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한꺼번에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다가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에 실망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요즘처럼 힘 든 시대가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 - 학교 동창생들이나 일가친척, 교회의 교인들 앞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는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일에 직․간접으로 몸 담아온 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대통령 정부를 겪었지만 요즘처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로부터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말은 그동안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있다"거나 "일부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세련된 말씨로 하루가 멀다고 노동조합을 비난한 적은 없다.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대기업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양심에 손을 얹고 고민해 보라"고 엄숙하게 충고하는 대통령의 말을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전교조 위원장이 처음 구속된 것도 '감히 교사들이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눈을 치뜨며 꾸짖는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를 길들이려고 하는 노동자의 요구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사연하는 말은 그 표현만으로는 한 치의 오점도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그 말은 결국 “국민들에 의해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는 정부”라는 뜻이니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불법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건설교통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분에 대한 민사상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실제로 정부가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구속, 수배, 경찰병력 투입, 강제 해산, 해고, 손해배상 청구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수단들이 한꺼번에 동원되는 상황을 보면서 노동조합이 과연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할만큼 예년보다 특별히 많이 법을 어겼는지, 특별히 과격하게 투쟁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이 과거보다 더욱 과격하거나 빈발해진 것은 아니다. 노동쟁의 건수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수는 예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노동자들이 예년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무분별한 파업을 벌였다"고 느끼고 있다.
언론이 "현대자동차 파업이 한 달을 넘겼다"고 한결같이 보도하면 사람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한 달 동안 손을 놓고 일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올해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예년과 달리 부분파업과 순환파업을 되풀이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와 국민정서를 고려한 노동조합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을 것이다. 잔업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파업 방식을 놓고 "이게 파업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을 듣는 언론조차 노동문제를 특집기사로 다루면서 "노동조합이 민심 얻기에 실패했다",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을 곱씹어봐야 한다",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대중 정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예전보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한국 사회 전체 소득분포에서 그들의 경제적 지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노동자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어느 정권 아래에서도 불평등구조가 완화되는 쪽으로 그래프 방향이 바뀐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임금이 인상돼도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삶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각종 지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반면, 소수 재벌에게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사회 불평등구조의 심화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의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해롭다.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으면서도 IMF로부터 구제금융이라는 긴급수혈을 받고서야 겨우 살아날 수밖에 없었던 치욕적인 사태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건전한 내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 부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창출되는 내수는 그 나라 경제체제의 지속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토론의 달인'이라는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련된 표현으로 대기업 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정부는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국가변란에 준한 사태에서나 사용되는 '긴급조정'을 검토하고, 노동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더욱 보수화되어 예전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거듭하고, 야당은 주5일노동제 도입을 빌미로 "노동현장의 파업을 중지하거나 자제토록 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그야말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하더니 급기야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 나아가 정부는, 기업이 근로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고, 정리해고 사전예고기간을 단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현재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아니라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완화하겠다는, 시대에 역행하는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과거 군사독재라고 불리던 시대에도 없었던 현상들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이 지나치게 앞서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개혁 지향 소수파의 상징으로 여겼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출범만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는 이미 완성됐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 대통령이 당선되는 바람에 보수세력이 잠시 움츠러들어 있는 동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커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과 정부의 관료들은 물론 언론 종사자와 국민들까지 모두 그런 착시현상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노동조합을 공연히 불온시하고, 자신의 불편을 참으면서 노동자의 파업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민의식 수준은 흔히 말하듯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돼있는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아직도 소수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기현상이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의 천박한 수준을 말해준다. 국민들이 노동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는 평균적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번도 정상화되지 못한 채 다시 중대한 시련을 맞고 있다.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이다.
8월 21일자 오마이뉴스에는 「여수산단 '죽고 또 죽고'...집진기에서 사망,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 사망자와 도급업체에 책임 전가」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8월 18일 여수산단 남해화학 공장에서 하청업체의 비정규 건설노동자가 분진제거용 집진기 내부를 청소하다가 미끄러져 집진기에 빨려들어가 죽었다. 올해 스무살이었던 노동자는 올해 들어 여수산단에서 사망한 7번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사고 당일에는 큰비가 오고 있었는데도 안전 담당자가 현장에 없었다. 발주처인 남해화학에서는 하청업체와 1년간 도급계약을 했기 때문에 안전관리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여수지역건설노조의 조합원은 "집진기 전원을 완전히 차단시킨 후에 작업자를 투입해야 하는데, 기계가 작동 중인 상태에서 작업자를 투입했다, 고의적인 살인행위"라고 격분했다.
이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여수 산단에서 또 한명의 건설노동자가 금강KCC 에서 지상 6미터 높이의 P.T아시바 상부에서 작업하다 추락하여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으로부터 날아들었다.
노동부가 8월 19일 발표한 '상반기 중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올 6월까지 산재피해자는 4만66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가 늘어났으며, 사망자는 1482명으로 지난해 1242명 보다 240명(19.3%)이 늘어났다. 우연과 불가피를 주장하는 정부와 자본의 두터운 낯에 비례해 노동자의 사망은 줄어들 줄 모른다.
사망사고가 왜 계속 일어나는가. 왜 같은 업종에서 계속해서 죽어나가는가. 구조적 요인이 있다. 구조적 요인을 제거해야만 노동자의 사망행렬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산재사망이 왜 구조적 요인에 의한 살인인지 밝히려 한다. 우리는 예고된 위험을 방치하는 기업의 행위가 범죄행위 임을 입증하고자 하며, 그에 마땅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편집자 -
신자유주의 대응 전략으로서 '기업살인' 운동의 의의
7-80년대에 한국사회를 지배한 성장 패러다임은 산재 문제만 보더라도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전시 동원체제를 방불케 했던 개발독재 시대에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다치고 병들어 효용가치가 떨어질 경우 기계에 새로운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로운 산업예비군으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산재란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또는 사회적 비용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산업역군 또는 산업전사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총자본은 개발독재 시대의 물리력을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함께 성장하였고 사회권 확대를 위한 진보운동 및 민중의 지속적인 투쟁의 대가로 부분적이나마 인권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총자본은 과거와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산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총자본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단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복지의 과잉에 따른 생산력 및 생산성의 정체’(?)라는 구조적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한국판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이데올로기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 논리, 전사 논리가 강력한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에 관한 미국의 노사 자율관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정부 주도의 규제 방식은 안전보건에 효과가 없기 때문에 노사간 자율적 해결 원칙에 근거하여 정부와 전문가가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안전보건의 획기적 진전을 이루자는 주장은 단지 이데올로기 효과만을 노린 '자본의 음모'로 치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이러한 담론과 구체적인 정책이 미국에서 사회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산업구조 및 생산조직의 변화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정부 주도의 규제가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전제된 것이란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여기에 오랜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전통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핵심적 의제 중 하나인 ‘형식적 규제 완화’가 의미한 바는 전통적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생산조직 및 생산패턴의 변화라는 구조적 조건이 형성되었으며,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가 주요한 흐름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보건의 문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건과 환경 등에 투입되었던 비용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또는 시스템을 강제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영미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자국 내에서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종착역이 아닌 계급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의 분할과 노동조건의 변화를 통하여 노동과정을 새롭게 통제하려는 전략은 모순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짧은 경험 속에서 확인하고 있다. 더욱이 복지의 축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고 패러다임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산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복지의 과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수도 존재해본 적도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사실 성장 논리를 들이밀면서 한번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총자본이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모든 규제 장치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그보다 예전엔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규제 장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규제 장치가 있는지 조차 신경을 쓰지 않았던 총자본이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규제장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전술적 목표가 형식적 규제장치를 실질적인 보호 장치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으로 모아지면서 형식적 규제 장치조차 무력화하여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장의 신화, 전사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등에 업고 여전히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통적 안전보건규제가 현 시기 적합하지 않은 낡은 유물이라는 주장은 예전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규제 장치, 즉 효용성을 논할 가치조차 없었던 규제장치가 지금은 자본의 발목을 잡는 규제장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과거의 규제장치가 효용성이 없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안전보건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구조화는 영미산 신자유주의 구조화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과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밖에 없다. 여전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전통적 산업이 주요 구성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산업구조 및 생산패턴의 고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며, 주변국가로 이전이 한계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물적 조건의 취약성으로 노동의 유연화 자체가 노사정 합의구조로 정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항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산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법적 제도적 유물을 동원한 폭력적 강제 및 통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폭력적 방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분하고 문제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면서 아주 제한적인 양보만을 중심부 노동자에게 제시하고 합의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폭력적 방식의 신자유주의 구조화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완화하기 보다 증폭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결국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 구조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정부 내에서조차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안전보건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혼선과 대립양상(?), 그리고 규제 개혁의 실상이라 생각된다.
앞장에서 안전보건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를 살펴보았고, 최소한 안전보건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논할만한 거리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총자본이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안전보건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노동운동 및 노동자건강권운동이 그동안 형식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장치로 만들어 나가려는 투쟁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점차 증가하는 안전보건에 대한 총자본의 부담을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보건 문제를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거나 회피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정책이나 제도 변화의 논리적 정당성 내지 구조적 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련의 규제개혁을 강제하는 방식은 문제를 더욱 커지게 만든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정리해보면, 지금은 규제개혁을 언급할 시기가 아니라, 한번도 제대로 작동되어본 적이 없는 형식적 법적 제도적 장치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로 만들기 위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할 시기란 점이다. 이러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서 정말 ‘우문’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안전보건 문제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운동 진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사업주 또는 자본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의 책임을 묻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자본-임노동 관계가 존재하는 한 노동과정이 자본의 통제 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건 및 작업조건의 결정 주체가 노동자가 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개별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통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을 상정하더라도 전체 시스템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기초하는 한 당연하게 노동자의 통제권은 총자본의 통제를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본의 통제 하에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어 있는 노동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험과 안전보건의 문제를 노동자가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노동자의 개인적 실수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대다수 안전보건 문제를 보면 대부분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고 전적으로 자본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한 주장이 아니다. 따라서 안전보건 문제를 특정화시켜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은 일면적으로 안전보건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일면의 타당성만 갖는다.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사업주에게 책임을 면해주는 면피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안전보건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안전보건의 책임,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강상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안전보건의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 이행으로 한정되어 버리게 되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앞세운 규제개혁의 실상이 규제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 아닌 형식적인 안전보건에 관한 법과 제도를 실질화 하려는 노동운동 및 노동자건강권운동의 투쟁과 사회권의 확장에 따른 보편적 권리의식의 확산에 대처하기 위한 총자본의 대응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구조적 기반과 근거가 취약한 규제개혁에 대하여 단호한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혁하고 발전시켜나가는 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매우 유의미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 유무에 맞추어질 경우 구조화된 안전보건의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총자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감시 기전이 작동하는 조직노동자의 영향력을 벗어난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여전히 성장의 논리, 전사의 논리로 무장한 정부 관료, 검찰, 법원 등 지배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며, 법적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리가 현실인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총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조, 과정, 결과 전반에 걸쳐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자 핵심 고리가 ‘기업살인’운동이다.
다른 논리를 다 떠나서 현재의 상황은 사업주의 처벌을 포함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지 않고서 안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루에 7-8명의 노동자가 노동과정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아직도 사회가 이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산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힘들지 않는가’라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비극적 현실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를 대다수 사람들이 용인하고 있다고 확대 해석해선 안될 것이다. 오히려 보편적 권리의식의 확장과 함께 모순의 깊이가 커지고 있고 분노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그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전술적 고리를 찾아내고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현재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문제의식은 매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단지 귀찮은 무엇, 비용이 조금 들어가는 무엇, 문제를 적당히 덮고 다른 수단으로 해결하면 되는 무엇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인권과 노동자의 복지는 수사에 지나지 않고 여전히 70-80년의 향수에 젖어 있다. 사실 생산조직 및 생산방식, 작업조건의 변화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것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모습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일부 전향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업장조차 조직노동자의 투쟁에 따른 한시적 미봉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문제의 심각성 또는 경각심을 일깨울 뿐 아니라 산재문제를 회피하고선 사업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수세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공세적 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점도 투쟁의 의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투쟁은 특정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몇 몇 조항을 강화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높이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총자본에 맞선 방어적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률 제정운동을 포함한 ‘기업살인’운동은 중대한 안전보건 문제를 발생시킨 사업주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하고 포괄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못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총자본에 위협을 줄 뿐 아니라 매우 공세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총자본의 약한 고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투쟁의 의의가 있다. 끊임없이 중대재해 및 산재사망을 일으키는 대규모 사업장의 산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본의 양보만이 문제의 일보 진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데, 당연히 현 시스템 하에서 문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고도화를 가져올 만한 물적 토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업주 자체를 목표로 하는 투쟁은 사업주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살인’ 운동을 통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완화의 흐름에 대하여 공세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격파하고 더 나아가 이면에 깔린 성장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혹자는 이러한 법제화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거나 사회적 쟁점이 형성될 수 있는 사안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몇 몇 집회 과정에서 확인하였듯이 노동자의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고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금속연맹이나 민주노총 등이 이러한 투쟁에 어떠한 수위로 결합하고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있다. 결합 정도에 따라 매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고 쟁점을 형성할 수 있다. 일반 국민의 관심 또는 사회적 의제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 등과 같이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몇몇 직원에게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의 최고 책임주체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식을 적극 제기하고 다른 사회단체들에게 적극적으로 제기해나간다면 공동의 문제의식을 갖는 연대가 가능하고 사회적 쟁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업살인’운동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투쟁이 아니라 현 시기 안전보건 및 노동자 건강문제의 획기적 방향 전환을 위해 매우 중요한 투쟁이고 이러한 투쟁에 기초하여 열거주의 방식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포괄적 적용 방식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정부의 안전보건조직 전면 개편 등의 투쟁을 제기해 들어갈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 및 호주 ‘기업살인법’의 도입 가능성 모색
사용자가 사업장 내에서의 안전 및 보건과 관련되어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테면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용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산안법 제13조, 제70조, 제43조, 제68조). 그런데 위 산안법은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보다는 어떤 사고가 발생한 후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적용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업장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였고 사용자에게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사용자는 형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형법 제266조~268조). 그런데 사업장 내에서의 사고가 사망 사고가 아닌 한 사용자가 구속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사망 사고가 발생하여 구속된 경우에도 재판 과정에서 보석 등으로 석방된 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그런 처벌을 받는 자는 대부분 사업장의 현장 감독관 등 중간간부들이고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현행법상으로도 산업안전보건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 규정들은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운용실태가 위와 같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위 법률들이 제정 취지만큼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범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전에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 중하게 처벌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용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예방 및 근절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노동부 및 검찰과 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현재 마련되어 있는 법령들이라도 엄격히 준수하고 적용하도록 요구해 나가는 것이다. 즉, 노동부에는 산업안전 감시 활동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검찰에는 피해 정도가 중하거나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사업장의 사업주에 대해서는 삼진 아웃제 등을 실시하여 구속 수사를 할 것 및 기업의 최고 책임자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법원에는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해 무원칙하고 온정주의적인 보석 허가 및 벌금형 선고를 지양하고 실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안은 모두 법 집행자의 의지에 호소를 하는 것으로서 그 효과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법 집행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려면 특별법을 제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이 제도화되어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것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만들어 산재 사고가 지금보다 훨씬 더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 사고의 사전 예방 조치에 대해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 처벌 내용을 규율할 특별법과 충돌할 여지가 없다. 즉, 산업안전보건법과 특별법은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공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산재사고가 발생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동시에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고 하여 특별법의 제정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형법에 업무상과실치상죄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에 처벌규정이 있다고 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그런 법률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별법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자주 운위하고 있으나 위 법률은 교통사고 가해자를 감경 처벌 또는 면책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가중 처벌 내용을 담을 특별법과 비교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있다거나 처벌 행위를 유형화할 필요성이 있다거나 하는 사유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특별법에는 주로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 유형들을 세분화하여 가중처벌 하거나 이를테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서 야간 폭행이나 공동 폭행, 흉기 휴대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형법상 죄가 되지 않더라도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과정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규정 이를테면 화염병을 제조한 자도(그것을 사용하여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것 등 들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특별법이 남발될 경우 사법권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되게 행사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도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자의 우려와 후자의 필요성을 비교 형량하여 현 시점에서 더 절박하고 중대한 문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현 시점에서는 후자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사전에 예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고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별법 제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자를 엄중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특별법 남발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법에 규정되어야 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특별법에는 산업안전 보검범죄의 행위 유형이 세분화되어야 할 것이다. 즉 사용자가 ▲동일 현장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반복하여 낸 경우, ▲일정 숫자 이상의 인명 피해를 낸 경우, ▲명백히 예견되는 위험에 대해 안전조치를 행하지 않은 경우,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으로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상당히 많은 수의 근로자의 생명 및 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은 경우, ▲산재사고를 은폐하거나 피재노동자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 등의 행위 유형이 세분화되어 규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른 가중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산재사고 발생 사업장의 최고책임자 및 실질적인 사업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 근로기준법의 양벌규정은 다른 법률의 그것과는 달리, 기업 대표자의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 있다.
『제116조 (양벌규정) 이 법의 위반행위를 한 자가 당해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한 대리인, 사용인 기타의 종업자인 경우에는 사업주에 대하여도 각 본조의 벌금형을 과한다. 다만, 사업주(사업주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대표자, 사업주가 영업에 관하여 성년자와 동일의 능력을 갖지 아니하는 미성년자 또는 금치산자인 경우에는 그 법정대리인을 사업주로 한다. 이하 이 조에 있어서 같다)가 위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업주가 위반의 계획을 알고 그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위반행위를 알고 그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또는 위반을 교사한 경우에는 사업주도 행위자로서 처벌한다.』
이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노동부가 발표했듯이, 산재빈발 사업장을 일간지에 공표하는 등 산재 사고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항도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위 법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보건범죄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다. 위 법의 목차를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1부 : 전문 2부 : 1958년도의 형법의 개정 3부 : 1985년도의 위험물질법의 개정 4부 : 1994년도의 장비(공공안전)법의 개정 5부 : 1985년도의 직업보건안전법의 개정 6부 : 1989년도의 경범죄법원법의 개정 7부 : 1985년도의 재해보상법의 개정』
『1부 : 전문
2부 : 1958년도의 형법의 개정
3부 : 1985년도의 위험물질법의 개정
4부 : 1994년도의 장비(공공안전)법의 개정
5부 : 1985년도의 직업보건안전법의 개정
6부 : 1989년도의 경범죄법원법의 개정
7부 : 1985년도의 재해보상법의 개정』
위 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2부 ‘형법의 개정’ 부분에 규정되어 있는데, 호주의 1958년도의 형법에 새로운 섹션 11~14F까지를 규정하는 세부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섹션 13에 기업 살인이라는 새로운 법정 범죄가 신설되어 있고 『태만(negligence)으로 다음의 사람, 즉 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인 또는 기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관계하는 과정에 있는 노동자를 살해한(kills) 기업체는 기소 가능한 기업 살인죄(manslaughter)의 죄책이 있다.』 유죄가 인정된 기업체에는 500만 달러 이하의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미법상 살인죄는 모살죄(murder)와 고살죄(manslaughter)로 구분되고 과실치사죄는 negligent homicide로 표시된다.
섹션 14에 기업의 태만으로 인한 중대상해의 법정 범죄가 신설되어 있다. 『태만으로 다음의 사람 -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인 또는 기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관계하는 과정에 있는 노동자- 에게 중대한 상해를 입힌 기업체는 기소가능한 범죄의 죄책이 있다』. 유죄가 인정된 기업체에는 200만불 이하의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기업체의 고위 임원에 적용되는 새로운 범죄도 그 부분에 규정되어 있다. 기업체의 고위 임원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이 입증되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업체의 범죄 행위와 관련하여 기업체의 행위 또는 행위의 일부에 대해 조직적으로 책임이 있음. ▲자신의 조직적 책임을 이행 또는 불이행함으로써 기업체의 범죄에 물질적으로 기여함.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 기업체가 사람에 사망 또는 실제로 중대한 상해의 위험이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상당한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음.
위 법의 섹션 14D에는 기업체가 위와 같은 범죄를 행하였을 경우, 법원이 여타 다른 형벌에 추가로 또는 대신해서 그 기업체에 대해 여타의 다른 조치들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범죄로 인한 죽음 또는 중대 상해 또는 다른 초래된 결과의 내용과 부과된 형량을 공개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것. ▲범죄로 인한 죽음 또는 중대 상해 또는 다른 초래된 결과의 내용과 부과된 형량을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것.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구체화된 행동을 취하는 것 또는 구체화된 사업을 설립 또는 시행하는 것.
을 행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되어 있다.
첫째, 위 법이 기업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범죄 유형을 특별히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미법이 법인에 대해 주로 ‘법인실재설’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형법은 행위자 책임 원칙을 엄격히 견지하고 있는 관계로 기업체 자체를 일차적인 책임 주체로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법률 체계상으로는 양벌규정을 통해 기업체를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둘째, 기업 자체뿐만 아니라 고위 임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특별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법률은 고위 임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유형화하여 고위 임원이 사망 사고 등에 직접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우에도 그 임원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률상으로도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으로도 ‘책임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기업의 최고 책임자 및 실질적인 사용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의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최고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규정을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기업이 ‘과실’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도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실’의 내용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명백한 고의가 없는 경우에도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시키는 영미법 체계에 비추어 볼 때에도 상당히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산업안전사고를 근절하려는 호주 입법자들의 의지를 확실히 읽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법이 ‘기업살인법’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 법률체계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나라 법률은 고의와 과실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형사법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특별법을 통해서도 그 근간을 흔들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넷째,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고 묻고 있다는 점이다. 위 법이 일차적으로는 기업체를 처벌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형이 아닌 벌금형을 주된 처벌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액수는 우리나라 법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액이다. 위 법에 의할 경우 사망사고의 경우에는 500만불(약60억원), 상해사고의 경우에는 200만불(약 24억원)까지 부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점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위 ‘기업살인법’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위 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기업의 과실 행위에 대해서도 살인죄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법 체계상으로는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과실 행위에 대해 책임을 엄격히 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기업체 자체에 대해 바로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 우리법상으로는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법을 우리나라에 바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 법의 정신과 취지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그것은 특별법 속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타 법률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업살인자 처벌 운동’은 현 시기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안전관리비는 쌈짓돈, 안전관리자는 구조조정" - 건설산업연맹 강호연 산업안전국장 인터뷰
산재사고로 죽는 노동자의 1/3은 건설노동자다. 건설노동자들은 사망사고에 대해 할말이 많다. 건설산업연맹 강호연 산업안전국장과 함께 건설업 사망사고의 요인과 처벌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건설현장의 주요 사고 발생 형태와 사례를 말씀해주십시오.
사고원인 떠넘기기
- 다른 산업 사고에 비해 건설산업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사고나면 대형사고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고는 시설물 붕괴와 추락, 협착 등 입니다.
4월 30일 율촌산단의 현대건설 현장에서 슬라브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습니다. 2명이 죽고 18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였어요. 공사관계자들이 환자와 유가족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해서 합의서를 받아 처벌을 피하려 했습니다. 의사들에게 압력을 넣어 진단일수를 조정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처리과정에서는 아주 더러운 사례로 꼽히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좋은 사례로 꼽히지 않을까 합니다. 노조와 지역단체들이 연대투쟁을 해서 좋은 성과를 거뒀죠. 공사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이사장이 직접 현지에 내려와 수습하고 재발방지 약속과 현장 내 노조 활동보장, 유족과 환자들에게 사과하게 만들었습니다.
6월 30일에는 평택 현화지구 신동아건설의 타워크레인 붕괴로 5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타워크레인사고는 대체적으로 운전원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규명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업주들은 사망한 운전원들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사고원인을 떠넘깁니다.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을 무어라 보십니까? 정부정책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안전관리자의 90%가 비정규직
- 사망사고의 원인은 사업주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설현장에는 법의 사각지대가 많아요. 산재보험과 안전규제에서 적용이 제외된 사항이 많습니다. 규정에서는 작업환경측정이 제외됐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사업주 확인날인이 필요한데 건설 노동자들의 경우 워낙 많이 이동하고 고용관계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날인이 힘듭니다. 사고가 났을 때는 개인이 쫓아다니면서 보상을 받던지 누가 도와줘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아요. 건강검진은 제도적으로는 갖춰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것은 상당히 날림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것이 사고의 원인이죠.
사업주 무관심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정부발주공사의 경우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별도로 책정돼 있고 일반공사에서는 일정부분 책정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이 돈을 쌈짓돈으로 생각합니다. 뭐 전용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 쓰지 않고도 쓴 것처럼 영수증 처리를 하기도 합니다. 노동부의 감독대상인데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10~20%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눈먼돈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실상이 이런데 사용자 단체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사고가 나면 재수 없어서 그런 거고 안나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디다. 안전에 투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인식이 많아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대한 부분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주장을 건설연맹이 하고 있는데 근로감독관들이 전문성이 떨어지고, 회계 자료 공개를 사업주가 거부하면 강제로 확인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또 큰 문제는 전담 안전관리자가 배치되는 공사규모가 상당히 완화됐다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업주들이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안전관리자를 다 뽑았고 정규직으로 전담부서도 설치했지만, IMF를 거치면서 규정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안전관리자에 대한 구조조정 때문에 지금은 80~90%가 비정규직이고 안전관리를 전담으로 하는 사람들은 10~20%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건축 담당하면서 안전관리자를 겸임하는 식입니다.
사망사고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요? 노조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구속품신하면 검찰은 경제를 걱정한다
- 법과 규정의 전면적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적용 제외규정과 산업안전보건규정의 예외조항을 없애고, 직업병 인정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고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처와 사업주 처벌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PQ심사(환경안전 평가제도)를 합니다. 재해율의 전국 평균을 내서 이보다 상회하는 업체에게 입찰 때 감점을 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공사 수주에 영향을 미치므로 처벌의 관점에서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주에 대한 제재는 전무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여수지역에서 2명이 사망하는 사고와 평택의 5명 사망사고에서도 사업주에 대한 구속이나 처벌은 없었습니다.
노동부는 나름대로 하소연하고는 있습니다만, 구속품신을 해도 검찰에서 경제논리로 푼다고 얘기하지만 중대사고와 관련해서 기업주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 수준보다 더 미약한 게 현실입니다.
사업주들이 유족들을 회유하고 정부와 사업주가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큰 어려움입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조합은 공동조사 요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방 노동관서에서 허용이 안될 경우 연맹 차원에서 노동부를 직접 압박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모든 개별사안마다 이렇게 하기는 어렵죠.
처음부터 공동 사고조사가 가능하다면 현재보다 낳은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유족들이 사업주의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접근을 배제하려 하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어려움의 한편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공상처리를 많이 합니다. 산재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거죠. 노동자들이 여기서 망치를 놓으면 밥줄이 끊어지기 때문에 공상처리나 사업주들의 보상에 쉽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어요. 이게 사고처리 과정에서 제일 힘든 부분입니다.
산재사망사고를 기업의 살인이라고 생각하며 기업주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노건연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업경영에 타격을 줄 정도가 돼야
- 기업살인법, 처음엔 좀 섬칫한 명칭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 타당성이 있습니다. 기업주가 노동자들 데려다 노동을 시키려면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놔야되는데, 법을 무시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자동차보험에 들더라도 중대사고는 처벌을 받고 있는데 기업주들은 산재보험 하나 달랑 들었다고 모든 부분에서 면죄부를 받으려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건설현장은 사망 사고가 다반사예요. 그런 사고가 한번 나면 기업경영에 큰 타격이 될 정도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데 적극 동의합니다.
일단 연간 수천명 씩 죽는 것을 이슈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살인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 : 김낙준/노동건강연대)
최근 4월, 일부국회의원에 의해 수차 도급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책임을 현행 원도급업체(이하 ‘원청’)에서 하수급업체(이하 ‘하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의원입법형식으로 발의된 개정안이 아직 통과된 것은 아니나, 차후 정부발의입법형식을 빌어 ’통합징수법‘이란 새로운 법명으로 제정될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합리성이란 명목 하에 법 제정에 대한 찬성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산재은폐가 만연되어 있는 건설현장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이며,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증가, 산재은폐 증가를 필연적으로 부르고 건설노동자를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이 분명한 졸속적인 법안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있어 수 차례 도급으로 행해지는 사업의 경우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아 가입과 보험료 납부책임을 부과시키는 현행제도를 삭제하고, 각자의 고용관계에 따라서 그 책임을 귀속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즉 건설노동자를 고용한 가장 최하 단위의 하청업체에게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을 지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대부분 ‘오야지’로 지칭되는 자가 고용관계의 사실상 사용자가 될 것이다.
정부는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로 2005년 1월에 개정 시행될 산재보험법 개정 내용 중 건설공사의 경우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의 산재보험 확대적용을 - 무면허업자에 의한 2000만원 미만 공사 및 100평 미만 공사는 여전히 산재보험에서 제외 - 들고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개정안은 건설자본, 특히 원청인 대기업건설자본의 편의와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에 지나지 않으며, 건설노동자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2002년 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노동자는 19,925명으로 전체 산재노동자 81,000여 명 중 약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의 숫자이다. 실제로 산재로 다치고도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자기부담으로 치료받은 노동자는 제외된 수이다.
건설업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서 다단계 식으로 수차에 걸친 하도급 구조 하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5만여 개에 육박하는 건설업체의 부도가 비일비재하여 건설노동자의 노동법상의 권리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건설업체의 경우 건설수주 입․낙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소위 사무실은 없고 전화번호만 있는 유령회사가 횡행하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부도는 사실상 미리 예견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여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노임을 받지 못해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연한 임금체불은 열악한 건설노동자의 생활을 더더욱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일어났을 때 하청업체의 부도나 행방불명 등 사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산업재해 책임이 원수급인에게 있다는 산재보험법 9조에 근거하여 재해노동자가 원청을 사업주로 하여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공사기간이 한시적이라서 전체 공사기간 중 각각의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공사 기간이나 공정 또한 한 달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건설공사의 경우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의 총합으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하청업체가 맡은 공사를 독립적으로 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법에서 원청업체의 책임 귀속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건설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설현장에서의 산재발생율은 전체 산업재해 중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산재보험에 처리된 결과를 집계한 수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전체 재해 중 어느 정도가 산재로 처리되고 있는가? 건설산업연맹의 자체 통계조사에 따르면 그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꿔 말해 건설현장의 재해 중 약60%가 사실상 산재은폐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수급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될 경우 건설현장에 만연되어 있는 산재은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불확실한 소득의 흐름 구조상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산재처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청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되면 근거리에 있으면서 건설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하청업체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건설노동자 스스로 알아서 산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건설노동자들은 일용직이란 이유로, 전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고 있는 고용보험에서조차 배제되어 왔다. 특히 건설노동자의 경우 공사가 한시적으로 지속되고 일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빈번히 실업상태에 직면함으로써 누적된 실업기간이 다른 타 업종의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고 소득흐름의 불확실성이 큰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나마 고용보험에서 소외되었던 건설일용노동자가 2004년 1월부터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산재보험도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일 경우 공사금액과 무관하게 전면 확대 적용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 그간 배제되어 왔던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건설노동자도 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주체가 하청업체로 바뀌게 되면 매일 부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하청건설업체의 현실에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확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실업과 재해로 인한 고통의 몫은 그대로 건설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건설업의 경우 다양한 공정이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사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한가지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업체의 독립적인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ILO 또한 원수급인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산업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으로 변경되는 문제가 현실화된다면 원청은 건설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보건관리나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재해가 발생한다 해도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재해발생 억제 유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상 굳이 그 책임과 의무를 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이윤은 그대로 챙기게 되니 원청으로선 이익이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원청의 도덕적 해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앞서 지적한 문제점과 같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업체로 변경될 경우 현재 업종별 산재발생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업의 산업재해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며,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짓밟는 결과를 야기하고, 원청의 횡포에 대한 면죄부를 결과적으로 부여하는 형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하청업체로 책임 주체를 변경하는 개악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소외 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실현되고 구체화되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동현실에 기초한 정책, 그 노동현실 위에 소외계급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보건의료자원의 생산과 제공에 있어서 전적으로 시장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원조달 방식에서 공적 보험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이해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사적 의료체계에 기초하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는 보건의료서비스의 무정부성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국민의료비의 급격한 상승, 의사의 도시 집중 현상, 진료강도의 지속적 상승, 고가의료장비의 무분별한 확산과 도입 등이 단적인 예이다.
또한 극소수의 국립병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소유주체가 민간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설립 주체인 상당수의 공공병원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시장의 무정부성이 보건의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정부의 조정 및 기획 기능은 일부 건강보험의 수가 통제를 제외하면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는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고 재원조달 측면에서도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건강과 의료이용을 시장의 질서에 묶어두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는 보건의료비에서 개인부담의 증가는 재원조달의 공공성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보건의료서비스에 지출한 비용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한 몫이 41.6-53.0%에 이르러 다른 OECD 국가의 2-10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운용되고 있지만, 재정위기의 해결책으로 본인부담을 더 높이려는 방향을 설정하고 더 나아가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 제기되는 등 시장적 질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WTO 시장개방의 움직임이 가속화하면서 영리법인의 인정, 민간보험의 도입 등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 이래저래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가 더 커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2004년까지 마무리되어야 하는 DDA 협상 일정 때문에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직까지 보건의료 분야에서 명시적으로 개방을 요구한 국가는 중국 등 몇 개 국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형병원자본의 국내 진출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장을 희망하는 미국 등의 시장개방 압력은 특정 분야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 규범을 관철하여 시장개방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2001년 기준으로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간 57개소, 일반 병원급 의료기관 28개소, 요양 및 특수 병원이 24개소, 군병원 21개소,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 보건기관 3,400개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기관을 제외한 실제 진료가 주요하게 이루어지는 공공의료기관은 130개소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보면 2001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8.1%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하는 미국조차도 공공병상 점유율이 1996년 현재 33.2%에 이른다는 점을 볼 때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가 매우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DJ 정부 출범 이후 공공병상의 절대적 규모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전체 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여 5년 만에 1/5 이상 비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 1) OECD Health Data, 2002
또한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상당수가 그 기능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고 공공성 확보를 위한 체계나 기전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민간의료기관과 기능의 차이를 찾기 어렵다. 일부 국립병원을 제외한 국립대학병원이나 지방공사의료원 등은 공공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성과를 주요한 평가의 근거로 설정하고 경영수지 개선을 가장 핵심적인 병원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DJ 정부 이후 더욱 심해졌는데, 지방공사의료원의 경우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지역 내 의료급여 대상자의 의료수요 중 상당 부분을 담당하였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저소득층 의료이용 보장의 마지막 보루 역할마저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경영 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공공병원을 매각하거나 민간에 위탁 운영하면서 유사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평균진료비가 유사해지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공공의료의 취약성은 예산 규모에서 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OECD 국가의 경우 평균적으로 보건의료예산만 중앙정부 예산의 14%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인 반면, 한국은 보건복지예산에서 따지더라도 2001년 현재 3%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사회 전체에 유래 없는 실직과 고용불안을 가져왔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각종 사고, 심장질환, 자살 등이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암 발생의 증가까지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실업 당사자 및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런데 불안정 노동의 증가가 가져온 건강의 위험은 실직자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강도의 강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누적된 스트레스와 물리적 부하의 증가를 해소하지 못한 채 과다한 노동강도에 의한 반복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미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작업조직의 개편과 무한 경쟁기전의 도입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자본은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로 노동조직을 재편하고 성과급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무한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노동자의 자기 통제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서 작업조직을 완전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IMF 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적 연대 또는 지원체계를 약화시키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 수준의 약화를 가져온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건강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점차 누적되고 있는 건강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며, 보건의료의 특성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장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선차적으로 요구되는 과제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체 진료비의 50% 이상을 비급여 또는 본인부담으로 해결하면서 은밀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의 재원 마련의 사적 구조를 통제하지 않는 한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따라잡기 어렵다. 공공의료기관이 일정한 예산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비급여 구조가 확대 재생산되는 한 원천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총자본의 부담을 높이고 의료보장 수준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적의료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재원구조를 사회적 통제 하에 두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민간보험 및 영리법인의 도입을 저지하는 것이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달성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간다면 민간보험의 도입의 근거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그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민간보험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확실하게 저지하지 못한다면 보건의료의 사적 성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공공의료의 자리는 더욱 왜소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의 이용 및 건강에 있어서 빈부격차의 심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중소병원의 몰락을 포함한 대형병원자본 중심의 재편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공공보건의료가 확대 강화해야 할 근거 및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명해내는 작업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해야만 가난한 사람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이윤창출 행태를 폭로하고 그러한 행태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대다수 민간병원의 의료행태가 왜곡되어 있고 불필요한 곳에 과다한 의료자원이 집중되어 있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의 확대는 결코 저질의 의료를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필요에 따라 양질의 적정 의료를 제공하자는 것이고 국민 전체로 보아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의제를 선점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정세적 조건에서 공공의료의 확대를 구체적인 일정으로 올려놓는 작업이 쉽지 않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내년 총선을 계기로 일정한 사회적 의제화가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향후 10개월 동안 보건의료운동 진영이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흐트러진 조직을 정비하고 내부 이견을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작업에서부터 가능한 한 전문가 풀을 확대 강화하고 각종 매체 및 교육선전 도구를 활용하여 사회적 의제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준비된 활동만이 실제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주장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근 10여년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켰던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드디어 산업기술연수제와 고용허가제 병행실시라는 형태로 7월 20일 현재 국회 본회의 표결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였고 경제 5단체가 동의하였으니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니, 그 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진영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실시라는 최선의 해결방안은 결국 물 건너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해도 될 듯하다. 여야는 마치 거래하듯이 병행이 어려운 두 제도의 병행실시를 결정함으로써 ‘동일 영역내에서 차별의 제도화’에 합의하였다. 이는 향후 이주노동자 문제에 또 다른 문제점을 배태하게 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비록 차차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도라고는 해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현재보다는 분명히 향상된 측면을 가진다는 점은 짚어야 할 것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이 이주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큰 의미는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78.9%에 달하는 불법체류 신분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총체적인 측면에서 불편함과 불이익을 안고 있다. 장시간노동, 저임금, 무방비로 노출되는 산업재해, 질병....
이 중에서 산업재해와 질병은 ‘노동’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꼽힌다. 특히 산업재해는 이들이 주로 3D업종에 취업함으로 해서 사고성 재해, 직업성 질환 등 언제라도 이들을 급습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위험한 사업장에 취업하지 않음으로써 산재피해의 확률을 낮추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재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서 이들의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익숙지 않은 풍토에서 부족한 영양,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많은 건강상의 배려가 필요함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이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이 땅을 떠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법체류자로서 생존해야 하는데 따르는 강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이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호전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편법이긴 하지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고 취업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생이나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의 경우를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동안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면서 소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몇몇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원리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첫 걸음이 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들의 상황을 이전보다는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자.
첫째,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던 한국의 노동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으므로 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및 휴일에 관한 조항 등 노동자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노동법상의 ‘모성보호 조항’은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다.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 제한조항, 생리휴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보호조항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면 현재의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 지금보다는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방비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를 줄이고 피해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산재피해를 입었던 이주노동자 5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안전장치 혹은 안전장비의 미비가 산재발생의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질수록, 1일 근로시간이 길수록, 작업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을수록 빨리 산재를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서툰 한국어로 노동을 제공함에 필요한 사전 적응교육이 적절한 정도로 제공되지 못함으로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사업주도 불법체류자를 채용하면서 충분한 한국어교육과 안전교육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에 불법체류라는 약점과 이를 악용하여 산재로 처리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는 사업주들의 협박으로 인해 산재보상보험법 절차 포기에 치료비 자비부담, 산재사고 후 해고(절대적 해고금지기간에도 해고는 쉽사리 이루어진다.) 등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장에서 불법체류자 채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회사가 입게 될 불이익을 염려하여 이들의 취업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겨놓지 않아 막상 산재보상보험법의 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에도 평균임금 하락 등 이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았다.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취업하는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의 소기업이 부도라도 난다면 취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을 찾지 못해 상황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자신이 근로조건에 대해 대등하게 계약을 맺을 수 없었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잦은 사업장 이동, 의료서비스의 미흡으로 조기발견이 어려워 그 실태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합법적인 노동자로서 취업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도의 한국어교육실시, 충분한 안전교육 실시, 정기적 건강검진, 산재보상보험법의 정상적 적용 등이 보장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는 훨씬 경감할 것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됨으로 해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일부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질병 예방과 치료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특히 그 동안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각종 사고로 인한 후유증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경우는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부 해소시킬 수 있고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고용허가제 도입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노동자’로서 도입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보장을 요구함에 있어 법적 제약이 상당히 해소된 상태에서 고용허가제 실시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권리의식의 고양과 함께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적극적인 관심과 견인이 요구된다.
차차선의 제도로 평가받는 고용허가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투쟁, 고용허가제의 운용체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이끌어내는 투쟁, 그리고 고용허가제보다 더 나은 외국인력도입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이 향후 노동운동권에 요구되는 투쟁이다.
더위가 한참인 8월,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 조합원과 함께 인쇄골목길을 따라나서 보았다.
여기서 출력된 판이 인쇄 원판이 된다. 제대로 된지 확인하고 있다.
종이를 넣고 종이 들어가는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간단한 인쇄는 여기에서 한다. 작은 기계가 5대나 설치되어 있다.
운반작업의 필수 도구
수레가, 오토바이가 오가는 길
프레스 기계로 금박을 눌러 붙인다. 그 때는 직물에 금박인쇄를 하고 있었다.
조합원과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발 스위치로 작동. 앞부분 금속이 자기 앞으로 열어 물건을 넣고 프레스를 한다.
철도사고와 철도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끊일 줄 모르고 일어나고 있다. 7월 말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열차 여객사고는 2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5건에 비해 60.0%(75건)가 급증했고, 사상자 수도 지난달까지 사망은 36명으로 지난해의 19명에 비해 89.4%, 부상은225명으로 지난해의 161명에 비해 39.8% 가 증가했다. 이 통계는 8월 8일 대구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사건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철도노조는 8월 29일 개통예정인 분당선 수서-선릉 연장운행과 관련해 인력과 안전조치가 부족하다며 연장운행을 연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업무중 사망한 철도노동자의 수도 17명에 이른다. 2001년 34명, 2002년 24명의 산재사망자 수는 철도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철도청의 안전대책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화된 철도노조의 첫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공공연맹 운수분과를 이끌고 있는 김재길위원장을 만난 건 이처럼 계속되는 철도노조의 사고에 대한 어떤 의구심이 들어서 이다. 현재 정부는 628파업이후 대량징계와 해고로 민주철도노조를 난도질하려 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분주한 사이 정부는 철도승객의 생명과 철도노동자의 안전에 빨간 불을 켜는 정책을 간도 크게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 운수쪽의 최대화두는 안전문제다. 대구 참사 때문만이 아니다. 노조의 역량이 있을수록 시민안전을 화두로 싸울 수 밖에 없다, 안전을 얘기하면 경영권 침해라 하지만, 노조만큼 잘 아는 곳도 없다. 불안전요소를 잘 안다. 일반시민은 몰라서 지나치지만 노조는 등골이 오싹할 때가 많다. 양심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도, 떳떳이 일하기 위해서도 안전을 얘기해야 한다.
8월 18일, 용산 철도노조에서 만난 김재길 위원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계속되는 철도사고에 대해 철도노조를 만나고도 싶었지만 628 파업이후 위원장까지 구속하면서 노조를 밀어부치는 정부와의 싸움에 힘겨울 것을 생각하면서, 철도를 잘 알면서도 공공연맹에서 궤도노조를 조직하고 있는 김재길 위원장을 대타로 정했다.
먼저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노동조합이 지하철과 열차의 시민안전, 공공안전에 대해 말하고, 투쟁을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대구 사고가 난 후 대구지하철 노동자들이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624 파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거 보면서 사회공공성에서 시민안전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임을 실감했다. 서울지하철하고 도시철도가 파업이 부결됐는데도 대구, 인천, 부산 세 군데 지하철이 기죽지 않고 파업을 하면서 ‘시민안전위원회’를 따낸 거다. 사실 불안했는데 조합원들 하는 거 보면서 하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당시 지하철 3사의 핵심요구는 시민들의 안전운송을 위한 대책을 내라는 것이었다. 대구참사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확실한 안전대책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오히려 약간의 예산배정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있어 대구참사 유가족들은 아직도 고인들의 시신도 수습을 못한 채 애를 태우고 있다.
아, 바뀐 것이 있기는 하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대피요령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대형TV는 간간이 소화기 작동법, 지하철 문여는 법을 보여준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무심한 듯, 그러나 비장하게 TV 화면을 노려본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우연히 덮쳐올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유비무환.
8월 8일 일어난 고모역 열차사고는 다시 한번 철도안전을 생각하게 했다. 사고가 일어나자 일제히 기관사와 역무원이 구속됐고, 정부와 언론은 기강해이, 안전불감증을 들먹이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성명과 보도자료를 내며 반박했는데..
대구 사고 때도 대구시장과 정부가 책임을 졌어야 했는데 언론도 정부도 이를 외면했다. 불지른 사람이 무기형을 받고, 직원들도 금고 5년씩 때렸지만 중간관리자 하나 구속되지 않았다. 예산과 집행권한이 있는 시관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고모역사고는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기관사의 잘못이 아니라 신호기, 자동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일어난 사고였다. 그나마 기관사가 조심해서 열차가 전복되지 않고, 사상자도 적은 편이었다. 신호시스템의 문제를 인정하면 철도청장과, 건교부장관이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한다.
사고가 나면 노사가 공동조사단을 꾸리고, 공동발표를 해야 믿을 수 있는데, 언론 중에 한겨레정도만 살짝 이 문제를 건드렸을 뿐, 모두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공공연맹에서는 건교부만 끼면 노동문제는 파국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 안전문제조차 대화가 불가능하다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건교부는 노조를 정책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통안전을 말아먹고 있다. 모양새 갖추는 시늉만 낸다. 그야말로 교통불안전부 아닌가. 무책임하게 안전불감증을 조장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에도 안전대책이란 게, 보이는 물량을 투입하는 것만 한다. 가장 손 쉬운게 납품할 업체 찾아서 불연재만 살짝 바꾸는 거다. 사고 난 후 공공안전에 대해 대안을 내는 전문가들이 많이 등장했는데도 건교부는 이 사람들을 챙겨서 일을 할 생각이 없다. 노무현대통령이 생각이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안전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이 연대전선을 꾸려 투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노조의 투쟁이 공공안전을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구체적 계획이라도 나왔는지..
공공연맹 운수분과 위원회에는 궤도노동조합과 항공, 관제사노동조합이 모여 있다. 궤도 뿐만 아니라 항공도 노조의 모토가 항공안전이다. 공공안전이 공공부문 노조의 화두인 것은 맞다. 올해 하반기는 임금협상만 남아있기 때문에 공공안전이 쟁점화되기는 어려운 시기이고, 안전이 단위노조만 해서는 쟁점화되기도 어려운 사안이다.
우선 노조조직이 강화돼야 대안도 만든다. 운수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동일화해야 하고, 그럴러면 비정규직문제를 신경써야 한다. 안전문제를 장기적으로 잡고 갈 정책단위도 꼭 필요하다.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생겼다. 운수노동자의 얘기가 곧 안전정책이라고 자신있게 떠들어야 한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지하철 3사 파업을 통해 시민안전위원회가 꾸려졌으니 그 구성을 잘 하는 것도 과제이다. 물론 일상활동으로도 잘 돼야 한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2002년 2월, 발전, 가스, 철도 노조의 사유화반대 투쟁으로 사유화고비를 한 단계 넘긴 철도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혁안을 마련하기로 한 2003년 4월의 약속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깨면서 다시 한번 공공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철도노동조합은 6월 28일 공공철도 건설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하였다. 628 철도파업은 한국 노조운동에서 가장 사회공공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이었다고 민주노총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은 통과되었고, 공무원연금문제가 해결되어 ‘한국철도공사법’까지 통과된다면 노무현정부의 철도구조조정법안 3개가 완결된다.
지금의 철도청은 철도산업의 시설과 운영 권한을 모두 갖고 있으나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면서 시설과 운영이 분리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차가 운행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철도시설의 유지보수가 철도를 운영하는 기관으로부터 떨어져나온 별개의 사업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안전의 책임소재를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구조가 되어 철도안전을 지금보다 더 위협한다는 것이 철도노조 파업의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이 철도 사유화 노선으로부터 멀어진 건지,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봐야 하는 건지, 철도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을 부탁한다.
이번 법안 통과는 현재 국가가 운영하는 철도는 이제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공사화는 사유화의 과도기적 단계로 볼 수 있는 건데, 이후 공공성 강화로 가기 보다 사유화 체제로 가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시설과 경영이 분리되면 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회피하기가 더 쉬워진다. 법안에 민간위탁이 공식화되어 있기 때문에 야금야금 사유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
628 파업 때, 노조가 제기하는 철도 공사화의 문제점이나 안전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언론의 공격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그 때 쟁점이 ‘누가 4월 합의를 어겼나’ 거짓말 논쟁이 돼 버렸다. 합의를 어긴 게 아니라고 정부가 떠들어댔는데 그 대응에만 너무 힘을 쏟은 게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문제로 걸었어야 하지 않나. ‘책임질 놈이 없게 철도를 쪼개고 있다’, ‘국민안전 책임질 놈이 없다’고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들도 국민들 눈치보고 이 법안 통과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민안전위원회를 요구한 6월의 지하철3사 파업때 지도부들은 지금 줄줄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628 파업을 지도한 철도노조 천환규 위원장은 징역2년을 구형받았다.
이 와중에 철도청은 9월부터 분당선 수서-선릉간 열차를 연장운행하면서 4개 역에 정규직 역무원을 배치하지 않고 모두 위탁 운영해 매표업무만 취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당선은 무인운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2인승무제가 필요한 구간인데도, 철도청이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1인 승무제로 전환을 강행한 후 2002년에만 11건의 사고가 난 곳이다. 여기에 매표소까지 외부 위탁해 최소의 인원만 역을 지킨다는 것은 ‘사고가 나라’고 비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철도노조는 서울시, 건교부, 경기도에 특별안전점검을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 4월 열린 ‘대구 지하철 참사로 본 궤도 산업의 안전시스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공청회 열 당시, 김재길 위원장은 전국궤도노동조합연대회의(궤도연대)를 이끌면서 민중연대를 비롯한 시민, 환경, 노동단체와 함께 공청회를 준비했다. 당시 공공연맹, 도시철도 등 노동조합의 대응은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칡뿌리 얽히듯 어지럽게 말만 무성한 사고원인, 책임공방, 향후 대책에 대해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정부는 지하철 3사 노동조합의 파업당시 시민안전요구를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여론작업에만 몰두했다. 사고가 나면 ‘나사 풀린 철도원들’이라며 말 만드는 재미에 열을 올리는 언론과, 이를 조장, 이용하는 정부를 딛고 노동조합이 일어서야 할 길은 험하다. 그러나 가난한 노동자민중의 발일 수 밖에 없는 철도와 지하철, 공공교통의 안전을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서겠는가.
공공철도와 민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의 선택을 많은 눈이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마우스를 사용하려면 손, 손가락, 엄지의 작고, 정확한 움직임을 이용해야 한다. 마우스를 이동시키고, 클릭하고, 스크롤하는 동작들이 자주 반복하게 되면, 동일한 근육에 무리가 가게되어 불편한 기분이나 통증을 느끼기도 하며, 심하면 수근관 증후군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우스의 위치이다. 특히 공간이 부족한 경우 마우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아무런 지지없이 팔을 내 뻗는 것과 같은 무리한 동작을 지속적으로 취하게 되면 목과 등, 어깨, 손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아직까지 어떤 디자인의 마우스가 반복적인 사용에 의한 불편함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밧데리를 사용하거나 무선 마우스가 추천된다. 마우스는 손에 맞는 크기여야 하고, 좌우 대칭이어야 하고, 접촉에 너무 민감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손목 지지대가 있는 마우스 패드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손목 지지대를 사용하는 것은 손목의 수근관에 더욱 많은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우스의 위치로 인한 문제를 풀 두 가지 저렴한 해결책이 있다. 한 가지는 마우스 프랫폼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키보드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작업 공간이 비좁을 때는 마우스를 사용하기 쉬운 범위 안에 단을 설치하고, 이 단을 보통은 사용하지 않는 키보드 오른쪽의 숫자입력판 위에 겹치도록 두는 것이다. 또한, 숫자판과 화살표 좌판이 없는 짧은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면, 마우스를 어깨와 팔에 동일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다. 이런 자세에서는 좌우이동에 의한 근육긴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마우스 중에서 어떤 형태가 가장 건강에 유익한지는 명확하지 않다.
▫자신의 손에 알맞은 크기의 마우스를 선택할 것.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물(teardrop) 모양이 편하다고 말한다. ▫좌우대칭인 마우스를 선택하고, 굽은 형태의 마우스를 가급적 피해야 한다.
▫자연적인 손목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마우스를 선택해야 한다. ▫작은 크기의 마우스를 사용하게 되면, 팔 쪽의 큰 근육보다 손목 쪽의 작은 근육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고, 이 작은 근육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더 자주 이환된다.
▫가벼운 접촉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며, 버튼을 힘들여 누르거나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버튼은 손가락을 너무 굽히거나 손가락 사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좋다. ▫휠 기능이 있는 마우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마우스를 움켜쥐지 말고 부드럽게 감싸듯 쥔다. ▫ 팔과 손목, 손가락을 일직선이 되도록, 손목을 곧게 유지해야 한다. ▫ 손목 지지대 : 손목지지대를 사용하게 되면 수근관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하며, 또한 손의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가능하다면 좌우의 손을 바꿔서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 가능한 경우 마우스 보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자료 출처 :Canadian Committee Of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CANCOSH) * 번역 : 기명/노동과건강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