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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영혼이 병들어간다
불안과 스트레스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기업의 욕망은 감시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갖가지 노동자 감시와 통제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노동자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및 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도 당연히 여러 가지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기업의 행위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도 규제가 필요하다. 기업의 감시와 통제가 직접적으로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러한 기업의 행위가 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여 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감시와 통제가 노동자 건강 파괴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 감시 자체가 다른 원인과 관련 없이 독립적이고 직접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불건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들을 통하여 증명되어 있다.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게 되고, 주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며, 통제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 심리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스트레스의 축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감시를 받게 되면 업무의 양과 속도에 대한 부감이 생기게 되어 더 많은 양의 일을 더 빠른 속도로 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업무의 질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업무의 양과 속도를 늘리려는 압박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전화교환원의 경우 감시를 받으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양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소비자의 요구에 소홀하게 되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 질 저하를 막기 위한 감시가 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업무의 양과 질에 대한 요구의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노동자의 스트레스는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두통, 구역질, 소화불량
감시와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한 많은 자료들에서는 감시와 스트레스 수준 및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는 연관 관계가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치밀하고 극심한 감시를 받을 경우 노동자들은 두려움, 불안, 분노, 자기존중감 저하 등의 증상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미국의 ‘일하는 여성들의 국립협회(The 9 to 5 National Association of Working Women)’가 1984년에 미국 전역에서 행한 조사에 따르면, ‘당신은 당신의 작업 중에 항상적인 감시와 자동화 장치에 의한 통제를 받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이들과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이들 간의 증상 호소율을 비교하였을 때, 감시를 당하는 이들이 정신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을 훨씬 더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표 1 참조). 그리고 감시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자신의 업무에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도 더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33%의 노동자들의 자신의 업무의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는데, 감시를 받는 이들은 49%의 노동자들이 그렇게 응답하였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종종 혹은 늘 작업장에서 스트레스와 각종 압박에 시달렸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적으로는 63.5%였으나, 감시를 받는 이들은 74%에 달했다.
한편 미국의 오레곤 주에서 1985년에서 1986년까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산재 신청을 한 예를 분석하여 재미있는 결과를 도출한 연구도 있다. 산재보험 신청자 및 요양 결정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그들의 회사 및 직무만을 가지고 분석하여 보았을 때, 정신적 스트레스로 산재보상을 신청한 노동자의 1/5 가량이 일상적으로 감시를 당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542명의 노동자들이 그 기간 동안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산재보상 신청을 하였는데, 그 중 102명(18.8%)이 일상적으로 감시가 이루어지는 사업장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산재 인정율은 다른 집단과 차이가 있지 않았다(표 2 참조). 이는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산재보상을 신청하거나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추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료이다.
한편 1990년에 미국의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수행한 미국의 전화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더 많은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3 참조). 특히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시는 여러 가지 정신 증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목 부위 통증은 21%, 어깨 부위 통증은 27%, 허리 부위 통증은 23% 증가시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는 근골격계 통증 호소율도 높이는 것이다.
감시가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기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최근 정립되어지고 있는 직무스트레스 이론에 따르면, 직무스트레스는 업무 요구도가 많거나, 업무에 대한 자율성이 없거나, 직업이 불안정하거나, 주위 동료나 상사의 지지 조건이 부족하거나, 직업만족도가 저하될 때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 감시는 스트레스를 높이는 이러한 모든 조건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감시와 폭력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업무 요구도를 보다 심하게 느낀다. 감시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업무 요구도가 증가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업무에 대한 자율성도 감소한다. 감시받는 노동자들은 늘 누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 때문에 수동적이 되기 십상이다. 감시받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저하되고,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들게 된다. 게다가 주위 동료 및 직장 상사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조합 활동 등 노동자의 집단적인 문화가 설 땅이 없어지는 것도 정신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사업주는 감시 제도가 생산성도 향상시키고 노동의 질도 향상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근거해 여러 가지 전자 장비를 동원해 통제에 나서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이는 생산성도 저하시키고 노동의 질도 오히려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 파괴 요인을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너무나도 미비하다. 하루 빨리 감시에 의한 노동자 건강 파괴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첨단 기술 장비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후진적 노무 관리의 수법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노동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집단 활동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시는 가히 폭력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 와중에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뿐 아니라 사업주의 부당 노동행위와 폭력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최근 KT의 감시와 통제에 의한 노동자 정신질환자 사례나 하이텍알시디코리아 노동자의 정신질환 사례는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감시 사례에 대한 규제 장치를 만드는 것과 더불어,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집단에 대한 폭력 형태로 이루어지는 사용자측의 감시와 통제는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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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대안이 필요한 시기, '무상의료'를 던지다
가난할수록 암에 잘 걸리고, 암에 걸렸을 때 죽을 확률도 높다. 암은 ‘가난병’ 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2001년에 발생한 우리나라 암 환자를 소득별로 비교한 결과, 암 발생률과 치명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사망위험)은 소득에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저소득층 암환자에 대해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우리는 살면서 암에 걸린 사람, 암으로 죽은 사람, 암에 맞서 투병중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미디어에서 포장한 미담으로 접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부모가, 친지가 그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암이란 병은 슬플 결말이 예정된 비극의 주인공으로 환자와 그 가족의 배역을 정한다. 예외는 드문 편이다.
그런데 이 비극의 전개과정을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몰아가는 극적 장치가 있으니 ‘돈’이다.
이 사회를 설명하는 큰 특징의 하나는 큰 병이건, 작은 병이건 건강에 이상이 오면 ‘돈’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구성원의 건강문제에 있어 ‘돈’이 가장 큰 변수가 되는 사회는 어떻게 보더라도 인간적인 사회는 되지 못한다.
일정한 임금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에게, 벌이가 적은 가난한 사람에게,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에게 ‘병’이 난다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선, 비정한 사회체제가 주는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사회의 노동자들은 이 문제를 개인적 삶의 무게로 떠안고 살아왔다.
의료문제가 아무리 노동자계급의 문제라 해도 노동조합이 나서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보건의료노조, 사회보험노조가 건강보험의 개혁,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내세우며 투쟁을 해온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무상의료’가 민주노총의 요구로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 계급 전체의 문제를 노동조합의 요구로 내걸고 2006년 총파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낸 것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이혜선 부위원장이 있다. 민주노총 ‘사회공공성강화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민주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테제를 노동자의 요구로, 노동조합 조직의 요구로 엮어내어, 민주노조 운동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는 한정되었다. 무상의료 운동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이 운동의 역사적, 현재적 맥락, 운동의 전망을 어디에 둘 것인가, 거침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허스키하면서도 탁 트인 음성은 시원시원하게 과거와 현재를 짚어가며, 노동운동과 서민운동을 넘나들었다.
■반갑습니다. 올해 봄, ‘암부터 무상의료’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지하철 역사 안에 포스터도 붙어 있고, 보건의료노조나 사회보험노조의 신문광고, 언론홍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급진적으로 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특정 질병에 대한 요구를 슬로건화 한 ‘대증요법’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워서 신문광고를 접한 시민들이 ‘언제부터 무상의료 되느냐’, ‘암만 되느냐’ 는 전화를 노조에 해올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 우려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자면, ‘암부터 무상의료’를 얘기할 때 갖고 있는 함정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대증요법’이라는 우려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나오는 얘기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가 온전한 의미의 무상의료를 실현할 거라고 본다면 이런 우려를 할 수 있습니다. 무상의료가 제대로 된다고 가정했을 때의 우려죠. 우리는 운동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87년 이후 우리는 법, 제도 투쟁에서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의료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조금 천천히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시민들이 보여준 관심에 대해서는, 무상의료의 경험이 없는 국민들에게 선험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승기가 보이면 역동적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대중운동은 대중운동의 모습으로 가야 단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정책만으로, 슬로건만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교육, 의료문제는 대중운동이 아니고서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호흡을 길게 하고, 느긋하게, 대중의 호응을 즐길 줄도 알아야죠.
■처음 질문부터 뜨겁다. 노조들에 내건 ‘암부터 무상의료’ 슬로건에 대하여 오간 이야기들이 많은 거 같다. 그만큼 무상의료운동의 책임자로서 할말도 많았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좀더 밀고 나갔다.
- 의료자본가들 하고의 싸움입니다. 시작부터 걱정을 하는 건 패배적인 관점 아닌가요? 재벌과의 싸움은 시작도 하기 전인데 누르고 있잖아요. 의료자본이 위기감을 느낄 만큼 싸워야죠. 대중의 폭발적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정책 방향은 전체시스템을 바꾸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논쟁하지 않아도 그렇게 갑니다. 가르치려 하지 맙시다. ‘암부터 무상의료’ 라고 했을 때 부자들이 호응하는 게 아니에요. 서민들이 호응하는 겁니다. 운동의 대상, 동력을 잘 봐야 합니다. 과도하게 가도 문제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조합원들은 많이 만났습니까? 민주노총이 무상의료 운동 한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떻습니까?
- 사회공공성강화투쟁위원회 설치가 1월에 제안되고, 4월에 통과되었는데, 위원회가 설치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비정규법안 문제 때문에 거의 못했어요. 활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제 틀을 짜고 있는 거죠. 민주노동당을 만났고, 전농을 만났습니다. 대외활동을 주로 했다고 봐야죠.
조합원들은 관심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묻는 이도 있고,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어요. 대안이 뭐냐 묻죠. 호응하고 관심도 있지만 긴가 민가 하는 망설임도 있는 거죠.. 성패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무상의료 운동은 조합원들보다는 89%의 미조직 노동자들, 비정규영세노동자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지점을 잘 잡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 정규직노동자들의 기업복지 투쟁의 성과물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87년 투쟁의 성과물이죠. 87년 투쟁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는 객관적 상황도 있고, 대공장 남성 정규직 운동이 필요했고, 자본주의 호황의 덕을 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90년대 중반까지의 얘기죠. 기업복지가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어요. 산별연맹이 있는 곳에 따라서는 지역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법제도 완성으로 받은 영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조직적으로 안착되면서, 기업의 노무관리와 노-노 갈등 속에서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것이죠. 기업의 이윤이 기업복지를 만들었지만, 대공장도 이제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기존 단체협약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처지입니다. 기업 단협이 약해진 것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부터 인데, 기업복지는 이제 양보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이야기는 거침없이 계속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느덧 현 노조운동 안팎을 둘러싼 위기논쟁에 대한 견해로 주제를 바꾸어도 손색이 없는 의견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위기이다, 아니다, 위기의 원인은 이러하다, 저러하다 말들은 많지만 위기의식을 갖고 운동을 돌아보는 것이 이로운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 연봉 6천만원 받는 노동자라도 암환자 하나 있으면 감당하지 못해요. 주거비, 교육비에 여유가 있어도 늘 부족합니다. 이 지점이 관건이죠. 해답이 없다가 아니고, 현안에 매몰되지 않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법제도 개선 투쟁에 익숙지 않습니다. 개량적이라 폄하하고, 관념적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공장의 경제주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WTO 시대에는 맞지 않아요. 정권과 자본은 법제도에서 노동자의 자리를 공격해오는데, 우리는 이를 놓쳤던 거구요. 심각합니다. 지금의 계급투쟁은 상부구조의 본질을 치고 나가야 할 시점 아닌가 하는 겁니다. GATT 시대와는 달라요. 우리는 그걸 놓치고 있었어요. 지금 법제도의 이름을 걸고 시장만능주의가 들어왔잖아요.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법제도 투쟁인데 인식을 바꿀 시기가 되었다. 우리 내부의 투쟁이 심각하다. 우리 내부는 아직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에 개별노조가 대응을 할 수 있나. 노동운동이 진보운동으로서 대안을 어떻게 내놓을 것인가 고민하자.
■그러나 지난 대의원대회의 폭력사태가 보여주듯이 사회협약,사회적 교섭 투쟁에 대해서 반대의견이 많지 않습니까?
- 맑스주의에 대한 좌편향적 오류가 있다. 국가 민족을 부정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특수성에서 민족, 국가 문제와 맑스가 부정한 국가 민족이 같냐. 아니다. 우리의 상황에서 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생물체와 같다. 자본주의는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맑스를 교조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쉽다. 계급적 단결이 중요하다. 국가를 넘어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경로는 뭐가 돼야 하냐. 자본주의는 GATT체제에서 WTO로 넘어갔는데 국가의 역할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여기에 대안이 필요하다. 대안이 나와야 한다. 개량적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게 말하면 편하다. 그런데 운동이 그렇게 단순한 거냐.
개별노사관계로는 문제를 풀 수 없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로드맵 문제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완성 형태인데 기업복지 지키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노동조합 내부는 지금 말씀하신 고뇌가 있고 갈등이 있는 것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시민운동과는 어떻습니까? 시민운동이 함께 할 때 전사회적 요구로서 훨씬 더 많은 설득력과 정책적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흐름을 바꾸는 투쟁이다.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너무 센 거 아니냐 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선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 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이미 인정하는 또다른 편향이 있다. 시민사회 안에 그런 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는 힘이 붙지 않는다. 시민사회운동이 공중전만 하는 것은 아닌지, 시민사회의 대안이 있는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운동 안에서는 자본주의 안에서 잘 살기, 신자유주의 안에서 잘 살기를 운동의 목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닌가, 시민의 삶, 노동자의 삶을 정확히 보고 대안을 찾자는 주장이시군요?
- 우리는 흐름을 바꾸려는 것이다. 없으면 영합, 좌파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없는 것에 대해 시민사회에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큰 틀을 놓치기 시작했다. 운동이 일정 안정되면서 각론화되기 시작했다. 큰 틀을 만들지 못했다. 내년에는 큰 투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달 파업을 한다고 바뀌겠는가. 법과 제도는 문제가 많지만, 우리는 이미 ‘포섭되고 있다’는 것, 체념하는 것,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돈과 자본에 이미 포섭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는 맞지 않다.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의미와 상징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테제, 담론, 이슈의 문제다. 비슷한 모양이라도 의료공공성, 공교육 강화, 이런 방향으로 가더라도, ‘아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가는 게 맞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노동운동 안에서, 노조운동가들에게도 들려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진심으로 이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는 노조운동가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개인적 소망도 얹고 싶구요.
- 양극화시대에 노노 갈등에 대해서 해답을 만들어야죠. 사회 전체를 꿰뚫는 답을 만들면 돌파구가 된다.
현재의 노동운동은 사실 부담이 너무 많아졌다. 단위노조활동이 안착되면서 요구가 많아진 것이다. 기업별노조 안에서 온갖 요구가 다 들어오고 바빠지게 된다. 큰 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할일, 요구가 많아진다.
노동운동의 간부들이 운동의 맥, 본질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없었다. 교육, 간부교육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말했지만 87년 이후 운동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질적 담보가 안 되었다. ‘질’이 따라가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 때 우리가 강담하기 어려운 조건에 맞부딪쳐 싸우게 된 것이다. 좌편향이 있었다. 시민, 노동의 연대가 희미해졌다. 불철저한 시민단체와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알게 모르게 경계를 나누어 왔다.
이게 극복되지 않으면 노동운동 고립도 극복하기 어렵다. 시민단체의 활동기반도 좁아진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좌파적 대안 이외에 활로가 있을까.
■시민운동과의 연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군요.
-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시민운동 쪽에서 전면적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초기에 많이 들어갔다. 그만큼 많이 나왔지만. 이제는 김대환 장관 같은 사람만 남았다. 이미 맛이 너무 갔다. 더 갈 것 같다. 시민 블록의 진보적 역량에 대해 정권의 주도권이 생긴 거다. 노무현은 ‘나도 이만큼 해 봤다’며 언술을 늘어놓지만, 시민단체 내부와 고민을 공유한 적이 있는 인물이냐. 정말로 같이 한 적이 있느냐는 따져봐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를, 정권을 ‘’어떻게 극복할까‘ 각자 전문자적 답, 역량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과 노동이 큰 원칙에서 서로 벽을 허물어야 한다. 담론, 블록에 대해 논쟁이 필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무상의료’가 던져진 것이다.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다.
마지막으로 이혜선 부위원장은 『노동과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운동을 이야기 하는 ‘잡지’가 나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문 잡지는 만들어도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잡지는 잘 만들지 않는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잘 하려면 이를 담은 대중적 잡지가 필요하다.
이혜선 부위원장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했고,90년 보건사회연구원에 들어갔다 노조가 있었고, 1년만 일하다 나오자 했는데 15년을 일하게 되었다. 복지연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가 노조가 위기에 처했고, 이를 ‘못 참고’ 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 위원장까지 하게 되었다. 이 때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맞서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노동사회』 6월호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계화 시대 노동운동은 세계화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상급단체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단위노조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뤄져야 한다. 빈곤, 복지정책, 불평등, 비정규직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여성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은 주로 비조합원의 문제들이다.’
‘노동운동이 작업장 울타리를 넘지 못하면서, 시민사회는 시민운동단체들에 의해서 점유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운동은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 중략 - 따라서 89%의 노동자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노동운동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혜선 부위원장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조급하지 않게, 노동운동이 놓인 사회적 위치를 보되, 대안세력이 되는 길을 찾는 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지금 노동운동을 보는, 화도 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은 이심전심 아니겠는가. 그러나 화만 내고 있을 수만도, 그저 안타까이 바라볼 수만도 없다.
실핏줄 속까지 파고드는 돈의 논리, 자본의 세상은 게으른 노동운동을 언제 집어삼킬지 알 수 없다 성찰하는 힘가, 대안을 내는 부지런함 만이 노동운동이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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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이윤을 위한 경쟁이 최악의 철도사고를 불렀다
2005년 4월 25일에 일어난 JR니시니혼(西日本) 열차탈선전복사고는 1987년 국철 민영화 이후 최악인 철도사고가 되었다. 사망자 107명, 부상자 549(중상자 139)명이 발생된 대참사의 원인은 국토교통성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 중이지만 제한속도 70㎞/h 커브에 이 속도를 대폭 상회하는 속도로 진입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7개 칸 편성 차량의 5개 칸이 탈선하고 앞 2칸은 선로 옆 아파트에 충돌하면서 대파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직접적인 사고 요인은 제한속도를 넘은 속도로 반경 300m라는 급격한 커브에 들어가 돌지 못해 탈선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면 왜 제한속도를 넘어 진입했을까?
사고 열차는 운행표보다 1분30초 운행이 늦어지고 있었다.
1분30초 늦은 이유는 열차가 전역에서 oner run 해서 후진하다가 다시 정규위치에 정차시켜 출발한 것 등이 밝혀졌지만 아직 조사 중이다. 하지만 이 때 늦은 시간을 단축하려 기관사가 속도를 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관사가 규정 이상으로 속도를 낸 이유는 있었다. JR가 열차운행표대로 운행시켜 왔기 때문이다. JR는 over run이나 발차시간 착각 등 기관사 책임으로 운행표에 늦음이 생긴 경우 원인이 된 실수에 대한 처분이 내규로 규정되어 있다.
또 JR 운행 매뉴얼에서는 “기관사는 열차가 지연됐을 때는 허용된 속도내로 회복하도록 노력할 것”을 정하고 있다. 운행속도는 제한속도 이하로 기관사 재량에 맡겨 있고 지연을 회복하려 하는 운행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고가 난 구간은 JR발족인 87년에는 하루에 93개 열차운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04년에는 369개로 4배나 늘었다. 한편, 구간 소요시간은 단축경향에 있다. 각역에서의 정차시간을 단축하고 열차속도를 올리면서 열차수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해 왔다. 사고 노선과 같은 지역을 다니는 다른 민간철도회사와 비교해도 7분 일찍 도착하는 운행표를 만들어 승객을 모이는 기업전략을 세우면서 기업경쟁을 전개한 것이다.
JR는 많은 열차를 운행시키기 위해 운행표를 초단위로 작성했기 때문에 여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열차 갈아타기를 위해 다른 열차와의 연결도 고려하면 정해져 있는 도착시간에 늦는 것은 기관사에게 큰 실수가 되었다. 1분 늦으면 승무정지가 되어 기관사는 “일근교육”이라고 불리는 징벌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기관사는 반성문 작성을 명령받아 하루 종일 상사 감시 하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굴욕적인 처우가 기다린다. 교육기간은 상사가 정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본보기다.
2002년에는 “일근교육”을 받은 운전사가 자살한 사례도 있다.
사고 열차 기관사는 작년 6월에 over run을 해서 13일 동안 “일근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매일 취업규칙을 쓰거나 김매기를 했다. 기관사는 다시 실수를 하면 운전업무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친구에게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강압적인 노동자 관리 체질을 가지는 기업에서 이번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운행이 가장 중요한 철도운수라는 업종에 있어서 JR는 국철로부터 민간회사로 변화하면서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하게 되었다. 구조조정을 통한 인원삭감, 본래의 업무가 아닌 승차권 판매 강요, 그리고 이번 사고 요인이 된 여유가 없는 무리한 열차운행을 하면서 매출을 올리는 것에 급급해 왔다.
열차의 속도초과예방이나 충돌방지를 위한 열차자동정지장치도 사고 구간은 구식장치이었다. 안전운행에 투자하고 최신식 열차자동정지장치(ATS-P)가 설치되어 있었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은 JR 스스로 인정한 사실이기도 한다.
안전에 관한 장치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체질을 볼 수 있다.
기업간 경쟁에 이기기 위해 무리한 열차운행을 작정하고, 그것을 실시하기 위해 기관사를 압박하면서 무리한 운전을 시키는 JR 모습이 사고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관사에게 운행표대로 열차를 운행하는 것을 강요하고 못하면 징벌이 기다리는 공포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JR에서 사고가 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이번 사고를 보면 또 다른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다.
사고를 일으킨 JR니시니혼에는 4개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까지 무리한 열차운행이나 안전장치 설치에 대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발언한 혼적은 없다. 자살자까지 만들어낸 “일근교육”에 대한 비판을 일부노조가 제기한 정도이었다.
이윤을 추구하며 안전을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해 우선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자기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노동환경에 대해 노동자는 노조에 말해야 하고,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자본에 맞서야 한다. 여기에서 조합원의 이익과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고 노조는 그러한 “안전”이나 “공공성” 같은 “사회정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노조가 “안전”이라는 공공성을 내세우고 싸우는 일은 없었다. 국철시절 어디보다 안전문제를 내세워 투쟁한 노동조합들은 민영화를 통해 1047명 해고자(아직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를 내면서 지금은 이전 같은 싸움이 어려운 것 같다. 정부가 꾀한 “국철개혁”은 성공했다. 전투적인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는 것이 “개혁”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JR 내 노동조합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문제를 내세우면서 자본과 싸울 수 있게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또 하나는 국민(굳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쓴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에 대해서다.
일본 철도는 국철시절부터 운행에 1분이라도 오차 없이 운행하는 것을 자부해 왔다. 이용자도 그것에 익숙해져 조금이라도 늦으면 민원을 하는 형편이다. 사고 노선도 단축된 열차운행에 편리성을 느껴 많은 이용객이 다른 민간철도로부터 JR쪽으로 이동해 왔다. JR의 경영전략을 이용자도 지지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고 후 “안전제일”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앞으로 사용자가 편리성보다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것을 기대한다.
이번사고는 신자유주의가 효율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일어난 대형철도사고이었다. 피해를 입는 것은 노동자이고 소비자(이용자)다.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는 현장의 진실을 말해야 하고 소비자는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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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강길성의 돌맹이
강길성, 돌로부터CIC, 2004, 천 위에 먹과 아크릴릭, 60X73cm
강길성의 회화는 우주공간과 돌이라는 두 골격에서 출발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긴 정적을 깨고 돌은 홀연히 나타난다. 무한한 공간의 깊이와 높이를 황단하고 종단하여 좌표의 접점을 이룬 순간, 그 돌은 돌출한다, 무중력 상태로 우주 공간을 시적으로 유유히 부유하기도, 엄청난 가속도록 맹렬히 낙하하기도 하는듯한 그것은 강길성 그림의 시작이자 마침표이다.
돌멩이를 통해 작가는 우주를 관찰함으로써 그 중심에 서 있기를 원한다. 그 작은 돌멩이 하나는 이제 기가 모인 우주의 씨앗이다. 그것은 진정한 생명의 돌이다. 그 돌멩이 하나에서 우주가 시작된다. 우주의 씨앗이 거기에 있다.
작가 강길성은 1961년생으로서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도불하여 오뜨 브렛따뉴 헨느 2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 취득했다. 불란서와 한국에서 15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글쓴이 김지영은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 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동신대 겸임교수를 역임후, 현재는 독립큐레이터로서 <반 고흐와 서양명작전>을 기획하고 있다. 주요 전시기획으로는 <밀레전>,<사람을 닮은 책전>,<살바도르 달리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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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젊은 국어교사의 불치병
자클린 뒤프레라는 첼로 연주자의 죽음
“노무사님도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가 봐요.” 얼마 전 한 목사님이 법률원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클린 뒤프레라고 하는 한 첼로연주자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저요. 그냥 조사하다가 알았어요.” 사실 몇 달 전 클래식 관련 서적을 읽다가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 버린, 한 열정적인 예술가의 죽음을 부른 불치병과 같은 병명으로 소송을 담당하게 될 줄이야 …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한 전도사님이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젊은 여교사를 만났고, 그녀의 처지가 너무 딱해 전교조에 아는 분에게 “공무상요양불승인처분소송”을 권하여 주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했던 젊은 여선생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전교조에서 법률원에 소송을 의뢰한 것이다.
사전조사차 그 여선생님을 지난해 늦가을에 광주에 있는 병원에서 만났다. 걷지도 못하고 점점 머리는 퇴화되어 가고, 신경과 근육이 굳어져가는 불치병에 걸린 젊은 여선생. 삶에 체념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처음 만난 나에게도 짜증을 내는 그 선생을 만났을 때 소송에 대한 걱정보다 세상에는 저런 불치병도 있구나. 저렇게 순진한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는 너무 순진했어요..” 어느덧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아이처럼 울먹거렸다. “시키는 대로 다하고 애들 가르치느라 정신없었어요. 그리고 여름방학 때도 고3 국어 선생님을 대신해서 보충 수업했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일주일 내내 아이들 가르치고 밤에 야간자습 지도하고 얘들 다 보내고 문 잠그고 학교 나왔어요. 시골이라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녀는 심사청구서상에 잠시 언급된 지네 이야기도 했다. “하수관이 터진 이후로 관사 주변에 물이 자주 샜어요. 그리고 지네가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손바닥 크기만한, 15cm도 넘을 거예요. 개학하고 정신없을 때 새벽에 지네가 목을 타고 몸을 넘어갔어요. 그 때 너무 놀라 잠을 깨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왼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시골이라 치료받을 수도 없고, 읍 전체에 안과라곤 없었다. 주말이 되어 광주로 나와서 안과에 찾아가니, 시신경염이라 했고 의사는 특별히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속되는 야간근무 및 오전 오후 특별수업, 각종 행정업무처리, 연수업무준비, 출장업무 등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왼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내에서 가장 많은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장학지도 수업을 준비하느라 며칠을 밤늦게까지 준비를 했고, 국어와 관련된 각종 외부대회 참가를 위해서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야간근무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관사생활의 불안감은 지속되었다. 2003년 11월 22일 오전, 수업 준비 중 갑자기 쓰러진 이후 광주소재 병원을 거친 이후 전남대병원에서 아급성 상태의 뇌염 진단, 서울대병원에서는 헤르페스바이러스뇌염(Herpes Simplex Encephalitis)진단, 그리고 그 이후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어려운 사건이었다. 지금도 초짜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산재를 깊게 공부해 번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민주노총 지구협에서 노조지원에 익숙한 나에게는 산재는 아직도 두려운 벽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다만, 열정과 애정은 누구 못지않게 있다. 나의 아버지가 탄광에서 산재로 돌아가셨고, 그 때문에 우리가족은 아버지 없이 지금껏 살아왔다.
희귀병일수록 사전조사가 중요하다
가끔 노동조합 파업을 지원했을 때 조합원이나 간부에게 “전쟁”을 파업에 비유하며 조언하고 교육했다. 그만큼 이기기 위해서는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 또한 마찬가지다. 적(피고)와 나(원고)와의 대립적 관계의 취소소송의 경우에는 오직 勝, 敗만이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시작은 “계획의 수립” 즉, 손자병법 제1편에서도 언급되는 소위 “始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병렬적 계획 수립이 아닌 입체적 소송계획의 수립과 진행, 점검과 분석은 필수적이다. 일단, 기존판례를 수집하는 것과 당해 사건의 소송기록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특히 요즘과 같은 희귀병이나 어려운 상병이 많을수록 사전조사는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기록과 사건을 검토해보니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판례는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대법원(대법원 2002. 9. 24. 선고 2001두5934판결). 또 하나는 최근 행정법원(서울행정법원 2004. 6. 29. 선고 2003구합13694판결)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다. 담당 변호사가 누구인지 파악해서 두 곳을 직접 방문해서 어렵사리 모든 소송기록을 복사할 수 있었다.
당해 사건의 핵심은 역시 과로, 스트레스와 인체의 면역체계와의 상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법원에서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면역능력이 저하되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경우 그 질병에의 감염 경로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업무와 상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즉, 소위 “패혈증 사건” (대법원 1992. 7. 24. 선고 92누5355 판결)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고, “헤르페스바이러스뇌염”에 대해서도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기능이 약화되어 상병일 발생하였음을 인정한 사례(서울고등법원 1998. 11. 19. 선고 98누3510 판결 등)가 다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바이러스 뇌염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 1995. 4. 7. 선고 95누399 판결 등)
그리고 의학적 상병에 대한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알고 있는 노조 사무장이자 간호사를 통해서 서적조사를 부탁하는 한편, 논문조사는 관련 사이트를 뒤져가며 확보해두었다. 또한, 사실조사를 위해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면담조사 1차례, 이후 질문답변조사를 2~3차례 하였다. 그 교사가 참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동료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느꼈다. 특히 유족사건의 경우 직장동료를 만나보면 평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현재의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동시에 각종 증거자료확보에 들어갔다. 직접 법원을 통해 선생님이 근무했던 학교에 송부촉탁을 할 수도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하는 송부촉탁은 추후에 보다 명확히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현재는 사실조회 및 송부촉탁을 준비 중에 있다.
일반인들이 보는 눈은 정확하다
이후, 기존자료 및 데이타의 수집 분석이 끝나고 서면작성 작업을 시작하였다. 산재소송(행정소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 서면의 내용 및 증조조사에 대한 전술채택이다. 즉, 집중심리제로 인한 준비기일 이전에 업무상 재해(공무상 질병)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며, 근로복지공단 소송수행자들이 보는 송무세미나 자료집에서도 굉장히 강조되는 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각종 촉탁신청의 적절성이다. 사실조회, 문서송부, 감정촉탁, 증인신청 등을 시기적, 내용적으로 적절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준비서면을 몇 번이나 수정해가면서 정성을 다해 글을 작성하고 사무실 시보뿐만 아니라 수습노무사, 변호사들에게 한번 읽어보게 한 후 서면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보는 눈은 정확하다.
예전에 가끔 아내에게도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서면을 읽게 하고 조언을 들었다. 준비서면 34페이지, 증거자료 갑제29호증(분량 300page), 참고자료로 논문6개․판례10개를 첨부하고 1차 서면을 제출하였다.
감정촉탁신청은 법원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서울대병원에 하였고, 기존 사례의 촉탁신청과 논문을 철저히 분석하고 상병에 대해 보가 깊이 연구한 뒤 다발성경화증과 자가면역질환과의 상관관계 등을 위주로 내용을 구성하고 감정촉탁신청서를 작성하였다. 증인신청은 가장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2명의 선생님들을 채택하였다. 어제 감정촉탁은 회신이 도착하여 읽어보니 기대하는 수준에서 적절하게 회신되었다. 의학적 견해가 갈수록 중요한 판단근거가 되는 산재소송에 있어 감정의 중요성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소송은 반 정도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2명의 증인신문뿐만 아니라 당사자 본인신문을 신청해서 현재에도 병실에 누워있는 그녀를 재판정으로 불러낼 생각이다. 중추신경질환으로 일반적으로 불치병으로 알려있는 다발성경화증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판사에게 알려 주고 싶다. 이제 소송은 반 정도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수십건의 산재사건 중에서도 이 사건은 특히 애착이 간다. 젊은 날 사범대를 졸업하고 희망으로 시작했던 시골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의 삶이 다시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다시 교단에 복귀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저요, 올해의 선생님에 선정됐어요” 처음 만났을 때, 2004년 학생들이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뽑혔다고 자랑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 때, 자클린 뒤프레의 연주곡을 사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지금껏 망설이고 있다. 최근 그녀는 상태가 악화되어 호흡기에 의존해서 병실에 누워있다.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고 다시금 교단에 설 수 있을 때, 그녀에게 자클린 뒤프레가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 E단조 op.85 CD를 사주고 싶다. 첼로의 강한 심연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연주곡이 담긴.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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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농업인의 재해와 건강
농업인은 농작업과 관련된 많은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다. 농기계에 의한 사고, 제초제와 살충제에 의한 농약중독, 과수업이나 고추농사, 비닐하우스 작업과 같이 불편한 작업자세로 반복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직업성 근골격계질환, 돈사와 계사 등 축산업에 종사하면서 각종 유해가스와 미세먼지, 내독소에 의해 발생하는 알레르기와 천식 및 호흡기 질환 등 다양한 건강장해가 농작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인을 산재보호가 필요한 직업인(농업 노동자)으로 분류되지 않아 산재보험으로 재해보상이 되지 않아 농작업 재해가 발생해도 자기 비용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주관부서인 농림부에서도 농업인의 건강은 뒷전에 놓여 있어 재해보상은 물론 안전보건에 대한 정책도 거의 실시되지 않는 형편이다.
이글은 중요한 직업적인 건강문제의 하나이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농작업 사고로 인한 농업인의 건강피해 현황과 대책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 외국의 농작업 재해(사고)
미국의 경우 농업은 가장 위험한 산업중의 하나이며, 농작업 재해는 사망과 장해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가안전회의(NSC)에 의하면 1998년의 경우 345만 명의 농업인 중에서 780명의 직업적 사망이 발생하여 사망률은 10만 명당 22.1명으로 나타났으며, 광산업의 10만 명당 24.3명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산업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1998년에 약 14만 건의 농작업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장해율은 100명의 농업인 중 4.1명으로 나타났다. 1991년 워싱턴 주의 보상보험 자료에 의하면 농업인에서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할 위험이 일반 노동자에 비해 2.5배, 골절 위험이 2.3배, 절단 위험이 2.5배로 나타나 재해율과 치명율이 높다고 보고 된 바 있다. 2004년 미국의 노동통계(BLS)에 의하면 산업별 산재위험 순위는 광산업, 농업, 건설업 순으로 발표하여 농업이 건설업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하였다. 이러한 농작업 재해의 위험성으로 인해 미국의 국립산업보건연구원(NIOSH)과 농업안전보건센터(미 10개주에 구성됨)를 중심으로 농작업과 관련된 사고, 질병, 유해물질 등의 연구, 정책지원, 예방사업을 국가의 지원에 의해 종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농업은 가장 위험한 산업중의 하나이며, 매년 120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재해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농업인의 직업적 사망은 모든 직업적 사망의 13%에 해당하였다(1995년). 캐나다는 농작업 사고의 심각성으로 인해 매년 농작업 재해로 인해 사망 및 병원에 입원하는 중대재해의 경우 주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여 국가차원의 농작업 사고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농업·농식품성을 중심으로 농업안전협회, 농업안전프로그램, 농업상해조사 프로그램 등에 대규모의 국가 지원을 통해 예방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농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본의 농작업 사고 실태는 우리나라 농작업 현황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본의 농작업 사고에 의한 사망율은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2000년의 경우 농업인구 10만 명당 10.4명으로 나타났으며, 전체 산업의 사망율 3.5명의 약 3배로 나타나 높은 사망율을 보이고 있다. 연간 약 400명의 농작업 사망자 중 약 70%가 농기계작업사고로 인해 발생되고 있으며, 농업인의 고령화로 인해 사망자 중 60세 이상의 사망자가 전체의 80%에 해당한다.
2) 외국의 농업인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현황
많은 국가에서 자영업에 대해서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으나 농업에서의 높은 재해발생 위험 때문에 농업인에 대해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국가가 상당수에 이른다. 농업인이 작업 중 사고로 인하여 장애나 소득의 중단, 사망 등에 이르게 되면 농가의 생활불안정과 빈곤을 초래하게 되며, 이는 식량자원으로서의 농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에 비록 기술자나 상인 등과 같은 자영업자에게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높은 재해위험으로 인한 국가보호의 필요성과 농업의 중용성에 의해 농업인에 대해서는 특별히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배경이 된다.
OECD 국가를 보면 농업인을 산재보험에 강제적용시키는 국가가 18개국으로서 전체의 60%에 이르고, 4개국은 임의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농업인이 산재보험의 적용제외 대상이 되는 국가는 8개국(27%)에 불과하다(표 2).
임의적용국가인 일본은 농기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치료비와 보상 등을 위해 정부는 꾸준히 노동재해보험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1998년의 경우 특정 농업종사자 약 8만 명, 지정 농업기계종사자 약 5만 명, 농업 중, 소 사업자 등 2만 명으로 총 15만 명이 노재보험에 가입되어 보상을 받는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농협에서 관련 상해공제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반 보험회사에서도 관련보험을 취급하고 있다 1).
3) 한국의 농작업 재해(사고) 현황
농업 인력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로 인하여 점차 농기계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고 건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농작업 재해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어 실제 얼마나 농작업재해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다만 일부 농촌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농기구-기계에 의한 사고 발생률이 남자는 1,000명당 83명, 여자는 1,000명당 65명이라는 보고가 있으며(손명호 등, 1993), 1년 간 남자는 6.52%, 여자는 0.03%가 사고를 경험하였다고 보고(김두희와 정철, 1998)한 바 있다.
이러한 역학조사 외에 농작업재해 통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는 농협에서 추진하는 농작업 안전공제와 농기계공제 보상 자료이다. 정부는 1996년 이후 농업인 안전공제에 대해 가입비의 50%를 지원하고 있으며, 농업인이 나머지 비용을 지불하고 임의로 농업인 안전공제에 가입하고 있다 2). 현재 농업인 안전공제의 가입정도는 2003년 현재 농협조합원 240만 명 중 29.2% 만이 가입하고 있다.
농업인 안전공제 및 보상실적 자료(표 3)에 의하면 가입건수는 2001년 66만 건으로 1996년 이래 큰 변화가 없으나 재해발생건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어 1996년 7,802건에서 2001년 12,839건으로 증가하였으며, 재해발생율 또한 1.24%에서 2001년 1.94%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농업의 재해율을 노동부의 2001년 산업재해율 0.77%와 비교하면 농업에서 2.5배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며, 업종별로 비교하였을 때 광업의 재해율 7.3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재해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2003년)의 농기계 사고실태조사에 의하면 농기계 전체사고의 1/2 정도가 심각한 인체사상의 위험성이 높은 전복과 추락이었으며, 농기계사고시 상해형태는 골절과 절단, 사망사고가 41.6%로 나타나 농작업 사고 발생시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 농작업안전공제의 보상수준
농업인 안전공제의 보상수준은 재해사고로 사망시 유족 유로금 300만원, 1급 장해 매년 500만원씩 5회 지급(2,500만원)에서 7급 장애시 50만원을 지급하며, 농작업 재해로 인해 치료비로 입원시 입원 1일당 15,000원(120일 한도)을 지급한다. 이러한 보상수준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2003년)이 농기계 사고실태조사를 통해 추정한 농기계사고 건당 총 비용 9,770만 원 및 사고로 인한 직접적 비용(생산손실+차량손실+의료비) 4,160만 원에 비해 아주 낮은 보상수준으로 실제 재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보장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실시되는 농업인 안전공제를 산재보험 및 2004년부터 어업인에 대해 실시되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과의 비교하면 농업인 안전공제의 보장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5) 제안
외국의 농작업 재해 현황을 볼 때 농업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위험은 어느 산업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농작업 재해 실태는 일부 자료로서 위험성이 추정될 뿐이며, 실제 농작업 재해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다른 산업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농작업 재해의 위험이 우리사회에서 인정할 만한 수준인지, 농작업 재해의 보상이 농업인의 건강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될 정도인지, 농작업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및 사회적 공감대가 없는 형편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 농작업 재해(사고) 및 농업인의 직업병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 실시
- 현재의 농업인 안전공제를 강제가입을 전제로 한 농업인 재해보상보험으로 전환
- 농업인 재해보상보험의 보장성을 산재보험의 수준으로 실시
각주)
1) 일본의 경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휴업급여가 평균 임금의 60%가 지급되어 노제보험이나 농협 공제를 들지 않더라도 사고로 인한 비용부담이 우리보다 아주 낮은 편이다.
2) 일부 농협의 경우 조합원 환원사업으로 농업인의 자부담 보험료를 차등지원(25~50%)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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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보건의료의 공공적 개편과 무상의료
1. 왜 무상의료인가?
가. 의료이용의 양극화와 무상의료의 필요성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질병․장애․배우자 사망․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결핍의 경우에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체 및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현실이 인류의 보편적 규범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상의 냉혹함 속에서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다. 한 쪽에선 수백만을 호가하는 검진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수술을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운 좋게 방송에 포착된 자만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한 공로(?)를 인정받아 비극적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건강할 권리가 근본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은 빈곤 심화 및 사회 양극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통계청 도시가계 조사를 보면, IMF 이후 하위 1분위와 상위 10분위 간 소득점유율 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1)
.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적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잔여적 복지체계의 구축만으로 빈곤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정책은 여전히 잔여적 수준의 최소 안전망 구축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이용의 불형평성과 건강수준의 불형평성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이용의 불형평성 문제는 건강보험의 이용 양태를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입원 진료비만 보면 하위 1분위와 상위 10분위 간에 차이가 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환의 특성에 따라 구분하면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급성질환의 경우 소득계층 간 차이가 크지 않지만,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가입자의 경우 소득계층에 따라 의료이용에 차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소득계층에 따른 의료이용의 양극화 현상은 외래 이용 양상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2002년을 기준으로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보면, 하위 1분위에 비해 상위 10분위의 평균외래진료비는 직장 가입자의 경우 42%, 지역 가입자는 45%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양극화 현상은 연령구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0-74세의 노인만을 보면 상위 10분위의 노인이 하위 1분위의 노인에 비해 의료이용량에 있어서 직장 81%, 지역 68% 가량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인구에서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급격하게 노령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향후 전면적인 보건의료체계의 개편이 없는 이러한 경향은 더욱 더 강화될 것이 확실하다고 하겠다.
나. ‘의료산업화’ 공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무상의료’ 운동의 의미
작년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예상했던 일들이 계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의료산업화론’으로 정식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그것이다. 올 초부터 청와대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의료산업화론은 언론사 등을 통하여 확대 재생산되고 있고, 급기야 보건복지부까지 의료산업화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공세의 고삐가 조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사안 자체가 경제자유구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사회진영의 연대가 수월하다는 점에서 작년보다 덜 비관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공세의 강도에 비추어볼 때 수세적인 반대투쟁만으로 의료산업화의 공세를 막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반대투쟁과 함께 현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상의료운동의 실천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상의료는 단지 공짜의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짜의료가 가능할 수 있는 체계 내지 구조에 대한 전면적 개편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무상의료운동은 현재 존재하는 시장 중심의 의료체계에 대한 대안 투쟁으로서 성격을 갖는다고 하겠다.
물론 무상의료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볼 때 무상의료는 의료급여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과 같이 의료이용에 있어서 경제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고통이 어떤 부분에 핵심적으로 닿아 있는가를 생각해볼 때 무상의료에 대한 비판의 지점이 역설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과정에서 확인된 국민들의 정서는 막연하게나마 무상의료가 매우 필요한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무상의료를 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어 개인이나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들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함께 갖고 있다. 또한 의료산업화의 논리와 맞닿아 있는 공짜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 즉 의료의 질이 낮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상의료운동은 무결점의 자기 완결성을 내포하는 운동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지금과 다른 새로운 의료를 경험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출발점으로서 또는 매개자로서의 정치적 의미를 갖는 대안 운동이라는 점에서 행위 지향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운동 과정에서 현재 영리법인 허용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의료의 질 문제는 본인부담이 절반이 넘는 현재의 무권리 상태에서 발생하는 문제이지, 서비스의 표준화와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는 무상의료의 경우에 질 저하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일임이 실천적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2. 보건의료의 현황과 문제점
가. 보건의료서비스 시장의 특성과 문제점
보건의료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시장 논리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공적인 특성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시장에 의한 상품의 거래와 자원 배분은 경쟁의 대칭성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은 비효율적이 된다. 이것을 보통 ‘시장 실패’(market failure)라 하는데, 보통 시장 실패는 경쟁의 불완전성, 공공재적인 재화의 성격, 외부 효과, 수요예측의 불확실성,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건의료는 이와 같은 시장 실패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실패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각 국가는 보건의료에 대한 공공적 개입을 강화하고 있으며, 선진외국의 경우 국가의 책임 하에 서비스의 공급 자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및 영리법인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시장의 논리가 작동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정부적인 시장경쟁의 폐해가 발생하게 되는데, 가히 보건의료의 위기라 칭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의 위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징후는 바로 부적절한 공급 과잉이다. 급성기병상과 첨단 고가 장비는 이미 과잉 공급 상태에 있고, 매년 수천 명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 대다수가 구매력이 있는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공급 과잉은 필수적인 의료의 과소 공급과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미충족의료’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특히 현 건강보험 수가와 급여항목이 의료공급자가 투자한 자본비용을 보전해주지 않고 경상비용만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의료공급자들은 자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비정상적으로 진료강도를 강화하고 비급여 항목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행위별수가제에 기초한 진료비지불제도가 이러한 진료강도 강화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무분별한 과잉 공급과 경쟁의 심화, 그리고 부적절한 진료 강도의 강화는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3차 의료기관(종합전문요양기관)의 집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인 사용을 목표로 했던 의료전달체계도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나. 보건의료서비스공급체계의 현황과 문제점
1) 민간 중심의 소유지배구조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건강의 불형평성 문제와 보건의료의 위기는 보건의료를 시장의 논리로 움직이게 만드는 보건의료의 구조적 취약성 내지 공공성의 부재에 기인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민간 중심의 소유지배구조라 할 수 있다. 실제 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공공부문 병상의 비중이 8.1%에 불과할 정도로 민간부문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공공부문의 비중이 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간병원의 대다수가 개인 및 재벌자본의 소유와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형식적인 설립 형태만 보면 비영리법인의 형태를 띠고 있는 병원이 많지만, 실제적인 지배구조를 보면 법인 이사장이나 재벌 기업의 오너에 의한 개인 지배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비영리 민간병원은 자선적 성격이 강하고 대다수가 지역사회에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 민간병원은 전형적인 이윤극대화 모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2) 공급의 양극화와 비용유발적인 의료전달체계
또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의원과 병원이 모두 외래와 입원 환자를 진료함으로 인해 양자가 동일한 시장 안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무정부성이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결과 경쟁력이 취약한 1차나 2차 의료기관보다 3차 의료기관인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상방지향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규모의 경제에 못 미치는 소규모 병원은 생존을 위해 생산비용의 절감이나 매출의 증가를 부적절하게 강화하고 있다. 일반적인 시장 기전이 작동하기 어려운 보건의료 부문에서 이는 서비스 질 저하와 의료비 상승 등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2)
더욱이 의원, 병원, 대형병원 간에 의료전달체계가 형성되지 않아 막대한 양의 의료시설 및 의료 자원의 중복 투자와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매우 비용유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용유발적인 의료전달체계 하에서 자원의 배분은 매우 왜곡될 수밖에 없다. 도시에 대부분의 의료자원이 집중되고, 급성병상은 과잉인데 장기병상은 과소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급성기병상의 공급 과잉은 최소한 도시 지역에 한정된 문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농촌지역 의료기관의 병상 규모와 질적 수준을 고려하면, 농촌지역은 사실상의 공급 부족상태에 처해 있다. 이 과정에서 농촌지역 주민들이 도시지역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대체 소비하게 됨으로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농촌지역이 오히려 의료를 이용하는 데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장의 논리로 보면, 농촌 지역은 인구의 감소로 인해 적절한 규모의 병원이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자원의 균형적 배분과 의료이용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국가는 일정한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농촌지역에 자원 공급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 건강보험의 현황과 문제점
1)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벽
WHO가 발간한 2000년도 연차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국민의료비에서 사적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적 의료비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일 정도로 매우 높다.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사적 의료비 부담 비율은 OECD 국가의 평균치 27.4%보다 두 배 이상 되는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보건복지부가 OECD에 의뢰하여 실시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보더라도, 높은 사적 의료비 부담비율은 첫째, 본인부담금 지불이 지불능력과 관련이 없고, 둘째, 본인부담금 면제 혹은 감면이 전체 인구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의료수급권자에만 적용되며, 셋째, 고액진료비가 발생하여도 본인부담금 상한선이 없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매우 소득 역진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본인부담금이 존재함으로 인해 의료이용의 재정적 장벽이 높아져 조기진단 및 조기치료를 불가능하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예방서비스와 같이 의학적 필요성은 높으나 소비자가 필요성을 덜 느끼는 서비스가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의료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소득 탄력적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서 이런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계는 불건강으로 인하여 쉽게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며, 빈곤과 불건강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과다한 본인부담 문제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서 제외되어 있는 비급여 항목의 존재에서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최근 비급여 항목이 공급자의 유발수요에 의하여 급속하게 팽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비급여의 확대 자체가 정부 재정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국민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향후 정부 재정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한 불필요한 부분에 자원이 집중됨으로서 자원 배분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비급여의 확대 자체가 직접적인 가계 부담으로 이어져 가정경제 파탄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건강보험은 총진료비의 50% 정도만 보장해주고 있는데, 이러한 보장성 수준으로 건강보험이 국민 건강의 안전망의 구실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직접적인 진료비 부담 뿐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휴업일수 또는 손실일수를 보장해주기 위한 상병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서비스의 이용은 저소득계층에게 사치일 뿐이며, 건강보험의 혜택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 과잉진료를 유도하는 진료비지불제도
우리나라는 진료비지불제도로 수가 항목이 극단적으로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는 행위별수가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의사는 자신의 수입을 최대화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가능한 많은 환자를 유인하려는 동기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수가 항목이 이렇게 세분화되면 건강보험은 개개의 진료 행위를 일일이 심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다한 행정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심사평가원과 의료기관 간에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행위별수가제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진료량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을 막기 어려운 보건의료시장의 특성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진료비지불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차의료에 적합한 방식인 인두제, 보험자와 의료제공자 간에 진료비를 사전에 계약하고 배분하는 방식인 총액계약제 등 다양한 진료비지불제도로 전환할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3. ‘무상의료’의 과제
가. 의료이용에서 경제적 장벽의 제거
1) 건강보험의 적용 확대
원칙적으로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이루어진다면 현행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고액진료비가 발생하는 고위험군 환자의 본인부담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비급여의 급여화가 이루어지면, 공적으로 조달되는 보험재정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어 의료체계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국민과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게 되고, 의료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사회계층간 불형평성을 개선하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2) 본인부담금제도의 단계적 폐지
그렇지만, 본인부담금제도가 남아 있는 한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벽이 해결되기 어렵고, 소액 진료비라 하더라도 의료이용의 장애로 작용할 수 있으며, 소득이 낮을수록 그러한 경향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본인부담금제도의 폐지를 단계적으로 달성해야 한다. 저소득계층을 포함하여 보건의료에서 취약한 집단인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에 대한 본인부담금제도를 우선적으로 폐지하고 단계적으로 모든 계층으로 확대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3) 상병수당의 도입
진료비에 대한 직접적인 부담이 사라지게 되면, 서비스 이용 중에 발생하는 가계 소득의 상실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을 신설해야 한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계 소득의 상실 문제는 의료이용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주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특히 저소득계층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상병수당의 신설이 필요하다.
나. 재원조달 기전의 공공적 개편 방안(건강보험을 중심으로)
1) 행위별수가제를 다른 진료비지불제도로 전환
행위별수가제의 대안으로 인두제, 총액계약제 등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총액계약제란 주어진 기간 동안 의료공급자에 의해 제공되는 진료서비스와 약품의 총비용을 사전에 미리 계약하여 지불하는 제도로서, 많은 국가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여 적용하고 있다.
2) “자본비용” 지원을 위한 재원의 신설
민간부문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민간병원이 자본 투자를 필요로 할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별도의 재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병상수급 조절기금」 등의 설치가 필요하다. 「병상수급 조절기금」은 민간중소병원의 요양병원 전환을 촉진하고, 민간병원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시설 투자에 사용될 수 있으며, 민간병원의 지역적 분포를 개선하는 데에 투자될 수 있다.3)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의료보험은 경상비용만 지불하고, 병원의 자본적 투자비용은 별도의 예산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지원을 받는 데에 민간 및 공공병원 간에 차이가 없다.
다. 보건의료 서비스제공체계의 공공적 개편 방안
1) 대안으로서 공공의료 확대
시장실패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공공의료의 강화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성실한 공급자로서 공공병원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공공의료가 대안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지금의 공공병원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한다. 환자 진료 뿐 아니라 지역사회 보건의료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고, 수익성의 원리가 아닌 공공성의 원리에 의하여 운영되는 병원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제 조건으로서 민간병원에 뒤지지 않는 현대적인 시설과 우수한 인력, 그리고 운영의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2) 서비스공급체계의 개편
공공부문을 50% 이상 확충함과 동시에 의료비 낭비와 불평등한 건강문제를 낳은 요인들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서비스제공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 먼저, 1/2/3차 기능을 분화하고 전달체계를 확립하여야 하며, 의원은 외래 중심으로 병원은 입원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둘째, 시설, 인력 및 자원이 지역적으로 균형 있게 분포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과잉 공급되어 있는 급성병상을 장기병상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넷째, 적정 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급성기병원은 300병상 이상의 적정 규모를 갖도록 한다. 다섯째, 치료 위주의 서비스공급체계에서 예방과 보건관리가 중심이 되는 서비스공급체계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 의료기관 역시 공공성이 강화되어 법 형식적인 비영리성이 아니라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비영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결.
최근 건강보험 흑자분인 1조3천억 원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으로서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운동의 시작과 전개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논쟁이 형성되었지만, 운동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보장성 문제의 핵심이 비급여에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할 수 있었으며,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운동의 실천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비급여의 급여화 문제, 그 중에서도 3대 핵심 비급여인 병실료차액, 선택진료료, 식대 등에 대하여 쟁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무엇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상의료의 접근 방식을 소득계층별로 가져갈 것인가, 연령집단별로 가져갈 것인가, 질병별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존재할 수 있지만, 현재 비급여 부분을 급여 범위에 완전하게 포함시키지 않고서 건강보험 보장성의 구조적 취약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민간의료보험과 영리법인의 물적 기반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급여의 급여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의해서도 비급여가 전제 진료비의 21.5%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외하고 보장성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현재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은 왜 암부터인가에 대한 논리적 정합성 측면에서 일정부분 한계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암부터 무상의료’를 주장했던 것은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암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파장에 주목하여 건강보험 흑자분인 1조3천억 원에 대한 사용처로서 제시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왜 암이냐는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추는 대응이 아니라 암‘부터’에 초점을 맞추고 비급여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대응이 필요하였고, 전반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운동이 합리적 정책 내지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질 경우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지속적으로 국민과 함께 나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암부터 무상의료’운동의 성과를 전반적인 무상의료운동과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정책적 매개가 바로 ‘비급여의 급여화’, ‘모든 의료비의 건강보험 적용’ 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3대 핵심 급여가 핵심적인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각주>
1)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각년도
2) 김용익. 공공성 부여를 통한 중소병원 육성지원 연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03.
3) 김용익. 보건의료공급체계와 보건의료자원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자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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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사람들, 공동체를 꿈꾸다 - 산재노협 자활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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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산재보험을 둘러싼 전투1 (The Bettle Over W...
번역연재 : 산재보험제도를 둘러싼 전투 ①
미국 산재보험제도의 “위기”만들기와 자본의 공격
제임스 엘렌버거 (Jame N. Ellenberger)
게리 브루멧은 1997년에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일년에 35,000달러를 벌었다. 그해 8월, 그는 일을 하다가 허리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그 상처는 무척 깊어서 보험회사의 의사와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은 후에도 35,000달러를 벌던 건설업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브루멧은 신용상태가 매우 좋았고 켄터키 스텐포드에 방 3개짜리 집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브루멧은 하루에 5.15달러를 버는 피자배달을 하고 있다. 그는 집을 잃었고, 전화가 끊겼으며, 트레일러 안에서 살고 있다.
1996년 이전에, 켄터키에서 산재노동자들은 그들의 이전 직업 경력, 나이, 교육, 건강 상태 기초하여 노동력 상실에 대한 보험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주지사 폴 페톤은 보상체계를 “개혁”하기 위해 1996년 말 의회의 특별회기를 요청했다. 석탄회사의 경영자로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주지사 폴 페톤은 노동자에 대한 보험 비용이 사업주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보험급여는 단지 노동자가 겪은 의료적 손상만을 고려하는 ― 그리고 의도적으로 개인의 노동능력 손실의 효과를 무시하는 ―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기초하고 있다.
1996년 법이 개정된 후에, 브루멧은 520주에 대해서 주당 187달러를 받거나 총액으로 73,000달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1996년 법개정 덕분에, 브루멧은 단지 425주에 대해서 주당 22달러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만약 그가 보험회사와 “결산”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는 한번에 7,400달러를 받을 것이다.
지난 10년은 “개혁”을 가장하여 산재보험에서 수많은 변화들이 있어왔다. 사업주들과 보험업계에 의해서 추진된 이러한 변화들은 보험급여의 절감, 보상범위의 축소, 질적으로 낮은 의료 서비스, 그리고 산재노동자의 오명으로 결론지어졌다. 그 결과는 명확해졌다. 산재노동자의 보험급여 청구건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국립사회보험연구소(National Academy of Social Insurance)에 따르면, 보험급여는 1992년 이후 23% ― 총액 100달러 당 1.66달러에서 1.28달러 ― 감소하였다.
사업주가 내는 보험료는 지난 3년간 거의 60억 달러가 감소하였고 산재보험은 모든 재해보상의 영역 중 가장 많은 이익이 남는 보험사업이 되었다.1) 이 글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해가 되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가 어떻게 주 마다 사업주와 보험업자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강요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하이오 노동운동과 맞닥트리기 전까지, 그것은 성공적이다.
최초의 국가적 사회보장체계
거의 한 세기 전, 비스마르크가 집권했던 독일로부터 영국을 통해서 수입된 산재보험제도는 매우 빠르게 대다수의 주에 도입되었다. 1911년부터 1920년의 불과 10년 사이에, 노동자가 직업과 관련된 상해와 질병에 대한 치료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사용자의 무관심에 대해서 소송을 하는 방식의 유일한 구제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하여 7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그와 같은 법이 제정되었다.2)
산재보험은 노동과 자본 간의 중요한 합의 또는 교환(trade-off)이다3) 라는 자주 반복되는 말을 중단시킨 것은 산재보험이 소개되는 동안 입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노동조합의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주의회 의원들이 아동노동을 금지하거나, 안전과 건강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거나,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사안에 대한 격렬한 토론 후에, 노동운동은 그 계획을 묵인했다. 그러나 사무엘 고스퍼는 산재보험을 포함한 사회보험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사회보장이 사람들을 집단이나 계급으로 나누는 효과가 있고 통제력을 노동자와 노동자 조직으로부터 “중요한 결과(grave consequences)”를 가져오는 다른 정부기관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산업적 자유는 임금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력에 대해서 완전한 통제력을 가졌을 때와 장소에서 존재한다. 그들의 노동력에 대한 통제력을 외부 인사들에게 위임하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을 제거하는 정부기관의 힘을 증대시킨다. 누가 이러한 새로운 정부기관의 통제력을 갖던 간에 일정 정도 노동자에 대한 통제력을 얻는다. 노동자들이 그 정부기관에 대해서 통제력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고용주에 의해서 통제될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산재보험의 역사적 토대로서 바라보던 간에, 산재보험이 고용과정에서 노동환경으로 인해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람들을 돌보는 수단과 방법으로 받아들진 것은 사실이다.
“위기” 국면의 설정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보상범위와 보험급여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족에 대하여, 1970년 의회는 직업적 안전과 건강에 간한 법률(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ct)에 대통령이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를 두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 위원회는 법이 충분하고, 적절하고, 평등한 산재보험체계를 제공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포괄적인 연구와 주의 산재보험 대한 평가를 수행한다.
사업주, 노동자, 보험업자, 학자 등의 대표들로 구성된 닉슨의 위원회는 1972년에 만장일치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84개 권고항을 만들었다. 권고항 중 19개항이 주에 기초한 제도의 미래에 핵심적인 것으로 이야기되었고, 위원회는 만약 적용하지 않는다면 연방정부가 국가 기준의 이행을 보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4) 보상범위와 보험급여 모두가 대부분의 주에서 증가한 반면, 19개항의 이행은 위원회의 최소 기대에 매우 부족한 것이었다.
점차 확대되는 산재보험의 보상범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적절한 법개정을 활용하면서, 보험업자들은 당국과 사업주들의 반대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직업병의 수와 정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킬 기회를 깨닫고 보험업자들과 그들의 사용자 연합은 보험료의 상승을 예로 들면서 산재보험체계가 “위기(crisis)”라고 선언했다.
게임의 계획은 사실 매우 단순했다 : 노동과정에서 다치는 위험과 실제를 혼란시키기 위해 산재보험에서 “위기(crisis)”를 사용하여 정책결정자들이 보험급여를 줄이고 보상범위를 엄격히 하도록 만든다. 텍사스와 오레곤은 산재보험제도의 “위기(crisis)”가 이후에 일어날 변화에의 수많은 영향을 주였던 변화를 이끌어낸 최초의 주들이었다.
텍사스의 사례
보상보험에 관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uncil on Compensation)에 따르면 텍사스에서 산재보험급여는 실제로 61.6%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148% 증가하였다”고 알려졌다. 재계는 어떻게라도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 했다. 산업사고위원회(Industrial Accident Board)에서 재계 대표들은 사업주들에게 법개정을 위한 로비를 촉구하면서, 최근 보험료의 증가는 “일하다가 다친 것으로 빨리 돈을 벌려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돕는 의사와 변호사들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출신 주지사 빌 클레멘츠는 이미 두 차례 산재보험제도의 개정 청원을 위한 의회의 특별 회기를 요구했었다. 1989년 12월 초, 그는 세 차례에 걸쳐 개회를 요구했다. 이것은 산재보험법 개정을 지지하는 의원들에게 10,000달러 수표를 돌리기 위해 주 의회 마당에 서있었던 텍사스 양계업의 제왕인 Lonnie "Bo" Pilgrim에 의해서 악명 높아진 의회 회기였다.5)
1991년 7월에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수많은 개정 내용들 중에서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보상이 극적으로 감소하였다는 점이다. 첫 번째 특징은 영구적인 부분 장애가 보상받는 방식과 관련되어있다. 이전 법에서, (나이, 교육, 경력 등등) 많은 요인들이 노동자가 감수해야 할 “노동능력의 상실(loss of wage-earning capacity)”의 내용을 결정하는 데에 고려되었다. 새로운 법에서는, 그러한 변수들이 단지 미국의료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영구손상에 대한 평가 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의 두 번째 판에만 기초할 것이었다.
더구나, 보험급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침에 따른 각 손상의 정도에 대하여 산재노동자는 3주치 보상을 받을 자격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조금(supple-mental)”인 두 번째는 단지 산재노동자가 지침에 따라서 15% 이상의 손상을 입었고 일자리를 얻기 위한 매우 성실한 노력을 해왔지만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거나, 일자리를 얻었지만 손상에 의한 직접적인 결과로서 이전보다 수입이 20% 이상 적게 번다는 조건에서만 결제되었다. 그 충격은 극적이었다. ― 1993년에 전체 산재노동자의 단지 2%만이 보조금에 대한 자격이 주어졌다.
두 번째 특징은 산재노동자가 법적 대표성을 얻는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것은 법률 대리인들이 산재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매력적이지 않게 대리인이 보상받는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이 또한 그 결과가 극적이었다. ― 보험회사는 더욱 많은 법률 대리인을 갖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점차 대표성을 상실했다.
텍사스의 AFL-CIO는 법정에서 새로운 법의 합헌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심리 공판은 1990년 12월에 일시적인 효력 중지를 명령했고, 주 법원 판사 레이 페레즈는 미국의료협회(AMA)의 지침을 사용하는 새로운 법이 불합리하고 독단적이며, 사업주와 보험업자가 법률자문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반면 법정대리인들이 산재노동자를 대표하지는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도 텍사스 지방법원은 법 전체가 위헌적이라고 판결했다. (그 법은 이러한 소송 과정 동안에도 유효하도록 허가되었다) 그러나 1994년 12월, 텍사스 고등법원은 이전의 판결을 뒤집고 1989년 법의 타당성을 지지했다.
텍사스 AFL-CIO의 의장 조 건은 법원이 “보험회사와 재계의 이익”만을 고려했다면서 그 법이 완전히 유효해진 이후 청구된 보상 건수는 절반으로 감소한 반면 보고된 산재노동자의 숫자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건은 텍사스가 산재보험제도가 효율적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지만, “이 경우에 효율은 생명을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재노동자 비난하기
텍사스와 오레곤에서 사업주와 보험업자가 벌인 캠페인은 많은 노동자의 보상청구가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심으려는 노력과 관련되었다. 이 캠페인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이러한 “의심스러운(suspect)” 산재보상청구의 비용에 대한 정책결정자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보상범위와 비용을 줄이려는 법개정을 강제하기 위해 소동을 일으키고, 제도의 운영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 전략은 산재보험의 청구자들을 협잡꾼, 사기꾼, 나이롱환자로 몰아세우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재보상제도에 의해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비난(stigma)”이 따라다니도록 하고 ― 아마도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꺼리도록 만드는 것을 기대하였다.
1991년 말과 1992년 초의 열흘 동안에 미디어 초점의 “일치(coincidence)”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노동자에 의한 사기와 제도의 뻔뻔스러운 악용을 전하는 6개의 기사와 연재물들이 주요 일간지와 TV에 보도되었다. 뉴욕타임즈는 1991년 12월 29일자 일면에 “산재보험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기가 발각되었다”라고 대서특필했다. 그 기사의 일부는 많은 사람들이 보상 받을만한 산업재해 없이 어려운 시기에 임금손실에 대한 보상과 보조금을 얻기 위해서 산재보험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산재보험연구소(WCRI: Workers Compensation Research Institute) ― 이 연구소는 보험업계의 기금으로 운영된다 ― 소장 리차드 빅터에게서 인용되었다.
다음날, 타임지는 “산재보험은 사기꾼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고 전하면서 “부정행위”에 대한 보험업자의 강력한 단속을 세세히 보도하고 오레곤 주의 사례에 대한 장황한 기사를 게재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뉴욕판 석간에서 치솟는 보험급여에 대해 기술하고 증가의 원인을 실업수당이 만료된 후에 보상금을 수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산재보험연구소(WCRI) 리차드 빅터의 인터뷰를 실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는 뉴욕판 조간에서 전면을 할애하여 산재보험에서 수십억이 “강탈(stolen)”당하고 있고 “사기가 높은 산재보험급여 지출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BC방송의 프로그램 20/20에서는 이틀 후 “피를 빨리는 산재보험제도”이라는 제목으로 산재보험 사기에 대한 특집을 방영했다. 세크레멘토 비(Sacramento Bee)는 “산재보험의 악용 : 도둑 심보”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뒤를 이었다. 그 칼럼에서 필자는 산재보험제도가 “게으름뱅이와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의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틀 후, 비(The Bee)는 “상승한 산재보험료의 1/4이상이 사기로 설명될 것이다”라는 사설을 썼다.
예상대로, 반노동자적 의원들은 난투극으로 뛰어들었다. 1월초 미디어의 공격 이후 며칠 내에 콜로라도주 의원들은 산재보험의 보험료 중 15%를 사업주들로부터 노동자들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이러한 조치가 노동자들이 사기적인 보상 청구를 하는 동료 노동자들을 고발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하였다.
보험업자, 보험제공자, 사업주, 노동자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든 모든 사기는 해롭기에 처벌받아야만 하지만, 캠페인의 초점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졌다. 돈에 관한한 사업주들과 보험업자들은 노동자들보다 사기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이 있다. 주 정부들이 사기에 대한 조사단을 만들기 시작함에 따라, 그들은 노동자들의 “수많은(massive)” 사기 사례에 대한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의 한 연구는 보험청구 사기가 0.3%라고 밝혔고, 워싱턴에서 또 다른 연구는 노동자의 사기가 0.6%라는 것을 밝혀냈다.
놀랄 것도 없이, 사기 캠페인은 바라던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 연구는 명백하게 노동자보상의 자격이 있는 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이 연구에서는 75%) 산재신청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이 산업재해를 날조되고 과장된 것으로 생각하리라는 우려, 해고되고나 승진의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걱정, 그리고 심지어 의료제공자들이 산재보험의 경우에 대한 “치료”를 원할지 어떨지에 대한 불안감까지를 포함한 두려움이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로 자리 잡았다.
<각주>
1) 가장 최근의 자료로서 1997년 산재보험의 평균이윤율은 14.3%였다. 조망해보면, 자동차보험의 같은 영역에서 평균이윤율은 5.5%, 화재보험은 5.4%였다. National Association of Insurance Commissioners, Report on Profitability By Line By State in 1997, 1998.
2) 노동자 보상은 직업으로 인하여 다치거나 아프게 된 노동자에게 수입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사망에 대한 보상은 산재로 사망한 사람의 살아 있는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주법이나 연방노동자, 철도노동자, 선원, 항만노동자, 조선소 노동자 등에 관한 개별법을 통해서 보호받는다.
3) 몇 년 동안, 노동자 보상은 사업주의 잘못을 증명하는 것 없이 직업과 관련하여 다친 노동자가 보상이 “보장된” 곳에서 노동과 자본 간의 “거래(deal)"로 알려져왔다. 이러한 ”당연하고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사업주들은 유일한 구제의 원칙 하에서 소송으로부터의 면제를 보장받았다.
4) 노동자보상법에 대한 국가위원회 보고서,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2.
5) “1991년 올해의 얼간이는 1989년 그가 했던 일로 인하여 선정된 양계업의 제왕 Lonnie "Bo" Pilgrim였다. 그는 그가 반대했던 노동자보상법안을 심사하였던 정책결정자인 텍사스 주의회의 마당에서 1만달러짜리 수표를 돌렸다. Bonehead는 Pilgrim이 ‘기본적으로 하찮은 정치인들에게 9,999.75달러를 초과 지출했다는 점에서 유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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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유기농으로 밥상 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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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유해물질 중독의 정치경제학
우리나라에서 노동재해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최초의 사건은 어린 노동자 문송면의 죽음이었다. 15살 어린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은 수은에 의한 중독성 재해였다. 당시의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풍석포제련소의 카드뮴 중독, 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 건설노동자들의 크롬 중독 등...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증상이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발생하며, 원인 물질이 대단히 다양하며, 업무기인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집단적 발병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사고성 재해나 반복 작업에 의한 직업성 질환에 비하여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노동재해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의 자본주의적 성격
자본주의적 노동이 크게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노동은 ‘분업’ 노동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공정을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노동자가 세분화된 공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에 의한 공정관리가 일반화되면서 기계에 부속된 인간노동의 단순반복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둘째,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이 분리’된다. 노동자는 자기 의지에 의하여 자연물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 이러한 경향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가속화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노동의 두 가지 특징이 바로 노동재해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해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식하고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를 수취한다. 따라서 자본의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단순반복 작업의 강도와 시간이 높아지면 노동자가 각종 사고를 당할 위험이 증가하고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성 재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본주의적 노동재해의 첫 번째 유형이다. 또한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인하여 노동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과정의 기술적 위험이나 다루는 원료 등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또한 노동자를 사고와 직업병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노동재해의 두 번째 유형인데, 유해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이 유형에 속한다.
중독성 노동재해의 역사적 기원 - 화석연료기반경제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가 일반화된 사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경로가 갖는 특수성에 주목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독성 재해의 본질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이 ‘화석연료기반경제’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적해야만 한다.
인류의 산업구조가 메뉴팩처와 기계제 대공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기반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기성 분진에 의한 진폐 등 재래적 형태의 직업병들이 만연하게 되었다. 더구나 화석연료기반경제의 성립은 노동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엄청난 생태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1952년 런던스모그와 1954년 LA스모그 사건은 가장 극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화석연료기반경제로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은 1920년대 미국에서부터 발전한 석유화학공업에 의해서이다. 대량생산체제가 완결되면서 천연소재의 부족을 느낀 자본은 인공적 신물질 개발의 필요성을 석유화학공업으로 해결하게 되며, 석유화학공업이 소위 ‘산업의 쌀’을 생산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이 때문에 유포된다. Foster가 인류의 현세대를 ‘합성세대’라고 지칭한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석유화학공업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양을 훨씬 초과하거나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물질들이 다량으로 유포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물질의 사용은 1차적으로 이러한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 신종 직업병의 급격한 증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독점에 의한 중독성 재해의 심화
그렇다면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왜 유해물질의 사용이 적절히 규제되거나 중단되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원인이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화학물질 생산의 독점적 구조가 지적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석유화학공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독점기업의 시장 지배 또는 과점기업들의 담함을 손쉽게 한다.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생태적으로 덜 유해한 대체물질의 사용에 대한 진입장벽을 구축하거나, 정부의 규제에 저항하는 로비활동 등 지대추구행위를 유발한다.
둘째, 화학물질의 유통구조가 다수의 영세한 업체에 의해서 이루어진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화학물질의 유통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다수의 영세한 업체라면, 정부의 관리감독이 어려워지고 철저한 관리와 소비자에 대한 정보 공급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독점적 생산 기업들에 의해서 수직적 통합과 지배 구조 속에 편입되게 된다.
셋째, 화학물질의 소비시장에서 비용전가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제품에 대해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중소기업들을 상정해보자. 대기업은 최소의 공급가를 요구할 것이고 중소기업들은 저가 납품을 위해 화학물질의 유해성 여부 보다는 비용을 선택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결국 대자본이 소자본에게 강제하는 비용전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환경에 대한 치명적인 효과로 귀결될 것이다.
넷째, 신종 화학물질의 개발과 관련된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유해성 여부를 시험하고 규제해야 할 정부는 자본과의 정보 격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당국 또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10만여 종의 화학물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매년 2천여 종의 신규화학물질이 상품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3만5천여 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매출액이 세계 8위를 점하고 있다. 더구나 1980년대 이후 강화되고 있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기업의 영업비밀 보장의 흐름이 정보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 해결책은 없는가?
최근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중독성 재해는 노동시장에서 지위가 취약한 불안정노동자계층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인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에 의하여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적 단기 고용 형태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 대한 정보에 무지하거나 접근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정보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어 활용하기에 불충분하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은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의 광범위한 확대와 더불어 유해물질에 의한 노동자건강권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지금의 경제체제를 변화시키지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우선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알권리에 기반하여 노동자는 노동과정에서 어떠한 물질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현행 산업안전보건제도에서 이미 일정한 정도 보장되고 있지만, 제도적인 보장을 토대로 하여 “알권리와 참여를 통해 노동자의 자기 노동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는 싸움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을 요구하는 운동은 노동자가 현장 수준에서 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총자본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의 주요 지점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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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호
현실과 통계의 거리를 인정하라
지난 겨울 산재통계를 둘러싼 민주노동당과 정부의 논쟁이 뜨거웠다.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실은 우리나라의 산재통계가 현실의 15%만을 반영하고 있고, 노동부 발표보다 6배나 많은 노동자가 사고성재해를 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재통계를 보면 중상재해가 경상재해보다 더 많은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와 이러한 통계로 전체 산업재해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면서, 노동부에서 작성하고 있는 산재통계의 허구성을 비판하였다. 민주노동당의 비판 이후 수차례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면서 산재통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이 형성되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부의 산재통계가 엉터리라고 주장한 근거를 살펴보면, 첫째, 사고성재해를 당해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산재의 전체적 규모를 파악하려면 건강보험자료를 추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실제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보면, 20-59세 노동인구 중 직장 내에서 사고성재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33만1,665명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산재보험으로 처리된 6만 여명과 비교할 때 훨씬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노동부가 반론으로 주장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첫째, 통계의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 통계조사의 목적과 조사 방법이 적절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은 산재보험과 적용대상과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자료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건강보험 자료의 상병코드는 해당 질병이 의심돼 진료 받은 진단명으로서 최종 확정된 상병이 아니다는 것이다. 셋째, 직장 내 사고자 비율의 경우 국민건강영양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 사업주, 임원, 비임금근로자, 공무원, 교사, 군인 등의 사고까지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과다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통계 산출범위 자체를 전체 취업자로 상정하는 것은 노동부가 통계를 산출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부의 비판이 애초에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하여 제대로 된 답변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부가 제기한 논점이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에 앞서서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건강보험 자료의 상병코드가 확정된 상병이 아니라는 노동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건강보험 자료에서 상병코드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확정된 상병이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사에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상병코드가 작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병코드 작성의 불확실성 문제는 비교적 상병과 치료 내용의 연관성이 명확한 사고성재해의 경우 다른 만성질환에 비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직장 내 사고자 비율에 자영업자, 사업주, 임원, 비임금근로자, 공무원, 교사, 군인 등이 포괄된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국민건강영양자료에서 직장 내 사고자 비율엔 자영업자와 군인이 포함되지 않으며, 사업주, 임원, 공무원, 교사 등은 업무의 성격상 사고성재해의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에서 과잉 추산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임금근로자에 해당하는 보험모집인 등에서 발생한 사고성재해가 포함될 가능성인데, 전체 발생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대한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노동부의 비판의 핵심적 요지라 할 수 있는 ‘산재통계 산출 목적에 부적합한 건강보험자료 사용’ 문제는 거꾸로 노동부의 산재통계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부가 산재통계를 위하여 사용한 산재보험 자료는 산재통계를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의 승인과 급여 관리 등의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적이 다른 산재보험 자료가 산재통계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사고성재해든 직업성질환이든 산재로 인하여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 모두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다는 대전제가 성립하였을 때이다. 과연 이러한 전제가 성립하고 있는가? 100%는 아니더라도 근접하게라도 적용되고 있는가? 이러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음은 정부에서 수행한 연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1999년 수행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제조업의 재해율은 노동부의 재해율을 훨씬 상회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산재를 입은 노동자의 상당수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 및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산재를 입어도 모두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한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산재보험자료 역시 산재통계의 자료로 사용하기에 한계적이긴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료의 성격을 근거로 산재통계의 활용 여부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일면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다른 측면에서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는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이 적용대상, 적용범위, 급여범위, 조직체계 등 모든 부분에서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요양급여 부분이 통합되어 있는 스웨덴, 영국 등 서구복지국가와 달리 산재통계를 위해 산재보험 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타당할지 모른다. 사회보험이 통합적으로 운용되는 국가의 경우 대부분의 급여가 통합 운영되고 일부만 별도로 제공되기 때문에 산재보험 자료를 통한 통계의 구축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선진외국의 경우 별도의 산재통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표본조사를 실시하는 이유도 이러한 체계상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곧바로 산재통계를 위해 산재보험 자료를 활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재 환자의 대부분이 산재의 적용을 받는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는데, 비교적 인정을 받기 쉽다고 하는 사고성재해조차도 산재보험에서 누락되는 비율이 상당수에 이름은 관련 연구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정규직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산재보험 자료에 기초한 산재통계가 우리나라 산재의 규모와 그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매우 한계적일 수밖에 없음은 확실하다.
따라서 산재통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고,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체계의 특성상 일반보건의료체계와 구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면 타당한 요소를 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민주노동당이 핵심적으로 제기한 우리나라 산재의 규모와 성격을 규명하기에 산재통계가 매우 문제가 많다는 비판에 대해서, 노동부는 어떠한 해명도 하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노동부가 산재보험 자료에 기반한 산재통계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한계점을 인지한 속에서 제한적으로 재해율을 해석하고 있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 산재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양 선전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재해예방대책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클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산재노동자를 비롯하여,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에서 오랫동안 제기해온 산재통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데에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산재보험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산재보험 개혁방안을 제출하여 산재를 입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던가, 아니면 자료의 성격은 다르지만 건강보험 자료를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여 우리나라 전체 산재 규모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노력하던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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