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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관한 고찰...
뇌심혈관계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경우가 최근 전체 업무상 질병 사망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본 연구에서는 현행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논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번호에 연재될 1편에서는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재해인정기준의 문제점과 외국제도 및 의학적 근거에 대해 다루고 다음호에 연재될 2편에서는 구체적인 개선방향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관한 고찰 (1)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외국제도 및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들어가는 말
산업현장에서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한 근로자 중 업무상 질환으로 인정받은 근로자는 1996년 420명에서 2003년 820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전체 업무상 질병 사망자 1,390명의 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뇌심혈관계 질환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뇌심혈관질환이 급증하는 이유는 이를 유발할 수 있는 기초질환(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유병률이 높아서 발생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업무상 과로(과중한 업무와 직무스트레스)에 의해서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고 승인률 또한 높아 산재보험급여 신청이 증가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뇌심혈관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의 급증에 비하여,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과정은 일반적인 사고성 재해를 다루는 관행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즉, 뇌심혈관질환은 원인과 결과사이의 인과관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사고성 재해나 전통적 직업병(소음성 난청, 진폐증, 중금속, 화학물질 중독 등)과는 달리 업무상과로와 스트레스가 직접 원인이 아닌 기여요인이거나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업무관련성 평가와 과정이 일반적인 업무상재해와는 달리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 간과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뇌심혈관질환의 업무관련성 평가를 둘러싸고 이해당사자 뿐 만 아니라 결정기관과 사법기관간의 갈등과 소송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여야 할 근로자와 사업주가 이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하는데 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현행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의 문제점
현재 제정되어 있는 뇌혈관질환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상의 인정기준 뇌혈관 및 심장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1)은 1982년 노동부 예규 제71호로 '재해성 두개내출혈 및 심장질환만 인정'하는 규정이 마련된 이후 현재까지 수차례의 개정과 검토가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인정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뇌심혈관질환중 대상질환으로 현재 7가지 질환이 열거되어 있으나, 행정처분결정이나 판례를 통해 살펴보면 7가지 이외의 뇌심혈관질환도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직업병에 대한 인정 범위를 혼합주의로 채택하고 있는 현행 산재보험법의 원칙을 수용하여 혼합주의 방식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 뇌심혈관질환을 발병하게 하는 업무상 유해인자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여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업무상 유해인자에 대한 해설 내용이 객관적 근거가 없이 임의적 내용으로 되어 있다.
△ 뇌심혈관질환 발생시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뇌심혈관질환의 병리기전 상 질병의 경과가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업무수행성 고려는 불필요하다.
△ 당해근로자와 보통 평균인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러한 문제점의 발단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다음 몇 가지에서 비롯된다고 요약할 수 있다.
△ 뇌심혈관계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
△ 다른 업무상질병은 질병발생의 충분원인으로서 업무기인성이 확실한 것과 달리 뇌심혈관계 질환은 질병의 원인이 매우 다양하며 업무상 과로가 충분원인이 아니라도 악화요인으로서의 업무관련성만으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그림 1).
△ 업무상과로의 개념도 모호하고 객관적인 판단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업무상과로가 기초질환의 자연경과속도를 넘어 급격히 악화시키는지에 대한 근거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아 판단이 매우 어렵다.
본 연구의 목적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행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여부를 판단을 하는 데 제기될 수 있는 업무 관련성을 최종결정하는 과정을 어떻게 공정하고 신속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절차와 판단의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향후 공정하면서 신속하게 인정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림1>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의 발병과정
일본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일본의 뇌심혈관계질환에 관한 인정기준은 1961년에 책정되어, 1995년, 1996년에 개정된 「뇌혈관질환 및 허혈성 심질환 등의 인정기준」을 통해 뇌․심장질환이 과중한 업무에 의해 발생했다는 업무기인성의 판단이 이루어졌으며 2001년 다시 개정되었다.
대만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대만은 중앙정부인 행정원(行政院, Executive Yuan) 산하에 노공위원회(勞工委員會, Council of Labor Affairs)가 설치되어 산업안전보건과 보험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직업재해노공보호법(職業災害勞工保護法)의 직업질병인정기준 인정기준적요(認定基準摘要 총 108종 가운데 제 4종에 해당됨) 및 직업인기급성순환계통질병진단인정기준(職業引起急性循環系統疾病診斷認定基準)에 따라 직업성 뇌심혈관질환을 직업성질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뇌심혈관계질환이 직업성질환 전체 사망자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인정질병 및 인정기준은 일본의 기준과 유사하나 인정요건이 보다 엄격하다.
미국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미국은 산재보상제도가 주마다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일부 직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요건을 만족하면 특정 질환은 업무상 질병으로 자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래의 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내용으로 소방관, 경찰 등 공무원 중 일부 직종에서는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일부는 5년 이상 근무 시에 인정)2)
미국에서 뇌심혈관질환관련 업무상질병 인정여부
미국에서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연시 인정되는 상황 외에는 법원 판례를 통해 결정된다. 가장 중요한 보상가능성(Compensability)의 판단여부는 업무기인성(AOE: Arise Out of Employment)과 업무수행성(COE: in the Course Of Employment)이 동시에 작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 때 업무수행성은 법원의 판단이며, 업무기인성을 판단하는데 의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3)
1998년 발표된 통계4)에 따르면, 1985년과 1986년 동안 미국에서 심혈관계 질환으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사례가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뇌심혈관 질환 관련 판례 5)6)7)
심혈관질환 불승인 판례5) - 일리노이주 상고심 판례
55세 자동차 시트 제조회사 부사장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여 유족이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심장질환의 원인임을 주장하며 유족급여를 청구하였다. 조정기관은 소송인의 의견에 동의하였으나 위원회에서는 검토의견을 파기하였다. 위원회는 망인의 심장질환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이 모두 없다고 하였고, 순회법정도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미망인은 항소.
상고법원은 망인의 업무가 비일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망인의 심장질환이 회사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 발생하였지만, 망인의 경우 다른 기간보다 더 바쁘지는 않고, 사망 당시 망인의 근무시간이 길지 않았다. 게다가 망인은 회사가 매각될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걱정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의 통상적이며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피고인 회사의 의사가 증언한, 사망 7개월 전에 망인과 임신한 딸이 각각 유방암과 호지킨 임파종으로 진단되었고, 망인이 약간 비만하며, 부친 역시 55세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에 주목하였다.
심혈관질환 승인 판례6) - 일리노이스 주 상고심 판례
피재자는 1971년부터 1991년 11월까지 우케건시 경찰로 근무하였고, 1985년부터 1990년까지는 순환경찰로, 그 이후는 부서장으로 일했다. 1991년 11월 5일 아침에 심장발작이 있었다.
조정기관은 피재자의 심장발작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다하여 영구완전장애(PTD: Permanent & Total Disability)급여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위원회는 결정을 지지하였으며 순회법원도 위원회의 결정을 확정하였으나, 피고인 회사는 항소하였다.
업무수행성과 기인성에 대해서 첫 번째 항소심 재판부는 위원회의 인과관계 인정 부분을 받아들였다. 의사가 피재자가 다른 사람보다 스트레스에 대해 심각한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 증언하였고,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피재자의 업무가 크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음을 알리는 방대한 증거가 있었다. 재판부는 피재자의 현재의 심장상태가 다른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때 사망할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증언과 피재자가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사의 견해를 받아들여, 피재자가 실질적으로 업무를 계속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영구완전장애 급여 지급을 결정하였다.
기존 심장질환의 악화가 인정된 판례
피재자는 2년동안 견과류 포장업체에서 근무하였는데, 주 작업은 땅콩부대를 들어 용기에 담는 것으로 부대의 무게는 115-125 파운드 정도이며, 엉덩이 위로 약간 들어 올려서 아래로 쏟는 작업형태였다. 주 6일 근무하였으며 하루에 150개의 부대를 처리했다. 어느날 오후에 일상적인 작업을 하다가 급작스런 통증을 겪게 되었으며, 진단 결과 좌측 관상동맥의 폐쇄를 동반한 좌심실의 심근경색으로 진단되었다. 피재자의 진단상 기존에 심장질환이 있었고 현재 작업형태는 동일한 연령대 및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는 금기되는 작업이라고 결정되었으나 피재자는 이 사실에 대해 진단시까지 모르고 있었다.
상충되는 의학적 견해가 제기되었지만, 위원회는 피재자에게 좀 더 우호적이었으며, 피재자가 업무 수행 중 및 업무에 기인하여 재해를 당했다는 점과 기존 심장질환의 악화로 장해상태로 진행하였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피재자가 의심할 나위 없이 기존에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검사당시에 있었던 피해는 최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독일의 뇌심혈관계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현재 독일에서 인정하고 있는 직업병 항목에는 뇌심혈관질환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 등은 제외되어 있어 정확한 정보나 통계는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2004년 한국노동연구원 주최의 세미나에서 1963년부터 2004년 사이 독일에서 23건의 스트레스성 심근경색, 심장질환, 고혈압, 뇌출혈에 대한 산재여부가 심의되었으나 모두 인정받지 못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독일사회법전 제7권 제9조 제2항에 따라서, 다음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향후에라도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독일 사회법전 제7권 제9조 제2항>
1. 특정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직업으로 인하여 특별한 영향에 일반인보다 더 심하게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2. 이 영향은 최신 의학지식에 의해 특정 질환을 유발시키기에 일반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3. 이 의학지식은 최신의 것이어야 한다.
4. 질환과 위험유발작업 사이 인과관계는 구체적인 경우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의 의학적 근거
급성 스트레스가 뇌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기전
급성 스트레스와 심혈관계질환의 관련성은 잘 알려져 있다. 9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 따르면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의 사망 후 1달 내 남성에서는 2배 이상, 여성에서는 3배 이상의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사망률의 증가는 사건 발생 1달 후 정상화되었다 (Kaprio, 1987). 1994년 로스엔젤레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급성 심장사가 지진 발생 당일 평상시 4.6건에서 24건으로 증가하였다는 연구가 있다 (Leor, 1996). 고혈압의 과거력이 있는 84세 남성이 아내의 죽음 뒤 급격한 혈압의 증가로 뇌실질내출혈로 사망한 증례보고가 있다. 카플란은 급격한 혈압의 증가나 뇌혈류의 증가는 뇌혈관의 파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급성 스트레스가 심혈관계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하는 요인은 심근허혈, 뇌경색, 부정맥, 혈관의 경화반 형성, 혈전형성의 위험성 증가 등이며 이에 대한 병태생리학적 기전은 다음 그림에 요약되어 있다 (Rozanski, 1999).
급성 스트레스가 뇌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기전
만성 스트레스는 여러 과정을 통해 뇌심혈관계질환 발생에 관여한다.
첫째,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동맥경화를 촉진시킨다. 동맥경화를 촉진시키는 현상은 여러 연구에서 관찰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혈압을 상승시키고 지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Vogele, 1998). 정상적으로 내막세포의 탐식세포가 활성화되면 산화질소가 생성되어 혈관내막에 대한 보호효과를 가지지만 스트레스에 의해 혈관손상이 있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혈관수축을 유발하게 된다 (Yudkin, 1999). 또한 스트레스는 IL-6와 같은 전달물질을 생성시켜 (Peters, 1999) C-반응성단백(C-reactive protein, CRP)의 증가, 피브리노겐의 증가, 혈소판 활성의 증가, 지단백분해효소(lipoprotein lipase)의 활성 증가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동맥경화 진행에 관여하게 된다.(Yudkin, 1999)
둘째,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부교감신경계를 억제하여 심박동수 변이를 감소시킨다 (Davis, 2000;). 심박동수 변이가 감소하면 동맥경화, 허혈성 심장질환, 급성 심장사, 심근경색, 부정맥의 발현이 증가된다고 알려져 있다 (Hayano,1990).
셋째, 스트레스는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Capes, 2000)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는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유발한다. 스트레스가 뇌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 경로와 간접적 경로로 분류하곤 하는데 위 3가지 기전은 직접적 경로이고 마지막 기전은 간접적 경로로 볼 수 있다. 즉 스트레스는 음주, 흡연, 환자의 순응도 저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뇌심혈관질환의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Rozanski, 1999).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증가된 혈압은 중년이나 노년의 남성에게 허혈성 및 혈전성 뇌졸중의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보고하고 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된 뇌졸증의 가설적인 발생기전은 섬유소 괴사(fibrinoid necrosis), 소혈관에 의한 뇌혈관질환, 갑작스러운 고혈압성 뇌출혈, 혈관내막의 비후와 경동맥의 협착, 사이토카인의 분비증가 그리고 점성 혈소판증후군(sticky platelet syndrome) 등이 있다
장시간 노동에 의한 뇌심혈관계질환에 관한 역학연구
장시간 노동이 유발할 수 있는 건강장해로 정신건강, 심혈관계질환, 작업수행능력 등이 나타나는데 40세 이하에서는 주60시간 이상 근무자나 교대 근무자에서 심혈관계질환 발생이 4배 증가한다고 하였고(Russek, 1958), 캘리포니아 직업사망률 자료를 통해 44세에서 48시간 이상 근무하면 심혈관계질환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Buell, 1960). 영국의 전화 회사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장시간 근무자에서 심혈관계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증가하였으며 (Hinkle, 1968) 또 한 연구에서는 주60시간 이상 근무자에서 심혈관질환의 발생이 46%로 비교군 26%에 비해 높았으며 50-60시간 노동군은 대조군에 비해 약간 높았다고 한다 (Thiel, 1973). 17개 논문을 메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장시간 노동이 생리적, 정신적 건강 장애를 유발한다고 나타났다 (Spark, 1997). 일반적으로 주 5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이 심혈관계질환을 포함한 건강에 유의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Spurgeon, 1997).
교대근무에 의한 심혈관계질환의 발병에 관한 역학연구
연구마다 위험성에 대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 아직 확립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Koller 등(1978)은 호주 석유정제공장에 대한 연구에서 교대근무자의 순환기질환의 유병율이 19.9%로 낮 근무자의 7.4%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수치를 보여주고 교대제 근무자에서 낮 근무자에 비해 심근경색을 앓은 병력도 많다고 보고하였다. Tenkanen 등(1997)은 헬싱키 심장 연구의 일환으로 1,806명을 6년간 추적 조사한 코호트 연구 결과 교대근무가 관상동맥질환의 발병을 높인다고 보고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근무 직종과 관계없이 교대근무는 낮근무에 비해 관상동맥질환의 발병율을 1.4배 정도 높이며 특히 2교대근무 생산직에서는 관상동맥질환이 1.9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하였다.
직무 스트레스와 뇌심혈관계질환
직무스트레스와 심혈관계질환의 관계에 대해서는 카라섹모델을 이용한 단면조사뿐만 아니라 환자대조군 조사, 추적조사에서도 업무 요구도가 높거나 업무 자율도가 낮은 경우에 심혈관계질환 특히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밝혀졌다. 사회적 지지를 포함시킨 확대모형에서는 사회적 지지가 낮은 군에서 심혈관계질환의 발현률이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스웨덴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 중 13,799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정신 사회적 작업환경과 심혈관계질환 이환율과의 관계를 조사하였는데, 높은 업무요구도, 낮은 자율도, 낮은 지지도 그룹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연령보정 이환률이 2.17배 높았다 (Johnson 등, 1989).
심근경색을 처음으로 경험한 환자군 1,047명과 동일지역의 거주자를 성, 나이, 방문병원 등으로 층화하여 대조군으로 하여 시행한 연구결과, 자신이 평가한 업무자율성은 교차비가 1.3으로 심근경색의 발병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었으며 이는 보정 후에도 유사하였고 자신이 평가한 업무요구도는 교차비가 1.4로 역시 유의하였다 (Theorell 등, 1998).
헤밍웨이와 마르모트(1999)의 직무스트레스관련 10개 연구 중 7개가 카라섹 모형을 적용한 연구인데, 7개 논문 중 5개 연구에서 고긴장군에서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았으며, 상대위험도는 1.5~4.95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연구는 10,30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5.3년 추적결과 업무요구도가 낮을 경우 심혈관계질환의 상대위험도가 1.93이었다. 또한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1) 조사에서 3,575명의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14년 추적 조사한 결과 고긴장군에서 추가적 위험이 없었으나 업무자율성이 낮은 경우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이 1.4배로 나타났다 (Steenland, 1997). 그러나 4,737명을 대상으로 18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관련성이 없다고 나타났다 (Reed 등, 1989). 위 논문 이외에도 몇 개의 전향적 조사에서 역시 고긴장군에서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이 높다고 나타났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것은 1,928명의 스웨덴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6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인데 심혈관계질환이 4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Karasek, 1981).
뇌경색의 발생률과 사망률은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또한 스트레스에 유발된 반응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캐롤은 수축기 혈압이 정신적인 업무에서 직업적 계층과 연관되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다.
직업운전
운전업은 뇌심혈관계질환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직종이다. 벨킥(1994)은 1962년부터 32개 논문 중 28개 논문에서 직업운전 자체가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율을 높인다고 하였다. 발병 기전은 운전시 혈압, 맥막, 부정맥, 심정도, 혈압 코티졸 변화와 심혈관계 위험의 강력한 증가를 유발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 각주 -
1) 뇌혈관 및 심장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에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원인으로 인하여 뇌실질내출혈․뇌경색․고혈압성 뇌증․협심증․해리성 대동맥류․심근경색증이 발병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업무수행 중에 발병되지 아니한 경우로서 그 질병의 유발 또는 악화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이 시간적․의학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1)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로 근로자에게 현저한 생리적인 변화를 초래한 경우
(2)업무상 양․시간․강도․책임 및 작업환경의 변화 등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만성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3)업무수행중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이 발병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원인이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었음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아니한 경우
가목(1)에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라 함은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과중부하를 말한다.
가목(2)에서 "만성적인 과로"라 함은 근로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전 3일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이상 증가되거나 발병전 1주일이내에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작업환경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
2) Physician's guide. Industrial medical council.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STATE OF CALIFORNIA). 3rd ed. 2001
3) Physician's guide. Industrial medical council.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STATE OF CALIFORNIA). 3rd ed. 2001
4) Job-Related Diseases and Occupations Within a Large Workers’ Compensation Data Set. 1985-1986. Bureau of Labor Statistics' Supplementary Data System(SDS)
5)6)7) Flynn v. Industrial Comm’n, Ill. App. 3d 1998 WL 909747 (Ill. App. Dec. 31, 1998)
Waukegan v. Industrial Comm’n, 298 Ill. App. 3d 1086 (1998)
Liberty Mutual Ins. Co. v. IAC (Calabresi) (1946) 73 CA2d 555, 11 CCC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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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엔렌버거 (James N. Ellenberger)
번역 : 김정민 / 노동건강연대 회원
마구잡이식 “개혁(reform)”의 열풍은 “위기(crisis)”에 봉착하지 않은 주(州)의 고용주들에게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대다수의 주(州)에서 산재노동자와의 갈등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실재(實在)하거나 조작된 “위기”를 획책하던 시절, 오하이오에서 벌어진 전투는 노동자에게 눈부신 승리를 안겨 주었다.
오하이오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미국노동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의 의장이었던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의 후임자였던 윌리엄 그린(William Green)은 오하이오에서 주(州)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오하이오(Ohio)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Workmen's Compensation Act)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사업주에게 산업재해보상을 위한 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특별기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AFL의 부의장으로 활동하던 그린은 1921년 덴버(Denver)에서 있었던 정기총회를 통해 오하이오 법의 기조(基調)를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책임보험회사는 산재보험을 오하이오에서 팔 수 없게 되었고,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의 피를 빨아 먹던 책임보험회사를 집에서 몰아낸 일에 대해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상업적인 영리보험회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오하이오의 경영계는 다른 주(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이라는 보험업계 캠페인을 접하면서 더 큰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1993년 “관리의료(managed care)"를 통해 의사들을 통제해왔고, 1995년에 산재보험 관리자(administrator)의 선임에도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오하이오의 주(州)기금은 1997년에 18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94년 25억 달러의 일시차입금은 1997년에 29억 달러의 잉여금(54억 달러의 변동)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 보험료의 천문학적인 증가(평균 50%이상)를 경험했던 주변 주(州)의 고용주들과 달리 오하이오의 보험료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1996년에는 실질적으로 6% 감소하였다.
탐욕스런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Manufacturers Association)와 오하이오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주지사 조지 보이노비치(George Voinovich), 그리고 주(州)의회를 장악했던 공화당원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고용주에게 매년 2억 달러의 지출을 감면시켜줄 법률개정을 추진했다. 물론 작업장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거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개정이 아니라 산재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착취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보상범위와 보상금액을 축소하려했다.
1997년 4월 22일 주(州)의회에서 통과하여 주지사 보이노비치에 의해 승인된 상원의 법안 45호(Senate Bill 45; SB 45)는 다른 주(州)에서 이미 실행되었던 수많은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안은 일부 근로자의 임금손실에 대한 보상기간을 200주에서 26주로 축소하였고, 직업병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오늘날 급격한 증가추세이며 경제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직업성 질환인 대다수의 누적외상성질환들(repetitive motion injuries)이 산재보험에서 제외되었으며, 특히 이러한 질환에 이환되기 쉬운 직장에서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차별적인 법안이었다. 또한 SB 45는 미국의사협회(AMA)의 영구장애평가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고, 이로 인해 영구적인 부분장애로 고통 받던 노동자들의 보상금은 대폭 삭감되었고 산재보상이나 의료급여 지급에 따른 소송의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
1997년 4월 16일, 오하이오 하원이 SB 45를 가결하던 날,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The Cleveland Plain Dealer)지(紙)는 “오늘이 오하이오 경영계의 봉급날(pay day)이다”라고 평했다. 새 법안의 통과와 거의 맞물려 보이노비치가 산재보험사무국(the Bureau of Workers' Compensation)의 책임자로 임명한 제임스 콘라드(James Conrad)는 오하이오 고용주에 대한 보험료 할증률을 15% 낮추었다.
자본의 공세에 대항한 노동자의 연대
야비한 공화당과 경영계의 폭압이 사회적으로 묵인되자 노동자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하이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의장 빌 버가(Bill Burga)와 미국 자동차 항공우주 농업기계 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UAW) 2지역 관리자 워렌 데이빗(Warren Davis)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위원회(Committee to Stop Corporate Attacks on Injured Workers)"를 조직하였고, UAW 2-B지역 및 오하이오 트럭운전자연맹(the Ohio Conference of Teamsters) 지도자 잭 시즈모어(Jack sizemore)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오하이오 법정변호사협회는 기금을 조성했으며, “오하이오의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한 오하이오인 모임"에서 회원들이 활동을 시작했고, 종교인단체도 이를 도왔다. 투쟁기간 내내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연대(coalition)를 이루었다.
1997년 7월 22일로 효력이 발휘될 새 법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문제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오하이오 선거에 국민투표(referendum)가 도입된 지는 거의 60년이 되었다. 국민투표를 위해서 최근 주지사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6%의 서명이 필요했고, 200,774명의 서명은 주(州)에 있는 88개 지역의 반수에 해당하는 44개 지역에 등록된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7월 21일, 장갑자동차를 이용해 88개 모든 지역 유권자 414,934명의 서명이 오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내졌고, 곧바로 새 법안의 효력일은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되기까지 미확정상태로 남게 되었다.
현재 쟁점 2호(Issue 2)로 알려진 국민투표는 노동자들에게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공화당소속 국무장관에 의해 결정된 판단의 어조는 오해하기 쉬운 위험성이 있었다. “찬성(yes)”에 투표하는 것이 새 법안을 통해 산재보험관련 사기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와 동일시 될 수 있었다. 사실 그 법안은 거의 사기행위에 대한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았으며, 산재노동자에 대한 독소조항은 18줄의 설명으로 그치던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경영계는 최대의 활동을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Committee to Keep Ohio Working)"를 조직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77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이 금액은 노동계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모은 금액의 3배에 달했다. 가장 많은 기부를 한 곳은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 상공회의소, 크라이슬러사, 프록터 앤 갬블, 오하이오 자동차판매상협회였으며, 다른 기부자로는 제너럴 모터스, 포드, 오하이오 건강관리회사, 일본 소유의 혼다 자동차회사가 있었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캠페인에 참가하여 2달러를 기부해줄 회원을 모집하는 수준이었다. 지역 조합들은 그들의 모(母)조합에 기부하였으며(특히 건설업계), 철강노동자연맹(the United Steelworkers), 자동차노동자연맹(the United Autoworkers), 미국언론노동자단체(the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식품 및 상업노동자연맹(the 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전미 주ㆍ군ㆍ시 고용인동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호텔 및 식당고용인단체(the Hotel Employees & Restaurant Employees)는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미주리, 뉴멕시코, 펜실베이니아, 텍사스와 같은 다른 주 연맹에서도 오하이오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를 도우려 애썼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는 경영계가 캠페인에 퍼붓는 자금의 반(半)도 마련할 수 없었다.
다른 캠페인으로부터 얄팍한 술책을 빌린 법인 주도의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는 쟁점 2호에 대해 ”찬성"에 투표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의 당나귀 실루엣이 그려진 전단지를 15만 명의 민주당원들에게 보냈으며, 공화당은 산재노동자의 편지를 날조하여 현재 표결에 부쳐진 쟁점 2호, 즉 상원의 법안 45호를 지지하는 신문사들에 각각 보냈다.
술책은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월초 콜럼버스 디스패치(the Columbus Dispatch)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1 이상의 차(差)로 쟁점 2호는 쉽게 통과할거라는 예상이 나왔다.(찬성 56%, 반대 26%, 미정 18%) 주요 신문사와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은 모두 “찬성”투표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에는 전략이 없었다. 주(州) 근처 중앙노동회의(Central Labor Councils)는 공장입구와 작업장에서 전단(傳單)을 돌릴 지원자를 조직할 현장 코디네이터를 임명하려 하였고, 노동조합신문들과 지역 출판물들은 위태로운 쟁점들을 회원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자”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에게 작업장의 모습을 알리고 다른 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요청했다. 뒤이어 텔레비전 캠페인을 통해 산재조합원이 출연하여 산재보험시스템의 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상원의원 존 글렌(John Glenn)이 쟁점 2호에 대해 “반대(No)"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예상 득표의 획득은 못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상세한 계획으로 노동자 가족들이 선거에 참여하여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쟁점 2호와의 투쟁에 있어 노동계 캠페인의 비장의 무기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매년 두 차례 오하이오의 AFL-CIO에서 시행되는 일주일 코스의 산재보험관련 강습회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었다. 강습회는 오하이오 AFL-CIO의 시민권 및 산재보험 분야의 지도자에서 최근 물러난 톰 벨(Tom Bell)에 의해 조직되었고, 지방 노동조합 운동가들에게 산재보험법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직장에서 산재노동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육시켰다. 철강노동자연맹의 39년 회원이기도 했던 벨은 오하이오 AFL-CIO의 의장인 빌 버가에 의해 쟁점 2호에 맞선 노동계 캠페인의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
점점 벌어지던 차이는 점차 기세를 꺾이고 있었다. 2:1의 여론조사 이후 주(州) 전체의 쟁점이 없었던 중간선거에서 노동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고, 산재보험과 같은 난해한 쟁점에 대해 관심을 유도하였다. 지난 수년간 벨 등에 의해 훈련된 일반조합원 운동가들이 대세를 바꿔놓았다.
사업주들이 주(州)의회를 통해 밀어붙이고 보이노비치가 4월에 승인한 법안을 유권자들은 57대(對)43, 14포인트라는 큰 차로 거부하였다. 놀랍게도 31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참고로 지난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35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었다. 노동계에서 주장했던 “반대"의견은 오하이오의 88지역 중 73개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패배를 경험한 거대 기업주들과 옹호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뻔뻔스럽게도 “찬성"를 종용하던 제임스 콘라드 국장은 ”노동계의 캠페인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경영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유권자들이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산재노동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똑똑한 사업주들과 이들의 공화당 협력자들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일반인들은 쟁점 2호에 대한 분쟁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경영계가 법과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산재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훔쳐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빌 버가가 말했듯이 오하이오에서 노동자들은 돈보다 사람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클리블랜드의 로컬 2015(Local 2015)를 통해 자동차 제조 노동자 로드니 보거(Rodney Boger)는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라고 말했고, UAW의 동료였던 제리 세실(Jerry Cecil)은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지(紙)를 통해 노동자가 승리한 이유를 간단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는 어리석지 않다. 그 법안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산재노동자들의 보험급여에 대한 강탈에 대해 유권자들이 “반대"한다는 반향을 불러일으킨지 8일째 되던 날, 보이노비치의 주(州)정부는 사업주에게 할인해주었던 13억 달러의 산재보험료를 노동자에게 되돌린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 금액은 연간 사업주들이 주(州) 보험기금에 지불하는 액수의 75%에 해당했다.
보이노비치의 공식성명에 대해 그 사기성과 이중성을 비난하며 빌 버거는 말했다. “13억 달러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주지사 보이노비치는 수개월 동안 산재보험 사무국이 상당액의 보험료를 할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맥락에서 쟁점 2호의 산재보험급여 삭감을 오하이오 유권자들에게 승인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언제나 노동자들이 지배세력을 이길 수 있겠는가?
1997년 11월 초, 오하이오에서 수천의 일반 조합원들과 비조합 노동자들이 일궈낸 승리는 직장에서 얻은 상해와 질병뿐만이 아니라 사회보장시스템의 거짓된 약속에 고통 받던 수백만 산재노동자들에게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이자 희망의 횃불이 되었다.
현재 다른 여러 주에서 AFL-CIO 조직들이 과거 산재보험시스템의 “개혁”이 가져온 피해를 바로잡고자 투표 발의를 검토하고 있으며, 아칸소(Arkansas) 주에서는 산재노동자의 존엄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투표를 이용하려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공판을 통해 콜로라도 노동계는 법원으로부터 1992년 투표를 하려했으나 불법적으로 저지당한 “안전한 작업장" 추진사업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중요한 판결을 얻어냈다.
이제 다음 전투가 서서히 임박하고 있다. 보험회사와 고용주들이 일리노이나 뉴욕과 같이 커다란 주에서 추가적인 “개혁"을 기대하며 군침을 삼키고 있고, 주지사 조지 파타키(George Pataki)는 산재노동자의 보상금을 과감히 삭감할 수 있는 방법을 뉴욕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있다. 뉴욕 AFL-CIO와 함께 안전보건운동 및 법정(trial bar)의 지지자들이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노동운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동가들을 양성하며 산재노동자들을 돕고 있으며, 안전보건위원회는 입법부 의원들에게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과 예방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정치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대표하는 변호인들은 쟁점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고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대한 위협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으며, 산재노동자단체는 이 전투에서 산재노동자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노동계는 1998년 선거에서 그들이 지지하던 후보가 승리하는 여세를 몰아 오랫동안 미뤄왔던 산재보험급여의 인상을 얻어내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는 1993년 “개혁"의 결과 50억 달러의 부담을 덜었던 고용주 집단이 약속한 것이었다.
이렇듯 산재노동자단체들이 전 지역에 걸쳐 활기를 띄고 있다. 설립된 지 오래된 루이지애나 산재노동자조합(Louisiana Injured Workers Union)같은 단체들은 미시시피,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플로리다,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동종의 단체들을 후원하는 데까지 역량을 확대했으며, 텍사스, 오하이오, 노스다코타, 뉴욕 등의 주 노동기구들도 이러한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이러한 후원에 힘입은 펜실베이니아 AFL-CIO는 펜실베이니아 산재노동자동맹(Pennsylvania Federation of Injured Workers)을 설립했으며 현재 주(州)전역에 12개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해서는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산업재해이후 산재보험시스템에 의해 또다시 모욕과 충격을 받게 되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안내와 후원을 제공하며 노동을 포함한 다른 지원시스템도 제공한다. 또한 이들은 산재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이나 직업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의 개선에 대해 시위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여전히 고용주나 보험업자 단체들은 끊임없이 입법부 의원들과 행정 관료들을 부추겨 산업재해보상프로그램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 일부 주지사들, 주 입법부 의원들, 산재보험위원들이 산재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운 위기에 대한 경고들과 맞서고 있다(경영계 리더들은 곧 비용이 다시 급등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조직, 동료와의 대화ㆍ토론, 과거와 같은 정치적 활동은 승리의 연대는 만들어질 것이며, 오하이오에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산재보험 및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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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2005년, 뜨거웠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성수동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 실태조사’
의외의 뜨거운 반응에 공동실태조사단 모두는 놀랐다.
지역에 실태조사를 한다는 현수막을 건 다음날인 6월 20일부터 여러 사람들한테 전화가 왔었다. “지역에 사는 장애인인데 도시가스요금을 못 내서 가스가 끊겨서 밥을 못해먹고 있는데 해결이 안 되겠냐”는 이야기부터, 동사무소 직원이 어떤 실태조사인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00회사인데 언제 실태조사 하러 오느냐?”는 질문, 그리고 가장 갈급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나오는데 현수막이 보여서 그날 바로 상담 왔던 제화노동자들이었다. 심지어는 전세 계약의 문제로 사무실까지 찾아왔던 사람들도 있었다. 겨우 성수동의 4개 동에 1개씩의 현수막을 걸었을 뿐인데... 어쨌든 반응이 없는 것 보다는 좋았다.
먼저 성수동에 대한 사전답사부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시작하기 3주전에 성수동 4개 동의 공단밀집지역을 답사했다. 성수1가1동의 뚝방길 옆은 악세사리를 만드는 금속사업장이 몰려있는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공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주택인지 공장인지 잘 구분이 안가지만, 근처에 가보면 공장이라는 것을 알겠다. 대부분 금속 똥(금속을 깍을 때 나오는 찌꺼기?)들이 주변에 있고, 찌든 기름때와 어두컴컴한 분위기, 시끄러운 쇠 깍는 소리가 들린다. 공장들은 대부분 경기를 타서인지 일이 없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답사 간 때가 비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단병호의원실과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아서 여기처럼 작고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실태와 복지 요구도를 조사하여 이후에 사회적으로 요구할 것이니까 다음에 실태조사 나오면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시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고 커피까지 타주셨다. 대부분은 부부, 혹은 사장 혼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임금을 주는 아주머니 한 분 정도 두고 사장과 같이 일하는 곳이었다.
성수2가3동은 1가1동쪽보다는 규모가 좀 큰 곳들이 많다. 일하는 사람들이 5인 안팎에서 20인 사이. 그래봤자 20인 넘는 곳이 많지 않지만. 인쇄․금속․제화 사업장들이 서로 얽혀서 혼재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아파트형 공장들이 많다는 점이다. 안으로 들어갈려 했더니 경비아저씨가 막아선다. 화장실 출입도 쉽지 않았다. 현장 방문하여 설문조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현장방문을 통한 설문조사
지난 3월25일 지역의 9개 단체가 모여서 ‘영세사업장이 밀집해있는 성수동 지역에서 실태조사를 하자’고 결의하고 ‘영세노동자 노동 복지를 위한 공동실태조사단’을 꾸렸다. 3달여 동안 자료를 조사하고, 수차례의 모임과 회의를 통해 설문지를 만들고, 실태조사를 도와줄 봉사자(조사원)를 조직하고, 각 분야별 전문 자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도 듣고, 두 차례의 조사원교육도 가졌다. 샘플조사를 통해 최종 설문지 수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설문을 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세우기도 했다. 우선은 9개 단체를 각 동별로 팀을 나누고, 우리의 목표치인 노동자 500부, 사업주50부, 실업자50부를 나누어서 받기로 했다.
조사를 도와주는 조사원들과 함께 조사 설문지를 갖고 현장을 갔다. 현장의 분위기는 냉담하기도 했다. 사장이 “우리 바빠요, 다음에 오세요” 라고 하면 직원들도 더 이상 해준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사무실(사장한테)에 가보세요”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해주세요. 내일 찾으러올게요”라고 해서 놓고 가면 다음날 해주기로 했지만 며칠을 가야 해주는 경우도 있고, 또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곳은 이런 취지에 동감하며 “자격이 되겠냐?”고 물어 보며 음료수까지 주면서 설문조사에 응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좋은 방법은 지역의 연고자를 찾아 방문하여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함께 설문조사를 받는 것이다.
하루에 3부까지 하면 많이 하는 것이다. 날은 더워서 땀이 그냥 떨어진다, 장마철 대비해 기념품으로 “우산 드려요”라고 해도 쉽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부당했을 때 다시 다른 현장에 가서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방문 선전전’하는 것이랑은 또 다른 것 같다. 한부를 작성하는 데 최소 10분 이상 15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고 물어오면 “그렇기 때문에 설문조사하고 사회적으로 요구 할 거예요” 하고 강조 하지만 ‘정말 잘 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성수동 거리의 실태조사 캠페인
몇 날 현장방문 실태조사하고 조사원들이 모여서 서로의견을 나누었다. 지역에 알릴 겸 거리에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반응을 보고 다시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6월 28일 성수역 근처 기업은행 앞에서 첫 실태조사 캠패인을 벌였다. 크게 천막을 치고, 가판대를 놓고, 냉커피도 타 드리고, 노동 상담이 필요한 분에게는 노동 상담도 하였다.
야~! 점심때가 되자 식사를 하러 나온 주변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오던지! 또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교대일도 많아서 퇴근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우산 주니까. 아님 냉커피 한잔 마시려고 왔겠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왔든, 설문을 응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걸리느냐?”고 하면서도 한 문항 한 문항 답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펼치곤 하였다. 이날 우리가 받은 부수는 노동자 52부, 실업자 7부, 사업주 7부로 총 66부를 받았다. 현장방문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3~5부인데 하루에 이만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현장방문해서 노동자들에게 설문 받는 것은 어려운데 거리에서 하니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와서 설문조사에 참여할 수 있고, 또 1:1로 면접 조사를 하니 우리의 처음 조사방법에서 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라고 판단하여 모두들 “또 해야지!” 라고 의견을 모았다.
3주에 걸쳐 영세사업장이 몰려있는 지역을 찾아서 돌며 6차례의 거리 캠패인을 하였고, 7월 23일 실태조사를 마감하였다. 이렇게 받은 설문은 노동자 478부, 실업자 58부, 사업주 72부로 총 608부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설문조사를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제화 일을 하시는 한 여성분은 남편의 실직 상태가 오래 되어서 결국은 본인이 가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떤 중년의 아저씨는 나에게 2000원을 빌려 달라하였다. 이유인 즉, 일자리를 구하면 그 날 그 날 일당으로 잠자리를 해결하는데, 요 며칠 비가 와서 일을 못했다면서 찜질방에서 하루 자야하는데 2000원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소개해줄까요?”라고 물었지만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오히려 화를 내셨다. 어떤 분은 인쇄 일을 오래했던 기술자인데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였고, 일자리를 계속 못 구해서 결국은 고물을 주우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다른 조사원들도 나처럼 다양한 인상에 남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하다보니 대부분 장시간 노동과 직장에서는 법정복리후생항목을 대부분 받을 수 없고, 공공복지에서는 거의 받아 본적이 없고 정보도 모르고 있다. 일자리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버텨야 하고, 아픈 몸은 웬만큼 견딜만하니 병원갈 일 없고, ‘이 정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들... 요즘과 같이 웰빙을 말하는 시대에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
2005년 10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 드디어 여름 내 흘렸던 땀방울의 결실이 발표되었다.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두툼한 자료집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는 분석에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여건, 노동안전, 노동복지, 고용안정 등에 대한 조사 결과와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42만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104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 연월차는 80% 정도가 받지 못했으며, 토요일 전일 근무를 하는 경우는 33%에 달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51.7시간, 60% 정도의 노동자들이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든 경우 산재보험 신청율은 23.3%에 불과하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5명 중 1명이 산재보험을 잘 몰라서 산재신청을 안했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들을 요구하였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 법정수준의 노동조건 개선, 영세사업체에서 기업복지의 한계를 사회복지로 보전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영세사업장 안전보건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지역에 일반보건의료와 산업보건서비스를 총괄할 수 있는 공공적 지역보건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또한 성수동과 같은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노동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후 공동실태조사단은 성수동에서 지역보고대회를 진행하고 평가의 자리를 갖은 다음 해산하였다. 애초 ‘실태조사’라는 목표를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실태조사는 향후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요구의 출발점일 뿐이다. 멈춤 없이 이러한 노력을 이어나가는 것이 실태조사에 응해주신 608명의 사람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향후 사회적 요구에 함께 한 9개 단체가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함께 일을 해보니 성수동은 정말 모범이 되는 지역이다. 서로가 결의하고 맡은 역할에 대해 책임감 있고 기동력 있게 움직이는 것은 쉽지가 않는 일임에도 모두 헌신적으로 해주어서 이렇게 실태조사가 중간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 성수동을 뜨겁게 달궜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기가 2006년에는 커다란 함성으로 메아리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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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건강하지 못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노동건강연대, 아시아의 친구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은 이주노동자 직업병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실태와 더불어 직업병에 대한 지식, 작업장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기초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2005년 1월, 화성에 위치한 모니터부품 공장에서 일한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 노말 헥산 중독에 의해 다발성 신경마비(앉은뱅이 병) 증세를 호소하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그들의 작업장 실태가 고스란히 수면위로 올라왔다.
당시 노동부에서도 급히 조사에 착수하여 산재를 승인해 주고 사업주를 처벌하며 귀국한 3명의 노동자 또한 재입국시켜 치료를 해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보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병들은 몇 년 후에 나타나는 병들로 미루어보자면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말-헥산 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태국인 여성노동자들.
한국의 이주노동자 유입의 역사는 이미 15년을 넘어섰고 90년대 말,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입국을 하였고 현재는 33만 명(2005년 8월 통계)을 넘어서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오고 있으며 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흔히 3D업종이라고 불리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던 시기인 2000년도에는 1/3이 넘는 외국인 연수생들이 이탈하고 미등록체류자의 수는 날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탈 연수생, 미등록 체류자를 체포하여 강제출국 시키겠다는 대책 이상은 마련하지 않고 있었고, 이러는 사이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강제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빈발하는 산재사고, 송출업체에 의한 중간착취, 여권 압류, 공장 밖 출입통제 및 폭행 등 기본적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동안의 인권단체와 상담소 등의 꾸준한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개선노력으로 사회 전반에 그 문제의식이 부각되고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그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고 본다.
매해 이주노동자의 실태 등 개선방향에 관한 여러 실태조사들이 진행되었고 크게 성과를 본 자료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작업장 내 안전수칙 준수 등의 작업환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들에 대한 경각심은 적었다.
사실, 이주노동자 관련단체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상담을 하면서도 실무자들의 직업병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거니와 직업병이라 해도 당시 사건에 대한 처리, 산재 관련한 안내가 전부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안된 이번 직업병 실태조사는 안양과 파주 지역에서 총 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진행되었다. 총 1백40여 건의 조사를 분석한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안전수칙, 직업병에 대한 인식 등이 현저히 낮다는 평가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건강연대에서 진행하였던 성수동 직업병 실태조사와 비슷한 구조를 보였으며, 이와 비교해 볼 때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3D제조업, 영세업체에서 근무하는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석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점은 안양은 주변이 공단지역이었고 파주는 영세사업장이 많아 나타나는 질병이라든가 인식 자체에 다른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고 회사에서의 사전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사업주들조차도 직업병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경인지역 이주노동자관련단체 상담실무자에 대한 노동안전보건교육
이러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경인지역 이주노동자 관련단체 상담실무자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실제적으로 이주노동자들과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작업환경, 직업병의 발생경로, 작업장 내 지켜져야 할 안전수칙 등에 대한 교육을 통한 정보공유의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처리절차도 중요하지만,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를 사고의 요인을 파악하고 예방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의 자리를 통해 상담실무자들은 그동안 각 지역 상담소와 단체에서 발생한 사고와 상담사례들을 나누면서 열악하고 다양한 위험요인을 안고 있는 작업장 내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교육의 내용은 각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 있는 직업병,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고, 함께 고민하고 인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거 같아 뿌듯함을 가지 수 있었다. 앞으로 다양한 기회가 생겨 좀 더 여러 분야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등이 이루어져서 다양한 부분에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개선되어 졌으면 하는 바람과 좀 더 나은, 좀 더 인간다운 이주노동자 정책이 수립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가 이주노동자이며 우리는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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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경동빌딩 옥상에 자리 잡은 것은?
< 노동건강연대의 주소 : 서울시 성동구....경동빌딩 2층 >
사진속의 경동빌딩 옥상
광화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인권전.
57회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여 ‘오늘의 인권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러 작가들의 사진과 그림들을 스윽 감상하고 있던 차,
내 눈에 불현듯 들어오는 제목, ‘경동빌딩 옥상’
‘아니, 우리건물이랑 이름이 같네?’
호기심에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속의 경동빌딩은 전원에 사는 것이 염원이었던 한 노부부가
자신이 사는 건물의 옥상을 마당으로 가꾸어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의 시작은 회색 시멘트바닥에서 시작하였다.
부부는 여기에 빨간 고무 다라이를 놓고 흙으로 채웠다.
흙에서는 곧 여러 가지 푸른 것들이 자라난다.
회색투성이 옥상은 어느새 초여름의 햇빛을 받아 파래지고
할머니의 발걸음이 분주해질 때마다
손주와 이웃들의 움직임도 늘어간다.
화단은 점점 무성해져서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고
늘어선 빨래들 사이로 어느 날 차양막이 쳐지고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경동빌딩 옥상’ (박용석 / 새사회연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염원인 부부가 옥상을 정원으로 꾸몄다.
“경동빌딩에 사는 부부는 마당이 없다.
그래서 옥상을 마당으로 개발한다.
커다란 밭을 만들고 채소와 화초를 가꾸며 이웃을 모아 잔치를 벌인다.
옥상은 마당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그 구조를 변해간다.
이 다큐멘터리 사진은 전원에 살기를 염원했던 부부가
옥상을 작은 밭으로 가꾸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제 옥상은 부부의 방이며 사적인 마당이며 또한 환경이 되었다.”
작가의 메모는 옥상에 담긴 부부의 생활을 간단히 표현하고 있었다.
또 다른 경동빌딩 옥상
한편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경동빌딩.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건물인 이 경동빌딩의 옥상의 풍경.
에폭시로 바닥 방수처리를 하고 한쪽에 물탱크가 놓여있는 것이
흔히 보는 건물 옥상의 풍경이다. 옥상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성수동 일대의 건물 옥상들 역시 비슷하다.
또 다른 경동빌딩의 옥상.
평범한 옥상이다. 시멘트 바닥과 물탱크.
수지가 개발되기 시작할 때 한 아파트 건설회사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하였다.
아파트 동중의 하나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작은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계획은 건설회사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고 아파트 한 동을 포기함으로써 발생되는 손실을 생각하면 현실성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분양이 시작되자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졌다.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인근의 아파트 세대의 분양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가가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아파트 한 동에 해당하는 손실은 공원을 둘러싼 세대들의 분양가에서 모두 되찾고 오히려 아파트의 이미지 상승에 필요한 광고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몇 년 되지 않은 일이지만, 이젠 아파트를 지을 때 중앙에 공원과 광장을 두는 설계는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전시회 사진속의 부부가 가꾸던 옥상은 사람이 도시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주변을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식목일이 아니라도 봄만 되면 서울외곽의 원예하우스들은 북새통을 이룬다.
각종 허브에서부터 고추, 깻잎 등의 모종, 철쭉 등의 꽃나무와 사시사철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관엽식물 등까지.
여름이면 다 말라 죽게 만들면서도 해마다 봄만 되면 화분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설레는 나도 있다.
성수동 경동빌딩의 옥상에서 바라본 인근의 풍경.
풍경이라고 할 것도 없이 건물 투성이의 동네모습이다
결국 손 닿는 곳, 눈길 닿는 곳에 푸릇푸릇한 것을 놓고 키우던가 혹은 구경만이라도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기본으로 갖고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염원’이라는 부부는 그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옥상을 가꾸고 있고, 옥상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방 한쪽에 화분이라도 놓고 산다.
그것도 아닌 또 다른 경동빌딩은, 그리고 이 동네 성수동 일대는 그런 노력도 제지된 채로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인권전에서 ‘경동빌딩의 옥상’이 내 눈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로수하나 없이 담장 넘어 내려오는 개나리 잎사귀하나 구경하기 힘든 회색투성이의 성수동에서 살다가 ‘경동빌딩옥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저렇게 살면 좋겠다, 주변에 저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더 숨통이 틔게 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었다.
인간이 녹색의 자연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이 결여되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 그것도 인권으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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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농촌의 산업구조와 농부증
농민의 노동재해, 농부증
도시생활과 제조공업에 익숙한 우리들은 농촌생활에 환상을 갖기 쉽고, 농촌생활에 환상을 갖는 이들에게는 농촌은 건강한 사회로 보인다. 맑은 공기와 푸르른 대자연의 품에서 곡식과 과실을 경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우 건강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농촌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유쾌하지 않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농부증’이라는 말이 있다. 농부증이란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농민들에게 주로 많이 발생하는 정신적․신체적 장애증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농업노동을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건강문제는 여러 가지이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반복적인 동작을 할 때 발생하는 근골격계질환, 농기계에 의한 사고, 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농약중독,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에 오염된 토양과 용수로 인한 피부질환, 고온 다습한 밀폐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비닐하우스증후군,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면서 얻게 되는 일사병 등.
실제로 우리나라 농민들의 건강 상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2004년 6월부터 9월까지 농민약국 16명의 약사들이 전라남도 나주, 해남, 화순, 경상북도 상주의 농민 3,132명을 대상으로 대표적인 농부증 증상 8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42%가 농부증, 42.1%가 농부증 의심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4년 12월 9일에 발표된 농림부의 ‘농림어업인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림어업인의 42.7%가 농부증 양성반응을 보였고 34.0%는 농부증으로 의심되었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농업노동은 아마 농민들의 몸에 무수한 질병을 주었을 것이다. 한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몸이 골병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농민들이 농업노동으로부터 얻게 되는 건강문제는 농업의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농업의 자본주의로의 편입 과정이 만들어낸 기계화․화학화․시설화 등은 농민들이 겪는 건강문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벼로 녹색혁명은 성공했지만....
1960~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녹색혁명’은 급격한 인구증가를 지탱하기 위해 이루어진 농업의 산업구조 개편이었다. 농업생산의 기계화,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다수확 품종의 개발과 재배, 상업적 시설농업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녹색혁명은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가 간의 불균형”이라는 명제가 예언했던 인류의 종말적 기아상태를 일정정도 해소했다. 우리나라 또한 통일벼와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녹색혁명을 성공시켰다. 농업생산량은 극적으로 늘어났고 농민들은 한때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사의 유행과 함께 부유한 농촌을 꿈꿨다.
그러나 녹색혁명의 결과는 농민들의 소박한 희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첫째, 소위 현대적 농업경영으로 전환은 농민들에게 지속적인 농자재의 수요를 유발시켰다. 농민들은 경작을 계속하기 위해서 종자,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 등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생산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은 제조업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 저곡가정책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소규모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한 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둘째, 가축에서 나오는 퇴비를 비료로 논밭을 경작하고 그 경작물을 다시 가축의 먹이로 사용하는 전통적 농업의 물질교환이 사라지면서, 농민들은 농업 원자재를 시장교환으로 충당해야 했다. 그런데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원자재의 생산과 판매는 세계 농업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초국적 농업자본에 의해서 지배된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초국적 농업자본에 예속되었다. 셋째, 식량증산을 위해 주식 곡물인 쌀의 재배가 우선시되어 단작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토종 종자가 사라지고 오히려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말았다.
농촌경제의 모순이 농민 건강의 위협이 되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언제나 농촌경제의 보호와 식량주권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농민들이 경험했던 사실은 수출 공업화 전략의 보조수단으로서 농업 구조조정과 농촌경제의 시장화였다. 즉, 한국의 농업을 자본주의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발현된 모순이 농촌경제를 붕괴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와 같은 근현대 한국 농업의 역사는 농촌경제를 역사상 가장 반(反)생태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가장 친환경적일 것만 같은 농촌사회의 경제구조를 반생태적이라고 규정하다니?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반생태적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의 성격을 우리 농촌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녹색혁명이 추구했던 기계화,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다수확 품종의 개발과 재배는 자연과 인간노동의 유기적인 물질순환구조를 파괴했고 수많은 환경문제를 유발시켰으며 생물다양성을 파괴하였다.
농민의 건강문제는 녹색혁명의 과정에서 농촌경제에 부여된 반생태적 성격이 표현되는 모습 중 하나이다. 농업기계화는 농작업 사고를 증가시키고 있고, 화학농업화는 중금속과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을 유발하고 있다. 시설재배의 확산은 비닐하우스증후군이라는 독특한 직업병을 만들어냈고, 가축업의 공장화는 동물로부터 인간으로의 질병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농업의 기계화와 농기계 사고
녹색혁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노동으로 이루어졌던 농작업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고, 우리나라에서 또한 농업의 기계화가 추진되었다. 1961년 동력경운기가 보급된 것을 시작으로 1982년부터는 5년 단위의 농업기기계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5차 5개년(2002~2006년) 계획이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농업기계화 정책의 일관된 초점은 농기계의 보급을 확대함으로써 기계화율을 높이는 데에 있다. 정부는 소규모 자영농이 대다수인 농민들에게 값비싼 농기계를 보급하기 위해 융자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하였고, 도시로의 노동력 유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했던 농민들은 기계화를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로 현재 농촌에서 사용되고 있는 농기계는 어림잡아도 약 35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보급 확대만을 우선시했던 농업의 기계화는 현재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기계의 고장수리를 위해 필요한 부품과 인력이 부족하여 농촌에서 사용되는 농기계들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농촌의 노동력은 고령자와 여성이 대부분이며 주로 소규모 경작이 이루어짐에도 농기계 경량화, 안전성, 조작 편의성, 생체반영 디자인 등의 개량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은 빈번한 농기계 사고로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농업공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동형 농기계인 경운기, 콤바인, 트렉터의 농작업사고율은 연간 100대당 3회를 초과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혁명의 추진 과정에서 기계화가 필요했지만, 수출 공업화의 보조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린 농업에서 기계화란 애초부터 문제투성이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농기계 사고 빈발과 많은 농민의 사망 또는 부상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기계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사조차 없는 것이 2005년 한국 농업의 현실이다.
화학농업과 중독
우리나라 농업의 경우에는 특히 화학농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경작지 면적의 한계와 농업노동력 감소를 극복하고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학비료 사용량은 1990년까지 연평균 3.1% 증가하였고, 1995년 사용량은 978천 톤으로 ha당 444Kg이 사용되었다. 농약 사용량은 1970년대부터 연평균 10.2%의 증가를 보여 왔고, 1994년 사용량은 26,282톤으로 ha당 13.0kg이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사용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의 절대량은 높다.
이러한 화학농업화의 결과는 주로 농작물과 소비자에 대한 피해를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 사용은 농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고,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을 낮추며, 중금속이 농축된 상태로 만드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농약의 잔류량이 많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농축된 농작물을 식품으로 섭취하는 소비자의 건강에 대한 우려 또한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때문에 ‘웰빙’이라는 모호한 뜻의 선전문구가 유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찾고 있다.
그러나 화학농업화의 피해는 생산물과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부각되고 있을 뿐 정작 그것이 생산자에게 일으키는 문제는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그것을 사용하는 농민에게 가장 먼저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점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화학농업화는 농민의 건강에 전례 없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농민들의 농약중독이다. 1998년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단위면적당 세계 2위의 농약사용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농민약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농약 살포시 한 가지 이상의 자각증상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경우가 전체의 67.5%나 되었다. 또한 2004년 농림부는 매년 7%의 농민이 농약중독을 경험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단기적인 중독 현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전체 투하량 중 30~50%가 유실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농촌지역의 수질오염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한 사용으로 토양의 산성화와 이화학적 성질의 악화 등 유해물질의 오염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화학농업화로 오염된 물과 토지에 밀착하여 살아가는 농민들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겠는가?
시설재배의 확대와 비닐하우스증후군
우리나라의 농촌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비닐하우스이다. 식량 증산을 위해 주곡물인 쌀 단작화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던 비닐하우스. 우리 농촌에서 비닐하우스는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인공적 시설물을 이용하여 채소, 과일, 원예 등 상품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재배의 대표적 방식이다. 쌀 재배 면적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시설재배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시설채소 재배만 보더라도 1985년 1.7만ha에서 1998년 4.5만ha로 13년간 164.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설재배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고부가가치의 생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정부의 농업정책은 시설재배를 장려하였고, 시설재배를 통해서 농민들은 농작물의 상품화를 향해 진전할 수 있었다. 결국 비닐하우스로 대표되는 시설재배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적응하고 있는 농촌경제의 상징인 것이다.
시설재배 비용 때문에 엄청난 부채를 얻게 된 농민들의 살림살이와 온실 유지를 위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변화되는 농업의 생태적 모순은 차치하고라도, 비닐하우스는 농민들이 이전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건강 문제를 발생시켰다. 비닐하우스는 겨울철 농한기를 없애 농민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켰으며, 농민들은 좁은 실내에서 불편한 동작으로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고온다습하며 바깥과 온도차가 심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게 될 경우 인체에 생리적 모순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축의 질병과 농민의 질병
소, 돼지, 닭, 오리 등등... 가축은 인간에게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사육의 형태는 완전히 변형되었다. 근대화 이전 가축은 식량일 뿐만 아니라 농사일의 주요한 노동수단이자 비료의 공급자였지만, 현재 가축은 고기를 얻기 위한 용도로 축소되고 있다. 그리고 소위 현대화된 사육시설이란 좁은 우리 속에 많은 수의 가축을 몰아넣어 운동량을 최소화하고 인공사료를 이용하여 무게를 최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불결하고 좁은 우리 속에서 먹고 자는 것만을 강요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양계장을 떠올려보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것처럼 고기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가축들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집단 사육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가축들의 몸에 대단히 불건강한 상태를 강요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한된 운동량과 인공사료는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각종 질병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가축들의 질병은 인간에게 끔찍한 질병을 전이시키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고, 그 1차적 피해자는 가축들에 가장 가까이 있는 농민들이다. WTO가 인류의 대재난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는 ‘조류독감’을 떠올려보자. 집단사육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닭과 오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였고, 그 다음 차례로 가금류를 사육하던 농민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위험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농촌경제는 녹색혁명과 함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에 급속히 편입되면서 농업은 기계화․화학화․시설화 되었다. 그 결과는 농촌의 생태적 모순 심화와 농민의 건강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농촌의 생태적 위험과 농민의 건강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닌 듯하다. 건강한 노동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농민들과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다가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관련하여 최근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고 있는 말은 ‘제2의 녹색혁명’이다. 이것은 BT(Biotechnology)를 활용하는 농업으로 식량생산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두 번째의 녹색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소위 ‘바이오농업’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농업의 핵심기술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 유전자변형생물체)이다. 이것은 농작물의 유기세포 기능을 이해․변형․조작하려는 목적을 가진 기술을 말한다. 세계 농업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들과 초국적 농화학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GMO 농산물은 이미 상업화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밥상에도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GMO는 아직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GMO가 순환기장애물질이나 독성물질을 유발시킨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유적자적 오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GMO가 일단 자연 상태에 노출되면 인위적 조작 차원을 벗어나 자연 질서의 통제에 들어갈 것이며, 이 경우 농작물의 유전자 변형은 생태계로 전이되고 슈퍼해충이 탄생하거나 바이러스의 변형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농촌의 생태계와 농민들의 건강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의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한 농촌을 위한 고민을 시작하자
이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고 자신은 빚더미를 떠안은 채 죽어가는 늙은 농부의 이야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후 빈곤국가에서 세계 12위권의 경제국으로 압축적 고도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농촌경제는 붕괴되었고 농민들의 삶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농업포기정책과 농업시장개방으로 농민들이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벼랑 끝에 내몰려 저항하는 농민을 공권력으로 무참히 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농촌은 초국적 농업자본에 종속되고 농민의 삶은 더욱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빠져들 위험이 높다.
그동안 우리는 농민의 삶에 너무도 무관심했다. 농민의 건강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태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농민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농민들이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농촌의 경제가 생태적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관심과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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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호
진실과 욕망
0. 진실게임
유재석이 진행하는 ‘진실게임’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를 섞어놓고 둘을 구분해서 찾아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출연자들 대부분은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알쏭달쏭 진실게임. 현실과 영화와 책을 통과하면서 우리도 한 번 시작해볼까?
1.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란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과 PD수첩의 후속 방송으로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줄기세포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이 각자 기자회견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였고, 급기야 서울대에서 조사위가 꾸려져 중간발표를 가졌고, 최종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사 결과야 더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몇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첫째, 누군가가 전 국민 아니 전 세계를 상대로 초대형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둘째, 황우석 교수가 그 거짓말에 상당 부분 가담되어 있다는 사실. 셋째,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체세포줄기세포에 대한 원천기술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과학자로서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사실.
2. 라이어
이번 황우석 사태를 보면서 주진모, 공형진 주연의 2004년 작 ‘라이어’라는 코믹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이중생활을 해오던 택시 운전사 정만철(주진모 역)은, 하나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이런 거짓말들로 위기를 모면하는가 했으나 거짓말들은 자꾸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예전에 영화를 볼 때는 ‘뭐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 이게 영화니까 가능하지 현실에서 가능하겠어?’ 하면서 웃어 넘겼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지금까지 어린 꼬마 아이부터 연세 드신 어르신까지 모두 존경해왔던 황우석 교수님이 손수 재연해 보이셨으니, 이 코믹한 상황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3. 방각본 살인사건
김탁환이 조선 정조 시대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의 북학파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꿈과 열정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연쇄살인을 당한다. 이 사건을 파헤치던 도중 한 명의 소설가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연쇄살인 사건은 계속되고, 조사가 계속되면서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배후는 끝내 밝히지 못한다. 정치세력들 간의 이해관계와 정국의 안정이라는 이유로 진실은 어둠 속으로 묻힌다. 이런 상황은 우리 역사와 현실 속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소위 ‘깃털’이라는 특수용어(?)는 이런 상황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최근에도 X파일과 관련해 삼성 관련 몸통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의혹을 폭로한 기자만 애매하게 다치게 생겼는데, 그것 참~
4. 지구를 지켜라
백윤식을 처음으로 배우라고 불리게 만들었던 장준환 감독, 신하균, 백윤식 주연의 2003년도 영화. 개봉당시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처음에 병구(신하균 역)가 강사장(백윤식 역)을 안드로메다 외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관객들은 병구의 망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 강사장이 외계인이고, 영화 속 사건들은 외계인들이 인간을 선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진실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런 진실 속에서 병구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 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진실에만 얽매여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5. 혈의 누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의 2005년도 영화. 피 튀기는 장면이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근래에 보기 드문 치밀한 구성의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살인사건을 파헤쳐 가면서 진실을 밝혀나가는 작품으로, 진실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들을 여과 없이 잘 드러내준다. 특히 섬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광기에 사로잡히는지, 그 집단광기 속에서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니체라는 철학자는 ‘진리(진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진리라고 믿어지는(혹은 믿고 싶어지는) 것을 누가, 왜 추구하느냐 하는 진리의지 혹은 권력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단광기는 이런 진리의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집단광기는 영화 밖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6. 프랑스와 호주의 인종 폭동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에 골똘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집단광기에 대한 것이다. 집단광기에 대한 좋은 참고서는 독일의 나치즘이 벌인 유태인 학살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저런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게 된 것일까? 국가에 의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편향된 정보가 주어지고, 사람들이 세뇌를 당해서 그랬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을 무엇으로 설명이 되는가? 최근 프랑스와 호주의 소요 사태는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랑스는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호주는 사회의 주류 세력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두 사태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인종주의적 차별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나치즘도 마찬가지로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잠재된 무의식 때문에, 군국주의라는 기름을 부었을 때 활활 타올랐던 것은 아닐까?
7. 우리나라의 열정 혹은 보수적 애국주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뜨겁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유래가 없는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2002년 월드컵 때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넘쳐흘렀다. 대선 때 국민들의 뜨거운 참여로 노무현의 참여 정부가 탄생했을 때, 옆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부러워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국민들의 뜨거움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꿋꿋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그 뜨거움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너무 뜨거우면 자칫 비이성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간격은 백지 한 장 차이 밖에 안 될 수 있다.
8. 존 말코비치 되기
열정이 지나쳐서 비이성으로 흐를 때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너는 이쪽 편이냐 아니면 저쪽 편이냐? 편 가르기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힘이 약한 저쪽 편에 서게 되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선택하기를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획일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참으로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00년 작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면,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가 자기 머리 속으로 들어가면서 세상이 온통 존 말코비치로만 무한 복제되는 상황이 나온다. 남자건 여자건 모든 사람들이 존 말코비치이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모두 말코비치 밖에 없고, 아무리 매력적인 배우라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가장 못 견뎌하는 것은 존 말코비치 자신이다. 영화 밖에 있는 우리들은 그런 획일성을 참을 수 있겠는가?
9. 다시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란
황우석을 둘러싸고서도 많은 논란이 오갔다. PD 수첩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은 땅 속에 묻힐 뻔했다. 뭔가 수상쩍은 것이 있는데도, 내버려두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묻어두고 싶어 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사는 것은 퍽퍽하고, 내 꿈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었던 영웅이 그런 식으로 내팽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보다는 욕망의 힘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욕망이 진실을 압도할 때는 조심을 해야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욕망에만 위태롭게 의존하다가,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허탈감과 분노만이 뒤덮을 수도 있으니까.
0. 진실 게임 속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하다. 그렇지만, 진실 게임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자. 이번 논란은 진실 너머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한 국가뿐 아니라 세계를 들썩거릴 정도로 수업료가 비싸니, 열심히 공부하고 반성하고 바꿔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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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갈등과 대립을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근로복지공단
수많은 정부조직 및 정부산하기관들 중에서 올해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곳을 꼽는다면 단연 근로복지공단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 접할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모습은 그 이름에 걸 맞는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니었으며, 항상 민원인들과 갈등을 야기하고 문제를 일으켜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4년도 말부터 연달아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 ‘요양업무 처리규정 개악안’ 등을 지역지사에 하달함으로써, 가뜩이나 높았던 피재노동자들과의 ‘담’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또한 2005년 6월에는 ‘과격집단민원 대응요령’이라는 이상한 지침을 마련하여, 피재노동자들을 예비범죄자 취급하고 실제로 고소·고발·가처분을 남발함으로써, 피재노동자들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 뒤이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요양신청불승인, 서울북부지사 직원의 폭언사건, 서울대병원 몰카 사건 등에서 보여준 근로복지공단의 모습은 ‘근로복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 잇따라 터지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비리 사건들은 요양승인을 위해 100일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단식까지 해야 하는 피재노동자들에게 더욱 심한 분노와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결국,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피재노동자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는다는 설립 취지와 전혀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 또한 공공행정기관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과 예의조차 어기고 있어서 일반 공공행정기관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분노와 고통을 민원인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오른다. 근로복지공단은 왜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근로복지공단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인가? 또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이라는 화두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피재노동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산재보험제도의 보험사업자이자 현재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야기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도 현재 자신들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으며, 어쩌면 그 해결 방안까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로 인하여 근로복지공단은 동일한 문제점들을 계속 양산해내고 있으며,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즉,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점들이 근로복지공단이라는 행정시스템을 통하여 현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과 개혁의 방향을 이야기하려면, 근로복지공단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① 보험재정에 대한 그릇된 관점
- 보험재원은 징수된 보험료로만 충당되어야 한다?
현행 산재보험제도하에서, 산재보험기금은 근로복지공단이 징수하는 보험료로 충당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은 노동부로부터 징수권을 넘겨받아 행사하고 있다. 나아가, 근로복지공단은 이렇게 확보된 보험 재원을 기반으로 하여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피재노동자에 대한 보상권(승인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정시스템은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들이 대부분 여기서 기인하고 있다.
보험사업자인 근로복지공단이 보험료를 징수하여 이를 주된 보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보험 재원이 징수된 보험료에 의해서만 충당되어야 한다는 정부 및 근로복지공단의 관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와 같은 관점 때문에, 정부는 보험재정 적자가 발생한 2004년과 2005년에 대하여 이를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재정운영으로 단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은 그 원인을 피재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해 버리면서 모든 원인을 피재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현재의 보험 재정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른 권한인 보상권을 활용하여 보험급여의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으며, 피재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각종 방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2004년도 하반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제반 업무처리 지침과 지침 개악안, 그리고 보험급여 요건에 있어서의 후퇴와 보수화 등은 그 결과물들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전까지 인정되던 업무상 재해가 하루아침에 업무외 재해로 둔갑해 버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민원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지침과 지침에 근거한 폭력적 대응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② 과도한 기능의 집중
- 근로복지공단에만 모든 권한과 기능을 집중시켜야 한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보험가입자 및 수급권자에 관한 기록의 관리·유지, 산재보험료, 고용보험료 기타 징수금의 징수, 보험급여에 관한 조사와 승인 업무, 보험시설의 설치와 운영, 피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상담사업, 노동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 심사(행정심판)에 대한 결정” 등으로서, 산재보험제도와 관련한 모든 권한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인원은 전국 지역본부, 지사를 통틀어서 3,600여명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계약직, 일용직, 어린이집 직원 등 비정규직 1,100여명을 포함한 숫자이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매우 적은 인원을 가지고 산재보험제도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행정서비스의 ‘전문성 결여’와 ‘서비스 질 하락’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재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근로복지공단의 담당 업무들은 그 내용상 경중을 따지기 힘들며, 피재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가 반드시 필요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관에서 그것도 매우 적은 인원들이 이를 담당하다 보니, 모든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부실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사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징수 업무’의 경우에도 징수율이 80%에 불과하며, ‘보상 업무’의 경우에도 잘못된 법률적 판단과 조사 미비 등에 기인하여 추후 행정심판 및 소송 등을 통하여 번복되는 비율도 20%가 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징수 업무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하는 사업장은 1인 이상을 고용하는 전사업체이므로 이는 일종의 준조세 징수 업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정규직 2,500여 명 중에서 일부만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세청의 직원 수가 17,000여 명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그 사업의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80%라는 징수율이 오히려 대단할 정도이다. 보상 업무의 경우에도 제대로 된 현장조사와 의학적 자문을 토대로 전문적인 법률적 판단을 요하는 핵심적 업무이다. 그러나 제도 여건상 충실한 조사에 기인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며, 담당직원에 대한 보수교육도 제대로 진행 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징수나 보상 이외에 정작 중요한 재활이나 복지사업 등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된 것이다.
③ 내부 견제의 취약성
- 가재는 게 편이 아니고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보상 업무’ 즉 승인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승인 여부에 따라서 보상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피재노동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보험료를 징수하고 이를 토대로 보험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보험사업자가 과연 제대로 된 승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정부가 보험재정에 지원을 거의하지 않고 있고 보험재정이 적자일 경우에 질책이 가해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말이다.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다. 자신의 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 하는 입장에서 돈을 사용하는 데에 인색할 밖에 없으며, 때로는 재정의 원칙이나 자신의 이익을 내세워 정작 자신의 본분을 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재정 지출 시스템을 살펴보면, 지출의 재원이 되는 국세의 징수는 행정부가 담당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최종 지출 승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행사한다. 즉, 징수와 지출에 대한 승인권한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두개의 권한이 구분될 때에야 비로소 내부견제의 기제가 작용하여 효율적이고 원칙적인 재정의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칙은 산재보험제도 운영에 있어서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원칙이다. 더욱이 산재보험은 피재노동자의 치료와 재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이 원칙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문제를 더욱 미시화(微示化)하여 승인 업무에 대한 산재보험 내부의 견제 기능을 살펴보더라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스템상의 문제로 인하여 승인업무에 있어서의 객관성은 이미 어느 정도 훼손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다시 내부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장치라도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나, 내부 견제 기능은 더욱 취약하다. 즉, 승인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와 문제점들이 행정소송 이전인 행정심판과정에서 걸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심판에 대한 기능조차 근로복지공단이 모두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사 최초결정이 잘못되었음이 명백하더라도 행정심판을 통하여 이를 취소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모두 피재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막대한 소송비용과 장기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현상화되고 있다.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이 곧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의미한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논지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문제점으로 현상화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근로복지공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재보험의 제도적 문제라는 것이다. 즉,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은 근로복지공단 자체를 뒤흔들기만 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명제이며, 산재보험제도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다.
① 보험재정에 대한 올바른 관점의 재정립
산재보험 재정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재정립되지 않는 한, 어떤 기관이 보험사업자가 되더라도 유사한 문제점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즉, 확보된 보험료의 틀 안에서 모든 보험 사업을 수행해야만 한다면, 피재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가 존재하여도 재정 관점에 입각하여 무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 그러나 산재보험법이 피재노동자의 권리와 근로복지공단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천명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단순히 재정의 관점을 들어서 마땅히 받을 수 있는 보상의 범주를 제한하거나, 이를 위해 행정 시스템을 기형적으로 왜곡시켜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산재보험법 제3조는 정부는 매 회계연도 예산의 범위 안에서 보험사업과 보험사업의 사무집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2003년도 및 2004년도에 발생한 보험재정 적자가 재정 운용을 잘못하여 발생했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산업재해율이 상승하면 당연히 보험재정의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며, 재정상 부담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보험료 징수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면 될 일이다. 이를 피재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보상이나 서비스를 제한하여 보험재정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피재노동자들에 대한 명백한 권리침해행위이자 권리남용인 것이다.
②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승인 권한 폐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복지공단이 그릇된 재정관점에 기인하여 부당하게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침들을 하달하여 피재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재정 운용과 승인 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재정 상황 등 외부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승인의 범위를 왜곡시킬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그 승인업무를 독립시켜 별도 기관에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또한 승인업무의 독립은 근로복지공단 기능의 제고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든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징수와 보상업무는 물론 재활이나 복지사업에 이르는 전 사업에서 서비스의 부실화가 나타나고 있다. 승인 업무가 독립된다는 것은 업무량의 감소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서비스기관으로의 자리매김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전문적인 높은 질의 서비스로 이어져 산재보험의 원래 제도적 취지를 실현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8월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에서 입법 발의한 개정안 역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것인데, 그 개괄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공단과 독립적인 제3의 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이 승인업무를 담당함
■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받은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에 승인여부에 대한 결정을 요청하여야 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의 결정에 대하여 공단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음
(개정안 제40조의6제4항)
③ 업무상재해 인정방식의 전환
승인 업무가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이하 ‘평가원’)으로 이관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문제점들이 평가원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문 인력의 부족과 시간상 촉박함으로 인하여 부실한 조사와 그릇된 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왜곡된 재정 관점이 다시 개입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에서 입법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들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을 판단되는 바, 이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 현재 노동자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입증해 내야만 하며,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음.
■ 이에 개정안은 피재노동자가 최초로 접하는 의사 등이 산업재해분류기준표(노동부령으로 정함)에 따라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였으며, 이 기준표에 부합할 경우에는 그 반증이 없는 이상 일단 업무상 재해로 취급하도록 하였음.
(개정안 제40조의5)
이와 같은 시스템이 마련되면, 평가원은 대부분의 사건에 대하여 그 판단의 타당성만을 검토하면 되고 복잡한 사건에 대해서만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진행할 수 있으므로 승인과정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을 대신하여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면 대부분 직장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 이후에 대부분의 피재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장애로 인한 생활상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들 피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이 거의 유일한 실정인데, 피재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부터 일단 배제 당하게 되면 이는 곧 치료의 곤란뿐만 아니라 생활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관점 및 사업 방향의 전환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피재노동자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지만,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노동력의 심각한 손실과 사회적 비용의 발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근로복지’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와 공공행정기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각주)
1) 이 문제는 재정에 대한 관점만이 아니라 산재보험의 제도적 성격에 대한 관점이 상이하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산재보험을 단순히 사용자배상책임보험의 성격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현재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도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을 사회보장적 성격의 사회보험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이는 맞지 않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재보험제도의 제도적 취지를 담고 있는 산재보험법 제1조는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보다 먼저 산재보험을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에, 산재보험의 성격이 사용자배상책임보험에서 사회보장적 사회보험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경제력의 증대에 힘입어 가용 보험재원이 충분히 확보된 측면도 있으나, 산재보험이 모든 국민에게 확대되면서 산재보험이 생활보장적 성격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재해발생 추이 등을 검토할 때,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적 성격의 강화는 제도적 발전방향으로 반드시 견지되어야 한다.
2)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본래 입법취지는 ‘미인식 노동자의 권리구제’의 측면에 맞추어져 있으나, 그 추가적 효과로서 이 글에서 검토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향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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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산재노동자
1. 들어가며
우리나라는 ‘산재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2005년 현재에도 ‘산재왕국’이라는 별명은 여전히 따라 다니고 있다. “한해 3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0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질 정도이다. 경제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산업재해로 인해 매년 양산되고 있는 산재노동자들은 건강상의 고통뿐만 아니라 노동력 상실과 치료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를 이해하는 정부와 자본의 시각은 노동자의 개인적 부주의와 개별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탓하거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건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선진성에 비교하여 산업재해 문제의 후진성을 생각해보면, 또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외국의 산업재해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산업재해 문제의 본질을 숨기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와 산재노동자의 존재는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2. 산재노동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산재노동자’라는 용어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1) 1982년 ILO 결의안에 따르면 산업재해란 “사망, 부상, 질병을 야기하는 업무수행 중에 일어난 재해”를 말한다. 따라서 산재노동자는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산업재해의 피해를 당한 노동자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노동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든 분명한 것은 산재노동자의 존재가 인식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시도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연구하는 경제학 이론에서도 산업재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크게 다음의 2가지 관점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첫째,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파적 시각이다. 신고전파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비용-편익 분석으로 산업재해를 이해한다. 신고전파에 따르면, 모든 노동은 직무에 따르는 위험을 수반한다. 노동자는 직무의 위험으로 인해 산업재해라는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직무 수행의 대가로서 임금 소득과 같은 ‘편익’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편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산업안전의 적정 수준과 산업재해의 최적 수준이 결정된다. 간단히 말해서 산업재해의 발생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업에 대해서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게 되고, 기업은 그 수준에 맞추어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수행한다는 말이다.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실제로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고임금 노동자가 아닌 저임금 노동자이다. 더구나 산업재해 발생의 ‘최적 수준’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비윤리적인 발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정치경제학적 시각이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나눈다. 각각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설명되는 이러한 잉여가치 생산은 모두 노동자의 피로도를 증가시킴으로서 산업재해를 발생시킨다. 또한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가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진전되면서 노동의 비인간화, 노동의 세분화에 의한 단순반복 작업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국가․노동․자본의 상호관계 속에서 산업재해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3.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재해
1) ‘압축 성장’과 산업재해의 발생의 가속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은 ‘압축 성장’이라는 말로 주로 표현된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50년 만에 이룩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의 과정은 경제 성장 이외에 자본주의의 모순도 압축적이고 폭발적으로 발생시켰다. 산업재해의 발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실제로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고임금 노동자가 아닌 저임금 노동자이다. 더구나 산업재해 발생의 ‘최적 수준’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비윤리적인 발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정치경제학적 시각이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나눈다. 각각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설명되는 이러한 잉여가치 생산은 모두 노동자의 피로도를 증가시킴으로서 산업재해를 발생시킨다. 또한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가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진전되면서 노동의 비인간화, 노동의 세분화에 의한 단순반복 작업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산업재해를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국가․노동․자본의 상호관계 속에서 산업재해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3.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재해
1) ‘압축 성장’과 산업재해의 발생의 가속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은 ‘압축 성장’이라는 말로 주로 표현된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50년 만에 이룩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의 과정은 경제 성장 이외에 자본주의의 모순도 압축적이고 폭발적으로 발생시켰다. 산업재해의 발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위의 <표-1>은 1972년부터 2003년까지 연도별로 발생한 산업재해자수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고도성장 시기였던 1970년대부터 산업재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46,603명이었던 산업재해자 수는 1984년 157,800명으로 3~4배가량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산재통계의 부정확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수치이다.
이렇게 증가하던 산업재해는 1987년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바로 ‘87년 노동체제’의 성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은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 과정에서 안전보건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다. 때문에 정부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산업재해는 1998년 이후 다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IMF 경제위기’와 함께 닥쳐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여파이다. 1998년 이후 노동강도의 강화와 각종 안전보건 규제의 완화는 산업재해를 다시 증가시킨 결정적인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2)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산업재해
자본의 운동은 가치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가치증식 운동이 거시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자본축적방식의 변화이다. 가치를 증식시키는 방법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시간의 연장에 의한 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에 주된 방식이다. 우리나라 또한 1960~70년대 저임금 장시간노동으로 이를 관철시켜왔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시간은 감소하고 대신 기계화․자동화라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정을 세분화하여 컨베이어 벨트를 생산에 도입하고 거대한 생산설비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후반 중화학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이 과정이 관철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견 산업재해의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계화․자동화를 노동환경의 개선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노동강도의 강화와 직결된다. 바로 가치를 증식시키는 또 다른 방식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때문에 산업재해의 발생 위험은 여전하다. 오히려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의 발생 위험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가 상당히 진전된 현재에도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한 산업재해의 지속적 증가는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3) 산업조직의 독점화․수직계열화와 산업재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대기업이 자치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1980년대 소위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계속되었고, 1998년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대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지속되면서 독점화가 진전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의 재벌 중심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독점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독점화는 대자본에 의한 중소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데, 이것은 중소기업의 하청계열화에 의한 산업조직의 수직계열화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산업조직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산업재해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의 <표-2>는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사업장 규모별 재해 발생의 추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대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에 비해 50인 미만 사업장은 오히려 산업재해가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에게 유해하고 위험한 공정을 이전하거나 하청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에 의해 상시적으로 공급원가 절감을 요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한 안전보건 투자를 회피할 수밖에 없다.
4. 자본주의적 노동과 산재노동자의 존재
1) 노동력재생산의 위기와 산재노동자
산재노동자의 존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경제 영역은 노동력재생산이다. 노동력재생산의 연구는 임금, 고용, 개인적 소비의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즉, 소비의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의 문제를 주요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재해는 노동력재생산의 파괴나 일시정지를 의미하고 노동력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게 되면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하여 요양을 필요로 한다. 산업재해의 강도가 강할수록 그 회복의 기간은 길어지며, 치료비와 심리적 부담으로 인하여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산업재해는 산재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신체적․경제적․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고, 산업재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사회는 엄청난 노동력재생산 비용의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한 비용 손실이 막대하다. 2003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2조4천9억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노동손실일수는 59,135,167일에 달한다.
2) 노동복지정책의 실패와 산재노동자 재활정책의 부재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농촌인구의 급격한 도시로의 이동을 경험하였고, 자본은 이 과정을 통해서 ‘저임금의 근면한 노동자’들을 무한하게 공급받게 된다.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소비재의 가치 수준에서 결정되는 노동력의 가격이므로, 무한한 노동력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정부와 자본은 생계비 수준의 저임금을 지급하는 이외에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때문에 노동자가 산업재해의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산재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매우 빈약했다.
정부에 의해 우리나라에 산재보상보험법이 도입된 것은 1963년,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산재노동자의 재활보다는 치료와 보상 쪽으로 비중이 치중되어 있다. 때문에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다수가 재활을 통해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채 빈곤층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노동력재생산의 중단 상태를 해소하기보다는 연장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산재보험제도의 이러한 절반의 실패는 사실상 우리나라 노동복지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선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복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로서 쟁취된 계급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압축적 성장 과정에서 복지정책 또한 국가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스스로 대변시키지 못한 노동복지정책의 추진은 반쪽짜리가 되었으며, 산재보험 또한 산재노동자들의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기에 재활정책의 부재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5. 마치면서
최근의 노동시장은 산업재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른 비정규직화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구조인 것이다. 노동계약의 단기간화는 비숙련노동을 양산하고, 아웃소싱은 비정규노동을 위험작업으로 집중시킬 수 있으며, 파견․변형근로의 증가는 노동자 보호에 대한 자본의 책임의식을 낮추는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는 산재노동자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산재노동자들이 노동능력 상실 등의 이유로 더욱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도록 함으로써, 산재노동자의 상태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 확실하다.
산재노동자 또는 산재장애인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자본주의적 모순의 표현이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해 산업재해를 발생시키게 되며, 산재노동자의 존재는 노동력재생산의 비용을 증가시킨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산업조직의 독점화․수직계열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경제적 지위가 낮은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를 집중시키는 구조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미비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경제성장에 급급하여 노동자의 요구와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 정부 주도의 노동복지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실패한 정책을 비판하고 산재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동복지정책을 실현시켜야 한다. 산재보험제도의 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바로 이 시점이 산재노동자의 조직과 단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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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업재해 . 빈곤 그리고 재활
1. 들어가며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감소됨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 확대와 비정규직 증가 등 현재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여건 속에서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입게 되는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산재 산고를 당한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노동능력이 완전히 또는 상당부분 손상된 산업재해 장애인이 되어 노동시장으로부터 탈락의 위험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동능력에 대한 상실은 곧바로 산재 장애인들의 경제적 빈곤화와 이로 인한 심리적 좌절감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 및 파괴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재활 정책은 의료적 치료나 현금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정작 산재 노동자에게 필요한 직장 복귀 및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재활 그리고 사회심리재활 등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본 글에서는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직면하게 되는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감 그리고 가족 갈등의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을 산재 장애인의 수요자 입장에서 보다 필요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2. 산업재해 노동자의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
산재로 인해 장애를 입게 된 노동자들은 산재 이후에 겪게 되는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가정 및 직장을 포함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 산업재해 이전의 생활 상태로 복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중 경제적 빈곤화와 심리적 소외감으로 인하여 산재 장애인이 일반인과 함께 지역사회로 통합되어 살아가는 데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겪게 되는 빈곤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소외감이 크게 부각되어오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실제로 많은 산재 장애인들이 산재 이후 사회경제활동으로의 복귀가 좌절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위협에 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이 산재병원에서 치료 중이거나 직업재활원에서 재활훈련 중인 산재 장애인 1천 231명을 대상으로 직업재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조사대상자의 87.9%가 ‘복직이나 재취업 등 직업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3/4(77.3%)이상이 장해판정을 받은 뒤 무직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83.1%는 산재를 입은 뒤 ‘가정경제가 악화되었다’고 응답하였다.
가정경제의 악화
무엇보다도 근속기간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의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 산재 이후 재취업이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3년 산재를 입은 노동자 중 과반수(59%) 이상이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험 미숙으로 산재를 입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산재를 입은 후 재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이전에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직장으로의 복귀를 포함한 직업재활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산재 이전과 이후의 직업분포를 살펴본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박수경, 1999), 1-7급 장애인의 경우 10명 중 8명 이상은 재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 이전의 경우 기능직 노동자나 단순노무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60% 이상이었던 반면, 산업재해 이후의 경우 이들 대부분이 재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경증장애인 8-14급의 장애인 경우, 중증장애와 마찬가지로 기능직 노동자와 단순노무직 노동자에 60%이상이 종사하였으나, 절반 이하(약 25%)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당사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문제로 확대된다. 산재 장애인들이 부양가족을 둔 가장 위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재 현황을 보면 산재 장애인의 약 90%가 남자이고, 30대 이상의 경우가 80%이상으로 가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노동부, 2002). 더욱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도 80%이상인 것으로 나타나(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1996),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발생은 가족전체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직결되고 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
이처럼 산재 장애인들의 신체기능의 손실은 산재 발생 이전에 수행하였던 가정과 직장 내에서의 역할을 제한한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특히 자존감이 저하되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로 인해 신체적 활동성이 저하되고 재취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까지 경험하게 되어 더욱 더 외부 출입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가족이나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등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이 속에서 산재 장애인의 가족은 가장의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 장애로 인한 역할 변화 및 부담으로 인해 만성적 스트레스 등을 겪게 된다. 곧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심한 경우 가정이 파경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산재 장애인들이 본래의 직장으로 혹은 작업 전환을 통하여 노동시장으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시장의 진입이 어려운 경우 산재 이후에 경제적 빈곤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재 장애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 및 가정 및 사회적 관계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예방할 수 있는 재활정책이 함께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3. 산업재해 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재활정책의 제언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직업복귀 및 소득보장을 포함하여 산재 장애인의 개인적, 가족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응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포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은 주로 산재보험의 급여조건 및 수준 그리고 의료적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금전적 보상 위주에 국한되었다. 무엇보다도 산재 장애인에게 중요한 직업재활과 심리사회재활 및 가족개입에 대한 서비스가 매우 미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산재 장애인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얻도록 그리고 동시에 생산적 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직업재활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애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을 극복해줄 수 있는 심리사회적 재활과 연결될 수 있으며, 나아가 가족 및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의료적 치료가 중심이었던 소극적이고 협소한 재활정책의 시각에서 벗어나, 산재 장애인의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재보험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과 사회재활서비스에 대한 지원수준을 보다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산재보험에서 제공하는 급여는 요양급여와 장해급여가 있으며, 희망자에 한해서 제공되는 직업훈련과 자립작업장, 생활정착금 대부와 자녀학자금 지원 등이 있다. 이 중 산재 장애인에게 필요한 직업훈련이나 사회재활서비스의 경우 1%미만의 극히 명목적인 수준에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의 재활사업비를 대폭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투자의 확대는 단기적 차원에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차원에서 볼 때 산재장애인의 잔존 능력을 최대화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산재보험금의 지출을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재활급여 비중의 확대
또한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하고 작업 복귀에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영업에 필요한 자금능력이 부족하여 산재 장애인이 취업에 곤란을 겪거나 자영을 원하는데 개업을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정착금 대부 금액을 상향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 때 무엇보다도 담보능력 부족 등으로 대부가 어려운 현실이 있음을 감안하여, 자영개업을 원하는 수료생을 대상으로 업종, 거주지 등을 고려하려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에 점포를 임대․지원함으로써 확실한 직업복귀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임대자립작업장 지원 사업을 바탕으로 한 대부사업을 함께 확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업재활서비스가 취업까지 현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직업재활훈련원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안산과 광주 2곳에 있는 직업재활훈련원의 경우 연간 3천 명 정도 발생하는 1-7급 산재장애인 중 채 10%도 미치지 못하는 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산재 장애인의 수를 소화하기에는 직업훈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용 가능한 최대인원 수가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재 장애인의 수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직업재활 훈련시설의 프로그램 내용이 재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이 취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수요적 측면을 고려하여 보다 다양화되고 현실화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업재활훈련원에 직업상담원을 배치하여 산재 장애인의 직업 적성을 상담하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며, 나아가 직업 결정에 필요한 정보 및 상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 이후 재취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게 되는 산재 장애인이 새로이 변화된 직업 환경 속에서 직장 동료 및 상사 그리고 작업과정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직업훈련 지원체계의 변화가 요구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 장애인들이 원하는 직업훈련원이나 사설학원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에서 1년 이내에 해당하는 직업훈련 기간 동안 지원되는 훈련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훈련비 지원수준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포괄적인 직업재활서비스 및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제공
셋째, 산재 장애인을 위한 심리사회적 재활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산재 장애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삶을 영위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입게 되어 급격한 환경적 변화를 맞게 된다. 장애를 입기 전과 매우 다른 환경에 갑자기 접하게 됨으로써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직업재활 등 주변의 여건이 지지적이지 못하여 심리적 좌절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기 어려워 만성적 스트레스를 느끼며 삶에 대한 자포자기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는 본래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재 장애인의 재취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장애를 빨리 수용하고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장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키우며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자신에 대해 긍정적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사회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재병원이나 산재지정병원에서 산재 환자들을 위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심리사회재활서비스가 산재보험에 수가로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현실화를 위해서라도 산재보험에 수가화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 장애인의 심리적 좌절감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야기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산재 장애인의 경우 장애발생 후 기존의 친구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절반 이상 단절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업재해 발생 이후 산재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지 체계를 강화시켜줄 필요가 있다. 산재 장애인의 사회적 지지를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거나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재활스포츠나 취미 활동 등 여가 활용 프로그램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여가 모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조 집단을 형성하여 유지시키게 도와줌으로써, 산재 장애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의 가족 지지, 사회적 지지의 강화
넷째, 산재로 인한 장애의 발생은 산재장애인 당사자를 넘어서서 그 가족의 심리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더군다나 갑작스런 변화 앞에 자아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산재장애인을 보호해야하는 가족들의 스트레스와 보호부담이 가족 체계의 파괴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 본인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족이나 주변의 절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각종 정보와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재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장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교육시키며, 또한 장애발생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갈등과 역할 변화의 가능성을 교육시킴으로써 이로 인한 혼란을 감소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과 가족 사이의 의사소통 및 갈등을 치료해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재 장애인의 신체적 손상을 최소화하고 일상생활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재활공학 서비스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산재 장애인의 장애 정도 뿐 아니라 일상생활능력 정도도 재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으로 나타났다(박수경, 1999). 그러므로 산재 장애 후 잔존능력을 최대화하여 일상생활능력의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신속하고 체계적인 의료적 치료뿐만 아니라 보장구, 재활용구나 편의시설이 개발되고 제공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의 산재의료관리원 산하에 있는 전문연구기관인 재활공학연구센터를 활성화하여 재활공학서비스의 보급 확대 및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보장구 및 기기를 지급하거나 보장구를 구입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체 기능의 최대화를 위해 산재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내부를 개조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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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재보험재활 사업 5개년 계획의 평가와 전망
들어가며
지난 2001년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산재의료관리원 및 한국노동연구원 산업복지센터와 논의를 통하여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받았던 산재보험 재활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산재근로자 재활사업 5개년 계획(2001~2005년)’을 수립하였다.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러 2005년 현재 재활사업 계획을 마무리하고 평가하여 향후 예정되어 있는 ‘제2차 산재근로자 재활사업 5개년 계획(2006~2010년)’에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작업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은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이하 ‘산재재활사업’)의 세부 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수행하기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산재재활사업의 문제점과 향후 개선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작성되었다.
산재재활사업의 수립 배경
산재보험은 1964년 7월부터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며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활 및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작년 2004년 한 해 동안 산재를 당한 노동자수는 노동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약 9만 명 정도이고, 산재장애인은 매년 2만 여명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노동능력이 56% 이상 상실된 중증 장애인도 2,500여 명 이상으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산재요양에 대한 관심은 다른 노동 현안 문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의 비중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조차 휴업급여 등 보상부분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산재보험 재활사업에 대한 관심은 산재보험 분야에서조차도 낮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안전망이 선진국이나 비슷한 수준의 개발도상국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은 휴업급여 등의 현금 위주 보상체계와 같은 생활보장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산재요양에서 6개월 이상 장기요양치료를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휴업급여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산재보험 재정위기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산재보험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산재보험 재활사업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산재보험 재활사업은 산재노동자의 직장 및 사회통합을 촉진함으로써 요양기간을 단축하고 나아가 산재보험 재정건전화에 기여할 수 있고, 생산성 있는 노동력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노동부의 ‘산재재활사업’이 수립,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의 사업 분야와 사업방향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은 총 8개 사업 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사업에 따라 1~6개의 세부과제로 나뉘어 총 27개 단위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8개 사업 분야는 의료재활 지원 사업 및 시설확충 사업, 보장구지급 서비스 개선 및 재활공학연구센터 기능 활성화 사업, 재활관련수가 개선, 직업재활시설 건립 및 직업재활훈련 활성화, 직업재활상담제도 확대운영, 사회적응프로그램 운영, 취업 및 창업 제고, 산재근로자 생활안정 지원사업 확대, 재활사업 인프라 구축 등의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부가 밝힌 산재재활사업의 사업방향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 재해발생에서 사회복귀까지 총체적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의료재활 선진화, 직업재활 내실화, 사회복귀 정착 지원 등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 재활사업 투자예산을 매년 6%씩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고, 셋째, 신체적 치료기능에서 의료재활, 직업재활 및 사회복귀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산재의료관리원 병원의 의료재활 전문병원화를 추진하고 이 중 재활공학연구센터와 함께 하는 인천중앙병원을 의료재활 전문병원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직업재활 훈련 및 연구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을 통해 예상했던 기대효과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에 따른 기대효과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 밝히고 있는데 첫째,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은 산재보험의 예방, 요양 및 보상, 재활이라는 3대 축을 형성하여 산업재해에 있어 노동자를 전방위적으로 보호하는 21세기 산재보험서비스 모델을 새로이 제시하는 것이며, 둘째,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 과정을 개인적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인식하여 제도화하고 지속적,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매년 약 1,000여억 원(산재기금 대비 4.0%)을 투자함으로써 재활사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산재보험제도를 보상 위주에서 생산적인 서비스체계로 전환시켜 재활서비스 수혜자를 2000년 17,000명에서 2005년에 540% 증가한 92,000명까지 확대하고, 산재노동자의 개인별 특성에 따른 다양한 재활 욕구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재활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사회복귀가 곤란한 중증장애자 또는 고령 장애자를 위한 간병 및 보호시설을 건립하여 소외계층이 없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며, 산재근로자 원직장 복귀를 위해 고용지원금 제도를 도입하여 2000년 직업복귀율을 37%에서 2005년에는 70%로 2배 늘리겠다는 기대효과를 밝힌 바 있다.
넷째, 재활사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요양기간이 단축되고 보험급여의 절감효과가 있어 오히려 산재보험의 재정 건실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구체적으로 1인 평균 요양기간이 117일에서 91일로 감소하고 요양 및 휴업급여가 8,500억 원에서 6,577억 원으로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의 성과와 문제점
현재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이 아니므로 공식적인 평가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현재까지 중간평가결과만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애초에 노동부가 ‘산재재활사업’을 추진하기 전 기대효과로 잡았던 목표점에는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면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재활사업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재활사업의 양적 확대가 이루어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재활사업비는 2005년 6월까지 총 2,173억 원이 집행되어 당초 계획인 4,650억 원의 절반에 못 미치지는 수준이지만 재활사업 수행 전 2000년 229억 원에 비해 매년 약 5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고정적으로 지출되어 사업비는 2배 정도 증가하였다. 또한 재활서비스 수혜자가 대폭 증가하였고, 재활사업을 연계하기 위한 상담 인원은 2001년 22,570명에서 2004년 39,993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재활사업의 수행기관으로 전국의 민간기관을 이용하여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접근성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재활상담체계의 구축, 다양한 재활프로그램의 개발 및 도입, 민간 재활서비스 전달체계와의 연계 및 활용 등을 통해 재활서비스 전달체계의 기반을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과에 비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재활사업의 추진기간이 이제 5년째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5개년 계획의 수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산재재활사업 5개년 계획 목표설정과 사업방식의 오류
현재까지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표 설정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는데, 애초 기대 효과로 잡았던 1인 평균 요양기간의 감소, 요양 및 휴업급여의 절감과 같은 부분은 재활사업 단독수행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고, 요양과 재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볼 때 재활사업 단독 추진의 성과 목표로 잡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앞으로 평균 요양기간의 감소, 요양 및 휴업급여의 절감과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산재보험의 여러 분야 즉 보상, 요양, 재활 등 여러 분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해결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한 분야만의 단독 사업으로 이러한 종합적인 지표를 개선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현재의 재활사업은 요양자 중 재활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서 평가 후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동적 차원이 아니라 재활서비스를 받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사람만을 대상자로 선정하는 수동적인 사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재활서비스의 주요대상이 요양 초기의 환자보다 일정 기간이 지난 입원환자나 치료가 종결된 산재노동자가 대부분이므로 대부분 재활상담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노동자가 원하는 재활사업을 연계해주는 행정업무의 비중이 높으며 전문적인 심리상담이나 원직복귀를 위한 사업주와의 상담 등 중요한 업무의 비중은 일부분만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재활사업이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요양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산재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또한 재활서비스의 적절한 대상자를 능동적으로 발굴하고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획일적인 산재보험 재활사업 서비스와 실적 평가시 성과지표의 부재
현재 산재보험 재활사업의 문제점으로 각각의 서비스들이 산재노동자들의 희망에 따라 단편적으로 제공되며, 제공되는 산재보험 재활사업도 아직은 선택의 폭이 좁고 획일적인 서비스라는 지적이 있다. 산재노동자의 상태와 직업재활 가능성은 다양함에도 현재는 이러한 다양함을 평가하고 알맞은 재활사업을 선택해주는 체계가 없음으로 재활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재활사업의 선택 폭과 관련해서도 산재노동자를 위한 재활서비스는 의료재활부터 심리재활, 사회재활, 직업재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산재의료관리원, 재활훈련원 등에서 일부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할 뿐 다양한 분야의 전문재활프로그램의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산재재활사업의 각 단위사업별로 실적을 평가할 때 성과지표가 설정되지 않아 실적 중심의 평가만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각 단위사업별로 질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측면이 있다. 향후에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관리원, 재활훈련원 등의 재활사업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성과지표를 개발할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선결되어야
마지막으로 직장 및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다양한 재활서비스가 산재노동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함에도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산재노동자가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 산재보험 재활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로 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만큼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앞으로 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활서비스의 법정 급여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현재 산재재활계획의 재활관련수가 개선사업에서 의료재활수가 개선과 후유 증상 진료 범위 확대분야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활의 의미를 의료에만 국한하여 너무 좁게 보고 있는 한계점이 있으므로 향후 재활급여 도입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활정책의 향후 과제 - 사례관리체계의 도입
현재 노동부는 2006년부터 제2차 산재보험 재활사업 5개년 계획을 추진할 계획에 있으므로 앞서 지적되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산재재활체계의 문제점들을 반영하여 2차 사업 기간 중에 양적 확대와 아울러 질적 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포괄적인 재활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사례관리체계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산재보험 재활서비스는 다양한 산재보험 관련 기관에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산재노동자 개인이 제공되는 재활서비스를 모두 파악하기도 힘들뿐더러 제공되고 있는 재활서비스 중 자신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고른다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서 산재노동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재활서비스를 선택하고 요양 초기부터 가능한 이른 시기부터 단계적으로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례관리체계를 도입하여야 한다. 사례관리란 산재노동자를 요양부터 사회복귀 및 직업복귀까지 필요한 서비스를 조정해서 제공하거나 연계시켜 주기 위해서 한 사람의 재활상담원이 지속적으로 산재노동자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특히 산재노동자의 재활과정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판단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공단에서 위치가 불안정한 재활상담원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보상위주 관리 개편 - 보상, 요양, 재활체계의 유기적 개선이 필요
또한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보상위주 조직을 개편하여 요양과 재활서비스를 전담하여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체계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보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요양, 재활체계의 개선이 유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산재보험체계에서 지적되는 문제점들은 매우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므로 다양한 분야의 정책대안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현재 요양치료와 재활서비스가 너무 단계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 점이 문제이다. 산재재해 초기부터 요양과 재활서비스가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 서로의 장점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나, 현재의 시스템이 투입된 비용에 대비하여 효율이 낮은 점은 두 부분의 연계체계가 부족한 점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산재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장애인에 대한 재활정책은 훨씬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며 사회 전반적인 장애인 재활 정책에 대한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어서 산재 재활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앞으로 수행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장애인 재활사업의 초기에는 산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사업이 주축이 되어 발전하여 결과적으로 일반 장애인 재활사업의 수준도 향상시키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산재보험의 재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고, 산재노동자는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일반 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장복귀 의지가 높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직 장애인 재활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부족하여 산재재활제도의 발전을 방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심지어는 일반 장애인 재활사업에 비해 산재노동자 재활 사업이 양적인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거꾸로 이용하여 산재노동자에 대한 재활사업에 투자가 너무 과다하여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향후 산재노동자의 재활사업이 우리 사회 전반적인 장애인 재활정책에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사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며 산재재활사업이 궁극적으로 산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킨다는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재보험 재활사업 계획이 효과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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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업보건체계의 개선 방안
1.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 현황
가. 산재예방체계의 문제
산업보건영역에서 산재예방체계는 그 운영주체나 내용면에 있어서 상당히 독자적으로 오랫동안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그 역사성과는 달리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지 못하는 고전적인 유해물질(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등) 중심의 직업병 예방체계와 그로 인한 매우 낮은 직업병 진단율(0.07~0.09%) 문제는 산재예방체계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와 연관되어, 근래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노동력 손실이 큰 새로운 질환들(예,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에 대한 예방 및 조기진단 체계의 부재 문제와 실제로 업무상 질병의 예방보다는 건강검진사업(2차 예방인 조기진단 사업)을 통한 수익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산업보건사업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수준으로까지 부각되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고령화되어가는 노동인구에게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만성질환들(예, 생활습관 병)에 대한 산업보건 예방서비스 부재 문제는 향후 국가의 보건부담의 크기 면에서 매우 중대한 논의주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요양체계의 문제
지금까지의 산재요양체계에는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른 자연스런 역할 구분이나 적절한 분화과정이 없었다. 이는 일반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문제를 산재요양체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산재요양체계는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요양체계를 있으므로 이러한 비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최근에 산재보험기금이 고갈되면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부적절한 요양서비스 제공문제는 이미 노동계, 경영계, 정부 모두로부터 심각하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1, 2차 수준의 민간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수입증대를 위한 요양의 장기화 경향이나, 부적절한 과잉 시술(예, 불필요한 척추수술 등), 그리고 산재의료 내 전달체계 부재 상황 등은 적극적인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반면에 대표적인 종합전문요양기관들(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중앙병원 등)이 병상회전율 둔화로 인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산재의료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또 다른 측면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다.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정책 집행구조의 문제
현재까지의 자료를 확인해보면 다음의 표와 그림에서 보이듯, 한국 산업안전공단으로 출연하는 산재예방비용이 늘수록 오히려 작업관련성 질환은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재예방사업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산재예방 담당기관이 미래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산재예방을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된 대처가 가능한 조직(방식)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라. 사업장내 보건관리 체계의 와해
정부는 1997년 말 국가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 하에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선임규정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 결과 2003년 현재, 보건관리자를 선임하였다고 보고한 8,527개 사업장 중에서 6,439개(75.5%)가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보건관리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분히 형식적인 관리제도(와 내용)는 현장에서 업무상 질병과 만성 질환(생활습관 병) 등에 대한 보건학적 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게 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로 확인되고 있다.
마. 국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의 역할 부재
산재의료관리원 산하 산재병원들은 산재환자 진료, 작업관련성 질환의 평가, 산재 및 직업병 진료표준의 설정 등 공공이 담당해 주어야 할 역할에는 소홀한 채, 수익증대를 통한 생존만을 꾀하여 왔다. 물론 과거 탄광을 중심으로 그 존재가치가 십분 발휘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의 효용성을 수익성으로만 평가하는 평가 잣대가 1차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산재환자를 통한 수입이 전체의 50% 밖에 되지 않고 있고 산재의료관리원이 최근에 수립해온 일련의 발전계획과 자구책을 검토해 볼 때 결국은 산재의료관리원도 산재요양기능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수익창출과 생존을 위한 기존의 일반적인 의료기관 모형을 택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산재의료와 관련되어 전문화된 국가중앙의료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유일한 대안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전무하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로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 일반병의원, 산업보건기관 등과의 역할중복과 비효율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해결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바. 보험급여(휴업급여, 요양급여)중심의 산재보험제도
우리나라 산재보험재정의 세출 요소별 구성비를 보면, 보험급여가 85-90%를 구성하고 있으며, 재해 예방비가 일시적으로 10%를 상회한 일부기간을 제외하고는 ‘예방’에 대한 비용 또한 대부분 5%내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재의료에서 그 비중이 상당히 중요한 ‘예방’과 ‘재활’에 대한 비용지출은 매우 적거나 전혀 없는 대신에, 주로 환자의 소득을 보상하는 ‘휴업급여’와 진료관련 비용으로 지급하는 ‘요양급여’ 등의 항목들에 대부분의 산재보험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볼 때 급격한 재원고갈이 발생할 수 있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구조라고 판단된다.
2.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의 개선방안
가. 산업보건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추진주체 신설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산재예방 정책을 추진하려면 산업안전보건청 1)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산재요양 정책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산재의료관리원을 단순한 요양병원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현 체제에서, 재활과 장기요양에 보다 정확히 초점이 맞추어지고 전문적인 지침 제공 등 국가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가질 수 있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해와 직업병 관련 원형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능을 재편하고, 여기에 미래지향적인 기능인 산업보건연구기능을 부가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
산재보험 자체에 ‘예방사업 관련 항목(산업보건 예방사업과 관련된 항목)’과 ‘재활급여(의료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는 재활을 위하여 상당 수준(독일의 경우는 25% 이상)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내용적으로 요양급여에 포함되어 있는 일부 물리치료 등 재활 의학적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외국과 비교가 가능한 재활사업(의료재활, 교육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 등)으로 투입되는 산재보험 재정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체 산재의료체계에서 이러한 ‘재활사업’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재활사업으로의 투입비용이 결국은 전체 보험급여(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 비용을 충분히 절감시킬 수 있음이 알려져 있는 만큼, 현행의 소극적이고 부적절한 재활서비스 관련 (수가)제도를 철폐하고,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새로운 수가개발과 비용지불을 통해 질 높고 풍부한 다양한 ‘재활사업(서비스)’ 공급을 유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와 직업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객관적인 기준에 합당하면 담당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별도의 승인절차 없이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만약 사후평가 과정에서 승인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을 도입 2)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의 개정
전국에 있는 50여개의 종합전문요양기관을 재해전문병원 3)과, 직업병 전문병원 4)으로 구분하여 신청할 수 있도록 유인하고, 이와 관련된 산재보험수가 개선을 통한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국에 5,000개 이상 지정되어 있는 1, 2차 병의원의 경우는, 일부 특화된 기능이 있을 경우 전문병의원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장기요양병의원으로 구분하여 지정 운영토록 함으로써 현재 산재의료체계의 난맥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라. 산업보건 예방사업의 다양화
현행 산업보건 예방사업은, 근로자 일반 및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으로 나눌 수 있으나, 그동안 이를 통해 예방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여 왔다. 이를 보다 실효성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과 ‘사후 질환관리 사업’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마. 지역보건센터의 구축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 산재의료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고 또한 법제도 내에서 실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하여 방치되어 있는 상당수의 고 위험집단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기존의 일차의료자원(예를 들어, 보건소)을 활용하여 이를 이용한 예방보건사업 및 지역 의료자원 연계사업을 수행하고 이를 위해서 조직구축, 재원조달, 서비스의 내용정비, 인력수급 등의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충실하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연계할 의료자원이 없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산업보건의 특성이 충실히 반영되어지는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도록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바.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배치 확대 및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
일정 규모(예, 100인)이상의 사업장의 경우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여 전담 보건관리자를 반드시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보건관리자에 대한 자격조건(의료인)과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전담 보건관리자들이 사업장내에서 보건관리사업(이들이 주도할 수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 사후 질환관리 사업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업비를 지원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해서는, 매년 적절한 사업계획 수립과 사업수행 평가를 통해 그 성과와 개선안을 모니터링 하여 보다 발전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 노동부내 ‘직장 건강증진위원회’ 설치를 통한 건강증진 도모
노동부가 중심이 되어, 타 부처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직업별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표준화 하고, 또한 직장과 지자체에서 일정부분 재정지원을 유도하고, 대상자가 일정 이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는 자발적으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 보건복지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
국가중앙의료원과의 긴밀한 업무연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산재와 직업병에 대한 표준진료지침 등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산업안전보건청(가칭) 간에 업무협의가 필요한데 통합적인 국가정책에 대한 의견교환과 정책집행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지원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국립대병원, 재활, 정신, 요양, 응급 센터와 산재의료관리원 및 산재지정 의료기관과의 연계는 실제적으로 환자 의뢰 등을 통한 역할 분담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보건소와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사업장 보건관리자와의 연계 문제는 보건사업 수행과 관련하여 기술지원, 교육지원, 인력지원 등의 긴밀한 연계를 가짐으로써 해결해야 할 것이다.
3.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개선 추진전략
가. 단기 과제
산업보건 예방사업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적 유해물질 중심의 예방사업(특수건강진단 등)에서 고령화되어가는 노동력에서 가장 보건학적으로 중요성이 높은 만성 성인병 질환과 새롭게 발생률이 급등하고 있는 작업관련성 질환(예,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등에 관한 예방사업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지역보건센터를 구축하되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예, 보건소)에 사업장 예방보건서비스 제공, 지역 내 의료자원연계 등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을 부여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일부 지역보건조직이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업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보건관리자 선임기준 완화조치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하여 전담 보건관리자 6)의 선임을 다시 확대토록 함으로써 원칙적으로 현장 중심의 보건관리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업장내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서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가 선임되어 있는 중소기업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산업보건기관 혹은 지역보건센터를 대상으로 하여 산업보건 예방사업 시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나. 중장기 과제
중장기적으로는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산재의료관리원의 혁신을 통해서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추진주체를 새롭게 건설하고,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을 재해전문병원, 직업병전문병원, 재활전문병원, 장기요양 병의원 등으로 분화시켜 그 역할분담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보건센터 모형을 구축하되,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가 없는 지역에 대하여,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이 충실한 새로운 모형의 지역보건센터 광범위하게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과 같이 노동보건과 일반보건이 이원화 되어 운영됨으로써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보건복지 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각주)
1) 기존의 1200명이 넘는 조직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노동부의 산업안전국의 기능을 발전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음
2) 다만, 이러한 접근을 전면적으로 할 것인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함. 사실, 산재보험은 요양기간 중에 소득보상이 이루어지나 건강보험은 그렇질 못하므로 양 체계 간에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 여건에 맞게 단계적으로 실행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하나씩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3) 일반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과, 방사선과, 중화상 치료, 하반신 마비, 수지 접합, 골수염 담당 전문과 등이 있어 고도의 외과적 접근이 가능하고 의료재활을 할 수 있는 병원
4) 직업관련성 평가 및 치료 등을 수행하는 병원
5) 2002년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수는 총 44,029개소로 종합병원 284, 병원691, 의원23,299, 치과병원 80, 치과의원 11,120, 한방병원 1345, 한의원 8,097개소 등임. 그 중에서 12.8%에 해당. 종합전문요양기관 지정율은 90% 수준으로 전국 50개소 중 6개소(서울대병원, 가톨릭 강남성모병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원자력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를 제외한 44개소이며, 서울, 경인지역은 80%, 그 외 지역은 100% 지정․운영 중임. 2003년 현재,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은 총 5,566개소로 줄어듦.
6) 의료인으로 정하고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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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건강 2019 봄 통권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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