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캐나다의 보건복지부인 Health Canada의 ‘Safety and Safe Use of Cellular Phones'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전지침이 마련되어 시행중이며, 그 기준치는 1.6으로 캐나다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SAR은 측정하는 자세와 위치 등에 대해 표준화된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보고 들이 출간되고 있는 것은 최근 들어서이며 현재 6:4 정도로 건강에 위해영향이 높다는 쪽이 우세합니다. 그중 Oxidative Stress의 증가는 여러 연구에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갑상선암이 휴대폰 사용과 연관있으며, 뇌암, 유방암에서는 연관이 없다고 보고 되고 있습니다.
휴대폰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휴대폰에서 방출되는 라디오파(radiofrequency)의 건강위험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휴대폰은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신호를 전송하고 수신할 수 있는 전자장치이다. 휴대폰의 전송능력은 네트워크의 종류와 기지국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좌우되며, 차이가 심하다.
휴대폰은 라디오파를 수신하고 라디오파를 전자기파 신호로 발송한다. 휴대폰은 고주파 영역대에서 작동한다. 기지국으로부터 수신되는 라디오파는 대개 869에서 894 MHz 사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TV channel 69의 경우 800-806 MHz 범위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1996년 이전 캐나다의 모든 휴대폰은 저주파 영역에서 작동하는 아날로그 장치였고, 디지털 체계가 도입된 것은 1997년이다.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은 비전리 방사선으로 번개와 같은 자연계의 현상과 동일한 종류이다. 라디오파는 라디오 방송, 환자치료, 열발생 장치로도 사용된다. X 선에서 방출되는 전리방사선과는 달리 라디오파는 인체 내의 화학적 결합에 손상을 미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체내의 통상적인 물질에는 별 위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에 의해 발생하는 라디오 전자기장은 우리의 몸을 통과할 수 있다. 통과 깊이와 흡수된 에너지의 양은 휴대폰을 받을 때 신체와 얼마나 가까이 하는지, 전자신호의 강한 정도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라디오파 노출의 중요한 지표는 에너지 흡수율이다. 이를 소위 ‘특수 흡수율(specific absorption rate)'이라고 하기도, SAR 이라고도 하며, 키로그램 당 왓츠(watts)로 측정한다.
동물이나 인간에 대한 실험에서 휴대폰이 암이나 경련, 수면장애 등의 건강장애를 일으킨다는 확실한 증거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군의 과학자들은 휴대폰은 뇌의 활동성, 반응 시간, 혹은 잠자는 시간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아직 확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휴대폰 사용은 완전히 무해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바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캐나다 보건부(Health Canada)는 ‘안전 지침 6’을 통해 3kHz에서 300GHz 범위에서의 인체에 대한 라디오파 노출 한계를 마련하였다. 이 안전지침은 라디오파를 방출하는 장치들의 안전한 사용에 대한 일련의 지침서 중의 한가지이다. 안전지침 6은 캐나다 전역의 많은 조직들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캐나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많은 다른 법규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안전지침 6에서 주어진 규제 범위는 많은 연구결과들과 국제 노출 기준을 검토한 끝에 도출한 것이다. 휴대폰과 같은 이동식 라디오파 방출 기기의 SAR 은 1.6 watts per kilogram이다.
그러나 몇몇 연구에서는 라디오파에 의해서도 생체 반응이 유발되며 연구를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전지침 6의 기준을 낮추어야 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캐나다는 WHO에 의해 수행된 국제 전자기장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제기되 온 건강영향을 검증하고 어떠한 건강위험이라도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산업부(Industry Canada)는 휴대폰 기지국이 위치 선정을 승인제로 하고, 휴대폰과 기지국이 기준을 준수하는지도 평가하기로 하였다. 안전지침 6에 따라 라디오파 발생장치와 시설에 대한 인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캐나다의 모든 휴대폰이 안전지침 6의 노출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휴대폰 사용을 가급적 피하는 것, 전화기나 카폰을 사용하는 것이 휴대폰에 의한 건강위험을 가능한 줄이는 방법이다. 인공 심장 박동기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휴대폰을 겉옷의 주머니나 자켓 주머니에 넣지 말아야 한다. 전화가 걸려오면 휴대폰은 자동으로 활성 상태로 바뀌는데, 휴대폰이 심장 박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 상황에서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자료출처 : Health Canada ‘Safety and Safe Use of Cellular Phones’
번역 : 기명/노동과건강 편집팀
지난 11월 9일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서 한일중 3개국이 모여, 분진에 의한 탄광 폭발에 관한 심포지움을 열었다. 1963년 11월 9일 미쯔이 미이케(三井三池)탄광에서 일어난 탄진 폭발은 사망자 4백58명과 8백39명의 일산화탄소중독환자를 발생시켰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이 탄광사고는 에너지구조를 전환하려는 당시 일본의 석탄산업 구조조정과 합리화, 인원 삭감 정책 속에서 안전을 무시한 조업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회사의 태도가 탄광 산재와 직업병환자를 만들었다.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미이케 사고”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시아 세 나라가 모여서 국제심포지움을 연 것이다. 다음 글은 심포지움을 위해 태백자활후견기관 원응호 관장이 한국의 탄광문제와 진폐노동자의 문제를 정리하여 제출한 것이다. - 편집자 -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해 주시고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에도 부득이 참석치 못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원고를 통해서라도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미이케탄광(三池炭鑛) 미가와광(三川礦)의 대폭발이 있은지 40주년을 맞게 되어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를 표합니다.
미이케탄광노동조합(三池炭鑛勞動組合)의 노동자교육활동과 노동자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된 합리화를 반대하는 445일간의 대투쟁사건은 한국에서도 노동자교육의 사례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가와광(三川礦)의 대폭발사건은 대책없이 기업의 논리만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된 합리화사업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CO gas로 인한 폭발사고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미가와광의 대폭발사건과 같이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번에 미이케탄광의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폭발사고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미이케투쟁이후 제2차 합리화로 탄광의 인원이 대폭 감축되면서 노동안전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폭발사고가 발생하여 458명이 사망하고 839명이 부상을 입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일개 탄광의 노동투쟁에 머물던 것이 이 폭발사고를 계기로 하여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고 노동안전에 대한 정부정책이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도 지난 90년초부터 석탄산업에 대한 합리화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 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합리화전 347개이던 탄광과 연간 2천4백만톤에 달하던 석탄생산량이 2003년 현재에는 가동탄광 9개에 연간 석탄생산량도 200만톤으로 줄어들어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합리화로 인한 문제가 많이 발생했고 그 후유증이 매우 큽니다. 탄광이 많이 산재해 있었던 태백시를 비롯한 태백탄전지역1)은 석탄산업합리화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입니다.
90년 1월부터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이 시행되어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많은 탄광들이 폐광되면서 태백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태백시의 경우 43개에 발하던 탄광중 93%가 폐광되고 현재 3개의 탄광만이 남아 있습니다. 20,000여명이던 탄광노동자도 5,000명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석탄산업이외에는 다른 산업이 전혀 없는 미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태백시는 일자리를 잃은 많은 탄광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타 지역으로 떠나면서 연 평균 8.2%의 인구감소현황을 보이면서 1988년도에 11만5천명에 이르던 지역 인구는 2000년도에는 49.5%가 감소한 5만7천여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급속한 인구감소현황으로 태백시 일부지역은 지역공동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고 폐광이후부터 장기적인 실업상태에 있거나 새로운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재해로 인한 후유장애를 겪고 있는 산재환자들과 진폐증으로 대표되는 탄광직업병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부주도의 합리화 정책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탄광 중 내년도에 2~3개가 폐광되고 나면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리화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부가 방치한 문제들이 남아있고 이를 합리화사업이 종결되기 전에 가시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지역경제회생 방안의 마련과 장기실직자와 빈곤층 및 진폐증 환자 등 산업재해자들을 위한 대책마련입니다.
먼저 폐광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탄광지역의 도시들이 석탄산업을 대체할 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이미 1993년부터 태백탄전지구 내에 있는 태백시를 비롯한 탄전도시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폐광일변도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고 지역사회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폐광일변도의 합리화사업을 계속 추진하였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는 1995년 초부터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대정부저항운동이 펼쳐졌고 시간이 갈수록 시민불복종운동의 양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1995년 3월 3일 장원남부 폐광 지역내에 내국인줄입 카지노(CASINO)의 개설과 ‘대체산업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한 폐광지역발전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약속하면서 일단락을 맺었습니다.
3․3 합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전지역이었고 합리화 이후 폐광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던 강원남부 폐광지역 4개 시도의 7개지역(태백시, 삼척시 도계읍, 정선군 고한, 사북, 신동읍 남면, 영월군 상동읍)의 주민대표들이 모여 ‘강원남부폐광지역주민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결성하였습다. 그리고 연대회의는 3․3합의로 얻은 성과물인 ‘특별법’의 제정을 위한 주민입법운동을 본격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특별법제정운동의 과정은 길고 지리했습니다.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고원․산악지형인 지역의 특성상 산림과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정부 및 환경단체의 입장과 적절한 개발을 통해 지역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민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또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설립하는 것을 반대하는 경실련 등 전국규모의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한 저항에 부닥치면서 주민입법운동은 여러 번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연대회의에 참여한 지역간의 소지역주의와 이해관계들이 얽히면서 여러 차례 갈등과 첨예한 대립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폐광지역이 처한 심각한 상황들을 직접 목격한 수도권의 시민사회단체 및 환경단체들의 입장이 변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정부도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제로 개발의 이익이 주민들과 지역의 소외계층에게 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규제를 풀어서 개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직내의 갈등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당초 정부안대로 내국인 출입의 카지노를 정선군 고한․사북지역에 설립하는 것을 타지역이 인정하면서 특별법제정운동은 순탄하게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11월에 2005년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발생하는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듬해 시행이 되면서 강원남부폐광지역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시행된지 올 해로 8년째를 맞고 있으며 3년 후면 법의 효력이 끝나는 시점에 이르렀지만 강원남부폐광지역의 개발은 원점에서 맴돌고 있고 석탄산업을 대체할 신산업의 유치와 활성화는 연이어 실패로 끝났습니다. 지역주민들이 출자하여 설립한 태백시민주식회사 등 주민주도의 지역개발을 시도했지만 역시 재원확보의 어려움과 IMF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폐광지역의 경제적 활성화와 주민고용창출 및 복지증진이라는 목표를 갖고 설립된 내국인출입 카지노2)만이 활성화되어 폐광지역의 어두운 밤하늘을 조금이나마 밝혀주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추진되었던 주민입법운동은 내국인 카지노 하나만 제대로 설립하는 이른바 ‘카지노법’이 되었다는 대내외적 비판과 함께 아직 폐광지역의 효율적인 개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특별법의 시한을 연장하기 위한 주민운동이 다시 시작되고는 있지만 워낙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도로 등 교통망이 열악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지자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불황이 겹치면서 외지 기업의 투자 등 민간자본의 유치여건마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 지역의 경제회복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폐광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대두된 문제는 폐광으로 인한 대량실업과 인구의 외지 유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노동력의 상실로 외지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외지로 나가서라도 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젊고 노동력이나 특정한 기술이 있거나 어느 정도의 자금이 있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외지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늙고 노동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인데다 자금도 없는 경우입니다. 이들이 장기적인 실업상태에 머물게 되고 지역사회의 새로운 빈곤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진폐증환자이거나 산재후유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부는 이들과 같은 소외계층에 애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탄광이 가장 많이 있었던 태백시와 정선군의 진폐환자들은 4,148명3)입니다. 전국적으로는 진폐환자의 수가 전국진폐재해자협회는 5만7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공식적으로 16,709명이고 현재 병원요양중인 진폐환자는 2,738명이라고 발표하여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4) 그러나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태백탄전지구내 5개 요양병원과 이웃한 동해시의 요양병원 등 강원남부권 6개 병원에 요양중인 진폐환자는 1,271명에 이르고 있고 법이 정한 기준에5) 의거 요양 등의 지원에서 제외된 ‘재가진폐환자들6) 까지 포함한다면 단일지역에 상당수의 진폐환자들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진폐환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이 50세 이상(96.3%)의 남자(94.4%)들이고 초등학교 졸업미만의 저학력자(74.0%)입니다. 대부분이 자녀와 떨어져 혼자 또는 부부만이 살고 있고(69.1%) 자녀가 있더라도 19.5%만이 월 37만원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의 한 달 수입은 요양급여를 받고 있는 요양진폐환자와 그렇지 못한 재가진폐환자간에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양진페환자 경우 월 100만원 - 150만원이 75.7%인 반면에 재가진폐환자는 100만원 미만이 86.3%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재가진폐환자의 절반정도는 복지단체, 종교단체 등의 경제적 후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빈곤상황임에도 이들 대부분은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며(80.7%)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일거리도 부족하고 노동강도가 높은 일용직이 대부분인데다 고령 및 질병으로 인한 노동능력 상실(82.9%) 때문입니다. 특히 재가진폐환자의 경우는 자식이 있을 경우 정부의 공공부조에서 제외되어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7)
진폐환자들은 심각한 빈곤선상에 놓여있으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지극히 제안적입니다. 지역의 복지단체인 사회복지법인 태백사회복지회가 1995년부터 빈곤한 진폐환자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지원사업(월 5만~15만원)을 실시했고 요양혜택을 받지 못하는 재가진폐환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내 의원(dispensary)과 협력하여 무료 진료와 투약사업을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했습니다. 또 지역의 라이온스클럽 등 봉사단체가 극빈한 재가진폐환자들의 자녀장학금 지원과 생계비 지원을 하는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진폐재해자협회가 태백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협회의 주 수입원이 되는 요양진폐환자들을 중심으로 한 진폐제도와 정책의 개선에 치중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였을 뿐이고 재가진폐환자들을 포함한 빈곤진폐환자들을 위한 구호사업은 전혀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협회의 소극적인 대응과는 달리 태백탄전지역의 의료인, 시민운동 활동가들과 진폐환자들을 대상으로 구호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태백사회복지회가 중심이 된 복지단체가 모여서 1999년에 ‘진폐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시민모임’)’을 구성하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폐협회는 오히려 시민모임에 강한 적대감을 보였고 진폐문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대립적 양상으로 몰고 갔습니다. 진폐문제는 오직 협회만이 나서서 정부와 협의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진폐문제의 당사자도 아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직(‘시민모임’을 지칭)이 이 문제에 끼어드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협회의 일관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진폐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노력을 하면서도 이원화된 채 제 각각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어서 큰 힘이 실리지 못했고 정부의 진폐정책과 입장에도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4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진폐문제에 대한 국회차원의 국정감사가 실시되었는데 이 자리에 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던 인사들이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진폐문제의 심각성과 정부의 무대책을 진술, 성토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특히 2000년 11월 7일에 열린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국정감사장에 필자와 태백지역의 재가진폐환자 1명이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진폐문제의 실상을 낱낱이 진술하였고 이 자리에 함께 했던 노동부장관과 노동부 진폐문제와 관련한 부서의 국장 및 담당 실무공무원들은 여야를 떠나 참석한 국회의원들로부터 쏟아지는 비판과 실질적인 대책을 추궁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진폐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2001년 1월부터 노동부는 국정감사시 제기된 진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수립에 착수하였고 그 해 6월에 진폐환자의 재활을 포함한 “산재환자 재활사업5개년 계획 세부실천사업”을 발표했고 3개월 뒤인 9월에는 “진폐환자보호종합대책”을 발표하여 진폐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대책들을 잇달아 내 놓았습니다. 특히 진폐환자 보호 종합대책에는 ‘진폐요양범위의 확대’를 비롯해 진폐환자재활프로그램 개발 및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의 설치 등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조치들을 담고 있어 합리화사업 이후 방치되었던 진폐문제들에 대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진폐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은 진폐문제를 풀어나갈 새로운 대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현재 진폐환자요양체계는 법이 정한 합병증이 있거나 중증도의 호흡곤란을 겪는 진폐환자들만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질병이 진행되는 진폐증의 특성상 한번 입원하게 되면 짧게는 5~6년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병상을 차지하고 있어 병상은 한정되어 있고 새로운 요양대상자가 발생하여도 요양의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이 건립되면 합병증의 치료가 완료되었고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 없지만 일정기간 보호가 필요한 고령의 진폐환자들과 경증의 요양환자 들을 예외로 수용하여 보호와 재활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요양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있던 재가진폐환자들에게도 시설을 개방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폐환자 보호요양시설의 설립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었으나 이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전문연구기관 및 시민모임과 진폐협회의 입장이 각각 차이가 있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모임에서는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이 지역사회로 열린 시설이 될 것을 전체로 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실질적이고도 종합적인 진폐환자보호프로그램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구체적인 답변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모임은 지속적인 대정부 요구를 통해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은 2001년 6월에 수립된 재활사업 5개년 계획 및 진폐환자종합대책에 의거한 정부의 적극적인 진폐환자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의 산물로서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향후 난마처럼 얽힌 진폐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 나가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따라서 이 시설이 합리적이고 효율성 높은 시설로 정착되고 당해 지자체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협력, 당사자인 진폐협회와 전문가 그룹, 정책당국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개설, 더 나아가 계량적, 질적 평가를 통한 괄목할 만한 실적을 냄으로써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전국적으로 제2, 제3의 시설이 확대되도록 하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은 금년 7월에 태백시에 설립이 결정되어 현재 부지매입작업을 하고 있고 2004년도에 공사를 착공하여 오는 2005년말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태백탄전지구로 대표되는 한국석탄사업의 현실과 합리화사업으로 인한 폐광으로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실상들을 간략하게 기술했습니다. 지역경제의 회생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주민입법운동의 전개 등 한국사회 내에서도 흔치 않은 주민운동이 적극 전개되었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의 개발효과와 수익을 둘러싼 지역간, 대 정부와의 이해대립과 갈등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어 당초 특별법의 입법취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우려가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이 가진 지역적 특수성과 천혜의 환경을 살리면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모을 필요가 있고 지역간의 협력과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敦篤해져야 합니다. 지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전투적인 주민운동이 아니라 지역간, 지자체 등과의 협력적 감시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고 좀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주민운동의 조직화가 요구됩니다.
또 진폐문제 등 폐광 이후 지역사회의 과제에 대해서는 협회와 시민조직의 이원화된 상태에서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각각의 대응을 해 왔으나 꾸준한 노력의 결과 진폐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진폐환자보호요양시설의 설치와 요양범위의 확대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정부정책의 동향을 꾸준하게 감시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일본의 ‘전국안전센터’와 같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황화탄소 중독 등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직업병 등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사회의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유독 가장 많은 직업병환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진폐문제에 한해서는 관련NGO의 활동도 미약한데다 대응노력도 일본사회보다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진폐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운동의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강력한 NGO 조직이 필요합니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가 있지만 협회의 운동역량에 대해서 현장에서는 매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 정책의 개발과 협상 등 대응형태도 시스템화 또는 정예화 되지 못한 채 회장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어 더더욱 진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료, 노동문제전문가, 사회사업가 등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NGO의 출현이 시급합니다.
각주)
1) 태백탄전지역은 태백시를 비롯해 정선군 고한․사북읍, 삼척시 도계읍, 영월군 일부 지역 등 강원도 남부지역의 대규모 탄전지역으로서 국내 굴착이 가능한 무연탄의 40%인 6억8천만톤이 이 지역에 매장되어 있고 그 중 반 이상이 태백시에 매장되어 있다.
2) 내국인출입의 카지노를 법으로 명시하여 설립하도록 한 것은 파격적인 조치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카지노를 전국 13개소에 허가하였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도박을 허용하였을 뿐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박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원남부 폐광지역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폐광지역 1개소에만 허용한다’는 단서를 달고 정부가 어쩔 수 없이 허용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2000년도에 정부 및 지자체 지분 51%와 민간지분 49%로 2000억원을 출자하여 국내 첫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 카지노 리조트호텔 ‘강원랜드’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강원랜드 카지노는 매년 급성장을 하여 개장한 후 3년간 매출액이 1조117억원에 당기순이익은 4,805억원에 이르렀고 2003년에는 한 해 매출액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급증하고 있어 도박산업이 갖는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다만 지역경제와 지역주민의 복지향상을 위한 투자가 늘어나고 고용의 기회를 많이 만들었으며 아직 미약하기는 하지만 폐광지역의 경제를 회생시키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3) 사단법인 전국진폐재해자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현황이며 태백시가 2,776명 정선군이 1,372명이다.(2000년 12월 현재) 그러나 실제로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이 상당수 더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이렇게 전국진폐재해자협회와 정부의 통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원인은 진폐증을 인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는 탄광재직경력이 있고 진폐증 심의를 받은 사람들을 모두 진폐환자로 인정하고 있어 합병증의 유무에 상관없이 협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협회는 2000년 12월 현재 진폐환자를 진폐증 심의를 받은 53,045명을 포함하여 5만7천여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노동부)는 진폐심의를 거쳐 진폐증으로 판정된 사람에 한하여 진폐증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2000년 12월 31일 현재 진폐환자는 16,709명으로 공식 발표했다. 진폐협회의 주장에 문제는 있지만 진폐증의 판정기준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현행 법과 제도에 따라 진폐증 판정에서 제외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주장에도 문제는 있다.
5) 진폐의예방및진폐근로자의보호등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2조의 규정에 따르면 ‘폐결핵, 결핵성흉막염, 속발성기관지염, 속발성기관지확장증, 속발성기흉, 폐기종, 폐성심, 폐암과 진폐증의 판정기준 제18조에 따른 심폐기능의 고도장해가 있는 진폐환자가 요양대상이다.
6) 협회에 조차 등록되지 못한 진폐환자들은 법이 정한 9종의 합병증에 해당되지 않는 합병증을 가진 진폐환자와 합병증이 없는 진폐환자들은 이른바 ’단순진폐환자‘로 분류하고 사실상 진폐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진료 및 요양과 보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이러한 진폐증환자들을 ’재가진폐환자‘로 부르고 있다.
7) 태백자활후견기관(2001), 2001 테백진폐재해자의 삶-태백지역 진폐재해자 실태조사 보고서, 2001.6.1 pp63~77 및 유범상 외(2002), 진폐노동자재활프로그램개발-질병의 치료와 빈곤의 해결, 한국노동연구원, 2002.4.30 pp148~172에서 인용함
“더 이상 웨스트래이는 없다” 캠페인
이 법의 제정은 캐나다 금속노조의 투쟁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은 일명 ‘웨스트래이 법안’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는 1992년 노바 스코티아주 스텔라튼에 있던 웨스트래이 광산 폭발 사고로 26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사망한 후, “더 이상 웨스트래이는 없다(no more westray)”는 구호 아래 진행된 캐나다 금속노조의 일련의 사회적 캠페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캠페인의 결과 2000년에 두 개의 개인 의원 입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그리고 금속노조의 활발한 활동으로 금속노조 활동가들과 의회의 인권과법률 상임위원회 위원들과의 토의가 이루어졌다. 이 토의 결과 상임위원들은 두 개의 개인 의원 입법안의 정신을 반영한 형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제출하도록 하는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에 총선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정부의 법안 제출이 늦어졌다.
< 캐나다 수상이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웨스트래이 법안’을 전달하고 있다>
캐나다 금속노조는 위의 법안이 기업의 최고관리자에게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책임을 지우는 정도가 불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재의 법안이 기업의 최고관리자가 자신의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의 특정 의무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대리인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최고관리자의 책임이 면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법안은 작업장 안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노동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이에게 부여하고 있는데, 노조는 이 책임을 최고관리자와 경영자에게 포괄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두 번째 언급한 이유 때문에 현재의 법안은 작업장 안전의 법적 책임을 하청업체나 계약업체에 지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노조는 이는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작업장 안전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기업의 최고관리자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제정된 것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생명을 고의로 위험에 빠뜨리는 기업과 임원 및 경영자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랜 동안 힘들게 싸워 왔다. 90년대 중반에는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웠고, 청문회 결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내었다. 이후로 우리 활동가들은 하원의회와 상원의회의 모든 정치인들을 만나 지지를 요청하였다. 나는 우리 노조원과 우리 운동을 지지해 준 모든 이들이 자랑스럽다. 특히 신민주당은 연방의회에서 우리 입장을 충실히 대변해 주었다. 웨스트래이 희생자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그들의 가족은 더 이상 웨스트래이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자료 : 캐나다 금속노조 홈페이지(www.uswa.ca)
정리 : 김종민(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
안이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하게 보였던 거품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열정? 혁명론? 사상? 아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음을 또한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최근 일이다. 지난 여름, 나에게 사색을 주는 시간은 언제나 출퇴근길이었다. 남한강은 새벽녘에 흐름의 자취를 안개로 남겨두었고, 반딧불은 나의 퇴근길을 반겨주었다. 나지막한 길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들, 그 사이에 반짝이는 반딧불의 애벌레, 이런 풍경과 어울리는 벌레 소리들. 하루하루 이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일상이 되어있었으며, 나는 이런 풍경을 즐기고자 자전거 대신 도보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시간의 흐름을 논을 점령한 일직선의 벼들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발견하던 나에게, 미처 가슴에 와 닿지 않던 늘 그러한 일상들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며 최근에야 늘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다. 존재하는 것은 다듬어지고 길러지는 것만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전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들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산부추, 며느리 밑씻개, 수까치깨, 등근 매듭풀, 바늘사초, 산숙, 구절초, 쑥부쟁이, 사철쑥, 새콩, 굉이밥,꿀풀, 새잎 양지꽃, 쇠뜨기, 조밥나물, 석잠풀, 박주가리 덩굴, 딱지꽃, 황금, 제비꽃, 달맞이꽃, 배초향, 땅빈대, 물봉선, 쇠별꽃...
아이러니하게, 감옥에서의 고민과 사색은, 일상적인 삶을 박탈당하는 조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일상적인 삶과, 생명과 인간의 조건에 침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조금한 햇빛이 아쉬워 온몸을 던지는 암실의 화초가 된 것처럼, 감옥 창문 같이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검증하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처절하게 즐겼던 것이다. “시대의 불행은 시인의 행운”이라는 황지우의 말을 따로 두고서라도, 지난 한국 정치 현실의 엄혹함은 우리시대와 민중에게, 긴 산통이후 태어난 옥동자처럼, 옥중문학을 선물했다.
야생초 편지는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황대권씨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 것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도 또한 우리처럼 “내 인생을 내 의지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영어의 몸으로 지내게 되자, 거대담론의 이전을 구성하는 미시적 세계에 눈을 띄게 되었다. 살아있음에도 살아있지가 않는, 죽음의 이전 단계에 이르자, 몇 가지 계기로 인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감옥에서 허약해진 자신의 몸을 치료하고자 야생초를 먹다가, 척박하고 험한 교도소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뿌리내리고 있는 야생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식물종- 물론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입니까.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 야초는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아직 그 가치를 잘 몰라요.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잡초를 공부하다가 발견한 아주 멋들어진 정의가 하나 있어요. 에머슨이라는 학자가 붙인 정의인데요.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다.” -황대권씨의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모임 강연에서-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식물종- 물론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입니까.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 야초는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아직 그 가치를 잘 몰라요.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잡초를 공부하다가 발견한 아주 멋들어진 정의가 하나 있어요. 에머슨이라는 학자가 붙인 정의인데요.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다.”
-황대권씨의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모임 강연에서-
그는 제국주의의 지배력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력에도 강제되어 있다고 보면서, 이런 제국주의적 농업을 극복하는 길을 야생초의 생명력에서 찾고 있다. 역으로 생명력에 기반한 공동체주의에서 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한다. 베트남이 미국의 침략을 물리친 힘의 근원은 바로 마을 공동체였으며, 이런 공동체의 연대감이 제국주의에 맞서 제 3세계 민중들이 자주적인 삶을 살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공동체주의는 기존의 사회주의나, 아니면 공산주의 이상론보다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나라는 적고 백성이 적은- 이웃나라의 담장이 보이고 이웃나라의 닭소리가 들리는-” 동양의 고대 이상사회였던 대동사회(大同社會)에 기초하는 듯하다.
이제까지의 거품의 빈 공간의 속에 무엇이 빠진 것일까? -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우리의 생각이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웠던 것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에 기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 생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것이 바로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바로 살아있다는 것, 거대한 희망을 쫓지 않더라도 조금만 발을 내려다보면, 미시적 즐거움이 또한 자리 잡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수많은 말과 말사이, 그사이의 침묵과 침묵 속에서 우리는 의심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의미가 있다는 것과 의미가 없다는 것- 그것이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정말 삶”에 기초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내가 있는 양평에 있는 식당에서 양념이 아닌 “약념”으로 요리를 하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석 먹은 구절초 무침은 정말 예술이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며, 또한 매콤한 양념과 더불어, 똑 쏘는 떯은 맛은 한 번 맛본 사람은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야생초 편지에서는 구절초 김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자연 야초로 음식을 하는 식당을 소개하자면, 양평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는 남한 강변에 따라 ‘옹화산방’, ‘산당’ 그리고 경기도 광주에 ‘담원’이라는 식당이 있다. 양평에 오시는 분은 즐겁게 야생초 식사를 하고 가시라.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한꺼번에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다가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에 실망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요즘처럼 힘 든 시대가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 - 학교 동창생들이나 일가친척, 교회의 교인들 앞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는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일에 직․간접으로 몸 담아온 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대통령 정부를 겪었지만 요즘처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로부터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말은 그동안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있다"거나 "일부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세련된 말씨로 하루가 멀다고 노동조합을 비난한 적은 없다.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대기업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양심에 손을 얹고 고민해 보라"고 엄숙하게 충고하는 대통령의 말을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직 전교조 위원장이 처음 구속된 것도 '감히 교사들이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눈을 치뜨며 꾸짖는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를 길들이려고 하는 노동자의 요구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사연하는 말은 그 표현만으로는 한 치의 오점도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그 말은 결국 “국민들에 의해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는 정부”라는 뜻이니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불법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건설교통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분에 대한 민사상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실제로 정부가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구속, 수배, 경찰병력 투입, 강제 해산, 해고, 손해배상 청구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수단들이 한꺼번에 동원되는 상황을 보면서 노동조합이 과연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할만큼 예년보다 특별히 많이 법을 어겼는지, 특별히 과격하게 투쟁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이 과거보다 더욱 과격하거나 빈발해진 것은 아니다. 노동쟁의 건수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수는 예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노동자들이 예년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무분별한 파업을 벌였다"고 느끼고 있다.
언론이 "현대자동차 파업이 한 달을 넘겼다"고 한결같이 보도하면 사람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한 달 동안 손을 놓고 일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올해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예년과 달리 부분파업과 순환파업을 되풀이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와 국민정서를 고려한 노동조합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을 것이다. 잔업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파업 방식을 놓고 "이게 파업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을 듣는 언론조차 노동문제를 특집기사로 다루면서 "노동조합이 민심 얻기에 실패했다",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을 곱씹어봐야 한다",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대중 정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예전보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한국 사회 전체 소득분포에서 그들의 경제적 지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노동자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어느 정권 아래에서도 불평등구조가 완화되는 쪽으로 그래프 방향이 바뀐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임금이 인상돼도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삶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각종 지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반면, 소수 재벌에게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사회 불평등구조의 심화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의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해롭다.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으면서도 IMF로부터 구제금융이라는 긴급수혈을 받고서야 겨우 살아날 수밖에 없었던 치욕적인 사태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건전한 내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 부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창출되는 내수는 그 나라 경제체제의 지속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토론의 달인'이라는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련된 표현으로 대기업 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정부는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국가변란에 준한 사태에서나 사용되는 '긴급조정'을 검토하고, 노동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더욱 보수화되어 예전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거듭하고, 야당은 주5일노동제 도입을 빌미로 "노동현장의 파업을 중지하거나 자제토록 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그야말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하더니 급기야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 나아가 정부는, 기업이 근로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고, 정리해고 사전예고기간을 단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현재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아니라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완화하겠다는, 시대에 역행하는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과거 군사독재라고 불리던 시대에도 없었던 현상들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이 지나치게 앞서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개혁 지향 소수파의 상징으로 여겼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출범만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는 이미 완성됐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 대통령이 당선되는 바람에 보수세력이 잠시 움츠러들어 있는 동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커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과 정부의 관료들은 물론 언론 종사자와 국민들까지 모두 그런 착시현상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노동조합을 공연히 불온시하고, 자신의 불편을 참으면서 노동자의 파업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민의식 수준은 흔히 말하듯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돼있는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아직도 소수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기현상이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의 천박한 수준을 말해준다. 국민들이 노동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는 평균적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번도 정상화되지 못한 채 다시 중대한 시련을 맞고 있다.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이다.
8월 21일자 오마이뉴스에는 「여수산단 '죽고 또 죽고'...집진기에서 사망,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 사망자와 도급업체에 책임 전가」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8월 18일 여수산단 남해화학 공장에서 하청업체의 비정규 건설노동자가 분진제거용 집진기 내부를 청소하다가 미끄러져 집진기에 빨려들어가 죽었다. 올해 스무살이었던 노동자는 올해 들어 여수산단에서 사망한 7번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사고 당일에는 큰비가 오고 있었는데도 안전 담당자가 현장에 없었다. 발주처인 남해화학에서는 하청업체와 1년간 도급계약을 했기 때문에 안전관리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여수지역건설노조의 조합원은 "집진기 전원을 완전히 차단시킨 후에 작업자를 투입해야 하는데, 기계가 작동 중인 상태에서 작업자를 투입했다, 고의적인 살인행위"라고 격분했다.
이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여수 산단에서 또 한명의 건설노동자가 금강KCC 에서 지상 6미터 높이의 P.T아시바 상부에서 작업하다 추락하여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으로부터 날아들었다.
노동부가 8월 19일 발표한 '상반기 중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올 6월까지 산재피해자는 4만66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가 늘어났으며, 사망자는 1482명으로 지난해 1242명 보다 240명(19.3%)이 늘어났다. 우연과 불가피를 주장하는 정부와 자본의 두터운 낯에 비례해 노동자의 사망은 줄어들 줄 모른다.
사망사고가 왜 계속 일어나는가. 왜 같은 업종에서 계속해서 죽어나가는가. 구조적 요인이 있다. 구조적 요인을 제거해야만 노동자의 사망행렬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산재사망이 왜 구조적 요인에 의한 살인인지 밝히려 한다. 우리는 예고된 위험을 방치하는 기업의 행위가 범죄행위 임을 입증하고자 하며, 그에 마땅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편집자 -
신자유주의 대응 전략으로서 '기업살인' 운동의 의의
7-80년대에 한국사회를 지배한 성장 패러다임은 산재 문제만 보더라도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전시 동원체제를 방불케 했던 개발독재 시대에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다치고 병들어 효용가치가 떨어질 경우 기계에 새로운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로운 산업예비군으로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산재란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또는 사회적 비용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산업역군 또는 산업전사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총자본은 개발독재 시대의 물리력을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함께 성장하였고 사회권 확대를 위한 진보운동 및 민중의 지속적인 투쟁의 대가로 부분적이나마 인권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총자본은 과거와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산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총자본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단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복지의 과잉에 따른 생산력 및 생산성의 정체’(?)라는 구조적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한국판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이데올로기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의 성장 논리, 전사 논리가 강력한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에 관한 미국의 노사 자율관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정부 주도의 규제 방식은 안전보건에 효과가 없기 때문에 노사간 자율적 해결 원칙에 근거하여 정부와 전문가가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안전보건의 획기적 진전을 이루자는 주장은 단지 이데올로기 효과만을 노린 '자본의 음모'로 치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이러한 담론과 구체적인 정책이 미국에서 사회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산업구조 및 생산조직의 변화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정부 주도의 규제가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전제된 것이란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여기에 오랜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의 전통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핵심적 의제 중 하나인 ‘형식적 규제 완화’가 의미한 바는 전통적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생산조직 및 생산패턴의 변화라는 구조적 조건이 형성되었으며,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가 주요한 흐름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보건의 문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건과 환경 등에 투입되었던 비용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또는 시스템을 강제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영미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자국 내에서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종착역이 아닌 계급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의 분할과 노동조건의 변화를 통하여 노동과정을 새롭게 통제하려는 전략은 모순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짧은 경험 속에서 확인하고 있다. 더욱이 복지의 축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고 패러다임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산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복지의 과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수도 존재해본 적도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사실 성장 논리를 들이밀면서 한번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총자본이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모든 규제 장치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그보다 예전엔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규제 장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규제 장치가 있는지 조차 신경을 쓰지 않았던 총자본이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규제장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전술적 목표가 형식적 규제장치를 실질적인 보호 장치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으로 모아지면서 형식적 규제 장치조차 무력화하여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장의 신화, 전사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등에 업고 여전히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통적 안전보건규제가 현 시기 적합하지 않은 낡은 유물이라는 주장은 예전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규제 장치, 즉 효용성을 논할 가치조차 없었던 규제장치가 지금은 자본의 발목을 잡는 규제장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과거의 규제장치가 효용성이 없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안전보건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구조화는 영미산 신자유주의 구조화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과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밖에 없다. 여전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전통적 산업이 주요 구성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산업구조 및 생산패턴의 고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며, 주변국가로 이전이 한계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물적 조건의 취약성으로 노동의 유연화 자체가 노사정 합의구조로 정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항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산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법적 제도적 유물을 동원한 폭력적 강제 및 통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폭력적 방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분하고 문제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면서 아주 제한적인 양보만을 중심부 노동자에게 제시하고 합의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폭력적 방식의 신자유주의 구조화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완화하기 보다 증폭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결국 한국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 구조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정부 내에서조차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안전보건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혼선과 대립양상(?), 그리고 규제 개혁의 실상이라 생각된다.
앞장에서 안전보건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를 살펴보았고, 최소한 안전보건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논할만한 거리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총자본이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안전보건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노동운동 및 노동자건강권운동이 그동안 형식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장치로 만들어 나가려는 투쟁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점차 증가하는 안전보건에 대한 총자본의 부담을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보건 문제를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거나 회피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정책이나 제도 변화의 논리적 정당성 내지 구조적 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련의 규제개혁을 강제하는 방식은 문제를 더욱 커지게 만든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정리해보면, 지금은 규제개혁을 언급할 시기가 아니라, 한번도 제대로 작동되어본 적이 없는 형식적 법적 제도적 장치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로 만들기 위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할 시기란 점이다. 이러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서 정말 ‘우문’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안전보건 문제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운동 진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사업주 또는 자본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의 책임을 묻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자본-임노동 관계가 존재하는 한 노동과정이 자본의 통제 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건 및 작업조건의 결정 주체가 노동자가 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개별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통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을 상정하더라도 전체 시스템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기초하는 한 당연하게 노동자의 통제권은 총자본의 통제를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본의 통제 하에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어 있는 노동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험과 안전보건의 문제를 노동자가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노동자의 개인적 실수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대다수 안전보건 문제를 보면 대부분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고 전적으로 자본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한 주장이 아니다. 따라서 안전보건 문제를 특정화시켜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은 일면적으로 안전보건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일면의 타당성만 갖는다.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사업주에게 책임을 면해주는 면피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안전보건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안전보건의 책임,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강상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안전보건의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 이행으로 한정되어 버리게 되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앞세운 규제개혁의 실상이 규제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 아닌 형식적인 안전보건에 관한 법과 제도를 실질화 하려는 노동운동 및 노동자건강권운동의 투쟁과 사회권의 확장에 따른 보편적 권리의식의 확산에 대처하기 위한 총자본의 대응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구조적 기반과 근거가 취약한 규제개혁에 대하여 단호한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혁하고 발전시켜나가는 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매우 유의미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 유무에 맞추어질 경우 구조화된 안전보건의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총자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감시 기전이 작동하는 조직노동자의 영향력을 벗어난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여전히 성장의 논리, 전사의 논리로 무장한 정부 관료, 검찰, 법원 등 지배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며, 법적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리가 현실인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총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조, 과정, 결과 전반에 걸쳐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자 핵심 고리가 ‘기업살인’운동이다.
다른 논리를 다 떠나서 현재의 상황은 사업주의 처벌을 포함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지 않고서 안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루에 7-8명의 노동자가 노동과정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아직도 사회가 이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산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힘들지 않는가’라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비극적 현실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를 대다수 사람들이 용인하고 있다고 확대 해석해선 안될 것이다. 오히려 보편적 권리의식의 확장과 함께 모순의 깊이가 커지고 있고 분노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그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전술적 고리를 찾아내고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현재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문제의식은 매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단지 귀찮은 무엇, 비용이 조금 들어가는 무엇, 문제를 적당히 덮고 다른 수단으로 해결하면 되는 무엇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인권과 노동자의 복지는 수사에 지나지 않고 여전히 70-80년의 향수에 젖어 있다. 사실 생산조직 및 생산방식, 작업조건의 변화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것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모습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일부 전향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업장조차 조직노동자의 투쟁에 따른 한시적 미봉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문제의 심각성 또는 경각심을 일깨울 뿐 아니라 산재문제를 회피하고선 사업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수세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공세적 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점도 투쟁의 의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투쟁은 특정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몇 몇 조항을 강화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높이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총자본에 맞선 방어적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률 제정운동을 포함한 ‘기업살인’운동은 중대한 안전보건 문제를 발생시킨 사업주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하고 포괄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못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총자본에 위협을 줄 뿐 아니라 매우 공세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총자본의 약한 고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투쟁의 의의가 있다. 끊임없이 중대재해 및 산재사망을 일으키는 대규모 사업장의 산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본의 양보만이 문제의 일보 진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데, 당연히 현 시스템 하에서 문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고도화를 가져올 만한 물적 토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업주 자체를 목표로 하는 투쟁은 사업주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살인’ 운동을 통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완화의 흐름에 대하여 공세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격파하고 더 나아가 이면에 깔린 성장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혹자는 이러한 법제화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거나 사회적 쟁점이 형성될 수 있는 사안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몇 몇 집회 과정에서 확인하였듯이 노동자의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고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금속연맹이나 민주노총 등이 이러한 투쟁에 어떠한 수위로 결합하고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있다. 결합 정도에 따라 매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고 쟁점을 형성할 수 있다. 일반 국민의 관심 또는 사회적 의제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 등과 같이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몇몇 직원에게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의 최고 책임주체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식을 적극 제기하고 다른 사회단체들에게 적극적으로 제기해나간다면 공동의 문제의식을 갖는 연대가 가능하고 사회적 쟁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업살인’운동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투쟁이 아니라 현 시기 안전보건 및 노동자 건강문제의 획기적 방향 전환을 위해 매우 중요한 투쟁이고 이러한 투쟁에 기초하여 열거주의 방식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포괄적 적용 방식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정부의 안전보건조직 전면 개편 등의 투쟁을 제기해 들어갈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 및 호주 ‘기업살인법’의 도입 가능성 모색
사용자가 사업장 내에서의 안전 및 보건과 관련되어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테면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용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산안법 제13조, 제70조, 제43조, 제68조). 그런데 위 산안법은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보다는 어떤 사고가 발생한 후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적용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업장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였고 사용자에게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사용자는 형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형법 제266조~268조). 그런데 사업장 내에서의 사고가 사망 사고가 아닌 한 사용자가 구속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사망 사고가 발생하여 구속된 경우에도 재판 과정에서 보석 등으로 석방된 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그런 처벌을 받는 자는 대부분 사업장의 현장 감독관 등 중간간부들이고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현행법상으로도 산업안전보건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 규정들은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운용실태가 위와 같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위 법률들이 제정 취지만큼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범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전에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 중하게 처벌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용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예방 및 근절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노동부 및 검찰과 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현재 마련되어 있는 법령들이라도 엄격히 준수하고 적용하도록 요구해 나가는 것이다. 즉, 노동부에는 산업안전 감시 활동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검찰에는 피해 정도가 중하거나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사업장의 사업주에 대해서는 삼진 아웃제 등을 실시하여 구속 수사를 할 것 및 기업의 최고 책임자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법원에는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해 무원칙하고 온정주의적인 보석 허가 및 벌금형 선고를 지양하고 실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안은 모두 법 집행자의 의지에 호소를 하는 것으로서 그 효과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법 집행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려면 특별법을 제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이 제도화되어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것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만들어 산재 사고가 지금보다 훨씬 더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 사고의 사전 예방 조치에 대해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 처벌 내용을 규율할 특별법과 충돌할 여지가 없다. 즉, 산업안전보건법과 특별법은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공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산재사고가 발생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동시에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고 하여 특별법의 제정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형법에 업무상과실치상죄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에 처벌규정이 있다고 하여 특별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그런 법률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별법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자주 운위하고 있으나 위 법률은 교통사고 가해자를 감경 처벌 또는 면책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가중 처벌 내용을 담을 특별법과 비교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있다거나 처벌 행위를 유형화할 필요성이 있다거나 하는 사유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특별법에는 주로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 유형들을 세분화하여 가중처벌 하거나 이를테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서 야간 폭행이나 공동 폭행, 흉기 휴대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형법상 죄가 되지 않더라도 형법상 죄가 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과정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규정 이를테면 화염병을 제조한 자도(그것을 사용하여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것 등 들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특별법이 남발될 경우 사법권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되게 행사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도 산업안전보건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자의 우려와 후자의 필요성을 비교 형량하여 현 시점에서 더 절박하고 중대한 문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현 시점에서는 후자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사전에 예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고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별법 제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자를 엄중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특별법 남발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법에 규정되어야 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특별법에는 산업안전 보검범죄의 행위 유형이 세분화되어야 할 것이다. 즉 사용자가 ▲동일 현장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반복하여 낸 경우, ▲일정 숫자 이상의 인명 피해를 낸 경우, ▲명백히 예견되는 위험에 대해 안전조치를 행하지 않은 경우,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으로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상당히 많은 수의 근로자의 생명 및 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은 경우, ▲산재사고를 은폐하거나 피재노동자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 등의 행위 유형이 세분화되어 규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른 가중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산재사고 발생 사업장의 최고책임자 및 실질적인 사업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 근로기준법의 양벌규정은 다른 법률의 그것과는 달리, 기업 대표자의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 있다.
『제116조 (양벌규정) 이 법의 위반행위를 한 자가 당해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한 대리인, 사용인 기타의 종업자인 경우에는 사업주에 대하여도 각 본조의 벌금형을 과한다. 다만, 사업주(사업주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대표자, 사업주가 영업에 관하여 성년자와 동일의 능력을 갖지 아니하는 미성년자 또는 금치산자인 경우에는 그 법정대리인을 사업주로 한다. 이하 이 조에 있어서 같다)가 위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업주가 위반의 계획을 알고 그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위반행위를 알고 그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또는 위반을 교사한 경우에는 사업주도 행위자로서 처벌한다.』
이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노동부가 발표했듯이, 산재빈발 사업장을 일간지에 공표하는 등 산재 사고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항도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위 법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보건범죄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다. 위 법의 목차를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1부 : 전문 2부 : 1958년도의 형법의 개정 3부 : 1985년도의 위험물질법의 개정 4부 : 1994년도의 장비(공공안전)법의 개정 5부 : 1985년도의 직업보건안전법의 개정 6부 : 1989년도의 경범죄법원법의 개정 7부 : 1985년도의 재해보상법의 개정』
『1부 : 전문
2부 : 1958년도의 형법의 개정
3부 : 1985년도의 위험물질법의 개정
4부 : 1994년도의 장비(공공안전)법의 개정
5부 : 1985년도의 직업보건안전법의 개정
6부 : 1989년도의 경범죄법원법의 개정
7부 : 1985년도의 재해보상법의 개정』
위 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2부 ‘형법의 개정’ 부분에 규정되어 있는데, 호주의 1958년도의 형법에 새로운 섹션 11~14F까지를 규정하는 세부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섹션 13에 기업 살인이라는 새로운 법정 범죄가 신설되어 있고 『태만(negligence)으로 다음의 사람, 즉 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인 또는 기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관계하는 과정에 있는 노동자를 살해한(kills) 기업체는 기소 가능한 기업 살인죄(manslaughter)의 죄책이 있다.』 유죄가 인정된 기업체에는 500만 달러 이하의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미법상 살인죄는 모살죄(murder)와 고살죄(manslaughter)로 구분되고 과실치사죄는 negligent homicide로 표시된다.
섹션 14에 기업의 태만으로 인한 중대상해의 법정 범죄가 신설되어 있다. 『태만으로 다음의 사람 -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인 또는 기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관계하는 과정에 있는 노동자- 에게 중대한 상해를 입힌 기업체는 기소가능한 범죄의 죄책이 있다』. 유죄가 인정된 기업체에는 200만불 이하의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기업체의 고위 임원에 적용되는 새로운 범죄도 그 부분에 규정되어 있다. 기업체의 고위 임원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이 입증되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업체의 범죄 행위와 관련하여 기업체의 행위 또는 행위의 일부에 대해 조직적으로 책임이 있음. ▲자신의 조직적 책임을 이행 또는 불이행함으로써 기업체의 범죄에 물질적으로 기여함.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 기업체가 사람에 사망 또는 실제로 중대한 상해의 위험이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상당한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음.
위 법의 섹션 14D에는 기업체가 위와 같은 범죄를 행하였을 경우, 법원이 여타 다른 형벌에 추가로 또는 대신해서 그 기업체에 대해 여타의 다른 조치들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범죄로 인한 죽음 또는 중대 상해 또는 다른 초래된 결과의 내용과 부과된 형량을 공개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것. ▲범죄로 인한 죽음 또는 중대 상해 또는 다른 초래된 결과의 내용과 부과된 형량을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것.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구체화된 행동을 취하는 것 또는 구체화된 사업을 설립 또는 시행하는 것.
을 행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되어 있다.
첫째, 위 법이 기업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범죄 유형을 특별히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미법이 법인에 대해 주로 ‘법인실재설’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형법은 행위자 책임 원칙을 엄격히 견지하고 있는 관계로 기업체 자체를 일차적인 책임 주체로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법률 체계상으로는 양벌규정을 통해 기업체를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둘째, 기업 자체뿐만 아니라 고위 임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특별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법률은 고위 임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유형화하여 고위 임원이 사망 사고 등에 직접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우에도 그 임원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률상으로도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으로도 ‘책임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기업의 최고 책임자 및 실질적인 사용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의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최고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규정을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기업이 ‘과실’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도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실’의 내용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명백한 고의가 없는 경우에도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시키는 영미법 체계에 비추어 볼 때에도 상당히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산업안전사고를 근절하려는 호주 입법자들의 의지를 확실히 읽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법이 ‘기업살인법’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 법률체계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나라 법률은 고의와 과실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형사법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특별법을 통해서도 그 근간을 흔들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넷째,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고 묻고 있다는 점이다. 위 법이 일차적으로는 기업체를 처벌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형이 아닌 벌금형을 주된 처벌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액수는 우리나라 법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액이다. 위 법에 의할 경우 사망사고의 경우에는 500만불(약60억원), 상해사고의 경우에는 200만불(약 24억원)까지 부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점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위 ‘기업살인법’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위 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기업의 과실 행위에 대해서도 살인죄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법 체계상으로는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과실 행위에 대해 책임을 엄격히 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기업체 자체에 대해 바로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 우리법상으로는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법을 우리나라에 바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 법의 정신과 취지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그것은 특별법 속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타 법률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업살인자 처벌 운동’은 현 시기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안전관리비는 쌈짓돈, 안전관리자는 구조조정" - 건설산업연맹 강호연 산업안전국장 인터뷰
산재사고로 죽는 노동자의 1/3은 건설노동자다. 건설노동자들은 사망사고에 대해 할말이 많다. 건설산업연맹 강호연 산업안전국장과 함께 건설업 사망사고의 요인과 처벌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건설현장의 주요 사고 발생 형태와 사례를 말씀해주십시오.
사고원인 떠넘기기
- 다른 산업 사고에 비해 건설산업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사고나면 대형사고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고는 시설물 붕괴와 추락, 협착 등 입니다.
4월 30일 율촌산단의 현대건설 현장에서 슬라브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습니다. 2명이 죽고 18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였어요. 공사관계자들이 환자와 유가족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해서 합의서를 받아 처벌을 피하려 했습니다. 의사들에게 압력을 넣어 진단일수를 조정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처리과정에서는 아주 더러운 사례로 꼽히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좋은 사례로 꼽히지 않을까 합니다. 노조와 지역단체들이 연대투쟁을 해서 좋은 성과를 거뒀죠. 공사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이사장이 직접 현지에 내려와 수습하고 재발방지 약속과 현장 내 노조 활동보장, 유족과 환자들에게 사과하게 만들었습니다.
6월 30일에는 평택 현화지구 신동아건설의 타워크레인 붕괴로 5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타워크레인사고는 대체적으로 운전원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규명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업주들은 사망한 운전원들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사고원인을 떠넘깁니다.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을 무어라 보십니까? 정부정책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안전관리자의 90%가 비정규직
- 사망사고의 원인은 사업주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설현장에는 법의 사각지대가 많아요. 산재보험과 안전규제에서 적용이 제외된 사항이 많습니다. 규정에서는 작업환경측정이 제외됐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사업주 확인날인이 필요한데 건설 노동자들의 경우 워낙 많이 이동하고 고용관계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날인이 힘듭니다. 사고가 났을 때는 개인이 쫓아다니면서 보상을 받던지 누가 도와줘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아요. 건강검진은 제도적으로는 갖춰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것은 상당히 날림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것이 사고의 원인이죠.
사업주 무관심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정부발주공사의 경우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별도로 책정돼 있고 일반공사에서는 일정부분 책정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이 돈을 쌈짓돈으로 생각합니다. 뭐 전용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 쓰지 않고도 쓴 것처럼 영수증 처리를 하기도 합니다. 노동부의 감독대상인데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10~20%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눈먼돈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실상이 이런데 사용자 단체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사고가 나면 재수 없어서 그런 거고 안나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디다. 안전에 투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인식이 많아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대한 부분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주장을 건설연맹이 하고 있는데 근로감독관들이 전문성이 떨어지고, 회계 자료 공개를 사업주가 거부하면 강제로 확인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또 큰 문제는 전담 안전관리자가 배치되는 공사규모가 상당히 완화됐다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업주들이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안전관리자를 다 뽑았고 정규직으로 전담부서도 설치했지만, IMF를 거치면서 규정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안전관리자에 대한 구조조정 때문에 지금은 80~90%가 비정규직이고 안전관리를 전담으로 하는 사람들은 10~20%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건축 담당하면서 안전관리자를 겸임하는 식입니다.
사망사고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요? 노조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구속품신하면 검찰은 경제를 걱정한다
- 법과 규정의 전면적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적용 제외규정과 산업안전보건규정의 예외조항을 없애고, 직업병 인정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고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처와 사업주 처벌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PQ심사(환경안전 평가제도)를 합니다. 재해율의 전국 평균을 내서 이보다 상회하는 업체에게 입찰 때 감점을 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공사 수주에 영향을 미치므로 처벌의 관점에서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주에 대한 제재는 전무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여수지역에서 2명이 사망하는 사고와 평택의 5명 사망사고에서도 사업주에 대한 구속이나 처벌은 없었습니다.
노동부는 나름대로 하소연하고는 있습니다만, 구속품신을 해도 검찰에서 경제논리로 푼다고 얘기하지만 중대사고와 관련해서 기업주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 수준보다 더 미약한 게 현실입니다.
사업주들이 유족들을 회유하고 정부와 사업주가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큰 어려움입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조합은 공동조사 요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방 노동관서에서 허용이 안될 경우 연맹 차원에서 노동부를 직접 압박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모든 개별사안마다 이렇게 하기는 어렵죠.
처음부터 공동 사고조사가 가능하다면 현재보다 낳은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유족들이 사업주의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접근을 배제하려 하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어려움의 한편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공상처리를 많이 합니다. 산재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거죠. 노동자들이 여기서 망치를 놓으면 밥줄이 끊어지기 때문에 공상처리나 사업주들의 보상에 쉽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어요. 이게 사고처리 과정에서 제일 힘든 부분입니다.
산재사망사고를 기업의 살인이라고 생각하며 기업주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노건연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업경영에 타격을 줄 정도가 돼야
- 기업살인법, 처음엔 좀 섬칫한 명칭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 타당성이 있습니다. 기업주가 노동자들 데려다 노동을 시키려면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놔야되는데, 법을 무시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자동차보험에 들더라도 중대사고는 처벌을 받고 있는데 기업주들은 산재보험 하나 달랑 들었다고 모든 부분에서 면죄부를 받으려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건설현장은 사망 사고가 다반사예요. 그런 사고가 한번 나면 기업경영에 큰 타격이 될 정도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데 적극 동의합니다.
일단 연간 수천명 씩 죽는 것을 이슈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살인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 : 김낙준/노동건강연대)
최근 4월, 일부국회의원에 의해 수차 도급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책임을 현행 원도급업체(이하 ‘원청’)에서 하수급업체(이하 ‘하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의원입법형식으로 발의된 개정안이 아직 통과된 것은 아니나, 차후 정부발의입법형식을 빌어 ’통합징수법‘이란 새로운 법명으로 제정될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합리성이란 명목 하에 법 제정에 대한 찬성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산재은폐가 만연되어 있는 건설현장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이며,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증가, 산재은폐 증가를 필연적으로 부르고 건설노동자를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이 분명한 졸속적인 법안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있어 수 차례 도급으로 행해지는 사업의 경우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아 가입과 보험료 납부책임을 부과시키는 현행제도를 삭제하고, 각자의 고용관계에 따라서 그 책임을 귀속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즉 건설노동자를 고용한 가장 최하 단위의 하청업체에게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을 지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대부분 ‘오야지’로 지칭되는 자가 고용관계의 사실상 사용자가 될 것이다.
정부는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로 2005년 1월에 개정 시행될 산재보험법 개정 내용 중 건설공사의 경우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의 산재보험 확대적용을 - 무면허업자에 의한 2000만원 미만 공사 및 100평 미만 공사는 여전히 산재보험에서 제외 - 들고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개정안은 건설자본, 특히 원청인 대기업건설자본의 편의와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에 지나지 않으며, 건설노동자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2002년 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노동자는 19,925명으로 전체 산재노동자 81,000여 명 중 약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산재보상을 받은 노동자의 숫자이다. 실제로 산재로 다치고도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자기부담으로 치료받은 노동자는 제외된 수이다.
건설업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서 다단계 식으로 수차에 걸친 하도급 구조 하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5만여 개에 육박하는 건설업체의 부도가 비일비재하여 건설노동자의 노동법상의 권리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건설업체의 경우 건설수주 입․낙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소위 사무실은 없고 전화번호만 있는 유령회사가 횡행하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부도는 사실상 미리 예견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여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노임을 받지 못해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연한 임금체불은 열악한 건설노동자의 생활을 더더욱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일어났을 때 하청업체의 부도나 행방불명 등 사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산업재해 책임이 원수급인에게 있다는 산재보험법 9조에 근거하여 재해노동자가 원청을 사업주로 하여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공사기간이 한시적이라서 전체 공사기간 중 각각의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공사 기간이나 공정 또한 한 달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건설공사의 경우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의 총합으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하청업체가 맡은 공사를 독립적으로 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법에서 원청업체의 책임 귀속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건설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설현장에서의 산재발생율은 전체 산업재해 중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산재보험에 처리된 결과를 집계한 수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전체 재해 중 어느 정도가 산재로 처리되고 있는가? 건설산업연맹의 자체 통계조사에 따르면 그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꿔 말해 건설현장의 재해 중 약60%가 사실상 산재은폐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수급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될 경우 건설현장에 만연되어 있는 산재은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불확실한 소득의 흐름 구조상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산재처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청업체로 산재보험 책임주체가 변경되면 근거리에 있으면서 건설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하청업체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건설노동자 스스로 알아서 산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건설노동자들은 일용직이란 이유로, 전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고 있는 고용보험에서조차 배제되어 왔다. 특히 건설노동자의 경우 공사가 한시적으로 지속되고 일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빈번히 실업상태에 직면함으로써 누적된 실업기간이 다른 타 업종의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고 소득흐름의 불확실성이 큰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나마 고용보험에서 소외되었던 건설일용노동자가 2004년 1월부터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산재보험도 면허업자에 의한 공사일 경우 공사금액과 무관하게 전면 확대 적용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 그간 배제되어 왔던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건설노동자도 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 산재보험의 책임주체가 하청업체로 바뀌게 되면 매일 부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하청건설업체의 현실에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확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실업과 재해로 인한 고통의 몫은 그대로 건설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건설업의 경우 다양한 공정이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사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한가지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업체의 독립적인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ILO 또한 원수급인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산업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으로 변경되는 문제가 현실화된다면 원청은 건설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보건관리나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재해가 발생한다 해도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재해발생 억제 유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상 굳이 그 책임과 의무를 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이윤은 그대로 챙기게 되니 원청으로선 이익이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원청의 도덕적 해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앞서 지적한 문제점과 같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책임이 하청업체로 변경될 경우 현재 업종별 산재발생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업의 산업재해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며,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짓밟는 결과를 야기하고, 원청의 횡포에 대한 면죄부를 결과적으로 부여하는 형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하청업체로 책임 주체를 변경하는 개악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소외 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실현되고 구체화되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동현실에 기초한 정책, 그 노동현실 위에 소외계급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보건의료자원의 생산과 제공에 있어서 전적으로 시장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원조달 방식에서 공적 보험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이해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사적 의료체계에 기초하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는 보건의료서비스의 무정부성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국민의료비의 급격한 상승, 의사의 도시 집중 현상, 진료강도의 지속적 상승, 고가의료장비의 무분별한 확산과 도입 등이 단적인 예이다.
또한 극소수의 국립병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소유주체가 민간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설립 주체인 상당수의 공공병원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시장의 무정부성이 보건의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정부의 조정 및 기획 기능은 일부 건강보험의 수가 통제를 제외하면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는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고 재원조달 측면에서도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건강과 의료이용을 시장의 질서에 묶어두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는 보건의료비에서 개인부담의 증가는 재원조달의 공공성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보건의료서비스에 지출한 비용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한 몫이 41.6-53.0%에 이르러 다른 OECD 국가의 2-10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운용되고 있지만, 재정위기의 해결책으로 본인부담을 더 높이려는 방향을 설정하고 더 나아가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 제기되는 등 시장적 질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WTO 시장개방의 움직임이 가속화하면서 영리법인의 인정, 민간보험의 도입 등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 이래저래 사적 의료체계의 폐해가 더 커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2004년까지 마무리되어야 하는 DDA 협상 일정 때문에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직까지 보건의료 분야에서 명시적으로 개방을 요구한 국가는 중국 등 몇 개 국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형병원자본의 국내 진출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장을 희망하는 미국 등의 시장개방 압력은 특정 분야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 규범을 관철하여 시장개방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2001년 기준으로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간 57개소, 일반 병원급 의료기관 28개소, 요양 및 특수 병원이 24개소, 군병원 21개소,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 보건기관 3,400개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기관을 제외한 실제 진료가 주요하게 이루어지는 공공의료기관은 130개소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보면 2001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8.1%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하는 미국조차도 공공병상 점유율이 1996년 현재 33.2%에 이른다는 점을 볼 때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가 매우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DJ 정부 출범 이후 공공병상의 절대적 규모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전체 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여 5년 만에 1/5 이상 비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 1) OECD Health Data, 2002
또한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상당수가 그 기능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고 공공성 확보를 위한 체계나 기전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민간의료기관과 기능의 차이를 찾기 어렵다. 일부 국립병원을 제외한 국립대학병원이나 지방공사의료원 등은 공공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성과를 주요한 평가의 근거로 설정하고 경영수지 개선을 가장 핵심적인 병원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DJ 정부 이후 더욱 심해졌는데, 지방공사의료원의 경우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민간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지역 내 의료급여 대상자의 의료수요 중 상당 부분을 담당하였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저소득층 의료이용 보장의 마지막 보루 역할마저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경영 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공공병원을 매각하거나 민간에 위탁 운영하면서 유사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평균진료비가 유사해지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공공의료의 취약성은 예산 규모에서 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OECD 국가의 경우 평균적으로 보건의료예산만 중앙정부 예산의 14%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인 반면, 한국은 보건복지예산에서 따지더라도 2001년 현재 3%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사회 전체에 유래 없는 실직과 고용불안을 가져왔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각종 사고, 심장질환, 자살 등이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암 발생의 증가까지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실업 당사자 및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런데 불안정 노동의 증가가 가져온 건강의 위험은 실직자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강도의 강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누적된 스트레스와 물리적 부하의 증가를 해소하지 못한 채 과다한 노동강도에 의한 반복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미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작업조직의 개편과 무한 경쟁기전의 도입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자본은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로 노동조직을 재편하고 성과급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무한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노동자의 자기 통제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서 작업조직을 완전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IMF 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적 연대 또는 지원체계를 약화시키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 수준의 약화를 가져온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건강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점차 누적되고 있는 건강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며, 보건의료의 특성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장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선차적으로 요구되는 과제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체 진료비의 50% 이상을 비급여 또는 본인부담으로 해결하면서 은밀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의 재원 마련의 사적 구조를 통제하지 않는 한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따라잡기 어렵다. 공공의료기관이 일정한 예산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비급여 구조가 확대 재생산되는 한 원천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총자본의 부담을 높이고 의료보장 수준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적의료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재원구조를 사회적 통제 하에 두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민간보험 및 영리법인의 도입을 저지하는 것이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앞서 달성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간다면 민간보험의 도입의 근거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그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민간보험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확실하게 저지하지 못한다면 보건의료의 사적 성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공공의료의 자리는 더욱 왜소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의 이용 및 건강에 있어서 빈부격차의 심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중소병원의 몰락을 포함한 대형병원자본 중심의 재편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공공보건의료가 확대 강화해야 할 근거 및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명해내는 작업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해야만 가난한 사람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이윤창출 행태를 폭로하고 그러한 행태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대다수 민간병원의 의료행태가 왜곡되어 있고 불필요한 곳에 과다한 의료자원이 집중되어 있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의 확대는 결코 저질의 의료를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필요에 따라 양질의 적정 의료를 제공하자는 것이고 국민 전체로 보아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의제를 선점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정세적 조건에서 공공의료의 확대를 구체적인 일정으로 올려놓는 작업이 쉽지 않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내년 총선을 계기로 일정한 사회적 의제화가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향후 10개월 동안 보건의료운동 진영이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흐트러진 조직을 정비하고 내부 이견을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작업에서부터 가능한 한 전문가 풀을 확대 강화하고 각종 매체 및 교육선전 도구를 활용하여 사회적 의제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준비된 활동만이 실제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주장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