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메르스 감염 확산은 한국 공중보건의료체계 파산의 결과
- 한국에 필요한 것은 중동환자 유입을 위한 의료관광이 아니라
국가적 감염병 대책을 위한 공공병원 확충과 의료공공성의 확보 -
6월 2일 현재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는 25명이며 이 숫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중동국가외에는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가 되었고 사망자와 3차 감염자 발생이 확인되었다.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이 이러한 상황을 낳았다는 것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다. 최초 환자의 진단과정에서부터 확진 이후에 보인 정부의 대응은 공중보건의료체계의 총체적 파산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현재 상황이 더는 심각해지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정부의 감염병 재난 대비 체계와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대책과 개혁을 촉구한다.
1. 정부는 부실한 검역과 방역 대책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국내 메르스 감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현재 25명의 확진자에 이르기까지 부실 그 자체였다. 메르스 감염 의심환자가 아무런 조치없이 해외 출장을 가 중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아 외교적 문제가 되고 있으며, 최초환자와 같은 병원에 있는 환자들 및 이들과의 밀접 접촉자들의 격리(자가 및 시설)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 때문에 감염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러한 안일한 정부의 무능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됐고, 국가 방역체계는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메르스 괴담’ 유포자에 대한 처벌을 운운하는 등 국민에 대한 또 다른 협박만 늘어놓고 있다. 지금 복지부와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이토록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제대로 된 원인분석과 이에 대한 향후 대책이다. 그리고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든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방역대책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
2. 고위험 감염병에 대한 공공의료 대응 체계와 이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라.
현재 메르스의 잠복기로 알려진 2주째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감염자 25명, 격리대상자만 700여명에 가까워, 2주지점이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확진자와 격리대상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벌써 부족하다. 시설 격리대상자가 조금더 늘어날 경우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격리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감염확진자가 18명이 된 어제 상황에서 정부 당국은 복지부를 통해 공공의료기관이 병동확보를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결핵 등으로 기존에 공공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일단 소개하는 조치가 이미 시작되었다. 결국 메르스 전파를 막겠다고 가난한 감염환자들을 퇴원시키는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과거 사스와 신종플루, 에볼라 전염 시에도 수없이 지적된 가장 큰 문제점은 위급한 시기에 정부가 통제 운영 관리가 가능한 공공병원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민간병원들을 달래지 못했던 일이 엊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르스가 확산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격리병상과 음압시설을 갖춘 공공병원과 병상은 역시나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메르스 뿐만 아니라 향후에 또 발생할 수 있는 재난적 감염질환에 대해 공중의료 위기에 대한 후진적 대응은 전체 병상 중 공공병원의 비중을 대폭 늘이고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높이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3. 돈벌이가 아니라 감염병을 치료 관리하기 위한 제대로 된 감염병실을 마련하라.
이번 사태에서 2차 감염자들은 같은 병실이 아니라 대부분 같은 병동과 같은 층의 다른 병실에서 감염되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한국의 병원 공간 내 입원 환자들의 높은 밀집도가 감염 확산 속도를 높인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감염병실은 1인실로 돼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감염병실도 다인실로 되어있으며 감염관리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감염병의 경우 1인실도 보험적용 대상임에도 수익성만을 따지는 국내 병원의 전반적인 상업화가 감염 확산의 원인중 하나다. 때문에 감염병 치료의 적정화를 위해서는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공공병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감염병실의 허술함과 환자를 가족들이 돌보아야 하는 보호자까지 북적이는 한국의 병원 현실과 이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부실한 역학조사가 메르스 감염을 증폭시켰다.
병원의 상업화에 따른 과잉 병상경쟁이 불러온 감염병의 재난적 확산에 대해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병원들의 감염병실 운영에 대해 제대로 된 지침을 제시하고 이를 감독해야 한다.
4. 국민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종합적 방역대책 및 사회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현 상황에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인 국민들의 불안을 ‘괴담’이라고 치부하며 ‘괴담유포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불안이 가중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메르스는 전염력이 높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부실한 초동대응을 면피하려고 2차 감염자가 많은 상황에 대해 ‘수퍼변이’ 운운했던 정부가 바로 괴담유포자였다.
적절한 정보가 없을 때 국민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서게 된다. 국민들은 사스나 신종플루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메르스에 대해 학습하고 있으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불안에 대처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 그리고 한국의료에 대한 불신이 현 사태의 원인이다. 정부의 공권력을 이용한 공포정치로는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정부는 책임 회피를 위해 위험을 감추는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불안에 떠는 국민들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절한 종합적 방역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자택 및 시설 격리자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감염이 의심되어 자택격리를 하려하더라도 실직위험 및 생계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없으면 자택격리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제시한 자택격리에 대한 4인가족 기준 월 100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며, 직장의 휴직 등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이러한 부실한 정부 대책은 감염의 확산을 빠르게 할 뿐이다. 직장인들은 일시 유급휴직을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적절한 생계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감염병에 대한 국가 방역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차례 강조되어 왔듯이 공공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하고 공공병원이 OECD 중 꼴찌인 한국의 공공의료의 부재와 의료의 공공성의 부재가 이 모든 상황의 근본적 원인이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대응을 보면, 많은 나라들이 2012년부터 중동의 메르스 유행에 대해 방역과 안전관리를 갖춰 대응하고 검역을 강화했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근까지도 중동 의료수출론을 내세우며 중동 환자 유입을 위한 각종 국내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고 그와 관련한 법을 국회에 상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통령이 중동의 의료관광을 보건의료분야의 최우선과제로 제시하는 나라에서 중동 호흡기증후군에 대한 검사를 꺼리는 방역담당 공무원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감염병에 대한 국가의 안전대책은 무시되고 돈벌이 의료를 위한 의료관광론이 보건복지부의 지상과제가 되어있고 의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사회인프라가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산업이 되어야 하는 지금의 의료영리화와 상업화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있다. 정부는 메르스 감염 확산에 대한 국가의 재난적 감염병 종합대책을 세우고, 의료수출론이 아니라 의료공공성과 국민 건강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한 나라의 공공 방역과 공공 의료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2015. 6. 2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이화의료원은 노조파괴공작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라.
- ‘여성전문병원’을 표방하려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부터 개선하라 -
이화의료원(통칭 이화여자대학교병원, 이대병원) 노동자들이 9월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화의료원은 2008년 동대문 병원을 폐업하고 이대 목동병원으로 통폐합하면서 동대문병원 출신 노동자들에게22퍼센트의 임금삭감을 강요했던 병원이다. 이 때문에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의 임금은 전국 사립대병원 중 최저이다. 또한 통폐합을 핑계로 인력충원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대병원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인력충원이라는 요구는 정당하며 또한 정상적 진료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다. 그러나 병원당국은 합리적인 해결을 모색하기는커녕, 노조와의 교섭방기, 노조파괴 추진 등 상식밖의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 3주를 넘어 이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이화의료원 당국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며,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낸다.
첫째,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
최근 서울의 대학병원들의 병동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3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에서의 학업시간 보다도 근속연수가 낮은 것은 물론 OECD 1위의 간호인력당 환자수와 야간 및 장시간 노동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때문이다. 이대병원은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력충원 없이 업무량을 더 늘려왔고 의료기사 직종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채용해왔다. 결국 이화의료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건강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직원들이 건강하지 못한 병원은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올바른 병원이 될 수 없다.
둘째, 이화의료원은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노조파괴 기도를 중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명박정부 들어 파업을 빌미로 노조파괴와 대량해고가 자행되는 사태를 여러차례 목격해왔다. 또한 쌍용자동차로 대표되는 것처럼 파업 노동자들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정신적 공황과 자살로 몰리는 상황을 목도했다. 이대병원은 이번 파업에 대응을 하면서 노조파괴로 악명이 높은 창조콘설팅과 전문용역계약을 맺었다.
창조콘설팅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지난 7년간 SJM, 영남대병원 등 14개의 노조파괴공작에 관여했으며 노조파괴 성공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이화의료원은 병원노동자들의 식사개선 등의 처우에는 단 돈 몇원도 아끼려는 반면, 노조파괴를 위해서는 거액을 쓰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외면하고, 이들을 장기파업으로 나서게 하고, 노조파괴를 추진하는 이화의료원 당국의 행위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3권을 침해하는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셋째. 이화의료원은 돈벌이가 아닌 의료의 가치를 회복하여야 한다.
이화의료원은 지하철 등에 많은 돈을 들인 광고를 통해 ‘여성전문병원’이라는 광고를 개제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병원내 여성노동자를 위해서는 다른 병원에는 다 있는 보육시설이나 보육수당 조차 없다. 직원식당은 식사의 질이 너무 낮아 간호사들이 차라리 컵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이것이 이화의료원이 말하는 ‘여성전문병원’이란 말인가? 또한 이화의료원은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퇴직금제도에 있어서도 기타 사학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사립대학교 병원들과 달리 일반기업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병원이 마치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돈만 더 벌면 된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화의료원이 엄연한 ‘비영리’법인이며 공익성을 추구해야할 의무가 있음을 망각한 행위이다. 병원이미지 제고를 위해 수억원대의 광고는 선뜻하면서도 병원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처우개선은 외면하는 행위는 의료에서는 질의 저하로 드러난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양질의 의료는 양질의 의료인력에서 나온다. 병원 노동자에게 존엄하고 정당한 대우를 해줄때에만 양질의 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대병원은 명심해야 한다.
이화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은 약 1,060만원으로 사립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의료원은 이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전에 실습을 하는 교육병원이다.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과 이화의료원은 학생들에게는 유례없는 등록금 폭탄을, 병원노동자들에게는 최하위 임금을 주고 있다는 오명을 이제는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화의료원은 교육병원으로서도 자신의 공익성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앞으로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춘 의료인이 되어야 할 학생들이 ‘노조파괴’ ‘저질식사’ ‘보육시설도 없는 여성병원’ ‘최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등을 목도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 우리는 이화의료원의 문제를 한국의 의료문제의 집약점, 노동문제의 집대성으로 본다. 우리 보건의료인들은 이화의료원의 파업에 연대의 지지를 보낸다.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당하다. 이화의료원은 당장 노조파괴공작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야 한다.
2012.9.25