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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05년 가을호
산업안전부문 국정감사 보고서
1. 여는 글
작년 국감을 끝난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바로 올해 국감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정규 법안을 놓고 몇 차례 공방을 치르고 여름이 되어 휴가 갔다 오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바로 거기였다. 국회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국회 시계는 빨리 간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시국회가 두 달에 한 번씩 열리고 한 번 열린 임시국회는 한 달간 진행되는 관계로 의원이나 보좌관이나 모두 시간을 쪼개서 인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구조가 바로 빠른 시간을 만드는 주요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암튼 작년 국감 피로도가 채 잊혀 지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국감을 준비해야만 했다.
작년에는 국정감사의 의미와 진행방식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국정감사 준비를 했었는데, 올해는 최소한 그렇지는 않았다. 전체 진행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국감에서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제기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등을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 부담감은 결코 줄지 않았다.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국감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년에야 다소간의 실수를 해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신참’이라는 변명거리가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 부담감을 일에 대한 집착과 추진 동기로 삼을 도리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을 주된 국감 대상으로 삼다
올해 국감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마음에 쓰였던 것이 산업안전부문에 대한 것이었다. ‘산업안전부문 국감보고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올 초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작년 연말에 제정된, 근골격계 지침과 과격민원(?) 대응 지침, 비슷한 시기에 행해진 요양업무처리규정의 변경, 그 이후에 이어진 공단 이사장과 서울북부지사 차장의 황당한 발언, 하이텍알씨디코리아(주) 조합원들에 대한 요양불승인 결정, 그에서 촉발된 농성과 40일이 넘는 단식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감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안전부분에 대한 부담감을 안 가질 레야 안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작년 국감에서 산재 통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노동부로 하여금 올 해 개정 방안을 마련하게 하는 등 큰 성과도 있었기에 부담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국감 전체 기획 단계에서부터 근로복지공단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국감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낱낱이 한 번 밝혀보리라, 굳은 각오를 다졌다. 산업안전부문을 관장하는 여러 기관 중에서도 근로복지공단에 특히 주목하였던 것은, 객관적으로는 올해 들어 앞에서 말한 그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고 주관적으로는 산재 발생 이후의 권리 보장 문제를 다루는 근로복지공단 업무가 내게는 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당시 산재보험법 개정안 마련 작업을 막 끝낸 시점이라 산재보험과 관련된 논쟁을 국감으로 이어갈 필요성도 있었고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부 민원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올해 국감의 주요 의제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감 전체의 방향과도 일치하였다. 이런 연유로 의원실은 올해 국감의 주 공략 대상으로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라고 함)을 설정하였다. 그 이후 남은 과제는 공단을 공략할 전략과 전술을 효과적으로 수립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산재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안전공단에 대한 대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2. 준비과정
국정감사라는 것이 일정 기간 동안 전체 기관을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각 기관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다. 공단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전체 국감 일정 중 공단에 배정된 날짜는 고작 하루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여러 기관(장애인고용촉진공단, 산업안전공단 등)과 함께 배정되기 때문에 하루 전체가 다 배정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 하루 국감 일정 중 한 의원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이다. 그것도 각 기관장의 답변을 포함한 시간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이번 국감 기간 중 한 기관에 배정된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의원실은 한 기관을 대상으로 2-3개의 의제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질의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 의원실도 다른 기관에 대해서는 불가불 그런 식으로 국감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공단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올해 국감을 통해서는 공단의 전체적인 면면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장벽을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해 낸 방안이 바로 공단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단의 행정실태를 자료집에 담아 배포하면 국감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될 경우 공단에 대한 이른바 ‘사회적 감사’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단에 대한 감사계획을 위와 같이 세우고 보니, 그 준비과정이 문제였다. 공단의 방대한 행정을 짧은 시간 안에 나 혼자 분석하여 자료집까지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에 산재법 개정안 마련 작업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이 동지들 역시 공단 행정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여서 나의 요청에 순순히 응해 주었다(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산재문제에 깊은 관심과 식견을 두루 갖춘 동지들의 동참으로 공단에 대한 국감 준비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애당초 공단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 분석을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에, 산재법과 공단의 업무편람 및 교육자료 등을 함께 읽어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그런 자료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공단 행정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토론 과정을 통해 그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는 자료 목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번 국감 때 요청한 자료요청서만도 20페이지, 100여 항목에 이르렀다.
3. 국감에서 제기한 의제들
위와 같은 자료를 통해 공단에 대한 이번 국감에서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첫째, 질환종류별 요양승인 실태와 관련, 암․간질환․정신질환 등 사회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척추추간판탈출증․척추추간판팽윤 등 노동자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환의 승인실태를 살펴보았다. 노동자들이 업무와 관련하여 자살에 이르는 실태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3년간 암에 대한 요양신청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비율이 17.7%에 불과한 사실이 드러났다. 암 종류별로는, △ 간암의 경우 총 257건의 신청 중 48건(18.6%)이, △ 백혈병의 경우 총 49건의 신청 중 10건(20%)이, △ 폐암의 경우 총 154건의 신청 중 48건(31%)이, △ 기타 암의 경우 총 135건의 신청 중 단 3건(2.2%)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것으로 밝혀졌고, 위암과 전립선암의 경우 각 52건과 4건의 신청 중 단 한 건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외에도 근골격계 질환의 불승인 비율이, △2001년도에는 8.1%(144건/1,778건), △ 2002년도에는 6.7%(131건/1,958건), △2003년도에는 6.3%(304건/4,836건), △2004년도에는 9.85(449건/4,561건), △2005년도에는 18.1%(359건/1,984건)로 2004년도 이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고, 척추추간판탈출증의 불승인 비율도 2003년도에는 25.6%(3,541건/12,370건), 2004년도에는 31.5%(3,814건/12,121건)이던 것이 2005년도에는 41.2%(3,843건/6.534건)에 이르러 2005년도에 들어 급격히 증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근골격계 질환의 불승인 비율이 이처럼 높아지는 시점은 공교롭게도 공단이 2004년 11월과 12월에 ‘근골격계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 지침’과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조사위원회 운영규정’을 제정하면서부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산재보험 적용과 요양 업무 실태
둘째, 산재보험 적용업무 실태와 관련하여,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실태, △가족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실태, △노조전임자의 산재보험 적용실태, △요양신청을 반려한 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실태가 매우 미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공단이 사업주의 가족 노동자와 노조전임자에 대해 행하는 보험적용 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단이 요양신청을 반려하는 주된 사유가 신청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 및 산재법상 적용제외 사업장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셋째, 요양업무 실태와 관련하여, △지난 3년간 업무상 질병과 업무상 사고의 승인 실태와 소송실태, △요양신청서 작성 항목 중 사업주 날인란의 문제, △추가상병신청과 재요양신청 사건의 승인실태, △자문의사협의회 운영실태, △특진운영실태, △산재지정 의료기관의 실태, △심사를 담당하는 공단심사실과 재심사를 담당하는 노동부 산재보험심사위원회의 운영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업무상질병의 승인률은 약 80%(다만 주요 도시의 경우에는 50%대에 불과하였다)이고 업무상사고의 승인률은 약 96%라고 하는 사실, △공단이 소송에서 패소하는 비율이 약 20%라고 하는 사실, △공단은 소속 근로자 여부 및 재해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업주 날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런 점은 사업주 날인이 없어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 반해 사업주 날인이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재해신청 자체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사실, △재요양 승인률이 최초 요양 승인률보다 낮은 75%대라는 사실, △지사별 자문의사 중 산업의학전문의의 비율이 7%에 불과한 사실(63명/892명), △자문의사협의회의 개최 여부 및 운영실태가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지사장 재량이나 관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 △특진 실시 역시 지사장 재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 △우리나라 5대병원(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이 모두 산재지정의료기관이 아닌 사실, △심사업무가 심사장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 심사장이 대부분 보상업무를 수행했거나 수행할 예정인 자들이라서 공정한 심사를 행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실, △재심사 과정에서 한 사건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5분 정도에 불과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었다.
보상업무의 문제점
넷째, 보상업무와 관련하여, △평균임금 증감 실태, △이종요양비 지급실태, △요양급여 범위의 조정실태, △한방급여 지급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당사자가 평균임금 자동증감 신청을 하지 않아 손해를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일부나마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산재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과잉진료로 인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건강보험 수가에는 포함되지 않더라도 공단 이사장의 신청과 노동부장관의 승인으로 산재보험 수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제도가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한방요양환자의 수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외에도 하이텍알씨디코리아(주) 노조원들에 대한 요양불승인 결정의 타당성 여부도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이와 관련 단병호 의원은 위 회사의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왕따’라인을 구성하고 ‘왕따’ 라인을 비추는 별도의 CCTV를 설치하여 관리자들로 하여금 상시적인 감시․통제를 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것이 “적응장애를 유발시킬 정도의 자극요인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부당하고 쟁의 후 노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빚어진 일을 쟁위행위와 연속된 노조활동이라고 하여 마치 쟁의행위 중에 발생한 일인 것처럼 판단한 것은 자의적인 법 집행이라고 추궁하였다. 단병호 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도 서울대병원 노조원 면담시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경위에 대해 추궁하면서 재발 방지를 촉구하였다.
한편, 산업안전공단에 대한 감사에서는 △석면피해확산 문제, △지하노동자 및 화학장치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 △산업안전공단의 사업계획 수립 방식의 문제, △이주노동자의 산재율 증가 및 유해물질 노출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석면 사업장에서 다수 발생하는 종피종 환자에 대한 건강수첩 발급 및 병력 발생원인 역추적 등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지하노동자 및 화학장치산업에 대한 근로조건 기준 설정 및 작업환경측정과 역학조사 등을 2006년 사업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하였고, 이주 노동자 사업장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안전예방에 힘쓰겠다고 약속하였다. 김영주 의원은 건설현장의 산재 은폐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였고 노동부는 그에 대한 실태 조사를 약속하였다.
4. 성과와 한계
이번 국감의 성과로 들 수 있는 것은, 공단의 요양 업무 행정에 대해 포괄적이고 전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여 공단의 행정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저지할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라는 기구를 꾸려 산재보상 체계 개선을 계획하고 있고 공단은 행정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산재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해 나가고 있는데, 이번 국회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함과 아울러 산재보상보험 업무에 대해 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정부 주도의 일방적 개편 방안을 저지할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국감을 통해 공단이 구체적으로 약속한 제도 개선 사항은, △요양신청서의 사업주 날인 란을 폐지하는 방안과 사업주 날인란을 폐지하지는 않는 대신 사업주가 거부할 경우에는 사업주 날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를 기재하는 것을 검토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 부의안에 담당 직원의 의견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주치의의 소견을 반드시 기재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에 산업의학 전문의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 △치료종결 여부를 결정할 때 자문의사협의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철저히 시행하겠다, △주치의사와 자문의사의 소견이 다른 경우 등 자문의사협의회를 거쳐야 하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최대한 협의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겠다, △자문의사협의회 개최시 5인 이상이 참석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 하겠다, △재요양 승인시 평균임금 산정 시점을 정함에 있어 피재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 등이다.
한편, 국감을 끝내놓고 뒤돌아보니 이번 국감에서 공단과 노동계가 대립했던 사안들에 대해 근본적 개선 방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대처하지 못했던 것, 현장의 요구를 전부 다 반영하지는 못했던 것, 전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는 공단 행정의 문제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던 것, 이번 국감을 통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핵심과제를 선정하지 못했던 것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점들이 바로 이번 국감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5. 향후 과제 및 계획
일단 국감에서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공단 및 노동부가 개선을 약속한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 국감에 미처 반영하지 못한 내용들이 향후 상임위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어차피 국정감사라고 하는 제한된 틀 속에 현장의 요구들을 전부 수용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상임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상시국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제도 개선 없이 현재 상황에서도 ‘상시국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의원실의 판단이다. 이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임위 활용에 대한 의지와 기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시국감의 방침 속에서 현장 및 제 산업안전보건 단체들과 체계적 연대의 틀을 다지는 것도 향후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서적 교감의 차원을 넘어서서 민중운동 진영의 대 의회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연대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의원실의 판단이다. 의회의 기능이 부풀려져서도 안 되고 의회를 통한 운동 방식만 고집해서도 안 되지만, 의회가 제도 개선을 이루는 데 있어 유용한 공간인 것은 틀림없는 이상 그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원실은 향후 현장 및 단체들과 연대하여 국감뿐만 아니라 일상적 상임위를 통해서도 산재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6. 마무리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감사가 있던 날, 비가 많이 왔다. 공단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옷이 다 젖었고 얼굴에도 빗물이 흘러내렸다.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처지에 눈물도 함께 흘리는 노동자들이 분명 많이 있었을 것이다. 감사를 하러 가는 입장이라, 양복을 입고 우산을 쓴 채 대오를 뚫고 감사장 안으로 들어갈 때의 그 복잡한 심사라니. 동지들의 심정을 국감장에서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 런지, 동지들의 분노를 제대로 반영하는 의제를 선정한 것인지 하는 우려부터 농성과 투쟁 단계에서부터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웽웽거렸다. 어쨌든 국감은 끝이 났고 단식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들과 GS 건설 노동자들과 전국 각지의 근골격계질환 노동자들의 고통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지점이 바로 내년 국감과 상임위를 준비하는 출발점임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겨 넣는다.
각주)
1)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 본 근로복지공단 행정의 문제점’ 자료집을 참조하기 바랍니다(www.labordan.net으로 들어가 자료실에 들어가면 위 자료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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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Asbestos Shock
석면공장 주변 주민 피해의 파문
2005년 6월 29일.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쿠보타(Kubota) 회사가 퇴직자를 포함한 노동자에게 석면관련 질환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 쿠보타의 발표에 의하면 ①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석면질환에 의하여 사망한 노동자가 75명(중피종에 의한 사망자 42명)이고, ② 현재 요양 중인 노동자가 18명(중피종에 의한 요양자 4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 주민 3명도 중피종에 결려 회사가 위로금 지급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7월 5일, 석면함유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니치아스 회사가 석면관련 사망자 현황을 발표했다. 니치아스는 1971년까지 청석면을 사용하였고, 1992년까지 갈석면을 사용했던 업체다. 발표에 의하면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석면제품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중피종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20명에 이르고,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41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중피종으로 요양 중인 노동자는 3명, 폐암은 2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고, 석명과의 관련이 의심되는 진폐증 사망자가 39명에 이르며, 요양자도 14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장 외부의 공사관계자로 중피종에 이환되어 사망한 노동자는 15명, 폐암은 10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죽음을 부르는 석면의 공포
니치아스의 피해가 보도된 이틀 후 다시 쿠보타의 석면 피해가 보도되었다. 쿠보타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아내가 중피종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다. 석면 원료 공급을 담당한 남편의 작업복을 빨래할 때 석면에 노출되었다고 추측과 함께 쿠보타 측에서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석면에 관해 피해 실태 파악과 상담 접수 등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업에 의한 석면관련 피해사례가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건축자재 제조, 조선, 열차차량 제조, 석면제품 운수, 석면을 운반하는 항만노동자의 중피종 사망사례가 보도되었다. 경제통상성은 7월 15일 석면제품 제조업체로부터 정보 제공을 받아 공식적인 결과를 발표했는데, 일본 정부가 석면 피해자에 대해 처음으로 밝힌 피해 상황은 사망자 391명, 요양 환자 92명이었다.
또한, 후생노동성이 석면피해가 발생한 기업명을 밝히기 시작하였는데, 후생노동성 노재보상부는 기업 이름을 공개하는 이유로 ① 석면관련 작업 종사 노동자에게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② 주변 주민이 이를 인지하고 확인하기 위해, ③ 관계부처, 지방공공단체 등 석면피해 대책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공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 사망자는 479개 사업장의 739명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석면 노출에 의한 폐암, 중피종 환자의 산재인정 건수를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48.6%, 건설업 43.4%이었으며, 두 업종이 92.0%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조업 가운데 선박제조업(수리업 제외)과 요업․토석제품제조업 순으로 산재 인정된 사업장이 많았고 제조업 전체로 보면, 48.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석면관련 질환에 대한 정보 공개와 보상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석면취급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 공장 주변의 주민까지 석면에 의하여 질병이 발생하였고, 그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석면 규제
일본의 석면 수입은 1970년대에 급격히 늘어 1974년 최대 수입량 35만2천 톤을 기록하였다. 일본 정부가 석면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것은 1971년이었다. 특정화학물질 등 장해예방규칙이 제정되어 석면도 제조, 취급 작업에 있어서 규제 대상이 되었다. 그 내용은 발산방지 설비 설치, 작업 주임자 선임, 작업환경측정 실시 등이었다. 1975년에는 규제가 강화되어 석면 질이 금지되고 발산방지가 강화되었다.
ILO, WHO, 그리고 EU가 갈석면, 청석면을 사용 금지하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갈석면, 청석면을 1995년 사용 금지하게 되었고 백석면은 2004년에 제조와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발전소 등 고온 환경에 있는 배관 연결부분 등에 대한 사용은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20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석면 수입량은 8,000톤에 이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8년부터 전면 금지를 방침으로 내세웠지만, 잇따른 건강피해로 이를 앞당기려는 움직임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석면 사용 규제운동
일본에서 석면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쟁점은 이미 1987년에 터진 적이 있다. 학교나 보육시설, 공공장소에 사용된 석면에 대한 조사와 제거가 사회문제화 된 것이다. 행정적으로 여름 방학 동안에 집중 공사를 실시하면서 언론보도도 줄어들게 되었고, 마치 석면 문제가 끝난 것처럼 인식되었다. 정부도 석면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지만 사용 금지 등에 관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가 노동조합, 시민단체, 소비자단체로 구성되었고, 석면제품 제조 판매를 금지하는 석면규제법 제정을 목표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석면규제법안은 당시 사회당 의원에 의한 입법 발의까지 진행되었는데도 자민당 반대로 폐기되었다.
1993년은 석면제품 제조업체의 노동조합이 석면규제법에 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어 규제법 성립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노총인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는 “석면은 관리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규제법은 관련 산업에서 일하는 자의 생활기반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며 석면 금지가 아니라 “관리사용”을 주장해 규제법 제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석면 규제를 진행시키려고 하는 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고, 사회적 쟁점화를 시도해왔다. 석면 피해를 알려주고 석면에 의한 산재인정을 쌓으면서 사회 이슈화에 노력해온 것이다. 그 결과가 올해 터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책임 그리고 노동조합의 책임
지금 일본에서 석면에 관한 전반적인 경향 내지 방향은 석면의 사용 금지를 향하고 있다.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면서 겨우 이러한 방향을 잡게 되었는데 석면 피해가 긴 잠복기를 겪고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앞으로의 피해 확대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석면의 사용 조사, 제거, 보상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석면의 유해성을 알면서 방치한 정부 책임은 매우 크다. 그리고 동료의 죽음에 직면하면서 석면의 규제에 반대해온 노동조합 책임도 적지 않다. 과거의 공해문제를 보면 가해 기업의 노동조합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노조가 기업별노조로 자기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석면 금지 정책을 내세우지 못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석면 금지의 움직임은 석면과 관계없는 생활을 해오다가 중피종에 걸린 쿠보타 공장 주변의 시민이 공장에서 어떤 식으로 석면이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회사와 교섭을 진행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환자나 가족의 사회적 고발이 석면 금지를 진행시킨 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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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관계맺기에 대한 회화적 비유
Relationship, 나무판위에 아크릴채색, 60x210cm, 2002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필연적으로 맺어야 하는 세상과의 관계라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 어려운 관계맺기에 대한 주제를 이명진은 현상적인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가 복잡한 세상사와 관계를 맺는 현상을 마치 작은 단위의 조각들이 이어지는 모습으로 파악해 작업의 기본적인 구조로서 제시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 하나하나는, 이명진이 여러 방식으로 대상 세계와 만나는 ‘개별적 공간’일 수 있다. 작가는 매일 작은 조각을 만들어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작가가 만났고 쉬었던 개별적 공간이 또 다른 그 개별적 공간들과 계속 패치워크되어 만들어지는 현상은 마치 이질적 세계가 맞물려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한 회화적 비유이다.
1976년 서울 출신인 이명진은 홍익대 회화과 졸업 후, 3회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독특한 부조 형식으로 제시하는 참신한 여성 작가이다.
글쓴이 김지영은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 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동신대 겸임교수,경기대 강사 등을 역임 후, 현재는 독립큐레이터로서 <반 고흐와 서양명작전>을 기획하고 있다.주요 전시기획으로는 <밀레전>,<사람을 닮은 책전>,<살바도르 달리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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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
선입견을 버리고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들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대부분 감은 잡는 듯한 눈치다. 뻔하지 않은가? 아니 뻔하지 않겠는가? 노동계나 경영계의 반응이 대개 이렇다. 이렇다보니 이 제도가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논의조차 잘 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문제를 발굴하고 제기하고 해결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작업장의 최소단위(대개 10~20명 정도의 공정단위)마다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도록 하고, 회사는 선출된 대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시간과 비용 등)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무제한은 아니고, 추후 많은 논의와 협의 그리고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유럽의 여러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일주일에 4시간정도의 활동시간을 법으로 보장한다. 비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기타의 지원사항에 대해서도 별도의 법적 규정은 없다. 대개 세부적인 사항은 사업장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정한다. 노사의 협의기구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며, 노측대표는 노동안전보건대표자들 중에서 구성한다.
것 봐, 뻔하지
일단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자 측에서 보면 꽤 괜찮은 제도요, 사용자 측에서 보면 꽤 괜찮지 않은 제도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따져볼 것도 없이 대개 찬반의견이 정해진다. 이쯤에서 더 이상 이 제도의 취지나 내용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죽어라고 밀어붙이거나 죽어라고 반대하는 수밖에.
어? 이게 아닌데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기존의 노사관계의 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1) 안전보건에 대해서는 협조적 (참여적) 노사관계를 전제로 하며, (2) 산업안전보건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의 단체협상과 분리하자는 것이며, (3) 노동자에게 권한도 부여하지만 동시에 이행책임도 주자는 것이다. 어라? 어째 얘기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지 않는가?
20명마다 한명?, 2만명이면 대표자만 1,000명?
경영계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안전보건대표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대의원이 많은데 각 공정마다 안전보건대표자를 두라고 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엄청난 부담을 가져올 것이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명 정도마다 안전보건대표자를 선출한다면 현장노동자가 20,000명의 경우 안전보건대표자만 1,000명이 된다.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한두 명을 채용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좀 황당해 보이지 않은가? 언뜻 보기에 그런 것 같다. 황당하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거다. 혹시 QC분임조라고 들어보거나 경험해 본 바가 있는가?
QC분임조
최근 들어 업종을 불문하고 품질관리는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품질이 중요해지면서 한두 사람의 전문가가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1년에 한두 번 품질검사를 한다고 해서 품질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품질관리의 핵심은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조직, 그것이 QC분임조이다. 사업장에서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QC분임조를 몇 개나 두는가? 또한 품질조장은 몇 명이나 두는가? 일반적으로 QC품질분임조는 10명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장노동자가 20,000명이라면 분임조대표는 2,000명이 된다. QC분임조와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이다.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가는 기본 원리도 똑 같다.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는 변형된 노조전임자 제도?
경영계에서 우려하는 두 번째 문제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와 맞물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7년 3월 13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하면서 노조전임자는 임금을 받아서는 아니 되며(제24조제2항)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규정(제81조)한 바 있다. 동법부칙에서 이 조항들은 2001년 12월 31일까지 유예한 바 있으며 2001년 2월 9일 노사정위원회에서 다시 2006년 12월 31일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하여 현재 2006년 12월 31일까지 이 조항들은 유예되어 있다. 따라서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도입하여 유급의 활동시간을 보장하면 노조전임자가 안전보건대표자로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유급의 노조전임자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우려가 되는 사업장이 몇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우려나 부작용은 별론으로 하고 다른 여러 각도에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좀 더 살펴보자.
노동안전보건문제의 노사관계
노사관계는 협력적인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교섭이나 협상은 거시적인 것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산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기업별 노조정책을 고수해 온 우리나라는 거시적인 정치적 문제부터 현장의 안전보건문제까지 많은 노사문제는 모두 기업별 노동조합의 몫이 되어 왔다. 산별노조체제가 발달되어 왔다면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의 상당부분은 산별노조에 맡김으로써 기업단위의 노동조합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기업별 노조는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개별 기업내 복지 등 비교적 협조적인 관계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그야말로 노사협의회 차원에서 노사협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대기업 위주의 전투적 노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산별노조를 억압한 노동정책에 있다고 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문제는 이와 반대되는 차원 즉,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적절한 노사협의기구가 없기 때문에 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떠 넘겨진다. 노동조합은 현장의 관리문제부터 정치적인 투쟁까지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통제와 억압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임금협상이나 기본적인 복지문제에 대한 단체협상을 제대로 체결하는 것도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노동안전보건은 노사관계의 4차 차원에서 가장 낮은 차원, 즉 작업현장에서 항상 제기되고 해결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노동안전보건문제는 노사자치(自治)에 기반을 노사의 자율적 협상보다는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에 의해 사업주가 강행적으로 지켜야 하는 공적 기준에 가깝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자율적 의지에 따라 조합을 결성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단결권),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단체교섭권), 파업과 같은 실력을 행사하는(단체행동권) 권리는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사가 협의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거나 적어도 노사협의를 강제하는 것이 노사는 물론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경우 노사협의를 법적으로 강제화한다.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바로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따라서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참여와 증진에 관한 법’에 의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노동조합의 유무와 관계없이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적 노동통제정책 기조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에서 노사문제나 노동정책은 곧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조정의 문제로 귀결되어 왔기 때문에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같은 강행적 노사협의 및 노사공동결정과 같은 노동정책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대립적 노동정책의 종속변수로만 취급되어 왔다. 특히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현장에서 다룰 기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노동안전보건문제에 대한 노사협상이 단체협상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노사협의가 끝나는 시점과 시작되는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의 일차적인 목표는 단체협약의 체결에 있다. 단협이 체결되면 그 이행은 주로 사업주의 몫이다. 노동조합은 단협의 이행여부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문제는 노사공동결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이 곧 실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작업장의 유해․위험관리는 시설개선이나 적절한 보호장비의 보급 등 사업주의 기본적인 안전조치에 대한 의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부분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공동결정은 노사공동책임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노동안전보건의 분리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이 등장하였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제도가 도입되었는데 공통적인 법제도를 크게 보면 노동법과 보험제도이다. 노동법은 노동보호법률과 계약보호법률로 구분하는데 노동보호법률은 절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계약의 내용에 상관없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기준을 공법적으로 설정하는 것에 해당되고 계약보호법률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계약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단결권과 단체교섭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률을 말한다. 노동안전보건과 최저임금제와 같이 주로 개별적 노사관계에 대한 강행적 기준은 노동보호법률에 해당되며, 흔히 말하는 노동법(노조법 등)은 계약보호법률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노동보호법률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안전보건은 노사가 적당히 계약을 통해 조절이나 침해를 용인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일정한 안전이나 환경기준을 초과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공법적(公法的) 기준이다. 즉, 노사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업주는 사전에 법으로 정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노동자는 이 법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노동법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업주는 국가에 의한 형벌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노동안전보건이 일반적인 노동행정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와 논리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노동안전보건문제는 현장에서 항상 진행되는 노사문제의 최일선이다. 따라서 노사의 참여와 개입 없이는 효과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는 노사참여, 특히 노사참여의 기제(제도)가 된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인 셈이다.
선진국에서의 노동안전보건대표제도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가는 유럽연합(EU)이 1989년 안전보건에 관한 유럽연합지침(EU Directive 89/391)을 채택하면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가 도입되었다. 유럽연합에서는 이 지침을 통해 사업주의 의무를 (1)유해․위험요인을 파악(Risk Identification), (2)평가(Risk Evaluation), (3)개선(Control), 그리고 그 사항에 대해 (4)노동자에게 고지(Risk Notification)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사업장에서 이러한 사업주의 의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동자에게 다음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였다. 법적인 강제사항은 (1)노동자가 안전보건에 대해 의문사항을 언제나 협의․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할 것(Workers' Consultation), (2)노동자가 스스로 대처가 가능하도록 교육․훈련을 제공할 것(Workers' Training), (3)노동자가 참여를 보장할 것(Workers' Participation), (4)단위공정마다 노동자가 직접 선출하는 안전보건대표자를 두도록 할 것(Workers' Safety Representative) 등이다.
유럽연합에서 4R(RI, RE, RC, RN)과 4W(WC, WT, WP, WR)의 체계를 위험성평가제도라고 한다. 위험성평가의 의무는 사업주에게 부과되지만 실제 위험성 평가는 각 공정마다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대표자를 중심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참가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기 사업장에 어떤 유해․위험요인이 있는지 무엇이 가장 위험하고 어떤 것이 덜 위험한지 각각의 위험에 대해 회사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고 노동자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과 훈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노사협의와 공동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지난 15년간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에서의 경험이다.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도입한 국가에서는 대부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많다. 이제 우리도 노동안전보건대표자 제도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늦은 감이 든다. 늦어도 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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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재사망과 기업에 대한 징벌적 배상
1. 징벌적 손해배상의 개념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특히 강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법원은 가해자를 징벌하여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다액의 배상금 지불을 명할 수 있는데, 이를 징벌적 손해배상(懲罰的 損害賠償, Punitive Damages)이라고 한다.
즉, 일반적인 손해배상의 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를 요건으로 하여 가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배상을 전보함과 동시에 가해자 및 사회 일반에게 억제적 효과를 갖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특히 악의에 가까운 고의 혹은 결과 발생을 의도적으로 용인하는 정도의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통상의 손해배상 이상의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법치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일반적인 효과가 있으며, 나아가 현대 사회가 국가 공권력, 대기업, 기타 힘 있는 조직과 일반 시민 혹은 소비자, 근로자 등 다수의 분산된 개인의 대결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구조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사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 외국의 입법 사례
이러한 제도가 처음 실시된 곳은 영국인데, 1763년에 법원은 집행관이 불법구금을 한 사건에서 배심원이 현실의 재산적 손해를 넘는 금전손해배상을 평결할 수 있다고 판결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처음 판례로 나타났으나, 찬반론을 거쳐 1964년 이후에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1784년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급된 최초의 판결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에 관한 법리가 인정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네브라스카 및 워싱턴 4개주를 제외한 전역에서 판례에 의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고 있으나(루이지애나와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각 주마다 달라서 현재까지도 일부 주는 원고의 소송비용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미 및 요건도 각기 다른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과다한 배상액 부과의 제한이 문제로 되면서 찬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3. 산재사망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필요성
산재 사망의 경우 현재 유족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보상을 받고, 사용자는 관련 법규의 위반으로 형사처벌(주로 벌금) 되거나 보험료가 인상되는 정도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망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고 더 나아가 이미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그대로 방치하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제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일정액의 벌금이 부과되고 보험료가 일부 인상되는 것으로 끝난다면(물론 위 금액은 산재사망의 보상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이는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가 거꾸로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편, 2002년에 장애인이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의 오작동으로 사망한 발산역 사건의 경우 사망피해자는 1급 장애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었으므로 일실수입에 대한 배상이 전무하였고 따라서 가해자 측의 과실이 크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손해배상으로는 장례비와 일정정도의 위자료만 배상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법원이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상당한 정도의 손해배상을 결정하였고(대법원 2005. 1. 28. 선고 2004다58338 판결),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행위의 피해자였던 수지 김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결과를 낳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고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따른 것이므로 보다 제도적인 문제해결로서 현재의 손해배상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용자 또는 감독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기한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 관련 법규 위반에 의한 불법행위를 근절시켜 법치주의의 수준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그 대안 중의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고 할 수 있다.
4.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시 쟁점
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반대론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손해배상의 범위를 실제 발생하였거나 발생이 확실시되는 경제적 손실로 한정하고 있는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와 상치되며(입법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쟁점입니다),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에서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을 근거로 한 반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1) 기업 활동 위축의 측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기업의 입장에서 항상 소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면 일정한 정도의 불법행위를 감행할 유혹이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현재 한국사회의 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준법의식을 제고하고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서 발달한 징벌적 손해배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기업 중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은 기업 활동 위축이라는 비판이 부분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말해는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법률체계상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
우리나라 법제는 민, 형사 책임이 분리되어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형사벌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기업 활동의 많은 부분이 자유화됨으로써 비형사범죄화되므로 손해배상으로 이를 규율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 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게 된다면 법률체계상의 문제점은 없을 것이다.
(3)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
최근 위자료 액수가 상향 추세에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아직도 지나치게 소액일 뿐 아니라 특히 다수에 대한 경미한 피해인 경우에는 위자료를 아무리 많이 인정해주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위자료의 인상은 해결방식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 도입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쟁점
(1) 도입범위
도입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쟁점 중의 하나는 손해배상 일반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분야에 한정하여 개별적으로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도입 대상을 특정 영역에 한정한다면 어떤 영역에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손해배상 일반의 제도로 도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현재 손해배상 제도는 고의 또는 과실에 근거하여 책임을 묻고 있는데 그 정도가 매우 다양하므로 강화된 요건이 아니면 법관에 따라 엄청난 편차가 발생할 수 있고 나아가 소송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낮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우리의 손해배상 제도가 대륙법계이므로 이질적인 제도임은 틀림없으며,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손해배상제도의 일반적 원칙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목적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 범위는 크게 나누어 첫째, 사회적인 강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의 목적, 둘째, 사회적 약자가 보다 쉽게 소송제도를 통하여 손해를 전보 받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목적 등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강자에 의한 계속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하여 제도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꾸준하게 논의하여 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는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기타 음주운전 관련 부분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노동법 분야에서는 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의 경우에 그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노동법 분야(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 거론되고 있다. 산재 사망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아마도 위에서 거론한 특정 영역 중 노동법 분야에 도입하는 것이 될 것이다.
(2) 손해배상액수
손해배상액수에 대해서는 미국의 예와 같이 일정한 한도를 정하는 것이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구체적으로는 손해배상 액수의 2배 내지 3배를 원칙으로 하고, 구체적인 개인의 손해 액수가 적은 경우는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2배와 3배 사이에서 법관이 소송자료를 보고 판단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인권관련 소송이나 소비자 소송의 경우에는 변호사 보수를 패소자 측에서 전액 부담하는 방식을 도입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변호사 보수란 원고 측에서 실제로 지급하는 구체적인 액수가 아니라 변호사의 노력에 대한 실비용 정산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며, 변호사 보수로 변호사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할 정도여야 할 것이다.
(3) 손해배상금 수령자
징벌적 손해배상의 수령자가 구체적인 개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는데, 이는 소송이라는 행위를 감행하는 위험은 있으나 그 위험이 손해배상의 수배에 이르는 금전적인 보상과 같은 수준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에 대해서는 제한된 금액만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사회단체나 혹은 지방자치단체, 법률관련 단체의 공공기금 등 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5. 산재사망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구체적인 방향
가.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경우
첫째,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그 산재 사망에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방법과 둘째, 근로기준법 제8장 재해보상 부분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특별법을 만드는 경우 특별법의 적용범위에 산재 사망이 포함되도록 하면 될 것이나, 모든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산재 사망 위험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알면서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에도 위에서 검토한 내용들을 새로운 규정으로 만들어 추가하여야 할 것이다.
나. 구체적인 방안
어느 경우에나 손해배상액수의 상한은 실손해액의 2 내지 3배로 하고, 실손해배상액수가 적을 경우 최고액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당사자(유족)는 일부분(실손해액의 1.5배 정도)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과 같은 공공기금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 다른 재해보상 규정들-특히 제85조(유족보상) 및 제86조(장의비)에 구애받지 않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도록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90조(다른 손해배상과의 관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징벌적 의미를 고려하면 배제하여야 할 것이나, 이중 부담을 초래할 수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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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타도! 근로복지공단
‘건강한노동세상’에서 개최한 산재학교에 수강생으로 참여할 때,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실제 수강생들이 현장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발표하도록 한 적이 있다. “여기 노무사도 있죠?” 수강생 중 노무사는 무려 3명이나 되었다. 일단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후 “개인적으로도 산재와 큰 인연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시다가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는 74년도에 있었죠. 30년이 지나 산재사건을 담당하면서 사건의 성패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밥 먹고 사무실 올라갈 때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가면서 밖에 보이는 근로복지공단 건물을 보고 ‘타도 근로복지공단’을 외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타도 근로복지공단” 소리에 몇몇이 웃었던 적이 생각난다.
병원 노동자의 고통... 그리고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
사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산재사건의 특징이다. 이기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실제 소송의 결과는 그렇지도 못하다. 또한, 남들이 다 진다는 사건도 실제 해보면 작은 실마리가 생기고, 그 실마리에서 새로운 결과를 획득할 수 있다.
작년 이맘 때. 지금은 법률원을 나가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는 이은옥 변호사가 나에게 와서 작은 부탁을 한 것이 오늘 소개하는 사건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 노무사님.. 이 사건 판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노무사님이 좀 맡아 주시면 안되요..”그 때야 법률원에 온지 몇 달 안 되어 사건에 대한 두렴이 별로 없었고, 뭐든 부딪치자는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전에 사건을 검토해보니 소장과 감정촉탁서만 제출되었고 그 이후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소장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이건 청구성심병원에서 노조 간부까지 했던 분이였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집단 요양승인(‘전환장애’라는 정신질환)의 당사자였다.
원고는 2003. 3. 7. “추간판탈출증과 양측슬관절 퇴행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03. 4. 14.자로 추간판탈출증은 염좌로만 승인하였고 후자의 상병에 대해서는 불승인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심사와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추후 2004. 1. 27. 원고는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04. 2. 27. 불승인하였다. 요추부위 상병은 탈출이 아닌 퇴행성의 추간판팽윤이며, 무릎부위 또한 퇴행성 질환이므로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공단의 처분 요지였다.
“판사가 원했던 것은 원고(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용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고등학교 때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때 물리치료사를 직접 대면한 것 이외에는 물리치료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운동전문 물리치료사는 말할 것도 없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행한 2001년도 송무세미나 자료집 중 실제 산재담당 판사업무를 하다가 개업한 변호사가 쓴 글을 보더라도 “업무기인성에 대해 당사자의 업무내역에 대한 충실한 입증이 법관의 심증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판사 또한 처음 접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소송의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판사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 통화 목소리도 조금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실제 사무실에 왔을 때 처음 봤을 때 느낌도 전화통화와 마찬가지였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저 판사가 원하는 것은 실제 운동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인데 뭐 좋은 자료가 없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하나는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 관련 외국전공서적이었고 이를 책 속에 있는 업무내역사진을 중심으로 복사․스캔해서 준비서면과 함께 서증자료와 증거CD로 제출하기로 했고, 다른 하나는 물리치료사의 근골격계질환 관련 논문자료였다. 논문자료는 의학전문논문사이트와 학술정보사이트 등을 뒤져서 몇 개를 건질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이제 산재사건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준비서면을 통해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을 재정리하고 이에 대한 증거자료로 외국전공서적을 복사 ․ 스캔한 자료를 첨부하여 근골계질환 발생의 위험성이 높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추간판팽윤과 추간판탈출증과의 구분 모호성 및 추간판팽윤일지라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판례 5개를 첨부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 공단은 CT판독지, 진료기록지, 근전도검사결과지, MRI판독소견 등 각종 원고에 대한 의학적인 자료와 원처분, 심사, 재심사를 통해 축적된 자문의사들의 소견을 근거로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도 원고의 상병은 추간판팽윤이며, 추간판팽윤이 업무상 질병으로 불승인된 판례 4개를 첨부하여 반박에 나섰다.
단초는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장하고 신청한 “추간판탈출증”과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이 명확한 상병임과 동시에 이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감정을 받아낼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뒤 짚을 수 있는 단초는 역시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이라고 판단하고, 기존 2004. 7. 우리가 신청한 서울대병원에 대한 감정을 감정회신이 늦어짐을 설명하고, 빠른 감정을 얻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으로 2005. 1.월경 재촉탁신청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고의 준비서면에 대한 반박서면을 작성하기 위해 원고와 관련된 의학자료를 모두 분석하고 기존 주치의 등의 소견이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고, 다른 사건에서 피고가 팽윤이라고 하였지만 감정결과에서 추간판탈출증이라고 판단한 감정회신서를 증거자료로 첨부한 준비서면을 2005. 3. 제출하였다. (사실 의무기록지나 각종 판독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데 이때 지역 활동을 통해 알고 있는 간호사, 방사선사 등에게 수차례 물어보고 네이버를 검색하면서 지루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세브란스병원의 감정회신서가 도달하였는데, “제5요추 제5천추 추간판의 변성 및 우측 후외방 탈출증”이라는 소견을 보였다. 이를 이익으로 인용하면서 「추간판 탈출증에 있어 수핵의 탈출은 추간판의 후방 및 후외측에서 흔하게 발생되며, 추간판탈출증은 그 탈출된 정도에 따라 돌출 추간판(protruded disc), 탈출 추간판(extruded disc), 격리된 추간판(sequestrated disc)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정형외과학’ (제5판, 대한정형외과학회)의 내용」을 추가하면서, 「원고의 상병이 일부 팽윤의 증상이 있지만 추판탈출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우측 우회방으로 탈출 소견을 보이는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서면을 작성하여 2005. 4.월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무릎부위 상병명에 대한 감정결과가 ‘경미한 퇴행성 관절염과 연고연화증‘인 점, 요추부위에 대한 진단 또한 ’추간판의 변성이 동반된 점, 워녹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상 아무런 이상증상이 동반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강한 반박서면을 제출하고 2005. 5. 3.자로 변론이 종결되었다.
고심과 관련 자료의 분석 끝에, 감정회신서 등을 근거로 추간판팽윤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것을 재강조하는 한편 추간판탈출증은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들병원 홈페이지 자료’와 기존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서 어렵게 찾아낸 판결문(서울행정법원 2002구합22493. 선고 2003. 5. 22. 판결)을 증거자료로 입증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원고의 업무내역 등 기존 제출한 서면내용을 정리하여 2005. 5. 20. 참고서면을 제출하였다.
노동자의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크고 작은 문제점들로 상당한 어려움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원고의 업무내역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점, 둘째 의무기록지와 판독지 등을 해독하여 우리 주장에 맞는 자료를 정리하는 점, 셋째 감정이 추간판팽윤으로 나올 때를 대비하여 추간판팽윤을 분석하여 업무기인성을 강조하는 예비적 논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점, 넷째 감정회신서상 불리한 슬관절 부위 회신을 의학적으로 반박하는 점, 다섯째 원고에 대한 기존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었던 점을 반론하여 입증하는 점 등이 있었다. 이에 반해 원고가 자신의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검색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점, 기존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연구하고 이와 팽윤과의 상이점에 대해 공부하고 판례를 분석하여 서면을 제출해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의미있는 (피고가 탈출을 팽윤이라고 판단하여 불승인 하였던 사건) 감정회신을 받아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분석에서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찾을 수 있었던 점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추간판탈출만이 인정되는 “일부 승”,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결과는 그래도 만족할 만했다. 나 자신에게는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경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이었고 당사자에게는 희망의 단초를 심어줄 수 있었다. “저 노무사님. 일부라도 이길 줄은 몰랐어요. 이 사건 처음 시작할 때 보건의료노조에서 말릴 정도로 안 된다고 했거든요.” 처음 전화통화 때와는 사뭇 다르게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직업이 어렵지만 할 만한가 보다!! 항소심에서 끝장을 봐야겠다.!! “타도 근로복지공단” 오늘도 나의 스트레스는 현재 진행형으로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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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산재보험을 둘러싼 전투2 (The Bettle Over W...
번역연재 : 산재보험제도를 둘러싼 전투 ②
자본의 산재보험제도 통제
제임스 엔렌버거 (James N. Ellenberger)
산재보험에 대한 사용자 통제의 강화
사기캠페인은 산재보험의 중요한 조항들에 대하여 사업주들과 보험업자들의 통제권을 부여하기 위한 고의적이고 계산된 캠페인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공격은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부터 시작되었다.
의사 선택에 대한 통제권의 획득
의사는 적절한 의료적 혜택과 치료를 위하여 본질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그들은 또한 의료적 혜택이나 보험급여의 제공에 있어서 “문지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산재보험의 급여 제공은 최초 의사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결정을 하는 의사들의 판단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재해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손상과 장애 정도에 대한 판단을 의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사들은 언제, 어떠한 조건 하에서 산재노동자들이 현장에 복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누가 의사를 선택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은 어떤 노동자가 산재보험급여의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역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주 법률은 의사를 선택하는 권리를 노동자나 사업주 중 어느 한 쪽에만 주고 있는데, 대략 절반 정도의 주들이 선택권을 재해노동자에게 주고 절반 정도는 사업주(또는 보험업자)에게 주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주 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만약 사업주와 보험업자가 의사를 선택하게 될 경우 산재노동자들을 관리의료(Managed Care)1) 체계에 직접적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실율에 대한 통제권 획득
장애로 인한 상실율은 항상 논쟁적인 이슈였다. 대다수의 주는 임금손실 또는 소득능력상실제도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포괄적인 “장애”에 기초한 산재보험제도를 갖추고 있다. 상실율은 연령, 직종, 교육, 그리고 기타 실제 삶의 상태에 관련된 많은 요소들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나 보험업자와 사업주는 물리적인 장애 부분만 보험급여를 인정하는 AMA의 ‘영구장애 평가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를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평가지침의 기준에 따른 장애율이 직접적인 재정적 보상과 장애 정도를 측정하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AMA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2)
산재보험의 급여대상 범위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산재보험법이 “지나치게 자유롭고” 혹은 그 구성이 너무 산재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청구권의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반복 작업에 의한 재해의 범위를 줄이거나 억제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기왕증 혹은 비직업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들 또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의 결과 등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3)
법적 절차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재해의 작업관련성을 밝히는 “입증책임”에 대하여 변화를 시도하였다. 보험급여의 청구권이 성립하려면, 노동자들은 “분명하고 명백한 증거” 혹은 심지어 “증거의 우세함”에 대해서 입증해야만 한다. 또한, 많은 주에서 법령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유롭게 해석”되거나 혹은 법원이 그러한 방식으로 법을 해석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했는데, 최근 들어와서 산재노동자의 권리가 유리하게 해석되지 않도록 현행 법령이 변화되고 있다. 4)
보험급여의 양과 기간에 대한 통제권 획득
사업주와 보험업자들은 직업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 보험급여가 낮게 유지되어야 하며 급여가 제공되는 기간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 하더라도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법적 판단을 통해 노동자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보험급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보험급여는 이전의 수입, 기술, 경력, 또는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무관하게 노동자가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구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조차도 그 개인이 사회보험급여의 자격이 있든 없든 간에 65세가 되면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료기록에 대한 통제권 획득
진료기록에 대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는 산재보험에서 존재하지 않는 권리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산재보험업자들은 청구가 이루어질 때 양해각서에 노동자들이 서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구는 노동자들이 가장 취약한 시기에 보험업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의료적, 비의료적 정보가 산재보험업자들에게 위임되고 있다.
법적 대리인의 대표성을 부정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권 획득
보험업자와 사업주들은 무과실원칙의 “소송”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면서 원고의 대리인들이 제도를 “부정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였다. 그 결과 구체적인 행위가 취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법률대리인의 수수료를 삭감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건을 맡으려는 대리인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개악”이 이루어지다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에서 도입되었던 산재보험제도의 개악은 산재보험을 훼손하려는 다른 주로 확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끔찍한 전투 중 하나가 1991년 콜로라도에서 일어났다.
덴버포스트는 일관성 없는 산재보험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사업주 책임이라는 구식 개념이 콜로라도의 법에 편입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텍사스 주와 오레곤 주에서 적용되었던 수많은 조항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콜로라도의 의원들은 사업주가 산재노동자를 재고용하지 않을 때도 산재보험 급여를 줄이거나 노동자가 단지 ”최대의 의료적 회복“에 도달하자마자 다른 혜택들을 중단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매우 심각한 재해를 입은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영구 장애에 대한 보험급여는 노동자가 65세에 이르렀을 때 자동적으로 중단되었다. 이것은 퇴직연금의 수준 또는 그러한 연금에 대한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사업주에 이해를 대변한 정치인들
새로운 법안은 최근 민주당의 의장이 된 주지사 로이 로머(Roy Romer)에 의해서 서명되었다. 당시 콜로로도 AFL-CIO의 의장이었던 자동차노동자 엘돈 쿠퍼(Eldon Cooper)는 그 법안을 “지난 50년간 콜로라도 의회에 의해서 통과된 최악의 법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그 법안에 대한 로머의 거부권 포기는 모든 산재노동자를 “등 뒤에서 찌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1991년, 메인 주의 공화당 출신 주지사 맥케넌(McKernan)과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 윌슨(Wilson)은 미래에 발의될 산재보험법의 개악을 강제하기 위해 주 예산을 “인질”로 삼았다. 맥케넌은 심지어 노동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10년까지 보험급여 지급을 제한하려는 그의 요구에 의회가 항복할 때까지 주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주기도 했다.
1992년의 선거 기간 동안에 대부분의 주가 산재보험의 개악을 늦추었던 반면, 메인 주는 그해 10월 특별회기 동안 그 사안을 다시 다루었다. 급여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절반을 줄임으로써 산재보험법의 개악이 더욱 강화되었다. 산재사망자의 배우자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전에는 평생 동안 지급되었던 유족급여가 10년 이하로 제한되었다. 모든 보험급여는 고정되었고 생계비 정산(cost-of-living adjustment)은 사라졌다.
개악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다
사업주와 보험업자의 연합은 1993년 산재보험법의 개악에 성공하였다. 네바다, 몬타나, 코네티컷, 아칸소,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네브라스카,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등 많은 주에서 산재보험제도가 훼손당했다. 아칸소 주만 하더라도 존 에프 벌튼 주니어(John F. Burton, Jr.)가 민주당 출신 주지사 짐 게이 터커(Jim Guy Tucker)에게 이러한 변화가 현재도 “악법인 산재보험법을 더욱 나쁘게 만들 것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을 정도로 심각한 개악이 이루어졌다. 민주당이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코네티컷 주도 산재보험의 심각한 후퇴가 발생하였다. 모든 대상에서 보험급여가 1/3로 삭감되었고, 생계비에 대한 보정이 폐지되었고, 머리, 얼굴, 목 부위가 아닌 경우 흉터에 대한 보상이 없어졌다.
이러한 심각한 개악은 미네소타, 서부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켄터키와 같은 주로 이어졌다. 보험업자와 사업주에 의해서 잘 짜여진 각본이 여러 주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관철되었다. 보험업자들이 소유한 평가기관인 ‘산재보험 국가위윈회’(the National Council on Compensation Insurance)조차도 당리당략적 “훼손”에 있어서 그들의 역할에 대한 공을 다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도개혁안의 입법화는 어렵지만 필요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는 사업주들, 보험업자들,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료전문가들 중에서 산재보험제도의 개혁 방안을 조언하는 전문위원회를 지명함으로써 그들의 이해에 복무하고자 하였다. 전문위원회로부터 제기된 괴상한 아이디어들 중에는 산재보험을 강제적인 것이 아닌 자유의사에 맡기도록 만드는 방안, 의료저축구좌(medical saving accounts, MSAs)를 산재보험에 도입하여 노동자들이 비용마련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 사업주에게 의료적 결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의료제공자의 선택에 대한 통제권뿐만 아니라 의료제공자의 결정에 대한 통제권까지!)을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되었다. 당연하게도 깅그리치의 수많은 부유한 후원자들은 이러한 제안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 중에는 전문위원회의 의장인 리차드 스크러쉬(HealthSouth의 사장 ― 많은 산재보험 관리계획에서 중요한 참가자이다)와 골든룰 보험사의 설립자이며 의료저축구좌(MSAs)의 주요 제안자인 팻 루니가 포함되어 있었다. (번역:윤석진/정책국)
<각주>
1) 미국 민간의료보험의 경향 및 특성을 정의한 개념으로서 계약을 통하여 공급자 및 의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가는 일련의 경향 및 특성을 의미함.
2) 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s,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Fourth Edition, p.1/5, 1993.
3) 기왕증의 범위를 삭제하기 위한 캠페인은 Second Injury Funds(SIF)의 폐지를 위한 보험자들의 노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기금들은 만약 노동자들이 이후의 업무관련 상해 또는 질병을 겪을 경우 그 위험에 대해 보상함으로써 고용주들이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을 고용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보험업자들은 '장애인 법률'(ADA)로 인하여 SIFs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물론 ADA는 경영계, 특히 미국 상공회의소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불가피하다 : SIFs의 폐지, 기왕증에 대한 제한, ADA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은 모두 장애인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고용에 대한 기회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플로리다 산재보험법, §44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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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호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안전보건
최근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재벌기업에게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책임 경영’ ‘윤리경영’이라는 용어들은 경영학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으며, NGO 들은 기업감시운동를 통한 사회적 대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경영자들 또한 사회적 책임을 중요한 경영 목표로서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이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노동자운동, 특히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에서 이 논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기업의 1차적 목표는 경제적인 이득, 다시 말해서 이윤추구이다. 반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정당성, 형평성, 정의로움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즉,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의 개념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 정의는 경영학자 Carroll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Car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경제적 책임은 기업의 1차적 목표인 이윤추구에 부합하는 것으로, 사회의 기본적 경제단위인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법적 책임은 기업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윤리적 책임이란 법의 규정을 넘어서서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대되는 윤리적인 행동이다. 넷째, 자선적 책임이란 기업의 개별적 판단이나 선택에 맡겨져 있는 책임으로 사회적 기부행위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책임들이 요구되는 것은 기업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건전한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1)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은 이미 서구사회에서 195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 논의의 흐름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기부행위를 늘려야 한다는 소박한 주장에서부터 시작되어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경영을 평가하는 지표의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기업의 거대화와 자본의 독점력이 강화되었고 기업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해졌다. 때문에 기업이 이윤추구 이외에 긍정적인 ‘사회적 성과’를 내야하며 기업 활동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과 사회적 책임의 이론적 논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이론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 논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된다. 바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이다.2)
인과관계는 다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이 두 가지 유형 모두에서 강조되고 있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경영에 대한 주주의 통제를 강조하며 자유로운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을 활용하여 자본축적을 수행한다.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 활동은 무엇보다도 주식가치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유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조한 기업 활동이 주식가치를 하락시킴으로써 주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사의 파산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차례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던 엔론사는 정경유착, 회계부정,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 등이 밝혀지면서 파산하였고,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말았다. 주주 자본주의는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보다는 기업의 경영자, 은행과 같은 채권자, 노동조합 등의 종합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금융기관의 활용, 경영자의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노동자의 경영참여 등을 통해 자본축적을 수행한다. 이해관계자 (stakeholder)란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업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자본주의는 그 유형적 특성에 관계없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경영자, 채권자, 노동자와 노동조합 및 주주까지도 이해관계자로 보고 있다. 나아가 소비자, 지역주민, NGO, 정부 또한 이해관계자의 범주에 포괄된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기업들이 이러한 넓은 범주의 이해관계자와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사회적 성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부과하려는 노력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운동으로서의 의미와 한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기업이 경제적 성과 이외에 바람직한 사회적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각국의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그리고 기업 스스로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초국적 거대기업의 전횡과 광폭한 금융세계화에 의한 자본주의적 모순이 첨예화되고 인권과 환경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활동은 사회운동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운동은 주로 NGO들의 기업 감시 활동과 사회적 책임보고서를 제도화하는 활동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들을 개발하고, 이러한 평가지표를 활용하여 중립적인 기관에 의해 기업을 평가하도록 하며, 기업들이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보고제도의 도입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NGO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3)
사회적 책임 투자(SRI)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회투자포럼(Social Investment Forum)이나 지속가능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관철시키고 있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의 활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실련, 기업책임시민연대, 여성노동자협의회, 여성민우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등의 단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적책임법안」을 작성하여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기업의 맹목적인 이윤극대화 행동을 제어하고 공익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투명한 경영과 회계를 강제하고, 기업의 내부 정보를 공개하여 사회구성원의 참여를 촉진하고, 인권과 환경 같은 분야에 재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사회적 성과를 내는 기업 쪽으로 금융시장의 투자를 유도하며 사회적 책임보고서가 거래와 계약 과정에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등,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여 기업의 자발성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유효하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첫째,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운동이 일반적 법칙인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각성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는 기업은 2005년 현재 7개에 불과하다.4)
둘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근본적으로 ‘건전한 시장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은 결코 기업의 일차적 목표가 이윤추구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다만 건전한 방식으로 이것을 수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결과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인권, 노동권, 환경, 윤리 등을 고려하면서 기업 활동을 지속하라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주장에 담겨진 뜻이다. 사회적 책임운동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속가능성’은 기업들에게 ‘가치증식과 자본축적의 지속가능성’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안전보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
비록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단기적인 전략으로서 충분한 유효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요구하였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실제로 단체협상 과정에서 사측에 사회적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지표들은 회계와 경영의 투명성, 소비자에 대한 책임, 환경에 대한 인식,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 사회적 기부나 지역에 대한 공헌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측정하는 각종 지표들에는 반드시 노동권의 문제 ― 고용, 근로시간, 임금, 복리후생, 산업안전보건, 노사관계 등이 핵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사회보고서 제도인 Bilan Social은 ① 고용, ② 임금, ③ 산업안전보건, ④ 기타근로조건, ⑤ 교육훈련, ⑥ 노사관계, ⑦ 기타조건 등으로 지표를 구분하여 기업을 평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지표와 보고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한 운동의 방식일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와 보고서 제도 또한 체계화되어 있다. OECD에서는 환경과 산업안전보건 분야가 통합된 ‘EHS(Environmental Health and Safety)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국제 인증기관들의 합의에 의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 규격으로 ‘OHSAS 18001 인증제’가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많은 법률이 존재하며, 산업안전공단에는 기업주가 안전보건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하여 개선하도록 하는 ‘KOSHA 18001 인증제’를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5) 더욱 현실적인 예로, 중대재해의 발생 빈도를 공영 건설 공사의 입찰시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는 PQ제도 또한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형태로 볼 수 있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은 가능한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성과를 측정하는 제도들은 일정 정도 구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이러한 제도들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중대재해를 되풀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뻔뻔스럽게 OHSAS 18001 인증을 받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기업들의 태도가 1차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운동에 의한 기업 활동의 감시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현장에서 노동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이러한 활동은 미약했다. 산재왕국이라는 이 땅의 조건 속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산재를 인정받는 투쟁에 주로 복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업안전공단과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기업의 안전조치를 평가하기 위한 각종 지표들을 개발하여 현장에 적용하는 시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이다. 기업이 내부 정보를 차단하면, 안전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때문에 그 어느 영역보다도 노동안전보건에서 기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의 활동이 중요하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중심적 주체, 그것은 역시 현장의 노동자이다.
<각주>
1)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이러한 위상을 ‘건전한 기업시민'(good corporate citizen) 또는 ‘기업시민의식’(Corporate Citizenship)이라고 한다.
2) 사실상 이 두 가지 현대 자본주의의 유형은 도식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서 시대적으로 어느 유형이 우세한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일반적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본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유럽형이 우세하였고, 오일쇼크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신자유주의를 대두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3) OECD, UNEP, UN 등의 국제기구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국제협약을 출범시키거나 기업의 사회보고제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977년 프랑스는 최초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사회보고서인 Bilan Social을 법제화했다. 덴마크와 네덜라드는 1996년과 1999년에 각각 환경보고서를 법제화하였으며, 영국은 5백만파운드 이상의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보고서인 CORE를 제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부가 주관하는 「환경보고서 가이드라인 2002」가 대표적이다.
4) 삼성SDI,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토지공사, POSCO, 신한은행, 브리티시 아메리카 TBA코리아,
5) 한국산업안전공단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KOSHA 18001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273개 사업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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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기업은 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에 집착하는가
3월 29일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재해자수가 늘어나고, 요양기간이 길어지면서 산재보험 재정이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산재보험 제도 개선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 중에는 ‘보험급여 수준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급여체계를 선진화’하는 방안이 들어가 있으며 구체적 내용으로 ‘중복, 과도 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휴업급여, 연금급여, 장애보상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산재를 당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급여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여 산재보험 재정의 악화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급여 체계 개선 이외에도 보험 가입과 수납율을 높이고, 양질의 의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산재보험관리운영의 전문성,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노동부가 단기적인 재정 안정을 위하여 급여의 수준을 낮추는 데만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1. 산재보험 재정악화 어느 정도인가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산재보험제도는 지난 1964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그 동안 적용대상, 보험범위와 사업 유형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동안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있었으나 최근의 가장 큰 변화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2000년 7월 이후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어 적용 사업장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보험급여는 매년 17.6% 씩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재정수지도 2002년 2,804억원 흑자에서 2003년과 2004년에는 240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중요한 점은 산업재해자수는 2003년 94,924명에서 2004년 88,874명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보험급여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특히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겨 산재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에 급여 수준의 합리적 조절을 주된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2. 재정악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산재보험 재정악화의 주된 원인을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 10월 경총 부설 노동경제연구원이 146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한 ‘산재보험제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 실태조사’결과 현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으로 70.5%에 달하는 기업이 ‘도덕적 해이 감시부족’을 들었다고 발표하였다. 노동경제연구원은 주로 노동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예로 들며 산재보험은 다른 민간 또는 사회보험과 달리 보험료부담자(기업)와 급여 수혜자(노동자), 그리고 산재심사 및 급여 지급자(공단)가 완전히 상이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연구 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신문, 텔레비전 등의 언론에서는 간간히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보도하고 있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휴업급여를 계속 받기 위해 일부러 실직 상태에 있다든지, 재취업을 해서 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휴업급여를 계속 타는 등의 사례가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산재보험체계에는 여러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업주와 피보험자인 노동자 외에도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과 상위 정부기관인 노동부, 의료기관, 노무사, 변호사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산재보험체계를 이루는 구성원이 이렇게 다양한 만큼 산재보험의 재정 또한 이런 다양한 구성원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재정악화 또는 도덕적 해이를 논할 때 언제나 일차적인 관심의 초점은 노동자에게 향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3. 도덕적 해이 - 사업주의 경우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는 산재보험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실제로 작업 관련성이 없는 손상 또는 거짓으로 꾸민 사고를 산재라고 주장하거나, 산재로 얻은 손상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주장하거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도 이를 속이고 휴업급여를 타가는 행위 등이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 상에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의 전체규모나 그로 인한 산재보험 손실 액수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밝힌 자료는 거의 없다. 이에 반하여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례는 그 규모와 액수 면에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보다 훨씬 산재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재은폐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기업들은 산재사고를 은폐하여 산재보험재정 악화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들이 매년 납부하는 산재보험료는 일정 기간동안 그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에 산재사고의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하게 되면 산재보험료를 그만큼 덜 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부에서 파악한 산재은폐 적발현황은 2002년 1,033건, 2003년 674건이다. 매년 700-1,000건의 산재은폐 사례를 적발하는 것으로 알 수 있으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신고에 의존하거나 건강보험에서 부당이득금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노동부 자체적으로 적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으로 실제 산재은폐 사례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에서 몇 몇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상대적으로 심각도가 덜한 가벼운 산재사고의 경우는 대부분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처리되어 신고를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중한 질환만을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의 경우는 21.9%만 산재 처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축소 신고, 보험료 체납
또한 기업들은 노동자 급여를 실제보다 작게 신고해 산재보험료를 줄이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산재보험료의 특성상 기업들이 내는 산재보험료는 해당 기업의 노동자의 급여총액에 비례하여 부과가 된다. 다시 말하면 같은 규모의 사업장이라도 노동자의 총급여액이 많은 쪽이 산재보험료를 많이 내는 체계이다. 2003년 국회 국정감사 때 근로복지공단이 낸 자료에 따르면 3만여 곳의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사업장의 55%가 산재보험료를 줄이기 위해 임금을 2조 6천억원 정도 축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서는 1,070억원의 산재보험료를 추징하였다. 실제 산재보험 적용대상사업장은 2004년 현재 100만여 곳에 달하므로 조사대상이 아닌 사업장까지 감안하면 실제 축소신고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또한 기업들은 경영 악화 등의 이유로 산재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도 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2003년 4월까지 체납된 산재, 고용 보험료는 7,450억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2003년 한 해 동안 산재보험 지급액이 2조 4818억원이었으므로 체납 산재보험료도 산재보험재정악화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의료기관
물론 사업주 이외에도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의료기관도 산재보험재정악화에 기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산재사고 처리를 빨리해 주는 대가로 산재노동자에게 급행료를 받은 사례, 산재노동자, 사업주와 짜고 산재가 아닌 사고를 산재로 처리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사례가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의료기관의 경우도 산재보험급여액을 과잉청구하거나 고가의 검사, 시술 등의 과잉진료행위를 해서 산재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해가는 등의 사례가 근로복지공단의 감사에서 적발된 경우가 많다. 또한 노동부도 산업재해와 관련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부처임에도 제대로 된 산재통계를 작성하지 않은 것도 산재보험 재정악화의 한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4. 기업들은 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가
이상과 같은 예를 볼 때 산재보험제도에서 도덕적 해이는 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업주, 의료기관, 정부기관들의 도덕적 해이의 정도가 그 규모나 비용 면에서 더 구체적인 자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 정부, 언론은 유독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주된 문제로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산재보험 제정악화의 주된 원인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여론화하여 기업의 산재보험 지출비용을 낮추려는 의도 때문으로 생각된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면 기업들은 산재보험급여의 수준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산재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은 급여 수준의 삭감 조치와 같은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묘한 방식으로 기업에 유리한 입장을 조성해 준다. 다시 말하면 만약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보험상 정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더라도 뭔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형성되면 산재노동자가 재취업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결과 산재노동자는 정당한 상황에서도 산재신청을 회피하고 건강보험으로 처리하거나 개인휴가를 내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기업이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 참된 목적은 산재의 비용을 사업주에서 산재 노동자 개인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 정부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이 시점에서 다시 노동부가 이번에 발표한 산재보험제도 개선 정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면 바람직한 방향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부는 급여 체계 개선 이외에도 “보험 가입과 수납률을 높이고, 양질의 의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산재보험관리운영의 전문성,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정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너무나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 마땅히 비판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점과 지속적으로 정책을 수행해 나갈 의지가 있는가하는 점이다. 정부는 급여 체계 개선과 같은 단기적인 방안에 집중하기 보다는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산재보험체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노동부의 방안 그대로 보험 가입과 수납률을 높이고 기업들의 의도적인 산재보험료 회피를 철저히 단속하여 먼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급여 체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치료기간이 점점 길어져 장기요양노동자가 늘어나는 주된 요인은 중대한 산재사고가 과거보다 더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중대 산재사고를 당한 근로자는 부상의 정도가 심하여 재활이 어렵기 때문에 장기요양환자들이 점점 누적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침소봉대하여 강조한다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치료 중심의 의료 구조에 밀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활 서비스를 노동부가 나서서 개선하여 산재노동자의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2차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가 바람직한 정책 대안을 만들기를 촉구한다.
[보론] ‘도덕적 해이’ 에 대해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란 말은 우리말로 ‘도덕적 해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원래 경제학에서 보험이론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이규성 재경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사회에 퍼져있는 도덕적 해이를 뿌리뽑겠다.”고 말하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 말을 자주 쓰면서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경제학적으로 모랄 해저드는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인(principal)이 대리인(agent)의 행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없을 때 대리인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모랄 해저드를 설명할 때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의 예를 든다.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이후에 화재가 날 경우 보험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화재경보기나 소화기를 비치하는 등의 화재예방 노력을 소홀히 하여 결과적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화재를 더 많이 나게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런 상황처럼 보험 가입자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보험회사가 잘 모르는(정보 부족) 상태에서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당연히 해야 할 일 (화재예방 등) 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더 쉽게 말하면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맘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에는 꼭 보험상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꼭 보험을 든 것과 똑같은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 이론에서 쓰이던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재벌 총수나 고위 공직자의 예를 들 수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원래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용어였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가치함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비난의 대상이 정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 분야에서의 “도덕적 해이”는 전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나 경총 등에서 쓰이는 경향이 있으며, 주로 산재노동자 개개인이나 의료기관 들을 비난할 때 쓰인다는 것을 신문기사나 보도자료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공단은 의료기관과 산재노동자는 이해 관계가 비슷한 한통속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가 산재보험수가를 받아 병원 유지를 하기 위한 의료기관의 암묵적 방관이나 적극적 동의에 의해서 점점 확대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원래 쓰이기 시작한 것이 고위 공직자나 부유층을 비난하는 데 쓰인 것이 그 시초이다. 그런데 유독 산재보험 분야에서는 반대방향(근로복지공단이나 경총)에 대해 쓰이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현상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이 분야에서는 대응 세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나 사용자와 어느 정도 이해 관계가 맞는 공단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전선 중에서도 약한 부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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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감시의 기원, 감시의 철학
분열하는 노동자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어!
절규하며, 거리로 나선 광인이 있다. 광인에게는 초월적인 감시의 눈이 살아있는 음파와 진동이 되어서 귀를 맴돌고, 존재하지도 않는 무엇이 보이며, 느껴지기조차 한다. 어차피 광인과 정상인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통제사회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는 어느 시대보다 분열자이기 때문이다.
분열자로서 규정받는 노동자들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왜 우리는 분열자이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왜 감시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의문만큼이나 우리의 의문도 생기게 될 것이다. 작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자감시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신질환에 처하게 된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하여 신경정신과 의사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 단지 신경을 둔하게 하는 약물을 처방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해 줄 뿐이다. 정신치료를 받는 노동자들은 이제 의사의 약물치료 앞에 철저히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킨 사회적 관계에 변화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사회적 관계의 전자감시는 더 정교해지고 세밀해지고 있다.
우리에게 다가온 감시사회는 어떤 철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을까? 나를 지켜보고 있는 지배질서의 논리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들은 감시카메라 앞에서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지배자 = 초월자
감시의 역사적 기원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데 있지 않다.
원시사회에서 권력자들 대부분은 신의 자손을 자처했는데, 그것은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인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이다. 초월자인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런데 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지배자들의 초월적 능력도 사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즉, 주인-노예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획득된 능력이지 정말 신의 아들이어서 획득한 힘은 아닌 것이다. 그것쯤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것인데도, 이데올로기의 질서는 초월성에 힘을 부여해온 것이다.
근대 사회의 혁신은 이 초월성의 질서를 변화시켰다는데 있다. 근대의 계몽이성은 종교비판을 통해, 새로운 이성적인 질서의 지배를 선언하였다. 이제 신 대신에 이성이 지배하고,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질서가 합리적인 자기정당성을 가지려고 해도, 그 합리성은 새로운 초월자를 위한 것이지 초월자의 권력을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신의 초월적 눈은 이성의 초월적인 눈으로 뒤바뀐다. 이러한 근대의 눈-이성에 대한 비판은 푸코의 이론에서 발견된다.
푸코는 판옵티콘이라는 벤담의 감옥 모델을 관찰하면서, 이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사실은 새로운 초월자의 감시의 질서를 의미함을 폭로한다.
판옵티콘은 감옥이나 공장, 정신병원, 학교의 감시질서의 모델로서, 중앙의 망루에 있는 감시자는 감시받는 이에게는 어른거리기만 할 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감시자는 감시받는 이가 잘 보이기 때문에 감시받는 이는 늘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푸코의 이러한 근대사회에 대한 감시모델의 추적은 한마디로 눈-이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성이라는 질서도 알고 보면 새로운 초월자이며, 합리성 운운하면서도 관음증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근대사회의 모순 - 자본과 권력의 감시
물론 근대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므로, 선거에 의해서 초월적 권력자가 선출된다. 우리 자신이 만든 권력자이며, 초월자이기 때문에 이성적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새로운 이성의 초월성은 사실 우리 자신의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낸 권력’ 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우리가 만든 권력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감시의 눈길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이 전도된 현실은 우리가 만든 관계에 의해 우리가 감시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사회는 자기모순적인 사회이자, 전도된 사회이다.
노동자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자본이라는 초월자에 의해 감시당하고, 대중은 자신이 선출한 국가권력에 의해서 감시당한다. 민주주의라는 내재적인 관계는 권력이라는 초월적 관계로 역전된다. 근대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내재적인 민주주의를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민주주의만으로 한정하여 초월적 권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공장의 생산을 통제하며, 욕망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이 없다는 측면에서 노동자들은 분열자이다.
그럼 근대의 초월적 이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성이라는 개념은 눈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매우 강조한다. 이성적 인간은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다. 인식대상과 인식주체, 주관과 객관 등의 철학적인 논제들도 알고 보면, 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중요한 판단의 능력으로 바라본 것이다. 근대의 이성이 볼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다는 것은 바로 감시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한 것이다.
<1984년> 과 <트루먼쇼>
조지오웰의 <1984년>은 이러한 감시사회 전반을 예측한 작품이다.
1984년, 세계는 세 개의 거대 제국으로 나뉘게 된다. 항상 전쟁 중이며, 전 인민의 일거수 일두족은 항상 지배자에 의해 모니터링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한정된 개념 한도 내에서 사용된다. 포화의 전쟁터, 빅브라더는 모든 매체를 통하여 대중을 통제한다. 대중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기관들 내에서 기관원으로 활동할 뿐이다. 그 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곳에는 도청장치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감시사회의 예측은 전체주의에 대한 고발을 위한 것이다. 전체주의는 스탈린 시대, 아버지를 고발함으로써 영웅이 되었던 소년에 대한 찬양으로 실제 현실이 되었다. 전체주의는 모든 사람을 국가기관의 기관원으로 만들려고 하는 체제이다. 그러한 감시사회의 이면에는 당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이성중심주의가 있다. 당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감시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짐 케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는 한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가 사실은 구경꺼리로 전락한 사회를 고발한다. 이 영화를 통해 감시자의 심리를 알 수 있다. 누구나 감시자가 될 수 있으며, 초월자로서 느긋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검색하고 체크할 수 있는 권력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트루먼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사실 그는 전 세계에 그의 삶을 생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주연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의 삶은 몰래카메라에 의해 모니터링 되고 있다. 그는 주변을 감도는 부자연스러운 일들을 눈치 채고, 그가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현실로 탈주한다. 마지막에는 초월자인 양 모니터를 감독하던 연출자가 인위적인 공간에서 살 것을 종용하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한다.
이 영화에서처럼, 감시의 대상에게는 괴로운 일이지만, 감시자는 자신이 마치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초월적인 능력의 소유자로 착각하는 것이 감시체제의 문제점이다. 감시 속에 인간으로서의 권리 같은 것은 없다. 단지 권력의 시선만 작용하는 것이다. 감시자들에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권력이 주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통합되어 관리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정보가 통합될수록 각 개인에 대한 정보는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어, 그의 전반적인 삶을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합전자카드 사업, 학생의 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있는 네이스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한나라당에서 추진하려 했던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 팔찌도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강남구에서 설치했던 CCTV도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감시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권력에 있다. 레닌주의가 노동해방을 외치면서도, 전 인민이 상호 감시하는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로 쉽게 변모한 것도 이 서구근대의 이성중심주의가 배경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당은 가장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때문이며, 대중위에 올라선 초월적 권력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을 감시하고 통제할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대중 스스로가 상호 감시하는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을 요구하였다.
우리 곁의 수많은 눈들
어찌 보면, 우리는 수많은 눈들 틈에서 살고 있다. CCTV, 몰래카메라, 카파라치, 전자스토킹, 전자주민카드, 네이스, GPS, 유비쿼터스 등 수많은 전자직조물의 눈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게 전자감시의 눈들이 성장하게 된 이유는 대중의 삶의 정보를 관음증적으로 들여다봐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초월적인 이성의 논리가 있다.
푸코는 이러한 미시적인 삶의 모든 부분을 포획하며, 감시하는 권력을 ‘생체권력’이라고 정의한다. 푸코의 생체권력 논리는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변모를 겨냥하고 있다.
68혁명과 통제사회
훈육사회는 간단히 말해서, 권위주의적인 지배방식이다. 훈육의 채찍과 매로 학생, 정신병자, 노동자, 수감원을 다루는 방식이다. 훈육사회의 모델의 향수 또한 존재한다. 권위적이었던 선생님(혹은 권력자)의 매가 따뜻했으며, 훨씬 인간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은 어떠한가? 선생님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매를 들지 않고 수행평가에 가차 없이 반영한다. 선생님은 감시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마찬가지로, 감옥과 병영과 병원 등의 권력의 시스템도 그러한 통제와 감시의 평가모델로 대중을 옭아멘다.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변화는 사실 권위주의에 맞선 대중의 반란이었던 1968년 혁명 이후에 전면화되기 시작하였다. 68혁명은 권위적 지배체제에 맞선 청년학생, 노동자들의 혁명이었다. 그 시기 이후 권위로서의 지배방식은 심각하게 제고되었고, 통제의 모델이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통제의 모델은 전자정보기술의 발전에 의해 고도화되고 완성되었다. 현재의 사회는 어느 시기보다 전면적인 포획과 감시의 질서가 작동하는 ‘실질적인 포섭’의 상황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사회적 장치의 내부로 편입되어 있고, 모든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저항 또한 사회적 장치의 재구조화로 결정되고 만다. 이러한 포획장치의 성장은 욕망에 대한 통제를 겨냥하고 있다.
68년 혁명이 입증하였듯이, 사회적 반란을 이끄는 힘은 사실상 대중의 역동적인 활력과 욕망에 있다. 대중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의 기저에는 이러한 욕망이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나를 감시하는 겁니까?” 항변한다 할지라도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원죄를 갖고 있는 이상, 대중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제사회는 욕망의 능동적인 힘을 늘 감시하며, 자신의 시스템의 변조를 신속히 이루어내기 위하여 늘 상 감시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삶의 욕망은 가둘 수 없다
이제 철학적인 배경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끝났다.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은 어느 시대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욕망을 통제받으면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가? 사회적 관계의 내재성이 우리의 삶의 지평이라고 할 때, 우리는 역동적인 욕망을 해방시키고, 새롭게 생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역동적인 흐름 속에 있으며, 감시와 포획의 질서에 의해서 화석화되거나, 그들의 증거물로서 남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비관적이라고 말한다. 감시는 더욱 고도화되고, 세련되어지고 있으며, 첨단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감시의 눈이 들여다본다고 해서, 우리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이 상실되지는 않을 것이다. 투명한 방에서 떨며 우리의 벌거벗은 실존에 대하여 느껴야 하는 상황으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활력과 욕망은 감시의 눈이라는 초월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느껴지고 생성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가 권력의 새로운 논리인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자기정당화의 이성적인 논리와 그 이면에 비이성적인 관음증적 감시 장치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모두 다 포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절대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생성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공동체적 소통과 자율적 행위와 삶에 대한 자기결정력이다.
우리의 존재는 어찌 보면, 이 우주의 작은 돌멩이 하나와 잎사귀, 꽃, 바다, 공기와 같은 존재다. 우리의 존재는 누가 바라본다 해서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속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 속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무한한 접속과정에서 천개의 모습으로 변모될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다.
감시하는 사람이 으슥한 골목에서 ‘난 너에 대하여 알고 있다’ 고 협박할 지라도, 그들이 우리의 삶의 영원성을 해치거나 왜곡시킬 수 없다. 우리의 눈은 차가운 감시의 눈이 아니며, 따뜻한 관심의 눈이다. 우리의 귀는 환청에 쫓기듯 시달리는 귀가 아니며, 삶의 리듬과 공명의 연주로 가득한 귀다. 우리의 육체는 수동적으로 상처받았던 육체가 아니라, 수천가지의 춤과 변용으로 가득한 욕망의 육체이다.
우리는 언젠가 감시당하며, 핍박당하며, 상처받던 노동자들이 드디어 욕망의 공장을 스스로 작동시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욕망의 공장에서 생성된 수많은 창의적인 예술작품이 그들을 지켜보던 감시의 눈을 순식간에 놀라움과 경의의 눈으로 뒤바꾸고, 뚜벅뚜벅 지상에 잠재력을 드러낼 순간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은 이미 초월적인 권력의 기만에 대하여 깨닫고 있으며, 스스로의 삶의 활력을 통하여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삶을 더 풍부하고, 다양한 욕망으로 가득 찬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여 들며,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수천 개의 우주의 화음과 리듬에 함께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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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6펜스의 벌금에서 '양심수당'까지
1. 노동자감시 - 변해온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노동자 감시” 또는 “작업장 감시”라는 말이 주는 계급분리의 의미는 얼마나 대단한가?
이러한 용어는 감시의 객체(노동자)는 물론 감시의 주체(사용자 또는 자본가)마저도 비인격적 존재로 전환시켜버린다. 감시의 객체인 노동자는 관리되어야 할 생산라인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반면 감시의 주체인 사용자는 노동자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로 격상한다.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자본가의 모니터링 범위 안에서 항상 존재하고 그리하여 자본가는 노동자의 일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한다. 반대로 노동자는 자본가가 지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노동자를 들여다보는지 알 수조차 없다. 여기서 정보는 계급 간 위계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자본으로 변신한다. 자본가는 ‘정보자본’을 확보하게 되고 이 ‘정보자본’을 이용하여 또 다른 이윤확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대면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자본가에게 제공한 ‘정보자본’에 종속되어 한 치도 자신의 계급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의 발달과 더불어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감시는 일상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하여 발달되고 확장된 감시의 기법은 그대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그것으로 전환한다. 또는 자본의 발달된 감시의 기법이 이제는 국가의 감시시스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제공되기조차 한다. 감시의 기법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으며, 감시의 범위도 더욱 넓어진다. 과거의 감시는 폭력적 방법을 통해 노동자로 하여금 상시 감시의 존재를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의 감시는 오래된 피비린내를 감추는 대신 노동자로 하여금 무의식 속에서 자발적으로 감시를 수용하도록 세련되게 변했다.
과거의 감시가 대면적 상황을 통해 감시의 주체를 감시의 객체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의 감시는 감시의 주체와 객체가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생산성 향상과 이윤극대화의 방법 속에서 이용되는 노동자 감시행위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안전과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강요된다.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노동자 감시의 방법은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그러나 그 방법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노동자 감시의 목적과 결과는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감시에 저항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 역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래 지금까지 전혀 그 강도의 변화가 요청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 감시형태의 변화과정
1) 최초의 노동자 감시 - 폭력과 규율
엥겔스가 묘사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출퇴근 하는 것이 아니라 빵 한 덩어리를 위해 감옥과 같은 수용 시설 안으로 자신의 인격을 감금한다. 매우 정교하게 규정되어 있는 노동자에 대한 벌칙들이 존재한다. 분단위로 작업장의 입출을 확인하고 공장가동과 무관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벌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작업시간 중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다른 공장규칙을 보면 3분 늦게 온 노동자는 15분에 해당하는 임금을 벌금으로 물어야 하고 20분 늦게 온 노동자는 하루 일당의 1/4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아침식사 시간까지 공장에 오지 않은 노동자는 월요일의 경우 1실링, 다른 날에는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처럼 기계적인 벌칙의 적용을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9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러한 전제적 규율 하에서 생활해야 한다.”
생산현장의 노동통제는 철두철미한 감시구조로 인해 가능해진다. 그러나 초기 노동자 감시는 말 그대로 폭력을 수반한 것이었다. 족쇄를 채운 아이들의 모습은 흔한 것이었으며, 군대 혹은 감옥에서의 규율이 노동 현장을 지배한다. 이 시기의 노동자 감시는 ‘작업장 감독’이라는 용어가 적절해 보인다. 감독을 하는 자(주로 중간 관리자)는 작업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들을 살펴본다. 노동자가 몇 분이나 늦게 출근을 했는지, 작업 중에 자리를 비웠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그리고 기록된 결과에 따라 벌금을 부여하거나 쫓아낸다. 때론 가차 없는 폭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맑스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병영적 규율”은 노동자들의 생존 조건이 되었으며, 이러한 규율은 아예 “감독 노동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을 감시하는 자가 누군지, 자신이 어떻게 감시당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작업장을 감시 또는 감독하는 자의 눈은 오직 두 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자본가들이 이미 알고 있다. 한 작업장에 두 개 이상의 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본가들은 중간관리자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다. 평상시에 이들은 노동자들의 행동을 감시하게 되지만 때로 감시의 결과를 이용해 집단적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노동자들은 감시 자체를 공포로 여기게 되며 그 감시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 감시행위에 대한 저항의 필요성을 피부로 절감하기도 한다. 최초의 노동자 감시는 이렇게 규율과 폭력으로 점철되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전선을 형성하게 되는 하나의 기제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 컨베이어벨트의 도입 - 일괄적 노동자 감시의 발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일괄생산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감시에 노출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본가들은 더 이상 중간관리자에게 노동자 감시의 모든 것을 맡겨놓지 않는다. 더불어 이 시기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행위는 생산 공정의 관리와 동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따로 폭력을 수반할 필요 없이 공장 문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5번열 3번째 작업자, 나사를 더 조일 것!” 톱니바퀴 속에서 헤매는 불쌍한 찰리 채플린은 감시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괄생산공정 속의 노동자들 바로 그들의 모습이다.
컨베이어벨트는 매우 유용하게 감시도구의 역할을 한다. 정해진 양의 생산품이 컨베이어벨트의 종착지를 통과하지 못하는 순간 그 작업라인의 누군가 혹은 전부가 생산을 위한 작업에 몰두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 이유가 컨베이어벨트의 기계적 결함이 원인이던 한 순간 작업자가 자리를 비운 것이 원인이던 결과는 마찬가지다. 기계적 결함을 해소하는 것 역시 노동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관리자 또는 자본가는 어떤 이유에서건 노동자들에게 귀책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이 시기 자본은 매우 유용한 방식으로 그들의 감시행위를 은폐할 수 있게 된다. 즉,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형태의 노동자 감시가 가능해지면서 폭력적인 감시행위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물리적 폭력에 대한 체감의 공포를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는 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작업현장에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자동화가 공장에 도입된 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된다.
3) 전자적 기술의 발달 - 동시에 감시기술의 발달
기술의 발달은 생산성의 혁명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마치 땅에서 솟아나듯” 수공업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상품을 생산해냈으며 이윤의 획기적 증대를 가져왔다. 동시에 무자비한 자원소모를 요구하는 이 ‘혁명’은 감시를 당하는 쪽에 노동자를 배치하고 감시를 하는 쪽에 자본가를 배치하는 계급 간 위치구분을 공고히 했다. 이러한 위치의 구분은 소위 첨단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더욱 강화된다.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감시행위는 이제 단순히 작업 라인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은 공장 안에 전화가 설치되는 즉시 전화를 도청하기 시작했다. 통신라인을 타고 흐르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자본의 귀에 즉시 전달된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자본의 관리대상종목에 포함되었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어떤 정보를 축적하고 이용하는지를 확인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통신망 자체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자본은 언제든지 웹사이트 접속현황을 확인하고 이메일 사서함을 열어볼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메신저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작업장 안팎으로 설치된 CCTV는 노동자들의 현재 행동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 감시를 위한 기술의 도입은 전혀 다른 목적의 기술도입인 것으로 포장되었다. 이전까지의 감시는 노동자들 개개인의 행동현황을 모니터링할 목적임이 너무나 명백히 드러났다. 노동자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본 역시 그러한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과 이를 통한 자본과의 적대적 관계설정이 감시행위에 대한 노골적 저항의 형태로 발현하는 것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감시행위를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자본은 노동자 감시의 본래 목적은 달성하되 자신이 감시자의 위치에 있지 않음을 보여줄 명분과 포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감시기술은 감시의 목적이 아닌 편리와 안전과 효율, 보안의 목적으로 위장되어 현장에 도입된다. 전화와 컴퓨터 등을 이용한 통신의 감시는 영업의 기밀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다. 작업장의 CCTV는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작업자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은 결과적으로 생산성의 향상 및 이윤의 증대를 위한 경영기법으로 둔갑한다. 안전과 효율, 보안이라는 목적은 그 자체로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공통이익을 위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통신망에 대한 일정한 감시와 CCTV 설치 등은 노동자들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기술들이 분명 노동자 감시에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정한 수용을 감내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감시기술을 매개로 하는 적대적 긴장감은 희석된다.
4) 최첨단 경영기법의 도입 - 최첨단 감시의 현실화
오늘날 첨단경영기법이 작업장에 도입된다는 것은 첨단 수준의 감시기술이 도입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고도의 정밀한 기술을 이용하여 진행되는 노동자 감시행위는 아예 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감시구조 내에 편입하도록 만들기조차 한다. 소위 ‘전자정보적 감시 · 통제’는 파놉티콘의 이데올로기를 현실화하며 “지배자 없는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푸코가 “훈육(discipline)”이라고 명명했던 “직접적인 지배와 명령이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활동할 수 있는 자기-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첨단기술이 노동자들의 인식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첨단기술에 의해 감시되는 존재인 노동자들이 오히려 그 기술로 인해 자신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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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기법으로 도색된 첨단 기술은 온갖 감시의 기법들을 하나의 매트릭스 안에서 가능하게 만든다. 예컨대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의 경우, 물류 · 생산 · 자원 · 인사 · 계약 등 모든 경영요소들은 하나의 전산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기업경영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활동은 일체 수치로 환산될 수 있으며, 수치로 확인되는 노동자들의 행동결과는 임금이나 인사에 반영될 수 있다. 이때, 전화에 대한 감청자료, 통신망 감시결과, CCTV에 찍힌 노동자들의 모습, IC 카드 또는 액티브 배지에 의해 기록된 출퇴근 정보 및 이동경로 정보, RFID나 위치추적장치의 기록, 키보드 속도 등은 단일한 전산화과정을 거쳐 ERP 프로그램으로 처리된다. 여기엔 스마트카드 기능을 가진 사원카드의 거래내역, 금융업무 등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노동자 한 개인의 역사가 조선왕조실록보다도 훨씬 자세하게 기록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기법은 종종 생산성 향상과 추가이윤획득이라는 소기의 목적물을 달성하게 된다. 신경영기법의 도입목적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안전사고의 방지나 절도사건의 방지 또는 해결이라는 성과물마저 만들어낼 때가 있다. 이 부분은 실제 ‘소 뒷걸음질치다가 개구리 밟은 격’에 불과하나 오히려 원래 목적보다도 더 유용하게 신경영기법의 선전에 동원된다. 그리하여 신경영기법은 사실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프로파간다가 가능해지고 이 상징조작에 의해 노동자들은 무기력하게 또는 자발적으로 신경영기법을 수용한다.
3. 필연적인 위계질서의 형성 - 사장실에는 CCTV가 없다
기술발전의 형태에 따라 분절적으로 감시의 유형을 분류하였지만 사실 감시의 유형은 앞서의 분류처럼 획일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시의 방법은 앞 시대의 기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에 더하여 새로운 감시기법을 보완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간관리자가 직접 작업현장을 관리 감독하고 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하는 현상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이라는 공분의 대상은 사라졌지만 최초의 노동자 감시형태가 가지고 있었던 대면관계의 위압감은 상존하는 것이다. 병영과 유사한 규율상태 역시 바뀐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보다 세련된 관료화의 과정을 겪었을 뿐이다.
여기에 컨베이어벨트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 일괄감시의 기법이 더해진다. 중간관리자는 더 이상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현황을 점검하는 것이 감시효율을 증대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컨베이어벨트의 최종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해당 라인의 노동자들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전자적 기술발달의 결과 도입되는 각종 첨단 시스템은 중간관리자의 위치를 작업장이 아닌 중앙 통제실로 옮기도록 해주었다. 감시와 통제는 중앙통제실 한 편에서 모니터를 오가는 각종 수치로 가능해진다. 노동자 개인, 또는 생산 라인에 대한 개별적 감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기가 정밀해진만큼 감시 역시 정밀해진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 간의 긴장이 높아지면 감시의 강도 역시 더욱 강력해진다. 발달된 기술은 자본이라는 후견인을 등에 업고 노동자가 움직이는 전 영역에서 자신의 기술을 펼쳐 보인다. 출퇴근카드는 펀치카드에서 스마트카드 또는 RF 칩을 이용한 액티브 배지로 바뀌고, 노조사무실 앞과 관리대상 노동자들이 있는 라인에는 CCTV가 밀집된다. 이동경로는 수시로 확인되며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과 이메일과 전화와 팩스는 무방비 상태에서 관리자들 앞에 알몸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자본은 더 이상 감정적인 언사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이치를 따져가며 사고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린터에서 출력된 엑셀파일을 복사하여 나눠주면서 노동자들의 저하된 능력을 소수점 아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수치로 제시한다. 그들은 온화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후, 그래프와 표와 수치라면 환영해 마지않는 기자들에게 배포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원천적인 한계로 인해 자본과 언론의 십자포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천적인 한계는 다름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장실에는 노동자가 설치한 CCTV가 없다. ERP는 사장의 전유물일 뿐 노동자들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기업주와 중간관리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질타를 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도덕불감증을 수치로 환산할 수가 없다. 윈스턴이 빅 브라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빅 브라더가 윈스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이제 자본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야만 하는가?
4. 승객의 안전 또는 ‘양심수당‘
오시이 마모루였던가? “전쟁을 보는 방법이 달라지면 전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보병이 정글을 달리다가 총에 맞아 전사하는 장면을 본 미국국민들은 대대적인 반전운동을 전개한다. 그것이 베트남전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오밤중에 불꽃놀이 하듯 바그다드를 ‘정밀폭격’하는 장면을 본 미국인들은 마치 비디오 게임을 즐기듯 뉴스를 기다린다. 피의 살육이라는 전쟁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수성은 TV 모니터의 비주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전형적인 상징조작.
자본은 이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노동자 감시’라는 매우 식상한 경영의 방법에서 ‘감시’라는 단어를 탈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편리 · 안전 · 효율”이라는 단어들이 작업장 안에 설치되는 각종 감시시스템의 목적으로 포장되는 것은 그 노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조작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버스 정면의 룸미러 뒤편에 설치된 CCTV는 난폭운전이나 ‘삥땅’ 등 운전기사의 업무상태에 대한 확인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승객의 안전 또는 각종 사건사고 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할 한다. 전자는 원래의 설치목적, 후자는 어쩌다 생기는 부산물. 그러나 부산물은 큰 뉴스로 나오지만 전자는 ‘양심수당’이라는 노자간의 어정쩡한 합의를 통해 논란을 피해간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우군이 되어야할 대중은 오히려 노동자들보다는 자본의 입장에 동조한다. 버스 안에 설치되는 CCTV에 대해 반발하는 기사들을 향해 대중은 기사들의 양심을 의심한다. 자본가들의 원래 목적이었던 감시와 통제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아예 알지 못한다. 대중이 우매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언론의 보도 어디에도 그 CCTV가 상시적인 감시를 통해 버스기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
시스템 안에 갇힌 노동자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그들은 결국 그 감시의 통제망 안에서 순응하던지 아니면 톱니바퀴에 끼여 허우적거리다가 미쳐버리는 찰리 채플린이 되던지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렇게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감시의 본질적 폭력성과 비인간성은 하나하나 폭로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이 감시를 강화하면 할수록 그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두려움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역설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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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호
2005년, 한국은 정보파놉티콘
한국적 노동자감시의 중흥기
최근 노동자 감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다양한 생체인식기(홍채, 정맥, 지문 등)를 동원하기도 하고, 인공위성 덕에 GPS라 불리는 위치추적을 능숙히 해내고 있기도 하다. 또 작업장이건 사무실이건 CCTV, 전자신분증(RF ID카드, 스마트카드 등 IC칩 내장카드),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등이 두어 가지씩 교묘히 작동되고 있다. 1) 게 중에는 노동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도 있어 실제 작업장에 장착된 노동자 감시 장치들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바야흐로 노동자 감시의 중흥기인 것이다. 200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북 익산 (주)대용 사업장의 노조말살 음모로 획책된 CCTV 설치 이후 2002년 발전파업 등을 거치며 홈페이지 차단 등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감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어졌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심도 깊은 논의는 몇 년이 지난 지금 활발해진 셈이다. 노동자들이 감시와 통제를 거부하고 노동권과 건강권, 정보인권을 계급적, 사회운동적으로 요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동자 감시 시스템의 본격적인 확산은 노동통제를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를 필두로 한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파괴공작으로 노동자 감시 장치를 도입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CCTV로 인해 4년째 노자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아직 남아있는 13명 조합원들은 사측의 과도한 감시로 인한 ‘집단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산재승인이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노동자 감시는 자본가의 전근대성, 즉 봉건성과 괘를 같이한다. 사회적으로 노자관계가 대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 마음대로 노동자 감시 장치가 작업장 관리 시스템이라는 명목으로 일사천리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감시 시스템 도입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주)대용이나 하이텍알씨디코리아와 같이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노조가 설립되어서, 노조가 강성이어서, 노조를 없애려고 등등. 공통점은 한결같이 자본이 노동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데 있다.
노동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규율
노동자 감시는 노자관계의 특정 국면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을 적절히 통제하기 어려워 효율성에 장애가 생길 때 자본은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여 노동을 전일적으로 통제하려는 지배권력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최근의 전자정보적 감시통제 기제들은 고가의 비용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은 투자회수율을 따지게 될 것이다. 또한 CCTV가 어느 날 일시에 작업장에 장착되는 것과는 달리 ERP 도입과 같이 구축 초기 또는 일단 진행하면서 중간 정도에 어쩔 수 없이 노조의 동의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2) 결국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뷰러웨이(1985, 생산의 정치)가 말한 헤게모니적 통제가 일정 정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동자의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는 자본의 강제를 당하거나 설득을 당하거나 할 것이다.
노동자 감시 시스템이 노자간 세력관계를 반영한다는 점은 우리가 전자정보화-감시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정보기술이 가치중립적이거나 당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정보화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정보화 사회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적인 한 양태를 일컫는 개념에 불과하다. 상품의 생산-교환-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논리를 지니고 있다.”(김주환, 1996, ‘정보화 사회와 뉴미디어 어떻게 볼 것인가?’, 문화과학 9호)
‘전자감시사회론’은 감시 기술이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았다. “감시사회의 개념은 현대성의 이러한 핵심적인 특징의 광범위한 추이로 주의를 돌리는데 유용할 것이다. ‘감시사회’를 검토하는 것은 감시의 측면으로 오늘날의 사회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등의 측면으로 검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이온, 1994, 전자감시사회) 라이온은 아예 ‘새로운’ 분석 틀로 ‘감시사회’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홍성욱(2002,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은 역사적으로 파놉티콘으로서의 작업장이 형성되고 이것이 ‘전자정보파놉티콘’과 ‘수퍼파놉티콘’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자 감시의 문제를 밝힌다.
일테면,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의 본질은 그의 동생 새뮤얼 벤담의 공장에서 더 잘 드러난다. 파놉티콘은 노동을 통해 죄수 또는 노동자의 영혼에 규율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공장이건 감옥이건 파놉티콘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다. 파놉티콘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장이며 기계이다. 벤담은 스스로 파놉티콘을 ‘감시’의 원리가 내재된 자동기계로 불렀다고 한다. 이 거대한 기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감시를 내면화해서 규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공장에 도입되는 기계 역시 그 부속품으로써 파놉티콘의 기능을 구현한다. 기계는 숙련 노동을 무력화시키고 육체적, 정신적인 규율을 강제한다. 기술적 통제에 더해 자본은 위계적 통제, 관료적 통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노동에 한꺼번에 강제한다.
IT 강국의 껍데기, ‘지식정보화 사회’ 라는 거짓말
그렇다면 한국에서 새로운 정보기술 도입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90년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금융세계화다. 세계적으로 진행된 변동환율제 채택, 외환거래 자유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반주변-주변의 위기가 오히려 미국으로 자본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신경제는 투기거품, 과소비, IT 과잉투자로 지탱되었다. 한국도 97-98년 공황 이후 축적률이 둔화되었고 아이엠프 구조조정으로 인해 자본자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99-2000년 IT 붐이 일어났지만 2001년 IT 거품은 곧장 붕괴하고 벤처 주식시장도 붕괴했다. 그럼에도 IT강국이라는 허울은 이제까지 존재한다. WTO 체제 성립과 OECD 가입으로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가속화하고 있고, ‘동북아중심국가’ 구상과 ‘전자정부’ 출현은 이에 부응하는 국가정책이다. 미국은 현재의 위기를 전쟁(‘무장한 세계화’)과 주변-반주변의 위기 심화를 통해 미봉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공격은 대량해고, 비정규직화, 노동의 불안정화, 노동법의 지속적인 개악,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노동에 대한 포섭과 배제 전략, 노동자 분할, 노동운동 탄압, 지속적인 자본합리화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노동자 감시 문제는 이 가운데 자본합리화-전자정보화와 관련된 것으로 대량해고, 노동의 불안정화, 노동강도 강화를 야기한다.
지식정보화 이데올로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드러커는 전후자본주의 황금기인 1950-70년대부터 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정보화-지식기반사회가 문제가 되고 있는가? 지식기반사회론이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구조조정과 결합하여 자본의 새로운 권력형태를 창출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전자정보화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매개하는 변수인 셈이다. 신자유주의 통치는 전자정보적 노동통제 기제를 통해 초일류 지향, 범지구적 무한경쟁, 국가경쟁력 강화 등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특히 정보, 과학, 지식, 기술 등이 사회적 생산과정에 응용될 때, 이것은 자본이 노동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잉여를 효율적으로 추출하는 데 있어 매우 합리적인 무기로 기능한다.”(강수돌, 1999, ‘정보화와 노사관계의 상관성’, 산업노동연구 제5권1호)
아이엠에프 이후 감시의 고도화, 노동자의 개별화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경영혁신 프로그램은 BSC(Balanced Scorecard 균형성과관리),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 핵심성과지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 등이다. 최근 새로운 노동통제 기제들은 하나같이 전자정보적 감시통제 기제로서 기능한다. 이는 전 사회적인 지식정보화 흐름을 탄 자연스런 경향으로 치부된다. 따지고 보면 2003년 교육계에서 엄청난 갈등을 일으켰던 NEIS도 ERP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었다.(윤현식, 2002, ‘NEIS의 반교육적 성격에 관한 소고’, 새길을 여는 교육비평 10호) 학교행정 관리의 첨단정보화라는 명목으로 학생-교사-학부모의 개인정보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기업에 넘어가게끔 되었던 것 아닌가? 지식정보화로 말미암아 자본은 자본축적의 최적 조건을 ‘인간자원’에 대한 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 즉 노동력 관리에만 집중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90년대 신경영전략으로 통용되던 현장통제와 아이엠프 이후 현장통제는 그것이 현장통제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후자의 경우 전자정보적 통제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현장통제의 고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라는 양상 속에서 드러난 현장통제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런 면에서 아이엠프 이후의 전자정보적 감시통제는 신자유주의 통치 기제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90년대 업무흐름상 효율을 달성하고자 도입되었던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업무흐름재설계)은 정보기술을 통한 데이터의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BPR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한 ERP의 궁극적 관심 대상은 데이터 그 자체다. 노동자의 개인정보와 작업성과는 물론 인간관계까지도 데이터로 만들어 저장, 보관, 평가,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전자정보적 감시통제의 요체다. 자본의 일방적인 데이터 수집, 유통, 축적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여지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전자정보적 통치 기제가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 정보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기술의 변화는 한편으로 자본의 축적을 강제하여 초국적금융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킬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의 변화를 이끌어 냄으로써 노동의 성격을 변화(탈숙련화, 표준화, 유연화, 다기능화)시킨다. 나아가 정보기술 그 자체가 소수의 남성노동력을 핵심 노동자층으로, 다수의 여성노동력을 주변부 노동자층으로 양분할 것이다. 전자정보화는 시간, 공간, 국경의 한계를 초월하여 그 막강한 정보망을 통해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할 것이다.
전자정보적 감시통제는 노동과정의 통제방식에도 변화를 야기한다. 자본은 전자정보화와 함께 팀제를 적극 활용해 인력감축, 타이트한 노동시간, 노동강도 강화, 통제의 내면화, 관리비용 축소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팀제’가 팀 구성원끼리의 내부통제, 자기통제를 강제하도록 하여 자본은 휴지 안대고 코푸는 것처럼 노동의 지배를 용이하게 실천한다. 과거에 비해 기술적 통제는 외재적 통제가 아닌 제도적 형태나 소통적 형태를 띠고 세련되게 탈바꿈한다. 이 속에서 일군의 노동자들에게 ‘전자민주주의’의 환상이 유포되기도 한다. 즉 자본의 운동 논리를 노동자 스스로 내면화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높이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성공적인 전자정보화가 이루어지면 노동자의 집단성이 개별성으로 치환되고, 노동은 자본의 평가와 통제에 더욱 종속됨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경쟁과 분할이 더욱 심해져 노조가 무력화된다.
감시의 심화, 확장으로서 온라인감시 3)
전자감시를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좁게 해석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감시는 개인보다는 집단감시를 선호하고 동시에 권력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현대권력은 전자적 수단을 통한 보이지 않는 감시 덕에 그 반경을 넓히고 억압적 속성을 숨기는 재주를 터득한다. 노동자 감시가 극악한 통제유형으로 군림하던 테일러주의를 더욱 더 과학화, 세련화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본의 노동통제 방식에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전자정보화’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정보화(디지털화를 통한 기억, 연산, 통제, 반복 가능성)가 작업장에 구현되면 비디오와 컴퓨터를 통한 테일러식 시간 동작 연구의 세련화, 전광판 등을 통한 작업공정 상황의 시각화가 이루어진다.
정보사회의 감시는 전자감시를 가리킨다. 전자감시란 전자기기 등을 사용하여 감시대상을 감시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정보의 감지, 측정, 수집, 저장, 처리, 분류, 재생 등의 면에서 가공할 만한 효율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보를 디지털화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디지털 정보변환, 즉 디지털 정보처리기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감시능력의 증대를 수반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각 시스템을 상호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LAN이다. 각기 분산되어 있는 정보는 네트워크를 이룸으로써 더 많은 정보자원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디지털 컴퓨터는 감시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감시를 일상화시키고 확장하며, 그리고 심화시킨다’.
정보기술을 통한 전자감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전자기술은 관찰자와 감시자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본인의 동의 없이도 개인의 비밀 정보까지 대량 수집하게 한다. 둘째, 수집된 정보의 전송을 용이하게 하여 시간, 공간, 국경을 초월한 정보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분산적 정보들을 체계화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게 하고, 무한 축적된 정보를 쉽게 검색, 출력할 수 있도록 한다. 결국 이러한 감시 과정이 원활할수록 ‘정보불평등’이 강화되며 ‘권력관계’의 일방성이 강해진다.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작업장 감시는 노동자의 작업행위 뿐 아니라, 일반적 행위적 특성과 순수한 개인 특성도 포함한다. 그러나 작업장 감시의 본질적인 의도는 노동자 자체에 대한 감시보다는 노동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있다. 즉 노동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잉여노동의 착취를 가능하게끔 하는데 전자정보기술이 도입되는 것이며, 이는 세련된 기술적 통제를 통해 전자감시를 달성하는 것이다.
기업 내 감시 시스템은 80년대 후반 대기업부터 도입되기 시작하였지만, 최근에는 저렴해진 비용으로 중소기업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으며, 사무직, 생산직, 서비스직, 공공부분 등 업종을 망라하여 설치되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이 온라인 감시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감시는 사이트 접속 차단에서 이메일 확인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기업의 업무가 인터넷 환경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첨단네트워크 감시장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업은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
감시 기술의 발달로 CCTV, 전자신분증, 위성 위치추적 시스템(GPS), 전화 도청 장치, 인터넷 사용 감시, 생산자동화시스템 등 영상정보통신 기술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보통 노동자 감시 시스템 도입의 명분으로 산업안전, 보안, 업무효율성 제고, 고객서비스 관리, 도난방지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자 사생활 침해, 노동조합 파괴, 노동강도 강화,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통제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7-80년대까지 노동자들은 퇴근시간에 몸을 수색하는 반인권적 노동자 통제에 맞서 싸워왔다. 회사는 이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주머니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수색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감시는 계속된다 24시간, 비밀스럽게
첨단 기술을 통한 감시기술은 기존의 노동통제 기술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감시가 가능하고 정보의 선택, 축적, 편집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지역적 한계까지도 초월하여 모든 행적을 추적 감시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이지 않아 오히려 표면적으로 노동에 대한 자율이 확장되는 것으로 보이게 하며, 그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 감시기술을 통해서 직접적인 지배와 명령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활동할 수 있는 ‘자기통제’를 목표로 하며, 노동자들에게서 지속적인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감시는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니터링과는 구별되며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감시자, 즉 자본가에 의해 감시대상자, 즉 노동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주어진 업무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모든 작업 관련 노동자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수집분석결과 감시대상자는 고과에 매겨지거나 상벌을 받을 수도 있고, 감시대상자가 노동조합과 같은 집단일 경우, 노조파괴전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던 롯데호텔, 발전, 재능교육 노조 등에서는 자본이 노조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작업에 대한 감시는 생산량, 문서처리량, 자원의 사용, 컴퓨팅 시간, 전화사용 횟수, 커뮤니케이션 내용, 서비스 태도, 감시, 도청행위 등이 범주에 들어가는데, 위치확인카드, 호출기, TV, 카메라, 일에 몰두하는 정도, 실수의 경향과 빈도 등도 노동자 일반행위에 대한 감시 부분에 들어갈 수 있다. 정보감시기술의 발전에 따라 작업장 감시는 그 수준과 폭을 훨씬 강화하고 다양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산증대에 기여하도록 계획되고 요구되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감시감독의 목적으로 주로 생산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작업모니터링, 품질관리와 고객서비스 향상, 법과 규칙의 준수, 교육과 감독의 지원, 안전한 작업장의 확보, 사용자의 재산보호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작업장에서의 감시감독은 대부분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는지를 확실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정보적 감시체계는 왜 문제인가? 이러한 문제의 상당부분은 감시의 익명화와 자동화, 그리고 모든 행동과 움직임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연관된 감시통제 과정과 통제의 성격의 급속한 변화 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전자정보화, 컴퓨터 기술의 발달을 통해 노동과정은 ‘정보파놉티콘’적 권력지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감시를 내면화하여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기규율’을 가지게 된다.
각주)
1)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가치증식과정인 동시에 노동과정이다. 전자를 통해 착취가 일어나고 후자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일어나며 이러한 두 과정은 결국 노동을 소외시킨다. 노동통제란 노동자의 작업장 행동에 대한 감시뿐 아니라 노동효율성을 높이려는 제 방책을 뜻한다. 21세기 신경영기법은 첨단감시기술의 발달로 인해 노동자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보급된 노동자 감시 기술은 전화 송ㆍ수신, CCTV, 인터넷 E-mail, 전자신분증, ERP, 생체인식기, GPS 등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민주노총 등 9개 시민사회단체들의 모임인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 2003년 6월 20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자 감시 시스템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사업장의 89.9%가 감시 시스템을 평균 2가지 이상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은 감시 시스템을 설치했다. 특히 보건의료 업종과 1,000인 이상 사업장은 거의 대부분 감시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었다.
2) 노동자들이 ERP 구축을 확인하는 단계는 거의 대부분 자본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한 경우다. 자본이 노동자들 몰래 상당기간 ERP 구축을 진척시켜오다가 노동자에게 발각되어 알리는 경우도 태반이다.
3) ‘첨단기술에 의한 노동자 감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2002), 이황현아, ‘최근 노동감시와 노동과정의 특성’ 중에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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