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산재예방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위와 같이 사전조치는 ‘예방적 차원’으로, 사후조치는 ‘피해자 구제’의 차원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산재예방 대책을 사전조치에 국한시키고 사후조치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일반적인 오류를 낳게 된다. 또한 사후조치를 사전예방과 연계시키기 위하여 취지나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른 산재보상보험법과의 연계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결부시키려는 시도나 주장이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는 산재보험제도가 산재예방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를 목적으로 사전예방과 다른 차원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반적 오류라고 판단된다.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사전예방강화라는 관점에서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무리하게 결부시킴으로써 실익도 크지 않으면서 제도의 본질적 측면을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방대책은 산재 피해자에 대한 사후대책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시간적 전후 개념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즉, 예방활동은 사건 전․후의 개념이 아닌 일상적, 지속적 활동이다. 따라서 예방은 사전예방측면과 사후조치 및 그로 인한 예방활동 강화를 모두 포함한다. 예방대책을 사후적인 구제대책과 구분한다면, 산재발생 시점이 아니라 주요 대상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사후 구제대책이 피해자를 주요대상으로 한다면 예방대책은 가해자 또는 책임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이란 현행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전형적인 예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은 지나치게 명령지시적인 규제(command control regulation)로 되어 있는 점과 기술기준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논하기로 한다. 모든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던, 하였던, 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노동과정에서 사전에 취해야 할 안전보건상 의무조치를 규정하는 것이 사전 예방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사후예방이란 문법적으로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산재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정부가 개입하여 다시는 그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함으로써 예방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과 같다. 만약 소를 잃었다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사후예방조치는 사고조사와 적절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사업주로 하여금 사전예방의무를 보다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인 것이다. 사후보상에 대해서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직업병 인정기준’ 또는 ‘선보장-후판정’과 같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사후보상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전보상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거나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사고로 사망 또는 신체에 손상을 입었거나 직업병에 걸린 경우에는 사후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직업병에 딱 걸렸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몸이 상당히 불편한 경우 또는 그러한 노동환경에서 계속 일할 경우 직업병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일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면 이는 사전보상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명백한 위험작업에 대한 위험수당 또는 생명수당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엄청난 논란이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사전보상을 실시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나 주장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예방과 보상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산재예방을 위한 정책은 사전예방이라는 미명아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국한시키고 산재사고이후의 논의는 오로지 보상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노동안전보건정책과 노동계의 투쟁에는 오류의 함정이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 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표 1>은 이와 같은 인식체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법체계는 민법과 형법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민법과 형법만으로는 다양성과 전문성 또는 특수성을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비효율적이거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법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법을 보통 특별법이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법들은 모두 정부가 헌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즉 국가의 기본적 의무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므로 보통 행정법으로 분류하며 기능적인 측면에 따라 상법, 노동법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각 개별법에 처벌조항을 두고 있어 형법적 요소도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의 형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형식적 체계의 구분을 통하여 산재예방 수단을 검토하면, 산재예방 정책이나 수단을 강구함에 있어서 논의구조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안에 국한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스즈키 아키라(鈴木明․42)는 '눈이 많은 고장' 나가노에 태어났다. 1982년에 메이지(明治) 대학에 입학, 학생운동을 하다가, 1990년부터 97년까지 도쿄에서 영세사업장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과 산재직업병 상담활동을 했다. 97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노동건강연대에서 지역노조와 함께 하는 '성수동사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과건강』에 일본의 다양한 노동자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이면서, 함께 나아갈 동지들인 일본 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편집자 -
‘도쿄 동부 노재직업병 센터’ 상근자가 되어 처음에 맡았던 상담은 이주노동자 산재상담이었다. 1990년 가을의 일이었다.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인 R씨의 산재상담은 지역노조를 통해서 들어왔다.
일본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거품 경제 아래 브라질 등 일본계 남미 사람이나 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급증에 대해 정부와 노동성은 1988년 <제6차 고용대책기본계획>을 책정해 전문․기술분야에 대한 외국인 허용과 단순노동은 안 된다는 단순노동 불가정책을 내세웠다. 한편 1989년에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일본계 남미노동자의 취업을 합법화하였다.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에 따라 노동상담도 늘어났다. 임금체불, 해고 그리고 산재. 이러한 노동상담은 지역노조(유니온)나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NGO단체가 맡게 되었다. 이주노동자가 상담을 하자고 하면 그들에게 문을 열고 있는 지역노조 만이 상담에 응해 주었다.
이주노동자는 모국의 친구끼리 공동체를 형성한다. 자기 문제가 해결이 되면 어려운 친구를 데려오므로 지원단체도 남아시아 출신자가 많은 단체, 남미 출신자가 많은 단체 등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어쨌든 800만 명을 조직하는 노총인 ‘연합(RENGO)’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 방안을 세우지 않는 지금, 한 사람이라도 가입할 수 있는 지역노조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있다.
R의 직장은 ‘마치코오바’라 불리는 작은 공장이었는데 낮에 방문하면, 일하는 사람이 이주노동자 네 명밖에 없었다. R과 인도 출신인 형제, 그리고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는 스무 살의 여성이 있었다.
사장은 제품 배달 등 외근이 많아 교섭하기 위해 시간을 잡는 게 어려웠다. 공장 2층에 기숙사가 되어 있고, 거기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했다. 공장은 어둡고, 더럽고 구조적인 하청화에 허덕이는 ‘마치코오바’이었다.
마치=동네, 코오바=공장 인데, 제조업의 말단 구조에 있는 동네공장은 산업 공동화에 따라 경영하기가 어렵다. 자본력이 없는 동네공장은 설비투자도 힘들다. 일본에서는 ‘3K’라는 말을 쓰면서 사람이 일하기 싫은 일터를 표현한다. ”Kiken"(위험하다), “Kitanai"(더럽다), ”Kitsui"(힘들다)가 3K인데 일본인이 일하지 않는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들어 일하고 있다.
R은 연마기계로 손가락이 잘려 버린 산재를 당했다. 작업을 서두르다가 당한 사고였다고 한다.
R의 회사는 산재보험 미가입 회사였는데, 사장에게 호소했는데도 결국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한국의 노동사무소에 해당하는 노동기준감독서에 신고해 감독서 지도로 산재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본 노동법에는 국적조항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산재보험도 마찬가지고 산재보험 미가입이라도 산재 발생시까지 소급해서 가입하면 산재노동자는 구제할 수 있다. 요양신청서, 휴업급여신청서에 사업주증명이 없더라도 ‘사업주가 증명하지 않는다’고 감독서에 제출하면 처리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영세사업장에서는 ‘최저 노동조건인 노동기준법, 최저한 보상인 산재보험’이라는 개념이 사업주에게 없다. 그래서 사업주와의 교섭은 그런 사업주를 설득하는 걸로부터 시작한다. “외국인에게도 산재보험을 할 수 있고 보상되니까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대부분의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 일을 못 하게 되면 제대로 보상도 하지 않는 채 해고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주거지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부동산 유리에 있는 물건 표시에 ‘외국인 불가’라고 써 놓는 것이 일본인이 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를 사업주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가 보증인이 되고 방을 얻거나 공장 부지 안에 있는 컨테이너에 사는 예도 있다. 그러므로 해고는 주거 상실과 직결된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를 기계처럼 대하는 사업주이지만, 상담으로 만난 이주노동자 가운데 사장이나 사업장에 있는 일본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 점에서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나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불만으로 든 것과 차이가 난다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주거지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부동산 유리에 있는 물건 표시에 ‘외국인 불가’라고 써 놓는 것이 일본인이 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를 사업주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이주노동자의 차이라면 투쟁방법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동지인 조합원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일은 있지만, 일본 노조지도부는 이주노동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주노동자도 집회에 참여하고 시위도 같이 하는데 연행, 즉 강제추방 대상인 이주노동자를 앞세우는 게 아니라 일본인이 권력과의 마찰에서 방조제가 되도록 한다. 한국처럼 시위에서 이주노동자가 경찰과 몸싸움하거나 단식농성을 하는 것은 일본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탄압에 맞서는 일본 운동의 역동성이 모자란 것처럼 보인다.
일본 정부의 200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 인구는 1억2700만명. 외국인등록을 한 외국국적 사람은 177만명이다. 이 속에는 일제시대 일본에 살게 된 한국, 대만 출신자와 2세, 3세인 ‘특별영주자’ 50만 명과 영주권을 얻은 ‘일반영주자’ 18만명이 포함된다. 그리고 법무성-입국관리국이 말하는 ‘불법체류자’는 22만 552명이다. 1993년 29만8,646명이 최고치로,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 총노동력인구는 6,889만명이다.
일본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은 주로 주요 전철역에서 실시된다. 그러나 입국관리국은 2004년 2월 14일부터 홈페이지 상에서 ‘불법체류자’에 관한 정보를 접수하기 시작해 시민단체, 변호사회 등으로부터 삭제를 요구받아 있다. 입국관리국은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에게 좋지 않는 외국인을 강제로 국외로 퇴거시키는 것으로 건전한 일본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불법체류자 = 범죄의 온상”이라는 문구는 경찰로부터 발신되고 언론을 통해서 선동되어 있다.
“B는 손가락 끝을 재단기에 잘린 산재를 당해 요양중이고 치유를 기다리는 단계였는데, 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되었다. 거기서 의료기관에 다니고 의사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친구끼리 방을 얻어서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집단으로 살면 이웃 사람의 눈에 띈다.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이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에게 불법체류자로 연행된 예가 있었는데 본인이 산재 상담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도 몇 명이 잡혔다. 산재를 당해 일할 수 없고 요양중인 이주노동자가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연행된 것이다.
S는 식품회사에서 대형 교반기로 팔을 부러뜨린 산재를 당해서 재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요양이 오래 걸리는 S는 매달 정해진 날에 입국관리사무소에 출두하는 것으로 입국관리국이 판단해 풀려나기도 했다.
B는 손가락 끝을 재단기에 잘린 산재를 당해 요양중이고 치유를 기다리는 단계였는데, 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되었다. 거기서 의료기관에 다니고 의사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치료나 임금체불이 있는 경우 입국관리국은 일단 노동채권을 노동자가 얻을 때까지 강제추방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B는 방글라데시 사람인데 인도 여권을 갖고 있었다. 돈을 주면 언제든지 위조 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B가 인도로 갔는지, 방글라데시로 갔는지 궁금하다.
일본인은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다. 구미 사람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갖고 아시아 사람에 대해서는 멸시하는 일본인의 경향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서구 문화 섭취와 아시아 참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천왕제’라는 강력한 장치로 민중을 통제하여 제국주의전쟁에 돌입한 일본은 패전 후도 천왕제 이데올로기를 유지해 왔다. 전후 민주화도 미국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일본 민중은 스스로 천왕제를 단죄하고 침략의 역사를 청산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본정부는 전쟁책임을 다하지 않고 일제의 만행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채 현재에 이르러 최대의 전쟁책임자인 천왕과 천왕제가 남아 있다. ‘만세 일계인 천왕을 받들어 모시는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이 일제시대에 강제되면서 그 잔재를 제거하지 않고 온 일본인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고치기 위해서는 일제 침략사의 청산과 다민족 공생의 시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한다.
대나무는 전통적으로 사군자의 중요한 소재이다. 문인화에서 먹과 붓의 필치를 통해 군자의 인품과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는 동양화가 박병춘의 그림에서는 그것과 사뭇 유사하기도, 사뭇 다르기도 하다. 단순한 형태와 흑백의 단색조 색감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도, 재료와 기법, 그리고 그 정신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 점이 그것이다.
작가는 먹이 아니라 고무의 파편을 오려내어 캔버스에 오려 붙어 일명 ‘고무 대나무’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다가서기 힘든 고귀한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품위 있는 대나무와 하찮은 ‘똥’이라는 소재를 대치시켜 놓았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먹의 운용에 의해 창출된 은은한 색감의 변조보다는 고무의 파편이 가져다주는 단순함과 명확한 도식성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소 희극적인 똥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문인화 속에 삽입시켜 소재와 정신의 일상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제 그 ‘대나무’는 ‘똥’처럼 우리 가까이에 친근하게 함께 하는 대상이다.
작가 박병춘은 1966년생으로 홍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전 7회와 다수의 그룹전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현재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글쓴이 김지영은 이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후, 동신대 겸임교수, 금산갤러리와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밀레의 여정>, <현실주의>, <사람을 닮은 책> 등 수많은 전시를 기획했고,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전체 취업자의 과반수를 하회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일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노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이요 건강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건강은 개인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는데 또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며 일을 가진 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일자리 유지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기본 수단이 된다. 즉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 내 업무와 관련한 예방의 의무가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할 경우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저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산업보건분야에서 건강의 논의는 대체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였고 사고나 부상 등에 제한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건강을 작업장내의 환경에만 초점을 바라봄으로서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요인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별로 많지 않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정책도 주로 여성의 재생산기능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모성보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의 결과로 모성보호의 법개정과 향상이 있었으나 여성이 사회와 노동환경에서 처한 불평등과 건강을 연계한 연구와 정책제언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었다. 특히 여성의 건강을 신체적인 현상으로만 국한하거나 임신, 출산 등 재생산 기능에만 국한하여 바라보는 것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이나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원인, 예컨대 성 분절적인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의 요인이 건강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여성의 불건강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의 결과로서 이해하고, 이러한 불평등의 개선을 통한 건강정책은 부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을 위해서 성별 건강 불평등성을 낳는 기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여성노동자의 건강의 성별차이를 보기 위한 시론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여성의 건강수준의 저하는 사회적 불평등성과 성(gender)이라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여성이 사회에서, 노동환경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건강은 인간 생리, 보건관리의 조직,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물리적인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규정된다(Health Canada, 2002). 또한 건강은 ‘삶의 질’의 기본적인 차원으로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삶의 질’이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한 기회를 의미한다면, 건강은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자원으로서 볼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교육도 받고, 일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건강은 삶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한 사회 내에서 구성원의 건강수준은 매우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단, 교육을 높게 받은 집단,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보다 많이 향유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건강할 수밖에 없다(UN, 2003; WHO, Rhoades, 1998).
즉, 건강수준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구성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건강불평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사회적 계층과 성(gender) 성(gender)은 성(sex)과는 다른 개념으로 성(sex)이 주로 신체적, 유전적 측면에 강조점을 둔 반면 성(gender)은 여성, 남성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 역할과 사회적인 규범, 인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강과 성(gender)의 연계는 건강이 단지 신체적인 차이가 아닌 사회내의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건강수준이 달라지고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건강상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이다. 한 예로 캐나다의 국가적 차원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불건강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인 수명에서 상위소득계층에 속하는 남성은 하위소득계층 남성에 비해 6년 이상을 살고 여성은 소득계층간 차이가 남성보다는 작게 나타난다. 질병의 경우 그 차이는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상위계층의 남성은 하위계층의 남성에 비해 질병이 없는 상태가 14년이 더 길고 여성의 경우는 그 차이는 8년으로 나타나 경제적 지위가 건강에 미치는 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지표가 건강불평등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성에 의한 중요한 차이가 여전히 각각의 계급수준 안에서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한편 기존의 연구(Ostlin, 2001)에 의하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사회적 지위나 건강결과를 어떻게 측정하던지 관계없이 모든 사회의 남성과 여성에서 보다 나은 건강과 지속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간 총사망률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크기에 대한 분석이 시행된 나라를 보면, 여성에서 보다 적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보고되었다. 또한 총 사망률 수준에서 남성들 사이에서 보이는 커다란 불평등은 여성들에게 흔하지 않거나 반대인 경우가 있다. 반면, 심혈관 질환, 허혈성 심질환의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큰 상대적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계층과 성이 건강수준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여성내부의 차이이다. 여성건강의 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 레슬리 도얄(Doyal, 1995)은 여성과 남성을 단순히 대비하는 것은 한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인종과 계급으로 인한 뚜렷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여성/남성의 비교라는 매우 조야한 방식보다 사회내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서로 연계되고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건강수준이 발생하게 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간의 차이를 극대화하여 여성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 여성내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위치가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은 비슷한 신체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성은 여전히 하위계층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의 건강을 바라볼 때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거나 여성내 집단의 파편화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치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요인이 성이라는 요인과 어떻게 작용하여 건강의 불평등을 낳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Status of Canada, 1996; WHO, 1997). 이러한 분석은 고전적인 건강에 대한 책임성 - 의료이용이나 서비스 등에 국한한 - 의 경계를 더욱 확장시켜 제반 사회적 요인과 건강을 연계하여 살펴보고 건강권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Krieger, 1993).
건강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성(gender)이라면 성 인지적인 건강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사회내의 다차원적인 영역에서 성(gender)이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건강의 성별 불평등성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대체로 1) 여성과 남성의 역할과 책임, 2) 사회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지위, 3) 여성과 남성의 자원 사용과 자원에 대한 접근, 4)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적 코드, 5) 여성 신체의 독특한 기제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 인지적인 건강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Walters et al, 1995).
일하는 여성의 건강불평등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하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일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특징으로 첫째,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일을 하지 않는가를 먼저 밝혀보아야 한다. 여기에 경제적 필요도, 건강수준, 일에 부여하는 의미, 원하는 일자리 존재여부, 가족 내 여성취업에 대한 태도, 가족-직장양립 가능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여성 즉 실망실업자의 건강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Moss, 2002).
둘째,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불평등한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의 편입으로 인해 여성이 종사하는 산업, 직종, 직무가 남성과 상이하고, 최근 보다 급속하게 다양화되고 있는 유연한 노동으로 인한 비정규직의 여성화 등은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Ferrie 2001, Quinlan et al, 2000). 성별로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고용주와 맺는 고용관계의 특성, 직장에서의 제반 규범과 규율의 내용 역시 달라지며 이는 여성의 건강수준과 관련을 맺는다(Benach etl al, 2000; Fuhrer, 1999). 여성은 대체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으며, 조직의 위계 질서에서 볼 때 하층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소규모사업장이나 비정규직으로 종사한다는 점에서 건강 위해요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는 기제가 부족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Duxbury, 1997; Hall, 1989).
셋째, 건강의 위험요인(risk factor)이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각 직업별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은 다양하며 같은 직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하는 직무가 상이하여 건강 위해요인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Messing, 1998; Mergler et al, 1987).
일반적으로 남성에서 건강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기여하는 대부분의 요소(물질적 불리함, 고용상태, 결혼 상태, 직업환경요인, 건강관련행태)가 여성에게도 기여하지만 이러한 건강결정인자의 사회적 패턴에 대한 중요한 성별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는 성 분류적 노동에 기인한 것으로 성에 의해 매우 다양해지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산업화된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소음, 진동, 부적정한 온도, 유기용제,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유기용제 관련 질환, 난청, 진동에 의한 상해, 직업관련사고는 남성에서 훨씬 많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과 연관된 질환은 낮은 사회경제적 그룹에서 보다 많이 나타나게 된다.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 단조로운 작업, 폭력과 부정적 스트레스의 위험, ‘작업의 정신적 긴장과 낮은 결정범위의 복합’ 등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피로감, 반복성 긴장, 직업관련 근골격계질환, 사회심리적 건강문제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하게 나타난다(Griffin et al, 2002; Kilbom et al, 1998). 이럴 경우 남성은 작업장에서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을 제거하는 개입이 근골격계질환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반면 여성은 반복적인 작업동작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 일수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이 주로 직장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재해나 직업병은 남성노동자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여성도 점차 산업현장에 뛰어 들어감에 따라 일과 관련한 질환도 증가하게 되었다. 여성은 직장에서 남성보다 단순 반복적이고, 일에 대한 통제가 낮으며,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가 만연하고, 직장과 가정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상이하다(정진주, 2002). 이렇게 여성과 남성이 종사하는 일의 내용이나 직무가 남성과 다르기 때문에 여성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는 남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성노동자 위주의 시각과 조사결과를 가지고 여성노동자에게 ‘작은 남성’으로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성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다(Mergler et al, 1987).
넷째, 여성노동자에 대한 건강관리와 불건강한 상태에서 제공되는 보건의료서비스나 보상의 영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건강관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닌 직장에서 건강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를 말하는데, 여성을 위한, 여성의 요구에 기반한 산업보건관리가 시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관리의 정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과 노동환경의 위해요인으로부터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에 대한 치료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환경개선이 얼마나 수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불건강한 상태로 인하여 더 이상 일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자리를 떠난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정진주, 2002).
다섯째, 건강에 관한 인식과 건강증진의 요구가 여성의 불평등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증상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와 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현대의 직업병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근골격계질환 - 목, 어깨, 허리, 손, 팔 등의 통증으로 일컬어짐 -의 경우 같은 중증도의 질환에 걸리더라도 남성이 여성보다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진주, 2002). 이는 흔히 남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강함’에 대비하는 ‘약함’ 이라는 신체적 증상이 근골격계질환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고나 부상은 남성에게 수용하기에 보다 용이하지만 근육과 뼈의 무기력함은 ‘약한 여성’라는 이미지에 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코드 외에 직장에서 여성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고용의 불안정성 등의 불이익이 오면 요구도는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앞 절에서 지적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그림 1과 같다. 향후 일련의 노동시장 과정에서 성인지적인 관점을 가지고 건강의 불평등성을 연구해 볼 필요가 존재한다.
일하는 여성의 업무와 관련한 건강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력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용한 노동력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건강이 보장되어야 하고, 가족 내 성별 분업과 취업에 대한 가족적 지원, 일에 대해 가지는 의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자리가 존재하는 한 노동력으로 유입되어야 한다.
일단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은 고용형태, 산업, 직종, 기업규모 등으로 분리된 시장에 위치하게 되어 건강상의 위해요인의 노출요인과 노출 정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노동과정 내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 건강상 부정적 위험요인도 상이하게 된다. 이러한 면은 거시적인 성 차별적인 노동정책 하에서 구체화된다. 여성은 대체적으로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서비스산업 등에 집중적으로 종사하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남성과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요인이 달라지게 된다. 직장에서 건강관리는 예방대책, 질병발생 이후 보상, 건강문제를 건강문제라고 인식하고 요구하는(empowerment)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여성은 종사상 지위, 소규모 사업장 집중 등으로 인해 예방, 보상, 요구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적 성별 불평등과 배제에 따라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심각한 경우는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게 된다. 물론 같은 여성집단이라고 할 지라도 더욱 취약한 집단이 존재한다.
건강이 취약한 여성집단은 경제활동기간이 짧게 되므로 노후의 연금수혜도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적 빈곤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와 영위, 사회관계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도 빈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노동력으로 활용되지 못할 경우 기초생활보장이나 자활사업의 대상자가 되어 공식적인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빈곤과 불건강의 상태가 영속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향후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연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내의 다양한 영역 즉, 가족, 노동시장, 노동조건, 사회복지의 다차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건강증진은 단순히 작업장내의 위해요인 분석을 넘어서 확대되어야 하고 기술적, 물리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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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OO은 제주시내에 신축 중이던 빌라 공사를 하던 도중 고압선에 감전되어 화상을 입었다. 위 빌라 공사는 △△건설이라는 업체가 수주를 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건설은 그 공사 과정 중 골조 작업 부분을 최OO에게 하도급하였고, 박OO은 하도급을 받은 최OO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최OO이 위 작업을 할 때 △△건설의 직원들이 위 공사 현장에 상주해 있으면서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점검하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최OO은 위 골조 공사를 거의 다 마친 후 각 층에 널러져 있던 자재를 크레인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리려고 하였다. 크레인 작업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이루어졌는데 그 때는 모두 위 건물 뒤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위 날은 유독 위 건물 앞쪽에서 크레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편 거기에는 고압전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설의 직원은 최OO이 위와 같은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방치하였다. 박OO이 건물 아래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자재를 받아 내리던 중 크레인 선이 전선에 닿아 박OO은 고압선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박OO은 위 사고로 오른쪽 어깨와 오른 손에 부상을 입어 오른 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박OO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았다. 최OO을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지는 않았지만, 원수급자인 △△건설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박OO이 요양승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산재보상보험의 적용에 있어서는 사업이 수차의 도급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경우에도 그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기 때문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조), 박OO이 당연히 요양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OO은 치료를 종결하면서 장해 등급 4급(“한 팔을 팔꿈치 관절 이상에서 잃은 사람”)을 받았고, 연금을 선택하였다(4급의 1년치 연금 액수는 평균임금×224일분이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든 관계로 2년치는 선급으로 받았다. 연금을 선택한 경우에도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는 4년분까지, 그렇지 않은 자는 2년분까지 선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위 법 제42조 제5항).
박OO이 이처럼 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았으나 당장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박OO은 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박OO은 최OO과 △△건설 모두를 대상으로,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최OO이 영세업자로서 가진 재산이 없었으므로 △△건설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박OO은 그와 동시에 △△건설의 재산(부동산과 은행 계좌)을 파악하여 가압류를 하였다.
△△건설은 골조공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OO에게 완전히 하도급을 주었으므로 골조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위 사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건설의 주장대로 하도급을 준 원청업체는 하도급 업체가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민법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되어 있다(제757조). 이 규정에 의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책임이 없고, 다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면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위 규정은 완벽한 형태의 도급, 즉 일의 진행 및 완성에 대해 수급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그런 형태의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수급인이 영세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배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에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법원은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두 가지 상황을 인정하였는데, 그 첫째는 하수급인이 공사에 관여한 정도 및 도급인이 사전에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도급인이 직접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이고(1992. 10. 27. 선고 91다30866), 그 둘째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이다.
대법원은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 또는 그 피용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하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급인이 단순히 공사의 운영 및 시공의 정도가 설계도 또는 시방서 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여 공정을 감독하는 데에 불과한 이른바 감리만을 행한 경우에는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았다(1992. 6. 23. 선고 92다2615).
결국 도급인이 감독을 했느냐 감리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법원은 도급인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OO은 위와 같은 판례를 근거로 원청업자인 △△건설에게 기본적인 안전 시설 설치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건설이 감독자로서 사용자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OO은 재판과정에서 △△걸설의 직원이 실제로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 및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건설의 직원이었던 정OO와 크레인기사 구OO 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고 사고 발생 장소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고압선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 시공업자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사실조회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법원은 고압선에 대한 안전조치는 원청업체가 해야 한다는 사실 및 위 공사현장에 병이 파견한 직원 정OO이 현장대리인으로서 공사를 지휘․감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은 그런 사실을 토대로 “피고(△△건설)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로서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정OO)와 동일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던 피고의 수급인(최OO)이 고용한 근로자인 원고(박OO)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 즉 크레인의 작업 위치 및 유로폼의 적재 위치의 적절한 선정을 위한 지휘, 감독과 고압선에 대한 절연조치 등의 안전조치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므로 위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04. 2. 3. 선고 2003가단8083).
법원은 대법원이 인정한 위 두 가지 상황 중 첫 번째 경우를 이 사건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현재 법원은 위험의 공평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청업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향유한 자가 그 위험도 부담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법원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