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4-25 오후 4:30:43
4. 시민이여 노동자로 연대하자해고를 사기업의 내부 문제로 생각하여 방치하거나, 고용유연화를 조장하는 정부의 행태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유시장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장바구니 물가를 챙기고, 한복 차림의 고객을 홀대했다는 호텔에게 국회의원이 호통 치는 곳이 한국이다.또한 이 나라는 정부가 직접 나서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고와 비정규화가 구조조정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기업들 앞에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노동자는 기업의 종복이 아니라 국가의 시민이다. 특히나 이번 쌍용자동차 사례에서처럼, 책임있는 경영진의 존재가 불분명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시민들은 소비자의 정체성으로 기업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민 자신이 노동자로서 연대해야 한다. 매일 당장 때려치우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맡은 일을 해내려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봄날 월차 내기를 꺼려하는 성실한 직장인, 당신들이 바로 노동자다. 생계를 위해서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든, 일이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한국 사회에서 해고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화는 기업이 너무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버렸다. 반면 사회적 안전장치가 전무한 속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유례없는 상처와 고통이 되고 있다. 정부는 팔짱끼고 앉아서 사태를 '관람'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 2012년 1월 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 ⓒ 노동건강연대 감정노동
2012년 1월 28일 저녁, 서울 대학로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에 참석한 사람들이 '감정노동과 감시통제 :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다'를 주제로 한바탕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의 사회로 시작한 감정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두 토론자의 열띤 경험담과 동료들의 이야기들, 참석자들의 열띤 반성 및 제안들로 채워지느라 결국 제시간에 토론회를 끝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인 마트 노동자의 이야기와 대학병원 간호 노동자의 감정노동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너 공부 안 하고 떼쓰고 그러면 마트에서 일한다"
대형마트에서 10여 년 이상 일을 해온 이희영(가명)씨는, 그 세월에 걸맞게 다양한 감정노동의 경험담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장 처음 꺼낸 이야기는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는 동료 A의 이야기입니다. 여름날 마트에서 수박을 사간 고객이 고객만족센터를 찾았습니다. 구입한 수박도 안 들고 와서는 수박이 하나도 달지 않고 맛도 없으니 환불해달라고 했습니다. A는 그 수박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와야 어떻게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 고객을 돌려보냈고, 얼마 후 그 고객은 아주 작은 수박 한 조각(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을 들고 와서 결국은 환불해주었다고 합니다.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이해 안 가는 환불 요청'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심지어 다양한 환불이 반복되는 고객들도 있고, 그 횟수도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봐도 올바르지 않은 듯 한 행동들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회사에서는 특별히 환불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아 고객이 끝까지 우길 경우 환불을 해주어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 놓여 있는 노동자는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동료 B는 오늘도 열심히 군만두를 굽습니다.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자르기도 하고, 앞에 서서 기다릴까봐 재빨리 만두를 올려놓느라 화장실을 갈 틈도, 잠시 앉아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 멀리서 젊은 엄마, 중년의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면서 "너 공부 안 하고 떼쓰고 그러면 마트에서 일한다!"라고 하면서 지나갑니다. 엄청난 수치심과 분노가 생기고 때로는 너무도 위축됩니다. 그러나 절대 고객에게 화내면 안되고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도, 표정으로도 드러내면 안 되기에 묵묵히 일을 합니다.
요즘은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분들이 학력도 다양하고 연령도 다양한데, 사회적 편견과 비인간적인 태도로 너무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몇몇 노동자가 겪은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시식코너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합니다.
계산했느냐 물었다고 '막말'... 결국 사표 쓰기도
▲ 2011년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건강권 문제를 제기한 '아주라 콘서트' 현장(서울 덕수궁 돌담길) ⓒ 노동세상
세 번째 이야기는 '동행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트에 가면 많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일을 합니다. 물건을 진열하기도, 시식을 하기도 하고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물건을 찾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마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옆에 있는 마트 노동자들에게 물건의 위치를 물으면 물건이 있는 장소까지 안내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동행서비스'입니다.
물건을 진열하다가 누군가 하나 물어보면 반드시 목적지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 정시퇴근을 위해 30분에서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그 동행서비스로 인해 업무 부담이 더 과중해졌습니다. 그런데 동행서비스를 고객들이 인지하고부터 장을 볼 목록 들고 노동자에게 보여주며 물건을 다 찾아달라는 고객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미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노동자는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업무를 수행합니다.
마지막은 계산원 노동자입니다. 민주노총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놓아주자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나 간신히 앉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할 뿐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앉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눈치 보이는 일입니다.
어느 날 이씨의 동료 C는 계산을 하던 중, 손님의 유모차에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객님, 그 물건은 계산하신 겁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손님은 "내가 도둑으로 보이냐, 니가 뭔데 날 의심하냐"로 시작해서 결국 그 C를 직원휴게실로 부르고 상급자를 불러서, "너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우리 집에서 식모나 해라", "내가 너를 꼭 자를거다", "저 직원 꼭 잘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결국 C는 그 손님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노동자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는 관리자가 필요한데, 무조건 고객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관리자만이 존재해서 노동자들은 더욱더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토론자 이희영씨는 "마트에서는 우리에게 '고객이 우리의 월급을 준다'고 복창하라고 합니다. 무조건 친절해야 하고, 안 된다고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작년에 대형마트들은 '통 크게' 시작해서 '착한'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손해 보지 않고 저임금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와 더 많은 친절을 강요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라며 회사가 노동자들이 도저히 감당해내기 힘들 정도의 감정노동을 생산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또 한 분의 토론회 참석자는 대학병원 간호사 최성미(가명)씨입니다. 서울지역 대형병원 간호사의 근속연수는 평균 2.5년. 간호사들이 가장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만둔다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최씨 역시 오랜 기간 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다양한 사례를 보아왔습니다. 밥을 못 먹는 것은 기본이고,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해서 물도 안 마시고 일을 한다는 간호사들의 감정노동 이야기입니다.
간호사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씨의 동료 D는 신출내기 대학병원 간호사입니다. 혈압을 검사하러 병실에 들어가 남성환자의 팔을 걷어올렸습니다. 그 환자는 간호사를 바라보다가 팔을 더듬습니다. A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신출내기 간호사입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나왔다고 합니다.
연륜이 있는 간호사라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겠지만, 신출내기 간호사에게는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에게 벌어지는 성추행과 성폭력사건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2003년 아무개대학 비뇨기과 교수가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자행한 사건에 노동조합이 문제제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때, 작은 병원 간호사들에게 지지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작은 병원에서는 차마 싸우지 못하는데 너무 고맙다고 말이죠.
한국의 대학병원은 보통 간호사 한 명당 15명에서 20명의 환자를 돌본다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 간호사 한 명당 4~5명의 환자를 본다고 하니, 이미 업무의 과중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와중에 최씨의 동료 E는 어느 날 한 환자의 이야기를 30분 동안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다른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합니다.
E는 환자와 이야기가 끝난 뒤, 남은 환자들에 대한 일을 하느라 결국 아주 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환자가 병원 홈페이지에 B를 '친절 간호사'로 신청했다네요. 여기서 다른 간호사들은 생각했다고 합니다. 1명이 친절을 느낄 동안 다른 환자 14명 이상이 불친절을 느꼈을 것이라고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 감정노동자
▲ 2012년 1월 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 ⓒ 노동건강연대
마트 노동자나 간호 노동자. 그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원하든 원치 않든 정형화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가면을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지요. 잠시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으나, "직업상 고객을 대하면서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늘상 직업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여러 가지 직업들이 떠오르실 거에요. 그리고 어찌보면 직장에서 일하는 모두가 이러한 감정노동에 휩싸여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앓을 수 있는 증상은 '우울증, 화병,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사회 불안증, 소화불량, 불면증, 위장장애, 강박증,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불감증 혹은 공격적이거나 폭력적 울화병,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등' 정말 너무 다양해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친절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결국 '위선적인 친절'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사회는 사람에게 너무도 불친절한데 우리는 그 불친절함을 사람이 베풀어주는 위선적인 친절로 위로받고자 합니다.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그리하여 때때로 '그 위선이 싫소'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고객, 환자로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주변의 노동자들이 저렇게 감정적으로 고되게 일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미소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불친절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친절한 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박혜영 기자는 노동건강연대 네트워크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위 토론회의 전체 내용을 보실 분들은 노동건강연대 누리집(http://old.laborhealth.or.kr/28435)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 덧붙이는 글 ㅣ 오마이 뉴스 원본 기사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5338 여기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상 교육과 읽을거리가 없다는 점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여기에 그것들이 없기를 소망한다. 배움은 불복종, 이단, 분파를 가져왔고, 책은 그것들을 폭로하고 위대한 총독에 저항하도록 만들어왔다. 하느님이 우리를 그것들로부터 지켜주시길!”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에 소개된 17세기 미국 버지니아 주 총독이 했다는 말이다. 이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이 기득권 계층에게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억압을 감추고 있던 무지의 장막이 걷힐 때, 사람들은 나설 수 있다. 물론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아는 것이야말로 출발점이다. 그래서 ‘알 권리’는 인권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된다.
특히나 노동의 영역에서 ‘알 권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리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다루는 물질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 일부는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대만 정부가 1970년대 반도체 생산 공정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부품 세척 뿐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작업대를 닦거나 심지어 손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낼 때에도 유기용제를 사용했다. 이는 암과 신경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이었지만, 그녀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림 : 윤필]
물론 기술이 발전하고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층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전 세계 차원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남보다 앞선 기술변화와 ‘영업 기밀’이 기업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노동자가 알 권리를 주장하려 해도, 알아야 할 내용들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술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전문가들조차 아직 유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은 간단치 않다.
뿐만 아니다. 노동자에게 건강문제가 발생해서 산재인정을 둘러싼 논란이라도 발생하면, 기업의 비밀주의적 태도와 노동자의 알 권리는 첨예하게 부딪힌다. 정부와 기업의 태도는 단순히 비밀주의라기보다 사실 ‘노동자 배제’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8년에 수행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 보고서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개인과 기업 정보가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런 정보를 삭제하고 공개용 판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진은 작년 봄에 자신들이 발간하는 영문 학술지에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학문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접근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의 책임성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동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반도체협회가 서울대학교에 의뢰했던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도 볼 수가 없었는데, 이는 당시 산재승인 관련 재판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노동자 측의 자료공개 요청에 대해 법정은 영업기밀 누설을 우려하면서, 전문 공개는 불가능하니 구체적으로 몇 페이지가 필요한지 적시하면 복사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보고서를 보지 않고도 필요한 내용이 몇 페이지에 있는지 다 알면 왜 공개요청을 하겠나?
한편 삼성은 자체적으로 시행한 작업환경평가 결과를 작년 7월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자들과 일부 전문가들의 참석만이 허락되었고, 보도자료는 물론 어떠한 인쇄물도 제공되지 않았다. 현장촬영과 녹음도 엄격하게 제한된 상태에서 해외 연구자가 영어로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지난 12월 삼성은 자사의 영문 홈페이지(Global Samsung)에 연구 요약결과와 함께 보고서 공개 사항을 게시했다. 보고서 전문의 열람을 원하면 기흥공장을 직접 방문하라고 했다. 신청자 중 허가받은 이에 한하여 1인 2회까지 열람이 가능하며, 당연히 기록이나 복사는 불가능하고, 비밀엄수 서약을 제출해야 했다. 5천 년 된 파피루스 문서를 보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런데 이 귀한 연구결과가 다음 달 3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단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문가들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해도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식 생산과 공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당사자 배제, 노동자 배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국가공공기관이나 연구자, 전문가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책무성을 갖는 것일까? 신성한 학술공동체? 연구비를 지원한 기업?
기업에게 노동자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귀찮은 설명 따위는 해줄 필요 없는, 그저 지나는 과객들? 유식해지면 괜히 분란이나 일으키는 골치 아픈 사고뭉치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업기밀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학계에서 심층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비전문가가 그 모든 지식과 학술적 논쟁들을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려우면 쉽게 설명해서 알려줘야 한다. 복잡한 절차나 암묵적 압력 때문에 노동자들이 알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쉽고 민주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위험한 물질을 다루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받는 이들은, 이러한 절차를 만들고 지식을 생산하는 공무원도 연구자도 기업가도 아닌, 바로 노동자들이다. 노동자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