보고되고 있다. 반면 본 조사 결과 땀띠가 22.2%로 피부질환 중 두 번째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위생작업복을 입은 채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결과로서,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얼마나 미비한지 확인할 수 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이 호소하는 피부질환의 부위는 손/손목, 팔, 등/허리, 다리 순이었다. 증상으로 많은 것은 아프다(39%), 가렵다(22.1%), 얼얼하다(17.2%) 등이었으며, 징후로는 피부가 벗겨지고 두꺼워지는 태선화(30%), 발적(18.8%), 두드러기(18.8%) 등이었다. 피부질환 때문에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약 55.1%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치료에 효과가 있었는냐는 질문에는 근골격계질환과 유사하게 약 39%가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하였다. 이 역시 직업관련성 피부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작업환경 및 노동조건과 관련된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2004년 2월 진행된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에서 노동건강연대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 필요인력 수준으로 인력을 충원하여 노동강도를 낮추고,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 정규직화 및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보장하여 직무불안정성을 해소하고 병가의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이 현실화 되어야 한다.
- 사고나 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 향후 초등학교 외에 위탁급식운영이 많은 중,고등학교에 대해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이 마련되어아 한다.
- 조리노동자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책마련이 되어야 한다.
모쪼록 이 조사결과를 통해 학교급식의 문제 일면에 조리노동자의 가려진 고통이 있음이 드러나고, 나아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하루 쉬지 않고 밥을 짓는 ‘식당 아줌마’들이 ‘조리노동자’로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언론노조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 조합원 임미진입니다.
노조활동하면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왔습니다.
특히나 기업노조가 아닌 지역노조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장시간노동과 영세함, 고용불안 등의 근로조건의 열악한 환경과 인력, 재정, 광범한 지역, 다양한 업종 이라는 지역노조활동에서의 어려움이 한몫을 하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우리 노조에서도 ‘노동안전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라기 보다는, 지금의 우리노조의 상황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생각하면 ‘현장조직 강화와 확대’라는 측면과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근로조건에 대해 어떻게 바꿔나갈까’에 촛점이 맞추어지다보니 노동안전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커다란 산재사고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바꾸게 해준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성수동식구들’이란 모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수동식구들’은 노동건강연대 / 민주노총서울본부 / 서울지역제화노조 /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 / 성동건강복지센터 의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는데 영세사업장이 모여있는 성수동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또 하나는 ‘성수동식구들’과 함께 만든, 포지티브 「POSITIVE(Participation Oriented Safety Improvement by Trade Union Initiative)」활동 즉 ‘노동자의 손으로 작업장을 바꾸는 노동안전활동’인 것입니다.
2003년 2월에 노동건강연대가 제안하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영세사업장이 몰려있는 성수동지역에서 활동하는 성동건강복지센터의 준비로 일본에 있는 ‘전국노동안전위생센터연락회의’ 단체의 영세사업장 활동가인 토야마 나오키 씨를 초청해 ‘포지티브’ 활동을 소개한다고 하였습니다. 노조의 영향이 많이 미치는 큰 공장에서의 사례가 아니라,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작고 영세한 사업장에서의 활동들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영세사업장에서 활동을 했을까?’ 라는 궁금함과 ‘우리 같은 지역노조가 관심을 가져야할 지점이구나!’ 생각하고 몇몇 관심 있는 조합원들과 상근간부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사진과 설명을 들었지만 ‘우리도 가능할까?’ ‘실제 어떤 영향과 결과가 있을까?’ 등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토야마씨가 말한 ‘노동조합의 사명은 노동자의 목숨’이라는 것은 아주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후 그럼 우리도(지금의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우리 노조) 우리의 상황에 맞게 직접한번 해보자! 라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선은 각 노조별로 ‘작업장에서의 노동안전과 내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사전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조직해서 2박3일은 못해도 토요일 오후라도 활용해서 포지티브활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1) 우리노조에서는 우선 상집회의에서 포지티브활동을 소개하고 ‘작업장에서의 불편한 점과 노동자가 노동안전측면에서 개선한 사례, 일하면서 내 몸에 불편한 점’ 등을 게시판토론을 하였습니다.
2) 5월13일에는 노동건강연대를 불러 인쇄노동자의 ‘신나는 일터 건강한 몸 만들기’란 주제로, 조합원을 비롯한 일반 인쇄노동자들을 초대하여 ‘내 몸에서 아픈 곳이나 불편한 곳 2~3가지, 작업장에서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과 개선된 사례’들을 적어내는 방법으로 게시판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토론회 결과 인쇄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소음, 근골격계질환, 복지부분, 유기용제로 인한 영향들로 몸들이 불편해하고 아픈 곳들이 비슷하구나! 알게 되었고, 관련해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옵셋인쇄 일을 하면서 잉크와 기계세척 등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로 인해 음주단속에 걸린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분은 이후에 노조에 가입하였고 지금은 시작단계이지만 노동안전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3) 5월 17일 토요일 5시부터 성동건강복지 센터에 모여들었습니다. 다른 지역노조들도 비슷한 상황이긴 한데 우리노조 조합원들은 토요일 5시면 사실 모이기 힘든 시간입니다. 아직도 토요일에 7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곳이 많거든요. 그래서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하기보다는 조합간부, 특히 지역모임의 장, 그리고 관심 있는 조합원 5명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잘 알아서라기 보다는 ‘도대체 어떤 활동인지 해보자’라는 생각이 더 컸을 겁니다.
먼저 이 활동을 위해 다시 한국에 온 토야마씨 로부터 활동 설명을 듣고, 체크리스트를 갖고 제화공장인 ‘우연실업’에 들어가서 현장을 보면서 설명들은 대로 체크하고 돌아와서, ‘잘된 노동안전 사례’와 ‘가장 쉽게 먼저 바꿀 수 있는 것’ 들을 그룹토론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미있었고, 포지티브활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고, 인쇄사업장이 아니어서 모두들 아쉬워했습니다. 그럼 우리 인쇄 같은 경우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등 여러가지 과제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4) 인쇄노동자들과 게시판토론회결과 ‘보호구를 착용하자’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토론회 때 나온 질의에 홈페이지에 답변을 계속 올려준 노동건강연대 산업의사의 소개로 보호구 전시회에 갖다왔습니다. 노동건강연대의 상근자와 함께 소음에 대응할 수 있는 귀마개와 호흡기, 유기용제용 장갑 등의 견본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인쇄사업장에서 쓸만한 적당한 보호구가 없음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5) 지역에서의 이런 노동안전 활동을 통한 연대활동이 2003년 11월 4-6일, 11-13일 성수동과 을지로 지역에서 진행된 거리집중선전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대부분의 10인 이하 사업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근로계약서 쓰기를 화두로 해서 ‘근로조건 개선은 근로계약서를 쓰면서부터’란 주제로 인쇄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길목을 잡아서 노동상담과 건강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이 기간 중 노동건강연대 산업의사가 나와서 건강상담을 하였고, 성동건강복지센터의 주관으로 진행된 ‘무료건강검진사업’ 신청을 받았습니다. 이날 거리에서 받은 신청서와 조합원들 해서 46명이 신청하였고, 26명이 검진을 받았습니다.
또한 ‘성수동식구들’과 함께 ‘인쇄노동자 살림수첩’을 제작하여 건강상담을 받은 사람과 현장방문 할 때 살림수첩을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살림수첩에는 ‘인쇄와 관련된 정보’ ‘근로기준법’ ‘산재관련 법’ ‘고용보험제도’ ‘근로자복지기본법’ 그리고 인쇄일 하면서 내 몸에 영향을 주는 물질과 예방방법에 관한 ‘인쇄노동자 건강 찾기’ ‘인쇄노조 소개’ 및 ‘사회단체와 취업알선센터 등 의 연락처’를 실었습니다.
6) 지금은 시작단계이지만 노동안전과 관련하여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임에는 노동안전과 관련하여 평상시 관심이 많았던 정OO 조합원과 게시판토론회에 참여했던 박OO 조합원이 함께 하고 있는데, 우선은 보호구 전시회에서 가져온 귀마개 등의 보호구를 써보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보호구가 워낙 귀찮고 불편하다는 평가가 나와 작업장에 직접 가서 바꿔볼 수 있는지 체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11월 24일 월요일 저녁에 체크리스트를 들고 인쇄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업장은 2교대인데 밤에 근무하는 조합원이 있어서 함께 체크하였습니다. 다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마무리하며
노동조합의 사명은 노동자의 목숨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관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노조활동에 생기가 돌고 달라집니다.
포지티브활동을 하면서 인쇄현장을 다니며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바꾼 사례를 찾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현장을 무수히도 다녔지만 노동안전에 대해 보는 눈이 달라졌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례들은 노동자들의 지혜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아주 훌륭한 현장 조직 활동가는 가장 쉬운 쟁점(고리)에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시판 토론을 하면서도 알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의 불편하고 아픈 점을 이야기했을 때 너도나도 이야기했고 비슷한 점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영세사업장이 많고 지역적으로 몰려있다면 이 활동을 활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역이 몰려있어서 근접해있는 조합원들이 평상시 현장을 오가면서 굳이 훈련할 수 있는 날을 정하지 않고서도 체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노조에서도 당장 포지티브활동을 하기 어렵다면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바꾼 사례들을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참고]
1. 인쇄노조 조합원 노동안전보건 게시판 토론회(5.13) 결과
내 몸에 아픈곳이나 불편한 곳을 두,세가지씩 적어 내는 방법으로 진행했는데,
우선 내몸에 불편한곳을 묻는 질문에는
허리, 다리, 어깨와 관절의 통증을 호소하는 이른바,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많이 나타났고, 그 뒤를 이어 장시간 노동에 따른 피로의 누적과 시력저하, 그리고 유기용제 취급 등으로 인한 피부질환 등으로 나타났다.
작업장에서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은
편안한 작업자세를 갖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부분이 지적되었고, 작업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한 운반과 보관, 그리고 동선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되었다.
또한 소음과 유기용제등 유독성 약물의 취급 개선, 먼지 비산잉크 등으로 인한 공기오염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 작업 후에 청결히 씻을 수 있는 세면장이나 화장실 시설의 확보가 가장 필요하다고 하였다.
2. 지역노조와 함께 하는 노동안전보건활동 하루 프로그램 - 포지티브훈련- (5.17) 평가
인쇄노조 참가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박O천
실제 체크리스트 하러 방문한 공장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성과를 듣고 싶다. 이런 활동이 궁금해서 참가했는데, 인쇄공장에서도 실시하여 실제로 바꾸면 좋겠다.
최O현
노동안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고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쇄의 대부분은 영세하고 작은 공간이고 임대하기 때문에 내부를 안전시설과 관련하여 바꾸는 것이 쉽지 않는데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할 수 있겠다
공장 내에서 바꾸어갈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안전활동 교육은 필요하다.
김O란
규모, 임대면에서 차이가 있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기용제 등 경각심을 주어서 건강하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교육이었다.
성수, 을지로, 업종별로 구분해서 해보면 좋겠다. 주기(한달정도이든)를 잡아서 장기적으로 활동했으면 좋겠다. 인쇄사업장을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고O호
내 직장만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연대의 관점에서, 다른 업종을 포괄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하여 무엇을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주변의 여러 노동자들과 함께 알아보는 자리였다.
이번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할 수 있다면 노동자끼리 머리 맞대고 생각할 수 있겠다.
노동자들이 발전적 전망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연대 고리를 만들었다.
여유있게 여러 사업장에 가서 포괄적으로 했다면 좋겠다. 일회적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는 것이 의의가 있겠다. 조금만 생각하면 지혜롭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임O진
우리는 현재 인쇄현장을 장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상황에 맞게 이후 적용시킬 수 있겠다
인쇄현장을 다니면서 노동안전에 대한 보는 눈이 달라졌다.
보호구 착용과 관련한 설명 홍보는 노조에서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사업이다.
노동안전 측면에서 자료수집이라도 할 수 있는 작은 소모임부터라도 시작하면 좋겠다
학생들의 여름방학, 겨울방학과 노동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아니 상관이 있다면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방학일 때 ‘내 아들이, 내 딸이 방학이구나’ 하거나 ‘아이들의 방학에 무얼 해줄까’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노동세상>의 노동안전보건학교를 참가하는 동지라면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이 되면 해야 할 또 하나의 것이 있지요.
새벽같이 출근하여 하루종일 작업장에서 일하고 피곤한 몸이 되어 지쳐있지만 그래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장에서의 더 많은 활동을 위하여 노동자들은 학교에 참가합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공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올 겨울방학에도 <건강한노동세상>의 노동안전보건학교는 지역의 건강권에 관심있는 동지들의 참가로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안전보건학교란?
노동안전보건학교는 <건강한노동세상>에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의 기회를 갖기 위해 인천지역에서 2001년부터 시작한 교육사업으로 겨울과 여름 2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있고, 겨울에는 심화학습으로 10주간의 학교를, 여름에는 교양강좌로 4주간에 걸쳐 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안전보건학교가 어느덧 자리를 잡아 이제 벌써 7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7기가 될 때까지 굉장히 많은 수강생들이 거쳐 갔는데, 1기부터 7기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가한 동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인연이 되어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된 동지들도 있고, <건강한노동세상>의 회원이 되어 자신들의 작업장을 넘어서 지역의 안전보건 활동에, 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동지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건강한노동세상>의 노동안전보건학교가 인연이 되어 지금의 상근자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예전에 한 사업장의 보건관리자로 있다 누군가 가르쳐 주는 것 없이 혼자 고민하며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었던 적이 있었고, 산업재해 처리조차 할 줄 몰라 쩔쩔 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했던 사업장의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건강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오직 회사가 지시하는 정도의 업무만 할 수 있었죠.
그 시기에 저의 답답한 현실을 해결해 준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건강한노동세상>의 전신인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로 만나 노동안전보건학교 2기를 참가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공부하며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저는 이 단체에서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노동안전보건학교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또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동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안전보건학교가 주요한 교육사업으로 굳건히 자리잡기까지 많은 동지들이 열의와 관심으로 지금껏 쉬지 않고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사업을 꾸준히 진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열정으로 지역의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초기에는 20명 정도가 꾸준히 참가하다 점차 가까운 서울지역 동지들이, 그리고 다소 먼 거리에 있지만 충청권에 있는 동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수가 더해질수록 참여하는 수강생들도 점차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기가 시작되기 전에 충청지역에서는 수강생들의 요구로 충청지역 노동안전보건학교를 총8강의 내용으로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안전보건학교가 정말 많은 동지들의 관심으로 진행이 되었을때에는 교육관에 모두 들어갈 수가 없어 강의실을 옮겨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참 행복한 고민이었죠!
그 동안에 노동안전보건학교에서의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에 관련한 교육(노동안전보건과 근골격계, 작업장 속에서 들여다본 근골격계, 근골격계 질환의 의학적 의미와 관리방안, 근골격계질환의 관련법규의 해석, 현장에서 대처해야 할 내용, 노동강도 및 작업환경 평가방법의 적용, 예방프로그램 등)이 가장 많았고, 그 외에 산재보상보험법과 실무, 산업안전보건법의 활용, 직무스트레스의 원인과 예방기법, 작업독성학, 작업장의 분진관리,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활동, 노동조합에서 산안활동가의 자세 등 그 외에 다양한 교육주제를 가지고 노동안전보건학교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7기 노동안전보건학교에서는 노동조합에서 산안간부를 맡게 되거나 처음 결합하는 동지들을 위한 교육의 내용과 1기부터 계속적으로 참여한 동지들의 교육내용을 조금 달리하여 좀 더 진전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따로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관한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이제껏 진행해왔던 노동안전보건학교를 통해 새로운 시도와 함께, 보다 진전된 노동안전보건활동의 고민들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요즘 노동자건강권 단체들이 점차 교육에 대한 내용들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또 진행하고 있고 일회적인 교육을 넘어 점차 안정적인 고민의 틀로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열매가 맺기까지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듯이 노동안전보건학교도 노동자들의 건강할 권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 가기 위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내용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고 또 격려해주세요.
1917년 구소련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최초로 채택하고, ILO에서는 1935년에 1주 40시간 노동을 제47호 조약으로 발호하였습니다.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움 삶 쟁취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ILO에 의한 보편성은 이미 세계의 상식이 되어 있고 여기에 기반을 둔 나라들은 좀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제기준은 뒷전으로 하고 세계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주40시간을 지난 2003년 8월에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시기가 1991년이므로 세계의 보편적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주40시간노동을 한국이 대놓고 무시해왔던 기간은 무려 십수년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한국은 산재왕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50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노동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여 이로 인하여 산업재해가 다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OECD 국가중 연간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상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2002년도 OECD 주요국 연간노동시간
한국이 주40시간제를 채택하기 약 5개월전 프랑스는 주35시간 법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우리의 노동법이 선진국 수준으로 볼 때는 아직도 ‘정체(停滯)’ 그대로의 상황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주5일제 도입논의는 IMF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법제화와 함께 일자리나누기(work-sharing)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차일피일 미뤄져오다가 정부안이 작년 8월에 법제화된 것입니다. 정부안이 통과되다보니 오히려 개악된 부분 또한 많습니다.
개정된 내용으론 우선 법정근로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되었으며, 월차유급휴가를 아예 삭제하고 연차유급휴가를 대폭 축소하였습니다. 또한 여성노동자의 경우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를 무급화시켰으며 노동자 건강을 훼손할 위험이 높은 변형근로시간제를 확대하였습니다. 주40시간으로의 단축을 제외하곤 개악된 법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자본의 대표격인 경총에선 지침을 발표하였는데,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초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5일은 7시간, 1일은 5시간 혹은 1일 7시간 15분, 격주 주휴 2일제 형태등을 제시하면서 기형적인 40시간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주40시간으로의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연속된 2일간의 휴무 보장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있으므로 경총의 위와 같은 기형적 주40시간 지침은 자의적인 아전인수격 해석에 불과합니다.
어떻든 주40시간 즉 주5일제는 장시간노동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한국노동자들에겐 분명 유익한 것임엔 분명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저임금 상태의 대다수의 한국노동자들이 이틀간의 휴일을 선택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왜냐하면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임금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은 부칙에서 사업주의 임금보전의무를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이미 해석을 내린 바 있습니다.
또한 주5일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도별로 사업장 단계에 따라 실시하기 때문에 50인 미만의 한국의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주5일제는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한국의 노동현실을 무시하고 형식적으로 도입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나, 주5일제가 실질적으로 적용될 경우 근로시간단축은 분명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노동자 건강권 쟁취에 이바지할 것임엔 틀림없을 것입니다.
주5일제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감소를 도모하고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를 제공하여 노동력의 재생산 재충전에 기여하고 삶의 질을 개선시킬 여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 위해선 일정요건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금보전의 문제와 여가를 영위할 수 있는 사회복지 인프라의 구축, 재교육차원의 자기개발의 기회 제공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등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기반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5일제를 시행한다면 70%에 육박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모면하기 위하여 시간외 및 휴일근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본의 노동착취는 여전할 것이며, 개악된 근로기준법 내용을 이용하여 주5일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기형적 형태의 변형근로시간제를 운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IMF이후 대대적으로 단행된 구조조정이후 한국의 노동현실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대표되는 고용불안 문제와 살인적인 노동강도강화로 인한 산업재해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년 2,700여명이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약 8만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5일제가 명실공히 산업재해와 직업병 감소를 도모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고 과로에 노출되지 않도록 실시되려면 고용안정의 문제 또한 연동해서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5일제가 현실적으로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선 임금삭감없이 적용되어야만 하며 사회복지 및 교육 인프라의 구축 , 그리고 무엇보다 고용안정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제반 여건 위에 시행되는 주5일제야말로 노동자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 산재사망이 너무 처참하다.
날마다 기계에 깔려 죽고,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폭발사고로 타 죽는 노동자 소식이다.
진해의 STX조선소에서 일하는 27살 젊은 비정규직 아빠는 어린이날 일하러 갔다가 기다리는 두아이들 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청소용역업체 소속으로 기아자동차에서 일하던 67세의 늙은 여성노동자는 공장안에서 차에 깔려 죽었다.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없는 살림 비정규직으로 일해서 한푼이라도 보탤려고 일하러 간 곳이 전쟁터였고 무덤이 될 줄이야.
최소한의 안전조치만 했어도 안 일어날 수 있을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데도 사업주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정부의 역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날마다 전해지는 노동자 산재사망 소식보다, 지난해 산재사망자가 12%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보다, 우릴 더 분노케 하는 것은, 노동자의 죽음 앞에 반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는 정부의 태도이다.
반복적이고 악질적인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노동건강연대는 몇 년 전부터 주장해왔다. 캐나다나 호주에서 이미 통과되었거나 입법과정 중에 있는 ‘기업살인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는 각국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겠지만 공통적으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주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 자유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기업의 활동이 가장 철저하게 보호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이런 사회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003년 민주당의 존 콜진 의원은 '부당한 죽음에 관한 책임법 (Wrongful Death Accountability Act)'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안전보건법률의 고의적인 위반(wilful violation)에 의한 산재사망에 대하여 사업주의 처벌을 형법상 살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기준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12월, 특집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를 3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사업주 형사처벌의 필요성을 생생한 사례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특집기사에서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지난 20년 동안, 기업주가 ‘고의적으로‘ 안전보건 제도를 위반해 일어난 1200건의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해 90% 이상 형사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폭로하였다. 이 특집기사는 결론적으로 현재의 안전보건제도에 대한 인식전환과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래의 순서로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될 특집기사를 통해 미국사회에서 산재사망과 관련된 최근의 흐름과 그 밑에 깔려있는 문제의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제한적인 비정규직 확산과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완화, 친자본적인 정부정책 속에 오늘도 8명씩 죽어 가는 우리의 처참한 현실을 이제는 깨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 뉴욕타임즈 특집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연재순서>
부검에서 확인되었듯 패트릭 월터스의 사망은 사고 직후 바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2002년 6월 14일, 3m 깊이에서 하수구 배관 공사를 하던 중에 그는 쓰레기 더미와 진흙 속에 파묻혀 버렸다. 배관공의 도제로 일하던 22살의 패트릭은 진흙더미에서 탈출하려고 버둥거렸으나 헛수고였다. 진흙들이 그의 가슴을 채우기 시작하였고, 엄청난 무게가 서서히 가슴을 조이고, 끝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패트릭의 어머니, 미첼 마트는 비통해했다. 그는 단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들을 수도, 숨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패트릭의 부인 크리스탈에게 전화를 했다. 크리스탈은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아이를 끌어안고 ‘어떻게 이 사실을 설명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검시관이 왔을 때 어머니는 패트릭이 산채로 파묻힐까봐 두렵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시관은 금속상자 같은 안전장비 없이 깊은 갱으로 들어간 상황을 아쉬워했다.
1989년 같은 뫼브스배관 회사에서 또다른 죽음이 일어난 적이 있다. 상황은 거의 같아서, 갱도는 깊었으며, 안전상자는 없었고, 산채로 매몰되었다. 회사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하였으며, OSHA(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Agency 미국 직업안전보건청(오샤)) 에게는 안전조치를 취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교육 없이,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를, 보호장치도 없는 3m 깊이의 갱으로 내려보낸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안전에 관한 법률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연방범죄이다. 이 사건을 기소하려 했다면, OSHA는 먼저 사법부의 판례들을 참고하여야 했다. 그러나 참혹한 사고였음에도, OSHA는 지극히 의례적인 조치만을 취하였다. “안전장치 없음. 갱도 파손. 매몰사고”라는 기록하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그저 사소한 일을 다루는 관료들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갱은 죽음의 늪이 될 수 있다. 갱도의 벽은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토양이 젖어있을 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매년 갱도에서 사망하거나 다치고 있다. 연방 안전법에서는 1.5m 이상 깊이의 갱 작업에서는 특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벽면은 경사가 안전각도를 유지하거나 버팀목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상자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자가 붕괴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한다. 또한 “적임자” - 갱작업의 안전에 대해 훈련을 받은자 - 에 의해 갱도를 사전 검사한 후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기본적인 갱도 안전을 유지하지 않았다. 회사는 안전 위원회를 열지 않았으며, 3개월 이상 안전관리자도 두고 있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한 적이 있는 로버트는 자신의 실제 임무는 “매우 낮은 안전수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2년간의 근무기간 동안 갱도안전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기억할 수 없다며 씁쓸해하였다.
신시내티 OSHA 책임자인 머피는 13년전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다. 1989년, 패트릭처럼 경험이 많지 않은 노동자 클린트는 하수구 배관을 위해 3.6m 깊이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서는 굴착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사면의 안전각도도, 버팀목 설치도 지켜지지 않았고, 안전 상자도 없었다. 갱의 벽면이 붕괴될 때 클린트는 갱안에 무방비로 놓여있었다.
머피는 당시에 클린트 사망 사고에 대해 매우 격분하였다. 회사는 1984, 1985, 1986년 세 차례에 걸친 경고를 무시하였다. 회사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구입하지 않았으며,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고, 달랑 700 달러의 벌금을 납부할 뿐이었다. 머피는 클린트가 회사의 고의적인 안전규칙 위반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1만4천 달러의 벌금형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 회사는 안전장비구입과 안전위원회 설치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흐지부지 되었다.
신시내티 북쪽 40 마일 거리에서 하수도와 상수도 배관작업이 실시되고 있었다. 이 공사의 책임자는 케러였다. 케러가 굴착기를 이용하여 땅을 파내면, 패트릭은 여느 때처럼 파이프를 자르고,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서 하였다. 케러는 스며드는 빗물 때문에 걱정이 됐었다고 한다. “갱안에 물이 차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죠?”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죠.” 케러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오래 전 10시간의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나, 최근 6년 동안은 단 한번의 안전교육도 받은 적이 없으며, 안전조치와 관련한 어떠한 사항도 그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공사시작 둘째 날 밤새 내린 비로 갱은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그것을 퍼내고 나서야 작업은 시작되었다. 오후에 3m 갱이 드러났고, 거기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굴착기가 방향을 바꾸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갱도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굴착기도 미끄러져 내렸다. 케러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 순간 흙 덩어리가 패트릭을 덮쳤다.
패트릭의 시체를 끌어내는데 7시간이 걸렸다. 사장은 몰랐다고 변명하였다. “회사는 매우 훌륭한 안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안전결함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일상적인 갱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회사측은 좀더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머피는 말한다. 머피는 오랫동안 OSHA의 기소권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껴왔다고 한다.
“어떤 기업이 세금을 포탈하면 그 회사는 중죄로 처벌됩니다.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을 때 왜 우리는 처벌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오랜 기간 그는 동일한 규정을 어겨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였는데도, 적은 벌금만을 내는 회사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당신은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야 했다”고 하자, 그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OSHA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런 고소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소 복잡하였다. - 역량 부족, 평판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법부가 이런 사건을 다루기 꺼려한다는 집단적 믿음, 기소하더라도 서류만 수북히 쌓이고, 수년씩 지체되면서, 계속적인 심리만 이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OSHA는 노동부 법정 변호사의 승인없이는 사건에 대한 기소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부 법정 변호사의 사무실을 사건을 흡입하는 “블랙홀”이라고 야유하고 있다. 그곳에 들어간 사건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데, 특히 회사의 입김이 강력한 사건의 경우에 사건을 무마하는데 더욱 열심히라는 것이다.
“이 사건들을 기소하는데 있어서 OSHA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내부의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패트릭 사건의 경우는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시카고와 워싱턴의 실무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고 OSHA의 말을 빌리자면, “상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벌금은 10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머피는 덧붙이기를 “이러한 처벌은 상당히 드문 경우다. 워싱턴의 몇몇은 동의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고 전한다.
“커다란 아픔이 하나의 동심원을 만들었습니다” 패트릭 월터스의 이복누이 제니 멘즈는 말하였다. 가족들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밝히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모든 가족이 함께 했다. OSHA의 홈페이지에서 멘즈는 중대재해 조사 과정을 발견하였다. 하나의 문구가 관심을 끌었다. “형사 소추 고려 중”.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들은 대중매체 리스트와 법률 전문가 리스트를 만들었다. 증인으로 요청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질문 리스트도 만들었다. 사고 현장으로 가서 패트릭을 구하고자 했던 이들을 포함하여 건설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가족들은 친구와 이웃이 자신들의 혐오와 분노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신의 뜻, 사고, 운명’ 등으로 사고를 묘사함으로써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내 아들은 죽임을 당한 겁니다” 아버지 제프 월터스는 말했다. 사장은 아들을 죽게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로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면 그는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사장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들은 찰스 셸턴의 명함을 발견하였다. 그에게 전화하여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인터넷에서 론 헤이스에 의해 설립된 ‘슬픔을 함께 하는 가족들’이라는 지지 그룹을 발견하였다. 론 헤이스의 아들은 10년 전에 곡물 저장소에서 일하다 사망하였다. 헤이스씨는 강도 높게 OSHA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OSHA의 책임자인 존 헨쇼를 친구로 여기기도 했다. 헨쇼씨는 그를 국가직업안전보건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지명하기도 하였다. 헤이스씨는 작업 중 사망한 이의 가족으로부터 일주일에 몇 통씩 전화를 받고 상담을 한다. 2002년 8월 1일에 제프 월터스가 우연하게 신시내티에 갈 일이 있었기에 같이 만나 저녁을 함께 하였다. 제프 월터스와 론 헤이스는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연대감을 느꼈다. 둘 다 배관공이었다. 아이들은 둘 다 팻이라 불렸고 어려서 죽임을 당했다. 헤이스가 말했다. “회사가 고의로 법을 어겼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무부가 이 사건을 조사하도록 만들기 힘들 겁니다”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OSHA는 매우 적은 수의 사건만을 고의적이라 분류하고 그보다 훨씬 적은 사건만 기소하였다. 가족들에게는 사건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셸턴씨를 찾아 갔다. “사장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고의적인 범법 행위에 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사장은 이미 한 사람을 죽였고 이번에는 패트릭을 죽였습니다.” 셸턴씨도 그의 분노에 일정 공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중요한 동맹군을 잃었다. 2002년 8월 2일에 빌 머피가 OSHA에서 정년 퇴임하였고 더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머피 의 후임자가 선정될 때까지 그의 업무를 대신 맡게 될 세 명 중 한 명이 사장과 친분 관계가 있었다. 사장과 친분이 있는 그 담당자는 상관에게 모든 조사가 잘 끝났다고 보고하였다. 상관에 따르면 그는 사건을 묘사하고 설명한 뒤, 고의적 범법 행위를 패트릭 월터스의 죽음 건 외에 다른 한 건에만 적용시킬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그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상관은 말하였다. 그 상관은 OSHA 신시내티 지부가 다른 비사망 재해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패트릭 월터스 건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도 발견했다. 그는 그 사건을 공론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는 동안 사장은 변호사를 고용하였다. OSHA가 기소한 피고인들을 곤경에서 구해내는 데 일가견을 가진 변호사였다. 변호사의 임기응변은 머피가 정년퇴임하자마자 곧 발휘되었다. 변호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머피와 사장의 점심식사를 주선하였다. 머피는 일 년에 5천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사장의 직업안전보건 관련 컨설턴트가 되어 노동자를 교육하고 안전에 대하여 자문해 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머피씨는 월터스 사건에 대해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고용되면 회사가 OSHA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사장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셸턴씨의 태도에서도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점점 방어적이 되어갔고, OSHA가 형사 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감독관에 의하면 사장이 안전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하였다.
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을 론 헤이스에게 걸고 있었다. 헤이스는 8월말에 OSHA 책임자인 존 헨쇼를 만나, 패트릭 월터스 사건에 대한 사진과 설명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하였다. 또한 같은 22살의 노동자로서 사망한 클린트 달리 사건도 설명하였다. “그는 ‘끔찍한 일이군요.’라고 말했다. ‘맞아요, 이들은 기소되어야 해요.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헤이스는 이 사건이 단지 월터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러한 비극을 멈추게 하려면, 보다 많은 사건이 기소되어야 하며, 뫼브스 배관회사를 기소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통사정을 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헤이스는 말했다. OSHA 책임자는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월터스 가족이 좋은 검사를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헤이스는 낙천적으로 생각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OSHA의 관료주의였다. 그는 OSHA의 책임자 헨쇼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가족들 역시 2002년 10월 9일, OSHA가 계속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 편지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고 쓰고 있었다.
2002년 11월 26일, 크리스탈은 남편이 죽은지 6개월이 지나서야 OSHA로부터 조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천천히, 주의 깊게 단 한 마디 말을 찾으며 읽었다. ‘고의’라는 단 한 마디 말. OSHA는 두 가지 범법 행위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패트릭 월터스를 죽인 참호였고 다른 하나는 OSHA가 2주전에 조사를 시행한 참호였다. 회사는 몇 가지 심각한 안전 조치를 위반하였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교육을 시행하지 않았고, 적임자에게 정기적인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OSHA는 회사가 각각의 참호에서 고의적 범법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붕괴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클린트 달리를 죽인 고의적 범법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고의적 범법 행위에 대한 증거를 얻었어요! ” 한 바탕 소란 후에 소식이 모든 가족에게 전해졌다. OSHA의 통보는 수개월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고 사고가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가족들은 확신하였다. 이제 OSHA는 사건을 법무부에 송치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고, 법무부는 기소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나 이는 11월 27일 회사의 변호사와 OSHA의 감독자인 데니스 콜린스가 4페이지짜리 협약에 서명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회사가 법정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OSHA 조사 결과에서 “고의적”이란 단어를 삭제하는 데 동의하였다. OSHA는 그 부분을 “분류되지 않은”이란 표현으로 고쳐버렸다. 이는 기업변호사의 말장난이었다. 회사는 연방 안전보건법을 “고의로” 위반하였다는 딱지가 붙는 것에 대하여 불쾌해 했다. 그래서 변호인은 당근을 제시했다.
만일 OSHA가 “고의적”이란 단어를 “분류되지 않은”이란 표현으로 바꾼다면 회사는 보다 많은 벌금을 낼 용의가 있고 안전보건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의지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최근에 OSHA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벌금을 9만 달러에서 5만 4천 달러로 40%나 깎아 주었다. 대신 회사는 참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OSHA의 교육을 30시간씩 이수하고, 2년에 한 번씩 참호를 검사하는 자문관을 채용하는 데 합의하였다.
사장은 인터뷰에 응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나눈 짧은 대화에서 사장은 가족들에게 회사의 안전 경영에 대해 변호하였다. 사장은 가족들이 회사를 기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을 알고 있지만 OSHA는 형사 소추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 사업주보다 노동자의 안전을 더 고려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사실은 순식간에 가족들의 마음을 무너뜨렸고 좌절감에 빠뜨렸다. 고의적 범죄 증거도 없고 형사 소추도 없었다. 모두들 공통의 의문사항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왜 우리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는가? OSHA 책임자, 존 헨쇼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사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고 정부는 그것에 공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패트릭을 죽인 범죄 행위에 왜 “고의적”이란 단어를 삭제한 것인가? “OSHA가 사망재해에 대하여 더 무거운 벌칙을 주는 조항이 직업안전보건법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패트릭의 어머니는 말하였다.
그렇다. OSHA는 사망자가 발생해도 그 사건에 벌금을 더 물릴 수 없다. 그러나 회사가 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법무부에 요청할 수는 있지 않은가?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노동부 대변인인 에드 프랭크는 OSHA가 뫼브스 회사를 형사 소추하지 않기로 한 결정과 관련하여 아무 기록도 없다고 말했다. 그 사건에 관계된 공무원 중 시카고 OSHA의 지역책임자인 코노스 씨만이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와 정년퇴임한 머피와의 인터뷰와, 다른 기록들을 참고로, 당시에 어떤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가를 밝히는 작업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OSHA의 마지막 결정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시카고 지부에서는 이 사건이 매우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장은 형사 소추를 피할 수 있었다. OSHA는 회사로부터 추가적인 감시와 훈련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긍정적인 해결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신시내티 지부의 공식 권고가 도착하였을 때 그것은 사장의 이웃이며, 머피의 후임자였던 직원이 권고한 내용과 비슷했다. 첫 번째 건에만 고의적 범법 행위를 적용시킬 것을 권고했지만, 그 보고서에서조차도 두 건 모두에 심각한 벌칙(벌금 10만1500 달러)을 줄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는 헨쇼씨의 감사 결과 밝혀진 것이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시카고 지부에서는 신시내티 지부의 이러한 권고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패트릭 월터스를 죽인 범죄는 분명히 고의적이라고 확신하였다.
법적으로 고의적 범죄란 사업주가 안전보건법에 대하여 “고의적인 무시”나 “명백한 무관심”을 보인 경우를 의미한다. 코노스씨와 동료들은 회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맹백한 무관심을 입증할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카고 지부는 회사가 고의적으로 직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여 노동자를 죽였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 사건이 심각한 벌칙을 부과할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결정해 버렸다.
벌금은 10만1500 달러에서 9만 달러로 경감되었다. 법무부에 형사 소추를 하는 것도 기각되었다. 코노스씨와 동료들은 신시내티 지부를 설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협상에 의해 결정되죠.” 그는 말했다. 최근에 노동부의 변호사는 기본 원칙이라고 부르는 권고안을 회람하였다. 사업주가 비슷한 범죄 행위를 한 경력이 있거나 안전 조치를 무시한 경력 있는 경우 등, 사업주에게 문제가 있는 사건을 법원으로 송치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뫼브스 회사는 이전에도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다. 그는 사장이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OSHA는 사장이 같은 종류의 위반을 되풀이하는 것은 안전조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비극은 이것이 명백히 예방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코노스 는 말했다. “회사가 법을 잘 지켰다면 그 젊은이는 죽지 않아도 됐습니다. 지금이 제대로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족들은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민사 소송을 통하여 회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송에서 승리하여 얻은 보상금으로 OSHA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나는 꼭 할 것이다. 워싱턴으로 가서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OSHA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하이오의 산재보상법에 의하면 회사의 부주의로 인하여 패트릭 월터스가 사망하였을지라도 광범위한 민사상의 면책 특권을 회사에게 허용하고 있다.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 법원까지 가서 회사가 “고의적인 범법 행위”를 행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OSHA의 결정이 회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사고조사 결과에 “고의”라는 단어가 빠졌기 때문에 회사의 고의성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론 헤이스에 의하면 아무도 제프 월터스의 계획을 막을 수 없다. 헤이스는 “패트릭의 아버지는 여생을 고생하며 보낼 것이다. 첫째로 아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정부가 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분노가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릭의 어머니 역시 복수심에 불타 있다.
배경
2001년 3월 20일 부시 대통령은 -그의 최초의 법률적인 행동으로서-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의 인간공학 기준을 폐지하는데 서명하였다. 이 중요한 노동자의 안전장치는 무려 10년에 걸쳐 작성되었으며 2000년 11월에 발효되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재해를 예방하는데 한몫을 하리라고 기대되었던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인간공학적 조치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거대 기업의 눈치를 살펴온 공화당과 부시행정부는 노동자 보호 장치를 말살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지난 3월 의회에서 인간공학 기준의 폐지가 검토되고 있을 무렵, 노동부 장관 Elaine Chao는 ‘반복 긴장성 장애는 중대한 문제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만약 그 기준이 폐지된다면 노동부는 ‘재해 발생이전에 노동자의 보호 수단을 강구하도록 사업주를 강제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의 제정을 포함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부시행정부는 기업 부속의 지휘본부로 돌변하여, 인간공학 기준의 입법 반대자였던 Eugene Scalia를 노동부의 최고 변호사로 선임하였다. 그 후 1년의 시간이 지나 또다시 180만 명이 재해를 당하였으나, 부시행정부는 여전히 무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인간공학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인간공학 계획은 노동자들을 십년 전 보다 못한 상태로 되돌리는 과거를 향해 후진하는 것이다.
• 부시 행정부의 인간공학 계획은 인간공학적 위험에 대해 노동자를 보호할 새로운 기준을 전혀 담고있지 않다. 오히려 자발적인 조치에 머물러,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주요한 위험이 예방될 필요가 있는지의 판단을 고스란히 사업주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 이 계획은 부시1세 행정부 시절의 보호 조치들과 비교해서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것이다. 이 계획은 강제적인 기준은 아예 없으며, 오로지 자발적 기준-아직까지 하나의 사례도 확인된 바 없는-만을 포함하고 있다. 그 나마의 강제적인 ‘요소’는 고위험 산업은 적용되지 않도록 피해가고 있다. 계획의 주요한 골자는 위험을 교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적응을 보조(compliance assistance)하는데 그치고 있다. 계획은 또한 작업 관련성 근골격계질환에 대해 연구할 새로운 자문위원회를 제안하면서, 엄연한 국가 연구기관인 NIOSH( )를 외면하고 있다. 더불어 부시행정부는 OSHA의 집행비와 훈련비, 1천만달러와 NIOSH의 연구비 2천8백만달러를 삭감하려 하고 있다.
• 자발성에 기초한 접근 방법은 매년 180만명의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에 의해 실패가 입증되었다. OSHA에 의하면 단지 1/3의 사업주들이 근골격계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다. 1999년에 제안된 OSHA의 인간공학 기준은 그 서문에 나타난 대로 ‘인간공학 기준의 공표는 지금까지 방치되었던 위험에 대해 일부의 사업주와 OSHA의 주도하에 의무적 기준을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 인간공학 기준에 대한 발효를 거부함으로서 부시 행정부는 다시 한번 기업들과 한편에 섰으며, 국가의 가장 중대한 노동자 안전 보건 문제에 대해 눈감아 버렸다.
근골격계 질환은 미국의 작업장 안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 인간공학적 위험에 의해 야기되는 근골격계 질환은 매년 180만명에게서 재해가 일어나는 현재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이다. 노동통계국에 의하면 반복작업과 무리한 동작으로 인해 휴업이나 결근을 하는 노동자가 매년 60만명에 달한다. 국립 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은 이러한 질환이 야기하는 재해 비용이 해마다 450~54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하고 있다.
• 근골격계 질환은 대부분의 산업에서 증가중이다.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노동통계국은 근골격계 질환을 포함한 노동재해율이 증가하는 산업은 절반이상이며, 여기에는 고기포장업, 식품 판매업, 건물관리업, 컴퓨터 및 데이터 처리업, 그리고 병원업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극심하다. 여성은 전체 노동력의 절반이 안되며, 노동재해의 1/3 이하인데도 수근관 증후군의 경우 2/3이상이 여성이며, 보고된 건염의 61%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력한 과학적 증거들은 작업관련 요인이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2001년 국립과학원과 국립의학연구소는 ‘근골격계 질환과 작업장’이란 레포트에서 인간공학적 위험의 노출은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위원회의 조사결과 작업장과 근골격계 질환의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역학, 생체역학, 조직생리학, 작업장 중재전략에 대한 연구에서 풍부하고도 일관되게 확인되었다.”
• 아울러 많은 의료와 보건문제 전문단체들이 그러한 과학적 증거들은 확고하며 OSHA의 인간공학 기준은 필요한 것으로 재차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단체들을 열거하면 American College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the American Industrial Hygiene Association, the 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 the American Association of Occupational Health Nurses 등이다.
근골격계 기준이 발효된 주와 다른 국가의 경험은 그 규제책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부시 행정부가 인간공학적 위험을 규제하는 것은 아직은 섣부르다고 주장하고 있을 당시에도 이미 다른 국가의 정부는 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알버타주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는 인간공학 기준을 채택하였다. 유럽에서는 EC가 나서서 1990년 이후 수작업과 컴퓨터 사용에 대한 부호규정을 의무화하였으며 지금도 그 밖의 인간공학 위험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출처 : AFL-CIO SAFETY AND HEALTH FACT SHEET(AFL-CIO Homepage)
번역 : 기명(노동건강연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